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법개혁 3법 폭주, 전국법원장회의 우려 귀담아 들어야
더불어민주당이 소위 ‘사법개혁 3법’ 가결을 향해 제동장치 없는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법왜곡죄 신설과 재판소원제도 도입, 대법관 증원 등을 주내용으로 하는 사법개혁 3법은 지난해 말부터 지난 11일까지 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속속 통과한 상태다. 현재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고 있으나 이대로라면 국회 본회의 통과는 시간문제다. 사법체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을 만큼 파급 효과가 폭발적인 해당 법안의 속도전식 처리를 놓고 법조계를 비롯해 각계에서 우려가 쏟아진다. 특히 헌법을 지탱하는 3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를 배제하고 추진되는 모양새에서는 위헌 가능성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 직전 이재명 대통령에게 유죄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정치에 기울어진 사법부를 바로 잡겠다”며 사법개혁 3법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이들 법안에 대해 학계 등에선 정치권의 사법부 압박 수단 악용 소지가 크다는 비판을 줄곧 제기해 왔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지난 23일 “해당 법안은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그 피해가 갈 수 있는 문제”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헌법 개정 사항에 해당할 수 있는 중대한 내용”이라며 위헌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25일에는 서울 서초동에서 전국법원장회의가 열려 해당 법안 숙의 과정에서 사법부 의견 반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표명됐다. 해당 법안에 대한 비판은 학계나 사법부에서만 나온 게 아니다. 사법개혁을 줄곧 요구해 온 참여연대와 민변 등 개혁 성향 시민단체들마저 법왜곡죄 신설에 대해 “남용 가능성이 크고 정치적 보복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시민단체들은 특히 기존 판결을 ‘정치판결’이라 비판해 온 민주당이 정권을 잡자마자 형사처벌로 재판에 개입하는 방식의 법안을 꺼낸 것은 권력 견제 원리에도 맞지 않는 자기 모순이라 비판한다. 재판소원제도 도입과 관련해서도 대한변호사협회 등 법조계에서는 3심제를 도입하고 있는 현행 재판제도가 사실상 4심제가 된다면서 재판 장기화로 인한 국민 피해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민주당은 앞서 검찰 개혁을 명목으로 검찰청을 없애버리는 극약 처방을 내린 바 있다. 검찰청을 대신할 공소청 출범을 앞두고 어떤 영향이 나타날지 몰라 온갖 우려가 제기되는 속에 민주당은 다시 개혁을 빌미로 사법부에도 극약 처방을 들이대고 있다. 지연된 사법행정과 이해할 수 없는 판결 등으로 인해 법원이 불신을 자초한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법부를 형해화하는 식의 개혁이 답이 될 순 없다. 어설픈 개혁이 삼권분립 붕괴로 권력자에게 유리하고 국민만 고통받는 식의 결과를 빚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 의견을 듣고 숙의를 거쳐야 하는 것은 책임감 있는 개혁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사설] 공립 전환 삼정더파크 제대로 된 '생명 존중 동물원'으로
부산 유일 동물원인 부산진구 초읍동 ‘삼정더파크’가 공립 동물원으로 거듭난다. 부산시는 동물원 운영사인 삼정기업과 6년간 소송을 매듭지으며 운영권을 인수하기로 했다. 시는 오는 4월 15일 478억 2500만 원 규모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동물원을 직접 관리·운영할 계획이다. 부산에는 1964년 금강동물원(2002년 폐업), 1982년 성지곡동물원(2005년 폐업), 2014년 삼정더파크(2020년 폐업) 등 민간 동물원이 있었지만, 시가 운영하는 공립 형태의 동물원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시의 사립 동물원 인수는 민간 운영의 불완전한 구조를 벗어나 시가 책임지는 공공 동물원 체제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는 내년에 정식 개장하는 동물원의 비전을 ‘생명을 존중하는 동물원’으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자연 서식지형 숲 동물원 재구성, 거점 동물원 지정 추진, 동물 교류 체계 마련 등 운영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 초읍 어린이대공원 숲을 최대한 보존·활용하는 방식이다. 동물 복지를 위해 노후 동물사를 개선하고, 동물 종별 특성과 군집 행동을 반영해 서식 공간을 재배치한다. 특히 시가 지정을 목표로 추진하는 거점 동물원은 기존 관람 중심 동물원과 달리 동물 복지·질병 관리·종 보전·교육 기능 등을 국가 지원 아래 수행하는 허브형 동물원이다. 동물 복지 수준을 높이고 생태적 특성을 최대한 반영해 공공성 강화를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시는 2005년 성지곡동물원이 문을 닫자 삼정기업을 시공사 겸 공동 운영사로 해 2012년 9월 ‘동물원 정상화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 삼정기업이 2014년 4월 동물원을 개장했으나 적자 누적으로 2020년 4월 운영을 중단했다. 삼정기업은 같은 해 6월 협약을 근거로 부산시에 동물원을 500억 원에 매입하라며 소송을 벌여왔다. 1·2심은 동물원 부지 내 개인이 소유한 땅이 있어 공유재산법상 부산시가 매입할 수 없다며 운영사 패소 판결을 내렸으나, 대법원은 지난해 7월 법적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파기환송 해 조정이 이뤄졌다. 이번 동물원 출범은 시와 운영사 간 6년간 법적 다툼을 끝낸 뒤 생명의 가치를 배우는 교육 공간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 삼정더파크가 장기간 운영이 중단되는 동안 시설은 노후화했고, 동물들도 현재 115종 443개체로 줄었다. 시민들은 그동안 제2의 도시에 제대로 된 동물원 하나 없다는 안타까움과 불편을 느껴야 했다. 시민 품으로 돌아오는 동물원은 동물 복지와 생태교육의 중심이 되고 영남권을 아우르는 거점 동물원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시가 더욱 투명하고 책임 있는 공공 운영체계를 구축해 시민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시는 사람과 동물이 모두 행복하고, 숲속에서 쉼과 회복을 경험하는 공간을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 오랜 시간 인내하고 기다려 준 시민에 대한 보답의 길이다.
