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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항공사·가덕도공단 통합, 가덕신공항 활성화 계기 돼야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의 일환으로 공항 관련 공사·공단을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해당되는 기관은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등 3곳이다. 당초 공사 2곳의 통합 방안이 유력하게 점쳐졌으나 최근 가덕도공항건설공단도 검토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다. 공사 2곳은 각각 인천국제공항과 전국 14개 지방공항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며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은 운영이 아니라 신공항 건설만 담당하는 한시적 기관이다. 공사 2곳은 국제선과 국내선의 손익 차이로 인한 적자 상계 문제로, 공단은 건설이라는 기능 차이로 인한 재원 조달 문제로 통합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다. 재정경제부는 최근 공항 관련 공공기관 통폐합 추진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모아 해당 기관 소관 정부부처에 전달했다. 부처별 의견 검토와 협의가 끝나면 재경부는 통합 방안 초안을 청와대에 보고할 예정이다. 이 같은 소식에 당장 인천공항공사 측이 반발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인천공항공사는 4882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반면 한국공항공사는 134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해서다. 인천공항공사는 한국공항공사가 지방공항 운영 기관인 점을 들어 지방공항 정책 실패 부담을 떠넘기려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국제선 대부분이 이착륙하는 인천공항의 지리적 이점만 챙기려 한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가덕도공항건설공단 통합 문제는 사정이 더 복잡하다. 정부는 기관 단일화를 통한 업무 효율성 제고를 내세우지만 해당 공단은 국토부 조직만으로 신공항 건설 사업이 신속하게 추진되기 어렵다며 별도 입법으로 만들어진 건설 전담 공단이다. 신공항 완공 이후엔 국가로 시설을 넘기고 향후 운영 주체를 새로 정해야 한다는 점이 공단 관련 법의 입법 단계에서부터 분명히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인천공항공사 측은 공사·공단 통합으로 인천공항에서 발생한 수익을 신공항 건설에 쏟으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통합 공사의 공사채 발행 등으로 건설비를 충당함으로써 정부의 신공항 건립 예산 부담을 줄이려 한다는 것이다. 공항 관련 공사·공단 3곳의 통합을 둘러싼 논란은 통합과 함께 고려돼야 할 여러 의미들을 드러내는 과정으로 볼 필요가 있다. 통합 대상 공단의 활약 무대인 동남권으로서는 고려할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가장 큰 의미는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의 신속한 진행이다. 한 차례 엎어진 공사계약이 이제 겨우 수의계약 절차를 통해 시작되려 하는 단계이기에 더욱 그렇다. 공사에 진력해야 할 공단의 조직 여력이 분산된다면 받아들이기 힘들 터이다. 오히려 이번 통합 논란은 그 과정에서 부각된 신공항 건립 예산 조달의 안정성을 높이고 완공 이후 운영 주체 문제를 미리 고민함으로써 신공항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돼야 마땅할 것이다.
[사설] 중동 전쟁·관세 '복합 위기'… 부산 수출기업 버티기 어렵다
미국과 이란 간 중동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부산 지역 수출기업들의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따른 유가 상승과 해상 물류 마비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지난해 부산 기업의 중동 수출 비중은 5.6% 수준이지만, 고유가와 고환율로 인한 원자재 가격과 해상 운임 상승 영향이 지역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부산시와 유관기관이 구성한 ‘중동 사태 위기 대응 상황실’에는 선적 취소·차질, 항공편 운항 중단으로 인한 수출 물량 출하 중단, 대금 수수와 거래 지연 등 총 15건의 기업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중동발 리스크가 지역 수출기업에 이미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관세 정책도 지역 기업들엔 여전히 부담이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무효가 된 상호관세를 대체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법 301조라는 대체 카드를 이미 꺼낸 상황이다. 트럼프는 글로벌 제조업 공급 과잉 문제를 거론하며 한국 주력 수출품인 전자장비,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철강, 조선, 기계 등을 지목했다. 지역 주력 수출품들이 미국의 통상 압박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지난해 부산 전체 수출의 18.3%를 차지한 최대 수출국이다. 이미 관세 정책 영향으로 지난해 대미 철강 제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16.1%, 자동차 부품은 20.2% 급감했다고 한다. 지역 기업이 중동 전쟁과 관세라는 복합 위기에 내몰린 형국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동 전쟁으로 인해 기축통화인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환율도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 16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50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는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12일 이후 17년 만의 일이다. ‘가공 무역’ 중심의 산업 구조를 지닌 부산 경제는 고환율 위기에 특히 취약하다. 환율 급등으로 동·주석 같은 원자재 가격 인상, 중동산 알루미늄 수급난을 호소하는 기업이 많다. 원자재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지역 수출기업들은 납품 지연, 투자 축소 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역 기업들은 환리스크를 전담할 부서나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대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중소기업들은 부산 전체 수출기업의 97%를 차지할 만큼 지역 경제의 근간이다. 하지만 중동 사태 장기화, 미국의 관세 정책, 공급망 변화, 중국·동남아와의 가격 경쟁 심화 등에 시달리고 있다.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지속한다면 오래 버티기 어렵다. 정부는 중동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유류세 인하 유지, 물류비 직접 지원 등 선제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수출 보험 지원 확대, 유관기관 간 정보 공유를 통한 대외 리스크 최소화, 산업별 대응 전략 마련도 시급하다. 