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립공원 숙원 이룬 금정산, 도심형 생태·관광 허브로
부산 진산 금정산이 드디어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20년 숙원이 마침내 이뤄진 것이다. 특히 금정산국립공원은 국내 최초 도심형 국립공원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금정산에 깃든 다양한 동식물에 대한 한층 체계적인 보호는 물론 금정산국립공원을 누구라도 손쉽게 찾아갈 수 있는 생태·관광 허브로 발돋움시키는 것이다. 부산은 해운대와 광안리, 다대포 등 아름다운 해양 경관과 특급호텔 등 풍부한 관광 인프라를 가진 도시다. 여기에 금정산국립공원 효과까지 더해지면 도시 브랜드와 관광 선호도는 더욱 격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금정산국립공원이 부산의 가치를 한층 높이도록 부산시와 시민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국립공원위원회는 지난달 31일 회의에서 ‘금정산국립공원 지정 및 공원계획결정안’을 통과시켰다. 금정산 자연생태와 역사 문화, 경관이 국립공원 지정 기준을 충족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태백산에서 부산 낙동강 하구로 이어지는 국가 핵심 생태 축인 금정산에는 멸종위기종 14종 등 1782종의 야생동식물이 서식하고, 자연경관 71개소와 문화자원 127점이 분포한다. 백양산까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총면적은 66.859㎢에 달한다. 특히 국립공원이 도심 중앙을 관통하는 형태로 분포, 많은 시민들이 주거지 인근에 국립공원을 보유하는 효과를 누리게 됐다. 첫 도심형 국립공원에 걸맞은 선도모델 개발을 서두르길 기대한다. 금정산국립공원 지정 소식이 전해지자 부산에서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리는 등 시민들이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금정산국립공원시민추진본부는 “시민 열정의 결실”이라며 “앞으로도 시민 주체로 금정산을 지키고 가꿔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5년 시작된 금정산국립공원 지정 운동은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난관에 부딪혀 좌초될 위기도 수없이 겪었지만 시민과 각종 단체들의 지속적인 공론화와 국립공원 대상지 주요 소유주인 범어사 등의 양보에 힘입어 최종 관문을 통과했다. 시민과 자치단체 협업으로 일궈낸 공공정책 모범사례라는 점에서 이번 지정은 더욱 뜻깊다. 국립공원 지정에 따라 금정산은 국가 예산으로 체계적인 관리를 받는다. 탐방로와 안전·편의시설 확충, 생태복원 사업 등도 대대적으로 추진된다. 연간 방문객은 400만 명을 상회할 전망이다. 예상되는 경제적 파급효과도 6조 6000억 원에 이른다. 최근 K등산 열풍과 관련, 외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홍보 작업 등도 시급하다. 금정산국립공원에서 등산과 트래킹을 즐기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기존 해양 관광 인프라와 연계한 도심형 글로벌 생태·관광 허브 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부산시와 국립공원공단이 부산의 미래를 담은 정교한 장기 청사진을 통해 국립공원 지정 효과를 극대화하길 바란다.
[사설] APEC 고비 넘긴 실용 외교, 국익 극대화로 이어져야
대한민국이 의장국으로 지난달 31일부터 경주에서 치른 APEC 정상회의가 지난 1일 ‘APEC 정상 경주 선언’ 채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2005년 부산 개최 이후 20년 만에 다시 국내에서 열린 대표적 다자 외교 무대인 APEC 정상회의를 무탈하게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점은 일단 후한 점수를 받아 마땅하다. 국내적으로는 실용적 다자 외교를 치러낸 것으로 평가받는 이재명 대통령이 어렵사리 국정 운영 동력을 얻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 2기를 맞아 불확실성 속에 요동치던 국제 정세 속에서 국익과 직결되는 사안들의 해결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을 성과로 꼽을 수도 있겠다. APEC 정상회의 직전 열린 한미 정상회담이 8월 이후 오리무중이었던 미국 관세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된 자리였다면 지난 1일 열린 한중 정상회담은 대중국 관계 전면 복원의 길을 찾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중 양국은 관계 전면 복원에 합의하고 한화 70조 원 규모의 원-위안 통화 스와프 계약 체결을 필두로 실생활 관련 7개 경제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협력에 방점을 찍었다. 사드 설치 문제로 빚어진 한한령 등을 완화해 문화 교류와 관광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논의할 실무협의도 확대하기로 했다. 북한과 한국이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한중 양국의 전략적 소통 강화 필요성에 공감하기도 했다. APEC 정상회의 기간 내에 일본 안에서 ‘강경 보수’로 분류되는 다카이치 총리와 가진 한일 정상회담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방일 때 강조한 셔틀외교를 정례화하기로 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 양국 관계에서 항상 걸림돌이 돼 온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직시하되 미래지향적 협력을 계속해 나가자는 원칙을 재확인한 점도 성과로 꼽힌다. 과학기술 협력위원회를 16년 만에 재개하기로 하는 등 실질적인 협력 강화 기대감도 한껏 끌어올렸다. 한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동북아 균형을 맞춰나가야 하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 한일 간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실용적 외교를 진전시켰다는 평가다. 