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수부 이전 딴지 거는 국힘 수뇌부, 부산 민심 안중에 없나
신임 장동혁 국민의힘 당대표가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이 공세에 나섰다. 장 대표는 27일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수부 부산 이전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 석이라도 더 얻으려는 얄팍한 정치적 행위”라고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은 28일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 대표가 해수부 이전을 내년 지방선거용 얄팍한 정치행위로 치부하며 반대해 온 것은 부산 시민의 염원을 외면하고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반부산 행위”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해수부 연내 부산 이전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제1야당 대표가 불필요한 논란만 가중시키는 셈이다. 장 대표가 해수부 이전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당대표 선거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난 11일 부산을 방문했을 때도 “정부 부처 분산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해수부가 부산에 온다고 해서 (직원 가족들) 일부가 와서 경제활동 인구로 살아간다는 것 외에는 이점이 없다’는 등 부산 지역 민심과 동떨어진 인식을 드러냈다. 장 대표의 이러한 행보에 정치적 역풍을 우려한 부산 국힘 일부 의원들은 해수부 이전이 필수라며 진화에 나섰고, 장 대표도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뒤늦게 졸속 이전에 반대한 것이라며 신중론을 펼쳤다. 장 대표가 입장을 다소 누그러뜨렸다고 하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부산 국힘 국회의원들은 그동안 민주당 주도의 특별법안이 해수부의 단순 이전에만 초점을 둬 반쪽짜리라며 공세를 취해왔다. 이들은 지난 2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이 정부와 합의해 발의한 ‘부산 해양수도 이전기관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은 행정기관의 물리적 이전에만 국한돼 있어 해수부 기능 강화와 해양산업 발전이라는 취지를 크게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수부 부산 이전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역 최대 이슈로 떠올랐고, 민주당도 연내 해수부 부산 이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수부 이전에 대한 국힘 지도부의 빠른 입장 정리가 없다면, 내년 지방선거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은 해양수도 부산 완성의 마중물이자 부산을 홍콩, 싱가포르와 어깨를 견주는 글로벌 해양허브 도시로 성장시키는 신호탄이다. 국가균형발전을 이끌고 부산을 대도약시키는 전략도 해수부 부산 이전에서부터 시작한다. 해수부 권한 강화와 예산 확대, 해양 인재 육성, 해양 기관·기업 집적화 등 실현해야 할 과제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의 가장 중요한 전제인 해수부 이전은 부산 시민의 오랜 염원이다. 산학연관민 90여 개 단체가 참여해 28일 출범한 ‘글로벌 해양수도 부산 추진위’도 그 의지의 결과물이다. 장 대표가 부산 민심을 잘 헤아려 해수부 부산 이전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
[사설] 틀만 잡은 미일 순방 외교 실질 성과는 지금부터 만들어야
이재명 대통령이 3박 6일간의 미국·일본 정상회담 일정을 마치고 28일 새벽 귀국했다. 이 대통령은 격식을 따지지 않는 국익 우선 외교를 펼쳐 큰 고비를 무난하게 넘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와 미래를 분리한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민감한 동맹 현대화 등의 현안을 피해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북미 대화 등 미국과의 통상·안보 후속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인 데다 미국의 쌀·소고기 시장 개방 등 노골적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일본과 과거사 문제 등도 순차적으로 풀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이제부터 본격 추진할 순방 외교 후속 대응 전략에 국가 미래가 달렸다. 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는 트럼프 대통령과 논의한 북미 대화와 단계적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을 만드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기지 부지 소유권 요구에 이어 미국 에너지·무기에 대한 구매를 간접적으로 압박했다. 이에 대한 세부적인 전략도 수립해야 한다. 관세 후속 협상은 물론 미국이 청구서를 내밀 것으로 예상되는 쌀·소고기 시장 개방 등에 대한 디테일한 대책도 필요하다. 한미동맹 현대화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등 안보 분야에서도 국익을 최대한 지켜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미국 우선주의에 휘둘리지 않는 이 대통령의 진짜 ‘실용외교’가 절실하다. 