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남-전남 손잡은 우주항공복합도시 건설 주목된다
영호남이 우주항공복합도시 건설에 의기투합했다. 경남 사천의 서천호 국회의원과 전남 고흥 문금주 국회의원이 우주항공산업 지원 특별법을 공동 발의한 것이다. 우주항공 분야는 기술·인력·인프라·안전 관리에 국가적 역량 집적이 필수라서 중앙정부의 주도적 역할과 책임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간 법적·재정적 뒷받침이 부족해 사천의 KAI(한국항공우주산업)와 고흥 나로우주센터는 성장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앞서 사천 단독 지원 특별법이 특혜성으로 비쳐 심사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영호남 상생 구조의 남부권 우주항공 거점 육성에 여야의 이견이 있을 리 없다. 누리호가 연 우주시대의 가속화가 기대된다. ‘우주항공복합도시 건설 지원 특별법’은 전담 조직 설치, 특별회계 신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실행력을 담보하는 장치를 담고 있다. 이 법안은 답보 상태였던 우주항공산업 거점 구축을 실현하는 강력한 법적 토대다. 특히 지원의 일관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전망이다. 올해 우주항공청 개청 1주년 기념식이 본청이 있는 사천이 아닌 과천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야 사천 개최로 변경된 해프닝이 대표적 사례다. 또 우주항공청 신청사 건립을 앞두고 대전을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 부서 분리 신설 요구로 혼선이 빚어졌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별법이 ‘나눠 먹기’의 구태를 차단하는 쐐기가 돼야 한다. 우주항공산업의 심장은 발사 기지가 있는 고흥과 항공산업의 중심지인 사천이다. 본격적인 우주항공 시대는 남부권에서 열려야 한다. 하지만 특별법이 우주항공산업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안이한 생각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예타 면제는 사업 진행의 신속성에 도움이 되지만, 타당성 평가가 약화되면 사업의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국가 역량이 집중돼야 할 신산업이라 중앙정부의 주도적 책임과 정밀한 관리 체계가 필수적인데, 지역 단위 또는 부동산 중심의 도시 개발에 그친다면 본래 취지가 훼손된다. 실질적인 산업 클러스터로 발전하려면 정부·지자체·민간 기업의 실행력과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남부권에 우주항공 벨트를 안착시키려면 지역별 산업 생태계와의 협업과 상생이 고려돼야 한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4차 발사를 주도한 민간 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 사업장을 경남 창원에 두고 있다. 이밖에 부울경에는 방산·로봇·소재 부문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즐비하다. 이 생태계가 전남까지 확장돼 순환 체계를 이뤄야 한다.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육성책은 국토 균형발전의 취지에 부합한다. 지역주의 굴레를 벗고 국가전략으로 추진될 충분한 명분이 있다. 예산 확보, 중앙-지방 컨트롤 타워 정립, 민간 참여 확대, 인재 양성 등 할 일이 산적하다. 우주항공 신산업으로의 전환이 과제다. 특별법은 출발선에 불과하다.