이 같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번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만끽하기엔 아직 섣부르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미국과 타결했다는 관세 협상은 벌써부터 양국 주장이 곳곳에서 어긋나고 있다. 정확한 문구 확정을 통해 마지막까지 디테일을 점검해야 한다. 중국과도 서해안 구조물 등 첨예한 사안은 논의조차 못 했으며 핵추진잠수함 문제로 시진핑 주석이 불쾌감을 내비친 데서 보듯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일본 다카이치 총리도 자국 내 지지 기반을 의식해 언제 다시 강경 행보로 돌아설지 모른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실용 외교의 틀만 잡았을 뿐이다. 외줄 타듯 국익의 극대점을 찾는 노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사설] 정치권, BNK금융지주 흔들기 지역 금융 장악 의도인가
BNK금융지주의 회장 선임을 앞두고 고질적인 정치권 흔들기가 재연되고 있다. BNK금융의 경영 승계 절차가 지난 1일 시작된 이후 지역의 여권과 금융당국에서는 부당 대출 의혹과 선임 과정의 하자를 지적하며 현 회장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BNK금융은 민간 금융회사여서 정부나 정치권이 개입할 권한이 없다. 그런데 회장추천위원회가 가동되자마자 여권이 후보군과 절차에 영향을 미치려 나선 모습은 정상적이지 않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금융사에 과도하게 개입해 인사와 정책을 좌지우지했던, 이른바 ‘관치’ 악습이 겹치는 대목이다. 지역 금융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런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논란의 발단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국정감사장에서 BNK 회장 선임 과정을 문제 삼은 데서 시작됐다. 그는 “특이한 면들이 많이 보인다”며 필요시 수시 검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지주 회장 선임은 금감원의 ‘모범 관행’을 따라 진행될 수밖에 없는 데다, 신한·우리금융도 같은 절차로 회장 인선을 추진 중인데 유독 BNK만 문제 삼은 대목은 의구심을 낳는다.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수장이 의심의 근거를 밝히지 않은 채 강경 발언을 쏟아낸 처신에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BNK가 이사회 사무국 설치, 후보군 관리 등 금감원 ‘모범 관행’을 제대로 수행했는지를 밝혀 시급히 논란을 종식해야 한다. 문제는 정치권이다. 경남·울산 지역의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부산은행의 도이치모터스 계열사 100억 대출에 특혜 의혹이 있다며 BNK를 압박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 참여설 등 현 빈대인 BNK 회장의 친 국민의힘 성향을 의심하며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BNK 측은 대출이 현 회장 취임 전에 이뤄진 일이라 의혹은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의혹에 기반한 정치적 공격으로 BNK가 홍역을 치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깝게는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국민의힘 경남 의원들의 파상 공세로 당시 김지완 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사퇴한 바 있다. 정치권이 BNK를 전리품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일어날 수 없는 구태다. 민간 금융회사 CEO 인선에 대한 정치적 외압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정권 낙하산으로 자리를 꿰찬 은행 최고경영자에게 지역 경제 부흥과 주민의 삶 보듬기가 최우선일 리 없다. 정치권 줄대기가 반복되는 지역 은행은 구조적 불신과 경영 불안정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근거 없는 의혹과 정치적 공격으로 BNK금융의 경영 승계 과정을 흔드는 행태는 결국 지역 경제의 혈맥을 위험에 빠트린다. 그 피해는 지역에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 지역 금융은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지역 민간 금융사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밀물썰물] '핵잠'의 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말 경주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가진 한미정상회담의 후일담이 계속되고 있다.관세 협상 타결도 관심거리였지만,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핵잠)을 갖게 됐다는 게 더 큰 뉴스로 회자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언론에 공개된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한국이 개발하는 핵잠에 사용할 핵연료 공급을 허용해 달라고 대놓고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요청했다. 다음 날 오전 미국으로 떠나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한국의 핵잠 개발을 승인했다, 미국 필리 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고 세상에 알렸다.국가 간 핵물질(혹은 기술) 이전과 관련해 이렇게 공개적으로 논의와 결정이 실시간으로 알려진 사례가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이 대통령은 또 이미 지난 8월 첫 한미정상회담에서 공감을 이룬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에 대해 29일 모두발언에서 “실질적 협의가 진척되도록 지시해달라”고 재차 요청했다.