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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해수부, 해양수산 산하기관 이전 속도전 마땅한 일
부산을 진정한 해양산업 클러스터로 거듭나게 하려는 후속작업이 본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부산으로 이전한 해양수산부가 산하기관에도 다음 달까지 부산 이전 로드맵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 등 해운 대기업들의 잇따른 본사 부산 이전 계획 발표와 궤를 함께하는 속도전 양상이다. 해수부의 지시에 따라 해당 기관들의 부산 이전 계획이 구체화하면 정부가 그리고 있는 해양수도 부산의 밑그림도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해양 정책 결정과 연구·개발, 현장 산업 등이 하나로 연결됨으로써 발생하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는 그 토대가 될 것이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해수부는 설 직전인 지난 12일 산하 6개 기관 부서장을 소집해 3월 중으로 부산 이전 로드맵을 마련하고 내년 상반기 중 이전을 완료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6개 기관은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해양환경공단,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한국어촌어항공단, 한국해양조사협회, 한국항로표지기술원 등이다. 해수부의 이 같은 행보는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연말까지 구체적인 이전 로드맵을 보고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조치로 읽힌다. 전재수 전 장관이 해당 기관 노조 면담에서 “로드맵 발표 전 협의하겠다”고 언급했던 점으로 미뤄 로드맵이 나오면 발표 전 본격 협의에 들어갈 것으로도 보인다. 해수부 산하기관 부산 이전은 대선 공약에 따른 해수부 부산 이전의 후속 조치라는 정치적 상징성을 초월한다. 해양수산 정책이 해운·항만·수산·환경 등 현장 이슈와 직결되기 때문에 해수부를 부산으로 옮기는 게 타당하다면 이와 관련한 연구와 현장 기능의 부산 이전도 타당한 일이다. 해수부 산하기관이 수도권과 세종에 흩어져 있는 공간적 불일치가 조속히 해결돼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이를 위한 해수부의 조치를 전임 장관의 지방선거 지원 카드로만 바라보는 것은 협량한 정치적 해석이라 할 것이다. 졸속 이전 우려 등을 제기하는 해당 기관 노조들도 대승적 차원에서 해수부와 적극 협의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부산이 진정한 해양강국 대한민국을 위한 해양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해수부와 산하기관, 해양기업 등의 부산 이전이 일찌감치 이뤄졌어야 했다. 북극항로를 필두로 급변하는 해운환경과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선 더욱 그렇다. 이번 해수부의 산하기관 부산 이전 속도전은 그런 의미에서 늦게나마 환영받아 마땅하다. HMM 등 해양 대기업의 이전과 함께 부산 영도의 해양산업 클러스터 완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이번 조치는 해운·조선·해양플랜트 등에 대한 해수부 기능 강화의 마중물로도 기대를 모은다. 이전 대상지 부산은 수용 태세와 장기적 법·제도 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사설] 국토부, 가덕신공항 수의계약 미적대는 이유가 뭔가
가덕신공항 건설 공사는 단순한 개발 사업이 아니다. 부산, 울산, 경남의 숙원이자 국가 물류 체계 도약과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된 국책 사업이다. 하지만 동남권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가덕신공항 개항 일정은 지난해 당초 2029년에서 2035년으로 6년이나 늦춰졌다. 과거 현대건설 컨소시엄과의 수의계약 중단 등이 표면적 이유로 꼽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국토교통부의 안일한 태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부는 최근 대우건설 컨소시엄과의 수의계약 체결을 사실상 결정하고도 절차를 빨리 진행하지 않고 있다. 행정 지연 때문에 중대한 국책 사업 일정이 계속 늦춰지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국토부는 지난 6일 가덕신공항 2차 입찰에 대우건설 컨소시엄만 응찰해 유찰된 뒤, 수의계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이에 대한 공식 발표를 아직까지 미루고 있다. 현재 동남권 주민들은 정부가 조금이라도 더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 개항 일정을 최대한 당겨줄 것을 연이어 촉구하고 있다. 반면 국토부의 일 처리는 지나치다고 할 만큼 늦다. 이미 국토부는 현대건설 컨소시엄과의 계약 과정에서도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주민들의 분노를 키웠다. 