이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협력 여건 강화를 약속했다. 회담에서 논의한 의제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정상회담에서 거의 거론하지 않았지만 추후 반드시 부각될 강제징용·과거사 문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슬기롭게 풀어야 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일본 수산물 수입 규제도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꼽힌다. 국내 현안도 대외 문제 못지않게 복잡하다. 우선 다음 달 정기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무리 없이 처리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언론 개혁 입법을 둘러싼 여야의 거센 충돌도 우려된다. 초강성인 장동혁 국민의힘 신임 대표와 협치 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특히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는 최근 지구촌을 요동치게 한 주역인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해 총 21개국 정상들이 참가할 예정이다. 우리로서는 실타래처럼 얽힌 각종 외교 현안을 앞마당에서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여야는 초당적 협력을 통한 대외 전략 마련에 함께 나서야 한다. 이 대통령이 여야 협치를 위해 귀국 직후 우상호 정무수석에게 장 신임 대표와의 회동 추진을 지시한 것은 무척 고무적이다. 이 대통령이 여야 협치를 이끌어내는 것을 시작으로 이번 순방 외교의 실질적 성과를 지금부터 제대로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
[사설] 부산 기업 간 기술 유출 공방 장기화 소모전 끝내야
부산 기업들이 기술 유출 시비를 놓고 장기간 법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7월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A사는 코렌스를 상대로 부정경쟁방지법(영업비밀누설 등) 위반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달 22일 영업·기술 유출에 대한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해 코렌스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경쟁사인 A사는 검찰이 코렌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지 않는 등 수사가 미진했다며 지난달 28일 항고했다. 코렌스도 A사가 명확한 근거 없이 경쟁사의 진출을 막기 위해 고소를 진행했다며 같은 날 무고죄로 고소했다. 두 기업이 3년간 분쟁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또다시 긴 소송의 터널로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부산에서 경쟁력을 지닌 자동차 부품업체 간 법적 공방을 바라보는 지역 사회는 안타깝고 착잡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양사의 대립이 발전적인 경쟁이라기보다는 소모적인 논쟁에 가깝기 때문이다. 무혐의 처분 불복과 무고 고소를 거듭하게 되면 지난 3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할지도 모른다. 기술 개발에 쏟아야 할 에너지를 법적 공방에 소비함으로써 양사 모두 도약과 발전의 기회를 허무하게 날리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코렌스는 지난 3년간 사법 리스크에 휘말리면서 국내외 고객사로부터 수주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기업 기반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 지역 자동차부품업계를 둘러싼 대외 수출 환경은 갈수록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부과 정책으로 인해 대미 수출 가격 경쟁력이 저하되면서, 경쟁국인 일본·EU와 치열한 경합을 벌여야 한다. 또 자동차업계가 하이브리드나 전기차로 전환하는 중요한 시기여서 업체들이 기술 개발에 한층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이다. 관세 파고를 넘고 수출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역 부품업계가 힘을 모으는 것이 절실하다. 더 나은 기술 경쟁을 통해 고품질 제품을 생산해야 할 두 기업이 한 치 양보 없이 대립해 장기 소모전을 끝내지 않는다면 소탐대실로 이어질 수 있다. 부산은 주력 산업의 침체, 인구 감소 등으로 활력을 잃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두 기업이 힘을 합친다면 지역 자동차부품 산업은 훨씬 큰 시너지를 낸다. 기술 협력과 공동 개발을 통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계약을 확대하고, 지역 대학·연구소와 협력하면 ‘부산형 미래차 산업’이라는 새 브랜드를 만들 가능성도 크다. 양사는 대립을 중단하고 선의의 기술 경쟁을 통해 산업 재도약을 이끌어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부산시와 경제단체도 적극 중재에 나서서 화합과 단결을 촉구해야 한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등 대형 프로젝트가 빠르게 진행돼 부산 투자 유치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에서, 부산의 미래와 지역 이미지를 지켜야 할 것이다.
