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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우리는 다른 나라에 산다
집값 이야기다. 서울의 부동산 열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강남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하자 결국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 이른바 6·27 대책을 통해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하는 대출 규제에 들어가자 지난달에는 거래량이 줄어들며 시장이 관망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비강남권의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을 중심으로 집값 급등 조심이 나타나는 등 상승 추세는 여전히 굳건하다. 서울이라는 지역적 희소성을 감안하면 상승세가 꺾일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학습효과도 한몫한다. 진보 정권에서 집값이 더 오른다는 역설이 오히려 시장의 믿음인 듯하다.
수도권을 벗어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수도권 부동산이 불장을 이어오는 동안 부산을 비롯한 비수도권은 하락세를 지속했다. 최근 부산의 하이엔드 아파트를 중심으로 분양시장이 반짝 열기를 보이고 있지만 전반적인 비수도권 부동산 시장은 냉기가 가득하다. 쌓여있는 악성 미분양 물량을 감안하면 당분간 회복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부산 아파트 가격은 몇억씩 떨어진 게 예사인데 서울이 몇억씩 올랐다는 건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쌓이는 미분양 물량만큼이나 상대적 박탈감도 쌓여간다.
문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부동산 양극화가 추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올해 들어 전개되는 양상은 양극화를 넘어 초양극화다. 이전의 부동산 시장은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동조화 현상이 있었다. 서울이 뜨거워지면 부산은 따뜻해지고 대구는 미지근해지는 정도의 온도차였다. 하지만 이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뉴노멀이 되고 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부동산지인’이 지난 10년간 전국 주요 도시의 공동주택 실거래 가격을 분석한 결과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률이 부산의 3배가 넘었다고 한다. 이 기간 부산의 평당 아파트 매매가격이 823만 원에서 1226만 원으로 48.9% 상승했는데 서울은 1750만 원에서 4482만 원으로 156.1%나 올랐다.
부동산 가격은 결국 해당 지역 경제력을 반영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망국적 수도권 집중의 구조적 문제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게 집값이라는 이야기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초양극화가 진행된 지난 10년간은 인구와 GDP에서 수도권이 비수도권을 추월한 시기와 일치한다. 수도권 집중에 따른 초저출생 누적으로 우리나라 총인구가 내리막길로 접어든 상황을 감안하면 집값 초양극화는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말로만 균형발전을 내세울 뿐 어설픈 부동산 정책으로 수도권 쏠림을 더 부추긴다. 대표적인 게 문재인 정부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다.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규제는 ‘똘똘한 한 채’ 현상을 낳았고 강남 3구의 아파트값 급등을 불렀다. 지역 부자들까지 한강 변 아파트 매수에 가세했다고 하니 말 다 한 거다. 애초의 부동산 정의는 온데간데없고 일부 고위 관료 소유 강남 부동산 급등이라는 내로남불만 남았다. 정책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이야기한다.
수도권 공급 확대도 마찬가지다. 집이 모자라는 게 아니라 수도권에 수요가 과도하게 쏠리는 게 문제인데 공급 확대는 수도권 쏠림만 더 가속화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게 답일 터인데 늘 정책은 변죽만 울린다. 비수도권 부동산에 대한 다주택자 규제 완화 등 차별화된 특례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인데 중앙 관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새 정부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내놓은 ‘지방 중심 건설투자 보강방안’에 따르면 소멸에 처한 지방 도시의 집 한 채를 추가로 매입할 경우 1주택자와 같이 세제 감면 혜택을 주는 ‘세컨드 홈’ 제도를 확대한다는 것인데 정작 광역시는 빠졌다. 광역시에 같은 혜택을 줄 경우 집값 상승 등 시장이 불안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인데 지역민들의 체감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새 정부 국정과제로 채택한 국가균형발전 정책도 부동산 초양극화 대책과 함께 가야 한다. 망국적 수도권 집중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부동산 초양극화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한국은행은 집값 초양극화가 국가 통화정책마저 왜곡시키는 지경이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높아진 수도권 부동산 가격은 국민 간 위화감을 조성하고 사회갈등을 초래하며 궁극에는 국가 경제를 파탄으로 이끌 것이라는 경고다. 수도권 집중 완화를 위한 뼈를 깎는 구조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다. 부동산 정책은 그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당장의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부동산 정책을 통해 초양극화를 완화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2025-08-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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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관세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강의 길
우여곡절 끝에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됐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공표한 25% 관세율 적용 시점인 1일을 목전에 두고 한미 간에 극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대신 상호 관세를 15%로 조정한다는 게 골자다. 대미 투자 규모를 둘러싼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유럽연합(EU) 수준으로 관세율을 맞추는 데 성공함으로써 큰 고비는 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세 발효 시한을 앞두고 피를 말리는 전쟁 같은 협상이 어어졌다는 뒷이야기도 전해진다.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우리 협상단이 말만 꺼내면 관세율 25%로 하자며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해 이를 붙잡느라 진땀을 흘리는 장면이 자주 연출됐다고 한다. 결국 K조선을 지렛대로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를 제안해 미국 측의 마음을 움직였다. 협상 타결 후 리얼미터가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3.9%(매우 잘했음 40.5%, 대체로 잘했음 23.4%)가 잘했다고 답해 여론도 긍정적이다. 기업들은 불확실성이 해소된 데 대해 안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냉혹한 현실은 이제부터다.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술’ 때문에 우리가 선방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래 봐야 관세 협상의 결과 남은 것은 자유무역 시대의 종언과 보호무역 시대의 개막이다. 우리나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해 왔는데 앞으로 15% 관세를 물어야 한다. 우리 제조업 평균 이익률이 5~10%인 점을 고려하면 이제부터 손해 보고 수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트럼프는 자신의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서 목표가 50이면 100을 요구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척 80, 다시 50으로 낮춰 상대로 하여금 이겼다고 믿게 만드는 ‘앵커링 효과’를 말했다. 이번 관세 협상에도 적용 가능한 분석이다.
한미 정상회담 때 청구서를 또 내밀 수도 있다. 온라인 플랫폼법, 구글 정밀지도 반출 허용 등 디지털 규제와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둘러싼 이견, 3500억 달러의 투자 방식과 수익 배분, 방위비와 환율 문제 등이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미 뉴욕타임스는 4일(현지시간) 트럼프의 관세 협상을 ‘글로벌 강탈’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비판한다.
자유무역 시대의 종언은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일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 후 자유무역 질서 아래서 가장 성공한 나라가 한국이었다. 30년간 이어진 세계화 시대를 지나며 한국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한국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이젠 그런 세계화가 막을 내리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보호무역 전환이 트럼프의 변덕이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트럼프 무역 정책의 설계자로 불리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저서 〈자유무역이라는 환상〉에서 자유무역을 미국의 일자리를 뺏는 재앙으로 묘사한다. 트럼프는 세계 최대 소비처인 자국 내수시장을 무기화해 세계경제 질서를 새로 짜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은 이제 없다. 패권 국가인 미국이 먼저 민주적 시장 질서를 부정하고 미국 우선주의로 돌아선 마당이다. 관세전쟁의 본질은 글로벌 일자리 싸움이다. 미국 투자를 유도하고 관세 장벽을 쌓아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것은 결국 역외로 빠져갔던 일자리를 다시 찾겠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인구 감소와 기후 위기에다 기술의 일자리 잠식으로 더 이상 고속 성장이 어려운 수축사회로 돌입했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자동차와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그만큼 국내 일자리는 사라지는 것이다. 윈윈 게임이 아니라 치킨 게임일 공산이 크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나려면 스스로 기술력과 힘을 키울 수밖에 없다. 자강이 답이다. 우리는 그동안 국제 자유무역질서 속에서 빠른 추격(패스트 팔로우) 전략으로 성공을 이뤘다. 이제 우리 경제의 위상은 퍼스트 무브로 가지 않으면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인재를 키우고 첨단기술을 축적해야 한다. 힘이 없으면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찬밥 신세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트럼프로 부터 ‘당신의 카드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하는 장면을 목도하지 않았나. 이번 미국 관세협상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K조선이 돌파구가 됐다.
