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5극 3특·2차 공공기관 이전 치밀한 대응 전략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현재 수도권 일극주의와 지역 소멸이라는 큰 난제에 봉착했다. 경제 발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수도권 집중 전략은 국토 균형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정책을 추진한다. 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 등 5개 초광역권과 제주·강원·전북 3개 특별자치도 중심으로 경제·생활권을 재편하겠다는 구상이다. 2차 공공기관 이전도 병행한다. 국토 곳곳에 다양한 성장축을 만들어 미래 발전을 견인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허울뿐인 제2의 도시로 전락한 부산을 살릴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부산시의 치밀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부산시는 ‘5극 3특’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 조직 개편에 나선다. 부울경초광역경제동맹추진단을 본부 체제로 확대 개편하는 것이 골자다. 인력과 권한을 늘려 정부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 초광역 협력의 효율성과 실행력을 높이겠다고 한다. 시는 또 2차 공공기관 이전에 대비해 최근 미래혁신부시장과 도시혁신균형실장을 각각 단장·부단장으로 하는 ‘공공기관 이전추진단 전담 조직’(TF)을 구성했다. 다소 뒤늦은 감은 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중차대한 정부 정책과 관련, 조금의 후회도 남지 않도록 시가 최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시의 역량에 부산 미래가 달렸다는 점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특히 부산은 다른 광역지방자치단체와 입장이 다르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전국을 아우르는 성장 정책 추진이 당연하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수도권 일극주의의 뿌리 깊은 부작용을 일거에 치유하기 위해서는 ‘5극 3특’과 2차 공공기관 이전 과정에 ‘선택과 집중’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는 제2의 도시이자 수도권과 견줄 수 있는 성장 인프라를 갖춘 부산 등 동남권을 제2의 성장축으로 삼아야 한다. 시는 정부를 상대로 이런 점을 강하게 피력하는 등 정책 설계 단계부터 당당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다른 광역지자체를 압도하는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시의 절박한 각오와 실천 의지가 절실하다. 2차 공공기관 이전 문제와 관련해 가장 시급한 것은 근거 자료를 확보해 기관 유치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다. 특히 이전 기관 구성원들이 선호하는 다양한 정주 여건 등에 대한 빈틈없는 준비도 필수다. 시는 현재 2차 이전을 통해 총 37곳의 공공기관을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해양강국을 견인할 해양수도이자 영화도시, 금융도시인 부산 정체성에 부합하면서도 미래 성장에 필요한 기관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유치 전략이 시급하다. 정부도 고른 배분에 방점을 찍은 1차 공공기관 이전이 반쪽 효과에 그쳤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시가 간절한 시민 열망에 부응할 시간이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를 당부한다.
[사설] 만덕~센텀 대심도 통행료 부담 줄이는 방안 고민해야
부산 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를 때 맞닥뜨려야 하는 고질적인 교통 병목 현상을 해소할 인프라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지하로 건설되는 부산의 첫 대심도(大深度) 도로인 ‘만덕~센텀 도시고속화도로’(9.62㎞, 왕복 4차로)가 내년 1월 준공에 이어 2월 초 개통을 앞두고 있다. 승용차 기준 김해공항과 해운대를 30분 안에 연결하기 때문에 만성 정체에 시달리는 부산 교통 체계에서 숨통을 틔우는 기능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항과 해운대의 쌍방향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도시의 관광·비즈니스 경쟁력 강화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다만 승용차 기준 2500원으로 예상되는 높은 통행료와 접속도로 불편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대심도 개통으로 인한 효과 중 도심 혼잡 감소는 가장 기대되는 대목이다. 지상 도로의 통행량을 줄이는 우회 도로가 지하에 확보되는 것이어서 도심의 물류·업무 이동 속도가 한층 높아지기 때문이다. 도시 접근성 향상이 시민 체감으로 이어지려면 이용률이 높아져야 한다. 하지만 대심도에 유료도로 중 최고 수준의 통행료가 부과되면 시민 외면을 받을 우려가 제기된다. 통행료 부담이 시간 절감의 편익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자 방식으로 건설된 유료도로라는 한계가 있겠지만 합리적 요금제는 필수적이다. 높은 통행료 탓에 시민들이 지하가 아닌 지상 도로로 몰리면서 공든 탑이 무너지는 꼴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또 대심도 이용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요인은 접속부 연결에 있다. 22일 개통된 해운대 신시가지~센텀시티 구간의 광안대교 접속도로는 벡스코 요금소 철거와 함께 대심도로 이어지는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만드는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센텀IC 인근 접속부는 대심도 진입 차로가 도로 중간에 설치되며 기존 차로가 줄어든 탓에 개통 초기 불편은 불 보듯 뻔하다. 부산시는 부산경찰청과 협의해 신호체계를 개선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도로 체계 개선을 포함해서 종합적인 보완 대책을 조속하게 제시해야 한다. 대심도 진출입로 주변부 정체로 인한 주민과 차량의 불편은 최소화돼야 한다. 만덕~센텀 대심도 개통으로 부산의 동서 흐름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시민 이용률이 높은 교통 인프라로 자리 잡기 위한 패키지 처방이 꼭 제시되어야 한다. 적정 요금제가 가장 중요하다. 부산에는 전국 최다 유료도로가 몰려 있다. 백양터널 무료화로 1곳이 줄었다가 대심도 추가로 다시 8곳으로 늘게 된다. 시민이 납득하는 요금 정책이 제시되는 것이 중요하다. 대중교통 연계 할인, 출퇴근 시간대 감면, 친환경 차량 인센티브 등 유인책과 함께 교통량·혼잡 변화 데이터를 공개하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시민 체감형 교통 인프라 정착은 합리적 요금과 접속도로 개선 병행에 달려 있다.
