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갈 길 먼 해수부 기능 강화, 황종우 장관 어깨 무겁다
전재수 전 장관 사퇴 이후 3개월이 넘게 수장 공백 상태였던 해양수산부에 새 장관이 취임했다. 25일 부산 해수부 청사에서 취임식을 가진 황종우 신임 해수부 장관이 그 주인공이다. 행정고시 합격 이후 줄곧 해수부에서 잔뼈가 굵어온 공무원 출신인 그의 장관 기용을 두고 지역에서는 해수부의 현실을 잘 아는 안정형 인물의 기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부산 이전 직후 벌어진 수장 공백 상태가 다소 길었던 부처 특성이 반영됐겠지만 해양강국 대한민국으로 가는 엔진 역할을 해야 할 해수부의 신임 장관에게 걸린 기대는 결코 적지가 않다. 당장 해수부의 비전과 위상을 정립해야 할 숙제부터가 그 앞에 놓여 있다. 황종우 신임 해수부 장관의 취임 일성은 ‘부울경 해양수도권 구축’이었다. 정부의 5극 3특(5개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도) 전략 중에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과제인 동남권 지역 해양수도권 육성에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지역에서 성장동력을 창출해 지역을 살림으로써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성에 따르겠다는 점은 원론적으로 너무나 옳은 방향 설정이다. 이후 그가 밝힌 수산업 혁신과 북극항로 개척 등을 통한 해운·항만산업 경쟁력 강화 등도 해수부의 역할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의 취임 일성에 해수부의 부산 이전과 함께 줄곧 거론돼 온 해수부의 새 비전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다소 아쉽다. 해수부가 부산으로 전격 이전한 것은 해양 정책의 현장성과 실효성을 모두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현장성은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해운 대기업들의 잇단 본사 부산 이전과 해수부 산하 기관들의 부산 이전 등이 현실화함으로써 점점 강화하는 중이다. 문제는 실효성의 강화 측면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선·해양플랜트(산업부), 해양물류(국토부), 해양레저(문체부), 해양환경(환경부) 등으로 분산된 해양 정책들을 한시라도 빨리 한 데 모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해수부 기능 강화’라는 명목으로 해수부 부산 이전과 함께 제기돼 온 이 같은 실효성 강화에 대해 신임 장관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이다. 해수부 부산 이전은 단순히 정부 부처 하나를 지역으로 옮긴다는 뜻이 아니다.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은 해양경제가 국가 경제의 중요한 축이다. 하지만 해수부 예산은 국가 예산의 1%에 불과할 정도로 해양 정책에서 해수부의 역량 발휘는 늘 아쉬웠다. 이재명 정부가 해양강국과 지역 균형발전 실현을 내세우며 해수부 부산 이전을 감행한 이상 부처의 새 비전과 위상 정립은 해수부의 시급한 과제가 됐다. 그 과제를 해결하라는 자리가 해수부 장관이다. 신임 장관은 취임식에서 직원 노고에 눈물을 내비쳤다. 아무쪼록 장관의 과제 해결 노고에 부산지역 모두가 눈물을 내비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길 간절히 당부한다.
[사설] 나눠 먹기식 금융중심지, 멀어지는 '금융 허브' 부산
부산은 2009년 금융중심지로 지정됐다. 이후 부산은 부산국제금융센터를 구축하는 등 서울과 차별화된 해양과 파생금융 위주의 특화 전략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부산 금융중심지 성장은 더디다. 이전 민간 금융기관이 전무한 데다 정부와 여당이 한국거래소 코스닥 분리를 추진하면서 부산은 빈껍데기 금융중심지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외 금융사들이 최근 국민연금공단이 자리한 전주에 사무소를 잇따라 개소했다. 이와 관련, 전북은 지난 1월 금융위원회에 제3 금융중심지 지정을 신청했다. 정부가 나눠 먹기식 정책을 기정사실화했다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해외 금융사인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에 이어 블랙록이 국민연금과의 협업을 강화하고 상시 소통 채널을 구축할 목적으로 최근 전주에 사무소를 열었다. 골드만삭스도 전주 사무소 개설을 검토 중이다. 국내 금융권도 KB금융그룹이 전북에 ‘KB금융타운’ 조성을 발표한 데 이어 신한금융 등도 전북에서의 사업 확대를 추진 중이다. 전주 국민연금공단을 중심으로 전북 자산운용 생태계가 확장되면서 제3 금융중심지 지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반면 부산으로서는 지난 17년 동안 공들인 금융 기반이 흔들리면서 ‘글로벌 금융 허브’ 도약이라는 비전도 힘을 잃을 것으로 우려된다. 부산은 현재 강력 반발 중이다. 