에너지고속도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IT(정보통신)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한 저변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씨를 뿌리고 2020년 12월 완료한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 사업 즉, ‘정보고속도로’ 사업이 있었다. 국가 미래를 내다보고 당시로서는 무모하리만큼 불확실한 미래 먹거리 사업에 과감히 투자한 파이오니어(Pioneer·개척자)이자 국가지도자로서의 혜안이 오늘날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27~29일 사흘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대규모 국제행사인 ‘2025 기후산업국제박람회’에서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고속도로’ 브랜드가 새삼 화두가 되고 있다.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지난 27일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AI)으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에 맞는 전력망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재생에너지 보급을 신속하게 확장하고 ‘에너지고속도로’를 구축하려는 이재명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비롤 사무총장은 2035년까지 전력 사용량이 현재의 6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많은 국가들이 에너지고속도로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발전소만 짓고 실제로 그것을 이어주는 고속도로(전력망)를 간과하곤 한다”며 “전력망을 더 집중적으로 건설하고자 하는 한국 정부의 노력에 감사하다”고 전했다.에너지고속도로는 이재명 정부 재생에너지 정책의 핵심 사업이다. 서해안 중심의 해상풍력 20GW를 수도권 산업 중심지로 송전하고, 2040년까지 남해안과 동해안을 포괄하는 ‘U자형 한반도 에너지고속도로’를 완성한다는 구상이다.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고속도로’ 역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미래 먹거리 사업이다. 하지만, 당위성은 충분하다. 정책은 타이밍도 중요하다. 현재 한반도에 깔려 있는 전력망은 대형 화력발전, 원자력발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늘어나는 재생에너지·분산전원에 적합하지 않다. 노후화도 심한 상태다. 특히 지역수용성 문제 등으로 국가 송배전망 확충 사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호남지역에서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남아도는 반면에 수도권은 전력난이 심각하다. 박정희 시대에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한 산업화 고속도로를 띄워 산업화를 이뤘고, 김대중 대통령 때 정보고속도로를 깔아 지금의 IT 강국이 된만큼, 이제는 지능형 전력망인 에너지고속도로를 대대적으로 깔아 전국 어디서나 풍력발전, 태양광 발전 등 재생에너지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대기자
강병균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이상윤의 세상톡톡] 파스퇴르와 베샹, 그리고 '항생제 정치'
“프랑스에서 사람들이 무정부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되거나 심지어 허무주의자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안티-파스퇴르주의자는 될 수가 없다.” 우유 이름을 비롯해 도처에서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파스퇴르는 그 친근함과는 달리 동시대인들로부터 이 같은 평가를 받으며 전설적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19세기말 프랑스에서 나폴레옹 3세의 후원을 받을 정도로 국가적 영웅이 된 그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독일 미생물학자 코흐와 국가적 명예를 걸고 경쟁하며 차곡차곡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낸 그의 인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한때 국가적 영웅이었던 황우석 박사가 누렸던 인기에 버금갔다고나 할까. 현대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파스퇴르의 인기와 비례해 이후 의학과 보건 분야는 그가 제기한 ‘질병의 세균설’에 기대어 발전을 거듭했다. 그가 주장한 ‘질병의 세균설’은 인간의 몸에 질병이 있다는 것은 그 질병을 일으키는 특정 세균이 몸에 들어와 작용한 탓이라는 것이 주내용이다. 그의 연구에 따라 유럽과 미국은 항생제를 써서 체내 침입 미생물을 전멸시키는 방식으로 질병 퇴치 방법을 발달시켰다. 항균성 약품을 주로 개발하는 거대 의약품 개발 회사와 항생제 사용을 위주로 하는 산업적 축산의 이론적 배경은 그에게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항생제 투여에도 불구하고 세균은 전멸하기는커녕 더 빠른 진화를 거듭했고 최근엔 이에 따른 재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파스퇴르의 반대편에 프랑스 내에서 ‘과학의 온화한 거인’으로 불리던 베샹이라는 과학자가 있었다. 의학, 영양학, 유전학 등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 과학자는 파스퇴르처럼 애국심에 기대지 않았기에 파스퇴르만큼의 명성은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그의 이론은 면역학과 동양의학 등 새로운 의학의 길과 통하는 것으로 재평가되며 오히려 각광을 받고 있다. 베샹은 수많은 세균에 둘러싸인 인간은 시간당 1만 4000마리의 세균을 호흡으로 들이마실 수밖에 없으므로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특정 세균 자체가 아니라 우리 몸의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의 ‘세포환경론’은 우리 몸이 풍부한 영양을 섭취하고 스트레스 없이 운동을 통해 건강상태를 유지한다면 특정 세균이 들어와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세균보다 인간의 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베샹이 파스퇴르보다 인기를 누렸다면 현대 의학과 보건의 양태는 지금과 달랐을 터이다. 근대 세균학을 이끈 두 거장을 떠올린 것은 최근 국내 정치판이 가고 있는 길 때문이다. 동시대인이었던 베샹의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들 정도로 독보적 존재감을 선보인 파스퇴르가 부르짖은 세균 절멸의 길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끈 항생제 개발은 점점 더 독한 세균을 인류에게 안기는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판의 행태는 ‘항생제 정치’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바로 그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국민을 경악케 한 계엄령을 내린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항생제 정치의 표본이다. 그는 지금도 계몽령 운운하며 계엄 선포의 내란죄 성립 여부를 놓고 특검과 씨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계엄령이 상대 진영을 절멸할 수 있는 무기라는 점을 인식하지 않고 선포했다면 그 가벼움만으로도 대통령으로서는 자격이 없다. 인식하고 선포했다면 범죄 혐의를 벗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결국 그의 이런 선택은 더 독한 상대를 만들어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당대표 취임은 아마도 윤 전 대통령의 항생제 정치가 만든 결과일 듯하다. 그는 당대표 취임과 동시에 “악수는 사람과만 하는 것”이라며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 적개심을 내비쳤다. 이 같은 적개심은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동조한 혐의가 있다며 국민의힘을 위헌정당 해산 심판 대상이라 규정하는 데에서 절정에 달한다. 상대를 절멸시키겠다는 의도를 이처럼 공개적으로 내세운 당대표급 정치인이 이전에 있었던가, 과문한 탓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쩌면 그의 이런 항생제 정치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른다. 진영 간 정치적 갈등이 심화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지만 정치권이 상대를 아예 절멸시키겠다고 공공연히 나서는 모습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상대 절멸을 향한 항생제 정치는 점점 더 독한 상대를 만드는 업보만 날이 갈수록 심화할 뿐이다. 파스퇴르보다 베샹의 이론이 점점 빛을 발하는 건 절멸을 표방한 항생제가 더 독한 세균이라는 결과만 낳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항생제의 아버지 격인 파스퇴르조차 임종이 다가오자 “세균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베샹의 세포환경론을 지지했을 정도다. 우리 정치권은 항생제 정치를 끝낼 수 있을까.
