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수부, 해양수산 산하기관 이전 속도전 마땅한 일
부산을 진정한 해양산업 클러스터로 거듭나게 하려는 후속작업이 본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부산으로 이전한 해양수산부가 산하기관에도 다음 달까지 부산 이전 로드맵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 등 해운 대기업들의 잇따른 본사 부산 이전 계획 발표와 궤를 함께하는 속도전 양상이다. 해수부의 지시에 따라 해당 기관들의 부산 이전 계획이 구체화하면 정부가 그리고 있는 해양수도 부산의 밑그림도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해양 정책 결정과 연구·개발, 현장 산업 등이 하나로 연결됨으로써 발생하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는 그 토대가 될 것이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해수부는 설 직전인 지난 12일 산하 6개 기관 부서장을 소집해 3월 중으로 부산 이전 로드맵을 마련하고 내년 상반기 중 이전을 완료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6개 기관은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해양환경공단,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한국어촌어항공단, 한국해양조사협회, 한국항로표지기술원 등이다. 해수부의 이 같은 행보는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연말까지 구체적인 이전 로드맵을 보고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조치로 읽힌다. 전재수 전 장관이 해당 기관 노조 면담에서 “로드맵 발표 전 협의하겠다”고 언급했던 점으로 미뤄 로드맵이 나오면 발표 전 본격 협의에 들어갈 것으로도 보인다. 해수부 산하기관 부산 이전은 대선 공약에 따른 해수부 부산 이전의 후속 조치라는 정치적 상징성을 초월한다. 해양수산 정책이 해운·항만·수산·환경 등 현장 이슈와 직결되기 때문에 해수부를 부산으로 옮기는 게 타당하다면 이와 관련한 연구와 현장 기능의 부산 이전도 타당한 일이다. 해수부 산하기관이 수도권과 세종에 흩어져 있는 공간적 불일치가 조속히 해결돼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이를 위한 해수부의 조치를 전임 장관의 지방선거 지원 카드로만 바라보는 것은 협량한 정치적 해석이라 할 것이다. 졸속 이전 우려 등을 제기하는 해당 기관 노조들도 대승적 차원에서 해수부와 적극 협의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부산이 진정한 해양강국 대한민국을 위한 해양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해수부와 산하기관, 해양기업 등의 부산 이전이 일찌감치 이뤄졌어야 했다. 북극항로를 필두로 급변하는 해운환경과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선 더욱 그렇다. 이번 해수부의 산하기관 부산 이전 속도전은 그런 의미에서 늦게나마 환영받아 마땅하다. HMM 등 해양 대기업의 이전과 함께 부산 영도의 해양산업 클러스터 완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이번 조치는 해운·조선·해양플랜트 등에 대한 해수부 기능 강화의 마중물로도 기대를 모은다. 이전 대상지 부산은 수용 태세와 장기적 법·제도 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사설] 국토부, 가덕신공항 수의계약 미적대는 이유가 뭔가
가덕신공항 건설 공사는 단순한 개발 사업이 아니다. 부산, 울산, 경남의 숙원이자 국가 물류 체계 도약과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된 국책 사업이다. 하지만 동남권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가덕신공항 개항 일정은 지난해 당초 2029년에서 2035년으로 6년이나 늦춰졌다. 과거 현대건설 컨소시엄과의 수의계약 중단 등이 표면적 이유로 꼽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국토교통부의 안일한 태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부는 최근 대우건설 컨소시엄과의 수의계약 체결을 사실상 결정하고도 절차를 빨리 진행하지 않고 있다. 행정 지연 때문에 중대한 국책 사업 일정이 계속 늦춰지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국토부는 지난 6일 가덕신공항 2차 입찰에 대우건설 컨소시엄만 응찰해 유찰된 뒤, 수의계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이에 대한 공식 발표를 아직까지 미루고 있다. 현재 동남권 주민들은 정부가 조금이라도 더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 개항 일정을 최대한 당겨줄 것을 연이어 촉구하고 있다. 반면 국토부의 일 처리는 지나치다고 할 만큼 늦다. 이미 국토부는 현대건설 컨소시엄과의 계약 과정에서도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주민들의 분노를 키웠다. 그런데도 모든 방안을 동원해 개항을 앞당기기는커녕 이번에도 느긋한 모양새다. 이것은 지역 민심을 모르는척하는 것을 넘어 무시하고 조롱하는 처사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국토부 홍지선 2차관은 지난 20일 가덕신공항 건설 예정지를 방문해 사업 추진 현황을 점검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2035년 개항은 국민과의 약속이므로, 차질 없는 사업 추진을 위해 철저히 관리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정작 사업 진행을 위해 가장 다급한 수의계약 발표와 관련한 언급은 없었다.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국토부의 행정 지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토부는 지난해 가덕신공항 공사기간과 재입찰 결정 과정에서도 장관 보고 일정을 잡지 못해 상당한 시간을 허비했다. 더욱이 과거부터 거듭된 행정 지연이 지금 또 어김없이 재현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가덕신공항 개항 일정을 최대한 앞당겨달라는 부울경 주민들의 요구는 단지 인천공항 접근 불편성이나 김해공항 이용 어려움 때문이 아니다. 가덕신공항 개항이 늦어질수록 공항 경쟁력과 당초 기대 효과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양수산부 이전 등으로 해양강국을 견인할 글로벌 해양도시 도약을 추진 중인 부산의 발전을 위해서는 세계와 연결된 하늘길도 최대한 빨리 구축해야 한다. 국토부는 행정 지연으로 고통받는 부울경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내부적으로 논의돼 사실상 결정된 수의계약을 더 이상 미적댈 이유는 전혀 없다. 국토부의 속도감 있는 행정 추진을 촉구한다.