이대로 가면 부산 금융중심지의 위상과 기능 저하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달 23일 국회를 방문해 정부가 추진하는 제3 금융중심지 지정에 대해 “국가 금융 경쟁력을 저해하는 나눠먹기식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합당한 지적이다. 금융정책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국가 전체 금융 경쟁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무척 큰 금융중심지 분산 정책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사안이다. 더욱이 이미 전북의 금융중심지 계획은 2019년과 2021년에도 인프라 부족 등의 이유로 무산됐다. 국가 정책이 일관성을 잃을 때 혼란만 가중된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역사적 교훈이기도 하다. 전북 금융중심지 재지정 여론은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연금공단 이전 효과 확대를 주문하면서 점화됐다. 이 대통령의 당부는 수도권 일극 타파와 지역 균형발전 취지에서 무척 합당하다. 하지만 부산 금융 생태계가 안정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전략 중첩이 불가피한 제3 금융중심지를 만드는 것은 균형발전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떡고물을 나누듯 금융기관을 분산하는 것은 부산과 전북 모두에 장기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칠 뿐이다. 가뜩이나 산업은행 이전 약속이 불발되면서 부산 민심은 극도로 격앙되어 있다. 금융허브 도약은 부산 발전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정부가 정치 논리를 빌미로 부산의 미래를 짓밟지 않기를 당부한다.
[사설] 속도 내는 글로벌허브특별법, 이럴 걸 지금껏 끌었나
현역 시장의 삭발 사태까지 부른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글로벌법) 국회 통과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며칠 전까지 국회 소위 안건 상정조차 하지 않던 여권이 24일 갑자기 소위에서 안건 처리를 해서다. 여권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당 지도부가 직접 나서서 국회 우선 처리 방침까지 밝혔다. 이대로라면 글로벌법 국회 통과는 시간 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수년 동안 국회에서 줄곧 외면만 당하던 글로벌법의 통과는 반가운 일이지만 글로벌법을 두고 벌어진 그간의 행태들은 부산 시민들로서는 참담함을 금치 못하게 한다. 지방선거 코앞까지 떠밀린 부분도 뒷맛이 개운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24일 행안위 소위에서 글로벌법 안건을 처리했다. 안건 상정조차 아예 외면하면서 현역 시장의 삭발 사태까지 불렀던 그동안의 행보에 비춰보면 놀라울 정도의 태세 전환이다. 민주당은 그 과정에서 법안을 공동 대표발의한 전재수 의원 요청에 원내대표가 직접 나서서 “조속히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까지 보탰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글로벌법 처리 과정에서 현역 시장에겐 ‘무능’ 이미지를, 여당 유력 시장후보에겐 ‘실행력’ 이미지를 씌우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민들은 특별법 통과 하나를 놓고도 기표를 위한 해석에 골몰해야 할 판이 됐다. 2024년 5월 발의된 글로벌법은 부산 국회의원 18명 전원이 공동발의하고도 2년 동안 국회 문턱을 조금도 넘지 못 했다. 국회에서 외면만 당한 것이 아니라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한 번 폐기된 뒤 22대 국회에서 새로 발의되면서 법안 문구까지 개악됐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21대 발의 땐 ‘한다’라는 기속행위가 법안 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 반면 22대 발의 내용에선 문구가 ‘할 수 있다’는 재량행위로 대거 바뀌었기 때문이다. 법률상 기속행위로 정해 놓은 경우에도 예산 불비 등의 이유로 시행이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점을 감안하면 재량행위로 바꾼 것은 ‘하지 않겠다’는 뜻의 완곡한 표현으로까지 읽혔다. 우여곡절 끝에라도 글로벌법의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고무할 만한 일이다. 대표적인 지역 특화 특별법으로서 부산을 물류·금융·디지털 첨단산업의 국제 허브로 조성하기 위한 규제특례·재정지원·거버넌스 체계를 일괄적으로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권 유력 시장후보가 나서자 일사천리로 바뀌는 여권 당 지도부의 태도를 접하면 ‘이럴 걸 지금까지 왜 끌었나’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솔직한 심정이다. 글로벌법만 국회를 통과하면 부산시민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일하다. 글로벌법이 발의 이후 어떻게 변질되고 좌절됐는지를 시민들은 너무나 똑똑히 보아 왔다.
