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HMM 상당수 인력 서울 잔류 버티기, 반쪽 이전 안 될 일
국내 최대 국적 해운선사인 HMM 노사가 부산 이전에 전격 합의했지만, 자칫 ‘반쪽 이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노조와 사측이 900여 명의 서울 인력 상당수가 잔류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열린 노사 합의 발표 행사에서도 최원혁 대표이사는 “영업과 금융 부문 직원은 본사가 부산으로 옮기더라도 지점 형태로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성철 육상노조 위원장도 “언제든지 기본 합의가 지켜지지 않고 조합원이 불이익을 받거나 문제가 생길 경우, 단체행동권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노사 입장을 보면 핵심 인력이 빠진 채 본사만 이전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노조는 특히 HMM 본사 이전이 거론된 이후 이러한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정성철 노조 위원장은 지난달 7일 최원혁 대표이사를 부당노동행위로 고용노동부에 고소하면서 “서울 본사 인력의 상당수가 잔류하면, 상징적 차원의 본점 부산 이전은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2024년 4월 부산상공회의소 양재생 회장과 간담회를 가진 전정근 당시 HMM 해원노조 위원장은 “해외 영업을 하는 국제본부와 국내 사업을 관할하는 국내본부로 분할한 뒤, 국내본부와 자회사가 입주하는 사옥을 북항에 건설하면 본사 이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노조의 입장 변화가 전혀 없는 셈이다. HMM 노사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본사 이전과 관련해 극한 대립을 반복해 왔다. 육상노조는 노동위원회 조정 신청, 대표이사 고소에 이어 파업까지 예고하며 거센 반발을 이어왔다. 이런 가운데 노사가 구체적인 이전 조건 없이 대승적 차원의 합의를 갑자기 도출한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상황이다. 지난달 30일 서명식 질의응답에서도 합의 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사의 본사 부산 이전 합의가 오는 8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 대한 사전 합의 성격이 강하다는 절하된 평가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노사는 이제부터라도 부산 이전이 국가 발전과 균형성장을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세계 8위 국적 해운선사인 HMM의 부산 본사 이전은 해운·항만·금융·정책 기능이 결합한 해양산업 생태계가 집적하는 효과를 지닌다. 앞서 부산에 본사를 옮긴 SK해운, 에이치라인해운과 시너지를 내고 일자리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를 실현하려면 단순히 주소지만 옮기는 ‘무늬만 지방 이전’에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실질적인 기능과 핵심 인력이 서울에 남지 않고 부산으로 와야 이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반쪽 이전에만 머문다면 언제든지 정치적 상황에 따른 변수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 당연히 해양수도 부산의 완성도 요원할 것이다. HMM 노사가 이전 기관의 책임감을 갖고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보였으면 한다.
[사설] 호르무즈 우리 선박 피격 가능성, 엄정한 대응 필요하다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인한 중동 지역 긴장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선사가 운용 중인 선박에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는 미국이 걸프 해역에 갇힌 민간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탈출할 수 있도록 군용기와 군함으로 호위하는 ‘프로젝트 프리덤’(해방 프로젝트) 작전을 개시한 직후 발생해 이란에 의한 피격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란이 한국 선사 선박이라는 것을 알고도 공격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 체류 중인 한국 선박은 26척에 이른다. 선박과 선원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 시간으로 4일 오후 8시 40분께 호르무즈 해협 안쪽 아랍에미리트(UAE)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이던 한국 선사 HMM 운용 중형 벌크 화물선 1척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쿵’하는 원인 모를 폭발 소리와 함께 선박 기관실 좌현 쪽에서 발생한 화재는 선원들의 자체 진화로 완진됐다. 당시 한국 선원 6명 등 24명이 승선 중이었지만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가 아직까지 피격 여부조차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외교력과 정보력을 총동원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 선박 화재와 관련해 국제 관계 셈법도 한층 복잡해졌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 선박 화재 원인이 이란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한국의 ‘프로젝트 프리덤’ 합류를 압박하고 있다. 파병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위한 선박 보호·호위 작전에 참여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 주장의 골자다. 이미 그는 지난 3월 우리나라에 호르무즈 해협으로 군함을 파견할 것을 요청했다. 선박 화재가 이란의 공격으로 확인될 경우 정부 판단은 한층 복잡해질 전망이다. 미국은 전쟁 기여를 외면한 국가들에 노골적인 보복을 벌이고 있다. 국익을 우선한 슬기로운 대응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이번 폭발성 선박 화재를 계기로 청와대와 정부 대응에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란 전쟁이 두 달 넘게 이어졌지만 그동안 현지에 발이 묶인 한국 선박과 선원을 구출하는 등의 외교적 해법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 외교·안보 대응 라인을 전면 재점검해 선박 안에 고립된 채 불안에 떨고 있는 선원 등이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지금은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도 성명서를 통해 책임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낙관적인 정세 판단과 모호한 외교 기조는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와대와 정부의 신속하고 엄정한 대응을 촉구한다.