[사설] 부산 찾은 이 대통령 "동북아 해양도시 발돋움 총력 지원"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처음 열린 국무회의에서 해양수산부를 올해 안에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 안에는 부산을 진정한 해양수도로 격상시킴으로써 국토 균형발전을 이루고 끝내 해양강국 대한민국을 이뤄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첫 국무회의에서 한 그 약속은 23일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해수부 임시청사 개청식에서 현실이 됐다. 대통령은 이날 해수부 임시청사에서 세종청사 아닌 곳에서의 현 정부 첫 국무회의를 열고 또 다른 약속을 끄집어냈다. 부산을 동북아시아 대표 경제·산업·물류 중심도시로 만드는 데 재정과 행정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새로운 약속 내용이다. 이를 위해 이 대통령은 전재수 전 해수부 장관의 사퇴로 공석이 된 해수부 장관 인선 문제부터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현재 공석인 해수부 장관 자리에는 부산 지역 인재를 중심으로 발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임시청사 개청식으로 ‘해수부 부산 시대’가 공식화한 이상 해수부의 진정한 부산 착근을 위해서는 정부 정책을 지역 현실에 담을 수 있는 리더가 절실히 요구된다. 전임 장관이 임명 때부터 야권의 비토 없이 해수부 부산 조기 이전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리더의 조건에 부합해서였다. 이는 지역적 공감대 확보로 여야 협치의 영역을 키우는 데에도 순기능을 할 것이라 기대를 모은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 약속과는 별도로 부산 이전 주체인 해수부도 이날 해양수도 부산 실현을 위한 자체 밑그림을 내놓았다. 해수부는 이날 부산이 명실상부한 북극항로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범부처급 북극항로추진본부를 출범시켰다. 북극항로가 국제 해양 물류의 뉴 노멀을 예고하는 현실에서 이니셔티브를 쥐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해수부는 북극항로의 상업운항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고 보고 상업운항에 참여하는 해운업체에 선제적으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 마련에도 나섰다. 해수부는 이와 함께 해양수도정책과 등을 신설함으로써 해양수도 부산 육성 전략안 마련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부산이 진정한 동북아시아 대표 경제·산업·물류 중심도시로 비상하려면 해수부의 활약만으로는 부족하다. 해양산업의 배후 연관 산업 진흥과 공항·철도 같은 인프라 구축까지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해수부조차 해양산업을 이끌기 위한 기능 강화 측면에서 모자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언급한 재정과 행정 차원의 지원이 그동안 숱하게 나돌던 기존 말잔치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해수부 기능 강화를 그 첫걸음으로 삼아야 한다. 정부 출범 이후 첫 국무회의의 해수부 연내 이전 약속 이행으로 이제 서막을 열기 시작한 해양수도 부산이 새 약속의 이행으로 성큼 현실화하길 기원한다.
