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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어머니와 사단(四端)
조선 중기, 50세가 넘은 노학자 퇴계(退溪)와 갓 출사한 30대의 기대승은, 이른바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을 벌였습니다. 논쟁의 핵심은 인간 본연의 심성인 사단(四端)은 리(理)에서 발현하는 것이지만, 감정적 요소인 칠정(七情)은 리(理)에서 발현되는 것이냐, 아니면 기(氣)에서 발현되는 것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현상(現象)이 발현(發現)된 근본에 관한 시비였습니다. 어떻게 사단에 따라 행동하고 칠정을 다스릴까 하는, 실천적 문제에 관한 논쟁이 아니라, 그 발현처가 하늘이냐 땅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리에서 기로 발현된 현상계에서 살고 있으므로, 이 논쟁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현실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지극히 형이상학적인 담론이었을 것입니다. 대체, 현상의 발현처가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기에 이런 논쟁에 열중하였을까요? 고담준론을 즐기던 선비들은 이를 대단한 논쟁으로 여기어 토론했고, 학당에는 지금에도 회자합니다. 그러나 이 논쟁은 나중에 정치적 파당(派黨)을 만드는데 기여했을 뿐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쯤이었을 것입니다. 하교하고 무심히 집에 들어서던 나는 깜짝 놀라 밖으로 다시 뛰쳐나갔습니다. 우리 집 대청에 어떤 문둥이가 앉아, 상에 차려진 밥을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문둥이는 사람을 잡아서 간을 빼먹는다는 무서운 소문도 있었고, 그 추한 모습 때문에 집에 들이기를 모두 꺼렸습니다. 그런데 그 문둥이가 우리집 대청에 앉아 멀쩡히 차려진 밥상을 받아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가만히 집안을 살펴보니, 어머니는 이쪽 마루 끝에 앉아 식사 중인 문둥이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나병환자가 집을 나갔겠다고 짐작되는 무렵에 집으로 들어갔더니, 어머니는 마당에 가마니를 깔고 그 위에 앉아 재로 그릇을 닦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그릇들이 어머니가 나병환자에게 차려준 밥상에 올랐던 그릇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왜 문둥이를 왜 집에 들이어 밥을 차려주느냐?”며 화를 내며 항의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는 어머니는 그릇 닦던 손을 내려놓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는 게 아니다! 배고픈 사람이 찾아왔는데 어찌 그냥 내쫓나? 그 사람인들 그런 병에 걸리고 싶어 걸렸겠나, 어쩌다 운수가 나빠 그런 것이지…. 사람 팔자는 알 수 없는 것이니 사람 업신여기면 못쓴다.” 어머니 말씀이 하도 무겁게 들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밥을 빌려 오는 사람들, 우리가 거지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축담 아래 서서 밥을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머니는 꼭 그들의 그릇을 채워 보냈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밥이 없어 굶는 사람들에게는, 그래서 허기가 진 사람들에게는 밥 한 그릇이 하나님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야 그날 어머니가 그 불결한 문둥병 환자를 대청마루에 앉혀 놓고 밥상을 차려준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집에 들이지 않아 허기가 진 문둥이가 찾아오자, 어머니에게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여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청으로 불러올려 밥을 대접했던 것입니다. 아직 어렸던 나는 그런 어머니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문둥병 환자에게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불쌍히 여기는 사람의 정이, 유일한 필요였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 선비들은 높은 관을 쓰고 사단칠정을 논쟁했지만, 사단(四端)이 대체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시는 어머니는, 그 사단을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연민을 가슴에 안고 사셨던 것입니다.
2024-11-1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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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억하는 잠
나는 밤의 고요함을 좋아한다. 그것도 분주했던 일상의 기운이 가라앉은 깊은 밤을 좋아한다. 나에게 밤은 하루의 마무리가 아니다. 먼지 낀 아스팔트에서 호젓한 오솔길로 접어드는 순간이다. 그래서 뒤늦게 뭔가를 쓰겠다며 지금처럼 꾸물대며 시간을 보낸다. 한마디로 저녁형 인간이다. 그 때문인지 아침엔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내 관점으로 아침형 인간은 신기한 종족이다. 나와 함께 사는 이는 새벽 5시 전에 일어난다. 굳이 그 시간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데 항상 이른 시간에 깨어난다. 어찌 그렇게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한번은 아침형 인간이자 가끔 나를 외계인 취급하는 아내에게 물어봤다. 아내는 새벽의 고요함이 좋다고 대답했다. 그냥 눈이 떠지고, 눈이 떠지면 누워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새벽의 고요함? 한밤의 고요함과 많이 다른가?