[밀물썰물] 천궁과 비호
천궁-II는 2012년부터 국내에서 개발된 중거리 지대공 유도탄이다. 적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유도무기체계라 할 수 있다. 개발 단계에서는 항공기 요격에 초점을 맞춘 기본형과 탄도탄 요격까지 가능한 파생형 등 두 가지 모델 개발을 염두에 뒀으나 기술 발전으로 2017년까지 탄도탄 요격 쪽으로 기능을 몰아서 업그레이드했다.우리 기술로 개발한 그 천궁-II가 이번 중동 전쟁에서 진가를 발휘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하늘에서 이란이 쏜 탄도미사일을 96%나 맞춰 떨어뜨리는 기염을 토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공방어는 천궁-II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미국 패트리어트 미사일 등 다양한 방공무기의 복합 활약으로 봐야 하지만 천궁-II의 이번 기록은 실전에서 획득된 데이터라 더욱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함으로써 얻은 실전 경험 못지 않은 실전 데이터를 확보해서다.1기 가격이 60억 원에 이르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4분의 1 가격인 천궁-II의 활약상에 고무된 아랍에미리트는 천궁-II 미사일 30여 기를 빨리 받으려고 대구로 대형 수송기를 직접 보내기까지 했다. 아랍에미리트가 한국에 원유 최우선 공급을 약속하고 2400만 배럴에 이르는 원유를 공급하기로 한 것도 이에 따른 우호적 반응의 연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최근 들어 중동 전쟁은 탄도미사일과 함께 소형 자폭 드론을 무더기로 날려 보내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대당 3000만 원인 드론을 요격하기 위해 수십억 원짜리 요격 미사일을 날려야 하는 상황이 되자 아랍에미리트는 한국의 비호(복합) 수출을 요청하고 나섰다.비호는 장갑차에 30mm 기관포를 장착한 무기로 1996년 북한의 AN-2 등 레이더 감시망에 포착되지 않는 초경량 저고도 기습 침투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2010년 신궁 지대공 미사일을 추가 장착해 비호복합으로 불리게 됐다. 수km 밖은 신궁이, 근접 거리는 산탄 기관포가 처리하는 체계다. 신궁 한 발에 2억 원, 기관포 한 발에 5만 원이니 요격 미사일과 비교할 수 없는 가성비를 지녔다.천궁-II에 이어 비호복합까지 중동 전쟁에 투입된 것을 두고 국내에선 수출 실적에만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수출 실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사일 요격이나 무인기 격추와 관련한 실전 데이터 확보다. 그것을 통해 국방력을 더욱 키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이상윤 논설위원 nur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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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식의 디지털 광장] AI 파고,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2006년 3월의 기억이다. 부산일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인터넷뉴스부가 닻을 올렸다. 종이 신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위기감이 신문사마다 팽배하던 시절, 인터넷 뉴스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었다. 마침 미디어 산업의 기술 혁신을 향한 정부의 지원이 맞물렸다. 그 지원금으로 산 것이 소니사의 캠코더 PD170이었다. 흔히 신문기자는 ‘펜 기자’로 불리며 취재수첩을 쥐고 현장을 누빈다. 그 무렵의 기자는 펜 대신 디지털카메라와 묵직한 캠코더를 어깨에 멨다. PD170은 이제 중고 장터에서도 자취를 감춘 유물이 되었지만, 당시 기자에겐 전장을 누비는 군인의 K2 소총과도 같은 존재였다. 기자회견과 선거 유세장, 각종 집회와 스포츠 경기장은 물론이고 금정산의 험한 등산로나 낙동강의 물줄기까지, 말 그대로 산과 들을 종횡무진했다. 동료들이 키보드로 기사를 써 내려갈 때, 영상 편집 프로그램 앞에 앉아 원본 영상을 자르고 붙이며 자막을 입혔다. 조회수나 ‘좋아요’ 같은 숫자에 연연할 필요가 없던 시절이었다. 지면의 한계를 벗어나 생생하게 움직이는 동영상 기사는 그 자체로 신문사 안팎에서 주목을 받았다. 3G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교체되던 시기는 또 다른 분기점이었다. 굳이 무거운 PD170을 들지 않아도 스마트폰 하나면 고화질 영상을 담아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신문사는 텍스트 기사 외에도 기자들에게 끊임없이 동영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사만 쓰던 기자는 이제 사진도 찍고 영상도 챙겨야 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했다.