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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루체른 페스티벌이 열리는 KKL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
KKL(Kultur und Kongresszentrum) Lucerne은 루체른 문화 컨벤션 센터를 일컫는 말이다. 스위스 루체른은 독일어를 쓰는 지역이다 보니 현지에서는 대부분 KKL 카카엘이라고 일컫는다.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인 장 누벨에 의해 1998년 완공되었는데, 6년 앞서 지은 마드리드의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처럼 긴 처마가 있는 캔틸레버 지붕 아래에 콘서트홀, 루체른홀 그리고 의회와 미술관이 있는 세 개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장 누벨은 처음 배 모양의 콘서트홀을 계획했으나 도시계획 및 생태학적 이유로 실현되지 못한 수정안이 현재의 KKL이다. 물에 다가갈 수 없다면 물이 다가오도록 건물 안으로 직접 이어지는 수로와 호수 너머로 뻗어 있는 캔틸레버 지붕을 두고 건축가 장 누벨은 외부를 내부로, 내부를 외부로 끌어들이는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위해 포용성이라는 용어로 디자인 컨셉을 이야기 한다. 덕분에 루체른 어디서 바라 보더라도 KKL은 현대적 외관을 지니고 있지만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조화롭다.
KKL은 해마다 8월 중순부터 한 달간 열리는 유럽 최고의 관현악 축제, 루체른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이며 시즌 중에는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상주해 있다. 또한 콘서트홀은 음향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는 공연장이기도 하다. 신축 공연장임에도 20세기 중반부터 유행하던 빈야드 형태가 아니고, 슈박스 형태의 지니고 있으며, 전체 객석 1898석, 1만 9000㎥의 넒은 체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뛰어난 부드러운 잔향을 만들어낸다. 특히 홀 내부는 개폐 형식으로 볼륨과 잔향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반향실(Reverb Chamber)을 갖추고 있어 음악 장르에 맞게 유연하게 잔향과 불륨을 조절할 수 있다. 덕분에 대편성 교향곡부터 독주곡까지 다양한 음악에 최적화된 음향을 제공한다.
KKL에서 만나는 최고의 프로그램은 역시 루체른 페스티벌이다. 1938년 루체른 인근 트리브센에 있는 작곡가 바그너의 빌라 정원에서 열린 갈라콘서트가 시작이다. 당시 지휘자였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유럽 전역의 다양한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결성했는데, KKL 완공 이후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에 의해 동일한 구성으로 2003년 LFO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졌고,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아바도 사후는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가 2026년까지 계약되어 있다. 축제는 8월과 9월에 열리는 여름축제를 메인으로 3월에 열리는 부활절 축제와 11월에 열리는 가을축제로 매년 3차례 진행된다. 아바도 이후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지휘하는 말러 사이클이 해마다 앨범으로 발매되어 전세계 클래식팬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올 해의 경우는 개막공연으로 말러 10번이 연주되어서 화제가 되었다.
2025-08-2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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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바그너 단 한 사람을 위한 축제극장
독일 최고의 음악 축제로 여겨지는 '바이로이트축제'는 전 세계 모든 클래식 공연 중 가장 티켓 구하기가 까다롭다. 반드시 우편으로 신청해야 하며 장기간 대기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완화되었지만, 한동안은 개인적으로 구매하려면 수년에서 10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물론 일부 티켓 대행사를 통해 구할 수도 있지만, 장당 1000유로가 넘는 대행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또한 티켓에는 반드시 기명이 되어 있어, 양도 시 축제극장 티켓 사무실에서 이름을 바꾸어야 하는 절차상의 어려움도 있다. 때로는 바그너 협회를 통해서 구할 수도 있다.
독일 바이에른주 북부 인구 7만 명의 작은 도시 바이로이트에서는 해마다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바이로이트축제가 열리는데, 작곡가 바그너의 오페라만이 무대에 올려진다. 그것도 바그너의 유언에 따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 로엔그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니벨룽겐의 반지 그리고 파르지팔만이 무대에 올라간다. 음악극이라는 자신만의 음악적 형식이 구축되기 전 초기작품은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이는 1876년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 중 라인의 황금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베르디, 도니제티, 로시니 오페라 축제에서도 해당 작곡가의 공연만이 상연되지만, 이는 축제기간에 한정된다. 평상시는 다양한 레퍼토리의 공연과 오페라가 공연된다. 물론 푸치니 축제가 열리는 토레델 라고의 극장에서는 푸치니의 작품만이 공연되지만, 조립식 팝업극장이다. 하지만 객석 수 1927석의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오로지 바그너의 오페라만이 무대에 오르며, 바그너의 유지에 따라 바그너 가문이 현재까지도 축제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독일의 건축가 고트프리드 젬퍼에 의해 설계되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극장과 다르게 오페라 가수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오케스트라 피트가 무대 하부에 깊숙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기획부터 설계까지 관여한 바그너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이다. 또한 한여름에 개최되는 축제임에도 일체의 공조 시설이 없다. 냉방 없이 6시간이 넘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만나야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바이로이트축제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150년 이상 사랑받고 있다. 바그너 오페라를 좋아하는 이른바 바그네리안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올해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단연 로엔그린이다. 덩달아 가장 표를 구하기 어려웠던 공연 중 하나였다. 독일 적통 지휘자 크리스티앙 틸레만이 지휘하고, 표트르 베찰라가 로엔그린 역을 맡아서 화제가 된 작품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베찰라 대신 클라우스 플로리안 포크트가 무대에 올랐지만, 문제는 없었다. 포크트는 오랫동안 바이로이트축제와 인연을 맺어온 스타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오후 4시에 시작한 공연은 10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긴 시간 힘들었던 관람 환경에도 공연 마치고 30분 이상 박수갈채가 펼쳐졌다. 역사와 전통이 이어지는 축제가 부러웠다. 이상훈/아트컨시어지 대표
2025-08-1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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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한여름 스키장에서 만난 베르비에 페스티벌
스위스 그슈타드(Gstaad)와 베르비에(Verbier) 페스티벌 그리고 미국 콜로라도주의 애스펜(Aspen) 뮤직 페스티벌은 한여름 열리는 대표적인 음악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세 곳 모두 스키 리조트에서 축제가 열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세계적인 겨울 리조트로 명성이 높은 곳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라도 눈이 녹아내리는 여름의 경우 리조트의 좋은 숙소들은 유휴시설이 되고 만다. 스위스 발레주의 남서부에 위치한 해발 1530m 베르비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최고의 오프 피스트(Off-Piste), 오지 스키 리조트인 이곳에 음악 축제가 시작된 이유이다.
