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수부 이전, '부산시·해수부 협력'이 스케일업이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정부 부처 하나의 위치를 단순히 세종시에서 지역으로 이전하는 문제가 아니다. 해양도시 부산을 명실상부한 해양수도로 만들고 해양강국 대한민국을 공고히 하고자 하는 지역민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한 마중물이다. 이 같은 해수부 이전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고 구체적인 전략을 모색하는 자리가 열렸다. 해수부 이전이라는 중책을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밀어줄 두 주역인 해수부 장관과 부산시장이 직접 그 자리 주인공으로 나서 대담을 가졌다. 18일 열린 ‘2025 스케일업 부산 컨퍼런스’를 무대로 열린 장관과 시장의 대담은 거시적인 안목에서 미시적인 실무까지 두루 아울렀다는 평가다. 이날 대담은 해수부 이전의 거시적 의미를 되새기며 시작됐다. 북극항로라는 기회를 살리기 위한 해수부의 역할론이 그것이다. 전재수 장관은 북극항로 개척에서 부산이 가진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해수부를 비롯한 해양 공공기관의 이전으로 해양정책 효율성을 높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형준 시장도 북극항로 개척으로 수도권에 대응하는 또 하나의 성장축을 완성하고 글로벌 해양경제를 선도하기 위해 해수부의 이전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전 장관은 부산시가 해수부 직원들에 대한 정착 지원책을 발빠르게 제시한 점을 높이 평가하며 해수부를 매개로 한 부산시와의 협치를 예고했다. 미시적으로도 로드맵 제시 시점까지 구체적으로 드러날 정도로 자신감이 돋보였다. 전 장관은 이날 대담에서 올해 안 해수부 이전 완료와 더불어 오는 11월이나 12월 초, 늦어도 이번 정기국회 회기가 끝나기 전에 부산으로 이전할 해양 공공기관과 해수부 신청사 입지, HMM 부산 이전 등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소상히 밝히겠노라고 못을 박았다. 부산시도 해수부 산하 7개 공공기관을 비롯해 HMM 같은 해운기업 유치에 필요한 인센티브 지원 근거 마련을 위한 준비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후속 조치에 부산시와 해수부가 2인3각의 케미를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열린 스케일업 부산 컨퍼런스는 2021년 첫 개최 이후 올해 5회째를 맞으면서 해마다 부산의 미래 경쟁력과 도시 재도약 전략을 점검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해 왔다. 특히 올해는 지역 최대 이슈로 부상한 해수부 부산 이전을 가장 앞세우며 해양수도 부산의 미래 비전을 모색함으로써 일반 시민들을 비롯한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부산시장과 해수부 장관이 직접 만나 대담을 나누며 그동안의 인식 편차를 최소화하는 계기가 된 이번 행사를 기점으로 해수부의 부산 조기 착근을 위한 시와 해수부의 협력이 더 공고해지기를 바란다. 정치적 계산을 떠나 지역을 생각하는 협력이야말로 진정한 ‘부산 스케일업’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사설] "동남권투자공사 추진은 고래와 멸치 바꾸는 것"
동남권투자공사가 부산 정치권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정부가 부산 대선 공약이던 동남권투자은행 대신 투자공사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지역의 반발이 거세졌다. 박형준 부산시장의 강력한 비판과 함께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도 대정부질문에서 문제를 제기할 정도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산업은행 이전이 어렵다면 투자은행으로 대체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은행이 아닌 공사를 내놓았다. 공사 형태는 수신 기능이 없어 자금 조달력이 떨어지고 대규모 투자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는 명백한 공약 후퇴로 부산을 ‘달래기용’으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부산은 수십 년간 국제금융중심도시라는 이름값을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핵심에 있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정책금융기관의 실질적 이전이었다. 산은이든 투자은행이든, 지역 경제를 떠받칠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데 정부가 내놓은 투자공사는 자본금이 3조 원에 불과한 데다 수신 기능조차 없어 자금 동원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지역 산업을 이끌 ‘큰 손’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적자와 비효율의 위험을 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뻔한 한계를 알면서도 정부가 공사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부산시장이 “고래와 멸치를 바꾸는 격”이라고 일갈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은행은 수신 기능을 바탕으로 민간 자금을 폭넓게 끌어들이고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지역 경제에 안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정책금융기관이다. 