[사설] 해수부, 해양수산 산하기관 이전 속도전 마땅한 일
부산을 진정한 해양산업 클러스터로 거듭나게 하려는 후속작업이 본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부산으로 이전한 해양수산부가 산하기관에도 다음 달까지 부산 이전 로드맵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 등 해운 대기업들의 잇따른 본사 부산 이전 계획 발표와 궤를 함께하는 속도전 양상이다. 해수부의 지시에 따라 해당 기관들의 부산 이전 계획이 구체화하면 정부가 그리고 있는 해양수도 부산의 밑그림도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해양 정책 결정과 연구·개발, 현장 산업 등이 하나로 연결됨으로써 발생하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는 그 토대가 될 것이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해수부는 설 직전인 지난 12일 산하 6개 기관 부서장을 소집해 3월 중으로 부산 이전 로드맵을 마련하고 내년 상반기 중 이전을 완료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6개 기관은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해양환경공단,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한국어촌어항공단, 한국해양조사협회, 한국항로표지기술원 등이다. 해수부의 이 같은 행보는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연말까지 구체적인 이전 로드맵을 보고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조치로 읽힌다. 전재수 전 장관이 해당 기관 노조 면담에서 “로드맵 발표 전 협의하겠다”고 언급했던 점으로 미뤄 로드맵이 나오면 발표 전 본격 협의에 들어갈 것으로도 보인다. 해수부 산하기관 부산 이전은 대선 공약에 따른 해수부 부산 이전의 후속 조치라는 정치적 상징성을 초월한다. 해양수산 정책이 해운·항만·수산·환경 등 현장 이슈와 직결되기 때문에 해수부를 부산으로 옮기는 게 타당하다면 이와 관련한 연구와 현장 기능의 부산 이전도 타당한 일이다. 해수부 산하기관이 수도권과 세종에 흩어져 있는 공간적 불일치가 조속히 해결돼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이를 위한 해수부의 조치를 전임 장관의 지방선거 지원 카드로만 바라보는 것은 협량한 정치적 해석이라 할 것이다. 졸속 이전 우려 등을 제기하는 해당 기관 노조들도 대승적 차원에서 해수부와 적극 협의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부산이 진정한 해양강국 대한민국을 위한 해양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해수부와 산하기관, 해양기업 등의 부산 이전이 일찌감치 이뤄졌어야 했다. 북극항로를 필두로 급변하는 해운환경과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선 더욱 그렇다. 이번 해수부의 산하기관 부산 이전 속도전은 그런 의미에서 늦게나마 환영받아 마땅하다. HMM 등 해양 대기업의 이전과 함께 부산 영도의 해양산업 클러스터 완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이번 조치는 해운·조선·해양플랜트 등에 대한 해수부 기능 강화의 마중물로도 기대를 모은다. 이전 대상지 부산은 수용 태세와 장기적 법·제도 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유배지' 유치 경쟁
천만 관객을 향하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이야기다. 강원도 영월의 산골 촌장 엄흥도(유해진 역)는 먹고 살기 힘든 마을 사람들을 위해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들려 한다. 옆 마을 노루골에 귀양왔던 전임 형조판서를 그 동네 사람들이 잘 대접했는데, 이 고관대작이 복권돼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마을에 대박이 터졌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다. 심지어 귀양 온 양반 나리가 심심해서 글 공부를 가르치고, 한양으로 데려갔던 마을 청년은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까지 했다.엄흥도는 한양에서 또 다른 고관대작이 귀양 온다는 소문을 듣고 실력자 한명회를 만나 설득에 나선다. 이에 질세라 노루골 촌장(안재홍 역)도 ‘노루골은 오래전부터 수많은 유배자들이 머문 전통 있는 귀양지’라면서 유배지 유치 경쟁에 가세했다. 결국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대감을 오게 해야지”라는 엄흥도의 절박함이 앞섰다. ‘육지 속의 섬’이라서 뗏목 없이는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는 청령포의 입지 조건도 한몫했다.한명회는 엄흥도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내가 다시 찾아올 때는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상을 들고 찾아올 테니 무엇을 받는지는 너가 하기 나름이다”고 엄포를 놓는다.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은 기쁨에 들떴다. 하지만 이를 어쩌랴. 어렵게 모신 고관대작은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겨 한양 복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단종 이홍위였다.단종과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갈 무렵 재앙이 닥친다. 단종의 거처를 드나들던 엄흥도의 아들은 관가에 잡혀가 죽을 만큼 곤장을 맞았고, 역모가 발각되면서 단종은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다.이재명 정부가 논란을 거듭해온 신규 원전 건설(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당초대로 추진하기로 하면서 지자체들 사이에 원전 유치 경쟁이 불붙었다.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유치를 희망하는 기초지자체는 지방의회의 동의서를 포함한 신청서를 내달 말까지 제출해야 한다.부산·울산·경남에서는 울산 울주군이 신규 원전을, 부산 기장군이 SMR 유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경북에서는 경주시, 울진군, 영덕군 등이 공모에 참여할 예정이다. 지역의 반핵단체들은 정부의 계획 철회를 요구하면서 결사반대하고 있다. 마을에 대박을 가져다줄 고관대작일지, 비극을 불러올 단종일지 신규 원전의 미래가 궁금하다.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정달식의 일필일침] 부산시장 꿈꾼다면, 적어도 이것만큼은