[사설] 선거 쟁점 된 ‘공소 취소 특검’ 여론의 거센 역풍 직면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발의한 ‘검찰 조작기소 특검법안’이 6·3 지방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이 법안이 특검에 사실상 공소 취소 권한까지 부여한 점이다. 수사 대상 12건 중 8건이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으로 공소 유지 여부를 넘어 사건 전반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파장이 커지자 이 대통령은 4일 “시기와 절차는 국민 의견 수렴과 숙의를 거쳐 판단해달라”고 민주당에 요청했다. 그러면서 국정조사를 통해 과거 정권과 검찰의 부당 수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야권 등을 중심으로 한 반발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사법 질서의 근간을 흔들 중대한 사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야권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연루된 사건을 겨냥한 특검이 공소의 존속 여부까지 좌우하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한 사람을 위한 법은 폭력이자 범죄”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서울·경기·인천 지역 야당 광역단체장 후보들도 긴급 회동을 열고 대응에 나섰다. 일부 진보 진영에서도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낼 정도다. 여권 내부에서도 공감대 부족에 따른 당혹감과 온도차가 감지된다. 보수세가 강한 부울경과 대구 선거에 악영향을 우려하는 여당 내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 입장에선 이런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되묻게 된다. 6·3 지방선거를 대하는 여권의 오만함이 드러난다. 법조계에서는 특검이 기존 검찰의 공소 유지 권한을 넘겨받고 필요시 공소 취소까지 할 수 있도록 한 대목은 전례를 찾기 힘든 과도한 권한 설정이라는 지적이다. 공소 취소는 형사사법 체계에서 극히 예외적으로만 허용돼 온 제도다. 이를 특정 사안에 맞춰 확장하는 것은 법 앞의 평등 원칙과 적법 절차를 훼손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기관장이 넘기지 않아도 15일이 지나면 사건이 자동으로 특검에 넘어가는 구조와 서울중앙지법에 특검 전담 영장판사를 두고 지방법원장 영장으로 대통령기록물 열람을 가능하게 한 부분 역시 평등 원칙과 권력분립 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녕 여당은 국민과 헌법이 안중에도 없는가. 국힘은 민주당이 법안 처리를 시도할 경우 즉각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맞서겠다는 방침이다. 역풍에 직면하자 청와대도 일단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특검의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당내에선 여론을 고려해 처리를 지선 이후로 미루자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외면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에 불과하다. 과도한 수사에 문제의식을 가질 수는 있으나 그것이 헌정 질서와 충돌하는 입법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이런 법이 통과된다면 민주주의와 법치의 기반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과연 국민이 납득하겠는가. 민주당은 법안을 재고·철회해야 하고, 대통령도 국회 통과 시 거부권 행사를 검토해야 한다.
성장통을 겪을 권리
놀이터 설계자는 두 가지 위험 요인을 구분한다. 근원적 위협인 해저드(hazard)는 용납할 수 없다. 반면 실수하면 다칠 수도 있는 리스크(risk)를 회피하거나 극복함으로써 쾌감을 느끼게 만든다. 위험을 통제할 때 얻는 성취가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원리다. 기성세대가 ‘무료 인프라’로 누렸던 마을 공터, 골목, 뒷산이 그러했다.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정글짐이 사라진다. 무서워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 칸 더 위로 뻗던 고사리손, 꼭짓점을 향하는 친구의 엉덩이를 밀어 올리던 응원의 목소리, 정상에 올라 환호하던 얼굴이 사라지고 있다. 대신 넘어져도 탈이 나지 않을 나지막한 기구와 푹신한 우레탄 바닥이 들어선다. ‘우리 아이가 놀다 떨어질까 봐 불안하다’는 학부모 민원은 힘이 세다. 학교는 소송 부담을 덜 수 있으니 좋은 핑계를 얻는다. 운동장이 안전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은 더 강한 자극이 있는 게임과 SNS로 쏠린다.최근 확산하는 ‘무승부 운동회’는 우열 가리기로 열패감을 느끼는 것을 피하려는 취지다.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승패 대신 과정만 남기면 노력과 성취를 잇는 고리는 끊긴다. 부산시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초등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수면과 놀이·운동은 줄고 인터넷·게임 시간은 늘어난다. 우울감 호소까지 증가세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학교에서 벌어지는 ‘안전의 역설’을 다룬 신간 〈조용한 붕괴〉는 아이 스스로 안전을 확보하고 불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울 기회를 어른들이 빼앗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른바 ‘헬리콥터 맘’ 또는 ‘제설기 부모’는 자녀의 앞길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미리 없앤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사소한 감기 바이러스도 치명적인 것처럼, 실패 가능성을 차단당한 아이들이 더 큰 위험에 놓인다. 