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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산 글로벌특별법 선거철 정쟁 대상 되어 또 표류하나
‘부산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이 다시 표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7일 여야정 민생경제협의체 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글로벌특별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요청했다. 장 대표는 “글로벌특별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고 잘 진행되다가 대통령께서 ‘이 법이야말로 대표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한말씀하셔서 속도를 못 내고 멈춰 있다”고 말했다. 이후 비공개회의에서 장 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가 글로벌특별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지만, 이 대통령은 “TK는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대구·경북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며 글로벌특별법 제정에 부정적인 의중을 내비친 셈이다. 여권은 대통령이 법안에 반대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해명을 내놓았지만, 부산 지역 입장에서는 답답함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국무회의에서도 글로벌특별법을 ‘포퓰리즘적’ 입법 사례로 거론한 바 있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처리에 급물살을 타다가 제동이 걸렸고, 대통령의 발언 이후 민주당 지도부와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도 공식적 언급을 꺼려왔다. 법사위는 8일 전체 회의를 열었지만, 글로벌특별법을 상정하지 않았다. 법사위 여야 의원들은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수사를 담당한 박상용 검사의 직무 정지 조치를 두고 치열한 공방만 벌였다. 글로벌특별법이 여야 정쟁 속에 다시 묻히고 만 것이다. 글로벌특별법 처리 지연을 대구시장 선거와 연관 짓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민주당은 전남·광주 행정통합법은 통과시키고 TK 행정통합법에 제동을 걸어 지역 반발을 키운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법만 통과시킨다면 부산만 챙긴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민주당이 공을 들여온 대구 민심에 악재로 작용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에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와 김부겸 후보의 인지도를 앞세워 1995년 민선 시장 선출 이후 첫 대구시장 배출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부산 글로벌특별법을 대구시장 선거 정쟁 대상으로 삼는 것은 기가 찰 노릇이다. 글로벌특별법은 부산을 물류·금융·디지털 첨단산업의 국제 허브로 조성하기 위해 특구를 지정하고 특례를 부여하는 법안이다. 여야 합의로 2024년 5월 발의됐지만, 2년 동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에는 행안위 전체회의까진 통과했지만, 법사위와 청와대의 ‘딴지’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법안이 폐기와 재발의를 거듭하며 공전하는 모습에 넌더리가 난 지역민들의 분노는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여당과 청와대는 글로벌특별법이 부산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 동남권의 성장축이자 국토 균형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정치 셈법에 따른 거래 대상으로만 다룬다면 지역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사설] 중동전쟁 벼랑 끝 휴전… 호르무즈 외교전 잘 대비해야
‘석기시대 최후통첩’ 시한 직전인 8일 오전 미국과 이란이 전격 휴전에 합의함으로써 전 세계는 중동 위기에서 한숨 돌리게 됐다. 파국으로 치닫던 이란 사태는 일단 공격을 멈추고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한 뒤, 2주간 협상 수순에 돌입했다. 극적인 휴전 소식에 유가는 폭락하고 주가는 폭등했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미국이 원유 수송로의 완전한 자유 통행을 조건으로 못 박았지만, 이란은 통제권을 주장하고 있어서이다. 휴전이 종전으로 가는 입구일 수도 있지만, 더 큰 충돌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정부는 고립된 우리 유조선·선원의 귀환과 함께 해협을 둘러싼 새로운 질서 참여 등 모든 상황에 외교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다. 미국·이란 협상은 난항이 불가피하다. 핵 개발 권리 인정, 경제 제재 완화, 전쟁 배상, 상호 불가침, 해협 통제권 등 이란은 미국이 쉽사리 수용하지 않을 조건을 내걸고 있다. 이번 휴전 합의는 커지는 정치·군사적 리스크에 대한 미국의 부담감, 경제난과 군사적 대응의 한계에 내몰린 이란의 고육지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한국은 일시적으로나마 항행의 자유가 보장되는 상황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페르시아만에서 38일째 발이 묶인 우리 선박 26척, 선원 173명의 안전한 귀환이 최우선 과제다. 또 중동산 원유의 공급망 회복이 국내 에너지 수급 개선으로 이어지게끔 민관이 함께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이 뚫리더라도 이란이 터무니없는 통행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다. 영해를 공유하는 오만을 끌어들여 공동 관리 기구 형태로 통제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좁은 해협에 에너지 수송을 의존하는 한중일과 유럽 국가를 일일이 거론하며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뒤로 빠진 상태다. 한국과 프랑스, 영국 등 40여 개국은 글로벌 협의체 성격의 채널을 구축해 대응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자유무역 체제의 근간이었던 ‘자유항행’의 원칙은 미국의 군사력에 의해 지탱됐으나 처음으로 미국이 빠진 새로운 질서가 부상할 조짐이다. 미국의 부재를 전제로 한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휴전 합의는 불확실성 해소와 거리가 멀다. 전쟁 당사자들의 필요로 강 대 강 대결이 일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이다. 애초 미국이 침공의 이유로 제시한 핵 개발 무력화·레짐 체인지(정권 교체) 목표는 달성됐다고 보기 힘들다. 반면 에너지 수송로가 인질로 잡히며 전 세계 공급망에 초래된 새로운 위기가 골칫거리로 남았다. 휴전으로 잠시 말미를 얻었을 뿐 긴장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게다가 에너지 공급망을 둘러싼 새로운 질서 경쟁까지 시작되고 있다. 한국은 수동적 관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해협 질서 설계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 전략을 근본부터 재정비해야 한다.
