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정·도정 심판 vs 정권 심판… 막 오른 지선 유권자 선택은
6·3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14일부터 일제히 시작되면서 전국이 본격적인 선거 국면으로 들어갔다. 이번 지선 최대 접전지이자 향후 정치질서 재편에 분수령이 될 부울경의 여야 후보들도 진검승부에 돌입했다. 이번 선거는 지방 권력 재편을 넘어 출범 1년을 맞은 이재명 정부에 대한 첫 전국 단위 민심 평가라는 점에서 정치적 함의가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와 함께 출범한 지방권력을 심판해야 한다”고 외치고 국민의힘은 “정부·여당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고 맞선다. 여야 모두 ‘심판’을 말하지만 정작 선거판은 중앙 정치 대결 양상으로 흐르는 분위기다. 하지만 부울경 유권자가 보고 싶은 것은 누가 더 지역을 책임질 준비가 돼 있느냐일 것이다. 부산시장 선거만 봐도 심판론은 선명하다. 민주당 전재수 후보는 후보 등록 직후 “성과 없고 공허한 박형준 시정을 멈춰야 한다”며 “현 정부와 발맞춰 해양수도 부산 비전을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북항 재개발과 글로벌법, 산업은행 이전 등이 지지부진했다는 점을 내세워 시정 심판론을 전면에 띄운 것이다. 반면 국힘의 박형준 후보는 “이재명 정권의 폭주를 막고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겠다”고 맞섰다. 두 후보 모두 지역 공약보다 정치적 상징성을 앞세웠다는 점은 이번 선거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산이 지선 격전지를 넘어 여야 정치 대결의 바로미터로 떠오른 셈이다. 경남에서는 박완수 국힘 후보와 김경수 민주당 후보가 맞붙고, 울산에서는 김두겸 국힘 후보와 민주·진보 진영 단일화 논의가 맞물리며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 지역 역시 지역 발전보다 진영 결집 메시지가 더 두드러진다. 실제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개별 공약보다 심판론이 더 자주 거론된다. 민주당은 ‘윤석열 키즈’ 프레임을 내세워 “중앙정부와 협력할 지역 일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국힘은 “지방권력까지 내주면 견제 장치가 사라진다”고 맞선다. 전문가들이 이번 선거를 후보 경쟁보다 정당 대결 성격이 강한 선거로 보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구도 속에서 정작 지역의 미래를 좌우할 정책 경쟁이 뒤로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일까지 20일도 채 남지 않은 만큼 여야의 심판론 공세는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날 후보 등록 현장에서 더 크게 부각된 것은 청년 일자리와 산업 경쟁력, 교통·주거 같은 생활 현안보다 정치적 대립 구호였다. 부산의 산은 이전과 글로벌법, 경남의 우주항공·방산 산업 전략, 울산의 산업 전환 위기 같은 과제는 중앙 정부와의 친소 관계가 아니라 지역의 실행력과 전략이 성패를 좌우할 문제들이다. 이런 현안들이 정쟁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나선 안 된다. 이번 지선에서 부울경 유권자들의 한 표는 단순한 찬반을 넘어 지역의 다음 4년을 결정하게 된다. 지역 유권자 선택에 부울경의 운명이 달렸다.
[사설] 팬스타 북극항로 첫발, 넘어야 할 경제·외교적 파고 높다
부산의 향토기업이자 대표적인 해운선사인 팬스타그룹이 정부의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설 전망이다. 팬스타그룹은 한국해양진흥공사와 한국해운협회가 최근 주관한 ‘북극항로 시범운항 선사 선정 공고’에 단독 신청했다. 팬스타그룹은 최종 확정 통보를 받게 되면 15일 협약을 체결한다. 북극항로 시범운항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인 ‘북극항로 개척을 통한 신무역로 선점’ 이행을 위해 극지 환경에서 선박 운항 경험과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목적이다. 시범운항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2030년 상업운항 시대를 연다는 게 정부의 청사진이다. 부산항에서 출발하는 첫 북극항로 개척에 지역 해운기업이 도전한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팬스타그룹은 부산항을 기점으로 여객과 화물을 동시에 운송하는 종합 해운물류 기업이다. 팬스타그룹은 북극항로 시범운항 선사로 참여하기 위해 면밀한 준비를 진행해 왔다. 오는 9월 시범사업에 투입할 선박으로 내빙등급을 보유한 선박 2척을 매입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또 3000TEU급 컨테이너 선박을 북극항로에 띄우는 것이 공모의 목표였던 만큼, 팬스타그룹은 해수부·해진공·해운협회로 구성된 ‘북극항로 활성화 민관협의회’의 지원을 받아 화물 확보에 나선다고 한다. 해수부가 선제적으로 1000TEU가량의 북극항로 화물 수요를 파악한 상황이어서 철강, 자동차 부품 등 부가가치가 높은 화물을 자체적으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팬스타그룹이 북극항로 개척을 위해 첫발을 내딛게 됐지만, 이제 험난한 길을 마주해야 한다. 경제·외교적 파고가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당장은 북극 얼음이 녹는 7~10월에만 열리는 항로를 부정기적으로 운항해야 해서 안정적인 화물 확보가 큰 과제다. 극지 운항 경험이 있는 선원 확보도 부담이다. 북극항로는 부산항에서 출발해 베링해협과 러시아 연안의 북극해를 통과한 뒤 유럽으로 향하는 북동항로와 미국으로 들어가는 북서항로로 나뉜다. 특히, 북동항로는 러시아가 운항 허가와 항로 관리 권한을 쥐고 있다. 미국과 EU의 러시아 제재 기조, 북극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전략적 이해관계도 얽혀 있어 정부 차원의 러시아 협력 체계 구축이 매우 중요하다. 