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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해수부 이전 효과 지원책 봇물, 해양 신산업 꽃피우길
해양수도를 꿈꾸는 부산이 해양 신산업 창업을 위한 허브로 거듭난다. 해운과 조선, 수산 등 기존 해양산업의 중심지인 부산은 이제 해양강국의 미래를 이끌 해양 신산업의 모태를 꿈꾸기 시작한다. 해양 신산업 창업을 뒷받침하겠다며 부산지역 기관들이 발빠르게 본격적인 지원 시스템과 환경을 마련하고 나선 결과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효과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수부 부산 이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해양 대도시 부산 중심의 현장 위주 신속한 해양 정책 수립으로 해양수도 현실화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 바 있다. 해양 신산업 모태 부산의 꿈은 그 기대의 서막이다.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인 기관은 부산 기술 창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부산기술창업투자원(창투원)이다. 창투원은 최근 부산항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기관인 부산항만공사(BPA)와 해양 신산업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창투원은 해양 신기술 기업 발굴과 투자 지원 등을 맡고 BPA는 항만 현장을 테스트베드로 제공하기로 업무 분장을 했다. 발빠른 해양 현장 기술 적용으로 즉각적인 사업화와 투자 유치로 직결되는 길을 열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정부가 설립한 비영리법인인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도 투자유치 특화형 지원사업 운영방식을 해양 신기술 창업에 맞추기로 하고 지원 프로그램 마련에 나섰다. 직접적인 지원 이외에 해양 신산업 창업을 위한 후방 환경 조성 움직임도 활발하다.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비스텝)은 최근 해양사업기획팀을 신설했다. 연구개발(R&D) 사업 발굴과 국비 유치 지원을 맡고 있는 비스텝이 해양 분야 전담 기획팀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양 신산업 특화형 국비 유치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영도 동삼동 해양클러스터에서는 해양 관련 공공기관과 대학, 연구소 등의 역량을 모은 산학연 통합 플랫폼 ‘해양과학기술 산학연 협력센터’도 오는 7월 문을 연다. 클러스터 내 연구·산업 기반 시설을 활용해 해양 기업들에게 임대공간 외에 기술개발을 위해 필요한 공유 공간까지 제공될 예정이다. 부산은 그동안 해양 관련 각종 기능과 기관들이 자생하거나 이전, 유치돼 왔다. 대한민국 해양 관문인 부산에 이 같은 기능과 기관이 모인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들 기능과 기관은 한 데 모여 있었을 뿐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에는 한계를 보여 왔다. 지방자치 시대에도 정책은 정부 부처가 모여 있는 소위 ‘중앙’의 독차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해수부 부산 이전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현장 속 신속하고도 현실적인 정책 수립을 가능케 할 ‘마중물’이 부어진 것이다. 그 마중물은 서말이던 부산의 구슬들을 꿰어 해양 신산업 창업 허브라는 보배로 거듭나게 하려 한다. 이제 막 시작된 그 시너지 효과가 활짝 꽃피우게 되길 기대한다.
[사설] 유가 급등·코스피 폭락, 중동발 경제 불확실성 커졌다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란혁명수비대는 2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은 폐쇄됐다”며 “통과를 시도한다면 그 어떤 선박이라도 혁명수비대와 정규 해군이 불태울 것”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란에 지상군 투입을 시사하며 핵과 미사일 능력 파괴, 해군 전멸 등 공격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미국과 이란의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조성되면서 중동발 경제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이 여파로 코스피는 3일 7% 넘게 폭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지역 기업들은 확전 우려와 사태 장기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면서 동남권 기업들은 술렁이는 상황이다. 중동이 주요 판로인 방산업계는 전쟁 영향으로 기존 계약이 영향받지 않을까 우려한다. 자동차부품업계도 수출 영향 파악과 정보 수집에 급히 나선 상태다. 석유화학업계는 윤활유 사업 선물 거래로 당장 영향은 없지만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조선업은 넉넉한 일감을 확보했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산업 전반에 연쇄 파장이 불가피하다. 이런 가운데 호르무즈 인근 해역에 국적 선박 40척이 대기 또는 이동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만일 해협 봉쇄가 길어진다면 운임, 운송 기간 급증 등 해운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지역 기업들이 수출에 심대한 타격을 입을 우려가 큰 것이다. 중동발 지정학적 충격은 국내 금융시장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3일 한때 매도 사이드카까지 발동한 가운데 코스피는 전장보다 452.22포인트(7.24%) 내린 5791.91에 거래를 마감했다. 낙폭 기준으론 역대 최대였고, 하락률 기준으론 코스피가 8% 넘게 폭락한 2024년 8월 5일 ‘블랙먼데이’ 이후 최고였다. 