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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K문화 성공이 주는 도시 정책의 메시지
요즘 다양한 미디어와 채널에서 전 세계인이 한국문화를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접한다. 과거에는 콘텐츠 소비에 그쳤다면 이제는 K라이프스타일 자체가 하나의 글로벌 트렌드가 된 듯하다.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인처럼 살아보는 여행 코스를 체험하는 데일리케이션이 열풍이다. 치안이 안전하고 교통이 편리하며 밤낮으로 즐길 거리가 많다는 것도 널리 알려졌다. 세계인에게 한국의 각종 문화 콘텐츠와 제품이 각광을 받는 지금, 문화처럼 도시와 주거 정책도 글로벌 표준으로 거듭날 방안은 없을까.
우리나라는 문화 강국으로 세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지만 내부로 눈을 돌리면 지역 불균형 문제와 주거 불안을 안고 있다. 우리나라는 서울 등 수도권 인구가 50%를 넘어섰다. 수도 초집중형 국가인 일본은 수도권 인구가 전체의 30%, 프랑스는 파리권 과밀 인구가 국가 인구의 20%에 이른다. 우리는 선진국 중에서도 집중도가 높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수도권 집중이 고착화 구조가 아니라 전환 가능한 중간 단계에 머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상태이기 때문에 한층 다양한 균형발전 정책이 필요하다.
균형발전 정책과 함께 늘 이슈가 되는 것은 주택 공급 정책에 대한 논의다. 정부는 3기에 이르는 신도시 개발과 노후 주거지 정비사업을 통해 꾸준히 서울과 수도권 주택을 늘려왔음에도 수도권은 공급 부족인 상태이고 지방은 오히려 공급 과잉인 상태다. 그동안의 주택 공급 정책은 단기간에 양적 공급을 늘리려는 데 초점이 있었고 결국 주택 공급의 딜레마는 어디에 얼마나 공급할지 문제에 집중되며, 이는 곧 국가 균형발전 논의와 연결된다.
사실 주택 공급 정책과 균형발전 두 정책은 목표부터 엇갈릴 때가 많았다. 집값 안정을 위해 수도권의 공급을 늘리면 인구와 자원이 더 서울로 집중되고, 지방 발전을 위해 수도권 규제를 강화하면 서울 집값 급등 등 부작용을 감내해야 한다. 수도권 주택난 대응과 지방 살리기 사이에 우선순위가 엇갈릴 때마다 충돌이 표면화되었다. 충돌 원인은 주택 공급을 위한 정책의 단기성, 중앙집권적 정책 결정 구조, 수도권 집중 근본 요인의 잔존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점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국가 차원의 공간 정책과 시장의 힘이 충돌하며 정책 목표 달성이 어려웠다.
그런데 K컬처의 전 세계적 성공은 도시주거 정책 설계에 통합적 힌트를 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대중음악이 세계 주류시장에서 성공하기란 요원해 보였다. 여러 장벽이 존재했는데, 글로벌 시장 진입장벽이 높았고 자본과 인프라의 부족 등이 문제였다. 2000년대 이후 이런 장벽들은 창의적 전략으로 무의미해졌다. 디지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였고, 열성적인 팬덤과 커뮤니티도 자발적 마케팅 주체로 활약하여 자본 부족을 보완했다. 글로벌 협업과 현지화로 제작 규모와 품질을 향상시켰다. 지역 기반 축제와 인프라 확충으로 젊은 해외 팬들을 지역으로 유인했다. 정부의 지원 정책과 민간 투자의 혁신적 시스템으로 민관의 협력적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 외에도 K컬처 성공의 이면에는 전략적 조율이 있었다. 국내 시장을 등한시하지 않되 해외를 향한 혁신을 계속하며 로컬과 글로벌 요소의 전략적 결합을 이루었고, 국내외의 다원화된 허브를 형성하고 국내 각지에 특화된 행사와 시설을 마련했다. 생활문화와 산업의 결합으로 문화 향유를 관광 유통 제조산업과 연계함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 K컬처 성공 전략은 상충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는 통합적 사고와 전략적 조화의 산물로서, 이는 곧 도시와 주거 정책에도 통섭의 지혜를 적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 K컬처가 서울 일극 체제를 완화하고 여러 국내외 거점을 활성화했듯 주택·도시 정책도 다중 중심지 전략을 취할 수 있다. 둘째, 주택 공급에 지역의 생활문화와 산업을 결합하여 도시 정체성을 바꾸고 지속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 셋째, 다양한 주체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중앙정부, 지자체, 주민, 민간 기업의 공동 목표를 설정하고 비전을 실행할 수 있는 중심기관을 마련한다. 마지막으로 K컬처가 콘텐츠의 꾸준한 품질관리로 결국 성공한 것처럼, 주거의 질과 안전을 중시하고 주민들이 자부심을 느낄만한 지역 공동체를 강화하는 것이다.
K컬처가 보여준 유연하고 창의적인 생태계 구축의 사례는, 주택 공급 확대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 통합에 값진 통찰을 준다. 주택 정책이 곧 지역 균형 정책이고 지역 발전이 곧 주거복지와 연결된다는 관점으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한국 문화의 세계적인 성공에서 해답을 찾는다면 우리의 주거 및 도시 정책 역시 글로벌 표준이 될 날이 멀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2026-02-0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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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세대가 만나면 도시가 자란다
지난달 스페인을 여행하며 마드리드 구시가지 센트로 지구의 한 라이브 음악 카페를 찾았다. 오래된 영화관을 개조한 이곳에는 매표소와 팝콘 가판대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주말 낮, 40대 밴드가 무대에 오르고 20대부터 60대까지의 사람들이 함께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이 공간을 영화관으로 기억하는 이들과 카페로 기억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같은 장소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을 지닌 세대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이 공간이야말로 이 도시가 지닌 힘의 정체였다.
부산 외곽을 운전하다 발견한 대형 실버타운은 이 장면의 정반대에 가까웠다. 노인을 위한 세심한 동선, 편리한 시설, 고급스러운 외관.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었지만, 사방이 대로와 도시 고속도로로 둘러싸인 그곳은 부산 시민의 일상적 생활권과는 분리돼 있었다. 부산시는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시니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부터는 ‘부산형 시니어 적합 직무 채용 지원사업’을 통해 60세 이상을 고용한 기업에 인건비를 지원하고, 각 구마다 노인복지관을 운영하며 교양·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도시에서 자연스러운 행정 대응이며 필요한 절차다. 그러나 이 정책들은 멀리서 바라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있다는 점이다. ‘60세 이상 전용’, ‘노인복지관’, ‘경로당’이라는 명칭은 공간과 사람을 구분한다. 세대 분리는 정책 집행을 위해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도시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분리는 한 세대의 경험과 기억이 다음 세대로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경로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세대 간 교류가 사라지면, 도시가 품어야 할 다양성 역시 함께 줄어들 것이다.
1505년 폴란드에서 제정된 ‘니힐 노비(Nihil novi)’ 법은, 공동의 동의 없이는 새로운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훗날 ‘우리에 관한 일은 우리 없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요약되는 이 원칙은 참여와 소통이라는 정치의 기본을 일찍이 제시한 사례다. 부산의 시니어 정책에도 이 원칙은 유효하다. 노인을 ‘분리’하고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여러 세대가 함께 기획하고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 생활권에 필요하다. 각 연령층을 위한 독립된 지원 제도는 이미 충분히 마련돼 있다. 이제는 세대가 출발선부터 함께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예컨대 노인복지관과 도서관, 청년 문화공간이 각각 따로 존재하는 대신, 하나의 생활권 안에서 동선과 기능을 의도적으로 겹쳐 설계하는 것이다. 오전에는 노년층의 프로그램이 중심이 되고, 오후에는 학생과 청년들이 드나들며, 저녁에는 세대가 섞여 머무는 공간. 세대를 구분하는 간판 대신 시간과 사용 방식이 공간을 나누는 구조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의 목적과 언어가 특정 세대에만 과도하게 기울어 있지 않은지, 이용 방식이 어느 한쪽의 편의만을 전제로 설계돼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는 일이다. 지나치게 외국어가 난무하는 환경, 특정 연령층의 사용 방식을 기준으로 한 안내와 동선은 의도치 않게 다른 세대를 배제한다. 특정 세대를 위해 새로운 건물을 짓거나, 특정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는 세대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같은 공간을 쓰고, 같은 동선을 지나고,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는 환경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생각할 때다.