핵잠은 우리 군의 오랜 꿈이었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 지시로 개발이 시작됐다. 러시아 핵잠 도면과 소형 원자로 기술을 도입해 분석하기도 했지만 우리 조선 기술과 원자로 기술로는 약 1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진척을 보지 못했다. 자주국방을 강력히 내세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핵잠사업은 다시 속도를 낸다. 2003년 5월, 국방부는 3000t급 핵잠사업을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6월 2일 사업승인일에서 이름을 딴 전담 부서 ‘362사업단’을 구성했다. 이 비밀 사업은 2004년 한 언론에 공개돼 외교적 파장이 일면서 1년 만에 중단된다. 원자력연구원과 국방과학연구소는 핵잠 추진체인 소형 원자로 연구를 꾸준히 이어갔고, 2012년 일체형 ‘SMART 원자로’가 세계 최초 표준설계인증을 받는다. 이후로도 안전성과 효율을 높이는 연구가 계속돼 냉각재로 납-비스무트 혼합재를 사용하는 방식(LFR)과 용융염에 액체 핵연료를 혼합해 사용하는 방식(MSR)이 실증 연구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사실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 대화는 초점이 엇갈렸다. 이 대통령은 핵 연료 공급을 요구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핵잠 개발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핵잠 제조 역량은 거의 갖췄고 연료 공급만 필요한 한국, 핵 연료 공급을 매개로 자국 조선산업을 일으키려는 미국의 치열한 수싸움이 남았다. 중국, 일본 등 주변국 견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호진 선임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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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그룹 오너의 고뇌
지난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린 ‘2025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코리아’에는 이 지역 주요국 정상들과 함께 글로벌 산업을 주무르는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번 APEC에선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간 정상회담도 주목을 받았지만 이들 못지 않게 세계 최대의 인공지능(AI) 반도체칩 기업으로 엔비디아 창업자인 젠슨 황 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등 글로벌 CEO들의 회동도 관심을 받았다. 이들은 서울에서 다시 만나 K푸드 대표음식인 치맥을 매개로 화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고 ‘AI 팩토리’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현재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이지만 젠슨 황 CEO는 창업한 1990년대 이후 수차례 파산 위기까지 겪은 끝에 성공신화를 이뤘다. 젠슨 황 CEO는 지난 7월 중국 국영 CCTV에 출연해 CEO로서 무엇이 즐거운지 묻는 질문에 “CEO라는 직업은 대부분 그렇게 즐겁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매 순간 우리가 파산 직전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그런 위기의식 속에서 회사를 이끌고 있다”고 토로했다. 오너라는 위치는 사장과 달리 회사의 손실과 경영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자리다. M&A(인수합병)와 진로 전환, 기술개발 등의 선택에 대한 고민은 상상 이상이다. 정 회장과 이 회장도 이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 대응을 놓고 꽤나 힘든 시기를 보냈다. 정 회장은 기존 한미FTA로 인한 무관세 수출에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25% 관세 부과로 세계 최대 북미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이 회장은 미국 텍사스에 수조 원을 들여서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던 중에 트럼프 대통령의 지분 요구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오너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양국 정부의 관세 협상에 대응책 마련이 쉽지 않았다. 정 회장의 경우 그룹 총수에 올라선 2020년 무렵 자동차 업계에는 적지않은 위기가 닥쳤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반도체 부품 공급난, 보호무역주의 등이 몰려온 것이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는 그룹 차원에서 공급망을 재편하고 직접 구매 네트워크를 확보해 경쟁사보다 빠르게 생산을 정상화시켰다.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 있는 하이브리드와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확대 전략으로 수익도 늘어났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룹은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5위에서 3위로 올라섰다. 