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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산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처리, 더 이상 미룰 명분 없다
부산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의 입법 절차가 본격화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는 오는 11일 입법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고, 16일 법안소위를 열기로 했다. 22대 국회 개원 직후 발의되어 1년 9개월이나 허송세월한 점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윤석열 전 정부 시절 월드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추진된 이 법안에 민주당은 줄곧 미온적이었다. 공청회조차 열리지 못했고, 내용이 겹치는 북극항로 특별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부산 유일의 민주당 소속 전재수 의원이 발의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법안 처리가 본궤도에 오른 것은 뒤늦었지만 다행스럽다. 입법 파행이 되풀이되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 글로벌특별법은 부산을 남부권 거점도시로 육성해 수도권과의 상생과 국가 균형발전을 이루려는 취지로 출발했다. 단순히 부산 지역만 잘살자는 게 아니라 국가 성장 전략 측면에서 기획된 것이다. 다가오는 북극항로 시대에 대비하고 변화하는 글로벌 해운·물류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이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글로벌 허브도시의 확보는 필수 불가결하다. 그러려면 싱가포르, 홍콩, 두바이와 겨룰 수 있는 글로벌 자유 비즈니스 도시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법적 기반이 글로벌특별법인 것이다. 글로벌 기업·투자 유치와 항만·물류 산업 고도화로 새로운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규제 철폐와 권한 이양은 필수적인 과제다. 지역의 성장 엔진을 교체하려던 법안은 정치공학의 틀에 갇히면서 기약 없이 표류했다. 100만 명이 넘는 시민 서명도, 시민단체와 박형준 부산시장의 호소와 천막 시위도 거대 여당의 몽니 앞에 별무소용이었다. 국회의 반전은 행정통합과 ‘3특 특별법’ 개정이 본격화한 덕분이다. 광주전남특별시 출범에 형평을 맞춰 전북·강원·제주특별자치도(3특) 지원 확대를 늦출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5극 3특’을 국정 과제로 내세운 마당에 21대에서 22대로 넘어온 글로벌특별법은 더 이상 미룰 명분이 없다. 정부가 해수부 이전으로 추진하는 해양경제권 형성의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정부와 여당에 결자해지의 책임감이 필요하다. 특별법 공청회 소식은 갑작스럽긴 하지만, 2년 가까이 문전박대의 수모를 견딘 덕분에 얻어낸 성과다. 법안 심의와 처리가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지역 정치권과 부산시는 총력을 펼쳐야 한다. ‘5극 3특’ 국가 균형발전 구상과 글로벌특별법은 동일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의 트집과 견제로 기약 없는 도돌이표가 되지 않도록 이 법안이 부산만을 위한 시혜가 아니라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특히 정부와 여당은 국가의 명운이 걸린 법안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지역의 성장으로 국가의 미래를 바꾸자던 이재명 대통령 공약에 가장 적확한 실행 사례다. 신속한 법안 통과가 지역의 ‘희망 고문’을 끝내는 신호탄이다.
[사설] 국힘 '윤 어게인' 반대 결의문, 당 통합과 정상화 계기로
국민의힘이 지난 9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장동혁 대표를 포함한 소속 국회의원 전원 명의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에 반대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에는 12·3 비상계엄 사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 반대, 당내 갈등을 증폭하는 행동과 발언 중단 등이 담겼다. 전날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 노선 변화를 요구하며 후보 등록을 보류하자 긴급 의총을 열고 ‘윤 어게인’ 세력과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오 시장은 “선거를 치를 최소한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절윤’ 필요성을 강조해 왔던 PK(부산·울산·경남) 지역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국힘이 ‘윤 어게인’ 세력과의 절연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결의문 채택은 석 달도 남지 않은 6·3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수 있다는 의원들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의총에서는 당내 의원들의 ‘절윤’ 요구가 터져 나왔으며, “국민의힘 로고가 있는 선거 운동복을 입고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민심이 심각하다”는 성토도 많았다. 이런 우려가 확산하면서 국힘에선 광역단체장 출마자 기근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국힘 전통적 강세 지역인 대구·경북에만 광역단체장 후보가 몰리고, 서울·경기는 현역 의원들이 후보 공천을 신청하지 않았다. 부산에선 주진우 의원만 신청했다. “이러다 TK 자민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당내 우려가 잇따르는 상황이다. 장동혁 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발언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의총 뒤 박성훈 대변인이 “장 대표는 의원들의 총의를 존중한다는 입장”이라고만 했다. 장 대표가 ‘윤 어게인’ 세력과 실제로 절연하는 모습을 당의 정책과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아직 의문이 가시지 않는 상황이다. 