공급망 불안과 에너지 안보 위기가 상시화된 글로벌 정세에서 북극항로는 해상 운송로를 넘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새로운 전략 자산이다. 중동 전쟁으로 인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로 그 중요성은 더 커지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팬스타그룹의 도전은 부산이 북극항로 개척의 거점으로 도약할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나아가 북극항로는 동남권과 남부권을 유기적 경제권으로 연결하는 해양 수도권 구축의 핵심 동력이기도 하다. 북극항로 시범운항이 상업운항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와 북극항로 활성화 민관협의회를 중심으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야 할 것이다.
[사설] 부산시장 블라인드 오디션, 정책 선거 활성화 계기로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아쉬움 가운데 하나는 지역 현안보다 중앙 정치 이슈가 선거판을 삼킨다는 점이다. 도시의 미래를 논해야 할 선거가 어느 순간 정당 대결과 정치 공방, 진영 논리에 매몰되면서 정작 시민 삶과 직결된 정책이나 검증은 되레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다. 그런 점에서 〈부산일보〉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마련한 ‘부산시장 블라인드 정책 오디션’은 의미 있는 시도라 할 만하다. 후보 이름과 정당을 가린 채 정책 답변만으로 평가한 이번 기획은 유권자에게 정책 중심 선택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부산의 미래를 놓고 어떤 비전과 실행력을 가졌는지 시민이 직접 비교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첫 검증 대상이 된 금융·일자리·해양수도·공공기관 이전 등 경제 분야에서 두 후보는 비교적 선명한 차별성을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후보는 동남권투자공사 설립, 북항 공공SPC 추진, 시장 직속 부산 세일즈단 설치 등 현실적 실행 방안을 구체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는 산업은행 이전과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을 축으로 부산을 세계 해양데이터 허브 도시로 만들겠다는 큰 그림을 제시했다. 특히 ‘공항에서 북항까지 20분 시대’ 같은 시민 체감형 비전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북항 개발과 공공기관 이전 전략에서도 두 후보는 각각 실행력과 비전이라는 서로 다른 강점을 보였다. 정책 평가단은 “두 후보 모두 임기 내 달성 목표와 단계별 추진 일정 등 정량적 로드맵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평가 결과는 25점 만점에 전재수 후보 18.25점, 박형준 후보 17.25점이었다. 점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두 후보의 도시 비전과 정책 역량을 가늠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다. 다만 아쉬운 건 이런 정책 경쟁이 실제 토론에서는 충분히 이어지지 못한 점이다. 지난 12일 열린 방송 토론에서 두 후보는 정책 대결보다 “까르띠에 시계 받았나” “엘시티 왜 안 팔았나”와 같은 상대 흠집 내기에 가까운 네거티브 공방을 벌였다. 지금 부산은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 등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후보에게 요구되는 것은 실질적인 정책과 해법 경쟁이다. 이번 블라인드 정책 오디션은 무기명 검증 방식 속에서도 유권자들이 두 후보의 시정 철학과 정책 방향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지역 유권자들은 이를 통해 부산의 미래를 비교할 기준을 얻게 됐다. 앞으로 두 차례 추가 정책 오디션도 예정된 만큼 남은 검증 과정에서는 부산 현안을 얼마나 현실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일가량 남은 선거 기간, 후보들은 보다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고 유권자들은 그 실현 가능성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번 시도가 정당과 진영 중심 선거를 넘어 비전과 실행력을 겨루는 정책 선거 활성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밀물썰물] G2의 '투키디데스 함정'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저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패권국 스파르타와 신흥국 아테네의 전쟁을 다뤘다. 그는 그리스를 폐허로 만든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신흥국 아테네의 부상에 대한 패권국 스파르타의 두려움 때문에 일어났다고 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신흥 강대국이 부상할 때 기존 강대국과의 충돌 위험이 구조적으로 커진다는 개념의 국제 정치 용어다. 그레이엄 앨리슨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가 투키디데스의 설명에서 착안해 2017년 펴낸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이 개념을 제시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오늘날 G2 미국과 중국 관계를 설명하는 대표적 용어로 통한다.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 기술력을 빠르게 키워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도전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구조적 위협으로 인식하며 견제 수위를 높이는 상황이다.