그런데도 모든 방안을 동원해 개항을 앞당기기는커녕 이번에도 느긋한 모양새다. 이것은 지역 민심을 모르는척하는 것을 넘어 무시하고 조롱하는 처사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국토부 홍지선 2차관은 지난 20일 가덕신공항 건설 예정지를 방문해 사업 추진 현황을 점검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2035년 개항은 국민과의 약속이므로, 차질 없는 사업 추진을 위해 철저히 관리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정작 사업 진행을 위해 가장 다급한 수의계약 발표와 관련한 언급은 없었다.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국토부의 행정 지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토부는 지난해 가덕신공항 공사기간과 재입찰 결정 과정에서도 장관 보고 일정을 잡지 못해 상당한 시간을 허비했다. 더욱이 과거부터 거듭된 행정 지연이 지금 또 어김없이 재현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가덕신공항 개항 일정을 최대한 앞당겨달라는 부울경 주민들의 요구는 단지 인천공항 접근 불편성이나 김해공항 이용 어려움 때문이 아니다. 가덕신공항 개항이 늦어질수록 공항 경쟁력과 당초 기대 효과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양수산부 이전 등으로 해양강국을 견인할 글로벌 해양도시 도약을 추진 중인 부산의 발전을 위해서는 세계와 연결된 하늘길도 최대한 빨리 구축해야 한다. 국토부는 행정 지연으로 고통받는 부울경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내부적으로 논의돼 사실상 결정된 수의계약을 더 이상 미적댈 이유는 전혀 없다. 국토부의 속도감 있는 행정 추진을 촉구한다.
[사설] 재정 분권 등 핵심 빠진 행정통합법 처리 서두를 일인가
지방 행정체계를 재편할 행정통합 특별법이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3일 대전·충남, 광주·전남, 대구·경북 통합 법안을 심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과 일부 지자체의 우려에도 24일 본회의 처리 수순을 밟겠다는 방침이다. 여권은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지자체장을 선출하겠다는 자체 일정에 맞추기 위해 이달 내 법안 통과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재정 분권 등 핵심 특례 조항이 상당 부분 빠졌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제도의 뼈대만 세운 채 서둘러 입법을 강행하는 모습에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행정통합은 ‘언제 통합하느냐’보다 ‘어떤 내용, 어떤 통합이냐’가 중요하다. 행정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조정이 아니다. 지역 발전 전략과 재정 배분, 주민 삶의 질, 더 나아가 국가 운영 구조를 좌우하는 중대 사안이다. 광역 단위 통합은 행정 효율성, 재정 자율성, 주민 대표성 등 복합 요소가 맞물린다. 그럼에도 재정 분권과 핵심 특례가 충분히 담기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예타 면제, 그린벨트 권한, 특별지방행정기관 이관 등 요구가 반영되지 못했다는 불만도 크다. ‘선통합·후보완’ 방식으로는 실질적 분권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 통합 이후 권한과 재정 특례가 불명확하다면 효율성 명분 역시 힘을 잃는다. 행정통합의 전제는 분권이며, 성패는 법 통과가 아니라 실행의 내용과 그 설득력에 달려 있다. 정치적 파장 역시 가볍지 않다. 여권은 통합지자체장 선출 시간표를 고수하고, 국민의힘은 일방 처리에 반발하며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본회의 당일 맞불집회까지 예고되며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행정통합이라는 장기 과제가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면 정책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제도 개편은 정치적 승부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어야 한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행정통합 특별법은 여야 합의가 중요하다. 행정통합은 대한민국 미래 구조를 설계하는 중대한 과제”라고 했다. 빈말이 아니어야 한다. 행정통합의 기준은 정치 일정이 아니라 정책 완결성과 사회적 합의다. 절차적 정당성과 공감대 형성 없는 속도전은 설득력을 잃는다. 행정통합은 선거용 카드가 아니라 백년대계다. 앞서 부산·경남 시도지사가 요구한 기본법 제정과 주민투표 절차는 통합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통합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중앙정부와 여권은 이를 반발이 아닌 처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통합 이후 권한과 재정이 불투명한 채 덩치만 키우는 방식은 실익을 담보하기 어렵다. 