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 대통령의 '지방 주도 성장' 강력한 분권이 전제돼야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를 대도약 원년으로 삼고 기회와 과실을 고루 나누는 모두의 성장을 이루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다. 이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대도약을 위한 성장전략으로 가장 첫머리에 지방 주도 성장을 내세웠다. 이는 수도권 1극 체제를 ‘5극 3특 체제’로 개편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기에 대통령은 지방이 그에 걸맞은 규모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5극 3특 체제 개편에 걸맞은 규모를 갖추기 위한 방편으로 대통령은 대전·충남과 광주·전남의 광역 행정통합 사례를 꼽으면서 이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국가 생존 전략이라고까지 추켜세웠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수도권에서 먼 거리에 재정을 우선 지원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이날 모두발언에서 지방 주도 성장을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은 정책 일관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광역 행정통합을 국가 생존 전략이라 내세운 점도 그 연장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수십조 단위 재정 인센티브를 앞세우며 행정통합 속도전에 나선 것을 두고 지방선거용 쇼라는 비판이 불거지는 것도 현실이다. 특히 수년 전 정치권을 시작으로 부울경 메가시티를 하향식으로 추진하다 무산된 경험이 있는 동남권에선 인센티브를 쥔 정부 주도의 하향식 행정통합 추진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동남권의 우려는 21일 김두겸 울산시장이 부산·경남과 진행할 광역 행정통합 논의에 대해 밝힌 입장에서도 드러난다. 김 시장은 이날 울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역 행정통합에 앞서 지방정부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 이양과 시민 동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못박았다. 지방정부의 사무와 권한이 중앙정부에 귀속된 구조를 놔두고 행정 단위만 확대하면 균형발전보다는 지역간 쏠림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펼쳤다. 이처럼 동남권에서는 권한과 재정이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한시적 인센티브 부여로 추진하는 광역 행정통합은 부울경 메가시티가 실패한 전철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듯 이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광역 통합의 방향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대통령은 성장 축을 분산시킴으로써 수도권 집값 과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균형발전의 필요성에 대한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대통령이 그런 의지를 관철하겠다면 재정과 사무 이양을 통한 실질적 분권의 병행은 필수적이다. 정부 주도의 하향식 인센티브만으로는 선거용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어렵다. 인센티브용 재정 감당 여부 우려도 나오는 형국이다. 제대로 된 분권을 토대로 강력한 다극체제 구축이 이뤄지지 않으면 지방 주도 성장 전략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사설] "12·3 비상계엄 선포·포고령 발령 내란 해당" 법원 첫 판단
법원이 12·3 비상계엄이 내란에 해당한다는 첫 판단을 내렸다. 법원은 21일 비상계엄 당시 국무총리였던 한덕수 전 총리에 대한 ‘내란 중요임무 종사’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12·3 비상계엄이 명백한 내란죄에 해당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규정한 것이다. 특히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 총리를 법정구속했다. 이에 앞서 법원은 지난 16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체포방해 사건을 선고할 당시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내란죄와 연결 짓지는 않았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이번 판결은 다음 달 19일로 예정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우두머리죄 재판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 전 총리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는 12·3 비상계엄 선포와 포고령 발령 등이 형법상 내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며 이 사건을 ‘12·3 내란’이라 명명했다. 윤 전 대통령과 추종세력에 의한 친위 쿠데타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형법 87조는 내란을 ‘대한민국 영토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행위’로 정의한다. 법원은 국헌 문란과 폭동이라는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본 것이다. 국무총리가 헌법 수호는커녕 내란에 가담한 것은 참담한 일이다. 더욱이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았던 그가 지난 대선 후보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재판부는 이날 한 전 총리에게 “12·3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의무와 책임을 끝내 외면하고, 그 일원으로서 가담하기로 선택했다”고 질책했다. 또 “자신의 안위를 위해 비상계엄 관련 문건을 은닉하고 비상계엄 선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 허위공문서를 작성했다가 폐기했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에서 벗어나는 데 급급했다. 작년 2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나와 ‘계엄 선포문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위증을 하기도 했다. 일국의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거짓말과 책임 회피로 일관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처사다. 비상계엄 가담자들의 대다수는 재판에 회부된 상태다. 하지만 그들의 상당수는 아직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 공수처 체포영장 집행 방해 등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으면서도 변명으로 일관했다. 재판부가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고 있지 않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12·3 비상계엄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그 추종세력이 헌법과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위협한 비극적 사건이다. 대한민국은 국민 기본권과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파괴하는 독재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비상계엄을 둘러싼 소모적인 정치적 갈등과 국민 분열 상황이 개선되길 기대한다.
