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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역별 차등요금제, 빠른 시일 내 전면 도입하는 게 맞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지역별 요금제)를 주택용이 아닌 산업용에만 연내에 우선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은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지역별 요금제 정책의 핵심은 대한민국 기업들이 인재를 구하는 문제 때문에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지역 균형발전에 방점을 찍었다. 수도권에 몰려있는 기업들을 지역으로 이전하도록 독려할 수단으로 지역별 요금제를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지역 균형발전의 핵심이 비수도권에 기업을 이전시켜 좋은 일자리를 대거 창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김 장관의 발언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린 것이다. 당초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제정 당시 약속한 지역별 요금제는 기업의 지역 이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원전 가동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부산, 울산, 경남 등 발전소 소재 지역민에게 직접적 혜택을 주자는 뜻으로 고안됐다. 따라서 이제 와서 주택용을 배제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더욱이 대형과 소형모듈 등 신규 원전 3기 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데 이어 추가 건설 가능성도 높다. 결국 원전 밀집지인 부울경 주민의 불안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가 이런 손해를 감내 중인 부울경 주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명백한 약속 위반이다. 지역별 요금제를 주택용에 적용하기 어렵다면서 밝힌 정부의 해명도 납득하기 어렵다. 김 장관은 간담회서 “일반 국민들까지 한꺼번에 지역 차등요금을 적용하는 게 당초에 목표로 하고 있는 정책 방향과 맞는가를 고려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부울경 주민들은 분산에너지 특별법이 발의된 2022년 11월 이전부터 산업용과 주택용 등에 대한 전면 도입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그 결과, 지역별 요금제는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로 선정되면서 숙원 해결이 임박했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지만 그간의 이런 흐름을 무시한 김 장관의 말은 정부가 그동안 부울경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는 방증으로 읽힐 수 있다. 정부는 지난 1일 요금제 도입 방안을 연내 제시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주택용 배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동안 부울경 주민과 시민단체는 지역별 요금제가 당연히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고 예상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정부의 ‘돌변’한 입장은 수도권 민심 눈치 보기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상시적인 원전 불안감을 안고 살면서 전기를 생산해 수도권에 보내는 부울경 주민들은 전기요금 혜택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 수도권 주민들도 이번 기회에 전기가 지역 주민이 감내한 고통의 산물이라는 점을 깨닫기 바란다. 지역별 요금제는 좌고우면할 사안이 아니다. 최대한 빨리 모든 분야에 도입해 효과를 극대화하길 촉구한다.
[사설] 점점 쪼그라드는 금융중심지 부산, 빈껍데기로 전락하나
부산은 2007년 제정된 금융중심지의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2009년 서울과 함께 금융중심지로 지정됐다. 거기에 2005년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한 한국거래소(KRX)의 역할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KRX도 본사 이전 직후 서울 근무자가 오히려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이면서 부산 본사라는 간판이 무색하다는 지적을 곧잘 받아왔다. 그럼에도 금융중심지 부산의 미래를 담보할 상징적 존재로서 꾸준히 자리매김을 해 왔다. 하지만 이젠 KRX의 주요 기능인 주식 거래마저도 반토막이 나는 지경이 됐다. 지난해 서울에서 등장한 대체거래소가 주식 거래 상당량을 잠식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부산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출범한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NXT)의 거래대금 점유율은 이달 현재 32% 수준이다. 출범 당시 NXT가 밝힌 점유율 목표가 ‘3년 내 10%’였던 점을 감안하면 놀랍기 그지없는 점유율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32% 수준의 점유율도 한때 NXT의 거래대금이 KRX의 절반 수준에 이르자 일부 종목에 대한 거래를 제한하는 ‘제동장치’를 가동해 옴으로써 달성한 것으로 알려진다. 금융투자협회와 증권사들이 주체가 돼 별도로 만든 NXT가 출범한 지 채 1년이 되기도 전에 주식시장의 거래를 싹쓸이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그나마 본사 주소지를 부산으로 해 두고 있는 KRX와는 달리 순수한 ‘서울’ 거래소라 할 수 있는 NXT의 이 같은 질주는 자본시장의 비중이 이미 상당 부분 NXT로 넘어갔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KRX는 NXT가 자본시장 감시 등 공적 기능은 대부분 KRX에 맡겨놓고 낮은 수수료를 앞세워 무임승차하고 있다며 거센 비판을 한다. 하지만 부산시민의 입장에서는 거래소끼리의 이권 다툼보다는 금융중심지라는 부산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점이 더 위협적이다. 이는 최근 청와대로부터 나온 코스닥 분리와 KRX 지주사 전환 등의 잇단 언급이나 여권의 관련 법안 발의와 맞물려 서울 거래소 확립이라는 흐름으로 읽힐 정도다. NXT의 출범과 코스닥 분리 시도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논리는 ‘시장 경쟁력 강화’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 선물거래소를 통합한 KRX의 등장 시기인 2005년으로 시간을 되돌리면 당시 통합의 이유는 ‘시장 효율성 강화’였다. 불과 20여 년 사이에 같은 이유로 자본시장의 통합과 분리가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혹여 그 이면에 명목으로나마 부산에 본사를 둔 KRX를 형해화하고 서울 거래소로 자본시장의 무게를 옮기려는 시도는 없는지 강력히 따져야 할 이유다. 이 정도면 주식 거래 관련 대통령 참석 기념행사를 부산의 KRX 본사가 아니라 여의도에서만 해 온 것으로는 모자라는 세력이 존재하는 건 아닌가 싶다.