6·3 지방선거가 채 100일도 남지 않았다. 정치가 차이를 드러내는 일이라면 선거는 그 차이를 시민 앞에 펼쳐 보이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선거철이 다가오면 공약(公約)은 넘쳐난다. 그러나 그 공약은 종종 지켜지지 않는 공약(空約)으로 남는다. 이맘때면 거창한 개발 구상이나 화려한 수치도 빠지지 않는다. 정작 도시를 움직이는 것은 이게 아닌데도 말이다. 문제는 한층 더 근본적이다. 부산에선 유권자가 정치의 차이를 또렷하게 읽어내기 어렵다. 퐁피두센터 유치 문제, 이기대 일대 개발처럼 도시의 정책 방향과 철학을 가늠할 현안이 있었지만, 정당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갈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과의 대비는 더 분명하다. 오세훈 시장과 여당은 종묘 일대 개발을 두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 분명히 맞섰다. 유권자는 그 충돌 속에서 정책과 철학을 읽고 선택의 기준을 세운다. 차이는 갈등이 아니라 판단의 근거다. 물론 모든 정책이 정당별로 달라야 하는 건 아니다. 도시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안은 경쟁보다 합의가 우선이다. 이를테면 가덕신공항이 그렇다. 공항은 활주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접근성이 곧 경쟁력이다. 철도와 도로, 항만 물류망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않는다면 기대는 곧 불편으로 바뀐다. 공항 주변 교통 인프라는 당연히 전제 조건이다. 이런 과제 앞에서 정치적 셈법이 우선될 이유는 없다. 이처럼 도시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안은 경쟁이 아니라 여야 모두에게 공감의 영역이 된다. 공통분모인 셈이다. 그래서 부산을 이끌겠다는 이들에게 적어도 이것만큼은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부산 시민은 도시 개발이나 인프라 구축보다는 삶의 질을 바꾸는 도시 설계를 원한다. 그 정책의 출발점이 바로 물길이다. 동천이나 낙동강, 수영강은 자연 지형을 넘어 도시 구조를 형성하는 축이다. 그런 점에서 동천 재생은 꼭 필요하다. 이는 보행 동선과 생활권, 상업권을 다시 연결하는 도시 재편 전략이다. 물길이 살아나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도시 풍경이 아니라 삶의 흐름이다. 단절된 공간들이 하나의 생활 생태계로 묶인다. 북항 재개발과 문현 금융단지 역시 이 연결 위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금융과 문화, 일상과 관광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도시의 활력은 현실이 된다. 도시 경쟁력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축은 녹색이다. 서면과 사상,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녹색 섬’ 구상은 도시의 질을 근본적으로 높이는 전략이다. 이는 기후 위기 시대에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녹색 섬은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미세먼지를 줄이며 시민의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보행 친화 환경을 구축하는 핵심 인프라다. 결국 녹색 정책은 환경을 넘어 복지와 경제까지 함께 관통한다. 걷고 싶은 도시가 곧 살고 싶은 도시며 청년이 머무는 도시가 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생활 조건에서 비롯된다. 문화정책의 전환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접근성 확대와 시설 확충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보긴 어렵다. 1960년대 프랑스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가 내세운 문화 민주화는 ‘위대한 예술’을 더 많은 시민에게 보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문화시설 확충과 무료 관람, 할인 제도는 관람객 수를 늘리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새로운 참여층의 지속적 향유로 이어지기에는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부산의 문화정책 또한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시민이 정책 형성과 운영에 참여하고,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문화가 소비되는 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 오늘날 문화는 도시 경쟁력의 핵심이며 이를 종합적으로 조율할 정책적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간 정책 역시 핵심 과제다. 폐교 등 유휴 공간의 활용은 부산에 남겨진 가장 현실적인 기회다. 유휴 공간의 창의적 활용은 지역 상권을 되살리고 공동체 회복을 이끄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이는 도시의 온기를 복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부산의 정신적 자산 또한 정책의 영역이다. 도시는 기억 위에 서고 시민은 자긍심 위에 선다. 이순신 장군으로 상징되는 역사와 지역의 서사는 부산의 자부심으로 축적돼야 한다. 도시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주요 공공기관과 조직의 수장들이 지역 내부에서 성장한 인물로 채워질 때 정책의 지속 가능성과 현실 적합성은 높아진다. 이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효율성의 문제다. 도시의 맥락을 이해하는 사람이 도시의 방향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다. 공의(公義)에 바탕을 둔 인사 시스템, 지역 맥락을 이해하는 인재의 발탁은 그래서 중요하다. 강과 도시, 산업과 문화, 청년과 공간, 기억과 미래…. 정책은 나열이 아니라 연결이다. 부산의 미래는 이 속에 있다. 부산시장을 꿈꾼다면, 적어도 이것만큼은 눈여겨 살폈으면 한다.