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멀티 저널리즘’ 혹은 ‘백팩 저널리즘’이라고 이름표를 붙여 분석하곤 했다. 물리적인 노동 강도는 몇 배로 늘어났고 어깨는 늘 무거웠지만, 미디어 격변기를 헤쳐 나가는 첨병이라는 자부심으로 고단함을 견뎌냈다. 2010년 1월, 멀티뉴스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개별 신문사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해두고 방문하던 ‘닷컴 시대’가 저물고, 네이버를 필두로 한 포털의 위세가 나날이 강해지던 때였다. 포털의 검색창 아래에 자사의 기사를 한 줄이라도 더 걸기 위해 언론사들은 이른바 ‘실시간 검색(실검)’ 기사를 쏟아냈다. 매일 아침 기사 트래픽 성과가 사내 게시판에 공지되었고, 기자의 이름은 조회수에 따라 내림차순으로 호명됐다. 지면에 실린 공들인 기사보다 실검 기사의 조회수가 압도적으로 높다 보니 기자 사회 내부에서도 고민과 갈등이 깊어졌다. 트래픽과 클릭으로 상징되는 ‘포털 저널리즘’은 정통 저널리즘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미디어 업계는 이를 ‘불가항력적인 대세’로 받아들였고, 언론 학계에서는 ‘저널리즘의 위기’라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수년간 인터넷·멀티 뉴스 업무를 떠났다가 디지털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포털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관전평과 포털의 기침 한 번에 언론사가 앓아눕는 증세가 공존했다. 그 간극 사이로 유튜브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저널리즘’의 완장을 차고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기술 혁신이라는 파도가 덮칠 때마다 저널리즘은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응전해 왔다. 생존을 위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파고에 무릎 꿇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지금 마주한 AI 저널리즘은 이전의 변화와는 결이 사뭇 다르다. AI는 법정근로시간을 따지지 않고 출퇴근도 없으며, 시간외수당을 걱정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신문기자들만의 안식일인 ‘신문의 날’이나 노동자의 기념일인 ‘노동절’에도 쉬지 않는다. 제목을 뽑고 기사의 뼈대를 잡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취재 아이템까지 제안한다. 언론사마다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선을 긋고 있지만, AI는 이미 그 선을 넘어 아득히 앞질러 간다. 관망하는 시선 속에 변화의 움직임이 조금씩 곳곳에서 나타난다. AI기술 도입에 따른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깃발을 든 미국 영화 작가와 배우들, 그리고 휴머노이드 로봇의 일방적인 작업 투입을 경계하는 노조의 목소리.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의 도구로 변질된 AI 기술을 비판하며 연대하는 개발자들의 소식 또한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를 넘어 ‘로봇 칼라’라는 조어가 등장한 지금, 사람이 AI를 쓰는 것이 아니라 AI가 사람을 활용하는 시대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인간 사이의 연대다.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기자의 체온과 현장의 숨소리 그리고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야말로 저널리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박노해 시인이 노래했듯, 거친 기술의 파고 앞에서도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각자도생의 AI 시대, 다시 인간의 연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K컬처의 외연 확장과 부산의 과제
최근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무대를 둘러싼 담론이 뜨겁다. 디지털 플랫폼의 실시간 피드에는 찬사보다 날 선 비판들이 더 날카롭게 박힌다. 과도한 보안 시스템과 경직된 통제가 시민들의 일상적 권리를 침해했다는 항변부터, 한국적 정서에 무지한 해외 연출진이 빚어낸 미학적 패착이라는 지적까지 다양하다. 더욱이 지역 상권이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신기루에 그쳤고, 숙박업계의 기회주의적 폭리는 ‘관광 도시’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이러한 소모적 논란의 이면에서 우리가 반드시 포착해야 할 본질적 함의는 따로 있다. 아시다시피 글로벌 OTT 기업 넷플릭스가 보여준 행보는 영리함을 넘어 치밀하다. 