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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동점 운동회
얼마 전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에 다녀왔다. 아이들은 들뜬 마음에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운동회에 갈 준비를 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운동회의 추억을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아이들의 학교로 향했다. 그러나 막상 운동회가 시작되니 예전과 다른 요즘 운동회 풍경에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 한 가지를 꼽자면, 요즘 운동회에서는 경쟁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이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경기를 진행하지만 어떤 게임을 어떻게 해도 결과는 결국 ‘동점’으로 끝난다. 예를 들어 계주에서 청군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500점을 따내도, 백군이 ‘응원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동일한 500점을 받아 결국 최종 결과가 동점으로 귀결되는 식이다.
동점 운동회가 끝난 뒤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오늘 운동회가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저마다 느낀 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 팀이 열심히 해서 이겼는데 동점이라고 해서 화가 났다”, “한 달 동안 아침마다 계주 연습을 한 친구가 불쌍했다”, “어차피 동점인데 왜 경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노력의 결과가 무의미해질 때 느끼는 허무함이었다.
물론 소외되고 상처받는 아이 없이 모두가 참여하고 즐기는 운동회를 만들자는 학교의 취지 자체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인위적인 동점 처리로 노력과 경쟁, 승패의 의미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방식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초등학교 운동회는 단순한 체육 행사가 아니다. 운동회는 공정한 규칙 아래 최선을 다해 실력을 겨루고 그 결과에 따라 승리한 친구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패배한 친구에게는 격려를 건네며 서로의 노력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교육의 장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성취감과 배려심, 협동심과 같은 사회적 기술을 익힐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점 운동회는 운동회 본연의 교육적 의미를 크게 훼손한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경쟁을 부정적 자극으로 보아 배제하려는 교육적 조치는 비단 운동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이미 2010년을 전후해 중간·기말고사가 단계적으로 폐지되었고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도 초등 단계에서 실시되지 않는다. 교육 당국은 시험 폐지가 과도한 성적 경쟁을 줄이고 학생 부담을 완화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해 왔다. 또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문제는 시험이 없어졌다고 해서 경쟁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학교에서의 공식적인 평가가 없어지자 학부모들은 아이의 학업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교육 기관의 ‘레벨 테스트’에 의존하는 상황이 됐다.
예를 들어 수학 심화 학원으로 유명한 ‘생각하는 황소’ 입학시험에는 전국적으로 1만 명도 넘는 학생이 응시한다고 한다. 이 학원은 학업 수준에 따라 반을 4개로 나누는데 입학 시험에 합격했는지, 어느 반에 배정받았는지가 공부 잘하는 아이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학원 입학시험 준비를 위한 학원을 다니거나 심지어는 과외를 받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경쟁을 없애려는 교육 당국의 의도와 달리 우리 아이들은 오히려 학교 밖 통제하기 어려운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이는 경쟁의 장을 학교에서 사교육 영역으로 이동시켜 더 큰 격차와 비용 부담을 낳고 있다.
정말 초등학교는 어떤 경쟁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공간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사회에 경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며, 아이들 역시 언젠가 현실의 경쟁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는 아이들이 그 경쟁을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규칙 안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는 방법, 승리를 위한 치열한 노력, 지더라도 다시 도전해 보는 경험 등은 경쟁 사회에 나가기 전 학교에서 익혀두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그렇다고 경쟁의 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경쟁을 무조건 배제만 하지 말고 건전한 경쟁을 안전하게, 단계적으로, 공정한 규칙 속에서 경험하게 하자는 것이다. 운동회도 시험도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장치, 비교와 줄 세우기 수단이 아닌 노력과 도전, 성취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교육적 과정으로 설계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학교는 아이들이 넘어질까 봐 뛰지 못하게 하는 곳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법, 안전하게 넘어지는 법,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뛰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다.
2025-11-2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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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지역문화가 우리에게 건네는 선물
서울에서 온 한 떼의 ‘글쟁이’들을 데리고 대청로를 돌아 나올 때,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이 거리가 지니는 근현대사적인 의미를 잠시 설명한 적이 있다. 더러 놀란 눈으로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이도 있었으며, 멀뚱거리면서 자신에게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설명을 흘려듣는 이도 있었던 것 같다. ‘대청로’는 초량왜관 시절 지금의 부산 중구 대청동 광일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연향대청’을 본떠 만든 도로명이다. 그러니까 17세기 조선의 역사가 오롯이 지명으로 남아 비록 어두운 시대였을망정 우리에게 지나간 시간의 바퀴가 남긴 흔적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이 마치 상징기호처럼 남은 것이다.
지난 10월 18일 민주공원에서 진행된 제1회 부마항쟁문학제 본행사를 복기한다. 그날 심포지엄 진행을 맡으면서 민주공원이 들어선 부산 중구의 상징성과 19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 대청로와 광복로를 가득 메웠던 학생과 시민들의 외침을 잠깐 언급하였다. 멀리 광주에서 온 발제자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려 부마항쟁의 의미가 과소평가된 면이 없지 않지만, 여러모로 살펴보더라도 부마항쟁이 지니는 중대한 가치와 의미를 찾고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하였다. 국가 기념일을 비롯한 유산 지정이나 등재와 관련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 까닭은, 과거의 사건이나 행적을 포함한 장소가 우리에게 주는 뜻과 메시지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방향으로 삶의 윤택함과 문화적 향유를 누릴지 가리키는 일종의 ‘숨은 나침반’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 국가유산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여간 반갑지 않다. ‘우선등재목록’은 잠정목록 중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보호·관리 계획 등을 충족하는 유산이며, 앞으로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위한 공식 절차인 예비평가 대상으로 신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에 선정된 피란수도 부산 유산에는 부산항 제1부두와 임시중앙청(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 등 기존의 9개 구성요소 외 영도다리와 복병산배수지를 새롭게 추가하여 등재 기준과 서술을 보완해 전체적인 완성도를 개선한 점이 특징이다.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기까지 걸쳐 있는 이들 유산은 비단 스펙터클하면서도 부산했던 당시의 역사적 풍경을 보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인류 보편적인 가치와 지향점,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과 공동체가 이방(異邦)의 관계에서 빚게 되는 복잡하고 다양한 교류 과정에서 생겨나는 유·무형의 자산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의미도 중요한 작용을 한다.
정치나 경제처럼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발전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도 중요하지만, 문화는 구성원들의 단기적이고 지엽적인 경제 논리를 넘어 사회를 오랫동안 풍요롭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버팀목이자 인간 생태계의 병풍이다. 문화의 이런 기능이 구성원의 풍속뿐만 아니라 삶의 품격과 질을 높이는 바탕이 된다는 사실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그리고 문화가 인간에게 영향을 주면서 자아내는 무늬가 한 나라의 역사적 전통의 토대를 더욱 살찌우고 굳건하게 하는 문명의 요소라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날학파의 2세대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이 제시한 역사의 세 가지 층위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장기지속의 역사였다. 나머지는 사건사(事件史)와 중기지속 혹은 국면사다.
장기지속의 역사는 수 세기에 걸쳐 지속되는 지리적 조건, 기후, 생태계, 그리고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양식을 말한다. 브로델에 따르면 이것이 역사의 가장 깊은 층위이며 인간 활동의 근본적인 제약과 가능성을 결정한다. 장기지속의 역사에서 어느 나라든 보편적인 요소로 영향을 주는 것이 문화다. 문화 역시 인간 활동의 기본 양식을 제어하고, 전망하고, 꽃피우는 삶의 결정적인 성분임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이는 최근 이기대 예술공원 사업의 일부인 ‘옛돌스트리트’ 조성과 관련된 논란에도 일정한 해답을 준다.
‘이기대 예술공원’ 사업 중 하나인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 들어서는 옛돌스트리트는 옛돌문화재단이 일제강점기에 약탈당했거나 팔려나간 조선시대 석조 유물 등 65점을 부산시가 기증받으면서 이루어졌다. 어두운 미관과 이미지 때문에 인근 주민 일부의 반발로 잠시 중단된 상태로 있다. ‘지역 이기주의’의 발로는 아니겠지만 일부 주민의 비판을 겸허히 듣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지역문화의 융성을 위한 공원 조성에 부산시와 시민들이 절실한 마음과 뜻을 모아야 할 때다. 이런 실천이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우선등재목록 선정 및 민주주의 성지로서 부산과 함께 복합적이고 다채로운 지역문화 발전과 성장으로 우리에게 결국 선물로 되돌아올 것이다.
2025-11-2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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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해석, 부산 미술 메세나의 불을 밝히다
“제1회 해석 미술 장학생 공모전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최우수상 이가영 학생 축하합니다! 장학금 1000만 원이 수여되며 해석 정해영 선생 장학문화재단은 앞으로도 학생들이 작가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지난 11일 부산 서면의 작은 갤러리에 국내 주요 미술 관계자, 미술대학 교수들이 자리한 가운데 미술 장학생 선발 공모전 시상식과 수상자 8인의 전시가 마련됐다.