[김정화의 크로노토프] 거대함 숭배, 위험한 전문가들
대한민국 문화정책 중심에는 ‘거대함’에 대한 기묘한 집착이 자리한다. 바벨탑 숭배주의처럼, 전국 곳곳에서 제기되는 5만~7만 석 규모 아레나 건립은 K컬처 위상을 증명하는 랜드마크이자 지역 경제 해법인 양 제시된다. 현장 디테일은 지워진 채 일부 기획사와 학계에서는 “규모가 성공을 보장한다”는 장밋빛 수사를 반복한다. 낙관론 뒤에 정작 거대한 하중을 견뎌야 하는 전문예술노동자의 현실은 보이지 않는다. 초대형 인프라 신화 속에서 안전은 실종되었고, 숫자에 매몰된 담론은 예술노동자의 안전을 외면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기 드보르가 지적한 ‘스펙터클’은 이미지가 사회적 관계를 매개하고 지배하는 ‘통치 질서’다. 이 질서에서 중요한 것은 실질적 내용보다 가시성이며, 경험보다 연출된 장면이다. 초대형 아레나는 바로 이러한 스펙터클 체제의 정치적 구현물이다. 완공은 곧 성과가 되고, 조감도는 정책을 선점한다. 이미지가 현실을 앞질러 성공을 선언할 때, 건축은 문화시설이 아닌 권력을 전시하는 장치로 변한다. 화려한 이미지가 실재를 압도하는 순간, 예술 터전은 위험이 외주화된 ‘공장’으로 전락한다. 예술가의 노동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고, 안전은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처리될 뿐이다. 인프라 팽창 속도에 비해 이를 운용할 직접 고용된 무대예술 전문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장의 비극은 반복되지만, ‘그림자 노동자’의 생명권을 위한 구조적 개선은 더디다. 심지어 공연 산업 확장세에 편승해 ‘단기간 속성 전문가’를 양산하는 풍경까지 펼쳐진다. 민간자격에 정부 명칭을 교묘히 섞어 국가가 전문성을 보증하는 듯한 ‘착시’를 파는 구조다. 수십 톤 구조물이 오가는 현장 지휘권을 숙련자가 아닌 단기 학습자에게 맡기는 일은 행정 편의를 넘어 안전 관리 체계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공연장의 본질은 화려한 건축물을 넘어, 고도의 직무가 교차하는 유기적인 노동 조직 공간이다. 그러나 우리 정책은 건립 이후 운영 방안과 숙련 체계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공연 선진국 독일은 ‘독일 사고예방 규정 제17호’로 무대 안전 규정을 제도화했고, 일본 역시 ‘연출공간 운용 및 안전 가이드라인’으로 주체 간 책임 체계를 명문화했다. 그들은 ‘안전이 보장되는 무대’를 체계화하고 제도화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공연장 건축’에 집중하고 있다. 건물은 완공되지만, 무대 운용 전문인력 시스템은 충분히 마련되지 않는 모순이 반복된다. 이 현상은 수출 신화를 위해 노동자 희생을 당연시했던 개발독재 시대의 비인간적 노동관과 소름 돋게 닮았다. 전년 대비 11.9% 증가한 문화예산은 수치상 ‘문화 강국’을 향한 과감한 투자처럼 비친다.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면 콘텐츠 외연 확장에 무게가 쏠려 있다. 문화정책의 본령인 ‘공공성’과 ‘생태계 안전망’은 잘 보이지 않는다. 콘텐츠 수출이라는 화려한 성적표 뒤에, 창작자 권리 구조나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제도적 고민은 좀처럼 확인하기 어렵다. ‘상품’의 양적 팽창에만 몰두한 나머지, 콘텐츠를 만드는 주체인 ‘사람’의 지속 가능성은 또다시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진 셈이다. 수도권 대형 공연의 지역 유통을 위해 140억 원 투입을 추진하는 문체부 계획 역시 우려스럽다. ‘수도권 공연을 지역에서 본다’는 명분은 지역 기반 시설을 수도권 콘텐츠 유통을 위한 단순 ‘하청 기지’로 전락시키는 처사와 다름없다. 국가 균형발전은 허울 좋은 구호로 메아리칠 뿐이다. 그 자리를 채운 시혜성 행정은 지역 예술 생태계의 자생력을 갉아먹는다. 더 큰 문제는 이 정책이 공연장 안전을 직접 위협한다는 점이다. 지역 특수성을 충분히 알지 못한 외부 인력이 단기 실적에 쫓겨 무대를 설치하고 철수하는 과정은 사고 위험과 직결된다. 현장에 대한 성찰 없는 ‘유통 지상주의’는 공연 현장을 언제든 ‘사고 현장’으로 바꿀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 도시는 기억을 축적하는 장치며, 공연 현장은 숙련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전문성이 형성되는 시공간이다. 