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남-전남 손잡은 우주항공복합도시 건설 주목된다
영호남이 우주항공복합도시 건설에 의기투합했다. 경남 사천의 서천호 국회의원과 전남 고흥 문금주 국회의원이 우주항공산업 지원 특별법을 공동 발의한 것이다. 우주항공 분야는 기술·인력·인프라·안전 관리에 국가적 역량 집적이 필수라서 중앙정부의 주도적 역할과 책임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간 법적·재정적 뒷받침이 부족해 사천의 KAI(한국항공우주산업)와 고흥 나로우주센터는 성장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앞서 사천 단독 지원 특별법이 특혜성으로 비쳐 심사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영호남 상생 구조의 남부권 우주항공 거점 육성에 여야의 이견이 있을 리 없다. 누리호가 연 우주시대의 가속화가 기대된다. ‘우주항공복합도시 건설 지원 특별법’은 전담 조직 설치, 특별회계 신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실행력을 담보하는 장치를 담고 있다. 이 법안은 답보 상태였던 우주항공산업 거점 구축을 실현하는 강력한 법적 토대다. 특히 지원의 일관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전망이다. 올해 우주항공청 개청 1주년 기념식이 본청이 있는 사천이 아닌 과천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야 사천 개최로 변경된 해프닝이 대표적 사례다. 또 우주항공청 신청사 건립을 앞두고 대전을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 부서 분리 신설 요구로 혼선이 빚어졌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별법이 ‘나눠 먹기’의 구태를 차단하는 쐐기가 돼야 한다. 우주항공산업의 심장은 발사 기지가 있는 고흥과 항공산업의 중심지인 사천이다. 본격적인 우주항공 시대는 남부권에서 열려야 한다. 하지만 특별법이 우주항공산업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안이한 생각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예타 면제는 사업 진행의 신속성에 도움이 되지만, 타당성 평가가 약화되면 사업의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국가 역량이 집중돼야 할 신산업이라 중앙정부의 주도적 책임과 정밀한 관리 체계가 필수적인데, 지역 단위 또는 부동산 중심의 도시 개발에 그친다면 본래 취지가 훼손된다. 실질적인 산업 클러스터로 발전하려면 정부·지자체·민간 기업의 실행력과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남부권에 우주항공 벨트를 안착시키려면 지역별 산업 생태계와의 협업과 상생이 고려돼야 한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4차 발사를 주도한 민간 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 사업장을 경남 창원에 두고 있다. 이밖에 부울경에는 방산·로봇·소재 부문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즐비하다. 이 생태계가 전남까지 확장돼 순환 체계를 이뤄야 한다.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육성책은 국토 균형발전의 취지에 부합한다. 지역주의 굴레를 벗고 국가전략으로 추진될 충분한 명분이 있다. 예산 확보, 중앙-지방 컨트롤 타워 정립, 민간 참여 확대, 인재 양성 등 할 일이 산적하다. 우주항공 신산업으로의 전환이 과제다. 특별법은 출발선에 불과하다.
[사설] 부산 빈집 대책 실질적이고 창의적인 접근 필요하다
저출산, 초고령화, 인구 유출을 겪는 부산에서는 원도심을 중심으로 공동화와 빈집이 확산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부산의 빈집은 작년 기준 1만 1471호에 달한다. 특히 중구, 동구, 영도구 등 원도심에서 노후공동주택의 빈집 발생이 두드러지며, 고령자 1인 가구 비율도 높다. 해안가와 도심에 아파트 개발이 진행되고, 시 외곽지에 에코델타시티 등 대규모 택지 개발이 한창인 상황에서 원도심의 인구 유출은 구조적으로 가속할 수밖에 없다. ‘지역 소멸의 그늘’인 빈집 문제는 지역사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런 가운데 부산시가 내년부터 빈집 정비 고도화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은 시의적절하다. 시는 지난해 〈부산일보〉 ‘부산 빈집 SOS’ 기획 보도를 계기로 같은 해 12월 ‘부산형 빈집 대책’을 발표했고, 올해 초 ‘2025년 빈집 정비 계획’을 내놓았다. 그 연장선에서 시가 지난 1일 발표한 ‘빈집 정비 고도화 계획’은 빈집 소유주의 자발적 철거를 유도하면서 동시에 빈집 활용 시장을 키우는 투 트랙 전략을 취했다. 빈집 증가 속도를 기존 철거 중심의 정책으로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지속 가능한 빈집 정비 생태계 조성에 방점을 둔 것이다. 지역기업이 빈집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지역 건축 관련 단체 등이 활발하게 개입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지자체와 지역 공동체의 협업으로 다양한 상상력을 실현해야 한다. 시는 이번 고도화 계획을 통해 내년부터 빈집을 활용해 지역 특성에 맞게 다양한 도시재생 공간으로 만든다고 한다. 