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양수도 부산의 미래 100년 부산일보가 함께 뛰겠습니다
2026년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 창간 80주년을 맞는 부산일보는 어느 해보다 무거운 사명감을 느낀다. 1946년 창간 이후 정론직필의 정신과 불편부당·엄정중립의 기치를 지켜온 부산일보는 해방기의 혼란과 산업화의 격동, 민주화의 열기와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도 권력과 자본의 중심이 아니라 시민과 지역의 편에 서서 늘 지역의 현장을 지키며 시민의 삶과 호흡해 왔다. 지난 80년 동안 부산 시민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이 돼 현장을 지켰던 셈이다. 한국전쟁 속 피란수도의 일상을 전했으며 민주화와 산업화의 격랑 속에서 도시의 흥망과 시민의 희로애락을 담아냈다. 특히 수도권 중심의 프레임과 진영 논리가 지역의 현실을 왜곡할 때도 부산일보는 현장에서 문제의 본질을 짚어 왔다. 지역의 질문을 대한민국의 과제로 확장해 온 이 원칙은 지난 80년의 기록이자 앞으로 부산일보가 지켜나갈 자세다. 부울경의 지난 80년은 부산일보 지면 위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현대사 굽이마다 권력을 감시하고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부산일보는 최선을 다했다. 최루탄을 맞은 김주열 열사 사진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무엇보다 권력 감시에 충실했는데, 이해찬 총리 ‘3·1절 골프’ 특종 보도는 대표적인 예다. 형제복지원의 인권 침해 보도는 시대의 아픔에 응답하며 진실을 다시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렸다. ‘우리 곁의 빈곤’ 시리즈를 통한 차상위 계층 공론화는 지역이 곧 국가 운영의 현장임을 보여줬다. 내부적 변화도 멈추지 않았다. 2023년 2월 지역 언론 최초로 네이버 구독자 300만 명을 돌파하며 전국구 매체로서 영향력도 입증했다. 최근에는 부산일보 TV방송국 개국을 통해 시대적 요구에도 부응하고 있다. 이는 지면을 넘어 뉴미디어 환경에서도 부산일보가 전국 독자들의 신뢰를 받는 뉴스 플랫폼으로 경쟁력을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성과라 하겠다. 부산은 해양수산부 이전을 계기로 정책·산업·금융·물류가 집적된 명실상부한 해양수도로 도약할 전환점에 서 있다. 이에 2026년은 해양 수도권 구축을 통해 해양강국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자 국가균형발전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이 전환을 실질적 성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해양산업의 종합적 집적과 함께 북극항로의 실질적 개척이 병행돼야 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부산은 비로소 글로벌 해양수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동안 부산일보는 해양수산부의 창설과 존폐를 둘러싼 굴곡진 과정마다 현장을 지키며 기록과 공론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부산일보는 해수부 부산 시대와 북극항로 개척이 구호에 머물지 않도록 정책의 방향과 실행을 면밀히 점검할 계획이다. 아울러 글로벌 해양수도 완성을 향한 여정에서 시민과 함께하며, 책임 있는 공론 형성에 끝까지 힘을 보탤 것이다. 앞서 살폈듯이 올해는 부산에 있어 새로운 출발점이자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결정적 시기다. 실질적인 해양수도 부산 완성과 해운 기업 집적이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개별 정책을 넘어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전략적 통합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그러나 인구 감소와 산업 구조 전환, 청년 유출, 생활 안전과 기후 위기, 수도권 일극 구조 등 부산이 마주한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다. 지방소멸 경고는 이미 현실이 됐다. 가덕신공항 건설을 비롯한 핵심 현안 역시 더는 미룰 수 없다. 공공성을 지키면서도 과감한 실행력이 요구되는 이유다. 급변하는 언론 환경 속에서도 부산일보가 전국 최대 지역신문으로 자리할 수 있었던 힘은 부울경 독자들의 신뢰였다. 부산일보의 지난 80년은 성취의 시간이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100년이다. 해양수도 부산의 미래를 향해 부산일보는 시민과 함께 다시 뛸 것이다.
