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론] 북극항로 개척은 공급망 재편과 실리 외교가 핵심
신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인 북극항로 개척 사업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공급이 아닌 수요 창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는 단순히 항로를 ‘개척’하는 것을 넘어, 이 항로를 ‘이용할’ 실질적인 필요성을 만들어내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 반을 넘기며 국제 정세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미국, 유럽연합(EU), 그 외 여러 나라 및 국제단체들이 러시아에 여러 제재를 가했으며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다. 한국도 대러 제재에 동참했다. 지난 7월 18일 EU가 발표한 18차 대러 제재는 러시아 에너지와 금융 분야를 겨냥했으며, 특히 중국 은행 2곳이 포함되었다. 이는 중국이 글로벌 대러 제재와 무관하게 러시아와의 무역을 지속해 왔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2024년 북극항로를 통한 국제 화물의 99.2%가 러-중 간 운송이었으며, 대부분 러시아 자원을 중국으로 운반하는 경우였다. 그러나 이번 EU의 18차 제재에서 획기적으로 강화된 조항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국에 100% 관세 부과를 언급했지만, 최대 수입국이 중국인 상황에서 복잡한 미중 관계를 고려할 때 실행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시장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기업들이 제재를 주도한 미국과 EU 국적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더 인사이드가 발표한 2023년 러시아 최대 매출 15대 기업 중 미국이 필립모리스, 씨티은행, 카길 등 7개사였고, 독일 2개사 그리고 나머지도 일본과 유럽계 기업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철수를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경쟁자가 줄어든 틈을 타 시장 점유율을 확대한 것이다. 또한 2022년 12월~2025년 6월까지 러시아의 석유제품 수입국 순위는 튀르키예 26%, 중국 13%, 브라질 12%이며, LNG는 EU 51%, 중국 21%, 일본 15%였다. 반면 국제 평화라는 명분 하에 성실히 제재에 동참한 한국은 북방 외교에 균열이 생기고 북방 비즈니스가 축소됐다. 결국 중국은 물론 미국과 EU마저 러시아와 비즈니스를 지속한 가운데, 한국만이 실질적 손해를 감수한 셈이다.
장기화된 전쟁으로 인한 피로감 속에서, 종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각국은 전후 복구와 관계 정상화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만약 전쟁 종료 후에야, 한국이 러시아와의 협의를 통해 북극항로 개척에 동참하겠다고 의사를 표명한다면, 러시아가 전쟁 기간에도 꾸준히 관계를 유지해 온 중국이나 실리를 챙긴 서방 기업들 대신 한국을 우선적으로 대해줄 이유가 없다. 따라서 북극항로 개척은 러시아와의 외교 및 비즈니스 복원과 병행되어야 한다.
북극항로 수요 창출을 위해 우리나라의 편중된 에너지, 광물 자원 등의 공급망 재편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원유 의존도에서 중동이 71%를 차지하며, 이 중 68%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2024년 1월 블룸버그 이코노미스트는 대만해협에서 전쟁 발생 시 한국의 GDP가 23.2%나 감소하여 당사국인 중국(17%)보다 높은 충격을 받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수출입 화물이 대만해협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북극항로를 병행 이용하고 있었다면 이러한 충격은 훨씬 완화되었을 것이다.
현재 중국이 북극항로를 이용해 주로 수송하는 화물이 에너지, 광물자원인 것처럼, 우리나라도 자원 공급망에 북극권을 포함시켜 북극항로 개척의 기본적인 수요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러시아는 기초 산업 위주, 우리나라는 응용 산업 위주로 발전하여 산업구조 측면에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이제 명분보다는 실효적 이익에 초점을 맞춰 러시아와의 북방 외교와 비즈니스를 복원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통해 러시아와의 신규 수요 창출이 동반되어야만 북극항로 개척이 공허한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나아가 북극항로 개척과 연계된 수요는 우리나라 동남권 지역의 물류, 석유화학, 조선, 철강, 방위, 식품산업 기반과 높은 연관성을 가진다. 이는 지역 균형 발전에도 북극항로 개척이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궁극적으로 북극항로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무역로로 상용화될 때, 우리나라가 그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5-08-20 [18:08]
-
[시론] 세계디자인수도 2028, 함께 만드는 부산의 미래
부산이 세계디자인기구(WDO)가 주관하는 ‘2028 세계디자인수도(WDC)’로 최종 선정되었다. 부산은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디자인 허브도시’이자, 미래 도시 모델을 제시하는 중심에 서게 되었다. 디자인은 멋진 전시관이나 스타일의 이야기가 아니다. 걷기 편한 길, 쾌적한 동네 공원, 모두를 배려한 표지판, 안전한 골목, 아름답고 기능적인 공공시설 등과 같이 시민의 일상과 삶을 바람직한 미래 모습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이자 실천이 디자인이다. 이번 쾌거는 그간 시민 참여의 철학을 디자인이라는 언어로 실현하고자 한 부산의 노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이는 지역 디자인계와 공공기관, 행정과 교육, 시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성과로서 깊은 환영과 기대의 마음을 전한다.
WDC는 디자인을 통해 경제·사회·문화·환경을 통합적으로 혁신하고자 하는 도시를 선정해 지정 연도 동안 세계적으로 집중 조명하는 국제적인 프로그램이다. 토리노, 서울, 헬싱키, 케이프타운, 타이베이, 발렌시아, 프랑크푸르트 라인마인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이 이 명예를 통해 도시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지속가능한 도시 모델을 구현해 왔다. 이들 성공 사례의 공통점은 시민 참여를 기반으로 디자인을 도시 전략으로 삼고, 이를 통해 도시의 매력과 도시 브랜드를 강화했다는 점이다. 또한 디자인 산업과 창의 생태계를 통해 경제·문화적 경쟁력을 증폭시켰다.
이번 ‘WDC 2028’ 유치 과정에서 부산은 ‘포용하는 도시, 참여하는 디자인 (Inclusive City, Engaged Design)’을 주제로 내세우며, 도시 변화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했다. 부산은 산업화의 흔적, 피난과 이주의 기억, 해양도시의 개방성, 고령화, 청년 인구 유출이라는 다층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도시 과제를 디자인의 언어로 해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풍부한 잠재력과 의지를 담아냈다. 지난 6월, WDO 실사단은 북항 재개발지와 영도 베리베리굿 봉산마을, F1963 문화공간, 동서대학교 캠퍼스 방문 등, 부산의 다양한 현장을 둘러보며 디자인이 어떻게 도시의 일상과 공동체에 스며들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며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부터 WDC의 성공은 부산에 사는 우리 모두의 참여와 실천에 달려 있다. 부산시는 이제 ‘디자인으로 변화하는 도시’를 세계에 보여주어야 한다. 멋진 건물 몇 개로 끝나는 도시, 또는 보여주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가 아니라, 도시계획을 시민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디자인적 사고가 반영된 정책을 통해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공공기관은 시민과 디자이너,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창의적인 정책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또한 초중고 교육 현장에서는 ‘디자인은 문제를 발견하고 창의적으로 해결해 가는 과정이자 방법’임을 가르치고, 지역 사회와 연결되는 실천 프로젝트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 여정에서 지역 대학 역시 의미 있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고등교육기관은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곳을 넘어, 지역과 함께 질문하고 실험하며 상상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지역 대학이 기술을 넘어 상상력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 대학도 시민, 학생, 전문가, 행정이 만나는 접점에서 ‘조용한 참여자’로서 이 여정에 동행해 왔다. 앞으로도 글로벌 네트워크와 지역 현장을 연결하는 ‘글로컬(glocal)’ 한 관점에서, 청년들이 부산이라는 도시를 통해 세계를 배우고, 시민과 함께 도시를 디자인하며 변화와 성장의 경험을 차분히 이어가고자 한다. ‘글로컬 디자인 교육’을 통해 부산과 세계를 연결하는 실천적 동반자로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다.