시진핑 중국 국가수석은 지난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넘어 대국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가는 양국 지도자들이 함께 써 내려가야 할 시대적 답안”이라고 했다. 과거에도 자신이 언급했던 이 개념을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꺼내 미중이 동등한 초강대국임을 강조한 것이다. 시진핑은 안정·절제가 핵심인 ‘건설적·전략 안정’ 관계 구축을 양국 관계의 새로운 틀로 제안하면서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경쟁을 펼칠 것이란 의지를 명확하게 표명했다. 시진핑은 공세적이고 단호한 모습을 보였는데 실질적인 ‘G2 시대’를 선언하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이번 회담은 이란 전쟁, 대만 문제, 무역 현안 등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세기의 담판’으로 주목받았지만, 공동성명 등 성과물이나 핵심 쟁점 합의는 없었다. 다행히 양국은 무한 대립보다는 협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함께했다. 이는 양국이 서로를 완전히 끊어낼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 소비시장은 중국 제조업과 깊이 연결돼 있고, 중국 경제 역시 달러 시스템과 글로벌 금융시장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미중의 ‘투키디데스 함정’은 복합적인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경쟁, 공급망과 에너지 통로 장악, 해양 패권 경쟁, 환율과 관세 전쟁 등이 동시에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무너뜨리는 순간 자신도 함께 무너질 공산이 크다. 양국이 서로를 파괴하는 극한 대립을 피하고 공존을 위한 안정적인 국제질서의 발판을 마련했으면 한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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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엘시티와 까르띠에
엘시티와 까르띠에. 6·3 지방선거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면서 최근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부산시장 후보와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상대방을 공격하는 키워드다. 네거티브는 자극적이고 직관적이다. “그래서 까르띠에를 받았냐. 안 받았냐” “그래서 엘시티는 왜 안 파냐. 언제 팔 거냐”. 이게 요지다. 이해하기 아주 쉽다. 자신의 일상에 바쁜 정치 저관여층 유권자들에겐 이보다 더 어필하기 좋은 주제 거리는 없다. 그래서 ‘네거티브는 안 할 거다’라는 후보들도 막판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한 번쯤 유혹에 빠진다. 2, 3등 후보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먹잇감은 없다. 전재수와 박형준. 진보와 보수 양 진영에서는 극좌와 극우가 아닌 비교적 합리적인 인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선거 초반엔 그래도 신사적인 이미지에 걸맞게 상대방에 대한 비난보다는 정책이 주를 이뤘다. 북항의 돔야구장, 영도 아레나 등은 신선했다. 언론은 물론 부산 시민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하지만 이들도 정치인이다. 선거가 정점에 달할수록, 판세가 접전일수록, 강렬한 네거티브라는 자극제가 필요했다. 이들 선거 캠프에서는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겠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새로운 팩트가 나오는 것도 아닌, 그저 상대방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생각하는 약점을 잡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X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부산 시민의 입장에선 슬프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라는 말로 위안받기에는, 이 같은 법적 혹은 도덕적 결함이 없는 인사가 부산시장 후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사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부산시장 못지않은 중요성을 가지는 부산시교육감 선거다. 현재 출마한 후보 3인 모두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다. 아직까지 별다른 공약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부산시교육감 선거의 키워드는 사법리스크와 단일화뿐이다. 유권자들이 평가할 게 없다. 누가 당선돼도 법원 판결에 따라 재보선을 치러야 한다는 현실과 교육감 선거마다 항상 따라다니는 각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단일화에 이제는 식상을 넘어 염증을 느끼게 된다. ‘부산에 이토록 인재가 없나’라는 자조적인 말이 나온다. 전국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는 국회의원 북갑 재보선은 또 어떠한가. ‘진짜 북구 사람’이 누구냐는 정체성 논쟁부터 ‘손 털기’ ‘카메라맨 꽈당’ 등 가십성 보도가 주를 이룬다. 나아가 빼놓을 수 없는 단일화 이슈만 매일 신문과 방송을 도배하면서 유권자들의 진을 빠지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투표를 안 할 수는 없다. 어쨌든 선택해야 한다.