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인가, 부산 디지털금융 도약의 계기로
부산의 제도권 금융과 기술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 컨소시엄이 토큰증권(STO) 유통 사업자 선정을 눈앞에 두게 됐다. 토큰증권은 실물·무형 자산이 블록체인 기술로 암호화된 뒤 거래되는 디지털 증표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7일 열린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심의에서 한국거래소(KDX)와 넥스트레이드(NXT) 컨소시엄을 선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금융위 의결을 남겨 두고 있지만 금융업계에서는 두 곳의 확정이 유력시되는 분위기다. 디지털금융에서 부상하고 있는 조각투자 유통 플랫폼 공모에서 지역 기업 연합체의 인가가 확정되면 부산은 디지털금융 도시 도약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다. 이번 장외거래소 인가는 디지털금융에서 급부상하는 토큰증권 유통 부문에서 지역 기업이 주역이 될 수 있는 계기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부산은 블록체인특구일 뿐만 아니라, 금융 공공기관이 집적된 금융 중심지라는 점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KDX 컨소시엄에 BNK금융그룹(부산은행·경남은행·BNK투자증권),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Bdan·비단), 세종디엑스, 비댁스(BDACS) 등 지역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 이유다. 부산의 관련 산업 생태계는 한우·농수산물·원유·위스키 같은 실물 자산과 영화·음악 등 지식재산권(IP)은 물론 항만·물류·해양 산업 기반의 디지털금융 상품까지 설계·검증하는 데 있어 강점을 갖췄다. 장외거래소 인가의 다른 의미는 금융의 구조 전환이다. 그간 조각투자 시장은 하나의 플랫폼에서 상품의 발행과 유통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이해 상충과 투자자 보호에 허점이 제기됐다. 기존 플랫폼은 발행에만 집중하되, 유통이 장외거래소에서만 이뤄지면 투명성과 공정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발행과 유통의 분리를 통해 조각투자가 투기성 거래가 아닌 신뢰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정착되는 것이 필요하다. 실험적 단계를 벗어나 실제 시장을 형성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무대로 도약하는 것이 관건이다. 디지털 자산의 유통 구조가 형성되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장외거래소 출범의 의미는 작지 않다. 부산의 전략은 명확해야 한다. NXT 컨소시엄이 수도권 금융 주축인 점에서 지역 연합체인 KDX 컨소시엄은 항만·물류·해양·수산 등 지역 산업 금융화의 강점을 내세워야 한다. 지역 산업과 무관한 거래만 오가는 유통 플랫폼은 지역에 뿌리내릴 수 없다. 또 부산 기업들이 컨소시엄 내에서 하청이나 보조 역할에 머문다면 디지털 금융 도시 도약 기대는 허상에 그친다. 부산시와 참여 기업들은 미래 금융의 주체라는 인식이 확고해야 한다. 어떤 자산이 발행되고, 어떤 산업이 성장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부산은 파생 금융에 더해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자산 생태계를 선도함으로써, 서울과는 다른 금융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사설] 해산 위기 넘긴 대형선망, 국민 생선 지킬 근본 대책 필요
국내 고등어 유통의 90% 이상을 공급하는 대형선망수협이 조합 해산이라는 최악의 국면은 일단 피했다. 업종별 수협 해산 기준을 완화한 수산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이 최근 시행되면서 조합원 수 감소로 존폐 기로에 섰던 조직은 가까스로 고비를 넘긴 셈이다. 국내에 유통되는 고등어의 상당 부분을 책임져 온 핵심 생산 주체가 제도적 허점 탓에 하루아침에 사라질 뻔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그 점에서 늦었지만 수산자원 감소, 어선 고령화 등 현실을 반영한 법 개정의 의미는 있다. 하지만 이번 법 개정은 어디까지나 급한 불을 끈 임시방편에 가깝다. 조합 해산을 막았다고 해서 고등어 산업의 근본 문제가 해소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형선망이 해산 위기에 놓이자 업계에서는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이나 중도매인·항운노조 조합원 등 배후 인력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이번 법 개정으로 조합원 최소 인원 요건이 15명 미만에서 7명 미만으로 낮아지면서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이들이 처한 현실은 법 조항 하나로 덮을 수 있을 만큼 녹록지 않다. 가령 현재 감척 대상인 2개 선단이 추가로 탈퇴할 경우 조합원 수는 다시 줄어들어 위기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대형선망이 처한 위기는 조합원 수 몇 명의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구조적 변화 없이 기준만 낮춘 결과는 불안정할 뿐이다. 더 큰 위기는 생산 기반 자체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어장이 이동하면서 중대형 고등어 어획량은 급감했다. 그 빈자리를 메우던 수입산 고등어마저 주요 수출국의 쿼터 감축으로 불안정해졌다. ‘국민 생선’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가격은 치솟고 식탁에서의 존재감은 옅어지고 있다. 한일어업협정 중단으로 대체 어장은 막혀 있고 선박 배출 규제 강화는 노후 선단의 교체를 사실상 가로막고 있다. 부산을 거점으로 한 대형선망이 흔들리면 부산 항만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도매, 물류, 노무 인력까지 연쇄 타격을 입는다. 이는 특정 업종의 문제가 아니라 해양수산업 전반과 지역 경제의 기반을 잠식하는 위험 신호다. 대형선망이 이번 고비를 넘긴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 모른다. 단기적 수급 대책이나 법 조항 손질만으로는 위기를 감당하기 어렵다. 정부는 수산업계의 말처럼 불합리한 규제를 점검하고 어업 현실에 맞는 지원책으로 고등어 산업을 지속 가능한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 실효성 있는 감척과 충분한 폐업 지원, 어선 현대화를 위한 금융·제도적 장치가 함께 맞물리면 좋다. 한일어업협정과 관련한 시범조업 재개와 대체 어장 조사 등 중단된 협상 타개 노력도 필요하다. 아울러 안전복지 펀드와 리스제도 도입으로 어선 사고를 줄이고 어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이를 놓치면 부산 어업의 붕괴는 가속화될 것이다. 또한 ‘국민 생선’ 고등어의 내일도 장담하기 어렵다.