‘WDC 2028’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자신만의 언어로 세계와 대화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앞으로 부산이 만들어갈 디자인의 언어 속에서, 우리는 더 나은 삶의 가능성과 서로를 잇는 감각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 도시는 누군가에 의해 대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상상하고,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에 그 여정의 주인공은 결국, 이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일 게다.
2025-08-06 [17:51]
-
[시론] 사람을 위한 AI, 왜 체감하기 어려울까?
최근 부산에서 연이어 어린이 화재 참변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정부는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사고는 모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기 전인 2005년 이전 지어진 아파트에서 발생해 안전 진단과 관련한 이슈가 또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AI를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처럼 충분히 예방 가능한 재난과 안전사고 이슈들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밀접한 안전 분야에 AI 기술 활용 사례가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내 주위에서는 체감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AI가 인간의 안전을 지켜주는 기술은 왜 빨리 보급되지 않는 걸까’라고.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 AI가 밀접하게 스며드는 것이 마냥 쉬운 이슈는 아니다. AI 기술이 인간의 안전을 위해 활용되는 분야가 늘어날수록, 그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와 결정 과정의 메커니즘을 인간의 관점에서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24년 세계 최초 AI에 대한 포괄적 규제인 ‘AI Act’(인공지능법)를 발표한 EU(유럽연합)는 ‘인간 중심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기술이 중요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EU의 인공지능법은 AI 기술을 사람에 대한 위험성을 기준으로 4가지 레벨로 분류한다. 레벨1은 ‘전적으로 금지’, 레벨2는 ‘고위험성’, 레벨3는 ‘제한된 위험성’, 그리고 레벨4는 ‘저위험’이다. 이러한 설계는 AI는 악용될 경우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EU의 인공지능법에 따르면 화재를 예측하고 일상생활에서 사람의 안전을 진단해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AI 기술은 레벨2 ‘고위험성을 가진 AI 기술’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레벨2 AI 기술에 해당하는 예시로는 질병 진단이나 치료 결정, 환자 모니터링과 의료 기기 자동화 시스템, 전력 공급이나 교통관제 등 사회 주요 인프라, 범죄 위험 예측, 공공장소에서의 생체 인식 시스템 등이다. 즉, 인간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AI 기술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한 것이다. 레벨2에 해당하는 AI 기술은 데이터 품질 관리, 투명성 및 설명 가능성 공개, 인간의 개입 가능성 보장, 안전성과 사이버보안 조치, 기본권 영향 평가 등의 엄격한 기준을 부합시켜야만 상용화가 가능하다. 그만큼 일상에서의 도입이 매우 엄격함을 의미한다.
2021년 UNESCO도 ‘인공지능 윤리 권고안’에서 AI 기술은 사람을 물리적·정신적 위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공공 안전과 직결되는 분야에 도입될 시 반드시 위험 평가 및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함을 강조한다. 사람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AI로부터 내려지는 경우 그 결정의 근거와 메커니즘을 공개, 설명할 수 있도록 하고 인명 또는 재산권 침해 시 책임 소재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AI 기술은 사람을 위한 기술로 개발되고 활용돼야 함이 강조되고 있으나, 정작 상용화 과정에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사람을 위한 AI 기술’이 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타이틀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재, 재난 재해 현장에서 시민을 위한 기술로 AI가 활용되기 위해서는 법적 규제의 프레임보다는 신뢰 확보라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항상 최종 결정권자가 AI가 아니라 사람이 개입할 수 있는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AI 세계 3대 강국 도약’이라는 목표 아래 AI 기술과 관련한 규제 혁신에 본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하지만 기술 발전을 위한 규제 혁신에 앞서 기술에 대한 신뢰 확보가 우선돼야 함을 간과하면 안 된다. 기술이 시민 삶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윤리적 설계가 선행된 뒤 법적 안전망이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AI는 언제나 ‘시민이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인식이 확보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선행된다면 AI 기술력 강화와 산업 발전을 위한 생태계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리고 사람의 안전이 위협받는 현장에서 신뢰할 만한 AI 기술이 체감되는 날도 더 빨리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2025-07-23 [18:12]
-
[시론] 부산콘서트홀, 클래식 음악의 새 지평
부산은 슬로 시티다. 문화예술 분야의 진화 속도 말이다. 광역문화재단은 전국 꼴찌를 가까스로 면하면서 2009년 설립되었고, 기초문화재단도 16개 구·군 중 겨우 2개만 설립되어 서울(22), 경기(24), 대구(6), 인천(4)에 명함을 못 내민다. 예산은 더 열악하다. 광역과 기초를 포함한 지자체 전체 평균 문화 예산은 전국 꼴찌 자리를 기웃거리는 수준이다.
공연장 상황도 마찬가지다. 먼저 양적 측면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간하는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 공연장 수는 총 41개(5.7%)로 서울 202개(28.1%), 경기 97개(13.5%)에 크게 못 미치고, 인구가 100만 명 적은 대구 46개(6.4%)보다 적다. 인구 1000명당 객석 수는 전국 평균 10.3인데, 부산(8.4)은 대전(10.8), 대구(9.5)보다 열악한 수준이다. 최근 건립된 몇몇 공연장들을 고려하면 수치가 조금 나아질 것 같긴 하다.
이번엔 질적 측면이다. 공연장 운영의 민간 전문화 추세는 예술의전당(1988), 세종문화회관(1999)을 비롯해 일찍이 80년대부터 추진되었다. 부산 최초의 전문화 시도는 (재)부산문화회관의 출범으로, 2017년의 일이다. 시설의 전문화 측면도 비슷하다. 콘서트홀 이전의 부산 공공 공연장은 모두 다목적 홀이었다. 오페라, 음악회, 무용, 연극이 모두 같은 곳에서 공연되었다. 다목적이란 말을 뒤집어보면 무슨 뜻일지 생각해 보자. 수도권과 대구에는 전용 공연장인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이 오래전부터 운영되고 있다.
부산이 원래 늦은 도시는 아니었다. 시민회관은 세종문화회관보다 5년 앞선 1973년 건립되었다. 그때만 해도 부산은 서울에 뒤지지 않는 문화 역량이 있었다. 작금의 초라함은 끊임없이 쪼그라드는 시세(市勢)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산 공연장의 새 지평이 열리고 있다. 지난달 개관한 부산콘서트홀과 2년 후 개관 예정인 부산오페라하우스 덕분이다.
두 공연장은 메인 홀 기준 객석 수가 각각 2000석과 1800석으로 두 공연장 모두 기존 대형 공연장(부산문화회관, 시민회관)보다 많다. 그뿐만 아니라 두 공연장 모두 부산 최초의 전용 공연장이다. 예산 역시 두 공연장 규모에 걸맞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재)부산문화회관의 2024년 예산이 360억 수준임을 고려하면, 두 대형 공연장 운영 예산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콘서트홀의 개관이 지역 음악 문화에 던지는 의미는 크다. 나무 음향판이 둘린 프로시니엄(액자형) 무대에 익숙한 부산 관객에게는 빈야드(포도밭) 방식의 콘서트홀 구조가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4400여 개의 파이프를 가진 오르간도 새로운 경험이다. 전면부의 시각적 웅장함이 기대보다 덜해 좀 아쉽긴 하지만 수도권 밖에선 처음이다. 몇 배 많은 건립비가 들어간 베를린 필하모니 홀이나 함부르크 엘프 필하모니 홀에 비교할 순 없지만 이제 기본은 갖춘 느낌이랄까.