[사설] 북항 트램 사업비 수익자 분담, 실용적 방안일 수 있다
부산항 북항 재개발 지역은 여전히 허허벌판이다. 2007년 기본계획 고시로부터 20년이 흘렀지만 랜드마크 시설조차 안갯속이다. 굳이 북항에 가야 하는 이유가 부족하니 민간 투자가 유인되기 어려운 구조다. 사업성을 입증하고 투자 매력을 높이는 대책이 시급하다. 그 방안 중 하나가 법률 해석과 재원 논쟁에 발목이 잡힌 트램(노면전차)의 해법을 찾는 것이다. 교통 인프라가 하세월이 되면서 전체 사업 속도까지 떨어뜨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북항 재개발 수혜 기업이 비용 분담 의지를 밝히고 나서면서 꽉 막혔던 트램 사업이 돌파구를 찾을지 주목된다. 걸림돌이었던 건설비 문제가 해결된다면 트램은 본궤도에 오를 수 있다. 도시철도 1호선 중앙역과 국제여객터미널을 잇는 1.9㎞의 트램은 재원의 이견으로 첫걸음조차 못 떼고 있다. 부산시가 항만법을, 해양수산부는 도시철도법 적용으로 맞선 탓이다. 항만법을 따르면 국비와 부산항만공사(BPA) 50%씩이고, 도시철도법은 국비 60%와 지방비 40%다. 20일 열린 ‘북항 재개발 활성화와 해양수도 부산 정책토론회’에서 정성기 부산항미래정책연구원장은 “도시철도법에 따라 수익자가 건설비를 일부 부담할 수 있다”고 분담 방안을 제시했다. 이어 트램 건설로 지가 상승의 수혜가 예상되는 기업이 410억 원 분담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재원 논란이 해소되면 해수부 구상대로 도시철도법에 따른 추진이 가능해진다. 수익자의 비용 부담은 도시 인프라 사업의 보편적인 원칙이며, 북항 재개발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실용적인 해법이 제시된 만큼 북항의 미래 교통망은 이제 속도를 내야 한다. 이날 토론회에서 제안된 ‘인정엑스포’ 방식의 2단계 사업 추진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2032년 엑스포 유치를 전제로 국비를 투입하고, 민간 투자도 유인하면 사업 추진이 용이해질 수 있다. 1단계 미매각 부지의 신속한 매각을 위해 건폐율 상향과 같은 규제 조정이 필요하다는 제안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부산시와 해수부, BPA가 북항 재개발 활성화라는 공동 목표로 협력에 나서야만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산시가 북항 랜드마크 부지에 외자를 유치해 세계적인 ‘영상문화 콤플렉스’를 건립하겠다고 한지 1년이 넘었지만, 가시적인 추진 성과는 없다. 부산 시민은 참담하다. 국책사업으로 진행되는 북항 재개발이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불확실성과 불신, 무기력을 극복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 출발선에 트램이 서 있다. 민간 분담이라는 실행 가능한 재원 방안이 제시된 이상, 정부와 부산시는 조속히 실행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해수부가 오고 관련 기관·기업까지 동반 이전해서 탄생할 해양경제권과 북항 재개발의 성패는 동전의 양면이다. 트램이 힘차게 달려야 한다. 해양수도 부산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노벨상 메달 거래
노르웨이 작가 크누트 함순(1859~1952)은 〈땅의 혜택〉이란 소설로 192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한 농부의 인생을 그린 이 소설에 대해 노벨위원회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칭했다. 기계 문명에 대한 비판, 땅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담아내며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유럽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나치 사상에 심취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자국 침략을 공개적으로 옹호했고, 나아가 히틀러가 인류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39년 5월 베를린에서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와 만나고 귀국한 그는 자기가 받은 노벨상 메달을 괴벨스에게 보냈다. 함순은 정치적 목적으로 노벨상 메달을 양도했다가 후폭풍에 휩싸였던 대표적 인물로 거론된다.반면 인도적 목적으로 노벨상 메달을 양도한 이도 있다.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는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았다. 메달은 2022년 경매에서 1억 350만 달러(약 1520억 원)에 낙찰됐다. 이 돈은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에 전달돼 전쟁으로 집을 잃은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위해 쓰였다. 숭고한 노벨상 메달의 가치를 빛낸 사례다.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지난 15일(현지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자신의 노벨상 메달을 증정했다. 