이 회장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회장 취임 이후 계속된 수익 감소와 주가 하락으로 이건희 선대회장에 못미친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HBM(고대역폭 메모리) 분야에서 SK하이닉스에도 밀려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모두 근무했던 한 엔지니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비해 이재용 회장은 실무진에 와닿는 메시지가 부족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회장도 2016년 등기이사에 오른 뒤 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합병한 것은 ‘잘한 일’로 평가받고 있다. 하만은 올 3분기에만 영업이익이 1조 원에 육박할 정도로 ‘알짜기업’이 됐다. 최태원 회장의 하이닉스 인수도 지금은 ‘신의 한수’로 평가받고 있지만 2012년 인수 당시만 해도 그룹 내부에선 “언제 망할지 모르는 적자 기업을 왜 사들이냐”며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최 회장은 인수 직후부터 “메모리의 본질은 속도와 효율”이라며 HBM 시장 진출을 직접 지시했다. 최 회장은 당시 HBM 진출에 대해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사는 투자”라고 했고, 현재 HBM은 SK그룹 최고의 ‘캐시카우’(수익원)가 됐다. 가스터빈의 국산화 성공과 수출로 최근 주가가 급등한 두산에너빌리티의 경우 박지원 회장의 결단이 한몫했다. 2013년 박 회장은 가스터빈을 국산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계속된 순이익 적자로 인한 경영난 속에서도 7년간 1조 원을 투자했고, 2019년 값진 성과를 냈다. 박 회장은 당시 SNS에 “‘할 수 있을까’란 고민 끝에 결정한 프로젝트가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처럼 한국이 땅덩어리는 작지만 오너들의 ‘뚝심’과 미래를 보는 ‘혜안’은 글로벌 최강이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과도한 요구에 물러서지 않고 맞설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든든한 오너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주요 업종의 호황 등으로 코스피도 지수 4000을 넘어섰다. 이제 한국이 더 잘 되려면 혼탁한 정치권만 안정화되면 된다.
[노트북 단상] 2025 경주 APEC이 남긴 것들
지난주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정말 많은 뉴스들을 남겼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필두로 한 회원국 정상들이 경주에 속속 집결하면서 각국 간 교류와 협력이 이어지는 ‘외교 슈퍼위크’가 펼쳐졌다. APEC 21개국 정상들은 무역·투자, 디지털·혁신, 포용적 성장 등을 담은 ‘경주 선언’을 채택했으며, 인공지능과 인구구조 변화 대응에 대한 협력 의지도 확인했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은 1박 2일 짧은 일정으로 방한해 APEC에는 불참한 채 돌아갔지만,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최대 관문’으로 꼽혔던 한미 관세협상이 정상회담을 통해 비교적 성공적으로 일단락됐다. 우리가 요청한 핵 추진 잠수함 개발에 대한 트럼프의 ‘조건부 승인(?)’ 의사도 확보했다. 이어진 시진핑 주석,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각각 처음 마주한 한중, 한일 정상회담도 우호적인 분위기로 마무리됐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기본 축으로 하되 중국과의 관계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국익중심 실용외교’ 기본 틀을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건 이런 외교적 성과보다 한국을, 경주를 찾은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이었다. 역대 최대 규모인 1700여 명의 국내외 글로벌 CEO들이 ‘APEC CEO 서밋’에 참석했고, 그 중에서도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뉴스 메이커로 활약했다. 15년 만에 방한한 그가 서울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킨을 먹으면서 ‘소맥’으로 러브샷을 했던 장면은 엄청난 밈(Meme)을 만들어냈다. 뒤이어 사람들의 바이럴(viral)을 타고 치킨 주문을 폭발시켜 결국 깐부치킨 1호점을 임시휴업하게 만들기도 했다. 세계 어느 국가를 방문하더라도 가장 서민적인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젠슨 황이 이번 방한에 앞서 이재용·정의선 회장을 동석자로 초대하고 ‘친한 친구’라는 뜻의 ‘깐부’라는 이름을 가진 치킨집을 선택해 굳이 창가 자리에 앉아 맨손으로 치킨을 뜯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어느 정도 계산된 이벤트였다고 해도, 재산 총합 300조 부자들의 치맥 회동은 해외에서도 이목이 쏠릴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엔비디아 그래픽카드 행사에서 젠슨 황은 “한국 치킨은 세계 최고”라고 외쳤고, “지금의 엔비디아를 만든 건 대한민국이다” “한국이 인공지능(AI) 중심지, 프런티어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에 최신 GPU 26만 장을 우선 공급하겠다”고 말하며, 우리에게 큰 선물을 안겨줬다. 천년고도 경주에서의 화려한 일주일은 흐뭇함을 남기고 지나갔다. 안정적 개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성공적으로 APEC 정상회의 주간을 마무리한 정부와 기업은 이제 경주의 성과를 가시화해야 할 차례다. 한미 관세협상의 디테일을 보다 명확하게 잡음 없이 정리하고, AI가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 흐름을 따라가는 걸 넘어 주도할 준비에 매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APEC에서 보여준 ‘지붕 없는 박물관’ 경주의 문화 유산, 그것이 배경이 된 덕분에 더욱 빛난 K컬처를 보다 널리 세계에 확산시키는 기민한 움직임도 필요하다. 경주국립박물관 신라 금관 특별전을 보기 위한 관람객들의 오픈런이 지난 주말 일찌감치 시작됐다는 뉴스가 반갑고 놀랍다. APEC으로 활기가 실린 경주를 느끼러 늦지 않게 가봐야 할 것만 같다.