그렇다면 해석장학문화재단(이하 재단)이 어떤 일을 하는지 살펴보자. 재단은 2002년 해석 정해영 선생 장학회로 시작한다. 정해영 선생은 대동연탄을 창업하고 당시 19공탄을 개발해 부산 최고의 납세자로 ‘석탄 왕’이라 불렸던 입지적인 인물이다. 또 7선의 국회의원을 지내고 ‘대한민국 야당의 2인자’라 불리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정치인이자 경제인이었다. 1955년 서울에 ‘동천학사’를 지어 울산, 부산에서 상경하는 유학생 500여 명의 생활을 뒷바라지했다. 그들 중 다수가 훗날 장차관, 국회의원, 대법관 등 주요 인물로 성장하는 데 후원한 것이다.
재단은 정해영 선생의 인재보국(人材報國) 정신을 이어받아 20여 년간 이공계, 상경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학생을 선발해 왔다. 지금은 재단 설립자인 고 정재문 명예이사장에 이어 정연택 이사장이 교육을 통한 사회적 기여와 인재 양성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2024년부터 미술 분야 지원을 대폭 확대해 나가고 있다. 올해부터는 장학금 지급 대상자를 미술 분야로 한정해 상반기에 부울경 소재 5개 미술대학에서 각 2명씩 10명을 선발해 장학금을 수여하고 전시를 개최했다. 하반기에는 전국으로 대상자를 확대해 8명을 선정, 후원했다.
근래 부산의 청년들을 위한 미술 관련 공모나 시상제도는 26년간 이어진 공간화랑의 청년 작가상이 있었다. 그 상을 시상한 것도 2016년이 마지막이지 싶다. 특히 미술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과 전시를 마련한 제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학교 당국과 교수들은 지역 미술대학 소멸과 학과 통폐합, 급속도의 위기를 타개할 묘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획기적인 장학금 지원은 예술가의 꿈을 응원하는 큰 울림이며 샘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매년 성장한 작가들이 한국 화단에 당당히 이름 올리게 된다면 아름다운 역사가 될 것이다. 그 첫 행보를 보면서 미술인으로서 고마움을 느낀다.
예술가에게 지원은 생존의 조건이자 창작의 토대다. 예술가들은 공공기관의 공모 방식을 통해 지원받는다. 또 다른 지원의 이름이 ‘메세나’(Mecenat)다. 메세나는 기업의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는 프랑스어이며 1967년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하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메세나의 의미가 더 확장돼 예술·문화·과학·스포츠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사회적·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공익사업 지원 등을 포괄한다. 국내에서는 1994년 사단법인 한국메세나협회가 발족해 200여 개의 후원사와 함께 연간 3000여 개의 프로그램을 위한 예술단체와 예술가를 지원하고 있다.
KT&G는 서울 홍대, 대치, 춘천, 논산, 부산 등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을 건립·운영하며 메세나 확산에 앞장서는 기업이다. 5개의 공간에 연간 3000여 개의 프로그램을 운용하며 특히 비주류 인디문화 확산에 큰 둥지 역할을 하고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창립한 부산메세나협회(회장 백정호 동성케미컬 회장)는 2021년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43개 회원사와 함께 예술지원 매칭펀드, 찾아가는 메세나 음악회, 부산예술이음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 개최된 제106회 전국체육대회의 개회식 관람객을 위해 방석, 응원용 짝짝이, 음료수 등 편의 물품을 후원하기도 했다.
부산은행, DRB동일, 욱성화학 등 부산의 대표적인 기업에서 자체 공간과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다. 직원 수 20명 남짓의 중소기업 (주)정현전기물류는 사회복지와 미술 분야에 적극적인 후원을 하고 있다. 이 회사 대표는 현장의 갤러리와 작가 스튜디오를 찾아다니고 있으며, 조건과 기한도 없이 매월 200만 원씩 부산문화재단에 기부도 한다.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16개의 기관만 선정된 올해의 ‘문화예술후원 우수기관’에 부산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크든 작든 후원하는 이들의 마음은 같다. 그들은 안다. “후원을 통해 내 삶의 가치가 더 깊어진다”는 사실을. 문득, 김장하 선생의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말이 떠오른다. 진정한 후원이란 거창한 이름이나 결과가 아니라, 누군가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주는 일이다.
2025-11-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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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갤러리에 가야 할 이유
전시회에 왜 가야 하는가? 이것은 회화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따지는 물음이다. 사람들은 문화적 소양을 쌓기 위해서, 또는 미학적 감동을 얻기 위해서라고 응답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걸 쌓거나 얻어서 어디다 쓸 것인가? 화가에게는 그림을 만들 이유가 나름대로 확실히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유명해지기 위해서, 아니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어쨌든 작품을 창작하는 이유는 예술가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이다. 작품을 보는 감상자에게도 어떤 혜택이 있어야 한다. 전시장을 들르면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 휴 갤러리(남구 용호동)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유진구의 전시회를 둘러보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보통 회화 작품은 붓으로 물감을 화지나 캔버스에 그려서 만든다. 반면 유진구는 캔버스에 자개를 잘라 붙여서 작품을 만든다. 그의 작품은 그림은 아니지만 정교하게 자개 조각을 연결하여 마치 붓으로 그린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캔버스에 잉어 같은 그림을 그리고 나서 그 위에 자개를 붙였는데, 이번 전시회의 작품은 모두 오로지 자개 작업으로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형태가 어떤 사물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추상화이다. 이런 작품을 보면, 감상자에게 어떤 이익이 있을까?
작품이 암시하는 의미 상상할 때
감상자의 인식적 지평 확대되고
능동적 존재로서의 자신 느껴져
작품에는 표층과 심층, 층위가 두 개 있다. 표층은 작가가 묘사하여 감상자에게 직접 제시하는 시각적 내용이다. 고흐의 신발 그림은 농부의 낡은 작업화를 묘사한다. 이것이 작품의 표층이다. 여기에는 작품이 감상자에게 주는 가치가 없다. 과일과 꽃을 그린 정물화는 감상자에게 아름다움의 쾌감을 주지만, 이것은 우리가 갤러리를 방문하기에는 너무나 시시한 혜택이다. 유진구 작품의 자개 조각은 실내의 빛을 무지개 빛 섬광으로 회절시켜 머리를 기울일 때마다 여러 가지 빛깔로 변화하는 초현실적 경험을 감상자에게 준다. 색채들이 공중에 떠서 날아다니는 듯한 경험은 신비스럽지만, 이것이 작품의 가치라고 하기에 너무 사소하다.
감상자에게 작품의 가치는 표층이 아니라 심층에 있다. 심층은 묘사를 통하여 작품이 표출하는 것인데, 표층이 암시하는 의미라고 해도 좋다. 고흐가 묘사하는 농부의 신발 한 켤레는 작품의 표층이고, 이것은 그 신발을 신고 살아가는 농부의 세계, 즉 고난과 환희, 희망과 두려움을 암시한다. 이것이 작품의 심층이다. 심층은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의 눈에 들어온다. 하이데거는 작품의 두 층위를 구별하여, 표층을 작품의 대지, 심층을 작품의 세계라고 부른다. 그의 용어를 사용하면, 작품의 세계는 대지 위에 건립되어 있다.
작품의 표층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그림을 운반하는 택배사 직원, 그림을 분석하는 비평가, 숙제하러 갤러리에 들른 초등학생, 모두에게 고흐의 그림은 동일하게 보인다. 그러나 심층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아예 심층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에게 고흐의 작품은 단순히 신발을 묘사한 물체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이 표출하는 농부의 세계는 은폐되어 있다. 심층은 감상자의 눈에 수동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의 상상력이 능동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동일한 작품을 보더라도 감상자는 지식, 배경, 삶의 태도에 따라 작품의 심층을 서로 다르게 투사한다. 동일한 악보를 연주자마다 서로 다르게 해석하듯이, 동일한 작품의 심층을 감상자가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유진구 작품의 심층은 처음에는 필자에게 드러나지 않았다. 10여 점의 전시를 다 둘러볼 즈음, 자개 조각의 연결이 만들어내는 수평의 선들이 마치 호수의 물결처럼 보이면서, 어린 시절 연못에 돌을 던지며 파장이 일어나는 것을 즐기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추억은 필자에게 고요한 보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세상의 조건에 휘둘리는 피동적 존재가 아니라, 세상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능동적 행위자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작품의 표면에 묘사되어 있는 물결은 자유와 주체성을 건립하는데, 이것이 심층이다. 필자는 심층을 상상으로 투사하며 내가 능동적 존재임을 확인한다.
심층은 작가가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가 각자의 상상력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개의 물결이 구불구불한 선과 다양한 색채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만물은 유전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통찰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에게 작품의 심층은 존재의 무상성이다.