13년의 긴 곡절 끝에 탄생한 콘서트홀은 기대만큼 우려도 크다. 우선 얼마 전 펼쳐진 개관 페스티벌에 부산 음악인이 안 보인다. 부산콘서트홀에 부산이 없다는 소리가 들린다. 시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연장이 시민의 문화 향유를 우선하는 것은 지당하나, 지역 예술인을 도외시하면 그 대가도 적지 않다. 글로벌 예술 수월성과 로컬 예술 생태계 사이 적절한 균형을 찾을 일이다.
비싼 대관비도 걱정이다. 초대형 공연장을 쉽게 대관할 일도 아니지만, 기존 공연장에 비해 두세 배 비싼 금액은 부담이다. 지역 예술단체에 제공되던 할인도 많이 축소되었다. 주차 문제는 더 심각하다. 체임버 홀 객석까지 합하면 2400석인데 주차면은 300면이다. 부산시민공원 주차장을 같이 이용한다 해도 여전히 부족하고 거리도 멀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겉의 새로움은 잠시다. 서울 ‘예술의 전당’이 성공적 예술 경영의 산실이 된 것은 기획 능력 때문이다. 공연장은 대관이 아닌 기획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관객 관리와 서비스 개선은 물론이다. 축제의 기쁨을 뒤로 하고 지역 공연 문화를 선도하는 막중한 역할을 기꺼이 안아주길 바란다. 기대하고 응원한다. 더 이상 늦지 말자.
2025-07-09 [17:54]
-
[시론] 부전역, 부산 미래 교통의 중심으로 거듭나야
부전역은 부산 도심의 심장이자, 도시 변화와 성장의 역사를 함께해 온 공간이다. 1932년 서면 간이역으로 출발한 이래, 일제강점기 철도망 확장, 산업화 시대의 물류 거점, 그리고 도심과 항만을 잇는 교통축으로써 부산 발전의 한복판에 자리해 왔다. ‘부전(釜田)’이라는 이름이 ‘가마솥의 들판’을 뜻하듯, 예로부터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중심지였다.
하지만 최근 복선전철화와 고속철도 중심의 교통체계 전환 속에서 부전역의 도심 중심역 위상은 다소 흐려졌다. 단순한 환승지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동해선·중앙선·경전선, 도시철도, 광역버스망이 교차하는 부전역은 이제 ‘도심형 광역 환승 거점’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해야 한다. 신공항~오시리아를 잇는 BuTX, 경부고속선 지하화 등과 연계된다면 부전역은 동남권 철도 허브로 거듭날 수 있다.
예로부터 사람·물자 모이는 중심지
도시재생·복합개발 최적의 입지
KTX 정차 100만 서명 뜨거운 열기
복합환승센터 통해 미래 도시 축으로
다시 ‘삶을 짓는 중심’으로 거듭나야
부전역의 지리적 중심성은 실로 뛰어나다. 부산 도심의 정중앙에 위치해 동서남북을 관통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서면 상업지구, 전포카페거리, 부전시장, 부산시민공원, 부산콘서트홀, 국립국악원 등 다양한 도시 기능이 고루 밀집해 있다. 이러한 입지적 특성은 부전역 일대가 단순한 교통의 중심을 넘어 도시재생과 복합개발에 있어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의 모범 사례로는 서울의 청량리역을 들 수 있다. 한때 낙후된 구도심이었던 청량리역은 KTX·GTX·ITX 등 복합철도망과 고밀도 복합개발을 통해 도시재생의 대표적 성공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일상과 문화를 잇는 플랫폼으로 변신하며 다양한 공간적 가능성을 연출하고 있다. 용산역 역시 민간 주도의 개발을 통해 철도와 공원, 상업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새로운 도시 거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부산 역시 이제 단일 중심지에만 의존할 수 없는 다핵도시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북항, 센텀, 사상, 오시리아 등 여러 거점이 도시의 구조를 재편하는 가운데, 부전역은 이들 거점을 연결하는 도심의 핵심 축이자, 도시 내부와 외부를 잇는 중요한 앵커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경부고속철 KTX의 부전역 정차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미 고속열차용 선로와 플랫폼이 갖춰져 있고, 2010년 복합환승센터 정부 시범사업으로 지정된 지도 벌써 15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진전은 더디기만 하다. 이러한 지연 속에 올해 3월부터 부산진구를 주축으로 인근 8개 자치구가 100만 명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등 시민들의 열망이 뜨겁다. 이에 더해 부전역은 실질적 수요, 지리적 중심성, 광역 연결성까지 모두 갖추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복합 환경 거점으로서 손색이 없다. 서울 청량리역과 수서역처럼 고속철이 도심형 복합환승 거점과 직접 연계될 때 도시 전체의 접근성과 교통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음을 이미 입증된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
부전역의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첫째, 광역철도·도시철도·시외버스·마이크로 모빌리티가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복합환승센터 조성이 핵심이다. 둘째, 지상·지하를 아우르는 주거·업무·상업·공공 기능의 입체적 복합개발이 병행되어야 한다. 셋째, 전통시장·골목길·청년창업·문화예술 공간이 공존하는 시민참여형 도시재생도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토교통부, 부산시, 철도공사, LH, 민간개발자 간 협력체계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정책 의지와 행정 실행력, 민간의 창의력이 결합될 때, 부전역은 도시 거점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은 물론이고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교통은 도시를 바꾸는 힘이다. 철도는 도시의 척추이고, 역세권은 도시의 얼굴이다. 부전역은 지금, 부산이 미래 도시로 전환하는 핵심 축으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마쳤다. 그 흐름을 실현할 마지막 조건은 시민과 행정, 정책과 계획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부전역이 그 이름의 의미처럼, 다시 ‘삶을 짓는 중심’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2025-06-25 [18:32]
-
[시론] 부산 시민과 함께 꿈꾸는 북항 ‘바다야구장’
모 기업 회장의 2000억 원 규모 기부 약속으로 부산 북항 ‘바다야구장’ 건립 논의가 다시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야구장 건립이 아니라 도시브랜드 재정립과 새로운 관광 콘텐츠 개발, 원도심 지역 경제 활성화, 시민 자긍심 고양이라는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시도로서 주목할 만하다. 부산은 해양과 관광, 컨벤션 산업의 중심지이자, 야도(野都)라 불릴 만큼 야구에 대한 애정이 깊은 도시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항 ‘바다야구장’은 바다와 인접한 입지적 특성으로 도시경관의 상징성과 미학적 가치를 지닌 부산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주목받을 수 있으며, 스포츠-문화-관광-상업이 유기적으로 융합된 ‘복합 문화관광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다.
최근 글로벌 트렌드는 스포츠 경기장을 지역개발의 핵심 앵커로 활용하는 ‘SAD(Sports-Anchored Development)’ 개념이 대세다. 세계 주요 도시들은 스포츠 경기장을 단순히 경기를 위한 폐쇄적 구조물이 아닌 문화, 상업, 주거 공간과 연계해 지역 경제와 도시재생을 선도하는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1999년 개장 당시 황량한 공터와 주차장에 둘러싸여 있던 LA 레이커스 홈구장인 ‘스테이플스 센터’(현 크립토닷컴 아레나)는 2005년부터 시작된 ‘LA 라이브’ 개발의 거점이 되었다. 개발사는 스포츠 관람객의 체류 시간을 증대하기 위한 해답으로 엔터테인먼트를 선택했고, 그 결과 해당 지역은 문화·엔터테인먼트 복합단지로 탈바꿈하여 LA 최고의 관광 명소로 부상했다. 현재 연간 약 2000만 명이 찾는 이 공간은 SAD 전략을 활용한 도시재생의 성공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부산 시민의 염원인 북항 ‘바다야구장’ 건립에는 주요 난제가 존재한다. 부산시의 사직야구장 재건축 고수, 7000억 원 규모의 부지 확보, 건립 재원 마련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사직야구장 재건축은 국비 미확보로 표류 중이며, 대체 구장 문제도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이 대체 구장으로 거론되지만, 올해 전국체전을 위한 정비에 이어 대체 야구장으로 전환, 이후 다시 다른 용도의 경기장으로 전환까지 중복 정비가 불가피해 효율성과 중복 투자 우려가 크다. 약 7000억 원 규모의 북항 랜드마크 부지 확보 역시 난제다. 시유지와 항만공사 부지 맞교환, 무상 임대, 민간 투자 유치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지만, 이 모든 난제의 해법은 부산시의 유연한 접근과 전략적 선택에 달려 있다.