[사설] 여야정 민생경제협의체 중동발 위기 초당적 협력해야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7일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해 9월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민생경제협의체 오찬 회동이 이날 모임의 명목이다. 중동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수급 불안과 물가 상승 등으로 인해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이날 모임은 정치적 지향을 떠나 민생경제를 위한 논의의 장으로 기대를 모았다. 국민들은 지난 2월 오찬 일정이 예정됐지만 오찬 당일 제1 야당 대표가 불참을 통보한 뒤 정치 투쟁만 난무했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날 모임은 상징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를 국민들에게 전달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모임 자체만으로 의미를 찾기에는 국내외 상황은 결코 녹록하지가 않다. 이날 회동은 이례적으로 야당 대표가 모두발언을 먼저 하는 파격으로 시작됐다. 이에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전쟁추경 성격과 안 맞는 예산 편성에 대한 지적을 비롯해 환율, 성장률, 부동산, 조작기소 국정조사 문제 등 다양한 이슈를 거론했다. 이 대통령이 “마치 대정부 질문을 받는 느낌”이라고 할 정도로 그동안 야권이 거론해 온 비판을 쏟아내는 방식이었다. 다소 경직될 수 있었던 분위기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추경 편성안 중에 야당이 지적한 부분 일부를 들어내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조금씩 풀려갔다는 후문이다. 메아리도 없이 일방적 비난으로만 끝나던 정치투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산성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대표는 이날 회동에서 거시적으로 중동전쟁으로 인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표면적으로는 여당은 야당과 협의의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고 야당도 협력과 조력 의사를 밝힘으로써 화답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국정운영 방향을 둘러싼 논란과 조작기소 국정조사 등을 놓고 벌이는 팽팽한 신경전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상태다. 여야 모두 상대가 바뀌면 협치가 가능하다는 입장일 뿐 협치를 위해 먼저 양보하겠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적 갈등의 조정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할 때 국내에선 정치가 거의 실종된 상태라 할 수 있다. 중동전쟁이 6주차로 접어들면서 경제적 타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8일 오전으로 예정된 미국의 이란 타격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거듭해서 주한미군을 거론하며 대한민국에 대한 불만을 표명하고 나서는 등 안보 상황도 심상치가 않다. 정치투쟁에만 몰두하던 여야의 대표들을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내몬 것은 이 같은 사태의 급박함이었을 것이다. 한차례의 만남으로 모든 사태를 해결할 순 없다. 하지만 이번 만남이 적어도 실종된 정치를 복원하고 초당적 협치의 싹을 틔우는 계기는 돼야 마땅하다. 차제에 정례화 방안이라도 논의하는 게 어떨까 한다.
호르무즈 ATM
기원전 3000년 수메르 지역 도시국가들은 서로 국경을 건널 때 세금을 매겼다. 이것이 통행세의 기원이다. 수메르 지역에는 세계 최초의 조세·회계 제도가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메르 점토판에 ‘세금 징수원’이란 직업이 등장할 정도니 설득력 있다. 기원전 1700년 만들어진 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법전에도 상인이 육로나 해상을 통해 국경을 넘을 때 세금 부과 근거를 명시했다고 한다. 고대 로마제국은 세계 최초로 체계적인 도로망을 구축한 국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여기서 비롯했다. 로마제국도 항구, 국경, 주요 도로 진입로 등 관문을 드나드는 상품에 대해 통행세를 징수했다. 통행세는 재정에 상당한 기여를 했으며, 제국의 지리적 관문 지배와 막강한 권력을 상징했다.통행세는 중세 시대 유럽 상업의 핵심 수로였던 라인강에도 이어졌다. 라인강을 관리하던 신성로마제국이 13세기 들어 쇠퇴하자 중세 유럽 영주들은 저마다 강변에 성이나 탑을 세우고 ‘통행세’를 걷었다. 심지어 상선 한 척이 라인강을 통과하려면 여러 차례 통행세를 내야 했다. 영주들은 불법적으로 과도한 세금을 요구했으며, 돈을 내지 않으면 공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강도 귀족’이란 말은 이때 생겼다.미국과 이란이 2주간 휴전에 합의했지만, ‘통행세 리스크’가 부상하고 있다. 이란은 전쟁 기간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한 통행료 부과를 추진해 왔다. 이란이 미국에 제시한 종전안에도 오만과 함께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서 통행료를 징수하고, 이 돈을 재건에 사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현지시간) ABC방송에 호르무즈 해협을 다니는 선박들에 대한 통행료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통행료 징수에 관해 “이란과 ‘공동 사업’을 추진할 수도 있다”고 했다. 