반면 투자공사는 제한된 자본으로 채권 발행 등에 의존해야 하기에 운용 효율성이 떨어지고 적자 위험까지 안고 있다. 정책금융 기능도 미약해 지역 산업 구조 전환이나 신산업 육성에서 ‘메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를 마치 대체재인 양 포장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금융기관 하나를 둘러싼 선택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은 이전 철회와 투자공사 설립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중대한 과제이자, 지역민과 맺은 정치적 약속을 정면으로 저버리는 행위다. 정부는 투자공사 추진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부산 시민이 왜 산은 이전을 요구해 왔는지 그 근본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 산은 부산 이전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이전 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도권 과밀을 완화하고 부산을 제2의 금융중심지로 육성해 남부권 경제를 살리겠다는 분명한 비전이었다. 지역이 바라는 것은 ‘반쪽짜리 공사’가 아니라 국가균형발전을 뒷받침할 실질적 금융 기반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공사’ 추진을 접고 ‘은행’ 설립 방안을 재검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논란은 단순한 정책 갈등을 넘어 정치적 심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설] 박 시장, 침례병원 공공병원화 담판 이번엔 매듭지어야
박형준 부산시장이 8년째 표류 중인 부산 침례병원 공공병원화를 위해 담판에 나선다고 한다. 박 시장은 이달 중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과 면담을 추진해 침례병원 공공병원화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시는 2017년 파산과 동시에 폐원한 침례병원을 2022년 499억 원을 투입해 매입한 뒤 건강보험공단 직영 보험자병원 전환을 추진해 왔다. 침례병원 공공화를 위한 최종 관문은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 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통과다. 하지만, 2023년 12월 건정심 안건에 처음 상정된 이후 지난해 말까지 2차례 연속 재논의 결정이 내려졌다. 이번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침례병원 공공병원화의 돌파구가 될지 주목된다. 침례병원 공공병원화가 그동안 속도를 내지 못한 이유는 재정 부담을 놓고 시와 건정심 심사위원들의 견해차가 컸기 때문이다. 300병상 규모의 병원을 기준으로 진행한 2020년도 용역 결과, 개원 1년 차엔 79억 5700만 원, 2년 차엔 97억 800만 원, 3년 차엔 47억 7300만 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3년 동안 무려 200억 원이 넘는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자, 건정심 위원들은 적자 운영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시는 4년간 적자 보전을 제시하며 설득에 나섰지만, 건정심은 최소 5~10년가량 적자 보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박 시장이 이번 면담을 통해 보건복지부와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기 바란다. 공공병원 전환이 지연되면서 지난달 부산의 한 민간 의료기관이 시에 침례병원 인수 의사를 제안하기도 했다. 올해 안으로 침례병원을 매입한 뒤 1년간 리모델링을 거쳐 민간 병원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는 침례병원이 공공병원화 대신 민간 매입 형태로 운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한 시민단체는 “민간 매각과 관련한 논의를 중단하고, 침례병원 공공병원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혀야 한다”고 박 시장에 촉구했다. 시는 민간 매각보다 박 시장의 공약이기도 한 침례병원 공공병원화가 우선이며, 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시가 공공병원화 추진 좌초에 대한 지역의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침례병원 공공화는 공공의료 강화가 시급한 부산의 현실에서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현재 부산의료원 하나로는 공공의료를 충분히 지원하기가 어렵다. 2015년부터 추진해 온 서부산의료원은 지난 5일 실시협약을 체결했으며, 2028년이 되어야 준공될 예정이다. 공공보건의료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한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부산 금정구를 찾아 침례병원 공공병원화를 약속한 바 있다. 박 시장은 정부의 공공의료 강화 기조와 연계해 보건복지부와 공공화 협상을 이번에는 확실히 매듭지어야 한다. 적자 가능성에 대한 설득 논리와 재원 확보 방안 등을 치밀하게 준비해 공공화를 꼭 실현해야 할 것이다.