[사설] 새해 대한민국 균형 성장 원년… 지역이 살아야 나라 산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국가 균형발전을 강조했다. 망국적인 수도권 일극주의를 타파해야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분권과 지역 균형발전 관련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인 지방시대위원회에 힘을 실어준 것도 이런 이유다. 지역은 지금도 고사 위기로 아우성이다. 균형발전은 이제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더욱이 집권 2년 차로 접어드는 내년엔 반드시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은 31일 신년사를 통해 “2026년을 균형 성장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밑그림을 그린 권역별 메가시티화 정책인 ‘5극(초광역권) 3특(특별자치도) 균형 성장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국토 곳곳에 다양한 성장축을 만들어 국가 발전을 견인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틀을 바꾸는 혁명적인 정책을 기대한다. 근본적인 치유책을 내놓지 못한 채 말 잔치에 그치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김 위원장은 경남도지사 시절에 부산과 울산, 경남 메가시티를 강하게 추진했다. 그는 지방이 국가 경쟁력이자 전략 자산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제는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더욱이 균형 성장 전략이 각 지역의 특성과 규모를 감안하지 않는 호혜성 균등 분배에 그쳐서도 안 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수도권에 견줄 수 있는 핵심 성장축을 지역에 만들어야 한다.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을 당부한다. 부산은 최근 해양수산부가 이전을 완료하는 등 해양강국을 이끌 글로벌 해양도시로 발돋움할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 부산 추가 이전과 대기업 투자 활성화, 첨단·창업도시 구축, 제조업 위주 낡은 경제 구조 쇄신 등 과제도 산적하다. 특히 부산 등 지역의 상당수는 현재 활력을 잃고 소멸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청년 유출 문제도 심각하다.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살아난다. 지역의 국민들이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
[사설] 김병기 사퇴했지만 점점 커지는 의혹… 수사로 밝혀내야
본인과 가족을 둘러싼 특혜와 보좌진에 대한 갑질 의혹이 불거진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전격 사퇴했다. 9월 초 언론에 각종 의혹이 보도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3개월 가까운 시일이 흐른 뒤였다. 그동안 의혹 제보자가 문제 있다는 식으로 버텨 오던 김 전 원내대표가 전격 사퇴하게 된 결정타는 사퇴 전날 터진 ‘공천 청탁’ 묵인 의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사퇴는 그동안의 의혹을 책임진다는 해결책이라기보다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정당 공천이 당선과 직결되기 쉬운 현실에서 여권에서 공천을 두고 돈이 오가는 청탁이 있었다는 ‘판도라의 상자’급 실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 전 원내대표와 관련한 의혹은 쿠팡 접대 논란에서 시작해 보좌진에 대한 국정원 근무 장남 업무 보좌 지시 논란 등으로 이어지며 점점 강도가 세지는 모양새였다. 의혹은 배우자의 지역구 구의원 업무 추진비 사적 유용 논란이 터지면서 결국엔 공천권과 관련한 일탈로 질적 변화를 하고 말았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강선우 민주당 의원이 보좌진을 통해 당시 서울시의원 후보 지원자에게 1억 원을 받은 사실을 김 전 원내대표와 의논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질적 변화는 정점을 찍었다. 강 의원은 당시 민주당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이었고 김 전 원내대표는 공천관리위원회 간사였기에 공당의 ‘공천 청탁’ 의혹이 돼 버린 것이다. 김 전 원내대표는 자신 관련 의혹이 민주당의 공천 과정에까지 이어지자 전격 사퇴를 결정했으나 이는 역으로 이 의혹의 중대성을 더욱 키우게 됐다. 이미 유사한 사례로 특검의 수사까지 진행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김건희 특검’이라 불린 민중기 특검은 김상민 전 검사가 김건희 여사 측에 고가 그림을 제공한 대가로 지난 총선에서 공천을 받으려 했다는 사실을 공소사실에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김 전 검사는 결국 공천을 받지 못하고 ‘컷오프’된 반면 이번 민주당 공천 청탁 의혹의 당사자는 단수 공천돼 시의원에 당선되기까지 했다. 돈이 전달된 사실을 김 전 원내대표가 듣고도 묵인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예사롭지가 않다. 결국 민주당의 공천 청탁 관련 의혹은 수사로 명백히 밝히는 것 외에는 해소할 길이 없어졌다. 관련 의혹과 관련해 강 의원과 김 전 원내대표에 대한 고발장도 이미 경찰서에 접수된 상태다. 하지만 장관 후보로 지명될 정도의 유력 국회의원과 여당 원내대표를 역임한 권력 실세가 연루된 사안을 일선 경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번 사건을 특검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이유다.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살아있는 정권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을 독립적으로 수사하는 것이 특검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수사 주체가 누가 되든 국민이 납득할 수사 결과를 내놓지 않는다면 역풍은 태풍이 될 터이다.