부산은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이들이 ‘언젠가 돌아오고 싶은 도시’로 꼽는 곳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부산만의 도시적 감각 때문이다. 이 감각은 오랜 세월 부산을 일궈온 어른 세대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가 만나서 함께 어울릴 공간은 충분하지 않다. 이것이 지금의 부산이 안고 있는 모순이다. 세대 간 소통의 통로가 막혀 있으면 아무리 다양한 세대가 공존해도 도시는 그 힘을 활용하지 못한다. 위로부터의 정책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아래로부터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이다. 부산의 생활권 안에, 세대가 일상적으로 교차하고 각자의 기억이 공존하는 장소가 필요하다.
부산의 미래는 ‘노인을 위한 도시’도, ‘청년을 위한 도시’도 아니다. 서로 다른 세대가 같은 공간에서 만나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배우는 도시다. 마드리드에서 만난 카페가 보여준 역동성을 부산의 골목에서도 찾고 싶다. 20대와 30대만 모인 ‘유행을 좇는 공간’이 주는 활기와는 다른, 세대가 섞일 때만 생기는 온기를, 오래된 기억과 새로운 꿈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공간을. 그것이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싶은 부산을 만드는 길이다.
2026-02-0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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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의 가치' 사이
새해 벽두부터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다.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사건들은 단순한 개별 국가 간 갈등을 넘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되어 온 국제질서 전반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지경학적 위기와 지정학적 대립이 맞물리며 우리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거대한 전환기에 서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는 한마디로 파격적이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현지에서 체포해 미국 법정에 세우는 초강수를 두었고, 그린란드를 영토로 확보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해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동북아로 시선을 돌리면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이 정면으로 맞서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장기화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러 접근, 그리고 높아지는 북한의 대남 공세 수위는 우리의 안보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격변의 흐름을 관통하는 핵심 기류는 무엇인가.
먼저, 기존 다자주의 질서에 대한 미국의 근본적 회의와 반발이다. 1945년 이후 국제사회는 국제연합(UN)을 중심으로 국제법과 다자협력 체제를 구축했고, 이는 자유무역과 평화를 제도화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 질서 아래에서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등은 안정적인 안보와 무역 환경을 토대로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특히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내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활용해 각종 특혜를 누리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미국의 패권에 대한 본격적인 도전으로 이어지자 미국 내부에서는 기존 국제규범이 더 이상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신이 확산됐다. 국제법과 다자협정이 오히려 미국의 전략적 선택을 제약하고 경쟁국의 부당한 이익을 방치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이러한 분노와 회의의 집약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국제법은 필요 없다”고 단언한 발언은 더 이상 규범과 외교적 수사에 얽매여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다음은 국제질서의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세력에 대한 미국의 타협 없는 견제다.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 체포는 원유 결제 대금을 달러화 대신 중국 위안화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차단하려는 의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린란드에 대한 집착 역시 같은 맥락이다. 기후 변화로 열리는 북극항로는 미래 핵심 물류 통로가 될 가능성이 크며, 이를 선점하려는 중국과 러시아를 지금부터 차단해야 현상 변경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여기에 그린란드에 매장된 막대한 희토류는 중국의 ‘자원 무기화’ 전략을 무력화할 전략 자산이기도 하다.
이러한 미국의 인식 변화는 동맹 체제에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맹조차 미국 국익의 하위 개념으로 재편되고 있다. 과거에는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시장경제라는 공통 가치가 동맹을 결속시켰지만, 트럼프의 미국에서 동맹은 비용과 편익으로 계산되는 거래 관계에 가깝다. 미국의 전략에 보조를 맞추지 않는 동맹국은 언제든 특별 대우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냉혹한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일찌감치 읽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적 신뢰를 구축하며, 안보 관련 법 개정과 동맹 현대화 요구에 신속히 화답하고 있다. 관세 협상 역시 빠르게 합의와 실행으로 옮기고 있다. 물론 일본 내부에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최강국 미국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반하는 행동으로 미일 동맹이라는 핵심 가치를 희생할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국제정치는 냉엄하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영역이다. 형식에 그친 한미 간 신뢰 구축 제스처는 오히려 불신을 키울 뿐이다. 최근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 대한 미국의 공개적 불만 표명이나 갑작스러운 25% 관세 부과 언급 역시 미국의 ‘우선주의’ 정책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양보 없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국제 정세 변화로 더욱 중요해진 ‘한미동맹의 가치’ 사이에 서 있다. 고약한 것은 전자를 만족시켜야 후자가 유지되고, 전자를 거스르면 후자가 위태로워진다는 점이다. 동맹의 가치를 낮게 본다면야 별개겠지만, 그것은 국가 운명을 건 거대한 모험이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닌 현실주의에 입각한 냉정한 판단이다.
2026-02-0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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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블라디보스토크 하늘길 빨리 다시 열려야
발해의 동쪽 끝이었던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는 예부터 한반도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근대에 들어와서도 일본이나 미국보다 앞서서 한인 디아스포라가 처음으로 형성된 곳이며, ‘대한국민의회’라는 이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가장 먼저 선 한국 독립운동의 북방 기지였다. 북방을 떠도는 유이민의 아픔을 노래한 일제 강점기 시인 이용악, 그의 시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의 ‘우라지오’도 블라디보스토크를 말한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이름은 러시아어로 ‘동방을 점령하라!’라는 뜻으로, 1860년부터 러시아 제국 정부가 기울어가는 청나라를 겁박하여 차지하기 시작한 땅이었다. 도시로 성장한 건 146년 전인 1880년으로, 2018년 12월부터는 하바롭스크를 제치고 러시아 연방의 ‘극동 연방 구’의 ‘지역 수도’로 발돋움했다. 극동개발과 아시아 중시정책의 하나로 푸틴 행정부가 2015년부터 ‘동방 경제포럼’을 열고 있는 이 도시는 앞으로 남북문제가 다시 풀리고 부산~북극항로가 현실화될 경우 우리에게 더욱 중요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블라디보스토크와 부산 사이에 하늘길이 4년째 끊어져 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이후에 줄곧 그렇다. 직항로가 닫혀있으니 사람과 물자의 왕래가 쉽지 않아서 재외국민, 경제인과 상인들, 유학생, 관광객들의 고충과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011년부터 해마다 부산에서 열리던 부산~극동 러시아 경제포럼도 이래서 ‘개점휴업’상태다. 이전에는 이렇게 냉랭하지 않고 사이가 좋았다. 비행기로 두 시간이면 오가는 가까운 거리인데다 편 수가 많을 때는 주 12회나 다녀서 서로 왕래가 잦았다. 1992년 6월에 두 도시 사이에 이미 자매도시 협정이 맺어졌고, 협정 체결 20주년 축하행사가 부산시 대표단과 문화공연단이 참석한 가운데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성대하게 열리곤 했다. 9288km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떠나는 블라디보스토크 역 근처에 앉아있으면 곳곳에서 부산 사투리가 들렸으며, 부산의 대형 병원이나 서면 의료단지도 러시아 환자들로 북적였다. 러시아엔 종합검진, 성형, 암 치료, 뼈 수술 수요가 많다. 이들이 예전의 독일이나 이스라엘에서 한국으로, 특히 높은 의료 수준과 비교하여 치료비와 물가가 싸고 산과 바다가 같이 있는 부산으로 많이 왔기 때문이다.
물론, 하늘길이 막혀있는 지금 상황에서도 배로는 연해주를 오갈 순 있다. 그리고 중국이나 몽골로 돌아서 가면 항공이나 기차로도 러시아 입국이 가능하다. 그러나 배는 멀리 강원도의 속초나 동해시를 거쳐야 하는데다 멀미, 독과점요금, 불편한 출항 일정 등으로 이용하기가 쉽지 않고, 우회 항공로도 비용, 시간, 편의성 면에서 문제가 많긴 마찬가지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는 지인 올가(55)는 딸이 열성적인 한류 팬이라서 중국의 상하이를 거쳐 모녀가 함께 부산을 가끔 찾는다. 그런데 항공편 때문에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직항이 있을 때보다 항공료도 2~3배 비싸고 환승 대기시간도 길어요. 한국정부의 서방 제재 동참, 러시아 정부의 한국에 대한 ‘비 우호 국가’ 지정, 그런 과거를 넘어서 이젠 직항로를 복구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라고 한다. 그렇다면, 누가 하늘길을 계속 막고 있을까? 러시아 정부는 처음부터 항공망 폐쇄에 반대했다. 답은 대한민국이다. 일본 정부도 우리와 비슷하지만, 실리에 밝은 일본은 그래도 작년 초부터 크렘린과 물밑에서 직항 재개를 활발히 논의 중이다. 일본 방문을 원하는 러시아인들을 위해 올해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일본 비자 발급 센터를 다시 연다는 보도도 있다. 이렇게 서로 다투면서도 협력할 일을 찾아 협조하는 게 맞지, 아예 길을 계속 막고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 한번 정한 정책이라고 끝까지 밀고 가는 아집과 고집이 문제를 계속하여 악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에 러시아 측에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2023년 12월, 2024년 6월, 지난 1월 15일 등 세 번에 걸쳐 한러 관계의 실용적 접근과 회복을 강조하였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의아한 건 ‘민생 정권’이라는 현 정부의 태도인데,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직항로 폐쇄만은 앞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붙들고 있을 심산 같다. 이러다 보니 지난해 10월 28일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특이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동북아평화연대 등 시민단체, 동포단체 등 128곳이 공동의 이름으로 “재외국민과 고려인 동포 15만 명의 이동권을 침해하지 말라!”라며 한·러 직항 항공편 재개를 직접 촉구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까지도 정부든 국회든 이에 대해 들은 척 만 척한다. 일단 막힌 하늘길부터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경제, 사회문화, 교육 등 여러 방면에서 부서진 두 나라 관계에 다시 핏기가 돌 것이다. 아울러 우리가 원하는 북극항로도 한반도 쪽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설 것이다.
