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전역~청량리·강릉 운행 확대… 복합환승센터 무르익는다
부전역에서 서울 청량리를 오가는 중앙선과 강원도 강릉을 잇는 동해선 구간에 연말까지 KTX-이음 열차가 증편·신규 투입된다는 소식이다. 청량리행은 하루 왕복 6회에서 18회로 대폭 증편되고, 강릉 노선은 ITX-마음보다 1시간여 빠른 KTX-이음이 달리게 된다. 이는 부전역이 중앙선·동해선·도시철도가 교차하는 광역 교통망 요충지의 입지가 굳어지고 승객이 급증하면서 단순 환승 기능을 넘어선 허브 역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전역이 상전벽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보조역’이라는 과거의 관념 탈피는 더디기만 하다. 부전역의 지위 격상에 걸맞은 복합환승센터 추진은 이제 더 이상 지연되어서는 안 된다. 부전역 수요의 구조적 성장과 연결망에서 차지하는 지위의 상승 추세는 확고하다. 올 10월까지 이용객(88만 5000명)은 지난해 전체(49만 명)의 1.8배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중앙선·동해선에 이어 부전마산선까지 개통하면 현재 부전역사의 수용 능력에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교통 혼잡·안전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순한 철도 환승 공간을 넘어서 부전역과 연계되는 시내 교통 인프라인 도시철도·버스·보행 동선까지 고려한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 부산 시민 40만 명이 복합환승센터 추진을 요구하는 서명에 동참했다. 선제 대응이 필요한 때이지만 중앙 정부의 결단은 여전히 더디다. 부전역은 남해안의 경전선(부전마산선)과 동해안의 동해선을 잇는 U자 형태 국가 철도망에서 결절점 역할을 맡고, 동시에 수도권(청량리)까지 종횡무진하는 중심축이다. 여기에 이동 시간 단축과 노선 확장이라는 양적 변화를 거듭하면서 명실상부한 사통팔달의 요지로 변모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 자체의 수용 능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나아가 역사와 연계된 도심의 교통 혼잡과 주차난, 안전 문제를 해소하는 한편 상업·관광 시설과 휴식 공간이 어우러지는 게 필수다. 도시 계획 차원에서 교통 시설과 주변 공간을 통합·재편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여기에 방향성의 공론화에 이은 신속한 집행이 요구된다. 이번 부전역 KTX 증편은 부산의 도시 공간을 재편하는 계기로 삼아야 의미가 있다. 보조역이 아닌 도시 발전의 중심축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부산시는 부전역 일대의 교통 전략, 상권 활성화 계획, 도시재생 사업을 복합환승센터 중심으로 통합·재구성해서 정부 설득에 나서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복합환승센터에 대해 제5차 광역교통시행계획(2026~2030년) 반영을 검토하는 중이다. 국토부와 부산시 모두 부전역 성장 속도에 뒤처져 적기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승객도 증가하고, 열차 운행도 느는데 도시 인프라만 과거에 머무르게 방치한다면 시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행정이 결단과 실천으로 답해야 한다.
[사설] '내란 2차 특검'은 되고 '통일교 특검'은 안 된다는 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이 야권이 요구한 통일교 의혹 특검을 거부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14일 특검 요구는 “판을 키우려는 정치공세”라며 일축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통일교 특검에 입을 닫고 있다. 이런 민주당의 태도에 야당은 “여당무죄, 야당유죄라는 노골적인 정치 편향”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특검을 ‘권력 비리를 밝히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규정하며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해 왔다. 민주당은 내란·김건희·순직해병 사건을 묶은 3대 특검을 강행했고 미진하다며 2차 종합 특검까지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 정당이 통일교 특검 앞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내로남불적 태도다. 민주당의 논리는 경찰 수사가 시작됐고, 핵심 증언자인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진술은 번복돼 근거가 약하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이 논리는 옹색하다. 특검의 본래 취지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특검은 ‘의혹이 충분히 정리된 뒤’ 도입되는 제도가 아니라, 기존 수사 체계로는 공정성과 독립성에 의문이 제기될 때 가동되는 예외적 장치다. 더구나 경찰은 이미 전·현직 정치인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나아가 경찰이 민주당 출신과 국힘 출신 인사를 함께 피의자로 입건한 사실도 민주당의 정치공세 주장과 맞지 않는다. 윤영호 전 본부장의 진술은 번복됐지만, 그렇다고 의혹이 소멸한 것은 아니다. 진술의 신빙성 여부야말로 특검을 통해 가려야 할 문제다. 민주당은 “혐의가 드러나면 누구든지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정치의 신뢰는 사후 결단이 아니라 사전 제도로 확보된다. 