한 장소에서 공연예술인들이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출 때, 비로소 위험은 예측 가능해지고 안전은 경험으로 자리 잡는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아레나의 조감도가 아니라 현장의 생명을 지켜낼 ‘안전 설계도’다. 공연장은 관객 수용시설을 넘어, 고도의 예술노동이 작동하는 기술집약적 공간이다. 이제라도 모든 공공극장에 공연 개시를 최종 승인하고 위험시 작업을 중지할 권한을 가진 ‘무대감독’의 상시 배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무대예술전문인의 안전 판단이 흥행 논리보다 우선한다는 원칙이 서지 않는 한, 어떤 대형 인프라도 사치스러운 신기루에 불과하다. 수만 명의 환호보다 먼저 응시해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예술노동자의 존엄과 생명이다.
[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위스키가 건축이 되는 순간
스코틀랜드 서해안의 작은 섬 아일라. 이곳은 싱글 몰트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성지로 통한다. 거친 대서양 바람과 해풍, 그리고 피트(peat)의 스모키한 향이 빚어내는 독특한 풍미는 아일라 위스키를 세계적인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개성과 팬덤을 지닌 브랜드가 바로 아드벡(Ardbeg)이다. 1815년 설립된 아드벡은 오랜 역사 속에서 생산 중단과 소유권 변경이라는 부침을 겪었지만, 1997년 글렌모렌지의 인수 이후 브랜드는 재도약의 계기를 맞았고, 2004년에는 글렌모렌지가 글로벌 명품그룹 LVMH에 편입되며 세계적인 리소스로 시장에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실험적 이미지를 강화해온 아드벡은 이제 위스키를 넘어 ‘경험’의 영역으로 발을 넓히게 된 것이다. 2025년 9월, 아일라 섬 포트엘렌에 문을 연 부티크 호텔 아드벡 하우스(Ardbeg House)는 그 상징적 결과물이다. 기존 호텔을 리노베이션해 12개 객실 규모의 부티크 호텔로 재탄생시킨 이 공간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다. 브랜드의 세계관을 건축과 인테리어로 구현한 일종의 체험 무대가 되었다. 외관은 마을 풍경에 조용히 스며들지만, 이 호텔의 진짜 이야기는 내부에서 시작된다. 인테리어를 맡은 러셀 세이지(Russell Sage) 스튜디오는 기존 건축을 해체하고 새로 짓는 과시적 건축물이 아니라, 기존의 건물 안에 아드벡의 정체성을 풀어 놓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 방식은 아일라의 역사와 지역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위스키 문화의 감각을 공간으로 번역하는 시도이다. “진지하게 장난치기”라는 모토 아래, 공간의 톤을 설정했다. 새로운 럭셔리 호텔들이 인스타그램용 세트처럼 소비될 위험이 있는 반면, 아드벡 하우스는 이야기와 감각으로 공간을 무장한다. 각 객실은 전설과 신화, 지형과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테마로 설계됐다. 구리 소재의 벽면 아트는 증류기와 생산 과정을 암시하고, 보트 모양의 샹들리에는 섬의 해양성을 공간 언어로 변환한다. 버튼을 누르면 스모키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장치까지 있어, 피트 향이라는 비가시적인 요소를 물리적 경험으로 끌어온다. 위스키 관광은 단순히 증류소 투어를 마친 뒤 떠나는 경험이 아니라, 이곳에서 하룻밤 더 머물며 아일라의 계절과 풍경, 그리고 사람들과의 교감을 느끼는 오래된 기억으로 변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콘셉트가 한 디자인 스튜디오의 상상력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스코틀랜드 현지 장인들의 참여는 공간에 물리적 설득력을 부여했고, 브랜드 서사를 지역성과 연결했다. 그들의 손길은 호텔을 단순한 테마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로 고정시키는 힘이 된다.