작가의 의도는 작품의 감상과 무관하다. 에코는 텍스트(또는 예술 작품)에 작가가 부여한 고정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단호히 거부한다. 대신, 모든 작품은 해석이 열려 있으며, 그 의미는 독자나 시청자에 의해 창조된다. 이것이 감상자의 인식적 지평을 확대할 때, 그에게 작품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작품은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감상자를 부르고, 거기에 감상자는 응답한다.
2025-11-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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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AI 시대, 인간을 향한 건축
건축은 본래 인간의 결핍에서 시작됐다. 비를 피하려고 지붕을 얹고, 바람을 막기 위해 벽을 세우고, 불을 지피기 위해 벽난로를 만들었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건축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건축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지우기 위해 시스템화한다.
스마트홈으로 자동화된 주거와 데이터 기반의 도시 관리 시스템은 인간의 노동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공간의 주체에서 사용자로 바꿔놓는다. 스스로 창문을 여는 대신 앱으로 공기를 조절하고, 몸으로 기억하던 계절의 변화를 ‘센서 데이터’로 확인한다. 기술이 설계한 단지에서는 엘리베이터 호출과 조명 제어는 간편하지만, 그만큼 이웃 간의 ‘우연한 마주침’은 줄어든다. 이제 인간은 공간을 경험하지 않고, 조작한다.
부산의 에코델타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마트시티 모델이다. 이 프로젝트는 공공·민간 예산이 투입돼 설계 초기 단계부터 AI, 로봇, 증강현실(AR)을 도시 설계 전반에 녹여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미래를 위해 필요한 매력적인 프로젝트임이 분명하다. 교통 흐름을 AI가 통제하고, 조명·환기·쓰레기 처리를 자동화하며, 빅데이터가 도시의 ‘살아 있는 상태(Live-state)’를 모니터링한다.
AI는 설계의 영역에서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몇 초 만에 수천 가지 평면 조합을 제시하고, 구조·일조·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한다. 언뜻 보면 인간 건축가보다 훨씬 똑똑하다. 그러나 그 알고리즘은 어디까지나 ‘결정된 목표’를 향해 달릴 뿐,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없다. “이 구조가 가장 합리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 집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한다.
기술이 도시를 주도할 때, 사람은 설계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자리매김할 위험이 있다. AI는 공간의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동선을 최적화하고 ‘쓸모없는 여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기술이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알고리즘이 도시를 재배치하면, 낡고 복잡한 골목길이나 오래된 주거지의 생명력은 데이터 지도에서 ‘비효율’로 등록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그 ‘비효율의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머물고 관계를 맺어왔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대체할 수 없다는 인문학적 직관이 여기에서 작동한다. 그래서 건축가는 기술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편리함과 더불어, 그 공간을 사용할 인간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AI는 도시를 예측 가능한 질서로 만들지만, 도시의 매력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곳에 있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몇 년의 프로젝트로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도시를 계획할 수는 있겠지만 수많은 시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골목은 재현할 수 없다. 광복동의 오래된 건물들, 비 오는 날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불규칙한 간판들이 만든 거리의 리듬 등 그런 풍경은 알고리즘이 설계할 수 없는 우연의 결과다. 도시는 인간의 흔적이 쌓인 집합체로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다운 아름다움의 근원이다.
기술은 결국 도구다. AI가 완벽해질수록, 건축가는 기술을 넘어 사람의 존재 방식을 물어야 한다. 스마트시티가 지향하는 ‘모두를 위한’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기술이 도시를 ‘최적화’할 때, 건축은 도시를 ‘공존’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고, 건축이다.
히틀러와 나치 시대를 경험했던 한나 아렌트의 저서 〈인간의 조건〉은 인간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그의 사유가 담겨 있다. 그는 인공적 세계를 건설하면 할수록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된다며 과학적 전체주의를 경계했다. 기술의 시대를 ‘활동의 상실’이라 규정했는데 이는 인간이 세상을 만들던 행위를 잃고, 자동화된 세계의 관찰자로 남게 되는 상태다. 인간의 활동은 점점 더 효율성과 생산성의 논리에 종속되면서 공적인 삶은 축소된다.
“기술이 인간을 풍요롭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더 가난하게 만들었는가.”
현대사회에서 ‘빈곤’은 물질의 결핍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동화된 시스템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의 ‘감각과 관계의 결핍’, 생존을 위한 노동에 과도한 시간을 사용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에 필요한 기본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시간 빈곤’도 빈곤의 현상이다. 빈곤을 해결하는 길은 더 많은 데이터가 아니라, 인간적인 감각을 되찾는 일이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인간이 느끼는 감각의 모든 것은 알고리즘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다. 이제 건축은 기술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되어야 한다.
2025-10-3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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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그림자 노동자'를 위한 생명권
바야흐로 예술의 계절이다. 국정감사의 계절이기도 하다. ‘감사’란 감독하고 조사하는 일, 국가 전반의 잘못을 돌아보고 고치겠다는 반성의 시간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안전’이 핵심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의지를 밝히면서 정부 각 기관은 물론 기업들까지 발 벗고 나섰다. 하지만 그 논의의 지도에는 아직도 비어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공연예술계다. 무대 위의 사고는 계속되는데, 무대 아래의 제도는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화려한 조명 뒤편에는 수많은 예술노동자가 낡은 규정 속에서 오늘도 위태롭게 일하고 있다.
지난 8월, 한 공공 공연장에서 무용수 두 명이 리허설 중 무대 앞 오케스트라 피트 아래로 추락했다. 그중 한 명은 뇌출혈과 장기 손상으로 네 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2023년 3월에는 수도권 대형 공연장에서 오페라 리허설 중 400킬로그램이 넘는 무대장치가 성악가를 덮쳤다. 척수신경을 다쳐 사지가 마비된 채 투병을 이어가던 그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지난 21일 유명을 달리했다. 2018년에는 지방의 한 문화예술회관에서 무대 리프트가 추락해, 스물세 살의 젊은 예술인이 목숨을 잃었다. 시기와 장소는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안전을 비용으로만 여기고, 무대 뒤의 노동과 위험을 ‘외주화’한 구조적 현실 때문이다.
기계가 작동되는 무대 위는 위험한 작업 현장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 일어나는 사고는 단순한 부주의가 아니라 익숙함이 만든 무감각의 결과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무용계의 문제를 파악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일은 특정 장르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공연 장르 현장에서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무대 뒤의 안전은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이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사례는 분명히 있다. 영국은 공연장에서 일어난 사고에도 ‘기업 과실치사법’을 적용한다. 조직적 과실에 대해 법인 자체의 형사 책임을 묻는 제도로, 안전을 ‘관리’가 아닌 ‘책임’의 영역으로 규정한다. 독일은 ‘모범 집회장소 규정’을 통해 공연장 안전을 관리한다. 조명 설치부터 비상구 문 너비까지 ‘산업표준’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무대 장비의 안전성까지 꼼꼼히 규정한다. 공연장은 예술의 공간인 동시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철학이 깔려있다.
반면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 예술 현장의 위험을 예술노동자의 운으로 감당하게 한다. 예술 활동을 여전히 개인의 열정에 따른 비경제적 행위로 여기며, 현장 안전을 예산의 여백쯤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 제도를 그대로 옮겨오자는 뜻은 아니다. 우리 실정에 맞게 공연장 시설은 물론, 사각지대에 방치된 예술노동자를 보호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안전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공연 계약서에 명시된 보험 가입 의무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을 열악한 환경에 놓인 모든 노동자에게 예외 없이 적용해야 한다. 나아가 제도 밖 현장에 대한 실질적 보완과 지원, 그리고 발주처의 책임 또한 마땅히 중대재해처벌법에 포함되어야 한다.
현재 프리랜서 예술인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다. 2022년 기준 예술인 산재보험 신청률은 7.3%에 그쳤다. 저임금 구조 속에서 스스로 보험료마저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 공연장에서 신고된 산재는 모두 48건이었다. 그러나 산재보험 미가입자가 많아 통계에조차 제대로 포함되지 않는다. 2018년 사망사고를 계기로 2022년에 공연법이 일부 개정되었지만, 이는 사고 발생 후 ‘보고 의무’를 강화한 수준에 머물렀다. 법의 취지와 현장의 거리가 이렇게 먼 나라에서, K콘텐츠 산업이 과연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무대 안전은 규제의 영역이 아니라, 이 나라에 사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비정규직이거나 프리랜서 예술인도 우리나라 사람이다. 공연장은 문화시설이자 공공자산이지만, 관리 주체는 부처마다 다르고 감독 권한도 모호하다. 각 기관이 책임을 나누는 사이, 정작 현장 예술가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보고서마다 반복되는 행정 언어는 ‘말씀 구체화 방안’이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곧 정책이 되고, 장관의 의지가 곧 법이 된다. 그러나 말씀은 구체화되지만, 책임은 구체화되지 않는다.