[밀물썰물] K수출과 부산
1948년 우리나라 수출선 ‘앵도호’가 부산항을 출발해 홍콩으로 향하며 처음으로 세계 무역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이 배에는 당시 풍부한 수산자원인 오징어와 한천이 실려 있었다. 그해 수출액은 1900만 달러였다. 이후 수출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일으키는 데 큰 도움을 줬다. 1960년대는 철광석, 무연탄 등 광물과 수산물이 주요 수출품이었다. 1970년대는 섬유, 합판, 가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 수출을 이끌었다. 1980년엔 의류, 철강, 신발이 수출 품목 1, 2, 3위를 기록했다. 반도체가 10위에 오르며 수출 효자상품 등장의 신호탄을 쏘았다. 1990년대는 중국의 세계시장 진출 본격화와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섬유 등 경공업 제품 수출이 급격히 위축됐다. 우리나라는 이때부터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으로 눈을 돌렸고 이들 품목은 지금도 주력 수출품이다.우리나라 연간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7000억 달러를 돌파했다고 한다. 산업통상부와 관세청은 지난달 29일 “2025년 연간 누적 수출액이 7000억 달러를 달성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네덜란드에 이어 전 세계 여섯 번째로 달성한 대기록이다. 미국발 관세 인상과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글로벌 통상 환경 악화 속에 거둔 값진 성과다. 수출 증가는 반도체, 자동차, 석유제품 등 주력 제조업 호조가 이끌었다. 이런 가운데 음반·영상·게임 등 K콘텐츠와 K푸드, K뷰티를 합친 ‘K컬처’ 수출액이 반도체, 자동차, 석유제품에 이어 수출 톱4를 기록했다. K수출 포트폴리오의 질적 개선이 뚜렷해진 것이다.부산은 연간 수출액 100억 달러를 기록했던 1977년만 해도 대한민국 수출의 중심에 있었다. 그해 부산의 수출액은 22억 달러로 국내 수출의 22%를 점했다. 중화학공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직전이던 1972년 부산이 국내 수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29%였다. 국내 수출품의 29%가 ‘메이드 인 부산’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정부의 중화학공업 중심 정책 등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고, 새 성장 산업 육성도 지지부진했다. 부산의 전국 대비 수출 비중은 1990년 10.4%를 기록한 뒤 지속적으로 하락해 2000년대 이후 2%대에 머무르고 있다. 부산은 해양수산부 이전과 북극항로 개척의 거점이 된 것을 계기로 대전환의 시기를 맞았다. 해양산업 집적화를 이뤄내고 신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 올해 부산항 개항 150주년을 맞아 예전의 수출 비중을 회복하고, 동북아 경제·산업·물류 중심도시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대기자
강병균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김승일 칼럼] <부산일보>와 나
‘권력을 남용하여 비위를 은폐하는 버릇을 그대로 두고서는 부패, 부정의 근절은 백년하청… 정치인으로서의 매장은 물론, 사유재산을 즉각 몰수….’ 1965년 새해 벽두에 부산일보에 게재된 ‘정치인이라면’ 제목의 세평이 자못 날카롭다. 칼럼의 주인공은 요산(樂山) 김정한 선생. 부산이 낳은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거장으로만 여기면 요산의 넓은 품새를 놓친다. 그는 권력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 실천형 지식인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6년 발표한 ‘사하촌’에서 식민지 백성에 가해지는 구조적인 수탈을 고발했던 요산은 광복 이후에도 현실 참여 작품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는 부산대 국문학과 교수직을 떠나 부산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 중이던 1961년 5·16 쿠데타로 당국의 수배령이 떨어져 쫓기기까지 한다. 논설실 복귀 후에도 비판적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요산이 강단 대신 언론에, 소설이 아닌 현실 속으로 파고든 건 당시 부산일보가 지역민 소통의 유력한 창구였기 때문이다. 요산의 유지는 부산일보 주최 요산김정한문학상이 1984년 제정된 이래 후배 문인을 발굴하고 격려하는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부산일보는 창간 80주년을 맞는다. 신문은 해방과 한국전쟁, 산업화의 격변으로 요동쳤던 시대의 동반자였다. ‘특정 사상이나 주장에 매몰되지 않되, 주관적 견해 없이 기회만 엿보는 기회주의도 거부한다.’ 1946년 9월 10일 창간호에 실린 발행인 칼럼 ‘신문과 소원’은 ‘중정을 관철한다’는 부산일보 사시(社是)의 뿌리였다. 지역에 천착한 80년 역사를 ‘부산일보와 나’라는 관계론에 대입해 보면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힘 있는 자들에게는 껄끄럽기 짝이 없는 존재였던 반면, 지역과 약자를 대변하고 기회와 구원의 손길까지 건네는 후견자였다. 정론직필에 충실하면 핍박과 수난을 피할 수 없는 불행한 시대가 있었다. 1959년 진보당 당수 조봉암에 사형이 선고되고 형이 집행되자 인권 침해를 비판하는 칼럼을 실어 호된 곤욕을 치른 게 대표적 사례다. 신문이 발행되자 수사기관이 득달같이 신문사에 들이닥친 것인데, 실은 그전부터 민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한 논조를 문제 삼으려 벼르던 참이었다. 이듬해에는 비판 보도에 불만을 품은 한 대학 교수가 학생들을 동원해 편집국을 점거하고 편집국장을 납치하는 만행을 저질러 신문 발행이 무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언론 자유가 불편했던 이들에게 부산일보는 눈엣가시였다. 