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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산 글로벌특별법에 대한 이 대통령의 진의는 뭔가
부산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이하 글로벌특별법)이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공회전이 재연될 조짐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여야 합의로 통과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숙려 기간 5일’에 걸려 상정이 불발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불안한 정도였는데, 대통령이 ‘포퓰리즘’ 사례로 경고하면서 지역 사회에 당혹감을 안기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31일 국무회의에서 “의원 입법이 포퓰리즘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면서 글로벌특별법만 콕 집어 지적한 뒤 여야는 난투극을 벌이고 있다. 재정이 수반되는 법안도 아니고 여야 공동발의라서 이견도 없는 법안을 두고 벌어지는 공방이 납득되지 않는다. 대체 대통령의 진의는 뭔가. 글로벌특별법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현실과의 괴리감이 크다. 우선 이 법안은 형식만 의원입법일 뿐 정부 주도의 정책 입법에 가깝다. 행정안전부 차관이 태스크포스 단장을 맡아 부산시와 함께 법안을 설계했고, 각 부처 협의를 거쳐 성안된 구조다. 신속 처리를 위해 의원 명의로 발의됐을 뿐이다. 이 법안이 포퓰리즘이면 21대와 22대 때 발의에 참여한 민주당 의원들이 포퓰리스트가 된다. 더구나 이 법안은 재정 투입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취약 계층 지원 등 정부와 지자체 예산 매칭 방식과는 거리가 먼 규제 완화와 특구 지정 등 제도 설계를 담고 있다. 재정 부담과 정책 정합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트집 잡기에 불과하다. 절차적 형평성도 훼손됐다. 이 법안은 21대에 제출되어 폐기되고, 22대 개원과 동시에 재발의됐지만 영문도 모른 채 2년 가까이 행안위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뒤늦게 추진된 행정통합 관련 3개 법안(광주전남, 대구경북, 대전충남)은 순식간에 행안위를 넘고, 이중 광주전남은 일사천리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강원·전북·제주특별자치도 법안 개정도 선입선출 원칙이 무시된 채 부산을 추월했다. 6·3 지방선거 전 부산 소외론을 의식해서인지 갑자기 행안위에서 급물살을 타는가 싶더니 결국 법사위에 이어 청와대의 ‘딴지’에 급제동이 걸렸다. 쟁점도 없고 이미 2년여 공론을 거친 점을 감안하면 어깃장 탓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21대 때 이 법안이 통과돼 지금 부산에 국제물류·금융·첨단산업특구가 들어섰다고 생각하면 꿈만 같다. 동남권의 성장 동력이 국토 균형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국정 과제로 앞세우는 ‘5극 3특(5개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도)’ 기조와 정확히 일치한다. 대통령은 지역 활성화의 유력한 수단으로 부산 글로벌특별법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숙려 기간은 종료됐고 여야 이견도 없다. 법사위 즉각 상정과 다음 주 추경을 다룰 본회의 통과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논란으로 세월을 소모할 만큼 지방의 위기가 한가롭지 않다. 정치 셈법은 접어두고 지역의 미래만 생각해야 한다.
[사설] 해수 대신 담수, 동천 되살리기 근본적인 해법 될까
부산 도심을 가로지르는 동천은 오랜 기간 ‘죽은 하천’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부산시는 수질 개선을 위해 준설과 해수 도수 사업을 추진하고, 지난해에는 성지곡의 맑은 물을 흘려보냈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수백억 원에 이르는 예산이 투입됐다. 특히 2000억 원 이상이 투입된 해수 유입 방식은 대표적 실패 사례로 남았다. 이런 가운데 시는 1일 ‘백년의 귀환, 동천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대심도 공사에서 확보되는 지하 담수를 활용하는 새 해법을 제시했다. 해수 대신 지하 담수 투입으로 동천을 근본적으로 되살리겠다는 구상이다. 시가 새로운 해법을 꺼내 든 것이다. 부산시가 제시한 해법의 핵심은 대심도 공사 과정에서 확보되는 지하수다. 시는 사상~해운대 공사 현장에서 하루 3만 5000톤의 지하수가 용출되는 점에 주목하고, 부산형 급행철도(BuTX) 공사에서도 추가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는 동천 친수공간 조성에 필요한 최소 유지용수인 하루 약 3만 9000톤을 충족하는 수준이다. 시는 이를 시민공원으로 끌어와 부전천을 거쳐 동천으로 흘려보내는 구상을 세웠다. 나아가 성지곡수원지에서 시민공원, 부전천, 동천으로 이어지는 수계를 복원해 서울 청계천 수준의 도심 생태축을 만들겠다는 청사진도 내놓았다. 이런 점에서 부산시가 제시한 수변 네트워크 구상은 주목할 만하다. 요는 담수 구상이 실제로 지속 가능한 해법이 될 수 있느냐다. 