[2030 칼럼] 인재 유출, 이공계 문제만 아니다
지난 여름 화제가 되었던 다큐멘터리 ‘인재전쟁’에서는 의대에 미친 한국과 공대에 미친 중국을 비교 조망하며 한국이 처한 이공계 위기에 경종을 울렸다. 최상위권 인재들의 의대 진학 쏠림 현상 배경에는 의사라는 전문직이 보장하는 높은 연봉과 직업적 안정성이 자리한다. 이에 대응하여 다큐멘터리에서 모인 결론 중 하나는 이공계 처우 개선이 절실하다는 목소리였다. 한편 지난달에는 중국 정부에서 카이스트 교수진을 상대로 4억 원의 연봉과 함께 주택과 자녀 학자금을 지원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 제안 메일을 보낸 일이 기사화되었다. 다수의 국가가 재정위기에 빠진 오늘날 중국은 어떻게 이런 투자가 가능할까. 핵심은 국가 예산 문제일 것이다. 물론 중국은 영토가 크고 인구가 많은 국가이기 때문에 예산 규모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그러나 국가의 재원 확보 채널 이슈도 있다. 국가 예산은 세금과 국채로 조달되고 이 수입은 공공복지를 위한 정책집행에 사용된다. 그런데 중국은 강력한 고정 수입원이 따로 있다. 국유기업들이다. 중국 정부가 직접 소유하고 지배하는 국유기업들은 철강·통신·에너지·항공·은행·의약 등 필수재, 기간산업이거나 자연 독과점이 일어나는 주요 산업에서 운영된다. 한편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국가안보상 핵심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들에 대해 지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 미국 반도체 제조사 인텔의 10%와 희토류 채굴업체 MP머티리얼즈의 15% 지분을 인수했다. 자유시장경제 복음을 전파해온 미국에서 이는 놀라운 사건이다. 물론 지분 투자와 국유기업은 양상이 조금 다르지만 추측건대 미국이 중국과 경쟁하며 영향을 받은 부분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는 관세 부과와 각종 행정 수수료 인상 등 정부 수입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IMF 구제금융 처방으로 신자유주의에 휩쓸려 진행했던 공기업 민영화의 과오를 돌아볼 때다. 민간에 넘겨 경영혁신과 효율화를 이뤘다고 하기엔 공기업이 속한 산업 자체가 경쟁이 치열하거나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는 분야가 드물다. 국민들이 지탱하는 수요로 안정성은 국가 특혜사업에 준하는데 매년 성과급과 배당금 잔치를 벌일 때 국가 세수와는 무관하며 도덕적 해이마저 발생한다. 국유기업 수익모델도 아니고 기축통화를 복사하는 마법도 없는 한국은 날로 강해지는 조세 저항에서 공공지출을 줄일 게 아니라면 국가부채를 늘리지 않고 재원을 확보할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직면한 또다른 문제는 인재유출이다. 공무원도, 공기업도 인기가 시들하다. 사기업의 폭풍 성장세에 공공부문 자체가 이미 상당히 위축됐다. 이과 인재들이 의사로 몰린다면 문과 인재들은 로스쿨과 금융권 쏠림 현상이 오래다. 행정고시 선호가 예전 같지 않고 한국은행을 비롯한 국책은행 퇴사자 및 사관학교와 교대 자퇴생이 급증했다는 뉴스들이 보도되었다. 법조계도 이제 상위권 로스쿨생들은 빅펌(대형 로펌)으로 향한다. 이공계 처우 개선 목소리처럼 인문계 역시 공공보다 민간의 인센티브가 훨씬 크기 때문에 공공과 민간의 처우 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이 역시도 결국은 국가 예산과 관련하기에 해결도 쉽지 않다.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정책 수립과 실행에 노고하는 공무원에 대해 인정하고 감사함을 표하는 문화를 고민해봐야 한다. 또한 공직자를 주기적으로 마녀사냥하고 악마화 하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 예컨대 이상경 국토부 차관 사퇴는 부동산 관련 “집값 떨어지면 사라”는 실언으로 촉발되었고 사과했지만 여론은 분노했다. 그가 잘했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직 대신 집을 택하고 사퇴한 그의 선택은 매우 실망스럽다. 그러나 왕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좌천되거나 사장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해고되는 폭정으로 번지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도 주의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공직자가 갖춰야 할 도덕성은 기대하되 사람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 그가 정말로 지금 행정부에 필요한 적임자였다면 우리는 인재를 잃은 것이다. 하나만 잃은 것이 아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서 점점 더 인재들은 민간을 택하지 국가의, 공공의 역할을 맡을 생각을 접을 수 있다. 