[정훈의 생각의 빛] 문화의 힘으로 정의와 민주주의를 긷다
최근 부산과 서울 등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부산광역시중구문화원에 모여 우애를 다진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국작가회의 본회 소속 작가들이 지역을 순회하면서 집담회 형식의 대화를 하는 행사인데, 이번에 부산지회에서 열린 것이다. 중구 대청동에 있는 중구문화원 2층에 촘촘히 들앉은 회원들과 발제자 및 토론자들의 열띤 음성이 인상적이었던 행사였다. 두 번째 발제자였던 나는 발제에 앞서 중구문화원의 내력과 함께 복병산 일대와 대청동에 포진한 문화유산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였다. 참석자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대청동, 광복동, 중앙동, 동광동, 부평동, 보수동 등 이른바 ‘원도심’을 형성했던 공간이 지닌 의미를 짧게나마 언급하고 소개하는 게 멀리 일부러 찾아온 서울 손님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의 주제는 ‘더 많은 정의,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하여’였다. 다소 무겁고 거창한 주제여서 발제 내용을 구성하는 데 애를 먹었지만, 1678년 용두산공원 일대에 조성된 초량왜관 시대와 개항 및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쳐 한국전쟁의 상흔과 뒤이은 피란민들의 유입 등 부산이 역사적으로 빛과 그늘을 동시에 쐰 도시였다는 사실과 행사의 주제를 아우르고 싶었다. 중요한 점은 1979년 10월 부마항쟁의 시위 행렬이 광복로와 대청로를 가득 메웠다는 점과 함께 1987년 6월 항쟁 때에도 도심지였던 서면 일대와 함께 원도심의 간선도로가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는 시민들에게 열린 광장의 기능을 담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부산이 지켜온 정신적 기질 되살려 시민 자존감 회복하는 동력 삼아야 도시 곳곳 문학적 색채 적극 활용을 행사를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일행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가는 중간중간 설명이 필요한 도로나 건물이 보이면 그 공간이 지닌 의미를 전달하였다. 부산타워가 보이는 대청로를 끼고 용두산공영주차장 근처에 있는 적산가옥과 영화체험박물관을 가리키며 잠깐 설명을 마치고 저녁 뒤풀이가 예정된 식당으로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평소 손님이 많아 점심시간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먹기가 힘들었던 식당이었다. 예약 인원보다 한 테이블 가량의 인원이 더 참석하여 더욱 분주한 자리였다. 부산과 서울 등지에 터를 잡고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상견례를 겸한 자리여서인지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생기를 띠었다. 문학이 ‘정의’와 ‘민주주의’에 보탬이 되는 요소가 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꿈을 언어로 제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법률과 제도가 규제하지 못하는 온갖 부정적인 인간의 속내와 언행을 폭로하고,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갈구를 형상화하는 문학의 기능에 딴지를 걸 사람은 없다. 폭풍우처럼 휩쓸고 간 거리 곳곳에서 피를 뿌리며 죽어간 맑은 영혼이 있는 반면에, 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이들의 피와 살을 희생하고자 하는 검은 영혼이 있다. 일제의 강점으로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고, 해방이 찾아왔지만 이념 갈등으로 분열되고, 더욱이 한국전쟁으로 무수한 파괴와 살육이 진행되었던 속에서도 이곳 부산이 지켜온 정신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한다. 밀물과 썰물처럼 온갖 사람과 물자가 빠져나가고 들어오는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것처럼 보였지만, 시나브로 정착하게 된 문화와 정신은 현재 새로운 도시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기지개를 켜면서 그 알곡을 펼쳐 보여야 하는 때에 다다랐다고 본다. 세계유산위원회가 내년 부산에서 개최되면서 이곳의 위상이 한층 도약하는 계기가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시민들에게 안겨다 주었던 자존감 상실을 회복하는 일이다. 한때 서울 다음가는 대도시로 전국 각지에서 부산으로 몰려드는 때가 있었다. 산업화 시기 부산은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보상해 준 도시이자 해양산업의 요충지로서 산업과 무역의 플랫폼 기능을 담당했던 공간이었다. 