트럼프가 지난 3일 미군 기습 군사작전을 통해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해 축출한 데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차기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꿈꾸는 마차도의 노벨상 메달 양도는 트럼프의 환심을 사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 트럼프가 20일(현지시간)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베네수엘라 문제에 마차도를 참여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태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마차도의 메달 양도는 노벨상이 정치적 거래의 도구로 변질됐음을 보여준다. 함순의 사례가 오버랩되는 이유다.지난 1년간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 구호 아래 외교·안보 현안을 아우르는 압박 수단으로 관세를 거침없이 활용해 왔다. 냉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무역 질서는 철저하게 무너졌고, 관세와 무력은 트럼프가 원하는 협상 조건을 얻어내는 지렛대로 기능했다. 트럼프는 세계의 조정자가 아닌 미국 이익을 우선하는 거래자를 자처했다. 20일 기자회견에서 7개의 전쟁을 끝낸 평화 행보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어야 한다고 자화자찬하는 모습이 새삼스러울 게 없다.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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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가열된 원전 논쟁, 첫단추는 '신뢰'
지난해 12월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업무보고가 있었다. 김성환 장관이 원전 정책 관련 답변을 하려 하자, 이재명 대통령이 끼어들었다. 이 대통령은 “(김 장관 말은) 민주당 소속이라 못 믿겠다”는 농담을 하더니 “당적 없는 사람이 답해라”고 말했다. 원전만큼 가열된 논쟁도 드물다. 친원전이든, 탈핵이든 논쟁에 뛰어든 이들은 상당한 신념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처럼 AI 열풍에 친원전 목소리에 힘이 실릴 때도,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탈핵이 대세를 이뤘을 때도, 늘 원전 논쟁은 거칠고 뜨거웠다. 각자가 핏대를 높이고 있는데, 이미 당파적 색깔이 묻은 김 장관이 아무리 논리적인 이야기를 한들 상대 진영을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어 이 대통령은 “과학을 논하는데,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냐”며 건설적인 토론을 하자고도 주문했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관련 논쟁은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유동적이다. 그리고 과정이 복잡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근거를 끌어오고 논리를 만들어, 결론에 이르게 된다. 원전이 싼 에너지인가? 싸다면 얼마나 저렴한가? 쉽게 답을 할 수 없다. 신재생에너지와 비교해 보자. 우리나라에선 원전이 훨씬 저렴한 에너지이지만, 서유럽에선 오히려 신재생이 더 싼 곳도 있다. 원료비나 기후 환경 같은 다른 외부 요인이 이유가 될 수 있다. 더 본질적인 것은 전력망 형태나 전력 공급 운영 방식 등이다. 전력 인프라를 어떻게 구성했는가에 따라 에너지별 발전 단가는 큰 차이가 난다. 발전소의 효율성은 정책 방향에 따라 유동적으로 결정되는 셈이다. 만일 우리나라가 대규모 발전에 적절한 전력망을 계속 강화하면, 원전의 경쟁력은 더 올라갈 것이다. 반대로 신재생 에너지망에 적합한 전력망을 구축하고 투자하기 시작하면, 신재생의 발전 단가는 떨어지고 원전은 올라가 언젠가는 경쟁력이 역전될 수 있다. 그러나 다수는 복잡하고 유동적인 에너지 문제를 이미 답을 정해 놓고 접근한다. 고정불변의 명제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면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어떤 이는 2023년 탈핵에 앞장선 독일이 전력 수급 문제로 프랑스로부터 전기를 수입한 것만 보인다. 다른 이는 2022년 원전 강국 프랑스가 원전 가동률 문제로 독일에서 전기를 수입한 것을 강조한다. 실제론 유럽에선 전력을 수입하고 수출하는 일이 흔해, 단일 사건으로는 그 의미를 판단하기 어렵다. 에너지 문제의 복잡성과 변동성을 이해하더라도, 건설적인 논쟁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상대를 신뢰할 수 있어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2024년 7월 한국은 체코의 원전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원전 당국은 “UAE 이후 15년 만의 수주”라고 환호했다. 