외부의 도전은 내부의 개혁으로 맞서야 한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정세를 판단하고 실사구시 해야 한다. 이제는 동맹의 시대가 아니라 자강의 시대다. 우리 경제 펀더멘털과 국제 경쟁력 강화가 최우선이다. 정부와 정치권, 기업과 노동자가 뜻을 모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분열하면 싸움도 하기 전에 파탄의 길로 간다.
2025-08-0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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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원전 해체, 끝이 아닌 시작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가 공식적인 해체 절차에 돌입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고리 1호기 해체를 최종 승인했다. 영구 가동 중단과 함께 폐로 결정이 내려진 지 8년 만이다. 대한민국 원전의 출발이었던 고리 1호기는 국내 최초의 해체 원전이라는 또 다른 역사를 시작한다.
원전을 둘러싼 찬반 논쟁은 여전히 뜨겁지만, 고리 1호기가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1960년대 말 도입 논의가 시작될 당시만 해도 국가적 리스크를 안고 출발한 국책 사업이었다. 전체 사업비 1560억 원은 국내총생산(GDP)의 5%에 달하는 규모였다. 경부고속도로 공사비가 429억 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국가적 명운을 걸다시피 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1978년 상업 운전을 시작할 당시 설비용량 58만 7000㎾는 국내 전체 발전 용량의 9%를 차지했다.
고리 1호기로 인해 1979년 2차 오일쇼크의 파고를 넘어설 수 있었고 에너지 자립과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더불어 원전 전문 인력 양성과 기술 축적이 가능했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아랍에미리트와 체코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는 원전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미국 스리마일, 러시아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고리 1호기가 들어서면서 이 일대는 원전 밀집지로 변했고 부울경 800만 주민은 머리맡에 원전을 이고 사는 신세가 됐다. 원전 가동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고리 1호기에 대한 영구 정지 결정도 설계 수명을 넘어선 노후 원전 안전성에 대한 지역사회의 우려가 반영된 결과였다.
고리 1호기는 이제 1조 713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12년에 걸쳐 길고 힘든 해체의 과정이 진행된다. 원전 해체는 기본적으로 방사능 오염을 제거하고 환경을 복원하는 작업이지만 그 자체로 갖는 산업적 의미가 크다. 현재 22개국에서 215기의 원전이 영구 정지된 상태인데 해체가 진행된 것은 25기에 불과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2050년까지 588기의 원전이 영구 정지 대상인데 시장 규모만 50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세계적으로 원전 해체 경험이 있는 국가는 미국 독일 일본 스위스 4개국에 불과하고 대규모 상업 원전 해체 경험은 사실상 미국이 유일하다. 원전 해체는 산업 특성상 트랙 레코드(현장적용실적)가 중요하다. 고리 1호기 해체를 통해 실적을 쌓으면 글로벌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우리의 원전 해체 기술은 선진국 대비 80% 안팎에 머물러 있는데 이를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다.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은 로봇과 디지털 트윈, 신소재 등 첨단기술이 융복합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원전 건설 경험을 통해 빠르게 원전 강국으로 도약했듯이 해체 기술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가 R&D와 실증을 지원하고 민간에 기술을 이전하는 유기적 협력 체제가 필요하다. 부산과 울산의 경계 지역에 원자력환경복원연구원을 설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정책 리스크다. 정권에 따라 친원전, 반원전으로 에너지 정책이 극단을 오가는 게 산업생태계에 치명적이다. 고리 1호기 영구 정지가 결정된 후 해체 승인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부울경을 중심으로 사업 참여를 준비 중이던 중소기업이 많이 이탈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원전 해체 시장은 각국의 정책 결정에 따라 변화가 많아 정부가 의지를 갖고 정책을 밀고 가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국가 에너지 안보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전 해체 경험은 우리가 원전 산업 전 주기에 걸쳐 기술력을 확보하게 된다는 의미다. 원전 건설에서부터 해체에 이르기까지 턴키(일괄)로 수주할 수도 있고 고도화된 기술로 공정별 참여도 가능하다. 물론 전제 조건은 안전이다. 원전 해체는 사용후핵연료 냉각 및 반출, 오염 구역 제염, 건물 철거, 폐기물 처분, 부지 복원 등의 순으로 진행되는데 방사성 폐기물 관리가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산업생태계고 뭐고 끝이다.
원전 해체가 시작되면서 영구처분장 문제도 발등의 불이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동안 외면한 핵발전의 숨은 비용을 다시 따져야 하는 ‘진실의 순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따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게 당연한 전제다. 이재명 국민참여정부가 ‘실용’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에너지 정책에서도 이름값을 하기를 기대한다.
2025-07-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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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이재명 대통령의 콘크리트 인사론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통치 스타일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게 인사다. 대통령이 모든 국정 현안을 직접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널리 인재를 구하고 적재적소에 등용함으로써 자신의 국정 철학을 구현해야 한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다. 인사가 곧 메시지고 대통령은 인사를 통해 국민과 소통한다. 인사의 성패가 정권의 명운을 가르는 이유다.
유독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물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능력은 유능한 인재를 발탁해 국정 현안을 해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보안에도 철저했다. 낙점한 인물도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면 단칼에 잘랐다. 이런 그의 인사 스타일을 상징하는 말이 “깜짝 놀랐제?”다. 취임 직후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군 수뇌부 인사를 전격 단행하며 했다는 말이다. 철저한 보안 속에 군내 사조직 ‘하나회’ 척결을 시작했고 문민정부 정체성을 그렇게 세상에 알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탕평 인사로 그의 집권에 대한 불안한 시선을 불식시켰다.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에 노태우 정부 인사였던 김중권 전 의원을 앉혔다. 경제부총리에 상대 캠프 전력의 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을 중용해 외환 위기를 돌파했다. 훗날 이 전 부총리는 자서전에 “DJ는 나를 동지가 아니라 기술자로 발탁했다”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YS와 DJ도 초심을 잃고 민주화 투쟁을 함께한 가신들을 능력과 무관하게 중용하다 화를 자초했다. DJ는 정권 말기 소위 ‘DJ 수첩’에 적혀 있는 사람만 대거 중용하면서 비선 라인 개입 논란에 시달렸다. 널리 인재를 구해야 하는데 측근과 비선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것이다.
참여정부에 이르면 아예 ‘코드 인사’가 상용어가 된다. 코드 인사는 정권의 정치적 편향성을 강화하고 다양성에 기반한 합리적 의사결정구조를 왜곡해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역대 정권의 코드 인사를 둘러싼 조어들은 결국 정실 인사를 통해 어떻게 민심과 멀어졌는지 말해준다.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문재인 정부의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윤석열 정부의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정부의 초기 진용이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대통령실 주요 인사는 마무리됐고 국무총리 임명을 포함해 국토교통부·문화체육관광부를 제외한 17개 부처 장관 인선이 마무리됐다. 민정수석의 낙마와 국무총리 부실 검증, 일부 장관 후보자의 의혹이 불거지고 있음에도 지금까지의 여론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전직 대통령의 추락과 국민의힘의 지리멸렬에 따른 반사 효과도 있겠지만 ‘실용’을 앞세운 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연유하는 바가 적지 않다. 내각에 경험 많은 현직 의원을 포진시키고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을 노동부 장관에 앉히면서도 대기업 출신을 장관에 등용해 균형을 맞춘다. 외교 라인에도 ‘자주파’와 ‘동맹파’가 공존하고 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 인사도 안정 속 개혁이라는 실리를 챙긴다.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는 “국민 눈높이나 야당, 우리 지지층 안의 기대치에 좀 못미치는 측면도 있다”며 먼저 몸을 낮춘다. 그러면서 “색깔이 맞는, 즉 한쪽 편에 맞는 사람만 쓰면 좀 더 편안하고 속도도 나겠지만 같은 쪽 색깔만 쭉 쓰면 위험하다”면서 콘크리트 인사론을 꺼내 든다. 물과 모래 자갈 시멘트가 골고루 잘 섞여야 콘크리트가 더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새 정부 진용이 콘크리트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수도권 정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북 안동 출신이지만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은 수도권이다. 서울을 지역구로 둔 국무총리를 포함해 내각에 진입한 8명의 현역 의원 중 6명이 수도권이다. 대통령실 참모는 물론이고 여당 지도부도 수도권 일색이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전재수 의원이나 지방시대위원장을 맡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정도가 부울경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새 정부 진용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수도권을 싹쓸이한 영향이 크겠지만 수도권 중심의 맨 파워로 균형발전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균형발전을 중요한 국정 과제로 여러 번 언급했지만, 경험이 사람 의식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수도권 지옥철에서 인파에 부대끼며 지역 소멸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구조물을 부실하게 하는 것이 수도권 일극주의다. 사상누각이 무너지듯이 대한민국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다. 인사에서부터 이런 고민이 담겨야 하지 않았을까.