지역 규모 차이를 반영한 재정 구조 개편, 실질적 분권 보장, 민주적 의사결정 체계를 갖춘 기본법이 전제돼야 실행력이 생긴다. 부산·경남 시도지사 등의 요구는 특혜가 아니라 지방자치의 조건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결단보다 숙고다. 중앙정부와 여권은 완성도를 채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공업탑 60년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상징하는 도시다. 1962년 국내 최초의 특정공업지구 지정을 시작으로 중화학 공업 위주의 온산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등 국가 경제 발전을 견인했다. 울산은 특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전진기지로 자리매김하며 ‘산업수도’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현대자동차와 HD현대중공업, HD현대미포 등을 주축으로 한 자동차와 선박 산업까지 본궤도에 오르면서 울산은 대한민국 수출 기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1967년 울산 남구 신정동에 건립된 공업탑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높이 25m 조형물이다. 공업탑로터리 중심 부분에 자리 잡은 이 탑의 정식 명칭은 울산공업센터 건립 기념탑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업탑이라는 별칭이 고유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공업탑은 경제개발 5개년을 의미하는 5개의 몸체가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지구본을 떠받치고 있는 모양이다. 탑 주변에는 건설과 약진을 상징하는 산업역군상과 평화를 뜻하는 여인상이 설치돼 있다. 산업역군상 하단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축사 문구를 담은 동판도 새겨져 있다.60년 동안 현재 자리를 지켜온 공업탑은 인근에 자리한 울산대공원 동문 연꽃연못 일원으로 이전될 예정이다. 트램 형태인 울산도시철도 1호선 건설에 따라 울산시가 공업탑 로터리 일대를 기존 회전식이 아닌 평면 교차로로 전환키로 하면서 이전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울산시는 올해 하반기 공업탑을 해체, 울산박물관에 임시로 옮긴 뒤 내년 울산대공원 이전을 완료할 계획이다. 울산시는 공업탑 이전과 함께 탑 디자인도 시대 흐름에 맞춰 업그레이드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공모전을 거쳐 8월에 수상작을 발표한다.공업탑이 울산에 들어설 당시만 해도 일부를 제외한 대한민국 대다수 지역은 여전히 농업국가의 틀을 벗지 못했다. 울산도 당시엔 대부분 지역이 허허벌판이었다. 하지만 공업탑 건립 60년이 지난 현재,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로 부상했다. 더욱이 K문화 유행으로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로 꼽히고도 있으니 실로 엄청난 변화의 시간이었다. 울산도 서울에 이어 개인소득이 높은 ‘부자도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기존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것은 물론 인공지능(AI) 수도와 한국형 도심항공교통 제조 거점 도약을 준비 중이다. 공업탑이 울산대공원으로 옮겨가더라도 대한민국의 번영을 약속하는 상징으로 계속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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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한국에서 지방민으로 산다는 건
한국에서 지방민으로 산다는 건, 머릿속에 항시 ‘지방’이라는 스위치를 켜두고, 밤낮 할 것 없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누군가 야금야금 빼내가는 건 없는지를 감시하고, 도둑이 들면 지키기 위해 악을 써야 하는 일인 것 같다. 참으로 피곤하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한국거래소의 지주회사 전환과 코스닥 자회사 분리를 추진하면서 지역 내 반발이 커지고 있다. ‘서울거래소 출범’이라는 부산 시민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를 뒤로 하고 생겨난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NXT)가 이미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잠식 중인데, NXT에 자본시장의 3분의 1을 떼어준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한국거래소마저 배를 갈라 서울에 떼어주려 하기 때문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전례 없는 강한 어조로 항의 표시를 하고, 국회 정무위원장을 긴급 방문한 이유다. 