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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서울 중심적 흑백요리사’
지난달 넷플릭스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 종영했다. 쇼는 끝났지만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요리사와 심사위원의 어록은 밈(meme)이 되어 유행처럼 퍼지고 있으며 프로그램에 참여한 요리사들이 있는 식당은 예약 플랫폼에서 몇 초 만에 예약이 마감된다고 한다. 또 요리사들이 프로그램에서 조리했던 음식들은 상품화되어 편의점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쯤 되면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흑백요리사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는가.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하여 만든 거대한 스케일의 무대, 독특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지닌 출연진, 치열한 과정 끝에 조리된 예술 작품 같은 요리, 전문성과 인지도를 갖춘 심사위원의 평가 등 많은 요소가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 ‘백수저와 흑수저’라는 계급을 설정하고 계급 간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 형식이 한국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 줬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 사회의 곳곳에는 불공정이 만연하다. 올해만 하더라도 음대 입시 비리, 선관위 채용 세습 논란 등 불공정 관련 뉴스가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회적 배경이나 지위, 즉 계급장 떼고 오직 ‘맛’이라는 실력 하나만으로 승부를 가리겠다는 선언은 공정한 사회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프로그램 초반 일대일 미션에서 심사위원의 눈을 가리고 진행한 블라인드 테스트는 프로그램의 백미로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프로그램 후반으로 갈수록 애초 지향했던 공정이 점차 우리 사회의 현실과 같이 불공정으로 흐르면서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먼저 요리사들이 팀을 이루어 레스토랑 미션을 진행하였는데, 팀 간 대결이라는 조건 때문에 요리사 개개인이 제대로 된 요리 하나 만들지 못한 채 팀의 승패에 따라 탈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것이 과연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한 것인지 논란이 일었다.
이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미션을 진행하는 도중 예고 없이 팀별로 한 명의 요리사를 방출하게 하고 방출된 요리사끼리 팀을 만들어 레스토랑 미션을 진행하게 하였다. 문제는 방출된 팀의 경우 다른 팀보다 인원이 적고 경연 준비 시간도 부족했다는 점이다.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대결은 진행되었고 예상대로 방출팀은 패배하여 모두 탈락했다.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절차적 공정성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 분노하였다.
여기까지는 프로그램이 방영될 당시부터 많은 사람에게 비판받은 내용이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이 미션에는 더 큰 불공정이 도사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서울에서 촬영되었다. 따라서 서울에 거주하는 요리사들은 전화 몇 통으로 자신들의 거래처를 통해 싸고 품질 좋은 재료를 구할 수가 있었던 반면 해외나 지방에서 참가한 요리사들은 근처 마트에서 재료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느 요리사의 말대로 ‘요리사보다 높은 것이 재료’인데 서울에 살고 안 살고의 여부가 승패를 좌우할 만큼 큰 차이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이것이 불공정하다는 점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즉 ‘서울 중심적’ 사고와 규칙이 사회에 고착화돼, 그것이 불공정한 것인지도 모르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더 큰 문제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무의식 속에 당연한 듯이 자리 잡은 서울 중심적 사고와 규칙은 불공정을 인식조차 못 하게 하여 더 큰 불공정과 불행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에 좋은 인프라가 들어서는 일은 당연한 반면 지방에 인프라가 구축되는 일은 예산 낭비라고 보는 인식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서울 중심적 사고는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황폐화와 소멸을 초래하고 부추기는 끔찍한 결과를 만들었다.
다시 흑백요리사로 돌아가 어떻게 하면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자. 첫 번째 방법은 요리 프로그램 경연을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진행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참가자 모두에게 동일한 재료를 일괄 제공하는 것이다. 동일한 맥락으로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첫째는 서울 중심적 정책을 지방 중심적 정책으로 바꾸는 일이고, 다음은 서울에 투입되는 재원만큼 각 지방에도 똑같이 재원을 분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성만을 내세운 방법은 경제성과 같은 다른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통하여 구성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성의 실현 방법을 찾는 일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2024-11-1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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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새로운 진로를 찾아야 할 때
지난 10월 30일, 부산일보 소강당에서 제27회 요산김정한문학축전 행사 가운데 하나인 요산 김정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요산 김정한 문학과 공공성’이라는 주제 아래 요산 정신의 현재성을 지금의 한국문학(문단)과 연결해 논구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공공성 확보와 저변 확대를 위한 나름의 방안과 해결책을 제시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따른 들뜬 분위기에도 그간의 한국 문단과 작가가 처한 현실을 짚어볼 때 절로 나오는 한숨과 걱정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심포지엄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자리를 메운 30명 남짓한 문인들 표정 역시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요산 김정한(1908~1996) 선생의 문학정신은 푯대처럼 부산의 작가들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진영’을 떠나서라도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선생의 일갈은 작가들에게 굳건하고 든든한 창작의 지렛대가 되어야 하며, 또한 그런 정신으로 창작에 임하는 작가들이 많은 줄 안다. 요산김정한문학축전을 올해도 성황리에 치렀지만, 부산문학관 건립을 둘러싼 부산시와 부산 문인 단체 사이의 해결할 길 묘연한 갈등을 생각하면 답답한 심정을 가누기 힘들다. 부산문학관 건립 문제에 대해서는 이 지면에서 길게 말할 처지가 못 된다. 다만 20년 가까이 공전하고 있는 문학관 건립이 부산 문인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과 이에 걸맞고 합당한 예산 및 부지 확보를 위한 행정 노력으로 뒷받침되어야 마땅하지만, 최근 부산시가 보이고 있는 행보를 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문학관 건립을 마치 시혜를 베풀 듯 선심 쓰듯 바라보는 시와 일선 공무원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문학관 건립 논의가 시작되고도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난항을 겪는 배경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최근 부산시청 후문 광장에서 진행된 부산지역 문학 단체의 부산문학관 건립 정상화 기자회견과 문학인들의 성난 목소리로부터 그 뜻을 짐작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단순하게 ‘건물’ 하나를 짓는 의미와 다른 특별한 문제의식이 들어 있다. 문학은 분명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의 일종이지만, 그 가치를 단지 경제적인 이익이나 수익 창출과는 별개의 영역에서 산출되는 ‘정신’의 역동성으로 바라보아야만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부산시가 웬일인지 일사천리로 추진하고 있는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유치를 떠올려 보자. 용역 결과 예산과 면적이 절반가량 줄어든 부산문학관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부지 면적과 예산을 높게 책정한 이 사업 과정의 투명성 여부와 ‘공공 가치’를 논외로 하더라도, 부산시가 그렇게 용을 쓰면서 들여오려 하는 퐁피두센터의 역사와 현황을 살펴보면 자연히 우리 형편을 되돌아보게 된다.
프랑스 파리의 복합예술단지인 퐁피두센터 내에 있는 퐁피두 현대미술관은 현대 예술의 거장인 피카소, 샤갈, 마티스의 작품을 비롯한 현대미술 컬렉션 등 약 5만 3000점을 소장해 연간 수백만 명의 관람객을 부르는 세계적인 명소다. 이 센터의 운영은 관장을 포함하여 9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맡는데, 위원회 산하 행정 책임, 각 국장, 연합 기관장, 정부에서 파견한 정책심의 대의원, 재정 후원 단체 등이 협의하여 퐁피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위원회 말고도 20~30명의 자문위원회를 두어 퐁피두센터의 전체 경영, 전시 기획 진행, 시설 관리, 예산 수립과 심의 등 포괄적인 분야의 의사 결정에 관계하고 있다. 이렇게 자문위원회는 입법부, 행정부, 파리시, 민간위원 등 다양한 곳에서 선출된 위원회 멤버들이 전체와 조화를 이루어 자유로운 의사 진행과 협의를 통해 미술관 운영에 참여한다. 형식적인 구성과 조직 체계만으로 이 세계적인 미술관의 운영 및 경영 상태를 부러워하기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늘을 숨길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현대 예술의 여건과 흐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미술관 측의 의지와 노력이 세계적인 예술가와 작품을 발굴하고 알리는 데 큰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부산시의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유치 계획이 저런 행정적인 안목과 예술가에 대한 격조 높은 인식 및 대우를 감안한 것이었는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렇다면 부산문학관 건립 문제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텐데, 그래서 소극적인 시 행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이다. 이번 요산김정한문학축전의 주제는 ‘새로운 진로를 찾는 것이다’였다. 공공성 심포지엄의 분위기도 결국 작가의 창작 의지에 족쇄처럼 작용하는 배타주의적 공동체 의식에 비판의 칼날을 겨누었다. 어느 때보다도 심란한 때, 또다시 새롭게 나아가야 할 ‘진로’를 저마다 머리를 맞대고 찾아야 할 시점이다.