2025-07-0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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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서울대 10개 만들면 글로컬대학 가나
‘서울대 10개 만들기’ 주장이 처음 나온 건 2021년 말의 일이다.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저서 〈서울대 100개 만들기〉에서 단순한 고등교육 정책 구상을 넘어 한국 사회의 지식·권력 구조를 전환하자는 대담한 제안을 하고 나선 게 출발이었다. 다소 파격적이고 엉뚱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주장은 실현 가능성과 별개로 사회적 반향을 불러왔다. ‘서울대’라는 단어가 갖는 파괴력에 더해 모두가 ‘교육 지옥’에 살고 있다는 공감이 호응으로 이어졌던 셈이다.
논쟁적 주제인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제도권으로 끌고 온 게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다. 21대 대선 선거운동 기간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공약으로 발표한 것이다. 전국 9개 거점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재정과 연구 역량을 집중 투자해, 이들 대학을 지역 혁신과 성장의 중심으로 키우겠다고 했다. 이를 통해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 인재가 지역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설명이었다.
새 정부 출범 후 국정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교육 정책 논의가 진행될 터인데 대학 명칭에서부터 예산 문제까지 대학 입시보다 더 복잡한 방정식이 기다리고 있다. 서울대 부산캠퍼스 서울대 경남캠퍼스인지, 한국1대학 한국2대학인지 브랜드부터 첨예한 논쟁거리일 게 뻔하다. 당장은 학점 교류, 공동 연구, 공동학위제 등이 거론된다. 현재 1인당 교육비 지원액이 2500만 원을 밑도는 거점국립대를 6000만 원인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재정도 필요하다. 기존 글로컬대학,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와 어떻게 연계할지도 난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하루아침에 등장한 건 물론 아니다. 2003년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정책토론회에서 정진상 교수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다. 이듬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입시 지옥과 학벌 사회를 넘어〉를 발표했는데 서울대 학부 폐지가 핵심이었다. 서울대를 포함한 전국 국립대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구성하고 공동학위제를 운영하되 서울대는 학부 강의만 개방할 뿐 학부생을 모집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당시에도 교육계를 중심으로 많은 논의가 진행됐지만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대학 서열화와 지역 간 교육 격차의 뿌리는 깊고 벽은 두꺼웠다.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지역 대학의 중요성에 주목한 것은 노무현 참여정부였다. 지역 대학을 육성해 지역 산업을 발전시키면 지역 격차가 해소되고, 인재가 지역에 정착해 지역 대학이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지역대학혁신역량강화사업(NURI·누리)에 5년간 1조 2000억 원을 투자했지만 결과는 역부족이었다. 대학 경쟁력과 재정 효율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누리사업을 폐지했다. 박근혜 정부는 산학 연계 선도대학을 중심으로 지역 대학에 2조 1000억 원을 지원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윤석열 정부는 RISE와 ‘글로컬대학 30’을 통해 지자체가 끌고, 중앙정부가 미는 ‘지역 맞춤형’ 지역 대학 육성 정책을 펼쳤지만, 탄핵으로 정권이 막을 내렸다.
이처럼 각 정권마다 지원 정책을 펼쳤지만 지역 대학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정책 부재가 문제가 아니라 임계점을 넘어서는 전향적 정책 없이 지역 대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지역 대학의 추락은 지역의 추락과 동의어다. 정권마다 균형발전을 강조하지만, 수도권 집중이 더 심화하듯 지역 대학 문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예산만 해도 그렇다. 서울대 한 해 예산이 1조 5000억 원인데 9개 거점대학에 버금가는 예산을 투입하는 문제부터 허들이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우리의 경제 규모에 비해 대학 지원 예산이 적다는 게 근본 문제다.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미국 스탠퍼드대의 예산이 서울대의 5배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모델로 UC로 시작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10개 연구중심대학 예산도 2020년 기준 53조 원에 달한다. 세계대학평가기관들이 발표하는 글로벌 대학 순위는 대체로 재정 순위와 일치하는 게 현실이다.
지역 대학 입장에서는 5년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책이 더 큰 문제다. 교육이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5년짜리 쪼가리 대책으로 근본적 변화가 시작될 리 만무하다. 글로컬대학이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시너지를 통해 발전적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지역 대학 육성을 통해 균형발전을 이루겠다고 하면서도 첨단산업 인력이 부족하다며 수도권 대학의 정원 제한을 풀었던 게 지금까지 우리 정부 정책의 수준이었다. 국민주권정부라고 다를까.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2025-06-2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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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부산 지방선거 불 나겠네"
2018년 6월 13일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부산의 정치 지형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오거돈 부산시장을 비롯해 16개 구·군 중 수영구 서구 기장군을 제외한 13곳의 기초자치단체장을 차지했다. 42개 시의원 지역구 중 38곳도 민주당 몫이었다. 기초의회 역시 12개 구·군을 민주당이 장악했다. 1995년 지방자치 시행 후 여섯 차례 진행된 지방선거에서 부산은 민자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진 보수 정당이 시장과 기초단체장, 시의원을 독식했다. 20여 년간 진보 진영에서는 시장은 물론이고 16개 기초단체장과 42개 시의원 선거구 중 단 한 곳에서도 승자를 내지 못했다. ‘말뚝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그만큼 2018년 부산의 지방선거 결과는 드라마틱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높은 대통령 지지율과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평화 무드가 만연했던 영향이 컸다. 전국적으로 여당 바람이 거셌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쇠락해 가는 부산의 현실이 좀체 나아지지 않으면서 지방정부를 장악했던 보수에 대한 시민의 피로감이 시너지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20여 년간 요지부동이던 부산 민심이 그 변화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진보 진영을 화끈하게 밀어준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 지방정부는 그 천금 같은 기회를 날렸다. 전임 시장들의 과오를 파헤치고 흔적을 지우는 일이 시정의 주를 이뤘고 새로운 비전이나 희망을 주지 못했다. 준비도 실력도 갖추지 못한 모습은 시민에게 실망감만 안겼다. 평화 이벤트는 지속 가능하지 못했고 문재인 정부의 쇠락과 함께 시민의 기대도 싸늘하게 식었다. 가덕신공항을 되살려낸 게 큰 공이라면 공이었지만 균형발전에 대한 의지는 노무현 정부의 발치에도 못 미쳤다. 결국 오거돈 시장의 성범죄로 민주당 지방정부의 운명만 재촉했다.