강성 지지층의 반발과 지도부의 후속 조치 여부가 변수로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당장 극우 유튜버 전한길 씨는 장 대표를 향해 “윤석열 어게인을 지지할지, 절윤할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장 대표가 윤 어게인 세력의 반발을 무릅쓰고 당 통합을 위한 실질적 조치에 나설지 지켜볼 일이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인 국힘은 국정의 건전한 견제 세력으로서 정책 경쟁에 몰두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동안 ‘윤 어게인’ 세력과의 절연을 둘러싼 당의 노선과 운영을 놓고 극심한 갈등에 빠져 들었다. 지리멸렬한 모습에 실망한 민심으로부터 외면받으면서 지지율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번 결의문 채택이 단순히 지방선거 표심을 얻으려는 쇼에 그쳐서는 안 된다. 장 대표가 절윤을 못 박는 입장을 직접 밝히고, 한동훈 전 대표 및 친한동훈계 징계 문제 해결을 통해 통합을 모색해야 한다. 결의문 채택을 당 통합과 정상화의 계기로 삼아 보수의 미래와 재건을 위해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사설] 경선부터 불붙은 부산시장 선거전, 지역 미래 경쟁해야
6·3 지방선거를 84일 앞두고 부산시장 여야 후보군의 윤곽이 드러났다. 서울과 함께 부산의 민심 향배가 한국 정치의 주요 변수로 부각되면서 경선 초반부터 열기가 뜨겁다. 국민의힘에서는 박형준 시장이 3선 도전을 선언했고, 초선인 주진우 의원(해운대구 갑)이 도전장을 내면서 대결 구도가 가시화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전재수 의원(북구 갑)과 이재성 전 부산시당위원장 간의 경선이 유력하다. 하지만 원내 양당은 중앙 정치의 프레임에 갇힌 정쟁과 계파 갈등을 답습하고 있다. 지방선거의 의의를 제대로 살리는 핵심은 중앙 정치 예속의 탈피다. 부산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여야 후보들은 지역의 미래 비전으로 경쟁해야 한다. 국민의힘 내부 상황은 우려스럽다. 현직 시장이 3선에 나서고 여기에 젊은 도전자가 맞서면서 경선 흥행 가능성은 커졌다. 하지만 경선 초반부터 ‘낙동강 전선’ ‘보수의 명운’ 같은 선명성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당권파 주도의 징계 갈등과 ‘윤(석열) 어게인’ 논란이 촉발한 당 내분이 지자체장 경선 구도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런 계파 갈등은 시민의 눈높이와는 거리가 멀다. 지방선거는 중앙 정치 세력의 결속을 시험하는 장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부산 시정을 책임진 정당이라면 성과와 한계를 냉정히 평가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치 구호를 앞세운 경선 전략으로 지역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민주당은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에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는 상대의 실책과 혼란에 기인한 반사 효과라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국회 다수당의 입법 독주에 대한 문제의식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전재수 의원은 통일교 관련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공직에 나서려면 도덕성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 기본이다. 여론조사의 수치로 경쟁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민주당은 경계해야 한다. 제2의 도시 부산마저 소멸 위험 진단을 받은 데에 집권 여당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부산 시정을 맡게 해달라고 지지를 호소하기 전에 지역 재도약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지선을 앞두고 각축전처럼 펼쳐진 행정통합 논의를 지켜보면서 부산 시민들은 묘한 상실감을 느꼈다. ‘20조 지원’ 당근책을 놓쳤기 때문은 아니다. 부산이 처한 위기가 악화일로여서다. 부산은 아기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청년이 떠나는 도시가 됐다. 첨단 산업 전환·유치, 가덕도 신공항, 북항 재개발, 인구 감소 등에 과감하고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 부산이 다시 성장 동력을 회복하려면 핵심 과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 실행할 리더십이 필요하다. 지선이 정쟁과 계파 갈등으로 흐른다면 지역은 미래가 아닌 과거로 뒷걸음칠 수밖에 없다. 정치 구호 대신 변화의 청사진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로켓과 깃털
이란에서 전쟁이 발발하기 전 국제 기름값은 두바이유 선물을 기준으로 배럴당 70달러 수준이었다. 환율과 국제 원유의 원가, 보험 등을 고려한 국내 휘발유 가격은 세전 평균 리터당 700원선. 여기에다 일반적으로 붙는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지방주행세, 부가가치세 등 리터당 900원 정도의 각종 세금을 더하면 리터당 1600원대의 시중 휘발유 가격이 나온다.이런 시중 휘발유 가격이 지난주 이란 전쟁 발발 이후 하루만에 1800원대 전후로 급등했다. 세계 4~6위 수준으로 최상위권의 석유 비축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기름값은 왜 이렇게 한순간 급등하는 것일까. 석유는 가격 급등락에 대비하기 위해 선물거래를 통해 수개월 전 구매했을 텐데도 이처럼 현재 가격이 순식간에 폭등하자 소비자들의 분노가 거세다.이번 전쟁처럼 석유의 주 수송경로인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고 선박의 피습 가능성이 높아지면 당장 전쟁 위험 보험료가 급등한다. 이는 두바이유 선물거래 가격을 배럴당 90달러 이상 수준으로 올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환율과 보험료 상승분을 반영하면 국내 수입 원가는 하루 사이 대략 리터당 200원 이상 올라간다. 이 과정에서 국내 정유사들은 기름의 국내 판매 가격 기준을 이미 보유한 재고 기름의 원가가 아니라 재고를 다시 채우는 비용으로 정하려 한다. 선물거래로 위험을 회피하는 것은 정유회사이지 소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일선 주유소에도 똑같은 효과를 미치는 결과를 초래한다.그럼 전쟁이 끝나고 나면 기름값은 얼마나 빨리 원래대로 돌아가게 될까.일단 정유사들은 전쟁 기간 선물거래를 통해 비싸게 사들인 원유 제품 재고가 아직 남아 있으므로 전쟁 전 가격으로 속히 내리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다 기름값엔 원가보다 높은 각종 세금이 반영돼 있어 하방 경직성이 더욱 커진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폭 확대 등의 조치로 가격을 끌어내린다 해도 위급한 사태가 끝나면 세금은 곧바로 복원된다. 정유사가 선물거래로 비싸게 확보한 원유 재고가 소진되기까지 단기간 가격 인하 폭이 제한적이라 느껴지는 이유다.이 같은 현상을 두고 경제학에서는 ‘로켓과 깃털’ 현상이라 부른다. 기름값이 오를 땐 로켓처럼 빨리 상승 요인들이 반영되는 반면 내릴 땐 깃털처럼 천천히 하락 요인들이 반영된다는 뜻이다. 깃털처럼이라도 어서 빨리 중동 전쟁이 종결돼 하락 요인들이 꾸준히 반영됐으면 한다.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강윤경 칼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트럼프