민주당은 그동안 특검을 정의와 개혁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 왔다. 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연내 처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와 비교하면, 통일교 의혹에 대한 소극적 대응은 이중 잣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검을 둘러싼 최근의 혼란 역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민중기 특검의 편파·과잉 수사 논란 등은 특검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를 흔들고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정치권은 감정적 대응이나 진영 논리를 앞세우기보다 원칙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통일교 의혹은 특정 정당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 단체의 조직적 정치권 로비 의혹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안이다. 경찰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현직 정치인들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통일교 측에서 금품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본인들을 위해서라도 국민이 중립을 인정할 수 있는 특검에 의해 진상이 규명되는 것이 옳다. 민주당이 다른 사건에서 수없이 강조해 온 ‘기존 수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논리가 왜 이 사안에서는 적용되지 않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럴때일수록 더 엄정하게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는 게 여당의 자세다. 내란 특검은 되고 통일교 특검은 안 된다는 민주당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설] 전재수 전격 면직, 해양 컨트롤타워 공백 해소 시급하다
부산시가 해양 수도를 선포한 건 지난 2000년 12월 18일이다. 25년간의 염원은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사무실 이전에 착수하고, 임시 청사 개청식 준비에 돌입하면서 드디어 가시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해양 수도를 향해 순항하던 부산에 거대한 쓰나미가 닥쳤다.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이 제기되자 전재수 해수부 장관이 급거 사의를 표명했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를 수용했다. 설상가상으로 이영호 대통령실 해양수산비서관이 공직 기강 문제로 면직되면서 해수부 이전과 북극항로 개척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공백 사태를 맞았다. 해양 정책의 동력 실종과 지연이 우려되는 점이 뼈아프다. 해양 수도 도약의 결정적 전환점을 맞이해 가속도를 붙이려던 부산은 느닷없이 암초를 만나 발목을 잡힌 형국이다. 이 사태는 단순한 인사 문제를 넘어 해양수산 정책 전반을 마비시키거나 파행시킬 가능성에 심각성이 있다. 사령탑 부재로 해운기업의 집적 추진, 특히 해운 대기업 HMM의 부산 이전 로드맵 발표가 불투명해졌다. 12월 말로 예정된 임시 청사 개청식과 대통령 업무 보고 일정은 조정이 가능한 사안이지만, 북극항로 개척을 진두지휘했던 ‘선장’이 갑자기 하선한 여파는 간단히 수습되기 어렵다. 공석이 장기화될 경우 해수부 이전 효과로 힘을 키우던 ‘부산 구심력’에 제동이 걸리는 결정타가 될 수도 있다. 정부는 국정 과제 추진과 인사 시스템 신뢰 훼손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장관·비서관급 인사 검증 부실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책의 연속성과 윤리적 리더십에 수긍이 가는 신속한 후속 인사만이 국민적 실망감을 달랠 수 있다. 특히 차관 대행 체제의 해수부가 장관이 없다는 것이 핑계가 되어 주요 정책 사업이 공회전 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부산을 중심으로 해양 경제권을 구축해서 수도권과 함께 국가 성장을 주도하는 양대 축으로 키우는 비전은 지역 현안이 아닌 국가 미래 전략의 일환이다. 정부는 북극항로 개척·해운업계 집적·해양 기관 재배치의 중단 없는 추진을 보장해야 한다. 부산시는 2028년 한국에서 개최되는 유엔해양총회 유치를 선언했다. 해양 분야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 개최지는 당연히 글로벌 해양 수도를 자부하는 부산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2040 월드엑스포 재유치 검토 등 부산은 해양 수도라는 도시 브랜드를 앞세운 미래 전략을 세우고 실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첫걸음이 해수부 부산 이전과 북극항로 개척 등 정책 사업이다. 그런데 해양 시대가 본격화되려던 찰나에 컨트롤타워에 변고가 발생했으니 부산 시민들은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정부는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부산 시민들의 절박한 심정에 화답해야 한다. 신속한 후속 인사와 중단 없는 정책 추진이 해답이다.