외부 수원을 끌어와 흐름을 만든다고 해서 오염원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생활하수와 도시 구조에서 비롯된 오염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물만 바꾸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다. 지하수는 비용 측면에서 해수보다 유리할 수 있지만, 공사 종료 이후에도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부산시는 차집관로 사업을 5년 내 100% 완료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오염 유입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다. 결국 하천 자체의 자정 능력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어떤 방식의 물을 투입하더라도 근본적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시가 동천을 단순한 하천 개선을 넘어 도시 재생 축으로 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과거 정책 사례는 단일 해법에 의존한 동천 복원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담수 투입이 일정 부분 수질 개선에 기여할 수는 있지만, 곧 생태 복원과 도시 재생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사 현장에서 확보되는 지하수의 공급 기간과 규모, 복개 하천 복원, 장기적인 하천 관리 전략이 잘 맞물리지 않는다면 이번 시도 역시 제한적 성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박형준 시장이 “동천은 산업화의 상징이자 부산의 자부심”이라고 강조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결국 이번 계획의 성패는 담수 확보라는 기술적 접근을 넘어, 도시 기능과 생태 복원을 얼마나 정교하게 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사설] HMM 신속한 부산 이전이 국가 균형발전의 대의
국내 최대 국적 해운사인 HMM의 본사 부산 이전이 초읽기 수순에 돌입했다. HMM 이사회가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본사의 부산 이전을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을 전격적으로 처리해서다. 해당 안건의 확정 여부가 걸린 오는 5월 임시 주주총회가 HMM 본사 부산 이전의 마지막 관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정부 영향력 아래에 있는 기관의 지분이 70%가 넘는 만큼 주주총회의 해당 안건 통과는 무난하리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이후 해양행정의 현장성 강화 효과가 커진 터라 HMM 본사 부산 이전도 해운경영의 현장성 강화 효과로 이어지리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HMM은 지난달 30일 이사회를 열고 본점 소재지를 부산으로 바꾸는 정관 개정안을 처리했다고 한다. 이번 정관 개정안 처리는 지난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부산지역 학계 인사와 산업은행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한 지 나흘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본사 부산 이전을 위한 HMM 사측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지난해 말 에이치라인·SK해운 등 국내 주요 해운 대기업들이 잇따라 본사 부산 이전을 발표한 뒤 국내 최대 국적 해운사의 본사 부산 이전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진 데 따른 화답으로도 읽힌다. 이로써 지난해 해수부 부산 이전 이후 추진중인 남부권 해양수도권 조성의 큰 퍼즐이 맞춰지고 있다. 이 같은 대승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진통은 남아 있다. 파업을 예고하는 HMM 노조와 ‘업계 관계자’라는 명칭으로 일부 언론에 등장하는 이들의 반발이 그것이다. 이들은 서울의 영업력과 부산의 현장성이라는 이원화 운영으로 최적 효율을 증명해 온 HMM의 경쟁력 하락을 본사 이전 반대 이유로 든다. 하지만 HMM 본사 부산 이전 이후에도 서울의 영업력과 부산의 현장성을 토대로 한 이원화 운영 체계는 여전히 HMM의 경쟁력으로 남아야 한다. 오히려 현장성 강화에 힘입은 영업력 강화가 더 합리적 경영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 역이 더 합리적일 순 없기에 이전 반대 논리들은 다소 옹색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한때 한국 대표 선사였던 한진해운까지 파산하던 시기에 HMM은 7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돼 파산 위기를 넘기고 국내 최대 국적 해운사로 성장해 왔다. 국민 세금이 들어간 공적자금엔 HMM이 기업 가치에 걸맞은 사회적 역할을 담당해 주길 바라는 국민적 염원이 들어가 있다. 정부가 망국적 수도권 일극주의 타파를 위해 추진하려는 국가 균형발전의 대의에 HMM이 신속히 참여하는 것은 이 같은 염원에 부응하는 공적 책임이라 할 수 있다. HMM 노사 모두 그 책임을 기꺼이 떠맡는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다. 그러면 부산은 지난해 해수부 이전 때처럼 정주 여건 개선이나 수용태세 점검 등으로 기꺼이 화답할 것이다.