2026-01-2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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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돈로주의'와 한국의 외교안보
2026년 새해 벽두 국제사회를 경악시킨 두 개의 사건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연달아 발생했다. 하나는 남미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체포해 미국으로 압송한 사건이며, 다른 하나는 북극해에 위치한 덴마크의 자치령 그린란드를 병합하려는 움직임이다.
먼저 1월 3일 발생한 베네수엘라 사태다. 미국은 주권 국가인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마약 밀매 및 국제 범죄 연루 혐의를 들어 베네수엘라 영토 내에서 신병을 확보한 뒤 미국으로 압송했다. 미 법무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를 ‘마약 테러리즘’ 혐의로 기소해 온 상태였으며, 이번 조치는 이러한 사법 절차를 근거로 단행됐다. 베네수엘라는 남미의 대표적인 반미 국가이자, 2000년대 초 이후 중국이 추진해 온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중남미 주요 거점 국가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베네수엘라 작전의 핵심은 서반구를 미국의 배타적 세력권으로 설정하고 외부 강대국, 특히 중국이 이 지역의 상업·자원·핵심 자산에 관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데 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를 재삼 밝히며 무력 사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병합 이유로는 러시아 해군을 차단할 수 있는 교두보, 희토류와 석유 등 풍부한 천연자원, 그리고 북극항로와의 연계를 제시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에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덴마크는 강하게 반발했다. 덴마크를 선두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이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하자, 미국은 이에 대응해 10~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NATO 동맹국 간 긴장은 급격히 고조됐다. 이후 1월 21일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을 계기로 덴마크의 통치권을 형식적으로 존중하는 선에서 그린란드 내 미군 기지 건설과 안보 협력 강화를 포함한 미국 주도의 합의 틀이 마련되며 사태는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
이렇듯 서로 다른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일어난 이 두 사건은 미국의 서반구에서의 우선적 권리와 영향력을 주장해 온 전통적 먼로주의(Monroe Doctrine)를 트럼프식으로 재해석한 이른바 ‘돈로주의(Donroe Doctrine)’의 작동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즉 미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특정 국가의 지도자도 단독 행동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또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지역에서는 주권이나 동맹 관계 역시 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통상 새 행정부 출범 시 작성되는 미국의 최상위 외교·안보 전략 문서인 국가안보전략(NSS)과 이를 군사적으로 구체화한 문서인 국가방위전략(NDS) 역시 트럼프의 ‘돈로주의’를 토대로 구성돼 있다. 2025년 12월 4일 발표된 ‘2026 NSS’는 서반구와 인도·태평양에 우선순위를 두고, 다른 지역은 미국의 핵심 이익과의 연계성에 따라 관여 수준을 조정하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다. 또한 동맹국도 자동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방위 능력과 산업·기술 역량, 공급망 안정성 등 실질적 기여 능력을 기준으로 평가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한국에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어 1월 23일에 발표된 ‘2026 NDS’는 북한, 특히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를 포함한 미사일 전력이 한국과 일본, 나아가 미국 본토에도 위협이 된다고 평가했다. 반면 북한 비핵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동아시아를 넘어 인도·태평양 차원에서의 역할 분담은 보다 분명히 했다. 즉 한국의 국방 능력을 높게 평가하면서 북한 억지의 주도적 책임자로 설정했고, 일본은 유엔사 후방기지를 포함해 중국 억제의 전방기지로 규정했다. 그리고 미국의 역할은 ‘결정적이지만 제한적인 지원’으로 조정됐다. 이는 한반도 방어의 기본 구조를 ‘미국 주도’에서 ‘한국 주도·미국 지원’ 체제로 재편하겠다는 전략적 방향 전환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의 ‘돈로주의’가 구체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이재명 정부는 한반도 안보의 ‘1차 책임 국가’라는 역할을 실질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방위 부담을 전담한다는 차원을 넘어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위기관리와 억지, 나아가 한반도 평화 추진의 주체로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외교·안보 전략 전반을 재설계할 수 있는 한국의 역량은 물론, 그에 상응하는 전략적 자율성의 인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조건들이 한미 간에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다면, 트럼프의 ‘돈로주의’가 요구하는 동맹의 현대화는 협력의 심화가 아니라 위험의 일방적 이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26-01-2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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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블록체인은 누구의 편이어야 하는가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이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선언에 가까웠다. 중앙화된 금융 시스템, 소수의 기관과 권력자가 통제하는 화폐와 신용의 구조를 해체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된 경제 질서를 만들겠다는 약속이었다. 은행 계좌가 없어도, 국경을 넘지 않아도 사회적 배경이나 자본의 크기에 상관없이 모두가 같은 규칙 아래에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기대했던 블록체인의 미래였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그 이상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최근 각국에서 논의되는 규제의 방향을 보면, 새로운 금융 질서를 만들겠다는 기술의 약속보다는 오히려 기존 금융 기득권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열린 참여, 개방된 경제 담긴 블록체인
2026년 현재 규제 흐름 속 점점 왜곡
조각투자 등 디지털 자산 인허가 논의
기존 기득권·금융권 중심으로 설계
이런 흐름 사회 불평등 문제와 맞물려
기술이 금융 민주화 도구로 기능해야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은행 컨소시엄으로 제한하고 지분도 50%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규제 논의, 조각투자 거래소 지정 과정에서 수년간 기술 실증을 수행해 온 기업이 배제될 위기에 놓인 사안, 디지털 자산 관련 인허가 구조 등 최근 이어지는, 이른바 핫한 규제 논의의 중심에는 기득권 금융권이 자리하고 있다.
블록체인 산업을 개척해 온 수많은 기업과 개발자, 그리고 개인 투자자들은 오랜 기간 불확실성과 규제 공백 속에서도 이 생태계를 지탱해 왔다. 이들이 투자한 시간과 비용을 합하면 천문학적인 규모가 될 것이고,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자본력이 부족하다”, “기존 금융과 맞지 않는다” 등 소위 기득권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제도권에서 배제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이는 기술이 약속했던 공정성과는 분명 거리가 멀다.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본질은 탈중앙화와 참여의 개방성에 있다. 누구나 노드를 운영할 수 있고, 누구나 검증자가 될 수 있으며 누구나 거버넌스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구조는 기존 금융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철학 위에 서 있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도, 단일 발행 주체도 없이 작동하는 최초의 화폐 시스템이었고, 이더리움은 전 세계 개발자들이 함께 규칙을 만들고 수정해 가는 거대한 실험장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제도화의 방향은 이 기술을 다시 중앙화된 허가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역설은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하고 가장 먼저 도전했던 주체들이 성공의 열매를 나누는 자리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점이다. 수년간 적자와 불확실성을 감내하며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술을 고도화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만들어 온 개척자들이 이제 와서 기득권 금융이 중심이 되어 만든 기준에서 보았을 때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배제된다면, 이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에도, 혁신의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결국 기술이 만들어 낸 가치를 누리는 것은 가장 늦게, 가장 안전하게 진입한 기득권이 되고, 진짜 혁신의 주체는 주변으로 밀려나는 구조가 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흐름은 블록체인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기존 질서에 의해 억눌려 왔던 대중의 불만과 분노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자산 불평등, 기회 불균형, 세대 간 격차는 정치와 사회 전반을 흔들고 있으며 디지털 기술과 금융 혁신은 그 해법으로 기대를 받아 왔다. 그런데 그 혁신마저 다시 소수의 손에 집중된다면 블록체인은 또 하나의 엘리트 금융 시스템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가 은행이 되어야 한다는 일각의 규제 논의는 원화스테이블코인의 리스크가 발행 주체의 업종이나 성격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간과한 채, 기존 금융권의 막연한 걱정을 기반으로 신종 산업에 무혈 입성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이야말로 블록체인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이 기술을 만들고 있는가. 규제는 필요하다. 투자자 보호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혁신의 진입 장벽이 되고, 새로운 기득권을 만들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이 처음 약속했던 것은 ‘안전한 독점’이 아니라 ‘열린 참여’였다.