역사의 시계가 다시 돌아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으로 진보 진영이 집권하고 지방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이재명 대통령의 부산·울산·경남(PK) 지역 득표율을 기반으로 내년 PK 지방선거 지형도에 대한 분석이 넘쳐난다. 진보 정권의 대선 첫 부산 지지율 40% 돌파 의미를 놓고도 진보의 희망과 한계 이야기가 동시에 나온다. 이제 관심은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로 쏠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해양수산부의 신속한 부산 이전을 지시했다. 마침내 지난 7일에는 더불어민주당 1·2기 지도부와 함께한 만찬 자리에서 유일하게 부산 인사로 참석한 서은숙 전 최고위원에게 “내년에 있을 부산 지방선거에서는 불이 나겠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PK 탈환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이례적으로 부산을 콕 집어 강조하고 나선 것은 지역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해수부 이전과 해사법원 설립, HMM 등 해운 기업 유치, 북극항로 등을 앞세운 해양수도 공약으로 부산 민심을 파고들었다. 산업은행 이전 등에 대한 민주당 비협조는 부산 공약에 대한 진정성 논란을 낳았는데 취임과 함께 해양수도 부산 공약에 드라이브를 걸고 나섬으로써 명실상부한 해양수도 부산과 해양강국 실현의 기대를 갖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해양수도 부산이 특정 지역에 떡 하나 더 주는 차원이 아니라 균형발전과 새로운 성장 동력 창출이라는 국가적 비전 속에서 이해되어져야 하는데 앞선 정부들에서 보듯 그렇게 호락호락한 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벌써 인천과 세종이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그 틈을 타 서울 언론들이 지역 간 이간질에 나서고 있다. 수도권 일극화로 성장 잠재력이 한계에 달한 국가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와 철학 없이는 뚝심 있게 밀고 가기 힘든 과업이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 수도권인데다 대선 토론 과정에서 가덕신공항을 언급할 때 언뜻언뜻 비치는 모습이 균형발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엿보기 어려웠던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결국 이 대통령이 강조하듯 국정 실력으로 증명해야 한다. 부산은 여전히 지역 소멸의 경로의존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윤석열 정부의 서울 부산 두 바퀴 성장 전략도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민주당의 발목잡기도 문제였지만 지역 정치권의 무능도 큰 몫을 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1년이 서로 간의 네 탓 공방이 아니라 지역을 살릴 방안을 찾는 불꽃 튀는 경쟁의 시간의 되기를 기대한다. 부산을 살리고 희망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시민들은 진보든 보수든, 여든 야든 화끈하게 밀어줄 준비가 돼 있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2025-06-1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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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이제는 유권자의 시간
어느덧 21대 대선도 유권자의 시간으로 접어들고 있다. 29일과 30일 양일간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에 설치된 3568곳 투표소에서 사전투표가 진행된다. 선거를 거듭할수록 사전투표율은 올라가는 추세다. 20대 대선 사전투표율이 36.93%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전체 투표에서 차지한 비율도 47.9%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21대 대선에서는 전체 투표자의 절반 이상이 사전투표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가능하다.
26일부터는 원양어선 등에서 선상 투표가 진행 중이다. 재외국민 투표는 벌써 마무리됐다. 전 세계 118개국에서 등록된 25만 8000여 명의 유권자 중 20만 5000여 명이 투표에 참여해 79.5%의 투표율로 역대 대선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유권자의 시간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사전투표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유권자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대통령 탄핵에 따른 보궐선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후보들의 구체적 공약은 보이지 않고 네거티브만 난무하는 ‘깜깜이’ 대선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에서야 국민의힘이 겨우 공약집을 내놓았고 더불어민주당과 개혁신당은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정책 경쟁을 이야기하면서도 유권자의 알권리를 외면하고 ‘검증’과 ‘비판’을 피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나마 TV 토론이 후보들의 생각을 가늠해 볼 기회였지만 네거티브 공방으로 유권자의 눈과 귀를 가렸다. 핵심 어젠다를 둘러싼 치열한 토론은 애초 무리였고 남은 거라곤 ‘커피 원가 120원’ ‘호텔 경제학’ 따위다. ‘진짜 총각’ ‘형수 욕설’ ‘소방관 갑질’ 등 상호 비방의 구태는 도를 더했다. 물론 TV 토론은 내용 못지않게 태도도 중요한 판단 요소라지만 대선 후보다운 논리와 기품을 갖춘 촌철살인의 언어 한마디가 아쉬웠다. 겉돌다 끝나는 맹탕 TV 토론이 될 바에는 차라리 미국처럼 사회자의 돌직구 질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더 심각한 건 이번 대선에서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미래지향적 시대정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대정신은 사회 구성원들이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공동의 가치다. 사회적 토론을 통해 이를 만들고 공유하는 과정이 대선인데 과거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한다. 찬탄 반탄이 미래 가치를 모색하는 논쟁일 리 없고 내란 극복이 시대정신일 리는 더더욱 없지 않은가.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꼽혔던 20대 대선에서도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정신이 있었다. 조국 사태와 LH 투기가 부동산 정책 실패와 맞물리면서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 이명박 대통령은 ‘747 공약’으로 대표되는 실용주의와 경제 성장의 화두 속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민주화와 복지의 확대로 국민적 공감을 얻었다.
지금이라고 시대정신이 없을 수 없다. 대선전이 상대를 악마화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극단적 진영 대결로 흐르면서 시대정신을 직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대전환의 시기다. 최근의 경제성장 둔화는 ‘한국 피크론’에 힘을 싣는다. 초저출생과 고령화로 성장 잠재력은 한계에 부딪혔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한국은 끝났다’는 유튜브 영상이 화제라고 한다. 독일 유튜브 채널이 공개한 이 영상은 불닭볶음면도, 오징어게임도, K팝도 사라질 거고 2060년이면 우리가 사랑하는 한국은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경고한다. 출산 장려 등 급진적 변화만이 한국의 장기적 회복을 가져올 것이라 조언한다.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새롭게 대한민국, 정정당당 김문수’ ‘미래를 여는 선택, 새로운 대통령’ 후보마다 슬로건에 변화의 의지를 담았지만 ‘망해가는 한국’의 문제를 통찰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는 시대정신은 읽히지 않는다. 현재의 우리 사회가 한계에 봉착했다면 지금 당장 낡은 시스템을 갈아엎고 뼈를 깎는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사실은 방향도 나와 있다. ‘87년 체제’를 종식하고 망국적 수도권 집중을 해체해 국가의 새로운 혁신 동력을 만드는 일이다. 후보들이 고민하지 않으면 주권자인 유권자가 끌고라도 가야 한다. 상대적으로 누가 진정성과 용기를 갖고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고 우리 사회를 미래로 끌고 나아갈 수 있을지 유권자가 결단해야 한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대통령을 갖는다고 했다. 6월 3일 이후의 대한민국은 결국 유권자의 안목에 달렸다는 이야기다. 물론 최악은 아예 선택을 포기하는 것이다.
2025-05-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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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해수부 옮기고 GTX 만들면 지역 소멸 멈출까
대한민국에서 대표적 희망 고문의 하나가 국가균형발전일 것이다. 역대 모든 정부가 국정 과제로 내세웠지만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꿈, 전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말이다. 모든 게 수도권에 쏠려 있고 인구수마저 역전당한 비수도권에서 소멸의 시계를 자력으로 멈춘다는 것은 이제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또다시 희망 고문의 계절이다. 21대 대통령 선거운동의 막이 올랐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때를 당겨 맞는 선거철이지만 대선은 대선이다. 국가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비전을 보여줄 리더를 찾아야 하는데 선거운동 전초전을 장식했던 사법 리스크 논란과 단일화 막장 쇼에 눈이 가려진 유권자들로서는 막막함을 넘어 참담함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우외환의 위기 속에 맞는 대선이어서 그 엄중함과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마침, 본격 선거운동 시작과 함께 후보들이 경제를 앞장세워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1호 공약으로 인공지능(AI) 육성을 통해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1호 공약은 ‘일하는 정부’지만 2호로 해외 진출 국내 기업을 다시 한국으로 데려오는 리쇼어링을 내세웠다.
지역으로서는 국가균형발전 공약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현재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의 핵심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화에 따른 지역과 국가의 소멸 위기라는 점에서 수도권 집중은 단순히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유력 후보들의 10대 공약에 이 같은 문제 의식과 깊이 있는 고민이 담겨 있는지는 미지수다.
이재명 후보는 6호에 지역균형발전을 담았다. 세종 행정수도를 완성하고 5대 초광역권(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과 3대 특별자치도(제주·강원·전북)를 통해 수도권 일극 체제를 깨겠다는 복안이다. 부울경 공약으로 해양수산부 이전과 해사법원, 해운·물류 기업 유치로 부산을 글로벌 해양산업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울산은 미래차 전환 산업지, 경남은 우주·항공·스마트조선 산업 중심지로 육성하겠다고도 했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5극 3특’은 이명박 정부 ‘5+2 광역경제권’과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는지 증명돼야 한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답하지 않으면서 해수부 이전을 내거는 데 대해서도 시민들은 의아해한다. 해사법원 부산 이전을 공언했는데 인천 분원 이야기가 나온다든지 ‘경남 우주항공국가산업단지 글로벌 우주항공 중심지’를 ‘K-우주산업 기반’으로 문구를 바꾸며 대전과 전남 눈치를 보는 게 기존 지역 갈등만 부추기는 균형발전 방식과 얼마나 다른지도 궁금하다.