2024-11-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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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보는 것만큼 안다
왜 영화를 보러 가는지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관은 다르다. 재미도 없는데 전시회는 왜 가야 할까?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특별전’을 어슬렁거리며 필자에게 이런 의문이 생겼다. 사람들은 “교양을 쌓기 위해서”라고 응답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을 넘어서서 미술관 방문은 우리 삶 자체에 몇 가지 특별한 혜택을 준다.
첫째, 미술 전시회를 통해 감상자는 새로운 시각에 노출된다. 작품 앞에서 우리는 작가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종종 사회나 개인적 경험에 대해 독특한 견해나 감정을 표현하는데,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하고 있었던 이해 방식에 도전하여 문제를 더욱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번 전시회의 작품 중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에사이아스 보스의 ‘소박한 식사’는 대중의 일상적 삶에 대한 축복의 메시지이다. 아내와 남편(또는 아들과 아버지)은 장식이나 눈에 띄는 사물도 없는 소박한 방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 화가는 두 사람을 화면의 중앙에서 좌우로 약간 벗어나게 배치하여 방 전체의 단순성에 감상자가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식사는 중산층 가정에서 매일 여러 번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이지만, 작가는 이것을 포착하여 가족의 식사 같은 일상적 사건이 어떤 정치적, 종교적 사건만큼 위대한 일이라는 점을 감상자에게 알려 준다. 세상 사람은 대개 소중한 진실을 잊고 살아간다. 그 망각된 진실은 특정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드러나는데, 그것을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발현 사건(Ereignis)’이라고 부른다. 예술가는 발현 사건을 창조하여 감상자에게 삶의 진실을 회상할 기회를 준다.
미술품 감상은 우리 삶의 특별한 혜택
아름다움과 세상에 대해 사색할 기회
아는 만큼 보인다? 보는 만큼 알게 돼!
둘째, 작품을 보며 감상자는 자기 자신의 주변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발견할 수 있다. ‘미(美)’란 무엇인지는 오랜 세월 동안 철학적 토론의 주제였다. 플라톤은 미가 인간의 관념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라고 보았고, 근대 영국의 철학자들은 미가 개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대상의 특징이라고 여겼으며, 칸트는 대상이 어떤 목적에 기여한다는 판단에서 미의 기초를 찾았다. 미의 본질에 관한 철학자의 주장이 어떠하든, 우리가 대상에서 미를 경험하는 것은 사실이다.
뤼시앵 피사로의 ‘아침 햇살’은 평범한 시골 풍경을 묘사한다. 화면에는 그냥 나무와 들판, 농가가 있을 뿐 관광객이 찾아올 만한 어떤 특별한 아름다움은 없다. 그런데 작품은 세상이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른 아침의 풍경을 구성하여 평범한 존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상자가 깨닫도록 만들어 준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농가를 구경하러 비행기를 타고 오랜 시간 날아가지만,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에도 아름다운 것들은 많다. 이번 전시회는 다수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는데, 20세기 현대미술 작품을 모아 놓은 방에 ‘모든 것에는 아름다움이 있으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지는 못한다’는 문장이 벽에 걸려 있다. 예술 작품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주변 세상의 미를 발견할 기회를 준다.
셋째, 감상자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넓은 세상을 알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작품은 특정 시대와 집단의 문화, 가치, 역사를 반영한다. 그래서 전시회는 예술이라는 렌즈를 통해 다른 문화, 역사적 사건, 사회적 문제를 감상자가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교육적 현장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예술의 전시회는 15세기의 종교적, 정치적, 과학적 발전에 대한 통찰력을 감상자에게 제공하며, 현대미술 전시회는 가치의 혼란, 불평등, 기후 변화와 같은 현대 사회 문제를 탐구하는 자료가 된다.
이번 전시회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작품도 전시되었다. 이르마 스턴의 ‘바후투 연주자들’은 아프리카의 문화 이해를 확대한다. 음악은 많은 아프리카 문화에서 작곡자나 연주자의 개인적 경험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연주를 통해 공동체가 집단적 경험을 형성하고 공유한다. 작품은 바후투를 부는 실제의 연주 장면을 묘사하지 않고 연주자들을 빽빽하게 화면에 가득 채워 음악을 만드는 행위가 아프리카 문화에서 차지하는 풍부한 역할을 감상자에게 알려 준다. 작품이 작가의 개인적 창의성뿐 아니라 시대와 사회를 드러낸다는 관점에서, 미술 전시는 세계 역사와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필자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 필요한 사전의 지식은 없으며, 설사 그런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미리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면서 획득하게 된다. 그냥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보면 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다.
2024-10-3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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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K건축 시대를 기다리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놀랐다. 매년 노벨문학상 발표 때면 “한국어 작품은 번역이 어려워 노벨상은 받기 힘들다”며 한국 문학의 대가들 이름만 몇몇 거론될 뿐이었다. 책은 사람들 손에서 점점 멀어지고 출판사는 종이책을 만들어 종잇값도 못 건지는 실정이다. 게다가 국가 문화 예산에서 문학, 출판 관련 예산은 대부분 없어졌거나 삭감된 상황이다. 그런 형편에서 들려온 소식이라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강 작가의 작품은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이미 세계에서 인정을 받은 데다 노벨문학상이라는 무게가 더해졌다. K문화의 정점이 왔음을 실감한다. 마침 방송에서는 ‘흑백요리사’ 열풍으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화제를 모았다. K팝, K영화·드라마, K푸드에 이은 K문학의 성과는 한국 문화의 저변은 인문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했다. 그렇다면 우리 건축은 어디까지 왔을까. 인문과 공학의 결합으로 한 나라의 문화를 구현하는 건축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은 그 사회의 문화 수준 척도
“한국은 온갖 규제에 묶여 있어”
우리 건축 우리가 먼저 존중해야
노벨상에 건축 분야는 빠져 있다. 대신, 건축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이 있다. 이 상은 프리츠커 가문이 운영하는 하얏트 재단이 매년 3월, 살아있는 건축가 중 가장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1979년 첫 시상 이후 대부분 미주와 유럽 출신, 그리고 일본의 건축가가 수상했다. 그들의 건축물은 현대의 대표적 건축물로 불릴 만큼 모던하거나 아름답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져 지역성을 기반으로 하거나 공동체에 대한 깊은 고민과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동시대의 인문과 철학을 담아 건축이 한 사회의 문화 수준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3월 46번째 수상자를 발표했는데, 일본의 야마모토 리켄 건축가가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이로써 일본은 9번째 수상으로 최다 수상국이 되었다. 이는 건축가 개인의 역량과 더불어 일본 건축의 저력을 보여준다. “일본은 건축을 국가를 설계하는 싱크탱크로 여긴다”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건축가 도미이 마사노리 전 한양대 건축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일본 건축가를 알리는 전시회의 해외 개최를 지원하는 등 일본인 건축가들이 국제 건축계에 이름을 알릴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육성해 해외 진출의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그에 비해 한국은 동아시아 3국(한국, 중국, 일본) 중 아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물론 상 하나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그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 건축은 어디까지 와있는지 곰곰이 챙겨봐야 할 시점이다.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야마모토 리켄 건축가는 2010년 우리나라에서 타운하우스 ‘판교하우징’을 설계했다. 총 100가구의 공동 주거시설로 9~11가구를 하나의 그룹으로 만들고 가운데를 마당처럼 공유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현관을 투명한 유리로 마감해 집안이 훤히 보이는 탓에 초기 분양 당시에는 사생활 침해 논란으로 미분양이 났지만, 2020년에는 주민들이 야마모토 리켄을 초청해 감사를 전할 만큼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는 그를 선정한 이유로 “사회성이 높은 건축물로 사람들의 커뮤니티(공동체)를 재정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한 명도 안 나온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건축 문화가 한국보다 나아서 수상자가 많은 게 아니다. 일본 건축가들이 건축물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내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국 건축가들에게 제대로 설계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온갖 제약과 규제에 묶여 있다. 한국 건축가들이 불쌍하다. 자유도가 전혀 없다. 그러면서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자유롭게 건축할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에서 유명한 건축물은 거의 외국인 건축가의 작품이다. 요지는 외국인에겐 자유로운 건축물을 지을 기회를 주면서 한국 건축가에겐 안 준다는 것이다. 이상하다. 한국에도 좋은 건축가가 많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다른 나라 건축가도 아는 사실을 우리가 모를 리 없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와 건축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건축가로서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외국 유명 건축가들 위주로 주어지고 우리 건축가는 소외된다면, K건축 시대는 요원하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받아야 예술가로 건축가로 대우받을 수 있다면, 예술과 건축은 대한민국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K문화의 세계적인 위상과 국민의 문화적 수준, 그리고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비해 제도적 환경의 변화가 더딘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2024-10-2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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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술과 그림에 취한 신선, 장승업
조선 후기 화가 오원 장승업(1843~1897)의 작품 가운데 그간 러시아에 보관된 까닭에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고사인물도’ 4점이 일반에 공개되어 눈길을 끈다. 조러수호통상조약 140주년을 기념해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과 러시아, 140년 전 맺어진 우정’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그 주인공이다. 이 전시는 애초에 8월 말에 끝나는 것으로 예정되었지만 전시 기간이 11월 30일까지로 연장된 덕분에 필자도 작품을 직접 관람할 수 있었다.