2026년은 디지털 자산 산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중요한 시점이 될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토큰화된 실물자산, 온체인 금융 인프라는 이제 더 이상 실험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다. 이 변화의 방향이 다시 한번 블록체인의 근본정신, 즉 탈중앙화, 개방성, 참여 민주주의로 조정되기를 기대한다. 기술이 다시 대중의 편에 서고 개척자와 도전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는 구조를 만들어 갈 때, 디지털 자산은 비로소 금융의 민주화를 향한 진정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26-01-2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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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쉬었음'이라는 응답의 뜻
영화 ‘노매드랜드’에는 일자리를 잃은 중년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스스로 유랑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선택지가 사라진 끝에 도로 위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주인공들은 “자유로운 삶”이라는 말로 자신을 설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해고, 구조조정, 자동화, 그리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사회의 냉정한 판단이 자리한다. 최근 대한민국의 청년 현실을 다룬 몇 가지 뉴스를 읽다가 이 영화가 떠올랐다.
지난해 20~30대 ‘쉬었음’ 인구가 7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14일 발표한 ‘2025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 조사를 보면 그렇다. 여기서 ‘쉬었음’이란 건강 문제나 학업, 육아 등의 명확한 사유 없이 ‘그냥 쉬었다’고 응답한 경우를 의미한다. 이 수치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보다도 많으며,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3년 이후 역대 최대치라고 한다. 단순한 경기 침체의 여파로 보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숫자다. 일자리가 부족한 수준을 넘어, 청년층의 구직 의욕 자체가 꺾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 현상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정부는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을 돕기 위해 맞춤형 고용 매칭, 진로 상담 강화, 청년 고용 지원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쉬었음’ 인구의 급증은 이미 청년 비활동이 더 이상 개인의 선택이나 일시적 방황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구조적 현상이며, 사회가 청년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신호다.
그렇다면 청년들은 왜 쉬어야 했을까? 전문가들은 여러 이유를 제시한다. 경력과 스펙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용 구조,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부족한 일자리,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극단적인 격차,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환경. 어떤 분석을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제는 이 모든 조건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들은 ‘노력하면 된다’는 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장에 던져졌다.
‘쉬었음’은 흔히 의지의 문제로 오해된다. “눈을 낮추면 일자리는 있다” “힘들어도 버텨야 경력이 된다”는 말은 여전히 쉽게 던져진다. 그러나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합적인 양상이다. 청년들은 낮은 임금과 과도한 노동 강도를 감수하며 시작한 일자리가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목격했다. 어쩌면 선배 세대의 좌절을 보며, ‘일단 들어가면 된다’는 공식이 깨졌음을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불안정한 일을 붙잡기보다 차라리 멈추는 선택을 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혹은 기성세대가 생각지 못한 다른 복합적 문제로 인해 청년세대의 사고방식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사실은 청년들의 ‘쉼’은 회복이 아니라 유예에 가깝다는 점이다. 사실, 쉬는 동안에는 불안이 쌓이고, 시간은 스펙 공백으로 환산된다. 냉정한 취업시장은 이 공백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곤 한다. 그러나 정작 진지하게 질문해야 할 것은 ‘왜 이토록 많은 청년이 동시에 멈춰 서게 되었느냐’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한 세대가 집단적으로 쉬고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고장이 아닐까. 이제는 개인이 아닌 전체를 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청년의 ‘쉬었음’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는 이제 방향을 바꿔야 한다. 더 많은 취업 프로그램을 만들고, 더 촘촘한 상담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청년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진입할 만한 시장인가에 있다. 불안정한 고용,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경력 구조, 생계조차 위협받는 임금 수준 속에서 “일단 들어가라”는 조언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쉬었음’을 줄이겠다는 목표는 곧 일자리의 질을 바꾸겠다는 선언이어야 한다. 청년이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의욕과 태도만을 문제 삼는 접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청년이 노동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청년을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다. 청년의 공백을 ‘낙오’가 아니라 구조적 신호로 읽어내는 감각, 쉬는 시간을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제도의 결함으로 해석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청년의 이탈을 개인의 선택으로 축소하지 않고,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끌어올릴 수 있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인물들은 떠돌았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었다. 오늘의 청년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멈춰 서 있는 이유를 끝내 묻지 않는 사회라면, 언젠가 그 ‘쉼’은 회복이 아닌 단절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청년의 쉬었음은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마지막 경고일 수 있다. 이 신호를 정책으로, 구조로, 그리고 태도로 번역해 낼 수 있을지. 지금 우리 사회의 응답이 필요하다.
2026-01-1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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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의료관광 시대 '사각지대' 넓은 부산
모처럼 SRT를 타고 서울의 한 병원을 다녀왔다. 오래전부터 검사를 받아오던 곳이지만, SRT를 왕복으로 이용한 것은 꽤 오랜만이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변화가 느껴졌다. 병원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몇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어져 있었다. 부산이나 대구 등 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대전에서 탑승한 이들은 업무차 이동하는 직장인들처럼 보였다. 여섯 대의 셔틀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겨우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울 병원에 서울 사람이 많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역에서 올라온 환자 역시 결코 적지 않다. 부산에도 여러 대학병원이 있고, 진료 수준이 높다고 평가받는 병원도 많은데 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향하는 것일까. 셔틀을 기다리며 나눈 대화 속에서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드러났다. 부산의 병원에서 경험했던 불편함을 비슷하게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필자 역시 주 진료는 부산에서 받고 있고, 가족의 입원 경험을 통해 여러 병원의 서비스를 접해왔다. 그러나 서울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것은 병원 시설이다. 해운대나 광안리 인근 일부 대형 병원을 제외하면, 서면이나 구도심에 위치한 대형 병원 상당수는 병실 규모나 보호자에 대한 배려가 턱없이 부족하다. 2인실임에도 침대 간 간격이 지나치게 좁아 보조 침대를 놓으면 환자와 보호자 모두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경우도 흔하다. 시설의 불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화장실에 턱이 있어 휠체어나 링거대를 들고 이동해야 하는 병원도 있고, 검사와 진료를 위해 이동할 때마다 중간 수납을 반복해야 하는 구조도 많다.
서비스 측면에서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서울의 대형 병원들은 접수와 대기 관리 측면에서 자동화 시스템을 빠르게 도입했다. 예약 환자는 키오스크를 통해 진료실 접수까지 한 번에 마칠 수 있고, 대기 현황과 진료 진행 상황은 실시간으로 안내된다. 이는 환자에게 신뢰를 줄 뿐만 아니라 보호자에게는 일정 관리의 부담을 덜어주는 중요한 서비스다. 반면 부산의 병원 대기실에서는 여전히 “내가 몇 번째인가요”를 물어봐야만 대략적인 대기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서비스 격차를 체감할 수밖에 없다.
2007년 무렵 시작된 의료관광은 어느덧 20년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성인이 돼 가는 지금, 의료관광 인프라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의료기술과 의료진의 역량은 부산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의료 관광객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치료 결과만이 아니다. 병원의 시설과 서비스, 즉 ‘의료 경험’ 전반이 경쟁력이다.
의료관광의 경쟁력은 진료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병원에 도착해 처음 마주하는 안내 체계, 대기 공간의 쾌적성, 보호자를 고려한 병실 구조와 이동 동선, 다국어 응대 여부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의료 경험’으로 축적된다. 이러한 경험은 치료 결과만큼이나 의료 관광객의 만족도와 재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의료관광은 재방문 가능성이 높은 분야여서 경험에 대한 평가는 온라인과 주변 사람에게 빠르게 확산한다. 한 도시의 병원 경험은 곧 도시 이미지로 연결되며, 이는 관광과 연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의료관광을 개별 병원의 문제가 아닌 도시 차원의 경험 산업으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부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는 이미 300만 명을 넘어섰고, 앞으로도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의료 인프라 수준으로 과연 재방문을 이끌 수 있을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관광산업이 신규 방문객 유치에서 재방문 관리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의료관광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의료 서비스의 중심은 결국 환자다. 병원 곳곳에 ‘환자 권리장전’이 게시되어 있지만, 구조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환자를 위해 어떤 서비스가 실제로 제공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완치와 회복은 의료기술의 영역이지만, 그 과정에서 환자와 의료진, 시설 사이의 틈을 메우는 것은 서비스의 몫이다.
