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선 공식 선거운동 돌입, 부울경 미래 위한 정책 대결을
오늘부터 6·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됐다.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 후보자들은 내달 2일까지 13일 동안 차량을 이용한 거리 유세, 대담, 신문·방송 광고, 현수막 게시, 선거 공보물 발송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유권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전국 곳곳에 선거 벽보가 붙으면서 세 대결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부산·울산·경남에선 부산시장, 울산시장, 경남지사 등 광역단체장을 비롯해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교육감 후보들이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향후 4년간 부울경의 미래를 설계하고 책임질 지역 일꾼을 뽑는 축제의 장이 드디어 열린 것이다.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된 부산시장 선거의 후보자들은 이날 시민 밀착형 유세에 나선다.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후보는 “부산이 침체한 상황에서 성과 없는 시정을 혁신하겠다”는 시정 심판론과 함께 “해양수도를 완성해 부산 대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는 “민주주의 방파제 역할을 해 온 부산이 이재명 정권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힘을 모아주시길 바란다”며 “보수 대통합을 넘어 시민 대통합을 완성해 기필코 승리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김상욱, 국힘 김두겸 울산시장 후보와 민주당 김경수, 국힘 박완수 경남지사 후보 등도 슬로건을 내세워 표심 호소에 나선다. 부울경(PK) 수성과 탈환을 위한 여야의 총력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PK 선거 열기가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다는 점이다.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부산시장 선거가 과열 양상을 보이는 반면, 부산시교육감 선거는 ‘깜깜이 선거’로 흐르고 있다. 김석준, 정승윤, 최윤홍 후보가 나서 지난해 재선거와 똑같은 인물 구도가 형성된 데다, 모두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어 유권자들의 피로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울산 정치권도 후보 단일화 진통을 겪고 있다. 국힘 김두겸 후보와 무소속 박맹우 후보의 울산시장 후보 단일화를 두고 보수 진영에선 압박과 폭로전이 이어졌다. 진보 진영에선 민주당과 진보당의 단일화 룰을 둘러싼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모습들이 유권자들의 냉소와 무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공식 선거운동 이전까지 이번 지방선거는 지역의 미래 비전을 놓고 벌이는 경쟁보다는 진영 간의 대리전과 단일화 등 정치공학만 난무했다. 정작 중요한 지역은 사라지고 거대 양당의 대결 구도만 도드라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생활 정치의 근간인 지방선거에서 부울경 주민의 삶과 미래를 위한 명확한 비전과 정책 대결로 나아가야 한다. 부울경은 인구 감소, 산업 기반 약화를 겪고 있어 신성장 산업 동력 확보와 혁신적인 교육 정책이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후보자들은 지역을 살릴 비전과 현실성을 갖춘 공약, 정책을 앞세워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 것이다.
[사설] 삼성전자 노사 성과급 갈등, 국가 경제 미칠 충격이 걱정
슈퍼 사이클 도래로 역대 최대 호황을 맞았다는 국내 반도체산업이 그에 따른 양지의 따스함보다는 이면에 도사린 거대한 음지의 기운이 더 두드러지는 암울한 국면을 맞았다. 국내 대표 반도체기업인 삼성전자의 성과급 배분을 놓고 노사가 벌이는 첨예한 갈등의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조는 앞으로도 타결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당장 21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간다는 강경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의 파업은 노조와 회사만 당사자일 수 없는 문제다. 공식 조정 절차가 아닌 '자율 협상'의 모양새를 취했지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20일 오후 삼성전자 노사를 임금 협상 테이블로 모은 건 그 때문이다.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은 20일 사측과의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예정대로 21일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사후 조정을 벌인 사흘 동안 중앙노동위원회가 제시한 조정안에 노조가 동의했으나 사측이 끝내 거부했다는 게 노조가 밝힌 이유였다. 당초 협상 쟁점은 성과급 규모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조정 과정에서 적자 사업부 보상을 놓고 노사 간 의견 차이가 컸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 측은 성과에 대한 보상인 성과급을 적자 사업부에까지 보장할 경우 사업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노사는 이번 협상 내용이 국내 산업계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양보의 끈을 서로 놓아버린 듯하다. 삼성전자 노사 협상 결렬 소식이 알려지자 당장 청와대가 긴급히 움직이고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영업이익에 대해서 이익을 배분받는 것은 투자자가 하는 것”이라며 “이익 관철 노력도 적정한 선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란봉투법을 필두로 친노동 정책을 펼쳐온 정부가 이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은 삼성전자 노조를 향한 시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이에 앞서 김민석 국무총리도 긴급조정권 발동 검토를 언급한 바 있어 국가가 개입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형국이다.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노사 합의 결렬 직후 직접 주재에 나선 것은 이 같은 정부의 의지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삼성전자 노사 갈등은 여러 모로 국내 노동계에 새 이정표를 남겼다. 천문학적 초과 수익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놓고 주주와 노동자를 등치시키려는 시도는 그 시작점에 불과했다. 그 시도는 노동자가 회사 초과 수익을 일정 비율로 나눈다면 회사 손실에 대한 비율까지 떠안을 수 있느냐는 물음으로 진화했다. 이는 노동시장 유연화 필요성 논의로까지 이어지면서 노동계를 둘러싼 논란을 더 키우는 중이다. 문제는 그 사이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국제적인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진다는 점이다. 그 어떤 이정표도 경쟁에서 도태된 이후의 폐허엔 세울 수가 없다. 삼성전자 노사가 양보의 끈을 서둘러 다시 잡아야 하는 이유다.
