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물썰물] 슬픈 동계 올림픽
제25회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이 한창이다. 연일 태극전사들의 낭보가 들려온다.
슬픈 소식도 있다. 기후 변화에 따른 동계 올림픽의 종목에 변화를 꾀하려는 움직임이다.
동계 올림픽은 1924년 1월 25일 프랑스의 샤모니에서 시작됐다. 16개국에서 25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스키, 스케이트, 아이스하키 등에서 경쟁을 펼쳤다.
100년 역사를 가진 동계 올림픽이 변형된 하계 종목이나 일부 실내 경기를 겨울 스포츠에 포함시킬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 6월 취임한 커스티 코번트리 신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주도하고 있다.
IOC가 종목 확장을 꾀하는 이유는 동계 올림픽이 하계 올림픽과 비교하면 종목 수가 적은 것도 있지만, 기후 변화로 천연 눈과 얼음 확보가 어려운 현실도 한몫한다. 이번 밀라노 동계 올림픽에 걸린 금메달 수는 116개다. 반면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하계 올림픽의 세부 종목은 350개다.
기후 변화 위기가 동계 올림픽 변화를 가속화 한다. 이번 밀라노 동계 올림픽에서도 5만㎥의 인공눈이 살포됐다. 동계 올림픽 규격을 맞추기 위해 약 2만 7000㎥의 물이 인공설 생산에 사용됐다. 이 때문에 동계 올림픽 개최 전부터 환경 단체의 반발이 심했다. 밀라노 동계 올림픽의 설상 종목이 열리는 곳은 해발 1800m가 넘는 고지대이다. 이런 곳에서도 인공눈을 뿌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개최지는 오죽하겠는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설상이 아닌 진흙이나 비포장도로에서 치러질 수 있는 육상 경기들이 동계 올림픽 새로운 종목으로 거론되고 있다. 육상의 ‘크로스컨트리 달리기’와 사이클의 ‘사이클로크로스’가 그것이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시범 경기를 선보였던 ‘스노 발리볼’과 실내 경기장 활용이 가능한 ‘플라잉 디스크’ 등도 동계 올림픽 진입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걸림돌이 있다. 올림픽 헌장 제6조 2항에는 ‘눈이나 얼음 위에서 행해지는 스포츠만이 동계 스포츠다’라는 규정이 있다. 동계 올림픽이 변화하려면 동계 올림픽의 정체성이 담긴 헌장부터 바꿔야 한다. 헌장 개정도 문제지만, 기존 동계 스포츠계의 거센 반발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IOC는 이번 밀라노 동계 올림픽에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기후 변화로 동계 올림픽 종목마저 변화하고 있는 사실이 슬프다.
2026-02-12 [17:57]
-
[밀물썰물] 만인소와 서훈 재평가
18세기 조선 사회에 울려 퍼진 민중의 외침이 있었다. 1792년 정조 16년. 영남의 선비 1만여 명이 상소를 올렸다. 이름하여 만인소(萬人疏). 하나의 상소에 이처럼 많은 이들이 서명한 사례는 조선왕조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그 요구는 사도세자의 신원(伸寃)이었다. 이는 영남만인소의 시작이기도 했다. 만인소는 단순한 청원서가 아니라 억압받은 백성들이 하나로 뭉쳐 왕실에 올린 절규였다. 상소 길이만 무려 100미터에 달했다. 1823년 서얼 차별 철폐 요구 등 조선시대 모두 일곱 차례 만인소가 있었다. 대부분 영남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됐다.
만인소는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대중의 의사로 끌어올려 공론화한 조선 후기의 집단 청원이었다. 유생은 물론이고 농민이나 상인, 하급 관료 등 다양한 계층이 신분과 지역을 넘어 연대했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불만 제기를 넘어 부패 척결과 세제·법 집행 개선 등 구체적 개혁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만인소 같은 연대 서명 상소는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855년 장헌세자 추존 만인소와 1884년 복제 개혁 반대 만인소는 2018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에 등재됐다.