[사설] 부산 빈집 대책 실질적이고 창의적인 접근 필요하다
저출산, 초고령화, 인구 유출을 겪는 부산에서는 원도심을 중심으로 공동화와 빈집이 확산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부산의 빈집은 작년 기준 1만 1471호에 달한다. 특히 중구, 동구, 영도구 등 원도심에서 노후공동주택의 빈집 발생이 두드러지며, 고령자 1인 가구 비율도 높다. 해안가와 도심에 아파트 개발이 진행되고, 시 외곽지에 에코델타시티 등 대규모 택지 개발이 한창인 상황에서 원도심의 인구 유출은 구조적으로 가속할 수밖에 없다. ‘지역 소멸의 그늘’인 빈집 문제는 지역사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런 가운데 부산시가 내년부터 빈집 정비 고도화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은 시의적절하다. 시는 지난해 〈부산일보〉 ‘부산 빈집 SOS’ 기획 보도를 계기로 같은 해 12월 ‘부산형 빈집 대책’을 발표했고, 올해 초 ‘2025년 빈집 정비 계획’을 내놓았다. 그 연장선에서 시가 지난 1일 발표한 ‘빈집 정비 고도화 계획’은 빈집 소유주의 자발적 철거를 유도하면서 동시에 빈집 활용 시장을 키우는 투 트랙 전략을 취했다. 빈집 증가 속도를 기존 철거 중심의 정책으로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지속 가능한 빈집 정비 생태계 조성에 방점을 둔 것이다. 지역기업이 빈집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지역 건축 관련 단체 등이 활발하게 개입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지자체와 지역 공동체의 협업으로 다양한 상상력을 실현해야 한다. 시는 이번 고도화 계획을 통해 내년부터 빈집을 활용해 지역 특성에 맞게 다양한 도시재생 공간으로 만든다고 한다. 지역 기업인 (주)미스터멘션 등과 연계해 도심 빈집을 리모델링해 관광객에게 공유 숙박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시는 대상 빈집을 발굴하고 리모델링비를 지원하면서, 연간 20호씩 5년간 100호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또 지역 특화 모델을 발굴해 해안과 관광지 인근에는 워케이션 장소나 게스트 하우스를, 산단과 공단 인근에는 근로자 기숙사로 정비한다. 빈집을 단순한 주거 용도에 국한시키지 않고, 창의적으로 활용한다면 생활 인구 유입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빈집은 ‘주거의 소멸’을 넘어 ‘지역 기능의 공백’으로 이어진다. 빈집을 창의적인 도시재생의 거점이자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세제 특례와 빈집 조사·관리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인구 감소 지역의 빈집 매매에 대한 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 감면 확대, 빈집 소유자 정보 확인 절차 법적 근거 마련 등이 뒤따라야 한다. 국토교통부도 ‘빈 건축물 정비 특별법’ 제정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빈집을 지역 맞춤형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다 실질적이고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부산이 지역 소멸을 넘어 지속 가능한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사설] '내란 몰이'에 빠진 민주, '계엄의 강'서 허우적대는 국힘
내일이면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만 1년이 된다. 우리 현대사를 장식한 숱한 고비들이 있었으나 1년 전 느닷없이 선포된 비상계엄은 그 이후의 대한민국을 전혀 다른 국가로 환골탈태하게 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헌정 질서를 헌법의 정신에 걸맞도록 신속하게 회복한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은 그 저력을 만방에 떨쳤다고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으나 국민들은 비상계엄 선포 이전과 다름없거나 오히려 더욱 악화한 정치권의 행태와 마주하는 중이다. 선거 앞 강성 지지층 결집에만 여념이 없어 보이는 여야 정치권의 이 같은 모습에서는 미래 청사진을 일절 찾아볼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선 비상계엄 이전에 여당이었다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권을 잃은 국민의힘이 보이는 분열적 퇴행이 가장 두드러져 보인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년이 다 됐지만 국힘은 아직까지도 계엄에 대한 사과 여부조차 당내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 안철수 의원 등 몇몇 의원들의 개인적 사과 의사 표시는 있었으나 당론은 아직도 분열된 상태다. 심지어 사과를 할 경우 여당의 프레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의견까지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심지어 윤 전 대통령과의 결별 문제를 놓고는 당내 강성 친윤들이 아직도 ‘윤 어게인’을 외치는 수준이라 향후 당론 결집 방향에 따라 당의 앞날이 달라질 우려도 큰 상황이다. 국힘이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틈을 타 민주당은 다시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확정하는 데 당력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1일 최고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사법개혁안 처리, 특검 연장 등 소위 ‘내란 청산’ 3법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도 3일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내란 청산에 대한 의지를 밝힐 계획이다. 비상계엄 선포 1년이 지나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관계자들이 대부분 법정에 섰고 판결만 앞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민주당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여당이 되고 나서도 국정 수행보다 내란 몰이에 더 치중한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판이다. 12·3 비상계엄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대통령의 그 행위를 놓고 탄핵 결정을 한 헌법재판소가 내렸다고 할 수 있다. 헌재는 탄핵 결정 당시 대통령의 비상계엄이라는 반헌법적 수단 선택을 정당화할 수 없다면서도 민주당의 전횡이 국정 마비와 국익 저해라는 대통령의 인식을 낳았을 수 있다는 비판을 잊지 않았다. 그 결정 이후에도 국힘은 아직 계엄의 반헌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민주당은 전횡을 멈출 기미가 없어 보인다. 서로가 강성 지지세력만 바라보며 극단을 치닫는 모양새다. 비상계엄을 겪고도 그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한 반성이 없는 여야 정치권의 행태에 중도의 상식적 국민들은 계엄 때만큼이나 절망하고 있다.