부산시는 시민이 바라는 야구장의 기본적 가치와 비전을 명확히 설정하고, 공공성에 국한되지 않는 산업적·경제적 파급 효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팬 경험 극대화, 구단 수익 확대, 경기장 중심의 도시개발, 도시 정체성 강화, 지역 커뮤니티와의 연계성까지 아우를 수 있는 최적의 입지와 설계를 고민할 때, 비로소 부산 시민이 꿈꾸는 새로운 야구장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바다야구장’ 건립 재원 마련을 위해 창의적인 민간 협력 자금 조달 방식의 확대가 필요하다. 스포츠 선진국에서 활발히 적용되는 프리미엄 스폰서십 모델 중 기업이 경기장 이름에 자사 브랜드를 붙일 수 있는 ‘경기장명명권(Naming Rights)’이나 경기장 주요 진입구에 기업명을 부여하거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입히는 ‘코너스톤 게이트 스폰서십(Cornerstone Gate Sponsorship)’ 등은 아직 국내에선 적용되지 않은 잠재적 수단이다. 북항에 랜드마크형 야구장이 조성될 경우, 국내외 유수 기업들의 후원 경쟁이 예상되며, 건립 확정 이후 장기 스폰서십 계약을 통해 건립 재원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전략이 유효할 것이다.
북항 ‘바다야구장’은 단순한 스포츠 시설이 아니라, 부산이 시민과 함께 꿈꾸는 미래를 상징하는 기획이다. 도시의 미래는 공간의 물리적 형태보다, 그 공간에 어떤 의미와 경험 가치를 담느냐에 달려있다. 바다야구장은 스포츠를 매개로 도시 브랜드를 재정립하고, 시민의 삶에 스며드는 도시 혁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부산은 지금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다. 바다와 야구, 도시와 문화, 시민과 미래를 연결하는 이 상징적 공간이 실현된다면, 이는 단순한 경기장을 넘어 ‘부산형 도시 혁신’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이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정책적 결단이 절실하다.
2025-06-11 [18:05]
-
[시론] 가덕신공항, 방파제부터 선착공해야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지금 가덕도신공항이 딛고 나아가야 할 첫걸음도 분명하다. 방파제 공사의 조속한 착수다. 최근 수의계약 중단으로 전체 사업이 표류하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핵심 공정부터 선행 착공하는 ‘패스트트랙(Fast-Track) 전략’이 절실하다. 늦은 감이 있지만 설계·시공 분리 발주와 공구 분할 방식도 적극 고려하면 좋겠다.
방파제는 해상공항 건설의 출발점이자 든든한 보호막이다. 가덕도는 전체 부지의 59%가 해상에 자리를 잡아 있고, 연약지반 깊이가 최대 60m에 달하는 복잡한 조건을 지녔다. 이 같은 해양 환경에서는 파랑과 조류, 지반침하 등 다양한 위험 요소를 제어해야만 본격적인 매립과 활주로 시공이 가능하다. 방파제가 없다면, 모든 공정은 해상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방파제 없이는 파랑(波浪)으로 인해, 해저 연약지반 개량도 할 수 없고, 국수봉을 절취(折取)한 사석을 해저 지반에 투석할 수도 없고, 케이슨 공법도 제대로 시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간사이공항은 1차 방파제 시공에만 5년을 들였고, 홍콩 첵랍콕공항 또한 파랑 차단을 위한 방파제 완공 후 본격적인 매립에 착수했다. 이런 해외 사례는 방파제가 얼마나 중요한 선행 공정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진작 분리 발주했다면 방파제는 상당 부분 진척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가덕신공항은 지금까지 제자리걸음만 하고있는 격이다.
다음은 시공 방식의 유연성이다. 과거처럼 턴키(Turn-key) 방식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설계·시공 분리 발주를 통해 다수 업체의 참여를 유도하고 기술 경쟁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가덕신공항은 네 차례 유찰을 거쳐 현대건설 컨소시엄만이 단독 입찰에 참여했다. 이는 기존 방식의 한계를 보여준다. 공구 분할을 통해 여러 전문 건설사가 동시에 투입되면, 공사 일정 지연 리스크(risk)는 줄이고 기술적 최적화는 높일 수 있다.
실제로 유사 사례인 스페인 알리칸테공항(ALC)은 공구 분할과 통합 관리 시스템을 통해 공기 단축과 예산 절감을 동시에 이뤄낸 사례다. 가덕신공항 역시 발주 시스템의 혁신 없이는 성공적 추진이 어렵다. 또한 해상공항 건설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감독기관 또는 사업관리(CM) 회사에 해상공항 경험이 있는 사업관리자(Project Manager)를 기술고문으로 채용하는 방안도 효과적이다.
기술적으로 가장 민감한 요소는 연약지반 처리다. 가덕도 해역은 인천공항보다도 깊고, 울릉공항보다도 복잡하다. 부등침하를 막기 위해서는 심층혼합처리공법(DCM)을 적용해 지반을 개량한 후, 대형 케이슨을 해상에서 레고블록처럼 조립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 공법은 나고야 주부 센트레아공항, 홍콩 첵랍콕공항 등에서 이미 검증된 기술이고, 2025년 현재, 싱가포르의 차세대 항만 프로젝트인 투아스 메가포트(Tuas Megaport) 건설 공사에도 적용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해상공항이 아닌 거대 항만이지만, 유사한 해양 환경에다 케이슨 공법 적용 역시 흡사하기에 가덕신공항의 해상활주로 공사에는 훌륭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프로젝트의 1단계 공사는 국내 건설업체인 DL ENC(옛 대림산업)가 수행했고, 2단계는 현대건설이 참여하고 있다. 1단계 공사의 경우, 애초 계약 공기를 7개월 이상 앞당긴 바 있다. 2025년 5월 현재, 국내 울릉공항 공사에서도 케이슨공법을 성공적으로 적용한 바 있다.
가덕신공항 프로젝트는 해상활주로 공사만이 시급한 건 아니다. 활주로 공사 이외에도 절대 공기를 좌우하는 단위 공사들, 즉 주요 공정선(Critical Path) 상에 있는 ‘현장 진입도로 및 가설 시설 설치’, ‘해상구조물(케이슨) 육상 공장 설치’, ‘국수봉 절취 및 토사 운반용 컨베이어벨트 설치’ 등등, 단위 공정끼리 서로 간섭되지 않게 조율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은 결단의 시점이다. 방파제 공사는 단순한 선행 작업이 아니고, 전체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추진력을 결정짓는 ‘키스톤’이다. 이 공정이 착수되어야만, 이후 모든 절차가 일관성과 속도를 갖고 전개될 수 있다.
가덕신공항 2029년 조기 개항은 단순한 일정이 아니라, 국가경쟁력 회복과 동남권 메가시티 실현의 실질적인 출발점이다. 언제까지 도돌이표 같은 대책 회의만 거듭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방파제를 착공하지 않는다면, 활주로는 절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이 바로 실행의 시간이다.