[사설] 동북아 안보·경제 질서 급변, 한일 협력 중요성 커진다
19일 경북 안동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양국의 셔틀외교가 친교의 복원을 뛰어넘어 급변하는 안보·경제 질서에 공동 대응하는 전략적 협력 관계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서로의 고향을 방문하며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동북아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 대응책을 모색했다. 그 배경에는 중동 사태로 촉발된 에너지 공급망 불안과 북·중·러 결속,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강화가 있다. 이 사활적 과제 앞에 한국과 일본은 동병상련의 입장에 처한 이웃이다. 이날 두 정상이 다짐한 안보와 경제 협력의 약속은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되고 실천과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그간 한일 양국은 자유로운 통상 질서와 북한의 비핵화를 핵심으로 한 동북아 안보를 위해 협력했다. 이번 안동 회담을 통해 양국의 의제가 에너지 안보로 확장됐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은 언론 발표에서 “액화천연가스(LNG)·원유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면서 비축 정보의 공유와 소통도 강조했다. 이어 다카이치 총리는 원유의 공동 비축과 스와프 거래까지 제시했다. 양국이 중동산 원유와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중동 전쟁 장기화에 공동 대응을 선언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다. 한일 양국은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에 적극 대응하고 글로벌 공급망 불안을 최소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하지만 한일 양국 앞에 난제가 쌓이고 있고 해결 과정은 순탄치 않다. 북한은 핵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고, 러시아 지원 파병 이후 친러 행보를 가속하고 있다. 미중 스몰딜 이후 대만을 상대로 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도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국은 동아시아 안보 책임을 약화하는 언행으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을 마치 협상 카드처럼 취급하는 발언으로 한국과 일본 등 인접 지역 동맹국의 우려를 자초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번영을 이룬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셔틀외교가 연 협력의 기회를 실질적 성과로 이어 가려는 노력이 양국 모두에 요구된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는 적지 않은 부침이 있었지만, 세계 질서 격변기를 맞아 안보와 경제 현안을 공동 대응 체제로 묶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역사 갈등을 이유로 일본이 소재 수출을 규제하며 보복한 것이 불과 7년 전 일이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과 책임 회피로 형성된 국민적 반감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정부는 일본의 책임 있는 자세를 지속적으로 촉구해야 한다. 또 에너지 협력 등이 국내 산업과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이웃과의 협력은 필요하지만, 원칙 없는 교류는 오래가지 못한다. 안동 회담은 상호 필요성 확인에 그치지 않고 신뢰를 행동으로 증명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지역 예산 시민거부권'
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가 세종대왕·이순신 장군 동상을 모신 광화문광장에 설치한 ‘감사의 정원’을 놓고 여야 서울시장 후보 간 공방과 함께 시민 간에도 갑론을박이 뜨겁다. ‘감사의 정원’은 6·25 참전 22개국을 기리고 참전 용사를 추모하기 위해 설치한 집총경례(받들어 총) 모양의 높이 6.25m 석재 조형물(23개로 구성)이다.부산에서는 ‘퐁피두 미술관 분관 건립’(사업비 약 2000억 원)과 ‘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 초청공연’을 놓고, 인천에서는 ‘F1(포뮬러 원, 사업비 약 2300억 원) 인천 그랑프리’ 유치 계획을 놓고 여야 시장 후보가 충돌하기도 했다. 이들 사업 외에도 서울의 한강버스 및 세운상가 공원화 사업(종묘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강원 레고랜드 사업, 마산 및 인천 로봇랜드 사업이 혈세 낭비 논란을 빚었다.지선을 앞두고 정책·입법연구센터 ‘공익허브’가 정책제안서를 통해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선심성 공약과 지자체장의 예산 독주 등 실태를 지적하고 ‘지역 예산 시민거부권’ 프로젝트를 제안해 화제다. 이는 지방의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문제가 된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의 지자체 사업에 대해 주민이 직접 찬반 투표로 사업의 최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다.물론 지금도 총사업비 300억 원 이상 지자체 사업은 행정안전부의 중앙투자심사위원회 검토를 거쳐야 하고, 투자심사 통과 후에도 지방의회 예산심의를 거친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방의회의 재정 감시 기능은 취약한 실정이다. 2025년 17개 광역시도의 예산안 심의결과를 보면, 지자체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감액 조정을 한 곳은 광주·세종·경남 단 3곳에 불과했다.