샘터 무기한 휴간
잡지는 특정한 주제를 둘러싼 사상과 경험, 기록과 창작을 한 호 한 호 엮어내며 시대의 호흡을 저장한다. 이에 잡지 발행인은 경영자이면서 시대를 기록하고 사유의 방향을 선택하며 그 선택의 무게를 감당하는 존재였다. 특히 어떤 기사를 싣고 어떤 필자를 전면에 세울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곧 독자의 사유 지형을 형성하는 행위이기도 했다.월간 〈샘터〉는 1970년 4월 김재순 전 국회의장(1923∼2016)이 “거짓 없이 인생을 걸어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정다운 마음의 벗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창간했다. 작지만 단단한 잡지였다. 가난했던 시절, 글로써 국민에게 희망을 건넸다. 병원과 관공서, 군대의 한켠에서,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의 무료한 시간을 견디게 해준 매체가 바로 〈샘터〉였다. 어렵고 힘들었던 1970년대, 마른 땅의 샘물 같은 존재였다고나 할까.〈샘터〉의 지면에는 피천득, 최인호,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등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과 명사의 글이 실렸다. 단정한 문장과 고요한 사유가 이 잡지를 거쳐 독자에게 닿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은 이곳에서 기자로 일하며 글의 근육을 다졌고, 장욱진과 천경자 같은 거장들은 기꺼이 표지와 삽화를 그려주었다. 한때 월 50만 부까지 팔릴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종이를 통해 오간 위로와 공감의 밀도였다.그 〈샘터〉가 2026년 1월호(통간 671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 마지막 호는 이달 24일 발간된다. 안타까운 휴간은 2019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당시에는 독자의 자발적 기부와 기업 후원 등으로 간신히 고비를 넘겼다. 지금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읽는 매체가 종이에서 디지털로 급격히 옮겨가면서 독자는 급감하고, 종잇값과 인쇄비 등 제작비는 치솟아 잡지 발행이 쉽지 않은 환경이 됐다. 그럼에도 신문, 잡지, 단행본 등 물성을 지닌 매체들이 하나둘 설 자리를 잃어가는 풍경은 너무나 안타깝다. 그래서 〈샘터〉의 휴간 소식은 더욱 마음을 허전하게 한다.우리가 잃는 것은 한 권의 잡지가 아니다. 느리게 읽는 시간, 타인의 삶에 귀 기울이는 태도, 문장이 남기는 잔향 또한 함께 사라질 위험에 놓여 있다. 〈샘터〉의 휴간이 부디 끝맺음이 아니라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이길 바란다. 50년, 100년…. 오래된 것은 결국 보석이 된다고 했다. 종이가 밀려나는 시대에도 잡지는 여전히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이 다시 우리 앞에 놓이는 날을 기다린다.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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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보행자의 죽음을 학습하지 않는 사회
횡단보도를 걸을 땐 주위를 두리번대는 습관이 생겼다. 달리는 자동차를 믿기 어려워 생긴 경계심이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뉴스 속 횡단보도 보행자 사망 사고에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지난 7월, 회사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20대 딸을 잃은 어머니였다. 딸은 올해 5월 울산공항 인근 횡단보도에서 우회전하는 시내버스에 치여 숨졌다. 녹색 보행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딸을, 우회전 일시 정지 의무를 어긴 버스가 덮친 것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딸은 특수교사 꿈을 이뤄 울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했다. 올해 12월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사고 기사 몇 줄로만 남아 버린 딸을 이렇게 하늘로 떠나 보내기엔 너무나 억울하다”며 “더 이상 허망한 죽음이 없어야 한다”고 울먹였다. 그러고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우회전 일시 정지 위반에 따른 보행자 사망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법률 제정에 관한 청원’을 게시했다며, 언론의 관심을 간절히 부탁했다. 사고만 없었다면 딸은 아름다운 12월의 신부가 됐을 터였다. 뉴스를 검색해 보면, 우회전 차량에 의한 보행자 사망 사고는 줄을 잇는다. 지난 8일 경기 안양시에서는 보행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이 우회전하던 통학버스에 치여 숨졌다. 지난 9월 29일에도 경남 창원시에서 보행 신호를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던 20대 여성이 덤프트럭에 치여 생명을 잃었다. 보행자들이 무엇보다 안전해야 할 횡단보도에서 안타깝고 허망한 사고가 잇따르며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지만, 그 원인을 운전자의 부주의로만 치부하기에는 뭔가 개운치 않다. 보행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며 개정된 법이 현실과 괴리돼, 오히려 운전자와 보행자의 혼란을 키우고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7월 개정된 도로교통법은 우회전 차량의 보행자 보호 범위를 ‘통행하고 있을 때’에서 ‘통행하려는 때’로 확대했다. 2023년 1월부터는 전방 차량 신호가 적색이면 우회전 차량은 반드시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지해야 한다. 