김문수 후보는 4호에서 GTX 전국 확대를 내세웠다. 부울경 GTX의 경우 ‘가덕신공항-하단-북항-부전-오시리아’ ‘마산-창원-사상-부전-울산’ ‘울산-정관-김해공항-가덕신공항’을 연결하는 형태다. 국제공항과 관광지를 연계해 산업·물류·관광이 통합된 지역경제벨트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수도권 블랙홀의 상징 인프라인 GTX를 지역 공약 헤드라인으로 내세운 게 재원 조달 방안은 차치하고라도 균형발전 전략으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차라리 이준석 후보의 법인세와 최저임금 결정권을 지자체에 부여하겠다는 공약이 참신하게 받아들여진다. 3호와 4호로 반복하며 지역을 강조한 것이나 지역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대목은 균형발전에 대한 고민과 진정성까지 엿보이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지방 이전 요인은 하나도 없다는 현실 인식이나 전국 전기요금이 똑같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반갑다.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과 관련해 부산의 비전 중 구체적이지 않은 담론은 의미 없다는 지적은 부산시도 한번 곱씹어 봐야 할 지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최근 올해 1.8%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2040년대 0% 안팎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술 진보 등을 반영한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저출생·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여러 진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수도권 집중에 따른 폐단이 국가 잠재성장률까지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대체적 견해다. 전국에 수도권 같은 성장축을 1~2곳 더 만들어야 한다는 대안까지 나와 있다.
이번 대선이 수도권 집중에 따른 국가 위기와 구조 개혁의 시급성을 공유하고 실행 로드맵을 만드는 장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이번 기회가 지나면 더 이상 고문당할 희망마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게 국책 연구기관들의 한결같은 경고이기도 하다.
2025-05-1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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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부산에서 유니콘이 탄생하려면
2025년은 부산의 창업생태계에서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딘 해로 기록될 것이다. 부산지역 창업 활성화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부산기술창업투자원이 닻을 올리고 본격적인 항해에 나섰기 때문이다. 부산창투원은 최근 출범식을 갖고 ‘글로벌 창업 허브 도시 부산’의 깃발을 올렸다. ‘2025 부산창업패키지 지원사업’ 대상 120개 기업도 공개했다. 부산창투원은 기업 성장을 4단계로 나누고, 자금뿐만 아니라 각 단계에 필요한 창업 교육, 투자 유치, 기업 진단을 원스톱으로 지원한다. 기업 선정부터 교육과 투자 전 과정을 투자자들이 주도하게 했다고 하니 제대로 된 스타트업 육성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산창투원은 전국 최초로 설립된 지자체 산하 창업 행정 전담기구로 아시아 10대 창업 도시를 향한 부산시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박형준 시장의 핵심 공약이기도 하다. 시는 그동안 창업하기 좋은 도시 부산을 위한 빌드 업을 차곡차곡 진행해 왔다. 2022년 아시아 창업엑스포 ‘플라이 아시아’(FLY ASIA) 첫 행사를 시작한 후 올해로 4회째를 맞는다. 2023년부터는 핀란드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스타트업 행사 슬러시의 스핀오프 형태인 부산 슬러시드(SLUSH‘D)를 개최하고 있다. 부산역 유라시아 플랫폼에서는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도 운영 중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 중인 북항 1부두에는 ‘글로벌 창업 허브’ 조성을 위한 국제건축설계 공모가 진행 중이다. 멋진 공간은 그 자체로 창업 아이디어를 불러모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시의 이 같은 노력에도 창업 도시 부산의 갈 길은 먼 게 현실이다. 부산의 창업생태계가 빈곤하니 발버둥이라도 치는 것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는 창업조차 수도권이 아니면 안 된다. 청년들이 기를 쓰고 수도권으로 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술창업기업의 60%가 수도권에 있고, 벤처 투자 중 수도권 비중이 80%를 차지한다. 2023년 국내 유니콘 기업 24개 중 23개 사가 수도권 소재다.
미국 스타트업 연구기관 스타트업 블링크가 발표한 ‘2024년 세계 스타트업 도시 순위’에서 세계 1000개 도시 중 한국에서는 서울만 21위로, 100위권에 들었다. 부산은 366위, 대전 429위, 인천 458위에 그쳤다. 창업의 본질이 혁신이라고 한다면 수도권에 모든 걸 몰빵해서는 국가적으로도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리 만무하다. 또 다른 평가기관 스타트업 지놈 순위를 보면 미국은 1위 실리콘밸리는 물론이고 뉴욕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등이 10위권 내고 덴버 오스틴 솔트레이크 애틀랜타 마이애미가 40위권 내에 포진해 있다. 미국이 지난해 2.8%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도 스타트업 창업 열기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다.
부산이 창투원을 중심으로 창업생태계를 만들어 간다고 해도 결국 지역 혁신 역량 한계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창업 기업을 발굴해 액셀러레이터하고 스케일업하려 해도 창업하려는 젊은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지역 혁신 허브로서 대학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글로컬대학, 라이즈, 국가연구소 등 정책 수단을 총결집해 역량을 키워야 한다. 대학 간에도 힘을 모아야 한다. 부산대와 부경대의 부산형 KAIST 추진 같은 게 바람직한 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과학기술의 빠른 변화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지역 문화와 수용성이 중요한 요인일 수도 있다. 크록스가 세계적 신발 브랜드로 유명해졌지만 미국 콜로라도주의 볼더라는 작은 도시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도시의 고향 친구 3명이 서핑을 즐기다 보트 슈즈에 대한 아이디어로 창업하게 된 게 크록스다. 이들을 키운 건 창업자들의 자유로운 네트워크 형성과 협력 분위기를 조성한 볼더의 ‘우리가 먼저 베푼다’(We Give First)는 문화였다. 부산이 전통적 신발 도시인데 이런 신발 관련 유니콘이 탄생하지 못했다는 것은 생각해 볼 대목이다.
부산서 두 번째 예비 유니콘이 된 슬래시비슬래시라는 기업이 크록스와 손잡고 크록스의 독창적 감성이 담긴 스마트폰 케이스를 출시한다는 사실이 공교롭다. 슬래시비슬래시는 근거리무선통신 기반으로 MZ세대 겨냥 맞춤형 휴대폰 액세서리를 생산하는 회사다. 2020년 부산서 설립해 매출이 급증하며 예비 유니콘이 됐다. 글로벌 유니콘이 되기 위해 해양을 향하고 있는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는 대표의 포부가 당차다. 부산창투원 출범을 계기로 글로벌 스타트업을 꿈꾸는 많은 젊은이가 부산에 몰려들기를 기대한다. 그러면 부산 유니콘 기업 탄생도 머지않은 미래가 될 것이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2025-04-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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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대선 민심 가를 부산 1호 공약은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6·3 ‘장미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후보 독주 속에 ‘양김’이 도전하는 3파전, 국민의힘은 ‘8룡 대전’으로 경선 구도도 정해졌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이번 조기 대선에서 정권 심판의 기치를 들고 3년 전 패배 설욕을 벼르는 민주당과 절대 강자 없는 구도 속에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국민의힘 후보들의 사활을 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론이 우위여서 이재명 후보 대세론이 굳어지는 형국이다. 민주당 경선에 김동연, 김경수 후보가 도전하지만 ‘어대명’(어차피 대선 후보는 이재명) 분위기를 꺾기는 역부족이다. 경선 룰도 완전국민경선이 아니라 권리당원 투표 50%·일반 국민 여론조사 50%의 국민참여경선으로 결정되면서 ‘경선’이 아니라 ‘추대’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국민의힘은 김문수 홍준표 한동훈 후보가 ‘3강’으로 꼽히는 가운데 안철수 나경원 이철우 유정복 양향자 후보 등이 1차 관문인 ‘4강행 티켓’을 손에 쥐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유력 주자이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중도 확장을 강조한 유승민 전 의원도 경선에 불참키로 한 가운데 ‘한덕수 대망론’이 변수다. 그러나 여전히 이재명 대세론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어쨌든 50일 뒤면 이들 후보 중 한 명이 21대 대통령이 된다. 본격 선거전의 막이 오르면서 ‘정권 심판’ ‘내란 종식’ ‘의회 독재’ ‘반이재명’ 등 정치적 프레임이 난무하고 있지만 대선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이벤트다. 부산을 생각해도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지역의 운명이 갈린다. 망국적 수도권 집중으로 국가의 성장잠재력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고 이를 돌파할 유력 거점이 부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의 미래와 부산의 미래가 다르지 않다. 국가균형발전 깃발을 들고 대권에 도전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박형준 부산시장이 불출마를 선언한 마당이어서 이제 시민들은 무대에 오른 후보를 대상으로 균형발전 의지를 가늠해 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각 당에서도 ‘1호 공약’ 선정 등 이번 선거전의 캐스팅 보트를 쥔 부산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에 골몰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당정협의를 통해 공감대를 이뤄온 만큼 부산 현안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공약을 수렴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을 찾은 한동훈, 안철수 후보가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이나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전향적 입장을 밝힌 것도 그 연장선이다.