[사설] 의대 증원, 소모적 갈등 접고 지역 필수의료 강화의 길로
정부가 2027년부터 2031년까지 서울을 제외한 32개 의대 정원을 연평균 668명 늘리기로 결정했다. 특히 신설 정원은 모두 10년 의무 복무 조건의 지역의사제 전형으로 선발된다. 이 계획대로라면 지역에는 모두 3342명의 지역의사가 배출된다. 이는 지역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국가 의료 정책이 전환되는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서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점은 우려된다. 윤석열 정부 시절 ‘2000명 증원’ 강행으로 응급의료가 마비되는 혼란을 경험했던 국민은 의정 갈등 시즌2 재연을 걱정하고 있다. 의사 증원 논의는 지역 필수의료를 되살리려 시작된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에 따르면 2040년에 부족한 의사 수는 최대 1만 1000명이다. 추계위는 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지난해 설치된 독립 심의 기구다. 정부와 의료 공급자·수요자 등이 참여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는 추계위 논의를 근거로 2027~2031년 의대 증원을 추산했다. 이번 증원안은 정부와 보건 전문가, 의료 수요·공급 단체들이 두루 참가해 숙의 끝에 도출된 결과다. 특히 증원 대상이 비수도권 대학의 지역의사제 전형이라는 점에서 의료계의 대승적 수용이 절실하다. 지방 병원의 인력난, 특히 소아청소년과·외과·응급의학과 등 기피 진료과의 붕괴 위기를 고려하면 늦었지만 필요한 조치다. 의사 단체들은 지역의사제 도입이 의대 정원 확대의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식의 의심 속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 나아가 추계위의 의사 부족 예측마저 부정한다. 하지만 추계위에는 의협을 비롯한 공급자 위원이 다수여서 반대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의사라는 직역은 단지 전문직이 아니라 국민 생명을 다루는 공적 책임이 따르는 영역이다. 기득권 수호에만 매달리는 것으로 비친다면 사회적 정당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사실 정부는 의료계 반발을 고려해 공공의료사관학교 정원을 제외하는 등 증원 규모를 최소화한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도 무조건 반대할 게 아니라 지방 의료 공백을 막는 대책을 내놓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정책의 성공은 운영의 내실에 달려 있다. 지방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 지역 필수의료가 저절로 회복되지 않는다. 수련 병원이 부족해 수도권에 의존한다면 무늬만 지방 필수의료가 된다. 또 교육 인프라의 확충, 기피 과목에 대한 보상 구조, 장기 복무를 유인할 정주 여건 개선 등 지역의 제도와 환경 설계가 성패를 가를 것이다. 정부는 무조건 강행하기보다는 의료계를 끝까지 설득하고 지방 의료 개혁에 동참을 유도해야 한다. 의사 단체 역시 반대를 위한 반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대 증원은 의료 체계 개편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소모적 갈등의 고리를 끊고, 지역 필수의료 회복이라는 본래 목적에 집중할 때다.