작은 실수, 친구와의 갈등, 사소한 상처, 감당할 수준의 위험과 같은 심리적 항원에 맞서는 경험이 없으면 마음의 힘, 즉 회복탄력성을 키울 수 없다. 아무 문제 없이 평범해 보이는 대다수가 내면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경고다.재미와 도전이 가득해야 할 놀이터와 학교 운동장이 밋밋해지는 것은 어른들의 ‘안전’ 욕심 탓이다. 넘어져야 일어서는 법을 깨치고, 상처받은 경험이 있어야 타인의 상처에 공감할 수 있다. 방황하고, 실수하고, 부딪히면서 내면이 성숙한다. 성장통은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누려야 할 특권이다. 아이들의 소중한 권리가 도둑맞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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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6·3 지방선거와 부산의 대망
6·3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 부산이 뜨겁다. 1995년 첫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부산이 이렇게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싶다. 선거일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지금까지 부산의 선거 판세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당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지난 총선에서 보듯 막판 보수 결집 가능성을 감안하면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후보가 맞붙은 부산시장 선거전은 이번 지선에서 여야의 명운을 가를 최대 승부처로 꼽힌다. 게다가 북갑 보궐선거에서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당대표와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의 ‘빅 매치’가 성사돼 부산이 전국적 지선 ‘핫플’로 떠올랐다. 지선 D-30일을 전후해 여야 지도부가 부산을 찾아 세몰이에 나선 것도 지역의 존재감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승부가 후보들로서는 피를 말리는 싸움이겠지만 유권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경쟁이 없는 도시에 혁신의 바람이 일어날 리 만무하다. 모처럼 불어닥친 여야 격전의 칼바람은 유권자 마음속 희망의 불씨를 살린다. 특히 부산이 전국적 주목을 받으면서 대선 주자급 정치인 탄생에 대한 기대도 한껏 부풀고 있다. 3선에 도전하는 박형준 후보에게는 이번 지선이 최대 위기이자 기회다. 전국적 정치 상황과 맞물린 탓이기도 하지만 현직 시장으로서 선거 초반 전재수 후보에게 지지율에서 크게 밀리며 위기감이 높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지지율이 최근 오차범위 안으로까지 좁혀지면서 역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여전히 골든 크로스를 만들지는 못하고 있지만 선거 막판 반전의 서사를 완성한다면 보수를 벼랑에서 구한 차기 주자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박 후보는 재임 5년 동안 부산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고 도시 지표도 개선되고 있다고 역설하지만, 그가 내세우는 세계도시 부산의 비전이 시민 체감과 여전히 거리가 있는 게 현실이다.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과 산업은행 이전이 민주당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듯 야당 시장으로서 리더십 한계에 봉착할 우려도 여전하다. 남은 선거기간 집권 여당의 벽을 뚫고 자신이 5년간 축적한 시정의 에너지를 어떻게 폭발시킬지 결기로서 증명해야 하는 게 그의 앞에 던져진 숙제다. 이재명 정부 첫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해수부 부산 시대를 이끌며 일찍이 여권 주자로 대세를 형성한 전재수 후보가 부산시장에 오를 경우 역시 진보 진영의 차기 주자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 보수 텃밭인 부산에서 민주당 시장이라는 존재 자체가 갖는 상징성이 크다. 특히나 민주당 유일의 부산 3선 국회의원이라는 서사가 해양수도권이라는 비전과 결합해 강력한 리더십을 형성할 경우 노무현과 문재인의 뒤를 잇는 정치인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문제는 남은 선거기간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한 문제 제기와 유권자들의 의구심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보수가 지방 권력을 장악하면서 부산 경제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러려면 2018년 지방 권력이 민주당에 통째로 넘어갔을 때 어떤 희망을 보여줬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남은 선거기간 이 모든 의혹과 의구심을 뚫고 일 잘하는 시장으로서 해양수도 부산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그의 꿈도 현실이 된다. 한동훈 후보가 북갑에서 당선되면 보수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부활할 수도 있다. 