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물썰물] 지하댐의 힘
안정적인 물 공급은 도시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물이 부족하거나 오염되면 주민들은 생활용수 부족에 허덕인다. 공장은 시설 가동을 제대로 할 수 없고 농사와 가축 사육도 타격을 받는다. 즉, 물 부족은 도시 기능 마비로 이어진다. 도시 이미지와 지역 경제 추락도 불가피하다. 특히 최근 극한 가뭄이 덮친 강원도 강릉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기한 제한 급수 등의 상황은 재난 상황에 대비, 도시 물 공급 방식을 다원화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강릉의 이번 물 부족 사태도 강수량 감소로 주 취수원인 오봉댐 저수량이 한계 상황에 도달했지만 이를 보완할 뾰족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촉발됐다.
하지만 강릉에 이웃한 속초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기후 여건은 비슷하지만 물 부족 현상을 전혀 겪지 않고 있다. 속초도 예전엔 만성적 물 부족 때문에 갈수기마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2021년 지하댐이 완공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속초 지하댐은 쌍천 지하 26m 지점에 높이 7.7m, 길이 1.1km의 지하 차수벽을 만드는 방식으로 건설됐다. 최대 60만t의 식수를 저장하면서 하루 최대 1만 2500t을 공급할 수 있다. 취수원이 지표수와 지하수로 이원화되면서 물 공급을 안정화했다는 평가다.
강릉 극한 가뭄 사태를 계기로 지하댐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지하댐이란 땅속에 물막이 벽을 만들어 지하수를 모은 뒤 생활용수 및 농업용수 등으로 사용한다. 지상댐에 익숙한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그러나 현재 사우디아라비아가 사막 지하에 댐을 만들어 도시에 용수를 공급하는 등 세계 50여 나라가 건설한 지하댐 형태의 저수시설은 1200여 개에 달한다. 지하댐은 증발로 인한 물 손실이 거의 없는 데다 해당 지역을 수몰시키지 않아 환경 파괴, 주민 이주 등의 갈등을 유발하지 않는다. 모래와 자갈층의 여과 작용으로 수질이 깨끗해 정수 비용이 적게 든다는 등의 장점도 있다. 반면 유지 관리비가 높고 지하수 오염 땐 정화도 어렵다는 점은 단점으로 꼽힌다.
현재 국내엔 1984년 농어촌공사가 경북 상주에 첫 지하댐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6개의 지하댐이 운영 중이다. 경남 통영 욕지도 등 10여 곳에 지하댐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 기후 위기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 괴물 산불에 이어 극한 가뭄까지 우리를 위협한다. 예상치 못한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지하댐 등 수원 다원화 방안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5-09-14 [17:54]
-
[밀물썰물] 벤치클리어링
지난 3일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쿠어스필드에서 일어난 일이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가 소속된 미국프로야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콜로라도 로키스와 맞대결을 펼쳤다. 하지만 이날 경기는 시작부터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 난투극까지 벌어지면서 두 팀에서 모두 3명의 선수가 퇴장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사건은 1회 무사 1루에서 나온 샌프란시스코 라파엘 데버스의 투런 홈런 직후 일어났다. 데버스는 상대 투수 카일 프리랜드를 상대로 우측 담장을 넘기는 시즌 30호 홈런을 기록했다.
타자는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 모습을 잠시 지켜본 뒤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고, 상대 투수는 곧바로 타자를 향해 항의했다. 타자도 1루 베이스를 밟는 과정에서 상대 투수와 언쟁을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 타석 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샌프란시스코의 맷 채프먼이 마운드 쪽으로 돌진해 상대 투수를 밀치면서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다. 샌프란시스코와 콜로라도 선수들이 대거 그라운드로 뛰어나왔고, 격렬한 몸싸움이 난투극으로 번졌다.