그런 도시였던 부산이 처한 현실을 감안하면 지금도 부산을 지키면서 부산 사람만의 기질과 인정을 지니고 베풀고 있는 지역민의 자존감을 되살리는 방법 가운데 문학도 능히 포함될 수 있다. 용두산공원 일대가 그동안의 번영과 쇠락을 거듭하는 중에 알게 모르게 형성한 문학적 색채를 지워버려서는 안 된다. 시민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되지 않았지만 여러 문화예술인의 마음으로 유전되어 온 언어의 쉼터, 다시 말해 시인의 체취가 군데군데 남아 있는 곳이다. 그중 하나가 부산 시단의 지킴이로서 동광동 백산기념관 부근 ‘강나루’란 주점을 운영하며 수많은 문학인과 예술인들을 품었던 고 이상개(1941~2022) 시인의 3주기가 곧 다가온다. 그 주점에서 문화예술인들은 정의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일상의 속살까지도 조곤조곤 나누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혁명까지도 말할 수 있었던 10평 남짓한 그 공간에 가을밤 어둠이 무겁게 가라앉아들 시각, 시인의 조용한 음성이 우리들 등을 어루만지는 듯한 늦여름이다.
[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루체른 페스티벌이 열리는 KKL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
KKL(Kultur und Kongresszentrum) Lucerne은 루체른 문화 컨벤션 센터를 일컫는 말이다. 스위스 루체른은 독일어를 쓰는 지역이다 보니 현지에서는 대부분 KKL 카카엘이라고 일컫는다.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인 장 누벨에 의해 1998년 완공되었는데, 6년 앞서 지은 마드리드의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처럼 긴 처마가 있는 캔틸레버 지붕 아래에 콘서트홀, 루체른홀 그리고 의회와 미술관이 있는 세 개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장 누벨은 처음 배 모양의 콘서트홀을 계획했으나 도시계획 및 생태학적 이유로 실현되지 못한 수정안이 현재의 KKL이다. 물에 다가갈 수 없다면 물이 다가오도록 건물 안으로 직접 이어지는 수로와 호수 너머로 뻗어 있는 캔틸레버 지붕을 두고 건축가 장 누벨은 외부를 내부로, 내부를 외부로 끌어들이는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위해 포용성이라는 용어로 디자인 컨셉을 이야기 한다. 덕분에 루체른 어디서 바라 보더라도 KKL은 현대적 외관을 지니고 있지만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조화롭다. KKL은 해마다 8월 중순부터 한 달간 열리는 유럽 최고의 관현악 축제, 루체른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이며 시즌 중에는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상주해 있다. 또한 콘서트홀은 음향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는 공연장이기도 하다. 신축 공연장임에도 20세기 중반부터 유행하던 빈야드 형태가 아니고, 슈박스 형태의 지니고 있으며, 전체 객석 1898석, 1만 9000㎥의 넒은 체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뛰어난 부드러운 잔향을 만들어낸다. 특히 홀 내부는 개폐 형식으로 볼륨과 잔향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반향실(Reverb Chamber)을 갖추고 있어 음악 장르에 맞게 유연하게 잔향과 불륨을 조절할 수 있다. 덕분에 대편성 교향곡부터 독주곡까지 다양한 음악에 최적화된 음향을 제공한다. KKL에서 만나는 최고의 프로그램은 역시 루체른 페스티벌이다. 1938년 루체른 인근 트리브센에 있는 작곡가 바그너의 빌라 정원에서 열린 갈라콘서트가 시작이다. 당시 지휘자였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유럽 전역의 다양한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결성했는데, KKL 완공 이후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에 의해 동일한 구성으로 2003년 LFO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졌고,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아바도 사후는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가 2026년까지 계약되어 있다. 축제는 8월과 9월에 열리는 여름축제를 메인으로 3월에 열리는 부활절 축제와 11월에 열리는 가을축제로 매년 3차례 진행된다. 아바도 이후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지휘하는 말러 사이클이 해마다 앨범으로 발매되어 전세계 클래식팬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올 해의 경우는 개막공연으로 말러 10번이 연주되어서 화제가 되었다.