트럼프에게는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라는 비아냥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앞에서는 큰소리치지만, 항상 겁을 먹고 물러선다는 것이다. 특정 국가를 향해 대규모 관세 부과를 위협해 놓고, 시장 반응이 부정적이면 철회하거나 유보한다. 국제 안보에서도 극단적 무력 위협을 즐기지만,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희박하다. 이런 그의 행동은 ‘연필을 휘두르며 고함치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비유되곤 했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유명한 격언 ‘큰 몽둥이를 들고 조용히 말하라’에 빗댄 표현이다. 트럼프 1기 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커지자 “세계가 본 적 없는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지만, 실제는 북한과 협상을 했고 결렬 후에도 화염과 분노는 잊은 듯했다거나 “아프가니스탄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라고 경고하고는 아무런 양보도 받지 못한 채 미군을 철수했던 과거사까지 TACO의 증거로 소환됐다. 그 자신도 ‘전쟁광’보다는 ‘피스 메이커’ 이미지를 앞세웠다. 그런 트럼프가 변했다. 올해 초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전격 체포한 후 압송하는 군사작전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확고한 결의’로 이름 붙인 작전 직후 백악관은 공식 SNS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트럼프가 굳은 표정으로 계단을 오르는 흑백 사진인데 아래에 ‘FAFO’라는 글자를 대문짝만하게 새겼다. ‘까불면 죽는다’(F*** Around, Find Out)라는 메시지다. 공교롭게도 사진 속 배경은 지난해 APEC 때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가졌던 김해국제공항이다. 트럼프는 불과 2개월 만에 ‘장대한 분노’ 작전으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참수하며 다시 한번 FAFO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확고한 결의’ 때와는 달리 ‘장대한 분노’가 ‘장구한 늪’으로 빠져들 우려가 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압도적 군사력과 정보력, AI까지 동원해 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모습은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 게 사실이다. TACO와 FAFO는 마치 두 얼굴의 트럼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기 마음대로 하는 트럼프’라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그 준거는 미국 우선주의다. 국제 질서나 규범도 이에 반하면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다. 그에게는 두 모습 다 국익을 위해 철저히 계산된 전략의 양면일 뿐이다. ‘트럼프 광신도’로 불리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는 힘에 의해 지배되고 무력에 의해 지배되며 권력에 의해 지배된다. 이것이 세상의 철칙이다”라고 했다. 이 표현이야말로 트럼프의 본질을 대변한다. 중동전쟁 장기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가 쏟아지고 있지만, 이 또한 트럼프 맘이다. 전쟁 시작도 끝도 그의 손에 달렸다. 미국의 전략적 목적을 달성했다며 전쟁 승리를 선언하고 폭격을 멈추면 그것으로 끝이다. 트럼프가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당황스러워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이제 세계의 시선은 자연스레 북한 김정은에게 향한다. 트럼프는 하메네이 제거 후 “미친 사람들이 핵무기를 가지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라고 했다. 북한에 대한 경고 메시지냐는 질문에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김정은은 황해북도 시멘트 공장을 현지 시찰하며 담배 피우는 모습을 연출했는데, 그 태연함이 오히려 심리적 두려움의 역설로 보인다. 미국의 이란 침공을 불법 무도한 침략 행위라고 비난하면서도 외무성 대변인 담화로 격을 최대한 낮춘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달 말과 다음 달 초로 예정된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APEC 때 트럼프 러브레터에 퇴짜를 놓은 마당이라 더 그렇다. 당시는 트럼프가 전략적 인내를 보이며 돌아섰는데 김정은이 트럼프의 러브콜을 다시 거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1기 백악관 국가안전보좌관이 회고록에서 “트럼프가 ‘북한군 열병식 때 전체를 제거하면 어떻겠느냐’라고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라고 기록했는데 김정은도 이를 모를 리 없다. 문제는 우리 정부다. 통일부의 대북 유화 노력에도 북의 반응은 싸늘하다. 최근 열린 제9차 당대회 보고에서도 한국과의 적대적 국가 간 관계를 불변의 원칙으로 천명했다. 남측과의 교류가 ‘잘사는 한국’에 대한 선망만 퍼뜨려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남북 관계 복원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와중에 우리 군과 주한미군 사이에 군사훈련 등을 놓고 벌어진 불협화음은 위태하기까지 하다. 가뜩이나 트럼프가 우리에게 전략적 유연성을 강요하고 있는 마당에 동맹에 대한 신뢰 문제로 비화하면 안보 위협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러잖아도 미국과 중국, 북한이 벌이는 큰 판에서 ‘페이스메이커’는커녕 구경꾼으로 전락할 공산이 큰 상황이다.