북구에 뼈를 묻겠다는 그의 결행이 성공하면 낙동강 벨트는 차기 대권 도전을 위한 강력한 정치적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국힘 후보로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이 결정된 가운데 삼자 구도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면 낙동강 전선은 그의 정치적 무덤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손 털기’와 ‘오빠’ 논란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는 정치 초년병 하정우 후보도 ‘북갑 대전’의 승자가 될 경우 부산의 새로운 지도자로 성장 가능하다. 서울 언론들이 국가 AI 백년대계를 팽개쳤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도권 중심의 시각이다. 정치적 귀향을 계기로 부울경 제조업의 AI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면 미래 지향적 지도자 이미지를 확고히 할 수 있다. 6·3 지선이 수도권 일극체제라는 경로의존의 고리를 끊고 부산이 도약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마침, 전국적 관심 속에 부산의 판이 커졌다. 이 에너지를 지역 도약의 동력으로 만들 것인지, 정치적 이벤트로 소모할 것인지는 후보와 유권자의 선택에 달렸다. 전국적 정치 바람에 휘둘리지 말고, 누가 지역을 살릴 큰 정치인이 될 수 있을지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지역의 미래도 큰 정치인도 결국 유권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백진규의 법의 창] 민법 일부 개정… 상속 '혈연'에서 '책임'으로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이어지며 ‘가족’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시기다. 하지만 이 따뜻한 말 뒤에는 우리가 외면해 온 현실도 있다. 자식을 돌보지 않은 부모, 부모를 버린 자식, 생전에는 연락조차 없다가 사망 후에 상속만 요구하는 경우들이다. 이제는 ‘패륜 상속’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그동안 우리 민법은 ‘가족이면 당연히 상속을 받는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권리와 의무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법이 ‘천륜’을 신뢰하는 사이, 천륜은 때로 책임 없는 권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함께 살지도, 돌보지도 않았던 가족이 사망 후 재산을 요구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많은 사람이 ‘이게 과연 공정한가?’라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형제자매 유류분 폐지·핵심 가족만 인정 부모도 부양 의무 위반 땐 상속 못 받아 '가족이니까' 아닌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 이러한 문제에 변화가 생겼다. 2024년 유류분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 가수 구하라 사건 등에 이어진 지난 3월 17일 민법 일부 개정이다. 이번 개정은 상속의 기준을 ‘혈연’에서 ‘책임과 기여’로 바꾼 것, 그리고 상속의 본질을 ‘혈연 중심의 권리’에서 ‘책임과 기여에 기반을 둔 정당한 분배’로 전환하려는 내용이라 평가할 수 있다. 개정 민법의 내용은 먼저, 형제자매의 유류분이 폐지되었다(민법 제1112조). 유류분은 법에서 최소한 보장해 주는 상속 몫인데, 이제 형제자매는 이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부모나 자식처럼 생활을 함께하는 핵심 가족 중심으로만 최소 상속분을 인정하겠다는 취지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이른바 ‘구하라법’이다. 민법 조문으로는 민법 제1004조의2(상속권 상실 선고)이다.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자녀 또는 부모를 돌보지 않았거나 학대를 한 경우처럼,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는 등 그 책임을 심각하게 저버린 사람은 아예 상속을 받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가족이니까 무조건 상속받는다’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사안에 따라 가족 관계의 실질이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된 것이다. 상속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기준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기본적으로 법에 정해진 비율대로 나눴지만, 이제는 누가 얼마나 기여했는지가 중요해졌다. 오랜 기간 부모를 모시고 간병하거나 재산 유지, 증가에 도움을 준 경우, 그 기여가 인정되면 더 많은 상속을 받을 수 있다(민법 제1008조 단서). 특히 이러한 기여는 유류분 분쟁에서도 고려될 수 있어, 오랜 기간 부모를 돌보고 재산 유지, 증가에 기여한 상속인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효도는 손해’라는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중요한 전환이다. 실무적으로 중요한 변화도 있다. 예전에는 유류분 소송을 하면 부동산 지분을 나눠 갖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한 채의 집을 두고 지분이 쪼개져 분쟁이 길어지는 일이 흔했다. 이제는 재산의 가액을 청구할 수 있어, 원칙적으로 ‘현금으로 정산’하도록 바뀌었다(민법 제1115조). 분쟁을 줄이고 거래를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한 조치다. 다만 아직 모든 기준이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입법의 속도가 현실을 완전히 따라잡은 것은 아니다. 일부 규정은 시행되었으나 세부 기준과 해석은 여전히 형성 과정에 있다. 