지역 기업들이 대외 복합 변수에 더는 휘둘리지 않고 경영 안정과 수출 활로 개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사설] 국힘 박형준 부산시장 컷오프 검토, 지선 포기하려는 건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16일 열린 국힘 공천관리위원회 회의에서는 후보 선출 방식을 두고 의견이 충돌해 일부 위원이 회의 도중 퇴장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정현 공관위원장과 일부 위원이 ‘혁신 공천’을 내세워 현역 박형준 부산시장을 경선 없이 컷오프하고 주진우 의원을 단수 공천하는 방안을 거론하자 절차적 정당성을 둘러싼 반발이 터져 나왔다. 특히 당연직 공관위원인 정희용 사무총장과 부산 지역 몇몇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하며 회의장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 부산시장 공천이 중앙당 내부 충돌로 번진 셈이다. 이번 사태는 현직 단체장을 경선 없이 배제하려는 시도에서 촉발됐다. 배경에는 이 위원장이 강조해 온 ‘혁신 공천’과 인적 쇄신 기조가 있다. 그는 회의 직전 현역 광역단체장인 김영환 충북지사를 컷오프하며 이를 현실화했다. 그러나 현역 시장까지 같은 방식으로 배제하려는 방안이 거론되자 당내에서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지역 사정을 제대로 아느냐”는 비판도 이어졌다. 후보 선출 과정에서 최소한의 경쟁과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박 시장이 지도부의 ‘윤 어게인’ 기조를 비판한 데 따른 보복 공천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이는 국힘 스스로 자멸하는 길이다. 단수 공천설이 제기되자 박 시장은 즉각 반대 입장을 밝히며 경선을 요구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혁신 공천이라는 이름으로 당을 망하게 하는 행위이자 망나니 칼춤”이라며 이 위원장을 정면 비판했다. 또 “공천은 공정해야 하며 부산 시민의 의사를 왜곡하는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경쟁자로 거론된 주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 ‘경선을 정중히 요청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같은 입장을 밝혔다. 결국 두 후보 모두 공정한 경선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중앙당이 컷오프와 단수 공천을 검토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번 공천 논란의 본질을 드러낸다 하겠다. 이는 두 후보자 모두 반발한다는 데서 읽어낼 수 있다. 공관위원장이 지역 여론을 외면한 채 단수 공천을 추진하려 한 것은 지나치게 무모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부산은 국힘 핵심 지지 기반이다. 그럼에도 공천을 둘러싼 최근 행태는 지역 정치의 상식과 책임을 저버린 모습으로 비친다. 지선 공천은 단순한 당내 절차가 아니라 지역 민심을 반영하는 정치적 약속의 과정이다. 공정한 경쟁과 경선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해야 본선 경쟁력도 생긴다. 이는 주 의원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당사자들조차 경선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컷오프와 단수 공천을 밀어붙인다면 공정성도 설득력도 없다. 이런 방식의 공천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힘은 스스로 6·3 지선을 포기하려 하는가.
호르무즈와 사르후
1618년 명나라가 만주의 후금을 치겠다며 조선에 파병을 요구했다. 임진왜란 당시 원군을 보낸 은혜를 갚으라는 ‘재조지은’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조선이 북방 수비와 군사 부족, 흉년 등을 이유로 파병을 차일피일 미루자, 명나라는 사신의 외교문서까지 가로채 읽으며 그 핑계를 일일이 반박했다.광해군은 이 전쟁이 명의 패권 유지를 위한 원정일 뿐, 조선의 안보를 위한 싸움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거절의 대가가 두려웠다. 결국 마지못해 1만 3000명의 군사를 보내기로 했다. 광해군은 군사 지휘관으로 임명한 강홍립에게 ‘상황에 따라 행동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두고 ‘싸움을 피하고 고의로 항복하라’는 적극적 의도가 담겼는지는 역사학자마다 견해가 엇갈린다. 다만 명의 파병 요청이 던진 딜레마에 깊이 고심했던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결과는 참혹했다. 만주 사르후 벌판에서 명군은 후금의 각개격파에 궤멸했고, 조선군도 약 9000명이 전사했다. 강홍립은 남은 병력과 항복했다. 조선은 실익 없이 군사를 잃었고, 파병 자체로 후금을 적으로 돌렸다. 이는 훗날 인조반정으로 친명 노선의 인조가 즉위한 이후, 후금이 조선을 두 차례 침공해 삼전도의 굴욕을 안기는 결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됐다.사르후 전투의 패배로부터 400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포함한 7개국에 호르무즈 해협으로 군함 파견을 요구하고 있다. 미·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해협 봉쇄로 유가 상승 압박이 커지자, 피해가 예상되는 국가들에 사실상 공동 부담을 요구한 셈이다. 트럼프는 ‘참여 여부를 기억하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누가 봐도 합리적이지 않지만 관세 보복과 방위비 인상, 통상 압박 등 미국이 동원할 수 있는 보복 수단을 감안하면 거절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파병 요청에 직면한 노무현 정부는 2004년 재건과 평화유지를 내세워 비전투 병력인 자이툰부대를 파견했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1기 당시 호르무즈 호위연합 참여 요구를 받자 청해부대의 작전 구역을 호르무즈까지 넓혀 한국 상선만을 독자 보호하는 절충안을 택했다. 두 결정 모두 동맹과 국익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치열한 외교적 계산의 결과였다. 지금의 호르무즈는 이란의 기뢰가 곳곳에 매설되고 폭탄 드론이 상공을 오가는 더욱 엄중한 상황이다. 우리 정부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천영철의 사리 분별] '청년이 행복한 나라' 만드는 진짜 부동산 정책