스웨덴 출신의 음악 기획자 마틴 엥스트롬(Martin Engstroem)이 베르비에 페스티벌 설립자 겸 예술감독을 맡아 30년 넘게 축제를 이끌고 있다. 그는 1989년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개관 당시 컨설턴트로 활약하면서 지휘자 정명훈이 예술감독으로 선임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후 파리를 떠나 소프라노인 아내 바바라 헨드릭스와 스위스로 이주하게 되었고, 3년의 준비 끝에 1994년 베르비에 페스티벌과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스위스 은행 UBS와 네슬레사의 후원을 받으며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음악 축제로 자리매김 시킨다.
7월 중순에서 8월 초까지 20여 일간 펼쳐지는 축제의 메인 공연장은 축제 기간 설치되는 1400석 규모의 텐트 극장(Salle des Combin)과 400석 규모의 작은 교회(Eglise)에서 번갈아 공연된다. 스위스 산골 마을의 임시 공연장에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의 연주가 끊이지 않는 게 베르비에의 매력이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미샤 마이스키, 예프게니 키신 등이 해마다 빠지지 않고 찾는 주요 연주자들이다. 또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된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VFO)가 호스트를 맡아 연주를 담당하고 있는 것 또한 매력이다. 샤를 뒤투아, 발레리 게르기예프 등의 마에스트로들이 지휘봉을 맡으며 최고의 협연자들과 함께 축제의 중심이 된다. 올해의 경우는 신예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와 임윤찬이 함께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 공연이 전체 프로그램 중 가장 먼저 매진되기도 하였다. 또한 마을 내 영화관과 호텔 라운지 등에서는 거장들과 아카데미 참가자들이 함께하는 마스터클래스가 펼쳐지는데,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바리톤 토마스 햄슨의 레슨을 일반인이 참관할 수 있는 것 또한 베르비에 페스티벌의 묘미이다.
화려한 축제극장이나 근사한 공연장, 베로나의 아레나와 같은 특별한 베뉴 없이도 차별된 기획과 프로그램으로 축제와 아카데미, 유휴시설 활용까지 베르비에 페스티벌은 필자가 손꼽는 한여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음악축제이다.
2025-07-3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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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베로나 오페라 축제에서 만난 ‘아이다’
베로나 오페라 축제는 로마 시대의 원형경기장인 베로나의 아레나(Arena di Verona)에서 해마다 6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열린다. 시작은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13년 8월 13일 열린 오페라 ‘아이다’(Aida)였다. 초연은 큰 화제가 되었는데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와 피에트로 마스카니, 극작가 아리고 보이토,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유명 인사도 참석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로마의 카라칼라(Caracala) 욕장, 마체라타의 스페리스테리오(Sferisterio), 그리고 푸치니 페스티벌이 열리는 토레 델 라고(Torre del Lago) 등이 한여름을 수놓는 이탈리아의 야외 오페라 축제인데, 역사나 규모 면에서 단연 최고는 역시 베로나 오페라 축제이다. 베로나의 아레나는 역사지구 초입 브라 광장(Piazza Bra)에 위치하고 있다. 2만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현존하는 가장 잘 보존된 원형경기장이라는 장소성이 큰 역할을 한다.
2013년은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첫 오페라가 선을 보인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 해는 1913년 첫 공연이었던 ‘아이다’ 초연 버전이라는 이름으로, 연출자 지안 프랑코 데 보시오의 손에 의해서 복원 제작돼 화제가 되었다. 이후 올려지는 ‘아이다’는 1913년 버전이라는 타이틀로 관객몰이를 했는데, 해마다 6~7편이 올려가는 베로나 오페라 축제의 여러 오페라 중 최고의 인기 작품이다.
실제 2013년은 오페라 축제 100주년이긴 하지만, 100번째 오페라 축제는 아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코로나 탓에 10여 차례나 행사를 걸러 실제 100번째 축제는 2023년 개최됐다. 제100회 베로나 오페라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버전의 ‘아이다’가 공개되는데,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소프라노 안나 넵트랩코가 암네리스 역을 맡아 큰 화제가 되었다.