특히 부산 금융 생태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거래소가 지주회사로 전환이 되면, 본점 소재지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희박해지면서 코스피, 코스닥 등 핵심 자회사들이 서울로 ‘유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자본시장의 핵심축 중 하나인 코스닥이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서울로 회귀하는 순간, 부산 금융중심지는 글자 그대로 ‘빈 껍데기’가 된다. 달라는 산업은행은 안 주더니, 있는 것마저 빼앗으려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방’이라는 스위치를 켜고 보면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허울 좋은 약탈’들이 눈에 보인다. 2005년 증권과 선물을 통합한 한국거래소가 부산에 출범한다고 좋아했지만, 이후 주요 기능과 전산은 서울로 다 옮겨가면서 부산에 있던 선물회사들은 자취를 감췄다. 에너지 정책은 더 가혹하다. 수도권에서 가장 먼 곳들에만 원자력발전소를 지어 놓고, 고압 송전탑을 곳곳에 박아 싼값에 전기를 서울로 쏘아 올린다. 사고 위험과 불안은 지방민이 짊어지고, 그 혜택은 서울의 마천루들이 오롯이 누린다. 한국예탁결제원이 금 보관소마저 본사가 있는 부산이 아닌 수도권에 지으려다 부산에서 기를 쓰고 반대하자 겨우 방향을 튼 사건은, 지방민이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티도 안 나게, 서서히 야금야금 빼앗긴 것들은 더 많다. 사람뿐 아니라 돈도 서서히 서울에 집중되면서 지역에서는 대출해 줄 돈이 모자라 서울에서 돈을 끌어와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부산은행의 수신액(예금성) 중 부산에서 조달한 비율은 66.9% 수준으로 최근 6년 사이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2020년 12월 말 기준 72.46%에 비하면 5년 만에 확연히 줄어든 수치다. 부산 기업, 개인에 대한 대출 비중은 전체의 74.16%인데 부산에서는 빌려줄 돈이 없으니 서울까지 가 높은 비용을 들여 조달해 오고 있다. 부산에서 힘겹게 벌어 들인 돈은 서울로 쉽게 흘러가고, 부산 기업은 다시 그 돈을 비싸게 끌어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야금야금 빼앗겨버린 기회와 야금야금 내려앉은 자산의 가치는 청년들을 수도권으로 더 밀어올리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공간의 위계가 곧 계급의 위계가 되어버린, 거주지가 곧 계급이 되어버린 사회 인식은 지방민들의 자존감을 앗아간 무서운 약탈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공간에 새겨진 계급 차이도 문제지만 그보다 무서운 것이 그 차이를 정당화하는 인식의 구조화라고 경고했다. 서울은 ‘세련되고 효율적인 곳’, 지방은 ‘낙후되고 보조금을 축 내는 곳’이라는 낙인은 지방민을 위축시킨다. 부산 시민들은 단순히 경제적 자산만 잃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기회와 존엄을 박탈 당하고 있다. ‘인서울’ ‘대기업’ 우위의 사회에서 지방민은 거주지, 출신학교가 지방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배경을 낮게 평가하도록 길들여짐으로써 폭력적 방식으로 계급에서 밀려나게 된다. 한국거래소를 지키는 것은 단순히 ‘공공기관’ 하나를 부산에 묶어두는 일이 아니다. 이는 자본의 상징을 지역에 두고, 부산의 청년들에게 서울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강력한 제동 장치다. 부산의 청년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당당히 ‘자본의 주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지키는 일이며, 거주지가 곧 계급이 되어버린 설계도에 균열을 내는 일이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지방민만 살리는 게 아니다. 숨도 못 쉬도록 빽빽한 곳에서 살인적인 경쟁에 내몰려 있는 서울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기도 하다. 이현정 경제부 차장 yourfoot@busan.com
[2030 칼럼] '픽셀 라이프' 시대, 우리에겐 '버디'가 필요해
글로벌 IT 기업인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에는 ‘버디’라는 온보딩(조직 안착) 제도가 있다. 사수와 부사수라는 수직적 위계를 넘어, 먼저 입사해 조직 문화를 익힌 동료가 신입 사원의 짝꿍이 되어 조직 생활의 꿀팁을 다정하게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5년 전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적응을 마쳤을 무렵, 나 역시 나보다 10년 차 이상인 실무자의 버디가 되어드린 적이 있다. 나이와 연차를 불문하고 ‘먼저 가본 길’에 대한 사소한 경험을 나누는 행위가 긴장을 얼마나 따뜻하게 녹여내는지, 그분께 받은 정성 어린 감사 편지로 체감했다. 일하며 처음 받아본 긴 편지는 업무를 돕는 역할을 넘어, 누군가에게 실질적 힘이 되어 주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었다. 