[사설] 장동혁 비상계엄 사과, 국민의힘 전면 쇄신 출발점 돼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7일 당 쇄신안을 발표하고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이었다”고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이어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계엄 1주년 때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라고 언급한 것과는 달라진 태도다. 이번 쇄신안은 한동훈 전 대표의 당원게시판 논란이 윤리위원회에 회부되면서 당내 갈등이 격화되고, ‘중도 보수’로 평가받던 김도읍 정책위의장의 사퇴까지 겹치며 지도부 노선 강경화에 대한 비판이 커진 상황에서 나왔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인 외연 확장의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장 대표는 이날 당명 개정을 포함한 3대 축 전략을 제시했다. 지방선거를 대비한 당 쇄신의 핵심 축으로 청년 중심 정당, 전문가 중심 네트워크 정당, 국민 공감 연대를 내세웠다. 이 세 축을 통해 당의 외연을 확장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내겠다는 구상이다. 쇄신안에 대해 광역단체장들은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옳은 방향의 쇄신은 연대와 통합의 기반을 확대할 것”이라고 했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잘못된 과거를 단호히 끊어내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변화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데 대해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쇄신안이 당의 분위기를 전환하고 지지율 반등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담은 대목이다. 쇄신안이 변화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실제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문제, 한동훈 전 대표와의 관계 설정, 개혁신당과의 정치적 연대 구상 등 보수 진영 재편의 핵심 쟁점에 대한 언급이 빠졌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소장파 의원 모임인 ‘대안과 미래’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장 대표의 쇄신안에 대해 “내부 인테리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쇄신안이 국민들이 요구하는 수위까지는 가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을 표명한 것이다. 정책과 청년 중심의 정당 전환 의지는 긍정적이지만, 구조적 혁신이 빠졌다는 이들의 목소리에 장 대표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민주당이 공천헌금 의혹과 갑질 논란 등 대형 악재에 휩싸였는데도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대에 머물고 있다. 연초 실시된 각종 지방선거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힘에 대한 차가운 민심은 거듭 확인됐다. 그동안 당 안팎의 쇄신 요구가 빗발쳤지만, 장 대표는 강성 지지층에 발목이 잡힌 듯한 행보를 보이며 중도층 흡수 등 외연 확장에 한계를 보였다. 장 대표는 이번 기회를 전면 쇄신의 출발점으로 삼아 건전한 국정 견제 세력으로 거듭나는 복원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당 내외 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명확히 제시하고, 합리적 보수를 위한 가치와 비전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쇄신안은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패권에서 다극화로
미국은 도대체 왜 저럴까. 요즘 국제뉴스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미국은 글로벌 경찰국가를 자처하던 유일 패권국이자, 겉으로나마 민주주의나 표현의 자유 같은 근원적 가치를 수호하는 것으로 보이려 애썼던 나라다. 지금은 굳이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베네수엘라 석유, 그린란드 희토류와 북극. 자원이 있는 서반구와 북극까지 노골적으로 군침을 흘리고 있다.이유가 많겠지만 결국 나라 살림이 팍팍해진 탓이 클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1000조 원 넘는 국방비보다 나라 빚 이자를 더 많이 지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퍼거슨의 법칙’에 따르면 쇠퇴가 본격화된 것이다. 세계 최대 자원 보유국인 러시아 국력을 소모시키려 나토 동진으로 충동질한 우크라이나 전쟁도 소득 없이 패전만 기다리고 있다.전쟁 후 과거 유럽으로 향하던 러시아 자원은 중국과 인도로 방향을 틀었다. G7 국가 대부분이 휘청대는 사이 중국은 이미 2010년대 중반 이후 IMF(국제통화기금) 평가 구매력(PPP) 기준 세계 1위다. 인도는 지난 연말 명목GDP 기준 일본을 추월한 세계 4위 국가가 됐다. 러시아 역시 2022년 PPP기준 GDP 유럽 1위, 세계 4~5위권으로 평가됐다.