오페라 연출자인 스테파노 포다(Stefano Poda)는 올해와 내년에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다시 공연될 ‘아이다’ 프로덕션의 감독이자 세트 디자이너를 맡았다. 그의 무대는 투명성과 조명 효과, 정교한 의상이 특징이다. 배경인 이집트의 상징적인 묘사로, 이미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 필자는 이번 축제에서 13번 열리는 ‘아이다’ 중 4번째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개념적 통일성을 찾는 과정에서 포다는 안무, 무대, 의상, 조명을 잘 활용했다. 그가 오페라 연출자임과 동시에 무대, 의상, 조명 디자이너이며 안무가라는 이력이 십분 활용됐다. 하지만 2막 개선행진곡을 퍼레이드 대신 군무로 처리한 부분은 못내 아쉬웠다. 그럼에도 포다의 ‘아이다’는 새로운 백년을 준비하는 베로나 오페라 축제의 과감한 도전이었다.
2025-07-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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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프리츠커상 건축가 8명을 만나는 노바티스 캠퍼스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호수와 산, 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스위스지만, 늘 볼품없는 도시는 바젤이었다. 하지만 그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반전이 있다. 해마다 6월이면 아트 바젤이 열리고, 도시 구석구석 근사한 현대미술관들이 있으며 문화유산은 적지만, 1459년에 설립된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바젤대학이 있다. 아트바젤이 바젤시에 현대미술이라는 컨텐츠를 안겨주었다면 바젤대학은 생물학을 바탕으로 하는 의학과 약학 연구자들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었다. 노바티스(Novartis), 로슈(Roche)와 같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본사가 바젤에 존재하는 이유다.
공교롭게도 이들 제약회사의 본사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는데, 2022년 준공된 로슈의 쌍둥이 빌딩은 바젤에서 활동하는 헤어초크 드 뫼롱이 디자인했다. 더욱 흥미로운 건 노바티스 바젤 본사 캠퍼스 프로젝트의 경우 프랑크 게리, 알바루 시자, 마키 후미히코, 안도 다다오, 라파엘 모네오, 헤어초크 드 뫼롱, 세지마 카즈오와 니시자와 류에 유닛인 SANNA(사나), 그리고 데이비드 치퍼필드까지 무려 8회의 프리츠커 수상 건축가들이 노바티스 캠퍼스에 작업을 마쳤다.
한 부지에 이렇게 많은 스타 건축가들이 작업을 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인근 도시 독일 바일 암 라인에 위치한 비트라 캠퍼스와 남프랑스 액상 프로방스 근교 와이너리인 사토 라코스테가 견줄만한데 각각 7명과 6명의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들이 참여했다.
오래동안 노바티스 캠퍼스는 연간 두 번 밖에 건축 투어를 하지 않았기에 1년 전에도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투어 프로그램을 열어서 노바티스 캠퍼스 내부를 대중에 공개한다. 필자는 유럽 일정 중 하루 노바티스 캠퍼스를 방문할 목적으로 투어 일정에 맞추어 바젤을 찾았다. 제약회사의 본사와 연구단지이다보니 건물들이 건축가의 개성보다는 기능적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건축물 내부를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캠퍼스 그린이라는 조경 공간과 연계된 노바티스 캠퍼스의 대표적인 교류 공간인 프랑크 게리의 파브릭 스트라세 15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내부에는 오디토리움과 리딩 홀, 러닝 팩토리가 있으며, 1층에는 식당, 카페가 배치되어 있다.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단지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 식당과 카페라는 원칙 때문이다. 유일하게 유니크 한 외형을 지닌 이 건물은 개방성과 함께 ‘Spaces Flowing Together, 흐르는 공간’을 컨셉으로 디자인했다. 캠퍼스와 도시가 만나는 면접부에 위치하면서 노바티스라는 기업 이미지를 결정하는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다.
2025-07-0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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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쇼스타코비치 페스티벌
2025년은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사망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해 전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이 이번 시즌 쇼스타코비치를 레퍼토리로 연주 일정이 잡혀있다. 프로코피예프와 더불어 현대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인 그는 열아홉의 나이에 첫 교향곡을 작곡한 이래로 15개의 교향곡, 5개의 협주곡, 다수의 피아노곡과 실내악을 남겼으며 성악과 합창 그리고 오페라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오늘날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를 넘어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음악사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단언컨대 올해 쇼스타코비치를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지난달 15일부터 보름간 열렸던 쇼스타코비치 페스티벌일 것이다. 게반트하우스는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가 1991년 독일 통일 후 처음으로 연주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인데, 이번 축제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호스트로 미국을 대표하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함께 참여했다. 더 이상 신예가 아닌 거장의 반열에 들어선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두 개의 명문 오케스트라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도 이번 축제의 묘미이다.
게반트하우스(Gewandhaus)는 직물회관 또는 포목회관을 의미한다. 1781년 라이프치히 양복 조합 소속 상인들이 오래된 무기고를 사들여, 1층은 직물 전시장, 2층은 500석 규모의 콘서트홀로 만들어 공연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후 1884년 새로운 게반트하우스라는 이름으로 1700석 규모의 공연장이 개관하면서 당대 최고의 음향을 가진 공연장으로 우뚝 선다. 이 시기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브루노 발터와 같은 당대 최고의 지휘자들이 지휘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 전소되었고, 세 번째 게반트하우스는 1981년 종전과 다르게 빈야드 형식의 객석 구조를 가진 1900석 규모의 콘서트홀로 지금의 자리인 라이프치히 아우구스투스 광장에 개관한다. 게반트하우스는 콘서트홀 이름임과 동시에 독일을 넘어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이름이다. 홀 내부에는 라틴어로 ‘Res severa verum gaudium’(진정한 즐거움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라고 새겨져 있는데 게반트하우스의 모토이다. 이는 공연장뿐 아니라 상주 단체로 활동하는 모든 악단에도 적용돼 있다.