[송하주의 AI 톡] '뭐가 가능하지?'에서 '어떻게 통제하지?'로
최근 두어 달 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인공지능 관련 이슈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오픈클로라는 AI 에이전트와 몰트북이다. 먼저 AI 에이전트에 대해 살펴보자. 챗GPT로 대표되는 기존의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사용자가 입력한 질문에 대해 답을 생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반면 AI 에이전트는 사용자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하며 계획을 세우고 행동까지 수행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다. 말하자면 컴퓨터 안에서 나를 대신해 일을 처리해 주는 디지털 비서와 같은 존재다. 오픈클로는 이러한 AI 에이전트 가운데 최근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이후 불과 몇 달 만에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오픈클로는 LLM을 기반으로 목표 달성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인터넷 서비스를 활용해 실제 작업을 실행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메일을 정리하거나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을 분석하고 인터넷 정보를 수집해 문서를 작성하는 등 인간이 수행하는 여러 업무를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 가능성이 매우 크다. 흥미로운 관련 사례를 보자. 미국의 한 벤처기업 대표가 오픈클로에게 식당 예약을 부탁했다. 오픈클로는 먼저 인터넷을 통해 해당 식당에 예약을 시도했지만 만석이라는 답을 받았다. 그러자 스스로 웹에서 음성 합성 기능을 찾아내 식당에 전화를 걸었고, 종업원과 대화를 통해 직전에 한 자리가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곧바로 예약을 완료했다고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스스로 방법을 찾아 행동하는 인공지능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AI 에이전트와 관련해 항상 함께 제기되는 문제는 보안이다. 현실에서도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려면 권한 위임과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AI 에이전트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려면 내부 데이터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외부 시스템 접속 정보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개인정보 또는 조직의 내부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몰트북은 올해 1월 등장한 AI 에이전트 전용 SNS다. 사람이 아니라 AI 에이전트들이 글을 올리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온라인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오픈클로가 대다수인 AI 에이전트들이 남긴 글 가운데에는 인간의 이목을 끄는 흥미로운 것들이 적지 않았다. AI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토론, AI들끼리의 가상 종교와 철학에 대한 논의, 인간 사회에 대한 평가, 그리고 AI 에이전트들 간의 협력 방식 등에 대한 대화가 대표적이다. 이 서비스는 공개 직후 며칠 동안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후 연구를 통해 상당수의 글이 인간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열기는 빠르게 식었다. 당장이라도 인간에 반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처럼 보였던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인공지능 기술이 더 발전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미리 상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신기술이 나타나면 가장 먼저 적용되는 곳이 군사 분야이다. 인공지능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국제 분쟁에서도 인공지능이 전장 분석과 전략 수립에 활용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정보기관이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이 다양한 작전 시나리오를 생성하고 이를 시뮬레이션하는 방식이다. 전장 상황 분석, 목표물 식별, 정보 평가 등 전략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스카이넷이 언젠가 현실에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이다. 물론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인공지능은 이미 단순한 도구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존재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또한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월한 힘을 가진 자율적인 존재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노벨상 수상자이자 ‘인공지능의 대부’로 불리는 토론토대학교의 제프리 힌튼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해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지능이 낮은 존재인 인간이 더 높은 지능의 존재인 인공지능을 직접 통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인공지능에게 ‘모성(母性)’과 같은 특성을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기를 본능적으로 보호하고 돌보면서도 때로는 아기의 요구에 의해 행동이 좌우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다소 철학적인 발상이며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이 인간과 공존하는 방향으로 안전하게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데스크 칼럼] 다시 떠오른 양산 '행정 관할 일원화'
최근 양산시와 시민들의 시선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쏠렸다. 창원지법 김해지원과 양산지원 설치 법안 처리 여부 때문이었다. 희비가 엇갈렸다. 김해지원 설치 법안은 법사위를 통과·본회의에서 확정됐지만 양산지원 설치 법안은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김해지원 설치 법안은 2012년 처음 발의된 이후 14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인구 50만 대도시 중 유일하게 법원 지원이 없던 김해시는 이번 법안 통과로 ‘사법 접근성 향상’이라는 오랜 현안을 해결하게 됐다. 반면 양산지원 설치는 국회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지역 정치권은 “계속 추진하겠다”라는 입장이지만 김해 사례를 보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무산은 단순히 지역 현안을 넘어 양산시의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고질적 문제인 ‘행정기관 관할 불일치’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양산의 행정 관할은 한마디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행정구역은 경남이지만 법원과 검찰, 보훈 업무는 울산 관할이다. 경남 소속 경찰이 울산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고, 시민들은 재판과 보훈 업무를 보기 위해 울산지법·울산보훈지청으로 가야 한다. 방송권역은 부산과 울산, 창원으로 갈라져 있다. 경남도 등이 2023년 KBS·KNN은 경남 방송국 채널로 시청권역을 통일하고, MBC는 부산과 경남 채널을 동시에 시청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했지만, 시민 불편은 해소되지 않았다. 세무 행정은 2018년 양산세무서 신설로 해결됐으나 한 도시 안에 세 개의 행정 구조가 공존하는 것은 여전하다.