성공과 반전의 인생 드라마가 만들어진 경우도 적지 않다. 일본에 밀려 변방이었던 한국 바둑을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주역은 ‘싸움의 신’ 조훈현 기사다. 그 계기가 1974년 부산일보사 주최 최고위전이었다. 당시 일본 유학 중 일시 귀국한 청년 조훈현은 채소 행상으로 생계를 잇는 가정 형편에 충격을 받아 한량 생활을 접고 돈을 버는 프로 기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큰 상금이 걸린 최고위전 우승은 국내 타이틀 석권으로 이어지며 유아독존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황제’가 무너진 곳 역시 최고위전이었다. 1990년 전성기였던 37세 스승은 15세 제자 이창호에게 꺾여 정상에서 추락하고 만다. 청년 조훈현의 포효와 무관의 제왕으로 전락한 순간순간은 부산일보 지면에 생생히 남아 있다. 조훈현 기사에게 부산일보의 기억은 영욕이 겹친다. 까까머리 중2 소년 노무현은 부산일보 사장이 설립한 부일장학회에 선발되고 이후 부산상고로 도시 유학까지 이어진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경남 진영의 깡촌에서 고구마 농사와 취로 활동으로 근근이 생계를 잇던 집안 형편으로 꿈꾸지 못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판사를 그만두고 인권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노 전 대통령은 1981년부터 부산일보 지면에서 생활 법률 상담으로 활약한다. 전셋돈 분쟁, 곗돈 사기 등 서민들에겐 큰 근심거리였지만, 근엄한 법조계에서는 주목하지 않던 일이었다. 빈촌의 소년이 꿈을 잃지 않게 이끌어 준 장학금. 노 전 대통령의 삶에서 부일장학회는 삶의 궤적을 바꾼 인연의 고리였다. 동네 작은 김밥 가게가 부산일보 지면에 맛집으로 소개된 이후 전국 500곳에 체인점을 둔 고봉민김밥으로 발전하고 5억 원 이상의 기부로 이어졌다. 보도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좋은 인연이 선순환되는 사례는 부산일보 신뢰의 바탕이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은 지역의 유망 업체를 지원하는 ‘기업 살리기 프로젝트’ 기획 등으로 계속되고 있다. 지면의 생명력은 짧아 보이지만, 지면에 담긴 관계에는 시한이 없다. 창간 80년의 진정한 힘은 부산일보가 지역과 독자들과 맺은 관계의 축적에 있다. 질문하고 기록하고 매개하는 보도를 통해 새로운 관계가 탄생한다. 오늘의 독자가 내일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부산일보와 나’의 이야기에는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다.
[정훈의 생각의 빛] 모시는 마음 가득한 새해 되길 소망하며
어김없이 새해를 맞이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난 새해를 맞이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지금의 기분과 교차한다.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이 화젯거리를 떠나 공통으로 내뱉는 말이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과 의미는 때와 장소, 그리고 상황에 따라 변주되겠지만 늘 엇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사실이다. 나이나 계획과 관련해서 더욱 그렇다. 새해를 맞았다는 산뜻한 기분 이면에는 한 살 더 먹는다는 일종의 ‘낭패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새해를 즈음해서 생겨나는 부산하고 어수선한 마음과 환경은 봄기운을 타고 넘어오는 따뜻한 공기에 스며들면서부터 본래의 일상 리듬과 감각을 되찾게 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해가 바뀌게 되면서 묵은 계획이나 일거리, 혹은 관계를 차근차근 되짚게 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런 과정에서 말끔하게 정리되어 다음 차례에 들어서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서기(西紀)’로 표현되는 연도의 중요성을 감안해도 단지 ‘숫자’의 증가가 주는 일종의 ‘착시효과’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시간의 절대적인 본질이라는 인식을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간은 숫자로 범주화되어 고정된 실체로 돌변하면서 삶과 생활의 다양한 측면과 가치 영역을 가늠하는 기준이나 척도가 되어버린다. 지혜의 정도를 생물학적 나이로, 성공 여부를 자산이나 연봉 액수로, 능력이나 외모의 평가를 성적 순위나 신체의 비례로 곧잘 인식하는 편견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퍼져 있는가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한마디 거들면 ‘꼰대’가 되고, 가진 것 많다는 이유로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자칫 ‘졸부’로 전락하며, 능력이 뛰어나거나 잘생긴 외모는 자주 ‘뒷담화’의 주연이 되곤 한다. 