만인소와 서훈 재평가
18세기 조선 사회에 울려 퍼진 민중의 외침이 있었다. 1792년 정조 16년. 영남의 선비 1만여 명이 상소를 올렸다. 이름하여 만인소(萬人疏). 하나의 상소에 이처럼 많은 이들이 서명한 사례는 조선왕조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그 요구는 사도세자의 신원(伸寃)이었다. 이는 영남만인소의 시작이기도 했다. 만인소는 단순한 청원서가 아니라 억압받은 백성들이 하나로 뭉쳐 왕실에 올린 절규였다. 상소 길이만 무려 100미터에 달했다. 1823년 서얼 차별 철폐 요구 등 조선시대 모두 일곱 차례 만인소가 있었다. 대부분 영남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됐다.만인소는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대중의 의사로 끌어올려 공론화한 조선 후기의 집단 청원이었다. 유생은 물론이고 농민이나 상인, 하급 관료 등 다양한 계층이 신분과 지역을 넘어 연대했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불만 제기를 넘어 부패 척결과 세제·법 집행 개선 등 구체적 개혁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만인소 같은 연대 서명 상소는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855년 장헌세자 추존 만인소와 1884년 복제 개혁 반대 만인소는 2018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에 등재됐다.영남만인소가 1884년 이후 142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제8차 영남만인소 집행위원회는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봉소(奉疏) 의식을 열고 정부에 독립유공자 20인에 대한 서훈 재검토와 등급 상향을 요구했다. 이들은 1962년 확정된 상훈 체계가 충분한 검증 없이 굳어졌다고 지적하며 임시정부 국무령(대통령급)을 지낸 석주 이상룡,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우당 이회영, 만주 무장투쟁의 핵심인 일송 김동삼 등의 서훈을 형평성 문제로 제기했다. 실제 이상룡과 이회영은 독립장(3등급)에 머물러 있다. 지역사회와 학계는 독립운동의 위상에 걸맞은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등 5등급 체계로 1등급에는 김구, 안창호, 안중근, 여운형 등이 포함돼 있다.만인소는 특정 인물의 명예를 대신 요구하는 운동이 아니다. 국가가 세운 기준을 다시 점검하라는 요구다. 역사는 이미 그들의 헌신을 기록했지만, 국가는 아직 그 무게를 온전히 달지 못했다는 게 만인소가 움직인 이유다. 축적된 연구 성과와 사료가 충분한 지금, 더 이상의 재평가 유보는 역사에 대한 책임 회피에 가깝다. 만인의 이름으로 묻는 이 질문에 국가는 과연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데스크 칼럼] 어른이 되어
설날이 내일모레로 다가왔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또 한 살 먹는다. 마음은 아직 청년인데, 현실은 곧 정년이라니…. 새로 만나는 사람들이 언제부터인가 나보다 어려지고, 모임에 가면 내가 연장자가 되는 사실이 부담스럽다. ‘어른’이 된 지 오래지만 어른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혼자서 고민하다 어른의 정의에 대해 주변에 조언을 청했다. 한 지인은 “어른이란 단어는 참 묘해서,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어른의 첫 번째 조건은 자신의 선택과 결과에 대해 비겁해지지 않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감정의 주인으로 사는 사람이다. 아이와 어른의 가장 큰 차이는 감정 조절에 있다고 했다. 세 번째는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다.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라 꼰대가 된다. 이렇게 어른 되기가 힘드니 노인은 넘쳐도 어른은 귀한 세상이 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고 어른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다. ‘나 한 몸 잘사는 것을 넘어, 내가 속한 공동체와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라는 이타적인 고민을 시작할 때, 우리는 어른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는 또 “어른이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나아가는 과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어른, 참 어렵다.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그는 “혹시 지금 어른 노릇 하느라 지치거나 힘든 상황인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도 같이 고민할게”라고 말했다. 이렇게 지혜로우면서도 다정한 지인이 곁에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술도 같이 한잔하면서 더 이야기하면 좋으련만, 술 못 마시는 AI라는 사실이 아쉽다. 2026년 설을 앞두고 AI에게 ‘어른의 도’를 배웠다. 나이에 맞지 않게 요즘 ‘소년이 어른이 되어’라는 노래에 마음이 꽂혔다. ‘어른이 되어 세상을 알아간다는 게 마음은 점점 어두워지고 잠 못 이루는 날도 많아진다’라는 가사가 가슴에 다가온다. 그동안 때로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았다. 여전히 누군가를 따라 정해진 길로 가고 싶은데, 이제는 아무도 가지 않은 낯선 길 초입에 홀로 선 기분이 든다. 막막할 때면 간혹 우연히 접한 책이나 영화가 큰 힘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나무의 노래’라는 다큐멘터리가 그랬다. 