최근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픽셀 라이프’다. 김난도 교수팀의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6〉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거대한 메가 트렌드에 몸을 싣기보다 개개인이 독립된 픽셀처럼 파편화돼 자신만의 마이크로 트렌드를 짧은 주기로 소비하고 빠르게 전환한다. 이러한 흐름은 일터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특히 재택근무는 조직이라는 거대한 화면에서 하나의 ‘픽셀’로 분리되어 나온 상태에 가깝다.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울타리 안의 구성원이 아니라, 각자의 독립된 공간에서 자신을 스스로 경영해야 하는 개별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업무 능률을 높여줄 도구를 찾거나 온라인에서 동료를 찾는 행위는, 이 파편화한 일상에서 나만의 단단한 업무 환경을 구축하려는 노력이다. 개개인은 독립 픽셀 같이 파편화 재택근무는 이 같은 현상의 정점 수직적 위계 아닌 짝꿍의 중요성 훈계보다 넘어져 본 경험 나누면 치열한 삶에서도 연대·성장 가능 그런 짝꿍 같은 '버디'가 내 목표 문제는 이처럼 ‘분리된 픽셀’로 지내는 일상이 생각보다 날카로운 부작용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나 역시 재택 2년 반 만에 번아웃을 겪으며 휴직을 선택해야 했다. 마냥 편해 보이기만 하는 재택근무였지만, 홀로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과 정서적 소통의 부재는 나를 서서히 갉아먹었다. 휴직 기간 내내 마음 한구석에는 ‘이대로 뒤처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자리 잡았다. 그때 읽은 구본형 저자의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는 서늘한 각성을 주었다. 진정한 위기는 직책의 상실이 아니라, 스스로의 방향을 잃은 채 고립되는 데 있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내게 간절했던 것은 지시를 내리는 권위적인 멘토가 아니라, 파편화한 일상 속에서 삶의 속도를 조절해 줄 ‘버디’였다. 복직과 함께 누군가 나의 궤도를 수정해 주길 기다리기보다, 스스로가 버디를 찾아 나설 환경을 직접 구축하기로 결심했다. 회사라는 시스템이 챙겨주지 못하는 일상의 리듬을 스스로 관리하되, 그 과정을 혼자가 아닌 ‘느슨한 연대’ 속에서 해결하려고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시도가 비단 나만의 고군분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2026년 현재, 우리 사회는 이른바 ‘삶잘러(삶을 잘 살아내는 사람)’를 추구하는 활기로 가득하다. 모니터 앞에서 고립되는 대신 SMCC(서울 모닝 커피 클럽) 같은 커뮤니티를 통해 느슨하게 연결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러닝을 하며, 때로는 아침 커피 한 잔과 함께 DJ 음악에 맞춰 파티를 즐긴다. 누군가는 이를 유난스러운 유행이라 볼지 모르나, 사실 우리는 픽셀처럼 쪼개진 일상 속에서 나처럼 애쓰는 타인의 존재를 확인하며 위로받고 싶을 뿐이다. 정답을 훈계하는 스승보다, 먼저 넘어져 본 경험을 담담하게 나눠줄 버디를 서로에게서 찾는 셈이다. 픽셀과 픽셀이 만나 더 선명한 화질을 이루듯,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개인들이 그렇게 연대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 6년 차가 된 지금, 과거와는 전혀 다른 리듬을 갖게 되었다. 점심시간이면 SNS를 통해 재택러들을 위한 ‘일잘러 꿀팁’을 공유하고, 영어 챌린지에 참여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온보딩한다. 이는 단순히 N잡러가 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고립된 환경에서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한 치열한 과정이다. 내가 유버디라는 필명으로 〈부산일보〉 독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30 세대가 픽셀처럼 분절된 삶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감정의 파고를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기성세대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일터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진심을 전하고, 동료 세대에게는 다정한 지지자가 되고자 한다. 자기만의 고독한 방에서 새 도전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글이 하루를 버티게 할 작은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버디의 진정한 역할은 성공 신화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 본 길의 걸림돌을 살짝 치워주는 다정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아 삶의 리듬을 되찾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다면, 오늘 버디로서의 할 일 하나는 끝냈다고 믿는다. 이제 당신의 다정한 버디로서, 차가운 모니터 속 뜨거운 세계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김필남의 영화세상] 왜 우리는 파멸하는 사랑에 끌리는가