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봉착해서, 또다시 ‘정책을 보라’ ‘일 잘하는 사람을 뽑아라’는 원론적인 말을 꺼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달라. 최근 몇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보듯이 일 못하는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에 대한 효용성은 이미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이 때문에 〈부산일보〉는 6·3 지방선거 보도에서 ‘정책 검증’에 천착하고 있다. 각 후보자의 네거티브 언사, 가십성 기사, 단일화 이슈보다는 정책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지면에 전진 배치함으로써 지방선거를 정책 선거로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어떤 중앙지나 지방지보다도 많은 지면을 지방선거에 할애하고 있다. ‘블라인드 정책 오디션’ ‘PK 기초지자체 격전지 분석’ 등 각종 기획 시리즈를 게재하면서 유권자들의 바른 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또한 ‘HMM 반쪽짜리 본사 이전 우려’ ‘오페라하우스의 라 스칼라 공연 논란’ 등의 보도로 각각 전재수·박형준 후보의 경제·문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선거판을 흔드는 화두를 제시했다. 물론 이 같은 보도로 양측 캠프로부터 볼멘소리가 나올 수도 있고 때로는 각 진영을 지지하는 독자들로부터 〈부산일보〉의 정파성을 의심받기도 한다. 기사 댓글은 온갖 정치색을 띤 말로 도배되기도 한다. 하지만 〈부산일보〉는 후보들의 말만 그대로 따라 쓰는 ‘받아쓰기’ 언론이 아니다. 〈부산일보〉의 모든 기자들은 공정 중립을 지향하며, 어느 당파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자극적인 기사 대신 정책을 검증하는 기사는 일견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어느 당파에 치우치지 않는 기사는 일부 독자들에게 외면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미래를 이끌 지방선거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뽑기 위해서는 〈부산일보〉를 보라. 〈부산일보〉의 정책 검증 기사를 읽으면서 선택의 순간에 조금이나마 도움받기 바란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결국 남는 것은 엘시티와 까르띠에뿐이다.
[김은영의 문화시선] '작은 미술관'도 도시 숨결
서울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부산 중구의 복병산작은미술관.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주택을 개조해 만든 구립(또는 공립) 미술관이라는 점이다. 경남 거제의 해조음 미술관 역시 같은 맥락에 놓인다. 비록 임시적 선택에서 출발했지만, 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뒤 미술관으로 전환했다. 해조음 미술관은 현재 부산·경남 작가들의 작품을 시대별로 정리해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립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시도 자체가 이미 의미가 있다. 대구 수성구의 ‘스페이스 들안’(가칭)은 이러한 흐름을 한 단계 더 진전시킨 사례다. 주택과 도심 유휴 공간을 리모델링한 이 프로젝트에는 약 41억 원의 공공 예산이 투입됐다. 지하에는 수장고와 전시 공간을 확보하고, 지상에는 사무 공간을 배치해 기존 주택 개조 미술관이 안고 있던 구조적 한계를 보완했다. 무엇보다 주목할 지점은 이 과정 전반을 구청이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공간 재생을 넘어, 지역 문화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구축하려는 행정의 의지가 읽힌다. 프랑스의 저명한 미술 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앙리 프랑수아 드바이유 방한 소식을 듣고 돌아본 경주의 더안미술관은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전통 한옥 구조를 기반으로, 200년 된 고택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들었는데 전시와 컬렉션이 남달랐다. 설립자인 백진호 관장은 한의원과 미술관을 하나의 철학 아래 묶는다. 몸의 균형을 회복하는 의학과 감각과 내면의 균형을 일깨우는 예술은 하나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공립 미술관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작은 미술관’이 어떤 깊이를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부산으로 향한다. 부산은 공·사립을 통틀어도 미술관 인프라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대형 미술관의 유치와 운영에만 시선을 둘 것이 아니라, ‘스페이스 들안’과 같은 방식의 소규모 공공 미술관을 적극적으로 실험할 필요가 있다. 도시의 문화적 위상은 몇몇 상징적 건축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골목과 생활권 곳곳에 스며든 작은 공간들이 도시의 호흡을 만든다. 대형 미술관이 막대한 예산과 관람객을 전제로 안정적인 기획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작은 미술관’은 그보다 훨씬 가볍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다. 실험적인 전시, 지역 작가에 대한 지속적인 조명, 동시대 담론에 대한 민감한 반응은 이런 공간에서 더 잘 가능하다. 물론 전제는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기획 예산을 포함한 안정적인 재원 구조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짓는 일’이 아니라 ‘지속하는 일’이다. 부산이 지금 고민해야 할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오션 뷰] 부산항, 이제는 크루즈를 꿈꿔야 한다