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이집트, 인도네시아, 베트남,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같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미·중·러와의 관계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자국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국제정치 전문가들은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다극화 질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패권 시대의 허울을 유지할 여력이 없다는 얘기다. 200년 전 대통령의 아메리카대륙 세력권 유지 정책(먼로주의)이 다시 회자되는 것도, 이제 유라시아까지 관여할 힘이 없어진 현실의 완곡한 표현이다.목하 다극화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문제는 견제와 균형으로 다자질서가 자리잡을지, 더 복잡해진 이해관계 속에 혼돈 속으로 빠져들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이 혼란 속에 한국은 또 어떻게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미국의 퇴조가 한반도의 소통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재회를 고대한다. 러시아와도 관계 정상화를 꾀한다. 멀리 있는 여러 적을 동시에 상대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1월 중간선거 전 반전을 꾀하려면 4월 중국 방문 전후가 골든타임이다.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한 원칙과 유연한 외교, 다양한 국가와의 네트워크가 절실하다.이호진 선임기자 jiny@
논설주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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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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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의 디지털 광장] 어제보다 오늘이 낫다
한때 어설픈 채식주의자 노릇을 한 적이 있다. 한때라고는 하지만 따져 보면 11년 정도 고기를 끊고 살았으니 짧지만은 않다. 몇 년 전부터 태도가 바뀌어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한 주에도 서너 번 돼지국밥집을 갔다. 한 선배가 “그동안 어찌 참았누? 혹 집에서 몰래 먹은 거 아니가?”라고 물을 정도였다. 10년 전 느낀 고기 맛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채식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습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신문을 보는 습관 이야기다. (종이)신문업계 종사자로 평생을 살았다. ‘종이신문은 곧 사라진다’ ‘디지털 시대가 온다’ ‘신문은 사양산업이다’ 등등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신문사들이 근 10년 이상 화두로 삼고 있는 주제가 있다. 범상치 않은 주제였지만, 어제의 수많은 고민은 현상유지의 오늘과 겪지 않은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위기감은 무뎌졌다. 또 새로운 ‘디지털 전략’으로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는 자기 만족도 여기에 한몫했다. 신문업계 시니어들은 대체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역시 신문은 종이로 읽어야 해. 침 발라가며 한 장 한 장 넘기는 맛이 있어.’ ‘우리는 고유문자를 가진 위대한 민족이야. 읽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길러야 하는데 신문만 한 매체가 어디 있나?’ ‘인터넷 뉴스는 중구난방이야. 가짜뉴스를 어떻게 구분해? 신문은 편집을 하지. 어젠다를 던져주는 거야. 사람들은 이것을 더 좋아할 걸?’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종이신문은 오래갈 거야. 누가 신문이 망한대. 쓸데 없는 소리라곤.’ ‘봐 바 디지털이 돈이 되냐고? 어차피 돈이 안 되잖아. 우리나라는 뉴스가 공짜인데 뭐가 되겠어?’ 신문의 미래를 다들 고민하고 걱정했지만 언론사 선배층 ‘범생’의 수준은 이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언론계 지각이 급변하고 있다. ‘방송마저 무너지고 있다’가 최근 몇 년 전의 상황이다. 공룡 같던 포털도 흔들리고 있다. 유튜브가 언론의 자리를 차지해 여론을 지배하고 있다. 포털의 검색시장은 너무나도 똑똑하고 다양한 인공지능(AI)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있다. 오락 분야는 넷플릭스, 왓차, 티빙 등 OTT가 떡하니 차지했다. 미디어 시장이 용광로처럼 들끓는 와중에서도 신문은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며 일단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문 사랑이 유독 찐한지, 우리나라 신문시장만 독특한 것인지 분석은 학자들이 해야겠다. 독일 지역신문의 디지털 전환 사례를 보기 위해 꾸린 ‘2019년 독일언론 신사유람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지금은 본보에서 날카로운 필력으로 맹활약 중인 김승일 논설위원이 기획했고, 취지에 공감한 언론재단이 동참한 대규모 조사시찰단이었다. 회사 디지털TF의 일원으로 참가했지만, 철저한 종이신문주의자였던 어제의 사고는 그 이후로 180도 바뀌었다. 익숙한 기자입력기를 버리고 통합CMS(콘텐츠관리시스템)를 도입하는 태세 전환을 한 것도 이 즈음이다. 