도로 접속 지점에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밖에 없는 교통 신호와 도로 체계를 감안해, 우회전 시 발생할 수 있는 보행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우회전 방식은 운전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사고 예방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법 시행 이후 부산에서 발생한 우회전 차량 사고 건수와 인명 피해가 오히려 늘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실제로 우회전 시 운전자가 고려해야 할 상황은 지나치게 많다. 횡단보도가 몇 개인지, 각 횡단보도에 어떤 신호가 들어오는지, 보행자가 있는지, 걸으려는 움직임이 있는지, 녹색 화살표 신호가 있는지 등 경우의 수가 끝도 없다. 바뀐 법이 시행된 지 2년여가 지났지만 이를 정확히 숙지하고 지키는 운전자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보행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라도 길을 건너거나, 건너려는 보행자가 있으면 차량이 반드시 일시 정지해야 하지만, 이를 아는 운전자도 거의 없다. 전문가들까지 나서 규정 간소화를 지적하는 이유다. 보행자 보호와 교통 흐름을 동시에 고려하다 보니 현장과 동떨어진 ‘기형적 규정’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법 개정 초기 일시적 계도와 홍보에 그쳤고, 복잡한 규정을 현장에서 정착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은 부족했다. 강력한 단속에 나서기가 부담스럽다면, 꾸준한 계도라도 필요함에도 말이다. 2년 넘도록 달라진 우회전 통행법이 현장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 이제는 실효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받아들이고, 복잡하고 난해한 우회전 통행법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바꿔야 한다. 우회전 차량이 차량·보행 신호와 관계없이 횡단보도 앞에서 무조건 일시 정지하도록 하고, 횡단보도에 보행 신호가 들어와 있거나 보행자가 있는 경우, 보행 신호가 끝나거나 보행자가 길을 다 건널 때까지 차량이 무조건 멈춰 있도록 하면 운전자의 혼란이 줄고, 보행자 사망 사고도 줄일 수 있다. 교통 흐름에 영향이 있겠지만, 생명보다 중요한 건 없다.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후배는 미국의 우회전 방식이 우리나라와 너무 달라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우회전 도로에서 빨간색 스톱(STOP) 교통 표지판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표지판 앞에서 3~5초가량 멈춰 서 있지 않으면, 경찰이나 단속 카메라에 적발돼 꽤 많은 벌금을 문다고 했다. 3~5초가 보행자의 생명을 지키는 ‘골든 타임’인 셈이다. 우리 사회와 정부도 더 늦기 전에 횡단보도 위 안타까운 죽음들로부터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노트북 단상] 백화점이 사라지는 자리에
기사가 보도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지역 커뮤니티는 여전히 뜨겁다. 롯데백화점 동래점이 3990억 원에 매각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SNS에서는 관련 소식이 넘쳐난다. ‘대형 호재가 터졌다’ ‘무슨 하이엔드가 들어설지 기대된다’는 식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롯데백화점 동래점은 롯데쇼핑이 이미 2014년에 사모펀드 운용사인 캡스톤자산운용에 매각했다. 이번 매각은 캡스톤이 다른 시행사에게 부지를 넘긴 것으로, 임대차 문제 등으로 매각이 완전히 종료되지는 않아 새 시행사의 윤곽을 밝히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롯데백화점은 2034년 12월까지 영업이 보장돼 있어 백화점이 당장 문을 닫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업계는 새 시행사가 이 부지를 초고층 주상복합으로 개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부산의 다른 여러 시행사들도 주상복합 개발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부터 꾸준히 동래점 부지 매입을 검토해왔다. 다만, 임대 계약 조건이나 침체된 지역 부동산 분위기 등을 감안해 실제 매입에 나서지는 않았다고 한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자리에 주거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동래점 역시 유사한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소규모 백화점이라 하더라도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늘도 밥벌이를 하고 있다. 모든 직원이 양질의 일자리를 가졌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역 경제의 버팀목 중 하나다. 백화점 주변 상권까지 포함하면 두말할 나위 없다. NC백화점 서면점, 메가마트 남천점, 홈플러스 연산점 등 지난 5년간 문을 닫은 부산 소재 대형 판매점은 6곳에 달한다.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이런 자리엔 어김없이 초고층 아파트나 주상복합 개발이 추진된다. 매출이 저조한 일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계속해서 매각 물망에 오른다. ‘용도 제한만 풀리면 주상복합으로 개발한다’는 이들이 늘 주시하고 있다. ‘노인과 바다, 그리고 아파트’라는 부산의 수식어가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다. 부산 유력 건설사들은 해안가나 중심 상권지에 노른자위 땅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 대부분은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거나 용도 변경만 가능해지면 이 땅들을 초고층 아파트로 개발하려고 한다. 적기가 오기만을 잠자코 기다리는 것이다. 사모펀드나 사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뭐라 할 수는 없다. 안타깝지만 초고층 아파트를 지어 평당 수천만 원에 분양하는 사업이 가장 큰 이윤을 보장한다. 적어도 부산에서는 그렇다. 