'캐럴 연금' 잭팟
캐럴의 어원은 프랑스어 ‘카롤’(carole)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카롤’은 중세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만들어 추던 ‘원무’(圓舞)를 일컫는 말이다. 캐럴은 민중이 야외에서 함께 노래하는 축제 음악을 통칭했지만, 언젠가부터 성탄절 예수를 찬양하는 노래로 의미가 좁아졌다. 요즘은 겨울, 예수 그리스도, 선물, 산타클로스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캐럴이 유럽에서 본격 유행한 시기는 12세기 무렵이다. 영국 왕 헨리 8세(재위 1509~1547)는 ‘호랑나무가시는 푸르게 자란다’는 캐럴을 직접 썼을 정도로 16세기에 인기를 끌었다. 영국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기독교 문화권인 유럽에서도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캐럴을 부르는 풍습도 영국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캐럴의 전성기는 17세기 청교도 혁명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캐럴의 가사가 간혹 이교도적인 내용을 담아 ‘금지곡’이 된 것이다. 1644년 영국 의회 결의로 크리스마스 축제는 물론 캐럴을 부르는 것이 금지됐다.캐럴은 19세기 영국에서 부활했다. 당시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무렵 집마다 돌아다니며 예수 탄생 소식을 노래로 알리는 ‘캐럴링’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캐럴은 이를 계기로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됐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캐럴은 대중문화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다양한 캐럴 음반이 발매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것이다. 1942년 발표된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요즘 가장 인기가 많은 캐럴은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이다. 미국의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가 1994년 11월 발표한 캐럴 앨범 ‘메리 크리스마스’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30년간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역주행하며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빌보드는 지난 22일(현지시간) 이 곡이 21주 연속으로 메인 싱글차트 ‘핫 100’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67년 빌보드 차트 역사상 최장기간 ‘핫 100’ 1위를 기록한 것이다. 머라이어 캐리는 빌보드 역사상 ‘통산 100주 1위’라는 새 역사도 함께 썼다. 이 곡은 그에겐 ‘캐럴 연금’과 같다. 매년 이 곡으로 잭팟을 터뜨리며 수십억 원의 음원 수익을 올린다. 30년간 총수익이 1억 300만 달러(약 15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화려한 종소리와 경쾌한 리듬을 지닌 이 캐럴을 들으며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반추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메리 크리스마스!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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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Merry 해수mas'
살면서 꿈이 현실이 되는 경험,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7대 특·광역시 중 최고 수준의 초고령화율(24.5%), 특·광역시 중 최초의 소멸위험 단계(2024년 3월 기준 0.49) 진입. 온통 잿빛이던 부산 뉴스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밤이 가장 긴 동지 다음 날 해양수산부가 개청식을 열었다.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기에 좋은 날이었다. 중앙정부부처 중 홀로 부산에 터를 잡고 개청식을 여는데, 대통령실과 모든 국무위원이 출동해 힘을 싣는 모습을 온 시민과 국민이 지켜봤다. 올해 초 당시 이재명 후보가 해수부 부산 이전을 공약할 때만해도 많은 시민들은 “별 공약을 다 한다” “또 공약만 해놓고 안 지키겠지” 하는 반응이 다수였다. 2012년 대통령 선거때도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부에서 분해된 해수부를 다시 복원시키고, 부산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해수부 복원에 만족해야 했다. 올해 이 후보 공약을 보면서 많은 이가 또 ‘빌 공(空)자 공약’ 이겠거니 한 것은 정치인에 대한 불신뿐 아니라 그 사이 우리나라 수도권 집중이 더 심화됐다는 현실 때문이기도 했을 터. 하지만 불과 6개월 만에 민간 건물 두 동을 빌려 800여 명의 사람과 청사 전체를 옮기는 실행력을 목도했을 때, 많은 시민은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때는 없애도 문제없는 부처로 인식됐던, 이곳저곳 옮겨 다니기 바빴던, 조직 규모나 예산 면에서 전체 정부부처 중 아직도 막내 자리 언저리를 맴도는 해수부가 부산에 완전히 뿌리내리러 왔다. 서울, 포항, 영도, 세종을 거쳐 이제야 제자리를 잡은 해수부 표지석의 궤적이 어쩌면 해수부가 그동안 거쳐온 굴곡진 역사를 대변할지도 모르겠다. 해수부가 세월호 참사와 한진해운 파산을 겪으며 내상이 깊다는 사실을 많은 국민은 안다. 마침 내년은 한진해운 파산 1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기념할 일은 아니지만 기억은 꼭 해야 한다. 글로벌 물류망과의 연결을 책임지는 국가 해운산업의 공공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정부 결정으로 당시 선복량 세계 7위 국적선사는 공중분해됐다. 당시 세계 13위 수준이던 현대상선을 올해 8위 HMM으로 키우는 데 엄청난 공적자금이 들어갔다. 