비슷한 시간과 환경이 주어지더라도 결국 개인의 의지와 계획, 그리고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삶의 무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나 사회일수록 욕구 불만과 조급증이 시간의 증가와 함께 자신을 옥죄는 올가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경제 규모와 소득의 지표로 나라와 사회를 평가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삶의 만족도와 행복이 물질적 이득이나 수치의 증가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도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능력과 재화의 우열로 순위를 결정하고, 이런 순위에 따라 삶의 성공과 가치 여부를 결정하는 사회가 지닌 가장 큰 병폐는 자신보다 열등한 자리에 있는 존재에 대한 우월감과 차별 의식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식이 만연한 사회는 경쟁과 속도와 정보가 ‘미덕’이 되어버려 사회적 양극화, 그러니까 정서적 풍요와 빈곤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양극단에 자리 잡은 사람과 세대 및 계층 사이의 거리감이 점점 격화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요즘 ‘세대 차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연령별, 세대별, 성별, 지역별, 계층별 등에 따라 복잡하고 세분화된 인식의 단절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새해가 들어서면 지난날의 과오와 실수를 되새기면서 다시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마음도 아울러 다진다. 그런데 아무래도 사람인지라 마치 사계절의 순환처럼 똑같은 과오와 실수를 종종 범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개인적인 실수나 잘못의 범위를 넘어 타인과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다.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권한과 영역을 넘어 사익이나 감정의 편의를 부추기는 욕망의 메커니즘에 의지가 무릎을 꿇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특히 공직자가 이런 방향성으로 돌진할 때 생겨나는 폐해는 지난해부터 어지럽게 흘러온 ‘비상계엄 정국’의 혼란만 생각해도 될 것이다.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를 비롯한 생태계 교란이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되었다. 수많은 전문가와 학자들이 우리에게 경고한 말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생명 경시 풍조만큼은 대체로 공통적이다. 직분을 넘어서는 권한 남용을 불러왔던 갖가지 차별 의식의 팽배는 이러한 생명에 대한 인지 불능과 관련이 있다. 김지하 시인(1941~2022)은 ‘가랑잎 한 잎/ 마루 끝에 굴러들어도/ 님 오신다 하소서/개미 한 마리/마루 밑에 기어와도/ 님 오신다 하소서’(‘님’ 중에서)라고 했다. 생명은 동식물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에 깃들어 있어서 이를 모셔야 한다는 자각이 생기지 않으면 아무리 새해가 거듭되어도, 아무리 풍족한 자리에서 여유를 부려도 ‘온탕 속 개구리’마냥 결국 자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이런 모시는 마음이야말로 위기에 빠진 이 사회를 소생하게 할 바탕임을 되새겨 본다.
[데스크 칼럼] 2026년의 항해 앞에서
왜 ‘우주차’나 ‘우주비행기’가 아니고 ‘우주선’일까. 이런 질문을 봤다.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비행 물체를 차나 비행기가 아니라 ‘배(船)’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1865년작 ‘지구에서 달까지’ 속 대포 모양의 유인 발사체 ‘콜롬비아드’를 우주선 개념의 시작으로 보는 의견이 있다. 아폴로호의 달 착륙은 100년도 더 뒤다. SF 문학이 과학보다 먼저 우주 여행을 상상하면서 당시 가장 멀리 가는 수단인 배의 이미지를 가져왔고, 그 표현이 굳어졌다는 이야기다. 차나 비행기가 잠깐 탔다가 내리는 것이라면 우주선은 일정 기간 고립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설비와 식량을 갖추고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배와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대기권에서 날개와 공기의 힘으로 나는 비행기나 바퀴를 굴려서 노면을 이동하는 차와 달리 우주선은 진공에 가까운 우주 공간을 탐사한다는 건 구동 환경과 원리의 차이다. 사실 이런저런 설명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직관적으로 왜 ‘우주선’인지 안다.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바다를 미지의 세계, 극한 환경, 두려울 만큼 넓고 큰 것에 빗댔다. 고개를 들어 광활한 밤하늘의 별을 볼 때 인간이 상상한 우주는 아는 것 중에 바다와 가장 가까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를 탐험하는 일은 항해다. 배가 망망대해 바다를 헤쳐나가듯 우주선은 끝없는 우주 공간을 나아간다. 영토 확장과 번영을 향한 인류의 여정도 항해에 비유된다. 그 결과 극지와 우주, 해저까지 미답의 영역에 깃발이 꽂혔다. 돈만 있다면 민간인도 우주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생명 과학은 질병 정복과 젊음의 연장을 꿈꾼다. 인공지능이라는 요술 방망이는 일상과 산업을 뒤흔들고 창작까지 넘본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현대인은 과거 한 사람이 평생 접했을 분량의 정보를 하루에 처리한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를 정복했다고 미래의 불확실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 강대국과 초거대기업에 조타석을 넘긴 결과 인류 공동체의 항해는 종종 길을 잃는다. 기후 변화는 실재하는 위협으로 다가왔다. 사람은 개인 정보와 쇼핑 기록으로 쪼개져 바코드와 알고리즘이 되었다. 인공지능은 일자리와 사회의 신뢰를 공격한다. 인류는 과거보다 더 똑똑해지지도 건강해지지도 행복해지지도 못했다.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가 국내 이용자 98만 명의 종교관, 정치관, 동성 결혼 여부 등 민감 정보를 무단 수집해 광고주에게 넘긴 일로 216억 원 과징금 결정을 받은 게 2024년이다. 