지역 기업인 (주)미스터멘션 등과 연계해 도심 빈집을 리모델링해 관광객에게 공유 숙박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시는 대상 빈집을 발굴하고 리모델링비를 지원하면서, 연간 20호씩 5년간 100호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또 지역 특화 모델을 발굴해 해안과 관광지 인근에는 워케이션 장소나 게스트 하우스를, 산단과 공단 인근에는 근로자 기숙사로 정비한다. 빈집을 단순한 주거 용도에 국한시키지 않고, 창의적으로 활용한다면 생활 인구 유입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빈집은 ‘주거의 소멸’을 넘어 ‘지역 기능의 공백’으로 이어진다. 빈집을 창의적인 도시재생의 거점이자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세제 특례와 빈집 조사·관리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인구 감소 지역의 빈집 매매에 대한 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 감면 확대, 빈집 소유자 정보 확인 절차 법적 근거 마련 등이 뒤따라야 한다. 국토교통부도 ‘빈 건축물 정비 특별법’ 제정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빈집을 지역 맞춤형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다 실질적이고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부산이 지역 소멸을 넘어 지속 가능한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사설] '내란 몰이'에 빠진 민주, '계엄의 강'서 허우적대는 국힘
내일이면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만 1년이 된다. 우리 현대사를 장식한 숱한 고비들이 있었으나 1년 전 느닷없이 선포된 비상계엄은 그 이후의 대한민국을 전혀 다른 국가로 환골탈태하게 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헌정 질서를 헌법의 정신에 걸맞도록 신속하게 회복한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은 그 저력을 만방에 떨쳤다고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으나 국민들은 비상계엄 선포 이전과 다름없거나 오히려 더욱 악화한 정치권의 행태와 마주하는 중이다. 선거 앞 강성 지지층 결집에만 여념이 없어 보이는 여야 정치권의 이 같은 모습에서는 미래 청사진을 일절 찾아볼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선 비상계엄 이전에 여당이었다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권을 잃은 국민의힘이 보이는 분열적 퇴행이 가장 두드러져 보인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년이 다 됐지만 국힘은 아직까지도 계엄에 대한 사과 여부조차 당내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 안철수 의원 등 몇몇 의원들의 개인적 사과 의사 표시는 있었으나 당론은 아직도 분열된 상태다. 심지어 사과를 할 경우 여당의 프레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의견까지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심지어 윤 전 대통령과의 결별 문제를 놓고는 당내 강성 친윤들이 아직도 ‘윤 어게인’을 외치는 수준이라 향후 당론 결집 방향에 따라 당의 앞날이 달라질 우려도 큰 상황이다. 국힘이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틈을 타 민주당은 다시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확정하는 데 당력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1일 최고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사법개혁안 처리, 특검 연장 등 소위 ‘내란 청산’ 3법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도 3일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내란 청산에 대한 의지를 밝힐 계획이다. 비상계엄 선포 1년이 지나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관계자들이 대부분 법정에 섰고 판결만 앞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민주당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여당이 되고 나서도 국정 수행보다 내란 몰이에 더 치중한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판이다. 12·3 비상계엄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대통령의 그 행위를 놓고 탄핵 결정을 한 헌법재판소가 내렸다고 할 수 있다. 헌재는 탄핵 결정 당시 대통령의 비상계엄이라는 반헌법적 수단 선택을 정당화할 수 없다면서도 민주당의 전횡이 국정 마비와 국익 저해라는 대통령의 인식을 낳았을 수 있다는 비판을 잊지 않았다. 그 결정 이후에도 국힘은 아직 계엄의 반헌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민주당은 전횡을 멈출 기미가 없어 보인다. 서로가 강성 지지세력만 바라보며 극단을 치닫는 모양새다. 비상계엄을 겪고도 그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한 반성이 없는 여야 정치권의 행태에 중도의 상식적 국민들은 계엄 때만큼이나 절망하고 있다.