서울 강남 집값은 거침없이 올랐다. 온갖 대책도 무용지물이었다. 강남 불패가 거듭되는 동안 서울 전역 등 수도권 집값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집값이 기형적으로 뛰어오르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청년들은 내 집 마련 꿈은 물론 연애·결혼·출산까지 포기하도록 강요당하는 ‘3포 세대’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전국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기업이 밀집한 수도권으로 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이어졌다. 정규직 취업은커녕 계약직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 청년들의 현실이다. 청년들 사이에 “이번 생은 망했다”는 자조적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의대, 한의대, 로스쿨 등 강남에 입성할 수 있는 전문직 코스에서 이탈한 보통 청년들에게 이 땅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헬조선’이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왜 강남 집값을 잡지 못하는가. 역대 정부는 공급 증가, 세제 강화 등 대동소이한 부동산 정책으로 일관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다주택자에 대한 강력한 세금 부과를 예고하는 등 집값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만으로는 청년들의 꿈을 앗아가고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만든 강남 등 서울 집값을 잡을 수 없다. 벌써부터 “버티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어떻게 해야 집값을 잡을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집값 상승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공급 부족 등 표면적인 이유 뒤엔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수도권에 행정, 경제 등 모든 기능을 집중시키는 고효율 전략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다. 현재의 경제 신화는 수도권 일극화로 이룬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서울 집값의 고공행진은 비상식적인 것이 아니다. 기형적 수도권 일극화 정책에 따른 필연적 결과물일 뿐이다. 결국 역대 정부의 대책이 무위로 끝나고, 청년들이 계속 눈물지을 수밖에 없는 이 안타까운 문제의 근원은 수도권 일극화라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수도권에 대부분의 기능을 집중시킨 일극 체제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이 질문은 서울 집값을 계속 고공행진토록 할 것인가, 청년들의 참혹한 ‘헬조선 살이’를 방관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동일하다. 터져 나오는 각종 부작용들은 수도권 일극 체제를 기반으로 한 기존 국가 발전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재명 정부는 수도권 일극화 폐해를 줄인다며 ‘5극 3특’ 성장축 조성과 제2차 공공기관 이전 등을 통한 지역 균형발전을 국정 목표로 내걸었다. 하지만 진행 상황을 보면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 지역 균형발전은 지방정부에 재정, 조세 등 실질 권한을 이양해 수도권에 견줄 초광역권으로 발돋움시킬 때 가능하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분권을 전제하지 않은 행정통합만 추진 중이다. 지역별 통합 법안을 처리하면서 갈등만 부추겼다. 부산을 제2수도권으로 만들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도 장기간 표류시키고 있다. 이런 흐름을 지켜보면서 청와대와 여당이 국가 구조를 미래형으로 재편할 의지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마저 든다. 청년들의 삶과 꿈을 빼앗는 헬조선의 구조에 대한 대대적 수정 없이 서울공화국을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함을 넘어 미래 세대 행복추구권을 빼앗는 심각한 범죄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 산업 등의 호황에 힙입어 현재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인구가 급감하고 청년들의 통곡이 끊이지 않는 데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미국 등의 시장 잠식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 도시국가 수준인 서울공화국 체제로는 국가 미래를 담보하기 어려운 시한부 상황으로 내몰렸다는 지적이 거세다. 강력한 권한을 가진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다수의 성장축을 만들자는 것은 해당 지역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역이 수도권 몫을 뺏겠다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 경제 파이를 키우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산이 북극항로와 해양 물류·금융에 특화된 글로벌 해양도시로 발돋움하도록 지방정부에 강력한 권한을 위임한다면 다양한 고부가가치 신산업을 육성할 수 있고 그 혜택은 국가 전체에 돌아간다. 수도권 주민들도 지역 균형발전이 서울공화국의 예견된 몰락을 피할 효율적 전략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청와대와 여당이 할 일은 지방정부가 새로운 산업 씨앗을 뿌려 세계 속에서 성장하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강남 집값이 치솟을 수밖에 없는 현재 국가 구조는 밝은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 강력한 분권형 행정통합과 지역 특성에 맞춘 과감한 미래산업 육성으로 이젠 유효기간이 끝난 서울공화국이라는 도시국가 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서울공화국을 상징하는 강남 집값이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청년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백진규의 법의 창] 북극항로 시대의 법을 준비할 때다
1876년 2월, 부산항이 개항했다. 올해가 150주년이다. 부산항 개항은 조선이 세계 해양 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역사적 출발점이었다. 이후 부산항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수도의 관문이 되었고, 산업화 시대에는 대한민국 수출 경제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오늘날 부산은 세계적인 환적항인 부산항을 보유한 동북아 해양 물류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지금 부산의 해양사는 전환점을 맞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했고, 국회에서 해사법원 설치법이 통과되어, 이르면 2028년 부산에 ‘해사국제상사법원’이라는 명칭의 해사법원이 개원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미흡하지만 ‘해양수도 이전 특별법’(2025년 11월 19일 자 칼럼 참조)’까지 제정되었다. 부산은 해양수도로 나아갈 제도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이 변화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그동안 해양 정책은 행정과 산업, 사법 기능이 분산된 구조에서 운영돼 왔다. 그러나 해양수산부 이전과 해사법원 설치는 정책과 산업, 사법 기능이 하나의 해양도시에 집적되는 구조를 가능하게 한다. 항로 성격 규정 따라 통항·규제 권한 차이 해저 자원·환경·안전 책임 놓고 분쟁 예상 극지 해양법 연구·정책 지원 체계 구축을 문제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지금부터다. 해양 질서는 지금 거대한 변화를 맞고 있다. 그 중심에 북극항로가 있다. 최근 중동 사태에서 보듯이 해상 항로는 생명줄이고 다변화가 필요하다. 이에 북극항로 중요성이 한층 부각된다. 