국민 3370만 명의 개인 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는 챗GPT의 성인 콘텐츠 허용 방침을 밝히면서 “우리는 세계의 선출된 도덕 경찰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한 해는 유독 길을 잃은 것 같은 막막함이 컸다. 계엄의 대혼란으로 시작해 정치적 격변과 기술적 충격을 겪으면서 지금 지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알아차리기가 좀처럼 힘들었다. 온갖 플랫폼이 들이미는 쇼츠 뒤에는 인간성이 오염되는 감각이 찾아왔다. 무한한 우주를 떠도는 우주선의 이미지가 잔상을 남긴 건 그래서였던 것 같다. 억울한 죽음들도 있었다. 가자전쟁 2년 동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어린이 1만 8430명이 사망했다. 전국택배노조 추산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쿠팡 택배기사와 물류센터 노동자 최소 29명이 과로나 안전사고로 숨졌다. 세밑에는 179명이 사망한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들의 1주기와 미등록 노동자 단속을 피하려다 숨진 25살 뚜안 씨 아버지의 108배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지나가는 무한한 공간의 형태에 대한 정확하고 예민한 감각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담고 있는 시간의 틀이 마치 크기가 다른 사발들이 차례로 조금 더 큰 사발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층층이 포개진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그러니까 하루 중의 특정 시간이 음력 또는 양력에서 특정한 날 속에 담겨 있고, 다시 이 모든 것이 한 문화적 시대 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다.” 미국의 여행 작가 배리 로페즈가 〈호라이즌〉에서 아프리카 북동부 사막에서 초기 현생인류의 화석을 수색하는 케냐인 탐사대를 묘사한 대목이다. 진화론 연구의 배경이 된 태평양의 화산섬 갈라파고스에서는 이렇게 쓴다. “내가 보고 있던 항해도의 한 귀퉁이에는 자주색으로 이런 글이 적혀 있다. “경고: 분별 있는 뱃사람이라면 하나의 항해 보조물에만 의지하지 않는다.”” 다시 새해가 시작됐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묻고, 분별 있는 뱃사람으로서 익숙한 지도 대신에 새로운 지도를 상상하기 좋은 때다. 항해의 길잡이별은 경제적인 번영보다는 공동체의 안녕이라면 좋겠다. 최혜규 사회부 차장 iwill@busan.com
[중앙로365] 신해양수도 부산, 2026년 해양국가의 미래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 부산은 오랜 시간 염원하던 해양수도 비전이 마침내 현실로 드러나는 중요한 순간을 맞고 있다. 지난달 해양수산부 개청은 단순한 공공기관 이전을 넘어선 역사적 대전환이었다. 대한민국 해양 행정의 사령탑이 본격적으로 남쪽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은 부산이 단순히 항만을 가진 지방 도시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해양 강국 대한민국의 전략적 심장임을 의미한다. 행정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자본과 사람의 이동을 부른다. 지난해 말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이 본사의 부산 이전을 공식 발표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에너지·원자재 운송을 책임지는 이들 기업의 부산행은 주소지 이전뿐만 아니라, 기업의 핵심 기능인 전략 수립과 의사 결정 기능이 부산으로 온다는 뜻이다. 여기에 국회를 통과한 ‘부산 해양수도 이전 기관 지원 특별법’은 부산이 해양수도임을 역사상 처음으로 법률에 공식화하며 이러한 흐름에 제도적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해수부·해운기업 이전, 해사법원 신설 현장·의사 결정 분리 불균형 구조 타파 해양 강국 기반 조성 위한 역사적 전환 해양 금융, 디지털·친환경 항만 기술 행정·대학·산업 공동 목표 공유·실천 도시 전략 통합 새 경제 모델 창출 기회 그동안 부산은 세계적인 환적항이라는 압도적 물류 기반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해양 행정과 법률·금융·연구개발(R&D) 기능은 서울에 의존하는 불균형한 구조를 안고 있었다. 현장과 의사 결정이 분리된 탓에 해운기업의 효율은 떨어졌고, 해사 분쟁과 중재 비용으로 매년 수천억 원의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었다. 우수한 R&D 잠재력 또한 산업 현장과 겉돌며 기술 경쟁력으로 직결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구조적 약점을 넘어설 절호의 기회 앞에 서 있다. 해수부 이전과 기업 본사 집적이 촉발한 변화는 단순한 행정 재배치가 아니라, 부산이 해양 산업의 전 주기를 완결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정책과 금융이 만나고, 기술과 기업이 현장에서 즉각 반응하는 이러한 연결의 힘이야말로 해양 산업의 혁신을 현실로 바꿀 수 있다. 싱가포르와 로테르담이 세계 해운 시장을 주도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연결 구조 덕분이다. 진정한 해양수도의 완성을 위해 남은 과제는 명확하다. 특히 최근 여야 합의로 논의의 방향이 잡힌 ‘해사법원 부산·인천 분산 설치’ 방안이 자칫 부산의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항소심 관할의 부산 일원화는 반드시 관철되어야 한다. 해사법원이 두 지역으로 분산되고 항소심 관할마저 나뉜다면, 부산은 여전히 서울 중심 법률 시장의 하부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부산은 단순한 1심 재판지에 머무는 도시가 아니라, 판례와 규칙을 만들어내는 실질적인 해사 사법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물리적인 청사 건립 논쟁이 아니라, 사법 기능의 조속한 가동을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먼저 확보하는 일이다. 