작원관 300 용사
1592년 4월(음력 기준)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본격적인 전투 첫날인 4월 14일 부산진성이 함락된 데 이어 이튿날인 4월 15일 다대진성과 동래성마저 왜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선봉장인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왜군은 경남 양산 황산잔도를 거쳐 한양을 향해 거침없이 진격했다. 그런데 밀양시 삼랑진읍 작원관에 다다른 왜군은 예상치 못한 거센 저항에 직면한다.밀양 작원관은 조선 시대 서울에서 부산을 잇는 영남대로에 자리잡고 있었다. 경북 문경 조령관과 함께 2대 관문으로 불렸다. 작원관 일대의 길은 작원잔도로 불렸는데 왜군은 한양 진격을 위해 당시 가장 빠른 이 길을 선택했다. 작원관은 고려 시대부터 왜적의 침공을 방어하던 곳으로 고려 고종 때 지어졌다. 한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다른 한쪽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솟아있어 천혜의 요새로 불렸다. 평상시엔 영남대로와 나루를 통해 드나드는 사람들과 화물을 검문했고, 유사시엔 군사요충지 기능을 했다.임진왜란 당시 동래와 양산 함락 소식을 접한 박진 밀양 부사는 지리적으로 유리한 작원관을 결사항전지로 선택했다. 4월 17일 시작된 작원관 전투로 300여 명의 군사와 백성들이 산화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희생하면서 왜군의 발을 3~4일 동안 묶었다. 이후 왜군은 5월 3일 한양을 점령했는데 만약 ‘작원관 300 용사’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피란 여유가 더욱 줄어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현재 작원관 전투에 대한 고증 등 학계 연구는 여전히 미미하다. 〈선조실록〉 등도 간략한 기술에 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한 이준영 작가가 ‘작원관 300 용사’를 주제로 〈임란, 삼백 감꽃〉(좋은땅)이라는 장편소설을 최근 선보였다. 전국시대 숱한 내전을 치르며 단련된 왜군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박진 부사와 군사, 백성들의 모습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작가는 온몸을 던져 나라와 이웃과 가족을 구하려던 이들의 활약상을 상상 속에서라도 재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작원관 용사들에 바치는 헌사인 셈이다.임란 때 소실된 작원관은 전쟁 뒤 복구됐지만 1902년 경부선 철도 부설 공사를 하면서 작원잔도가 파괴된 데 이어 1936년 낙동강 대홍수로 멸실됐다. 이후 1995년 원래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원관 관문인 한남문 등을 복원했다. 작원잔도 일원은 현재 낙동강 자전거길과 산책로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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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비상계엄 후 1년, 지방선거 전 6개월
딱 1년 전 오늘 밤의 일이다. 가짜 뉴스 같았던 비상계엄 소식을 접하고 TV 모니터 앞으로 달려가 지켜봐야 했던 초현실적 장면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의 긴급 대국민 담화, 국회의사당 앞에서 벌어진 계엄군과 시민들의 몸싸움, 국회 상공으로 날아든 헬기와 무장 군인들이 국회 유리창을 부수고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렇게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뒤흔든 비상계엄은 다행히 국회와 시민들의 빠르고 적극적인 대응, 계엄군의 느리고 소극적인 대응 덕분에 6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태극기와 응원봉으로 갈라진 광장, 국론 분열 속 국가 신인도와 경제의 추락은 비상계엄의 값비싼 대가였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에 따라 대통령 윤석열은 파면되고 조기 대선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주권정부가 출범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구속과 탄핵, 석방과 재구속의 과정을 거쳐 구치소와 법정을 오가는 중이다. 법정에서 쏟아내는 피고인 윤석열의 언어는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품격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고 부끄러움은 생중계를 지켜보는 국민의 몫이 됐다. 동시 출범한 3대 특검을 통해 드러난 국정 난맥상에 말문이 막힌다. 비상계엄의 동기 또한 국가적 위기보다 ‘김건희 사법리스크’를 덮기 위한 것이었다는 혐의가 더 짙어지는 상황이다. 아무리 ‘윤 어게인’을 외친다 한들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려운 이유다. 어쨌든 지금은 윤석열 정권 청산과 함께 역사 속으로 떠나보내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국가적 혼란과 국민적 고통 속에 사계절을 보낸 우리 사회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론 분열은 더 심화했고, 도탄에 빠진 민생 경제도 기대감만 한껏 부풀어 있을 뿐 여전히 백척간두다. 정부와 집권 여당은 압도적 권력으로 국가의 미래 비전을 주도할 절호의 기회인데도 ‘내란 몰이’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비상계엄 1년을 맞아 내놓은 게 내란전담재판부와 2차 종합 내란 특별검사다. 추경호 의원 구속 여부에 따라 야당을 ‘내란 정당’으로 몰아 정당 해산까지 밀어붙일 기세다. 헌재가 탄핵 결정문에서 비상계엄의 위법성과 함께 ‘줄탄핵’을 남용한 민주당 폭주도 지적했건만 자성은커녕 승자인 양 의기양양이다. ‘빛의 혁명 1주년, 대통령 대국민 특별성명’과 외신 기자회견을 예고한 이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저녁에는 시민단체 주최 ‘시민 대행진’에 참석한다. 