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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vs 교황 ‘오버랩’

트럼프 vs 교황 ‘오버랩’

중세 유럽에서 교황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 1077년 ‘카노사의 굴욕’이다. 신성 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는 교황과의 갈등 끝에 파문을 당한 뒤, 눈 덮인 성문 앞에서 사흘 동안 맨발로 무릎을 꿇었다. 세속 권력의 정점에 있던 황제가 종교 권력에 굴복한 순간 교황권은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힘은 오래가지 못했다. 1096년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교황의 권위를 흔드는 계기가 됐다. 200년에 걸친 전쟁은 끝내 실패로 돌아갔고 교황의 결정이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의문이 퍼졌다. 이 무렵 르네상스와 과학의 발전은 인간 이성의 힘을 한층 부각시켰다. 왕권도 교황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전환의 상징이 바로 ‘아비뇽 유수(幽囚)’다. 유수란 잡아 가둔다는 뜻이다. 1309년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교황과의 세금 갈등 끝에 교황청을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겼다. 이후 70여 년간 교황은 사실상 왕권 아래 놓였다.나폴레옹도 교황의 권위에 도전했다. 1804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린 대관식에서 나폴레옹 1세는 교황 비오 7세가 지켜보는 가운데 스스로 황제의 관을 머리에 썼다. 이어 아내 조제핀에게도 직접 황후의 관을 씌워 주었다. 교황이 황제를 세우던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이후 그는 교황을 5년간 유폐시켜 종교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이제 시대는 달라졌다. 황제의 시대는 갔다. 교황의 권위도 절대성을 갖지 않는다. 한데 갑자기 이들 장면이 오버랩된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교황 레오 14세 사이의 갈등과 다툼에서다. 이란 전쟁과 외교 문제를 둘러싸고 세속 권력과 종교 권위가 충돌하는 양상이다. 아니 세속 권력이 종교 권위를 압박하는 구도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 같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비뇽 유수를 언급하며 교황청을 압박하는가 하면,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들의 다툼을 두고 “나폴레옹 1세 이후 트럼프만큼 공개적으로 교황과 맞선 정치 지도자는 없었다”고 평했다.역사는 반복되기보다 변주된다는 말이 있다. 카노사에서 비롯된 권력의 긴장은 아비뇽을 거쳐 파리로, 그리고 오늘날 워싱턴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왔다. 외형은 달라졌지만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힘으로 짓누르는 권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평화를 지향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보편적 가치는 그 자체로 힘을 지니기에 권력이나 권위로 억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를 역사에서 배웠다.

부산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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