2025-05-28 [18:04]
-
[시론] 해사법원은 반드시 부산에 설립되어야 한다
선박이 조선소에서 건조되는 단계에서는 선박금융과 선박건조보험이라는 금융과 보험서비스가 필요하고, 금융과 보험은 이자와 보험료라는 수익을 창출한다. 건조된 선박이 운항하기 위해서는 선박 소유자와 선박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용자를 연결해 주는 선박 중개 서비스가 필요하다. 선박 중개는 ‘용선’이라는 형태로 행해지고, 선박 중개수수료라는 이익을 발생시킨다. 자동차가 운행 중 사고에 대비해서 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선박도 운항 중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사고(선박의 좌초, 침몰, 화재, 선박충돌, 화물손상, 선원재해, 해양환경오염 등)에 대비해서 선박보험, 화물보험, P&I 보험에 가입한다.
선박 운항 중 발생하는 여러 종류의 분쟁들은 해사법률 전문가, 보험회사, 손해검정사 등이 협업해 협상, 중재, 소송을 통해 해결하게 되는데, 국제적인 성격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선박도 국적과 나이가 있어 그 안전성이 항상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선박은 건조된 후 폐선이 되기까지 20~30년간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는다. 선박검사 서비스는, ‘선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
이 모든 해사 서비스는 선박과 해운, 금융과 보험, 법률을 이해하고 외국어 구사 능력을 갖춘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조선 및 해운산업 강국을 자랑해 왔지만, 아직도 해양지식산업을 미래 산업, 젊은 세대를 위한 일자리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선박 및 해운을 매개로 한 금융, 보험, 법률 분야에는 젊은 세대가 도전하고 싶어도 도전할 수 있는 현장이 없고, 국부도 창출되지 않고 있다.
선박금융, 선박 중개, 해상보험, 선박검사, 해기교육, 통번역 등 해양지식산업은 모두 계약이라는 법적 수단, 즉 해사법률 서비스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비즈니스적 예측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수단, 즉 객관성 및 확실성이 담보된 법률 서비스 없이는 고부가가치 해양지식산업은 발전할 수가 없다. 해사법률 서비스는 해양지식산업 발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토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해사법률 서비스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해사법원 설립을 통해 가능하다. 해사법원 설립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그럼, 해사법원을 어느 도시에 설립해야 할까? 해사법원을 매개로 해양지식산업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신산업, 미래 세대를 위한 고급 일자리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영국과 달리, 싱가포르 및 중국은 정책적 결단을 통해 이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필요한 인력 및 예산을 효율적으로 안배하지 않으면, 영국, 싱가포르, 중국과 경쟁할 수 없다. ‘부산항’ ‘Busan Port’ ‘Port of Busan’은 항만이나 지역적 명칭을 넘어서 국제적 인지도와 평판을 자랑하는 국가적 브랜드이다. ‘부산항’이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는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해운 및 조선산업의 역사가 ‘부산항’이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냈다.
해양지식산업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신산업으로 단기간 키워내기 위해서는 ‘부산항’이라는 이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수단이 없다. 최소의 비용을 들여 단기간에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부산항’이라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 브랜드 가치를 활용하지 않는 해양지식산업 발전 정책은 효율성도 경제성도 없다.
시간이 급하다. 중국은 해사법원을 시작한 지 벌써 40년이 넘었고 글로벌 인지도를 전략적으로 높여가고 있다. ‘해사법원 설립을 위한 국제해사법컨퍼런스’(2023년 12월 5일 개최)에서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 관련 클레임 총 1568건 중 약 700건이 부산항과 관련된 클레임이었던 반면 인천은 100건이 조금 넘은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렇다면 어느 도시를 해양지식산업 도시로 육성, 발전시키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타당하고 합리적인가? 해사법원은 반드시 부산에 설립되어야 한다.
2025-05-14 [17:59]
-
[시론] 국가연구소 유치로 여는 부산의 미래
부산은 역사적으로 과학기술 도시다. 고대 가야는 ‘철의 왕국’이라 불릴 만큼 정교한 제철 기술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조선시대에는 동래와 부산포를 중심으로 해양 방어와 항해 기술이 발달했다.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은 동래 출신으로 자격루와 측우기 등을 발명하며 시대를 앞선 과학 정신을 구현했다. 근대에는 육종학의 선구자인 우장춘 박사가 부산을 연구 거점으로 삼아 과학자의 길을 개척했다. 산업화 시대에는 기계, 조선기자재 등의 중심지로 부상했고, 오늘날에는 인공지능과 데이터 산업 등 미래기술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처럼 부산은 과학기술의 전통과 미래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도시다. 그러나 이러한 잠재력을 세계적 연구성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올해 첫 시행되는 ‘국가연구소(NRL 2.0)’ 사업은 지역 주도의 과학기술 혁신을 이끌 기회로 주목받고 있다.
국가연구소는 대학의 강점 분야와 우수한 연구 인프라를 집약해 세계 최초·최고 수준의 혁신적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목표다. 부산의 대학들도 본 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부산시와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이 유치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이 연구소가 부산에 들어선다면 단순한 R&D 인프라 확충을 넘어, 부산을 미래형 과학기술 도시로 도약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지방 대학의 연구소들이 지역 경제와 국가 전략에 깊은 영향을 미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독일의 ‘슈퍼클러스터(Exzellenzcluster)’는 특정 대학 중심의 연구 클러스터를 지정해 연구를 육성하고 지역 혁신 생태계를 조성한다. 미국 NSF의 ERC(Engineering Research Center) 프로그램 역시 지역 대학 기반 연구소가 산업과의 긴밀한 협력을 유도하고 있으며, 영국의Catapult Centre, 프랑스의 IDEX, 일본의 COE 프로그램도 유사한 목표를 지닌다. 특히 영국 스트라스클라이드 대학의 첨단성형연구센터(AFRC)는 제조업 중심의 스코틀랜드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산업 구조 전환을 이끌었고, 프랑스 그르노블 알프스 대학은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거점으로 성장하며 지역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연구소가 단순한 ‘지식 생산지’를 넘어, 기술혁신의 실험장과 국가 산업 전략의 실행 거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지역의 자생적 성장을 제약하고 국가 전체의 혁신 잠재력에도 한계를 초래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선 이제 ‘집중’에서 ‘분산’으로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의 잠재력을 품은 부산이 이제 나설 차례다. 국가연구소가 부산에 유치된다면, 이는 부산형 혁신균형발전 모델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기초과학 연구를 넘어, 지역 기업과의 기술협력, 글로벌 산학 프로젝트, 청년 고용 창출 등 다층적인 경제·사회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해외 사례처럼, 지역에 정착한 고급 인재들은 장기적으로 지역 사회에 경제적·문화적 파급 효과를 남긴다. 부산의 산업 기반과 연구 역량은 이러한 변화를 이끌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부산은 단지 과거의 영광에 머무는 도시가 아니다. 오늘을 준비하고 내일을 설계하는 과학기술 혁신도시다. 필요한 것은 정부의 결단과 지역의 확고한 의지다. 수도권 중심의 연구개발 체계를 넘어, 지역이 주도하는 혁신성장 모델의 첫걸음, 그 출발점이 바로 ‘부산의 NRL 2.0 유치’가 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한 지역의 발전을 넘어, ‘혁신균형발전’과 ‘기술주권강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지혜로운 국가 전략이 될 것이다.