국론 분열 행보로 비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런 정부와 집권 여당의 ‘내란 몰이’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 국민의힘이다. ‘계엄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비상계엄 1년이 지나도록 사과는 고사하고 윤 전 대통령과도 단절하지 못한 채 자중지란에 빠졌다. 집권 여당의 사법개혁 폭주와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등 유리한 정치적 국면에서도 ‘우리가 황교안이다’를 외치며 모든 이슈를 비상계엄의 공포 속으로 함몰시킨다. 1년 내내 20%대 초반에 갇혀 있는 지지율도 이런 상황의 반영이다. 마침 오늘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날이기도 하다. 지금 정국 상황이라면 소멸의 벼랑에 선 지역의 미래도 ‘내란 몰이’와 ‘계엄의 강’에 휩쓸려 내려갈 공산이 크다. 민주당은 내란 프레임을 지방선거까지 몰고 갈 생각이고 국민의힘 또한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의 수도권 일극주의 극복에 대한 진정성을 가늠할 골든타임도 놓치게 된다. 특히 해양수산부 시대를 맞는 부산은 지역의 힘을 모아야 할 현안이 한둘이 아니다. 해양수도와 글로벌 허브도시는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한국산업은행과 동남권투자공사의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지방시대위원회의 ‘5극 3특’과 부울경 행정통합은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지 숙의해야 한다. 가덕신공항의 미래도 주요 이슈다. 해수부 기능 강화, HMM 등 해운 대기업과 해양 공공기관 이전도 지방선거 기간에 못 박아야 할 일들이다. 이는 지역 현안만이 아니라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수도권 집값과 국가 잠재성장률 저하라는 구조적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수도권에 대응할 새로운 성장축을 키우는 일이고 그게 바로 부산을 중심으로 한 해양권이다. 이 대통령 스스로 윤 정부의 과거로의 퇴행을 비판하며 AI 기술 경쟁에서 하루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진다고 말했다. 국가의 구조개혁도 마찬가지다. 한가하게 ‘내란 몰이’와 ‘윤 어게인’이나 외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계엄 1년의 혹독한 대가가 헛되지 않게 지방선거 6개월의 골든타임을 잘 보내야 한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송하주의 AI 톡] 피지컬 AI 시대, 로봇은 왜 인간을 닮아가나
1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개최된 CES행사.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인공지능의 미래를 말하며 새로운 키워드를 꺼냈다. 바로 ‘피지컬 AI(Physical AI)’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가 텍스트와 그림, 영상을 ‘만드는’ 기술이라면, 피지컬 AI는 세상을 직접 보고, 듣고, 움직이는 AI다. 한마디로, AI가 컴퓨터에서 튀어나와 현실 세계에 발을 딛기 시작한 것이다. 카메라로 주변을 인식하고, 팔과 다리로 움직이고, 손가락 끝으로 섬세한 조작까지 수행하는 AI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로봇, 특히 인간을 닯은 로봇 휴머노이드가 바로 피지컬 AI의 대표주자다. 현재 AI의 선두 주자는 명확하다. 미국과 중국이다. 천문학적인 양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AI 모델 개발 능력 그리고 컴퓨팅 인프라를 갖춘 두 국가가 생성형 AI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다른 나라가 먼발치라도 따라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다. 반면 피지컬 AI는 다르다. 이 영역에서는 정밀 제조, 센서, 모터 제어 같은 하드웨어와 제조 기술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이 분야는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영역이다. 근로자 1인당 사용되는 로봇의 수를 나타내는 로봇밀도 측면에서 한국은 전 세계 1위다. 인구 대비 로봇 활용률이 가장 높다는 것이며 새로운 로봇 기술을 시험하고 실제 산업에 투입하기 가장 좋은 실험장이 한국이라는 의미다. 생성형 AI 경쟁에서 뒤처졌다며 우려하는 사이, 다른 문이 조용히 열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부울경 지역은 막강한 제조 인프라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 피지컬 AI의 개발, 하드웨어 제조, 현장 실증이 모두 가능한 최적의 무대다. 피지컬 AI 기반 제조업 혁신을 통해 부울경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쯤 해서 피지컬 AI와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의문 하나를 살펴 보고 지나갈 때가 됐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개발에 총력을 쏟다시피 하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관련한 질문이다. 왜 인류는 굳이 사람처럼 생긴 이족 보행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려는 것일까. 이는 특정 작업에 특화한 비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생산성 향상 등을 추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질문과도 상통한다. 실제로 산업용으로 개발된 로봇은 특화된 로봇의 형태를 극단적으로 추구한 예이다. 공사장의 포크레인을 닮은 용접용 로봇은 자동차 생산 라인의 고정된 위치에서 용접만 잘하면 되고, 트럭과 비슷한 모양인 이송용 로봇은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빠르고 정확하게 옮기면 된다. 