독일 작센주의 가장 큰 도시인 라이프치히는 교육도시로 정평이 나 있지만, 음악 도시이기도 하다. 작곡가 바그너가 태어났으며, 바흐가 봉직했던 토마스 교회와 슈만과 클라라가 신혼집을 꾸렸던 곳이기도 하다. 멘델스존이 살았던 집은 현재는 음악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2025-06-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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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쇠퇴한 항구, 도시 미래 되다… 뒤셀도르프 미디어하펜
뒤셀도르프(Dusseldorf)라는 이름은 강가(Dussel)의 마을(Dorf)이라는 뜻으로, 라인강에 면해 있어 함부르크와 더불어 독일 내 해상교통의 요지이다. 슈투트가르트에 이어 독일 내 인구순으로 7번째 도시이며,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도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로, 1인당 지역 내 총생산은 약 9만 7000유로다. 독일 평균인 5만 4000유로의 두 배에 조금 못 미친다. 금융, 패션, 통신, 광고, 무역, 박람회를 비롯한 관광 산업이 두드러지며, 특히 유럽 최대의 쇼핑 및 광고·마케팅 중심지 중 하나로 꼽힌다. 지리적으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벨기에 브뤼셀과 200km 떨어져 2시간 남짓이면 도달하기에 독일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항구 도시로 발달했지만 70년대에는 도시 내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낮은 곳으로 쇠퇴한다. 라인강에 면한 부두는 수십 년 동안 번영했지만, 강관을 만드는 만네스만 공장이 폐쇄하면서 거래량이 크게 줄었다. 항구의 활용 공간이 축소됨에 따라 뒤셀도르프 도시계획청은 1974년 미래를 위한 항구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데 실제로 계획이 실행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리게 된다. 그 결과 부두 동쪽 지역이 재개발되기 시작하여 미디어, 디자인, 패션 기업 등 서비스 부문 기업들이 유치되었다. ‘미디어하펜(Medienhafen) 프로젝트’라 명명된 것은 이 항구에 처음 입주한 회사가 TV와 라디오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서독일방송국이었고, 뒤셀도르프 지역 라디오 방송국 안텐 뒤셀도르프 또한 항구 지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렌조 피아노, 스티븐 홀과 같은 스타 건축가의 건물을 중심으로 26개의 신축, 개축 건물이 미디어하펜에 위치해 있는데, 가장 눈에 뛰는 건 역시 건축가의 이름을 딴 ‘게리 빌딩’이라고 불리우는 ‘노이어 촐호프’(Neuer Zollhof)이다. 뒤셀도르프 항구 북쪽 끝에 위치해 도시와 항구가 연결되는 매개 역할을 한다. 건물 전체는 마치 조형물 같은 구조물로 구성돼 있다. 이질적 외형이라는 유사성은 있지만, 시공 방식은 각기 다르다. 클링커 마감, 스테인리스 스틸 외관, 흰색 회반죽으로 재료 또한 이질적이며 층 또한 제각각이다. 다만 돌출된 창틀은 모든 건물 구획의 표면에 고르게 분포돼 전체 건물 앙상블의 시각적 통일성을 뒷받침한다. 뒤셀도르프 미디어하펜은 이제 더 이상 쇠퇴한 항구가 아니라 라인강이라는 친수공간을 적극 활용한 뒤셀도르프의 얼굴이자 독일의 자랑이 되었다. 또한 709개의 기업과 825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약 16억 유로의 투자유치 효과를 거뒀다. 도시경쟁력 확보의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2025-06-0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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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30년 만에 열리는 암스테르담 말러 페스티벌
콘세르트헤바우(Concertgebouw)는 네덜란드어로 ‘콘서트홀’을 뜻한다.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는 음향이 뛰어나기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공연장이다.
동명의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가 상주해 있는데, 1988년 네덜란드 여왕인 베아트릭스로부터 왕립 칭호를 받아 현재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가 정식 명칭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과 더불어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국의 유명 클래식 잡지인 도이치 그라모폰에서는 RCO를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선정한 바도 있다.
2025년 5월 8일부터 18일까지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에서 열흘간 말러 페스티벌이 열렸고, 작곡가 말러에게 바치는 헌정의 의미로 정상급 오케스트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클라우스 메켈레가 지휘하는 RCO를 시작으로 이반 피셔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파비오 루이지의 NHK 교향악단, 얍 판 츠베덴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그리고 키릴 페트렌코의 베를린 필하모닉까지 열흘간 말러 교향곡 1번부터 10번 그리고 대지의 노래를 차례로 연주한다.
1920년 지휘자 말러의 콘세르트헤바우 데뷔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첫 말러 페스티벌 이후 암스테르담 관객들의 말러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고, 1995년 콘세르트헤바우에서 두 번째 말러 페스티벌이 개최되었다. 최고의 오케스트라들이 한자리에 모여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대순으로 공연했는데 이는 음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 ‘말러 사이클’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연주단체에서 전곡 연주가 성행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말러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비슷한 포맷의 말러 페스티벌이 열려 화제가 되었다.