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사랑에 이토록 쉽게 매혹될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언제나 비극을 갈망한다. 금지된 관계에 숨을 죽이고, 파멸로 치닫는 선택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정작 내 사랑은 평온하길 바라면서도, 이야기 속 사랑만큼은 처절하게 앓기를 기대한다. 도대체 사랑 때문에 인간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잔인하고도 아름답게 표현하는 작품이 바로 ‘폭풍의 언덕’이다. 에밀리 브론테의 고전 소설 ‘폭풍의 언덕’은 이미 수차례 영화화되었다. 그럼에도 이 오래된 서사가 여전히 소비되는 이유는 사랑을 집착과 소유의 감정으로 그려내기 때문일 것이다. 에머럴드 피넬 감독도 ‘폭풍의 언덕’을 영화화하면서 낭만적인 사랑 따위 없다는 듯 집요한 사랑으로 우리를 옭아맨다. 그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불편하지만 동시에 강렬하다. 어쩌면 이 양가적 감정이야말로 작품의 힘일지 모르겠다. 에머럴드 피넬 감독 '폭풍의 언덕' 낭만적인 사랑 따위는 없다는 듯 파국의 그림자 들이미는 오프닝 원작 답습 피하려는 감독의 선택 영화는 요크셔의 황량한 저택 ‘워더링 하이츠’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느 날 저택의 주인 언쇼가 술에 취해 고아 소년을 집으로 데려온다. 하녀들은 가난한 가문에 입이 하나 더 늘었다며 달갑지 않아 하지만, 언쇼의 딸 ‘캐서린’만이 친구가 생겼다며 기뻐한다. 이름 없는 소년에게 죽은 오빠의 이름까지 지어주며 환하게 웃는 캐서린. 난생처음 ‘히스클리프’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 아름다운 소녀를 눈에 담는 건 당연하다. 두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강하게 끌린다. 이때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만 캐서린은 끌리는 마음을 외면한다. 몰락했음에도 귀족이라는 신분 의식과 화려한 상류 사회를 동경하는 욕망이 그녀를 억누른다. 그러는 사이 캐서린은 부유한 자산가 에드가의 구애에 흔들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히스클리프는 깊은 오해를 품은 채 저택을 떠나고 만다. 이 비극적인 엇갈림은 언뜻 흔한 멜로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이를 전형적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감독이 원작을 답습하지는 않겠다고 말한 것처럼 감정을 설명하기보다는 체험하게 만든다. 달콤한 서사를 쌓아 올리는 대신 사랑이 닿게 될 파국의 그림자를 먼저 들이미는 식이다. 이러한 태도는 오프닝에서부터 분명하게 표현된다. 영화는 암전으로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낮은 신음이 새어 나온다. 잠시 사랑의 유희라 오해했던 그 소리는, 곧 교수대에 매달려 서서히 죽어가는 남자의 고통 섞인 비명임이 드러난다. 복면을 쓴 남자가 마지막 숨을 붙잡고 몸부림치는 순간, 이를 지켜보던 군중은 기다렸다는 듯 환호하며 즐거워한다. 죽어가는 자의 신음과 구경꾼들의 환희가 뒤섞이는 이 기이한 시작은 영화에서 중요하다. 사랑이 순수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 폭력과 욕망, 집착과 파멸이 뒤섞여 있음을 감각적으로 예고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처럼 사랑과 파국을 한 기운 속에 묶어둔다. 또한 그 분위기는 화면을 끊임없이 메우는 안개와 비, 바람으로 구체화된다. 짙은 안개는 저택과 황야를 뒤덮으며 시야를 가릴 뿐 아니라, 인물들이 선 감정의 경계마저 흐릿하게 만든다.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모호한 풍경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이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장대비가 쏟아진다. 결국 영화가 도달하는 것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다. 서로를 파괴함으로써 증명되는 사랑임을 황량한 풍경과 걷히지 않는 안개, 그칠 줄 모르는 비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사랑과 죽음이 교차하는 자기 파괴의 서사는 역설적이게도 지독히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남는다.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끝내 눈을 떼지 못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비극에 매혹당하는 이유다.