법은 바뀌었지만, 실제 사건에서 어디까지를 ‘부양의무 위반’으로 볼 것인지, 기여를 ‘얼마나 인정’할 것인지 등은 앞으로 법원이 하나씩 기준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상속은 더 이상 단순한 가족의 권리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 법은 묻는다. 그 관계에서 어떤 책임을 다했는지, 그리고 그 책임 없이도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를 본다는 것이다. 돌보지 않았으면서 권리만 요구하는 관계까지 보호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이번 개정의 핵심이고, 법의 선언이다.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 속 가족은 혈연으로 묶인 관계가 아니다. 사회의 주변에서 우연히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며 ‘가족처럼’ 살아간다. 법적으로는 가족이 아니지만, 실제 삶에서는 누구보다 가족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묻는다. 가족은 과연 혈연으로만 정의되는 것인가, 아니면 함께 살아가며 책임을 나누는 관계인가. 이번 민법 개정이 던지는 질문 역시 다르지 않다. 단지 피로 이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그 가족 관계 속에서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를 물을 것인가. 가족은 단순히 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돌보고 책임지는 관계다. 그리고 이제 법도 그 최소한의 기준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필요한 변화다. 이제는 ‘가족이니까’가 아니라, ‘무엇을 했는가’가 기준이 되는 시대다. 법은 이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은, 어쩌면 우리 각자의 삶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데스크 칼럼] 그림자 무사와 진짜 일꾼
오는 21일부터 6·3 지방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그러나 선거의 막이 오르기도 전에 전국 곳곳은 공천 잡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앙당의 밀실 공천, 특정 인맥에 기대는 사천 논란, 모호한 경선 기준은 지방자치의 본령을 훼손하며 유권자의 신뢰를 흔들고 있다. 1980년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세상에 내놓은 영화 ‘카게무샤’는 권력의 본질에 대한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보고서다. 다케다 신겐이라는 전설적인 맹장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투입된 도둑 출신의 그림자 무사. 그는 주군의 목소리와 걸음걸이, 심지어 내밀한 버릇까지 복제하며 적들을 기만한다. 영화 속에서 그림자 무사는 잠시나마 다케다 가문의 영광을 연장하는 데 성공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승리는 철저히 ‘타인의 권위’를 빌려온 연극에 불과했다. 이 서사가 오늘날 한국 정치, 특히 6·3 지방선거를 앞둔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경고는 서늘하다. 영화 속 카게무샤는 주군의 존재가 지워지는 순간, 혹은 그를 지탱하던 갑옷이 벗겨지는 순간 한낱 미천한 존재로 돌아간다. 지금 대한민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방선거 공천 과정은 어떠한가. 우리는 지역을 위해 헌신할 ‘진짜 인물’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거대 정당이라는 붉고 푸른 갑옷을 입은 ‘그림자 무사’들의 행렬을 보고 있는가. 한국 정치사에서 ‘그림자’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군사정권 시절, 최고 권력자 눈에 들어 발탁된 이들은 스스로의 정책적 비전이나 철학보다는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는 확성기 역할에 충실했다. 그들은 독자적인 대중 기반 없이 주군의 권위에 기생하며 권력을 누렸으나, 주군이 퇴장하는 순간 그들의 정치적 생명도 함께 증발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른바 ‘계파 정치’는 수많은 카게무샤를 양산했다. 특정 계파 수장의 사진을 명함에 박고,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지역구를 누비는 정치인들에게 독자적 비전은 사치였다. 그들에게 정치란 주민과의 소통이 아니라, 수장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공천장이라는 ‘대리 허가증’을 받아내는 기술에 가까웠다. 이러한 후광 정치는 정치인의 자생력을 앗아갔고, 한국 정치를 인물 중심의 대결이 아닌, 세력 간 진영 논리로 퇴행시켰다. 공천권이라는 막강한 칼자루를 쥔 중앙 정치권 앞에서 지방선거 후보들은 한 명의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정당의 명령을 수행하는 병사로 전락한다. 현재의 공천 시스템은 후보자들에게 ‘지역사회와 소통’보다 ‘공천권자와 친분’을 강요한다. 지역 현안을 해결할 혁신적인 정책을 고민하기보다, 당내 파벌 싸움에서 어느 줄에 서야 살아남을지를 먼저 계산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 후보 개인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정당의 기호와 당색만 남는다. 유권자들은 후보 얼굴을 보기 전에 정당 로고를 먼저 보게 되며, 이는 결국 ‘사람’이 아닌 ‘그림자’를 선택하는 기형적인 투표로 이어진다. 영화 ‘카게무샤’의 클라이맥스는 그림자 무사가 전장에 나섰을 때다. 그는 주군의 위엄으로 군사들을 통솔하려 하지만, 실질적인 전술 역량이 요구되는 긴박한 순간에 그의 허상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지방자치 현장도 마찬가지다. 