전국 시도 예산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25년 234조 원 규모이던 전국 17개 광역시도 예산은 올해 247조 원으로 늘었다. 2026년 기준 유권자 1인당 광역단체장 한 명에게 4년간 위임하는 예산액은 평균 2179만 원으로 나타났다. 올해 17개 광역시도 예산 총액에서 국세 이전액(지방교부세·국고보조금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51.7%에 이른다. 지방 예산의 절반 이상이 결국 국민 혈세에서 나오는 셈이다.지자체 예산에 대한 건전재정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선심성 공약과 지자체장의 예산 독주를 막을 실질적 장치가 없다면 수백억, 수천억 원의 시민 혈세가 낭비될 수밖에 없다.송현수 선임기자 songh@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정달식의 일필일침] 이제, 부산의 자부심을 되찾을 때가 됐다
막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친한 학부모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충남 부여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백제 유적지를 둘러본 뒤 자연스럽게 발길은 백제금동대향로가 있는 국립부여박물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하필 우리가 찾은 날, 금동대향로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 가 있었다. 전시장에는 정교한 복제품이 놓여 있었지만 진품의 울림까지 대신할 순 없었다. 기대에 부풀었던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표정에 실망감이 묻어났다. 우리는 복제품으로 아쉬움을 달랜 채 전시장을 나왔지만, 그날의 허전함은 오래도록 미련처럼 남았다. 당시 백제금동대향로의 관리권과 소유권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있었고,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특별전을 위해 잠시 대여된 상태였다. 지금도 그 관리권과 소유권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부여 주민들은 외부에서 빌려 가지 않는 한 언제든 금동대향로를 직접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산 연고 주요 유물들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부산은 조선 침략의 첫 관문이었다. 왜군이 부산 앞바다를 뒤덮자 부산진의 정발 장군, 다대포의 윤흥신 첨사, 동래성의 송상현 부사는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압도적인 병력 차이 속에서도 성을 지키다 장렬히 전사한 그들의 정신은 오늘날까지 부산 시민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역사를 가장 생생하게 전하는 유산이 1760년 동래부 화원 변박이 그린 ‘동래부순절도’와 ‘부산진순절도’다. 그림에는 무너지는 성곽 아래서 왜군과 결전을 벌이는 조선군의 처절한 항전이 담겨 있다. 특히 동래성 전투에서는 백성들마저 지붕 위에 올라가 기왓장을 던지며 왜적에 맞섰다.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민관군이 한 몸처럼 싸운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부산이라는 도시가 어떤 정신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 같은 그림이다. 그러나 정작 부산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이 그림들은 지금 부산에 없다. 이들 순절도는 1963년까지 부산 안락서원에 봉안돼 지역민들에게 선열들의 충절을 일깨워 왔다. 하지만 이후 육군박물관으로 이관된 뒤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안락서원 등에서 수차례 반환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도시의 기억이 외부에 맡겨진 셈이다. 문제는 이런 현실이 두 점의 그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복천동 출토 금동관과 철제 갑옷, 말머리 장식 뿔잔, 동삼동패총의 얼굴 모양 조개 등 부산의 대표 유물 상당수가 현재 국립김해박물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과거 중앙집중적 문화재 관리 체계의 결과다. 2005년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지방자치단체에 관리 권한이 일부 위임됐음에도 주요 유물들은 여전히 국립박물관에 장기 대여된 상태가 적지 않다. 이를테면 부산 가덕도 장항유적 출토 유물처럼 말이다. 물론 과거에는 국가 차원의 보존과 관리라는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 박물관들도 충분한 시설과 전문 인력, 보존 역량을 갖췄다. 그럼에도 부산 연고 유물들은 여전히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지역의 한 문화 관계자는 “복제품 전시에 의존하게 되면, 지역 박물관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결국 시민의 문화 향유권까지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살아 숨 쉰다. 서울의 전시실에서 동래부순절도와 부산진순절도는 수많은 전쟁사 유물 가운데 하나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부산 충렬사나 부산박물관에 놓이는 순간, 그것은 시민의 삶과 기억 속에서 살아 있는 역사로 되살아난다. 