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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무기한 휴간

샘터 무기한 휴간

잡지는 특정한 주제를 둘러싼 사상과 경험, 기록과 창작을 한 호 한 호 엮어내며 시대의 호흡을 저장한다. 이에 잡지 발행인은 경영자이면서 시대를 기록하고 사유의 방향을 선택하며 그 선택의 무게를 감당하는 존재였다. 특히 어떤 기사를 싣고 어떤 필자를 전면에 세울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곧 독자의 사유 지형을 형성하는 행위이기도 했다.월간 〈샘터〉는 1970년 4월 김재순 전 국회의장(1923∼2016)이 “거짓 없이 인생을 걸어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정다운 마음의 벗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창간했다. 작지만 단단한 잡지였다. 가난했던 시절, 글로써 국민에게 희망을 건넸다. 병원과 관공서, 군대의 한켠에서,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의 무료한 시간을 견디게 해준 매체가 바로 〈샘터〉였다. 어렵고 힘들었던 1970년대, 마른 땅의 샘물 같은 존재였다고나 할까.〈샘터〉의 지면에는 피천득, 최인호,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등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과 명사의 글이 실렸다. 단정한 문장과 고요한 사유가 이 잡지를 거쳐 독자에게 닿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은 이곳에서 기자로 일하며 글의 근육을 다졌고, 장욱진과 천경자 같은 거장들은 기꺼이 표지와 삽화를 그려주었다. 한때 월 50만 부까지 팔릴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종이를 통해 오간 위로와 공감의 밀도였다.그 〈샘터〉가 2026년 1월호(통간 671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 마지막 호는 이달 24일 발간된다. 안타까운 휴간은 2019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당시에는 독자의 자발적 기부와 기업 후원 등으로 간신히 고비를 넘겼다. 지금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읽는 매체가 종이에서 디지털로 급격히 옮겨가면서 독자는 급감하고, 종잇값과 인쇄비 등 제작비는 치솟아 잡지 발행이 쉽지 않은 환경이 됐다. 그럼에도 신문, 잡지, 단행본 등 물성을 지닌 매체들이 하나둘 설 자리를 잃어가는 풍경은 너무나 안타깝다. 그래서 〈샘터〉의 휴간 소식은 더욱 마음을 허전하게 한다.우리가 잃는 것은 한 권의 잡지가 아니다. 느리게 읽는 시간, 타인의 삶에 귀 기울이는 태도, 문장이 남기는 잔향 또한 함께 사라질 위험에 놓여 있다. 〈샘터〉의 휴간이 부디 끝맺음이 아니라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이길 바란다. 50년, 100년…. 오래된 것은 결국 보석이 된다고 했다. 종이가 밀려나는 시대에도 잡지는 여전히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이 다시 우리 앞에 놓이는 날을 기다린다.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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