굴 풍작
뚱보 황제로 유명한 로마 제국의 여덟 번째 황제 비텔리우스는 굴 애호가로도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비텔리우스 황제는 매주 1200개가 넘는 굴을 먹었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이니 하루 평균 170개가 넘는 굴을 먹은 셈이다. 로마 제국 시대 ‘박물지’의 저자 플리니우스가 해산물 중 콕 집어 굴의 효능을 기록한 점으로 미뤄 아마도 그 시절엔 비텔리우스 같은 굴 애호가가 넘쳐 났을 것으로 추정된다.이탈리아 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는 굴이 비교적 풍부하게 채취됐기 때문에 중세까지 굴은 값이 아주 싼 편에 속하는 식재료였다. 굴 산지로 유명한 영국 템스강 하구와 프랑스 북부 해안 등지에서는 굴 생산량이 많아 껍데기 처리에 골머리를 앓았다는 기록도 있다. 게다가 굴은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 금식일에 고기 대신 먹을 수 있는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었기에 빈민층과 노동자들까지 즐기는 해산물로 인식됐다.굴의 양식이 본격화한 것은 18세기 프랑스였다.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에서는 수평망 방식의 양식법이 보급되기 시작해 굴 양식업을 대대로 이어간 가문까지 나왔다. 시작은 유럽 토착종인 넓적 굴이었으나 20세기 들어 대량 폐사가 발생하자 포르투갈 굴로 잠시 대체된 뒤 질병에 강한 지금의 태평양 굴로 대세종이 변했다.태평양 굴의 최대 산지는 미국 동부 해안이었으나 산업혁명 이후 증기선과 대형 준설기가 개발되면서 바닥을 박박 긁어내 채취량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등장하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준설과 같은 채취 방식은 곧 굴 군락 자체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서식지는 이내 황폐화했다. 여기에다 산업혁명 이후 각국의 해안으로 공장 독성물질과 오폐수가 쏟아지자 굴은 서양에서 궤멸적 멸종 위기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이런 역사를 거쳐 현재 전세계 굴의 대부분은 동북아시아 3국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채취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남해와 서해의 드넓은 리아스식 해안과 갯벌이 굴 생장에 매우 좋은 환경인 데다 수하식 같은 양식법까지 개발돼 품질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편이다.굴 풍작을 맞고도 소비 부진으로 울상을 짓던 경남 남해안 굴 양식업계가 일본의 굴 흉작으로 일본 수출길을 넓히게 됐다는 소식이다. 동북아시아 3국 굴 중에서도 가장 품질이 뛰어난 우리 굴이 일본 식탁을 더 풍성하게 장식할 수 있었으면 한다.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대기자
강병균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데스크 칼럼] 국민 식재료 ‘양산 계란’ 축제로 변신
기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 계란에 대해 웃지못할 추억이 하나 있다. 매일 친척이 운영하던 다방에서 병에 가득 담긴 귀한 계란을 집에 가져왔다. 이 계란에는 노른자가 없었다. 흰자만 있는 계란만 먹다 보니 노른자가 있는지 몰랐다. 어느 날 친구 집에서 밥을 먹었고, 노른자가 선명한 계란 반찬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귀가 후 ‘왜 우리 집 계란에 노른자가 없느냐’며 엄마에게 따지듯 물었다. 엄마는 웃으며 “다방에서 쌍화차를 만들 때 노른자를 사용하고 남은 흰자만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 것은 50여 년이 흐른 올해 10월 25~26일 양산 황산공원에서 계란을 주제로 한 ‘에그야 페스타’가 열렸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첫 시도된 계란 축제는 초대형 계란말이 커팅식과 유명 셰프들의 스페셜 쿠킹 쇼, 더 에그 배틀, 낙동강 라면, 세계 계란 요리 등 다양한 콘텐츠로 행사 기간 내내 대기 줄을 만들어낼 만큼 인기를 끌었다. 