몸을 지탱하는 힘은 겉으로 드러나는 근육에서 나오지 않는다. 뼈대가 약하면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진다. 예술 현장의 감동 또한 다르지 않다. 안전이라는 견고한 토대 위에서만 온전히 꽃피울 수 있다. 박수는 공연이 끝난 뒤에 울리지만, 안전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울려야 하는 리듬이다.
2025-10-2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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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세대 혐오의 정치학
최근 출시된 아이폰 17로 인해 ‘영포티(young forty)’라는 세대 용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핸드폰이 출시된 직후 온라인에는 ‘아이폰 17은 영포티의 필수 아이템’이라는 제목과 함께 한 이미지가 밈으로 확산됐다. 이미지 속에는 젊어 보이려 애쓰는 중년 남성이 아이폰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이를 본 젊은이들은 ‘지름신을 막아준다’며 웃음 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 웃음에는 영포티 세대를 향한 조롱이 담겨 있었다.
사실 영포티라는 용어가 처음부터 부정적 멸칭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2015년 무렵만 해도 영포티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기관리에 적극적인 ‘젊은 40대’를 뜻했다. 이들은 안정된 소득과 구매력을 바탕으로 문화와 소비를 주도했고 멋있는 중년의 모습으로 명명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는 크게 바뀌었다. 이제 영포티는 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혹은 스스로 젊다고 착각하는 40대를 비꼬는 멸칭으로 쓰이고 있다.
최근까지 사회적 담론의 중심에 있었던 MZ 세대론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영포티 세대론이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사회에서 세대론은 일정한 주기를 두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매번 새로운 이름으로 사회적 갈등과 혐오를 조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대론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확산하는가. 다시 말해 특정 세대를 규정하는 담론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세대론은 자본의 논리에서 시작된다. 기업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특정 세대를 명명하고 그 세대의 특징을 규정하는 마케팅을 펼친다. ‘MZ는 욜로(YOLO)와 플렉스(flex)를 즐긴다’, ‘영포티는 패션, 뷰티, 헬스케어 등 자기관리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식의 선언적 마케팅은 사실상 소비 지침에 가깝다. 기업은 세대를 구획하고 그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쏟아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자본주의 권력이 만들어낸 이름이 사회적 현상으로 굳어지면서 사람들은 오히려 그 틀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이 세대론을 만들어내면 정치권은 이를 세분화해 갈라친다. 정치권은 ‘MZ 이대남’을 보수 성향의 새로운 지지층으로 규정하고, ‘영포티 남성’을 진보 성향의 핵심 지지 기반으로 강조한다. 특정 세대를 ‘변화를 이끌 주체’로 띄우기도 하고 반대로 ‘기득권 집단’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실제로는 세대 내부의 목소리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단순화된 세대론을 활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고 결과적으로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긴다.
미디어는 이러한 갈등 구도를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 재생산한다. 예컨대 ‘근무 5분 전 출근 못 한다는 MZ’, ‘영포티가 입으면 주가가 떨어져’와 같은 자극적 제목의 기사를 앞세워 조회수를 올린다. 이 과정에서 영포티는 자기 객관화를 못하고 20대에게 추근대는 기득권 세대로, MZ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 젊은이 세대로 그려지며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된다. 또 알고리듬에 기반한 ‘필터 버블’ 효과로 이러한 확증편향은 점점 공고해진다. 결국 미디어는 세대론을 자극적 콘텐츠로 소비하며 사회적 분열을 확대한다.
대중은 자본, 정치,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점차 그것을 사실처럼 받아들인다. 우리네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갈등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발생한 갈등이 세대 구도로 포장되면서 세대 탓으로 돌려진다. 결국 사람들은 문제의 본질을 보는 것 대신 너희 세대의 문제라며 상대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데 익숙해진다. 이 과정에서 세대 갈등은 혐오로 증폭되고 확산된다.
물론 각 세대는 공통의 시간을 공유하며 나름의 문화적 특징을 형성한다. 그러나 세대를 하나의 이름으로 단순화하는 순간,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사람의 현실은 지워진다. 각 세대 내부에는 계층과 성별, 직업과 지역의 차이가 뒤섞여 있다. 같은 세대 안에서도 누군가는 상속받은 강남 아파트에 살고 누군가는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세대론은 이러한 다층적 현실을 지워버리고 혐오의 언어만 남긴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이 붙여놓은 이름, 정치가 이용하는 프레임, 미디어가 부추기는 갈등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세대 갈등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불평등이다. 불안정한 일자리, 주거 불평등, 돌봄과 교육의 격차는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세대를 탓하는 언어에 머무는 한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서로를 소모적으로 공격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세대를 가르는 이름이 아니라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의 언어다.
2025-10-1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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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몬도가네'의 환한 홀씨들
지난달 초 10년간 누렸던 ‘원도심 주민’ 생활을 청산하고 감천동으로 이사를 했다. 영주동에서 8년, 보수동에서 2년 거주했기에 정확히 10년을 채우며 살았던 부산 중구를 떠난 것이다. 물론 거주지만 옮겼을 뿐 주로 활동하는 공간은 여전히 중구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재도구는 양산에 있었는데, 양산에서 감천동으로 이사하는 일이 만만치가 않아서 걱정했다. 이삿짐센터에 연락해 우선 견적을 보고 이사 날짜를 정한 후, 이사하기 편하게 정리해야 할 물건들을 틈틈이 쟁여두거나 버리다가 이사 전날 양산으로 가서 하룻밤을 보내는데, 마음이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고작해야 한 달에 두어 번 들르는 게 전부였던 양산 공간이었지만 막상 떠나려니 찾아오는 서운함 때문이 아니었다. 당장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을 떠올리며 빨리 이 시기가 건너갔으면 하는 심정 때문이었다. 물론 이사 스트레스야 어디 나뿐만이겠는가.
인공지능이 창작마저 대체하는 시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의지
작가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기우일뿐
요즘엔 이삿짐센터에도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왔는지 4명의 직원 중 팀장으로 보이는 사람만 한국 사람이었고, 나머지는 중국인이었다. 가을 초입이라고는 하지만 막바지 무더위가 절정이었던 날이었다. 반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팔과 다리에 온통 문신을 한 사람이 끼어 있었고, 다른 이들도 차림은 간편했지만 일하러 나온 사람보다는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듯 행색이 헐렁해 보였다. 나는 이들의 모습에 조금은 긴장했지만, 군소리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성실하게 짐을 내리고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나마 첫인상만 보고 불안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집 앞 골목으로 진입한 5톤 트럭이 우리 집을 얼마 두지 않고 앞집 정원수 나뭇가지에 걸려 하는 수 없이 중간쯤 차를 세워 짐을 내려야 했다. 그런데도 이들은 불평하는 듯한 표정 없이 묵묵히 주택 2층에 있는 내 공간으로 짐을 부리고 대강이나마 정리를 해주었다.
산적들처럼 갑작스레 양산 집엘 들이닥쳤다고 스스로 상상하곤 피곤한 이사를 어떻게 마무리 짓나 내심 불안했던 나는,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것처럼 사태가 수습되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하게 되었다. 워낙 세상 인심이 험해 어제까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눈앞에 버젓이 벌어지더라도 하등 놀랍지 않은 요즘이다. 여기저기 정리되지 못한 가재도구들이 산적했던 집을 옮겨야 하는 처지에서도 이삿짐센터 직원 첫인상만 보고 오늘날의 흉흉한 인심과 곧바로 연결 지었던 나 자신만 봐도 그렇다. 업무 중 간혹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나 짧은 영상을 보노라면 세상이 참으로 넓고, 다양한 가치관과 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는 생각이 곧잘 든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상이 천지개벽할 정도로 뒤바뀌었고, 불안한 미래가 가져다주는 의심과 불안이 팽배하였던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지금은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AI(인공지능)의 놀라운 발전도 그 풍경 가운데 하나다. 그 기술과 기능의 고도화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글 쓰는 일이 업이다 보니 작가들과 만날 기회가 많은데, 요즘은 AI 때문에 작가 노릇도 이젠 접어야겠다는 식의 푸념도 자주 듣는 편이다. 이들에게 지금의 세상은 어찌 보면 몬도가네(mondo cane·개 같은 세상)다. 즉, 세상이 편리해진 만큼 창작마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세태에 대한 일종의 불만이나, 그동안 비록 돈은 안되지만 ‘작가’라는 특수 신분이 주는 자부심도 이젠 내려놓아야 한다는 낭패감이 그런 말로 드러낸 것이다.
‘AI와 문학’이라는 타이틀로 각종 세미나나 학술대회를 비롯하여 잡지마다 기획 특집으로 분석하고 전망하면서, ‘문학’이 놀랄만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응전하는 방법과 태도를 모색하고 있다. 이제 인간과 기계가 함께 작업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작품이 ‘제작’되어 독자의 소비를 이끄는 문화 시스템 속으로 작가들도 동참해서 걸어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작가의 고유 영역인 창작의 독창성을 존중해야 하는지의 판단은 오롯이 작가 개인의 몫으로 남았다. 작가의 고유성을 역설하는 이도 AI가 주는 편리성과 절묘한 구성력에 유혹을 느끼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듯이, 시대에 발맞춰 이제 작가들도 구태의연한 창작 의식에서 벗어나 기술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이 또한 문학 고유의 창조적인 영역을 부정하지 않는다.