이 작품들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난 다음 해인 1896년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이 같은 해 러시아 황제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해 보냈던 선물의 일부다. 고사인물도는 후세에 귀감과 본보기가 될 만한 중국 역사 속 인물과 일화를 그린 것으로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 ‘취태백도(醉太白圖)’ ‘왕희지관아도(王羲之觀鵝圖)’ ‘고사세동도(高士洗桐圖)’ 4점이다. 앞의 두 작품은 작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에서 127년 만에 처음 공개되었고, 뒤의 두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128년 만에 첫선을 보였다. 원본이 아닌 영인본 전시이기는 하지만 원본과 거의 다름없는 고해상도에 높이 174cm 크기의 대작이어서 원작의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노자출관도’는 소를 타고 오는 노자에게 국경 검문소 관리 윤희가 지혜의 말을 청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때 노자가 쓴 것이 〈도덕경〉이라 전해진다. ‘취태백도’는 술을 마시고 나서야 시를 썼다는 당나라 시인 이태백을 묘사한 그림이다. ‘왕희지관아도’는 서예가 왕희지가 유연하게 변하는 거위의 긴 목에서 서체의 영감을 얻었다는 고사를 담고 있으며, ‘고사세동도’는 오동나무를 사랑했던 화가 예찬이 친구가 나무에 무심코 뱉은 침을 씻어 내게 했다는 일화를 통해 자연에 대한 사랑과 청렴하고 고결한 정신을 상징한다.
장승업 작품 관람과 함께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취화선’(2002)을 보는 것도 추천한다. 영화는 기인 장승업의 어린 시절부터 구한말 격동기를 거쳐 화가로 대성했다가 어디론가 사라지기까지 생애 전 과정을 다룬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듯 뛰어난 영상미를 감상할 수 있다. ‘술과 그림에 취한 신선’이란 의미의 영화 제목 ‘취화선(醉畵仙)’은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던 장승업의 생애와 그의 성격을 잘 담고 있다. 그는 돈·명예·권력 같은 세속적 성공에 관심이 없었고, 그에게는 오로지 그림과 예술적 영감을 북돋아 주는 술뿐이었다. 영화가 묘사하고 있듯이, 그는 그림의 대가로 받은 돈도 술 마시는 데 모두 탕진했고, 가정도 제대로 꾸릴 수 없었으며, 평생 그림을 원하는 후원자들의 사랑방이나 술집을 떠도는 방랑자로 살았다. 고종이 그에게 벼슬을 내려 궁중에서 작업하게 했지만, 그마저도 그는 구속이라 여기고 자유를 찾아 궁에서 탈출했다.
장승업은 조선 초기 안견, 조선 후기 김홍도와 함께 조선 시대 3대 화가로 손꼽힌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장승업이 후대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다. 산수화·인물화·화조화·동물화·기명절지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모두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는데 전통 화법과 외래 화법을 종합·절충해 자신만의 양식을 발전시켰다. 그가 뛰어난 기량으로 당대의 화단에서 이름을 떨치자 고관대작과 일본인들까지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애호가층이 폭넓게 형성되었다. 당시 화단에서는 호방하고도 과감한 생략을 특징으로 하는 필묵법의 인물화와 화조화·영모화가 유행했는데, 이것은 장승업의 영향이기도 했다. 그의 산수화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 산수화풍의 근원이 되었고, 유려한 필치로 그린 도교의 신선이나 불교의 인물 그림도 근현대 회화로 계승되고 있다.
조선 후기까지도 글씨와 그림은 그 근원이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만 권의 책을 읽은 기운이 우러나야 한다는 의미의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를 주장한 추사 김정희 등의 조선 문인화 전통이 지배적이었다. 문인화 전통은 대상에서 느껴지는 내면세계와 정신적 의미를 그려내는 것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도 시대적 변화와 함께 점차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장승업의 그림이 큰 인기를 얻은 이유는 변화하던 시대가 요구하던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림 수요자도 왕실·양반층에서 상인·평민들로 확대되었고, 근대 화풍이 도입되면서 팔기 좋은 형식 위주의 감각적 그림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직업 화가였던 그는 이러한 요구에 들어맞는 기운생동의 화풍을 선보였다. 그래서 장승업은 불우한 천재라기보다는 지식인 화가 시대가 가고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화가 시대를 선도한 화가로 평가해야 할 것 같다.
성큼 다가온 낙엽의 계절, 오원 장승업의 작품과 영화를 만나보시길 권한다.
2024-10-1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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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창의성은 관객을 부른다
어느 나라든 음악은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써 사용되었으며,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며 변화했다. 음악은 인간의 본연이다. 최초의 한자 사전으로 꼽히는 〈설문해자〉에서 ‘음은 소리인데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했다. 그 음을 조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음악이다. 그래서 전쟁과 같은 인간성 말살의 시기에도, 노예로 끌려갔던 비참한 시기에도 사람들은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시기를 견뎌내며 인간의 삶과 고뇌를 음악에 담았고, 인간의 사고를 더 풍요롭게 하며 삶의 본질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음악은 문화와 마찬가지로 물 흐르듯이 흘러 다닌다. K클래식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 스타 연주자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피케팅’(피를 튀기는 티케팅)을 한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예매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몇몇 인기 있는 공연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객석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이 시대 살아있는 베토벤 피아노 음악의 대가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와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의 부산 공연(6월 29일)도 객석의 반을 조금 넘긴 정도였으니 말이다.
2026년 부산 오페라하우스 개관 예정
클래식 분야는 전용 극장의 역할 막중
숨은 인재들 모아 획기적 공연 준비를
클래식 음악은 음반을 사용해서 듣던 시기를 넘어, 소셜미디어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마음만 먹으면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공연장에서 직접 감상하는 클래식 음악은 여전히 고급 취향의 대명사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정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에서 가장 많이 즐기는 문화생활 장르는 영화로 52.4%였고 서양 음악(클래식)은 1.9%에 그쳤다. 클래식 음악 티켓 판매액 비중은 서울이 73.7%, 대구 6.8%, 부산 6.5%, 인천 5.1%, 대전 2.8%, 울산 1.2%였다. 음악 소비도 어김없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관객은 여전히 소수이지만 지역 클래식 전용 극장들의 개관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2016년에 시작된 ‘부산오페라위크’는 부산 지역의 오페라 축제다. 2026년 예정된 부산 오페라하우스 개관에 앞서 시민들에게 오페라의 매력을 알리려고 만들었다. 2022년부터 오페라 자체 제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부산오페라시즌’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부산시는 오페라 전문 관련 청년 일자리와 무대 경험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취지로 매년 오디션을 통해 ‘오페라시즌 오케스트라·합창단’을 공모했다.