정당 공천이라는 갑옷을 입고 당선된 후보들은 임기 시작과 동시에 한계에 부딪힌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고령화 문제, 교육 격차, 지방 소멸 위기 등은 정당 구호나 중앙 정치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스스로의 철학과 정책 비전 없이 당선된 ‘그림자 시장·군수·구청장’들은 중앙 정치 바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린다. 그들의 지지 기반은 지역 주민이 아니라 중앙당 지지율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당 인기가 떨어지면 그들은 방어 기제도 없이 몰락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의 몫이 된다. 정당이라는 외피를 벗었을 때, 과연 지역을 이끌어갈 실질적인 역량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권력을 좇는 텅 빈 갑옷에 불과한지 판별해야 한다. 영화의 마지막, 주군의 죽음이 탄로 나고 쫓겨난 그림자 무사는 다케다 가문의 깃발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목격하며 절규한다.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은 주군이었을까, 아니면 주군을 연기하며 누렸던 잠시의 권력이었을까. 교훈은 명확하다. 권력의 외피만으로는 체제를 유지할 수 없으며,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달은 태양이 나타나는 순간 사라진다. 이번 6·3 지방선거는 ‘그림자들 연극’이 아니라 ‘실체의 경연’이 돼야 한다. 이제 무대 위 가짜 주역들을 내려오게 하고, 진짜 일꾼을 세워야 할 시간이다. 지방자치 주인공인 유권자의 참여와 심판만이 그 열쇠다.
[노트북 단상] 가정의 달, 닿지 않는 삶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가정이나 가족이라는 말이 닿지 않는 삶도 있다. 이를 테면 관계가 끊긴 채 고립된 삶이다. 고독사는 늘 숫자로 먼저 접하게 된다. 부산에서는 2024년 367명이 홀로 생을 마감했다는 식이다. 최근에는 혼자가 아니라 가족 전체가 고립된 채 발견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실제로 생활고 속에 가족 전체가 숨지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울산에서는 30대 아버지와 어린 자녀들이 함께 숨진 채 발견됐고, 전북 임실·군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공통점은 ‘신청하지 못한 복지’였다. 제도가 있었지만, 신청이 없다는 이유로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같은 사건이 잇따르자 정부도 미성년자 등 스스로 동의하기 어려운 위기가구 구성원에 대해 담당 공무원이 당사자 동의 없이도 생계급여를 직권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고립가구는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주변과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된 1인 가구의 경우, 이웃이 이상함을 느끼기 전까지는 아무도 상황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제도는 있지만, 그 사람은 거기까지 닿지 못했다. 반대로 조금 일찍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이웃이 먼저 찾아가면서 끊겼던 관계가 이어진 사례다. 끼니를 거르고 사람을 피하던 시간이 길었지만, 누군가가 말을 걸고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다시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먼저 움직인 건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부산의 사회복지 공무원 신아현 작가는 에세이 〈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에서 자신들을 ‘국가라는 이름으로 민원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제도와 법은 결국 사람을 통해 전달된다. 욕설이나 위협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그 사람의 사정을 먼저 헤아려 보려 노력한다고 했다. 그게 관계를 잇는 일이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 통계로 보는 1인가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인가구는 전체 가구의 36%를 넘는다. 연령대도 청년부터 노년층까지 퍼져 있다. 이제 혼자 사는 삶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혼자 버티는 상황일 때다. 1인가구의 절반 가까이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고, 아플 때나 돈이 필요할 때, 혹은 우울할 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전체보다 낮았다. 연락할 사람이 없고,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결국 고립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찾아가는 방식’을 강조한다. 이웃이 직접 살피고 먼저 말을 거는 방식이다. 그래야 관계가 생기고 그다음 제도도 움직인다. 거창한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안부를 한 번 묻는 것, 평소와 다른 기척을 그냥 넘기지 않는 것 등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차이를 만든다. 고립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이런 신호를 놓치면서 쌓여간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이미 곁에 있었던 작은 신호들이 아닐까. 5월, 우리가 떠올려야 할 가족은 꼭 가까이 있는 사람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제도에 닿지 않은 사람들을 한 번쯤 떠올려보자.