6·3 지방선거는 지역 권력 재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16개 시도지사와 교육감, 수많은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새로 뽑는 이번 선거는 대한민국의 미래 방향성을 가늠하는 정치적 분기점이 될 것이다. 특히 부산은 그 어느 때보다 복합적인 정치 지형 위에 서 있다. 중앙 정치와 지역 정치의 균열, 여야의 역학 관계, 그리고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과제가 부산이라는 도시 위에서 교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분명한 사실 하나는 부산의 미래가 바다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다.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예외 없이 해양산업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물론 세부적인 비전과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도시의 품격을 결정할 것이다. 부산은 오래전부터 해양수도를 자처했다. 그러나 정작 해양수도란 무엇일까를 자문하는 노력은 등한시한 것 같다. 해양수도란 항만 물동량이 많거나 조선소가 밀집한 도시를 뜻하는 게 아니다. 세계적인 해양도시는 산업과 물류를 넘어 사람과 문화, 관광과 소비가 바다를 통해 흐르는 도시다. 그 변화의 중심에 크루즈산업이 있다. 미국 마이애미와 스페인 바르셀로나, 싱가포르와 홍콩은 크루즈를 단순한 관광상품으로 보지 않는다. 도시의 관문이자 국가 브랜드 전략으로 활용한다. 크루즈선이 얼마나 입항하는지, 얼마나 많은 승객이 머물며 소비하는지가 도시 경쟁력을 대변하는 시대다. 부산 역시 산업항 시대를 지나 ‘미항(美港)’으로 진화해야 한다. 지금의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은 그런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하루에도 수천 명의 국제여객과 크루즈 승객이 오가지만, 정작 승객들이 머물고 소비하며 부산의 매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부족하다. 세계적인 크루즈터미널의 경쟁력은 외관과 함께 규모, 입출국 수속 속도가 중요하다. 입국에 두 시간, 출국에 한 시간이 걸리는 항만은 글로벌 크루즈 시장에서 선택받기 어렵다. 관광객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그렇지 않아도 제2크루즈터미널 논의가 조심스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갑자기 늘어난 수요에 임시방편으로 급하게 대응하려는 생각은 부산의 미래를 오히려 망칠 수 있다. 그럴듯한 건물을 하나 더 짓는 데 그치지 말고 부산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든다는 사명감을 부산시장 후보들이 가지면 좋겠다. 최소 3~4개의 갱웨이를 동시에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 입국과 동시에 관광과 쇼핑, 문화가 연결되는 동선 설계, 터미널 자체가 소비와 체험이 살아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항의 랜드마크 부지를 크루즈터미널로 활용하는 큰 그림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북항 재개발 사업이 마무리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랜드마크 부지 활용안은 여전히 겉돌고 있다. 이 공간을 부산 크루즈 시대를 여는 핵심 거점으로 활용한다면 부산과 북항의 도시 브랜드를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 부산역과 북항, 국제여객터미널, 그리고 미래의 제2터미널을 하나의 거대한 해양문화축으로 연결하는 상상도 가능하다. 공중보행로와 복합상업시설, 야간관광 콘텐츠가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면 원도심 전체를 살리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의 원도심은 자체 수요 창출이 어려운 구조다. 최근 국제정세 변화로 중국발 크루즈선이 부산으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외교 환경이 바뀌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의 매력을 세계에 각인시킬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침 부산 크루즈업계 종사자들이 힘을 모아 부산크루즈산업협회를 출범시켰다. 선사와 여행사, 대리점 등이 참여했고 크루즈산업 발전을 위한 데이터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접안과 동시에 관광이 시작되는 시스템, 세계적인 크루즈항의 기본 경쟁력을 갖추는 노력도 함께하고 있다. 크루즈는 결코 행정 논리로 성장하는 산업이 아니다. 민간의 상상력과 시민의 공감, 그리고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시민 공감이다. 시민이 어떤 상상을 하느냐에 따라 크루즈산업도 도시의 미래도 달라진다. 북극시대는 그런 공감 속에서 상상하고 실현해 나갈 수 있다. 부산~북극~유럽으로 이어지는 북극 컨테이너 항로 개발은 물론이고, 부산을 모항으로 일본 와카나이(홋카이도 최북단)~사할린 섬~북극으로 연결하는 크루즈 루트 개발을 선제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유럽에 가지 않아도, 미국의 알래스카 크루즈가 아니라 부산에서 빙하와 오로라를 경험하는 북극 크루즈 투어를 상상해야 할 것이다. 부산은 잠재력이 큰 도시다. 이번 부산시장 선거는 단순한 정치적 승패를 넘어 해양수도 부산의 미래를 진지하게 설계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 부산항은 ‘세계적인 미항’을 꿈꾸고 만들어 가야 한다.