차림새부터 영락없이 가벼운 MZ 세대처럼 보였던 이삿짐 직원들이 물건을 손에 쥐고 옮기는 순간 보통 사람으로서는 흉내도 내지 못할 장인의 손길처럼 섬세하고 노련했던 기억을 새삼 되살린다. 과정이나 형식도 중요하지만 창작하는 내내 열정과 의지가 얼마나 지속되느냐가 작가에게 부과된 본래 능력이요 기능이다. 이 점을 잊지 않는다면 4차 산업혁명이라 일컫는 요즘, 글 쓰는 사람이 느낄 만한 불안감은 괜한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견지하는 태도야말로 작가 개개인이 하나의 홀씨처럼 우리 사회에 던지는 귀중한 선물이 되리라 믿는다.
2025-10-0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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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문화도시는 세계적인 꿈을 꾸어야 하는가!
‘제2의 도시’는 ‘제1의 도시’를 꿈꿔야만 하나. ‘문화의 불모지’ 부산시는 민선 8기 시정 슬로건으로 ‘글로벌 허브 도시’를 내세우며 부산 엑스포 도전을 선언했다. ‘119 대 29’ 전대미문의 참패였다. 객관적인 희망의 데이터는 처음부터 찾아보기 힘들었다. 2022년 1월 19일, 현 부산시장은 엑스포 유치를 위해 방문한 프랑스 파리에서 퐁피두센터 관장과 만나 부산 분관 설립을 합의했다. 2024년 7월 22일 부산시의회 행정문화위원회에 이를 제안해 비공개로 심의했다. 비공개 이유는 퐁피두 측과 비밀리에 협의한다는 합의 때문이었다. 결국, 같은 해 10월 14일 국회 국토위 국정감사에서 당시 업무협약(MOU) 체결 문서가 공개되며 만천하에 알려졌다. 이후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나고 228명의 대학 교수까지 성명에 동참하면서 상황이 극도로 악화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설립은 지난달 9일 부산시의회 기획재정위원회의 ‘2026년도 정기분 공유재산관리계획안’ 심사를 통해 진통 끝에 통과되었다.
합의 내용을 몇 개만 살펴보자. 제2조 ‘사업 설명’에 ‘퐁피두센터 부산’을 퐁피두 측이 5년 동안 점유한다고 되어 있다. 즉 땅과 건물, 유지 보수, 퐁피두 센터 인력 등 모든 것은 부산시가 부담하는 것이다. 또한 ‘기획전 혹은 일부의 콘텐츠가 전 세계의 타 문화 시설에 제공될 수 있다는 것도 동의한다’라고 적시되어 있다. 5조 ‘재무 조건’에는 상설전, 기획전, 교육비와 브랜드 사용료를 합친 연간 120억 원과 세금, 운반비, 보험료 등의 모든 비용을 부산시가 부담한다고 되어 있다. 제9조 ‘언어와 준거법’에 따르면, 부산시와 퐁피두센터 양측은 이 기밀 문서를 프랑스어와 영어로만 작성하기로 하고, ‘본 양해각서는 프랑스법에 따른다’라고 협약했다.
기밀 협약 문건을 만들어 가며 ‘세계적인 미술관’ 분관을 부산에 세운다? 여기에는 어떠한 비밀이 내재되어 있을까. 곧 한화그룹은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퐁피두 분관을 개관하는데, KTX로 불과 2시간 30분 남짓 거리에 서양의 근대 미술을 추종하며 부산이 엄청난 기회비용을 지급하는 퐁피두 분관 유치. 그 까닭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의문투성이다.
‘지역 문화 주권 시대’라는 말은 정치판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다. 실제 지역의 현장에서 체감하는 온도는 싸늘하기 짝이 없다. 왜 지역은 세계적인 꿈을 꾸어야만 지방이라는 촌스러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요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지 싶다. 부산에서 만들어지는 문화와 미술 생태계가 비교되어야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세계적인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의 올해 8월까지 관람객 수가 400만 명을 넘었고, 연말까지 600만 명에 달할 거라는 예상을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는 세계 박물관 순위에서 5위권 안에 드는 수치다. 한국의 문화를 알기 위해 매일 줄을 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산 혹은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지역’을 보고 싶어 한다. 굳이 부산에서 ‘퐁피두센터’를 만날 이유가 없다. 파리에 가면 된다. 굳이 ‘퐁피두’라는 이름을 빌려 서구적 세계화에 종속관계의 빌미를 만드는 일을 후세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문화 사대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공공 행정과 욕망을 시민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인정 욕망의 과잉 시대를 추종하듯 관의 주도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지역의 예술가와 시민들 각각의 삶을 존중하며 각자의 모습을 담아내는 도시가 되어야 세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부산다운 도시로 살아간다. 이미 부산은 산과 바다를 품은 아름다운 도시로 소문나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다. 또한 많은 예술가도 문화 이민을 오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생태계를 유지해야 함에도 예술인복지센터 하나 없는 게 현실이다. 생태계의 숙주와도 같은 문화 생산자들의 유입을 받아들일 장치 하나 없는 셈이다.
제일 우선시 되는 문제는 이것이다. 지금 기후위기 앞에서 무슨 발상인가! 앞으로 닥칠 자연의 엄청난 재앙에 속수무책이다. 여태껏 잘 지켜온 천혜의 이기대 숲은 64%나 훼손될 우려가 있다. 콘크리트 건물 9개가 들어서면 숲은 사라진다고 보아야 한다. 무리한 일정으로 환경영향평가나 절차 없이 이 사업을 굳이 밀어붙이는 부산시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올해 말까지 계약이 체결되어야 한다고 한다. 부디 없던 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예술가들은 지금도 자기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작두 타듯 하는 삶을 살아가기에도 벅차다. 이들이 더 이상 거리로, 현장으로 나가 모질음을 쓰게 하지 말자. 투명하고 상식적인 도시에 살고 싶다. 시민들도 마찬가지일 테다.
2025-10-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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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왜 우리는 춤을 보고, 추는가
얼마 전 울산 대학의 문화예술 아카데미에서 필자는 무용 철학을 강의하였다. 무용에 관한 철학적 토론은 주로 춤의 가치를 탐구한다. 무용 철학은 춤을 단순한 신체 움직임이나 예술 형식으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왜 춤을 추며, 왜 춤을 감상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무용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관람 댄스인데 이것은 보는 춤이고, 둘째는 참여 댄스인데 이것은 추는 춤이다. 두 종류의 춤은 가치가 서로 다르다. 첫째 관람 댄스에 발레, 현대무용, 조선무용, 그리고 K팝 댄스와 같은 형식이 속한다. 이 경우 무용은 안무가가 구성하여 무용수가 무대에서 공연하는 작품이며, 관객은 객석에서 그것을 감상한다. 관람 댄스는 현실을 재현하기보다 가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발레 ‘백조의 호수’는 왕자와 백조 공주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세계를 형성하며, 마사 그레이엄의 ‘비’(Lamentation)는 슬픔에 잠긴 개인의 감정 세계를 만들며, 한성준의 ‘태평무’는 나라의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왕비의 희망 세계를 구성한다.
둘째 참여 댄스는 소셜 댄스, 클럽 댄스, 스트리트 댄스처럼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춤이다. 관람 댄스에서 무용가와 관객은 분리되지만, 참여 댄스에서는 그러한 구별이 없다. 살사나 바차타, 왈츠, 힙합 댄스, 그리고 전통 강강수월래 같은 춤이 참여 댄스의 사례이다. 참여 댄스는 극장이 아니라 축제, 놀이, 의식, 사교의 장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춤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 물음은 관람 댄스의 경우 “왜 춤을 봐야 하는가”, 참여 댄스인 경우 “왜 춤을 추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서양에서는 20세기 초까지 춤의 담론은 관람 무용에 집중되었다. 형식론에 따르면 무용의 가치는 춤 자체에 있어서, 무용수의 기교, 안무의 구성, 그리고 움직이는 신체의 아름다움이 곧 가치이다. 반면 표현론은 춤을 무용가의 감정 표현으로 간주하고, 그 감정 표출에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반면 중국의 공자는 춤의 가치를 관객의 관점에서 평가한다, 무용 작품은 관객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주는데, 여기에 춤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떤 춤은 관객의 마음을 지나치게 침울하거나 흥분하게 만드는데, 이런 것은 나쁜 춤이다. 반면 어떤 춤은 관객의 정신을 절도 있고 조화롭게 만드는데, 이런 춤이 좋은 춤이다.