특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수출 주도형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란 우려가 주가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달러도 강세를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은 이날 26원 넘게 뛰며 1466원까지 올랐다. 증시·환율이 동시에 출렁이는 금융시장 충격 앞에서 냉정한 분석과 대응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미국과 이란 전쟁 확전으로 국내 경제는 물론 지역 기업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미 관세 문제로도 힘겨운 상황에 처했는데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까지 겹치면서 산업 전반의 리스크가 커지는 양상이다. 국제 유가 급등은 해운산업, 석유화학 등 산업에 타격을 준다. 또 환율 급등, 수출과 공급망 확보 차질 등 복합적인 충격이 오면 지역 기업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정부와 기업 모두 중동 전쟁 확대와 장기화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비상 대응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지역 산업에 미칠 여파를 면밀히 살펴 지역 기업 지원에 행정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사설] 첫 도심형 국립공원, 금정산을 보존과 이용의 조화 모델로
부산과 경남 양산에 걸친 금정산이 3일 국립공원으로 출범했다. 국내 24번째 국립공원인데,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깊은 산속이 아닌 대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은 첫 도심형 공원인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오랜 세월 시민의 삶에 맞닿아 있던 ‘동네 뒷산’이 국가가 보존해야 할 자연유산으로 인정받은 대목은 당연히 기대와 자부심으로 직결된다. 국립공원 출범을 목전에 둔 지난 주말, 고당봉 정상 표석 앞에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대기 행렬이 북적인 게 그 실례다. 다만 일반 산지에서 바로 국립공원으로 승격한 탓에 관리 체제와 탐방 문화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보존과 이용의 균형점을 찾는 데 국립공원 안착의 성패가 달렸다. 금정산이 명품 반열에 오르려면 갈 길이 멀다. 앞서 승격된 팔공산이나 무등산은 도립공원 단계를 거쳐 관리 체계를 축적했지만, 금정산은 백지상태에서 자료 조사와 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안내 체계 정비와 재난 대응 시스템 구축까지 최소 3~4년이 걸릴 전망이다. 더구나 예산안 편성 뒤에 승격이 결정되면서 올해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점이 뼈아프다. 그 결과로 공원 관리사무소에 추가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준비단 13명만으로 개소할 수밖에 없었다. 50∼70명이 일하는 다른 공원과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기대와 자부심이 실망감으로 바뀌지 않도록 국립공원공단과 인접 8개 지자체는 초기 대응책을 내놔야 한다. 국립공원의 안착을 위해서는 시민 인식 전환도 필수다. 그동안 금정산은 일상의 공간과 인접한 특성상 입산과 이용 방법에 거의 제한이 없었다. 현재 금정산에는 200개가 넘는 등산로가 전체 300㎞ 길이로 펼쳐져 있다.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 훨씬 큰 규모다. 생태 보존을 위한 탐방로 정비는 불가피한데, 이는 기존의 이용 관행과 충돌할 공산이 크다. 또 자연공원법 적용으로 반려견 동반, 야간 산행, 취사와 음주 등이 금지되면 불만이 제기될 수도 있다. 국립공원 지정이 개발과 편의가 아닌 공공의 자산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 점을 관리 당국은 설명할 책임이 있고, 시민은 적극 수용할 책임이 있다. 국내 첫 도심형 국립공원 지정은 자부심이면서 동시에 책임을 의미한다. ‘국립’에 걸맞은 품격은 보존과 이용의 균형점에서 얻을 수 있다. 그러려면 출범 초반에 원활한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 부산시와 인접 지자체, 시민단체와 학계가 참여하는 상설 협의 구조를 통해 사유지와 불법 시설 관리, 재난 대응과 이용 규칙을 조율해야 한다. 내실 있는 관리 체계로 신뢰를 얻으면 사회적 합의도 순조로울 것이다. 그러면 금정산은 도심형 국립공원의 모범 사례가 될 것이고, 향후 다른 대도시 인접 산지의 국립공원 지정에 선례가 된다. 거버넌스와 신뢰 구축이 명품 공원을 만든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AI발 실업 공포
인공지능(AI)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 평범한 개인이 궁금증을 AI로 즉시 해소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컨설팅 서비스까지 손쉽게 제공받는 놀라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AI 성능이 향상될수록 대량 감원과 소비 여력 감소에 따른 실업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미국 러서치업체 ‘시트리니 리서치’는 지난달 22일 ‘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란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 골자는 현재 진행 중인 다양한 AI 혁신이 2028년 대형 금융 위기를 야기한다는 것. 보고서는 가까운 미래엔 초고성능 AI가 기업용 구독 소프트웨어를 대체하고, 스테이블코인 등 결제 수수료가 저렴한 경로까지 스스로 찾아내 신용카드 수요를 급감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이 때문에 은행과 소프트웨어·컨설팅 기업이 연쇄 도산하고 사무직 대량 감원 사태가 벌어진다고 봤다. 결국 주택담보대출을 못 갚는 금융 대혼란이 벌어진다는 것이다.보고서 공개 여파로 최근 미 증시에서는 관련 업종 주가가 줄줄이 급락하면서 월가를 충격에 빠뜨렸다. AI 공포에 따른 투매 현상은 미국 기업공개(IPO) 시장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IPO를 진행 중인 중소형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계획을 철회하거나 공모가를 밑도는 주가 부진을 겪고 있다. AI 충격을 견딜 수 있는 빅테크 기업들만 향후 살아남을 것이라는 비관적 분석도 이어진다.