기후변화로 북극 해빙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북극을 통과하는 항로는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과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기존 수에즈 운하 항로보다 크게 단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극항로가 열릴 경우 동북아시아에서는 부산이 가장 중요한 물류 거점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북극항로는 단순한 물류의 문제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것은 그 뒤에 놓인 법적 질서의 문제다. 우선 북극항로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국제 분쟁이 진행 중이다. 일부 국가는 특정 항로를 자국의 내수로 주장하는 반면, 다른 국가들은 이를 국제 해협으로 보고 자유항행권을 주장한다. 항로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통항 권한과 규제 권한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 하나의 쟁점은 해저 자원이다. 북극 해저에는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둘러싼 대륙붕 연장 문제 역시 국제법적 논쟁의 대상이다. 이 문제는 유엔해양법협약 체계 아래에서 처리되고 있지만 분쟁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또 다른 문제는 환경과 안전 책임이다. 북극은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해양생태계를 가진 지역이다. 해빙으로 선박 통항이 늘어날 경우 유류 오염, 해상 사고 등 새로운 국제적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극지 해역 항행을 규율하는 ‘극지방 운항 국제규정’을 마련해 선박 설계와 운항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북극항로 시대는 해운과 물류의 경쟁과 더불어 해양법과 해사 분쟁 해결 능력의 경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점에서 향후 부산에 설치될 해사법원의 의미는 분명하다. 선박 충돌, 용선 계약, 해상 보험, 해양 오염 책임 등 해사 분쟁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영역이다. 이러한 분쟁을 전문적으로 처리할 사법 시스템이 구축되면 부산은 단순한 물류 중심지를 넘어 동북아 해사 분쟁 해결의 중심 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항만과 금융, 해사 사법 기능이 결합한 도시가 해양 산업 중심지가 되어 왔다. 해수부 이전과 해사법원 설치만으로 해양수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이를 뒷받침할 추가적인 입법과 제도 정비가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북극항로 시대의 법과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 첫째, 해양수도 이전 특별법의 후속 입법을 통해 해양 관련 공공기관과 연구 기관의 추가 이전을 촉진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해양 정책 기능이 분산된 채로 남아 있다면 해양수도의 실질적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둘째, 국제 해사 분쟁을 부산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사 중재와 국제 해양법 연구 기능을 강화하는 법적 기반도 필요하다. 해사법원이 국내 분쟁 해결의 중심이라면, 국제 중재와 연구 기능은 부산을 동북아 해양법 허브로 만드는 또 하나의 축이 될 것이다. 셋째, 북극항로와 극지 해양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극지 해양법 연구와 정책 지원 체계 역시 장기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새 항로가 열릴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항만과 더불어 법과 제도이기 때문이다. 부산항 150년 역사는 단순한 항만의 발전사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해양 국가로 성장해 온 과정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제 다음 100년의 방향이 결정될 시점이다. 해수부 이전과 해사법원 설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해양수도가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정책과 사법, 연구와 산업을 연결하는 제도적 완성이 뒤따라야 한다. 부산이 항만 도시를 넘어 세계 해양 질서를 이끄는 해양수도로의 도약 여부는 바로 그 선택과 준비에 달려 있다.
[데스크 칼럼] 뺑덕 어멈과 행정통합, 그리고 정주영 정신
“삐쭉하면 빼쭉하고~~~, 빼쭉하면 삐쭉하고~~~.” 이렇듯 판소리 심청가 속 뺑덕 어멈의 변명은 끝이 없다. 그녀는 늘 “내 잘못이 아니오”라는 말로 책임을 떠넘기고 억지와 거짓으로 상황을 모면한다. 관객은 그 억지스러운 말에 웃음을 터뜨리지만, 그 웃음 뒤에는 씁쓸한 교훈이 남는다. 공동체 속에서 신뢰를 잃은 사람이 어떤 말로를 맞게 되는지, 뺑덕 어멈은 풍자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 풍자는 단지 옛 이야기 속에만 머무는 것일까. 오늘날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시작된 광역자치단체 간 행정통합 논의를 들여다보면, 뺑덕 어멈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 광역단체 간 행정통합 논의는 2009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는 부산·울산·경남을 통합해 메가시티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는 “동남권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행정구역 개편을 포함한 실질적인 대통합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17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부울경 메가시티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메가시티 형태가 행정연합이냐, 행정통합이냐를 두고 ‘옥상옥’ 논란을 빚었다. 조직이 비대해지고 권한이 중복돼 비효율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마치 뺑덕 어멈이 “그건 다 심청이 탓이지”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과 닮았다. 실제로는 권한 조정과 제도 설계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옥상옥’이라는 말은 편리한 핑계처럼 소비된다. 문제 해결 의지보다는 현상 유지를 위한 변명에 가깝다. 또 다른 단골 핑계는 “주민투표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민주적 정당성 확보는 중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이 말이 시간을 미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방선거가 가까워지면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가 등장한다.