그런데도 테슬라, 피규어AI, 보스톤 다이나믹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선택한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세상이 ‘인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 손잡이 높이, 계단의 폭, 의자 높이, 공구의 크기, 심지어 냉장고 문을 여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인간의 팔 길이와 손 모양, 걸음걸이, 시야 높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인간처럼 걷고, 잡고, 돌리고, 앉고, 기울일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사람이 일하는 거의 모든 환경에 그대로 투입될 수 있다. 로봇 개발 기업의 입장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특화 로봇보다 표준화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사용하여 여러 용도로 사용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며 시장성이 높을 수 있다. 결국 휴머노이드 로봇 경쟁은 ‘인간이 만든 세상을 가장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를 둘러싼 싸움이기도 하다. AI는 지난 10년간 인간의 정신 노동 영역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그리고 이제 피지컬 AI는 육체 노동의 영역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생성형 AI가 인간의 ‘두뇌’와 경쟁했다면, 피지컬 AI는 ‘몸’과도 경쟁하기 시작한 셈이다. 과연 이 흐름은 어디까지 갈까? 비교적 단순한 육체적 노동의 대체에서 시작하여 매우 복잡한 작업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AI가 결국엔 모든 형태의 인간 노동을 대신할 것이다. SF 소설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파운데이션’에는 솔라리아라는 행성이 등장한다. 광대한 개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서로 얼굴조차 거의 마주하지 않는 사회. 출생부터 죽음까지 일상 모든 일을 로봇이 처리하는 세계다. 만약 피지컬 AI의 미래가 이 방향이라면, 우리는 편안함과 고립, 효율과 상실 사이에서 새로운 질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로봇이 일을 대신 해 주는 시대,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고 로봇에게 맡겨도 되는 일은 어디까지일까. 피지컬 AI는 이제 막 태동했다. 그러나 이 기술이 가져올 변화는 우리의 직업, 도시, 가족 구조, 인간의 의미까지 바꿀 수 있다. 그 변화의 파도가 다가오는 지금, 우리는 단순히 기술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만들어낼 사회의 형태를 성찰할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데스크 칼럼] 에어부산 '위축 경영'에 날아간 자카르타 직항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에 따른 운수권 재분배 과정에서 인천~자카르타 노선이 인기 노선으로 부상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상업 도시로 ‘비즈니스 승객’ 수요가 높다. 이 때문에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에어프레미아 등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다수가 자카르타 노선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자카르타 노선은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부산 직항 노선도 배분한 바 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부산 직항 ‘취항’ 소식이 없다. 어찌 된 일일까. 지난해 1월 우리 정부는 인도네시아와 항공 회담을 열고 한국 지방공항과 자카르타를 연결하는 항공 노선을 주 7회 운항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부산~자카르타 노선 운수권 신청을 받았고 지난해 5월 항공교통심의위원회에서 해당 노선을 에어부산(주3회)과 진에어(주4회)에 배분했다. 인도네시아는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신발 제조·소재·부품 업체가 다수 진출해 있어, 부산에서도 상용 출장 수요가 많다. 부산시는 부산~자카르타 직항 운수권 확보에 대해 “지방공항 중 부산이 유일하게 5000㎞ 이상 장거리 국제노선을 확보한 것”이라며 “그간 인천공항 이용이 불가피했던 부울경 지역 상용 여객의 이동 불편이 획기적으로 해소되고, 인도네시아발 인바운드 관광객 유치에도 기여해 지역경제도 함께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운수권을 확보한 에어부산과 진에어는 1년이 지나도록 해당 노선에 취항하지 않았다. 에어부산은 이에 대해 “항공기 화재와 해외 중정비 공정 지연 등으로 기재 운영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며 취항이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진에어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조치 사항 이행 등으로 해당 노선 취항이 어려워졌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현행법에 따르면 운수권을 배분 받은 항공사는 1년 이내에 취항해야 하며 연간 20주 이상 운항해야 한다. 이 때문에 에어부산과 진에어는 부산~자카르타 운수권을 반납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시 관계자는 “해당 운수권은 이미 반납된 상태”라며 “부산시는 국토부에 해당 운수권이 조속한 시일 내에 재배분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일부 LCC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에어부산과 진에어가 부산~자카르타 운수권 배분을 신청할 당시, 이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 결합에 따른 공정위 조치는 내려진 상태였다. 