[다른 시선으로] 말이 흘리는 피
세상 모든 일이 말로만 그치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말실수였고 말장난이었고, 말을 철회하면 말에 붙은 모든 것들이 말과 더불어 거두어질 것이라 믿는 사람은, 그 말에 압도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이 말 이외의 다른 수단을 마침내 강구해 항의할 때 비로소 ‘말로 하세요’라는 궁색한 말을 꺼낸다. 상대가 그 정도까지 격발한 이유는 내 말이 말로 끝나지 않는 지경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말은 그 말을 뱉는 순간 말 이외의 무언가를 만든다. 말이 말 이외의 무언가와 매개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은 말을 중하게 여긴다. 누군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그 말에 매개된 사건의 진실을 믿는다. 누군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공산군이 책동했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그 말을 믿는다. 누군가 그 때의 성폭력이 실은 없었던 일이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그 말을 믿는다. 말이 말로만 끝난다면 말로 무슨 재미를 추구하든 그것은 별 상관이 없다. 너랑 나랑 죽창 한 방씩 맞자는 말은 재미있다. 인파로 붐비는 백화점에 폭탄이 설치돼있다는 말은 재미있다.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말하는 일은 재미있고, 없었던 일을 있다고 말하는 일도 재미있다. 그 모든 말들을 스스로도 속을 만큼 진정성을 담아 말하는 것 또한 재미있다. 그 모든 말이 재미있는 이유는, 누가 뱉은 말이 설마 그냥 지껄인 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사람들의 양식을 시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 말이 말뿐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누군가가 공들여 쌓아 올린 사회적 신뢰다. 저 사람이 자기 어머니가 죽었다는 말을 농담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는, 그 말을 거짓으로 했을 수도 있을 그 사람이 아니라 일단 사람의 말은 믿는 편이 맞지 않겠느냐고 여길 듣는 사람의 존엄을 매개로 구성된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일은, 그 말이 애초에 옳거나 사실이라서가 아니라 아무쪼록 그 말이 옳고 사실일 것임을 믿으려는 그 마음 때문에 귀하다. 누군가 아무 말이나 지껄일 때, 그 사람은 자기가 차마 다 알지도 못하고 책임질 수도 없을 어떤 마음의 영역을 시험하는 중이다. 인간이 인간의 말을 일단 믿고 보는 일은, 사람의 말을 절대 신용하지 않는 습관보다 훨씬 구성되기 어려운 약속이다. 함부로 뱉은 말은 그런 사회적 약속이 마치 처음부터 당연하고 절대로 훼철될 일이 없을 것처럼 군다. 그 말들은 내가 아무리 진실을 외쳐도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 나에게는 절대로 오지는 않을 것임을 전제한다. 그런 상황은 세상에 흔하고, 그렇기에 사람이 뱉는 모든 말에는 피가 묻어있다.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모든 규정은 부정이다 - 장미셸 바스키아와 무하마드 알리
헤겔은 스피노자의 말을 빌려, “모든 규정(規定)은 부정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무엇이라고 ‘규정’(Bestimmung)하는 것은 그것이 아닌 모든 다른 것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흑인’을 ‘어떠하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흑인을 그 규정 속에 가두는 것이 된다. 장미셸 바스키아와 무하마드 알리는 이러한 규정적 정체성을 거부한다. 1964년 2월 25일 세계 챔피언이 된 알리는 “나는 가장 위대하다”라고 외친다. 이 선언은 흑인을 ‘규정’해 온 세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후 그의 몸은 발언, 저항, 시대를 흔드는 이미지가 되었다. 베트남전 징병 거부는 그를 챔피언 자리에서 끌어내렸지만, 인간으로서의 위상은 오히려 높였다. 그는 링 위에서조차 정치적 존재로 남았다. 바스키아의 회화에는 언제나 균열이 있다. 거리에서 시작된 그의 그림은 미술관으로 들어왔지만, 미술관의 질서를 따르지 않았다. 그에게 캔버스는 투쟁의 링이었다. 그의 예술은 정체성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 그는 자신을 ‘흑인 예술가’로 규정하는 언어를 경계했고, 그 언어가 자신을 이미 권력의 분류 체계 안으로 포획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의 화면이 끝없이 파열되고 중첩되는 이유는,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는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완결은 곧 규정이며, 규정은 곧 부정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에는 반복적으로 왕관, 해골, 해부학적 도식, 낙서 같은 텍스트가 등장한다. 이 기호는 특정 대상을 지시하지 않는다. 왕관은 권위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불안정하고, 해골은 죽음을 가리키면서도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한다. 텍스트는 의미 전달이 아니라, 그 실패를 드러낸다. 단어는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처럼 쓰였다가 지워지며, 끝내 확정되지 않는다. 이는 언어가 세계를 설명하기보다 세계를 분할하고 지배해 온 것에 대한 비판이다. 그의 회화는 헤겔적 의미에서의 ‘부정의 운동’에 가깝다. 그는 어떤 규정을 제시하지 않고,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를 무너뜨린다. 나치가 유대인의 몸을 측정하고 분류했던 것처럼, 흑인의 몸 역시 오랫동안 그러한 시선 아래 놓여 있었다. 바스키아는 ‘미술사에 편입된 흑인 예술가’가 아니라, 미술사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드러내는 존재였다. 바스키아와 알리는 자신을 규정하려는 세계에 맞서 “아니다”라고 말한다. 랑시에르의 말처럼 정체성은 스스로 선언될 때 정치적 가능성이 되지만, 타자에 의해 요구될 때는 쉽게 배제와 강제로 전환된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바스키아와 알리는 그 대신 질문을 뒤집는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질문이 뒤집히는 순간, 예술과 정치, 몸과 언어는 하나의 투쟁 장으로 겹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기고] 협동조합 임원 연임 제한 규정 폐지해야