30년 만에 다시 개최되는 말러 페스티벌은 시작 전부터 화제였다. 2년 전에 오픈한 전 회 연주 티켓은 발매와 동시에 매진이 되었고, 실제로도 만석을 기록했다. 인기가 있는 말러 교향곡 5번의 경우, 추가로 연주회 일정을 만들어 같은 악단이 3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두 차례 공연하는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부러운 대목이다. 다음 달이면 부산시민공원 내에 부산콘서트홀이 개관해 지역에서도 본격적인 클래식 전문 공연장 시대가 열린다. 시범 공연과 개막 연주가 일찌감치 매진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콘서트홀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크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하드웨어가 완성되었으니, 본격적으로 내용을 구성할 차례이다.
2025-05-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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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루이비통 재단에서 만난 데이비드 호크니
LVMH(루이비통 모에샹동 헤네시)그룹의 CEO인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는 2001년 건축가 프랭크 게리를 만나 프랑스 파리 16구에 위치한 불로뉴 숲 외곽에 루이비통 창조재단의 새 건물을 짓는 계획을 처음 이야기했다.
이 프로젝트는 2006년에 처음 대중에게 공개됐고, 당시 건축예산으로 1억 유로(한화 1400억 원)가 소요될 예정이라 발표했다. 하지만 훗날 예산의 8배에 가까운 7억 9000만 유로가 들었다고 공개됐다. 진행 과정에서 지금의 루이비통 재단으로 이름이 바뀌고, 2010년 초에 개관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불로뉴 공원을 소유한 파리 시가 2007년에야 건축 허가를 내주면서 프로젝트는 상당 기간 지체됐다. 2008년 3월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심지어 불로뉴 공원을 보호하는 단체에서 행정소송을 제기해 허가가 취소되었다가 프랑스 의회가 특별법을 통과시켜 사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또한 루이비통 재단은 설계 단계부터 혁신적인 기술을 요구했기에 항공 산업에 특화된 3D 설계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서 해체주의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디자인한 독특하고 부정형적인 외형을 구현해 냈다. 이는 건축 비용이 8배나 초과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2012년, 유리 돛 컨셉으로 각기 형태가 다른 3584개의 적층 유리 패널이 강화 섬유 콘크리트로 제작된 매스를 감싸는 현재의 모습을 드러냈고, 루이비통의 2015 봄/여름 패션쇼로 먼저 대중에게 공개 후 2014년 10월 개관했다. LVMH와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소유한 작품의 조합으로 구성된 루이비통 재단의 컬렉션에는 페르낭 레제와 피카소부터 장 미셸 바스키아, 제프 쿤스, 올라프 엘리아슨까지 현대미술을 망라하고 있다.
경매회사 크리스티를 소유하고 있으며, 구찌를 필두로한 패션업계의 라이벌인 케링그룹의 프랑수아 피노 회장이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함께 파리 상업거래소 건물을 2021년 피노 컬렉션으로 개관하게 된 것도 루이비통 재단의 영향이 크다는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패션계와 더불어 예술작품 컬렉터로서도 경쟁 관계에 있다.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인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전시가 지난 4월 개막했고, 9월 1일까지 5개월 동안 루이비통 재단에서 열린다.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400여 점을 출품, 작가 개인전으로는 최대 규모의 전시로 루이비통 재단의 11개 전시실을 모두 채웠다. 개막 즈음 방문할 수 있었는데 최근 만난 호크니 전시 중 단연 최고였다.
현재 루이비통 재단은 LVMH의 자금 지원을 받아서 운영되고 있으며, 2070년 소유권은 파리시로 넘어간다.
2025-05-0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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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부활절 주간 바덴바덴에서 만난 조성진과 베를린필
유럽 대부분의 축제는 7~8월 여름에 집중돼 있지만, 부활절 기간에 맞춰 열리는 음악축제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위스 루체른 부활절 축제와 독일 바덴바덴 부활절 축제이다.
바덴바덴 축제극장(Festspielehaus Baden Baden)에서 열리는 이번 부활절 축제는 지난 10여 년간 호스트 오케스트라로 함께 해 온 베를린 필하모닉의 마지막 해이다. 현 음악감독인 키릴 페트렌코를 메인으로 밤베르크 심포니의 음악감독인 야쿠프 흐루샤가 이번 부활절 축제 기간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를 맡는다. 가장 눈에 뛰는 프로그램은 단연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협연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이었고, 일정에 맞춰 찾을 수 있었다.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바덴바덴은 온천도시로 인구가 5만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축제극장은 객석 수 2500석으로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연장이다. 옛 철도역을 포함한 부지에 1998년 4월 개관했는데, 역사는 티켓 매표소와 레스토랑으로 쓰고 있다. 그 옆에 증축한 축제극장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건축가 빌헬름 홀츠바이어가 설계를 맡았다. 도시 인구에 반해 큰 공연장도 놀라운데 더욱 인상적인 건 사립 문화재단인 축제극장 바덴바덴이 민간자금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설립 과정에서 일부 공적자금이 조달되기는 했지만 2000년부터 보조금 없이 운영되는 독일 내 유일한 공연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부 건축물 유지관리 비용은 바덴바덴 시와 주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그럼에도 재정자립도가 높은 것은 전체 예산 중 7할을 티켓 판매와 케이터링 그리고 미디어 판권으로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바덴바덴 축제극장은 자체 여행사를 가지며, 바덴바덴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프로그램이 오페라, 발레, 클래식 연주회임에도 평균 유료 객석 점유율이 85%에 달하는 것도 이런 적극적인 마케팅 덕분이다.