[공감] 안경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안경을 썼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더듬어 찾는 것이 안경이었고,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내려놓는 것도 안경이었다. 그래서인지 세상을 맨눈으로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늘 마주하는 컴퓨터 화면, 창밖의 나무, 길 건너의 풍경도 얇은 렌즈를 통과한 뒤에야 내게 닿았다. 불편한 안경이었지만, 한편으로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가장 익숙한 통로였다. 그런데 바로 작년에 내 눈에 급성백내장이 찾아왔다. 부랴부랴 수술을 받았다. 뜻밖에도 그 덕분에 맨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시계의 숫자가 보였고, 창밖 간판의 글씨도 읽혔다. 그런데 느낌이 묘했다. 햇살은 지나치게 눈부셨고, 눈앞의 현실은 어딘가 위태로웠다. 다시 안경을 착용했다. 유해한 빛을 차단해 시력을 보호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쩌면 나는 여전히 뭔가를 한 겹 거쳐 세상을 보려 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모두가 그렇게 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본다고 믿지만, 사실은 모두 자신의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지 않은가. 경험과 기억이라는 안경, 욕망이라는 안경, 분노와 피해의식이라는 안경. 어떤 안경은 심하게 왜곡되어 전혀 다른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의심의 안경을 쓴 사람은 모든 일을 음모처럼 보고, 상처 난 안경을 쓴 사람에겐 모든 말이 공격처럼 들린다. 세상이 자신을 속이고 있고, 사람들이 자신을 밀어내고 있으며, 모든 결과가 누군가의 조작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곁에서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그들의 눈에는 정말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안경을 쓴 본인은 잘 모른다는 데 있다. 남의 안경은 쉽게 보인다. 저 사람은 늘 색안경을 끼고 본다. 저 사람은 너무 단편적으로 본다, 저 사람은 세상을 비관적으로 본다. 이렇게 말하기는 쉽다. 이런 말을 하는 나 역시 어떤 안경을 쓰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나 또한 내 경험과 상처와 편견으로 세상을 재단한다. 내가 본 것이 전부라고 믿고, 내가 느낀 것이 곧 진실이라고 착각한다. 남의 안경을 탓하면서 정작 내 얼굴에 걸린 안경의 무게는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나는 안경을 벗는다고 해서 완전히 맨눈이 되는 사람도 아니다. 백내장 수술을 받으며 눈 깊숙한 곳에 인공수정체가 자리 잡았다. 안경은 벗을 수 있지만, 눈 안쪽에 들어온 렌즈는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어쩌면 부단한 삶에 생겨난 상처 속에 심어진 기억 같은 렌즈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것이 나의 시야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그런데, 완전한 맨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나로서는 도저히 그 ‘맨눈’의 경지를 확신할 수가 없다. 오히려, 노안에는 돋보기를 맞추고 근시에는 오목렌즈를 쓰듯이, 자신의 안경 상태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안경을 다시 맞추는 게 더 현명한 판단이 아닐까? 렌즈의 먼지를 닦고 도수를 바꾸어 보거나, 새로운 렌즈를 덧대어 보는 일 말이다. 가끔 안경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눈을 비비기도 한다. 물론, 내가 안경을 벗었다는 것은 여러 개의 안경 중의 하나일 뿐이다. 나는 나의 모든 안경을 벗겨낼 능력은 없다. 그러나 의심은 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혹시 내 눈앞의 흐림은 안경의 얼룩 때문은 아닐까. 안경을 쓴 지 너무 오래되어 내가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가끔이라도 내가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보는 초점이 보정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껏 손끝도 닿지 않아 허우적대던 세상이 얼마라도 더 따스하게 만져지지 않을까 싶다. 안경은 나를 세상과 갈라놓는 동시에, 세상으로 다시 이어주는 신기한 물건이다.