이들은 전 세계 팬덤의 시선에 맞추었고 해외 시청자들은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사실 ‘방탄소년단(防彈少年團)’이라는 한자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이 그룹의 초기 정체성은 동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전략적 수출 모델’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들은 예상을 깨고 서구권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성장했고, 이제는 영어 가사로 세계인의 보편적 감성을 지배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이제 BTS는 단순한 K팝 그룹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와 어떻게 조우하고 있으며, 글로벌 문화 지형도에서 어느 위치에 점유하고 있는지를 상징하는 ‘연결체’ 그 자체다. 그 상징의 중심부에 국뽕 넘치는 광화문과 아리랑이 자리 잡고 있다. 광화문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관통하며 ‘K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세계에 각인시킨 성소(聖所)이자 역사의 현장이다. 마셜 맥루언은 일찍이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 역설했다. 메시지의 구체적 내용보다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식과 매체 자체가 인간의 사고방식과 사회적 관계를 재규정한다는 뜻이다. 넷플릭스가 지난주 ‘데몬 헌터스’가 오스카 두 개를 차지하는 대박 사건과 BTS 생중계를 전 세계 3억 명 이상의 시청자에게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현상은 단순한 공연 중계를 넘어선다. 이는 한국의 특정 장소를 세계적 ‘문화 성지’로 각인시키는 공간적 브랜딩 과정이다. 과거 파리의 에펠탑과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미디어를 통해 선망의 대상이 되었듯, 이번 광화문 공연의 전 세계적 노출은 대한민국을 향한 경외심과 방문 욕구를 비약적으로 증폭시킬 것이다. 아미(ARMY)라는 거대 팬덤의 결집과 이동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경제적 낙수효과를 동반할 것임이 자명하다. 이러한 거시적 흐름 속에서 우리는 부산의 현주소를 냉철히 짚어보아야 한다. 최근 부산 원도심과 남포동, 국제시장 일대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나니 성공인가? 천만에다. 양적 팽창은 고무적이나, 질적 성숙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는다. 현대 관광의 패러다임은 그 지역만의 고유한 ‘속살’, 즉 역사성과 시간성이 응축된 ‘지역성(Locality)’을 탐닉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연 부산은 원도심의 기억과 이야기를 정교하게 직조하여, 이방인들을 다시 불러들일 만큼 섬세한 미학적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부산의 미래 산업이 해양과 관광에 있다면, 문화는 더 이상 주요 아젠다의 잉여물이나 행사용 수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진정한 문화적 정체성은 관(官) 주도의 대규모 토건 사업이 아니라, 지역 예술가들의 창의적 실험과 자유로운 상상력이 놀이터처럼 펼쳐지는 토양 위에서만 자생한다. 한국 인디 문화를 선도했던 부산의 저력과 BTS 멤버 중 2명이나 속해있는 도시라는 문화적 유전자는 이미 훌륭한 밑거름이다. 부산은 ‘아미’들의 성지순례 코스가 되어 있다 하지만 며칠 전 발표된 영도 폐교 부지의 K팝 아레나 건립 계획은 당혹감을 안겨준다. 목불인견(目不忍見) 수준이다. 이미 북항 재개발 구역 내에도 민간 컨소시엄 주도의 아레나 건립이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불과 6km 남짓한 거리, 물리적으로는 원도심권으로 묶이는 두 지점에 수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 유사한 대형 공연장을 중복 설치하겠다는 발상은 정책적 효율성 측면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선심성 하드웨어 경쟁은 아닌지, 혹은 외형적 성과에만 매몰되어 문화의 내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픈 성찰이 필요하다. 요청하건대, 부산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지역 사회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소통의 방식은 부산에는 불가능한가! 지금 부산에 시급한 것은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늘리는 일이 아니다. 지역 예술가들의 창의성이 고사하지 않도록 생태계를 조성하고, 시민들의 문화적 인식과 환대(Hospitality)의 온도를 높이는 소프트웨어의 고도화가 우선이다. ‘문화 도시 부산’의 진정한 경쟁력은 아레나의 규모가 아니라, 그 안을 채울 지역적 독창성과 지역 예술가들의 혼과 삶에 달려 있다. 하드웨어가 비대해질수록 소프트웨어가 빈곤해지는 ‘문화적 역설’을 경계해야 함을 모르는가!.