승부조작 차단 '레드 버튼'
2011년 5월 당시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골키퍼로 활약하던 A 선수가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이 사건 이후 단순한 소문으로만 돌던 K리그 승부조작 의혹이 강하게 일었고, 검찰은 수사에 나섰다. 당시 K리그에서는 2010년부터 승부조작 소문이 일기 시작했다. 불법 토토 사이트가 성행하면서 K리그 일부 선수들에게 승부조작 제의가 잇따랐고, 일부 선수들은 실제 가담했다는 소문이 나돈 것이다.검찰 수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국가대표 출신을 비롯해 선수 등 총 60여 명이 적발됐다. 이 가운데 선수 40명, 브로크 7명 등 47명은 영구 제명 처벌을 받았다. 2010년과 2011년 초반까지 무려 21경기에서 승부조작이 벌어진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당시 이 사건은 K리그 생존을 흔들어 놨다.승부조작은 주로 브로커들이나 동료 선수들에게서 시작된다. 성공하면 많은 보수를 보장한다고 유혹하지만, 실패하거나 응하지 않으면 보복이 뒤따른다. 승부조작 뒤에는 폭력 조직이 있기 때문이다.최근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가 2026시즌 K리그 개막과 함께 승부조작 원천 차단을 위한 서비스 지원에 나섰다. 프로선수 전용 익명 신고 애플리케이션 ‘레드 버튼’ 서비스다. 레드 버튼은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가 관리하는 웹을 기반으로 하는 어플로 프로 선수들이 승부조작 제안을 받거나 의심 사례를 목격했을 때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게 설계된 선수 전용 보호 툴이다. 레드 버튼은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는 폐쇄형 시스템으로 현역 프로 선수들에게 배포하는 QR 코드나 가입 코드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다.레드 버튼을 통해 신고되면 해당 내용은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와 FIFPRO가 사전에 지정한 담당 수사 기관으로 전달된다. 신고 접수를 받은 FIFPRO는 관련 정보를 국제축구연맹(FIFA) 조사 부서와 공유하고 국제적인 공조 수사가 이뤄진다.신고자의 개인정보는 물론 신고를 마친 후에는 선수의 휴대전화나 이메일에 어떠한 전송 기록도 남지 않고 모든 데이터는 암호화된다. 신분이 노출돼 보복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승부조작은 한 개인뿐 아니라 스포츠 전체를 파멸로 이끄는 암 같은 존재다. 시스템적인 원천 차단 노력이 반갑다.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이상윤의 세상톡톡] 법왜곡죄로 판사를 단죄하겠다면
“한 여자가 밤에 집에서 아기를 낳았다. 하지만 출혈이 심해 서둘러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심 깊은 남편은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대신 치유 기도를 올렸다. 여자는 결국 숨지고 말았다. 이 경우 남편은 감옥에 가야 하는가?” 독일의 유명 법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폴커 키츠는 대학 시절 법학 관련 수업을 듣던 첫해 중간고사에 나온 이 시험문제를 똑똑히 기억한다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그는 문제를 꼼꼼히 따져본 후 정해진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시험에 나오는 판결 문제는 역시나 어렵다는 명제를 재확인한 그는 원고와 피고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고 판단했다. 종교의 자유를 우선한다면 신앙에 따라 행동할 수 있으나 구급차만 불렀어도 아내가 살 수도 있었기에 방조죄가 성립할 것도 같았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유죄일 수도 무죄일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답을 적고 유무죄의 두 경우 모두 근거와 주장을 들어 답안을 제출했다. 교수는 그의 답안이 유무죄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며 점수를 깎았다. 화가 난 키츠는 교수를 찾아가 평소 세상 일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고 강조해온 교수가 왜 그러시느냐고 따졌다.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로 법에 대해 그가 가지고 있던 기존 가치관을 흔들었다. “이 사건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법철학자와 판사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는가? 법철학자는 와인을 마시며 사건에 대해 얼마든지 사색할 수 있지만 판사는 그럴 수 없다. 판결로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 판사의 일이다. 이번 시험문제는 당신에게 판사로서 결정을 내리도록 요구한 것이지 법철학을 물은 게 아니었다.” 1970년대 독일에서 일어난 해당 사건의 판결은 국내 정서와는 사뭇 다르게 최종적으로는 헌법재판소가 종교의 자유에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 남편이 헌법 소원을 제기하기까지 법원이 내린 결론은 남편의 방조죄 유죄였다. 다소 길게 독일 법학자의 회고를 늘어놓은 이유는 법원이 내리는 판결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과 그럼에도 판결을 내려야 할 수밖에 없는 판사의 고뇌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굳이 이유를 하나 더 든다면 최근 시행에 들어간 법왜곡죄를 들여다보는 프리즘도 필요했다고 할 것이다. 지난달부터 시행에 들어간 법왜곡죄의 핵심은 형법 제123조에 규정돼 있다. 