당시 독일신문은 젊은층의 신문 외면, 배달 비용 상승, 광고 감소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독일은 신문사를 유지하는 구독료와 광고 수익의 감소로 인해 디지털 전환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인터렉티브 보도, 심층보도 등 언론 기본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온라인 서비스 강화에 사활을 걸었다. 권역 도시의 디지털 독자가 얼마나 홈페이지에 접속하는지 분석하고, 해당 지역의 접속수가 떨어지면 즉각 관련 기사를 올려 대응하고 있었다. 궁금한 것을 물었다. “종이신문이 10년 안에 사라진다고 말씀하셨는데 PDF서비스는 대안이 되나요?” 답은 분명했다. “PDF는 답이 아닙니다. 종이신문과 함께 몰락할 것입니다.” PDF신문으로 디지털화를 꾀했던 내면의 의도가 박살 났다. 그런데 최근 다른 자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가지 않겠다는 PDF신문 구독의 길을 독일신문은 택했다. 2024년 기준 독일의 지역신문은 전국 1350만 부가 발행되는데 ‘이페이퍼 PDF신문’ 구독자도 260만 명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왜 홈페이지 기사를 유료 독자에게 나열식으로 보여주는 영미식 로그인월 방식만 택하지 않고 지면처럼 생긴 디지털 신문을 내세웠을까. 생각건대 이것은 어제의 향수에 기댄 전략이다. PDF신문으로는 밥상을 덮거나 라면 냄비 깔개를 할 수는 없지만, 종이신문에 있는 독특한 내음과 맛이 있다. 넘길 때의 쾌감, 한눈에 들어오는 지면, 크고 작은 제목의 편집 의도 등이다. 〈부산일보〉가 부울경 독자의 사랑을 받는 지역신문에서 더 나아가, 전국의 독자들이 구독할 수 있는 신문이 되는 지름길이 PDF신문이다. 이 신문은 종이신문과 완전히 다르다. 채식주의자가 먹는 콩고기가 고기가 아니듯이, PDF신문은 신개념 디지털 신문이다. 콘텐츠 그룹 〈부산일보〉는 한층 고도화된 〈이페이퍼 PDF신문〉을 이달 말 전세계 독자에게 선보인다. 기대하시라. 이재희 디지털국 국장 jaehee@busan.com
[백재파의 생각+] AI 시대의 평가 방향
최근 국내 최고 대학으로 손꼽히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에서 생성형 AI(인공지능)를 활용한 부정행위 사례가 언론을 통해 잇따라 보도됐다. 서울대에서는 ‘통계학실험’ 대면 중간고사 과정에서 다수의 학생이 AI를 이용해 답안을 작성한 정황이 확인됐고, 연세대와 고려대에서도 온라인 비대면 시험 중 많은 학생이 생성형 AI를 활용한 사례가 드러나 큰 충격을 주었다. 이제 일상의 필수 도구로 자리 잡은 AI가 대학의 평가 영역에까지 빠르게 침투해 대학가는 전례 없는 혼란에 빠지고 있다. AI 활용 부정행위로 인한 혼란에 대학들이 선택한 대응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시험과 과제에서 생성형 AI 활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시도다. AI 생성물 탐지 프로그램을 활용, 생성형 AI 사용이 의심되는 결과물을 식별하고 적발될 경우 0점 처리나 징계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사용 범위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접근이다. 대학서 AI 활용한 부정행위 사례 충격 시대 흐름에 맞는 평가 시스템 준비를 이해도·기초 지식 묻는 영역에선 제한 이용한 결과물엔 설명 요구 방식 필요 그러나 생성형 AI 활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첫 번째 방식은 현실적으로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현재의 AI 생성물 탐지 프로그램은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아 단어나 문장을 일부 수정하는 것만으로도 의심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또 반대로 학생 스스로 작성한 글이 AI 생성물로 오인돼 부정행위로 판단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에 비해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올바른 사용을 유도하자는 두 번째 방식은 첫 번째 방식보다 유연하고 근본적 해결 방식으로 보이지만 실효성 측면에서 큰 효용이 없다. 대부분의 가이드라인은 AI를 보조적 도구로만 활용해 참고만 하고 최종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학생에게 있다는 원칙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이처럼 판단 기준이 모호하고 강제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은 원론적 선언 이상의 의미를 담보하기 힘들다. 결국 기존의 평가 틀을 유지한 채 AI 활용을 통제하려는 방식은 구조적으로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AI 시대 대학이 고민해야 할 질문은 AI 사용에 대한 통제 여부가 아니라, 이 시대에 학생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 것인가에 있다. 