[데스크 칼럼] 갈급하다
‘목이 마른 듯이 몹시 조급하다. 속이 마를 지경으로 몹시 바라다.’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 나오는 ‘갈급하다’의 뜻이다. 지난주 한 시민단체 대표와의 통화에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이 단어가 귀에 콕 박혔다. 1991년 페놀, 1994년 벤젠·톨루엔, 2006년 퍼클로레이트, 2009년 1, 4 다이옥산, 2018년 녹조 대발생과 과불화화합물. 지난 20일 오후 부산맑은물범시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은 낙동강 수질 문제 이슈가 새겨진 검은색 조끼를 입고 벡스코 오디토리움 복도에 서 있었다. 2026 세계 물의 날 기념식 참석을 위해 부산을 찾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에게 성명서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최소남 상임대표는 기후부 장관에게 “우리 부산 엄마들이 정말 갈급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 엄마들이 얼마나 갈급한지 이해를 해달라”라고 말했다. 부산 물 문제를 지자체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떠넘기지 말고, 국가와 기후부가 주도해서 해결해 주길 바란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최 상임대표는 한 마디로 ‘쌩쇼’를 했다고 표현했다. 부산 시민단체가 맑은 물 확보에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여름에는 114개 시민사회단체가 정부서울청사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낙동강 수질 개선과 취수원 다변화 사업의 국정과제 채택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부산 시민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의 안정적 확보를 간절하게 바라기 때문이다. 낙동강은 1300만 영남권 주민의 식수원이지만 거의 매년 수질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녹조와 산업폐수라는 두 가지 문제가 상존해 지난 30년간의 수질 개선 노력에도 주요 수질지표는 한강에 못 미친다. 2021년 부산 환경단체가 페놀 유출 사건 30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서 제목에 ‘낙동강은 신음한다. 아직도!’라는 문구가 들어있을 정도다. 시민단체가 기후부 장관에게 성명서를 전달한 날에 하루 앞서 부산시가 주최한 세계 물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기념행사를 마친 뒤 300명의 참석자들은 벡스코 야외광장에서 맑은 물 염원 퍼포먼스도 펼쳤다. 뒤이어 열린 맑은 물 확보를 주제로 한 토론회의 분위기는 정말 뜨거웠다. “부산은 물로 차별받는 대한민국의 도시이다.” 부산시민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주제 발표자 겸 토론자로 참석한 환경공학 전문가의 발언은 물 문제에 있어서 부산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대변했다. 이 발언은 특히 올해 세계 물의 날을 맞아 대한민국이 선택한 주제 ‘모두를 이롭게 세상을 품는 생명의 물’과 너무 비교됐다. 행사장에 앉아 있는 내내 기분이 씁쓸했다. 현재 낙동강 물 문제 해결을 위해 취수원 다변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낙동강유역 하류에서 하루 90만 톤의 복류수·강변여과수를 취수해 부산에 42만 톤, 동부 경남에 48만 톤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2021년 첫발을 내디딘 이 사업은 부산과 경남이 머리를 맞대고 조율 중이지만, 주민 반발과 예산 등의 문제로 흐르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토론회에서 먹는 물 문제에 있어 지방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취수원 다변화를 국가 핵심사업으로 격상해달라” “국가 차원의 협력이 절실하다”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대안을 끌어낼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역사적 결단을 내린다는 생각으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쏟아진 수많은 이야기의 끝은 결국 정부가 나서서 낙동강 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민단체는 성명서를 전달받은 김 장관이 부산 물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김 장관이 같은 날 부산상공회의소 초청간담회 자리에서도 시민 숙원사업인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에 대해 부산 지역도 맑은 물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열심히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니 그 약속이 어떻게 지켜질지 두고 볼 일이다. 시민의 생존권이 달린 맑은 물 확보는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고 정의라는 시민들의 외침을 절대 가벼이 들어서는 안 된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갈급한 이들이 많다. 출마를 준비하는 여야 정치인, 선거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정당, 수치로 확인되는 민심의 성적표를 기다리는 정부까지. 모두 국민 한 명 한 명의 마음 잡기에 갈급할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지역 발전에 필요한 것, 지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이슈 속에서 지역과 지역민에게 가장 갈급한 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응답하는 일이 유권자 표심 잡기의 출발점이다. 맑은 물을 향한 부산·경남 지역민의 갈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낙동강 물 문제를 미래 세대에게까지 물려줄 수 없다고 다짐한 유권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중앙로365] '전략적 명확성 시대'의 외교