양산 지역 소상공인이 참여한 푸드 존은 준비한 식재료가 조기에 소진될 정도로 대박을 터트리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양산시가 통신사 유동 인구와 카드 매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타지역에서 2만 8000여 명을 포함한 최소 4만 6800여 명이 축제를 찾았다. 행사장 인근 라피에스타 등 증산신도시와 물금읍 원도심 상가 매출이 행사 직전 주말보다 36%가 증가한 42억 7000여만 원을 기록해 오랜만에 상인들의 환호를 끌어냈다. 방문객 규모에서는 김천의 김밥 축제(10월 25~26일)나 구미의 라면 축제(11월 7~9일)에 비해 뒤졌지만, 첫 행사에서 ‘방문객과 소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와 발전 가능성도 확인됐다. 하지만 개선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 축제 정체성인 ‘왜 양산에서 계란 축제를 개최하는지’가 방문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양산은 부울경 내 산란계를 사육하는 밀집 지역 중 한 곳이다. 올해 연간 3억 개 이상 계란을 판매하는 국내 최대 규모 업체의 본사도 양산에 있다. 양산은 계란 산업의 뿌리가 깊은 도시인 것이다. 계란 역사는 1970년으로 올라간다. 오경농장(현 젤란) 김중경 대표가 병아리 500여 마리를 사육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농가의 닭 사육은 흔했지만, 수백 마리 단위의 닭 사육은 처음이었다. 이후 김 대표 형제들과 이웃 농가들이 닭 사육에 앞다투어 뛰어들면서 상·하북을 중심으로 90여 농가가 210만 마리의 산란계를 기르기도 했다. 하루 평균 계란 생산량도 150만 개를 넘겼다. 수 년 전부터는 사육 환경 변화 등으로 인해 13개 농가에서 70만여 마리의 산란계가 사육 중이지만, 여전히 지역 핵심 산업 중 하나다. 행사장인 황산공원 진입로 개선은 시급하다. 행사 기간 황산공원 진입로는 교통 체증으로 몸살을 앓았고, 일부 방문객은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양산시도 문제를 인식해 추가 진입로 개설을 추진 중이지만, 수백억 원대 예산 확보 문제 등으로 늦어지고 있다. 양산시는 4일 오후 물금읍에서 열리는 박완수 도지사와의 도민상생토크와 5일 국민의힘 경남도당 양산시 정책협의회에서 예산 지원을 각각 요청할 예정이다. 방문객 동원엔 성공했지만, 머물게 할 콘텐츠도 필요하다. 방문객의 60.5%가 외지인이라는 사실은 관객 동원에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방문객이 소비하고, 지역을 둘러보고, 숙박까지 이어지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축제는 일회성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역 경제와 직결된 체류형 축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1만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 한 계란은 단백질 등 필수 영양소를 갖춘 완전식품이다. 1950~60년대에는 손님이 오거나 생일, 제사 등 특별한 날이 아니면 밥상에 오르지 않았다. 60~70년대는 닭고기와 돼지고기, 찹쌀과 함께 명절 선물이었을 정도로 귀했다. 현재는 K-푸드를 선도하고 있는 치킨이나 김밥, 라면 등 우리나라 음식 전반과 뛰어난 궁합으로 확장 가능성 역시 무궁무진하다. 먹거리 하나로 도시가 변화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계란은 우리 음식 재료의 지존으로 단순한 식재료 그 이상이다. 정체성에 기반한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과 방문객을 체류시킬 수 있는 콘텐츠, 양산시, 지역 주민, 기업이 함께 할 때 계란 축제는 ‘스쳐 가는 행사’에서 ‘머물게 하는 행사’로, ‘지역 경제와 직결되는 지속 가능한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흰자만 맛보던 계란이 그랬듯, 양산 계란 축제 또한 아직 보여주지 않은 ‘노른자’를 품고 있을지 모른다.