미국과 이란 모두 ‘호르무즈 톨게이트’를 공식화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글로벌 해운·에너지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그러나 통행료 징수가 국제협약 위반이라는 논란도 만만찮다. 호르무즈 해협은 자연 해협으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라 선박이 멈추지 않고 통과할 권리인 ‘통과통항권’이 인정되는 구간이다. 인공 수로인 수에즈운하처럼 시설 유지와 관리 비용을 근거로 통행료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 호르무즈 해협을 새로운 ATM(현금자동입출금기)으로 활용해 각자 잇속을 챙기려는 미국과 이란의 모습에서 중세 ‘강도 귀족’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박세익의 뷰파인더] 영상 전성시대, 대한민국 사용법
‘아무리 그래봤자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을 누구나 입에 달고 살던 때가 있었다. 밥상머리나 술자리에서 “강대국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 멀었다”고 푸념할 때 쓰기도 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도 그랬다. 그때는 ‘세계화의 물결’ ‘세계 속에 우뚝 선 대한민국’이란 말을 신문, 방송에서 지겹도록 접해야 했다. 화려한 국가 비전을 내세워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러워 하라’는 억지 메시지는 먹혀들지 않았다. 정권의 치적을 ‘가스라이팅’하려는 속셈도 컸다. 오히려 ‘우리는 전혀 글로벌하지 않다’는 사실을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탄허 스님 등 여러 예언가들이 ‘한반도가 세계 문화와 정신의 중심지가 된다’고 했을 때도 ‘우물 안 개구리’들은 헛웃음만 지었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 꽃을 피운다’는 스님의 예언이 끝내 완성될지 알 수 없지만, 2026년 대한민국은 분명히 거대한 ‘K문화의 물결’을 세계로 분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군 복무를 마친 방탄소년단(BTS)의 광화문 컴백 무대가 꽃을 피웠다. 세계인들이 텔레비전으로, 휴대전화로 K팝 아이콘의 화려한 귀환을 축하하며 실시간으로 즐겼다. 대한민국 문화력이 세계의 중심이 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한데 BTS 소속사 하이브는 현장을 전파할 수단으로 ‘올드 미디어’가 아닌 넷플릭스를 선택했다. 가장 효율적으로, 가장 많은 세계인이 동시에 양질의 라이브 무대를 시청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 당연한 선택인 듯 보였다. 넷플릭스가 영화와 드라마 등 K문화 전파자로서 일등공신이긴 하나, 이를 두고 ‘K문화가 위기에 빠졌다’는 갑론을박도 일었다. 독점에 가까운 글로벌 OTT 플랫폼의 기세에 무늬만 화려한 K콘텐츠로 전락한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아서다. 영상 플랫폼의 독재자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유튜브가 단순한 영상공유 사이트의 모습으로 세상에 등장한 건 2005년. 잠재력을 간파한 구글이 2006년 10월에 16억 5000만 달러에 사들였고, 2008년 한국어 서비스가 시작됐다. 유튜브는 2011년 한국에서 수익을 내는 파트너 프로그램을 공식 도입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고화질에 라이브 스트리밍 기능까지 강화돼 이제는 지상파 방송까지 침몰시키는 세계 뉴미디어의 절대 강자로 폭풍 성장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넷플릭스나 유튜브는 돈을 버는 마케팅 조직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기술적인 어려움을 겪는 시청자, 소비자들은 홈페이지를 전전하다가 고객센터에 어렵게 전화 연결이 되어도 “국내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은 ‘재주를 잘 부리는 곰’이자 ‘구독료로 배를 채워주는 호구’다. 그러니 K문화를 향한 우리의 태도를 가다듬어야 한다. 세계의 박수에 취해 콘텐츠와 지식재산권을 해외 자본과 플랫폼에 빼앗겨서는 곤란하다. 콘텐츠를 잘 만들 뿐 아니라 시장을 장악하는 나라로 올라서야 하는 것이다. OTT와 유튜브를 포함한 소셜 미디어, 팬덤 플랫폼이 하나의 생태계로 확산하는 시대에 K문화가 확고한 영향력으로 뿌리를 단단히 다지지 않으면 영원히 소모품에 머물 수밖에 없다. 씨앗이 될 사례도 있다. 하이브의 자회사가 운용하는 플랫폼 ‘위버스’에서는 여러 기획사의 180개 팀이 넘는 국내외 아티스트들이 팬과 소통한다. 팬들이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즐기며, ‘공식 굿즈’까지 살 수 있는 국가 대표 글로벌 팬덤 플랫폼이다. 위버스 이용자는 매달 1000만 명 규모로, 팬덤에 국한되는 한계를 가진다. 유튜브 이용자 25억 명, 넷플릭스 가입자 3억 명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도 넷플릭스, 유튜브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서비스가 한국에서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그렇게 되려면 더 정교한 대한민국 사용법이 필요하다. 이제는 글로벌 플랫폼 종속을 줄이고, 저작권 수호와 불법유통 대응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발 영상 플랫폼에 세계인이 열광하는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부산행 KTX를 타는 외국인들이 줄을 잇는 이때, 지역성도 빠질 수 없는 덕목이다. K문화력이 지역경제와 연결돼 지역균형발전을 견인할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부산을 비롯한 여러 지역이 공연과 팬 투어, 국제행사 등과 연계돼야 상승 효과를 낸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에서 지방선거에 나선 주자들이 K문화를 수용할 K팝 아레나, 돔 구장 등을 경쟁적으로 공약하고 있는 건 반가운 일이다. 문화로 세계를 움직이고, 한국의 시선이 곧 산업이 되는 시대. K문화의 힘으로 플랫폼과 시장을 아우르는 온전한 설계도를 완성한다면, 한반도가 문명을 꽃피운다는 예언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김정화의 크로노토프] 소비되는 무대, 축적하는 문화