그렇다고 이를 두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한다면, 부산의 도시 경쟁력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 부산시가 중심을 잡고 도시의 설계를 총괄해야 한다. 성장하는 도시에는 아파트 대신 창업 센터나 연구 단지,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공간이 들어선다. 기업이나 금융기관 유치에도 사활을 건다. 부산의 현실은 암담하다. 첨단 업종을 집중 유치한다는 해운대구 ‘센텀2지구’ 개발 사업도 인근 아파트들의 부동산 호재 정도로 인식된다. 결국은 센텀2지구에도 주거단지가 적잖게 들어설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개발 사업이라면 일단 아파트부터 짓고 보기에 어쩌면 시민들의 이런 반응이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 백화점이 사라지는 자리에 도시 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앙로365] 국민시집 '진달래꽃' 100주년과 문화기억
다가오는 26일은 한반도를 대표하는 시인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 세상에 나온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소월은 서른 둘의 짧은 인생에서 이 시집 한 권만을 남겼다. 국민 애송시 1위로 자주 꼽히는 시 ‘진달래꽃’과 시집 이름이 같다. 그만큼 그는 강한 생명력의 진달래를 사랑하였다. 그래서 한반도인이라면 남쪽에 살든 북쪽에 살든 누구나 “소월” “소월”한다. 시집에는 본인이 고른 시 127편이 실려 있다. 시 ‘여수(旅愁)’가 목차에선 ‘여수 1’ ‘여수 2’로 구분되어 있고 본문에선 두 연으로 이뤄진 한 편의 시로 되어 있어서 126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시집은 한성도서와 중앙서림 총판 본을 합쳐 오늘까지 총 3종 4점이 발견되었는데, 한국 문학은 이 책 한 권 덕분에 올해 말로 근대 시 100년이라는 기념비적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가 저물어 넘어가는 데도 대한민국은 조용하다. 북녘땅도 조용하다. 소리가 났다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7월 취임하면서 “남과 북이 ‘진달래꽃’ 100년 행사를 같이하자”라고 제안한 것과 경기도 고양의 한 문학 단체와 부산의 어느 성악가 그리고 우리 국제 소월협회가 조촐한 기념행사를 자체적으로 가지는 것, 그게 전부인 듯하다. 26일 김소월 시집 출간 100년 되는 날 근대 시 기념비적 경사 국내선 조용 '한국 문학 아버지'에 대한 대우 빈약 러시아 푸시킨 기리는 동상 즐비 한국 근대문학·근대정신 일군 선각자 기억하고 전승해야 새로움 창조 가능 소월은 러시아로 치면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알렉산드르 푸시킨이다. 푸시킨은 시집 한 권이 아니라 시, 희곡, 소설, 동화, 역사 등 여러 분야에서 숱한 책을 남겼기 때문에 어느 특정 작품의 100주년이나 200주년을 따로 기념하진 않는다. 다만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전국에 300여 개의 동상이 서 있고, 푸시킨 문학관만 해도 곳곳에 18개나 있다. 그에 대한 기억은 푸시킨 시(市), 푸시킨 거리, 푸시킨 명칭의 대학, 푸시킨 공원, 푸시킨 미술관 등으로 이어져 사람들의 일상을 채우고 있다. 반면에 소월에 대한 우리의 대우는 너무 빈약하다. ‘한국 문학의 아버지’라고 하면서 부산 황령산에 ‘진달래꽃’ ‘초혼’ ‘못 잊어’ ‘엄마야 누나야’ 등 시비 10기가 서 있고, 서울 남산에 ‘산유화’ 1기, 황령산의 ‘김소월 시와 함께하는 길’, 남산 주변의 ‘소월로’, 이게 소월에 대해 우리가 지닌 ‘문화기억’(cultural memory)의 전부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문화기억이란 공동체의 형성과 계승 발전에 영향을 끼친 주요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을 의미한다. 러시아의 문헌 학자이자 문화재 보호 활동가였던 드미트리 리하초프(1906~1999)는 ‘기억의 예술과 예술의 기억’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화사란 사람의 기억 역사를 말하는 것이고, 기억의 발전사 및 기억의 심화와 완성의 역사이다. 기억을 통하여 지각과 창조의 미학적 수준이 발전하는 것이며, 지식이 만들어진다. 기억은 시간이라고 하는 파멸적인 힘에 정면으로 맞서며, 문화라고 불리는 그 무엇들을 축적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기억이란 시간의 극복, 죽음의 극복이다. 여기에 기억의 도덕적 의의가 들어있다.” 이 경구를 우리의 현실에 대입하여 보면, “소월 시인을 이렇게 잊어버리고 집단으로 기억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문화사, 새로운 창조와 발전, 한국의 미학, 한국의 도덕을 정립하고 이어가기 힘들 것”이라는 경고로 들린다. 푸시킨의 생일 6월 6일은 ‘러시아어의 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생일이 우리의 한글날인 셈이다. 자유 정신과 근대의 표상으로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의 중간에 서서 살아있는 민중의 언어를 문학에 도입하고, 문법과 문체 등에서 러시아어의 표준규범을 확립한 작가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날 러시아 전역에선 각지의 푸시킨 동상 밑에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 푸시킨의 시를 낭송한다. 우리의 소월도 전통에 발을 디디고 자유와 단절의 근대를 열어갔다. 고어와 방언, 구어체 등 민중의 언어를 문학 안으로 끌어들여 한국어의 표준체계를 새롭게 했다. 슬픔과 부재를 통하여 반대로 생명과 환희를 지향하고. 아이러니와 자연 표상, 복합기호의 광범위한 활용 등으로 한국의 근대문학을 일군 선각자이다. 소월로부터 출발한 한국 근대문학 100주년은 한국 근대정신 100년사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봉건사회와 남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잇달아 이뤄내, 세계 10위권 안팎의 ‘알아주는’ 나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물질적인 성장에 스스로 도취하여 정신과 문화를 소홀히 하는 건 아닌지, 자신을 뒤돌아볼 시점이 아닌가 한다. 진정으로 부강한 나라와 부유한 국민은 경제적으로 윤택할 뿐만 아니라 같이 기억하고 전승하며 새로움을 창조해나갈 그런 문화기억이 충만한, 다른 차원의 나라와 국민일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국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추진 논란