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AI를 이유로 채용을 중단하고 고용을 줄이는 현상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IBM의 경우 신규 채용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이어 5년 내에 고객과 직접 접점을 갖지 않는 부서 업무 30%를 AI와 자동화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트위터 공동 창업자 잭 도시가 설립한 결제 회사 블록도 직원 1만 명 가운데 4000명 이상을 감축한다며 그 이유에 대해 AI가 회사 운영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I가 인간 채용을 제약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된 셈이다.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시중은행들은 ‘AI 은행원’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게임업계 등도 밑그림과 채색 작업 등을 AI로 대체하고 있다. 상당수 산업의 인력 운용 구조 자체가 채용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가뜩이나 청년을 위한 정규직 일자리가 부족하다. AI발 기술 혁신이 고용 절벽 현상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한층 세심한 정책을 당부한다.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김승일 칼럼] 황석영처럼 누구나 AI로 소설 쓸 수 있을까
‘〈어린 왕자〉 주인공에 시공간의 왜곡이라는 시련이 닥친다. 별 여행 후 지구로 오는 여정에서 시간이 50년 빨리 흐른 것이다. “저는 B-612 소행성에서 온 어린 왕자랍니다.”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 불시착한 우주선을 발견한 해양구조대는 자신을 어린 왕자로 칭하는 중년 사내를 보고 깜짝 놀란다.’ 문학의 문외한이지만 AI(인공지능)로 소설을 써 보리라 작정했다. 여든 중반을 바라보는 황석영 작가가 신작 〈할매〉 집필에 챗GPT를 활용했다고 공개한 것이 계기다. 평소 자료 검색 도구로 생성형 AI를 요긴하게 쓰는 편이지만, 사색이 필요하고, 한 자 한 자 새겨야 하는 글쓰기는 ‘글쎄요’다. 경험과 직관, 의도가 용광로처럼 뒤섞이는 창작을 AI가 대체할 수 있을까. 이 관념을 황 작가가 깼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자료 조사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개념 정리에 AI를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구성안이나 글쓰기 방식까지 상의해 결정했다. 이는 단순 조수 역할로 볼 수 없다. 창작의 협업을 넘어 능수능란하게 부렸다고 보는 게 맞다. 황 작가의 작업 방식을 유추해 과정을 설계했다. 제목은 〈늙은 왕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세계관을 현대 도시로 확장한 스핀오프다. 동화 형식을 빌린 성장 소설의 틀과, 권력과 허영, 중독, 자본, 기계적 노동, 관념적 지식의 허상을 목격한 뒤 사랑과 관계의 본질을 깨닫는 원작의 서사를 유지했다. 챗GPT에 콘셉트를 입력한 뒤 광안리 불시착 이후 만날 인물의 예시와 상징체계를 완성했다. 부동산 중개업자(소유와 숫자), 인플루언서(허영과 인정 욕망), 환경미화원(책임과 헌신), 은퇴한 조선소 노동자(시간과 노동), 자갈치 아지매(길들임과 관계), 길고양이(조건 없는 돌봄), 사진관 주인(본질을 보는 눈). 낯선 부산에서 사랑과 관계의 의미를 깨닫고, 사진사의 도움으로 어린 영혼을 되찾는 결말로 가닥을 잡았다. 200자 원고지 200매 분량의 중편 소설 구성안이 나왔다. ‘원작처럼 우화 형식으로, 단문과 반복, 여백이 가득한 동화체로 서술하라!’ 전체 21장으로 나뉜 소설 한 권이 생성됐다. 지면 한계로 전재가 어려워 원작의 뱀 역할을 대체한 사진사와의 만남 장면만 소개한다.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사진사는 웃지 않았다. “사람은 길을 잃지 않아요.” “그럼요?”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릴 뿐이지.” 사진사는 조용히 촬영 버튼을 눌렀고,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속에는 중년의 남자가 아니라 어린 소년이 앉아 있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를 일본어로 번역한 이데 슌사쿠 작가 인터뷰가 떠올랐다. “번역하다가 울고, 그래서 쉬었다가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세 줄 쓰고 한 시간 울었다”는 한강 작가의 고통과 맞닿아 있다. 내면의 울림을 문자의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려면 웬만한 내공으로는 어림없다. 예컨대 4만 자 소설을 쓴다면 작가는 4만 번 이상 선택의 고뇌를 거쳤다고 보면 된다. 완성된 〈늙은 왕자〉를 읽고 가책을 느꼈다. ‘데뷔 작가’로서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해야지 싶었다. ‘이 소설에서 작동하는 매개 변수(파라미터)를 찾아 줘.’ 매개 변수는 인물과 사건을 연결하고, 의미를 생성하며, 서사의 방향을 바꾸는 구조적 요소다. 평론가 뺨치는 방대하고 치밀한 분석이 쏟아졌다. 변수의 패턴 분석까지 읽으니, 사진사에 극적 긴장감을 배치하는 게 나아 보였다. ‘사진사를 ‘전환 장치’에서 ‘시간·기억을 관장하는 존재’로 격상해서 재구성하라.’ 소설 중반 곳곳에 사진관 복선을 깔고, 결말에 사진사를 복귀의 문지기가 되게끔 사건을 만들라고 입력하자 중후반부만 바뀐 수정본이 뚝딱 나왔다. 긴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지우고 쓰기를 반복하는 번민의 고통은 이제 불필요한 것일까. 갑자기 올해 〈부산일보〉를 비롯한 전국 신문사의 신춘문예 응모작이 최대 두 배 가까이 늘어난 흥행 미스터리가 겹쳐 떠올랐다. 누구나 AI 도구를 활용하면 황석영 작가처럼 중편 소설을 창작할 수 있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서랍 속 먼지 쌓인 습작도 매개 변수 조정을 거듭하면 탄탄한 서사 구조로 탈바꿈할 수 있다. ‘주인공 캐릭터를 유머러스하게 강조해.’ ‘범인의 폭력성을 부각해.’ 하지만 ‘황석영 문체로 쓰라’고 단순히 입력하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프롬프트의 정교함이 결과의 품질과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창작에 동반되는 고통스러운 선택은 체화된 경험과 사상이 뒷받침한다. 문즉인(文卽人). 글이 곧 사람이고, 글 속에 지문(指紋)이 있다. 범용 AI(AGI) 시대가 오면 예술 문법은 더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AI를 제 몸처럼 다뤄 창작 의도를 지문처럼 새기는 능력. 문재(文才)의 정의가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열을 품은 도시, 식지 않는 밤