SMR과 MSR
효율이 중요한 시대, 영어도 한글도 내키는 대로 줄여 쓰다 보니 점점 모르고 헷갈리는 단어가 늘어간다.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 쓰이는 축약 단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SMR은 많이 익숙한 단어다. 소형모듈원전(Small Module Reactor)의 첫 글자를 줄여 쓴 말이다. 대형 원전의 위험성과 막대한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오래전부터 거론됐다. 탄소배출 없는 신재생에너지를 거론하면서 간혹 SMR이 함께 거론되기도 했다. 원전에 대한 찬반을 떠나 바다에서는 오래전부터 핵을 군용 선박과 잠수함에 활용해 왔다. 러시아와 미국 등이 보유한 핵 추진 잠수함, 항공모함, 쇄빙선 등이 그런 사례다. 이 배에 들어가는 핵 추진 설비가 SMR의 모태인데, 국내에서는 SMR의 일종인 MSR이 요즘 화제에 오르고 있다.용융염원자로(Molten Salt Reactor)는 물 대신 용융염을 냉각제로 쓴다. 고열로 녹인 액체 상태의 염으로 열에너지 보존력이 탁월하다. 핵연료를 미리 염화물에 녹여 연료로 사용하기에 노심용융사고가 애초에 불가능하고, 원자로 내부에 이상이 생기면 용융염이 곧바로 굳어버려 외부 누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압력을 가하지 않아도 높은 열효율을 낸다는 점도 강점이다.선박에 대한 탄소배출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조선기업들의 시선도 MSR에 쏠렸다. 특히 최근에는 친환경과 높은 추진력이 필수인 북극항로 선박 연료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2021년 6월 삼성중공업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협약을 맺었고, 2023년부터 MSR 원자로 개발 연구에 들어갔다. 결국 MSR을 탑재한 17만 4000㎥ 용량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설계모델이 지난 9일 미국선급협회(ABS)와 라이베리아 기국으로부터 세계 최초로 기본승인(AiP)을 받았다. 새로운 선박 개발의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이번에 개발된 LNG 운반선용 MSR은 100㎿th 용량으로, 한번 설치하면 선박 수명이 다할 때까지 연료 교체 없이 운항할 수 있다. 앞서 HD현대도 미국선급(ABS)으로부터 기본승인을 받은 MSR 적용 1만 5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설계 모델을 올 2월 미국 ‘휴스턴 해양 원자력 서밋’에서 공개한 바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장난조선소는 2023년 12월 MSR을 탑재한 2만 4000TEU급 컨테이너선 설계에 대해 노르웨이선급(DNV)으로부터 기본 승인을 받았다고 공개했다.핵 외에도 수소와 암모니아를 비롯한 더 안전하고 환경 피해가 없는 에너지원을 향한 연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대기자
강병균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천영철의 사리 분별] 트럼프주의 10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지도 벌써 10년째로 접어들었다. 2016년 그가 처음 당선된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당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면서 이민자와 성소수자 혐오는 물론 인종차별 발언까지 서슴지 않던 그의 모습은 지구촌에 큰 충격을 안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 1월 재선 임기를 시작한 뒤에는 충격을 넘어 혼돈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기존 질서를 아예 무시한 일방적인 상호 관세 부과 등으로 인해 전 세계는 그야말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이미 우리가 예전에 알던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가(MAGA)’ 구호에 밀려 기존 국제사회의 중대한 원칙인 다자주의에 입각한 상호주의와 자유무역체제 등은 변변한 저항조차 못한 채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있는 중이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도 일상이 된 ‘퇴행의 역습’을 언제까지 버텨낼지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을 주축으로 한 신냉전 체제도 한층 공고해지는 분위기다. ‘힘에 의한 평화’ 논리가 다시 힘을 얻으면서 1991년 구 소련 연방 해체로 찾아왔던 짧은 평화의 시기가 사실상 끝났다는 탄식도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최근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하고도 현지에서 일하던 한국 노동자들이 쇠사슬에 묶인 채 무분별하게 구금되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10년 전 다소 기이하게까지 느껴졌던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말투와 행동, 반지성적 논리가 이젠 뉴노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트럼프주의의 확산이다. 트럼프주의의 골자는 우익 포퓰리즘, 미국 내셔널리즘, 반세계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더욱이 ‘트럼프주의 10년’의 영향으로 극우 성향 정당들이 전 세계적으로 한층 강력한 영향력을 획득했다. 유럽의 경우 헝가리 민족주의 성향 피데스당, 프랑스 극우 국민연합,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체코 긍정당, 네덜란드 자유당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를 차용해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까지 내걸었다. 정치 이념도 트럼프 대통령과 판박이다. 이들은 EU의 친환경 노선을 비판하고 공식 행정 문서에 사용하는 성별을 남성과 여성만 인정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도 적극 호응한다. 특히 그들은 트럼프주의가 더 이상 이단이 아니라 주류라고 선언한다. 가장 큰 문제는 트럼프주의 확산 이면에 강력한 포퓰리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선거 시스템의 한계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포퓰리즘은 트럼프주의의 주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포퓰리즘은 보수와 진보, 극우와 극좌 모두에게 매우 유용하다. 