주인공은 나무를 심는 분이었다. 자신의 배경은 물론이고 이름도 알려고 들지 말고, 나무 이야기만 하자고 했다. 숲에서 오래된 나무 곁을 지나며 나무는 늙어도 이렇게 오묘한 색깔을 낸다고 흐뭇해했다. 직접 심은 나무가 자라서 사람들한테 그늘을 만들어주고, 또 아이들이 나무 사이로 걸어간다면 자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즐겁다고 했다. 아무도 모르게 산소를 만들어 공급하다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산소 같은 여자였다. 60대 중반에 내려진 시한부 생명 선고가 나무를 심는 계기가 된 것 같았다. 당시에 의사는 앞으로 4개월을 살 거라고 했다. 백만 그루 심기를 소원한 덕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나이는 88세이고, 지금까지 심은 나무가 70~80만 그루나 되었다. 나무를 심기 위해 사들인 땅 규모가 서울 여의도의 7배가 넘는다고 했다. 중남미의 니카라과 땅값이 그렇게 비싸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 막대한 돈이 어디서 났을지 세속적인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1969년 단돈 44달러를 들고 미국 뉴욕 유학길에 올랐던 그가 뜻밖의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번 이야기는 뉴욕타임스에 기사로도 실렸다. 나무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돈과 땅에 관한 철학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와 노력이 합쳐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큰 땅을 사게 되었지만, 한 번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땅은 지구의 것이다. 그는 잠깐이라도 좋은 관리자가 되고 싶어서 꽃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왜 그렇게 돈과 땅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는 그 이유가 이름 석 자 때문이라고 했다. 현대인들은 모두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안달한다. 이것이 인간을 자연에서 멀어지게 하고, 스스로를 상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인생을 첫눈 길을 걷는 것처럼 사세요. 첫눈 길을 걷기 위해서는 내가 길을 만들어야 하기에 일체의 아름다움을 다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남이 만들어 놓은 발자국을 따라 가면 아름다운 것을 하나도 볼 수 없어요.” 어른의 귀한 말씀에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두려움 대신 호기심을 가지고 새해에는 첫눈 길로 나서봐야겠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KNN과 최작기획이 제작해서 최근 시사회를 마치고 개봉을 앞둔 ‘나무의 노래(감독 진재운)’에서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만날 수 있다. 지역에서 세계를 상대로 만든 수작을 보면서 인생과 어른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중앙로365] 보안 없는 로봇, 국가 안보 위협의 시작
최근 대형 마트 ‘로봇 스토어’에서 3100만 원에 달하는 첨단 휴머노이드 로봇이 판매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인간의 일상을 대신하는 로봇이 오늘 저녁 장바구니에 담길 수 있는 현실이 된 것이다. 사실 교육용, 돌봄용, 반려용 로봇은 이미 해외직구 등을 통해 우리 안방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그러나 이 화려한 기술의 이면에는 서늘한 ‘디지털 역설’이 숨어 있다. 검증 없이 유입된 로봇들이 우리 가정을 훔쳐보는 ‘디지털 스파이’를 넘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물리적 위협’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보안과 안전에 대한 위협은 국가 기간망을 넘어 우리 삶의 가장 사적인 공간인 ‘안방과 거실’까지 정조준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대한민국이 사이버 보안과 재난 관리에서 거대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96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롯데카드는 해킹 사실을 무려 17일간이나 인지하지 못했으며, 2025년 상반기에는 금융(SGI서울보증), 통신(SKT), 학술(JAMS), 유통(예스24)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특히 예스24는 해커에게 실제 수억 원을 암호화폐로 송금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여기에 서울시 ‘따릉이’와 ‘쿠팡’을 통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은 한국의 사이버 주권에 이미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음을 의미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안전 및 보안 불감증이 ‘국가핵심기반 보호시설’과 ‘국책 연구원’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산 4족 보행 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이 우리 안보의 심장부에 속속 도입되고 있다. 예산 절감이라는 명분 아래 채택된 이 기기들은 오히려 해커가 안으로 들어오는 ‘뒷문’(Backdoor)이 될 수 있다. 