[데스크 칼럼] 한국에서 지방민으로 산다는 건
한국에서 지방민으로 산다는 건, 머릿속에 항시 ‘지방’이라는 스위치를 켜두고, 밤낮 할 것 없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누군가 야금야금 빼내가는 건 없는지를 감시하고, 도둑이 들면 지키기 위해 악을 써야 하는 일인 것 같다. 참으로 피곤하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한국거래소의 지주회사 전환과 코스닥 자회사 분리를 추진하면서 지역 내 반발이 커지고 있다. ‘서울거래소 출범’이라는 부산 시민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를 뒤로 하고 생겨난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NXT)가 이미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잠식 중인데, NXT에 자본시장의 3분의 1을 떼어준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한국거래소마저 배를 갈라 서울에 떼어주려 하기 때문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전례 없는 강한 어조로 항의 표시를 하고, 국회 정무위원장을 긴급 방문한 이유다. 특히 부산 금융 생태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거래소가 지주회사로 전환이 되면, 본점 소재지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희박해지면서 코스피, 코스닥 등 핵심 자회사들이 서울로 ‘유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자본시장의 핵심축 중 하나인 코스닥이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서울로 회귀하는 순간, 부산 금융중심지는 글자 그대로 ‘빈 껍데기’가 된다. 달라는 산업은행은 안 주더니, 있는 것마저 빼앗으려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방’이라는 스위치를 켜고 보면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허울 좋은 약탈’들이 눈에 보인다. 2005년 증권과 선물을 통합한 한국거래소가 부산에 출범한다고 좋아했지만, 이후 주요 기능과 전산은 서울로 다 옮겨가면서 부산에 있던 선물회사들은 자취를 감췄다. 에너지 정책은 더 가혹하다. 수도권에서 가장 먼 곳들에만 원자력발전소를 지어 놓고, 고압 송전탑을 곳곳에 박아 싼값에 전기를 서울로 쏘아 올린다. 사고 위험과 불안은 지방민이 짊어지고, 그 혜택은 서울의 마천루들이 오롯이 누린다. 한국예탁결제원이 금 보관소마저 본사가 있는 부산이 아닌 수도권에 지으려다 부산에서 기를 쓰고 반대하자 겨우 방향을 튼 사건은, 지방민이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티도 안 나게, 서서히 야금야금 빼앗긴 것들은 더 많다. 사람뿐 아니라 돈도 서서히 서울에 집중되면서 지역에서는 대출해 줄 돈이 모자라 서울에서 돈을 끌어와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부산은행의 수신액(예금성) 중 부산에서 조달한 비율은 66.9% 수준으로 최근 6년 사이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2020년 12월 말 기준 72.46%에 비하면 5년 만에 확연히 줄어든 수치다. 부산 기업, 개인에 대한 대출 비중은 전체의 74.16%인데 부산에서는 빌려줄 돈이 없으니 서울까지 가 높은 비용을 들여 조달해 오고 있다. 부산에서 힘겹게 벌어 들인 돈은 서울로 쉽게 흘러가고, 부산 기업은 다시 그 돈을 비싸게 끌어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야금야금 빼앗겨버린 기회와 야금야금 내려앉은 자산의 가치는 청년들을 수도권으로 더 밀어올리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공간의 위계가 곧 계급의 위계가 되어버린, 거주지가 곧 계급이 되어버린 사회 인식은 지방민들의 자존감을 앗아간 무서운 약탈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공간에 새겨진 계급 차이도 문제지만 그보다 무서운 것이 그 차이를 정당화하는 인식의 구조화라고 경고했다. 서울은 ‘세련되고 효율적인 곳’, 지방은 ‘낙후되고 보조금을 축 내는 곳’이라는 낙인은 지방민을 위축시킨다. 부산 시민들은 단순히 경제적 자산만 잃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기회와 존엄을 박탈 당하고 있다. ‘인서울’ ‘대기업’ 우위의 사회에서 지방민은 거주지, 출신학교가 지방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배경을 낮게 평가하도록 길들여짐으로써 폭력적 방식으로 계급에서 밀려나게 된다. 한국거래소를 지키는 것은 단순히 ‘공공기관’ 하나를 부산에 묶어두는 일이 아니다. 이는 자본의 상징을 지역에 두고, 부산의 청년들에게 서울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강력한 제동 장치다. 부산의 청년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당당히 ‘자본의 주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지키는 일이며, 거주지가 곧 계급이 되어버린 설계도에 균열을 내는 일이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지방민만 살리는 게 아니다. 숨도 못 쉬도록 빽빽한 곳에서 살인적인 경쟁에 내몰려 있는 서울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기도 하다. 이현정 경제부 차장 yourfoot@busan.com
[2030 칼럼] '픽셀 라이프' 시대, 우리에겐 '버디'가 필요해