인류 최초의 발명품이 이쑤시개였다는 말이 있다. 작고 평범해 보이지만, 진정한 발명은 일상의 불편을 해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데서 출발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부산의 한 대학 연구실에서 세상을 바꿀 혁신이 태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산이 간직한 과학기술의 전통과 잠재력이 국가연구소라는 플랫폼을 통해 꽃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 균형발전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2025-04-30 [17:48]
-
[시론] 기후변화 시대, 산불 대응 전략을 다시 짜야 할 때
최근 산불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고, 1000년이 넘는 사찰 두 곳이 완전히 불타버렸다. 피해 면적도 여의도 면적(2.9㎢)의 13배를 넘는 수준으로 역대 최악의 산불 재난 피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산불의 양상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최근 들어 빈번해진 ‘괴물급 산불’은 재앙으로서 정부와 지자체의 제어가 불가능해 보인다.
산불 피해가 이렇게 커진 데에는 기후변화의 영향과 함께 기존의 촘촘하지 못한 산불 대응 시스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기온 상승과 극심한 건조 환경, 예측 불가능한 강풍의 증가는 산림을 불에 취약한 상태로 만들었다. 또한, 침엽수가 산불 피해를 더 키우고 있으며, 임도(林道) 없이 빼곡하게 조성한 산림은 더욱 산불을 확대했다.
다음, 기후변화로 인하여 산불은 대형화되고 있는 데 비해 산불 진화는 여전히 사람 중심, 인력 중심이다. 야간에는 유인 헬기가 뜨지 못하고, 이마저도 오래된 구식 헬기로 인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현장에 투입된 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과 소방대원들은 험한 지형과 바람으로 인한 거센 불길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며 화마와 싸우지만 역부족이다. 초동 진화에 실패하면서, 삽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괴물급으로 산불이 커진다.
요컨대, 우리나라의 산불 대응 체계는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산림과 도시의 경계지역 관리 미흡,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장비와 인력의 부족,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 비효율적인 협력 체계, 예방보다는 진화에 치중된 대응 방식, 그리고 선진국에 비해 뒤처진 산불 위험도 평가 및 예측 기술 등이 그것이다.
이에 비해 호주 정부는 2020년에 산불 위기 대응책으로 ‘국가산불복구청(NBRA)’을 신설했고, 화재 경고 체계를 6단계 분류해 정교화하였으며, 단계별 화재 경고 시스템을 통해 국민 행동 요령을 명확히 정의하고 산불이 예상되는 경우 각 지역에 적용되는 화재 위험 등급을 매일 발표하고 있다.
또한,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인공위성을 기반으로 산불을 관측하며, 미국 오리건주는 오리건주립대가 연구·개발한 산림 다목적 로봇을 산불 조기 발견 및 진화 등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호주와 미국 등 해외 선진국들은 산불 예방과 진화를 위해 인공지능(AI), 로봇, 인공위성 등을 활용하여 산불 진화 방식을 기존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미래형으로 발 빠르게 전환하였다.
이제 우리도 이러한 선진 사례를 참고하여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산불 대응 전략을 재정립해야 할 때다. 기후변화 시대를 맞이하여, 산불 대응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 위험도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고 평가할 수 있는 과학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산림청, 소방청, 지자체 등 관련 기관 간 명확한 역할 분담과 함께 통합 지휘가 가능한 단일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산불 위험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둔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넷째, 첨단기술을 활용한 조기 감지 및 예측 시스템을 강화하고, 대형 산불에 대응할 수 있는 장비와 전문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특히, 그 규모가 갈수록 대형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에서 기존의 장비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스 하이드레이트 소화탄 등을 개발하고 상용화하여 드론이나 헬기를 이용하여 투척하는 새로운 산불 진화 방식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즉, 가스 하이드레이트는 불타는 얼음으로 알려져 있지만 불이 잘 붙는 메탄가스 대신, 불을 끄는 할로겐족 소화 가스를 저장해 ‘불 끄는 얼음’을 만들어서, 산불 등 화재 현장에 소화탄을 투척하면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녹으면서 나오는 가스가 주위에 불을 끄는 방식으로 해서 산불을 초기에 진화하는 게 필요하다. 산불은 더 이상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기후변화 시대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이제는 ‘산불과의 전쟁’이라는 인식 하에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응 체계를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5-04-16 [18:05]
-
[시론] 지역축제, 이대로는 안 된다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1995년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전국 지자체들은 창의적이고 특색 있는 지역축제 개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힘입어 축제마다 인파가 넘쳐난다. 국민들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축제를 찾아 즐기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난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시민운동 차원에서 부산 등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를 모니터링한 결과, ‘지역축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이유는 첫째, 대부분 축제에서 종이컵, 플라스틱 용기 등 일회용품을 사용해 생활 쓰레기를 과도하게 배출해서다. 우리나라는 재활용 분리배출을 잘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버려진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유럽 기준 16.4%에 불과하다. 2021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버려진 플라스틱은 1193만t(국민 1인당 연간 약 208㎏ 배출)으로 OECD 평균의 4배에 달한다.
전국 축제 대부분 일회용품 넘쳐나
쓰레기 과다 배출로 미래 세대 위협
ESG 시민운동 차원서 운영 바꿔야
다회용 물품 사용은 선택 아닌 필수
지속가능 친환경 축제로 거듭나길
세계 각국에서 버린 해양 투기물 탓에 태평양에는 한국 면적의 16배에 달하는 거대한 쓰레기 섬이 형성돼 있고, 국내에도 불법 투기로 만들어진 쓰레기 산이 235개나 돼 인근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생수 1㎖당 1억 6600만 개의 나노플라스틱이 들어 있다. 또 폴리에틸렌이 코팅된 종이컵에 물을 담으면 1ℓ당 상온에서 2조 8000억 개, 100도에선 5조 1000억 개의 나노플라스틱 입자가 용출된다. 이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문제로 미래 세대에게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둘째, 지역축제의 이면에는 과다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해 문제다. 부산불꽃축제는 매혹적이고 세계적인 행사로 성장했으나 대기를 크게 오염시킨다. 불꽃놀이는 미세먼지(PM2.5) 수치를 급증시켜 지역 주민과 방문객의 호흡기 건강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또 해운대 등 지역 해수욕장의 모래축제는 관광객 유입으로 해변 침식과 쓰레기 증가를 초래하며 해마다 엄청난 양의 모래 투입이 이뤄져 주변 해양 생태계를 위협한다. 워터밤 페스티벌 같은 물 집약적인 행사는 가뭄 시기에도 엄청난 양의 물을 낭비하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축제 성수기에는 교통 체증, 소음 공해, 숙박 및 서비스 가격 폭등 등으로 지역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축제에 동원되는 임시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 공정한 임금과 안전한 근무 환경 보장이 요구되기도 한다.
셋째, 지역축제는 대부분 지속가능 보고가 부족하고 행사의 환경적 영향을 거의 공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각성을 수치화하지 않아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환경보호 실적이 낮은 기업들이 후원하는 경우 축제의 지속가능성 메시지와 모순을 일으키는 문제도 야기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ESG 시민운동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지속가능한 대안을 제안한다. 첫째, 종이컵과 일회용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 사용을 전면 금지할 필요가 있다. 광안리어방축제와 동래읍성축제는 일회용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사상강변축제는 다회용 접시를 활용하는 등 친환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같은 모범 사례를 확산해야 마땅하다. 예산상 문제가 있다면 축제를 2년에 한 번 개최하거나 방문객들에게 텀블러나 머그컵 지참을 권장하는 게 좋다.