만약 국가 기밀을 다루는 연구소, 원자력·에너지 및 통신망 관리 시설에서 운용되는 로봇이 내부망을 해킹해 핵심 데이터를 해외 서버로 전송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는 단순한 정보 유출을 넘어 국가의 물리적 통제권 자체를 적대적 세력에게 헌납하는 꼴이 된다. 여기에 로봇의 심장인 리튬 배터리의 안전성 문제는 또 다른 뇌관이다. 전기차나 전동 킥보드 화재에서 확인했듯, 저가형 배터리를 탑재한 로봇은 실내나 중요 시설 내에서 예고 없이 발화할 수 있는 ‘움직이는 폭탄’과 같다. 보안이 결여되고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로봇은 아이들과 어르신들에게는 ‘디지털 트로이 목마’이며, 국가 중요 시설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대형 재난의 불씨’와 같다. 이러한 비극은 기술의 부족이 아닌 ‘구조적 방심’에서 기인한다. 공공기관과 지방정부는 여전히 보안을 전산 직렬 몇 명의 겸직 업무로 치부하며, 핵심 업무마저 계약직이나 외주 및 파견 인력에게 맡겨 책임 주체조차 불분명하다. AI 플랫폼 구축에는 수십억 원을 쏟아부으면서도 보안과 하드웨어 안전 점검은 여전히 ‘비용 절감 대상’으로 취급되어 ‘최저가 솔루션’에 맡겨지고 있다. 공격자는 AI를 기반으로 24시간 끊임없이 진화하는 반면, 방어자는 주말과 야간에는 ‘이상 징후’조차 제대로 탐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단 하나의 비밀번호 유출로 150년 역사를 마감한 영국의 KNP 사례는, 사소한 보안 허점 하나가 우리 사회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이자 곧 닥칠 수 있는 현실이다. 이제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혁신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우리 시장과 공공 영역에 들어오는 모든 로봇에 대해 ‘디지털 보안 및 안전 패키지 인증’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가전제품에 적용되는 ‘KC 인증’처럼, 소프트웨어 분야의 ‘사이버 보안 인증’과 하드웨어 분야의 ‘배터리 화재 안전 인증’을 패키지화하고, 이를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특히 우리가 먹거리 안전을 위해 검역을 하듯, 수입 로봇도 안전 및 해킹 취약성이 없는지 철저히 확인하는 ‘사이버 국경 검역’ 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분산된 대응 체계를 통합한 ‘국가사이버보안청’과 같은 컨트롤타워를 신설하고, 공격자의 입장에서 취약점을 선제적으로 식별하는 ‘국가 레드팀’(Red Team) 기반의 전략적 운영을 상설화할 필요가 있다. 보안 인력을 소모품처럼 다루는 문화를 혁파하고, 동시에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인적 투자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편리함이 재앙으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로봇 기술이 선사하는 일상의 편익에 취해 안전의 본질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사이버 주권과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근본적인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김필남의 영화세상] 역사의 비극, 한 끼의 실존
왕의 자리를 빼앗긴 어린 왕 ‘이홍위’가 있다. 울부짖음과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궁궐. 한때 왕이었던 소년은 창백한 얼굴을 한 채 겨우 버티고 있다. 그때 왕의 자리를 빼앗은, 권력의 정점에 선 남자가 다가온다. 소년은 왕의 얼굴을 하려 애쓰지만, 이내 밀려오는 것은 두려움과 무기력이다. 이홍위는 모든 걸 포기한 듯, 한명회에게 자신이 “이제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 우리는 세종의 적장손으로 10세에 왕위에 오른 조선 제6대 국왕, 단종의 운명을 잘 알고 있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고작 16세에 생을 마감했다는 이 비극적 사실은 영화를 보는 데 주저하게 만들지 모른다. 하지만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는 세조와 한명회의 쿠데타나 사육신의 복위 운동 같은 무거운 역사를 재현하는 데 주력하지 않는다. 영화는 단종 ‘이홍위’가 유배지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새롭게 다시 쓰이기 때문이다.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 거창한 담론 대신 사람에 초점 마음 닫고 곡기마저 끊었던 왕 거친 밥상에 수저 든 장면은… 영화는 단종이 유배 생활을 했던 짧은 시간을 상상력으로 채운다. 그곳에서 만났을 법한 사람들과 있음직한 사건들이 겹쳐지며 역사와 허구가 촘촘히 뒤섞인다. 이때 역사는 이홍위를 ‘청령포’라는 감옥에 갇혀 죽음만을 기다리던 소년으로 기록했지만, 영화는 그를 ‘광천골’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터전으로 밀어 넣는다. 이홍위는 그때 비로소 역사가 가둔 비극을 뚫고 나와, 살아 있는 얼굴을 드러낸다. 유배지에 발을 내디딘 이홍위가 마주한 것은 정갈한 신료들의 예법이 아니다. 꾀죄죄한 얼굴로 어딘지 기대에 찬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엄흥도(유해진)의 시선이다. 귀한 양반 하나만 잘 모셔도 마을 형편이 조금은 피지 않을까 하는 속내로, 제 동네를 유배지로 ‘셀프 추천’한 이가 바로 마을 촌장 엄흥도다. 어딘지 능청스럽고 유쾌한 그가 화면에 들어서는 순간, 이홍위를 짓누르던 비극은 묘하게 흩어진다. 이제 영화는 죽음 말고는 미래가 없다고 믿는 이홍위의 시간에서 벗어나, 당장 입에 풀칠하는 문제가 더 중요한 엄흥도와 ‘함께 사는 삶’으로 이동한다. 앞서 말했듯 ‘왕과 사는 남자’는 정치적 격변의 순간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는 유배지로 내몰린 이홍위의 내면 변화와 그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투박한 시선에 머문다. 