밤이 가장 긴 올해 동지까지가 그런 해수부였다 치자. 마침 내년은 부산항 개항 150주년이 되는 해다.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영예로운 미래 150년을 열어갈 첫해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북극 해빙은 북극해를 새로운 글로벌 물류 루트로 부상시키고 있다. 북반구에선 유럽~아시아, 유라시아 대륙~미주 대륙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루트가 북극항로다. 북극항로 개척을 책임지는 해수부 역할이 막중하다. 연관 부처와의 협력은 물리적 거리가 떨어지더라도 범정부 국정과제 차원에서 잘 해나가리라 믿는다. 해수부 부산 시대의 의미는 바로 산업현장과의 소통 확대에 있다. 실제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맡을 해운선사와 해기사, 조선사와 기자재업체 등 산업현장과 인력이 몰려 있는 부울경에서 과거보다 훨씬 밀도 있는 소통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역 일자리와 산업 육성에 목마른 지방자치단체들과의 협력도 마찬가지다. 해수부 홀로 고뇌에 찬 결단으로 북극항로 개척을, 해양산업 탈탄소·디지털 대전환(2DX)을 책임지라는 얘기가 아니다. 업계, 연구기관, 지자체, 정치권, 대학 등이 함께 해양수도권, 북극항로 경제권 구축에 동참하도록 거버넌스를 만들고 역할을 서로 나눠 수행하자는 것이다. 부산시를 비롯해 해수부를 맞이하는 부울경 각 주체들도 이전과는 다른 자세로 지역 해양 현안과 과제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그리 된다면 해수부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위축될 것도 없다. 오히려 다른 부처 공무원들이 부러워할, 국내를 넘어 세계를 무대로 뛰는 글로벌 정부 기관이 될 수 있다. 부울경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번영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마침 오늘 크리스마스다. 오늘부터 해수부와 해양수산가족 모두에게 즐거운 나날이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긴박한 일정에 부처 이전 격무에다, 가족과의 생이별을 묵묵히 감내한 해수부 직원들의 노고에 위로와 감사를 전한다. 내년 창립 30주년을 맞는 해수부가 다가올 새로운 30년과 그 이상의 시간을 잘 설계해 나가리라 믿는다. 현장과 시민이 바로 옆에서 든든히 받쳐줄 것이다. ‘Merry 해수mas’. 그리고 올해도 수고 많았던 해양수산가족, 부울경 시민 모두 행복을 누리는 새해 맞이하기를 기원한다.
[중앙로365] 환단고기와 가림토문자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국정보고 자리에서 ‘환빠’라는 말을 소환하면서 동북아역사재단과 〈환단고기〉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양자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우선 동북아역사재단은 고구려연구재단으로 출발한 국책 연구 기관이다. 중국이 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자국의 지방정권의 역사라고 주장하자, 2003년 11월 고구려사 왜곡 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이를 모태로 고구려연구재단이 2004년에 문을 열었다. 이처럼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임나일본부설과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서 설립된 것이다. 중국은 자국의 영토 속에서 영위된 역사는 모두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고구려의 영토가 광대했다고 강조할수록, 중국사에 편입되는 고구려의 영역 역시 확대되는 셈이다. 고구려의 유민들이 참여하여 세운 발해도 당연히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고구려사만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서북공정을 통해서 신장(新疆) 지역의 위구르족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원전 60년에 전한이 서역도호부를 설치한 이래로 중국이 신장 지역을 관할해 왔다는 것이 중국의 주장이다. 위구르족은 종족적으로도 한족과 다르고, 독자적인 위구르문자를 만들어 썼으며, 종교적으로도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국 영토에 살고 있는 사람은 모두 중화민족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는 2021년에 10억 톤 규모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하였고,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中 동북공정, 日 임나일본부설 왜곡 한국, 동북아역사재단 출범해 대응 한정된 연구 인력 힘겨운 활동 지속 식민사학 카르텔 매도 주장 안 될 말 표음문자 주장 〈환단고기〉는 위서 내부 공격·논란은 역량 분산할 뿐 서남공정은 역시 독립왕국이자 불교를 국교로 하고 독자적인 문자를 사용하는 티베트를 중국의 역사로 포섭하려는 작업이다. 학문적인 논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베이징과 티베트를 연결하는 철도는 총길이가 4062㎞로 부산과 서울 거리의 10배에 달하고 4500m의 고산지대를 통과한다. 한족들의 이동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티베트의 정체성을 희석시키려는 게 근본 목적이다. 중국은 전방위적으로 주변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역사 문제에 대응할 목적으로 만든 동북아역사재단을 식민사학의 카르텔이라고 매도하는 일부 인사들이 있다. 그들은 백 가지 사안 가운데 한 가지만을 문제 삼거나, 아직 준비 단계에 있는 사안을 최종 결과물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정부 부처나 국회에 압력을 가하고는 한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적인 공세에 대처하기에도 급급한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환단고기〉의 내용을 가지고 중국의 영토가 고대에 우리 영토라고 주장할수록, 역으로 고조선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가 될 위험성이 크다. 