[사설] 재정 분권 등 핵심 빠진 행정통합법 처리 서두를 일인가
지방 행정체계를 재편할 행정통합 특별법이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3일 대전·충남, 광주·전남, 대구·경북 통합 법안을 심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과 일부 지자체의 우려에도 24일 본회의 처리 수순을 밟겠다는 방침이다. 여권은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지자체장을 선출하겠다는 자체 일정에 맞추기 위해 이달 내 법안 통과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재정 분권 등 핵심 특례 조항이 상당 부분 빠졌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제도의 뼈대만 세운 채 서둘러 입법을 강행하는 모습에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행정통합은 ‘언제 통합하느냐’보다 ‘어떤 내용, 어떤 통합이냐’가 중요하다. 행정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조정이 아니다. 지역 발전 전략과 재정 배분, 주민 삶의 질, 더 나아가 국가 운영 구조를 좌우하는 중대 사안이다. 광역 단위 통합은 행정 효율성, 재정 자율성, 주민 대표성 등 복합 요소가 맞물린다. 그럼에도 재정 분권과 핵심 특례가 충분히 담기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예타 면제, 그린벨트 권한, 특별지방행정기관 이관 등 요구가 반영되지 못했다는 불만도 크다. ‘선통합·후보완’ 방식으로는 실질적 분권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 통합 이후 권한과 재정 특례가 불명확하다면 효율성 명분 역시 힘을 잃는다. 행정통합의 전제는 분권이며, 성패는 법 통과가 아니라 실행의 내용과 그 설득력에 달려 있다. 정치적 파장 역시 가볍지 않다. 여권은 통합지자체장 선출 시간표를 고수하고, 국민의힘은 일방 처리에 반발하며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본회의 당일 맞불집회까지 예고되며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행정통합이라는 장기 과제가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면 정책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제도 개편은 정치적 승부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어야 한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행정통합 특별법은 여야 합의가 중요하다. 행정통합은 대한민국 미래 구조를 설계하는 중대한 과제”라고 했다. 빈말이 아니어야 한다. 행정통합의 기준은 정치 일정이 아니라 정책 완결성과 사회적 합의다. 절차적 정당성과 공감대 형성 없는 속도전은 설득력을 잃는다. 행정통합은 선거용 카드가 아니라 백년대계다. 앞서 부산·경남 시도지사가 요구한 기본법 제정과 주민투표 절차는 통합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통합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중앙정부와 여권은 이를 반발이 아닌 처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통합 이후 권한과 재정이 불투명한 채 덩치만 키우는 방식은 실익을 담보하기 어렵다. 지역 규모 차이를 반영한 재정 구조 개편, 실질적 분권 보장, 민주적 의사결정 체계를 갖춘 기본법이 전제돼야 실행력이 생긴다. 부산·경남 시도지사 등의 요구는 특혜가 아니라 지방자치의 조건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결단보다 숙고다. 중앙정부와 여권은 완성도를 채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관세 더비
미국과 캐나다는 유럽계 정착민들에 의해 형성된 국가다. 8891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을 공유하는 만큼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깊이 얽혀 있다. 15세기 유럽의 ‘대항해 시대’ 이후, 북미 대륙에선 16세기부터 탐험과 식민지 건설이 시작됐다. 영국과 프랑스는 17세기부터 캐나다 지역에서 식민지 경쟁을 벌였다. 프랑스는 캐나다 동부 퀘벡 등에, 영국은 뉴펀들랜드에 식민지를 세웠다. 미국은 1776년 독립 이후 영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외교적 마찰을 빚었고, 이 갈등은 1812년 ‘미영 전쟁’으로 분출됐다. 당시 미국은 영국령 캐나다를 침공했지만, 캐나다는 방어에 성공했다.1867년 캐나다가 자치권을 부여받은 뒤 미국과 캐나다 간 경제·인적 교류는 늘어났다. 19세기 후반 미국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며 캐나다 인구 6분의 1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두 나라는 20세기 발생한 두 차례 세계대전과 냉전에서는 같은 편으로 싸우면서 공고한 동맹을 유지했다. 캐나다는 1994년 미국, 멕시코와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며 미국과 경제적으로 더 밀착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뒤 양국 관계는 냉랭해졌다. 트럼프는 최우방국 캐나다의 물품에 25% 관세를 부과했고, “캐나다가 51번째 주가 되길 바란다”라고 모욕성 발언을 했다. 지난달 16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지며 관세 인하에 합의했다. 트럼프는 이를 문제 삼아 캐나다산 제품에 100% 관세 부과를 발표하며 양국 관계는 더 악화했다.