둘째, 환경친화적 운영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재생 에너지 사용, 재활용 스테이션 설치, 폐기물 관리시스템을 강화해 지역축제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셋째, 지자체의 사회적 책임 강화가 수반돼야 하겠다. 대부분 축제는 전문 행사업체에 맡겨져 진행되는데, 이때 동원되는 인력이 저임금의 임시 노동자들인 경우가 많다. 공정한 임금과 안전한 근무환경 등이 보장되길 바란다. 넷째, 투명한 거버넌스 구축이다. 이를 통해 축제의 환경적 영향을 명확하게 공개하고, 친환경 기업과 협력해 ‘지속가능한 축제’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는 지자체에서 지속가능 사회를 위한 노력에 앞장설 때다. 축제는 부산의 문화 정체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그런데, ESG 문제를 간과한다면 장기적으로 더 큰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축제를 만들기 위해 친환경적 운영 방안을 도입하고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며 투명한 거버넌스를 확립해야 한다. 일회용품 없는 축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2025-04-02 [20:44]
-
[시론] 산업은행 부산 이전, 페스티나 렌테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뜻의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는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일생 좌우명이다. 중요한 정책은 너무 서두르면 졸속이 되고, 너무 늦추면 성공에 결정적인 순간을 실기한다. 필자는 30여 년의 공직생활 중 가장 관심을 가졌던 정책분야가 국가균형발전이었다. 이 문제는 인구감소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린 중차대한 정책인 만큼 참으로 신중하게 준비하되, 서둘러 실행해야 하는 난제 중 난제이다.
국가균형발전이 성공하려면 지역에 기관과 자원을 나누어 주는 분산정책 수준을 넘어 지역의 혁신성장을 견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기업금융, 투자금융, 혁신성장금융 그리고 국제금융 등 실물경제 발전을 토털 패키지로 지원하는 한국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정책은 침체일로에 있는 지역경제의 새로운 혁신성장 모멘텀을 창출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일으키는 지렛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미 2년 전에 정부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 효과에 대한 용역을 마쳤고, 균형발전위원회 심의를 거쳐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결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한국산업은행 이전 공공기관 지정 고시문’도 공표하였다. 정부가 할 수 있는 행정조치를 완료한 만큼 빠르게 실행하는 단계만 남았다. 그러나 본점 위치를 ‘서울특별시’에서 ‘부산광역시’로 불과 다섯 글자만 바꾸면 되는 산업은행법 개정안은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800만 부산·울산·경남 주민들의 실망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더 이상 국회에만 이 문제의 처리를 맡겨둬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상공계를 중심으로 최근 조속한 산은법 개정을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라는 실천 행동에 나섰던 것이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지역 이슈를 넘어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그동안 추진이 지지부진하던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논의에 본격적인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될 것으로 기대를 받아왔다. 2019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은 2022년 정부의 국정과제로 포함되었지만 이후 수도권의 반대 여론과 일부 공공기관의 내부 반발로 아직도 구체적인 이전 계획조차 발표되지 못한 상태다.
이로 인해 지방소멸은 점점 가속화되고, 지방경제 활성화와 수도권 집중 해소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의지는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공공기관 이전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은 ‘수도권은 폭발 걱정, 지방은 소멸 걱정’ 현상을 해소하는 데 정부가 쓸 수 있는 가장 가시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 수단으로, 과거 노무현 정부의 성공적인 체감 정책으로 평가된다.
30일 내에 5만 명 이상이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 동의해야 성립되는 이번 청원은 부울경 지역 주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지역 경제계를 비롯한 유관기관들의 참여 속에 21일 만에 5만 5284명이 동의해 목표를 초과 달성하였다. 이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단순한 공공기관 이전을 넘어 국가 생존이 걸린 국가균형발전의 중차대한 지렛대 정책임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현재 국회에는 산업은행법 개정안 외에도 농협중앙회를 호남으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도 발의되어 있다. 많은 지자체들이 침체 늪에 빠져있는 지방경제를 위해 혁신성장의 모멘텀을 찾고자 하는 절박함으로 2차 금융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목을 매고 있다. 특히 부산은 광역시로는 처음으로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된 만큼 비수도권 지역들과 연대하여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물론 2차 금융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물꼬를 터 나갈 필요가 있다.
미국, 독일, 중국 등 우리의 경쟁 국가들이 제조업 르네상스를 부르짖고 있는 지금, 동남권 산업벨트는 여전히 대한민국 실물경제의 토대라 할 수 있다. 동남권의 신산업 육성과 소부장 산업 스케일 업 그리고 금융중심지 활성화와 혁신 벤처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을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에 대해 국회는 우물쭈물 고민할 때가 아니다.
모든 일은 그 시기가 있다. 국회는 산업은행법 개정안을 빛보다 빠르게 처리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바람처럼 세게 행동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국회가 그 존재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 동남권 800만 주민들은 국회의 현명한 응답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2025-03-19 [18:08]
-
[시론] 파크골프, 최고 인기 생활체육으로 성장하길
전국적으로 파크골프(Park Golf)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파크골프가 스포츠의 사각지대에 있던 장·노년층을 끌어들이면서 갈수록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파크골프는 다른 어떤 종목의 스포츠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인다는 세간의 놀라움과 함께 다른 생활체육 종목의 시샘을 한몸에 받으며 승승장구 중이다. 겨울철에도 성행했던 파크골프는 이제 따뜻한 봄을 맞아 더욱 활기를 띠며 애호가 수를 계속 늘려 갈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신생 스포츠인 파크골프에 입문한 이래 10년가량 파크골프 대중화에 온 힘과 열정을 쏟았다. 파크골프가 각광받는 생활체육의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10년 전만 해도 부산의 파크골프 사정은 열악했다. 이때는 낙동강 변 파크골프 구장도 몇 안 되었다. 사상구 삼락생태공원의 36홀 구장 1곳과 9홀 1곳, 북구 화명체육공원 18홀 1곳, 기장군 물빛공원 6홀 1곳 등이 전부였다. 당시 각 구장을 다니면서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 놀랐다. 그런데도 노년층의 남녀 파크골프 애호가들이 깔끔하고 멋있는 복장으로 많은 나이가 무색하게 운동을 즐기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이는 필자가 파크골프 활성화와 구장 확충을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봄철 맞아 파크골프장 활기 띨 전망
10년 만에 인기 스포츠로 각광받아
협회와 초기 애호가들의 노력 결실
노년층 심신 건강 유지에 효과 탁월
급증하는 수요 감안 시설 확충 시급
초고령화 부산 지자체 지원 늘려야
필자의 노력과 함께 부산 각 구·군의 여러 파크골프 동호회와 이 조직을 중심으로 2010년에 생긴 부산파크골프연합회가 초기 파크골프 붐 조성에 기여했다. 그리고 2016년 연합회가 지금의 부산파크골프협회로 바뀌면서 파크골프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초기 협회에 등록된 300~400여 명의 회원이 살림을 꾸리며 구·군 대회를 개최하면서 입문자를 위한 교육을 시켰다. 협회도 대항전을 부지런히 개최해 동호인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주고 즐거운 커뮤니티 활동을 장려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파크골프가 인기 생활체육 종목으로 자리 잡게 할 수 있었다. 특히 동호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년층이 파크골프로 무력감에서 벗어나고 건강을 다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이와 함께 파크골프장 확충과 원활한 구장 운영을 위해 부산시와 체육회, 지역 정치권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호소하고 설득해 지원을 이끌어 냈다. 구장 신설과 기존 구장 재정비에 힘쓴 결과,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아름답고 쾌적한 구장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이 부산 시민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면서 파크골프 동호회와 협회의 급속한 회원 증가로 이어졌다.
