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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올림픽

약물 올림픽

지난해 연말 ‘인핸스드 게임’(Enhanced Games)에 대해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인핸스드 게임은 오직 신기록만을 위해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기술 도핑은 물론 금지약물 복용마저 허용하는 대회다. 당시 글을 쓰면서 금지약물을 복용하면 과연 수많은 신기록이 쏟아질까 궁금했다. 최근 그 결과가 나왔다.얼마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첫 인핸스드 대회가 열렸다. 결과는 비참했다. 수영 종목에서 단 하나의 비공식 세계 신기록이 나왔을 뿐이다. 그리스 출신의 크리스티안 골로메에프는 남자 자유형 50m에서 20초81로 종전 세계기록을 0.07초 앞당겼다. 그는 2009년 국제대회에서 퇴출당한 전신 수영복까지 착용하고 경기에 나서 신기록을 작성한 것이다.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번 대회에는 육상, 수영, 역도 등 종목에서 42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주최 측은 세계 기록 경신에 100만 달러, 종목 우승에 25만 달러의 파격적인 상금을 내걸고, 무수한 신기록을 기대했다. 하지만 기록 경신은 골로메에프 1명에 그쳤다.인핸스드 게임은 ‘과학의 힘을 빌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한다’는 명목으로 기획된 대회다. 이 대회 참가자들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등 기존 스포츠계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경기력 향상 약물을 자유롭게 투여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른바 ‘스테로이드 올림픽’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역도의 보디 산타비(캐나다)와 웨슬리 키츠(미국) 등은 규정을 변경해 4차 시기까지 가는 편법을 동원했음에도 신기록 수립에 실패했다.오히려 금지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선수들이 도핑 선수를 꺾는 일이 속출했다. 전 육상 100m 세계 챔피언 프레드 커리(미국)는 약물 없이 9초97로 우승을 차지했다. 헌터 암스트롱(미국) 역시 도핑 경쟁자 2명을 제치고 남자 배영 50m에서 24초21로 정상에 올랐다.한 달 전,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마라톤 풀코스 2시간 벽이 케냐 출신의 사바스티안 사웨에 의해 깨졌다.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그의 대기록(1시간 59분 30초)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들이 보낸 환호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사웨의 인내와 정신력, 그리고 그가 흘린 수많은 땀방울 등에 대한 결과다.약물 없이 우승한 커리의 말이 뼈아프다. 그는 금지약물 복용자들을 향해 “그들은 훈련을 더 열심히 하거나 약을 좀 더 먹어야 할 것 같다”고 일침을 던졌다.

부산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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