선거 전략뿐만 아니라 정당 운영 논리, 국정 운영 방향도 포퓰리즘적 손익계산서를 토대로 수립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도 경제적 불평등 심화와 정치적 양극화라는 환경 속에서 미국 사회 불안정성이 증대된 데 따른 유권자들의 표심 변화를 정확히 읽고 공략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한다. 포퓰리즘은 편가르기를 통해 힘을 얻고 세력을 확장하기 때문이다. 집권과 정권 재창출에 매몰된 정치 지도자들은 대중들을 상대로 상대 진영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을 조장하는 데 골몰한다. 이 과정에 가장 우려되는 점은 포퓰리즘식 선동이 상대 진영에 대한 지지층의 증오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유권자가 깨어있지 못할 경우 정치가 부추긴 증오로 인한 부작용은 심각한 상황을 초래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트럼프주의 지지자인 미국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 암살 사건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용의자인 타일러 로빈슨은 “그의 증오에 질렸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증오가 증오를 낳고, 결국 임계점을 넘어 참극으로 치달은 것이다. 지금도 진영 논리식 분노 표출과 복수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등 이 사건의 파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피해자가 32세, 용의자 22세로 모두 미래를 이끌 청년층이라는 점이다. 트럼프주의 10년, 계속 이대로 흘러가도 괜찮은 것인가. 트럼프주의와 포퓰리즘은 우리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세대와 계층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목격되는 극심한 분열과 갈등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연대에 깊은 상처를 내고 있다. 지적체계에 기반한 평화와 평등, 인류애, 이타심, 다양성 등 그동안 힘들게 구축한 보편적 가치들도 흔들리고 있다. 이 와중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는 모든 점에서 옳다(Trump was right about everything)’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서로 자신이 전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사회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인류가 트럼프주의와 포퓰리즘 부작용으로 인한 집단 퇴행을 극복하는 데는 앞으로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소통과 화합으로 공존의 길을 찾는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한 시절이다.
[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초고령화 사회, 돌봄의 건축
주말마다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 동생과 함께 거주하는 모친에게는 요양보호사가 주 5일 방문한다. 요양보호사도 이미 60세가 넘었다. 노인이 노인을 케어하는 ‘노노케어’는 이미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체계적이지 않다. 90세가 넘은 모친을 볼 때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는 존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만 65세 이상이 20%를 넘겨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20년 뒤인 2045년에는 37%까지 높아져 일본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된다고 하니 ‘노인과 바다’인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인의 나라’인 대한민국에 대한 문제이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인구가 급격히 팽창했던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으로 편입되는 것과 인구 소멸이 함께 가져온 결과다. 지금은 다섯 명 중 한 명이 노인이라면 20년 후에는 세 명 중 한 명이 노인이라는 것이다. 미국 노인 복지 전문가 데이비드 버넷(버지니아커먼웰스대) 교수는 한국을 두고 “급속한 인구·사회·경제 변화를 겪는 국가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늙음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게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할 때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12월 기준, 전국 3892개 노인요양시설에 입소한 어르신은 41만 2000여 명에 달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2013년)에서는 요양 시설 입소 노인의 68%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이 중 절반 이상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족의 결정으로 입소했다는 것이다. 가족의 돌봄 부담, 주거 불안, 경제적 여건 부족 등으로 요양 시설에 입소하는 것은 그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노인 돌봄을 핑계로 그들의 삶을 시설 속에 가두고 관리 대상으로 여겨왔다. 누구도 자신의 마지막을 시설에서 맞이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요양원이 아니라, 찾아가는 돌봄을 위한 지역사회 시스템이다. 하지만 현재의 제도는 이런 현실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한다. 실버타운은 지나치게 비싸 중산층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공공임대는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돌봄이 필요한 순간마다 집을 떠나야 하는 구조는 노년을 불안하게 만든다. 재가 서비스, 요양병원, 요양 시설이 각각 따로 존재해 연속성이 없으니, 노인의 삶이 시설과 제도의 틈새에서 조각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나의 부모일 수도 있고, 미래의 내가 될 수도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탈시설화를 국가 전략으로 채택하고 ‘집으로 찾아가는 복지’를 시작했다. 