양국의 빙판 밖 정치·경제적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미국과 캐나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지난 23일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결승에서 맞붙었다. 결승전이 ‘관세 더비’로 불린 이유다. 미국 대표팀은 올림픽 아이스하키 최다 우승국(금 9개) 캐나다를 2대 1로 제압하고 46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직후 백악관 공식 SNS 계정은 미국의 흰머리수리가 캐나다 거위를 제압하는 이미지를 게시했다. 트럼프는 ‘트루스 소셜’에 축하 메시지를 올렸다. 미국 여자팀도 지난 20일 캐나다를 꺾으면서 동계올림픽 사상 첫 남녀 동반 우승을 이뤄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20일 비상경제권한법을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교역국에 부과한 상호관세를 무효로 했지만, 트럼프는 멈추지 않을 기세다. 캐나다와의 ‘빙판 위 관세 전쟁’ 승리에 고무된 그가 전 세계를 상대로 ‘빙판 밖 관세 전쟁’을 어떻게 이어갈지 조마조마하다.김상훈 논설위원 ne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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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하나 되니 강했다
지구촌 겨울 축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23일 베로나 아레나에서 열린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를 따내 종합 순위 13위를 기록했다. 목표로 내세웠던 10위 내 진입은 무산됐지만, 14위에 올랐던 2022년 베이징 대회보다 한 단계 도약하며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다. 하지만 메달 색깔이나 종합 순위보다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흘린 땀과 눈물일 것이다. ‘8년 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몇 위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으로 시작하는 주류 회사 광고 카피가 많은 이의 공감을 얻으며 화제였다. ‘근데 신기하게도 영미를 외치던 팀킴의 이야기나 은메달의 아쉬움이 아닌 기쁨을 춤추던 이야기는 또렷이 기억한다’로 이어지는 광고는 ‘성적은 잊혀도 이야기는 계속된다’로 맺는다. 역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순위가 아니라 선수들이 연출한 감동의 드라마일 테다. 이번 올림픽에서 3연패 신화에 도전한 클로이 김을 제치고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스노보드 최가온 선수의 스토리 같은 것 말이다. 최가온의 투혼은 금빛보다 더 찬란했다. 1차 시기 점프 후 크게 넘어지며 머리를 강하게 부딪혀 의료진까지 투입됐지만, 스스로 일어나 다시 보드 위에 올랐다. 2차에서도 넘어지며 대회를 마치는 듯했으나, 마지막 3차에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완벽한 연기를 펼치며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대회 후 뼈가 세 군데나 부러진 상태로 경기를 강행했던 사실이 알려져 놀라움을 더했다.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는 우리 선수들이 만들어낸 화해의 서사가 경기장을 감동으로 물들였다. 세계 최강이던 우리 쇼트트랙은 이번 대회에서 힘과 기술을 겸비하며 급성장한 네덜란드에 발목이 잡혀 고전했다. 반전의 계기를 만든 게 최민정-김길리-노도희-심석희로 구성된 대표팀이 하나 되어 연출한 금빛 질주였다. 마지막 4번 주자 심석희가 1번 주자 최민정을 힘차게 밀어 치고 나가는 모습은 이들의 흑역사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1000m 결승에서 두 선수는 충돌 후 함께 빙판에 넘어지며 메달을 놓쳤다. 이 장면은 3년 뒤 심석희와 코치 간 대화 메시지 유출로 고의 충돌 의혹과 함께 선수 간 불화설을 수면 위로 올리며 빙판계를 흔들었다. 파벌 싸움으로 얼룩진 빙상연맹의 민낯도 드러났다. 심석희에게 2개월 자격정지 징계가 내려졌고, 결국 그는 베이징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다. 여자 계주는 캐나다에 밀려 은메달에 그쳤고 한국 쇼트트랙도 침체에 빠졌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 주장을 맡은 최민정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심석희도 화답했다. 신체 접촉마저 피하던 두 선수는 폭발적 힘을 가진 심석희가 힘껏 밀어주고 최민정이 그 탄력으로 상대 선수를 제치는 전략으로 팀워크를 살려냈다.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 심석희는 빙판 위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고, 최민정은 그런 심석희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하나 되니 개인전도 풀렸다. 1500m 결승 레이스에서는 최민정과 김길리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1,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최민정은 후배의 대관식을 기꺼이 축하했고, 후배는 전설 속 선배에게 경의를 표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 되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쇼트트랙은 흔히 하계올림픽의 양궁과 비교되곤 한다. 