[2030 칼럼] 멸종 위기 시대의 사랑법
‘한 사람당 하나의/사랑이 있었대/내일이면/인류가 잃어버릴/멸종위기 사랑.’ 11월 27일자 부산일보 뉴스레터 B-read(브레드)를 읽다가 문득 떠오른 노래 가사다. 악동뮤지션 이찬혁의 노래 ‘멸종위기 사랑’의 한 대목이다. 떠올린 이유는 단순했다. 올해와 내년에만 부산에서 초등학교 5곳의 폐교가 확정됐다는 기사와 같은 지역에서 출생아 수 증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기사가 공교롭게도 나란히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댓글 중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은 “사실 우리는 사랑 하나면 되는데”였다. 노래를 만든 이찬혁 역시 사랑이 사라진 시대를 노래하는 듯하지만, 실은 그만큼 많은 이들이 사랑을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대로 드러낸다. 폐교 소식과 출생 증가라는 상반된 두 기사를 마주하니, 사랑이 사라졌다는 말과 사랑을 찾으려는 마음이 동시에 교차하는 이 노래의 정서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한 시사 라디오에서 요즘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과거 가족중심 농경사회에서의 ‘자녀’란 노동력으로 환산되는 생산재였다면, 현재는 소비재에 가깝다”고 말했다. 직설적이지만 많은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은 발언이었다. 자녀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제공해야 하는 시대에서 자라난 우리는, 그 부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계산을 해보면 출산과 육아가 ‘이득’이라고 보긴 어려운 현실을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것이다. 폐교와 출생 증가라는 서로 다른 곡선을 보며 ‘가능성’이라는 말을 꺼내는 건 분명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두 지표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만약 사랑이 완전히 멸종된 시대라면, 출생 지표의 작은 반등조차 나타나기 어렵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를 책임지고자 하고, 삶을 이어가려 하고, 계산보다 마음에 기대어 선택하는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이 시대의 ‘가능성’은 그 작은 결심들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눈에 보이는 숫자로 표현되는 순간은 많지 않다. 연말연시마다 들려오는 유명인의 기부 소식은 익숙하지만, 정작 일상 속에서 꾸준히 발휘되는 작은 사랑들은 통계로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출산율이 지역 단위에서 조금씩 오르고 있다는 소식이 더 크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계산으로는 결코 ‘득’이 아닐지라도, 누군가는 여전히 미래에 희망을 거는 선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숨통을 트이게 하는 기분이다. 사실 결혼이나 출산은 ‘사랑’을 좁게 보는 시도이기도 하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는 전통적인 지표에 담기지 않는 다양한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혈연으로 얽히지 않아도 서로를 돌보며 한 집에서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2022년 기준 전체 일반 가구의 2.4%인 약 110만 명이 비친족 가구에 속한다. 2021년 대비 증가율은 8.7%로, 같은 기간 1인 가구 증가율(4.7%)보다 높다. 버려진 동물을 입양해 작은 생명을 살리는 개인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2024년 반려동물 양육 가구 비율은 전체의 28.6%로 증가하고 있다. 공식 조사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반려동물은 ‘가족의 대체나 확장 형태’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감소추세를 보이긴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입양을 통해 책임과 연대를 택하는 보호자도 있다. 사회학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돌봄의 재구성’으로 설명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돌봄은 더 이상 가족 내부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며, 공동체나 비친족 관계·지역 네트워크가 돌봄의 새로운 축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사랑이 멸종된 것이 아니라, 책임과 애정이 향하는 방향이 시대에 맞게 다양해지고 있다는 분석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는 사랑의 재편, 그리고 사랑의 확장으로 읽을 수 있다. 멸종 위기라는 말은 사랑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경제적 효율성을 최우선하는 시대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계산되지 않는 선택’을 하며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넨다. 이것이야말로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내구성일 것이다. 내년 3월 통합으로 문을 닫게 될 부산 영도구의 신선초와 남항초, 사상구의 괘법초, 영도구의 봉삼초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지만, 그곳에서 아이들이 배우고 나누었던 ‘사랑을 배우는 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또 다른 세대가 그 자리에 서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며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만들어갈 것이다.