전후 국제정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임’을 펼쳐왔다. 상대에게 의도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고, 동시에 상대가 쉽게 행동하지 못하도록 불확실성을 남겨 두는 외교 방식이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를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라고 부른다. 어떤 문제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기보다는 의도적으로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는 방식이다. 상대가 최악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들어 억지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협상과 타협의 공간을 확보하는 ‘여백의 외교 기술’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만 문제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따로 ‘대만관계법’이라는 국내법을 제정해 미국이 대만을 방어할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서도 군사적 지원과 정치적 관계를 유지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미국이 취한 이러한 모호성은 중국의 군사 행동을 견제하면서도 동시에 중국과 외교 관계를 유지할 공간을 확보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마찬가지다. 집단방위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실제 군사 대응의 범위와 방식에 대해서는 일정한 모호성을 남겨 두었다. 동맹의 결속력을 유지하면서도 위기관리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장치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국제정치에서 ‘알지만 모르는 척하는’ 일종의 암묵적 규칙이었고, 그것이 국제 질서를 일정하게 안정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최근 국제정치의 흐름을 보면 이러한 전략적 모호성이 점차 약화하고 있다. 이제 강대국을 중심으로 모호한 메시지 대신 명확한 입장을 거침없이 공개적으로 밝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군사력을 포함한 일방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패턴으로 옮아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NATO 가입 배제라는 명확한 요구와 미국·NATO의 단호한 거절이 타협의 공간을 완전히 소멸시켜 전쟁을 불러온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동맹국과 경쟁국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 관세 조치를 취하는 것도 외교적 메시지가 더 이상 완곡한 신호가 아니라 직접적인 요구로 바뀌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일본 역시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 그간 일본은 헌법적 제한과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해국이라는 역사적 경험 때문에 안보 문제에서 매우 신중하고 절제된 표현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는 작년 11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 유사시 상황을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국가 존립 위기 사태’로 판단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는 과거 일본 외교의 톤과 비교하면 매우 분명한 메시지다. 이에 중국은 중국인의 방일 자제와 희토류를 포함한 이중 용도 품목 전반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로 대응했다. 바야흐로 동북아 정세는 여지를 남겨두는 ‘전략적 모호성의 시대’에서 이제 입장과 의도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는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우리에게 심각한 딜레마를 안겨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미국은 이란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 함정을 파견하라고 ‘명확하게’ 요구하고 있다. 또한 미중 경쟁이 첨예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양 강대국이 한국에 어느 편에 설 것인지 보다 ‘명확한’ 입장을 요구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선택은 단순하지 않다. 지나치게 분명한 입장을 취하면 외교적 공간을 스스로 좁히게 되고, 반대로 어정쩡한 모호성을 유지하면 상대로부터 신뢰를 잃을 위험이 있다. 더구나 경제와 안보가 긴밀하게 얽혀 있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면 이러한 딜레마는 더욱 복잡한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 외교는 프로다운 유능성을 요구받고 있다. 단기적 이익만 좇아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오가는 외교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위기가 닥치면 진퇴양난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핵심적인 국가 이익과 동맹이라는 원칙에 관한 문제에서는 단호하고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실행 방식과 정책 추진 과정에서는 국가가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외교적 자산을 체계적으로 활용하고, 전략적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경험 많은 협상가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최대한의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말하자면 원칙에서는 명확성을, 전략에서는 유연성을 구현하는 고차원의 예술을 끌어낼 수 있는 유능함이 필요하다. 이상론에 기대거나 단기 여론에 밀린 땜질식·아마추어식 외교는 국가의 운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지금은 프로 외교의 시대다.
[김필남의 영화세상]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햄넷
