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음악이 소환해준 풍경, '소녀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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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소녀의 기도’ 초판 표지. ‘소녀의 기도’ 초판 표지.

대만의 문화에 대한 칼럼을 검색하다가 제목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소녀의 기도-우리의 모든 쓰레기를 버리라는 부름”이었다. 가오슝의 청소차가 ‘소녀의 기도’를 울리며 나타나면 너도나도 쓰레기를 들고 모여든다는 내용이었는데, 아니 이럴 수가! 십수 년 전 한국에서도 똑같은 풍경이 있지 않았던가. 그 곡이 들리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쓰레기를 버려야 했다. 어쩌다 늦게 나서면 “아저씨. 기다려요!” 하면서 슬리퍼를 끌고 뛰어가야 했다. 음악은 그렇게 추억을 소환해준다.

‘소녀의 기도’는 폴란드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테클라 봉다제프스카-바라노프스카(1834~1861)의 작품이다. 우리에겐 독일식 표기인 바다르체프스카로 알려졌다. 어떤 자료에는 1829년생 또는 1838년생으로 되어 있기도 한데, 죽은 해는 똑같은 1861년이니 많아야 32세, 적게 잡으면 2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 된다. ‘소녀의 기도’는 1856년에 출판한 소품으로 작품번호 4번이다. 그 외에도 다수의 피아노 소품을 남겼지만 다른 것은 모두 잊히고 오직 이 곡만 유명하다. 한국과 대만의 쓰레기차에서도 울리고, 일본 신칸센 열차가 출발할 때도 울리고, 학교에선 수업시간이 끝났을 때도 흘러나왔다.

랑랑이 연주한 ‘소녀의 기도’ 랑랑이 연주한 ‘소녀의 기도’

이런 식으로 한 시대의 추억을 담당한 음악이 많다. 에디슨 와이먼이 작곡한 피아노곡 ‘은파’라든가, 리처드 클레이더먼(본명 필립 파제)의 히트곡 ‘아들린을 위한 발라드’ 같은 곡은 피아노 약간 배운 애들이 가장 뽐내며 치던 곡이었다.

우리의 일상은 나도 모르게 많은 클래식 음악으로 엮어져 있다. 대표적인 음악으로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을 들 수 있다. 연륜이 있는 사람에겐 ‘장학퀴즈’의 시그널 음악으로, 젊은 층에겐 ‘오징어 게임’에 흘러나온 음악으로 친근하다. 보케리니 현악5중주 3악장 미뉴엣은 영어 듣기평가에 단골로 흘러나오던 음악이다. 슈베르트 피아노5중주 ‘송어’ 4악장은 세탁기 종료음이나 식기 세척기 알람음으로 줄곧 우리 곁에 붙어 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봄’의 1악장, 멘델스존 ‘봄 노래’는 회사의 단골 통화 대기음으로 사용된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들으면 어디선가 차가 후진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비발디의 사계 중에서 ‘봄’의 멜로디를 들으면 지하철 환승을 해야 할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을 몸에 붙이는 방법은 이렇게 생활 속에 있는 음악 중에서 맘에 드는 것을 골라 제대로 들어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한 번쯤 들어봤을 클래식, 멀리하기엔 너무나 가까운 클래식에서 하나씩 자신의 레퍼토리를 쌓아가노라면 언젠가 그 속에 풍덩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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