[김필남의 영화세상] 재능의 무게, 혈통의 벽
17세기 초, 일본 가부키는 일본의 정신을 담는 대표적 전통 예술로 자리 잡았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가부키 무대는 탄생 직후부터 많은 변화를 겪었고, 에도 막부가 ‘풍기문란’을 이유로 여성의 출연을 금지하면서 모든 배역을 남성이 연기하는 독특한 관습이 세워졌다. 이때 남성이 여성 역할을 맡는 배우를 ‘온나가타(女形)’라 부른다.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는 바로 이 온나가타의 삶과 예술, 그리고 영혼 깊숙한 곳의 고뇌를 집요하면서도 섬세하게 따라간다. 남성이 여성 역할을 연기한다는 점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스크린을 채우는 유려하고 압도적인 아름다움은 그런 선입견을 단숨에 지워낸다. 흥미로운 점은 가장 일본다운 예술을 담은 이 영화를 재일교포 3세 감독이 연출했다는 점이다. 특히 혈연 중심의 계승이냐, 능력의 계승이냐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영화의 핵심 화두는 마치 이상일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도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국보’는 일본 영화사에 새로운 발자취를 남겼다는 사실에서도 의미 있다. 일본에서만 1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2003년 ‘춤추는 대수사선 극장판 2’ 이후 22년 만에 실사영화 흥행 기록을 경신한 기록이라고 전해진다. 175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 일본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가부키 무대를 재현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은 오히려 흥행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음에도 얻어낸 결과라 주목할 수 있다. 영화는 야쿠자 보스의 아들로 태어난 ‘키쿠오’가 우연한 계기로 가부키 세계에 발을 들이며, 온나가타로 성장해가는 여정을 그린다. 이때 그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동료인 슌스케 또한 이야기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즉 영화는 두 사람이 궁극의 예술을 찾아가며 겪는 갈등과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마침내 예술의 정점에 다가서는 과정을 밀도 있게 다룬다. 이는 무려 50여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과이다. 영화의 중심에는 키쿠오와 슌스케가 있다. 가부키를 늦게 시작했음에도 무섭게 실력이 늘어가는 키쿠오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이다. 슌스케는 가부키 명가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실력이 키쿠오에 미치지 못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열등감을 가진다. 세습 제도가 강한 가부키 세계에서 재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또한 재능이 없는 자가 혈통만으로 자리를 이어받는 것도 치욕스럽다. 영화는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두 사람이 겪는 고뇌와 절망, 질투와 광기, 열정을 그려낸다. 그래서 영화는 무대 위의 화려함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막이 내려간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사투와 치열함을 깊이 들여다본다. 완벽한 무대를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깎아내리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연마의 시간을 견뎌내는 모습은 처절할 만큼 아름답다. 스스로의 결여를 메우려 몸부림치고 타인의 재능을 시기하는 모습까지 숨김없이 담아낸다. 이처럼 감독은 무대를 가득 채우는 배우들의 절제되면서도 유려한 동작, 어둡고 고독한 분장실의 조명을 활용하는 등으로 감정의 층위를 쌓아 올리며 ‘국보’를 움직이는 회화로 빚어내는 것이다. 특히 키쿠오가 첫 주연 무대에서 눈물을 머금은 채 천천히 관객을 바라보는 순간, 카메라는 그의 얼굴에 비치는 조명과 흔들리는 숨결을 오래도록 잡아낸다. 그 표정에는 승리와 공허, 희열과 두려움, 모든 감정이 겹겹이 담겨 있다. 이 장면은 ‘국보’라는 영화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순간이며, ‘예술이 한 인간을 국보로 만드는 과정’이 무엇인지 스스로 설명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일본의 전통 예술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장 고독하고 치열한 길을 걸어가는 예술가의 영혼과 마주한다.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파편의 시선-다다의 포토몽타주와 브레히트의 생소화 효과