또한 1600개에 달하는 스폰서 그룹과 2000명이 넘는 후원자들이 해마다 800만 유로를 프로그램 운영비에 지원하고 있기도 한데, 이는 전체 예산은 30%에 달한다.
인구 5만의 바덴바덴이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기는 어렵다. 당연히 상주단체는 없고, 올해 계약이 만료되기는 하지만 베를린 필하모닉이 해마다 호스트 오케스트라 역할을 해 왔다. 내년에는 신예 클라우스 매켈라가 이끄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RCO)와 말러 챔버 오케스트라가 대신한다. 그리고 피아니스트 엘렌 그리머, 메조 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가 라인업에 들어와 있으며, 1년 전인 현재 이미 티켓 판매를 시작했다. 바덴바덴 축제극장은 현재 부활절 축제를 포함 7개의 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매번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다.
2025-04-2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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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빈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만난 임윤찬
1913년에 개장한 빈 콘체르트하우스(Wiener Konzerthaus)는 빈 3구 로트링거슈트라세에 있다. 1870년 완공된 뮤지크페어라인과는 불과 40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어째서 한 도시에 불과 한 세대만에 콘서트홀이 추가로 필요했을까? 뮤지크페어라인(Musikverein)을 무대로 활동하는 빈 필하모닉의 경우는 빈 악우협회(Gesellschaft der Musikfreunde)에 우선적으로 티켓이 돌아간다. 현재까지도 이어오는 전통이다. 그래서 빈에서 빈 필하모닉 티켓을 구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빈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만날 수 있는 빈 심포니의 경우는 누구나 언제든지 공평하게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모두를 위한 콘서트홀’이 모토이기 때문이다. 1933년부터 빈 시의 지원을 받고있는 빈 심포니의 역할 또한 그러하다. 1890년 지금의 자리에 음악축제를 위해 다목적 건물을 짓기로 계획했는데, 뮤지크페어라인 보다 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문화적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처음 계획은 복수의 공연장, 아이스 스케이트장, 자전거 클럽이 포함되었고, 올림픽을 염두에 둔 메인 야외 경기장은 4만 명을 수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계획은 축소되었고, 빙상장과 몇 개의 건물만이 남게 되었다. 야외 경기장 부지는 현재 인터컨티넨탈호텔이 들어서 있는데, 처음 계획의 부지가 얼마나 넓었는지 알 수 있다. 1913년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가 참석한 가운데 콘서트홀이 개장했고, 빈 심포니의 갈라 콘서트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곡과 베토벤 합창이 연주되었다.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라는 빈 콘체르트하우스의 정신은 개관연주부터 드러난 셈이다. 빈 필하모닉과 빈 심포니는 지금껏 빈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해마다 여름이면 각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호스트 오케스트라로 활동하고 있다.
매번 빈 심포니의 연주에 맞추어 방문했던 빈 콘체르트하우스. 이번엔 피아니스트 임윤찬 리사이틀에 맞춰 찾았다. 흥미로운건 애초에 마오 후지타, 게릭 올슨 등과 함께 700석 규모의 모차르트 홀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삽시간에 매진시킨 임윤찬의 티켓 파워는 결국 날짜를 바꾸어 1865석 대극장에서 공연하기에 이른다. 마침 25/26 시즌 프로그램이 발표되었는데, 빈 콘체르트하우스 대극장에서 예정되어 있는 피아노 리사이틀은 안드라스 쉬프, 마르타 아르헤리치, 루돌프 부흐빈더, 그리고리 소콜로프가 라인 업에 있다. 약관의 임윤찬이 어느새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웠다. 빈 콘체르트하우스의 음향은 명불허전, 이미 음향이 좋기로 정평이 난 뮤지크페어라인 못지않다. 이날 임윤찬이 들려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25-04-1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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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고미술과 명화가 거래되는 마스트리흐트 테파프
프리즈(Frieze)가 2022년 국내에 상륙하면서 아트페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과 동시에 한국 시장도 주목받고 있다. 이뿐 아니라 아트부산, 부산국제화랑 아트페어(BAMA) 같은 지역 아트페어도 십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트바젤, 프리즈와 함께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테파프(TEFAF)가 열리는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마지막 날 행사장을 찾았다. 생경한 지명인 마스트리흐트시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며 국토의 남쪽 끝자락 국경이 반도처럼 돌출되어 있는 곳에 있어 독일, 벨기에와 국경이 맞닿아 있다. 좌우로 브뤼셀, 뒤셀도르프, 쾰른 등의 주요 도시와의 거리가 불과 100km. 한 시간이면 닿는 교통의 요지이다.