[데스크 칼럼] 가야진용신제, 국가 무형유산 승격돼야
문화유산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 세대가 이어받을 정체성의 근간이다. 국가 무형유산은 무용·음악·놀이 등 형태는 없지만,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무형의 문화적 산물을 정부가 지정한다. 6월 30일 현재 종묘제례악, 북청사자놀음 등 162종이 지정돼 있다. 이들 무형유산은 ‘무형유산의 보전과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유산청 무형유산위원회의 엄격한 심의를 거쳐 지정된다. 최근 경남도 무형유산 제19호인 ‘가야진용신제(이하 용신제)’가 국가 무형유산 승격을 위한 재심의를 앞두고 있어 지역사회 관심도 뜨겁다. 재심의는 오는 11월 중에 열린다. 용신제의 국가 무형유산 승격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양산시는 2015년과 2019년 국가 무형유산 지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제례 관련 자료 부족, 국가 제례 의식과 민속학적 요소(풍물놀이 등)의 결합 근거 부족 등의 이유로 연속 고배를 마셨다. 양산시는 2023년 하반기 세 번째 도전에 나섰고, 앞서 지적된 문제를 보완했다. 이 결과 지난해 2월 승격의 첫 관문인 국가 무형유산 신규 조사 대상으로 지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어 양산시는 과거 용신제 때 사용했던 제기와 복식까지 복원해 그 어느 때보다 조선 시대 제례 의식에 근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해 10월, 현장 실사에 해당하는 지정 인정 조사까지 마쳤다. 하지만 올해 초 무형유산위원회 전통지식분과는 ‘보류’ 결정을 내렸다. 11월 중에 열리는 재심의가 사실상 승격 여부를 가를 중요한 분수령인 셈이다. 재심의에서 용신제의 역사 가치와 학술적 의의를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 두 차례 승격 실패 원인이었던 국가 제례 의식에 가미된 민속학적 요소가 ‘용신제의 명맥’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시대적 상황이라는 점을 위원 한 명, 한 명에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용신제가 금지됐지만, 지역민이 밤중에 제단을 옮겨가면서 제를 올리는 식으로 명맥을 이었다. 근래에는 전승·보존을 위해 시제와 용신제에 기우제를 통합하고,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행사로 발전시켰다. 이는 전통이 단절되지 않기 위해 불가피한 결합이었다. 다시 말해 용신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시대적 여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위원들 역시 마을 사람들이 용신제 전승·보전을 위해 민속학적 요소가 가미됐으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해 재심의에 나서야 할 것이다. 용신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이어진 국가 제례로 중사에 해당할 만큼 국가적 의례였다. 용신에게 뱃길의 안전과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던 행사인 동시에 농경 사회의 생존을 좌우하던 물관리와도 직결됐다. 예로부터 용을 ‘미르’라 부르며 비와 물을 다스리는 존재로 여겨졌다. 물관리가 곧 농사의 성패를 좌우했던 수도작 문화권에서 뿌리 깊은 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용신제는 뱃길을 위한 제례에 머물지 않고, 국가와 농경사회를 함께 지탱한 종합적 의례였다. 과거에는 낙동강 가야진을 비롯해 흥해(동), 공주(서), 한강(북) 등 4대 강 유역에서 모두 행해졌으나 오늘날 온전히 전승·보존된 것은 가야진용신제뿐이다. 이 때문에 학술 가치와 역사적 희소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용신제가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문화유산으로 승격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승격이 되면 이는 단순히 국가 무형유산 한 종목이 늘어나는 차원을 넘어 낙동강 뱃길 복원 사업과 수변공원 활성화 등 양산시가 추진 중인 관광 자원화 전략에도 큰 힘을 싣게 된다. 나동연 양산시장의 핵심 공약과도 맞닿아 있어 침체된 지역 경제 회복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양산시가 ‘문화유산의 고장’으로서 위상을 높이는 계기도 될 것이다. 무형유산은 전승이 곧 생명이다. 유물은 보존만으로 그대로 남는다. 그러나 무형유산은 반드시 사람을 통해 이어져야만 맥이 끊기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다. 용신제의 국가 무형유산 승격은 안정적인 전승·보존 환경 마련과 함께 양산의 정체성, 더 나아가 우리 모두 역사적 뿌리를 지켜내는 문제다. 삼국시대 낙동강 물길을 타고 1300년 이상 이어진 역사의 제의가 오늘날 다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용신제의 국가 무형유산 승격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중앙로365] 바다에서 바다로