다시 말해 대학 교육은 AI 시대에 학생에게 요구되는 역량을 중심으로 교육의 목표와 평가 기준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고, 이에 걸맞은 평가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이다. AI 시대에도 학생은 여전히 자신의 학문 분야에 대한 기초 지식과 핵심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이 타당한지, 오류나 할루시네이션은 없는지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이를 사용하는 인간의 지식과 비판적 사고가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초 지식과 비판적 사고가 전제되지 않은 AI 활용은 학습이 아니라 단순한 의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학문 분야의 기초 지식과 이해도를 평가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생성형 AI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 핵심 개념과 원리, 기본적인 문제 해결 능력은 AI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설명하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대면 시험이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평가를 통해 학생이 실제로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느 수준까지 이해하고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AI 시대의 대학 교육에서는 학문 기초 지식에 더해 AI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역시 중요한 역량으로 평가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AI 활용 능력은 단순히 AI를 사용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목적에 맞게 질문을 설계하고 생성된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이를 자신의 사고와 결합해 창의적 결과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이러한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AI를 활용해 도출한 결과물과 함께 그 과정과 판단 근거를 설명하도록 요구하는 평가 방식이 필요하다. 특히 결과물 제출에 그치지 않고 구술 설명이나 발표, 토론 등을 병행해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다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다. 물론 구술 시험을 비롯한 발표, 토론 중심의 평가는 기존의 평가 방식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담을 이유로 평가 방식의 전환을 미루는 한 대학 교육의 신뢰를 유지하기 어렵다. 강좌의 소규모화와 교수 인력 확충 등 구조적 투자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어떤 AI 활용 정책이나 가이드라인도 교육 현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다.
[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풍경이 보이는 음악, 드뷔시의 '판화'
자료를 찾다보니 1월 9일에 초연된 곡이 꽤 많다. 차이콥스키 발레곡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죽음과 변용’이 1890년 오늘, 러시아와 독일에서 각각 초연되었다. 생상스 피아노협주곡 5번이 1896년 파리에서 초연되었으며, 라벨 ‘밤의 가스파르’와 쇤베르크 현악4중주 2번은 1909년에, 본 윌리엄스의 ‘토머스 탤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은 1910년 오늘 초연되었다. 그리고 드뷔시의 피아노 모음곡 ‘판화’(Estampes)가 1903년 오늘 파리국립음악원에서 피아니스트 리카르도 비네스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드뷔시는 당시의 인상주의 미술이 시간 속에 변화하는 이미지를 포착하려 한 것처럼, 음색이 가진 미묘한 인상에 주목했다. ‘달빛’ ‘아라베스크’ ‘판화 같은 드뷔시의 피아노곡은 그 자체로 ‘귀로 듣는 그림’이라 하겠다. 제1곡 ‘탑’(Pagodes)은 동양의 사원에서 보이는 탑이 물에 비친 모습을 그리고 있다. 1889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 처음 듣게 된 인도네시아 자바의 가믈란 음악과 아시아 5음 음계의 영향을 잘 보여준다. 제2곡 ‘그라나다의 저녁’(La soiree dans Grenade)은 하바네라 리듬과 반음계 장식을 써서 스페인의 정취를 나타내고 있다. 드뷔시는 ‘판화’를 작곡할 때까지 인도네시아나 스페인을 가본 적 없었다. 오직 상상의 세계에서 썼다. 이 곡을 들은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는 “어쩌면 민요 한 소절도 갖다 쓰지 않고서 이렇게나 훌륭하게 스페인을 그려냈는가”라고 탄복했다. 제3곡은 ‘비 오는 정원’(Jardins sous la pluie)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노르망디의 마을에 있는 정원을 묘사했다. “나뭇잎에 떨어진 빗방울이 반사되면 얼굴이 초록빛으로 물든다”라는 화가 블랑슈의 말에 영감을 받아 쓴 곡이라고 한다. 프랑스 동요 선율을 인용했다. 세 곡이 모두 무척 시각적인 이미지를 제공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한 그림을 보고 쓴 작품은 아니다. 그림에서 나온 음악이 아니라 음악이 곧 그림처럼 펼쳐지는 작품이다. 정말 많은 연주자가 ‘판화’를 사랑해서 무대에 올렸지만, 오늘은 메나헴 프레슬러(Menahem Pressler)의 영상을 골랐다. 1923년 독일에서 태어나서 2023년으로 딱 100년을 살다간 피아니스트다. 전설적인 ‘보자르 트리오’를 창단하여 무려 53년의 세월을 같이했으며, 트리오를 해체한 후에도 90대까지 연주 활동을 계속했다. 영상은 2011년, 88세 되던 해 도쿄 산토리홀에서 가진 연주회의 한 부분이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라고 엄살 부리고 싶을 때 이런 영상을 보면 낯이 부끄러워진다.
