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의 크로노토프] 거대함 숭배, 위험한 전문가들
피아니스트·음악 칼럼니스트
전국 곳곳 대규모 공연시설 건립 붐
안전 보장할 무대감독 턱없이 부족
흥행 우선 논리에 예술 노동자 불안
대한민국 문화정책 중심에는 ‘거대함’에 대한 기묘한 집착이 자리한다. 바벨탑 숭배주의처럼, 전국 곳곳에서 제기되는 5만~7만 석 규모 아레나 건립은 K컬처 위상을 증명하는 랜드마크이자 지역 경제 해법인 양 제시된다. 현장 디테일은 지워진 채 일부 기획사와 학계에서는 “규모가 성공을 보장한다”는 장밋빛 수사를 반복한다. 낙관론 뒤에 정작 거대한 하중을 견뎌야 하는 전문예술노동자의 현실은 보이지 않는다. 초대형 인프라 신화 속에서 안전은 실종되었고, 숫자에 매몰된 담론은 예술노동자의 안전을 외면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기 드보르가 지적한 ‘스펙터클’은 이미지가 사회적 관계를 매개하고 지배하는 ‘통치 질서’다. 이 질서에서 중요한 것은 실질적 내용보다 가시성이며, 경험보다 연출된 장면이다. 초대형 아레나는 바로 이러한 스펙터클 체제의 정치적 구현물이다. 완공은 곧 성과가 되고, 조감도는 정책을 선점한다. 이미지가 현실을 앞질러 성공을 선언할 때, 건축은 문화시설이 아닌 권력을 전시하는 장치로 변한다. 화려한 이미지가 실재를 압도하는 순간, 예술 터전은 위험이 외주화된 ‘공장’으로 전락한다. 예술가의 노동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고, 안전은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처리될 뿐이다.
인프라 팽창 속도에 비해 이를 운용할 직접 고용된 무대예술 전문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장의 비극은 반복되지만, ‘그림자 노동자’의 생명권을 위한 구조적 개선은 더디다. 심지어 공연 산업 확장세에 편승해 ‘단기간 속성 전문가’를 양산하는 풍경까지 펼쳐진다. 민간자격에 정부 명칭을 교묘히 섞어 국가가 전문성을 보증하는 듯한 ‘착시’를 파는 구조다. 수십 톤 구조물이 오가는 현장 지휘권을 숙련자가 아닌 단기 학습자에게 맡기는 일은 행정 편의를 넘어 안전 관리 체계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공연장의 본질은 화려한 건축물을 넘어, 고도의 직무가 교차하는 유기적인 노동 조직 공간이다. 그러나 우리 정책은 건립 이후 운영 방안과 숙련 체계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공연 선진국 독일은 ‘독일 사고예방 규정 제17호’로 무대 안전 규정을 제도화했고, 일본 역시 ‘연출공간 운용 및 안전 가이드라인’으로 주체 간 책임 체계를 명문화했다. 그들은 ‘안전이 보장되는 무대’를 체계화하고 제도화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공연장 건축’에 집중하고 있다. 건물은 완공되지만, 무대 운용 전문인력 시스템은 충분히 마련되지 않는 모순이 반복된다. 이 현상은 수출 신화를 위해 노동자 희생을 당연시했던 개발독재 시대의 비인간적 노동관과 소름 돋게 닮았다.
전년 대비 11.9% 증가한 문화예산은 수치상 ‘문화 강국’을 향한 과감한 투자처럼 비친다.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면 콘텐츠 외연 확장에 무게가 쏠려 있다. 문화정책의 본령인 ‘공공성’과 ‘생태계 안전망’은 잘 보이지 않는다. 콘텐츠 수출이라는 화려한 성적표 뒤에, 창작자 권리 구조나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제도적 고민은 좀처럼 확인하기 어렵다. ‘상품’의 양적 팽창에만 몰두한 나머지, 콘텐츠를 만드는 주체인 ‘사람’의 지속 가능성은 또다시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진 셈이다.
수도권 대형 공연의 지역 유통을 위해 140억 원 투입을 추진하는 문체부 계획 역시 우려스럽다. ‘수도권 공연을 지역에서 본다’는 명분은 지역 기반 시설을 수도권 콘텐츠 유통을 위한 단순 ‘하청 기지’로 전락시키는 처사와 다름없다. 국가 균형발전은 허울 좋은 구호로 메아리칠 뿐이다. 그 자리를 채운 시혜성 행정은 지역 예술 생태계의 자생력을 갉아먹는다. 더 큰 문제는 이 정책이 공연장 안전을 직접 위협한다는 점이다. 지역 특수성을 충분히 알지 못한 외부 인력이 단기 실적에 쫓겨 무대를 설치하고 철수하는 과정은 사고 위험과 직결된다. 현장에 대한 성찰 없는 ‘유통 지상주의’는 공연 현장을 언제든 ‘사고 현장’으로 바꿀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
도시는 기억을 축적하는 장치며, 공연 현장은 숙련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전문성이 형성되는 시공간이다. 한 장소에서 공연예술인들이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출 때, 비로소 위험은 예측 가능해지고 안전은 경험으로 자리 잡는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아레나의 조감도가 아니라 현장의 생명을 지켜낼 ‘안전 설계도’다. 공연장은 관객 수용시설을 넘어, 고도의 예술노동이 작동하는 기술집약적 공간이다. 이제라도 모든 공공극장에 공연 개시를 최종 승인하고 위험시 작업을 중지할 권한을 가진 ‘무대감독’의 상시 배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무대예술전문인의 안전 판단이 흥행 논리보다 우선한다는 원칙이 서지 않는 한, 어떤 대형 인프라도 사치스러운 신기루에 불과하다. 수만 명의 환호보다 먼저 응시해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예술노동자의 존엄과 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