부산 시민이 진료를 위해 하루를 들여 기차를 타지 않아도 되는 도시, 외국인 의료 관광객이 다시 찾고 싶은 의료 경험을 제공하는 도시. 부산 의료관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제 분명하다. 시설과 서비스에 대한 진지한 투자와 혁신이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병원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공공 차원의 인프라 개선과 서비스 표준화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부산 의료관광의 경쟁력은 더 이상 홍보 문구가 아니라, 병원 문을 여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현장 경험’에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현실을 직시하고 방향을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2026-01-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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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신해양수도 부산, 2026년 해양국가의 미래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 부산은 오랜 시간 염원하던 해양수도 비전이 마침내 현실로 드러나는 중요한 순간을 맞고 있다. 지난달 해양수산부 개청은 단순한 공공기관 이전을 넘어선 역사적 대전환이었다. 대한민국 해양 행정의 사령탑이 본격적으로 남쪽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은 부산이 단순히 항만을 가진 지방 도시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해양 강국 대한민국의 전략적 심장임을 의미한다.
행정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자본과 사람의 이동을 부른다. 지난해 말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이 본사의 부산 이전을 공식 발표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에너지·원자재 운송을 책임지는 이들 기업의 부산행은 주소지 이전뿐만 아니라, 기업의 핵심 기능인 전략 수립과 의사 결정 기능이 부산으로 온다는 뜻이다. 여기에 국회를 통과한 ‘부산 해양수도 이전 기관 지원 특별법’은 부산이 해양수도임을 역사상 처음으로 법률에 공식화하며 이러한 흐름에 제도적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해수부·해운기업 이전, 해사법원 신설
현장·의사 결정 분리 불균형 구조 타파
해양 강국 기반 조성 위한 역사적 전환
해양 금융, 디지털·친환경 항만 기술
행정·대학·산업 공동 목표 공유·실천
도시 전략 통합 새 경제 모델 창출 기회
그동안 부산은 세계적인 환적항이라는 압도적 물류 기반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해양 행정과 법률·금융·연구개발(R&D) 기능은 서울에 의존하는 불균형한 구조를 안고 있었다. 현장과 의사 결정이 분리된 탓에 해운기업의 효율은 떨어졌고, 해사 분쟁과 중재 비용으로 매년 수천억 원의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었다. 우수한 R&D 잠재력 또한 산업 현장과 겉돌며 기술 경쟁력으로 직결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구조적 약점을 넘어설 절호의 기회 앞에 서 있다. 해수부 이전과 기업 본사 집적이 촉발한 변화는 단순한 행정 재배치가 아니라, 부산이 해양 산업의 전 주기를 완결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정책과 금융이 만나고, 기술과 기업이 현장에서 즉각 반응하는 이러한 연결의 힘이야말로 해양 산업의 혁신을 현실로 바꿀 수 있다. 싱가포르와 로테르담이 세계 해운 시장을 주도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연결 구조 덕분이다.
진정한 해양수도의 완성을 위해 남은 과제는 명확하다. 특히 최근 여야 합의로 논의의 방향이 잡힌 ‘해사법원 부산·인천 분산 설치’ 방안이 자칫 부산의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항소심 관할의 부산 일원화는 반드시 관철되어야 한다. 해사법원이 두 지역으로 분산되고 항소심 관할마저 나뉜다면, 부산은 여전히 서울 중심 법률 시장의 하부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부산은 단순한 1심 재판지에 머무는 도시가 아니라, 판례와 규칙을 만들어내는 실질적인 해사 사법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물리적인 청사 건립 논쟁이 아니라, 사법 기능의 조속한 가동을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먼저 확보하는 일이다. 해사법원이 하루라도 빨리 가동될 때, 그동안 반복되어 온 국부 유출을 막는 가시적인 효과가 비로소 나타날 것이다.
이와 함께 해양 금융 생태계와 해양 테크 클러스터의 구축이 필수적이다. 항만만으로는 도시 성장의 지속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선박 투자, 친환경 연료 전환, 조선·해운 산업의 재편을 떠받치는 특화 금융 기능이 뒷받침되어야 산업 전체의 구조적 전환이 가능하다. 다행히 부산은 한국해양진흥공사와 부산국제금융센터, 대학·연구기관 등 관련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어, 해양 금융을 전략적으로 키울 조건이 충분하다. 여기에 인재 양성 체계가 더해진다면 부산은 금융·기술·교육이 선순환하는 해양 혁신도시가 될 것이다.
또한 부산항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자동화·디지털화·친환경 기술력 확보가 관건이다. 무인 운반 장비, 디지털 물류 시스템, 스마트 양식 등 해양·수산 핵심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운영할 역량이 없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연구 기관과 기업, 대학과 지자체가 함께 참여하는 부산형 해양 테크 클러스터를 구축하여 기술 개발과 산업 적용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국제 해양 질서는 이미 거대한 전환기에 진입했다. 탄소 중립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파도 속에서는 규범을 따르는 도시가 아니라 표준을 만드는 도시만이 살아남는다. 이제 부산도 경쟁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표준을 제안하는 글로벌 해양 규범의 주도자로 도약해야 한다.
2026년은 부산에게 새로운 출발점이자,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결정적 시간이다. 해수부 이전과 해운 기업 집적이라는 흐름이 실제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를 하나의 전략으로 통합하고 도시 전체가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여야 한다. 행정·기업·산업·학계가 연결되고, 그 속에서 부산만의 해양 경제 모델을 창조할 때 비로소 부산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전략 축이 될 것이다. 신해양수도 부산이라는 말이 더 이상 비전이 아니라, 2026년을 살아가는 부산 시민 모두가 체감하는 새로운 현실이 되기를 소망한다.
2025-12-3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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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원화 위기, 부산 '디지털 금융 인프라'로 극복을
최근 대한민국 경제는 ‘환율’이라는 거대한 해일에 직면해 있다.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을 위협할 때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긴박하게 움직인다. 주요 대기업을 독려해 해외 유보금을 국내로 환류시키고, 외환시장 안정 조치로 급한 불을 끄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러나 냉정하게 자문해야 한다. 이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 해결책인가? 지금의 대응은 구조를 바꾸는 처방이라기보다 증상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진통제에 가깝다. 자본은 수익과 안전을 찾아 흐르는 물과 같다. 경영 자율성을 압박하며 자본을 가두는 방식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을 억지로 붙들어 두는 규제가 아니라, 글로벌 디지털 자본이 스스로 머물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금융 생태계’를 부산에 구축하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 치솟을 때 정부 안정 조치
구조 변화 아닌 증상 일시적 완화 그쳐
부산은 블록체인 실증 최적의 실험장
'비단주머니' 웹3 기반 금융 플랫폼
AI·금융 결합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사이버 보안, 성공 담보 결정적 카드
역사는 영토의 크기보다 ‘화폐의 신뢰’와 ‘금융 시스템’이 국가의 명운을 결정했음을 증명한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국가였던 베네치아는 척박한 환경을 무역과 금융으로 극복했다. 그들이 발행한 ‘베네치아 금화’는 수백 년간 가치를 유지하며 당대의 기축통화 역할을 했고, 덕분에 일개 도시임에도 12세기부터 18세기까지 세계경제의 중심을 지켰다. 17세기의 네덜란드 역시 ‘네덜란드 길더’라는 강력한 화폐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세계 1위 경제 대국에 올라섰다. 이들은 자본을 통제하기보다 전 세계 자본이 머물 수 있는 ‘금융의 항구’를 자임했다. 반면 아무리 강력한 제국이라도 화폐 관리에 실패하면 허망하게 무너졌다. 이제 우리도 원화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금융 항구를 부산에 열어야 할 때다.
그 해법의 핵심은 국제 자본이 체류하고 싶은 ‘도시 인프라’를 제공하는 데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부산이라는 인프라 안에서 자유롭게 흐르고, 수익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찾는 글로벌 디지털 자본이 머물 수 있는 레일을 깔아주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자본은 통제보다 환경에 반응한다. 머물 이유가 생기면 환율은 더 이상 방어의 대상이 아니라, 고도화된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는 변수가 된다. 부산은 이미 ‘부산시민 블록체인 플랫폼’을 통해 행정과 생활 서비스를 연결하며, 도시 운영체제로서의 블록체인을 실증해 온 최적의 실험장이다.
최근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와 비단이 공개한 ‘비단주머니’ 구상은 이러한 실험을 국가 전략으로 격상시킨다. 비단주머니는 신원 인증, 결제, 송금 등이 연동되는 웹3 기반 금융 플랫폼이다. 여기서 주목할 미래 금융의 정점은 인공지능(AI)과 금융이 결합한 ‘AI 에이전트’다. 미래 금융은 사람이 일일이 승인하는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AI 에이전트가 디파이(DeFi) 생태계에서 유동성을 찾아 스스로 움직이는 지능형 금융이 대세가 될 것이며, 이때 필수 도구가 바로 코딩 가능한 ‘프로그래머블 머니’인 스테이블코인이다.
