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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에너지고속도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IT(정보통신)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한 저변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씨를 뿌리고 2020년 12월 완료한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 사업 즉, ‘정보고속도로’ 사업이 있었다. 국가 미래를 내다보고 당시로서는 무모하리만큼 불확실한 미래 먹거리 사업에 과감히 투자한 파이오니어(Pioneer·개척자)이자 국가지도자로서의 혜안이 오늘날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27~29일 사흘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대규모 국제행사인 ‘2025 기후산업국제박람회’에서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고속도로’ 브랜드가 새삼 화두가 되고 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지난 27일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AI)으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에 맞는 전력망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재생에너지 보급을 신속하게 확장하고 ‘에너지고속도로’를 구축하려는 이재명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비롤 사무총장은 2035년까지 전력 사용량이 현재의 6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많은 국가들이 에너지고속도로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발전소만 짓고 실제로 그것을 이어주는 고속도로(전력망)를 간과하곤 한다”며 “전력망을 더 집중적으로 건설하고자 하는 한국 정부의 노력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에너지고속도로는 이재명 정부 재생에너지 정책의 핵심 사업이다. 서해안 중심의 해상풍력 20GW를 수도권 산업 중심지로 송전하고, 2040년까지 남해안과 동해안을 포괄하는 ‘U자형 한반도 에너지고속도로’를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고속도로’ 역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미래 먹거리 사업이다. 하지만, 당위성은 충분하다. 정책은 타이밍도 중요하다. 현재 한반도에 깔려 있는 전력망은 대형 화력발전, 원자력발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늘어나는 재생에너지·분산전원에 적합하지 않다. 노후화도 심한 상태다. 특히 지역수용성 문제 등으로 국가 송배전망 확충 사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호남지역에서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남아도는 반면에 수도권은 전력난이 심각하다. 박정희 시대에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한 산업화 고속도로를 띄워 산업화를 이뤘고, 김대중 대통령 때 정보고속도로를 깔아 지금의 IT 강국이 된만큼, 이제는 지능형 전력망인 에너지고속도로를 대대적으로 깔아 전국 어디서나 풍력발전, 태양광 발전 등 재생에너지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2025-08-2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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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RTD 커피
RTD(Ready-to-Drink) 음료는 곧바로 마실 수 있게 병이나 캔, 팩 등에 담아 파는 음료를 뜻한다. 가루나 알갱이 형태로 나오는 인스턴트 제품과는 달리 재료를 직접 우리거나 달이거나 용기에 붓는 따위의 별도 과정 없이 마실 수 있다. 비교적 최근 개발된 것이라 여기기 쉽지만 최초의 RTD 음료 등장은 189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반적으로는 미국의 한 독일 이민자 집안에서 클럽 칵테일이라는 이름으로 주문을 받기 전에 미리 혼합해 놓은 칵테일을 병에 넣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RTD 음료의 시초로 본다. 바텐더의 현란한 칵테일 제조 과정을 볼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즉각 마실 수 있는 편리함에 소비자들은 환호를 보냈다.
주류에서 시작한 RTD 음료의 개발은 이후 나라를 옮겨 다니며 온갖 브랜드의 RTD 칵테일을 탄생시킨 이후 커피로 이어진다. 1950년대 후반 일본의 도야마식품이 캔에 커피를 담아 시험 생산한 것이 RTD 커피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밋밋한 시장 반응으로 인해 한동안 맥이 끊긴 RTD 커피는 1969년 UCC사가 우유를 섞은 RTD 커피를 생산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이듬해 오사카 엑스포에서 무료 시음을 실시하자 주문 폭증으로 대박이 터졌다. 맛과 편리함을 다 잡은 게 주효했던 것이다. 이로써 최초 캔커피 개발 기업이라는 타이틀은 UCC에게 돌아갔다. 이후 일본에서만 판매량이 1980년대 한 해 1억 개, 1990년대 한 해 3억 개를 넘어설 정도로 RTD 커피는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에서 RTD 커피가 본격적으로 첫 선을 보인 것은 1986년 동서식품이 맥스웰하우스 캔커피를 출시한 때로 알려져 있다. RTD 커피는 이제 국내에서도 시장 규모만 한 해 1조 5000억 원대로 추산될 만큼 커피 유통의 파이를 키웠다.
부산시가 다음 달 16일 ‘부산은 커피데이’ 행사에 맞춰 부산형 RTD 커피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최근 내놓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산형 RTD 커피 개발 관련자 면면도 화려하다. 각종 국제 커피 관련 콘테스트에서 챔피언을 차지한 부산 출신 바리스타들과 부산경남우유협동조합, 대형 유통업체 등이 개발과 제조, 유통의 세 측면을 나눠 맡는다.
1884년 9월 16일 국내 최초 커피 음용 기록이 있는 도시 부산. 이를 기념하기 위한 커피데이에 선보일 RTD 커피가 부산을 진정한 커피도시로 매조지는 상징물이 되길 기대한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2025-08-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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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균형발전 노답?
프랑스는 지방분권이 가장 잘 이뤄진 나라로 알려졌다.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어촌의 격차가 크지 않고 국토가 균형발전하는 모범 국가로 소개된다.
프랑스는 절대 왕정 시대부터 지방의 봉건영주들을 견제하기 위해 강력한 중앙집권을 추진했다.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제정시대를 거쳐 중앙정부가 중심이 되는 권력구조를 완성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지방으로 이전하자는 여론이 커졌고, 2차 대전 이후엔 국가 재건의 수단으로 지방분권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1964년 집권한 드골 정부가 추진한 분권 정책은 1981년 미테랑 정부 때부터 법제화됐다. 4년 동안 무려 20여 개의 분권 관련 법률과 200여 개의 시행령이 만들어졌다. 2003년 시라크 정부는 “프랑스는 지방분권적으로 구성된다”는 조항을 헌법 1조에 추가해 지방분권을 국가 조직의 원리로 명문화하고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을 강화했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프랑스 대도시의 인구는 고만고만하다. 구글 AI 검색에 따르면 프랑스 5대 도시 인구는 파리 210만 명, 마르세유 87만 명, 리옹 52만 명, 툴루즈 49만 명, 니스 34만 명 등이다. 670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전국 곳곳에 골고루 흩어져서 산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오는 30일 부산을 찾는다. 〈개미〉, 〈타나토노트〉, 〈나무〉 등의 소설을 쓴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이번에 자신의 신간 소설과 연계한 음악회에 참석한다.
공연에 앞서 베르베르를 만날 기회가 있어 작심하고 수도권 집중 문제를 물어봤다. 프랑스의 현실이 부러워서였다. 한국의 제2 도시 부산은 인구 유출이 심하고 일자리가 줄어들어서 힘들다는 하소연도 함께 전했다.
그런데 베르베르의 답변은 의외였다. 그는 자신이 툴루즈 출신이라고 소개하면서 “프랑스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인데 거기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면서 “뭔가를 하려면 파리로 가야 한다”고 딱 잘라 말했다. 베르베르는 “파리에 모든 게 집중돼 있다.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인데 수도가 청년들의 에너지를 다 끌어들인다. 어떤 국가든 수도권으로 문화적 이벤트가 몰리는 건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국가가 발전하면 특정 지역으로의 쏠림은 불가피한 것일까. 베르베르도 답답해 하듯 수도권 집중 문제의 해법은 없는 것일까.
2025-08-26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