정쟁이 끊이질 않는 정치권에 최근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다.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내란이 헌정질서를 위협한 중대 범죄인 만큼 기존 사법 시스템만으로는 국민적 의혹과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다며, 내란 사건을 전담할 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에 반발하는 진영과 법조계 일각은 “사법부를 특정 사건에 맞춰 재편하는 위험한 선례”라며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민주당은 사법 불신 해소와 신속한 정의를 내세운다. 내란죄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전복하려 한 범죄로 현재 재판이 장기화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전담재판부를 두면 내란 관련 사건을 한 재판부가 집중 심리하고, 쟁점 정리와 증거 판단을 일관되게 하며 불필요한 지연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국민의힘 등 반대 진영에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의 독립성과 법관의 자연적 배당 원칙은 사법 신뢰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정치적 파급력이 극도로 큰 사건을 위한 별도의 재판부를 설치하는 순간, 사법부는 정치적 요구에 따라 구조를 바꾸는 기관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내란이라는 단어 자체가 강한 정치성을 띠는 만큼, 전담재판부는 출범과 동시에 공정성 논란과 결과 예단 논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내세운다. 최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이 드러났다. 여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와 법 왜곡죄 도입에 대해 전국 법관 대표들이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하며 “사법개혁 논의에 법관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했다. 회의에 참석한 법관들 다수는 “사건의 중대성만으로 재판부 신설을 정당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이미 현행 사법체계 안에는 합의부, 전문재판부, 대법원 전원합의체 등 중대하고 복잡한 사건을 다룰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최근 열린 대법원 공청회에서도 이런 우려가 적지 않게 제기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11일 대법원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1년이 지났는데 내란 재판이 한 사건도 선고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별법이) 처분적 법률(특정한 개인이나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법)이라고 곧바로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배당에 관해서 외부 인사가 관여하는 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법원이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해 특별법 제정의 계기를 없애는 것이 왕도”라고 말했다. 내란 전담재판부가 예외적으로도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의견을 낸 참석자들도 있었다. 정지웅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은 “내란 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사법부는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재판부를 만드는 정치적 하청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강하게 우려했다. 정 위원장은 “특정 정치적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 입맛에 맞는 특정 성향의 판사들로 구성된 전담 재판부를 만든다면, 그 재판부에서 내려진 판결을 과연 국민들이 공정한 법의 심판으로 받아들이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패소한 쪽에서는 정치적 판결이라면서 불복할 것”이라며 “사법 불신을 넘어서 국론 분열의 새로운 기폭제가 될 것”이라 지적했다.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만약에 내가 재판 당사자가 됐을 때, 사건 배당에 어떤 외부 인사가 관여하거나 정치권의 입김이 들어오는 어떤 특정 판사가 담당한다면 그것에 승복할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란 전담재판부 안은) 구체적인 시행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기보다는 현 재판부에 대한 압박용, 경고용 이런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라며 “내란 재판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법 앞의 평등과 정해진 절차에 사법이 이루어진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제도는 한 번 정치의 언어에 포획되면 회복이 쉽지 않다. 이번엔 내란 사건이지만, 다음엔 또 다른 ‘중대 사건’에 대해 같은 논리로 특별한 재판부를 요구할 수 있다. 이러한 선례는 결국 사법의 일반성과 예측 가능성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정의는 속도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절차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 정의는 또 다른 갈등을 낳을 뿐이다. 내란전담재판부 논의는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 당위가 아니라 헌법적 기준에서, 지금의 욕구가 아니라 장기적인 사법 신뢰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오션 뷰] 신먼로주의가 부산에 던지는 메시지