싱가포르의 ‘캄퐁 애드미럴티’는 공공임대주택 위에 주거, 의료, 상업, 커뮤니티 공간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복합단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병원이 있고, 이웃과 함께하는 정원이 있으며,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와 도서관이 곁에 있다. 노년의 이동 불편을 건축이 대신 설계해 준 것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휴마니타스’는 더 실험적이다. 대학생이 요양 시설에 무료로 거주하며 어르신과 생활을 나눈다. 세대 간의 교류를 건축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셈이다. 일본은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통해 의료, 돌봄, 주거를 지역 단위에서 엮어내고 있고, 덴마크는 오래전부터 집에서 가능한 한 오래 살 수 있도록 재가 중심 돌봄 체계를 마련했다. 건축은 여기서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제도와 맞물려 돌아가는 사회적 장치가 된다. 한국 사회에도 무엇보다 연속성 있는 주거가 필요하다. 노인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가정과 청년, 은퇴 세대가 섞여 살아가는 ‘복합 공간’이 되어야 한다. 어린이집과 작은 도서관, 공유 부엌과 정원을 함께 두어 세대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곳, 다섯 명이나 열 명이 함께 사는 소규모 그룹홈은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 작은 가족처럼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이웃 공동체는 고립을 막아준다. 이런 변화는 건축가의 설계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노인 친화적인 집에는 세제나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고, 대학과 연계한 은퇴자 주거 단지를 시범적으로 지원하며, 기존 아파트를 ‘에이징 레디(노후에도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미리 준비하는 것)’로 바꿀 수 있는 리모델링 표준을 제정하는 일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나아가 도시는 ‘돌봄의 인프라’를 물리적 시설만이 아니라 생활권 단위의 사회적 관계망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결국 노년의 존엄은 물리적 공간과 제도적 장치, 현실적인 정책과 실행이 맞물려야 지켜질 수 있다. 초고령화 사회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초고령화 사회의 도시와 건축은 모든 세대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공존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핵심이다. 우리가 어떤 건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노년은 고립과 불안의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존엄과 관계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누구나 좋아한다는 그 곡, 치고이너바이젠
1840년에 파가니니가 세상을 떠났다. 바이올린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과 바이올린으로는 불가능하다던 모든 것을 보여준 파가니니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과연 누가 그 뒤를 이어갈지 궁금해했다. 1820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앙리 비외탕, 1831년 헝가리 출신의 요제프 요아힘, 1835년 폴란드의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1838년 벨기에의 외젠 이자이 같은 사람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1844년 스페인에서 그 누구보다 강력한 테크닉으로 무장한 파블로 사라사테가 태어났다. 사라사테는 어려서부터 바이올린 신동으로 유명했다. 10세 때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 앞에서 연주회를 했는데, 그의 연주에 감동한 여왕은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선물했다.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게 된 그는 파리음악원에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공부했고, 17세 되던 1860년에 파리 데뷔 연주회를 했다. 그 후로 세계를 순회하며 연주회를 이어갔다. 그의 연주회는 정말이지 파가니니가 다시 태어난 듯한 분위기였다. 사라사테의 연주를 들은 작곡가 랄로는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스페인 교향곡’을 작곡해서 그에게 헌정했고, 브루흐는 바이올린 협주곡 2번과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헌정했다. 생상스는 그의 연주를 듣고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 이상의 것을 들려준다”라고 감탄하면서 바이올린 협주곡 3번과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헌정했다. 사라사테 자신이 작곡한 곡도 많다. ‘카르멘 환상곡’ ‘서주와 타란텔라’ ‘스페인 무곡집’ ‘나바라’ 등은 지금도 널리 연주되는 곡이다. ‘치고이너바이젠’(Zigeunerweisen, Op. 20)은 ‘집시의 선율’이라는 뜻이다. 사라사테가 헝가리 지방을 여행할 때 들은 집시 멜로디를 바탕으로 만든 곡으로, 1878년 라이프치히에서 초연되었다. 매우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도입부가 귀를 사로잡는다. 이어 집시 특유의 애상에 잠긴 전개부, 그리고 정열적이다 못해 관능적인 결말부로 구성되었다. 즉흥적인 장식음, 선율의 자유로운 곡선, 불규칙한 박자의 혼합, 옥타브 도약, 강약 대비 등에서 집시적인 요소가 잘 나타난다. 사라사테는 1908년 9월 20일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고, 자식도 없었다. 스타에게 흔히 따라다니는 스캔들이나 연애 이야기도 찾을 수 없다. 그저 연습과 연주가 삶의 모든 것이었다. 언론이 ‘바이올린의 천재’로 묘사하며 환호했지만, 정작 사라사테 자신은 그런 평가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는 지난 37년 동안 하루 14시간씩 연습해 왔다. 그걸 모르고 사람들은 그저 나를 천재라고 한다.”