이 때문에 기업결합이 예정된 에어부산과 진에어가 부산~자카르타 노선을 사실상 독점하려 한 것이 처음부터 문제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어부산의 기재 부족 문제 역시 지난해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에어부산과 진에어의 ‘욕심’으로 부산~자카르타 직항 취항이 1년 이상 늦어졌고 결국 부울경 항공소비자들의 불편이 장기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선 진에어 흡수통합을 앞둔 에어부산이 위축 경영을 계속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경쟁 LCC가 적극적으로 새 항공기를 도입하고 노선을 확대하는 동안 에어부산은 항공기를 늘리지 않았다. 여유 항공기가 없는 에어부산은 항공기 화재 사고, 정비 문제가 불거지자 곧바로 운항이 급감했다. 국토교통부 항공 통계에 따르면 에어부산은 지난 3분기 운항이 전년 동기 대비 17.6%나 줄었다. 이 기간에 운항이 줄어든 항공사는 아시아나항공(-0.3%)과 에어부산 뿐이다. 에어부산은 특히 수익성 지표인 탑승률도 감소했다. 에어부산의 3분기 탑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5%포인트(P) 감소했다. 에어부산의 탑승률 하락폭은 국내 항공사 가운데 가장 높았다. 위축 경영이 계속되는 에어부산의 경우 이직률도 경쟁 항공사에 비해 매우 높다. 에어부산의 ESG 보고서에 따르면 에어부산의 자발적 이직(정년퇴직, 해고 등이 아닌 개인적 사정으로 인한 퇴사)은 급등 추세다. 총 재직인원에서 자발적 이직자의 비율을 뜻하는 자발적 이직률은 2022년 6.1%에서 2023년 7.9%, 2024년에는 11.6%로 증가했다. 반면 경쟁 LCC인 제주항공은 자발적 이직률이 2022년 7.8%에서 2023년 6.6%, 2024년 6.5%로 줄었다. 에어부산의 자발적 이직률은 모회사 등 관계자와 비교해도 2~3배 수준이다. 에어부산을 흡수통합하는 진에어의 2024년 자발적 이직률은 5.6%다. 에어부산의 모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의 자발적 이직률은 3.2%에 그쳤다. 아시아나항공과 통합하는 대한항공의 자발적 이직률은 1.7%에 불과하다. 진에어 흡수 통합을 앞두고 에어부산이 위축 경영을 계속하는 데 대해 항공업계에선 기업결합에 대비한 ‘기업가치 축소’가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에어부산의 기업가치가 줄어들면 에어부산 주주들의 손해를 보지만 흡수통합하는 진에어나 대한항공은 이득을 볼 수 있다. 김종우 서울경제부 부장 kjongwoo@busan.com
[노트북 단상] AI 시대, 인간의 역할은?
지난 10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글로벌 ITC 행사 ‘자이텍스 글로벌(GITEX Global) 2025’는 인공지능(AI)의 거대한 물결로 굽이쳤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시스코, 화웨이 등 내로라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그들의 AI 기술과 데이터센터 역량을 자랑했다. 심지어 기자는 구글 전시 부스에서 언론인 맞춤형 AI도 소개 받았다. 그곳의 구글 직원은 자사의 AI 프로그램 중 하나를 시연하며 취재와 기사 작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와 아부다비 기반 AI 기업 G42 그룹의 펑 샤오 CEO는 화상으로 만나 AI가 바꿔갈 미래 변화를 대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대화 중 펑 CEO는 오픈AI의 챗GPT가 UAE에서 사용된 재미있는 사례 하나를 소개했다. UAE의 셰이크 타흐눈 빈 자이드 알 나흐얀 국가안보보좌관은 자신의 새 자택을 짓는데 AI를 활용했다. 챗GPT 도움을 받아 전문가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건축 설계를 직접했다는 것이다. 챗GPT에 500번 이상의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랐지만, 설계 비용 절약을 고려한다면 그 정도 수고는 분명 가치 있을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 이 대담을 듣고 있던 기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기 미래에 없어질 직업, 건축가 하나 추가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한 남성이 AI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 ‘그녀(Her)’를 시청했다. 2013년 작품이지만 이야기가 2025년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지금 우리가 맞이한 현실과 묘하게 포개지는 지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컴컴한 기내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기자는 또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인간관계도 AI가 대체하는 시대가 오는 건가. AI 아내나 여자친구라면 잔소리도 없겠지.’ 한참 선 넘은 생각이었다. 아내가 이 글을 봐서는 안 될 것 같다. 전대미문의 AI 시대에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전망하는 보고서가 속속 나오고 있다.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노동의 변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10월 발표한 ‘AI와 한국 노동시장’ 보고서는 한국 기업의 AI 도입률이 OECD 평균(50.8%)보다 낮은 30%에 불과하다고 언급했다. AI가 노동 시장에도 큰 변화를 불러오겠지만, 대규모 실업보다는 직무 전환과 기술 수요 변화를 점쳤다. 인간 관계에도 거대한 변화가 예고됐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미디어랩의 올해 연구 ‘내 남자친구는 AI’는 AI 챗봇과의 감정적 관계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분석한 것이다. MIT 미디어랩은 AI 동반자가 외로움 감소와 정신건강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진단하면서도, 감정 의존성과 현실 해리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올해 자이텍스를 취재하는 동안 기자의 머릿속을 맴돈 질문은 단 하나였다. AI가 고도화될수록 인간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어쩌면 그 질문을 이어가는 일 자체가 인간다움을 지키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중앙로365] 비어가는 도시와 채워지는 관광객