삶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죽음은 예고 없이 다가오고, 상실은 준비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남겨진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면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루를 이어간다. 그러다 문득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매기 오파렐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햄넷’은 아이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슬픔이 어떻게 걸작으로 바뀌는지 추적한다. 먼저 영화는 16세기 영국의 한 시골 마을로 카메라를 돌려, 셰익스피어의 아내 아녜스의 시선으로 아들 ‘햄넷’을 잃은 시간을 복원한다. 사실 햄릿하면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이 먼저 떠오르지만, 영화는 그 익숙한 위상을 걷어낸다. 영화 속에서 그의 이름은 단 한 번 언급될 뿐이며 그를 위대한 작가가 아닌 그저 ‘윌’로 둔다. 그는 아버지의 빚 때문에 라틴어를 가르치다 우연히 ‘숲속 마녀의 딸’로 불리는 아녜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정을 일군 두 사람은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평온하고 행복한 때를 보낸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 영화는 행복한 가족 서사가 아닌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고 힘겨워하는 부부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이때 아이의 부재는 단순히 비극에 머물지 않고, 남겨진 이들의 삶을 뿌리부터 뒤흔든다. 깊은 슬픔에 잠긴 윌과 아녜스는 더 이상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던 ‘셰익스피어’를 비껴간다. 그의 위대한 유산이 아닌 감당하기 힘든 상실을 견디고 그것을 기어이 예술로 승화시켜 낸 부부의 시간을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아들을 잃고 7년이 흐른 뒤, 윌은 연극 ‘햄릿’을 세상에 내놓는다. 셰익스피어의 죽은 아들로 기억 속에 잠겨있던 햄넷은 이제 우리 모두가 호명하는 이름 햄릿으로 무대 위에서 다시 태어난다. 위대한 비극이 어쩌면 천재의 영감이 아니라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고통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 가정은 영화 내내 조용하면서도 묵직하게 남는다. 영화에서 주목할 인물은 아녜스다. 그녀는 예지력을 지녔음에도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데 비탄에 빠진다. 슬픔은 점차 자기 붕괴로 이어진다. 울부짖는 순간보다, 울음이 멈춘 뒤의 공백이 더 깊게 남는다. 윌을 향한 감정 역시 단순하지 않다. 아들이 죽던 날 그는 런던에 있었고, 그 사실 하나가 두 사람 사이를 뒤틀어 놓는다. 사랑과 원망이 같은 자리에 머무는 감정을 아녜스는 분리하지 않는다. 그 점이 이 인물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그리고 윌은 슬픔 앞에서 도망치듯 글에 몰두하는 인물이다. 아들에게 건네지 못한 마음을 글로 옮긴다. “사느냐, 죽느냐”라는 질문은 덴마크 왕자의 독백이라기보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의 목소리로 들을 때 더 절실하게 울린다. 아녜스는 남편이 감히 아들의 이름을 연극 제목으로 삼았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예술은 한 사람에게는 견디는 방식이지만, 다른 한 사람에게는 아직 지나가지 않은 고통인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다른 슬픔의 언어로 부딪힐 때, 그 긴장을 스크린 너머로 느낄 수 있다. 영화 후반부, 글로브 극장에서 ‘햄릿’의 막이 오른다. 무대에 선 윌은 죽은 햄릿의 아버지 유령으로 등장해 차마 건네지 못했던 아들을 향해 작별 인사를 고한다. 아녜스는 그제야 남편의 의도를 알아챈다. 아들을 예술이라는 형식으로 되살려 또 다른 생을 부여하겠다는, 작가만의 이별 방식이었음을 말이다. 아녜스가 무대 위 절망에 빠진 햄릿에게 손을 뻗는다. 극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두 사람은 비로소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예술이 상실의 고통을 이겨내는 순간이다.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천재의 얼굴, 숭고에서 상품으로
3월 26일, 1827년. 이날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가장 잘 알려진 베토벤의 얼굴은 요제프 칼 슈틸러가 그린 ‘베토벤 초상’이다. 이 초상은 단순한 인물화를 넘어, 낭만주의가 발명한 ‘천재 예술가’의 시각적 원형을 확립한 결정적 이미지다. 헝클어진 머리, 붉은 스카프, 손에 쥔 ‘미사 솔렘니스’(장엄 미사) 악보, 내면을 응시하는 시선. 슈틸러의 ‘베토벤’은 고독한 창조자이며, 초상은 외모의 기록을 넘어 ‘창조하는 정신’으로 형상화된다. 여기서 예술가는 장인을 넘어 시대와 불화하는 천재로 재정의된다. 낭만주의의 ‘숭고’는 이렇게 한 얼굴 속에 응축되었다. 160여 년 뒤, 이 얼굴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시 등장한다. 1987년, 앤디 워홀은 ‘베토벤’ 연작을 제작한다. 고독한 천재의 얼굴은 실크스크린으로 반복 인쇄돼 대량 복제의 표면 위에 놓인다. 슈틸러의 ‘베토벤’이 ‘내면의 깊이’를 드러낸다면, 워홀의 ‘베토벤’은 그 깊이를 없애고 ‘표면’만을 남긴다. 워홀은 낭만주의가 강조한 창조적 고통과 숭고를 형광색의 평면 속에서 차갑게 평준화한다. 칸트 이후 낭만주의가 말한 숭고는 인간이 자연의 압도적인 위력 앞에서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연을 초월하는 정신의 위엄을 자각하는 데 있었다. 슈틸러의 베토벤은 그러한 숭고를 응시와 표정, 고립된 분위기로 구현했다. 반면 워홀은 숭고를 해체한다. 반복과 색채 변형은 원본의 아우라를 약화시키고, 천재의 얼굴을 이미지의 네트워크 속으로 분산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발터 벤야민이 말한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을 떠올릴 수 있다. 벤야민에 따르면, 기술 복제는 원본 예술 작품이 지닌 ‘지금-여기’의 아우라를 약화시킨다. 그러나 동시에 예술을 특정한 장소와 권위로부터 해방시켜 더 많은 대중이 쉬이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 이를 통해 대중들의 감식력과 비판력이 성장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워홀의 실크스크린 복제 이미지는 벤야민의 논지와 접점을 가진다. 워홀의 실크스크린은 원본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무화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이미지를 더 널리 각인시킨다. 낭만주의는 예술가를 초월적 존재로 신화화했다. 반면, 워홀은 그 신화를 복제하고 반복함으로써 그 아우라를 훼손하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천재의 얼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로써 워홀은 자본주의를 비판하기보다 그 작동 방식을 극도로 투명하게 드러낸다. 반복은 그저 미학적 전략인 것이 아니라, 욕망이 끊임없이 복제되는 체제의 은유다. 결국 워홀은 천재를 신화화한 낭만주의의 이상을 무너뜨리면서도, 자본주의가 그 신화를 또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고 증식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숭고를 기억하는가, 아니면 이미지를 소비하는가?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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