해당 조항은 법관과 검사 또는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특정인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들 목적으로 고의로 법을 왜곡하거나 조작된 사실관계를 적용하는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자격정지에 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법왜곡죄 신설을 추진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찬성하는 측은 법 적용자의 자의적 법 적용을 막기 위해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이들은 판사의 경우 견제받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권력으로서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할 가능성에 노출돼 있어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폴커 키츠의 회고담에서 보듯이 형사사건에 있어 유무죄를 가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판사는 법철학자와는 달리 어떻게든 유무죄의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는 판사에게 ‘자유심증주의’라는 권한을 형사소송법에 부여해 놓고 있다. 자유심증주의는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증거의 가치판단과 사실 인정을 전문적인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도록 하는 것이다. 법원이 곧잘 내리는 새로운 시각의 판결은 주로 자유심증주의의 산물이다. 법왜곡죄는 이 같은 자유심증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모순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법왜곡죄는 지난달 시행에 들어갔고 대법원장을 1호 대상자로 한 고발이 접수됐다. 법률이 소급 적용되진 않으리라 보지만 법왜곡죄 조항이 더 일찍 생겼다면 어떤 식으로든 법적 결론이 나야 했을 것이다. 사색만 하는 법철학자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해당 사건의 판사는 법왜곡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혹시라도 미래에 새로운 계기로 법왜곡죄가 거꾸로 적용된다면 이번엔 해당 판사가 대상이 되는 무한루프에 빠지지나 않을까. 아니 하급심 결과가 상급심에서 뒤집어지는 경우에만도 법왜곡죄 적용이 가능할 수 있다. 일부 국가는 자유심증주의를 도입하지 않는다. 판사의 자유로운 판단보다 증거 유무에 따른 기계적 판결을 우선시해서다. 우리도 법왜곡죄를 도입한 마당이라면 자유심증주의는 포기해야 맞다. 새로운 시각의 판결을 이끌었던 자유심증주의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게 사회적 합의라면 그래야 한다. 혹시 아는가. 사회적 합의가 기계적 판결에 무게를 둔다면 AI가 판결하는 시대를 더 앞당길 수 있을지.
[정훈의 생각의 빛] 진달래, 지려고 피는 마음씨에 묻은 빛깔
“진달래야 진달래야 어느 꽃이 진달래지 내 사랑의 진달래 너만 홀로 진달래야/ 진달래 나는 진달래 임의 짐은 내질래”(유영모 ‘진달래’ 중에서) 이맘때쯤이면 마을 뒷산을 붉게 물들이던 진달래가 생각난다. 따뜻하고 화사한 봄볕 바람에 흔들리며 잔잔한 향기 번지던 진달래 군락지에 앉아 동무들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뛰놀다 저녁 먹으란 소리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꽃잎을 따던 이들도 있었는데, 화전을 해 먹기 위해서였다. 얇디얇은 분홍빛 이파리 한 움큼씩 전을 부쳐 찬가지 몇 없는 밥상에 올려 먹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진달래, 짧은 동안 활짝 피고 온 산을 순간 붉게 물들이곤 영락없이 지고야 마는 그 꽃을 생각하는 날이다. 김소월(1902~1934)의 시에도 등장하는 진달래는 국화나 장미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 나라 산천 곳곳 봄의 들목에서 개나리와 함께 가장 먼저 피어나 다른 봄꽃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진달래꽃’의 시인 소월이 다녔던 오산학교의 제8대 교장을 지냈던 다석 유영모(1890~1981)도 ‘진달래’란 시를 지었다. 그는 서울 구기동에 살 무렵, 진달래를 보고 그 꽃 이름을 한참이나 궁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면서 누구보다 먼저 피우고 누구보다 먼저 지는 진달래의 모습에서 생명의 신비와 함께 영적인 삶의 본질을 깨달았다. 그가 지은 ‘진달래’는 언뜻 알쏭달쏭한 의미와 맥락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아 보이지만, 오랫동안 지지 않고 아름다움과 명성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뜻이 적지 않다. ‘지기 위해 피우는 꽃’이란 해석을 보태기도 했던 다석의 ‘진달래론’을 곱씹으면, 무릇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는 우리가 어떤 정신과 형식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곰곰이 되짚게 된다. 제주 4·3과 4·19혁명 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이들이 다시 한번 우리에게 ‘말 없는 말’을 건네는 달이다. 희생당한 이들이 무슨 거창한 이념과 사상을 펼치기 위해서라든지, 혁명으로 나라를 뒤바꾸려는 장엄한 꿈을 이루려는 마음으로 국가 권력의 ‘제거 대상’이 되었던 건 아니다. 이들은 단지 거짓과 술수와 명분 잃은 폭력의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희생되었지만,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에서 결코 잊어서도 안 되고 잊을 수도 없는 우리 현대사의 상흔이 되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한참이나 머뭇거리면서 여백에 묻은 젖은 피가 내지르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우리가 끝내 찾아서 잊지 않고 동시대인들에게 전해야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4월 지나 5월이 되면 각종 봄꽃이 피었다 지는 속에 수목은 그 푸르름을 더욱 짙게 가져갈 것이다. 