그리고 지난해 원전 수출을 둘러싼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굴욕 계약’이 드러났다. 거액의 기술 사용료와 향후 SMR 등을 포함한 원전 수출 시 미국 기업의 검증 의무화 등이 명시된 반영구적인 계약이었다. 원전 당국이 성과는 자랑하고 불리한 내용은 감춰왔던 것이다. 지난 20일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부담금을 13년 만에 인상했다. 경수로형 부담금의 경우 쓰고 남은 핵연료 다발당 처리 비용이 2배 가까이 인상돼 6억 원을 넘어섰다. 이런 식으로 원전 사후처리비용이 오르다 보니, 한수원이 부담해야 할 연간 처리비용이 한 번에 3000억 원 정도 늘어나게 됐다. 수년이면 조 단위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결국 발전 단가에 영향을 줄 것이다. 지난 13년 동안 원전 당국은 이런저런 이유로 비용 인상을 외면했다. 사용후핵연료를 함부로 버릴 수 없으니 반드시 현실화가 필요한 비용이었다. 심지어 2023년엔 산정위원회를 열고 2배 이상 인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놓고도, 고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원전에 ‘숨은 비용’은 없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탈핵 진영은 원전의 낮은 발전 비용을 유지하려 비용 인상을 미뤘다고 주장한다. 불리한 계약과 필요한 비용을 애써 감추는 것은 친원전, 탈원전과는 무관한 일이다. 신뢰의 문제다. 가뜩이나 가열돼 대화가 안 되는데, 당국이 내놓은 자료들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지금도 추가 원전 건설 같은 뜨거운 감자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이대로라면, 원전 당국과 탈핵 진영은 서로가 각자 주장만 펼치다 결국 힘의 논리로 대한민국 에너지의 미래가 정해질 듯하다. 대통령의 지적대로 네 편, 내 편 없는 대화가 간절해 보인다. 그리고 대화의 시작은 믿을 수 있는 상대가 되는 거다.
[중앙로365] 블록체인은 누구의 편이어야 하는가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이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선언에 가까웠다. 중앙화된 금융 시스템, 소수의 기관과 권력자가 통제하는 화폐와 신용의 구조를 해체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된 경제 질서를 만들겠다는 약속이었다. 은행 계좌가 없어도, 국경을 넘지 않아도 사회적 배경이나 자본의 크기에 상관없이 모두가 같은 규칙 아래에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기대했던 블록체인의 미래였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그 이상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최근 각국에서 논의되는 규제의 방향을 보면, 새로운 금융 질서를 만들겠다는 기술의 약속보다는 오히려 기존 금융 기득권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열린 참여, 개방된 경제 담긴 블록체인 2026년 현재 규제 흐름 속 점점 왜곡 조각투자 등 디지털 자산 인허가 논의 기존 기득권·금융권 중심으로 설계 이런 흐름 사회 불평등 문제와 맞물려 기술이 금융 민주화 도구로 기능해야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은행 컨소시엄으로 제한하고 지분도 50%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규제 논의, 조각투자 거래소 지정 과정에서 수년간 기술 실증을 수행해 온 기업이 배제될 위기에 놓인 사안, 디지털 자산 관련 인허가 구조 등 최근 이어지는, 이른바 핫한 규제 논의의 중심에는 기득권 금융권이 자리하고 있다. 블록체인 산업을 개척해 온 수많은 기업과 개발자, 그리고 개인 투자자들은 오랜 기간 불확실성과 규제 공백 속에서도 이 생태계를 지탱해 왔다. 이들이 투자한 시간과 비용을 합하면 천문학적인 규모가 될 것이고,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자본력이 부족하다”, “기존 금융과 맞지 않는다” 등 소위 기득권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제도권에서 배제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이는 기술이 약속했던 공정성과는 분명 거리가 멀다.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본질은 탈중앙화와 참여의 개방성에 있다. 