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와 토론의 기회는 제공하지 않으면서, 주민투표를 핑계로 결정을 미루는 모습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을 이어가는 뺑덕 어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도권 과밀화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수도권에는 인구와 산업이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교통·주거·환경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반면 지방은 인구 감소와 산업 공동화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균형발전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국가적 과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광주·전남을 제외하면 지방의 광역자치단체들은 서로의 이해관계에 묶여 행정통합 논의를 쉽게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중앙정부 지원이 불확실하다”는 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지원을 요구하면서도 구체적인 설계와 결단을 미루는 태도 역시 또 다른 변명처럼 들린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다. 그는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도전 정신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인물로 평가받는다. 울산 조선소 건설을 위해 영국 은행을 설득할 때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지폐를 꺼내 보이며 “우리는 이미 오래전 철갑선을 만든 민족”이라고 말했던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작은 이해관계에 머물지 않고 더 큰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행정통합은 그 과정에 늘 난관이 따른다. 지역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정치권은 표 계산에 민감하며, 주민들은 정체성 문제로 반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이런 복잡한 현실 속에서 지도자의 결단과 추진력이 요구된다. 정주영의 정신은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핑계로 시간을 허비할 것인지, 아니면 비전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뺑덕 어멈의 변명은 결국 공동체 속에서 신뢰를 잃고 고립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행정통합 논의도 마찬가지다. 변명과 핑계로 시간을 허비한다면 주민들은 행정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고, 지역 발전의 기회도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핑계가 아니라 해결이다. 지금까지의 행정통합 논의는 마치 판소리 한 대목처럼 반복과 변주를 이어왔다. “효율성이 의문이다”라는 대목이 나오면 곧이어 “주민 동의가 필요하다”는 후렴이 이어지고, 다시 “중앙정부 지원이 불확실하다”는 변주가 반복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문제 해결의 노래라기보다 책임 회피의 변명에 가깝다. 결국 정치가 뺑덕 어멈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행정통합은 또다시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다. 지도자 결단과 비전이 없는 곳에서는 주민의 신뢰도, 지역 발전의 기회도 사라진다.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앞에 두고, 지역 정치인들이 뺑덕 어멈의 변명 대신 정주영의 도전 정신을 배워야 할 때다. 그렇지 않다면 행정통합 논의는 끝없는 변명 속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다. 6·3 지방선거 후보들의 공약을 꼼꼼하게 챙겨봐야할 이유다.
[노트북 단상] 53억 혈세 매몰, 누가 책임지나
울산 태화강변에 때아닌 53억 5000만 원짜리 노면 주차장이 들어섰다. 고작 10대 남짓 주차하는 이곳은 원래 ‘태화 고지배수터널’ 공사 현장이었다. 수해를 막겠다며 5년 넘게 땅만 파더니 민원만 양산한 채 끝내 다시 메워버렸다. 부실 행정과 세금 낭비의 압축판으로 지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사례다. 애초 사업의 본질은 ‘물길의 분산’이었다. 중구는 2016년 태풍 ‘차바’로 생업의 터전을 잃었던 태화시장 일대의 침수를 막아보자며 ‘자연재해 위험지구 정비사업’이란 명칭 아래 두 갈래 계획을 세웠다. 고지대에서 내려오는 빗물의 55%는 터널을 통해 강으로 바로 빼내고, 나머지 45%는 배수펌프장을 지어 처리한다는 복안이었다. 한데 배수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할 고지배수로가 공정률 10~20% 상태에서 통째 무산(부산일보 1월 30일 자 10면 보도)된 것이다. 터널이 막히자 방재 설계의 근본적인 허점이 남았다. ‘터널이 감당하기로 한 빗물 55%는 이제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설계대로라면 지난 2월 준공한 배수펌프장은 빗물의 절반도 처리하기 어려운 ‘반쪽짜리’ 시설에 불과하다. 총 6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붓고도 태화시장은 여전히 침수 위협 앞에 위태롭다는 얘기다. 중구청의 후속 대응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터널 공사를 ‘잠정 보류’(?)하는 대신, 행정안전부 공모로 103억 원을 확보해 함월산 계곡 상류(무주골·유곡천)에 우수저류시설을 짓겠다고 한다. 이 사업을 준공하면 지방비를 확보해 200억 원대 고지배수터널을 재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서 의문이 꼬리를 문다. 먼저, 우수저류시설이 터널 몫이었던 빗물 55%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만약 55% 유량을 처리할 수 있다면 애초 큰돈 들여 민원이 불보듯 뻔한 도심지 터널 공사는 왜 추진했나. 터널을 다시 추진한다는 대목에선 103억 원짜리 저류시설이 결국 임시방편임을 자인하는 셈이다. 계획대로 고지배수터널을 마무리한다 해도 자가당착이다. 현재 추진 중인 우수저류시설의 실효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두 시설 모두 필요하다면 ‘터널과 배수펌프장으로 100% 유량 처리가 가능하다’던 종전 설계가 잘못됐음을 시인하는 꼴이다. 물론, 행안부 공모도, 지방비 확보도 확정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재추진 시기조차 알 수 없는 막연한 구상에 가깝다. 갈팡질팡하는 중구의 행정 난맥상이 주민 혼란만 부추길까 걱정이 앞선다. 중구가 터널 실패를 ‘잠정 보류’로 규정하며 현실을 호도하는 것도 문제다. 보류란 어떤 일을 잠시 멈추어 두는 것이지, 수억 원의 비용을 들여 공사 현장을 원상복구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저 행정의 실패를 인정하지 못해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난 2월 11일 태화시장 인근 배수펌프장에서 정치인들과 주민들이 참석한 축하 행사가 열렸다. 입구 현수막에는 ‘자연재해위험지구 정비사업 준공식’이라는 글귀가 선명했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무색한 광경이다. 흙더미로 터널은 메울수 있어도 주민 불안과 냉소는 가리기 어렵다. 방재의 한 축이 무너진 상태에서 절반의 준공을 전체의 성공으로 포장하는 작태는 110만 시민에 대한 기만이나 다름 없다.