동북공정은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아래 수많은 학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추진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한정된 연구자들이 동분서주하면서 힘겹게 우리의 역사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식민사학 카르텔 운운하면서 동북아역사재단을 공격하는 일은, 우리들의 역량을 분산시킬 뿐이다. 그렇게 분명한 자료가 있고 자신감이 있다면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중국 학자,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일본 학자들과 직접 싸우면 될 일이다.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증거를 한 가지만 들어보자. 〈환단고기〉에서는 가림토문자가 기원전 2000년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집트의 히에로그리프와 중국의 한자는 모두 상형문자 즉 뜻글자다. 뜻글자가 사용된 뒤 수천 년이 지나서야 표음문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가림토문자는 신기하게도 표음문자다. 모음은 훈민정음의 모음과 그 배열 순서만 다르고 기본 모음이 무려 11개다. 문자의 발달 순서에서 원래 자음이 먼저 만들어지고 모음은 뒤늦게 만들어진다. 모음의 독립은 문자 발달사에 대단히 중요한 비약이었다. 알파벳은 모음이 5개이고, 일본어는 5개, 몽골어도 7개의 기본 모음이 있을 뿐이다. 가림토문자가 존재했다면 왜 그 문자로 쓰인 자료는 단 한 점도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는가? 히에로그리프나 한자는 수많은 증거들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다. 가림토문자가 문자의 최종 발전 단계라고 하는 표음문자 중에서도 음소문자에 해당하는데, 그 편리한 문자를 두고 왜 우리는 다시 한자를 썼을까? 세종은 독자적으로 훈민정음을 만든 게 아니고 가림토문자를 그대로 베꼈다고 해도 괜찮은가? 세종께서는 분명히 내가 새로 28자를 만들었고, ㄱ은 혀가 구부러진 모습을, 아래아(·)는 하늘을 본떴다고 창제의 원리까지 밝히셨다. 세종대왕이 표절한 사실조차 부인하는 파렴치한이란 말인가? 사회에 영향을 끼칠 만한 발언을 할 때는 최소한 해당 분야의 기초 지식이라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나라는 선진국이 되었는데 우리의 지식수준은 아직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 있는 듯하다.
[김경진의 기록으로 그림 읽기] 희망을 품고 나아가는 피노키오
지난여름 해운대 센텀을 지나다 커다란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짐 다인 작품인 ‘희망을 품고 나아가는 소년’이라는 제목이 붙은 공공조형물이었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 모습인데 얼굴은 약간 험상궂다. 이것을 떠올리게 된 것은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흔한 표현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는 시기라 지나간 많은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짐 다인은 미국에서 1935년 태어난 팝 아티스트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1958년 뉴욕으로 이주한 뒤로 청계천에 소라처럼 생긴 조형물을 설치한 클래스 올든버그(Claes Oldenburg), 백남준과 전위음악으로 활동했던 존 케이지 등 여러 예술가와 인연을 맺게 된다. 짐 다인은 이들과 당시 미국에서 주류였던 추상표현주의를 탈피하려는 시도로 ‘해프닝’을 발표하면서 알려진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부모가 철물점을 운영했던 영향인지 툴박스, 해머, 실내 가운, 신발과 같은 생활 속의 사물을 화면으로 끌어들였고 특히 하트는 그의 대표적인 소재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일상 혹은 일반적인 관습이나 관념대로 사물과 사건을 이해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대신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전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표현한다. 이런 그의 방식은 우리에게 친숙했던 사물을 이상하고 낯설게 만들어 오히려 더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를 만들어 냈다. 하트는 전 세계 공통으로 따뜻한 이미지를 가진 기호이다. 하지만 그가 그리고, 제작한 수많은 작품에서는 그런 온기는 찾기 어렵다. 동서대 센텀캠퍼스 광장에 세워진 대형 조형물 피노키오에서도 짐 다인의 이런 독특한 예술 형식을 엿볼 수 있다. 동화 속 피노키오는 비록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지만 대개 어렸을 적 우리는 그 동화에서 기괴하거나 공포를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피노키오 얼굴이 귀엽거나 친숙하기보다는 어딘지 어색하고 다가가기 힘든 인상을 받는다. 이 점이 바로 짐 다인의 예술 형식이다. 그러나 그건 짐 다인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고 우리는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위풍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힘차게 팔을 흔들며 발걸음 옮기는 피노키오를 보며 다가오는 새해를 꿈꾸는 것도 우리 권리이다. 앞에 어떤 일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다시 또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할 존재이다. 비록 동화 속 주인공이지만 나에게 희망을 준다면 약간 험상궂은 얼굴로 표현되었어도 상관없다. 푸시킨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을 가진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라는 브래디 미카코의 책이 눈에 든다. 책꽂이에서 몇 년째 그대로인 이 책을 이번 주말에는 읽으려 한다. 또 속는 셈 치고 말이다.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천영철의 사리 분별] 기억이 단절될 때 지역은 소멸한다