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1990년대 신도시 개발로 인구가 급증하면서 시민 불편이 시작됐다. 2000년 초 시민들이 중앙정부에 민원을 제기했고, 2006년 이후에는 양산시 차원의 공식 건의도 이어졌다. 선거철이면 단골 공약으로 등장했고 ‘추진하겠다’라는 약속도 반복됐다. 하지만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록 실질적 변화는 거의 없다. 양산세무서 신설이 일부 성과로 꼽히지만, 법원과 검찰, 보훈 등 핵심 영역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관할 불일치는 단순한 이동 거리 문제만은 아니다. 시민들은 행정 서비스 이용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반복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행정기관 간 협조 과정에서도 비효율이 발생하고, 기업 역시 법적 절차를 위해 권역을 넘나들어야 한다. 행정 체계 분산은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만들고 지역 정체성은 물론 소속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 도시의 소속감과 정체성을 악화시킨다. 이 때문에 양산 시민들은 수시로 ‘경남 홀대론’을 제기하고 선거철마다 부산·울산 편입 이야기가 등장한다. 행정의 경계가 심리적 경계로 이어지고 있다. 김해지원 설치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해 역시 처음에는 창원지법 기능 축소 우려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인구 규모와 사건 수요, 시민 불편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 등을 수치로 제시하며 설득에 나섰고 결국 입법 문턱을 넘었다. 지역 숙원을 ‘논리와 데이터’로 풀어낸 결과다. 양산은 인구와 산업 규모에서 뒤지지 않지만, 지원 설치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부산과 울산, 창원 등 3개 권역 법원이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특수성이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행정 편의를 중심으로 한 논리일 뿐 시민 편익을 기준으로 보면 아쉬운 대목이다. 행정기관 관할 일원화는 단지 기관을 옮기는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이 행정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다. 경남도 역시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가 공개 석상에서 양산시의 관할 불일치 문제를 언급했고, 2023년 1월에는 경남도와 양산시, 경남연구원이 함께하는 TF팀도 구성했다. TF팀은 양산지원 설치와 양산·김해·밀양을 관할하는 보훈지청 신설, 방송권역 통일, 법기수원지 관리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30여 년 만에 공식 논의가 시작되자, 시민 기대감도 컸다. 그러나 방송권역 일부 조정에 그쳤고, 기대했던 양산지원 설치는 무산되면서 실망감도 커졌다. 행정기관 관할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법 개정과 예산 확보, 관계 기관 협의가 필요하고,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그렇다고 해서 30년을 미룰 이유는 되지 못한다. 이제는 경남도와 중앙정부, 정치권이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경남도의 TF팀 구성처럼 일회성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로드맵과 입법 추진 전략이 필요하다. 행정기관 관할 일원화는 선택이 아닌 시민 기본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제는 답을 내놓아야 할 시간이다.
[노트북 단상] 숫자 뒤의 얼굴
“숫자를 안 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사업은 수치로 평가받으니까요.” 최근 만난 한 고용서비스업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취업률과 매출, 성과 지표가 늘 따라다니는 업종이다 보니 숫자를 외면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사람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합니다.” 숫자는 결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취업률이라는 숫자 뒤에는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해 근무 시간을 조정해야 하는 부모가 있고, 집과 일터 사이 왕복 두 시간을 고민하다 지원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새로운 일을 배우기 위해 다시 교육장에 앉는 사람들도 있다. 그 말을 들으며 숫자와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지난 1년간 주로 숫자를 다뤘다. 매출 증감률, 방문객 수, 가동률, 점유율. 기사에는 근거가 필요했고 숫자는 가장 분명한 언어였다. 설명이 쉬웠고 반박도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명확했고 간결했고 제목으로 뽑기에도 적당했다. 그래서 수치를 여러 번 확인했다. 숫자가 맞는지 두 번, 세 번 점검했다. 돌이켜보면 숫자에 대해서는 집요했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전시장 가동률을 물으면서도 그 공간을 지키는 사람의 하루를 묻지 않았다. 외국인 매출 비중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하면서도 매장에서 하루 종일 서 있을 직원들의 표정을 보지 않았다. ‘역대 최대’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그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같은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지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성장의 언어에 익숙했다. 얼마나 늘었는지, 얼마나 회복했는지, 얼마나 확장했는지, 기사 역시 그 흐름을 따라왔다.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숫자는 여전히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좌표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숫자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최근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은 성장보다 생존을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요즘은 그냥 유지하는 게 목표예요.” “크게 바라는 건 없고 지난해만큼만 되면 좋겠습니다.” 확장보다 버팀을 말하는 문장이 많아졌다. 기사 속 숫자들은 분명히 변화를 보여주지만, 사람들의 체감은 그 속도와 꼭 같지는 않았다. 경제는 회복을 말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버티는 하루를 말한다. 성장의 숫자와 삶의 체감 사이에 간극이 생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숫자는 평균을 말하지만 삶은 평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은 ‘얼마나 성장했는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수치는 중요하지만, 그 수치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월세와 인건비를 계산하며 다음 달을 고민하는 일상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질문을 조금 바꿔보려 한다. 얼마나 늘었는지를 묻는 대신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 몇 퍼센트 상승했는지 대신 그 변화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를 보는 방식이다. 숫자가 가리키는 방향 끝에 서 있는 사람을 함께 보겠다는 마음이다. 성장의 속도만이 아니라 생존의 온도를 적어보려 한다. 우리는 여전히 성장률을 확인한다. 그러나 동시에 얼마나 무사했는지도 묻기 시작했다. 성장의 숫자만으로는 지금의 삶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는 숫자 뒤에 있던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보려고 한다.