지난달, 3년 9개월 만에 완전체로 돌아온 BTS 광화문 공연은 그 자체로 무성한 담론의 궤적을 남겼다. 누군가는 국가적 성과를, 누군가는 공공성의 훼손을, 또 다른 이는 문화산업의 파급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여기서 정작 주목해야 할 지점은 공연의 이름보다 어떤 공간에서 어떤 언어로 정의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광화문은 단순한 광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의 갈등과 공공성이 교차해 온 상징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BTS 역시 현재의 한국이 세계를 향해 호출하는 강력한 문화적 기호다. 이 둘의 결합은 오늘의 정치와 행정이 문화를 어떤 상징체계 속에서 다루고 있는지를 드러낸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무대를 둘러싼 낯선 군중들은 같은 리듬과 감각을 공유하는 거대한 공동체였다. 일상의 위계가 느슨해지고 자유와 평등의 공유된 감각이 분출되는, 이른바 ‘코뮤니타스’의 현장이었다. 뜨거운 일체감은 우리 대중문화가 도달한 절정을 상징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필연적인 질문이 고개를 든다. “K팝이 BTS와 블랙핑크 두 팀에 제한되어 확산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의 지적은 뼈아프다. 지금의 성공이 실력이나 규모의 결과만이 아니라 “운 좋게 ‘케데헌’이 걸린 것”이라는 그의 냉정한 진단은 거대한 스펙터클 너머의 본질적인 물음을 남긴다. 한국 사회는 유난히 ‘1등’이라는 수식어에 집착한다. 문제는 최고만을 지향하는 문화는 다양성을 잠식하고, 결국 역동성마저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고는 우리네 공공극장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전국의 수많은 공공극장은 지역 고유의 문화적 얼굴이라기보다, 어느새 수도권 대형 기획사나 언론사 주최의 흥행 위주 공연을 반복 유통하는 ‘쇼윈도’로 변모했다. 공연 행정이 극장을 예술적 가치를 위한 ‘생산지’가 아닌 선별과 편성의 ‘소비지’로만 이해하는 탓이다. 공공극장의 책무는 이미 완성된 남의 프로그램을 고르는 안일함을 넘어 지역만의 예술적 사유를 길러내는 데 있어야 한다. 도시 문화정책의 소명은 예술의 열망을 일회성 열광으로 휘발시키지 않고, 지속 가능한 ‘상상의 공동체’로 치환하여 축적하는 과정에 있다. 공연장이 백화점식 문화상품의 진열장으로 전락하는 순간, 공공극장은 미래를 생산하는 동력을 잃는다. 일각에서는 외부에서 쇼핑해 온 공연상품을 배치하는 ‘유통형 큐레이션’을 상수라 떠받들며, 자생적 무대를 일궈내려는 노력을 하수의 역량으로 폄훼한다. 그러나 매출과 효율만을 앞세운 행정이 운영 철학을 대신한다면, 결과는 빈곤해질 것이다. 검증된 이름들만 반복 호출하는 안일함은 시민의 취향을 박제하고, 감각의 확장을 마비시켜 ‘취향의 빈곤’을 초래한다. 화려한 ‘시즌’의 숫자 뒤에서 정작 우리만의 ‘내일’은 찾을 수 없다. 스스로 창작 동력을 포기한 무책임한 행정적 체념만 남을 뿐이다. 수도권에는 다양한 문화적 대체 경로가 존재하지만, 지역에서 공공극장은 문화예술 생태계를 지탱하는 결정적인 통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산의 공공극장들은 단순히 공연을 올리는 장소를 넘어 예술생태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공적 토대로 기능한다. 하지만 그 문이 늘 같은 이름과 포맷에만 열릴 때, 지역은 예술을 생산하기보다 외부의 완성품을 소비하는 거대한 시장으로 고착된다. 이러한 취향의 획일화는 창의적 토양을 메마르게 해 결국 미래를 잠식한다. 오늘의 무대가 내일의 예술가를 기르지 못한다면, 도시는 문화를 소비만 하는 껍데기로 남을 뿐이다. 선거철이면 문화는 늘 ‘명품’, ‘고품격’, ‘세계적’이라는 수사로 손쉽게 소비된다. 정치가 진정으로 존중해야 할 목소리는 행사장의 박수가 아니라,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무대를 일구는 예술가들의 구체적이고 공적인 제안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형적 화려함보다 운영의 철학이다. 찰나의 갈채만으로는 부족하다. 실패와 축적을 견딜 수 있는 ‘반복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공공예술의 가치는 새로운 건물의 화려한 개관식보다, 지역 예술가와 시민이 그 안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시간으로 온전히 가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은 치적을 위한 수단도, 이해관계의 산물도 아닌, 미래세대를 위한 공공의 기반이어야 한다. 찰나의 열광이 교감의 순간인 ‘코뮤니타스’라면, 그 흥의 열기를 일상의 평온과 질서로 안착시키는 힘은 ‘예악’에 있다. 일찍이 허목이 〈악설〉에서 강조했듯이, 음악은 마음을 조화롭게 하여 공동체의 질서를 바로잡는 근본이다. 소리가 화평을 이루듯 공공문화 역시 단순한 유흥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다듬는 공적 실천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더 큰 건물을 세우는 일보다 더 오래 맞닿을 수 있는 가치를 일구는 일이 우선이다. 부산 문화행정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핵심 가치도 ‘스타의 힘’ 이전에 ‘관계의 힘’이어야 한다.