해사법원이 하루라도 빨리 가동될 때, 그동안 반복되어 온 국부 유출을 막는 가시적인 효과가 비로소 나타날 것이다. 이와 함께 해양 금융 생태계와 해양 테크 클러스터의 구축이 필수적이다. 항만만으로는 도시 성장의 지속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선박 투자, 친환경 연료 전환, 조선·해운 산업의 재편을 떠받치는 특화 금융 기능이 뒷받침되어야 산업 전체의 구조적 전환이 가능하다. 다행히 부산은 한국해양진흥공사와 부산국제금융센터, 대학·연구기관 등 관련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어, 해양 금융을 전략적으로 키울 조건이 충분하다. 여기에 인재 양성 체계가 더해진다면 부산은 금융·기술·교육이 선순환하는 해양 혁신도시가 될 것이다. 또한 부산항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자동화·디지털화·친환경 기술력 확보가 관건이다. 무인 운반 장비, 디지털 물류 시스템, 스마트 양식 등 해양·수산 핵심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운영할 역량이 없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연구 기관과 기업, 대학과 지자체가 함께 참여하는 부산형 해양 테크 클러스터를 구축하여 기술 개발과 산업 적용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국제 해양 질서는 이미 거대한 전환기에 진입했다. 탄소 중립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파도 속에서는 규범을 따르는 도시가 아니라 표준을 만드는 도시만이 살아남는다. 이제 부산도 경쟁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표준을 제안하는 글로벌 해양 규범의 주도자로 도약해야 한다. 2026년은 부산에게 새로운 출발점이자,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결정적 시간이다. 해수부 이전과 해운 기업 집적이라는 흐름이 실제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를 하나의 전략으로 통합하고 도시 전체가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여야 한다. 행정·기업·산업·학계가 연결되고, 그 속에서 부산만의 해양 경제 모델을 창조할 때 비로소 부산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전략 축이 될 것이다. 신해양수도 부산이라는 말이 더 이상 비전이 아니라, 2026년을 살아가는 부산 시민 모두가 체감하는 새로운 현실이 되기를 소망한다.
[다른 시선으로] 사적 세계의 일
사람은 대체로 고된 삶을 산다. 청소년들은 학업을 하고, 비청소년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눈앞의 일을 쳐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버겁다. 그러니 이 일이 끝나고 나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으로 돌아가 편히 쉴 것을 다짐한다. 내가 하는 일이 고될수록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대한 갈증은 커진다. 이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일이 없는 그 시공간에 가서는 마침내 마음껏 풀어보리라 다짐한다. 그렇게 누군가가 일을 마치고 일 없음의 공간으로 향하노라면, 그곳은 일이 없기는커녕 또다른 형태의 일들로 자욱하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사람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가꾸고,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일 그 모든 행위는 엄연히 또다른 종류의 일이다. 그럼에도 그곳 바깥에서 하는 일만이 일이고 거기서의 일은 일이 아니라는 발상에서 공·사 이분법이 출발한다. 가사노동도 노동이라는 생각은 가족 내 구성원과 역할의 평등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집에서의 전업 돌봄 노동이 없으면 바깥에서의 전업 임금 노동은 불가능하다. 그 노동 중 어느 한쪽을 영원히 한 사람, 한 성별이 맡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관계 안에서 노동 분업은 남들이 그렇게 하고 있거나 남들이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그 관계의 당사자들이 서로 합의해 정할 문제다. 또 그 노동의 가치를 세는 기준은 돈을 받고 안 받고를 넘어, 인간에게 그 노동이 얼마나 필수불가결한지로 따져야 한다. 돈을 쓰는 경제적 부양과 돈으로 해결 안되는 정서적 돌봄은 인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하고, 그 중 하나만을 선택하기란 불가능하다. 인간에 반드시 필요한 일 사이에 우열을 매기는 일은 어리석다. 일한 뒤에 쉬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같다. 문제는 쉬는 요령과 분별이다. 사람의 사적 세계는 누군가가 처음부터 온전히 허리띠 풀고 쉬라고 있는 곳이 아니다. 사적인 세계의 일도 일이다. 그게 어찌 일일 수가 있나 싶은 사람은, 여태껏 그 일을 내가 아닌 남에게 미뤄버릇했기 때문이다. 일은 모름지기 공평히 분배돼야 하고, 일을 시키고 받는 과정은 정의로워야 하며, 사적 세계의 일을 하는 사람도 휴식이 필요하다. 사람은 공적인 세계에서는 그리 쉽게 실수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적인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실수한다. 그 까닭은 주로 사적인 세계의 일을 일로 여기지 않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고, 내가 고되게 일한 후에 뒤따를 물질적·정서적 뒤치닥거리를 그 사람이 마땅히 짐져도 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 때 그 사람은 그런 식으로 쉬면 안됐고, 상대에게 일을 그런 식으로 떠맡겨서는 안됐다.