진작에 피었다 진 진달래는 뒤를 줄줄이 이은 봄꽃 무리 속 상춘객의 밝은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러지기 위해 찬란히 불 밝혔던 ‘사건’으로 남게 된다. 이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생명이 지녀야 할 의무 가운데 하나인 가없는 희생과 사랑만이 마음속에 오롯이 남아있을 것이다. 진달래, 진분홍 이파리의 떨굼이 연두 천지의 세상을 지피고 남긴 고귀한 소식. 우리 앞에 주어진 생명의 길을 내어주고 물러난 역사의 희생자들이 어느 곳 어느 때 불쑥불쑥 입술을 드러내어 참된 삶의 의미를 묻는다면 이에 곧바로 답을 할 자 몇이나 될까. 국가 폭력의 희생자를 기리고 기념하는 목적은 단지 이들이 희생당해야만 했던 역사적 사건이나 진실을 재구성해 오늘날 우리에게 남기는 의미를 되새기는 데에만 놓여 있지는 않다. 수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맺힌 한이 유전되어 면면이 쌓이는 과정에서 반드시 개선해야 할, 집단 이데올로기에 따른 소수자를 향한 기만과 폭력의 유대를 끊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기회를 언제라도 붙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아울러 ‘살아남은 자’가 반성과 자책으로 값진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순간순간 돋아나는 삶의 뜻을 헤아리면서 잊지 말고 지녀야 할 시선이 들어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화학자이자 작가였던 프리모 레비(1919~1987)는 저서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삶의 의미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모든 힘줄 속에 뿌리박혀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문제는 훨씬 더 단순하다. 오늘 그리고 여기서 우리의 목표는 봄에 도달하는 것이다.” 희망도 용기도 실종된 극한의 지대에서 부르짖은 말이었을지라도, 그가 힘주어 강조했던 점은 당장 ‘오늘 여기’에서 찾아야만 했던 생명의 목적이었다. 이 목적은 꽃봉오리 활짝 지려고 피었던 진달래가 우리 마음에 물들이는 빛깔이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모든 폭력의 희생자가 입을 열어 전해주려 했던 메시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조희창의 클래식내비게이터] 유칼리, 도달할 수 없는 낙원에 대하여
“나는 한 가지 스타일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시대에 속한다.” 쿠르트 바일(Kurt Weill)은 세계 대전으로 황폐한 독일 무대에서 이렇게 외쳤다. 1900년 독일 데사우에서 태어나 베를린음악원에서 공부했으며, 훔퍼딩크, 부소니에게 작곡을 배웠다. 1926년에 배우이자 가수인 로테 레냐와 결혼했고, 오페라 ‘주연 배우’를 성공시키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인생은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만나면서 변곡점을 이루었다. 1927년에 두 사람은 노래극 ‘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를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를 통렬히 고발했다. 그리고 1928년 ‘서푼짜리 오페라’(Die Dreigroschenoper)로 대성공을 거뒀다. 이 오페라는 바로크 시대인 1782년에 존 게이가 완성한 ‘거지 오페라’를 1920년대 누추하고 소란스러운 독일의 뒷골목으로 옮겨온 작품이다. 음악적으로는 기존 오페라에 트로트, 재즈, 발라드 등 대중음악을 결합한 형태였다. 아리아는 대중적 창법의 노래로 대체되었고, 오케스트라보다는 금관악기와 타악기를 중심으로 한 밴드로 반주를 했다. 대중성과 정치적 풍자를 결합한 혁신적 음악극으로 소문나면서 1933년까지 1만 회 이상 공연을 기록했고 18개국 언어로 번역되는 대성공을 거뒀다. 브레히트와 바일은 이후에도 ‘해피 엔드’, ‘7가지 죄악’ 등의 문제작을 발표하다가, 결국 사상적인 문제로 결별하게 된다. 바일이 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더욱 다가가려 했다면, 브레히트는 그 대중을 다시 거리로 밀어내어 비판하고 사유하게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1933년에 나치가 정권을 잡게 되자 유대인 출신인 바일은 이른바 ‘퇴폐음악의 온상’으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바일은 프랑스를 거쳐 미국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고, 이후 브로드웨이와 헐리우드에서 활동하다가 1950년 4월 3일, 50세로 세상을 떠났다. 바일의 노래 중에선 ‘서푼짜리 오페라’에 등장하는 ‘칼잡이 맥’(Mack The Knife)이 가장 유명하겠지만, 오늘은 그보다 더 서정적인 곡 ‘유칼리’(YouKali)를 소개한다. 바일이 프랑스로 망명한 직후에 ‘마리 갈랑트’라는 연극에 삽입한 곡이다. “유칼리, 그곳은 소망의 땅/ 유칼리, 그것은 행복이고 기쁨이지/ 모든 근심을 내려놓는 그곳/ 어두운 밤에 번쩍이는 한줄기 빛/ ... 그러나, 아아, 그것은 꿈, 어리석은 환상/ 유칼리는 존재하지 않아/ 인생은 우리를 질리게 이끌지, 꿈도 사랑도 없이 흘러가 버리지.” 노래의 제목인 유칼리는 실제 지명이 아니라 상상의 섬이다. 평화와 자유와 사랑이 있는 곳이지만 사는 동안은 갈 수 없는 곳, 그곳에 대한 그리움을 탱고와 하바네라 리듬 속에 넣었다. 이름다움과 허무함이 공존하는 노래. 망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음악가 쿠르트 바일이 남긴 ‘슬픈 낙원’이 여기 있다.