[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건물이 아닌 관계를 짓다. 뉴욕 뉴 뮤지엄의 확장
뉴욕 맨해튼 소호(SOHO) 인근, 마치 쌓아 올린 흰 상자처럼 미묘하게 비틀린 형태를 드러내던 미술관이 있다. 일본인 건축가 세지마 카즈요와 니시자와 류에의 건축 사무소, SANAA가 설계해 2007년 완공된 뉴 뮤지엄(New Museum)이다. 그리고 2026년 3월, 이 건물은 더 이상 단일한 오브제가 아니다. 건축가 렘 콜하스가 이끄는 OMA의 확장이 더해지며, 두 개의 건물이 하나의 건축을 이루는 형태로 재탄생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증축이라기보다 관계의 설계에 가깝다. 기존 건물 옆에 들어선 7층 규모의 신관은 면적을 확장하는 동시에, 건축적 해석의 깊이를 더한다. OMA는 이를 연장이 아닌 서로를 마주하는 카운터 파트로 해석했다. SANAA의 건물이 수직적으로 쌓인 추상적이고 다소 폐쇄적인 형태였다면, 새로운 건물은 기울어진 유리와 금속 외피를 통해 보다 개방적이고 유동적인 인상을 형성한다. 두 건물은 닮지 않았지만 서로를 전제로 존재하며, 그 긴장은 동시대 미술관의 복합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연결에 있다. 내부에서 두 건물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2층부터 4층까지 동일한 층고로 맞물리며 하나의 연속된 전시 장으로 작동한다. 관람자는 건물의 경계를 의식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을 따라 이동하게 된다. 이는 전시실이 방처럼 나뉘어 이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로 펼쳐진 공간을 경험하게 한다. 이 흐름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는 요소가 중앙 아트리움과 지그재그로 이어진 계단이다. 이 계단은 단순히 오르내리는 길이 아니라, 전시와 도시를 이어주는 수직의 광장에 가깝다. 유리 외벽을 통과한 빛은 내부로 들어와 시간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를 조금씩 바꾼다. 이렇게 이 건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전시 요소처럼 작동한다. 외부에서는 두 건물이 맞닿아 있으면서도 미묘한 간격을 두고 서 있다. 마치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두 대상처럼, 긴장감 속에서 함께 존재한다.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뉴욕에서는 이런 방식이 더욱 눈에 띈다. 하나의 완결된 건물로 보이기보다, 두 건물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며 도시 경험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기 때문이다. 미술관 프로그램 또한 전시 공간을 넘어 예술가 레지던시, 공공 프로그램, 레스토랑과 플라자가 결합되며 미술관은 생산과 교류의 플랫폼으로 재편된다. 이는 오늘날 미술관이 단순한 수장 공간을 넘어 동시대 문화의 실험실이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다. 결국 이번 확장은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미술관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건축은 뚜렷한 답을 내놓기보다, 두 건물 사이에 긴장과 흐름, 개방성과 밀도를 함께 놓아둔다. 관람자는 그 사이를 오가며 그 관계를 직접 경험하게 된다. 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건물을 요구한다. 그러나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맥락과 어떻게 관계 맺는가에 달려 있다.
[데스크 칼럼] 지방을 위한 부동산 정책은 없다
언젠가 이런 글을 쓸 날이 올 줄 알았다. 십수 년 전, 결혼하던 당시 기자는 1억짜리 전셋집에 들어가기 위해 몇천만 원 빚을 내면서도 ‘벌벌’ 떨었는데 주변에선 3억 원 가까이 되는 집을, 무려 2억 원 넘는 빚을 내 사라고 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당시 30%대 ‘살인적인’ 이자에 눌려 부모님이 평생 일군 것들이 단기간에 사라지는 걸 본 뒤로는 빚이 무서웠다. 맞벌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그만큼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조언을 뒤로 하고, 전셋집에 들어갔다. “집은 우리만 살기 좋으면 되지.” “집값에 베팅하는 거, 그거 투기야.” 몇 년 뒤 전셋집 바로 옆 동 집을 샀다. 전세가 싼 아파트였던 만큼, 집값도 비싸지 않았다. 학교, 교통, 신축, 아파트 브랜드는 고려 요소가 아니었다. “나만 좋으면 되지.” 그 뒤로 여러 번 집을 사 이사를 했지만, 한번도 차익을 남기진 못했다. 내내 팔리지 않아 10년 전 분양 받은 가격에서 몇 천 만원 더 싸게 팔고 나온 집도 있었다. 그 뒤로 회사에서는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집 하나 선택의 차이가 십수 년 뒤 자산 가치를 얼마나 벌려 놓았는지 보게 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국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집은 단순한 집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집을 사기 전에 부동산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임장’을 다니고, 책과 전문가 조언을 구하고, 몇 년간 시세 흐름을 살피는가 하면 주변 공급 상황과 대출 조건, 세금, 특별공급 혜택 등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꼼꼼히 따지며 생애 주기별 계획을 세웠다. 주택은 개인이 평생에 걸쳐 구입하는 물건 중 가장 비싼 것이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영혼까지 끌어다 넣는다고 할까. 당장 팔 것도 아닌데, 주택 가격의 오르고 내림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택은 의·식·주에 나오는 거주 공간, 즉 필수 소비재이면서 동시에 자산이기도 하고, 요즘에는 주택연금을 통해 은퇴 후 삶을 지탱해줄 노후 연금이기도 하다. 주택은 주거 공간을 소비 대상으로 해 임대차될 수도 있고, 자산으로서의 기능을 하며 매매될 수도 있다. 전자의 가격은 임대료가 되고, 후자의 가격은 매매 가격이 된다. 정부 부동산 정책이 어려운 이유는 사유재와 공공재 개념 사이에서 집 가진 사람과 집 없는 사람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며 적정 임대, 매매 가격을 유지하고, 이를 위해 공급까지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다주택자들이 전세라는 한국만의 독특한 제도를 통해 사실상의 임대주택 공급자 역할을 해왔지만 부작용이 많아지면서 임대주택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부가 필수 소비재라는 관점에만 함몰돼 시장 원리와 대척점에 선 단편적인 주택 정책을 펼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한 개인으로서 기자가 겪은 ‘좌충우돌기’를 털어놨다. 