[데스크 칼럼] HMM 민영화의 원칙
길이 400m 폭 61m 높이 33.2m. 2020년 4월 부산항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HMM 알헤시라스호’의 위용은 대단했다. 20피트 컨테이너를 무려 2만 4000개나 한 번에 나를 수 있는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이었다. HMM(옛 현대상선)은 그 뒤로 3개월간 같은 크기의 배 11척을 인도받아 유럽 노선에 투입했다. 주인 잃은 현대상선을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가 넘겨받아 공적 자금을 과감히 쏟아부은 덕분에 현재 HMM은 세계 8위 수준의 수송 능력(선복량)을 갖추게 됐다. 현재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HMM 지분 비율은 각각 36.02%와 35.67%다. 산은의 자기자본(BIS)비율은 13.9%로 금융당국 권고치 13%를 겨우 넘긴 상태다. HMM 지분이 자기자본의 15%를 넘기면서 위험가중치 1250%를 적용받게 돼, HMM 주가가 오르면 BIS비율이 낮아지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7월 HMM 지분에 대한 위험가중치 적용을 3년 미뤄줘 매각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준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전체 산업군 지원을 맡는 산은의 자금 공급 여력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을 더 미룰 수 없기에 신임 박상진 산은 회장이 지난 9일 “HMM 민영화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HMM 민영화 논의에 앞서 한진해운 파산의 교훈을 다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소유 기업의 의지 부족, 정부의 해운업에 대한 몰이해가 겹치며 세계 7위 선복량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고 있던 한진해운을 공중분해시키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당시 채권단은 한진그룹에 긴급자금 7000억 원을 요구했지만 한진은 경영권과 함께 4000억 원을 내놓겠다는 입장으로 평행선을 달리다 법정관리와 파산에 이르고 말았다. 불과 3000억 원 차이였다. 2017년 선복량 기준 세계 13위에 불과하던 현대상선을 오늘날의 세계 8위 HMM으로 키우는 데 투입된 공적자금은 약 6조 8000억 원. 호미로 막을 일을 포클레인으로 겨우 막은 셈 아닌가. 돈 문제가 다가 아니다. 한진이 40년간 확보한 선박과 부두 지분 같은 유형의 자산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구축한 네트워크, 업계 전문 지식을 내재화 한 고급 인력들이 모두 산산히 흩어져버렸다. 무형의 자산은 돈을 쏟아붓는다고 당장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재 HMM은 미주와 유럽, 아시아 노선을 동시에 운영하는 국내 유일 글로벌 원양 선사다. 민영화에 단순한 금융·기업 논리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국내 수출입의 최전선을 담당하는 필수 기간산업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공기업은 아니지만 실제 원양 선사가 맡는 공공적 성격의 업무에 맞게 소유 구조에서의 공공성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HMM 최대 주주인 산은 지분을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최근 포스코그룹의 HMM 인수 검토에 대해 해운업계가 강력 반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주력산업이 위험해지면 해운업을 먼저 희생시킬 가능성이 있고, 대형 화주이기도 한 기업이 자사 물량 위주로 해운업을 영위하면 기존 해운 생태계가 흐트러진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단순한 해운 선사 한 곳 민영화 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적선사이자 기관으로서, 대한민국 해운산업이라는 측면에서의 지배구조 문제를 동시에 봐야 한다”며 HMM 민영화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다른 인터뷰에서 전 장관은 해운산업이 해양안보와 밀접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산은의 HMM 지분을 여수·광양부터 부산·울산·포항에 이르는 동남권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상공계가 나눠 갖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이를테면 ‘지역성 강화’ 방안이다. 산은이 소유한 HMM 지분의 가치를 HMM이 지난 8월 실시한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인 주당 2만 6200원으로 환산하면 약 10조 원에 이른다. 지자체와 상공계가 전체를 마련하기엔 부담스러운 액수다. 전 장관 아이디어에 생각을 보태보면 이렇다. HMM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해진공이 지분을 더 늘리는 것이다. 해진공이 굳건히 HMM 대주주 역할을 맡아 원양 해운의 공공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원양 선사와 연결돼 아시아 역내 해운을 책임지는 근해 국적선사들이 지분 참여를 한다면 HMM의 해운 전문성과 연결성도 동시에 꾀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화주기업들의 소액 지분 참여도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부산으로 이전할 HMM의 지역성과 전문성, 공공성, 산은의 자본 건전성 제고를 모두 꾀할 수 있는 방안,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여러 분야 관계자들의 머리를 맞대볼 필요가 있다. 이호진 경제부 선임기자 jiny@busan.com