이것이 바로 문화유산이 지닌 ‘장소성의 힘’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지방시대’를 국가적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중앙 부처도 지방으로 오는 시대다. 진정한 지방시대는 단순히 예산과 권한을 나누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각 지역이 스스로의 역사와 정체성을 되찾고, 시민들이 자기 고장의 문화와 역사에 자부심을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지역의 정신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이 중앙에 머무는 현실은 모순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접근 방식이라도 달라져야 한다. 적어도 지역 연고 유산을 일정 기간 해당 지역 박물관에서 상설 전시하도록 하는 ‘지역유산 전시 쿼터제’ 도입이라든지, 장기 대여를 활성화해 시민들이 자기 지역의 유산을 일상에서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592년 음력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한 날이다. 이를 오늘의 양력으로 환산하면 5월 23일이다. 내일이 바로 그날이다. 430여 년 전 부산의 성곽 위에서 끝까지 싸웠던 이들의 정신을 기억한다면, 이제는 그 역사를 부산 시민 곁으로 오롯이 돌려놓아야 한다. 이는 부산이란 도시의 역사적 존엄을 회복하는 일이다.
[김정화의 크로노토프] 오페라하우스와 지역순환경제화
국적 선사 HMM 본사의 부산 이전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의 주소지가 바뀌는 것은 단순한 기업 이전을 넘어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퍼즐 조각을 맞추는 상징적 사건이다. 항만과 물류, 금융과 인재가 한 도시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분권은 구호가 아닌 구조가 된다. 다만 경제와 산업의 물길이 바뀌는 역사적 길목에서, 정작 도시의 영혼을 채워야 할 문화예술 분권이 얼마나 낯설고 허술한지 뼈아프게 목격하고 있다. 산업의 분권만큼 문화적 자생력도 중요하다. 해프닝처럼 지나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지방 이전 논의 또한 분권의 본질을 비껴가기는 마찬가지다. 애초에 한예종은 학위 수여가 목적이 아닌 실기 중심의 전문 예술인 양성을 위해 설립된 독자적 교육기관이었다. 수능과 학점이라는 기존 틀을 깨고 현장형 인재를 키우던 학교가, 이제 와서 박사학위 과정 신설과 건물 이전에 목매는 것은 스스로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박사 가운이 아니라 마음껏 기량을 펼칠 무대와 정당한 노동의 대가다. 학교를 옮길 궁리보다 졸업생들의 일자리를 먼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을 둘러싼 예산 논란은 우리 안의 뿌리 깊은 ‘문화 사대주의’를 여실히 드러낸다. 운영 주체는 라 스칼라 초청에 총사업비 105억 원을 투입하는 명분으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경험하고 극장 운영 노하우를 전수받는 과정”이라고 미디어를 통해 강조했다. 하지만 1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단 며칠의 박수와 함께 해외로 송금하는 구조는 문화 투자가 아니라 명백한 ‘문화 식민주의’의 산물이다. 이미 세계 주요 극장의 무대와 백스테이지에서 한국인 공연예술 종사자들이 충분히 실력을 증명해 왔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한국 예술현장이 지닌 힘이다. 이처럼 엄연한 증거를 두고도, 우리 인력을 ‘모자란 존재’로 규정하며 서구의 권위를 빌려와야만 개관의 위신이 선다는 발상이 부끄럽지 않은가. 우리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성장시킬 예산과 구조가 빈약한 것이 본질이다. 고 황한식 교수를 필두로 한 지방분권화 운동은 지역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겠다는 ‘존엄의 투쟁’이었다. 긴 세월 동안 우리는 분권을 외쳤지만, 문화예술을 지역 경제의 혈맥인 ‘지역순환경제’ 관점에서 사유하는 데는 실패했다. 부산문화회관의 1년 치 운영비를 넘는 금액, 연간 지역 오페라 지원 예산의 약 50배에 달하는 혈세를 단 며칠의 갈채와 맞바꾸는 행위는 지역경제 순환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오페라하우스는 랜드마크를 넘어 관련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구조여야 한다. 지역의 문화산업은 지역 내에서 기획되고 인력이 투입되며, 그 경험과 수익이 다시 지역에서 다음 창작으로 이어져야 한다. 극장은 본래 모든 예술이 만나는 ‘종합예술의 산실’이다. 불세출의 기획자 디아길레프는 20세기 초 파리를 뒤흔든 ‘발레 뤼스’를 통해 스트라빈스키와 드뷔시의 음악, 피카소와 마티스의 미술, 니진스키의 춤, 샤넬의 의상 등을 결합해 세계 문화사를 새로 썼다. 완성된 공연을 사 오는 ‘하청’에 머물지 않고, 예술가들이 치열하게 협업하며 스스로 새로운 ‘명성’을 창조해 냈다. 수십 년 전문성을 닦은 지역 예술가들이 갈 곳이 없어 고향을 등지는 현실에서 부산오페라하우스는 일방적인 패키지형 수입처가 되기를 자처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역 인재들이 ‘직업인’으로서 정착해 부산만의 작품을 직조해 내고, 이를 시민들이 고르게 누리는 진정한 향유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부산은 클래식 전용극장이 차례로 들어서며 도시의 예술 지형이 바뀌고 있다. 하지만 건물만으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그 공간을 채울 사람들의 시간과 노동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지역 예술인을 무대 밖 들러리로 세우지 말고 세계적 수준과 대등하게 부딪히며 실질적인 내공을 쌓는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사대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 그 이름이 지나간 자리에 부산의 역량이 남고 다양한 계층의 예술가들이 이 도시를 일터로 삼을 수 있는 촘촘한 구조를 짜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있다. 