신뢰는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 토대인 ‘사회자본의 핵심요소’라고 로버트 퍼트넘(Robert D. Putnam)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명예교수가 자신의 저서에서 강조한 바 있다. 사회적 신뢰가 높을수록 경제 안정성과 성장, 그리고 민주주의의 성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뜻인데, 신뢰의 중요성은 개인이든 사회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이재명 정부는 국가 비전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내걸었고 출범 직후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공약했다. 그 약속은 지난 9일 첫 이삿짐이 부산에 도착하는 것으로 지켜졌다. 필자도 해수부 이삿짐이 부산 동구 수정동 임시청사에 도착하는 순간을 직접 목격했다. ‘신뢰’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지를 다시 확인했다. 이제 부산이 화답해야 한다. 해수부라는 정부 기관의 이전을 부산의 사회자본으로 만들어서, 이른바 ‘노인과 바다’로 불린 자조의 도시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 사회자본이 해양수도를 넘어 세계의 해양 중심으로 우뚝 서는 동력이 돼야 한다. 시작은 부울경이 함께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아니라 ‘해수부의 부울경 이전’이 맞다. 정부 청사 이전 효과를 부산은 물론이고 울산과 경남이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울산의 조선업은 물론이고 경남의 양식, 해양플랜트, 해양바이오 산업 등이 고도화될 기회다. 지역의 목소리와 현장 상황이 세종이나 서울에 해수부가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르게 반영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7일 ‘2025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했다. 국제 규범과 다자주의 대신, 미국의 국익과 주권 보호에 초점을 맞춘 ‘전략적 실용주의’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으로 이해된다. 세계 경찰의 종료이며 ‘신먼로주의’의 대두라는 해석도 있다. 미국이라는 국제 경찰이 북한 핵 위협에 대한 비용을 우리에게 전가한 것은 물론이고 동맹국으로서 중국을 견제하라는 함의도 담겼다. 이에 대해 일본이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달 7일 중의원에서 대만 유사시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이는 곧바로 중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동북아의 화약고로 불리는 대만해협 문제에 그가 너무 깊게 반응하면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을 삼가도록 했고 중국 항공사는 일본행 항공편을 줄줄이 취소했다. 심지어 오랫동안 양국 우호의 상징처럼 각인된 상하이-오사카 여객선 운항도 지난 6일 갑자기 중단됐다. 이들 일련의 사건이 중일 간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체감도가 다르다. 팬스타그룹처럼 동북아 바다를 연결하는 국제 해상수송 업체는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 걱정부터 앞선다. 모든 화근은 신먼로주의로 연결되는 것 같다. 미주대륙의 패권을 유지하고 중국을 포함한 외부 세력의 개입을 차단하려는 고립주의 외교정책인 신먼로주의는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유럽의 미주대륙 간섭을 거부한 ‘먼로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신먼로주의가 지금 동북아 바다에 새로운 갈등을 야기하고 얄궂은 경계선을 긋고 있다. 중국의 잇따른 도발에 대한 일본의 도움 요청도 미국은 그 경계선을 가리키며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중일 갈등은 동북아 안보 환경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이 동북아 바다에서 언제, 어떻게 충돌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혼돈의 바닷속에서 끊임없이 요구되는 것은 ‘카오스의 지혜’다.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기 직전의 대혼란을 카오스라고 한다면 카오스의 지혜는 그 혼돈과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방향과 해법을 찾는 노력을 의미한다. 각국의 다양한 선택과 견해를 인정하고 경청할 수 있는 국가는, 그래서 어쩌면 대한민국일 수 있다. 세상의 이치가 늘 예측한 대로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대한민국은 협력과 상생의 바다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역량과 능력을 가졌다고 본다. 위기는 늘 기회로 반전됐고, 지금의 동북아 위기도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북극항로를 포함해 새로운 의제가 계속 생성되고 있는 동북아 바다에서 우리는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해수부의 부울경 이전은 그래서 더 시의적절했다. 2025년이 저물고 있다. 부산 경제 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될 해수부와 함께 맞이하는 2026년이 이제 보름도 남지 않았다. 새해부터 시작되는 해수부의 부산 시대를 기대한다.