지난해 역대급 폭염으로 인해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가축 폐사와 농작물 피해가 속출했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올해는 그 더위의 기세가 더 앞당겨질 것이라는 예보가 잇따르고 있다. 기후변화의 가속화로 이제 4월만 되어도 초여름 못지않은 가마솥더위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폭염으로 인한 피해는 녹지가 풍부한 농어촌보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 지역에서 훨씬 가혹하게 나타난다. 이는 도시가 주변 교외 지역에 비해 기온이 수도 이상 높게 유지되는 ‘도시열섬’ 현상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태양열을 거침없이 흡수하는 아스팔트 도로와 거대한 콘크리트 건축물은 낮에 축적한 열기를 밤새도록 뿜어내며 도심을 거대한 열기 보관소로 만든다. 여기에 자동차와 에어컨 실외기 등에서 쏟아지는 인공 열까지 가세하면서, 도시의 기온은 식을 줄 모르는 악순환에 빠진다. 결과적으로 시골 지역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폭염 경보가 발령되고 열대야가 길어지는 환경은 도시민의 건강을 직접적으로 타격한다. 도시가 기후 위기 시대의 가장 위험한 열의 사각지대가 되는 것이다. 도시열섬 현상의 진정한 위협은 해가 진 뒤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낮 동안에는 도시와 교외 지역의 온도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밤이 되면 대지는 급격히 냉각되는 시골과 달리, 온종일 태양열을 머금은 도시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건물들은 축적된 열기를 서서히 내뿜으며 기온 하락을 방해한다. 이로 인해 밤사이 기온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고착화되면서 도시는 거대한 열 저장고가 된다. 도시열섬의 본질적인 차이는 지표면의 물리적 성질, 즉 ‘열용량’(Heat Capacity)에 있다. 시골의 흙과 나무는 열을 금방 내뱉지만, 도시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는 낮 동안 받은 거대한 에너지를 내부 깊숙이 저장한다. 이로 인해 밤이 되어도 도시는 식지 못하고 야간 열섬 현상을 일으킨다. 즉, 도시는 열을 잠시 머물다 가게 하는 곳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의 열 보유 능력을 스스로 키워버린 상태다. 즉, 낮과 밤의 기온차가 줄어들면서 낮에는 주변보다 온도가 낮아지고 밤은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도시는 낮은 알베도(반사율)와 복잡한 건물 구조(어두운 표면)로 인해 태양 에너지를 튕겨내지 않고 그대로 흡수한다. 결과적으로 지표면이 받아들이는 전체적인 열의 양 자체가 시골보다 훨씬 많아진다. 자동차, 에어컨 등에서 발생하는 인공 열까지 더해지면서 도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열과 내부에서 발생하는 열이 모두 늘어나는 이중의 가열 상태에 놓인다. 도시열섬 현상의 본질은 두 가지 물리적 변화가 결합한 결과다. 먼저, 도시가 시골보다 더 많은 ‘열속’(Heat Flux)을 받아들인다는 점은 도시 전체의 평균 기온을 상승시키는 근본 원인이 된다. 여기에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지표면의 열용량 증가가 더해지면, 낮 동안 축적된 방대한 에너지가 밤사이 천천히 방출되면서 낮과 밤의 기온 차(일교차)를 현저히 감소시킨다. 이 두 기제가 맞물리며 낮에는 주변 시골과 기온 차이가 크지 않더라도, 밤이 되면 냉각이 저지되는 도시 특유의 구조 때문에 두 지역 간 온도 격차는 본격적으로 벌어진다. 결국 전체적인 기온 상승과 일교차 감소라는 이중주가 도시에서 열대야를 훨씬 빈번하고 가혹하게 만든다. 이러한 물리적 메커니즘은 실제 기온 자료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대도시인 서울과 근처 상대적으로 시골인 양평의 기온 변화는 일변화와 장기 추세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낮 동안에는 두 지역의 최고기온 차이가 비교적 크지 않지만, 밤에는 서울의 기온이 양평보다 유의하게 높게 유지되어 도시-농촌 간 기온 차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특히 1970~80년대 서울의 급격한 도시화 시기에 두 지역 간 야간 기온 차가 크게 확대되었으며, 이후 양평 지역 역시 점차 기온이 상승하면서 서울과의 차이 증가 폭은 다소 완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결론적으로, 전 지구적 온난화와 도시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현실에서 열대야의 심화는 이미 시작된 현재의 과제이다. 특히 다가오는 올해 여름 역시 예외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폭염 취약계층 보호, 냉방 인프라 점검, 도시 열지도 기반의 대응 체계 강화와 같은 실질적 준비가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도시의 열용량을 줄이는 구조적 전환을 병행해야 한다. 공원과 도시 숲 확대, 가로수 식재, 옥상·벽면 녹화 등 녹지화를 포함한 도시계획을 통해 열 저장을 줄이고 야간 냉각을 회복시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뜨거워진 도시의 밤을 완화하기 위한 준비는 지금 이 순간 정책과 설계에서 시작돼야 한다. 그것이 올여름을 넘어 미래의 여름을 견디는 가장 현실적인 대응이다.