현재 부산 전체 파크골프장의 총 홀수는 320여 홀로 크게 늘어났다. 부산파크골프협회도 산하에 단위 클럽 307개, 등록 회원 8280명을 둬 무시할 수 없는 생활체육 단체로 성장했다. 협회가 부산에서 매년 주최하거나 주관·후원하는 대회만 10개다. 부산의 우수 회원과 입문 초기 회원들은 일반적인 라운딩 외에도 전국대회인 5개의 시도 대항전을 포함해 15개 대회에서 자신의 기량을 키우거나 타 시도 대표들과 경쟁하며 파크골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파크골프 인구가 급증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비용이 적게 들고 몸에 무리 없이 운동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기존 골프와 똑같은 규칙 아래 골프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과 단출한 복장으로 입장료도 없는 파크골프장의 잔디에서 하루 4~5시간 즐겁게 보낼 수 있다. 소외되거나 무력감에 빠지기 쉬운 노년층이 4~5㎞의 평지를 걷고 적당한 근육을 사용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함으로써 심신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이 남녀 노년층을 파크골프장으로 이끌어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동안 노인 스포츠로 인식된 파크골프가 최근 중년층 등 더 젊은 층으로 확산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심지어 부산에 파크골프학과와 강좌를 신설하는 대학이 속속 생기고 있다. 파크골프가 생활체육의 최고 인기 종목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이에 비하면 파크골프장 수와 규모는 많이 부족한 상태다. 전국 최초의 초고령화 도시인 부산의 노인 복지를 위해서라도 시설 확충이 시급하다. 부산 지자체들이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파크골프의 계절이다. 파크골프가 노년층은 물론 전 시민의 여가와 건강을 책임지는 더욱 사랑받는 스포츠가 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 부산파크골프협회도 더욱 열심히 뛸 것이다.
2025-03-05 [18:08]
-
[시론]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한미 해양 협력에 기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일부터 특정 국가에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상호관세 또는 보편적 관세 부과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글로벌 무역에 주는 영향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해양수산업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해운 분야에서는 미국의 대중 고율 관세와 보편관세가 지속적으로 실행되면 중장기적으로 세계 무역량 감소가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반면 미국의 탈중국화와 중국발 대미 수출 감소 등은 아시아 내 우방국과의 교역 증가와 인도 등으로 전이되는 공급망으로 인해 새로운 해상운송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중동지역 정세 변화 조짐과 미국 내 환경 규제 완화는 화석연료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항만 분야의 경우 미중 간 교역량 감소는 우리의 환적량 감소 요인이 될 수 있으나, 중국 항만의 북미행 직기항 감소와 아세안 국가 역할 확대에 따른 국내 항만 환적 수요 증가 가능성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대중 고율 관세는 우리 수산물의 미국 수출에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중국 수산물의 미국 외 국가에 대한 수출량 증가로 우리나라로서는 국내 수산물 시장 관리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미국의 수입 수산물 위생·환경 규제 강화는 대미 수산물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우리 수산식품의 품질 경쟁력 제고가 이뤄진다면 장기적인 기회가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인도양, 남중국해, 동중국해와 북극해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해역에서 강대국 간 대립이 확산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아직은 관세 이외에는 구체적인 시행계획이 나오지는 않아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구하는 경제·안보정책은 시간을 두고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대외정책은 향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올 초 바이든 정부 국방부는 중국 최대 해운선사와 조선소 2곳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중국을 비롯한 관련국들 또한 이러한 미국 움직임에 대미 의존도 축소와 신규 시장 개척, 보복관세 등의 방법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로서는 경제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안보와 국제질서 재편에 따른 다양한 영향을 고려해 나가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미국이 ‘MAGA(마가·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실현하려면 가장 취약한 부분인 조선·해운에 있어서 신뢰할 수 있는 강력한 동맹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미국 의회는 지난해 4월 ‘미 국가 해양전략을 위한 의회 지침서’를 발표했다. 미국 해양력이 쇠퇴한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해양패권 재건을 위한 전략으로 마련됐다. 이어 12월 ‘미 선박법’이 제안됐다. 이 법안에는 조선업 재건뿐만 아니라 전략상선대와 항만시설을 구축해 미국의 해운안보와 무역 이익을 지키기 위한 지원방안이 포함돼 있다. 심지어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번스-톨리프슨법에도 불구하고 동맹국 조선소에서 해군과 해안경비대 선박을 건조하도록 하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이는 1969년 발표된 스트래튼 보고서 이후 55년 만에 미국이 해양국가 재건을 위해 물리적 해군력뿐만 아니라 해양경제 안보에 대한 시각을 의회를 중심으로 초당적으로 본격화한다는 의미다.
우리에게는 미국의 자국우선주의가 경제적으로 위기인 동시에 해양산업의 재도약과 글로벌 진출을 위한 기회일 수 있다. 미 관세에 적절히 잘 대응하면서 해양을 중심에 두고 미국과 전면적인 협력체계 구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양국 간 조선·해운 협력, IUU(불법·비보고·비규제) 어업 공동 대응, 해양수산 과학기술 교류, 북극과 인도·태평양 안보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우리 정부와 싱크탱크, 기업이 참여하는 다층적 플랫폼을 생각할 수 있다.
기존 세계질서를 흔들고 재세계화할 트럼프 2.0 시대에 해양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한미 해양 협력은 양국이 가진 해양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상호 발전을 위한 협력 파이를 키워나가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간 우리가 구축해 온 종합적인 해양력이 발현되어야 하는 시점인 게다. 글로벌 초불확실성 시대에 한국이 미국과 추진해야 할 협력의 키워드 중심에 바로 해양이 있다.
2025-02-19 [17:49]
-
[시론] 글로벌 관세 전쟁과 한국의 전략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하며 트럼프 노믹스 2.0 시대가 개막되었다. 2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라는 기조를 더욱 강화하며, 국익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통상정책에서는 무역 적자 축소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한 특정 품목 관세 인상과 슈퍼 301조를 활용한 대중국 추가 관세 부과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는 2794억 달러로 전체 무역 적자의 26%를 차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 기조는 1기 행정부 때부터 본격화되었다. 2016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중 간 경쟁은 무역 분쟁으로 본격화되었는데, 당시 트럼프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과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를 문제 삼아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1차 관세 전쟁이 본격화된 2018년 이후 미국의 대중국 평균 수입관세율은 2018년 1월 3.1%에서 2019년 9월 21.0%로 급등하며 17.9%p 상승했다. 이러한 조치는 미중 경제 관계에 지속적인 긴장을 초래했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2기 행정부는 모든 수입품에 10~20%,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최대 6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마약 및 불법 이민 문제 대응을 위해 멕시코·캐나다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었으나, 한 달간 유보하며 조정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러한 관세 정책은 사실상 글로벌 무역 전쟁을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경제는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국 60% 및 대세계 10%의 관세 인상이 현실화되면, 한국의 수출은 143~191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률은 0.4~0.62% 하락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한국 기업들의 주요 생산 및 수출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어, 이들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이 미국으로 수출될 경우 높은 관세 부담이 발생할 것이다. 이는 글로벌 교역 위축으로 이어지고, 결국 한국의 무역 감소와 경제 성장 둔화를 초래하게 된다.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이 12·3 비상계엄 선포에 이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점도 경제적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경제 정책적 측면에서 경기 반등의 계기가 만들어진다면 U자형 회복 국면으로의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적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정책적 지원이 부족할 경우, 내수 침체와 함께 수출 경기마저 둔화되면서 L자형 장기 침체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한국 경제의 안정성과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국내외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비해 기업의 성장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글로벌 및 국내의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저성장 기조의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 둘째, 트럼프 노믹스 2.0으로 인한 글로벌 2차 관세 전쟁의 전개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수 기업은 합리적인 수출 및 투자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수 기업은 경쟁국 기업들의 국내 시장 진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셋째, 미국의 경제 지표 호조로 인해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는 만큼 우리 기업들은 금리 변동성 리스크를 더욱 면밀히 관리해야 한다.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강하게 나타나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며, 기업들은 외환 리스크를 포함한 금리 변동성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산업·기술 트렌드의 변화에 맞춰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구축하는 게 요구된다.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시대에는 단기적인 대응보다 한국 경제의 핵심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진행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2025-02-05 [1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