누구나 노드를 운영할 수 있고, 누구나 검증자가 될 수 있으며 누구나 거버넌스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구조는 기존 금융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철학 위에 서 있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도, 단일 발행 주체도 없이 작동하는 최초의 화폐 시스템이었고, 이더리움은 전 세계 개발자들이 함께 규칙을 만들고 수정해 가는 거대한 실험장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제도화의 방향은 이 기술을 다시 중앙화된 허가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역설은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하고 가장 먼저 도전했던 주체들이 성공의 열매를 나누는 자리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점이다. 수년간 적자와 불확실성을 감내하며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술을 고도화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만들어 온 개척자들이 이제 와서 기득권 금융이 중심이 되어 만든 기준에서 보았을 때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배제된다면, 이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에도, 혁신의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결국 기술이 만들어 낸 가치를 누리는 것은 가장 늦게, 가장 안전하게 진입한 기득권이 되고, 진짜 혁신의 주체는 주변으로 밀려나는 구조가 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흐름은 블록체인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기존 질서에 의해 억눌려 왔던 대중의 불만과 분노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자산 불평등, 기회 불균형, 세대 간 격차는 정치와 사회 전반을 흔들고 있으며 디지털 기술과 금융 혁신은 그 해법으로 기대를 받아 왔다. 그런데 그 혁신마저 다시 소수의 손에 집중된다면 블록체인은 또 하나의 엘리트 금융 시스템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가 은행이 되어야 한다는 일각의 규제 논의는 원화스테이블코인의 리스크가 발행 주체의 업종이나 성격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간과한 채, 기존 금융권의 막연한 걱정을 기반으로 신종 산업에 무혈 입성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이야말로 블록체인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이 기술을 만들고 있는가. 규제는 필요하다. 투자자 보호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혁신의 진입 장벽이 되고, 새로운 기득권을 만들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이 처음 약속했던 것은 ‘안전한 독점’이 아니라 ‘열린 참여’였다. 2026년은 디지털 자산 산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중요한 시점이 될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토큰화된 실물자산, 온체인 금융 인프라는 이제 더 이상 실험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다. 이 변화의 방향이 다시 한번 블록체인의 근본정신, 즉 탈중앙화, 개방성, 참여 민주주의로 조정되기를 기대한다. 기술이 다시 대중의 편에 서고 개척자와 도전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는 구조를 만들어 갈 때, 디지털 자산은 비로소 금융의 민주화를 향한 진정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필남의 영화세상] 지워진 얼굴
평소 영화를 보고 나면 늘 “그냥 그랬어”라던 친구가, 웬일로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배우 박정민의 열혈 팬이라 극장에 간 것을 알았기에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친구는 영화의 주제와 연상호 감독의 연출력까지 들먹이며 흥행을 단언하기까지 했다. 그쯤 되니 도대체 어떤 영화기에 친구의 마음이 움직였는지 궁금해졌다. 친구의 강력한 추천에도 불구하고 극장에서 영화 ‘얼굴’을 보지 못했다. 제작비 2억 원의 저예산 영화라 상영관 확보가 어려웠던 건지, 바쁜 일상에 치인 탓인지 영화는 곧 기억에서 잊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친구의 장담대로 흥행에 성공했다. 소규모 자본의 한계를 극복하고 백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물론, 제작비 대비 50배의 수익이라는 압도적인 성과를 기록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영화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다고 해서 얼른 찾아보았다. 영화는 40년 만에 백골로 돌아온 어머니 ‘영희’(신현빈)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시각장애를 가진 전각(篆刻) 장인 ‘영규’(권해효)는 아내가 타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무덤덤하다. 