[데스크 칼럼] 기대에 한참 못 미친 부산 프로농구
부산을 연고지로 한 남녀 프로농구팀 부산 KCC 이지스와 부산 BNK썸이 올 시즌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부산의 한 농구 팬은 “2년 전과 지난해 각각 챔피언에 오른 두 팀이 올 시즌에는 이렇다 할 경기력을 선보이지 못하며 리그 중위권에 머물고 있다”며 “롯데 자이언츠가 지난 시즌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 데 이어 두 팀 모두 리그 우승이 좌절된 처지여서 실망감이 크다”고 말했다. 프로농구 전문가들도 “수비력이 약한 부산 KCC와 높이가 약점인 부산 BNK가 막판 대반전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는 있어도, 챔피언전 정상을 차지할 가능성은 낮다”고 입을 모았다. 먼저, ‘슈퍼팀’으로 불렸던 부산 KCC는 2023-2024 정규리그에서 5위로 플레이오프에 향했다. 하지만 6강 플레이오프부터 전혀 다른 경기력을 보여줬다. 허웅과 최준용, 송교창의 시너지 효과가 제대로 나왔고, 당시 외국인 선수였던 라건아까지 내외곽에서 상대 선수를 맹폭한 결과, KCC는 ‘KBL(한국농구연맹) 역대 최초 정규리그 5위 팀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하지만 2025-2026시즌에는 화려한 선수들의 이름값과 달리 성적은 너무 실망스럽다. 현재 리그 5위를 기록 중인 KCC는 올 시즌 국가대표 출신 가드 허훈과 장신 센터 장재석을 영입하고 역시 국가대표를 지낸 이승현을 트레이드로 내보냈다. 기존 멤버인 허웅과 최준용, 송교창에 허훈과 장재석, 숀 롱이 가세한 KCC는 ‘역대 최강’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았다. 올 시즌 KCC 지휘봉을 잡은 이상민 감독도 정규리그 우승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송교창, 최준용은 잦은 부상으로 밥값을 하지 못하고 있다. 숀 롱이 골밑과 외곽에서 분전하며 두 선수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상민 감독은 “왜 우리 팀에 부상이 잦은지 나도 알고 싶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슈퍼스타에 의존한 팀 구성으로 인해 주전을 받치는 벤치 멤버가 약하고, 수비 조직력이 취약한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KCC의 공격력은 10개 구단 중 최고 수준이다. 팀의 해결사 허웅은 지난달 2일 열린 서울 SK전에서 14개의 3점포를 꽂은 것을 포함해 51점을 터뜨렸다. KBL에서 국내 선수가 50점 이상을 넣은 건 허웅이 역대 세 번째다. 2004년 3월 7일에 당시 인천 전자랜드에서 뛰던 문경은(현 수원 KT 감독)이 원주 TG삼보(현 원주 DB)를 상대로 66점(3점슛 22개)을 쏟아부었다. 같은 날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의 우지원이 창원 LG전에서 70점(3점슛 21개 포함)을 뽑았다. 당시 문경은과 우지원은 3점슛 타이틀을 두고 경쟁 중이었다. 정규리그 마지막 날 동료들이 두 선수에게 3점슛 기회를 몰아주면서 비현실적인 득점 기록이 나온 것이다. 따라서 SK의 빡빡한 수비를 뚫고 51점을 꽂은 허웅이 역대 득점 1위라고 해도 무방하다. 지난 시즌 디펜딩 챔피언 부산 BNK도 지난달 5연패의 부진에 빠지며 우승팀다운 위용을 과시하지 못하고 있다. 2024-2025시즌 공수에서 탄탄한 조직력과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며 리그 1위와 챔피언전 우승을 동시에 거머쥔 BNK는 올 시즌 리그 4위에 머물고 있다. 이 같은 부진의 원인은 수비 조직력의 약화와 높이의 열세 때문이다. 특히 팀의 센터 역할을 하는 변소정과 박성진, 김도연이 지난 시즌에 비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팀의 공수를 지탱하고 있는 베테랑 김소니아와 박혜진, ‘돌격 대장’ 이소희의 분전에 힘입어 길었던 5연패의 사슬을 끊어내고 플레이오프 진출의 희망을 살릴 수 있었다. 김소니아는 올 시즌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또 리바운드에서도 개인 순위 10위권 내에 들며 팀의 중심을 확실히 잡고 있다.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활동량과 해결사 본능이 빛을 발하고 있다. 슈터 이소희의 성장세도 눈부시다. 이소희도 올 시즌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지난 시즌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팀의 승부처마다 맹활약하고 있는데, 김소니아와 박혜진이 집중 견제를 받을 때 외곽에서 터뜨리는 이소희의 득점포는 팀 공격의 혈을 뚫어주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BNK 박정은 감독은 “리바운드 등 높이에서 다소 약점이 있지만, 주전 선수 5명을 비롯해 벤치 멤버까지 원팀으로 이기는 모습을 항상 주문하고 있다. 코트에서 수비나 경기 조율 등 리더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박혜진과 김소니아 같은 선수가 있다는 게 우리 팀의 믿을 만한 구석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슈퍼팀’ KCC와 강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BNK가 다시 한 번 기적의 역사를 쓸 수 있을지 주목된다.
[노트북 단상] 동물원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고?