또한 국민 비위만 맞추는 간신만 남게 된다. 공적영역에서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 직접적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몫이다. 인재는 어디서든 자신의 역량을 펼치며 인정받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무대가 국가라면 수혜는 범국민적이 되고 인재는 공공재가 되기에 사회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 기여 효과는 보다 클 것이다.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국가에 유능한 인재들이 있다면 그 보상은 개인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멀리 퍼진다. 지금 한국에 인재유출은 이공계 문제만이 아니다. 공공성 전체가 잠식당하고 있다.
[편집국에서] 지금 최민희에게 필요한 것이야말로 양자역학
한때 그는 언론 자유의 최전선에 서있었다. 군사정권 시절 언론 탄압에 맞서 누구보다도 처절하게 싸웠다. 그가 기자로 일했던 월간 ‘말’은 1990년대 언론 학도들에게 어떤 레거시 매체보다 믿음직한 언론이었다. 이후 수차례 이름을 바꾼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에서 상임대표까지 지내며 민언련의 ‘대모’로까지 불리었다. 그의 현재 직업은 국회의원이다. 또한 과거의 이력을 바탕으로 현재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권력으로부터 언론을 지켜야 하는, 실제로는 언론을 감독하는, 국회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그는 언론의 자유를 헌신짝처럼 내다버렸다. 지난달 20일 국정감사장에서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MBC 보도본부장을 퇴장시켰다. 자신의 발언이 포함된 리포트를 문제 삼으며,“이게 중립적이냐”라고 따져 물었다고 한다. MBC 보도본부장은 “개별 보도 사안에 대한 논의는 부적절하다”고 답했지만, 돌아온 건 ‘퇴장’이었다. 과방위원장은 신문과 방송, 통신 등을 감독하는 자리다. 하지만 감독이 간섭이나 통제가 되어선 안 된다. 언론은 국민의 눈과 귀다. 그런 언론이 권력의 통제 대상이 되는 순간, 눈과 귀라는 본질의 역할은 불가능해진다. 그는 MBC에 ‘친(親) 국민의힘 언론’이라는 딱지를 씌웠다. 누가 봐도 설득력이 없다.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MBC는 누구보다 계엄 세력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 관점을 지켜왔다. 게다가, 그런 사실과는 별개로, ‘친 국민의힘 언론’이라고해서 국감장에서 쫓겨나야 할 이유는 또한 뭔가. 그렇다면 반대로‘친 민주당 언론’에게는 도대체 어떤 VIP 대접을 해줄 셈인가. 사실 그의 이런 왜곡된 태도는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과거 그의 행적이나 발언에서 ‘나만 옳다’는 식의 확증편향을 느끼고 불편해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일까. 당장 지난해 당내 온건파 의원들을 향해 “움직이면 죽는다. 제가 당원과 함께 죽일 것”이라는 극단적 발언을 쏟아낸 것도 그였다. 오히려 놀라운 장면은 따로 있었다. 함께 불거진 딸 결혼식 논란이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공직자로서의 기본적 경계조차 지키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정감사 기간 중 치러진 결혼식에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화환과 축의금을 전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직윤리 위반 논란이 일었다. 카드 결제된 축의금은 없었다, 큰 금액은 다시 되돌려줬다…, 최 위원장의 여러 해명에도 논란은 식지 않았다. 정작 국민이 문제 삼는 것은 금전의 흐름이 아니라 공직자로서의 감수성이기 때문이다. 국회의 상임위원장이 피감기관과 사적인 행사를 공유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최 위원장은 국민들에게 해선 안될 거짓말을 했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 결혼식 날짜도 몰랐다”는 취지의 황당한 해명으로, 온 국민에게 양자역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딸 결혼식 날짜도 모를 정도로 양자역학 열공에 빠져 있어야 할 시간에 유튜브 방송에 나가 딸 결혼식에 입을 한복 이야기를 주고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그가 더 이상 언론 자유의 산 증인이 아니라 그저 확증편향 성향이 강한 고집 센 정치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 편의를 위해 아무렇게나 거짓말을 내뱉는 ‘하류’ 정치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만큼 그의 거짓말에 놀랐다. 