[시론] 부산의 미래, 베트남과 협력으로 만들어가자
한-베 관계는 1975년 남베트남의 패망으로 국교가 단절된 후 30년 가까이 미수교 적성국(敵性國) 관계를 유지하다가 1992년에 비로소 정상화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교 정상화 당시 베트남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빈곤 탈출을 위해 도이머이 개방정책을 막 추진하던 때였고, 한국은 서울 올림픽 직후 사회 전반에 개방 풍조가 생기고, 국민소득이 높아지던 때였다. ‘한강의 기적’을 배워 ‘빈곤 탈출’을 이루려던 베트남과 ‘제조·수출 전진기지’를 구축해 ‘선진국 도약’을 꿈꾸던 한국의 상호 협력은 윈-윈(Win-Win)의 성과를 거뒀다. 베트남이 최빈국 대열에서 벗어나 개발도상국으로 발돋움하고, 한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양국이 상생을 위해 손잡고 동행한 30여 년의 세월 속에서 베트남은 한국의 제3위 교역국,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으로서 경제적 운명 공동체가 됐고, 10만 한-베 다문화 가정을 가진 사돈 국가도 됐다. 이제 양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주부산베트남총영사관 운영 본격화 양국 윈-윈 위한 30년 우호 협력 결실 부산 지역 베트남 근로자·유학생 급증 1억 명 거대 소비시장 지역 기업 기회 한-베 양국 협력 증진 부산 미래 직결 이 같은 상황에서 주부산베트남총영사관이 해운대 센텀시티에 자리를 잡고 10월 초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이는 한-베 수교, 주한베트남대사관 설치, 부산시와 호찌민시 간 자매결연 체결 이후 30여 년 만에 이뤄진 외교적 성과로 그 의미가 크다. 총영사관이 관할구역인 부울경, 대구, 경북의 영남권과 제주도 내 베트남 교민 보호, 비자 발급 등의 영사업무와 정치·경제·사회 등 분야에서 외교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 부산을 포함한 관할구역 내 베트남 교민의 정주(定住)가 용이해지고, 부산과 베트남 간 인적 교류도 한층 더 활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부산시는 올 초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외국인 유학생 유치’라는 카드를 빼 들었다. 2028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3만 명 유치, 유학생의 이공계 비율 30% 확대, 취업·구직 비자 전환율 40% 확대 등 3가지 목표를 세워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부산베트남총영사관은 베트남에서 학생과 근로자가 부산에 와서 공부하고 일하고 정착하는 것을 지원함으로써 부산이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는 오명을 벗고 ‘다이내믹 부산(Dynamic Busan)’으로 재탄생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부산에서 베트남인은 이미 전체 거주 외국인 총 6만 3000여 명 중 약 24%인 1만 5000여 명으로 가장 큰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부산 지역 거주 외국 유학생과 근로자 국적 중 베트남이 각각 1위, 2위를 차지한 사실은 ‘부산드림(Busan Dream)’을 꿈꾸는 베트남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조업, 조선업, 건설업 등 현장에서부터 골목 상권 요식업소에 이르기까지 일할 사람이 없어서 붕괴 위기에 처한 국가 경제와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외국인 근로자 가운데, 지난 30여 년간 한국의 대체 불가한 파트너로서 검증된 베트남의 젊은이야말로 최적의 대안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베트남의 1인당 GDP는 약 4700달러로 한국의 88 올림픽 시절 4748달러와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당시 한국 상황에 견주어 볼 때, 현재 베트남은 중산층이 증가하는 시기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재 베트남이 저비용 생산기지를 넘어서 인구 1억 이상의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성장하는 단계에 있음을 뜻하는 동시에 향후 한국의 수출 확대에 더 긍정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음을 뜻한다. 베트남은 이제 2045년까지 ‘선진국 도약’을 목표로 교통 인프라 건설, 과학기술 응용, 디지털 전환, 청정에너지 분야 등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원하고 있다. 30여 년 전 수교 당시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도약을 이루고자 베트남과 손잡았던 상황을 베트남이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30여 년 후 베트남은 선진국 도약의 꿈을 이루고, 한국은 인구 감소, 지방 소멸의 위기에서 벗어나 지속적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부산은 ‘아시아 최고의 시민행복도시’, ‘세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허브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은 한-베 양국의 협력에 있다.