[2030 칼럼] ‘노인과 바다’에서 청년의 자리를 묻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52년 생전 마지막 소설인 〈노인과 바다〉를 발표했다. 쿠바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여든 날이 지나도록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거대한 청새치를 만난 그는 대서양 한가운데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그의 처절한 싸움은 순식간에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작가는 이듬해 퓰리처상을, 그다음 해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1954년 노벨위원회는 이 작품을 “물질적 이득이 없을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투쟁 정신과 패배 가운데서 이룩하는 도덕적 승리를 향한 찬가”라고 평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다’라는 널리 알려진 구절처럼 어떠한 외적 조건에도 굴하지 않는 한 노인의 위대한 인간 정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부산시장 후보들 청년 정책 발표 박형준, 중산층 만들기 프로젝트 전재수, 해양수도 통해 일자리 창출 ‘평생교육 거점·해양 인력 양성 기반’ 지역대학 구조적 문제 해결엔 역부족 배우고 성장하는 탄탄한 토대 마련을 그런데 이 소설에는 독자의 이목을 끄는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작품의 시작과 끝에서 노인을 돌보는 어린 소년 어부 마놀린이다. 소년은 부질없어 보이는 노인의 항해를 변함없이 동경하며 응원한다. 산티아고는 소년의 지지에 힘입어 하루도 쉬지 않고 바다로 나설 수 있었다. 청새치와의 외롭고 힘겨운 싸움에서도 소년은 그의 내면적 힘이 되었다. 결국, 노인이 보여준 불굴의 정신은 소년의 존재를 통해서만 발휘될 수 있었던 셈이다. 이즈음 ‘노인과 바다’라는 말이 부산의 현실을 일컫는 풍자적 은유로 심심찮게 쓰인다. 청년층이 이탈하면서 인구 구조가 가파르게 고령화되고, 확고한 경제적 기반 없이 망망한 바다라는 지리적 조건만을 가진 데 대한 자조적 목소리다.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에는 부산의 현실이 너무도 적실히 표현되어 있다. 6·3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은 ‘노인과 바다’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마다의 청년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박형준 후보는 청년을 전면화하며 부산의 미래 전략에 대한 구상을 내놓았다. 그는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개인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청년들의 세대적 특성에 주목하며, 산업화 시대의 논리로 구축된 사회·경제적 질서를 청년 세대에 맞게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방안은 ‘복합소득사회’로의 전환이다. AI 시대에 이르러 개인의 소득이 다원화됨에 따라 과세와 복지 등 국가의 정책 시스템 역시 직장 단위의 모델로부터 개인 단위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나아가 AI 혁명이 초래할 수 있는 청년층의 자산 양극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최소한의 자산 형성을 보장하는 ‘청년 중산층 만들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한편, 전재수 후보는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비전을 내세운다. 부산을 북극항로의 거점이자 ‘글로벌 물류의 환승 센터’로 도약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해수부 부산 이전을 시작으로 해사전문법원과 동남투자공사의 설립, 해운 대기업의 부산 유치 등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다. 청년 문제의 해법 역시 해양수도의 구상에 기반한다. 해수부와 각종 산하 기관, 연구소, 민간 기업들이 모여 형성한 ‘해양 특화 클러스터’를 통한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과 취·창업 기회 확대를 목표로 삼고 있다. 아울러, 지역 고등학교 및 대학들과 연계한 항만 분야 전문 인력 양성 계획과 스마트 항만으로의 전환을 통한 직업적 접근성 확보 방안을 밝혔다. 그런데 두 후보의 청년 정책에서 지역대학 활성화를 전면에 둔 구체적 계획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박형준 후보는 AI 시대에 요구되는 평생교육의 거점으로의 기능 전환을, 전재수 후보는 해양 전문 인력 양성 기반으로의 특수성 확보를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각각의 후보가 제안하는 정책적 방향성 속에서는 일정한 설득력을 얻지만, 지역대학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지역 청년의 삶을 이야기할 때 지역대학이라는 의제는 핵심적이다. 대학은 단순히 진학의 문제가 아닌, 청년들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삶의 항해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지역에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일자리의 확보 못지않게, 지역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탄탄한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서울대와 유사한 수준의 교육 지원을 통해 쇠퇴와 소멸에 직면한 지역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대두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대학의 약화는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중요한 구조적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산티아고의 마음속에 소년 마놀린이 없었더라면 노쇠할 대로 노쇠한 그는 지난한 항해와 험난한 사투에서 결코 버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적이고 무기력한 언어 속에 감추어진 마놀린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마놀린이 떠나는 순간, 노인도 바다도 모두 사라지고 만다.