파리 올림픽에서 여자 단체전 10연패라는 전대미문의 대업을 이룬 양궁이라고 내분이 없었을 리 없다. 선수 간 갈등을 외부로 표출하지 않고 선의의 경쟁이라는 좋은 자극으로 승화시켰을 뿐이다. 양궁협회는 선수 선발 과정부터 투명성과 공정성을 철저히 지켜 선의의 경쟁과 결과에 승복하는 프로 정신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재도약을 준비하는 빙상계가 새겨야 할 대목이다. 이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집안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는 정치권에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윤석열 내란 선고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국민의힘 내분은 자해 수준이다. 민주당이 이상한 대통령 지지 모임이라는 걸 놓고 벌이는 내분은 권력투쟁이라는 속성상 야당의 내분과는 또 다른 차원의 파괴력을 예고한다. 이런 정치 세력에게 지역 미래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딸에게 전한 최민정 선수 어머니 손 편지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성적보다, 기록보다 지금까지 딸이 버텨온 그 시간 자체가 금메달이라고 격려하는 모정이 뭉클하다. 우리 국민에게는 과정 자체가 금메달이고 감동인 정치를 보는 게 영영 꿈같은 이야기일까.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홍순연의 도시 공감] 생활도시, 도시자원의 연결로 시작
며칠 전 강원도 정선을 다녀왔다. 하루 만에 부산에서 정선을 가는 방법을 찾아보니 그곳으로 가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부산-영천-안동-태백-정선으로 이어지는 길은 버스가 없고 자가운전을 해도 6시간 이상 걸리는 코스였다. 그러던 중 부전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부전역에서 청량리로 가는 열차로 타고 제천에서 내린 뒤 렌트카를 빌려 1시간 정도를 가는 것이 가장 단거리로 편하게 정선으로 갈 수 있는 길이었다. 하루 만에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부전역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찾은 부전역은 활기찼다. 큰 캐리어를 끌거나 보드와 자전거를 들고 타는 이용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부전역은 마산, 순천 방향의 경전선과 강릉까지 가는 동해선, 그리고 중앙선 등 부산을 중심으로 경상남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 공간이다. 기차를 타고 생각해보니 부산도시철도 1호선과 바로 연결되고,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는 부전시장, 넓은 부산시민공원 내 문화시설 등 걸어서 갈 수 있는 범위 내에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공간들이 이미 구축되어 있었다. 교통을 중심으로 도시 공간을 연결하고 대부분의 일상생활이 가능한 공간이 만들어진 도시, 부전역 주변이 바로 생활도시(Compact Life city) 개념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전역 주변 단일 동선으로 묶는 문화·자연·경제 기능 통합 설계로 기존 공간 더 알차게 쓰는 전략을 최근 일본 오사카의 ‘그랜드 그린 오사카’라는 사업이 마무리 되었다. ‘그랜드 그린 오사카’는 JR 오사카역 북측 ‘우메키타’ 지역에 조성된 대규모 도심 복합 개발 지구이다. ‘공원 안에 도시를 만든다’는 기치 아래 랜드스케이프 퍼스트(Landscape-First: 공원이 도시의 동선과 기능을 결정하는 중추 역할) 접근법으로 공간을 구축했다. 그린의 의미도 단순한 컬러가 아닌 혁신과 교류의 매개체로 정의하여 공간 구성을 진행하였다. 인상 깊었던 것은 건물 사이에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공원을 먼저 설계하고 그 주변에 도시 기능을 배치한 것이다. 우메키타 공원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압도적인 규모의 녹지 공간으로, 분수와 잔디 광장이 있어 시민과 관광객의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그 외 라이프스타일 매장, 미식 공간인 ‘타임아웃 마켓 오사카’ 등이 입점해 있으며 문화 및 혁신 공간으로 컨퍼런스 홀, 기업 연수 시설, 혁신 플랫폼인 ‘JAM BASE’ 등이 포함되어 비즈니스와 문화가 융합된 공간을 제공하는 일명 생활도시 개념이 도입된 사례이다. 오사카처럼 정돈된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부전역 주변은 이미 완성된 ‘부산형 그랜드 그린 오사카’와 같은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전국 교통망까지 확보하고 있으니 새롭게 조성하지 않고도 부산 생활도시의 모습이 구축된 셈이다. ‘그랜드 그린 오사카’가 역세권 부지를 고밀도로 개발하여 15분 거리 내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게 하는 ‘안으로 응축하는 전략’을 세웠다면 부전역은 ‘밖으로 연결하는 전략’까지 가능한 장소인 것이다. 이러한 기대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통, 공원, 문화시설, 전통시장 등 점처럼 되어 있는 주변부를 자연스러운 동선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 이미 구축된 개별 거점시설들의 끊어진 도로 기능을 선형적으로 연결할 방법을 우선적으로 정립하였으면 한다. 이를 기반으로 문화, 자연, 경제 기능을 통합적으로 계획하는 방안을 기대한다. 