[2030 칼럼]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어느덧 개봉 한 달이 훌쩍 지난 ‘왕과 사는 남자’의 인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노산군으로 강등돼 강원도 영월로 유배된 단종과 엄흥도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머지않아 1500만 관객을 돌파하리란 기대도 곳곳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소재의 영화가 오늘날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작품이 인정과 의리라는 오랜 가치를 과연 누가 지켜냈는지 새롭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권을 찬탈한 수양대군의 정치적 야욕, 그리고 단종과 그 곁사람들의 비극적 희생을 다룬 서사물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일 것이다. 그는 1928년 ‘동아일보’에 이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하며 단종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의 핵심이 ‘인정과 의리’에 있다고 말했다. 인정과 의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다. 〈단종애사〉를 필두로 수많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는 어떤 역사적 인물이 인정과 의리를 지켰는지, 혹은 누가 그것을 저버렸는지에 주목했다. 권력을 얻기 위해 왕이자 어린 조카인 단종을 죽음으로 내몬 수양대군과 한명회는 신의를 저버린 자들로 재현되었다. 반면, 단종의 복위를 염원하며 목숨을 바쳤던 사육신, 도의가 사라진 세상을 등졌던 생육신은 숭고한 가치를 끝끝내 지켜낸 이들로 널리 칭송받았다. 국어 시간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사육신 성삼문의 절절한 시조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왕과 사는 남자’는 이러한 인정과 의리라는 가치를 실천한 주체를 전혀 다른 공간에서 찾는다. 영화는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한 이들을 고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내지르는 처절한 비명을 들으며 식음을 전폐하는 어린 왕 단종이 등장한다. 창백한 혈색, 갈 곳 잃은 눈동자에는 소년 왕의 두려움과 절망, 비탄이 뒤섞여 있다. 이윽고 그는 왕권을 잃은 채 궁궐과는 멀리 떨어진 청령포로 내몰린다. 작품은 한양의 권력 다툼 대신 외딴 유배지와 그곳에 깃들어 살아가는 이들을 서사의 전면으로 끌어낸다. 극 중에서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 이는 광천골 촌장 엄흥도다. 유배된 한양의 고관대작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자식에게 글공부를 가르쳐 입신양명의 꿈을 이루겠다는 지극히 속되고 사사로운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가 맞이한 유배자는 처절한 권력 다툼에서 패배한 어린 소년 이홍위였다. 기대는 한순간 낙엽처럼 부스러졌다. 그렇지만 엄흥도와 광천골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은 그를 위해 정성스러운 밥상을 마련한다. 왕과 무지렁이 백성이 마주 앉은 밥상. 그곳에서 맺어진 친밀한 관계와 오가는 사사로운 이야기로부터 인정과 의리가 새롭게 싹튼다. 영화는 역사의 가장자리로 내몰려 잊힌 세인들의 사사로움에 눈길을 준다. 그리고 이홍위는 그들이 보여주는 인정과 의리로부터 정의롭지 못한 권력과 맞서 싸울 용기를 얻는다. 공허하고 무력했던 눈빛에는 다시금 강인한 의지와 결기가 감돈다. 용기를 얻은 것은 이홍위만이 아니었다. 엄흥도 역시 거대한 권력 앞에 마주 서기를 결단하고 그를 따라나선다. 왕위를 되찾으려는 노력은 무산되고 결국 단종은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엄흥도의 용기는 그치지 않는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이라는 경고에도 차가운 강물에 떠내려가는 시신을 건져 올려 장례를 치른다. 그 장면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를 떠올리게 한다.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는 조국 테베를 배신한 오빠 폴뤼네이케스가 전투에서 사망하자, 배신자의 장례를 금지한 국법을 어기고 그의 시신을 매장하려 했다. 그 일로 안티고네는 감옥에서 죽음을 맞는다. 이 비극은 국가의 명령과 인간의 당위적 도리 가운데 무엇이 우선하는가를 날카롭게 질문한다. 엄흥도가 취한 비범한 행동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한낱 산골 촌장에 불과했지만, 인간이라면 마땅히 따라야 할 숭고한 신의와 도리를 지키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어리고 쇠약한 단종의 모습은 언뜻 오늘날 젊은 청년들을 떠올리게 한다. 강파르고 불안정한 현실에 내던져진 청년들의 모습 말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를 바꾼 위대한 영웅들의 거대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힘겹고 숨 가쁜 삶을 버텨 내게 하는 소박하고도 친밀한 인정과 의리의 이야기일 것이다. ‘왕과 사는 남자’가 많은 관객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도 여기 있다. 역사는 마주 앉은 밥상처럼 기록되지 못한 평범한 존재들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이홍위와 엄흥도가 보여준 진정한 용기가 비롯된다.