민주당에서는 부산 1호 공약으로 이재명 후보가 내건 북극항로 개척을 만지작거린다. 이를 범정부적으로 추진해 부산을 동북아 물류 중심으로 만들고 대한민국을 글로벌 해양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것이다. 북극항로 구축 지원 특별법도 발의했다. 그러나 부산의 시급한 현안인 글로벌특별법이나 산은 이전은 제쳐두고 북극항로를 꺼낸 저의는 의심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최인호 전 의원이 부산을 한국형 연방 모델인 특별투자자유도시로 만들겠다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비판의 여지를 남긴다.
물론 부산으로서는 각 당의 공약 경쟁은 반길 일이다. 부산의 시민단체들이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갖고 글로벌특별법, 산은법, 북극항로특별법은 반드시 동시에 추진되어야 할 과제라며 이들 법안의 동시 입법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북극항로도 결국 글로벌 허브도시나 산은 이전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동시 추진이 오히려 설득력을 갖는다.
문제는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을 국가균형발전으로 설정하고 큰 틀에서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경수, 김두관 후보 등이 균형발전을 국가적 화두로 던졌지만 거대 양당에서 주도적 목소리가 되지 못한다. 구체적 방법론에서도 기존 거점 또는 권역별 균형발전 전략을 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동안 정권마다 균형발전을 국정 과제로 내세웠지만 수도권 일극체제는 더 강화됐다.
현재의 수도권 일극체제에서 시급한 것은 수도권과 같은 거점을 하나 더 만들어 국가의 혁신 역량과 성장잠재력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수도권의 대척점에 있는 부산이 그 중심일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동남권, 남부권으로 광역경제권을 만들어가는 전략이 가장 현실적이다. 파면된 전직 대통령이지만 윤석열 정부의 부산-서울 두 바퀴 성장 전략이 옳다. 2030월드엑스포 유치 실패 등 방법론에서 좌충우돌을 겪었지만 방향은 맞다는 이야기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부산-서울 두 바퀴 성장론 관점에서 각 후보들의 공약을 따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5-04-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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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부전역이 뜬다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부전역 복합환승센터 건립이 추진된다고 한다. 부산시는 이를 위해 사전타당성조사와 사업 기본구상 수립 용역비 10억 원을 추경에 편성키로 하는 등 구체적 행동에 돌입했다. 복합환승센터는 열차 항공기 선박 도시철도 버스 택시 승용차 등 교통수단 간 원활한 연계 및 환승 활동과 상업·업무 등 사회경제적 활동을 복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인프라다.
부전역 복합환승센터는 10여 년 전 추진하다 중단된 사업이다. 2013년 정부 시범사업에 선정돼 전체 사업비 7070억 원 규모의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됐었다. 부전역 일대 7만 7780㎡ 부지에 연면적 27만 6800㎡, 지하 6층 지상 32층 규모 건물을 짓고 교통·상업·문화 거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경제성 부족으로 무산됐다. 당시 용역에 따르면 사업타당성 확보를 위해서는 KTX 정차역 설치가 필요했는데 지하 50m에 위치한 플랫폼을 지상과 연결하는 2000억 원 안팎의 비용 부담을 정부와 시가 서로 떠넘기면서 사업이 유야무야 된 것이다. 지금도 KTX가 지나는 부전역 지하 50m 지점에는 정차역 조성을 위한 공간이 확보돼 있다.
표류 중이던 부전역 복합환승센터 건립이 되살아난 건 중앙선과 동해선이 개통하면서다.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청량리역과 부전역을 연결하는 중앙선 복선 공사가 완공되면서 KTX-이음과 ITX-마음 열차가 운행을 시작했다. 올해 1월 1일부터는 강원도 강릉에서 부전역으로 이어지는 동해선이 완전 개통해 ITX-마음 열차가 운행 중이다. 이후 부전역 이용 승객이 4배나 늘었다고 한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인접한 부전시장 일대가 북적인다. 겨울에는 강원도로 눈꽃 구경을 떠나고 봄에는 부산으로 봄꽃을 보러 오는 관광객의 이동도 크게 늘었다.
연말께 동해선에 KTX-이음이 투입되면 강릉과의 거리는 더 가까워진다. 2026년이면 부전마산 복선전철이 완전 개통하고 시가 차기 도시철도망 구축 계획 1순위로 발표한 차세대 부산형 급행철도(BuTX) 구상에도 부전역이 포함돼 명실공히 부산의 새로운 관문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광역경제권의 핵심이 철도망이라고 한다면 부전역은 부울경 통합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경계를 확장하면 부산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과 동해안 시대의 중심에 부전역이 위치한다. 부산연구원이 2022년 부전역을 동남권의 중심 철도역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부전역 복합환승센터는 서면 도심의 단절된 공간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수도 있다. 2013년 당시에도 부전역 복합환승센터를 통해 부산시민공원과 송상현광장을 연결하는 것으로 설계가 진행됐었다. 부산시민공원은 개장 10년이 지났지만 도심과의 공간적 단절로 유동 인구 유입에 한계를 보인다. 송상현광장은 서울 광화문광장보다 배가량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도로에 둘러싸인 ‘도심 속 섬’으로 남아 그 가치를 다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복합환승센터 건립을 계기로 송상현광장 지하 선큰광장에서 도시철도를 지하로 연결하는 사업도 구체화할 수 있다.
서면 도심재생의 큰 그림에서도 단절된 공간을 연결하는 문제가 가장 큰 숙제다. 공원과 광장은 물론이고 부전시장과 전포카페거리, 메디컬스트리트 등의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있는데 부전역 복합환승센터가 단절된 공간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부전역을 통해 부산을 찾는 관광객도 자연스럽게 부산시민공원이나 전포카페거리 등으로 발길을 들일 수 있다. 오는 6월이면 부산시민공원 내 부산콘서트홀이 개관한다. 개관을 기념한 시범공연 티켓이 예매 시작과 함께 매진되는 등 관심이 뜨겁다. 동남권에서 클래식 공연을 보기 위해 부전역을 통해 부산콘서트홀을 찾는 모습도 상상 가능하다. 인근의 국립국악원도 재조명받을 수 있다.
더불어 부전천과 전포천의 물길을 복원해 동천을 살리고 북항으로 연결하면 서면 도시재생의 큰 그림이 완성된다. 당연히 북항재개발과도 연계되는 그림이다. 정권에 따라 하천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사업이 추진과 무산을 반복해 왔는데 부전역 복합환승센터 사업을 계기로 적극 재검토해 볼만하다.
부전역 복합환승센터 개발은 한 차례 무산의 역사에서 보듯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일이기는 하다. 부산진구청이 100만 명 서명운동에 돌입한 것도 복합환승센터 건립을 위해서는 여전히 KTX 정차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국토부의 국가철도망 계획 등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사안이지만 총력을 다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부전역 복합환승센터가 단순한 환승센터가 아니라 서면의 공간적 시너지를 폭발시켜 도심 부흥을 이끌 신호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5-04-0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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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지역 의사 서울 여자 만나 떠날까 걱정이라니!
세간에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연예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SOLO)’의 한 남성 출연자 이야기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25기의 ‘광수’는 자신을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의 일반 의사로 소개했다. 지역 유일의 개원의라고 밝힌 그는 하루 평균 100명, 지난해 2만 6000명의 환자를 봤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나는 SOLO’ 출연에 “동네 분들이 서울 여자 만나 인제를 떠날까 걱정하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곳을 떠날 수 있냐”는 여성 출연자 질문에 “저밖에 없어 자리를 비울 수 없고 주말에만 연애가 가능하다”고 단호하게 답한다.