20세기 독일의 하이데거도 공자처럼 예술 작품의 가치를 그것이 관객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에서 바라보았다. 그의 진리론적 예술론을 무용에 적용하면, 춤은 인간과 세상의 진실을 깨닫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진도 씻김굿은 무용수의 기교가 훌륭하거나 몸선이 예뻐서가 아니라, 공연을 보는 관객에게 인간 유한성의 진실을 알려 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참여 댄스에서 춤의 가치는 외부인의 판단이 아니라, 참여자의 체험에 있다. 예를 들어 이슬람의 수피 댄스에서 무용수는 동그란 원을 그냥 반복해서 돈다. 거기에는 복잡한 동작 구성도 없고, 전문적 기교도 없다. 이런 춤의 가치는 춤추는 과정에서 개인이 얻는 초월적 체험에 있다. 힙합 댄스는 미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칸 아메리칸 그리고 라티노 청년의 저항적 표현이며, 그 반항의 자세에 춤의 가치가 있다.
19세기 독일의 니체는 참여 댄스의 가치를 가장 잘 설명한다. 인생은 고통스럽고 세상은 부조리하다. 댄스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염세적 방관적 자세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삶을 긍정하는 행위이다. 니체는 후회, 죄의식, 열등감처럼 우리의 기분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생각을 중력의 정신이라고 불렀다. 춤은 그런 중력의 정신을 극복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발레의 ‘그랑 제떼’와 동래 학춤의 ‘날음새’는 무용수가 공중으로 날아서 중력의 정신에 저항한다. 이처럼 ‘당겨내림’에 저항하는 도약은 여러 댄스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브레이크 댄스의 헤드 스핀은 머리를 축으로 삼아 온몸을 회전시키는 고난도 기술이다. 보통 머리는 취약한 부분이라 보호해야 할 영역으로 여기지만, 댄서는 관습적 신체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 머리를 오히려 힘과 균형의 중심으로 삼는다. 그 회전을 통해 몸은 정신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장이 된다.
무용 철학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보는 춤과 추는 춤은 왜 가치가 있는가? 춤은 신체의 미나 동작의 기교를 넘어서, 인간 존재의 진실을 드러내고 삶을 긍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무대 위의 공연에서든, 공동체의 축제 속 춤판에서든 춤은 늘 우리에게 삶을 새롭게 사유하고 긍정할 기회를 제공한다. 춤은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인생의 자세를 선언하는 철학적 동작인 것이다.
2025-09-2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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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초고령화 사회, 돌봄의 건축
주말마다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 동생과 함께 거주하는 모친에게는 요양보호사가 주 5일 방문한다. 요양보호사도 이미 60세가 넘었다. 노인이 노인을 케어하는 ‘노노케어’는 이미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체계적이지 않다. 90세가 넘은 모친을 볼 때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는 존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만 65세 이상이 20%를 넘겨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20년 뒤인 2045년에는 37%까지 높아져 일본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된다고 하니 ‘노인과 바다’인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인의 나라’인 대한민국에 대한 문제이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인구가 급격히 팽창했던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으로 편입되는 것과 인구 소멸이 함께 가져온 결과다. 지금은 다섯 명 중 한 명이 노인이라면 20년 후에는 세 명 중 한 명이 노인이라는 것이다. 미국 노인 복지 전문가 데이비드 버넷(버지니아커먼웰스대) 교수는 한국을 두고 “급속한 인구·사회·경제 변화를 겪는 국가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늙음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게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할 때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12월 기준, 전국 3892개 노인요양시설에 입소한 어르신은 41만 2000여 명에 달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2013년)에서는 요양 시설 입소 노인의 68%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이 중 절반 이상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족의 결정으로 입소했다는 것이다. 가족의 돌봄 부담, 주거 불안, 경제적 여건 부족 등으로 요양 시설에 입소하는 것은 그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노인 돌봄을 핑계로 그들의 삶을 시설 속에 가두고 관리 대상으로 여겨왔다. 누구도 자신의 마지막을 시설에서 맞이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요양원이 아니라, 찾아가는 돌봄을 위한 지역사회 시스템이다. 하지만 현재의 제도는 이런 현실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한다. 실버타운은 지나치게 비싸 중산층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공공임대는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돌봄이 필요한 순간마다 집을 떠나야 하는 구조는 노년을 불안하게 만든다. 재가 서비스, 요양병원, 요양 시설이 각각 따로 존재해 연속성이 없으니, 노인의 삶이 시설과 제도의 틈새에서 조각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나의 부모일 수도 있고, 미래의 내가 될 수도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탈시설화를 국가 전략으로 채택하고 ‘집으로 찾아가는 복지’를 시작했다. 싱가포르의 ‘캄퐁 애드미럴티’는 공공임대주택 위에 주거, 의료, 상업, 커뮤니티 공간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복합단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병원이 있고, 이웃과 함께하는 정원이 있으며,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와 도서관이 곁에 있다. 노년의 이동 불편을 건축이 대신 설계해 준 것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휴마니타스’는 더 실험적이다. 대학생이 요양 시설에 무료로 거주하며 어르신과 생활을 나눈다. 세대 간의 교류를 건축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셈이다. 일본은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통해 의료, 돌봄, 주거를 지역 단위에서 엮어내고 있고, 덴마크는 오래전부터 집에서 가능한 한 오래 살 수 있도록 재가 중심 돌봄 체계를 마련했다. 건축은 여기서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제도와 맞물려 돌아가는 사회적 장치가 된다.
한국 사회에도 무엇보다 연속성 있는 주거가 필요하다. 노인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가정과 청년, 은퇴 세대가 섞여 살아가는 ‘복합 공간’이 되어야 한다. 어린이집과 작은 도서관, 공유 부엌과 정원을 함께 두어 세대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곳, 다섯 명이나 열 명이 함께 사는 소규모 그룹홈은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 작은 가족처럼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이웃 공동체는 고립을 막아준다.
이런 변화는 건축가의 설계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노인 친화적인 집에는 세제나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고, 대학과 연계한 은퇴자 주거 단지를 시범적으로 지원하며, 기존 아파트를 ‘에이징 레디(노후에도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미리 준비하는 것)’로 바꿀 수 있는 리모델링 표준을 제정하는 일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나아가 도시는 ‘돌봄의 인프라’를 물리적 시설만이 아니라 생활권 단위의 사회적 관계망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결국 노년의 존엄은 물리적 공간과 제도적 장치, 현실적인 정책과 실행이 맞물려야 지켜질 수 있다.
초고령화 사회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초고령화 사회의 도시와 건축은 모든 세대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공존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핵심이다. 우리가 어떤 건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노년은 고립과 불안의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존엄과 관계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2025-09-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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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키메라의 시대, 혼종의 리듬
처서가 지난 8월 끝자락 토요일 오후,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신작 〈키메라의 땅〉을 들고 부산콘서트홀 무대에 섰다. 작가 낭독은 이야기의 문을 열고, 이어진 앙상블 소리는 그 문턱을 넓혔다. 세종솔로이스츠 위촉으로 탄생한 김택수의 ‘키메라 모음곡’은 미래적 상상과 인간적 감각 사이를 크게 오가며 공간을 채웠고, 변이와 생성의 정서를 먼바다에서 끌어오는 듯했다. 그것은 낭독회도, 전통적 음악극도 아닌, 문학과 음악, 텍스트와 음향이 서로에게 기대며 다른 차원의 시간을 여는 장면이었다. 소설과 음악 작품의 제목처럼, 우리는 진정한 ‘키메라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했던 키메라는 더 이상 공포의 상징만이 아니다. 인공지능과 합성 생물학, 디지털과 아날로그, 전통과 실험, 지역과 세계가 얽혀 새로운 형상을 낳는 경계를 넘는 창조적 은유다. 경계가 흔들리는 시대에, 예술은 그 혼종성을 가장 예민하게 감지하고 반영한다. 내레이터의 목소리 위에 기악 음악의 질감이 포개질 때, 우리는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통한 시간의 결을 어루만진다. 한 장르의 독자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매체가 서로를 변형시키며 만들어내는 ‘사이’의 경험은 이번 무대가 남긴 값진 감각이었다.
피란의 역사로 시작한 항구도시 부산은 본질적으로 뒤섞이고 열린 도시였다. 서양악기인 피아노가 가장 먼저 들어온 도시인 것처럼, 항구는 외부의 시간과 경험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장치였다. 부산은 늘 낯선 것들의 경계 위에 있었고, 그 경계성 덕분에 가장 먼저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도시였다. 개방과 융합 속에서 독자적 정체성을 창조해 온 도시, 그 흔적은 곳곳에 겹겹이 쌓여있다. 이제는 북극항로라는 새로운 시대를 향해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도시의 문화적 랜드마크인 공연장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공연장은 단지 무대를 빌려주는 장소가 아니라, 도시의 뒤섞인 정체성을 감지하고 시대의 징후를 반영하는 울림통이어야 한다.