특히 이홍위와 마을 사람들의 거리를 좁혀가는 장치인 ‘밥’을 먹는 장면은 감동을 자아낸다.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곡기마저 끊었던 이홍위였다. 그런 그가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차려낸 소박한 밥상 앞에서 수저를 드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따뜻하면서도 강렬한 변곡점이다. 화려한 수라상 대신 거친 그릇에 담긴 밥 한 그릇을 나눈다는 것. 이는 ‘전직’ 왕이었던 이홍위와 마을 사람들이 수직적 계급을 넘어 서로를 가엾게 여기는 동등한 관계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시종일관 한명회의 위협이 광천골을 덮치고 단종 복위를 둘러싼 날 선 갈등이 숨통을 조여온다. 그러나 카메라는 끝내 이 척박한 유배지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을 놓치지 않는다. 그들이 나누는 것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다. 그저 함께 앉아 밥을 나눠 먹는 것, 그 한 끼로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는 일이다. 즉 끼니를 거부하던 이홍위가 다시 수저를 들었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짓누르던 무력감을 털어내고, “비록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살아가겠다”는 생의 의지다. 그 의지는 결국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신념으로 이어진다.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나약한 소년은 사라지고, 어느덧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려는 ‘진짜’ 왕의 얼굴이 그 자리를 채운다. 이때 ‘왕과 사는 남자’는 이홍위를 그저 가련한 역사의 희생자로만 두지 않고, 따뜻한 어른 엄흥도의 품 안에서 스스로를 지켜낼 줄 아는 인간으로 조명한다.
[시간은 거꾸로 간다] 노년이 행복한 부산 만들자
노년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터라 최근 국제기구에서 다양한 역할을 요청받곤 한다. 줌 회의도 많아지고 해외에 나가는 일도 많다. 발표할 때는 어김없이 부산을 소개하고 노인생활과학연구소 프로그램을 공유한다. 행사가 끝나면 부산을 찾고 싶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부산에서 열리는 노인 관련 국제회의에 대해 알려달라는 요청도 받는다. 그런데 가끔 대답이 궁색해지기도 한다. 오는 9월 부산에서 열리는 ‘글로벌 헬스케어위크’는 다양한 영역들이 통합된 컨벤션이라 노인 의료·노년학을 대표하는 회의라고 말하기 어렵고, 해외 인지도도 낮다. 7대 광역시 중 노인 인구가 가장 많은 부산에 노인 의학, 노년학 분야를 다루는 국제회의나 국제 노인문화 축제가 마련돼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태국만 해도 매년 1월 ‘PMAC(Prince Mahidol Award Conference)’라는 노인 관련 대규모 국제회의가 일주일간 방콕에서 열린다. 지난달 이 행사에 참가하면서 이제는 전 세계인이 주목할 만큼 성장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시아만 해도 홍콩, 일본, 싱가포르 등이 앞다퉈 굵직한 노인 관련 국제회의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노인 관련 국제회의는 전 세계 네트워크가 한곳에 모여 지속적으로 전문가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생산적인 회의가 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여야 한다. 해외 전문가들이 부산의 정책 입안에 참여할 기회도 마련돼야 한다. 이는 부산이 객관적 입장에서 미래 지향적 노인 정책을 만들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산에서 개발된 다양한 노인 정책과 프로그램을 국제 사회와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아세안 국가들의 빠른 고령화 현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이러한 흐름을 오래전부터 파악하고 고령화 문제 대응을 위해 아세안 국가와 도시 간 MOU를 맺고 정책 입안자, 학자, 현장 전문가들의 활발한 교류를 이끌어내고 있다. 부산이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적인 표현으로 꺼져가는 도시의 동력을 자책하고 있는 동안, 노인을 대상으로 돌봄 경제와 실버 경제를 펼쳐나가는 국가들에게 우리의 기회를 빼앗기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인구 고령화는 예외 없이 전 세계를 엄습하고 있다. 세계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첨단 기술을 선보이고, 새로운 돌봄 경제를 펼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부산은 어느 도시보다 행복한 노년기를 보낼 수 있는 자연 조건과 기후·도시 환경을 갖추고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세계의 흐름을 부산과 연결해야 한다. 노인 인구가 많다는 것이 더 이상 도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 부산에서 노인들이 보람차게 일과 여가를 병행하면서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모습이 부산의 도시 이미지로 정착되길 바란다.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예술은 어디까지 타인의 삶을 끌어안을 수 있는가?