대한민국 경제의 허리인 중소기업들이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 고금리, 인력난이라는 3중고를 넘어 디지털 전환(DX)과 AI 전환(AX)이라는 거대한 파도까지 마주한 상황이다. 이러한 격변의 시기에 중소기업들의 구심점인 중소기업협동조합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하지만 현행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은 협동조합의 손발을 묶는 독소조항을 품고 있다. 바로 임원의 연임을 제한하는 규정이다. 이 규정은 협동조합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천명한 협동조합의 7대 원칙 중 가장 핵심이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이다. 임원의 선출과 신임은 조합원의 고유한 권한이며, 이를 통해 조직의 자율성과 민주성이 구현된다. 그런데 연임 제한 규정은 이러한 자율적 의사 결정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한다. 리더의 성과가 아무리 뛰어나도, 조합원들의 신뢰가 아무리 두터워도, 법이 정한 횟수를 채우면 물러나야 한다. 이는 조합원의 판단보다 법률의 획일적 기준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협동조합의 자치 원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만약 같은 논리를 일반 기업에 적용한다면, 주주총회에서 CEO를 선임하는 기업에 ‘최고경영자는 두 번까지만 연임 가능’이라고 법으로 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민간 자율 조직의 인사권에 대한 이러한 국가 개입은 시장경제 원리와도 맞지 않다. 중소기업협동조합 운영은 단순한 기업 경영의 차원을 넘어선다. 수십, 수백 개 조합원사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공동사업을 기획·실행하며, 정부 정책과의 연계를 도모하고, 업계 전체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 이는 고도의 전문성과 깊은 경험을 요구하는 영역이다. 특히 협동조합의 주요 사업들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협동화단지 조성, 공동물류센터 건립, 기술개발 협력, 브랜드 공동개발 등은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과제들이다. 이러한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리더십의 연속성은 필수적이다. 임원의 임기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해당 분야에서 충분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리더십이 안정적으로 조직을 이끌어갈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리더가 바뀔 때마다 조직의 비전과 전략이 변경되고, 추진 중이던 사업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인 중소기업의 몫이 된다. 연임 제한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장기 집권으로 인한 권력 집중과 부패의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러나 협동조합에는 이미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충분한 견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첫째, 정기총회 제도다. 협동조합 이사장은 매년 총회에서 사업보고를 하고 조합원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성과가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으면 조합원들의 질타를 받게 된다. 둘째, 감사 제도다.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은 의무적으로 감사를 두도록 하고 있으며, 감사는 조합의 업무와 회계를 감독하고 총회에 보고할 책임이 있다. 셋째, 이사회의 견제다. 이사장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주요 사항을 결정해야 하며, 독단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구조다. 넷째, 조합원의 직접 선거다. 이사장은 총회에서 조합원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다. 만약 리더의 성과가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다면, 조합원들은 다음 선거에서 그를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이것이 가장 강력하고 민주적인 견제장치다. 협동조합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조합원의 자율성을 보장하며, 조직 운영의 전문성과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임원 연임 제한 규정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협동조합의 힘은 조합원의 자발적 참여와 민주적 의사결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법률의 획일적 제한이 아니라, 조합원의 자율적 선택과 책임 있는 판단이 협동조합을 강하게 만든다. 이제 법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협동조합 본연의 가치를 존중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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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상승 기대감 꺾였다…중장년·중상위 소득층 중심
다른 병 없는데 사레가 자주 들린다면?
‘왕과 사는 남자’ 600만 넘었다…‘왕의 남자’보다 빨라
‘왕과 사는 남자’ 관객 526만 명 돌파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 2월 24일 화요일(음력 1월 8일)
‘휴민트’ 박정민 “내 인생에 멜로는 없을 것 같았는데…”
2026부산비엔날레 8월 29일 개막
[부산 전시] 이번 주에 뭐 볼까?[2026년 2월 15일~ ]
봄바람 타고 ‘로맨스 드라마’ 온다
양달석, 송혜수 등 900여 점으로 되짚는 부산미술의 역사와 내일
부산 본사 ‘에스피메드’ 베스트 CRO 어워즈 선정
민희진 '뉴진스 5인 위해 풋옵션 256억 포기…하이브도 분쟁 멈추자' 제안
남포지하상가에서 만나는 ‘함께’의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