선조들은 예악(禮樂)에서 그 길을 일찍이 말했다. 예가 몸의 경계를 세운다면, 악은 마음의 결을 맞춘다. 서로 다른 재료의 소리를 아우르는 팔음은 중용을 잃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루는 ‘화악(和樂)’을 가르쳤다. 그것은 곧 도시의 조화이기도 하다. 섞임은 타락이 아니라 조율의 미덕이며, 조율은 ‘듣는 법’에서 시작된다. 결국 도시는 소리를 크게 내기보다 서로의 숨결에 귀 기울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기획한다’는 태도다. 외부 유명세를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지역 맥락과 시대 질문을 프로그램의 구조 속에 심는 일이다. 이번 무대처럼 세계적인 텍스트와 한국 작곡가의 신작이 한 작품의 결을 이해하고, 하나의 호흡으로 만나는 순간, 공연장은 소비의 장소에서 상상의 장소로 바뀐다. 이름을 더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 정확한 음정으로 도시의 질문을 말하는 것, 명성을 빌리지 않고도 스스로 맥락과 목소리로 무대를 만드는 태도다. 그것이 곧 자기 기획의 핵심이다.
공연장에 울리는 박수 사이에 스며든 짧은 침묵, 로비를 지나가던 낮은 대화, 바깥 유리창을 스치던 바람과 풍경은 무대와 악보 밖의 음표가 되어 ‘뮤지킹 음악하기’를 완성한다. 새 레퍼토리나 익숙한 곡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어떻게 듣고 서로 묶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은 ‘듣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서로를 조금 덜 말하고, 한 박자만 더 기다려 주면 된다. 프로그램이 늘 화려할 필요도 없다. 한 작품을 오래 준비하고, 한 지역의 이야기를 천천히 붙잡는 시간이 쌓이면 도시의 음색도 자연스레 깊어진다. 부산콘서트홀과 곧 문을 열 오페라하우스가 그 시간을 품는 그릇이 된다면, 공연 목록의 화려함보다 우리가 어떻게 달라졌는가가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종종 다른 도시의 사례를 말하지만, 도시의 길은 모방이라기보다 창조적 조율에 가깝다. 해양이라는 본성, 확장되는 문화 인프라, 지역 창작자의 네트워크, 국제적 협업의 통로라는 이질적 요소들을 한 무대에서 만드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굳이 정책적 언어로 번역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연습이 좋은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이 공간의 품격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그 과정 자체가 곧 도시의 전략이 된다. 우리는 낯선 세계를 이해할 수 없을 때, 그 세계의 리듬부터 듣는다. 예술은 그 리듬을 미리 들려주는 언어다. 키메라의 시대를 먼저 듣는 도시만이, 그 시대를 먼저 살아볼 수 있다. 공연장을 실험실이자 공명통으로 삼아 자기 언어로 시대를 말할 때, 비로소 문화도시 부산이 된다. 이 도시에 남겨야 할 것은 ‘누가 왔다 갔다’는 화려한 목록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만들었는가’라는 우리만의 연대기다. 미래는 열린 마음으로 먼저 경험하는 도시의 것이다.
2025-09-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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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상탈 러닝 논쟁을 지켜보며
최근 즐거운 취미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함께 러닝을 하는 것이다.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한마디 말도 섞지 않고 뛰기만 하지만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같은 노래를 들으며 같은 호흡으로 뛰고 있자면 딸아이의 마음이 어렴풋하게나마 전해지기도 한다. 또 힘든 달리기가 끝나고 하이파이브를 할 때면 말은 안 해도 전우애와 같은 가족애가 생긴다.
그런데 며칠 전 딸아이가 갑자기 러닝 가기가 싫다고 했다. 딸아이도 내심 나와 함께 러닝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느꼈던 터라 그 이유를 물어봤다. 아이가 말하길 러닝 자체는 싫지 않지만 집 앞 공원에는 웃통을 벗고 뛰는 아저씨들이 많아 왠지 징그럽고 위화감이 들어 러닝 가기가 싫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그날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공원으로 차를 타고 이동해 러닝을 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현행법상 처벌 대상 아니라고 하지만
법은 최소한의 기준, 최선의 답 아냐
제재 아니어도 '탈의·착용 원칙' 필요
공동체 공론장 만들어 '최적선' 찾길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상의 탈의 러닝에 대한 의견을 찾아보았다.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고 있어서인지 뉴스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상의 탈의 러닝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었다. 주된 논지는 이렇다. 상의 탈의 러닝 반대 측은 공공장소에서 맨몸을 드러낸 채 운동을 하면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상의를 벗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찬성 측은 상의 탈의 운동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이를 규제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 침해라는 입장이다.
찾아보니 실제로 공공장소에서 상의 탈의를 하는 행동에 대해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2015년 경남 양산에서 한 남성이 집 근처 공원에서 상의를 탈의하고 일광욕을 하다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이라는 경범죄처벌법의 과다 노출 조항에 따라 범칙금을 부과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다. 헌재는 조항의 ‘지나치게 내놓는 것’, ‘가려야 할 곳’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해당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후 헌재 결정에 따라 해당 조항은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성기, 엉덩이 등 신체의 주요한 부위를 노출해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으로 개정됐다. 따라서 과다 노출은 성기나 엉덩이로 특정되며, 상의 탈의를 하여 상체를 노출한 행위는 경범죄에 해당하지 않게 됐다.
그러나 ‘법적으로 문제없으니 괜찮다’는 주장은 우리의 정서상 용인되기 힘든 부적절한 상체 노출을 모두 허용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를테면 상의를 말아 올려 배를 드러내 놓거나 아예 상의를 탈의하고 다니는 이른바 ‘베이징 비키니’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법은 최소한의 기준일 뿐 공동체를 위한 최선의 해답은 아니다. 따라서 ‘불법이 아니니 해도 된다’는 태도에서 한 걸음 물러나 타인을 위한 자제와 배려를 공공의 선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고 상의 탈의 러닝을 일괄적으로 제재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용 체육공원, 육상 트랙, 지정된 러닝 코스 등 운동 목적이 분명한 장소에서는 상의 탈의를 허용하고, 다목적 공원이나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대중 시설과 연계된 곳에서는 상의 착용을 기본 규범으로 삼는 것이다.
또 기타 판단이 어려운 장소의 경우 해당 시설의 관리 주체가 시설의 운영 목적과 이용객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이용 규칙으로 상의 탈의 규정을 정하면 된다. 그리고 이용객에게 상의 탈의 가능 시간과 구획 등에 대한 구체적 안내와 완만한 계도를 병행한다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상의 탈의 논쟁을 지켜보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 방식이 지나치게 법조문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상의 탈의 문제를 두고 ‘법에 없으니 무조건 허용’ 대 ‘법을 만들어 처벌’이 맞붙는 장면은 우리 사회가 결과(처벌)만 원하고 과정(토론)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모습을 민낯으로 보여준다.
법은 범죄냐 아니냐를 가르는 이분법적 틀로 설계돼 있어 우리 일상의 미세한 맥락과 다양한 장면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법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논의는 거칠어지고 때로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갈등이 생겨나기도 한다. 결국 법은 사회 문제 해결의 ‘최저선’일 뿐 ‘최적선’이 아니다.
최적선은 법이라는 최저선 위에 공동체가 공론장을 열어 토론하고 합의할 때 비로소 그려진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성숙한 태도로 토의하고 그 결과 공동체가 납득할 수 있는 합의에 이를 때, 규제는 오히려 가벼워지고 자유의 폭은 넓어진다.
2025-09-0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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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문화의 힘으로 정의와 민주주의를 긷다
최근 부산과 서울 등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부산광역시중구문화원에 모여 우애를 다진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국작가회의 본회 소속 작가들이 지역을 순회하면서 집담회 형식의 대화를 하는 행사인데, 이번에 부산지회에서 열린 것이다. 중구 대청동에 있는 중구문화원 2층에 촘촘히 들앉은 회원들과 발제자 및 토론자들의 열띤 음성이 인상적이었던 행사였다. 두 번째 발제자였던 나는 발제에 앞서 중구문화원의 내력과 함께 복병산 일대와 대청동에 포진한 문화유산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였다. 참석자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대청동, 광복동, 중앙동, 동광동, 부평동, 보수동 등 이른바 ‘원도심’을 형성했던 공간이 지닌 의미를 짧게나마 언급하고 소개하는 게 멀리 일부러 찾아온 서울 손님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의 주제는 ‘더 많은 정의,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하여’였다. 다소 무겁고 거창한 주제여서 발제 내용을 구성하는 데 애를 먹었지만, 1678년 용두산공원 일대에 조성된 초량왜관 시대와 개항 및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쳐 한국전쟁의 상흔과 뒤이은 피란민들의 유입 등 부산이 역사적으로 빛과 그늘을 동시에 쐰 도시였다는 사실과 행사의 주제를 아우르고 싶었다. 중요한 점은 1979년 10월 부마항쟁의 시위 행렬이 광복로와 대청로를 가득 메웠다는 점과 함께 1987년 6월 항쟁 때에도 도심지였던 서면 일대와 함께 원도심의 간선도로가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는 시민들에게 열린 광장의 기능을 담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부산이 지켜온 정신적 기질 되살려
시민 자존감 회복하는 동력 삼아야
도시 곳곳 문학적 색채 적극 활용을
행사를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일행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가는 중간중간 설명이 필요한 도로나 건물이 보이면 그 공간이 지닌 의미를 전달하였다. 부산타워가 보이는 대청로를 끼고 용두산공영주차장 근처에 있는 적산가옥과 영화체험박물관을 가리키며 잠깐 설명을 마치고 저녁 뒤풀이가 예정된 식당으로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평소 손님이 많아 점심시간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먹기가 힘들었던 식당이었다. 예약 인원보다 한 테이블 가량의 인원이 더 참석하여 더욱 분주한 자리였다. 부산과 서울 등지에 터를 잡고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상견례를 겸한 자리여서인지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생기를 띠었다.