유럽미술박람회(The European Fine Art Fair)의 약자인 테파프(TEFAF)는 마스트리흐트에서 1988년 처음 문을 열었다. 아트바젤, 프리즈와 가장 큰 차별점은 고미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망라한다는 점이다. 이 중에서도 마스터피스, 즉 거장들의 명화를 거래하는 시장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올해 가장 화제가 되었던 구스타프 클림트, 디에고 벨라스케스와 같은 작품이 거래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구매자가 개인 컬렉터 뿐 아니라 주요 미술관, 박물관인 경우도 있다. 이밖에 고서, 골동품, 보석, 가구 등도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참가 화랑들이 작품 설치를 마친 직후 바로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엄격한 심사를 거친 후 작품 이력을 검증받고 또 작품성까지 인정된 후에야 비로소 전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팝업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세련된 전시 부스도 테파프만의 특징이다. 혹자는 아트바젤, 프리즈가 마치 시장과 같은 분위기라면, 테파프는 명품 백화점이라고 비유하는데, 그만큼 고급스런 분위기는 페어와 출품작을 돋보이게 했다.
마지막 날 방문했기에 작품 상당수가 판매 완료돼 있었다. 마침 안내 데스크에서 귀띰해준 곳도 각각 5000만, 4000만 달러에 낙찰된 피카소와 헨리 무어의 작품이 있는 한 갤러리였다. 이들 작품은 미술관에서나 만날 법한 작품이어서 가격만큼이나 흥미로웠다. 올해의 경우 국내 갤러리는 가나아트와 페이지 갤러리가 테파프에 참가했다. 디자이너 정구호씨가 직접 부스 디자인을 하고 출품까지 했다는 페이지 갤러리의 경우 12세기 고려시대 연회에서 사용된 청자 사자형 향로, 한국의 전통 목기인 반닫이를 플렉시 글라스로 재해석한 투명 반닫이 등을 선보였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해외에 알리는 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테파프는 해마다 3월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5월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다.
2025-03-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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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프리츠커상 건축가가 만든 '룩셈부르크 필하모니'
룩셈부르크는 프랑스, 벨기에, 독일과 맞닿아 있으며 네덜란드와도 불과 50km에 떨어져 있지 않다. 3국이 면한 교통 요지여서 인구 60만 명에 불과한 이 나라의 국가명이자 수도인 룩셈부르크를 방문하거나 통과하는 일이 종종 있다. 시내 중심부를 지나던 중 백색의 독특한 외형을 한 건물이 인상적이어서 찾아봤더니,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크리스티앙 드 포르장파르크가 만든 ‘룩셈부르크 필하모니’였다.
룩셈부르크는 1995년 유럽의 문화 수도로 선정되는데, 그해 룩셈부르크 당국은 콘퍼런스와 콘서트홀이 동시에 가능한 건축물을 건설하기로 한다. 이어 모로코 출신의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르장파르크 프로젝트가 공모에 당선된다. 공사는 2002년부터 시작해, 개관은 2005년 6월에 했다. 콘서트홀의 공식적인 명칭은 조제핀 샤를로테 대공비 콘서트홀인데 현 앙리 대공의 어머니 이름이다. 각국 사절단과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을 열었다. 당시 룩셈부르크는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국으로, 룩셈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룩셈부르크 공국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펜데레츠키 교향곡 8번을 세계 초연했다.
크리스티앙 드 포르장파르크의 초기 아이디어는 자연스러운 필터를 통해 음악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흰색 강철로 만들어진 823개 정면 기둥이 3열로 배열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내부 기둥열은 공연장을 담고 있으며, 두 번째 기둥 열은 외벽 창문을 지지하고, 세 번째 기둥열은 하중을 담당한다.
슈박스 형태로 디자인된 그랜드 오디토리엄은 2만㎥ 규모와 최대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직사각형이라는 평면의 제약을 극복하고 음향을 최적화하기 위해 8개의 상자 타워가 공연장 내부 양쪽 벽면에 불규칙하게 배치돼 균일한 사운드 분배를 한다. 잔향 시간은 콘서트홀로는 최적인 1.5~2초를 유지하고 있다. 무대 커튼의 유연성과 조절 가능한 음향 반사판을 설치한 덕분에 음향은 다양한 음악적 요구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룩셈부르크 필하모니도 그렇지만, 대부분 백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도시의 공연장과 다르게 2000년대 이후 완공한 콘서트홀은 설계 공모를 통해 대부분 스타 건축가의 작업을 통해 태어났다. 건축가 장 누벨이 디자인한 루체른의 KKL과 필하모니아 드 파리, 프랑크 게리가 디자인한 LA 디즈니 콘서트홀, 그리고 헤어초크 드 뫼롱이 디자인한 함부르크 필하모니가 대표적이다. 건축가의 개성만큼이나 눈에 띄는 형태를 가지고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적어도 21세기에 지어지는 문화 공간은 음향학적 기능과 요구는 말할 것도 없고, 디자인까지도 혁신적이어야 한다는 평소 생각에 일치하는 대목이다.
2025-03-1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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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위기가 기회로, 건축과 디자인 성지가 된 비트라 캠퍼스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은 라인강 동쪽 기슭에 있으며 독일에서 가장 남서쪽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스위스, 프랑스, 독일 3국 국경에 맞닿아 있으며, 스위스 바젤이랑 붙어 있다. 이곳에 위치한 비트라 하우스는 유럽에서 가장 잘 알려진 가구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이다. 가구회사 비트라(Vitra)는 1950년 스위스인 빌리 펠바움에 의해 시작됐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협업을 통해 기능적인 디자인 가구를 제작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1981년 바일 암 라인에 있는 비트라 공장이 화재로 전소하면서 생산시설 대부분이 파괴됐다. 설립자인 펠바움은 위기를 기회 삼아 회사를 재건한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프랑크 게리, 자하 하디드, 안도 다다오 등의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 생산시설뿐 아니라 디자인 가구 쇼케이스 역할을 할 새로운 공장 단지를 계획하게 된다.