물론 필수 소비재 관점에서 커뮤니티 시설을 충분히 갖춘, 질 좋은 공공 임대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정책은 필수적이다. 서울과 지방의 집값 불균형 심화 또한 이재명 정부가 풀어내야 할 과제다. 부동산지인 김영학 본부장과 동아대 강정규 부동산학과 교수의 최근 분석에 의하면, 10년 전 2배 정도 되던 부산-서울의 집값 차이가 2026년 3월에는 4배로 껑충 뛰었다고 한다. 이 비정상적인 상황 앞에서 지방민이 느끼는 박탈감과 자산 불평등, 또 다른 지방 소외에 대한 서러움을 어루만지려면 ‘지방 미분양 해소’ 이상의 지방 부동산 대책이 필요하다. 부산에서는 ‘워케이션’이나 ‘세컨하우스’ ‘공유주택’ 관련 주택 수요들도 있다. 독일 등의 사례를 참고해 취득세, 양도세에 관한 세제 혜택이나 대출 규제를 지방 정부가 시장 상황이나 지역 여건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부동산 자치권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 정부의 ‘대출 규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같은 대책이 서울을 겨냥한다지만, 지역에서는 어떤 여파가 미칠까 노심초사하며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수도권의 과열을 막기 위해 쳐 놓은 그물이 부산 같은 지방의 주택 시장을 질식시키는 부작용을 수없이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회학자 마스다 히로야는 저서 〈지방소멸〉에서 젊은층이 지방을 떠나는 것은 일자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방에 남아도 집과 토지의 자산 가치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이 작용한다고 짚었다. 10년 전 서울 집 팔고 부산 왔더니 결국 자산 가치에서 손해를 봤다며 한탄하는 공공기관 직원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서는 2차 공공기관 이전도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정부는 두 배, 세 배가 아닌 제곱, 세제곱 단위로 벌어지는 서울-지방 간 집값 격차, 불평등 해소를 국가적 책무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그 정책의 근간은 수도권 집중 완화가 핵심이어야 한다.
[중앙로365] 주거권을 높일 시기
올해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시행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정책은 언제나 가장 선명한 공약이 된다. 주택 가격, 공급 물량, 규제 완화와 같은 키워드는 유권자의 삶과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선거 국면에서 제시되는 부동산 대책은 대체로 ‘얼마를 더 공급할 것인가’ 혹은 ‘어떤 규제를 풀 것인가’라는 양적·수단적 내용이다. 이렇듯 선거에서 부동산 정책이 전면에 나서는 현상은 부동산 정책이 형성되는 구조적 메커니즘과 연결되어 있다. 부동산 정책은 정치공학적으로 유의미하기에 선거와 강하게 결합된다. 정책 변화가 체감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선거의 주요 공약으로 꼽힌다. 세금, 대출, 분양 제도는 즉각적인 경제적 효과를 내고 단기간에 정책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 또한 부동산 관련 정책은 이를 통해 특정 집단의 지지를 빠르게 결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한 공약으로 선호되고, 양적 공급에 대한 정책 방안은 수치를 제시할 수 있어 유권자에게 직관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그런데 공약으로서의 부동산 정책은 선거 전략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지자체는 부동산 정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법적 의무가 있기 때문에 정책 방안인 공약은 자연스레 그 시행으로 이어진다. 헌법 제35조 제3항은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주거기본법 제3조는 ‘국가 및 지자체는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기본원칙에 따라 주거정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서 정하는 기본원칙은 다음과 같다. 소득수준·생애주기에 따른 주택공급과 주거비 지원을 통하여 국민의 주거비를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하고, 양질의 주택 건설을 촉진하며, 주택이 체계적·효율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하고, 주택시장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주택산업이 건전하게 발전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임대주택 우선 공급·주거비 우선 지원을 통해 주거 지원 필요 계층의 주거 수준을 향상시키고, 주거환경정비·노후주택 개량을 통해 기존 주택의 주거 수준을 높이며, 주거약자에 대해 안전하고 편리한 주거 생활을 지원하고, 저출산·고령화, 생활양식 다양화 등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야 한다. 이러한 기본원칙은 양적 주택 공급뿐 아니라 주거 수준의 향상 등 경험 측면에서의 정책을 천명하고 있다. 주거 수준, 즉 ‘주택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되는가’를 기준으로 보는 정책은 주거권에 기반한다. 주거권은 헌법 제34조 제1항과 제35조 제1항에서 기본권의 하나로 해석될 수 있다. 주거기본법 제2조는 “국민은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주거권을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주거권의 측면에서의 정책은 공급과 수요로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양적 공급과 달리 그 평가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정책 목표와 국민이 경험한 성과 사이에 간극이 발생할 수 있다. 유엔 사회인권위원회는 적절한 주거의 기준으로 점유의 법적 보장, 적절한 주거기반시설 및 서비스, 비용의 적정성, 거주 가능성, 접근 가능성, 적정한 위치, 문화의 적절성의 총 7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이는 주거권의 평가 기준으로서 유의미하다. 