이미 일본은 엔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으로 편입시켜 국가 금융 전략의 한 축으로 활용하고 있다. 흐름을 규제로 막기보다 제도 안에서 활용하는 도시가 주도권을 갖는다. 부산의 무역 기업들이 AI 에이전트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자동화하고 리스크를 관리한다면 외환 시장의 변동성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국제 자본이 부산의 온체인 금융망을 통해 순환한다면, 외환 불안이 국가 경제 위기로 번지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 자본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들어와서 끊임없이 돌게 만드는 것, 이것이 부산이 제시하는 환율 전략의 핵심이다.
이 구상의 성공을 담보하는 결정적 카드는 ‘사이버 보안’이다. 안전하지 않은 지갑 위에 거대 자본은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정예 보안 인력인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 연구진이 부산에 설립한 ‘안암145’는 이러한 신뢰의 뿌리를 담당한다. ‘부산월렛’과 유엔개발계획(UNDP)의 웹3 지갑 프로젝트로 검증된 안암145의 사이버 보안 기술은 AI 에이전트가 해킹 위협 없이 금융 생태계를 유영하게 만드는 핵심 방패다. 여기에 해시드의 디파이 역량과 BNK부산은행의 신뢰가 결합한다면, 기술·보안·금융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완벽한 생태계가 완성된다.
70여 년 전 부산이 수출 전진기지로 나라를 일으켰듯, 이제는 디지털 금융이라는 영역에서 국가 경제를 떠받칠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과거 한반도의 국가들이 세계 랭킹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던 저력은 과학과 학문, 교역의 중심지였기에 가능했다. 부산이 디지털 자본의 항구가 되는 순간, 환율 문제는 위기의 신호가 아니라 구조적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다. 비단주머니 속에 담긴 안암145의 보안 기술과 시민의 참여가 어우러진 이 도전이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활로가 되길 기대한다.
2025-12-2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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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환단고기와 가림토문자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국정보고 자리에서 ‘환빠’라는 말을 소환하면서 동북아역사재단과 〈환단고기〉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양자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우선 동북아역사재단은 고구려연구재단으로 출발한 국책 연구 기관이다. 중국이 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자국의 지방정권의 역사라고 주장하자, 2003년 11월 고구려사 왜곡 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이를 모태로 고구려연구재단이 2004년에 문을 열었다. 이처럼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임나일본부설과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서 설립된 것이다.
중국은 자국의 영토 속에서 영위된 역사는 모두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고구려의 영토가 광대했다고 강조할수록, 중국사에 편입되는 고구려의 영역 역시 확대되는 셈이다. 고구려의 유민들이 참여하여 세운 발해도 당연히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고구려사만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서북공정을 통해서 신장(新疆) 지역의 위구르족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원전 60년에 전한이 서역도호부를 설치한 이래로 중국이 신장 지역을 관할해 왔다는 것이 중국의 주장이다. 위구르족은 종족적으로도 한족과 다르고, 독자적인 위구르문자를 만들어 썼으며, 종교적으로도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국 영토에 살고 있는 사람은 모두 중화민족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는 2021년에 10억 톤 규모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하였고,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中 동북공정, 日 임나일본부설 왜곡
한국, 동북아역사재단 출범해 대응
한정된 연구 인력 힘겨운 활동 지속
식민사학 카르텔 매도 주장 안 될 말
표음문자 주장 〈환단고기〉는 위서
내부 공격·논란은 역량 분산할 뿐
서남공정은 역시 독립왕국이자 불교를 국교로 하고 독자적인 문자를 사용하는 티베트를 중국의 역사로 포섭하려는 작업이다. 학문적인 논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베이징과 티베트를 연결하는 철도는 총길이가 4062㎞로 부산과 서울 거리의 10배에 달하고 4500m의 고산지대를 통과한다. 한족들의 이동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티베트의 정체성을 희석시키려는 게 근본 목적이다. 중국은 전방위적으로 주변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역사 문제에 대응할 목적으로 만든 동북아역사재단을 식민사학의 카르텔이라고 매도하는 일부 인사들이 있다. 그들은 백 가지 사안 가운데 한 가지만을 문제 삼거나, 아직 준비 단계에 있는 사안을 최종 결과물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정부 부처나 국회에 압력을 가하고는 한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적인 공세에 대처하기에도 급급한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환단고기〉의 내용을 가지고 중국의 영토가 고대에 우리 영토라고 주장할수록, 역으로 고조선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가 될 위험성이 크다. 동북공정은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아래 수많은 학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추진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한정된 연구자들이 동분서주하면서 힘겹게 우리의 역사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식민사학 카르텔 운운하면서 동북아역사재단을 공격하는 일은, 우리들의 역량을 분산시킬 뿐이다. 그렇게 분명한 자료가 있고 자신감이 있다면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중국 학자,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일본 학자들과 직접 싸우면 될 일이다.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증거를 한 가지만 들어보자. 〈환단고기〉에서는 가림토문자가 기원전 2000년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집트의 히에로그리프와 중국의 한자는 모두 상형문자 즉 뜻글자다. 뜻글자가 사용된 뒤 수천 년이 지나서야 표음문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가림토문자는 신기하게도 표음문자다. 모음은 훈민정음의 모음과 그 배열 순서만 다르고 기본 모음이 무려 11개다. 문자의 발달 순서에서 원래 자음이 먼저 만들어지고 모음은 뒤늦게 만들어진다. 모음의 독립은 문자 발달사에 대단히 중요한 비약이었다. 알파벳은 모음이 5개이고, 일본어는 5개, 몽골어도 7개의 기본 모음이 있을 뿐이다.
가림토문자가 존재했다면 왜 그 문자로 쓰인 자료는 단 한 점도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는가? 히에로그리프나 한자는 수많은 증거들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다. 가림토문자가 문자의 최종 발전 단계라고 하는 표음문자 중에서도 음소문자에 해당하는데, 그 편리한 문자를 두고 왜 우리는 다시 한자를 썼을까? 세종은 독자적으로 훈민정음을 만든 게 아니고 가림토문자를 그대로 베꼈다고 해도 괜찮은가? 세종께서는 분명히 내가 새로 28자를 만들었고, ㄱ은 혀가 구부러진 모습을, 아래아(·)는 하늘을 본떴다고 창제의 원리까지 밝히셨다. 세종대왕이 표절한 사실조차 부인하는 파렴치한이란 말인가?
사회에 영향을 끼칠 만한 발언을 할 때는 최소한 해당 분야의 기초 지식이라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나라는 선진국이 되었는데 우리의 지식수준은 아직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 있는 듯하다.
2025-12-2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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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다시 도약하는 내 고향 부산!
최근 동구 수정동의 거리를 걷다 보면 사뭇 달라진 분위기를 느낀다. 멈춰 있던 골목마다 활기가 돌고 있고, 점심시간 식당가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단순한 행정기관 이동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수정동을 비롯한 원도심 상권의 부활이자, 부산이라는 도시가 다시금 엔진을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상징적인 신호탄이다. 이런 풍경은 자연스레 나의 기억 속 부산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냈고, 이 도시에서 꿈을 이루고, 터전을 잡았다. 지금은 광안리와 해운대가 세계적인 번화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지만, 내 기억 속에 각인된 부산의 원형은 조금 더 투박하고 생동감 넘치는 공간들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을 잡고 거닐던 국제시장과 자갈치의 비릿한 바다 내음,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누볐던 대학가 일대, 그리고 부산의 심장이자 청춘의 집결지였던 서면일번가의 북적임까지. 어느 곳 하나 심심하지 않았고, 골목마다 다른 맛과 멋이 가득했던 부산은 그 자체로 거대한 놀이터이자 배움의 터전이었다. 그렇게 생기 넘쳤던 도시는 '서울 공화국'의 그림자에 점점 가려졌고, 지역 대학들이 위기를 겪는 사이 인재들은 불안감 속에 수도권으로 떠났다. 지역 경제발전은 멈춰 섰고, '노인과 바다'라고 자조하는 표현까지 나올 만큼 남겨진 세대에게는 상실감이 자리했다. 부산을 고향으로 둔 사람으로서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은 작지만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도시다. 바다와 강, 산과 평야가 이어지는 지형, 항만과 시장, 문화 시설과 상권이 공존하는 구조, 산업과 관광이 연결되는 도시 특성은 세계에서도 흔치 않다. 이 다양성은 부산의 매력이며, 앞으로 우리가 활용해야 할 전략적 자산이기도 하다.
흔히들 부산의 미래를 고민할 때 지중해의 보석이라 불리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떠올린다. 여행에서 마주했던 바르셀로나는 부산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었다. 거대한 항구를 품고 있으며, 해변과 인접한 도시 구조, 그리고 독자적인 지역 문화에 대한 강한 자부심까지 판박이다. 과거 쇠퇴하던 공업 도시였던 바르셀로나는 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안가를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과감한 도시 재생을 단행했고, 현재는 세계적인 관광지이자 유럽의 혁신 스타트업 허브로 거듭났다. 바르셀로나의 성공은 단순한 정비사업이 아니라 문화와 기술의 결합이었다.