그런 아버지 곁에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유골을 마주하게 된 아들 ‘동환’(박정민)은 당혹스럽다. 동환은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자식 된 도리를 다하고, 어머니와 관련된 일을 서둘러 매듭짓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머니를 기억하는 이들을 마주하며 그녀의 삶과 죽음이 평범하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영희를 기억하는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녀가 “못생겼다”고 증언한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1970년대 과거로 시선을 옮긴다. 시각장애인 영규가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었던 시절, 오직 영희만은 그에게 온기를 건넸다. 그런 그녀에게 영규의 마음이 기우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게다가 주변에서 영희가 “절세미인”이라고 부추기니 영규는 그녀가 운명이라 확신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영희의 얼굴이 “괴물 같다”는 말을 전하면서 평화는 깨진다. 앞을 볼 수 없기에 아름다움이라는 환상에 매달렸던 그에게 아내의 못생긴 외모는 재앙과도 같았다. 결국 세상이 자신을 농락했다는 배신감 속에 영규의 분노가 폭발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서늘한 지점은 정작 영희의 얼굴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희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만드는데, 이는 70년대 청풍피복에서 ‘시다’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지워진 얼굴과 궤를 같이한다. 산업화의 영광 속에서 그들의 노동은 대체 가능한 부속품으로 폄하되었고 존재는 망각되었다.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영희의 얼굴은 현대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간 여성 노동자들의 초상을 소환해낸다. 우리가 끝내 보지 못했던 그녀의 얼굴이 곧 시대의 외면 속에 지워진 이들의 실체였던 셈이다. 이 지점에서 시각장애를 가진 영규가 갈망해 온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의 정의 또한 처참히 무너진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무엇을 본다고 믿으며, 무엇을 기어이 외면하려 하는가. 아무도 영희의 얼굴을 본 적 없고 보려는 의지조차 없었지만, 모두가 각자의 잣대로 그녀를 재단하기 바빴다. 결국 영화는 보지 않고도 안다고 믿었던 이들의 오만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음을 폭로한다. 그래서 영화의 엔딩, 한 장의 사진으로 마주하는 영희의 얼굴은 경악을 넘어 지독한 씁쓸함을 남긴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은 미추(美醜)를 가리는 영화가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보지 않았음을 고백하게 만드는 영화다. 영희의 얼굴을 묵묵히 응시할 때, 비로소 편견과 조롱에 가려졌던 한 사람의 실존을 마주할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기어이 외면했던 얼굴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요구하는 진정한 ‘보기’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트럼프 시대, 욕망의 정치와 이미지의 저항
미술은 언제부터 저항의 얼굴을 갖게 되었을까. 권력이 언어와 무력을 독점하고, 자신의 욕망을 세계의 질서로 포장하려 할 때, 미술은 늘 그 바깥에서 다른 언어를 만들어왔다. 오늘의 세계는 다시 한번 노골적인 제국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트럼프의 정치가 보여주는 것은 합의와 조율의 정치가 아니라, 힘의 과시, 거래의 논리, 그리고 지배 욕망의 공개적 표출이다. 동맹은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압박의 대상이 되고, 국제법이 아니라 트럼프 왈(曰) 자신의 ‘도덕성’이 행위의 근거가 된다.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를 내세운 경제 제재와 군사 위협, 자원을 둘러싼 거래의 밑바탕에는 세계를 소유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의 정치가 놓여 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납치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군사적 행동에도 스스럼없이 석유 통제권이라는 욕망을 표출한다. 이는 트럼프 때문에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드러나지만, 실제로는 제국이 자신의 영향권을 확대하려는 오래된 충동의 반복이다. 