‘광수’의 사연이 화제가 된 것은 의사 한 명에 운명이 달린 지역의료의 열악한 현실을 소환했기 때문이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위태위태한 곳이 어디 인제뿐이겠는가. 지금은 의대 신입생 숫자놀음에 정부와 의료계 감정싸움만 남은 걸로 보이지만 애초 의료개혁의 출발점도 지역이었다.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이 내과 전문의를 구하기 위해 3억 6000만 원 연봉에 다섯 차례나 채용 공고했지만 무산됐다는 사연이 알려진 게 2023년이다. 그즈음 산청군뿐만 아니라 지역마다 고액 연봉으로 애원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례가 사회적 이슈였고 이는 윤석열 정부 의료개혁의 명분이 됐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발표하면서 지역의 필수의료를 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겠다는 의지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헬기 서울 이송에서 봤듯이 제2 도시 부산의 응급의료 수준마저 무시당하는 게 지금의 우리 의료 현실이다. 정부가 의대 증원의 대부분을 비수도권 대학에 배분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로 시작된 의료개혁은 의정 갈등과 의료 공백에 따른 환자 고통만 가중한 채 사실상 정부의 백기 투항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열악한 지역의료 현실은 나아지기는커녕 붕괴 속도만 더 빨라지는 형국이다. 읍면보건소 등 의료 취약지역에 근무하는 공중보건의만 해도 2022년 1309명이던 게 2024년 716명으로 줄었다.
의정 갈등의 와중에도 의료의 수도권 쏠림은 더 심화하고 필수의료 공백에 따른 타격도 지역이 상대적으로 더 심각한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인턴·전공의 1672명 가운데 1097명(65.6%)이 수도권 병원에서 근무 중으로 비수도권의 2배에 육박했다. 정부는 전공의의 비수도권 비율을 상향해 수도권과 5대 5로 맞추겠다고 공언했지만 격차는 전공의 사직 사태 이전보다 더 벌어진 것이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정부가 2026년 의대 증원 백지화를 약속하며 의대생과 전공의 복귀를 호소하고 있지만 꿈쩍도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따라 넓어진 문으로 진입한 2025년도 의대 신입생까지 수업 거부에 동참하는 현실은 의료개혁에 대한 일말의 기대마저 꺾게 한다. 이들은 의대 증원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다는 점을 알고도 지원했다. 정부 정책의 수혜 속에 입학해 놓고 이제 와서 무슨 명분으로 정부 정책을 이유로 수업을 거부한다는 말일까. 이런 현실에서 ‘광수’와 같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지역을 지키는 의료인을 앞으로 볼 수 있을까.
2년째 이어지는 의정 갈등은 이제 파국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의료인 양성시스템이 붕괴되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의료계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17일 서울대 의대 일부 교수가 제자의 복귀를 호소하며 성명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최근의 전공의·의대생 집단행동과 관련해 환자에 대한 책임도, 동료에 대한 존중도, 전문가로서의 품격도 찾아볼 수 없다고 개탄했다. 의사 면허 하나로 전문가로서 대접받으려는 모습도 오만하기 그지없다고 직격했다. 의료시스템 개선을 위한 로드맵도, 설득력 있는 대안도 없이 1년을 보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제자들에게 궁극적으로 바라는 게 정부를 반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의료를 개선하는 것인지 물었다. 현재의 투쟁 방식과 목표는 정의롭지도 않고, 사회를 설득할 수도 없어 보인다며 결단을 촉구했다.
이들 교수의 지적대로 의정 갈등의 진짜 피해자는 의사가 아니라 지난 1년 동안 외면당하고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이다. 그 가족들이다. 의료개혁이 단순히 의사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젊은 의료인들의 문제 제기도 이제 많은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파국을 맞기 전에 대학으로, 환자들 곁으로 복귀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의료개혁 파행이 이공계 교육과 국가의 미래마저 망치고 있다는 소리까지 들어서야 될 일인가.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2025-03-1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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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박형준의 선택, 부산의 운명
박형준 부산시장이 대한민국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했다.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자유연대’ 창립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한 것이다. 박 시장은 이 자리에서 밤잠을 아껴 준비 중이라며 소책자 〈대한민국 재건을 위한 명령〉 초안을 공개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대권 행보로 읽힐 수 있는 장면이었다. 박 시장은 “지금으로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며 선을 그었지만, 정치권에서는 여권 잠룡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지금의 복잡한 여권 상황을 감안하면 그런 해석에 더 힘이 실린다. 아무도 윤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입에 올리지 않지만 여권 잠룡들의 움직임은 이미 분주하다.
대권 주자로서 박 시장에 대한 주목도와 여론 지형은 아직 미미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존재감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거론되는 보수 후보들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여권 주자 중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강경 보수’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도 확장성의 한계가 여실해 보이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은 ‘명태균 게이트’로 위태위태하다. 최근 공개 행보를 시작한 한동훈 전 대표는 돌아선 당심의 벽을 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야권 대선 주자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상정할 때 이에 대적할 제대로 된 보수 후보로 박형준 시장이 거론되는 이유다. 합리적 보수로서의 확장성 면에서 박 시장만한 이가 없다는 주장이다. 국회의원 경력과 국정 참여 경험은 윤 대통령의 경험 부족에 따른 참극을 상쇄하는 요소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 시장의 대권 도전을 자극하는 요인은 균형발전의 대의다. 박 시장도 〈대한민국 재건을 위한 명령〉에서 혁신균형발전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가로막고 초저출생의 구조적 원인이며 격차사회를 심화시켜 결국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해치는 가장 큰 요인이 수도권 일극체제와 지방의 소외라는 것이다.
대선의 향방을 결정짓는 것은 시대정신이라고들 한다. 조기 대선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시대 교체와 삶의 교체, 법치 회복과 지성 회복, 분열 극복과 통합 등의 담론들이 오가지만 지금 대한민국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은 균형발전이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망국적 수도권 집중으로 성장잠재력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한 발도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개헌 논의의 중심인 ‘87년 체제’ 극복도 결국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해체하고 지방분권으로 바꿔야 가능한 일이다.
국가 미래가 달린 문제지만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균형발전을 위해 대못까지 박았지만, 지금의 민주당은 그 정신을 까마득히 잊었다. 분권과 균형발전에 대한 무관심은 민주당이 수도권 정당화된 때문이다. 국민의힘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이 수도권 정당이라면 국민의힘은 강남권 정당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 시장의 선택에 대한 기대는 추락하는 제2 도시 부산의 실낱같은 희망이다. 보궐선거로 부산시장에 당선된 후 재선 시장을 지내며 박 시장 스스로 정치적 한계를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모든 권한이 중앙에 집중된 상황에서 변방의 지자체장으로서 좌절도 많았을 것이다.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대담에서는 ‘강남 감각’이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는 하소연까지 했던 그다. 오죽하면 떡을 줄 게 아니라 떡시루를 달라는 이야기까지 했겠는가.
박 시장이 도전에 나서면 지역으로서는 크게 반길 일이지만 실현되기까지 돌파해야 할 장벽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박 시장은 균형발전의 대업에서도 투사라기 보다는 이론가나 이상주의자 이미지에 더 가깝다. 거대 야당 탓이 크지만 산은 부산 이전이나 에어부산 분리 매각,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등에서 돌파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지적도 따른다. 부산의 산업생태계 혁신과 관련해서도 박 시장 스스로 혁신의 파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시민들의 체감과는 거리가 있다.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관철을 내세우며 국회 앞 농성에 들어갔을 때 달라진 박 시장의 모습에 대한 기대의 눈길이 많았는데 아쉽게도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에 묻혀버렸다. 지금 박 시장에게 필요한 게 그런 전투력인지도 모른다. 이미 공고해진 수도권 집중의 아성이 그냥 허물어질 리 만무하다. 지역민의 힘을 똘똘 뭉쳐 싸워야 할 일이다. 균형발전의 깃발을 대선 고지에 꽂을 수만 있다면 부산의 퀀텀 점프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2025-03-0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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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87년 체제 끝내고 지방분권 시대 열자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에서 이어진 탄핵 정국으로 개헌 논의가 불붙었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 독식에 따른 대결과 증오의 정치로 점철된 ‘87년 체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87년 체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6·29 선언으로 대통령직선제 개헌이 이뤄지면서 구축된 헌정 체제를 말한다. 횟수로 따지면 9차 개헌에 해당하고 통치 구조의 변화로는 제6공화국의 시작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9차 개헌까지 39년이 걸렸는데 87년 체제가 유지돼 온 게 37년 세월이다.