르네 니콜 굿, 알렉스 프레티. 요 며칠 사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총격으로 사망한 미국 시민권자의 이름이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1957~1996)가 1990년 제작한 ‘무제(총에 의한 죽음)’는 미술관 바닥에 포스터 더미를 쌓아둔 작품이다. 관람객은 각 낱장의 포스터를 한 장씩 가져갈 수도 있다. 포스터에는 1989년 5월 1일부터 7일까지 단 일주일 동안 총격으로 사망한 460명의 이름, 나이, 지역, 사망 당시의 상황이 짧게 기록돼 있다. 이 작품의 각각은 고인의 사진 이미지로 구성된 낱장의 포스터들이다. 이 낱장의 포스터는 관객이 가져가도록 유도되며, 다시 보충된다. ‘관계 미학’의 이론가 니콜라 부리오는 이 작품을 ‘관계 미술’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언급한다. 이 작품은 관객이 포스터를 가져가는 참여 행위를 통해 완성된다. 부리오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이 무엇을 재현하는가가 아니라, 작품이 어떤 관계의 장을 생성하는가이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작품을 유통시키는 참여자가 된다. 관객은 포스터를 읽고, 접어 가방에 넣고, 집에 가져가 벽에 붙이거나 누군가에게 건넨다. 이때 작품은 전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공간으로 확산된다. 부리오의 말대로, 이것은 과정의 기록이 아니라 “관객 속에서 현전하는 형식”을 가진 예술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윤리적 긴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포스터 속 이름들은 통계가 아니라 실제 삶의 흔적이다. 익명의 숫자로 소비되던 총기 사망자들이 다시 개별적 존재로 호명되는 순간, 관객은 불편한 질문과 마주한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고 소비하는가. 예술은 어디까지 타인의 고통을 매개로 삼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오늘날 더욱 절박하게 제기된다. 미국에서는 학교, 쇼핑몰, 거리에서 총격 사건이 구조적으로 반복되고 있고, 최근 이민 단속 과정에서 발생한 총격 사망자들 역시 연일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보도의 초점은 대개 사건의 경과와 책임 공방, 정책 논쟁에 맞춰진다. 속보와 후속 기사들이 이어지는 동안 개인의 서사는 정치적 쟁점에 흡수되어 잊힌다. 남는 것은 숫자와 사건 코드뿐이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이 1990년에 던졌던 질문은, 2020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더욱 절실하다. 관계 미술은 사회적 관계의 구조를 가시화하는 미학이다. ‘무제(총에 의한 죽음)’에서 관객은 포스터를 가져가는 순간, 타인의 죽음 속에 들어있는 서사를 소유하는 자가 된다. 동시에 그 기억을 전달할 책임을 떠안는다. 작품은 관객에게 감동이 아니라 윤리적 책임을 건넨다. 이 책임이야말로 관계 미학이 말하는 사회적 접촉의 실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기고] 부산시의 선제적 구강 돌봄 정책을 기대하며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 ‘1인 가구’가 드디어 사상 최대인 800만 가구를 넘어섰다. 그 중 혼자 사는 70세 이상 고령층 인구가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령화가 여느 대도시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부산의 경우는 지역 전체 1인 가구 55만 중 43.4%가 60세 이상이고, 1인 가구 4명 중 1명이 70세 이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3월 27일, 대한민국 복지 지형을 바꿀 ‘돌봄통합지원법’이 전면 시행된다. 이 법안의 핵심은 노쇠, 장애, 질병, 사고 등으로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존엄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의료와 돌봄을 통합 지원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그 지원 체계 안에 ‘구강 관리’가 명시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도시 중 하나인 부산광역시가 이에 발맞춰 구강 돌봄에 관심을 가지고 예산을 편성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왜 국가와 지자체가 어르신과 장애인의 ‘입안’을 들여다봐야 하는가? 