주말 저녁, 모처럼 전철을 타고 자갈치에서 남포역까지 걸어가던 길, 예상보다 훨씬 한산한 역사 분위기가 눈에 들어왔다. 주말 밤이면 북적여야 할 남포동이었지만 전철은 자리가 널널했고, 플랫폼에도 젊은이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편히 앉아 집으로 향할 수 있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부산의 인구 감소가 통계 속 수치가 아니라 ‘체감의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 인근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활기가 넘쳤다. 무비자 입국 완화의 영향인지 유명 맛집 앞에는 외국인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남포동 화장품 가게를 기웃대는 이들도 외국인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도시는 비어가는데, 방문객이 그 빈틈을 채우고 있는 기묘한 풍경. 부산 청년은 줄고 외국인 청년 관광객은 늘어난 이 대비가 도시의 구조 변화를 더욱 선명하게 했다. 특히 지역 대학의 상황은 변화의 방향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만 해도 외국인 재학생 비율이 이미 60%를 넘었고, 필자가 가르치는 학생들 가운데 한국인은 20명, 외국인은 150명에 달한다. 청년 감소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체감하는 공간이 바로 대학인 셈이다. 부산의 미래 활력은 결국 ‘외국인 청년’과 ‘관광객’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수밖에 없다. 이 문제의식을 다시 확인한 자리가 바로 부산시청에서 열린 ‘부산미래경제포럼’이다. 이날 포럼의 핵심 주제는 ‘글로벌 관광도시로의 전환’이었고, 필자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발제자로 나선 퍼듀대학교 장수청 교수는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학회에서 논문 발표를 준비할 때마다 연구의 즐거움을 몸소 보여주며 큰 자극을 주셨던 스승 같은 분이다. 세계적인 관광학 연구자이자, 필자에게 학문적 열정을 심어준 그 분이 부산에서 강연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찼다. 장 교수님의 발제는 부산 관광산업의 본질적 경쟁력에 대한 방향성을 정확히 짚었다. 부산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패러다임 전환을 주제로 발표하신 내용의 핵심에는 ‘수용태세’, 즉 외국인 관광객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의 문제와 관광 서비스 품질관리에 대한 내용이었다. 대중교통 이용 불편, 도로표지판 및 안내에 있어서 외국어 안내 미비, 메뉴판 번역 오류, 결제 방식 호환, 정보 접근성 등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을 부산시가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또 다른 발제자인 최규환 교수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재무관련 보고서의 주요 책임자였다. 필자 입장에서 ‘이론과 실증을 겸비한 전문가’가 허브앤스포크에 기반한 부산 관광 활성화 전략을 제시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순간이었다. 두 분의 발제 방향이 필자가 지난해 집필했던 ‘부산 외국인관광 활성화 보고서’와 일치했다는 점에서, 데이터 기반 분석이 결국 같은 결론으로 수렴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이어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 관광MICE 데이터·AI 포럼’에서는 관광 분야에 있어서 AI 활용 방안과 관광 데이터의 질과 활용 전략이 논의되었다. 관광 정책이 개발·홍보 중심으로만 흐르면서 정작 기본 데이터는 여전히 미흡한 현실, 그리고 부산연구원에 관광 전문 연구자가 거의 없다는 구조적 문제까지 제기되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공공 데이터 품질을 개선하고 AI 기반 관광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이 두 포럼을 나란히 놓고 보니 부산의 과제가 선명해진다. 첫째, 인바운드 관광을 위한 외국인 수용태세 점검, 둘째, 관광 데이터 품질 강화를 통한 지속적인 관광 서비스 품질 관리, 셋째, 전문 연구·정책 조직 확충이다. 이는 단순 행정이 아니라 부산의 미래 산업을 결정짓는 인프라다. 남포동과 자갈치역에서 느낀 ‘청년 부재’는 인구 감소 때문이기도 하지만, 젊은 세대가 온라인 세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구조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부산은 오프라인의 강점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온라인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경험 즉 맛보고, 걷고, 보고, 듣는 감각적 경험이 부산의 경쟁력이다. 도시는 비어갈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의 도시’, ‘머무르고 싶은 도시’는 관광으로 다시 채워질 수 있다. 부산은 지금, 외국인 관광객이 만든 활기와 인구 감소가 만든 공백 사이에서 갈림길에 서 있다. 미래의 부산이 활력을 회복하려면 개발보다 기본, 홍보보다 데이터, 그리고 무엇보다 ‘찾아온 사람에게 불편하지 않은 도시’가 되는 것이 먼저다. 이것이 즐거운 도시, 재미있는 도시, 행복한 도시를 향해 부산이 정말 해야 할 일일 것이다.