요즘 농촌을 찾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마을에서 주민을 만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날이 찬 겨울철엔 더욱 그렇다. 외지로 떠난 젊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고, 노인들만 농촌에 거주하다 보니 인구는 계속 줄어든다. 마을 노인들의 상당수도 외지 요양기관이나 병원으로 떠나가면서 ‘유령 마을’을 방불케 한다. 앞집도 빈집이고 옆집도 빈집이다. 대문에 체인 열쇠를 감아 밖에서 잠근 집이나 잡초만 무성한 휴경 농지가 부지기수다. 식당, 미장원 등도 모두 문을 닫았다. 이것은 인구 유출과 출산율 감소로 빠르게 소멸 중인 상당수 농촌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올 11월 기준으로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소멸 위험에 처한 지역은 60.2%인 138곳에 달한다. 그중 소멸 고위험 지역은 66곳에 이른다. 경남에서도 전체 16개 시군 가운데 합천군, 산청군, 의령군, 창녕군 등 11곳이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이런 통계는 사실상 농촌의 대부분이 소멸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정부는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5극(초광역) 3특(특별자치도) 정책’으로 수도권 집중과 지역 소멸의 악순환을 끊겠다고 한다. 그러나 500대 기업 77%가 수도권에 있고, 지난해 신규 벤처 투자 68.5%도 수도권에 집중되는 등 수도권 일극주의는 여전히 기세등등한 상황이다. 반면 소멸 위험 지역은 해마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더군다나 지역 균형발전 정책이 추진되더라도 농촌 지역의 소멸 위험을 해소하려면 사실상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유럽 등의 상황을 보더라도 우리의 지역 소멸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영토의 사막화’ 또는 ‘변방화’를 극복하려면 긴 호흡의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했다. 결국 현재 우리는 정책적 단기 처방이 지역 소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가능성이 무척 높은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있다. 여기서 시간이 더 흐른다면 소멸 고위험 지역 내에서도 변방에 위치한 읍면동부터, 그중에서도 외곽 마을부터 본격적인 소멸 물결에 휩쓸릴 것으로 우려된다. 일본처럼 도로 등 공공 인프라 관리 효율화를 위해 소멸 중인 마을들의 주민들을 특정 지역에 집단 이주시켜 거주토록 하는 극단적인 방안이 머지않아 현실화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지역이 최종적으로 소멸했다고 판단하는 기준과 절차는 무엇일까. 집계된 인구 통계와 이에 기초한 정부 심사와 고시 등일 것이다. 하지만 행정적인 절차에 앞서 해당 지역에 깃든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소중히 지켜온 것 등에 대한 전승이 끊어질 때, 즉 지역에 대한 기억이 단절될 때 해당 지역은 사실상 소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소멸 위험 지역의 역사와 문화, 스토리를 발굴해 기록하고 보전하는 작업은 무척 소중하고 큰 의미를 갖는다. 더욱이 소멸 위험 지역 주민들은 고령화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유입 인구가 없다 보니 노인들은 자신과 마을의 이야기를 후인들에게 전승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소멸 고위험 지역인 합천군 적중면이 ‘산안 열여섯 마을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적중면지’를 내놨다. 딱딱한 역사 기록을 나열하는 기존의 행정기관 백서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태의 출판물이라서 관심을 모은다. 주민과 출향인들이 편찬위원회를 결성해 적중면 16개 마을 노인들의 기억에 근거한 생활사 채록, 주민들이 보관하던 사진 자료, 마을의 변화 과정, 인물 데이터 베이스, 문화유산과 생활사 등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과 역사적 가치를 집약했다. 책정된 행정 예산과 별도로 자발적 모금을 통해 당초 계획보다 훨씬 방대한 664쪽 분량으로 2000권을 제작해 전국에 배포했다. 책에 인쇄된 QR코드를 통해 드론 등으로 촬영한 다양한 동영상 자료까지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적중면지’는 단순한 출판물이 아니라 적중면 사람과 역사, 문화에 대한 기억을 미래로 전승하려는 주민들의 강한 의지를 담은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적중의 과거를 현재와 연결하는 것은 물론 언젠가 이곳에 깃들 미래 세대들이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갖기를 바라는 염원의 표출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지역을 살릴 마지막 골든타임을 지나고 있다. 절박함에 답할 대책은 지지부진한 반면 소멸 속도는 예상보다 너무나 빠르다. 주민 참여형으로 편찬된 ‘적중면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역을 기억하는 주민들이 사라지기 전에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문화를 기록하고 보전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관련 조례 제정과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정책 추진이 시급하다. 마을에 깃든 이야기와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 세대에 전승시켜야만 지역이 잊히고 안타깝게 소멸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기를 소망한다.