비트라 캠퍼스(Vitra Campus)로 알려진 공장 단지는 1980년대 중반부터 하나둘씩 완공되는 데 1989년 게리의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과 제조 공장, 1993년 하디드의 비트라 소방서와 안도의 콘퍼런스 파빌리온 그리고 알바로 시자의 두 번째 공장과 주차장, 2010년 헤어초크&드 뮈롱의 비트라 하우스, 2011년 사나(SANNA)에 의해 세 번째 공장이 완공된다. 공교롭게도 언급된 건축가 모두 프리츠커 수상자이다.
비트라 캠퍼스는 단순히 가구 공장이 아니라 디자인과 건축 애호가들에게는 중요한 베뉴가 되었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은 캠퍼스 내 최초의 공공건물이자 게리가 유럽에서 지은 최초의 건물이며, 안도의 파빌리온 역시 그가 일본 밖에서 처음으로 만든 작품이다. 심지어 하디드가 디자인 한 비트라 소방서는 그의 첫 작품이다. 어쩌면 이들을 세상에 알리는 견인차 구실은 비트라가 한 셈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디자이너 협업을 통해서 키워온 안목이 건축에서도 발현했다. 비트라 캠퍼스 내 시설은 각기 목적과 기능을 넘어 상징적인 역할을 함과 동시에 혁신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모티브가 되었고, 비트라 가구 역시 높은 품질과 시대를 뛰어넘는 창의성으로 유럽을 넘어 세계적인 가구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제조와 물류 공장을 제외한 비트라 캠퍼스 내 시설은 특정 시간대 예약을 통해 건축 투어가 가능하다. 비트라 하우스는 언제든지 무료 방문이 가능하며, 디자인 뮤지엄은 특별전 형태로 시즌마다 열리고 있다. 2022년부터는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가 비트라 캠퍼스 내 사계절 생태 정원을 만들면서 화제가 됐다. 디자인을 넘어 건축 그리고 조경까지 이만큼 잘 만들어진 종합 선물 세트를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2025-02-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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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남반구 최대 컬렉션 갖춘 상파울루 미술관
포르투갈어로 ‘성(聖) 바울로’라는 의미인 브라질 상파울루의 인구는 2024년 기준 2280만 명으로, 남아메리카 도시 중 인구가 가장 많다. 미국 뉴욕과 멕시코시티를 능가하기에 아메리카 대륙 통틀어서 가장 큰 도시이다. 상파울루 비엔날레(1951년~ )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랜 역사가 있으며, 휘트니 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3대 비엔날레로 알려져 있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 상파울루의 이야기다.
이 도시의 ‘상파울루 미술관’(MASP)은 1968년 이탈리아 태생의 브라질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에 의해 디자인되고, 완성했다. 그는 현수(Suspension) 구조의 철근 콘크리트와 유리로 만들어진 건물을 고안했다. 미술관 메인 건물은 지상에서 8m 높이에 떠 있으며, 두 개의 거대한 콘크리트 보로 연결된 4개의 기둥으로 지지된다. 기둥 사이 거리는 74m로 건축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경간이었다. 이는 현수교인 광안대교를 떠올리면 되는데, 두 개의 주탑 사이에 길이 74m, 층고 7m의 2층 건물이 매달려 있는 셈이다. 이 경우 내력벽과 기둥이 존재하지 않는 대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덕분에 상파울루 미술관의 메인 전시 공간은 단 하나의 전시실로 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미술관 평면은 크고 작은 방의 연속으로 이루어졌으며 창이 없는 벽면이나 복도에 작품이 전시된다. 그런데 구획이 되어 있지 않은 하나의 방으로 된 상파울루 미술관, 게다가 양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다. 메인 전시실은 작품을 걸 수 있는 벽면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여기서 상파울루 미술관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상한 전시 방법을 생각해 낸다. 건축가는 정사각형의 콘크리트 블록 받침대 위에 강화 크리스털 패널을 놓고 그림의 전시 지지대로 사용하는 혁신을 이룬다. 이는 마치 화가의 이젤에 놓인 캔버스를 연상케 한다. 전시실 내부의 작품 수만큼 콘크리트로 지지된 크리스털 패널이 놓여 있으며, 작품을 설명하는 안내는 그림 뒷면에 배치돼 있다. 지금껏 방문했던 그 어떤 미술관보다 인상적인 전시 방법이다.
상파울루 미술관의 컬렉션 또한 라틴 아메리카를 넘어 남반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서양 미술 컬렉션으로 여겨진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회화 그리고 스페인, 플랑드르, 네덜란드, 영국, 독일 거장들의 걸작 상당수를 가지고 있으며, 근현대 보유 작품 또한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편이다. 반 고흐 회화도 5점을 보유 중이다. 쉽게 방문하기 힘든 곳이라 제법 두꺼운 도록을 한 권 구입했는데, 책 제목이 〈콘크리트와 크리스털〉이다. 전시 방법을 위해 고안된 장치도, 콘크리트와 유리 구조물로 된 상파울루 미술관 건물도 책 제목과 일치한다.
2025-02-13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