[데스크 칼럼] 그 2년은 무엇이었을까
사람을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라. 작은 유혹과 풍파에도 바뀌는 사람 마음을 이만큼 잘 표현한 말은 없다. 언제나 원치 않는 상황은 사람을 본심과 다른 방향으로 끌고간다. 사람이 상황에 끌려가는 부조리함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게 선거다. 조변석개하는 선거철이면 유권자는 그간의 서사와 인연을 망치는 낯선 진심을 마주한다. 야당 텃밭이던 부산의 마음을 돌리려 연일 러브콜을 보내던 여당의 진심이 그랬다. 후끈 달아오른 여당발 '5극3특' 이슈는 얼어붙은 부산의 마음을 녹였던 게 사실이다. 남부권에서 부산과 울산, 경남을 묶어 수도권과 대등한 경제 축으로 성장시키자고 했다. 그 주장에 누가 토를 달 수 있을까. 연초부터는 청와대가 조기 행정통합을 강공 일변도로 밀어붙였다. 그만한 명분이 있으리라 믿었다. 거기에 여당은 20조 원의 달콤한 인센티브까지 내놓겠다고 제안했던 터다. 그러나 러브콜이 이어지는 그 순간에도 5극3특과 궤를 같이하는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은 국회 표류 중이었다. 2년 넘게 이어진 부산시의 호소에도 상임위 소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것이다. 그 상황은 부산을 향한 여당의 진심을 의심하기 충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산 출신 윤건형 의원의 법안심사소위가 2년 넘게 멀쩡한 법안을 미아 신세로 만들어 놓았다. 특별법이 발의됐던 2024년 1월만 해도 수도권과 중앙 부처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했다. 하지만 여당이 상임위에서 법안 하나를 붙들고 놔주지 않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미상정 이유는 철마다 바뀌어서 일일이 기억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법안 설명을 야당에서 제대로 안 했다'라고 몇 달을 버티더니 그 뒤에는 '부산 외 다른 지역 발전을 위한 법안과 같이 심사해야 한다'라고 했다. 결국 지난달 11일 입법 공청회가 열리면서 법안 심사는 물꼬를 텄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일부 여당 의원은 '지방선거 전에는 법안을 처리하면 안 된다'라며 어깃장을 놨단다. 이쯤 되면 더는 갖다 붙일 변명도, 진심을 숨기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소리다. 6·3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출마를 고심하던 여당의 전재수 의원이 2일 출사표를 던진다. 선거에 발을 담갔으니 당시 공동으로 법안을 발의한 전 의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분위기는 묘하게 바뀌었다. 전 의원이 지난달 24일 당 원내대표단을 찾아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다. 여당 원내대표단은 "부산을 글로벌 허브도시로 키우는데 앞장서겠다"라고 호응했다. 2년간 표류하던 법안은 전 의원의 한 마디에 하루 만에 소위를 통과했다. 맥락 없이 보자면 전 의원은 부산의 구세주다. 17명의 국힘 의원들로도 중과부적이었던 민원을 단숨에 해결한 것이다. 그러나 전 의원의 '17대 1' 무용담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이전까지 보여준 여당의 행태 때문이다. 야당 시장이 제안했다는 이유로 갖은 트집을 잡던 특별법 법안이 하루아침에 소위를 통과했으니 그 진심을 누가 그대로 믿어줄까. 진심이 아니라 상황을 믿을 수 밖에 없는 꼴이다. '낙선 전문'이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에도 굴하지 않고 전 의원은 자전거로 북구의 바닥 민심을 다졌다. 그 스토리는 당시 북구를 출입하던 초년병 기자에게 큰 울림을 줬던 기억이 난다. 부산의 정서를 살피고 거친 언사도 자제하던 모습이 부산에서 민주당 3선 의원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의 큰 무기였다. 그런 전 의원이 이제 와서 정치공학 운운하며 이런 모욕적인 판을 짰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만으로도 그는 시장 선거에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한 후보다. 전 의원의 활약에도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이 또다시 지난달 30일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린 모양이다. 다음 날에는 대통령 입에서 "부산만 어떻게 특별법을 만들어 주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재차 전 의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몰아주려는 계산이라면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한다. 그건 여당 프리미엄이 아니라 여당 페널티가 될테니 말이다. 그것보다는 누구라도 납득할만한 여당 프리미엄을 전 의원은 제시해야 한다. 해수부와 HMM 등 그가 꺼내들 카드는 이미 차고도 남는다. 여당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도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의 통과에 초당적 지원을 해야 한다. 그게 지난 2년간 겪은 부산의 설움을 달래고, 부산에 '진심'을 내보이는 길이란 걸 알아야 한다.