다들 더 큰 건물과 유명한 행사 유치만 외친다. 공연예술을 도시의 순환경제로 이해하는 관점의 공약은 잘 보이지 않는다. 분권은 단순한 권리 이양만이 아니다. 분권을 통해 지방에 가치가 쌓여야 한다. 며칠간의 사치보다 다음 세대 예술가들이 이 도시에서 연습하고, 일하며, 창작하고,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삶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진정한 해양수도라면 문화를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라 ‘창조하는 도시’라야 한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부산시 문화정책이 순간의 허영을 걷어내고 도시의 미래를 채울 축적의 길을 밝히는 지혜의 등불이 되기를 서원한다.
[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세계 최초의 공개형 수장고 미술관 로테르담 DEPOT 디포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뮤지엄파르크에는 유럽을 대표하는 미술관 가운데 하나인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이 자리하고 있다. 초기 컬렉션을 기증한 프란스 보이만스와 후원자 다니엘 판 뵈닝언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미술관은 중세 회화부터 현대미술, 디자인, 조각, 사진까지 약 15만 점 이상의 방대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 미술사의 주요 작품들을 소장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관람객이 실제로 보는 작품은 전체 소장의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수장고 안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 주요 미술관 대부분의 공통된 구조이기도 하다. 실제 전시되는 작품은 전체 컬렉션의 5~10% 수준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온도와 습도가 조절된 공간에서 관리된다. 관람객은 완성된 전시만 보지만, 미술관 시스템의 대부분은 사실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작동한다. 로테르담은 바로 이 지점을 뒤집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줄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이었다. 그 결과 탄생한 건물이 디포 보이만스 판 뵈닝언(DEPOT Boijmans Van Beuningen)이다. 2021년 개관한 이 건물은 네덜란드 건축사무소 MVRDV가 설계했다. 외형은 거대한 은빛 항아리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은 주변 도시 풍경과 하늘, 공원을 반사하며 끊임없이 표정을 바꾼다. 건축은 스스로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주변 풍경을 끌어안는다. 마치 도시 전체를 표면 위에 담아내는 거대한 렌즈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부 구조다. 디포는 일반 미술관처럼 완성된 전시만 보여주지 않는다. 관람객은 회화와 조각, 사진, 디자인 작품들이 실제로 어떻게 보관되고 이동하며 복원되는지를 직접 본다. 복원실과 포장 공간, 거대한 수장 랙 시스템까지 공개되며, 미술관이 단순한 감상의 장소가 아니라 보존과 연구의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는 기존 미술관의 권위적 구조를 상당 부분 해체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건축적으로도 상징적이다. 일반적인 미술관은 빛을 통제하기 위해 폐쇄적 외관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디포는 정반대다. 거울 외피를 통해 도시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도시 풍경이 건물 표면에 실시간으로 반사되며, 미술관은 더 이상 닫힌 문화시설이 아니라 도시 경험의 일부가 된다. 옥상에는 숲처럼 조성된 공간과 레스토랑이 들어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머물 수 있다. 과거 비공개 시설이었던 수장고가 공공 플랫폼으로 바뀐 셈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단순히 ‘좋은 건물’만 보러 가지 않는다. 그 공간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어떤 철학으로 운영되는지, 도시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함께 경험한다. 디포는 그 변화의 상징이다. 보이지 않던 공간을 드러내고, 숨겨진 시스템을 공개하며, 문화의 뒷면까지 도시 경험으로 전환한다. 로테르담은 다시 한번 건축을 통해 미래 문화 공간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데스크 칼럼] 재논의할 개헌이라면 재정 분권부터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행정통합 논의가 자취를 감췄다. 부울경을 집어삼킬 듯 달아올랐던 행정통합이란 화두가 정작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논의 자체가 묻혀버린 것이다. 통합의 시기와 절차를 놓고 여야가 벌인 날 선 공방이 그저 샅바싸움에 불과했다는 허탈감만 감돈다. 행정통합 논의는 사라졌지만 그 과정에서 던져진 질문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방분권, 특히나 재정분권은 대체 왜 이뤄지지 않으며 대체 언제쯤 실현되는가. 