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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빈소에 들어온 AI
“엄마, 어디 있었어? 보고 싶었어.”
2016년 희귀 난치병으로 일곱 살에 세상을 떠난 나연이가 엄마 장지성 씨에게 말을 건넸다. 장 씨는 허공에 손을 뻗어 만질 수 없는 딸을 안으며 오열했다. 스튜디오에 함께 있던 남편과 세 아이도 눈물을 쏟았다. 2020년 2월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이야기다. 제작진은 약 8개월에 걸쳐 나연이의 얼굴과 체형, 목소리를 가상현실(VR) 기술로 복원했다.
영상은 유튜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0분 분량의 주요 영상 조회수는 3700만 회가 넘어간다. 하지만 높은 관심만큼 논쟁도 뜨거웠다. 갑작스러운 난치병 진단, 한 달 만에 영영 떠나버린 아이. 고개 떨구며 미안함을 전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흔든다. 그러나 죽은 아이를 디지털로 되살려 어머니의 눈물을 콘텐츠로 소비한다는 비판도 거셌다. 치유인가, 고통의 재생산인가. 다만 사람들은 그것이 다큐멘터리라는 틀 안에 있기에 한발 물러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6년이 흘렀다.
최근 일부 장례식장 빈소에 AI로 구현한 고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생전 사진과 음성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화면 속에서 고인의 얼굴로 조문객에게 인사를 건넨다. “와줘서 고마워” “건강하게 잘 지내” 유족은 마지막으로 고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위로가 됐다고 한다. AI 기술 업체들은 ‘디지털 추모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사업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빈소에서 이 광경을 마주한 조문객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산 자가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의례의 공간에서 AI가 고인을 흉내 내는 장면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거부감의 뿌리에는 AI가 고인의 데이터를 학습한 소프트웨어일 뿐, 결코 그 존재를 대체할 수 없다는 직관이 자리한다. 사회적 쟁점도 만만치 않다. 고인의 명시적 동의 없이 외모와 목소리를 복제하는 행위는 인격권 침해 소지가 있고, 유족의 슬픔을 겨냥한 상업화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죽음 앞에서 기술은 겸손해야 한다. AI가 고인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순간, 이별은 유예되고 애도는 교란된다. 슬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재를 받아들이고, 기억을 추려내고, 비로소 놓아주는 그 긴 과정이 애도다. 기술이 그 과정을 단축하고 위로해주겠다는 약속은 달콤하지만 위험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잊히지 않는 기억’이지,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닐 것이다.
2026-03-3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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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3분 휴식' 분수령
스포츠 경기에서 잠깐의 휴식이나 멈춤은 흐름을 뒤집는 분수령이 되곤 한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벌어진 2005년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 리버풀 FC와 AC 밀란의 맞대결은 그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전반이 끝났을 때 스코어는 0-3, 승부는 AC 밀란으로 기운듯했지만 하프타임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리버풀은 전술을 재정비했고, 선수들도 새롭게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후반 시작 6분 만에 세 골이 잇따라 터졌다. 연장전에 이어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리버풀은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는 축구사에 명승부로 회자되는 ‘이스탄불의 기적’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경기 중 짧은 휴식 시간이 늘어날 전망이다.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FIFA는 본선 참가국에 공문을 보내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Hydration Break) 도입을 알렸다. 이는 전·후반 각각 22분을 전후해 3분간 휴식을 부여하는 것으로, 사실상 경기가 4쿼터처럼 나뉘는 구조가 된다. 표면적인 목적은 선수 보호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고온 환경과 체력 소모 증가 속에서 수분 보충과 체온 조절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논란도 적지 않다. 경기 흐름이 끊겨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팬들의 불만도 크다. 이 시간이 방송사와 스폰서에게 새로운 광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상업적 의도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는 월드컵이 점점 자본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지적과 맞닿아 있다. 물론 선수 건강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경기 흐름이 끊기는 대신 코치진이 개입할 여지도 더 커진다. 농구의 작전 타임처럼 각 팀 벤치의 지도력과 용병술이 더욱 중요해진 셈이다. 이렇게 보면 3분은 단순히 ‘물 마시는 시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미 그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국과 코트디부아르와의 월드컵 평가전 경기 역시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이후 분위기가 급변했다. 전반전 잠시 주도권을 잡았던 한국은 브레이크 이후 흐름을 내줬고, 결국 실점으로 이어졌다. 단 3분의 휴식이 경기의 방향을 바꾼 셈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3분이 또 다른 반전을 쓸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 안에 상황을 읽고 전술을 수정하며 집중력을 되살리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다. 월드컵을 앞둔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그 짧은 3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다. 바로 그 점이 이번 월드컵의 또 다른 승부처가 될 것이다. ‘3분’을 준비하라.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2026-03-3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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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플라스틱 유감
슈퍼마켓조차 찾기 힘들던 1970년대 초반, 아이들에게 고른 영양을 공급하겠다며 우유를 배달해 먹는 가정이 제법 있었다. 당시 우유는 대부분 유리병에 담겨 배달됐다. 마분지처럼 딱딱한 내부 종이 뚜껑을 따다가 손가락을 잘못 밀어넣는 통에 병에 든 우유가 치솟아 옷을 버리곤 하던 게 다반사였다. 우유 뿐만이 아니다. 집이나 학교, 직장에서 물을 마실 때는 주전자에 담긴 물을 유리나 금속 컵에 따라 마시는 게 당연했다. 음료수도 유리병에 담긴 것을 마시고 공병을 반납한 뒤 몇 원씩 받아가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시장에 장을 보러갈 때에도 생선과 육류는 신문지 같은 종이에 싸 오는 게 당연했으며 천 보자기를 이용해 장을 보는 풍경도 익숙했다.
그렇게 유리와 금속, 종이, 천을 중심으로 생활을 이어오던 대한민국은 이제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이 세계 최상위권 수준인 나라가 됐다. 2023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체 생활·상업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은 770만 톤을 넘어섰으며 이대로라면 2030년엔 1000만 톤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1인당 한 해 거의 200kg 수준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버리는 셈이 된다. 먹고 입고 사용하는 모든 측면에서 플라스틱을 빼고는 생활이 안 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동 전쟁 여파로 나프타 공급선이 타격을 받는 현실은 예사롭지가 않다. 나프타는 플라스틱을 만드는 기초 원료로서 ‘석유화학의 쌀’로 불린다.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나프타의 재고는 보수적으로는 보름치, 많이 잡아도 3주치를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 업체인 LG화학이 최근 전남 여수의 나프타분해시설 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로 한 것은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프타 공급 차질의 결과는 플라스틱 없는 생활로의 회귀다. 단순하게는 쓰레기봉투·일회용기에서부터 복잡하게는 자동차·스마트폰까지 플라스틱 없는 현대인의 생활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2024년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정부간협상위원회가 부산에서 열렸으나 플라스틱을 줄이면 생활이 불가능하다며 한사코 반대한 나라들의 반발로 인해 상징적인 ‘부산 협약’ 체결이 무산됐을 정도다.
나프타 공급 차질은 어쩌면 기름값 인상보다 일상 생활에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위기라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그 위기는 우리가 얼마나 플라스틱에 의존하며 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2026-03-29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