현재 부산이 마주한 현안들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수정동에서 시작된 원도심의 활기는 북항 재개발 2단계 사업으로 이어져 항만 시설을 시민들의 공간과 미래 산업 단지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여기에 가덕신공항은 부산을 세계적인 물류 허브로 이끌어줄 강력한 날개가 될 것이다. 바르셀로나가 그러했듯, 우리도 해안가라는 천혜 자원을 경제적 동력으로 전환하는 과감한 실행력이 필요하다. 진정한 도약을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과 인재 양성 또한 필수적이다. 현재 논의 중인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은 부산을 규제 없는 글로벌 비즈니스 거점으로 만들기 위한 법적 토대다. 특별법이 통과되어 전 세계의 자본과 인재가 부산으로 모여드는 기분좋은 상상을 해본다. 또한, 지역 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RISE 사업과 글로컬 대학 프로젝트는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인재들의 발걸음을 돌릴 유일한 길이다. 지자체와 대학, 기업이 하나가 되어 청년들이 부산에서 꿈을 설계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수도권 중심 체제에서 포기해버리고 체념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26년은 부산에 있어 역사적 분기점이 되어야 한다. 정계는 당파를 초월해 가덕신공항과 특별법이 정치적 논리에 휘말리지 않도록 단단한 입법적 방어막이 되어주어야 한다. 경제계는 혁신적 기업가 정신으로 신산업을 육성하고,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최근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 같은 해운 대기업의 본사 부산 이전 결정은 명실상부한 해양수도 미래 부산의 위상을 보여준 것이다. 변화에 발맞춰 법조계의 역할 또한 막중하다. 해운 기업의 이전이 실질적인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려면 전문적인 법률 서비스 지원이 필수적이다. 이에 '해사법원'의 부산 설치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무엇보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가짐 또한 중요하다. 우리가 먼저 부산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부산은 이미 세계적인 대도시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잠재력을 가진 도시다.
수정동에서 시작된 작은 활기가 북항을 넘어 가덕도로, 그리고 부산 전역으로 퍼져나가 2026년이 우리 모두에게 도약의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부산은 여전히 뜨겁고, 우리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의 고향 부산은 앞으로는 세계를 향한 도시가 되리라 믿는다.
2025-12-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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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인간의 책임에 대하여
책임감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덕목이지만 내게 주어진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기도 하다. 국어사전에서는 책임(責任)이라는 단어를 1.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또는 2. 어떤 일과 관련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으로 정의하고 있다. 전자의 정의는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성실히 임한다는 뜻에서 보통 ‘책임을 다하다’고 표현한다. 후자의 정의는 자신이 행한 일의 결과에 대한 것으로서 ‘책임을 진다’고 표현한다. 국어에서는 이렇게 책임이라는 한 단어가 과정에 대한 책임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포괄하고 있지만 영어는 다르다. 책임 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인 ‘Responsibility’ (이하 R)는 엄밀히 말하면 국어사전의 첫 번째 정의에 가깝다. 두 번째 정의에 해당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Accountability’ (이하 A)라는 단어가 적절해 보인다. 직역하자면 ‘설명할 책임’을 뜻하는 A는 책임질 결과에 대해 주관을 기여한 당사자가 자신의 판단을 해명할 책임이다.
책임감, 나와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 나뉘어
기업, 법인격으로 주인 없는 듯 보여
도덕적 해이·책임 회피의 주요 원인
인간, 주체적 판단·행위 결과에 반성
모든 종류의 책임을 부여받은 존재
과정에 대한 책임(R)과 결과에 대한 책임(A)의 차이를 살펴보면 R은 여러 명일 수 있지만 A는 보통 한 사람이다. 예컨대 이벤트팀에서 세모 행사를 열었다고 가정해 보자. 팀원들은 모두 세모 행사에 R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지만 행사결과에 대해서는, 즉 A는 궁극적으로 팀장에게 귀속된다. R은 복수에게 분배되고 위임될 수도 있지만 A는 단수이고 분배되거나 위임될 수 없다. 이유는 소유 개념과 관련한다. 소유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최종 주인을 전제한다. 설령 팀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졌더라도 업무를 주관한 팀장이 지배적 주인으로 간주되어 A를 갖는다. 그런데 만약 업무가 상세한 규칙과 절차들로 정해져 있어 이를 따르기만 했다면, 업무에 주관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면 어떨까. 책임자는 “매뉴얼을 따랐을 뿐이다” 외에 설명할 수 있는 게 없다. A의 귀속주체가 사라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대규모 분업 체제의 조직 형태인 관료제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현대 전쟁에서 투입되기 시작한 자율형 전투로봇 사례도 유사할 수 있다. 인간의 승인 없이도 살상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들에 대해 책임자는 “AI 알고리즘을 따랐다” 외에 설명할 수 있는 게 없다.
사람이 아닌 비인간주체의 사례도 생각해보자. 경비견 한 마리가 집을 지키고 있다. 경비견에게는 집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이는 과정에 대한 책임이다. 만약 경비견이 집을 못 지켜 집에 도둑이 들었더라도 경비견에게 도난당한 결과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사태의 결과는 경비견의 주인에게 귀속된다. 한편 최근 벌어진 쿠팡 정보 유출 사태로 본 기업의 책임은 어떤가. 정보보안 업무에 대한 행위의 책임은 쿠팡 담당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쿠팡의 대표이사도, 이사회 의장, 직원들도 궁극적으로 책임지지 않는다. 이는 쿠팡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기업의 주인이 주주라면 주주들이 지분율에 따라 배상을 분담하게 될까. 나의 주인이 나라는 것과 동일한 논리로 법적 인간인 쿠팡의 주인은 쿠팡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쿠팡에 귀속되어 배상금도 쿠팡의 법인 잔고에서 지출된다. 과정에서의 책임은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위임하고 분배할 수 있지만 결과적인 책임은 기업 자신이 갖는데 법인격이기에 마치 주인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기업활동에서 도덕적 해이와 책임 회피를 유인하는 주요 원인이다. 우리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말할 때 CSR은 과정에 대한 책임이고 CSA가 아닌 이유도 유관하다.
서양사상의 이원론적 사고관은 책임을 과정과 결과로 나눈 것처럼 책임의 속성 역시 도덕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구분한다. 법적 인간은 법적 책임을 갖는다. 법인격이 부담하는 결과에 대한 법적 책임(Liability)은 대부분 금전배상이다. 따라서 법인격에 재산권은 핵심적이다. 앞서 경비견에게도 재산권이 있었다면 경비견은 결과에 법적보상을 물을 수도 있다. 이는 미래에 인공지능에게 법인격이 부여된다면 인공지능 역시 지금의 기업과 유사한 법리로 법적 책임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은 도덕적 책임과 결과에 대한 책임의 결합이다. 이는 사람만이 법적 강제성을 떠나 자발적으로 내면에 양심적 가책을 느낄 수 있고 반성할 수 있는 도덕적인 존재임을 의미한다. 또한 결과에 대한 책임이기 때문에(법인격도 과정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사람에게 위임해 CSR처럼 책임을 요구할 수 있다) 자신의 자율적인 결정과 그에 따른 결과적인 책임을 누구에게도 미룰 수 없고 스스로 짊어져야 함을 뜻한다. 결국 주체적으로 자신의 판단과 행위가 불러온 결과를 반성하는 일은 인간만이 가능하며 역으로 인간은 모든 종류의 책임을 부여받은 책임적인 존재다.
2025-12-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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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국민시집 '진달래꽃' 100주년과 문화기억
다가오는 26일은 한반도를 대표하는 시인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 세상에 나온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소월은 서른 둘의 짧은 인생에서 이 시집 한 권만을 남겼다. 국민 애송시 1위로 자주 꼽히는 시 ‘진달래꽃’과 시집 이름이 같다. 그만큼 그는 강한 생명력의 진달래를 사랑하였다. 그래서 한반도인이라면 남쪽에 살든 북쪽에 살든 누구나 “소월” “소월”한다. 시집에는 본인이 고른 시 127편이 실려 있다. 시 ‘여수(旅愁)’가 목차에선 ‘여수 1’ ‘여수 2’로 구분되어 있고 본문에선 두 연으로 이뤄진 한 편의 시로 되어 있어서 126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시집은 한성도서와 중앙서림 총판 본을 합쳐 오늘까지 총 3종 4점이 발견되었는데, 한국 문학은 이 책 한 권 덕분에 올해 말로 근대 시 100년이라는 기념비적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가 저물어 넘어가는 데도 대한민국은 조용하다. 북녘땅도 조용하다. 소리가 났다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7월 취임하면서 “남과 북이 ‘진달래꽃’ 100년 행사를 같이하자”라고 제안한 것과 경기도 고양의 한 문학 단체와 부산의 어느 성악가 그리고 우리 국제 소월협회가 조촐한 기념행사를 자체적으로 가지는 것, 그게 전부인 듯하다.