[기고] 음악은 끝났지만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2일 토요일, 부산콘서트홀에서는 제15회 부산사람 이태석기념음악회가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객석을 떠나지 못한 관객들의 표정에는 깊은 울림과 여운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한 편의 훌륭한 음악회를 본 감동이 아니라, 한 사람의 숭고한 삶과 정신을 함께 기억했다는 감동이었을 것이다. 고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 평생을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과 함께하며 사랑과 봉사의 삶을 실천한 인물이다. 의사이자 사제였던 그는 의료와 교육, 그리고 음악을 통해 절망 속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했다. 우리는 흔히 그를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으로 기억하지만, 그의 삶은 단순한 미담이나 다큐멘터리로만 남기에는 너무도 깊고 크다.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했던 삶,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며 희망을 전했던 정신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이태석기념음악회는 바로 그러한 정신을 기억하고 이어가기 위해 시작되었다. 15년 전 부산사람이태석기념사업회 이장호 이사장의 제안으로 출발한 이 음악회는 “이태석 정신을 널리 전파하자”는 뜻 아래 지역 예술인들의 자발적인 재능기부와 동참으로 이어져 왔다.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자는 마음으로 시작된 음악회가 어느덧 15회를 맞이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 15년의 시간을 한결같이 지켜오며 음악회의 중심을 잡아온 인물이 있다. 바로 오충근 지휘자이다. 오 지휘자는 단순히 무대를 이끄는 음악감독의 역할을 넘어, 이 신부의 정신을 음악으로 구현하고 시민들과 나누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매년 이어지는 공연을 준비하며 수많은 예술인들과 호흡을 맞추고, 음악회의 방향성과 품격을 지켜온 그의 헌신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무엇보다 상업성과 화려함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이라는 본질을 지켜왔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은 더욱 뜻깊다. 이날 무대에 오른 출연진의 진정성 있는 연주는 음악회의 의미를 더욱 빛나게 했다. 수준 높은 연주와 노래는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으며, 무대 위의 음악은 화려한 기교보다 진심이 앞섰다. 출연자 모두가 이 신부의 정신을 음악으로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무대에 올랐고, 그 진심은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공연이 끝난 뒤 오랫동안 이어진 박수는 찬사를 넘어 감사와 존경의 표현이었다. 기념음악회는 초기에는 협의의 목적에서 출발하지만, 시간이 축적되면서 도시의 문화적 자산으로 확장된다. 이제 15회를 맞은 이태석기념음악회 역시 부산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이번 음악회가 15회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역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후원이 있었다. 특히 특별후원에 나선 BNK부산은행은 지역을 대표하는 금융기관으로서 부산의 문화예술과 사회적 가치를 함께 지켜나가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지속적인 공연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재정적 기반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부산 공연예술계에서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음악회는 예술인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다. 단순히 한 번의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에게 창작과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시민들에게는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경제적 풍요 속에서도 마음의 빈곤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이 신부가 남긴 삶의 가치는 더욱 소중하다. 그리고 그 정신을 음악으로 기억하고 이어가는 이태석기념음악회의 존재는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제15회 이태석기념음악회는 끝났지만, 그날의 감동과 메시지는 오래 남을 것이다. 음악은 끝났지만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삼성전자 성과급과 임금의 미래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이집트 피라미드가 채찍과 몽둥이로 건설됐다고 여긴다면 오해다. 다수의 숙련된 장인들이 활약한 덕분에 고도로 정교한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어떤 보상이 주어졌을까. 파피루스나 점토판에 하루 지급품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빵 10개와 맥주 3~4L, 그리고 양파와 마늘, 생선, 곡물…. 화폐가 생기기도 전이었지만 숙련 노동의 대가에는 엄정한 셈법이 적용됐다. 조선 숙종 대에 부산 금정산성을 지을 때는 노역에 동원된 장정들에게 끼니와는 별도로 막걸리를 지급했다는 전승이 내려온다. 오늘날 산성 막걸리의 기원이다. 일꾼을 후하게 대접해 일의 능률과 완성도를 높이려는 방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오늘날 노동의 대가는 임금이다. 사용자는 안정적인 기본급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추가 보상책도 제공한다. 이 제도의 원형은 미국 포드주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동차 제조사 포드는 1914년 컨베이어벨트를 도입해 대량생산 체제를 완성했는데, 낯선 기계에 적응하지 못한 저숙련 노동자들의 높은 이직률에 발목이 잡혔다. 생산 차질까지 빚자 회사는 인력 확보를 위한 묘안을 내놨다. 포드는 ‘하루 5달러( a day)’ 구호를 내걸고 일당 2.34달러를 배 이상 올렸다. 또 고임금의 대가로 무단결근, 음주, 도박을 금지하는 등 사생활까지 통제했다.