전쟁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 겨울의 초입, 인간의 이성은 여전히 시험대 위에 있다. 2025년 끝자락에서 우리는 기술의 속도에 비해 감정의 성숙이 더디고, 혐오와 폭력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다이스트들은 한 세기 전, 비슷한 질문 앞에 섰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서 태어난 그들은 아름다움보다 진실을 택했다. 세상과 문명의 파괴에 직면해, 그들은 그 파편들을 붙잡아 새로운 예술로 만들었다. 다다의 포토몽타주는 그런 절망의 시대가 낳은 급진적 시각 언어였다. 몽타주는 오려서 편집하는 기법이다. 신문과 잡지에서 잘라낸 얼굴과 문장, 병사의 팔다리, 광고 문구, 기계 부품 같은 조각들이 서로의 경계를 찢으며 낯선 충돌을 일으킨다. 이 이미지들은 조화로운 구성보다 균열과 단절의 리듬으로 세계의 불합리를 폭로했다. 한 장의 포토몽타주 안에는 파편화된 인간, 산업화된 전쟁, 그리고 언론의 선전이 뒤엉켜 있었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언어로는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다다는 해체를 통해 진실을 말하려 했다. 브레히트의 ‘생소화 효과’(Verfremdungseffekt)는 이러한 다다의 실험을 연극의 언어로 옮긴 철학적 장치였다. 그는 관객이 무대 속 인물에 감정이입해 현실을 잊어버리는 것을 경계했다. 극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되면, 비판적 사고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로 완전히 변신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인물을 ‘보여준다’. 관객은 몰입 대신 사유하도록, 감동 대신 판단하도록 요구받는다. 무대는 현실을 재현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구조를 드러내는 공간이 된다. 다다의 포토몽타주와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모두 감정의 이완 대신 인식의 긴장을 불러오는 예술이다. 하나는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 다른 하나는 서사의 단절을 통해 세계의 이면을 드러낸다. 다다의 예술가가 신문과 광고의 파편을 붙여 현실의 위선을 폭로했다면, 브레히트는 연극의 장면과 장면 사이에 틈을 내어 그 속의 사회적 모순을 드러냈다. 둘 다 예술의 목적을 감동이 아니라 각성에 두었다. 오늘, 다시 불안과 분열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들의 예술은 묻는다. “당신은 지금 보고 있는 세계를 얼마나 낯설게 바라보고 있는가?” 다다가 현실을 해체함으로써 세계의 불합리를 드러냈듯, 브레히트는 무대의 환상을 해체함으로써 인간의 이성을 일깨웠다. 그들의 예술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불편함을 통해 진실에 다가간다. 낯섦을 견디는 순간, 우리는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오래된 혁명이다.
[다른 시선으로] 그런 일이 있었다
2024년 12·3비상계엄 직후, 부산을 포함한 전국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 주최한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가 이듬해 4월까지 매주 개최되었다. 사람들은 특히 12월 말과 1월 초 서울 남태령과 한강진의 밤샘 집회를 오래 기억했다. 자신의 여러 취약한 정체성을 스스로 밝히는 인사가 ‘남태령식 자기 소개’로 회자되었고, 그 중 하나의 정체성을 사람들이 비하하거나 혐오할 때 반드시 주변의 만류와 조직 차원의 사과와 재발 방지가 이행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낯선 서로를 식별하고 배우겠다고 약속하고, 서로를 모르던 사이로 돌아가지 말 것을 다짐했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그 때의 기억을 그곳 바깥의 지역으로 퍼다 날랐다. 전봉준투쟁단이 서울까지 끌고 온 트랙터는 평소 농민들이 금지옥엽처럼 아끼는 억 단위의 농기구였다. 응원봉을 든 여성과 성소수자는 제 손에 든 것이 소중한 만큼 저걸 여기까지 끌고 온 트랙터가 농민에게 소중한 것을 알아보았다. 응원봉을 든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에 누가 될까 바깥에서 함부로 처신하지 않았고, 트랙터를 모는 농민들은 새 손님 앞에서 막걸리를 먹고 욕을 하지 않았다. 그곳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젠더노소’로 바꾸어 불렀고, 비장애인과 성다수자로 자신을 소개했고, 성소수자로서 그간 내 의제에만 집중했음을 부끄러워했다. 지난날 경찰에게 ‘노동자도 아닌데 왜 때리느냐’고 강변하던 광장과 달리, 그 해의 광장은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다’는 말이 연호되었다. 젊은 층으로부터 이런 환대를 받는 것이 처음이라던 노조원들에게, 그곳의 여성들은 그동안 어떤 싸움을 해오셨던 거냐고 화답했다. 그곳에는 계엄 이전에도 일상이 계엄과 같던 이들이 모였다. 계엄이 성공했다면 자신이 죽었을 수도 있음을 희미하게 예감한 이들은, 포고령에 의거 처단될 뻔한 의료인을 위로하고, 전역 직전 계엄군에 편제돼 사람을 죽일 뻔한 20대 남성의 말을 듣고, 탄핵 촉구 집회 기간 중 자살한 성소수자 동료를 애도하고, 지난 수십 년 간 헌법이 자기 앞에 멈춘 것 같았다는 이주노동자의 말을 경청하고, 공학 전환에 맞서 싸우는 동덕여대생과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그동안 차마 말하지 못한 여성을 응원했다. 그들 중 몇몇은 자신이 선 자리가 역사에 남을 것을 예감했고, 다른 몇몇은 자신이 결국 잊힐 것을 예감했다. 그곳에서 하나하나 불린 소수자 정체성은, 그 하나하나의 자리가 곧이 사회의 마지막 자리로 내몰릴 수 있음을 알면서도, 혹은 그를 알기에 힘주어 낱낱이 짚어 부르는 이름이었다. 거기서 그들은 저마다 소중한 것을 폄하당하지 않은 채 함께 웃었고, 하여 그들은 세상이 얼른 좋아지진 않아도 그 때만큼은 서로 외롭지 않다고 느꼈다. 그 때에 그런 일이 있었다.