[편집국에서] 전쟁이 뒤흔든 세계 경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2주 이상 지속되면서 세계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무엇보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유가가 급등한 영향이 크다. 국제유가는 전쟁 후 배럴당 120달러 선을 위협 중이다. 지난달 27일 배럴당 72달러에 거래됐던 브렌트유는 지난 9일(현지 시간) 장중 한때 아시아 시장에서 119.50달러까지 치솟았다. 같은 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조기 종전 발언 직후엔 84달러까지 떨어지며, 일간 사상 최대 변동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 마디에 국제유가도, 글로벌 증시도 출렁이는 모양새다. 특히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이번 전쟁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우리나라는 30년 만에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고 나섰다. 필리핀 등에서는 석유 배급제까지 실시되고 있을 정도다. 이번 전쟁의 핵심 지역으로 떠오른 호르무즈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좁은 해상 통로다. 미국 현지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가능성을 사전에 보고받고도 이란 공격을 승인했다. 이란이 먼저 굴복하거나 미군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상황을 오판했다는 것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풀기 위해 한중일 등 5개국에 군함 파견까지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이란이 에너지 요충지인 호르무즈해협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는 데 대한 대응으로 미국은 지난 13일 이란의 석유 허브인 하르그섬 공습까지 강행했다. 하르그섬은 이란 석유 수출 물량의 90%가 거쳐 가는 곳으로, 미국이 이란의 '역린'을 건드렸단 말도 나온다. 이란은 UAE(아랍에미리트)의 푸자이라항을 드론으로 공격하며 맞섰다. 이곳은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해 원유와 석유 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항구다.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장기화 우려도 제기된다. 중동 리스크가 커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다시 15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금융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선 올해 우리 증시가 쌓은 ‘5000피’(코스피 5000포인트)라는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나온다. 해상 운임도 상승세다. 글로벌 운송망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해운 시장도 충격을 받고 있다. 국내 수출기업들은 환율, 비용 증가, 물류 차질 등 직격탄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고유가가 지속되면 물가 상승, 성장률 하락, 소비 심리 위축 등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심화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이번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러시아라는 웃지 못할 분석도 나온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러시아의 석유 수출에 따른 초과 세입이 하루 1억 5000만 달러(약 2248억 원)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FT는 전쟁 발발 이래 러시아 정부가 챙기게 될 추가 세입 총액이 이달 말까지 33억∼49억 달러(4조 9467억∼7조 3451억 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명분 없는 전쟁은 하루빨리 종식돼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쟁 목표와 일정에 대해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형국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이번 전쟁이 “현대적 여론조사가 시작된 이후 미국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 없이 시작한 첫 전쟁”이라고 꼬집었다. 개전 직후 긴급 시행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이란 공격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27%에 그쳤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유가 인하를 공약한 바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가 관리의 필요성이 그 누구보다 절실한 이유다. 미국 내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60달러로, 한 달 전(2.95달러)에 비해 20% 이상 상승했다. 현지 정유사가 챙기는 수익과 마진은 큰 폭으로 뛰어 전쟁이 이들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너지 비용 상승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취약계층에게 더 큰 부담을 안긴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달 27일 국내에 소개된 책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부제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에 따르면, 미국은 해외 전쟁에서 2001년 이후 약 10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 중 민간인 사망자만 40만 명에 달한다. 이 책의 저자 윌리엄 D. 하텅과 벤 프리먼은 미국의 군사적 우위 추구는 미국을 덜 안전하게 만들고, 결국 미국의 힘과 영향력 쇠퇴를 앞당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쟁에 대한 과도한 지출은 대형 방산업체와 그 동맹 세력을 부유하게 만드는 반면, 민주주의와 안전, 번영의 토대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15일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중동 전역에서 숨진 각국 군인과 민간인은 벌써 3000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자영 경제부장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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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보전금 미끼 보이스피싱 기승… 소상공인 두 번 운다
부산항 부두 내 쌓인 화물처리에 분주… 항만 기능 빠른 회복세
'기적'서 연기 가능성 다진 임윤아 “다채로운 변신 응원해 주세요”
[BIFF] “‘오징어 게임’ 흥행은 봉준호 감독 ‘1인치 장벽’ 무너진 순간”
부산일보가 선정한 건강상담사
부산성모안과병원
부산일보가 선정한 디지털 한방병원
태흥당한의원
'공연은 했지만…' 십센치, 싱가포르 공연 '전액 환불'
부산 항공사 기장 살해 50대 남성 검거…범행 후 또 다른 직원 집 찾아가
예타 통과 정관선, 최적의 노선망 찾는다
시민 혈세로 해외연수… 부산 공무원 '포상성 외유' 여전
총체적 난국 김해문화관광재단, 회전문 인사에 복무 기강 해이
전자발찌 찬 40대 남성이 20대 여성 살해…스마트워치 눌렀지만 범행 못 막아
“청장 남바는 알고 있어야지”… 주차단속 직원에 직접 전화
부울경 의과대학정원 121명 늘어난다…지역의사제 적용
동명대 충원율 부풀리기 의혹… 대학 관계자 8명 검찰로
[속보] 부산서 항공기 기장 흉기에 찔려 숨져…경찰, 용의자 추적
공유숙박이 부른 젠트리피케이션… 서민들 '갈 데가 없다'
부산 학폭, 초등생이 최다 ‘이유 없이,장난으로’ 1위
믿을 건 ‘괴물’ 뿐…WBC 8강 도미니카전 류현진 선발 등판
4번타자 한동희 이탈…시범경기 1위에도 머리 아픈 롯데
WBC 결승, 베네수엘라 VS 미국 격돌
롯데 내야는 치열한 경쟁 중, 빈 자리 노려라
롯데 경기 예매 올 시즌엔 ‘2~3주 전’부터 하세요
월드컵에서 네이마르 못보나? 평가전 명단 제외
WBC 역대 최고 경기는 2009년 한국-일본 결승전
롯데, 2026년 개막전 삼성과 맞대결
세계의 벽은 높았다…WBC 한국, 도미니카에 0-10 콜드패
여자농구 월드컵 최종예선 2연승, 본선 진출 성큼
‘스포츠 대통령’ 체육회장 후보 6명 선거전… 표심 잡기 경쟁
[늇쓰리] '봄데'라도 될 걸 그랬어…롯데, 올해도 가을야구 힘들까?