[중앙로365] 검찰개혁에 지배된 더불어민주당
3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선 검찰을 향한 민주·진보 진영의 구원(舊怨)이 엿보였다. 2003년 3월 ‘검사와의 대화’를 소환한 대목에서다. 당시 토론회에 참석한 검사들은 부산상고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에게 ‘학번’을 묻는 등 모멸적인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노무현과 검찰의 갈등은 퇴임 후에도 계속됐고, 급기야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이 사실은 지지자들에게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뿌리로 한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더불어민주당의 본류는 친노무현계다. 김 전 대통령을 따르던 동교동계 정치인들은 대부분 은퇴했거나 ‘수박’으로 찍혀 밀려났다. 당내 주류는 친노·친문으로 이어지는 86세대 운동권 그룹으로 채워졌다. 핵심 지지층 역시 20여 년 전 ‘노무현 신드롬’을 만들었던 이들이다. 이런 정당에서 검찰개혁이 지상과제로 떠오른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민주당에선 재벌개혁이나 골목상권 보호, 보편적 복지 등 다양한 아젠다가 공존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검찰개혁이 거의 유일한 의제로 자리매김했다. 2019년 조국 사태가 발단이었다. 거기에 지난해 5월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서 사법개혁이 추가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갈등 의제일수록,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것일수록 진지하게 터놓고 숙의를 해야 된다”라며 신중론을 편다. 그러나 여권 강성파와 핵심 지지층은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에 관한 한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실제로 지난 1월 정부가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설치 법안을 입법예고 했을 당시에도 지지층은 크게 반발했다. 보완 수사권 폐지 결정을 뒤로 미루는 등 검찰개혁을 ‘확실하게’ 단행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공교롭게도 그 직후 정청래 대표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나 당내 의사결정 과정에 당원 권한을 확대하는 ‘1인 1표제’ 이슈를 띄웠다. 검찰개혁에 대한 선명성 여부는 계파 갈등의 불씨로도 작용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ABC론’, 그러니까 가치·이념에 충실한 원리주의자들과 실용·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분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일단은 이재명 대통령이 진영 내 강성파에 밀린 형국이다. 여당은 각종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법왜곡죄 신설, 재판소원 도입, 대법관 증원을 골자로 하는 사법개혁을 밀어붙였다. 검찰개혁에 있어서도 특별사법경찰관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삭제하는 등 강성파 의원들의 요구가 상당 부분 수용됐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여권 지지층과 일반 국민의 요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집단이 청년층이다. 2030은 참여정부 당시 10대 이하였다. 노무현에 대한 향수가 없는 이들은 검찰개혁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는다.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 우선 과제로 검찰개혁을 꼽는 경우도 거의 없다.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청년층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청년뿐 아니라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살면서 검찰을 접할 일이 거의 없다. 이들의 삶을 위협하는 건 검사가 아니라 지역 격차라든가 인구 소멸, 노동시장 양극화 같은 것들이다. 균형발전만 하더라도 민주당이 검찰개혁에 쏟는 열정의 반만 여기에 쏟았다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가 이 정도로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개혁에 지배된 더불어민주당에서 이러한 의제들은 부차적인 걸로 여겨진다. 검찰이라는 단어로 가득한 대변인들의 논평이 그것을 방증한다. 민주당이 강성파 의원과 당원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검찰개혁·사법개혁을 밀어붙인 데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장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판사들은 법왜곡죄로 고발당했고 파렴치범들은 대법원 유죄 판결에 불복하며 재판 소원을 벼르고 있다. 권한이 막강해진 경찰을 어떻게 견제할 것이며, 이들의 수사 전문성은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도 내려지지 않았다. 일상에서의 혼란이 가시화하면 국민의 원성이 높아질 테지만, 이미 당원들에게 의사결정 과정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민주당은 달리는 기관차를 멈추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은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자는 ‘검수완박’에 집중했다가 선거를 그르친 바 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도 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검찰개혁·사법개혁으로 떠들썩하다.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 행진하는데 여당 지지율은 그보다 20%포인트가량 낮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이 민심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적어도 그 20%만큼의 유권자는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 다만 지금은 국민의힘이 워낙 지리멸렬한 탓에 잠시 유예되고 있을 뿐이다.