[송성수의 과기세] 10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슈뢰딩거
100년 전의 과학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때는 1925년 12월 하순의 어느 날이었다. 슈뢰딩거는 드브로이의 물질파 이론을 수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슈뢰딩거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여친과 함께 스위스 아로사의 별장으로 휴가를 떠났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방정식의 골격을 세웠다. 약간의 보완을 거친 후 1926년 1월에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표했다. 그 방정식은 양자역학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물리학 교과서에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물리학에서 아름다운 방정식 4개를 뽑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F=ma와 E=mc2가 생각날 것이다. F=ma는 뉴턴의 운동방정식이고, E=mc2는 아인슈타인이 만든 질량-에너지 등가원리이다. 나머지 2개로는 맥스웰 방정식과 슈뢰딩거 방정식이 꼽힌다. 맥스웰 방정식은 전자기학을 집대성한 것이고, 슈뢰딩거 방정식은 양자역학을 파동함수로 묘사한 식이다. 맥스웰 방정식과 슈뢰딩거 방정식은 상당히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많은 물리학자들은 두 방정식에서 자연현상의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한다. 슈뢰딩거와는 별도로 1925년 7월에 하이젠베르크는 행렬을 이용하여 전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1926년 5월에는 슈뢰딩거가 자신의 파동역학과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이 실질적으로 동등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행렬역학보다는 파동역학을 선호했다. 행렬보다 미분방정식이 간단하고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두 역학은 ‘양자역학’이란 이름으로 결합되었는데, 그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으로는 막스 보른이 꼽힌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 얻게 되는 파동함수의 물리적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1926년 12월에 보른이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파동함수가 고유한 상태함수이긴 하지만 물리적 의미를 가진 것은 파동함수의 제곱 값이고 그 값이 단지 확률을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슈뢰딩거의 파동은 물질을 실험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의 파동’이라는 것이었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도 보른의 주장에 동조했고, 양자역학에 대한 확률적 해석은 ‘코펜하겐 해석’으로 불렸다. 코펜하겐은 보어의 이론물리학연구소가 있던 곳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슈뢰딩거가 코펜하겐 해석에 매우 비판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1935년에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불리는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그 실험은 1시간 뒤에 방사성 원자가 붕괴하면 상자 안의 고양이가 죽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생존하는 상황에 주목한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고양이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고양이가 살아있으면서도 동시에 죽어있는 상태가 된다. 슈뢰딩거는 이것이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고 일갈하며 양자역학이 불완전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와 유사하게 아인슈타인은 “당신이 달을 보기 전에는 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말을 남겼다. 만년의 슈뢰딩거는 물리학보다 생물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43년에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생물학에 대한 대중 강연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할 생각이었지만 준비 도중에 강연 내용이 계속 불어났다. 결국 슈뢰딩거는 세 번에 걸쳐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실시했으며, 이를 보완하여 1944년에 책으로 출판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물리학자가 바라본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를 담고 있다. 슈뢰딩거에게 생명현상을 관장하는 것은 유전자였으며, 유전자의 본성은 다름 아닌 정보였다. 이제 생물학자들의 임무는 유전자에 저장된 정보를 해독하는 것이 되었다. 슈뢰딩거는 전신의 모스 부호를 예로 들면서 조그마한 유전자에 수많은 정보가 담길 수 있다고 설파했다. 분자생물학의 새로운 장을 개척했던 과학자들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많은 영감을 얻었다. 윌킨스는 이 책을 접한 후 자신의 전공을 핵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바꾸었고, 왓슨도 대학 3학년 때 책을 읽은 뒤에 유전자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크릭과 함께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처럼 슈뢰딩거는 단순한 물리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물리학에 뿌리를 두면서도 철학과 생물학으로 나아갔다.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을 달리는 가운데 양자역학의 철학적 의미를 캐묻고 생명현상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한 경향은 슈뢰딩거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현대물리학의 창시자들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그들은 나치가 집권하기 전까지 역동적인 학문공동체를 이루며 치열하게 탐구하고 토론했다. 학문이 세분화되어 있는 오늘날에도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와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새롭고 중요한 것들이 생겨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데스크 칼럼] 통일교는 어떻게 대권을 꿈꾸게 됐나