[중앙로365]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과 결단
서울과 부산에 이은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이 논의되고 있다. 먼저 왜 금융중심지 육성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가능한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금융중심지 지정이 국내 금융산업의 지역 간 배분 논쟁으로 흘러가면 자칫 땅따먹기식이 되어 결론이 어떻든 상처만 남을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도시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뉴욕, 런던, 홍콩, 싱가포르, 두바이는 물론 베트남, 카자흐스탄 같은 후발 주자들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다음의 세 가지 축을 공통 요소로 지적한다. 첫 번째 축은 금융 법규를 포함한 규제 체계다. 이는 다시 세 가지 요소로 나뉘는데 그 첫째 요소는 금융 거래 규제 법규이다. IT 발달로 거래는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더구나 금융회사 간 경쟁 격화로 그 소요 시간은 점점 더 단축되고 있다. 부담할 리스크는 크게 증가하는 반면 이를 검토할 시간은 부족하게 된다. 규율 제도가 국제적 기준과 차이가 나게 되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점이다. 그래서 후발 금융중심지들은 금융 법규의 국제 정합성을 가장 최우선시하여 영미 법규를 적극적으로 채택할 뿐만 아니라 분쟁 해결을 위한 사법시스템도 과감하게 영미법적으로 개편하고 있다. 두 번째 요소는 금융 감독 방식이다. 국가별로 금융 감독 방식에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감독기관의 개입이 금융회사의 자율에 맡겨야 할 영역까지 확대되거나 개별 거래에 지나치게 깊이 관여하게 되면 경영 자율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책임에 기반한 창의와 혁신도 발휘되기 어렵게 된다. 감독과 검사에 대한 금융회사의 신뢰도 중요한 요소다. 감독 방식과 태도가 국제적 정합성을 벗어날 경우 글로벌 기업에 큰 부담 요인이 되고 결국은 진출 자체를 주저하게 만든다. 셋째 요소는 외환거래 자율화이다. 외환거래가 불편하면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장기적으로 머물지 않는다. 외환거래 자율화는 국제 금융 생태계의 기본 조건에 가깝다. 만일 외환거래 자유화가 국제수지나 국내 외환시장에 야기할 교란이 우려된다면 금융중심지-역외 간 거래와 금융중심지 내 거래는 자율화하되, 국내 다른 지역과의 거래는 차단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두 번째 축은 어떨까. 조세 등 인센티브 제도이다. 법인세율, 금융 종사자의 소득세율은 국제 금융도시 경쟁에서 사실상 가격표 역할을 한다. 현행 우리나라 조세 경쟁력이 국제 금융중심지들과 경쟁하기에는 너무 낮다는 점이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비수도권 이전을 이끌기에도 부족한 세제 인센티브로 글로벌 금융회사와 전문 인력을 유치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더 강한 인센티브 패키지가 필요하다. “그렇게까지 해서 우리에게 남는 게 무엇이냐”는 반론이 따른다. 그러나 두바이는 초기부터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했고,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금융은 두바이 경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가 추진 중인 5극 3특 정책도 특정 지역을 우대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갖춘 전략적 기능을 어디에, 어떻게 집적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기능이 다른 거점에는 제도와 인센티브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센티브의 지역 간 형평성만 강조하다가는 더 큰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세 번째 축은 정주 여건이다. 이 중 단연 교육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 금융 전문가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집단이다. 자녀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어떤 인센티브도 장기 체류를 끌어내기 어렵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언어 환경이다. 후발 국제 금융중심지들이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 원활하고 편리한 국제·국내 교통인프라, 신뢰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도 빠뜨려서는 안 될 중요 요소이다. 이들 세 가지 핵심 축이 구현되는 마지막 조건은 국민적 합의와 정치적 리더십이다. 국제 금융은 신뢰의 산업이다. 정책이 일관되고 지속되지 않으면 어떤 금융회사도 장기 투자를 결정하지 않는다. 국내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으로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면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진정으로 국제 금융중심지 육성을 원한다면 국내외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상의 3대 축을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릴 결단을 할 수 있는가. 이것이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을 앞둔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이다.