글로벌 IT 기업인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에는 ‘버디’라는 온보딩(조직 안착) 제도가 있다. 사수와 부사수라는 수직적 위계를 넘어, 먼저 입사해 조직 문화를 익힌 동료가 신입 사원의 짝꿍이 되어 조직 생활의 꿀팁을 다정하게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5년 전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적응을 마쳤을 무렵, 나 역시 나보다 10년 차 이상인 실무자의 버디가 되어드린 적이 있다. 나이와 연차를 불문하고 ‘먼저 가본 길’에 대한 사소한 경험을 나누는 행위가 긴장을 얼마나 따뜻하게 녹여내는지, 그분께 받은 정성 어린 감사 편지로 체감했다. 일하며 처음 받아본 긴 편지는 업무를 돕는 역할을 넘어, 누군가에게 실질적 힘이 되어 주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었다. 최근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픽셀 라이프’다. 김난도 교수팀의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6〉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거대한 메가 트렌드에 몸을 싣기보다 개개인이 독립된 픽셀처럼 파편화돼 자신만의 마이크로 트렌드를 짧은 주기로 소비하고 빠르게 전환한다. 이러한 흐름은 일터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특히 재택근무는 조직이라는 거대한 화면에서 하나의 ‘픽셀’로 분리되어 나온 상태에 가깝다.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울타리 안의 구성원이 아니라, 각자의 독립된 공간에서 자신을 스스로 경영해야 하는 개별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업무 능률을 높여줄 도구를 찾거나 온라인에서 동료를 찾는 행위는, 이 파편화한 일상에서 나만의 단단한 업무 환경을 구축하려는 노력이다. 개개인은 독립 픽셀 같이 파편화 재택근무는 이 같은 현상의 정점 수직적 위계 아닌 짝꿍의 중요성 훈계보다 넘어져 본 경험 나누면 치열한 삶에서도 연대·성장 가능 그런 짝꿍 같은 '버디'가 내 목표 문제는 이처럼 ‘분리된 픽셀’로 지내는 일상이 생각보다 날카로운 부작용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나 역시 재택 2년 반 만에 번아웃을 겪으며 휴직을 선택해야 했다. 마냥 편해 보이기만 하는 재택근무였지만, 홀로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과 정서적 소통의 부재는 나를 서서히 갉아먹었다. 휴직 기간 내내 마음 한구석에는 ‘이대로 뒤처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자리 잡았다. 그때 읽은 구본형 저자의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는 서늘한 각성을 주었다. 진정한 위기는 직책의 상실이 아니라, 스스로의 방향을 잃은 채 고립되는 데 있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내게 간절했던 것은 지시를 내리는 권위적인 멘토가 아니라, 파편화한 일상 속에서 삶의 속도를 조절해 줄 ‘버디’였다. 복직과 함께 누군가 나의 궤도를 수정해 주길 기다리기보다, 스스로가 버디를 찾아 나설 환경을 직접 구축하기로 결심했다. 회사라는 시스템이 챙겨주지 못하는 일상의 리듬을 스스로 관리하되, 그 과정을 혼자가 아닌 ‘느슨한 연대’ 속에서 해결하려고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시도가 비단 나만의 고군분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2026년 현재, 우리 사회는 이른바 ‘삶잘러(삶을 잘 살아내는 사람)’를 추구하는 활기로 가득하다. 모니터 앞에서 고립되는 대신 SMCC(서울 모닝 커피 클럽) 같은 커뮤니티를 통해 느슨하게 연결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러닝을 하며, 때로는 아침 커피 한 잔과 함께 DJ 음악에 맞춰 파티를 즐긴다. 누군가는 이를 유난스러운 유행이라 볼지 모르나, 사실 우리는 픽셀처럼 쪼개진 일상 속에서 나처럼 애쓰는 타인의 존재를 확인하며 위로받고 싶을 뿐이다. 정답을 훈계하는 스승보다, 먼저 넘어져 본 경험을 담담하게 나눠줄 버디를 서로에게서 찾는 셈이다. 픽셀과 픽셀이 만나 더 선명한 화질을 이루듯,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개인들이 그렇게 연대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 6년 차가 된 지금, 과거와는 전혀 다른 리듬을 갖게 되었다. 점심시간이면 SNS를 통해 재택러들을 위한 ‘일잘러 꿀팁’을 공유하고, 영어 챌린지에 참여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온보딩한다. 이는 단순히 N잡러가 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고립된 환경에서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한 치열한 과정이다. 내가 유버디라는 필명으로 〈부산일보〉 독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30 세대가 픽셀처럼 분절된 삶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감정의 파고를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기성세대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일터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진심을 전하고, 동료 세대에게는 다정한 지지자가 되고자 한다. 자기만의 고독한 방에서 새 도전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글이 하루를 버티게 할 작은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버디의 진정한 역할은 성공 신화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 본 길의 걸림돌을 살짝 치워주는 다정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아 삶의 리듬을 되찾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다면, 오늘 버디로서의 할 일 하나는 끝냈다고 믿는다. 이제 당신의 다정한 버디로서, 차가운 모니터 속 뜨거운 세계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김필남의 영화세상] 왜 우리는 파멸하는 사랑에 끌리는가