26일 김소월 시집 출간 100년 되는 날
근대 시 기념비적 경사 국내선 조용
'한국 문학 아버지'에 대한 대우 빈약
러시아 푸시킨 기리는 동상 즐비
한국 근대문학·근대정신 일군 선각자
기억하고 전승해야 새로움 창조 가능
소월은 러시아로 치면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알렉산드르 푸시킨이다. 푸시킨은 시집 한 권이 아니라 시, 희곡, 소설, 동화, 역사 등 여러 분야에서 숱한 책을 남겼기 때문에 어느 특정 작품의 100주년이나 200주년을 따로 기념하진 않는다. 다만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전국에 300여 개의 동상이 서 있고, 푸시킨 문학관만 해도 곳곳에 18개나 있다. 그에 대한 기억은 푸시킨 시(市), 푸시킨 거리, 푸시킨 명칭의 대학, 푸시킨 공원, 푸시킨 미술관 등으로 이어져 사람들의 일상을 채우고 있다.
반면에 소월에 대한 우리의 대우는 너무 빈약하다. ‘한국 문학의 아버지’라고 하면서 부산 황령산에 ‘진달래꽃’ ‘초혼’ ‘못 잊어’ ‘엄마야 누나야’ 등 시비 10기가 서 있고, 서울 남산에 ‘산유화’ 1기, 황령산의 ‘김소월 시와 함께하는 길’, 남산 주변의 ‘소월로’, 이게 소월에 대해 우리가 지닌 ‘문화기억’(cultural memory)의 전부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문화기억이란 공동체의 형성과 계승 발전에 영향을 끼친 주요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을 의미한다. 러시아의 문헌 학자이자 문화재 보호 활동가였던 드미트리 리하초프(1906~1999)는 ‘기억의 예술과 예술의 기억’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화사란 사람의 기억 역사를 말하는 것이고, 기억의 발전사 및 기억의 심화와 완성의 역사이다. 기억을 통하여 지각과 창조의 미학적 수준이 발전하는 것이며, 지식이 만들어진다. 기억은 시간이라고 하는 파멸적인 힘에 정면으로 맞서며, 문화라고 불리는 그 무엇들을 축적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기억이란 시간의 극복, 죽음의 극복이다. 여기에 기억의 도덕적 의의가 들어있다.” 이 경구를 우리의 현실에 대입하여 보면, “소월 시인을 이렇게 잊어버리고 집단으로 기억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문화사, 새로운 창조와 발전, 한국의 미학, 한국의 도덕을 정립하고 이어가기 힘들 것”이라는 경고로 들린다.
푸시킨의 생일 6월 6일은 ‘러시아어의 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생일이 우리의 한글날인 셈이다. 자유 정신과 근대의 표상으로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의 중간에 서서 살아있는 민중의 언어를 문학에 도입하고, 문법과 문체 등에서 러시아어의 표준규범을 확립한 작가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날 러시아 전역에선 각지의 푸시킨 동상 밑에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 푸시킨의 시를 낭송한다. 우리의 소월도 전통에 발을 디디고 자유와 단절의 근대를 열어갔다. 고어와 방언, 구어체 등 민중의 언어를 문학 안으로 끌어들여 한국어의 표준체계를 새롭게 했다. 슬픔과 부재를 통하여 반대로 생명과 환희를 지향하고. 아이러니와 자연 표상, 복합기호의 광범위한 활용 등으로 한국의 근대문학을 일군 선각자이다.
소월로부터 출발한 한국 근대문학 100주년은 한국 근대정신 100년사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봉건사회와 남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잇달아 이뤄내, 세계 10위권 안팎의 ‘알아주는’ 나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물질적인 성장에 스스로 도취하여 정신과 문화를 소홀히 하는 건 아닌지, 자신을 뒤돌아볼 시점이 아닌가 한다. 진정으로 부강한 나라와 부유한 국민은 경제적으로 윤택할 뿐만 아니라 같이 기억하고 전승하며 새로움을 창조해나갈 그런 문화기억이 충만한, 다른 차원의 나라와 국민일 것이기 때문이다.
2025-12-1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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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일본과 중국의 세력 전이와 정당성 경쟁
약 한 달 전부터 이어진 일본과 중국의 대립은 이제 군사적 충돌 가능성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직접적 계기는 지난달 7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국회에서 행한 “대만 유사 상황은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하며,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포함해 개입할 수 있다”는 발언에서 비롯됐다. 그는 자신의 보수 우익적 신념에 따라 역대 내각이 유지해 온 ‘전략적 모호성’을 걷어낸 것이다. 일본의 중도 보수 진영은 중국과의 관계 악화가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발언 변경을 요구했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75%에 달하는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이를 거부하며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재확인하려 했다. 그리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대만과 가장 가까운 요나구니섬의 육상자위대 기지를 시찰했고, 필리핀·호주 등 중국의 해양 진출에 위협을 느끼는 국가들과의 군사 협력을 신속하게 강화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즉각 발언 철회를 요구했으며, 이어 일본 여행·유학 자제 권고, 일본 영화 상영 중단, 2년 만에 재개된 일본산 수산물 수입의 재금지 등 일련의 보복 조치를 잇달아 발표했다. 12월 6일에는 중국군 전투기가 오키나와 인근 공해 상공에서 일본 F-15기를 향해 두 차례 사격통제레이더를 조사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중일 양국의 갈등이 외교·문화·경제 영역을 넘어 안보 영역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번 대립이 단순한 외교적 충돌을 넘어, 멀게는 19세기 말, 가깝게는 2010년 센카쿠 사건 이후 지속돼 온 양국 간 세력 경쟁의 향방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중국을 본격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게 된 전환점은 2010년 센카쿠 충돌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 일본 정부는 센카쿠 섬들을 국유화했고, 중국은 이에 맞서 희토류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여기에 중일 국내총생산(GDP) 순위의 역전이 겹치면서 청일전쟁 이후 약 100년간 유지되어 온 ‘일본 우위’ 구조가 무너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12년 출범한 아베 신조 내각은 중국을 사실상 ‘주적’으로 상정하며 대중 억지 전략을 전면화했다. 아베 내각은 미일 동맹을 심화하는 동시에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구상 등 해양 민주국가 네트워크를 구축해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하고자 했다. 특히 2015년 제정된 ‘평화안보법제’는 일본의 안보 상황을 중요 영향 사태, 존립 위기 사태(이번 논란의 핵심), 무력 공격 사태의 세 단계로 구분하고, 단계별로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후방지원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 나아가 자국 방위의 전면 대응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자국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민주국가들이 구축한 규범과 법치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수호자’로, 중국을 ‘힘에 의한 현상 변경자’로 규정하는 프레임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한편, 중국은 1949년 국가 수립 이후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대만 문제를 국가의 핵심 이익으로 규정해 왔다. 시진핑 주석은 특히 청일전쟁을 ‘근대 중국 치욕의 출발점’으로 규정하며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는 한때 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청나라가 일본에 패배함으로써 대만의 일본 식민지화, 오키나와의 일본 병합, 센카쿠 열도의 일본 편입 등이 이루어졌다고 인식한다. 따라서 시진핑에게 ‘대만 통일’은 단순한 영토 회복을 넘어 굴욕의 근대사에 대한 복수이자 역사 회복의 과업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중국은 대만 유사시 일본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행위를 곧 과거 군국주의 침략의 연장으로 바라보고, 일본의 자위권 행사 가능성 자체를 사전에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 아베 내각이 사용했던 프레임을 역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1월 24일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중국과 미국은 80년 전 파시즘과 일본 군국주의에 맞서 함께 싸웠다”고 언급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성과를 수호하기 위한 미중 연대를 강조했다. 즉 중국은 자신을 근대 일본이 힘으로 변경해 놓았던 질서를 바로잡는 정의로운 ‘질서 수호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가치와 규범을 중시하는 일본과 역사와 민족주의 서사를 강화하는 중국 간 대립은 미국의 관망 기조 속에서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국제 정세가 강대국의 전략적 선택에 의해 죄우된다는 점은 변함없으며, 이미 중국의 GDP는 일본의 약 4~5배에 달한다. 이러한 복합적 혼란 속에서 한국은 이재명 대통령이 외신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부치는” 조정자이자 책임있는 중견국으로서 고도화된 위기관리 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해야 할 것이다.
2025-12-10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