부산 부모들에게 ‘동물원’은 애증의 단어다. 주말이면 아이 손을 잡고 유아차를 밀며 등산을 하듯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했던 부산진구 초읍에 있던 삼정더파크. 그 살벌한 경사도 때문에 유아차 옆에는 늘 시원한 음료가 상비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2020년 문을 닫았다. 최근 부산시가 이를 인수해 내년에는 문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비싼 땅값과 좁은 부지라는 부산의 태생적 한계 속에 그나마 있던 공간도 규모와 시설 면에서 늘 아쉬움을 남겼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부산의 부모들은 큰마음을 먹고 1박 2일 일정으로 용인 에버랜드행 고속도로에 오른다. 심지어 해외여행에서도 동물원을 보기 위해 하루를 온전히 소비한다. 대형 동물원 하나를 보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는 이 비효율적인 풍경은 역설적으로 우리 지역이 처한 칸막이 행정과 정치적 불통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가까운 경남으로 눈을 돌리면 넓은 땅과 완만한 지형이 널려 있다. 하지만 ‘우리 시’의 예산이 ‘남의 도’에 쓰일 수 없다는 행정의 벽은 그동안 견고했다. 부산 사람은 즐길 곳이 없어 떠나고, 경남은 인프라를 채울 동력을 찾지 못하는 모순이다. 최근 부상한 행정 통합 논의가 단순히 정치적 수사가 아닌, 우리 삶의 실질적인 해법으로 다가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물원 하나 제대로 짓지 못하게 가로막았던 그 낡은 벽, 그리고 정치적 자존심이라는 더 높은 벽을 허물자는 것이다. 문제는 최근 이 논의가 정치적 이해관계의 늪에 빠져 더 꼬이고 있다는 점이다. 메가시티 파기 이후 추진 중인 행정 통합은 지자체장들의 정치적 성향과 차기 대권·선거 셈법에 따라 온도 차, 속도 차가 극명하다. “누가 통합 지자체의 수장이 될 것인가” “어느 도시의 위상이 낮아질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소모적인 기싸움은 시민들의 실질적인 이익보다 우선시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부울경이 하나의 행정 구역처럼 움직인다면 자본을 한 곳에 집중 투입해 에버랜드 부럽지 않은 공간을 우리 곁에 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5극 3특의 본질은 이름 합치기가 아니라, 흩어진 자원을 모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원시티’에 대응할 체급을 키우는 결단이다. 실제로 수도권은 워낙 교통이 발달하고 인프라를 공유해 ‘니꺼 내꺼’의 개념이 지역에 비해 약하다. 경제 영역으로 넘어가면 통합의 절실함은 더욱 커진다. 설계는 부산에서, 건조는 거제와 울산에서 이뤄지는 조선업 생태계는 이미 행정 경계를 넘나든다. 이를 뒷받침할 광역 경제권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미래 모빌리티와 물류 산업에서도 수도권이 가질 수 없는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설계도에서 우리가 견지해야 할 원칙은 ‘냉정한 선택과 집중’이다. 인구 감소 시대에 모든 지역을 똑같이 개발하겠다는 ‘N분의 1’ 방식은 결국 모두를 고사시킨다. 그러기에 냉정한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도록 이를 결정할 수 있는 다양한 권한의 이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치적 셈범이 시민의 일상을, 그리고 지역의 미래를 볼모로 잡아서는 안 된다. 부울경의 부모들이 넓은 공간에서 유아차를 한 손으로 밀며 여유롭게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중앙로365] 전기가 곧 자본인 시대, 부산의 '에너지 경제학'
우리는 하루를 전기와 함께 시작한다.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켜지고, 밤새 충전된 스마트폰으로 아침을 연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흐르는 전기는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가장 조용하고도 강력한 자원이다. 그러나 지금, 이 조용한 에너지가 도시의 위상을 바꾸고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지난 1월, 정부는 그동안 지연되었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이행을 공식화하며 신규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건설을 확정했다. 유력 후보지로 거론되는 동해안 벨트는 이번에도 우리 부울경 인근이다. 지역 사회에서는 또다시 수도권을 위한 ‘전기 공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철저한 안전장치와 제도적 혜택이 전제된다면, 역설적으로 이 상황은 부산에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수도권의 현실을 볼 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하나가 필요로 하는 전력만 무려 15GW, 이는 원전 약 10기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전력 자급률이 60%에 불과한 수도권은 이미 포화 상태다. 송전 과정에서 사라지는 전력 손실 비용만 연간 1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최근 대두되는 ‘수도권 원전 건설론’은 현 전력 공급 체계의 모순이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방증이다. 위험은 지방에 집중되고, 소비는 수도권에 몰리는 이 불균형한 전력 구조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최근 정부와 국회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시행하며 “전기는 생산되는 지역에서 쓰이게 해야 한다”는 ‘지산지소(地産地消)’의 대원칙을 세웠다. 이에 따라 ‘송전 거리 비례 요금제(지역별 차등요금제)’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이는 단순한 요금 체계 변화가 아니다. 바야흐로 자본과 기술, 인재가 ‘싼 전기’를 찾아 이동하는 ‘에너지 경제학’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부산의 경쟁력은 명확하다. 단순히 전기가 남는 도시가 아니라,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전력 공급망을 갖췄다는 점이다. 지난해 지정된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은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특화지역 내에서는 ESS(에너지저장장치)를 활용한 유연한 전력 운영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에 필수적인 UPS(무정전 전원장치)를 대체할 ‘ESS 기반 구독형 서비스’는 기업의 초기 투자 부담을 크게 줄여준다. 자본 효율성을 중시하는 AI·플랫폼 기업에 이는 매우 강력한 유인책이다. 변화는 이미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현재까지 부산에 유치된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만 12조 7000억 원에 달하며, 마이크로소프트 등 15개사가 부산을 선택했다. 여기에 대한민국 해저 광케이블의 90%가 연결되는 통신 인프라는 부산을 단순한 항구 도시에서 데이터가 흐르는 ‘글로벌 디지털 물류 허브’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풍부한 전력’과 ‘초고속 통신망’, 그리고 원전 인접 지역의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더 큰 가치는 ‘전기의 양’이 아니라 ‘전기의 질’이다.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이제 24시간 끊김이 없는 ‘무탄소 에너지(CFE)’ 사용을 기업의 필수 조건으로 요구한다. 원전이라는 확실한 무탄소 기저 전원과 수소 에너지 인프라를 동시에 갖춘 부산은 최적의 대안이다. 깨끗하고 저렴한 에너지가 있는 곳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서고, 그 위에 AI·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산업이 뿌리내린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지역 청년들이 머물며 성장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이는 결코 부산만을 위한 주장이 아니다. 수도권 과밀에 따른 국가적 에너지 비효율을 해소하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전기가 있는 곳으로 산업이 이동하는 것은 정책 선택이 아니라 물리적 법칙이자 경제적 순리다. 이 순리를 따를 때, 부산은 수도권의 ‘대안’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는 새로운 성장 축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산업용을 넘어 주택용까지 포함하는 전면적인 차등요금제 논의에 속도를 내고, ‘지산지소’ 원칙 이행에 대한 흔들림 없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와 함께 거대한 에너지·산업 시스템을 운용할 혁신 인재 양성도 필수적이다. 이미 지역 대학들은 반도체·에너지 융합 전공 등을 운영하며, 산업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실무형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도시는 늘 선택의 결과로 만들어진다. 전기가 산업 경쟁력의 척도가 된 지금, 부산은 다른 도시들이 갖기 힘든 최고의 패를 손에 쥐고 있다. 수도권의 전력난이 심화할수록 부산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분명해진다. 에너지의 흐름이 바뀌는 지금, 전력 다소비 기업들을 부산으로 이끄는 일은 필연적 선택이자 부산의 재도약을 위한 전략적 승부수다.