‘2024 부산오페라시즌’에서는 오페라 ‘나비부인’과 ‘사랑의 묘약’을 무대에 올렸다. 여느 해보다 깊어진 관심으로 극장이 가득 찼다. 특히 금정문화회관의 ‘사랑의 묘약’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출이 돋보였다. 작품의 내용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위트 넘치는 자막과 가수들의 적절한 연기도 재미를 더했다. 게다가 경성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학생 26명이 합창단 의상을 만드는 협업은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방법 모색과 오페라 관심의 증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시도라 돋보였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날 공연에서 ‘2024 부산오페라시즌 합창단’은 첫 공연 때보다 훨씬 자유롭고 편안하게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세기의 가장 상징적인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 오페라는 미국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해변의 아인슈타인’이다. 1976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초연 당시 전통의 규칙을 벗어던진 새로운 구성과 로버트 윌슨의 혁신적 연출이 화제였다. 이후에 국제 투어를 위해 재구성되었고, 2012년 프랑스 몽펠리에의 르 코룸 오페라 베를리오즈 극장에서 시작해 2015년 한국의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마무리되었다. 잘 팔리는 공연 상품이 된 것이다. 미술비평가 존 록펠러는 〈뉴욕타임스〉에서 ‘보고 또 보고 음미해야 하는, 평생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경험’이라 격찬했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공연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때 극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공연을 고르는 기획력과 창의력, 즉 상상력이다. 상상력이란 앉은 자리나 직위 때문에 저절로 만들어지거나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끊임없이 공부한 사람의 직접적인 경험으로 예술적 안목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상상력이 더해져야 공연 예술이 살아난다.
상상력은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가 말한 진정한 상상력은 튼튼한 지식의 기초를 토대로 나오는 것이다. 단지 상상력만 있다면 그것은 우연한 일과성에 머무르고 만다. 새로 생기는 부산의 클래식 전용 극장에는 안목과 전문성을 겸비하고 상상력 가득한 이들로 채워지길 기대한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하지 않던가. 곳곳에 숨은 고수들은 많다. 창의적인 상상력은 수많은 문화 소비자를 공연장으로 부르는 원동력이다.
2024-10-1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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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글로컬 시대의 부산 지역어 보전
며칠 있으면 한글날이다. 어버이날에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과 고마운 마음을 부모님께 전하는 것처럼 한글날이 다가오면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최근 한국 영화와 드라마, 음악 등 한국 문화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많이 증가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말을 소홀히 대하고 있으니 깊이 반성할 일이다. 특히 2022년 ‘영어 상용도시’ 논란에 이어 올해에는 법정동 명칭에 외국어를 포함한 ‘에코델타동’ 사태까지 벌어져 우리말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부산시가 오히려 우리말을 홀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항간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시는 국어 사용 조례에서 정한 우리말 및 지역어의 보전과 육성을 위한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시는 특히 지역어 보전과 육성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산의 지역어, 즉 부산말은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다양한 부산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부산만의 정서가 한데 모인 문화의 총체, 곧 부산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에서도 지역어 보전과 육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우선 지역어 실태 조사 사업의 결과를 바탕으로 부산말 사전 편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약 2500단어 정도의 소규모 사전으로 편찬된다고 한다. 제주도의 경우 10억 원 이상을 투입하여 〈제주어대사전〉을 만들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사전의 규모도 문제이지만 지역어 보전 사업의 방향성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달리 설정할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는 디지털 사회이기 때문에 ‘종이’ 사전에서 벗어나 지역어 자료를 ‘디지털’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디지털의 장점인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종이 사전에 담지 못하는 음성과 영상, 다양한 이미지 자료도 함께 제공할 수 있다. 즉, 종이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은 사전에서 아카이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지역어 아카이브는 매년 부산의 문화를 대표하는 주제를 정해 관련 지역어 및 문화를 취재·조사하여 구축할 수 있다. 가령 ‘기장의 미역업’, ‘부산의 해녀’와 같이 주제를 정한 후 해당 지역 사람들과 면담을 통하여 주제 관련 지역어를 수집·정리한다. 그리고 동시에 사라져 가는 문화를 영상과 사진 자료로 기록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제에 따라 통합된 일련의 지역어 자료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부산학이자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다.
한편 부산시는 외국인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70억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영어하기 편한 도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 허브도시로 나가기 위해서는 외국인이 부산에 정주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하는데, 의사소통이 가장 걸림돌이 되니 시민들의 영어 실력을 높여 외국인들의 생활 여건을 편리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과연 이러한 목표는 실현 가능한 것일까. 외국인이 부산에 자리를 잡고 산다면 부산 시민이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한국어, 부산 지역어를 배워야 한다. 정주한 곳에서 그 지역어로 소통할 때 비로소 서로 동등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어 교육을 강화해 외국인의 조기 정주를 도운 후쿠오카를 글로벌 허브도시의 본보기로 삼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는 유학생,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와 그 자녀 등 특성에 따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지금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 특히 학습자의 학습 목적과 배경에 따른 수준별 맞춤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섬세하게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외국인을 위한 부산 지역어 교재를 만들어 상황에 맞게 활용한다면 외국인의 부산 정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비즈니스, 관광 등 단기간 부산을 찾는 외국인을 위해 인공지능 기반 부산 지역어 통·번역 앱을 만들어 제공할 수도 있다. 현재 많은 통·번역 앱이 있지만 부산 지역어를 인식하는 데 심각한 오류가 보인다. 따라서 부산 지역어를 대규모로 수집해 인공지능 학습이 가능하게 가공한 후 이를 기반으로 부산 지역어 특화 인공지능 통·번역 앱을 만든다면 정확도와 실제 활용도 향상이라는 두 효과를 함께 누릴 수 있다.
과거 우리는 세계화만을 강조하느라 우리말과 지역어를 소홀히 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의 지역화, 지역의 세계화가 함께 강조되는 글로컬(glocal) 시대다. 우리말과 지역어를 잘 보전하고 육성하는 것이 곧 글로벌 허브도시로 가기 위한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4-10-0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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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이 시대의 '막걸리 긴급조치'
요즘 “반국가 세력”이란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이 말이 가리키는 사람은 상당히 위험한 세력이다. 그야말로 국가에 반(反)하는 의식으로 언제라도 나라를 혼란에 빠지게 할 우려가 상존하는 이들이다. 쉽게 말해 ‘간첩’이나 ‘이적 행위’를 떠올리면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니, 기후 위기니, AI(인공지능)니 하면서 전 세계인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 인류에게 닥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방안을 찾기에도 모자랄 판국인 오늘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정신을 다시 차리고 생각해 본다. 정말 반국가 세력이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이들은 지금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혼란을 빠뜨리게 하는가?
최근 들어 대통령의 입에서 갑자기 나오기 시작한 ‘반국가 세력’은 사실 한국이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되던 무렵부터 6·25 전쟁을 거쳐 박정희 유신 정권까지 겪어야 했던 극심한 좌우 대립의 소산이다. 이념과 사상이란 이름으로 동족을 가두고 죽여야 했던 비극의 한국 현대사를 절로 떠올리게 하는 말이 바로 반국가 세력이다. 실제로 한국전쟁과 여수·순천 사건 및 제주 4·3 항쟁 등의 슬픈 역사는 서로를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짓고 단죄하려 했던 집단 간의 목숨을 건 싸움으로 얼룩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념과 사상 때문에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어 죽어나갔다.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서도 여전히 반국가 세력이란 이름은 우리 무의식 깊숙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마치 유전병처럼 멀쩡하다가도 잊을 만하면 존재를 드러내는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묻기도 따지기도 전에, 권력의 최상부에서 제시되었다는 이유로 낙인을 찍으려고 혈안이 된 정국을 지켜보면서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근래 최저 수준의 지지율을 기록한 대통령과 정부 내각의 역사 인식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 사방에서 흘러나오던 참에 절묘하게도 반국가 세력은 호출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국가 세력이 누구이며, 어디에 암약해서 어떤 말과 행동으로 사회를 어지럽히는지 찾아야 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간첩처럼 이적 행위를 하려고 눈을 부라리거나(혹은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눈을 내리깔거나) 선량한 시민을 선동해서 국가를 전복하려는 낌새를 보이는 자를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고개를 돌리니 한숨 섞인 푸념만이 들린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옆을 봐도,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하루 먹고 살아가는 데 족하거나, 하루라도 버텨보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남들만큼이라도 살아보려고 정신이 없다.