눈물까지 글썽이는 빼어난 연기력도 놀라움을 보탰다. 기자 출신에서 언론 운동가, 시민사회 활동가를 거쳐 정치인으로 거듭난 그의 이력을 떠올려 본다. 나는 믿고 싶다. 그가 여전히 ‘언론 자유’의 가치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그래서 더더욱 그가 과방위원장 사퇴를 결심했으면 좋겠다. 그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권력의 자리에 남아 비판을 감내할 것인가, 아니면 자리에서 내려와 과거의 신념을 다시 지켜낼 것인가. 진짜 용기는 후자에 있다. 나는 그가 언론을 향한 오만 대신, 국민을 향한 겸손을 택하길 바란다. 그리고 위원장직을 벗어나 시간이 허락한다면 못 다한(?) 양자역학에 대해 제대로 다시 공부해보길 권한다. 양자역학의 주요 개념 중 하나가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한다. 입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면 속도를 알 수 없고, 속도를 파악하면 위치는 미지수가 된다. 입자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의미다. 그 속에 최 위원장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담겨 있을 것 같다. 약자역학의 핵심이 정답이 없다는 데 있다면, 최 위원장 역시 자신의 생각과 주장만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깨닫길 바란다. 김종열 정치부장 bell10@busan.com
[오금아의 그림책방] 소원을 말해 봐
지니가 말한다. “당신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이선미 작가의 <진짜 내 소원>(글로연)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원에 관해 이야기한다. 램프의 요정 지니를 만난 주인공은 신나서 소원을 말한다. 1번은 ‘공부를 잘하는 것’, 2번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아이가 원하는 소원이었을까? 실제로 두 개의 소원이 이뤄진 뒤 행복해진 사람은 아이의 부모였다. 지니가 묻는다. “진짜 네 소원이 뭔지 잘 생각해 봐.” ‘내 소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알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등 나를 알아야 내가 원하는 소원을 제대로 말할 수 있다. 전금자 작가의 <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비룡소)는 소원의 경중을 질문한다. 주인공 훈이는 학교 가는 길에 두꺼비를 구해준다. 두꺼비는 보답으로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한다. 중요한 소원을 들어줄 힘은 없으니 꼭 ‘사소한 소원’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달린다. 훈이가 소원을 빌 때마다 두꺼비는 '나름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거절한다. 결국 두꺼비가 들어준 소원은 지우개 하나 구해주기에 그친다. 그런데 이 지우개로 인해 훈이가 제일 처음 바랐던 소원 성취로 가는 길이 열린다. 어떤 사소한 소원이라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안녕달 작가의 <쓰레기통 요정>(책읽는곰)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소원 요정이 등장한다. 골목 쓰레기통에서 태어난 요정은 사람을 볼 때마다 “소원을 들어드려요”를 외친다. 대부분 사람은 쓰레기통 속 요정을 보고 기겁하거나 무시한다. 그래도 쓰레기통 요정은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도움으로 소중한 물건을 되찾은 아이의 웃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쓰레기통 요정은 폐지 줍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할아버지의 소원을 위해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내놓는다. 그 모습을 보며 ‘소원을 이뤄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지니·두꺼비·쓰레기통 요정 모두 인간의 소원을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한다. 그들의 노력을 생각한다면 소원이 무엇인지 묻는 말에 쉬이 답하기 어렵다. 현실 속에 소원을 이뤄줄 지니는 없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소원을 생각해 보자. 그러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그것을 위해 나아갈 길을 안내할 램프에 ‘반짝’ 불이 들어오지 않을까?