[데스크 칼럼] 은행에 '먼저 온 미래'
지난해 최대 수익을 낸 은행권이 ‘역설적이게도’ 대대적인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특히 대상 연령이 만 40세(1985년생)까지 확 낮아지면서 “잘 나가는 은행이 왜? 뭐가 급해서”라는 의문이 따랐고, 많은 사람 입에 오르내렸다. ‘정년 연장’ 논의까지 거세지고 있는 마당에 ‘40세 은퇴’라니,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과거 ‘사오정’(45세 정년)이 유행하던 시절, 명예퇴직의 목적은 ‘비용 절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력 재편’이 목적이 됐다. 이 때문에 1인당 5억 원씩 얹어 주고라도 사람을 내보내려 한다. 은행의 경우 대면 업무를 하던 영업 인력을 줄이고 대신 디지털 업무를 고도화할 IT 전문가들로 인력 포트폴리오를 새로 짤 계획을 세우고 있다. AI(인공지능) 뱅커나 AI 화상 창구 등 디지털 금융 서비스가 늘며 영업점 수는 점점 줄고 있고, 그만큼 사람이 하던 업무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노련한 은행원은 고객의 목소리 톤만 듣고도 대출 연장 여부를 판단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AI가 고객의 소비 패턴과 SNS 활동까지 분석해 0.1초 만에 등급을 매길 정도니 사람 사이 ‘신뢰’라는 감정도 설 자리가 없어졌다. 조직 내에서 갈고 닦은 실력과 경험치를 가진 ‘중고참’ 15년차, 40세마저도 ‘나가도 그만’이 될 정도면 앞으로 ‘IT 인력’을 제외하고는 채용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보인다. 이 때문에 은행권의 희망퇴직 뉴스는 또 다른 인력 시장의 ‘구성품’에 불과한 직장인들에게 위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소설가 장강명이 쓴 책처럼, 은행에 ‘먼저 온 미래’다. 장 작가는 저서 〈먼저 온 미래〉에서 이세돌 9단이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게 진 후 프로 기사들의 달라진 ‘세계’를 인터뷰하며,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의 세계를 끊임없이 비춘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그러하듯, 독자도 자신의 직업에 이를 빗대보게 된다. 장 작가는 말한다. “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수십 년의 시간을 들여 헌신한 일을 더 잘해내는 인공지능이 싼 가격에 보급되는 것. 그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강요 당하는 것.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를 따라야 하는 것. 당신이 알고 있던 개념을 인공지능이 재정의하고, 당신은 그것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것.” 실제로 10년, 20년 쌓아온 자신의 전문 지식이나 노하우를 AI가 단 몇 초 만에 처리하며 더 뛰어난 결과물을 내놓는 걸 보면, 박탈감을 느낀다는 이들이 많다. 기자도 예외가 아니다. 40세까지 내려온 희망퇴직 연령 탓에 은행권이 시끌벅적한 신호탄이 됐지만, 실은 곳곳에서 이 같은 인력 재편이 일어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공정 품질 분석에 AI를 도입하면서 분석 시간을 3주에서 2일로 단축했고, 이에 따라 단순 분석 인력은 줄이고 AI 모델을 관리하는 전문 인력 중심으로 인력을 재편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에서는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해 직원의 약 7%가 퇴사했는데, AI 등 신사업을 위한 신입사원 채용이 희망퇴직의 주요 배경으로 알려졌다. 마침 6일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6의 핵심 키워드는 ‘피지컬 AI’라고 한다. 그나마 디지털 공간을 벗어나면 맥을 못 추던 게 AI였는데, 이제는 AI가 디지털 공간에서 벗어나 몸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AI가 로보틱스와 결합해, 단순 자동화를 넘어 물리적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해 조작하게 되면, AI가 사람을 대신할 일은 더 많아질 것이다. 이번에 은행권이 보여준 거대한 예고편을 보며, 우리는 본편을 준비해야 한다. ‘AI 시대, 인간이 AI에 대체될 수 없는 경쟁력을 가지려면 뭘 준비해야 할까.’ 아무리 궁리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아 AI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AI 시대에 인간이 대체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기계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다움에 집중하는 것이다.” 미래의 인재는 AI에게 명령을 내리는(Prompter) 사람이거나, AI의 결과물을 책임지는(Decision Maker)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그러면서 3가지 핵심 준비 사항을 일러준다. △정답을 찾는 능력에서 질문하는 능력으로 바꿀 것 △인간의 고유 영역인 공감과 협상 능력을 높이기 위해 감성 지능(EQ)과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갖출 것 △새로운 AI 툴이 나왔을 때 빠르게 습득해서 적용하는 적응력을 키울 것. AI가 말한다면 정답이겠지. AI가 다 해주는 시대가 되면 인간은 더 편해질 줄 알았더니, 왜 할 일은 더 많아지는 걸까.