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사랑에 이토록 쉽게 매혹될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언제나 비극을 갈망한다. 금지된 관계에 숨을 죽이고, 파멸로 치닫는 선택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정작 내 사랑은 평온하길 바라면서도, 이야기 속 사랑만큼은 처절하게 앓기를 기대한다. 도대체 사랑 때문에 인간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잔인하고도 아름답게 표현하는 작품이 바로 ‘폭풍의 언덕’이다. 에밀리 브론테의 고전 소설 ‘폭풍의 언덕’은 이미 수차례 영화화되었다. 그럼에도 이 오래된 서사가 여전히 소비되는 이유는 사랑을 집착과 소유의 감정으로 그려내기 때문일 것이다. 에머럴드 피넬 감독도 ‘폭풍의 언덕’을 영화화하면서 낭만적인 사랑 따위 없다는 듯 집요한 사랑으로 우리를 옭아맨다. 그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불편하지만 동시에 강렬하다. 어쩌면 이 양가적 감정이야말로 작품의 힘일지 모르겠다. 에머럴드 피넬 감독 '폭풍의 언덕' 낭만적인 사랑 따위는 없다는 듯 파국의 그림자 들이미는 오프닝 원작 답습 피하려는 감독의 선택 영화는 요크셔의 황량한 저택 ‘워더링 하이츠’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느 날 저택의 주인 언쇼가 술에 취해 고아 소년을 집으로 데려온다. 하녀들은 가난한 가문에 입이 하나 더 늘었다며 달갑지 않아 하지만, 언쇼의 딸 ‘캐서린’만이 친구가 생겼다며 기뻐한다. 이름 없는 소년에게 죽은 오빠의 이름까지 지어주며 환하게 웃는 캐서린. 난생처음 ‘히스클리프’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 아름다운 소녀를 눈에 담는 건 당연하다. 두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강하게 끌린다. 이때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만 캐서린은 끌리는 마음을 외면한다. 몰락했음에도 귀족이라는 신분 의식과 화려한 상류 사회를 동경하는 욕망이 그녀를 억누른다. 그러는 사이 캐서린은 부유한 자산가 에드가의 구애에 흔들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히스클리프는 깊은 오해를 품은 채 저택을 떠나고 만다. 이 비극적인 엇갈림은 언뜻 흔한 멜로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이를 전형적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감독이 원작을 답습하지는 않겠다고 말한 것처럼 감정을 설명하기보다는 체험하게 만든다. 달콤한 서사를 쌓아 올리는 대신 사랑이 닿게 될 파국의 그림자를 먼저 들이미는 식이다. 이러한 태도는 오프닝에서부터 분명하게 표현된다. 영화는 암전으로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낮은 신음이 새어 나온다. 잠시 사랑의 유희라 오해했던 그 소리는, 곧 교수대에 매달려 서서히 죽어가는 남자의 고통 섞인 비명임이 드러난다. 복면을 쓴 남자가 마지막 숨을 붙잡고 몸부림치는 순간, 이를 지켜보던 군중은 기다렸다는 듯 환호하며 즐거워한다. 죽어가는 자의 신음과 구경꾼들의 환희가 뒤섞이는 이 기이한 시작은 영화에서 중요하다. 사랑이 순수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 폭력과 욕망, 집착과 파멸이 뒤섞여 있음을 감각적으로 예고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처럼 사랑과 파국을 한 기운 속에 묶어둔다. 또한 그 분위기는 화면을 끊임없이 메우는 안개와 비, 바람으로 구체화된다. 짙은 안개는 저택과 황야를 뒤덮으며 시야를 가릴 뿐 아니라, 인물들이 선 감정의 경계마저 흐릿하게 만든다.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모호한 풍경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이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장대비가 쏟아진다. 결국 영화가 도달하는 것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다. 서로를 파괴함으로써 증명되는 사랑임을 황량한 풍경과 걷히지 않는 안개, 그칠 줄 모르는 비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사랑과 죽음이 교차하는 자기 파괴의 서사는 역설적이게도 지독히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남는다.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끝내 눈을 떼지 못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비극에 매혹당하는 이유다.
이르면 올 10월 착공, 가덕신공항 건설 속도 낸다
부산시 "1조 원대 형제복지원 배상금, 정부 분담을"
내홍 끝 행정통합 찬성한 TK…‘지방선거 전 통합’ 가능할까
“재정 부담” vs “교통 복지” 구의회서도 반씩 갈렸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법 왜곡죄법’ 본회의 통과…민주, ‘사법 3법’ 표결 시동
AI가 모국어 술술… 캠퍼스 언어 장벽 없앤다
“바이오가스 시설 웬말?” 강서구 주민 반발
거침없는 코스피, 6000 고지 하루 만에 6300선 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