[편집국에서] 지역의사제의 한계
정부가 지역의사제 지원 자격을 내년부터 해당 지역 중학교 출신으로 제한하면서 의대를 노리는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또 한바탕 논란이 일고 있는 모양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7일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지역의사양성법) 시행령 제정안에 대해 재입법 예고를 하면서 당초 2033학년도부터 적용하려던 중학교 소재지 요건 적용 시점을 2027학년도로 앞당겼다. 또 비수도권이었던 중학교 소재지 요건은 진학하려는 의대 소재 지역 및 인접 지역인 광역권으로 변경했다. 이는 중학생의 지방 유학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지역의사제는 지난달 10일 정부가 의대 증원분을 전부 지역의사제로 뽑는다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이슈로 떠올랐다. 제7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지난달 10일 2027학년도부터 2031학년도까지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서울을 제외한 32개 의과대학 정원을 총 3342명, 연평균 668명 늘리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기존 의대 정원 3058명(2024년 기준)을 초과해 증원하는 인원은 모두 지역의사전형으로 선발한다. 지역의사제는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것으로 등록금 등 정부 지원을 받고 졸업 후 지역 공공의료기관 등에서 10년간 복무하는 정책이다. 이로써 지역의사제를 둘러싼 정책 방향은 일단락된 셈이다. 의료계의 반발로 중단됐던 의대 증원이 결정된 점,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지역의사제 도입 등은 정부의 결단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현재 지역의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에는 너무나도 갈 길이 멀다.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사실 개선 효과가 전무하다는 냉혹한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의료 인력 공급 측면에서 살펴보면, 부산과 울산의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이번 지역의사제의 혜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부산대, 동아대, 인제대, 고신대, 울산대 등 부산과 울산지역 의대를 졸업한 이들은 경남의 의료취약지역에 배치된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지역의사법 시행령안에 따르면 부울경 의과대학을 졸업하는 경우 의무복무지는 창원권(창원, 의령, 함안, 창녕), 김해권(김해, 밀양, 양산), 진주권(진주, 사천, 남해, 하동, 산청), 통영권(통영, 거제, 고성), 거창권(함양, 거창, 합천) 등이다. 경남지역에서는 직접적인 인력 공급 효과가 나타나 도움이 되겠지만, 문제는 10년간 의무복무를 마친 이후다. 경남 내에서도 창원, 김해, 진주 등 일부 대도시에만 의사들이 몰려들 가능성이 높다. 결국 군·농어촌 등 최말단 지역은 여전히 의료취약지역으로, 의료 공백이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필수 의료의 개선 정책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부산과 경남은 소아과 진료 대란, 산부인과 분만 대란, 응급실 뺑뺑이 등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응급의학과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과 의료 인력 부족이 항상 문제로 지적돼 왔다. 지역의사제 혜택을 받는 경남지역조차도 지역의사제 도입만으로는 필수의료 인력 부족을 해결할 수 없다. 현재처럼 지역의사제가 지역 의무복무 10~12년을 유지하는 한, 즉 전공 선택을 강제하지 않는 한 인기 과목 쏠림은 계속될 것이고 필수과 의료 공백은 그대로일 수 있다. 지역의사제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단기적 인력 공급 대책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이들이 의사면허를 취득하기까지 통상 10년의 교육기간이 필요한데, 당장의 의료 공백 해결에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역의료 공백의 본질은 의사 수의 부족과 필수 의료 인력의 부족이다. 지역의사제 도입으로 일정 부분 의사 수의 부족을 메운다 해도, 그 절대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성형외과, 피부과 등 인기과의 포화로 인해 필수과로 넘어가는 ‘낙수효과’를 기대하기에는 그 수가 턱없이 적다. 특히 지역의사제가 필수 의료과로의 강제 선택을 요하지 않는 이상 필수 의료의 공백도 메우기 힘들다. 결국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의사 수의 대폭 확대와 필수의료의 수가 인상인데, 의사 수의 확대는 의료계의 반발을 부르고, 의료수가 인상은 국민건강보험기금의 고갈을 불러온다. 하지만 의사 수가 대폭 늘어나 경쟁이 치열해지면, 필수과로의 낙수효과는 커질 것이며 지금 같은 고소득을 보장할 수 없게 돼 장기적으로 인재가 의대에만 쏠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지역의사제의 성공을 위해서 정부는 하위법령 개정 등을 통해 좀 더 촘촘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하고, 나아가 지역의료의 붕괴를 막기 위한 본질적인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 의료 개혁은 이제 시작이다. 그동안 의료계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해 미봉책으로 때웠다면, 여러 분야에서 개혁이 진행되는 지금, 지금이야말로 의료 개혁의 출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최세헌 편집국 부국장 corni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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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공원 '경험' 없이 곧장 국립 직행… 현황 파악·관리 방안 마련해야