[중앙로365] 그린에너지 인프라로 여는 친환경 스마트 해양 도시
부산항을 매일 오가는 수천 척의 선박과 항만을 가득 메운 컨테이너는 부산 경제의 활력 넘치는 심장이다. 그러나 이 심장이 내뿜는 연기는 여전히 석유와 중유에 의존하던 과거의 흔적을 담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 예측할 수 없는 해수면 상승이 더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일상이 된 지금, 바다는 더이상 화석 연료의 배출물을 무한정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다. 이 거대한 항만의 에너지가 한순간에 친환경으로 바뀐다면 부산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항만과 도시를 아우르는 그린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있다. 그린에너지 인프라는 석유나 중유 같은 화석 연료 대신 수소, 암모니아, 메탄올, 나아가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생산부터 저장, 운송, 공급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이다. 이는 단순히 선박의 연료 탱크를 바꾸는 것을 넘어 항만과 도시의 에너지 체계를 친환경적으로 전환해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미래 경제를 준비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부산이 이 길을 선제적으로 나아간다면, 미래 친환경 선박 연료 공급 역량을 갖춘 북극항로의 거점 항구로서 세계 해양산업을 선도하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화석 연료 대신 친환경 전환 시대 탄소 배출 제로 항만·도시 만들어야 북극항로 거점 해양산업 선도 필수 수소 전환·재생에너지 100% 자립 장기 전략·전환 로드맵 구체화해야 도시 패러다임 전환 부산 미래 좌우 2023년 7월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 국제해운 탄소배출을 2008년 대비 100% 감축하는 ‘넷제로(Net-Zero)’로 목표를 확정했고, 2027년부터는 연료 표준제와 온실가스 가격 부과 제도를 시행한다. 유럽연합(EU) 역시 2024년부터 국제해운을 탄소배출권 거래제(ETS)에 포함시켰다.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운에 의존하는 한국에 이러한 변화는 경제 전반에 걸친 중대한 도전이자 기회이며, 특히 세계 2위 환적 항만인 부산항은 이러한 전환의 최전선에 서 있다. 세계 주요 항만들은 이미 그린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은 유럽 최대의 그린수소 허브를 구축하며 미래 에너지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세계 최초로 메탄올 벙커링을 상업화하고 2030년까지 다중 연료 인프라를 완비할 계획을 발표하며 이 분야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친환경 연료 선박에 항만 사용료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국제적 협력을 위한 ‘녹색 해운 회랑(Green Corridors)’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하지만 부산항은 액화천연가스(LNG)와 메탄올 벙커링 실증 및 상용화 성공의 긍정적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무탄소 연료 시스템은 아직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는 몇 가지 복합적인 원인에서 기인한다. 무엇보다 부산항의 탄소중립 종합계획 수립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책들이 개별 프로젝트 단위로 파편화되고, 정책 주체들 간 이해관계가 분절화되어 장기적인 통합 전략이 부재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여기에 2050년까지 약 71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선박 전환 비용과 높은 무탄소 연료 가격은 민간 투자를 가로막는 현실적인 장벽으로 작용한다. 더불어 차세대 연료에 대한 안전성 확보 문제, 기술적 불확실성, 그리고 전문 인력 부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여전히 남아있다. 부산이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항만과 도시를 하나로 묶는 ‘부산형 그린포트·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LNG를 시작으로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로 이어지는 단계적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구체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항과 영도 재개발 지역을 활용한 수소·암모니아 벙커링 실증 클러스터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동시에 글로벌 선사와 에너지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컨소시엄 모델을 통해 민간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또한, 항만 장비의 수소 전환 및 재생에너지 자립률 100% 달성을 목표로 하는 ‘탄소중립 항만’ 전략은 도시의 장기 계획과 긴밀하게 연계되어야 한다. 최근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합의된 1000억 달러 규모의 LNG 등 대규모 에너지 제품 구매는 부산의 그린에너지 인프라 구축에도 힘을 보탤 것이다. 부산은 바다의 무한한 잠재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는 도시다. 그린에너지 인프라는 단순한 시설물이 아니라 부산의 산업, 도시, 에너지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하는 핵심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은 이 거대한 전환의 흐름 속에서 결정적 순간 위에 서 있다. 강력한 의지와 과감한 투자, 그리고 시민과 기업의 협력이 뒷받침된다면 부산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친환경 스마트 해양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그 출발은 지금, 바다 위에 새로운 에너지의 길을 놓는 일이다.
"해수부 이전 물살로 해양강국의 길 열어젖히자" [2025 스케일업 부산 컨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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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교육 연결 마이스터고 ‘기술 인재 플랫폼’ 역량 강화해야” [2025 스케일업 부산 컨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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