그러니 반국가 세력이란 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눈 뜨고 찾으려야 찾기 요원한 그 세력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고 익히고 생각하는 중에 간악한 반국가 세력이 누구인지 절로 안다. 경남 마산에서 활동하는 우무석 시인의 ‘70년대-막걸리 긴급조치’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심사 틀려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도/ 술 취해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도/ 박통과 긴조 시대에 대해/ 꽥꽥 오리울음 같은 객기 내뱉지 마라/…/ 그랬으므로 말하는 것 자체가/ 되레 운동이었던/ 코미디의 시대였으니.’(시집 〈10월의 구름들〉)
다가오는 10월 16일은 이곳 부산과 마산에서 박정희 유신 독재의 반민주주의적이고 반인권적인 통치 체제에 맞서 시민과 학생들이 유신헌법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친 날이다. 부산에는 계엄령, 마산에는 위수령이 내려져 수많은 사람이 경찰에 잡혀가서 고초를 겪었다. 걸핏하면 ‘긴급조치 9호 위반’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을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었던 이 사건은 훗날 ‘부마민주항쟁’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과 함께 4대 민주화운동으로 정립되었으며 2019년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부마민주항쟁 45돌을 맞는 이즈음에 다시 듣게 되는 반국가 세력을 생각한다. 당시 항쟁의 와중에 마산경찰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제 총기가 발견되었고 시위는 불순 세력이 음모한 폭동이었다고 발표했지만, 조작임이 밝혀졌다. 4·19 혁명을 촉발한 마산 3·15 의거 당시에도 이승만 정권은 시위 배후에 공산당이 있다고 발표했다. 지금 횡행하는 “반국가 세력”은 마산 3·15 의거와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이었다. 결국 정권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말이었던 것이다. 역사적인 두 시위로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막을 내렸고, 잠시나마 민주주의의 봄볕이 찾아왔다. 그 역사를 우리는 똑똑히 알고 있다.
2024-09-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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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호기심이 사라지는 나라, 대한민국
“왜 선배님은 수학을 연구하십니까?” 미국 대학의 수학과 교수가 출신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후배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이런 질문을 받았다. “호기심 때문이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선배는 짤막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응답했다. 당시 2학년이던 필자를 포함하여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수학 공부를 통하여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또는 “학술적 업적을 성취하여 한국인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이기 위해서” 같은 거창한 말을 우리는 예상했던 것이다.
호기심은 순수한 탐구 열정이다. 순수하다는 말은 실용적 목적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반면 배를 만들기 위해서, 전력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연구하는 것은 실용적 탐구이다. 이 경우 탐구의 동력은 현실 세계의 문제 해결 같은 실용성이지 호기심은 아니다. 그냥 알고 싶은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순수 탐구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철저하게 근원을 향해 질문한다. 필자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는데, 동네 앞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지나 저 멀리 산맥을 넘으면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다. 주위 어른에게 산을 넘어도 들판이 있다는 답을 듣지만, 아이는 그것을 넘어가면 또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마침내 아이에게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라”는 핀잔이 돌아온다.
인간은 쓸데없는 것이라도 묻고 싶은 존재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제1권은 “원래 모든 사람은 알고 싶어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안다(eidenai)’는 말은 아이의 호기심처럼 실용적 고려 없이 무언가를 탐구한다는 의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인식 활동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낮은 단계는 경험이며, 그 위 단계는 신발이나 국가를 만들고 운용할 줄 아는 기술적 인식과 인생을 잘 영위하기 위한 삶의 지혜이며, 가장 높은 단계는 호기심에서 일어나는 순수 탐구이다. 이 최고 단계의 인식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피아(sophia)’라고 불렀는데, 그의 선배들은 ‘필로소피아(philo-sophia)’라고 하였다. 필로소피아는 그리스 말로 ‘최고 인식’을 의미하는 ‘소피아(sophia)’와 ‘사랑하다’를 의미하는 ‘필로스(philos)’의 합성어이다. 필로소피아는 영어로 ‘필로소피(philosophy)’이며, 이것을 일본 학자 니시 아마네(西周)가 1874년 ‘철학(哲學)’이라고 번역하였다. 철학은 순수 탐구에 대한 번역어인 것이다.
필로소피아는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의 탈레스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는 세계가 원래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 물으면서, 세계의 시초는 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답변은 틀렸지만 순수하게 그냥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발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우주의 시초가 무엇인지 묻는 이런 탐구는 실용성이 없다. 세계의 시초가 물이든, 불이든, 공기이든, 원자이든, 그걸 안다고 해서 당시의 현실 생활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필로소피아 즉 철학은 실용성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으며 실용성을 고려하지도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는 필로소피아는 사라진 것인가? 아니다. 현대의 순수 과학은 필로소피아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같은 학문은 지구 온난화나 질병의 퇴치 같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기에서 시작하지 않고, 최초의 근원을 그냥 알고 싶어서 탐구한다. 부산대 물리학과 유인권 교수는 우주의 최초 물질 상태를 연구하는 학자이다. 그는 탈레스의 후계자인 것이다. 유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매우 당혹스럽다고 신문 칼럼에서 밝혔다. 사실 이런 질문은 남자보고 언제 출산할 것이냐고 묻는 것처럼 빗나간 것이다.
탈레스에 대한 일화가 전해 온다. 그는 별을 관찰하면서 걷다가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사람들은 철학자가 천상의 별은 보면서 발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보지 못한다면서 그를 조롱하였다. 이 이야기는 주로 철학이 실용성이 없음을 지적할 때 인용되어 왔다. 그러나 헤겔은 〈철학사 강의〉에서 다른 관점으로 일화를 이해한다. “사람들은 철학자를 비웃을 것이나, 그들은 철학자가 대중을 비웃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대중은 구덩이에 빠질 수 없다. 그들은 더 높은 세계를 보지 못하므로 이미 구덩이에 늘 빠져 있다.” 하늘, 즉 높은 세계는 최고의 진리를 가리킨다. 대중은 그런 것을 탐구하지 않기에 실용성의 구덩이에 빠져 살면서도 본인은 그 점을 모르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호기심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고등학생들은 실용적 학과만 지원하고, 교육 당국도 필로소피아를 학교에서 추방하고 있는 것이다. 실용 연구만으로 인간은 잘 살아가지 못한다. 본성상 인간은 호기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2024-09-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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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구덕운동장 재개발에 대한 단상
지난 7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의 22층 빌딩 허츠 타워가 폭파됐다. 수리비 2200억 원을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1983년에 지어진 허츠 타워는 40년간 이 지역 대표적인 마천루로 꼽혔으나 2020년 허리케인의 여파로 심각하게 파손됐고 건물 복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 4년간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매각은 되지 않고 소유주인 허츠 그룹이 수리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철거를 결정했다. 건물 폭파 비용만도 93억 원에 달한다는 뉴스를 접하니 남의 나라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미 이상기후는 농산물 가격을 흔들었고, 1년 중 절반이 여름이 될 수도 있다는 기후위기 앞에서 부산이라고 비켜갈 수 있을까.
