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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없는 도시 혁신

영혼없는 도시 혁신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마스다르는 2016년 무렵 거대한 ‘스마트 시티’의 실험장이었다.풍부한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인류 문명의 고질병을 단번에 치유하는 유토피아를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도시의 모든 건물, 가로등, 도로, 심지어는 휴지통에 촘촘히 박힌 센서가 도시의 혈류와 호흡을 실시간으로 감지했다. 인공지능(AI)이 이를 분석해 교통 흐름을 최적화하고 에너지 낭비를 줄였다. 미세먼지나 소음을 적절히 통제하고자 했고, 범죄를 예방·추적하는 등 인간 문명의 혁명이 실현되는 듯 했다.완벽한 기술적 시스템이 갖춰지면 인간 사회의 모든 골치 아픈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 바탕이었다. 최첨단 센서는 잘 작동했고,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된 각종 데이터와 신호를 차곡차곡 서버에 쌓아갔다. 하지만 시스템과 기술에 대한 신뢰가 사실은 기초가 부실한 모래 위에 세워져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수백만 건의 데이터가 매일 축적됐지만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진짜 의미있는 정보를 찾아내 신속하게 대응하고 정책 결정에 활용할 전문적인 조직과 의사결정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도심 교차로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면 즉시 관제센터로 전파됐다. 그러나 이를 활용해 버스 배차 간격은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학교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어떤 행동을 취하라고 권고해야 하는지 정리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누가 어떤 절차와 권한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운영 절차가 부재했던 것이다.아부다비의 국가적 자부심과 화려한 기술이 무력화되면서 거기에 투입된 예산 220억 달러(한화 약 32조 원)는 허공에 날아갔다. 마스다르에는 당초 예상했던 인구 9만 명의 1/6인 수준인 1만 5000여 명만이 지금 살고 있다. 세계의 도시 전문가들은 마스다르의 사례를 “사람이 실제로 살아갈 ‘집’을 짓기 보다 세계에 홍보하고 투자자를 모으기 위한 ‘조감도’를 그리다가 실패한 것”이라고 진단했다.명확한 인간적 목표와 민주적 운영이라는 ‘영혼’이 빠진 채 화려한 기술에만 매몰될 경우 도시가 어떻게 추락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시를 최첨단으로 경영하겠다는 수많은 지방자치단체장 후보들이 나서고 있다. 값비싼 조감도를 들고 나오기 전에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 할 대목이다.

부산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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