[기고] ‘2028년 부산 세계 디자인 수도’ 지정의 과제
지난 7월 영국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열린 제34회 세계 디자인 총회에서 부산이 인구 1300만 명의 중국 대도시 항저우를 제치고 2028년 세계 디자인 수도(WDC)에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 부산은 토리노, 서울, 헬싱키, 케이프타운, 멕시코시티, 발렌시아 등에 이어 전 세계 11번째 WDC가 되었다. 당시 부산시는 “WDC 지정은 도시 브랜드의 품격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정체성과 미래 비전을 새롭게 설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은 곧 디자인을 통해 도시재생은 물론 사회 통합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시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선 부산의 도시환경에 대한 점검부터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도시 정비 차원에서 그동안 쌓여 왔던 도시환경을 저해해 온 문제부터 풀어 나아가야할 것이다. 결국 쉽게 생각하면 큰 덩어리 중 하나는 반드시 없애야 하는 것들과 있어야만 하는 것들을 잘 구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마도 전자에 해당하는 것들은 원도심에 산재해 있는데, 중형 도시 건물들 안에 텅 빈 사무실을 생기 있는 도시환경을 위해 주어진 여건 하에서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게 잘 포장해 내느냐이며, 동시에 보기에도 흉칙스런 골목마다 반파되거나 완파된 옛집들을 정비하는 일이다. 어차피 처분해야 할 조건이라면 이번 기회가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하드웨어적인 정비가 구축되고 나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동안 반세기 이상 쌓여왔던 산업 시대의 갖가지 산물들은 이 기회에 과감하게 청산해야 한다. 큰 의미에서 본다면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세워진 각종 선전 광고들이라던지 누더기처럼 보기 흉하게 들죽날죽 크기의 간판 등 모두가 정비 대상이 되어야 한다. 부산의 고유 경관이나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들은 잘 살려내고 결국 도시 캐릭터를 잘 살려 도시의 얼굴부터 바꿔야 한다. 21세기의 디자인 문화란 그야말로 인간을 위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현대 디자인의 가치와 존재 이유는 몇몇 전문가 집단이나 소수의 의도로만 이루어지는 게 절대 아니다. 도시의 주인공인 주민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때로는 공론화를 반드시 거쳐서 실행되어야 한다. 이미 세워져 있는 대형 건물이나 고정된 조형물들은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소프트웨어적인 안목으로 얼마든지 감각적인 ‘리디자인’이 가능할 것이고 이에 따라 타 도시에 비해서 시민 쉼터 공간이나 문화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점 역시 부산의 취약점이 될 수 있으므로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부문이다. 타 도시에 비해 부산시 당국의 공공 부지가 절대 부족한 점은 앞으로 보완해야 할 시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환경 부문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분야는 역시 대기 환경 개선과 수질 오염 개선 문제로 이번 기회에 과거 어느 때보다 부산시 당국과 기업체(산업 및 제조업)가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고 이외에도 시민들 삶의 질 문제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게 초점을 맞추어 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선진화된 국가의 도시 디자인 체계나 흐름의 시스템을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결국 도시 환경을 정화해서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는 시 당국이나 몇몇 전문가 그룹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가능한 시간을 두고 범시민 운동으로 전개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청소년층에서부터 청장년 시니어들까지도 여러 분야에서 모니터 요원으로 참여하게 유도하고 정기적 또는 수시적 확인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해서 도시의 얼굴을 바꾸어 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 디자인 수도의 면목도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시그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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