부산에는 허츠 타워보다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즐비하다. 태풍만 와도 비상인데, 해일이나 허리케인이 몰려온다는 상상만으로도 공포스러웠다. 기후위기와 인구절벽 앞에서 도시 부산의 미래는 신중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글로벌 허브도시를 지향하는 지금 부산은 가덕신공항 건설, 북항 재개발, 양질의 일자리 부족, 수도권과 교육·문화의 격차로 인한 청년 유출, 거기다 저출생 및 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과 맞물려 늘어나는 빈집 문제도 만만치 않다. 이런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듯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중·단기 혹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기적으로 해결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부산은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며 급속하게 팽창한 도시다. 대한민국 재건 당시 교육, 문화, 경제의 주요 동력이었고, 한편으로는 전국의 피란민을 껴안으며 성장했다. 도시 개발 이전에 정착한 피란민들은 마을을 만들었는데,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주택개량사업이 진행됐다. 그리고 1980년 이후부터 그야말로 우후죽순으로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 재개발·재건축과 함께 이룬 아파트 숲은 골목을 없애고 이웃을 단절시켰다. 이 시기 교육, 문화, 산업은 빠른 속도로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남은 아파트들은 재건축, 노후 주거지는 재개발 혹은 도시재생으로 결을 달리 했다. 재건축된 아파트는 용적률을 높여 점점 더 높아졌고, 타산이 맞지 않은 노후지역은 도시재생을 진행했음에도 사업이 끝남과 동시에 활력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빈집이 늘어나는 마을에 근원적 대책 없이 제한된 예산으로 진행된 도시재생은 정체가 모호해진 상태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어디에 사느냐가 그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규정하듯, 집은 점점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얼마 전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혁신지구 공모에서 최종 탈락한 구덕운동장 복합 재개발사업만 해도 그렇다. 구덕운동장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들어섰다. 1940년 ‘노다이 사건’이라 불리는 항일학생운동도 여기서 벌어졌다. 해방 이후 ‘부산공설운동장’이라고 이름을 정했고, 1985년 사직야구장과 사직실내체육관이 문을 열면서 ‘구덕운동장’으로 명칭을 바꿨다. 구덕운동장은 사직야구장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부산 지역 스포츠의 메카였다. 부산의 미래유산 목록에도 들어있는, 말 그대로 부산 지역 운동장의 역사 그 자체다.
2023년 12월 구덕운동장 재개발사업 대상지가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혁신지구 후보지로 선정됐다. 공모에서 최종 확정됐다면 부산시는 국비 최대 250억 원과 시비 250억 원을 재원으로 활용하는 도시재생 혁신지구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을 테지만, 결국 무산됐다. 축구 전용구장과 문화·생활체육시설, 상업·업무시설 등을 건립한다는 계획이었으나, 800가구 규모의 고층 아파트 설립 계획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주민들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 아무래도 주변 환경이 공공의 성격보다 사유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했다. 만약 구덕운동장 재개발사업 계획에 고층 아파트 대신 지식산업센터를 포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덕운동장이 소재한 부산 서구는 주요 대형병원이 모여 있어 의료관광 특구로 지정된 곳이다. 동아대학교병원, 부산대학교병원, 고신대학교복음병원이 있고 메리놀병원도 10분 거리다. 구덕터널만 지나면 지척에 백병원이 있다. 지식산업센터에 특화된 의료 관련 산업을 유치하여 주변 병원들과 연결한다면 서구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더한 경제, 산업, 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원도심 경제 활성화까지 기대해 볼 수 있다.
변화의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와 인구절벽을 맞은 지금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지역 재생과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변화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다.
2024-09-1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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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노래 가사처럼 도시의 낮과 밤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문화예술이 더해지면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밤에 행사를 마련해 성공을 끌어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문화유산 야행’이다. 고궁, 왕릉 등 고풍스럽고 조용하기만 하던 문화유산들은 특히 한밤에 찬란하게 빛나는 미디어아트가 결합되면서 감동적일 뿐 아니라 최첨단의 가장 젊고 핫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밤에 모여서 즐기는 문화가 나타나게 된 것은 그 무엇보다 가스등과 전기의 발명과 발전 덕분이다. 1807년 영국 런던에 최초의 가스등이 설치되었고, 이어서 미국 볼티모어(1816년), 프랑스 파리(1820년)에서도 가스 조명이 대중화되었다. 가스 가로등은 사람들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가스등의 등장 이전 사람들은 밤에는 어떤 활동도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가스등이 나타나자 밤에도 공장이 돌아가고 상점이 문을 열었으며 사람들이 모이고 도시의 밤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음주 중심의 회식 문화가 사라지고 그 대신 저녁 시간을 문화예술 향유와 정신적 재충전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시민들의 욕구가 늘어났다. 그러나 문화예술 기관들의 야간 프로그램 운영은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서울에서는 일찍부터 미술관, 박물관, 고궁 등의 야간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해 이미 많은 시민들과 해외 관광객들이 밤의 문화예술을 즐기고 있지만, 지역에서는 이제 막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재)김해문화재단의 경우 올해 (재)김해문화관광재단으로 그 명칭을 바꿔 관광 분야에 힘을 실으면서 야간 문화예술 관광 프로그램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도 8월 초 이틀간 ‘밤의 미술관’을 운영했는데 여기에 1200여 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갔다. 힙합·팝핀·스트리트 댄스 공연, 성악가의 노래와 함께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뮤지컬 도슨트’ 프로그램 등으로 오후 9시까지 미술관을 운영한 결과였다. 미디어아트 작품 등으로 구성된 전시는 이렇게 댄스와 같은 퍼포먼스 요소가 더해지면서 관람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번 특별 야간 개장은 여름휴가 기간을 맞아 자연 속 미술관이 연출하는, 낮에는 볼 수 없는 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관람 시간을 오후 9시까지 연장하고 전시관 두 곳을 연결하는 산책로에 은은한 경관조명을 밝혀 예술 속 고즈넉함을 즐기며 소중한 사람들과 달빛 산책의 추억을 쌓을 수 있게 했다. 미술관의 메인 전시관 돔하우스는 투명한 반구형 유리 돔 천장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오후 6시에 문을 닫는 평소엔 천장을 통해 오로지 낮의 푸른 하늘만 보이지만, 야간 개장 때에는 네온사인과 영상이 별빛처럼 신비롭게 비치는 유리 돔 천장과 그 너머 밤하늘까지 볼 수 있다. 미술관은 야외 경관조명을 보강해 올가을과 내년까지 야간 운영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4~5월 김해가야테마파크에서 40일간 야간 개장으로 열렸던 일루미네이션 축제 ‘빛의 왕국 가야’도 관람객 7만 5000여 명이라는 개관 이래 최다 방문객 수를 기록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김해 방문의 해’를 맞아 기획된 이 행사는 2000년 전 가야의 왕이 걸었던 야행 길을 재해석한 무지개 빛 호수, 가야 빛 왕궁, LED 꽃밭 등 다채로운 빛과 색채의 향연을 선보여 주말 저녁 5000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가야테마파크 야간 개장은 이달 7일부터 다시 시작한다. 특히 김해전국(장애인)체육대회 개최 시기에 맞춰 ‘가야 시민가요제’ ‘연어 음악페스티벌’ ‘드론 라이트쇼’ 등 여러 이벤트들을 잇달아 펼치며 연말까지 야간 개장을 이어갈 계획이다. 전국체전 등 주요 행사가 몰리는 10월에는 오후 10시까지 연장 개장한다고 하니 기대가 더욱 크다. 또 7일에는 김해에서도 부산 광안리에서 진행된 것과 같은 드론 라이트쇼를 볼 수 있다. 김해 분성산 150m 상공에서 500대 이상의 대형 드론들이 김해의 역사적 정체성이 담긴 특별 콘텐츠들을 화려한 빛으로 밤하늘 위에 그려낼 예정이다.
19세기 가스등과 전기로부터 시작되어 IT(정보통신) 기술이 접목된 첨단 미디어아트, 드론 라이트쇼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예술의 융합은 우리에게 밤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놀라운 경험들을 선사하고 있다. 낮과는 또 다른 넘치는 매력을 감추고 있는 밤의 아름다움과 모든 것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밤의 치유력을 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문화예술 관광 프로그램 개발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2024-09-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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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국가(國歌)와 애국가(愛國歌)
지난 12일 2024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이런저런 비난과 찬사도 있었지만 지구촌 전체의 축제였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탁구 혼합복식 종목에 참가한 남한과 북한 선수들이 나란히 시상대에 오른 것이었다. 중국 선수들까지 함께한 이 장면은 ‘빅토리 셀피’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AFP통신은 이것을 올림픽 10대 뉴스 중 하나로 꼽았다.