지난주 부산 관광 미래 네트워크 회원들과 함께 팬스타 크루즈 미라클을 타고 2박 3일 일정으로 오사카 박람회장을 다녀왔다. 하루 동안만 엑스포장을 둘러보는 일정이 과연 의미 있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에 실패하고 재도전을 준비하는 부산의 입장에서 현장을 직접 체험해 보자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방문은 특별했다. 1993년 대전엑스포 공식 도우미로 활동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회장 곳곳을 누비며 600명의 회장 도우미와 1200명의 전시관 도우미들과 함께 관람객을 맞이한 기억이 생생하다. 93일간 이어진 축제는 20대 대학생이었던 필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의 장과 함께 관광학자의 길을 제공해 주었다. 이번 오사카 방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학자로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부산 관광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여정이었다. 오사카 엑스포 방문길 크루즈 경험 이동 아닌 '관광' 자체 효능감 높아 박람회장 일본 청결 수준 명불허전 외국어 서비스 등 섬세함은 낙제점 관람객은 환대·소통만 기억할 따름 엑스포 재추진 때 타산지석 삼아야 오사카로 향하는 길은 크루즈 자체가 주는 설렘으로 시작됐다. 팬스타 크루즈 미라클은 엄밀히 말하면 대형 크루즈선은 아니고 페리와 크루즈의 중간쯤에 해당한다. 이것은 호텔 등급으로 따지자면 육성급이나 오성급 호텔이라기보다는 비즈니스호텔 또는 관광호텔급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좀 더 쉬울 것 같다. 규모는 작았지만 선상 생활은 기대보다 만족스러웠다. 객실은 쾌적했고, 사우나와 요가·줌바 프로그램, 저녁 식사 후에는 쇼와 이벤트 프로그램까지 마련되어 긴 이동 시간조차 여유롭고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세 끼 식사가 단조롭지 않고 균형 있게 제공되어 ‘이동’이 아니라 ‘휴식’을 체험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경험은 부산이 앞으로 해양관광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한 작은 힌트가 되었다. 크루즈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관광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박람회장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일본 특유의 청결과 질서였다. 수많은 인파가 몰렸음에도 회장은 마치 개막 첫날처럼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바닥이나 조경, 안내 시설은 흠잡을 데 없이 잘 유지됐고, 화장실조차 시각과 후각 모두 쾌적했다. 10년 넘게 여러 지자체 축제 평가에 참여해 온 내 경험으로는, 이 정도의 청결 유지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일본이 가진 강점이자 우리가 배워야 할 대목이었다. 그러나 감탄만 할 수는 없었다. 오사카 박람회장의 상징인 대지붕링(The large roof ring) 주변의 식물은 고사하거나 잡풀이 자라난 부분이 많이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잡풀이 자라난 부분은 어쩌면 생명을 잇는다는 주제 측면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대부분의 전시관은 사전 예약제로만 운영되어 자유롭게 관람하기 어려웠고, 글로벌 행사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어 서비스는 부족했다. 한국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긴 대기 끝에 입장했지만, 전시 내 내레이션은 일본어로만 제공되었고 영어 안내도 일부에 불과했다. 관람객 참여 유도 역시 일본어 위주라 외국인 방문객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긴 대기 시간 동안 별도의 안내나 소통이 없었던 것도 아쉬웠다. 이 대목에서 1993년 대전 엑스포가 떠올랐다. 당시 우리는 줄을 서 있는 관람객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프리쇼 공간에서는 전시 영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곁들였다. 메인 영상관에 들어가기 전후로도 안내 멘트가 이어져 관람객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인공이 되었다. 덕분에 수많은 전시관 중 몇 개만 관람해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이번 오사카 엑스포는 첨단 영상과 레이저쇼를 선보였음에도 설명이 없어 많은 관람객이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기술은 화려했지만, 관람객과의 교감은 실종된 느낌이었다. 이번 경험은 부산에 중요한 숙제를 던져주었다. 세계박람회를 꿈꾸는 우리는 단순히 새 공항과 전시장, 크루즈 터미널 같은 하드웨어에만 치중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람객 중심의 운영 시나리오다. 긴 대기 시간도 즐거운 체험으로 바꾸는 섬세함, 다양한 언어로 제공되는 안내, 그리고 사람 사이의 따뜻한 교감이 필요하다. 기술은 도구일 뿐, 결국 관람객의 기억에 남는 것은 ‘환대’와 ‘소통’이다. 부산은 바다를 품은 도시이자 바다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관문이다. 앞으로 수많은 크루즈 관광객과 MICE 산업 방문객이 북항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단지 새로운 건물이 아니라, 그들을 맞이하는 도시의 태도다. 가덕신공항이 개항하기 전에, 부산은 어떤 누가 방문해도 불편하지 않을 관광도시 부산을 먼저 만들어야 할 것이다. 개인으로 와도, 단체로 와도 불편하지 않은 해양도시. 그것이야말로 부산을 진정한 해양관광의 메카로 만들고, 세계인의 기억에 오래 남을 엑스포를 완성하는 길일 것이다.