앞으로 부산시가 복합환승센터 계획을 준비 중에 있으니 교통연결망과 보행권에 대한 고민과 함께 이미 구축된 거점공간의 역할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길 바란다. 더불어 부전시장의 역사성과 고유성을 살리면서 새로운 방문객을 유인하는 다각적인 준비 작업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아마도 기존의 고객이 아닌 외부 방문객이 많아짐에 따라 다양안 소비자 패턴에 적응 가능한 상권으로 바뀌어야 한다. 부전시장은 오래전 부산 근교에서 농·수·축산물을 싣고 온 보따리장수들이 새벽을 열던 곳, 명태 대가리 골목 등 오래된 노포가 있는 곳에서 SNS를 통해 유명세를 얻고 있는 명란김밥, 부전떡갈비 등이 즐비한 곳으로 이미 바뀌고 있다. 이러한 스토리와 장소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변화를 통해 시장이 도시 발전소 역할을 담당했으면 한다. 부전시장의 가치를 알아본 창업자들이 몰려들어 새로운 실험을 하는 장소로, 다양한 창작가들이 협업하는 장소로 확장되어가는 시장을 꿈꾸게 된다. 시민의 일상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공유할 수 있는 생활도시 모델은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닌 지역의 스토리와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기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기존 공간 기능을 재구성하는 재생을 통해 외형만 더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공간을 더 알차게 쓰는 생활도시 전략이 필요하다.
[데스크 칼럼] AI 시대에도 여행은 결국 '사람'이 만든다
하루 일정에 1만 원. 일본 오사카 여행에서 가장 잘 쓴 돈이었다. SNS에서 우연히 알게 된 개인 여행 큐레이터에게 맞춤형 일정을 맡겼다. 메시지를 보내 취향을 설명하니, 교통·동선·맛집을 모두 반영한 3박 4일 일정표가 도착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피드백을 주면 곧바로 수정됐다. 챗GPT 같은 인공지능도 여행 일정을 잘 짜주는 시대다. 검색 몇 번이면 인기 관광지와 맛집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경험은 달랐다. 단순한 정보 나열이 아니라 ‘내가 어떤 여행자인지’를 먼저 묻는 과정이 있었다. 여행자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걷는 것을 좋아하는지, 줄 서는 것을 싫어하는지, 사진을 중시하는지, 어떤 목적의 여행인지, 현지 분위기를 선호하는지 등등을 세세하게 물었다. 그 결과 나온 일정은 놀라울 만큼 정교했다. 라멘, 야키니쿠, 카레우동, 장어덮밥, 규카츠, 오코노미야키, 다코야키, 텐동까지, 일본과 오사카를 대표하는 음식들이 하루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배치돼 있었다. 무거운 메뉴와 가벼운 메뉴, 대기가 있는 곳과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곳, 관광지와 골목 상권이 균형 있게 섞였다.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의자가 여섯 개뿐인 작은 텐동집이었다. 바로 앞에서 튀김을 튀기고 소스를 끼얹어 손을 뻗어 건네주는 구조였다. 들리는 언어는 대부분 일본어였다. 여행자가 아니라 잠시 현지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곳은 지하철역과 이어진 지하상가의 우동집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인근 직장인들이 몰려들었고, 여행자인 나도 그들 사이에서 줄을 섰다. 특별한 연출도, 관광객용 메뉴도 없었다. 그저 도시의 일상이 흐르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한 끼는 생생한 기억으로 남았다. 일정은 음식뿐 아니라 이동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복잡한 지하철역에서 어느 출구로 나와야 하는지, 어느 노선을 타야 가장 효율적인지, 몇 정류장을 이동해야 하는지까지 안내돼 있었다. 여러 교통패스 가운데 일정에 맞는 카드도 추천했다. 그 일정표를 따라 움직이는 동안, 여행은 더 이상 ‘검색의 결과’가 아니라 ‘설계된 경험’처럼 느껴졌다. 오사카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관광객 동선에서 살짝 벗어난 골목과 생활권도 엿볼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자연스럽게 부산을 떠올리게 했다. 부산에도 지하철역과 연결된 상가가 있고, 점심시간마다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식당들이 있다. 서면 지하상가, 남포동 일대, 동래·부전·전포 골목, 범일동과 초량의 오래된 식당들까지. 관광지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도시의 결이 살아 있는 공간은 이미 충분하다. 문제는 ‘없는 것’이 아니라 ‘잘 엮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에게 이런 맞춤형 큐레이션은 더욱 필요하다. 언어와 정보의 장벽 속에서 누군가의 설계는 여행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부산에는 로컬 크리에이터도 있고, 여행 블로거와 가이드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통역 인력과 관광 스타트업도 활동하고 있다. SNS 계정을 통해 자신만의 코스를 제안하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가능성의 씨앗은 곳곳에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것을 하나의 경험으로 묶어내는 일이다. 