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 직장에서 일도 잘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회부(Sociological Department)를 신설하고 가정 방문을 통해 결혼과 가족 부양, 저축 여부를 일일이 조사했다. 직원이 방탕한 생활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으면 가차 없이 해고했다. 포드주의를 ‘가족임금(family wage)’의 제도화로 부르는 이유다. 이후 산업사회는 포드식 가족임금제가 중심축이 됐다. 임금은 개인에 대한 보상에 그치지 않고 배우자와 자녀를 부양하는 가족 생활비 개념으로 확장됐다. 기업들은 가족수당, 사택과 주택담보 대출, 자녀 학자금, 배우자 건강검진, 경조사 지원 같은 복지 제도를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국가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와 유족연금, 산재보상 같은 사회보험 체계로 이를 뒷받침했다. 기업과 국가는 안정적인 노동력 공급을 위해 핵가족 체제를 유지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한국도 포드주의 기반 위에 산업화를 이뤘다. 한국의 노사는 격렬하게 충돌해 왔지만 동요 ‘아빠 힘내세요’로 상징되는 ‘가장의 생계 책임’만큼은 공유한다. 노조의 쟁의 행위에 일정한 동정 여론이 형성되는 이유도 임금이 가족 생계를 지키는 보루이기 때문이다. ‘가족임금’은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의 분담을 전제하고 있다. 노동은 경기 변동과 기업 리스크로부터 보호받되, 기업과 주주는 투자 판단, 이익 처분, 실패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회사는 직원 가족의 생계가 걸린 기본급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야 하고, 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사회적 비난과 법적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최저임금 보장, 해고 제한, 퇴직보험과 고용보험 등을 통해 노동자의 생활 안정성은 보장하되, 기업 이익의 처분은 경영진의 판단 영역에 두는 것이다. 인터넷이 등장한 1990년대 이후 정보기술(IT) 혁명과 스타트업 붐은 포드주의 임금 체계에 변형을 일으켰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창의적 인재를 붙잡기 위해 월급을 넘어선 대안을 찾았다. 스톡옵션이나 성과조건부주식(RSU, Restricted Stock Units)은 회사 성장에 따라 주가가 오르면 직원이 주식을 받거나 싼값에 살 수 있도록 한 보상 제도다. 이 방식은 한국 IT 업계와 스타트업, 그리고 대기업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다만 포드주의식 단체협상과 달리 실리콘밸리식 보상 체계는 개별 계약과 성과 연동 방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익을 나누는 권한이 경영진에 있다는 점만큼은 포드주의와 다르지 않다. 최근 삼성전자 노조가 역대급 영업이익의 일률적 분배를 요구하며 쟁의에 나선 것은 포드주의와 실리콘밸리식 보상 체계의 경계를 흔드는 움직임이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하고 연봉의 50%로 제한된 성과급 상한 폐지를 목표로 회사를 압박하고 있다. 회사의 이익 중 일정 비율을 노동의 몫으로 공식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요구가 실현되면 직원 1인당 3년간 26억 원의 성과급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조의 요구는 초과 실적을 성과급 형태로 지급하는 이익공유제(PS, Profit Sharing)와 비슷해 보인다. 다만 기존 PS가 경영진이 설계한 성과 공유 체계라면,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노동 몫으로 공식화하자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삼성전자 사측은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 Over Profit Incentive)을 유지하면서 실적이 개선되면 특별 보상을 추가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회사가 잘되면 더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성과급 액수보다 누가 배분 권한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충돌이다. 이 쟁점에 노사 모두 양보하지 않을 태세여서 물리적 대결 가능성이 커 보인다. 노조 홈페이지 ‘파업.com’은 21일로 예고된 파업 동참 노조원 수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노동위원회 중재가 결렬된 뒤 5000여 명이 늘었다. 삼성전자는 창업 때부터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면서 업계 최고의 임금과 복지를 제공한다는 서사를 쌓았다. 한국에서 가장 전형적인 ‘가족임금’을 실천한 회사로 손색이 없다. 그런 회사에서 그 틀을 깨는 단체행동이 시작된 것은 역설적이다. 성과 배분 과정의 투명성과 합리성이 부족해 불신이 누적됐다는 지적을 삼성전자는 곱씹어봐야 한다. 노조의 요구가 경계선을 넘었다고 해서 ‘귀족 노조’로 비판만 하면 해결책과 멀어진다. 실제 임금과 성과 배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가족임금’의 취지가 퇴색되는 과정인 점도 감안해야 한다. 다만, 삼성전자와 같은 성공 모델이 존재하기 위한 밑바탕이 되는 우리 사회 내부의 균형 감각을 잃어서는 곤란하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3% 수준에 머물러 있다. 노동자 대다수가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경영 성과에 대한 노사의 책임 경계가 흐려질 경우 제도가 악용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만약 사용자가 ‘영업 이익이 나면 추가로 가져가되, 손실이 날 때는 기본급에서 공제하자’고 요구하면 어떻게 방어할 수 있나. 경영 실패의 책임이 노동자에게 전가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 주변에는 ‘가족임금’의 보호를 받아야 할 노동 약자들이 아직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훗날 삼성전자의 성과급 논쟁이 한국 노동 체제 변화의 기폭제가 됐다고 평가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은 노동의 양극화와 사회적 균형이라는 더 무거운 질문도 함께 봐야 한다. 삼성전자 노조가 기업 초과 이익의 배분을 요구하는 지금도 대다수 노동자는 노조의 보호 밖에서 불안정한 고용과 임금을 걱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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