기존 주택공급 정책이 비용의 적정성, 거주 가능성을 위한 것이라 보면 임대차보호법, 도시정비법 등 관련 법령 개정으로 점유의 법적 보장과 적절한 주거기반시설, 거주 가능성을 위한 정책도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아직 문화의 적절성 측면에서의 정책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최근 국토연구원은 부동산정책이 정책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은 소홀했다는 반성과 함께 주거 복지정책 방향을 분석·제안한 바 있다. 주거 정책의 고도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기이다. 한부모 가정과 외국인 거주자의 증가와 함께 특히 800만 1인 가구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주거 정책이 필요하다. 2024년 기준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6.1%에 달해 역대 최대치이며, 1인 가구의 자가 점유율은 전체 가구 평균보다 현저히 낮아 불안정한 형태로 거주 중이기 때문이다. 사회·문화적 변화에 따른 주거 정책과 거시적인 양적 부동산 정책의 병행이 필요하다. 부동산 정책은 단지 정치적 수사가 아닌 국가와 지자체의 법적 의무이자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양적 공급 정책을 넘어 주거 불안을 해소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는 부동산 정책의 역사적 경험에서 도출된 교훈을 기반으로, 유권자의 주거권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구조적 정책 방안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김필남의 영화세상] 모두의 서재에서, 민주주의를 묻다
거장의 카메라는 서두르는 법이 없다. 프레더릭 와이즈먼은 느리지만 집요한 시선으로 사회를 지탱하는 기관 혹은 공동체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특히 그는 경찰서와 법원, 병원, 동물원, 학교, 미술관, 복지시설 등 기관의 내부로 파고들었다. 제도의 허점이나 모순을 끄집어내는 의도는 아니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이러한 접근은 “일반적인 재화와 용역을 누릴 여력이 없는 이들을 조력하는 곳”이라는, 다소 느슨하지만 일관된 기준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무미건조해 보이던 기관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시 읽힌다. 와이즈먼의 영화에는 자막도, 내레이션도, 감정을 고조시키는 배경음악도 없다. 카메라는 묵묵히 공간의 모든 것을 담아낼 뿐이다. 다소 불친절하고 어쩔 땐 당혹스러운 경험을 안기기도 하지만, 그것이 곧 이 작업을 단순하게 규정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와이즈먼은 정교한 편집을 통해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쓰듯 차곡차곡 서사를 쌓아 올린다. 건물의 간판이 자막을 대신하고, 방과 방을 잇는 복도가 장면 전환의 리듬이 되는 문법에 익숙해지는 순간, 관람은 몰입으로 변모한다. 바로 그 불편함이 관객을 수동적인 구경꾼에서 능동적인 관찰자로 끌어올린다. 이러한 와이즈먼의 탐구가 돋보이는 작품이 바로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이다. ‘누군가의 서재로부터’라는 뜻의 라틴어 원제 ‘엑스 리브리스(Ex Libris)’는 그의 카메라 안에서 ‘우리 모두의 서재’라는 공유의 가치로 확장된다. 영화는 20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92개 분관을 유기적으로 잇는 거대한 조직, 도서관이 어떻게 ‘지식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지 기록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신과 과학에 대한 도발적인 강연을 펼치지만, 카메라는 이내 시선을 돌려 도서관 콜센터의 일상을 비춘다. 구텐베르크 성경의 열람 여부를 묻는 전화와 책 예약 방법을 안내하는 담당자는 도킨스의 거창한 담론과 나란히 놓이며 동일한 무게를 갖는다. 지적 탐구와 세속적인 행정이 공존하는 그 자체가 도서관의 본모습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카메라가 비추는 도서관은 더 이상 책을 빌려주는 장소가 아니다.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 되고, 컴퓨터를 배우며, 노숙인들이 쉬어 가는 최후의 공적 보루로서의 풍경이 펼쳐진다. 또한 와이즈먼은 디지털 시대에 책의 존립 여부를 묻는 질문에 성급히 답하는 대신, 엘비스 코스텔로나 패티 스미스 같은 명사들의 강연과 디지털 소외 계층을 돕기 위한 직원들의 치열한 예산 회의를 교차시킨다. 화려한 결과물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 반복되는 크고 작은 ‘과정’이며, 그 과정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과 정확히 닮아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데워지는 것은, 거장이 건네는 시선이 인간을 향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음에도 수많은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소란스럽지 않음에도 잔상은 오래 남는다. 공간에 대해 그 어떤 것도 공부하지 않은 상태로 그저 ‘관찰’한다는 감독의 고백처럼, 그의 렌즈를 통과하고 나면 무심히 지나쳐온 제도의 풍경과 그 안에서 작동하는 삶의 결이 드러난다. 지난 2월, 60여 년간 카메라로 세상을 응시하던 프레더릭 와이즈먼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남긴 45편의 유산은 이제 한 시대의 작동 방식을 증명하는 거대한 아카이브가 되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영화의전당에서 4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전작 회고전은 평생 기관과 인간, 공동체를 탐구한 그의 세계를 온전히 대면할 마지막 환대의 시간이다. 카메라는 멈췄지만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주었던 도서관의 풍경처럼, 그의 영화는 여전히 우리를 향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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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최동원기념사업회와 함께하는 '최동원유소년야구단'
이강인 PSG·김민재 뮌헨, 나란히 챔스 8강 진출
이라크·콩고·튀르키예 등 월드컵 48개국 확정
이강인 17분 뛴 PSG, 챔스 8강행
잉글랜드, 유로 결승전서 훌리건 난동으로 ‘망신’
한송이&이순실 탈북 이유?… 현재 직업은?