[김필남의 영화세상] 완성된 유토피아는 없다
세상은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날 선 편견과 보이지 않는 차별이 공존한다. 9년 전 토끼 경찰관 주디와 여우 닉이 보여준 ‘주토피아’가 그 균열을 극복하려는 열정의 공간이었다면,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한 그들의 세계는 전편의 화려한 성취 뒤에 숨겨진 현실적인 고민을 담고 있다. 재러드 부시와 바이런 하워드 감독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2’는 전편의 성공에 안주하는 대신, 우리가 사는 사회의 복잡한 층위를 한 꺼풀 더 벗겨낸다. ‘주토피아 2’는 주토피아의 평온한 일상을 뒤흔드는 의문의 파충류 ‘게리’의 등장으로 포문을 연다. 주디와 닉은 1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침입자를 추적하기 위해 새로운 구역인 ‘습지 구역’으로 잠입한다. 물속과 지상이 입체적으로 연결된 이 공간은 동물의 생태와 크기를 세밀하게 반영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수중 터널과 수변 도로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마시 마켓’의 풍경은 시각적 경이로움을 넘어, 서로 다른 종이 한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정교한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해 보인다. 2025년 관객 수 1위 '주토피아 2' 전작에 없던 새 공간과 종의 등장 공존을 위해 견뎌야 할 몫은 뭘까 따뜻한 유머 속 묵직한 질문 남겨 이러한 공간의 확장은 단순히 볼거리로만 그치지 않는다. 습지 구역의 복잡한 구조는 주토피아가 지향하는 다양성이 쉽게 완성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각기 다른 생존 조건을 가진 존재들이 서로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연결되어야 하는 설계는, 곧 우리가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갈 때 감내해야 하는 모습의 은유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 정교한 도시 설계를 통해 공존이란 결국 치열한 고민과 배려가 빚어낸 결과물임을 일깨운다. 이번 작품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파충류라는 새로운 집단의 편입이다. 포유류 중심이었던 주토피아 사회에 차가운 피부를 가진 파충류들이 등장하며 발생하는 미묘한 갈등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때 뱀 게리는 수사 과정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면서도 끊임없이 주인공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관객들은 게리를 보며 “저 캐릭터를 믿어도 될까?”라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데, 감독은 그 의심 자체가 우리가 낯선 타인을 대하는 편견의 시작임을 알린다. 묵직한 주제 의식 속에서도 영화적 재미는 놓치지 않는다. 1편의 나무늘보 ‘플래시’처럼 극의 활력을 불어넣는 코믹한 캐릭터들도 여전하다. 느릿느릿한 파충류 공무원부터 성격이 급해서 말이 꼬여버리는 조류 캐릭터까지, 동물의 생태적 특성을 뒤튼 부조리한 유머가 가득하다. 닉의 냉소적인 유머와 주디의 열정적인 리액션이 만드는 코믹한 앙상블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전편의 버디 무비 형식을 따르면서도 다르다. 1편이 개인의 가능성을 응원했다면 2편은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나쁜 의도가 없더라도 나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위협이나 불편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주디와 닉이 마주하는 수많은 갈등은 단순히 악당과의 대결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존 방식을 가진 존재들이 부딪히며 발생하는 불가피한 파열음인 셈이다. 결국 ‘주토피아 2’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빌려 변화의 가능성을 묻는다. 변화는 가능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으며, 우리가 그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까 싶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을까?” 혹은 “더 나은 공존을 위해 내가 견뎌야 할 몫은 무엇일까?”. 따듯한 유머 속에서도 묵직한 여운이 남는 이유는 진정한 주토피아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공존을 향한 고민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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