[시론] 가덕도신공항, 대한민국 전환의 킹핀 전략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볼링’이라는 스포츠를 통해 흥미로운 전략적 깨달음을 얻는다. 열 개의 핀 중 ‘킹핀(Kingpin)’을 정확히 타격하면 나머지 핀들은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경영학에서는 복잡한 난제 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고리 하나를 해결함으로써 복잡한 문제를 동시에 풀어내는 방식을 ‘킹핀 전략’이라 부른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바로 이 ‘킹핀 전략’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에 서 있다. 수도권 일극 체제로 인한 국토 불균형, 침체 일로를 걷는 남부권 경제, 나날이 치열해지는 글로벌 물류 전쟁, 그리고 인공지능(AI)과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한 급격한 산업구조 재편까지.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은 실로 복합적이고 거대하다. 이 얽히고설킨 난제들을 개별적으로 풀려다가는 골든타임을 놓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문제를 단번에 관통하여 해결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킹핀은 과연 무엇인가? 부산 경제계는 그 해답이 바로 ‘가덕도신공항’에 있다고 확신한다. 흔히 가덕도신공항을 두고 지역의 숙원 사업 정도로 치부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가덕도신공항의 본질은 단순히 지방 공항 하나를 더 짓는 차원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경제, 물류, 해양산업 지형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국가 대전환 프로젝트’다. 가덕도신공항은 국가균형발전의 실질적 완성, 남부권의 새로운 성장 엔진 확보, 부산신항과 시너지를 창출하는 복합물류체계의 완성,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의 도약, 그리고 AI 첨단산업의 실증 무대 구축까지, 이 모든 과제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전략적 기회다. 세계 물류의 흐름을 주도하는 허브도시들은 이미 답을 알고 실천 중이다. 싱가포르는 창이공항과 투아스 항만을 연계한 ‘Sea-Air 복합운송 시스템’을 구축하여, 단순한 환적 기능을 넘어 고부가가치 가공 무역의 허브로 자리 잡았다. 두바이 역시 제벨알리 항만과 알막툼 공항을 잇는 ‘두바이 물류 회랑(Dubai Logistics Corridor)’을 통해 화물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며 사막의 기적을 일구어냈다. 이들은 항만과 공항이 물리적으로 결합할 때, 그리고 그 위에 디지털 물류 시스템이 입혀질 때 도시 전체가 거대한 ‘초연결 경제 플랫폼’으로 진화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 부산은 동북아에서 유일하게 항만-공항-제조-AI를 동시에 통합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도시다. 여기에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높아진 부산의 브랜드 가치, 해양수산부와 해운 대기업들의 잇따른 이전, 주력 제조업의 부활은 대한민국 산업 지형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 흐름을 하나로 꿰어 완성시키는 킹핀이 바로 가덕도신공항 건설이라는 것은 부산 경제계가 내린 확고한 결론이다. 최근 정부는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 재입찰 발표와 함께 공사 기간도 106개월로 연장함에 따라 시민들의 우려가 크다. 물론 안전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다. 그러나 논쟁이 공사 재개 여부나 단순한 공기 단축, 기술적 세부 사항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작은 이슈에 갇혀 이 사업이 가진 거대한 국가적 가치와 전략적 시의성을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가덕도신공항은 국가 백년대계인 만큼 다음의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투입해 난도 높은 해상 공사를 완벽히 수행해야 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책임 있는 자세로 사업을 이끌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재입찰 절차를 포함하여 행정적 지연 없이 공사가 즉각 재개되도록 하고, 106개월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단축할 획기적인 기술적 해법을 총동원해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 관리를 보여주어야 한다. 가덕도신공항을 지역 SOC 사업이라는 낡은 틀에 가두지 않고, 대한민국 경제와 산업의 전환을 이끄는 전략적 중심축으로 완성할 수 있느냐에 우리 경제의 미래가 달려 있다. 부산상공회의소는 정부, 부산시, 그리고 관련 기관과 합심하여 이 킹핀 전략이 성공적으로 완수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쏟을 것이다. 핀은 세워졌다. 이제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정확하고 힘차게 킹핀을 쓰러뜨려, 대한민국 경제의 시원한 스트라이크를 만들어내야 할 때다.