[공감] 겨울은
빈손으로 터덜터덜 걷는 사람에게 겨울은 냉담하다. 가난한 밥상 앞에서 우는 사람에게 겨울은 비정하다. 차가운 방에서 잠들어야 하는 사람에게 겨울은 혹독하다. 겨울은 그런 계절이다. 무언가의 부재를 더욱 뼈저리게 체감하는 계절. 잃어버린 것들의 빈자리에 칼날 같은 바람이 통과하는 계절. 크리스마스트리의 조명이 빛날수록, 거리에 캐럴송이 신나게 울려 퍼질수록, 세상이 화려하고 소란해질수록, 그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는 더욱 외롭고 쓸쓸해지기도 하는 계절. 어떤 말이나 행동은 시간을 훌쩍 넘어서고 공간의 온도와 공기의 흐름을 바꾸고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부산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의 추운 도시에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가 살고 있다. 그의 집은 도시 외곽의 주택가 초입이다. 작고 허름한 그의 단층 주택에는 담벼락이나 울타리가 없어서 집의 창문과 외부 벽면이 행인들에게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그는 어느 날 하얀 벽면에 스케치를 하고 물감과 붓을 주문해 여러 날에 걸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 거주자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사람들이 그곳을 오갈 때 잠깐이나마 웃음을 지었으면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벽화를 그리는 한 달여 동안 그 집 앞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사진을 찍거나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그림이 누군가에게는 쉼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이 되었으며, 누군가에게는 대화가 되었다. 12월이 되자 그는 창문 바깥쪽에 자그마한 트리 장식을 하고 전구를 달았다. 그가 집에 있든 없든 해 질 녘이면 전구에 불이 들어오고 다음 날 동이 트면 불이 꺼지도록 자동 온오프 장치를 만들었다. 노인 거주자가 대부분인 그 마을에 유일하게 여섯 남매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있는데, 그 집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트리라고, 아버지는 작업을 마무리한 후 내게 벽화와 창문 사진을 찍어 보내고는 그렇게 말했다. 도심과 시내 중심지 곳곳에 있는 거대하고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고 소박했지만, 해가 지면 금세 어둡고 스산해지는 그 마을의 입구를 매일 밤 고요하게 밝히는 작은 불빛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 유년의 어떤 순간들도 다시금 따뜻하게 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마을의 여섯 남매를 위한 트리라고는 했지만,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 차갑고 혹독했던 지난날들, 과거 우리의 겨울을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갔기 때문이다. 며칠 전 갑작스런 추위가 찾아온 어느 날, 나는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만원 버스에 몸을 구겨 넣었다. 특별히 힘든 일이 없더라도 그런 시간대에는 누구나 고단해지고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무거운 가방을 멘 채 흔들거리는 버스 손잡이를 잡고 한참 동안 서서 가야 하는 일도, 낯선 타인과 몸을 부딪치며 각자에게 배인 생활의 체취를 좁은 공간 안에서 나누게 되는 일도, 하루치의 고단함에 덤벨 하나를 더 얹는 것만 같다. 그렇게 어깨는 점점 더 아래로 처지고 온몸이 딱딱하게 굳은 빵처럼 느껴질 무렵, 버스 기사님이 마이크에 대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하루도 애쓰셨습니다.” 그 순간, 시끌시끌하고 복작거리던 만원 버스 안이 숭고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기사님은 그 뒤에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는데, 그랬기 때문에 “오늘 하루도 애쓰셨습니다”라는 말이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에게 각자의 무게로 다가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는 가볍게 미소 지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눈물이 났을 것이고, 어떤 이는 하루를 더 버틸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한마디에, 이미 지나가 버린 어떤 날들을 위로받았다. 시간은 선형적으로만 흐르지 않고 어느 순간 과거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어떤 말이나 행동은 그처럼 시간을 훌쩍 넘어서고, 공간의 온도와 공기의 흐름을 바꾸고,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겨울은 냉담하고 비정하고 혹독한 계절이지만, 그렇기에 서로의 미약한 온기마저 소중히 껴안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계절이기도 하다.
경찰, 통일교 본산 압수수색… 불법 정치자금 정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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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강릉, 부산-청량리 KTX-이음 투입해 3시간대 주파한다
캠코, 해동용궁사에 국유지 무단 매각
[단독] 이우환 공간서 소통한 여백의 미술과 침묵의 음악
전재수, 통일교와 잦은 접촉 정황… 단순 교류? 깊은 관계?
‘한일해저터널’ 통일교 전방위 로비 의혹에 PK 정치권 ‘긴장’
부산 동구 ‘해수부 효과’ 벌써 실감… "매출 20% 늘어"
부산대 의예 415점·자유전공 375점… 부산 15개 대학 정시 참고표 공개
무리하지 않으면 적기… 15년 전후 구축 아파트도 살 만해 [커버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