이 문제를 유권자가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 점은 분명한 성과다. 행정 서비스가 고도화되면서 지방정부가 떠맡아야 하는 부담도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추진할 재정권은 중앙부처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당장 지방세 비중은 국세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2024년 기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75%대 25%이다. 지난 1월부터 국무조정실 주도로 범정부 재정분권 TF가 가동 중이다. 연내 70% 대 30%까지 지방세 비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지역 관가에서는 여전히 멀었다는 평가다. 국가 예산의 60% 이상이 지방에서 최종적으로 지출되는 까닭이다. 행정 서비스와 국가사업의 절반 이상이 지방에서 이뤄지지만 돈줄은 중앙부처에서 쥐고 놓아줄 뜻을 보이지 않는다. 이 기형적인 구조는 건국 이래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중앙부처는 사업성을 앞세워 지역을 옥죄어올 것이 자명하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수도권과 지방의 인구 격차는 날로 벌어진다. 예산의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놓고 봤을 때 수도권을 이겨낼 수 있는 지방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수도권에서는 자다깨면 새로 추진되는 게 GTX 노선이다. 중앙부처 구성원이 수혜를 직접 누리는 GTX 노선은 수도권 곳곳으로 뻗어나간다. 이제는 수도권의 범주를 충청권까지 확장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재정 권한 이양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중앙부처가 권한을 틀어쥔 구조로는 지방 경쟁력을 키우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따라 지방정부는 임의로 세금을 만들거나 세율을 정할 수 없다. 지방정부는 중앙부처가 정해준 틀 안에서만 움직일 수밖에 없다. 부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상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외국인 관광객 100만 명이 다녀갔다. 그러나 노다지 같은 이 흐름을 공공 인프라를 위한 세원으로 끌어들일 방안이 전무하다. 관광세나 숙박세 등으로 공공 재원을 확보하는 데 혈안이 된 세계 주요 도시들과는 큰 차이점이다. 독자적인 과세권이 없는 지방은 뻔히 물 들어오는 게 눈에 보이는 데도 노를 젓지 못하는 셈이다. 중앙부처가 움켜쥔 재정권은 세입에만 그치지 않고 세출까지 이어진다. 중앙부처에서 지원받은 예산 상당 수에는 딱지처럼 용처가 세세히 지정되어 있다. 지역 실정에 맞게 유연하게 집행하기 힘든 이른바 '경직성 예산'이다. 부산 뿐만 아니라 전국 지자체에서 포괄보조금을 확대해 달라고 애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방정부를 중앙정부 산하 기관 정도로 여기는 인식을 바꾸고 진정한 지방분권을 이루기 위해 재정분권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결국, 권한과 조직보다 중요한 건 돈이다. 사실 행정통합 논의와 더불어 재정분권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공직 사회에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았다. 늘 지방분권은 중앙 정치권의 수사였다. 섣부른 기대는 배신감만 낳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광주를 찾아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며 개헌 재추진 의사를 밝혔단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추진하려던 개헌 논의가 무산되자 선거 이후 이를 다시 정국 의제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개헌 논의가 다시 시작된다면 지방분권은 그 어떤 의제보다 무게감 있게 다뤄져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재정분권이 있어야 한다. 지방정부가 스스로 세입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 상황에 맞게 재정을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할 시기가 됐다. 지방이 살아야 국가 경쟁력도 살아난다는 말은 이제 지겹다. 비대해진 수도권이 버겁다면서도 재정과 권한을 절대 놓지 않는 그 모순을 중앙 부처는 돌아봐야 한다. 재추진될 개헌이 진정 국가 시스템의 미래를 고민하는 논의라면 답은 분명하다. 지방분권, 그 가운데서도 재정분권부터 시작해야 한다. 권상국 사회부 차장 ksk@busan.com
[중앙로365] 격전지 변수는 2030 투표율
선거 결과는 투표함을 열기 전까지 모른다. 6·3 지방선거가 딱 그렇다. 두어 달 전만 하더라도 이번 지방선거에선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됐다. 수도권·충청은 물론 부산·경남·울산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을 크게 앞섰다. 심지어 ‘보수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에서도 여권 후보가 우세하다는 여론조사가 여럿 나왔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부겸 전 총리가 다시 등판한 건 그래서였다. 많은 여권 인사가 ‘김부겸이라면’ 대구에서도 민주당 깃발을 꽂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북 빼고 다 이긴다”며 ‘15대 1 압승론’을 꺼냈다. 