어디가 맛있는지 알려주는 수준을 넘어, 어떻게 움직이면 좋은지, 어떤 순서로 만나야 더 매력적인지, 어디에서 잠시 일상에 섞일 수 있는지까지 안내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관광은 더 많은 시설을 짓는 일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공간과 일상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매력은 달라진다. 지하상가 우동집에서의 점심 한 끼가 여행의 기억이 되듯, 부산의 평범한 점심시간도 충분히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일정과 정보를 손쉽게 제공하는 시대다. 그러나 도시의 맥락을 읽고, 동선을 설계하고, 여행자가 일상 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에 가깝다. 부산에도 그런 가능성은 이미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이미 시작된 작은 시도들이 서로 연결된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며 도시의 표정은 달라질 수 있다. 관광의 경쟁력은 새로운 랜드마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지하철역과 이어진 우동집 한 곳을 어떻게 소개하느냐에서 시작된다. 부산은 이미 충분한 재료를 갖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가능성을 더 많은 여행자의 기억으로 만드는 일이다.
[노트북 단상]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와 부산시는 해운대1·2지구 2구역(4694세대)과 화명·금곡지구 12구역(2624세대)을 노후계획도시 정비 선도지구로 선정했다. 용적률 완화와 용도지역 변경 특례, 신속한 인허가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지니 ‘수혜’를 입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특히 해운대 그린시티 일대 아파트에 관심이 집중됐다. 30년이 다 된 단지들의 집값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간 수도권 1기 신도시에서만 추진됐던 노후계획도시 사업이 지방에서 추진되는 첫 사례인 만큼 기대도 커졌다. 호재인 건 분명하겠으나, 장밋빛 미래만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였던 분당이나 일산의 소위 ‘대장 단지’에서도 갈등으로 공회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제자리 재건축을 하느냐 아니면 통합 분양을 하느냐를 두고 주민들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서다. 상대적으로 입지가 좋은 단지 주민들은 기존 아파트 자리를 보장해주는 제자리 재건축을 선호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주민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다. 정부나 지자체는 이런 갈등을 아마도 예상했겠지만, ‘주민들끼리 갈등을 해소하라’는 식으로 뒷짐만 진다. 여러 단지들이 통합해서 와야 선도지구 선정에 유리하다고 홍보했던 국토부에게 ‘사기를 당한 기분’이라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정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마저 이런 실정인데, 일반 재건축 시장은 더욱 험난할 수밖에 없다. ‘헌 집 줄게 새집 다오’라는 말이 절로 나오던 과거의 재건축 사업장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분담금 폭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합원들이 추가로 내야 하는 돈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자재비와 인건비 등이 크게 올라 건설사들이 조합에 과도한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수억 원씩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한다는 설명에 일부 원주민들은 ‘이럴거면 재건축을 할 이유가 없다’며 돌아서기도 한다. 분담금 산정 방식이 복잡하고 불투명해서 이를 둘러싼 갈등도 적지 않다. 한국부동산원이 공사비 검증 절차를 수행하고는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부산의 재건축 최대어로 손꼽히는 수영구 삼익비치타운은 지난해 4월 특별건축구역 지정을 통한 99층 초고층 아파트 건립을 포기했다. 과도한 분담금과 늘어지는 공사 기간 등이 주된 이유였다. 지방 최초의 ‘아크로’ 브랜드 아파트로 관심을 모았던 해운대구 삼호가든 재건축 역시 공사비를 둘러싼 건설사와의 갈등으로 시공 계약을 해지했다. 일각에서는 재건축 조합원들이 무리하게 욕심을 부려 화를 자초하고 있다는 식의 비난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수십 년 전부터 그곳에 터를 잡았던 주민들은 물론 자산 증식을 위해 투자를 한 투자자 모두 손가락질 받을 대상은 아니다. 도시의 관점에서도 낡고 불편한 구시가지를 어떤 형태로든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다양한 형태로 곳곳에 산재한 갈등을 이대로 두고만 본다면 결국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다. 정부나 지자체가 ‘갈등을 해결해서 가져와라’는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할 때가 아니다. 새로운 정책은 과감히 도입하고, 해묵은 규제는 완화하며 풀어가야 한다. 헌 집 주고 새집을 얻는 시대는 끝났다고 하더라도, 제도권 내에서 정당한 투자를 한 이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려서는 안 될 일이다.