우리는 87년 체제를 통해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고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는 민주주의 제도화에 성공했다.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루며 OECD 국가이자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토대가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군부독재 체제 종식에 집중해 형식적 민주 체제는 갖췄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의 본질적 개혁과 민주화 진전에는 한계를 노출하면서 87년 체제를 종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번 탄핵 정국이 아니어도 그동안 개헌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차고 넘쳤다.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과 5년 단임의 권력 구조는 극단적 정쟁을 불러왔다. 3권 분립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은 입법·사법·행정을 압도하는 권한을 가진다. 이 때문에 대통령 선거는 사투를 벌이는 고지탈환전 양상으로 전개된 지 오래다. 국회는 선거철이면 대선 고지전 베이스캠프가 되고 선거가 끝나면 대통령을 보위하는 세력과 끌어내리려는 세력의 극한 투쟁장으로 변한다. 21대와 22대 국회를 이어오며 우리가 목도한 장면이다. 승자 독식의 게임 룰은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끊임없이 부추기고 유권자들도 감염시킨다.
정치는 권력 투쟁에 빠져 국가의 미래는 온데간데없고 세상의 변화에 점점 무감각해진다. 이 때문에 후진적 정치 체제로 인한 사회적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이념 계층 세대 젠더 등 모든 분야에서 화해할 수 없는 수준의 갈등을 노출하고 있는데 이를 해소해야 할 정치는 정파적 이해에 매몰돼 오히려 확대 재생산한다. 정치인 개개인의 자질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헌법 체계의 문제로 귀결된다. 헌법이 사회 통합을 위한 최고 규범으로서 기능을 상실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개헌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2008년부터 개헌 논의가 본격화했지만 정치적 합의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엄밀히 말하면 대통령과 대선 주자들의 이해가 엇갈렸다. 이들이 국가의 미래를 위한 개헌보다 자신의 권력을 더 소중히 여긴 때문이다. 지금이라고 달라진 게 없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개헌 문제를 꺼냈지만 이 대표는 추경 문제를 거론하며 동문서답했다. 탄핵 정국을 물타기 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의 미래를 발목 잡는 낡은 옷을 언제까지 입고 갈 수는 없다.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과 기후 위기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 완전군장을 하고 국회로 진입하는 계엄군과 휴대폰을 들고 이를 막아선 시민들의 부조화된 모습이 바로 1980년에 머문 정치 체제로 2024년에 맞서고 있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고 문화 강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비상계엄과 탄핵 상황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개헌의 방향은 당연히 제왕적 대통령제 해소와 지방시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모든 인재와 자본, 권력을 수도권에 몰빵하는 방식으로 빠른 성장을 이뤘지만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 망국적 수도권 집중과 그에 따른 세계에서 유례없는 저출산은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었다. 한국은행은 19일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20년 후반 1.8%까지 떨어지고 2040년대에는 1%에도 미치지 못하는 0.6%로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장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에 혁신 거점을 만드는 구조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국가의 미래는 없다. 그 출발점이 지방분권형 개헌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 전환과 함께 중앙의 권한을 전폭 이양해 지자체를 지방정부 수준으로 만들고 국회도 지역 대표형 상원제를 두는 양원제로 바꿔야 한다. G7 국가 모두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고 GDP 상위 15개 국가 중 양원제를 채택하지 않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헌법 개정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발족하고 지난달 27일 헌정회 주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대통령 4년 중임과 양원제를 결합한 지방분권국가가 개헌 방향으로 제시됐다.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가의 미래에 집중하면 헌법이 가야 할 길이 보이는데 늘 발목을 잡는 게 정치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2024-12-1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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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이 특별함을 잃기 전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1심 선고로 정국이 격랑에 휩싸였다. 당장 민주당에서는 ‘사법 살인’ ‘법 기술자들의 사악한 입틀막’ 등 격앙된 말들이 오간다. ‘비명계 움직이면 죽이겠다’로 상징된 민주당 내부 균열의 살벌한 조짐은 위태하게까지 느껴진다. 때를 만난 국민의힘은 ‘사필귀정’을 입에 올리고 ‘재판지연방지 TF’를 꾸리는 등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정국 반전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사생결단의 정치가 연말 정국을 달구게 된 것이다.
이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종심에서 1심 형량이 유지되면 향후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하는 무거운 형량이다. 정치인의 선거 중 허위사실 공표에 징역형이 선고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공직선거법이 낙선자를 엄하게 처벌하지 않는다는 점에 비춰서도 과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유죄 판결이 내려진 발언들은 이 대표가 대선 과정에서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해명하며 한 것이다. 양형에 대한 불만에 앞서 재판부가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부터 느끼는 게 마땅하다.
정부와 여당이라고 사정이 크게 나을 리 없다. 명태균 씨 사태로 촉발된 김건희 여사 공천·국정 개입 의혹과 윤석열 대통령 공천 개입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명쾌하게 정리하고 가지 않으면 두고두고 국정 발목을 잡을 사안이다. 혹여 이재명 사법 리스크로 대충 덮고 가자고 하는 날에는 화를 더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여당이 혁신할 기회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고조될수록 민주당 공세는 더 거세질 것이다. 서로서로 죽이는 게임으로는 한 발짝도 앞으로 전진할 수 없다.
25일은 이 대표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일이다. 진행 중인 재판만 4건인데 검찰은 법카 사적 유용으로 이 대표를 추가 기소하며 불난 민주당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윤 대통령 국정 후반기 정국의 상수로 자리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국가 미래에 먹구름이 드리운 엄중한 시기를 정쟁으로 날을 새우며 보낼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미국만 위대하게 할 것’이라는 트럼프의 공언은 대미 수출에 목을 매는 우리 경제에 치명상을 예고한다.
더 근본적으로 파고들면 성장잠재력이 추락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망국적 수도권 집중과 초저출생으로 상징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외 충격이 아니더라도 안으로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정치권이 총력을 동원해서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하는데 대통령의 낮은 국정 지지도와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혔다.
윤 정부 출범 초만 해도 서울과 부산의 두 바퀴로 국가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며 균형발전에 올인하는 분위기였다. 그 모멘텀을 위해 월드엑스포 유치에 국가 역량을 총집결했지만 좌초했다. 대안으로 내세웠던 게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인데 이제 극단적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표류 중이다.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게 1년 전이니 윤 대통령이 글로벌 허브도시를 공언한 지도 꼭 1년인데 특별법은 21대와 22대 국회를 이어오며 잠자는 중이다.
그나마 중앙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복합리조트’가 빠지는 등 각종 특례 조항에 대한 수정이 거듭돼 실효성 논란까지 더해진 마당이다. 벼랑 끝에 선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는 파격적 규제 혁파가 필요한데 중앙 관료들의 견제에 특별법의 칼날이 무뎌진 것이다. 그래도 글로벌 허브도시의 토대라도 놓자며 시민들이 서명운동까지 해 가며 법 통과에 목을 매고 있는 실정이다.
그 와중에 전남특별자치도법, 전북특별자치도법, 경기북부특별자치도법 등 지자체마다 유사한 특별법을 발의하며 부산의 뒷덜미를 잡는다. 이쯤 되면 노무현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혁신도시 조성이 지역별 형평성만 고려해 효과를 극대화하지 못했다는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에 판교형 테크노밸리를 만들겠다며 부산, 울산, 대구, 광주, 대전에 골고루 도심융합특구를 지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 하겠다는 것은 때론 아무것도 제대로 안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의 성장잠재력을 회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혁신의 출발지로 부산을 키워야 하는데 정부의 의지는 점점 희미해져 가고 정치권은 발목만 잡는다. 결국 기댈 곳은 부산 정치권인데 사생결단의 결의가 보이지 않는다. 지역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민의힘 책임이 크지만 부산 민주당의 존재감 부재도 적지 않은 원인을 제공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가균형발전의 시계추를 되돌리기는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2024-11-19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