영남만인소가 1884년 이후 142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제8차 영남만인소 집행위원회는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봉소(奉疏) 의식을 열고 정부에 독립유공자 20인에 대한 서훈 재검토와 등급 상향을 요구했다. 이들은 1962년 확정된 상훈 체계가 충분한 검증 없이 굳어졌다고 지적하며 임시정부 국무령(대통령급)을 지낸 석주 이상룡,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우당 이회영, 만주 무장투쟁의 핵심인 일송 김동삼 등의 서훈을 형평성 문제로 제기했다. 실제 이상룡과 이회영은 독립장(3등급)에 머물러 있다. 지역사회와 학계는 독립운동의 위상에 걸맞은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등 5등급 체계로 1등급에는 김구, 안창호, 안중근, 여운형 등이 포함돼 있다.
만인소는 특정 인물의 명예를 대신 요구하는 운동이 아니다. 국가가 세운 기준을 다시 점검하라는 요구다. 역사는 이미 그들의 헌신을 기록했지만, 국가는 아직 그 무게를 온전히 달지 못했다는 게 만인소가 움직인 이유다. 축적된 연구 성과와 사료가 충분한 지금, 더 이상의 재평가 유보는 역사에 대한 책임 회피에 가깝다. 만인의 이름으로 묻는 이 질문에 국가는 과연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2026-02-11 [18:17]
-
[밀물썰물] 대심도라는 새 길
부산 만덕에서 센텀시티를 잇는 지하 40m 이하 대심도 도로가 뚫렸다. 부산에서는 사상~해운대 대심도 지하고속도로도 예정돼 있다. 서울에선 영등포구 양평동 금천구 독산동을 잇는 서부간선 지하도로가 2021년 9월 개통됐고, 경부고속도로 동탄~양재, 수도권외곽순환고속도로 판교~퇴계원 등의 구간에서 대심도 지하화를 검토하고 있다. 도로뿐 아니라 철도도 지하로 더 깊이 들어간다. 서울과 파주 운정을 잇는 GTX-A 노선도 대심도 철로인데, GTX 서울역사는 지하 60m에 건설됐다. 향후 건설되는 대부분의 GTX 노선이 대심도를 상정하고 있고, 수도권 철도 용량 포화를 해소하는 방법으로도 대심도 철로가 검토되고 있다.
밀집도 높은 대도시는, 지상은 물론 표층부 지하까지 도로, 지하철, 각종 관로 등으로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포화상태에 이른 도심 내부의 새로운 교통망 구상이 수직으로 더 깊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지상 건축물 보상비, 지하 매설물 이설비 등을 줄일 수 있는 이점도 있고, 지상에 전달되는 소음·진동·대기오염을 줄일 수 있다고 사업자 측은 설명한다.
하지만 발파를 비롯한 지반 공사 과정에 주변에선 민원이 잦다. 특히 3년 전 부산 온천동에서 발생한 대심도 공사장 지반 붕괴 사고는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하다. 붕괴 지점에서 불과 32.2m 거리에 도시철도 3호선 선로가 있었다. 지하수 유실로 도심 곳곳에 발생하는 싱크홀이 대심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도로를 더 깊은 곳에 뚫는 만큼 붕괴·화재 등 사고가 났을 때 신속한 탈출·구조 동선 확보, 연기 배출이 가능한 시스템 마련은 더 중요하다.
문제는 대심도 도로와 철로는 계속 뚫리는데 사업자가 지켜야 할 안전 기준은 대심도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지하 안전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준용해 지하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안전영향평가를 할 뿐이다.
지난해 9월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는 “국내 정책이 대심도 지하공간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시설별로 분절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대심도 지하공간 개발을 위한 통합 법률을 제정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심도에 대한 정의, 심도 기준, 안전·환경·재산권 등을 종합적으로 규정하는 법률 제정이 시급하다. 단순히 빠른 길이 아니라, 안전하고 빠른 길이어야 하니까.
이호진 선임기자 jiny@
2026-02-10 [1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