이처럼 권력이 욕망을 숨기지 않을수록, 언어는 거칠고 단순해진다. 적과 동지, 승자와 패자, 복종과 제재라는 이분법만이 남는다. 그러나 미술은 바로 그 단순화에 저항해 왔다. 미술이 저항의 언어가 되는 것은 권력이 숨기고 우리가 너무 쉽게 믿어버린 세계의 구도를 흔들기 위해서이다. 반제국주의 미술은 승리를 그리지 않는다. 대신 상처를 드러내고, 침묵 속으로 밀려난 존재들을 다시 호출하며, 힘의 논리가 가려버린 감각을 복원하고자 한다. 그것은 선동이 아니라 기억의 정치에 가깝다. 20세기 초중반, 제국주의와 전쟁이 노골화되던 시기에 미술은 결정적인 전환을 맞는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제국주의의 포악한 폭력 그 자체의 얼굴을 남겼고,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는 자본과 노동, 착취와 저항의 구조를 공공 공간에 새겼다. 미술은 언제나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서, 승자의 언어가 아니라 패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동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저항은 일상적인 장면 속으로 스며든다. 마사 로슬러의 포토몽타주 작업에서 전쟁은 거실의 소파와 잡지, 안락한 실내 공간 속으로 침입한다. 편안히 몸을 뉜 실내의 여자와 폐허 속을 수색하는 병사들이 겹치는 이미지는 전쟁이 우리의 일상과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임을 시각적으로 폭로하는 것이다.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듯, 저항은 이제 구호의 정치가 아니라 감각의 재배치가 된다. 트럼프식 정치가 세계를 거래 가능한 숫자와 힘의 크기로 환원할수록, 로슬러의 이미지는 그 이면에 숨겨진 안락함의 공모, 욕망의 윤리적 책임, 지워진 타인의 얼굴을 다시 감각하게 만든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전자레인지 내부 들여다봐도 안전할까? [궁물받는다]
전자레인지 작동 중 내부를 들여다본 경험, 한 번쯤 있으시죠? 짧은 순간이지만 '혹시 몸에 해롭진 않을까' 괜히 서둘러 자리를 피한 적도 있을 겁니다. 일상과 관련된 전자파에 대한 궁금증을 부산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전자공학전공 김상길 교수에게 물어봤습니다. -전자레인지 내부를 들여다보는 행동, 전자파 노출에 위험한가. "전자레인지는 전자기 차폐 구조로 설계돼 있어 외부로 누설되는 전자기파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상용 전자기기는 전파법에 따라 누설 전자기파가 엄격히 제한되고 있기 때문에, 내부를 들여다보는 행동 자체가 큰 위험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다만 제조사별 설계 차이, 차폐 구조의 파손이나 노후 등 관리 상태에 따라 누설 수준이 달라질 수 있어 정기적인 점검과 관리가 필요하다." -선인장, 숯, 전자파 차단 스티커 등이 실제로 전자파 차단에 효과가 있나. "심리적인 안정감은 얻을 수 있지만, 이런 것들이 실제로 전자기파를 차단한다는 명확한 이론적 근거는 없다. 전자기파 흡수체로 설계된 차단 스티커의 경우 일부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시중 판매 제품은 전자기파 파장에 비해 두께가 매우 얇고 면적도 작아 효과는 제한적이다." -전자파를 차단하려면 물리적 조건 등 필요한 조건이 있나. "전자기파를 차단하려면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전자기파 방사체를 전자기파 저감 물질로 감싸거나, 금속으로 차폐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전자기파를 흡수하려면 물질의 손실 특성에 따라 파장 길이에 비례하는 일정한 두께가 확보돼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전자레인지로, 금속 재질과 금속망 구조를 이용해 내부 전자기파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차단하고 있다." -휴대폰은 대기 상태에서 전자파를 얼마나 방출하나. "대기 중인 휴대폰은 신호를 송신하기보다는 수신하는 경우가 많아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하다. 이때 방출되는 전력은 수 mW 수준이며, 통화 등 송신 시에는 최대 1W 안팎의 전자기파 전력을 송출한다. 이러한 출력은 모두 전파법의 규제를 받고 있어 일상적으로 사용하기에 안전한 범위에 해당한다." -휴대폰과의 거리를 두면 전자기파 노출은 얼마나 줄어들까. "스피커폰이나 이어폰을 사용하면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귀에 직접 대고 통화하는 것보다 전자기파 노출량이 크게 줄어든다. 전자기파의 세기는 송출 전력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므로, 거리만 조금 떨어져도 노출 강도는 급격히 감소한다." ※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온라인 커뮤니티게시판에서 봤던 재미있는 가설들이나 믿기 어려운 루머들을 댓글이나 메일(sksdmswl807@busan.com)로 알려주세요.