불장 그늘 ‘얼음장 상권’… 해운대도 ‘냉랭’
해운대 마린시티서 ‘혈투’ 조직폭력배 실형
부산구치소 또 폭행 사건… 정신 못 차리는 교정행정
정월대보름 앞둔 울산 일산해수욕장 달집에 불…경찰, 수사
‘모든 어린이집에 전문가 투입' 부산시 어린이집 보육장학단 운영 강화
빨라진 개화… 양산 ‘원동 매화축제’ 7~8일 개최
[영상] 부산서 ‘초속 29m’ 강풍에 외벽 떨어지고 옹벽 무너져
아동수당 2030년까지 13세 미만으로 단계적 확대
부산 소방관들, ‘휴일 초과수당 지급’ 부산시 상대 소송 제기
지원금 대폭 늘렸더니 ‘면허 반납’ 고령 운전자 16배 급증
존스·위트컴 치고 더닝 막는다 “일본·대만 문제 없어요”
‘롯데 도박 4인방’ 추가징계는 피해… 대표·단장 ‘중징계’
16년만의 대표팀 류현진, 불혹투 노경은…형님들 믿는다
롯데, 2026년 개막전 삼성과 맞대결
부산아이파크 개막전 아쉬운 무승부
내달 5일 출격 WBC 야구대표팀, 8강 위한 준비 완료
100일 앞으로 다가온 손흥민의 ‘라스트 댄스’
부산시설공단 스포원체력센터 야간 체력인증 확대 운영
[김한수 기자의 여기는 도쿄] 기적은 없었다… 한국, 3회 연속 WBC 1라운드 탈락(종합)
부산, 19년 연속 동계체전 종합 5위
박세웅·나균안 선발 출사표…토종 선발 듀오의 손에 롯데 가을야구 달렸다
부산 아이파크, 2024시즌 새 유니폼 ‘아레스 45·오션블루’ 공개
배명호 결혼, 오는 11월 9일 미모의 일반인 여자친구와
배우 진경, 나이 48세에 미혼→이혼 정정한 이유 '결혼 얘기 나올 때마다 불편'
류승완 감독 ‘휴민트’ 여성 관객들 혹평 이유는
음주운전 안재욱, 6년 전 뇌출혈로 수술… 11살 연하 부인 아내는 누구?
'억'소리 나는 신혼집 클라라, 아버지는 '원조 한류스타' 코리아나 이승규
고퀄리티 첩보 스릴러 ‘휴민트’…이 정도면 합격점 [경건한 주말]
박지현 아나운서 남편 스펙도 '어마어마'
윤아 성형설 비웃는 미모 변천사
전원주 나이는?… 아버지 다른 다른 두 아들 위해 유산만 5번 '뭉클'
김숙 가상성형, 아이린으로 변신…주치의는 김종국 형 김종명 성형외과 의사
'집사부일체' 정두홍, 16세 연하와 재혼…전 부인 나디아 후타가룽과는 이혼 아닌 결별
'닮은꼴 미남' 황민현-박서준, 드디어 만났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부산 일정에 '북구갑' 구포시장 넣은 한동훈…출마 분위기 점검?
[영상] 해수부 장관 후보자에 부산 출신 황종우 낙점
'1호'끼리 맞대결…부산 남구청장 공천 경쟁 본격화
이재명 대통령 '다주택 팔기 싫으면 두라…이익·손해는 정부가 정해'
田-朴, 시장 선거 양강 레이스 닻 올랐다
민주당, 울산 등 4개 시·도지사 경선…부산·경남 ‘전략 공천’ 가능성
전남·광주 사상 첫 광역통합 확정…TK 통합은 미지수
이 대통령, 싱가포르 국빈방문 마치고 필리핀 향발
이 대통령 인기·야 분열, 경남에 부는 민주당 바람
“대전·충남도 같이” 고수하는 민주당…TK 통합법 ‘난망’
TK 통합법 자꾸 문턱 높이는 민주당…협상 카드? 무산 속내?
부산시장 선거, 범여권 ‘일치단결’ vs 범야권 ‘각자도생’
[영상] 황종우 해수부장관 후보자 BPA로 첫 출근 “북극항로 개척과 해양수도 부산 육성에 최선”
친이란 헤즈볼라 참전, 중동 확전 일로
국제유가 6%대 상승…천연가스는 40% 급등
통신 3사, 27일부터 갤럭시 S26 시리즈 사전예약
[영상] 황종우 해수부 장관 내정자…내부 요직 두루 거친 정통 관료 ‘해양·항만 정책통’
해수부 부산 시대… 뭉치는 지역 대학·기업
미쉐린 가이드, 부산 ‘빕 구르망’ 20곳 선정…3곳 신규 합류
호르무즈 뒤덮은 검은 연기… 한국 에너지 56% 숨통 죈다 [중동 확전 일로]
‘하루 만에 411조 원 증발’ 트럼프 전쟁에 유탄 맞은 코스피 [중동 확전 일로]
포성 가득한 중동, 안개 자욱한 한국 경제
건강보험보수총액신고 사실상 폐지…세무사회 “오랜 노력끝에 얻은 행정개혁 사례”
소득 낮을수록 ‘외로움 느낀다’…월 100만원 미만 가구 58%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 3월 3일(음 1월 15일)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3월 4일(음 1월 16일)
'상상해본 적 없어'...'왕과 사는 남자' 1000만 영화 가시권
[부산 전시] 이번 주에 뭐 볼까?[2026년 3월 1일~ ]
BTS, 이달 광화문서 신곡·히트곡 총망라…경복궁은 ‘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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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치 라미네이트 아직도 치아 삭제하나요”
외화 예매율 1위 '브라이드!', 극장가 휩쓸까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 3월 2일(음 1월 14일)
79년 전통 독일 명문 쾰른방송오케스트라 내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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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수출액 '역대 최고'…한류 이끈 K-팝과 영상 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