[오션 뷰] 부산항 위기 극복, '영토' 확장이 핵심
최근 부산항의 물동량에 경고등이 켜졌다.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중 무역 전쟁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블록화·파편화되고, 2월 이후 해운 얼라이언스 재편이라는 이중 압박이 작용하였다. 이에 따라 올해 부산항의 물동량은 등락을 반복하며 소폭 성장세를 유지하다가, 6월부터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미중 무역 전쟁의 심화는 중국발 미국향 물동량 감소로 이어졌고, 글로벌 선사들이 얼라이언스 기항 항만에서 부산항을 제외할 경우, 얼라이언스 선사 간 연결 물동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부산항은 미국향 환적 물동량 감소 가능성과, 제미나이 얼라이언스 협력 대상에서 부산항을 주로 이용하는 HMM 등 디 얼라이언스 선사들이 제외되면서 물동량 감소라는 이중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일시적인 현상이든 구조적인 변화든, 이제는 능동적인 전략을 통해 부산항의 물동량 안정화와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도모해야 할 시점이다. 미중 갈등 속 물동량에 경고등 켜져 싱가포르, 항만공사 주도로 위기 극복 해외 거점 확보 사례 벤치마킹 시급 부산항의 위기는 단순한 항만 운영의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첫째, 대한민국은 2023년 기준 GDP 대비 무역 의존도가 약 88%에 달하며, 이는 미국(24.9%)이나 일본(45.2%) 등 선진국 대비 2~3배 높은 수준으로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하다. 둘째, 우리나라 수출액의 약 70.3%가 전자 부품, 화학 소재 등 중간재에 집중되어 있어 글로벌 가치사슬(GVC) 내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우리나라 대외 무역의 99% 이상이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에 극도로 취약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수출입의 약 80%가 경유하는 대만해협이 봉쇄될 경우, 대만(GDP 43% 하락)에 이어 가장 큰 경제적 피해(GDP 23.3% 하락)를 입는 것으로 분석된다. 해상 물류망의 안정성 확보는 곧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국내 제조기업들은 미중 갈등에 따라 북미(미국, 멕시코), 동남아 등으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하고 있으며, 분산된 생산 거점과 해외 물류 거점 확보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우리는 과거 위기를 기회로 삼아 혁신에 성공한 싱가포르항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세계 최대 선사인 머스크가 과도한 비용과 혼잡 문제를 이유로 거점을 말레이시아의 탄중 펠레파스항(PTP)으로 이전하면서, 싱가포르항은 약 170만 TEU의 물량이 단숨에 이탈하는 위기를 겪었다. 당시 싱가포르항만공사(PSA)는 이 위기를 발판 삼아 단순한 항만 운영자를 넘어 ‘글로벌 항만 투자자이자 운영자’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PSA는 2024년 기준 45개국 77개 항만 터미널을 운영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를 통해 싱가포르항과의 환적 연결성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물동량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PSA와 같은 국영 물류기업을 통해 싱가포르가 서비스 수출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공공 부문이 주도하는 글로벌 물류 거점 확보가 국가 경쟁력에 얼마나 핵심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PSA의 매출액은 우리나라 최대 항만공사인 부산항만공사(BPA) 대비 20배 이상, 종업원 수는 200배 이상으로 싱가포르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만약 BPA가 이 정도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한다면, 부산 지역경제에 큰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해양수도 부산의 성장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또한 지역 인재 유출을 방지하고 전국 및 전 세계의 우수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기능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매우 취약하다. 국적 10대 물류기업의 해외 물류센터 중 자영 비율은 5.8%에 불과하며, 글로벌 항만 터미널 운영도 4개소에 불과하여 글로벌 네트워크가 미비한 실정이다. 이러한 국가적 공급망 리스크에 대비하고 궁극적으로 부산항의 물동량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 BPA를 포함한 4대 항만공사가 중심이 되어 글로벌 물류 거점을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는 항만공사법상 외국 항만 건설·관리·운영 사업 범위 내에서 법적으로 추진이 가능하며, 해외 진출 리스크가 큰 민간 기업들을 대신하여 ‘앵커 투자자’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위험을 경감시킬 수 있다. 2010년 이후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 순위가 급락했던 대만의 카오슝항 사례 역시 대만국영항만공사(TIPC)가 투자 자회사를 통해 해외 물류 거점을 확충하여 물동량 창출과 국가 공급망을 안정화시키고 있다. 해외 거점 확보는 궁극적으로 부산항 물동량 확충과 국가 공급망 안정화에 직접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미래 국가 공급망 안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부산항을 포함한 대한민국 항만의 미래를 결정지을 전략적 투자 실행에 나설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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