[중앙로365] 축제 뒤, 부산 자본은 어디로 갔는가
해마다 9월이면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영화인을 불러 모으고, 11월엔 지스타가 벡스코를 가득 채워도, 사람과 함께 몰려온 자본은 축제가 끝나는 순간 빠져나갔다. 흥행은 부산에서, 수익은 수도권에서. 이 구조가 반복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투자를 구하려면 서울로 가야 했고, 자본이 있는 곳으로 기업도 따라 움직였다. 부산은 무대를 제공했지만 금융의 의사 결정권은 끝내 지역 안에 없었다. 부가가치가 결정되는 순간마다, 부산은 바깥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했다. 이번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부산 유치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첫 시험대다. 금융위원회 예비인가를 받은 KRX(한국거래소) 컨소시엄에는 코스콤과 BNK금융 계열사 등 지역 금융기관이 참여했다. 설계 단계부터 지역이 참여했다는 점이 이전과 다르다. 본인가 요건 이행과 시스템 구축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지만, 기회의 문은 열렸다. 그 문을 결과로 이어붙이는 것은 이제 부산의 실행력에 달려 있다. 조각투자 거래소는 자산을 쪼개 발행하고 시장에서 유통하는 자본 순환의 마지막 고리이자, 그 자산을 담는 그릇이다. 그렇다면 그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부산에는 이미 자산이 있다. 영화제와 지스타를 통해 부산이 공들여 키워온 콘텐츠 IP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제에서 발굴된 유망 콘텐츠나 지스타를 통해 가능성을 증명한 게임들은 흥행 잠재력이 충분함에도 자금 조달을 위해 서울의 벤처캐피털을 찾아가야 했다. 조각투자거래소가 생기면 상황은 비로소 달라진다. 영화 판권이나 게임의 미래 수익권을 조각투자 증권으로 발행해 시민과 투자자가 직접 참여한다. 흥행의 결실이 부산의 거래소를 통해 지역에 남는 구조를 만든다. 행사를 여는 도시에서 자본을 설계하는 도시로, 그 실질적인 시작점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 변화의 의미는 금융 지형에 그치지 않는다. 부산의 창작자와 제작사가 외부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지역 시장 안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생태계의 변화다. 축제가 열릴 때 자본이 스쳐 지나가는 도시가 아니라, 축제가 끝난 뒤에도 자본이 남는 도시. 그 그림을 완성할 자산은 콘텐츠에만 있지 않다. 콘텐츠가 출발점이라면, 부산항은 그 다음 무대다. 국내 최대 환적항인 부산항은 수산물·원자재·소비재가 쉼 없이 오가는 물류의 심장이지만, 그 흐름에서 파생되는 수익권을 지역이 직접 설계한 적은 없었다. 수산물 유통 수익권이나 해운 화물에서 발생하는 미래 수익 구조를 조각투자 증권으로 발행해 부산의 거래소에서 거래한다면, 부산항은 자본의 무게를 실어 나르는 통로에서 자본이 만들어지는 시장으로 바뀐다. 콘텐츠와 물류, 두 축이 하나의 자본시장 안에서 연결될 때 부산의 그림은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나 인프라는 시작일 뿐이다. 진짜 과제는 역량의 지역화다. 발행의 구조 설계부터 유통의 리스크 관리, 자산 표준화와 투자자 보호까지, 그 역량이 지역 안에서 갖춰지지 않는다면 플랫폼만 부산에 있고 핵심 판단은 외부에서 이뤄지는 또 다른 분업 구조가 반복될 뿐이다. 이번에는 기능이 아니라 역량이 남아야 한다. 인력은 기회를 따라 움직이고, 기회는 시장을 따라 형성된다. 부산시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일은 지역 대학·연구기관과 함께 전문 인력 양성 경로를 설계하는 것이다. 부산에 조각투자거래소가 문을 여는 날, 그 안을 채울 사람이 외부인뿐이라면 지역화는 허울에 불과할 수 있다. 조각투자는 아직 대중의 신뢰를 충분히 얻지 못한 시장이다. 그렇기에 설계의 출발점은 속도가 아니라 신뢰여야 한다. 이상거래 탐지, 투명한 공시, 안정적인 수탁·결제 구조는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이 체계를 외부 용역에만 의존할 경우, 거래소는 또 다른 취약성을 안게 된다. 한 건의 사고가 수년간 쌓아 올린 평판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다. 지역 대학과 기술 기업이 보안과 운영 역량을 지역 안에서 키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뢰가 먼저 쌓여야 부산의 이야기가 투자 상품이 되고, 부산의 항만이 포트폴리오가 된다. 부산은 오랫동안 선언의 도시였다. ‘동북아 해양수도’, ‘글로벌 허브도시’, ‘스마트시티’. 비전은 매번 화려했지만 구조로 이어지지 않았고, 자본은 끝내 머물지 않았다. 조각투자거래소 유치가 그 반복과 다른 것은, 이번엔 선언이 아니라 설계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발행·유통·수탁·보안이 지역 산업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자본은 비로소 머문다. 그 연결을 완성하는 것이 지금 부산의 과제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자본이 남는 도시. 그 답을 부산이 스스로 써야 할 때다.