[편집국에서] 12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핸드폰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목적이 있었다. LAFC 손흥민의 올 시즌 마지막 경기를 다시 보는 것. 2025 MLS컵 PO 서부 준결승 경기에서 손흥민의 동점 프리킥 골은 너무나 마법 같았다. 요즘 표현대로 도파민이 제대로 터지는 장면이었다. 공식 중계 쇼츠부터 시작해 ‘야유를 경악으로 바꾼 손흥민골’ ‘동료들 찐 반응’ ‘키퍼 시점 기적의 골’ 등 골 장면을 다른 각도에서 찍은 유튜브 쇼츠 수십 개를 반복해서 보다가, 어느 순간 알고리즘을 타고 뉴욕 추수감사절 ‘케데헌’ 퍼레이드에 누리호 4호 발사, 고 이순재 배우 별세 등을 거쳐 토트넘 팬들 반응, 청룡영화제 시상식 퍼포먼스 관련 영상까지 보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동영상을 여러 개 봤을 뿐인데, 시간이 ‘순삭(순간 삭제)’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핸드폰을 들었는지 애초 목적이 언뜻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뇌 썩음, 브레인 랏(brain rot) 현상이었다. 브레인 랏은 온라인 콘텐츠의 과도한 소비로 정신이나 지적 상태의 악화를 일컫는 말로, 2024년 옥스퍼드가 선정한 그해의 단어이기도 했다. 올해는 AI 기술의 발달로 디지털 콘텐츠의 ‘도파민 개미지옥’은 더욱 견고해졌다. AI 기술을 이용해 영상 제작이 이전보다 수월해지면서 디지털 콘텐츠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제작 속도도 빨라졌다. 영상 콘텐츠에는 영상 관련 제품의 구매 링크가 자동으로 노출되면서 온라인 쇼핑과 영상 사이를 무한반복으로 오갈 수 있는 환경도 구축되었다. 이제 물건을 사기 위해 검색이라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됐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올 연초 발표한 ‘2025 콘텐츠 소비 전망’에 따르면 한국인의 주당 평균 유튜브 동영상 콘텐츠 소비 시간은 6.88시간으로 전년(6.54시간)보다 늘 것으로 전망됐다. 일활성이용자수(DAU)와 사용 시간을 분석한 한 통계에서는 한국인 5명 중 3명이 하루 2시간 넘게 쇼츠 등 유튜브 콘텐츠를 소비하며, 인스타그램의 짧은 동영상인 ‘릴스’는 1인당 하루 평균 50분을 사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과도한 디지털 콘텐츠 소비에 의한 ‘도파민 중독’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최근 AI 기술의 발달은 그 폐해의 속도와 규모를 짐작하게 어렵게 만든다. 이 때문에 디지털 콘텐츠를 술이나 담배와 비슷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최소한 아동과 청소년은 보호하자는 조치들이다. 호주에서는 이번 달 세계에서 처음으로 16세 미만은 부모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SNS 사용을 규제하는 법안이 시행된다. 이 법의 특징은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것으로, 페이스북·인스타그램·엑스(X)·유튜브 등 SNS 및 스트리밍 플랫폼은 16세 미만 사용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기술적 조치를 해야 하고, 위반 시 최대 약 5000만 호주 달러(약 480억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덴마크 정부는 15살 미만의 SNS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마련해 의회 상정을 앞두고 있고, 유럽의회도 지난달 말 13세 미만 청소년의 SNS 이용을 전면 차단하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술과 담배가 과하면 어른에게도 좋을 리 없듯이, 디지털 콘텐츠에 중독된 성인들의 부작용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인 극단적인 정치 편향성이다. 편향적 디지털 콘텐츠에 과몰입한 나머지 ‘내가 옳다’는 신념에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우월감의 세계에 빠져 상식에 대한 감각마저 마비된 이들을 인터넷 댓글 창에서 수시로 목격한다. 역으로 디지털 콘텐츠 중독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한다. 모든 앱의 푸시 알림을 끈다거나 스마트폰과 특정 어플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식이다.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을 피하기 위해 시청 기록을 주기적으로 삭제하는 방법도 있다. 달력을 한 장 남겨 놓은 12월. 2025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본다. 힘겹게 버틴 날들 속에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는 각종 디지털 콘텐츠는 일과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같은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하지만 맥주 한 잔으로 시작했다가 소맥 폭탄주 십여 잔을 들이킨 날처럼, 잠깐만 봐야지 했다가 어느새 정신을 놓은 날도 부지기수다. 정보 습득과 여가 활용 그리고 제어하기 어려운 몰입 사이를 오가며 디지털 콘텐츠를 소비 중인 셈이다. 폭식과 술을 줄이고, 운동과 식단 관리를 하겠다는 내년 새해 다짐에 디지털 디톡스도 추가해 본다.
“민생이 먼저다” 한 치 앞 안 보이는 ‘시계 제로 PK’
낙동강 물 사업 등 부산 예산 대거 반영
이 대통령 “내란, 나치 전범처럼 처리해야 재발 막을 수 있어”
쿠팡 해킹 사태에 집단 소송에 ‘탈쿠팡’까지… 자구책 찾아 나선 시민들
온라인 언급량 앞선 박형준, 긍정 반응 늘어나는 전재수 [부산시장 선거 민심 점검]
‘계엄의 밤’ 밝힌 젊은 여성들이 묻는다… “오늘은 안녕하십니까?” [계엄 1년]
부산도시공사, 공사비 상승분의 50% 보전… 전국 최초
“해저 개발 전초기지 부울경, 새로운 산업 생태계 창출 가능” [71%의 신세계, 해저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