[천영철의 사리 분별]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세계는 점점 더 뒤틀려 간다. 균열로 인한 날카로운 파열음이 지구촌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최근 이란 반정부 시위로 1만 8000명이 사망한 데 이어 4년째로 접어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10만 명 가까운 군인과 민간인이 숨졌다. 가자 지구 누적 사망자도 6만 명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지만 평화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살상과 폭력, 반지성적인 행태들이 일상처럼 반복되는 상황에서 센카쿠 열도, 그린란드 등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 미국과 유럽연합 등의 날선 대립까지 이어지면서 국제 정세는 연일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런 소식에 점점 둔감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애써 외면한 채 무덤덤한 일상을 이어간다고 하더라도 뒤틀림과 균열은 어느새 깊고 깊은 틈을 만들어 구조를 약화시킨다. 방치한 채 시간만 흘려보낸다면 붕괴라는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도 ‘헬조선’이라는 뒤틀린 상태를 유지한 채 2026년을 맞았다. 청년 일자리 부족,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비정규직 고용의 일반화, OECD 국가 1위인 자살률, 노후 대책 없이 막막한 노년층,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영업자들…. 너무 힘들다는 아우성과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절규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경제 상황과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좋은 직장이나 대학에 가면 그때부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갈등과 분쟁의 악순환, 약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구조는 인간 내면을 끊임없이 할퀸다. 내면 상처는 우리 사회의 희망인 청소년들까지 직격한다. 서울 지역 자살 학생은 2021년 28명에서 2023년 36명으로, 2025년엔 51명으로 각각 증가했다. 지난 5년간 극단 선택을 한 185명 가운데 명문 고교와 학원이 몰린 강남 서초와 강동 송파, 목동이 포함된 강서 양천 지역 학생이 44.9%인 83명에 달한다는 것은 무한 경쟁으로 인한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10대들의 현주소를 드러낸다. 이런 안타까운 소식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이젠 임계치를 넘었다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지구촌 국가들은 그동안 경제 발전에 방점을 찍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80여 년의 시간 동안 인류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기후 위기와 지정학적 마찰과 충돌, AI 패권 경쟁 등 갈등이 만연한 지구촌을 날마다 목도하고 있다. 양극화가 초래한 사실상의 계급 사회 도래, 포퓰리즘에 따른 민주주의 후퇴, 권위주의 재부상 등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휴머니즘의 퇴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인류는 문명화 이후 인간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유지하려는 인본주의적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진리에 대한 사랑, 정의에 대한 동경, 지적이고 도덕적인 교육이 인간에게 미칠 영향력에 대한 낙관적인 자세 등은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는 것은 물론 자유와 평등 등 다양한 가치관의 확산에 기여했다. 더 좋은 세상을 일구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휴머니스트들이 꿈꾸는 더 좋은 세상은 사랑, 존중, 공감, 자유, 평등, 진리, 진보 등에 기반한 이성적 가치관의 세상이었다. 그동안 ‘인간답게’라는 말은 이런 가치관에 기반한 인간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다면 ‘인간답게’라는 말에 담긴 휴머니즘적 가치관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까. 지구촌에 만연한 거짓과 기만, 폭력, 냉소주의, 국가와 개인 이기주의 등은 인간에 대한 선의와 낙관적 시선을 철회하라고 종용하는 듯하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반지성적 유형의 지도자들은 휴머니즘에 기반한 인류의 가치관을 거침없이 훼손하고 있다. 인류가 모더니즘을 거쳐 포스트모더니즘까지 힘들게 쌓아 올린 다양성 등의 성과는 물론 다자주의 등 국제 질서까지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오로지 욕망과 감정에 충실한 경제적 만족 상태를 일컫는다는 오도된 가치관마저 급격히 확산 중인 상황이다. 국가의 정책 방향은 다양해야 한다. 인간의 삶은 경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은 인간답게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치열하게 곱씹어야 할 때다. 이 땅의 사람들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면서 충분히 가치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교육과 복지 등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사회 구성원들 내면의 덧난 상처를 치유하려는 발 빠른 노력도 절실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빚어지는 대다수 문제들은 과거에서 방치·이월한 각종 병폐들의 총합이다. 우리가 이 긴박한 문제들에 대해 최소한의 긴급 처방도 내리지 않은 채 다시 이월시킨다면 머잖아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동물 본능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로 완전히 변질될지도 모른다. 바로 지금이 ‘인간다움’을 사수할 골든타임이라는 절박한 공감대가 확산되길 기원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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