[편집국에서] 헌법 정신을 생각하다
지난 주말,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 정책이 일단 멈춰 섰다. 지난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나라에 부과한 상호 관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번 판결로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이어져 온 ‘관세 전쟁’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이번 판결에서 미국 연방대법관 9명 중 6명은 트럼프의 결정이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라고 봤다. 관세는 곧 세금이며, 세금을 부과하고 걷을 권한은 의회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 헌법 1조는 세금을 부과하고 걷을 권한은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통령은 헌법상 고유한 과세권을 갖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동시에 트럼프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세금을 걷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트럼프가 ‘마가(MAGA·미국을 더 위대하게)’라는 구호와 함께 미국 경제 발전을 위한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에 위배되는 결정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자국의 사법부 최고기관을 즉각 공격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대한 수치”라고 대법원의 결정을 비난하며 대법원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무역법을 동원해 상호 관세를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트럼프에게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미국의 사법부와 헌법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헌법이 존중받지 못하는 모습은 한국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9일 12·3 비상계엄을 일으킨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를 인정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법원은 윤 전 대통령이 벌인 비상계엄은 “국헌 문란의 목적이 인정되는 폭동”이라고 판단했다. 비상계엄이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켰다고도 판시했다. 이에 대한 한국 제1 야당 대표의 발언에서 ‘헌법 존중’은 없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계엄은 내란이 아니다”, “아직 1심 판결일 뿐이다”며 선고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판결문 곳곳에서 발견되는 논리적 허점들은 지귀연 판사가 남겨놓은 마지막 양심의 흔적”이라며 사법부의 판단을 비꼬았다. 대한민국 사법부 판사로, 오랜 기간 헌법에 근거해 자신의 경력을 쌓고, 삶을 이어온 그에게서 대한민국 헌법을 존중하는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국 사법부의 12·3 계엄에 대한 첫 판결은 어떠한 정치적 목적과 명분을 앞세우더라도, 국가의 존립과 국가기관의 권능을 흔드는 행위는 엄벌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판결이다. 처벌의 수위에 대한 개인별, 정치 집단별 의견 차이는 있다. 미국 사법부가 내린 트럼프의 정책에 대한 판결 역시 행정부의 긴급권한 남용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과 미국에서 벌어진 최근의 상황을 지켜보며 헌법을 다시 생각해 본다. 헌법학자들은 헌법을 국가 권력의 ‘사용 설명서’이자 ‘사슬’로 비유한다. 헌법은 국가 권력이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부터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지를 정하는 최고 규범이다. 대한민국 입법·행정·사법의 권력자들이 그들의 선서에서 각각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본인은 법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라고 비슷한 내용의 선서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한 헌법학자는 ‘헌법은 최악의 세상을 막는 숭고한 힘이자, 최선의 삶을 향한 절대적 상식’이라고 정의한다. 헌법은 언제나 존중 받아야 하며, 헌법은 하늘에 둥둥 다니는 조문이 아닌 국민의 생활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는 헌법 질서를 위기에 몰아넣는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겪었다. 헌법이 무너지는 위기를 겪을 때마다 시민들을 거리로 나섰고, 법원은 이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때론 법원이 무너질 때는 국회가 법원을 견제했다. 행정이 입법부의 권한을 잠식할 때는 사법부가 나서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헌법이 설계해 놓은 ‘구조적 엄벌’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상호 관세 부과에 제동을 건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경제적 파장이 아무리 크더라도 헌법이 의회에 부여한 권한은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정한다. 헌법을 뒤흔드는 행위는 단순한 법 위반이 아니다. 국민 스스로가 세운 나라의 존재 근거를 부정하는 일인 것이다. 헌법은 정치적 유혹이 클수록, 경제적 이해관계가 클수록 더욱 단단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법부와 미국 사법부의 이번 판결은 의미가 크다. hangang@busan.com
“3월 중 이전 로드맵 내라” 해수부, 산하기관도 박차
민주당, 대구경북도 ‘전격 보류’…행정통합법 전남광주만 처리될 듯
윤석열 무기징역 판결에 항소… 특검도 항소 방침
부산 동구 체류인구 58만 명 ‘전국 2위’
[단독] 동남권 연관 산업 육성 뒷받침 북극항로 특별법 '완결판' 뜬다
‘분권’ 빠진 행정통합법 추진에…대전·충남·TK 반발 확산
복지 패러다임 바꿀 통합 돌봄, 인력·조직 없이 불안한 첫발
“장애인 의사소통 센터 조성” 목소리, 7년 넘게 메아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