[편집국에서] 한동훈·하정우는 왜 북구를 선택했을까
외지인들이 부산을 생각할 때 북구를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해운대 광안리만큼 화려하지도, 중구나 영도처럼 먹거리, 볼거리가 많지도 않다. YS(김영삼) 시절 부산 정치 1번지 대접을 받던 서구처럼 상징성이 있는 곳도 아니다. 400년 전통의 구포시장을 빼고 나면 북구를 소재로 뭔가 얘깃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북구가 6·3 지방선거의 최고 ‘핫플레이스’가 떠올랐다. 수도권 언론들이 연일 구포시장을 찾고, 북구 민심을 가늠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북갑 보궐선거는 각 후보들의 미래를 넘어 선거 이후 여야 정치 지형을 뒤흔들 수 있는 승부처가 됐다. 북구 주민들조차 의아해 할 이 신드롬은 우연에 우연을 더한 결과일까? 시계를 되돌려보면 여권이 10여 년 전부터 ‘낙동강 벨트’를 전략지역화하면서 서부산 전역이 여야 접전지로 바뀌었지만, 그 중에서도 북구는 정치적 균형점을 향해 달려가는 부산 정치의 역동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줬다. 19대 총선부터 국민의힘 소속인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과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인 전재수 전 의원이 네 번 맞붙어 첫 두 번은 박 전 장관이, 이후 두 번은 전 전 의원이 승리했다. 서부산 지역 지지층 분포가 ‘보수 6, 진보 4’ 정도라면, 때때로 달라지는 구도나 인물 경쟁력에 따라 정반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그야말로 부산 내 ‘스윙 스테이트’인 셈이다. 나는 북구의 이런 토양이 이번 역대급 대결의 촉매제가 됐다고 본다. 한 전 대표의 북갑행을 강력히 권유한 것으로 알려진 조갑제 씨는 1979년 부마항쟁과 1985년 ‘신민당 바람’을 일으킨 부산에 대해 “부산 시민들은 대의명분으로 연고주의를 극복, 역사를 바꾸는 화끈한 행동력으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권력의 무도함이 임계점에 이를 때, 학연·지연 등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 부산 사람들의 기질에 기대를 건 셈이다. 하 전 수석도 그냥 ‘배지’만 생각했다면 2년 뒤 총선에서 비례대표 상위권은 너끈히 받아냈을 것이다. 그의 도전은 험지이긴 하지만 구덕고 출신으로 강력한 지역 연고를 주장할 수 있는 고향에서 ‘전국구’인 한 전 대표와 붙어 승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급격한 정치적 체급 상승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전 대표든 하 전 수석이든 ‘리스크 대비 리턴’에서 북구는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였던 셈이다. 북구의 이런 정치 지형은 소위 말하는 강경파 대신 중도 소구력이 좋은 후보에게 유리하다. 전 전 의원부터 그랬다. 그가 10년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정파적 어젠더에 깊이 개입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박 전 장관만 해도 검찰 선배 윤석열 전 대통령과 가까워지기 전만 해도 당파성이 옅은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 전 대표는 강성 지지층이나 당 주류에게는 배신자 취급을 받지만, 적어도 비상계엄과 ‘윤 어게인’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일반 국민의 상식에는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다. 하 전 수석 역시 보수 쪽과도 폭넓게 교류한 걸 보면 진영 색채가 강한 정치를 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전 전 의원과 부산시장 선거에서 맞붙은 박형준 시장도 자타가 공인하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부산 선거에 지역을 넘어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해보고 싶다. 얼마 전 미국의 벤 세스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숏폼 정치’에 매몰된 미국 의회를 향해 “거의 모든 정치인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내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확실히 옳고, 저들은 확실히 틀렸다는 파벌주의는 우리를 꽤 어리석게 만든다”고도 했다. 췌장암 말기로 곧 다가올 죽음 앞에 선 정치인의 마지막 고언이라는 점에서 큰 울림을 준다. 우리 정치에도 딱 들어맞는 비판이다. ‘우리는 무조건 옳다’는 극단적 진영 논리 속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감각마저 무뎌졌다. 민주당이 기어이 추진하는 ‘조작기소 특검법’은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오랜 법언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진보 법조인들조차 이번 사태가 우리 법치주의에 미칠 심대한 폐해를 걱정한다. 계엄에 사과하고 ‘윤’과 단절하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길을 거부한 채 퇴행을 일삼던 국민의힘은 최후 기반인 영남마저 붕괴될 지경임에도 정적 제거에 더 목을 매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선거만 이기면 이런 행태가 다 용인될 것 같은 지금의 분위기가 못내 절망적이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말하지 않는 정치 속에서 우리는 이미 많이 망가졌고, 어리석어졌다. 전국의 시선이 쏠린 ‘부산 대전’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그 이전과는 다른 정치적 리더로의 위상을 갖게 될 것이다. 부산에서 상식적인 정치의 회복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쉽지 않겠지만, 가냘픈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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