벤치클리어링은 야구 등 단체 스포츠에서 우리 팀 선수와 상대 팀 선수가 싸움이 났을 때 벤치에 있던 선수들까지 모두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같이 싸우는 것을 말한다. 말 그대로 벤치를 비운다고 벤치클리어링이다. 18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야구에서 처음 나왔다. 지금은 아이스하키 등 다양한 스포츠에서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벤치클리어링은 상대 선수의 보복성 플레이에 대한 억제나 동료 보호, 팀워크 과시 등 다양한 목적이 있다. 주먹다짐이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서로 밀치거나 언쟁을 벌이는 수준에서 그친다.
야구에서 벤치클리어링 때 불문율이 있다. 도구 사용은 금지된다. 야구방망이 등 야구장에서 사용하는 각종 도구는 엄격히 제한된다. 발로 상대를 가격하는 경우도 금지된다. 야구화에는 미끄러짐 방지를 위해 스파이크라는 아주 뾰족한 게 달려 있는데 부상 등 심각한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벌어진 벤치클리어링은 타자가 담장을 넘어가는 자신의 홈런공을 너무 오래 봤다고 생각한 투수의 항의로 촉발됐다. 투수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는 것이다. 모든 스포츠는 동업자 의식이 필요하다. 상대를 꺾고 이기더라도 존중하는 마음이 깔려 있어야 한다. 벤치클리어링을 묵인하는 이유도 동업자 의식 때문이다. 동업자 의식, 삶에서도 필요하다. 김진성 선임기자 paperk@
2025-09-11 [18:05]
-
[밀물썰물] OMA 눈으로 본 부산
현대 건축의 거장이자 2000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렘 콜하스. 세계 건축계의 중심에서, 그는 단순한 건축가를 넘어 도시와 사회를 읽는 사상가로 자리매김해 왔다. 모더니스트, 해체주의자, 휴머니스트라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지만, 그를 어느 하나로 딱히 규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흔히 ‘건축계의 철학자’로 불린다. 그는 도시를 읽고 시대를 해석하며 공간 너머의 정치와 문화를 사유한다. “도시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래서 흥미롭다”고 말하는 그의 언어는 완벽한 설계보다 열린 상상력에 방점을 찍는다.
콜하스는 1975년 동료 건축가들과 함께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를 설립했다. 현재는 그와 쇼헤이 시게마츠, 크리스 반 두인 등 7명의 파트너가 회사를 공동으로 이끌고 있다. OMA는 로테르담 본사를 비롯해 뉴욕, 홍콩, 브리즈번에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세계 건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동안 OMA는 콜하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도시의 복잡성과 맥락을 반영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여 왔다. 이를테면 미국 ‘시애틀 중앙도서관’과 포르투갈 ‘카사 다 뮤지카’를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OMA가 추구하는 ‘도시와 문화의 만남’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OMA의 철학과 작품이 오는 17일부터 벡스코에서 ‘Busan Style-Culture meets Architecture’를 주제로 열리는 2025 부산국제건축제의 특별전(OMA 건축전·도시전)을 통해 부산에 소개된다. 건축전에서는 ‘광안리 해변’ ‘미포 엣지’를 비롯한 14개의 대표적 문화 프로젝트를 통해 OMA가 건축과 문화를 어떻게 연결하고 확장해 왔는지를 조망한다. 도시전에서는 OMA의 리서치 조직인 AMO가 부산을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물을 선보인다. 특히 경사지 주거 연구 프로젝트는 부산이 지닌 고유한 지형의 잠재력을 새로운 건축적 관점에서 탐구한다.
부산은 평탄하지 않은 지형과 바다, 산이 공존하는 도시 구조를 지닌다. OMA는 이러한 부산의 복잡성과 불균형을 오히려 도시 자산으로 보고 이를 반영한 건축을 제안한다. 관람객들은 OMA가 제시한 다양한 실천과 실험을 이해하는 동시에 부산이 지닌 고유한 맥락을 다시 바라보고 도시와 건축의 미래를 상상하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부산이 정체성을 되새기고, 미래의 도시 방향을 모색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OMA의 시선은 우리에게 묻는다. "어떤 부산을 지어 올릴 것인가?"
2025-09-10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