한일해저터널이 특정 종교세력을 배후에 둔 뭔가 음습한 사업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두 나라를 바다 밑 터널로 연결해 물류를 일으키고, 동북아 대표 경제권을 만든다? 일견 그럴 듯하고, 실제 부산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이 ‘진짜 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 한 번쯤 했을 것 같다. 이 구상을 이끌어가는 한일해저터널 연구회만 봐도 부산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만한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느닷없는 ‘금품 로비’ 의혹이 터지기 전까지 한일해저터널은 멀쩡한 외양을 갖춘 지역의 오랜 비전 중 하나였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부산에서 한일해저터널 논쟁이 어떻게 전개돼왔는지 살펴봤는데, 내가 아는 건 빙산의 일각임을 깨달았다. 문선명 총재가 1981년 전 세계를 연결하는 ‘국제 평화 고속도로’ 구상을 발표하고, 그 출발점을 한일해저터널로 설정한 이후 통일교 신도들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현실화에 주력해왔다. 영불해저터널을 모델로 100년이 걸릴 각오로 끈덕지게 이 일을 해왔다고 한다.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힘든 헌신성이다. 통일교는 그 동안 각종 포럼, 이벤트를 만들어 전문가들을 포섭하고, 여야 정치인들을 한일해저터널의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평화 도로’, ‘피스로드’ 등을 키워드로 연결된 이 네트워크에는 전직 장·차관, 대사, 교수 등 화려한 인맥이 포진해있다. 정치인들에겐 표를 언급하고, 금전적 후원을 얘기했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다루는 뒷배경에는 항상 통일교의 그림자가 자리했다 초기에만 해도 반일 정서와 맞물려 일본의 대륙 진출 길을 터준다는 반대 논리가 우세했던 한일해저터널은 2010년대 중반부터 부산시장 공약으로 추진되는 데까지 위상이 커졌다. 정당이 하나의 정책을 두고 이 정도로 노력을 했다면 못 이룰 게 없었을 것 같다. 흥미로운 지점은 한일해저터널의 ‘스피커’들이 1년 전부터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북극항로 개척을 피스로드와 연계한 새 비전으로 적극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궤도에 오른 한일해저터널의 성과에 고무된 것일까? 통일교는 얼마 전부터 이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우리 목표는 청와대에 보좌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우리에게) 국회의원 공천권을 줘야 한다”, “국회의원 공천, 청와대 진출 등 기반을 다져가면 2027년 대권에도 도전할 수 있지 않겠나”. 4년 전 통일교 간부들이 나눈 대화라고 한다. 지금 보니 마냥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할 수도 없겠다. 한일해저터널에 보인 집요함, 성실함이 이어졌다면 지금쯤 권력 핵심부에 통일교 인맥 몇 명은 거뜬히 진입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을 ‘독생녀’라고 주장하는 교주 1인을 신적 존재로 여기는 비정상적인 종교 세력이 권력의 정점에서 국가 정책을 흔들 수 있다면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다. 근래 들어 종교가 헌법에도 적시된 정교 분리라는 오랜 원칙을 깨고 현실 정치에 개입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 즈음에는 가히 ‘발호’(跋扈)라고 할 정도로 노골적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의 극단화하는 진영 대립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넘보는 이들 종교 세력 중에는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유사 기독교 종파가 두드러진다. 문제는 전광훈 류의 사이비 종파를 넘어 차별금지법 등을 매개로 일부지만 소위 정통파 기독교단까지 ‘탄핵 반대’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1948년 ‘제정 헌법’부터 이어진 정교 분리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퇴행이다. 이런 종교의 퇴행은 정치의 타락이 길을 열어준 측면이 있다. 결집된 소수 강경 지지층이 당내 언로를 장악하고, 반대파에는 문자 폭탄과 댓글로 집단린치를 가해 이견의 싹을 잘라버린다. 민주 정당을 표방하지만, 그 배타성이 일부 종교 집단의 행태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특히 당원이 주인이라는 논리로 매달 1000원 내는 당원들을 누가 많이 모집하느냐에 당내 권력의 향배가 갈린다. 막강한 인적, 물적 동원력을 가진 사이비 종교가 합법적인 루트로 정당을 장악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진 셈이다. 내부 권력 전쟁에 매몰돼 극단 세력과의 결탁도 마다 않는 정당의 비틀린 자화상이 이번 통일교 사태를 통해 또 한 번 여실히 드러났다. 통일교 사태는 우리 대의 민주주의 체제의 또 다른 위기 신호다. 자정 기능을 상실한 정치와 순수성을 잃은 종교가 기묘하게 결합하면서 우리 사회를 더 극단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본령을 추구하는 여야 정당 내 상식적인 사람들의 각성과 분발이 더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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