근대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인의 평화와 화합을 이루고자 했던 프랑스인 쿠베르탱에 의해 1896년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가 처음 독립국의 자격으로 참가한 것은 올림픽이 생긴 지 50여 년 만인 1948년 런던 올림픽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였던 독일과 일본은 참가할 수 없었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은 아예 참가를 거부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14개국은 처음으로 참가했다. 모두 59개국이 참가한 당시 올림픽에서 우리는 복싱과 역도에서 각각 동메달을 하나씩 따왔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서는 13개의 금메달을 포함하여 모두 32개의 메달을 가져왔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가 누리는 최고의 순간은 금메달 시상식 단상 한가운데 서서 자신의 국가를 듣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은 늘 감동이다. 우리 선수들이 따라 부르는 애국가를 들으면서 나라의 노래인 국가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모든 나라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공식적인 노래가 있고 그것을 우리는 국가라 부른다. 나라의 예식에 사용되는 국가 속에는 각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부분도 있고, 자국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우리는 공식 국가는 없지만 애국가를 국가로 같이 사용한다. 대한제국 당시 총 250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우리 문화를 집대성한 〈증보문헌비고〉에서도 국가를 애국가라 불렀다. 그 속에 ‘대한 애국가’ ‘일본 애국가’ ‘영국 애국가’ ‘미국 애국가’ ‘법국(프랑스) 애국가’ ‘덕국(독일) 애국가’ 등의 표현이 있는 걸 보면 우리는 국가를 애국가와 같이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역사의 부침만큼이나 애국가는 정통성에 대한 시비가 많았고 지금도 여전하다. 먼저, 작곡자 안익태가 친일 의혹에다 나치 독일의 제국음악원 회원이었다는 점도 문제였고, 음악 자체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작곡가 나운영 선생은 애국가는 7·5조의 율격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기미가요’나 ‘만주가’ 등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애국가를 일본어로 바꾸면 7·5조가 된다.
음악적 표절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1964년 제3회 서울국제음악제 때 내한한 불가리아계 미국 음악가 피터 니콜로프는 “대한민국의 ‘애국가’는 불가리아의 음악인 ‘오! 도브루자의 땅이여’를 표절했다”고 주장해 큰 논란을 불렀다. 이 곡은 알렉산더 크라스테프의 곡으로 1·2차 세계대전 당시 불가리아 군인들이 즐겨 불렀던 군가였다. 실제로 음악을 듣거나 악보를 비교해 보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사자로 알려진 윤치호가 일본제국 의회의 귀족원 의원이었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가사 자체에 대한 시비는 더 오래된 논쟁거리였다. ‘동해’와 ‘무궁화’란 단어에 대해 문제점을 주장하는 연구는 오래된 것이었다. 필자는 ‘삼천리’라는 표기에 주목한다. 국가의 가사에 강역의 넓이를 구체적으로 넣은 것도 어색하지만,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조선과 대한제국의 강역은 ‘삼천리’가 아니라 ‘사천리’였다. 선조 26년(1593) 병부에 ‘조선은 국토 넓이가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라고 정확히 쓰여 있다. 고종 임금 때도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라는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명나라 지리서 〈대명일통지〉나 청나라 기록인 〈흠정속문헌통고〉 등에도 조선의 강역은 ‘사천리’라고 명확하게 적혀 있다.
우리 국력도 세계에서 손꼽는 수준이 되었다. 이제는 대한민국을 제대로 상징하는 국가를 다시 고민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나 중국은 시대 변화에 따라 국가를 8번이나 바꿨다. 오래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것을 영원히 유지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조상의 얼이라는 알맹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국가가 나올 시기가 되었다. 식민의 시대가 남긴 찌꺼기는 모두 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이야기하는 논의의 장이 열리면 좋겠다. 이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흩어진 국론을 다시 모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국가라는 음악은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모든 국민을 통합하는 힘 있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정약용 선생은 음악을 ‘나라의 정신적 기틀’이라 했다. 국가(國歌)는 국가(國家)가 행하는 최고의 의례다.
2024-08-2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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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지자체 유튜브와 벽화 마을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유튜브 활동에 열심이다. 전국의 도와 시군구 행정 단위별로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의 세금을 투입하여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 유튜브 열풍의 출발은 충북 충주시의 ‘충TV’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4월 문을 연 충TV는 충주시 홍보담당관실 김선태 주무관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밈(meme, 인터넷이나 SNS 등에서 유행해 퍼져나가는 패러디물)’을 활용한 B급 감성 콘텐츠로 공공기관의 홍보물은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충TV의 인기가 어느 정도냐 하면 충주시 인구가 약 20만 명 정도인데 충TV 구독자는 약 76만 명으로 충주시 인구의 3배가 넘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정책홍보 혁신 사례로 충TV를 직접 언급하면서 전국의 거의 모든 지자체와 공공기관은 너나 할 것 없이 유튜브 홍보에 뛰어들었다.
유튜브를 활용한 지자체의 홍보 활동은 바람직한 시도라고 여겨진다. 지금까지의 정책홍보는 딱딱한 광고 포스터, 정형화된 스타일로 제작된 홍보 책자 등 정책 제공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정책 수요자인 시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반면 유튜브를 활용한 홍보는 쉽고 재미있게 내용을 전달해야 하므로 자연스레 정책 수요자인 시민의 관점에서 홍보가 이루어지게 된다. 즉 지자체의 유튜브 활용 홍보는 정책 제공자 중심에서 정책 수요자 중심으로 홍보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많은 지자체에서 충TV와 같은 성공 모델을 벤치마킹하면서 자체 차별성이 없는 따라 하기식 콘텐츠를 양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가령 충TV가 B급 감성 공무원이 직접 출연하여 각종 밈을 활용하는 콘텐츠로 성공하자 다른 지자체에서도 비슷한 콘셉트로 비슷한 콘텐츠를 만들기에 바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콘셉트를 따라 하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이냐는 부분이 부차적 과제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실례로 경기 포천시의 사례를 살펴보자. 지난 6월 경기 포천시 행정사무감사에서 유튜브 홍보 영상의 질과 효과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포천시의회 손세화 의원은 시의 유튜브 홍보 영상을 검토한 뒤 시의 쇼츠가 메시지를 찾아볼 수 없는 공무원들의 신변잡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메시지도 없고 의미도 없는 영상을 올리는 것은 홍보가 아니라 오히려 시의 명예 실추로 이어진다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비단 포천시 유튜브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 지자체의 따라 하기식 유튜브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콘텐츠 내용 따라 하기 못지않게 콘텐츠 제작 방법을 따라 하는 것도 문제다.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충TV는 충주맨 김선태 주무관이 연간 60만 원의 예산으로 결재 과정을 배제하고 혼자서 기획, 연출, 출연, 촬영, 편집까지 모든 작업을 도맡아 했다. 이를 본받아 최근 부산시도 유튜브 크리에이터 채용 공고를 냈는데, 이 크리에이터가 향후 콘텐츠 기획, 구성, 출연, 연출, 제작의 전 과정을 담당한다고 밝혔다.
지속적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려면 각 분야의 전문가를 채용하여 팀과 시스템을 만들고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열악한 상황에서 일궈낸 하나의 이례적 성공 사례를 모두가 따라야 할 성공 모델이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획일적으로 양산되는 지자체 유튜브 활동 현황을 보고 있으면 2000년대 초반 전국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진행한 벽화 마을 조성 사업이 떠오른다. 한때 낙후된 구도심의 마을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 넣자 범죄가 예방되고 관광객들도 찾아와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었다는 등 성공 사례가 언론 매체를 통해 알려졌다. 이에 전국 지자체에서는 이를 벤치마킹해 곳곳에 벽화 마을을 조성하였는데 그 수가 무려 200곳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과정에서 꽃과 천사 날개 등 판에 박힌 듯한 똑같은 그림들이 전국 벽화 마을에 그려지자 획일적 벽화 마을에 식상한 사람들은 발길을 끊고 말았다. 그 결과 벽화의 그림은 색이 바래지고 곰팡이가 슬면서 흉물이 되었다. 작금의 지자체 유튜브도 천편일률적인 콘텐츠를 찍어낸다면 버려진 벽화 마을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벽화 마을의 실패 원인이 지역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주민 참여를 끌어내지 못한 데 있다고 진단한다. 지자체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의 특색 있는 콘텐츠를 발굴하고 홍보하며, 나아가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고 주민과 소통하는 장으로 활용될 때 본연의 기능을 다하고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24-08-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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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도둑맞은 정의
무덥던 여름도 말복을 지나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제법 가을바람이 느껴진다. 곧 계절이 바뀌게 된다. 예상 밖의 좋은 성적을 거둔 파리 올림픽도, 논란 속에 맞이했던 광복절도 지나갔다. 이렇게 어김없이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성숙’하는 것이리라. 성숙은 단지 이전보다 나아지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곡식이 비바람과 가뭄을 견디면서 끝내 알곡으로 영글듯, 성숙하기 위해서는 뜻하지 않은 난관과 풍파를 겪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현 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내걸면서 출범했다. 어느덧 2년이 지났지만 정치권의 극단적인 대치는 더욱 심화된 형국이다. 지금도 각종 이슈를 둘러싸고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하루하루 벌어먹기에 급급한 대다수 국민은 이러한 정치권의 행태에 냉소와 불신을 보낸 지 오래되었다. 공정과 상식을 외치는 이들에게 애초 그 단어의 의미를 되묻고 싶은 심정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렇게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도무지 풀릴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삶의 행복과 만족을 얻기 위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훤히 드러나는 사태의 속성을 보게 된다. 이와 함께 ‘발견’과 ‘예측’이라는, 사건의 전말과 가능성을 확인한다. 사태의 과정에 놓여 있을 때는 진실 여부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대개는 시간이 지난 뒤 돌이켜 보았을 때 당시 정황을 뚜렷이 파악할 수 있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사도광산만 해도 그렇다. 한국인에 대한 ‘강제 동원’ 표기를 묵살한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와 애초에 어떤 메시지와 ‘협약’을 주고받았는지 시간이 지나면 훤히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 사도광산뿐만이 아니다. 여러 정황상 이제는 국민들에게 거의 확신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것이 현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이다. 오래전부터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었던 사람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한 인사권 세력의 이면에는 어떤 실체가 자리 잡고 있는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고 있다. 국가 재정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일자리와 청년 취업 문제, 그리고 고령화와 마이너스에 가까운 출산율에 따른 경제인구 소멸 등 풀어야 할 사안이 쌓여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가능성과 행복의 모습을 예측해야 할까.