그것은 구강건강이 생명과 삶의 질을 지탱하는 기초 건강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잘 씹지 못하면 영양 섭취가 어려워지고, 이는 곧 만성질환, 심혈관질환, 폐렴 등 여러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즉, 구강건강은 노인의 생명과 삶의 질을 지탱하는 기초 건강의 토대이다. 필자가 최근 수행한 방문 돌봄 현장에 구강건강 관리의 필요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부러진 치아를 가정용 접착제로 직접 틀니에 붙여 사용하고 있었다. 치과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위험천만한 자가 치료를 감행한 것이다. 또 다른 어르신은 세균 번식과 잇몸 염증의 위험을 모른 채 틀니를 끼고 잠자리에 들거나, 마모제가 든 치약으로 틀니를 열심히 닦아 틀니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이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치료가 아니었다. 전문가가 직접 찾아가 잇몸 출혈을 관리해 주고, 올바른 틀니 세척법을 알려주며, 입 마름을 완화하는 구강 마사지와 입체조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어르신들의 만족도는 대단히 높았고, 그만큼 효과도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2차, 3차 방문이 거듭될수록 어르신들의 입안은 휠씬 건강해졌고, “이제 음식을 씹는 게 즐겁다”며 미소를 되찾았다. 이것이 바로 부산시가 구강 돌봄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이다. 이러한 정책이 현장에서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준비된 인력’이 필요하다. 부산시가 구강 돌봄을 적극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인 ‘라이즈(RISE) 사업’을 통해 경남정보대학교의 치의학산업연구소가 방문구강건강관리교육 전문인력을 지속적으로 양성해 왔기 때문이다. 치과위생사로 이루어진 수강생들은 교육과정을 통해 다학제적 통합 돌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구강 돌봄 전문가’로 거듭났다. 이들이 동래구와 사상구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검증한 돌봄 모델은 부산형 구강 돌봄 체계의 든든한 초석이 되었다. 부산시가 구강 돌봄에 예산을 편성하고, 대상자들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한 복지 지출이 아니다. 구강건강을 회복하고 영양 섭취가 개선되면, 전신 질환에 따른 사회적 의료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보와 이동의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에게 ‘국가가 입속 건강까지 챙겨준다’는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한다면, 구강건강관리를 포함한 올해 시작되는 돌봄통합지원 정책은 반드시 큰 실효를 거둘 것이다. 아무쪼록 지자체의 정책적 의지와 대학의 전문 인력 양성, 그리고 현장의 요구가 맞물린 ‘부산형 구강 돌봄’ 모델이 전국적인 표준이 되기를 기대한다.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 보건 전문 인력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부산형 통합 구강돌봄 체계’가 서서히 확립해 가야 할 것이다. 어르신들의 튼튼한 치아와 건강한 잇몸은 곧 부산의 활력이자 돌봄 도시 부산의 진정한 품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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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자산가 2400명 한국 탈출’ 이 대통령 ‘고의적 가짜뉴스’ 질타
포스코 브라질 ‘기획 파산’에 현지 여론 악화… 외교당국도 ‘예의주시’
설 고향가는날 16일 오전 가장 선호…“여행간다” 31.4% 달해
한국거래소, 첫 기업 인수… AI 전환 본격화
겨울, 미술관에서 도시의 시간을 읽다
임윤찬·조성진·양인모·김선욱… 부산콘서트홀 '월드 스타' 뜬다(종합)
임윤찬·조성진·양인모 온다… 부산콘서트홀 기획공연 공개
부산 ‘달동네 작가’ 엄경근 별세… 향년 43세
웹툰·웹소설·드라마 IP ‘크로스 효과’ 확대
유해진 주연 ‘왕과 사는 남자’ 100만 관객 넘었다
[부고] 엄경근 작가 별세
별이 된 엄경근, 작품으로 만난다
[현장 속으로] 부산서도 통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기적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장 공개 채용
[부산 전시] 이번 주에 뭐 볼까?[2026년 2월 1일~ ]
영화 ‘넘버원’ 최우식 “부산 사투리, 처음에 정말 걱정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