[시론] 가덕신공항 개통, 왜 서둘러야 하는가
국가 균형발전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산업과 인구, 자본과 기회가 특정 지역에 집중된 현실에선 논하기 쉽지 않다. 항공 인프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국제 관문 기능이 수도권에 편중된 구조 속에서 지역의 성장 잠재력은 오랫동안 제약을 받아왔다. 이러한 점에서 가덕신공항은 단순한 신규 공항 건설 사업이 아니라 남부권의 산업·관광·물류 지형을 재편할 국가 전략 인프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공항은 사람과 물자의 이동 경로를 바꾸는 핵심 기반시설이다. 입국 동선이 달라지면 체류 지역이 달라지고, 이는 관광 소비와 투자 흐름의 변화를 가져온다. 결국 공항은 단순한 교통시설을 넘어 사람과 자본, 산업의 흐름을 설계하는 경제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국제 항공 네트워크는 인천국제공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국제 관문 기능이 단일 축에 집중된 구조는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의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글로벌 항공 시장이 다극화하는 상황에서 관문 기능을 다핵적으로 분산하는 전략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이 될 수 있다. 가덕신공항이 인천공항과 경쟁하는 공항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며 국가 항공 네트워크의 안정성과 확장성을 높이는 전략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이유다. 특히 가덕신공항은 관광과 물류를 결합한 복합 기능을 지향할 수 있다. 부산은 해양·도시·문화 자원을 동시에 갖춘 국제관광도시이자 대형 항만을 보유한 물류 중심지다. 여기에 국제공항 기능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면 시너지는 더욱 커진다. 일본·중국·동남아 주요 도시와의 직항 네트워크 확대는 관광객 유입을 늘리는 동시에 항공 화물 운송의 효율성도 높일 것이다. 관광 소비와 물류 흐름이 함께 확대될 때 지역 경제는 보다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가덕신공항은 부산을 넘어 남부권 전체의 공동 관문으로 기능해야 한다. 영남은 물론 호남 일부 지역까지 연결되는 광역 관문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공항을 중심으로 항만과 산업단지, 철도망과 관광벨트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공항 경제권’이 형성된다. 이는 특정 도시의 성장에 그치지 않고 남부권 전체의 상생 발전을 이끄는 기반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공항 중심의 공간 재편은 단순한 교통 인프라 확장을 넘어 지역 산업 구조와 관광 흐름을 함께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공항의 경쟁력은 활주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배후 산업과 교통망, 관광 인프라와의 연계 속에서 비로소 전략적 가치가 구현된다. 동시에 공항 자체의 경쟁력 또한 중요하다. 공항은 단순한 이동 공간을 넘어 스마트 물류 시스템과 친환경 설계를 갖춘 미래형 인프라로 조성되어야 한다. 지역 문화와 상업 기능이 결합된 체류형 복합공간은 관광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소비를 확대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공항을 하나의 관광 명소이자 상업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며 도시 경쟁력을 높인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가덕신공항 역시 이러한 방향 속에서 동북아를 대표하는 첨단 관광·물류 허브로 성장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공항은 청년과 기업이 모이는 혁신 거점이 되어야 한다. 항공 물류와 관광 서비스, MICE 산업, 해양 비즈니스가 융합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한다면 이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을 넘어 새로운 성장 산업을 창출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공항을 중심으로 창업과 투자, 연구개발이 이루어지는 혁신 환경이 조성된다면 지역 경제의 활력 또한 크게 높아질 수 있다. 결국 공항은 단순한 이동의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와 산업을 창출하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가덕신공항은 단순한 SOC 사업이 아니다. 관광과 물류, 산업과 도시를 연결하는 남부권의 전략적 복합거점이다. 공항과 도심, 주요 관광지와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광역 교통망을 구축하고, 국제 행사 유치와 관광 콘텐츠 개발, 물류 시스템 고도화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준비가 뒷받침될 때 가덕신공항은 단순한 공항 인프라를 넘어 남부권의 관광과 물류, 산업과 도시를 연결하는 핵심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가덕신공항의 조속한 개통이다. 대한민국 관광 경쟁력 강화와 지역 경제 도약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가덕신공항의 개통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그 속도가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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