문학이 ‘정의’와 ‘민주주의’에 보탬이 되는 요소가 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꿈을 언어로 제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법률과 제도가 규제하지 못하는 온갖 부정적인 인간의 속내와 언행을 폭로하고,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갈구를 형상화하는 문학의 기능에 딴지를 걸 사람은 없다. 폭풍우처럼 휩쓸고 간 거리 곳곳에서 피를 뿌리며 죽어간 맑은 영혼이 있는 반면에, 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이들의 피와 살을 희생하고자 하는 검은 영혼이 있다. 일제의 강점으로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고, 해방이 찾아왔지만 이념 갈등으로 분열되고, 더욱이 한국전쟁으로 무수한 파괴와 살육이 진행되었던 속에서도 이곳 부산이 지켜온 정신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한다.
밀물과 썰물처럼 온갖 사람과 물자가 빠져나가고 들어오는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것처럼 보였지만, 시나브로 정착하게 된 문화와 정신은 현재 새로운 도시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기지개를 켜면서 그 알곡을 펼쳐 보여야 하는 때에 다다랐다고 본다. 세계유산위원회가 내년 부산에서 개최되면서 이곳의 위상이 한층 도약하는 계기가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시민들에게 안겨다 주었던 자존감 상실을 회복하는 일이다. 한때 서울 다음가는 대도시로 전국 각지에서 부산으로 몰려드는 때가 있었다. 산업화 시기 부산은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보상해 준 도시이자 해양산업의 요충지로서 산업과 무역의 플랫폼 기능을 담당했던 공간이었다. 그런 도시였던 부산이 처한 현실을 감안하면 지금도 부산을 지키면서 부산 사람만의 기질과 인정을 지니고 베풀고 있는 지역민의 자존감을 되살리는 방법 가운데 문학도 능히 포함될 수 있다.
용두산공원 일대가 그동안의 번영과 쇠락을 거듭하는 중에 알게 모르게 형성한 문학적 색채를 지워버려서는 안 된다. 시민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되지 않았지만 여러 문화예술인의 마음으로 유전되어 온 언어의 쉼터, 다시 말해 시인의 체취가 군데군데 남아 있는 곳이다. 그중 하나가 부산 시단의 지킴이로서 동광동 백산기념관 부근 ‘강나루’란 주점을 운영하며 수많은 문학인과 예술인들을 품었던 고 이상개(1941~2022) 시인의 3주기가 곧 다가온다. 그 주점에서 문화예술인들은 정의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일상의 속살까지도 조곤조곤 나누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혁명까지도 말할 수 있었던 10평 남짓한 그 공간에 가을밤 어둠이 무겁게 가라앉아들 시각, 시인의 조용한 음성이 우리들 등을 어루만지는 듯한 늦여름이다.
2025-08-2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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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꿈에 그리던 ‘평양비엔날레’
“전쟁 통에 북으로, 남으로 갈라설 수밖에 없었던 한국 근대사의 예술가들! 북으로 가족을 따라, 미군의 체포를 피해 떠났던 이쾌대 선생, 이석호 선생, 정을녀 선생, 정종여 선생. 그리고 40여 명의 선생들! 또 남으로 가족과 형제를 따라 남하한 원산항에서 출발하여 끝내 터를 잡지 못한 이중섭 선생, 한묵 선생, 장리석 선생, 박항섭 선생, 최영림 선생. 이처럼 훌륭한 선생들이 계셨기에 지금 우리는 성장할 수 있었고, 역사의 흔적을 따라 오늘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문화의 힘을 빌려 그간의 상처와 시간들 그리고 앞으로의 남과 북, 북과 남의 동질성을 이해해 가는 단초로 이 ‘평양비엔날레’가 될 것입니다. 오늘 만천하에 우리는 처음부터 한민족이었다는 것을 당당하게 공표하는 것으로 그 서막을 엽니다. 그간 주변 열강의 지정학적 역학 관계 등으로 인해 우리 민족은 오랜 시간 나누어지고, 떨어져 서로 비방하기도 했지만, 굳건하게 견뎌 왔습니다.
오늘은 남과 북, 북과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펼쳐 보이는 자리인데 이념을 떠나 한 민족으로서 말과 얼굴 그리고 문화 또한 언제나 하나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간입니다. 오늘 이 미술 잔치가 단초가 되어 더 많은 교류와 연대, 협력의 문화를 통해 통일의 그날이 올 때까지 천천히 갑시다. 그리고 서로를 인정하고 기다려 주는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화해와 공존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서로의 실체를 확인하고 어루만져주며 ‘분단의 미술의 역사’를 한 민족으로 엮어 ‘통일의 미술사’를 재창조해야 하겠습니다. 남의 유채꽃, 북의 진달래가 만발할 때 우리 다시 만납시다. 어디든 어떻습니까. ”
잠에서 놀라 깨어났다. 너무나도 현실 같은 꿈속의 장면이었다. 며칠 전 광복 80주년 광복절 행사는 온 국민과 함께 다시 찾은 민주주의를 확인하며 서로 격려해 주는 축제 한마당으로 펼쳐졌다. 이번 광복절을 특별하게 느끼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헌정 질서 정상화와 국민주권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자리였기도 한 축제 한마당이었으니 말이다. 뜨거운 그날의 함성과 기운에 힘입어 꿈속에서 ‘평양비엔날레’가 열리고 개막식 개회사가 들려오다니 가슴 벅찬 기분이 든다. 잠시 물 한 사발 마시고 생각해 보니 마냥 낭만적인 꿈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서 생겨날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꿈으로 휘발되기 전에 꼼꼼히 기록해 둬야겠다. 제1회 ‘평양비엔날레’ 전시 감독!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다시 통일을 맞이하는 날을 접했다. 그 초석은 수상 브란트의 ‘동방정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또 1977년 ‘카셀 도큐멘터’에서 동독과 서독 미술가들의 불화가 오히려 두 나라가 통일에 대해 숙고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세계 미술사는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세계 3대 미술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카셀 도큐멘터’가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해낸 것이다. 1980년대 초 ‘독일적인 미술’의 전통을 잇고자 하는 ‘젊은 야수’ 그룹의 등장과 그 변화를 추적하는 미술사학자들의 연구와 노력은 독일의 통일을 이루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독일 정부는 통일 기념행사로 독일 전역에 예술가들이 설치 작업을 할 수 있게 했으며 대주제를 ‘자유의 극한’으로 정했다. 작가들이 얼마나 통일의 자유를 갈망했는지를 미술로 표현해 주기를 기대했다. 과거에는 정치가 권력의 매체로 미술을 사용하였지만, 매체가 된 미술은 이제 그 매체를 통해 정치와 권력에 대항하고 국민의 자주적 목소리를 연대하는 세월을 맞이하였다. 동독 출신 극작가 하이너 뮐러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의 시간은 정치 또는 역사의 시간과 다른 것이다”라고.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없었던 이야기는 아니다. 2018년 광주비엔날레 섹션 중 하나로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전이 열리면서 세간의 이목을 모았다. 광주비엔날레 재단과 광주시는 다음 해에 평양비엔날레 계획을 추진한 바 있었으나 지지부진하게 되었다. 민간에서도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민예총)이 주축이 되어 남북이 공유하는 기념일인 6·15와 8·15에 맞춰 대규모 전시회를 계획한 바 있다. 성공되지 못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좌초되었고, 불안한 남북 관계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부처의 예산 편성조차 하지 못했다.
이러한 일들을 반면교사 삼아 이번 이재명 정부에서는 문화예술 분야의 남북 교류 협력에 적극적인 실행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20년 만에 다시 돌아온 통일부 장관의 의지, 부처 간의 협력체계를 강조하는 이번 정권에서 반드시 이를 시도해 보아야 한다. 지금이 적기다. 부산에도 부산비엔날레 조직위가 있고, 그동안 축적한 경험이 충분하다.
2025-08-21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