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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풍작

굴 풍작

뚱보 황제로 유명한 로마 제국의 여덟 번째 황제 비텔리우스는 굴 애호가로도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비텔리우스 황제는 매주 1200개가 넘는 굴을 먹었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이니 하루 평균 170개가 넘는 굴을 먹은 셈이다. 로마 제국 시대 ‘박물지’의 저자 플리니우스가 해산물 중 콕 집어 굴의 효능을 기록한 점으로 미뤄 아마도 그 시절엔 비텔리우스 같은 굴 애호가가 넘쳐 났을 것으로 추정된다.이탈리아 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는 굴이 비교적 풍부하게 채취됐기 때문에 중세까지 굴은 값이 아주 싼 편에 속하는 식재료였다. 굴 산지로 유명한 영국 템스강 하구와 프랑스 북부 해안 등지에서는 굴 생산량이 많아 껍데기 처리에 골머리를 앓았다는 기록도 있다. 게다가 굴은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 금식일에 고기 대신 먹을 수 있는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었기에 빈민층과 노동자들까지 즐기는 해산물로 인식됐다.굴의 양식이 본격화한 것은 18세기 프랑스였다.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에서는 수평망 방식의 양식법이 보급되기 시작해 굴 양식업을 대대로 이어간 가문까지 나왔다. 시작은 유럽 토착종인 넓적 굴이었으나 20세기 들어 대량 폐사가 발생하자 포르투갈 굴로 잠시 대체된 뒤 질병에 강한 지금의 태평양 굴로 대세종이 변했다.태평양 굴의 최대 산지는 미국 동부 해안이었으나 산업혁명 이후 증기선과 대형 준설기가 개발되면서 바닥을 박박 긁어내 채취량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등장하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준설과 같은 채취 방식은 곧 굴 군락 자체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서식지는 이내 황폐화했다. 여기에다 산업혁명 이후 각국의 해안으로 공장 독성물질과 오폐수가 쏟아지자 굴은 서양에서 궤멸적 멸종 위기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이런 역사를 거쳐 현재 전세계 굴의 대부분은 동북아시아 3국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채취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남해와 서해의 드넓은 리아스식 해안과 갯벌이 굴 생장에 매우 좋은 환경인 데다 수하식 같은 양식법까지 개발돼 품질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편이다.굴 풍작을 맞고도 소비 부진으로 울상을 짓던 경남 남해안 굴 양식업계가 일본의 굴 흉작으로 일본 수출길을 넓히게 됐다는 소식이다. 동북아시아 3국 굴 중에서도 가장 품질이 뛰어난 우리 굴이 일본 식탁을 더 풍성하게 장식할 수 있었으면 한다.

부산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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