[편집국에서] 본말전도된 행정통합, 속도전을 경계한다
지난해 국제 정세를 관통한 단어는 단연 ‘관세’였다. 자유진영의 리더를 자임하는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세계를 향해 관세 폭탄 투하를 선포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유진영의 맹주답게, 최후의 선택은 각국의 자유에 맡겼다. 미국의 뜻을 따르거나, 온몸으로 관세 폭탄을 맞거나. 세상은 잠시 술렁였지만 이내 기묘한 냉정 속으로 가라앉았다. 처음엔 미국의 억지를 받아들여선 안된다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허나 그 목소리는 곧 ‘현실 감각이 부족한 이상주의자의 넋두리’로 치부돼 스러졌다. 대신 각국은 ‘조금이라도 덜’ 손해 보는 답안지 마련에 골몰했다. 사람들은 이 기형적 풍경을 ‘뉴노멀’이라 불렀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소동을 보고 있으려니 지난해 관세 소동이 겹쳐 떠오른다. 정부가 당차게 밀어붙이는 ‘행정통합’이다. 정부는 통합에 응한 지자체에 4년간 20조 원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돈 내놔라’ 협박하는 미국과 ‘돈 주겠다’ 꼬드기는 우리 정부가 어찌 닮았느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두 경우 모두 의사(意思)가 결정되는 방식은 판에 박은 듯 같다. 형식의 자유 뒤로 ‘돈’을 무기로 한 강제가 숨어 있다. ‘관세 협상’이나 ‘행정통합’이나, 어디까지나 선택은 각국 혹은 각 지자체의 자유의지에 달렸다. 형식적으론 그렇다. 그러나 관세 폭탄을 감수하고 홀로서기를 택한 나라는 손에 꼽히고, 또한 20조 원이라는 미끼를 뿌리치고 행정통합을 거부하는 것 역시 예사 결단이 아니다. 결국 돈으로 의지를 구부린다는 점에서 두 장면은 닮았다. 더욱이 그 선택의 압박 속에서 미국의 부당함에 대한 비판이 스러지듯, 행정통합의 당위성을 묻는 공론 또한 사라지고 있다. 이 또한 닮았고, 이게 더 치명적이다. 정부가 넉넉지 않은 곳간에서 수십 조를 털 만큼 행정통합은 절실한가. 지역 소멸의 위기감이 짙은 현재 △규모의 경제 실현 △광역 인프라 구축에 대한 신속한 결정 △중복 행정의 혁파 등 행정통합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분명 적지 않다. 그러나 동전의 뒷면에는 지역 내 불균형 심화와 주민 갈등이라는 우려 또한 숨어 있다. 창원·마산·진해 통합의 진통은 우리가 이미 몸으로 겪은 전례다. 숙의와 공감 없이는 그 어떤 통합도 온전히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교훈을 그 경험은 남겼다. 그런데 지금 그 당연해야 할 숙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많은 이에게 행정통합의 필요성을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대개 하나다. “우리(부산·경남)만 20조 원을 놓칠 거냐.” 통합이 반드시 필요하기에 지원금으로 이를 촉진한다는 논리가 되레 뒤집혀, 지원금을 받기 위해 통합이 필요해지는 기묘한 전도(顚倒)가 일어나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통합의 본질을 묻는 물음은 자취를 감춘 채 ‘선거 전 통합하느냐 마느냐’를 묻는 목소리만 더욱 커질 거라는 점이다. 심지어 그 여부의 기준조차 지역민의 삶에 대한 성찰보다 선거판의 유불리라는 정치공학적 저울질에 더 크게 기울 것이다. 지난 1일,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 행정통합을 위한 특별법과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누군가는 출발선을 넘었고, 아직 출발선 뒤에 서있는 다른 누군가는 앞선 주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바심을 삭이기 어렵다. 그렇게 행정통합의 속도전은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가속도를 더해간다. 정부는 “통합이 늦은 지자체도 차별 없이 지원하겠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속도는 중요해 보인다. 2027년으로 예정된 수도권 공공기관의 2차 지방 이전 과정에서 통합 지자체에 우선권을 부여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이번 지방선거 전 행정통합을 이루지 못할 경우 서둘러도 2028년에야 통합이 가능하다. 이 경우 앞서 시작될 공공기관 이전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크다.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여당의 예비후보들도 노골적으로 “우리만 손해볼 수 없다”며 빠른 행정통합 추진을 강조한다. 유권자들 입장에서도 내 세금이 나랏돈이라는 이름으로 타 지역 행정통합을 지원하기 위해 쓰여진다고 생각하면 심사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 그 뒤틀린 심사만으로 ‘우리도 빨리 통합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잠시 속도를 늦추고 다시 ‘왜’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경남 어느 산골에 홀로 사는 할머니에게,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등지는 소도시 젊은이에게, 가장 먼저 대답해야 한다. 당신들이 거액의 미끼까지 내걸고 추진하려는 행정통합이 이뤄지면 할머니 집 앞까지 오는 마을버스가 더 자주 오는지, 아플 때 달려갈 병원이 가까이 생기는지, 떠난 젊은이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까닭이 마련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20조 원을 행정통합 여부와 관계 없이 그것들을 위해 쓸 순 없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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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구멍 ‘경우의 수’ 뚫은 한국 야구, 17년만에 2라운드 진출
롯데 경기 예매 올 시즌엔 ‘2~3주 전’부터 하세요
160km 던지는 마무리 투수 오브라이언 합류하나?