[구모룡 칼럼] 제3의 개항과 체제 전환
새해를 맞아 가덕도를 다녀왔다. 경남 진해 용원의 대구 맛 기억이 나를 이끌었다고 해도 좋을 터인데 이참에 부산신항과 가덕도 신공항 자리를 보고 싶다는 속내도 있었다. 세계 유수의 선사가 보유한 컨테이너선이 기항한 가운데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터미널의 위용이 무척 놀라웠다. 몇 년 전에 제법 큰 요트에 승선해 부산항과 신항을 돌아본 추억을 환기하며 과연 세계적인 항만이라는 자각을 다시 했다. 여기에 가덕신공항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신공항은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니 신항이 준 환희가 금세 사라지고 만다. 이처럼 부산의 마음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에게 엇박자의 형국이다. 마침 정부 부처인 해양수산부가 내려와 환호와 갈채가 적지 않다. 해양수도의 염원이 실현되리라는 희망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오는 2월이면 부산은 개항 150주년을 맞는다. 나는 이를 제3의 개항이라고 자리매김한다. 제1의 개항은 식민화하는 아프고 못난 얼굴을 지녔다. 일본 제국의 통로가 돼 대륙과 섬을 잇는 관문 역할을 했다. 수탈의 아픈 역사를 생각할 때 기념하기에 아쉽기만 하다. 일본 요코하마의 잘난 개항에 비할 때 더욱 그런 마음이 든다. 막말(幕末) 우키요에 판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조차 1830년경에 ‘가나자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를 그려 바다로 밀려오는 서구 해양 세력의 위협을 경계하며 일본 사회를 눈뜨게 했다. 호쿠사이의 그림을 ‘거대한 물결’로 재해석한 이는 일본계 미국인 서평가인 미치코 가쿠타니이다. 그녀의 지적처럼 일본 사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그림을 소환해 경종을 울렸다고 한다. 제1의 개항기에 우리는 이와 같은 변화의 물결을 보지 못했다. 제2의 개항은 냉전체제와 그 하위체제인 분단체제로 근대화하면서 대양으로 나아간 극복과 도전의 의미를 지닌다. 이 시기에 부산은 조역이 아니라 주역이었다. 식민의 유산이지만 제1 부두에서 제4 부두에 이르는 항만 기반 시설은 한국전쟁의 교두보였고 대양과 접속하면서 근대화를 이끌었고 20세기 후반 내내 용호만에 이르기까지 컨테이너 터미널이 형성되는 확장을 이뤘다. 제2의 개항은 신생 독립국인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나아간 궤적과 맞물린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 자본주의는 효율성을 앞세운 국가 독점 시스템을 형성한 측면이 크다. 1990년대에 진행된 냉전체제의 와해와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의 행진 속에서 부산은 세계적인 노동 분업으로 제조업이 몰락하는 한편 한국 사회의 중심주의에 희생되는 주변화를 겪게 된다. 제2 개항은 영광에서 시작해 굴욕으로 끝났다. 세계화 이후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서울 중심 일극체제가 고착하는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부산의 눈으로 세계를 보면 서울 중심 일극체제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된다. 대륙과 해양을 두루 소통하며 경영해야 할 나라가 수도권이라는 내륙으로 축소되는 형국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부산을 해양수도로 삼겠다는 국가적 방향 설정은 하나의 사건이라 할 만하다. 이를 두고 제3의 개항을 가능하게 하는 지렛대라고 할 수도 있겠다. 더불어 북극항로의 환상도 큰 여파를 미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북극항로는 준비할 대상이지만 낙관할 일은 아니다. 국제문제전문가인 크리스토퍼 자이들러는 북극해 쟁탈전이라는 ‘그레이트 게임’이 진행될 소지가 있음을 예견하며 경고한다. 지금 세계는 ‘불량 행위자’가 판을 치고 있다. 북극해 영유권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캐나다와 덴마크, 노르웨이 등의 움직임이 국제 해양법 협약을 준수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또한 기후 위기와 해수 상승 등의 문제를 물류 이동의 편익으로 환산하긴 힘들다. 이래서 마냥 북극항로에 희망을 걸지 않아야 한다. 부산이 맞는 제3의 개항은 무엇보다 체제 전환이라는 사회적 변혁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해양수도로 정립되고 해양수도권이 형성되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정치는 서로 말을 차지하려는 싸움이다. 5극 3특으로 행정 구역을 재편하는 일은 평면적이나 일극체제 재편을 지향하는 정책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해양수도는 내륙의 수도와 해역의 수도라는 맥락에서 일국 수준을 넘어 체제 전환을 이루어 내는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해양수도의 내용을 채우는 일이 긴요하다. 해양 관련 산업이나 본사, 해수부 산하기관의 이전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일국 수준이 아닌 지역적이고 세계적인 글로벌 허브로의 도약이 절실하다. 해양수도를 매개로 체제 전환을 이루는 제3의 개항이 완성되려면 부산은 반드시 싱가포르 등에 비견되는 글로벌 해양 거점 도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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