'2TV 생생정보' 가발 장인 52년, 의정부 제일시장 웰빙나라우리가발…오래된일터행복한장인
배명호 결혼, 오는 11월 9일 미모의 일반인 여자친구와
'동상이몽2' 이상화, 강남 업고 남산 계단 폭풍 질주…'태릉선수촌 식 지옥훈련' 국대 클래스
‘임영웅쇼’ 전국 홀렸다…시청률 16.1%
박지현 아나운서 남편 스펙도 '어마어마'
류수영 이승윤 의외의 친분, 명지대 시절 차력쇼 화면 보며 '파안대소'
김미진 아나운서, 한석준과 이혼 왜 했나? '연애와 결혼은 달라'
AI 앵커·PD·MC까지… 방송 제작 현장 장악한 AI
진영·바로(차선우), B1A4 탈퇴한 이유
김혜림, 故 나애심 딸 '엄마 가고 나니 나이가 51세'
권지용(지드래곤), 상병진급 누락… 여전히 '일병'인 이유는
[속보]이 대통령, 부산 출마설 하정우에 '작업 들어온다고 넘어가면 안돼요'
부산 북구갑 가상대결 조국 29.1% vs 한동훈 21.6%…출마 여부 변수로
북갑 연일 요동…출마 굳히는 한동훈, 이 대통령 제동 건 하정우
‘부산 글로벌법’ 외면한 법사위 여당
[속보] 북항 돔 야구장 법적 기반 마련…항만공사법 개정안 국회 소위 통과
[영상] 전재수 “통일교 공세밖에 없나… 그럴수록 더 강해질 것” [부산시장 경선 주자 인터뷰]
북항 돔 야구장·K팝 아레나 법적 근거 마련…항만공사법 소위 통과
[속보] 이 대통령 '오늘도 휴전했다더니 폭격… 언제 정리될지 알기 어려워'
친노 막내로 정치 입문 ‘민주당 험지’ 부산서 전인미답 3선 성공 [전재수 경력·주요 시정 사업]
‘하정우 경쟁력은’ ‘한동훈-국힘 후보 단일화?’…‘빅매치’ 달아오르는 북갑
박형준·주진우, 경선 첫날 ‘전재수 때리기’ 총력
국힘 부산시당, 동구청장 강철호·북구청장 오태원 단수 추천
호실적도 못 막았다…삼성전자, 홍라희 3조 블록딜에 주가 ‘뚝’(종합)
'한국 가는 게 빠를 듯'…2시간 줄서서 먹는다는 대만 컴포즈커피
삼성 파운드리 수율 ‘또’ 말썽...다 잡은 퀄컴 TSMC로 놓치나
해수부, HMM 부산 이전 지원 TF 본격 가동
포스코, ‘직고용’이라더니 결국 ‘따로 고용’
[속보] ‘북극항로 특별법’ 국회 해수법안소위 통과…국회 첫 문턱 넘어
호르무즈해협에 갇힌 선박들 먼저 빠져나올 듯
양도세 중과 유예, 5월9일까지 토지거래허가 신청분까지 적용
매대도 고객도 '썰렁'… 홈플러스 정상화 언제쯤
한화솔루션 유상증자 해명에 주주들 “ATM기 취급 말라” 반발
국산 최초 전략급 무인항공기, 부산서 출고식
레이카운티 3채, 무순위 청약 재분양… 당첨 땐 수억 차익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4월 9일(음 2월 22일)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4월 10일(음 2월 23일)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4월 11일(음 2월 24일)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4월 12일(음 2월 25일)
“한국 영화, 지금이 ‘골든 타임’…이대로는 미래 없다”
[부산 전시] 이번 주에 뭐 볼까?[2026년 4월 1일~ ]
전지현, '군체'로 11년 만 스크린 복귀…연상호 '연니버스' 기대감↑
50년 공직생활 뒤 시인·화가의 삶…하계열 전 부산진구청장 세 번째 그림전
‘신(辛)조선’으로 만난 한국 청년들의 1인칭 기록
머지의 ‘다큐 레이팅’ 프로젝트가 던지는 예술적 성찰
부산문화, 오페라 ‘흔들리며 지는 꽃’ 선보여
제43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