백지연, 불운의 결혼 생활… 이혼한 두 명의 전남편 스펙 '눈길'
'프로 사랑꾼' 알베르토의 미모의 아내는 누구?
'박환희 저격' 빌스택스(바스코) 재혼 아내 글 재조명 '아들 몇 번이나 봤다고'
고퀄리티 첩보 스릴러 ‘휴민트’…이 정도면 합격점 [경건한 주말]
故 길옥윤은 누구? 패티김 전 남편·'서울의 찬가' 등 3500여 곡의 작곡가
[경건한 주말] 진한 아쉬움 남는 ‘인어공주’…편한 힐링물 ‘박하경 여행기’
이연희, 실물이 더 예쁜 연예인
류승완 감독 ‘휴민트’ 여성 관객들 혹평 이유는
개코 부인, 김수미 연예인이야? 모델이야?… 여신 비주얼, 나이와 직업은?
'서민갑부' 산낙지 갑부, 광주광역시 우산동 하남낙지마당…연매출 10억 철판낙지볶음·소고기 낙지탕탕이·낙지회무침
김용진이 소환한 가수 박혜성 근황, 음악감독으로 활약
류진 아내 이혜선, 승무원 출신 미모의 전업주부 '정체성 잃어가는 기분'
국힘 공관위, ‘박형준 컷오프’ 소동 하루 만에 “부산시장 후보 경선”
국힘, 박형준 컷오프 검토… 개혁 하랬더니 ‘개악’
[속보]이 대통령 '중동상황 당초예상 뛰어넘어…최악 시나리오 염두 둬야'
李대통령 '팔자 고치는 데는 로또보다 확실히 쉽다'…주가조작 신고 독려
하루 만에 다시 ‘경선’… 오락가락 국힘 공천 파행
전재수 “사람의 관점에서 경선해야”… 부산시장 예비후보 합류
“해양수도 부산 완성” 전재수, 부산시장 출마 선언
“부산·대구시장 경선에 이견”… 이정현 국힘 공관위원장 사퇴
민주당, 전재수 강력 요청도 ‘묵살’…'부산 글로벌법' 논의 또 배제
전재수 “당은 단수공천 원하지만, 경선 다시 강력히 요청”
[속보] 국힘 공관위, 울산 김두겸, 경남 박완수 단수공천 확정
이 대통령 직접 등판, 정청래 기자회견… 與 검찰개혁 갈등 잦아들까
카카오뱅크 한때 접속 불가… 대기 10만 명·대기시간 3시간 이상
부산시민공원 주변 재정비 사업 ‘본궤도’
'이란 공습 최대 수혜 기업' 외신 주목한 ‘장금상선’
주가 뛰자 떠난 개미…‘국민주’ 삼성전자 100만 명 이탈
팰리세이드 ‘시트 접힘 사고’ 예고된 인재였다
[단독] 이마트 직원, NCT 재민 상품권 꿀꺽…신세계그룹 “죄송, 내부 조사중”
양 공항공사·가덕도공단 통합론 급부상
선박 수주 늘자 작업장 부족…관세청 '장외 작업도 관세 유보'
현대차, 美사고에 팰리세이드 판매 중단…고객 사과
“성과급 4.5억 달라”…노조 요구에 삼성 ‘DS·DX 두 회사’ 우려
‘최고가격’ 시행 첫날 기름값 하락 지속…L당 부산 휘발유 5원↓·경유 7원↓
“이란 전쟁 1년 지속 시 한국 성장률 0%대 추락”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 3월 16일(음 1월 28일)
'내부자들' 3부작으로 컴백…장항준 '리바운드' 재개봉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3월 18일(음 1월 30일)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 3월 17일(음 1월 29일)
성인 ADHD, 6개월 이상 부주의 지속 땐 의심…직장·대인관계에 ‘악영향’
칸·베를린·베니스와 어깨 나란히… 부산국제영화제 A 리스트 17곳에 포함
BTS 컴백 'D-3'…광화문 글로벌 무대서 K팝 봄꽃 피울까
“영화 '메소드연기'에 모두의 고민 담았다”…배우 이동휘 인터뷰
'케데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상·주제가상 수상
‘보고, 만들고’… 장애인 영화 접근성 넓히는 ‘가치봄 모두극장’
[부산 전시] 이번 주에 뭐 볼까?[2026년 3월 1일~ ]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3월 11일(음 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