[김필남의 영화세상] 장르의 전복, 감정의 승리
오리지널 시나리오의 부재가 원인일까, 웹 콘텐츠의 대중적인 인기 때문일까. 매년 웹소설과 웹툰의 영화화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 의미로 최근 개봉한 영화 ‘좀비딸’은 특별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디지털 콘텐츠가 영화라는 전통적 매체로 옮겨지면서 대중들의 선택을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025년 흥행작이 된 ‘좀비딸’은 누적 조회 수 5억 뷰를 기록한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을 원작으로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단순히 원작의 인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좀비딸’의 내용은 뻔하다. 좀비로 변해버린 딸을 끝까지 지키려는 아버지의 사투라는 설정은 예측 가능하며, 좀비 장르에 가족애라는 보편적 감정을 다루는 것도 자주 보았던 방식이다. 하지만 이 ‘뻔함’ 속에서 영화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을 통해 한국적 좀비영화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이후 수많은 좀비 콘텐츠에 노출되었다. 그런데 ‘좀비딸’은 기존 좀비물이 추구했던 공포와 액션, 생존 서스펜스에서 벗어나 가족 신파극이라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좀비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가족이다. 생존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좀비딸’은 휴먼 좀비 코미디라는 독특한 장르적 정체성을 구축한다. 맹수 전문 사육사 ‘정환’(조정석)은 중학생 딸 ‘수아’(최유리)의 생일을 맞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티격태격 장난을 치는 부녀의 모습이 마치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바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좀비가 인간을 무는 기이한 광경에 부녀는 정환의 모친이자 수아의 할머니 ‘밤순’(이정은)이 있는 은봉리로 대피하기로 한다. 하지만 부녀가 살고 있는 동네는 이미 좀비 떼가 창궐해 있다. 동네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숨어 있던 수아가 어린이 좀비에게 물리고 만다. 좀비가 보이면 즉시 신고하거나 사살하라는 정부의 지침을 어긴 정환은 감염된 딸을 데리고 몰래 은봉리로 간다. 이제 정환은 좀비딸의 정체를 숨겨야 하면서도, 딸이 사람들에 섞여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간화 되는 훈련을 시작한다. 밤순은 물론 정환의 동네 친구 ‘동배’(윤경호)까지 이 훈련에 가담한다. 좀비가 된 딸과 그를 돌보는 정환 사이의 일상적 에피소드들은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따뜻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는 좀비라는 극한 상황을 통해 오히려 평범한 가족의 소중함을 부각시키는 역설적 효과를 만든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영화가 좀비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면서도 장르적 재미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포 대신 웃음을, 절망 대신 희망을, 파괴 대신 보호를 선택하면서도 좀비물이 가져야 할 긴장감과 극적 구조를 유지한다. ‘좀비딸’은 새롭고도 익숙한 재미를 제공하는 영화다. 즉 좀비 소재는 익숙하지만 가족 신파극이라는 접근은 새로웠고,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익숙하지만 좀비딸이라는 설정은 새로웠다. 이러한 균형감각이 바로 웹툰 원작이 영화로 성공적으로 각색될 수 있었던 핵심이다. 이처럼 영화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익숙한 웹툰의 감수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면서도, 전 연령대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놓치지 않았다. 그런 의미로 ‘좀비딸’은 한 편의 영화가 흥행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기존 장르의 관습을 깨뜨리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웹툰이라는 새로운 원천 콘텐츠가 영화계에 가져올 수 있는 신선함을 증명한다. 결국 ‘좀비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장르는 틀이 아니라 도구이며, 진정한 감동은 새로운 형식이 아니라 진실한 감정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부산 경제 재도약 ‘100년 등불’을 밝히다 [부산, 대한민국 해양수도]
[해수부 이전 나비효과] 북극항로 개척 '첨병'… K해양강국 도약 ‘신호탄’
민관 합동 ‘글로벌 해양수도 부산 추진위원회’ 닻 올렸다
“해수부 이전 반대” 장동혁에 화난 부산 민주, 놀란 부산 국힘
부산 국회의원 측근 이번엔 갑질 논란… "청장 공천 쥔 게 우리 의원"
내년 건보료율 7.19%로 결정
공공기관 통폐합 대상에 HUG·주금공도? 지역 금융가 촉각
부산 해수욕장 야간 입수 단속 기준 제각각
부산 기업 ‘딥브레인’ 블록체인 기술, 베트남서 러브콜 쇄도
[단독] 통영시, 결국 백종원 ‘손절’… 먹거리 축제 주관사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