겨우 두 달 전 이야기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격차는 좁혀지는 양상이다. ‘가족 오락관’처럼 ‘몇 대 몇’으로 표현한다면 민주당이 유리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문제는 격전지가 점차 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시장 선거는 전재수·박형준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내로 붙기 시작했다.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마찬가지다. 11일~19일 공개된 6건의 여론조사 중 3건이 하정우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한동훈 무소속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안에 드는 걸로 나왔다.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선거인 만큼, 북갑 선거는 전체 판세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압승이냐 신승이냐, 참패냐 석패냐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여 압승 예상 뒤집고 격차 점점 좁혀져 부산시장·북갑 선거도 오차범위 접전 청년층 적극 참여 등 변수가 승패 좌우 2030 남성 40%가 보수 성향 무당층 또래 여성의 민주당 지지율도 낮아져 투표율 상승 전략 적중 땐 국힘 유리해 격전지에선 작은 변수가 승패를 가른다. 청년층 투표율도 그 변수 중 하나다. 청년들은 2020년대 들어 상황에 따라 정당 지지를 달리하는 스윙 보터 역할을 해왔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4050세대와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한 60대 이상이 팽팽하게 맞붙는 상황에서, 2030 표심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좌우됐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가 그랬다. 이번엔 양상이 조금 다르긴 하다. 2030이 행사하는 표는 승패를 가름하는 캐스팅보트가 되기보다, 여권을 견제하는 표가 될 공산이 크다. 달리 말하면 청년층 투표율이 높을수록 국민의힘이 유리할 거라는 의미다. 과거엔 청년들이 투표를 많이 할수록 보수 정당이 불리했다. 청년층의 민주·진보 정당 지지세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항상 2030세대의 투표를 독려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2년 제18대 대선 당시 “투표율이 77%를 넘으면 말춤을 추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제는 반대가 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2030의 민주당 지지율은 70대 이상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낮게 나타난다. 고령층이 가장 보수적이라는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2030에서 민주당 지지율 평균을 끌어내리는 건 남성들이다. 한국갤럽은 월별 통합 여론조사에서 연령대에 더해 성별로도 구분된 조사 결과를 제시한다. 지난 1일 공개된 4월 통합 여론조사에서 18~29세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17%, 30대 남성은 30%를 기록했다. 70대 이상 남성(38%)보다도 낮다. 4050 남성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물론 2030 남성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건 무당층이다. 40%쯤 된다. 중요한 건 이 무당층이 민주당보다 국민의힘에 가까운 무당층이라는 점이다. 최근엔 2030 여성도 또래 남성과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이들의 민주당 지지율 역시 6070세대 보다 낮다. 무당층 비율도 비슷하다. 남성들만큼 보수화한 건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 2030 여성이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청년층의 진보 이탈 배경에는 세대 간 이해 충돌이 있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청년층과 중장년층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보장성 강화 여부를 놓고 세대 간 갈등이 빚어졌던 게 대표적이다. 정년 연장, 민생 지원금, 건강보험 보장 범위 확대 등에 관한 시각도 엇갈린다. 청년들은 ‘미래의 자원을 당겨서 현재에 투입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40대~60대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만큼 이 세대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청년 세대 여론 지형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청년들이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민의힘에 표를 줄 거란 보장은 없다. 사실 그동안 국민의힘이 2030세대로부터 얻었던 지지는 반민주당·반이재명 정서에 따른 반사이익 성격이 강했다. 윤석열 정부 당시 청년층 국정 지지율이 매우 낮았음에도 지난 대선에서 범보수 후보들이 상당한 표를 얻을 수 있었던 건 그런 맥락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건 국민의힘에 잠재적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청년층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보수 정당을 지지해 준 전통 지지층과는 성격이 다르다. 국민의힘이 정치적 효능감을 안겨주지 못한다면 청년들은 투표장에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 선거 격전지 결과를 2030이 결정지을 거라고 보는 이유다.