산업사회에서 우선시되었던 물질적 가치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물질적 소유와 이익이 곧 행복과 삶의 가치로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질은 인간 삶의 질적인 만족도와 가치를 위해서 중요하다. 그러나 수단이 목적으로 둔갑하는 사회적 착란과 가치 전도는 개개인에게 떨쳐내기 힘든 이데올로기를 심어주었다.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가치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 일을 한다는 태도는 좀체 보기 힘든 요즘이다. 우리 정부의 대일 외교 밑바탕에도 오랫동안 누적된 한일 간의 반목을 ‘양보’라는 제스처를 통해 해소하고, 향후 ‘발전적인’ 양국 관계를 형성한 뒤, 결국은 서로의 ‘경제와 산업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정부의 이런 의중이 나만의 상상일 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두 존재 사이의 발전은 지난 시간에서 겪은 숱한 사건과 감정을 지운 자리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어느 한쪽이 양보하거나, 다른 한쪽이 양보를 통해 받은 이익을 다른 차원의 이익으로 상대에게 되돌려주는 것도 아니다. 현 정부가 자주 쓰는 공정과 상식을 그대로 실현하면 된다. 여기에는 더하고 빼는 복잡한 셈법을 작동시킬 여지조차 없다. 하지만 이 간단한 원리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은 안다. 가장 쉬운 논리를 실현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중에 ‘도둑맞은 편지’(1844)가 있다. 어느 귀부인의 도둑맞은 편지를 탐정의 추리로 되찾게 되는 간단한 줄거리의 소설이다. 이 작품의 핵심은 편지를 훔쳐 간 사람을 도난당한 사람이 알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훔쳐 간 사람 몰래 다시 원래의 위치로 편지를 되돌리는 ‘고난도’ 해결 능력을 탐정 오귀스트 뒤팽은 선보인다. 지금 우리에게 정의는 실종된 듯한 형국이다. 하지만 사라진 정의를 되찾기 전에 그것을 앗아간 존재가 누구며 무엇인지 제각각 다른 판단을 내리는 상황이다. 정의를 잃어버린 주체가 탐정이 되어 되찾아야 하는 이중의 임무가 국민에게 주어졌다. 정의를 찾게 되면 행복과 삶의 가치는 뒤따라오게 되어 있다.
2024-08-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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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다시 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전쟁 사상
〈신약성경〉의 에베소서(書)는 사도 바울이 에페소스의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에페소스(Ephesus)는 이오니아 해변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도시인데, 현재 튀르키예의 셀추크 근처이다. 이 도시는 튀르키예의 관광 중심지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지구로 지정될 정도로 유명하다. 기원전 550년에 건립된 아르테미스 신전이 여기에 있었는데, 이것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이다. 이뿐 아니라 에페소스는 기원전 500년 경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그는 사상이 ‘혐인(嫌人)’ 성향을 보여, 우는 철학자로 알려졌다. 반면 원자론의 창시자 데모크리토스는 웃는 철학자로 불렸다. 그리스 말에서 유래한 혐인(misanthropy)은 증오와 인간을 각각 의미하는 미소스(misos)와 안트로포스(anthropos)로 구성되어, 인류에 대한 혐오를 가리킨다. 인간은 별것 아닌 존재라는 인류 혐오적 태도는 인간에게는 나쁜 성향이 불가피하다는 판단 때문에 일어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적 존재여서 탐욕과 질투를 피할 수 없다고 누군가 믿고 있다면, 그는 인류에 대해 혐오적 태도를 취하기 쉬울 것이다. 혐인 성향의 반대 개념은 애인 성향(philanthropy)이다. 맹자처럼 인간의 본성이 선량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인류를 사랑하는 애인적 태도로 행동할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혐인 성향은 투쟁과 경쟁에 긍정적 역할이 있다는 통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평화를 좋아하고 싸움을 싫어한다. 그런데 투쟁이 인간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을 누군가가 인정한다면, 그는 인류 혐오적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만물 유전 사상이다. 그의 사상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무엇인지 캐물었다. 이 세상은 서로 대립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서로 싸우고 그 결과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것이 헤라클레이토스의 핵심 사상이다.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공기가 서로 대립하여 기후의 변화가 일어나고, 가난한 집단과 부유한 집단이 서로 갈등하여 사회의 변화가 일어난다. 파리 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이 메달을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서로가 변화한다. 대립은 국가 사이에도 발생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이스라엘과 아랍이 투쟁하며 세계의 경제와 정치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며 왕이다. 그는 어떤 것은 신으로, 어떤 것은 인류로 드러내고, 어떤 사람은 노예로, 어떤 사람은 자유인으로 만든다.” 여기서 헤라클레이토스는 전쟁을 아버지나 왕으로 의인화하고, 갈등이 자연이나 사회에서 변혁과 창조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황제나 천자는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백성은 그에게 복종한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결정하는가? 투쟁이다. 고대 사회에서 어떤 사람은 자유인으로, 어떤 사람은 노예로 살아간다. 전쟁에 지는 국가의 사람들은 승자의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전쟁에 긍정성이 있음을 통찰한다.
반면 평화주의는 전쟁에 반대하며 전쟁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 비폭력 사상은 폭력 없이 갈등을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철학적 형태의 평화주의는 폭력은 그 자체로 나쁘다는 믿음에 토대를 두고 있다. 폭력 행동이 일으키는 결과와 상관없이 폭력 자체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으므로 폭력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단순한 논리가 철학적 평화주의의 입장이다. 평화주의에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절대적 평화주의는 어떤 경우에도 비폭력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며, 상대적 평화주의는 자위권이나 타인에게 임박한 위험이 닥칠 경우와 같은 극단적 경우에만 폭력의 사용을 허용한다. 실용적 평화주의는 협상 같은 평화적 수단이 전쟁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믿는 입장이다.
그러나 철학적 평화주의가 인간 존재를 너무 이상화하여 삶의 조건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필자도 이런 입장이다. 인간은 평화뿐 아니라 투쟁이나 공격의 본성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타인과 평화롭게 살아가려고도 하지만, 타인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경쟁하기를 바란다. 나아가 폭력 그 자체가 나쁘다는 평화주의의 명제도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폭력이 그르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은 감성적으로 동조한다. 그러나 그 명제는 입증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윤리적 명제의 객관적 증명은 불가능하다.
대중은 평화주의를 높이 평가하여 붓다, 예수, 간디 같은 평화주의자를 존경한다. 그런데 평화주의는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이며 이론적 결함을 내재하고 있다. 전쟁과 투쟁이 불가피한 삶의 조건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쟁은 나쁘다고 비판만 하지 말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할 것이다.
2024-08-08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