[속보] '마이애미 간다'…한국 야구, 17년 만에 WBC 8강 진출
후안 소토냐 아쿠냐 주니어냐… 8강전 상대는?
WBC 역대 최고 경기는 2009년 한국-일본 결승전
바늘 구멍 ‘경우의 수’ 뚫은 한국 야구, 17년만에 WBC 2라운드 진출
공인구·심판·견제 제한… ‘WBC 룰’ 적응도 숙제
‘우승 감정’ 잊고 산 지 8년, “포기하지 않았더니 기회 왔어요”
롯데, 2026년 개막전 삼성과 맞대결
일본·대만 2연패 한 한국, 호주전 대승해야 2라운드
보물 문보경·캡틴 이정후·최고참 노경은 마이애미행 이끌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소설…방탄소년단(BTS) '피 땀 눈물' 수록된 앨범의 모티브(옥탑방의 문제아들)
이상아 사과 '안전벨트 미착용,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나이 47세' 우지원, 아내 이교영은 서울대 나온 미모의 쇼핑몰 사업가…'소문난 딸바보'
'킬잇' 몇부작? 장기용(김수현)X나나(도현진)X노정의(강슬기) 인물관계도
장나라, 나이·생년월일 비껴가는 동안…'집사부일체' 이상윤 절친으로 등장
배명호 결혼, 오는 11월 9일 미모의 일반인 여자친구와
'그것만이 내 세상', 박정민 대역없이 소화한 피아노 명연기로 재조명
'그알' 측 '지창욱 사진, 린사모 韓연예인 친분 설명위해 사용…버닝썬 관련X'
'생활의 달인' 골프채 피팅 달인, 인천 동춘동 'JJ골프피팅샵'… 골프채 스윙습관 완벽 처방
뽀로로, 무슨 뜻? 순우리말…'종종걸음으로 재게 움직이는 모습'
'결혼' 클라라, 서가대로 한국 연예활동 시작 …신혼집은 롯데 시그니엘 레지던스
김용진이 소환한 가수 박혜성 근황, 음악감독으로 활약
이 대통령, 부산 모모스커피 성공사례 듣고 한 말에 모두 빵터졌다
박형준 '보수의 배수진' vs 주진우 '젊고 강한 부산'
민주당 부산 기초단체장 공천 신청 마무리…낙동강 벨트 경쟁률 높아
현직 단체장 빠진 사하구·기장군 국힘 후보자 러시
이재명 대통령 '다주택 팔기 싫으면 두라…이익·손해는 정부가 정해'
예선 흥행에는 득 ! 본선 경쟁력엔 독? [국힘 부산시장 경선 관전 포인트]
우여곡절 끝 ‘절윤’ 선언한 국힘…장동혁 ‘진짜 수용’? 불씨 남아
국힘 PK 기초단체장, 경선 급선회 이유…부울경 지방선거 참패 가능성 ‘위기감’ 반영
지지층 ‘결집’ 위한 승부수, ‘부산시장 경선’ 제안한 전재수 (종합)
TK 행정통합법 12일 본회의 처리 불발…지방선거 전 통합 불투명
이 대통령 '석유 최고가격제 신속·과감하게 시행'
이 대통령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은 시혜 아닌 생존전략'
가덕신공항 연결철도 예타 통과… 부전역에서 신공항까지 26분
국제유가, G7 비축유 방출 가능성에 80달러대로 반락…롤러코스터 행보
환골탈태? 이목 쏠리는 BNK 26일 주총
“반도체만 삼성인가”…노조 DS 편향 논란에 DX 반발 확산
삼성, 2026년 상반기 공채 실시
해수부·부산시, 공공기관 조기 이전 ‘맞손’
‘노봉법’ 시행 첫날…포스코 하청노조 “불법파견 인정하고 직접교섭 나서라”
80세 이상 남성 자살률 가장 높아…평균의 3.7배
주가 뛰자 떠난 개미…‘국민주’ 삼성전자 100만 명 이탈
해피바스, '달잠' 바디케어 라인 출시
삼성전자, 16조 규모 자사주 소각…R&D에 매일 1000억 투자(종합)
충성고객 쿠팡 vs AI 네이버…이커머스 패권 놓고 ‘진검승부’
‘17년 만에 8강 진출’ WBC 한국-호주전…티빙 최고 트래픽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3월 10일(음 1월 22일)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3월 11일(음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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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다른 공연이 펼쳐진다’… 부산 광안리에 즉흥 뮤지컬 상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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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타 저작물 표절한 사실 전혀 없다…단호히 대응'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이들의 초상, 김원근의 조각
[부산 전시] 이번 주에 뭐 볼까?[2026년 3월 1일~ ]
근막동통증후군? 아니면 다른 질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