[다른 시선으로] 부모의 마음
내가 받은 나쁜 걸 대물리지 않겠다는 것이 좋은 부모의 마음이다. 좋은 부모의 마음이 있다면 세상에는 나쁜 부모의 마음도 있다. 이 둘의 대비가 2023년작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핵심이다. 학폭 가해자 박연진이 피해자 문동은에게 말한 대로, 가족은 때로 가장 큰 가해자다. 문동은의 모친 정미희는 자식을 잘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문동은이 대단한 점은 그 사실을 비관해 엄마를 닮지 않고, 그녀에게서 나쁜 걸 닮지 않으려 애쓴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박연진 또한 가족의 가해로 그리 된 것임을 통찰할 수 있었다. 문동은은 박연진의 모친 홍영애를 만나, 박연진에게 마치 모성을 가진 듯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보라고 말한다. 홍영애 또한 박연진을 잘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고, 그를 알아챈 문동은은 합당한 방식으로 그들의 죄를 되갚아준다. 돈이 많든 적든, 내가 겪은 무엇이든지 내 자식에게 대물리기를 원한 점에서 두 엄마는 같다. 강력범죄자인 자신을 치료하겠다고 나선 주성학을 거꾸로 죽인 강영천은, 좋은 부모의 마음을 질투한 자다. 주성학의 아들 주여정은 강영천이 왜 부친을 살해했는지를 나중에야 깨닫는다. 내가 받은 나쁜 걸 남들이 대물림받아 마땅하다는 것이 그 질투의 핵심이다. 그를 거스른 면모를 문동은에게서 보았기에 주여정은 거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한때 제 억울함을 강영천처럼 풀어낼 수도 있었을 그였기에 그렇다. 강현남은 그녀와 그녀의 딸을 상습 폭행하는 남편을 모녀의 인생에서 지우는 것이, 내가 받은 나쁜 걸 대물리지 않을 유일한 방법임을 예감한다. 남을 해하는 복수와 내 딸을 살리는 일 사이를 괴로워하면서, 강현남은 나와 더불어 내가 받은 나쁜 걸 대물리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문동은을 연민한다. 그 순간 문동은과 강현남은 서로의 부모가 된 것이다. 살면서 가난한 사람을 이해해 본 적 없는 박연진의 남편 하도영은, 문동은을 만나 처음으로 자기가 몰랐던 세계를 알아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식이 그저 나를 닮길 바라는 일은 주로 가진 자의 병폐다. 그것이 지닌 한계를 하도영은 문동은을 만난 뒤에 비로소 알아본다. 그는 자기 핏줄 아닌 딸을 향한 좋은 부모의 마음을 간직한 채 딸과 함께 한국을 떠난다. 내가 받은 나쁜 것을 대물리지 않겠다는 마음은 친부모자식에만 매여 있지 않다. 인간은 때로 혈육에게 누구보다 잔혹하고, 그렇게 나쁜 걸 받아안게 된 인간들 중 일부는 그것을 대물리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한다. 그냥 주어지지 않는 그 마음에는 혈육을 매개로 한 원본이 없다. 나쁜 걸 대물리지 않겠다고 마침내 힘겨이 결심한 사람은, 누구나 그 순간 부모가 된 것이다.
시장으로, 거리로, 역으로… 민심잡기 총력 [6·3 지방선거]
올해 청소년 인구 741만명…40년 전보다 47%↓
삼성 노조가 쏘아 올린 ‘성과급 논란’ 산업계로 확산
전재수 “해양수도 부산 완성” vs 박형준 “이재명 폭주 저지”
[영상] “보좌진 갑질, 직장 내 괴롭힘” vs “조현화랑 시민 정서 안 맞아”
“완전한 내란 청산” “李 공소 취소 막아야”…여야 수도권서 선거전 시작
부산교육감 보수 단일화 난항 왜?…떨어져도 비용 보전 가능성에 차기 선거 인지도 노림수
예산 낭비 논란 ‘동천 보행교’ 백지화 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