아무튼, 고요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냥 눈이 떠진다는 건 신비한 현상이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도 비몽사몽으로 한참을 꿈틀대고 있으니 말이다. 자책까지는 하지 않는다. 잠을 자는 사람은 계속 자려고 하고, 깨어 있는 사람은 계속 깨어 있으려 한다는, 잠의 관성 법칙이 있다는 것을 본 적 있기 때문이다.
한데, 잠은 왜 자야 할까? 삶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을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있어야 하는 셈이다. 게다가 잠을 못 자는 것이 음식을 못 먹는 것보다 더 치명적으로 작용해 사망하기까지 한다. 이만큼 대단한 리스크를 감수하며 잠을 자야 할 중대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명확한 결론은 없지만 여러 가설이 있다. 뇌와 신체의 휴식이라는 설이 있고, 노폐물을 제거함과 동시에 기억의 찌꺼기를 정리하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다. 그 외에도 많다. 한데, 휴식을 위해 잠을 자야 한다는 주장엔 솔직히 100% 수긍이 안 된다. 심장은 평생을 쉬지 않는다. 잠잘 때라도 쉬지 않고 뛰고 있지 않은가.
나는 기억과 관련한 어떤 과정이라는 가설에 한 표를 주고 싶다. 기억은 생명체가 남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유산이지 않은가. 즉, 기억은 생명체만이 가진 유일한 능력이며 진화의 토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데, 기억을 남겨 둘 방법이 없다. 대부분 동물은 기록할 문자조차 없으며, 인간조차도 그 기록을 후대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엉뚱한 가설을 세웠다. 물론 나만의 가설이다. 생명체는 살아 있는 동안의 기억을 몸 안에 저장하기 위해서 잠을 잔다. 그 몸이라는 것이, 유전자일 수도 있고 혹은, 차원조차 다른 특별한 곳일 수도 있다. 그래서 잠을 자는 생명체는 그 자체로 기억을 생성하는 창조자이자 기억의 저장고이기도 하다. 그리고 각인된 기억은 대를 이어 전승된다.
제왕나비는 때가 되면 월동하는 장소를 찾아 대륙을 넘어 날아간다. 자신의 기억이 아닌 수만 년간 누적된 조상의 기억에 따라서이다. 본능, 본성이라 부르기도 하는 그것에 따라 기러기는 수천 킬로를 이동하고, 인간은 불가능에 도전한다. 그럴듯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 지금 내 기억은 후대의 재능, 열정이 되고 호기심이 될 것이다. 한데, 후대를 변모시킬 내 기억이 뭔가 있나? 한참 생각해 봐도 속절없이 머리만 긁게 된다. 한심하게도 나는 내 몸에 새겨진 선조의 기억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다.
자기변명에 능숙한 나는 이내 생각을 바꿨다. 내 삶에 더럽고 고약하고, 악독한 기억을 만들어 후대에 남기지만 말자. 뭐…보태주지는 못해도 방해하는 기억이 없는 것만 해도 어딘가. 오늘은 이것만 기억하고 잠이나 자자. 잠 잘 자는 기억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2024-11-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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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다시 오지 않을 순간
오르골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태엽을 감으면 아침 공기에 어울리는 청량하고 맑은소리가 흘러나온다. 연주되는 선율은 ‘일상으로의 초대’(신해철)의 한 부분이다.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가사 없는 멜로디이지만 어떤 때는 꼭 가사가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딱 저 구절만큼의 선율이 반복되는데, 뒤로 갈수록 음악은 조금씩 느려지고, 오르골의 청량하고 맑은소리는 그렇게 지연되는 시간만큼 점차 아련하게 멀어지다가 마침내 멈춘다. 멈추는 시점이 매번 바뀌기에, 어디에서 멈추느냐에 따라 그것을 듣는 내 마음도 조금씩 달라진다. 특히 한 구절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멈춰질 때는 알 수 없는 쓸쓸함과 슬픔이 마음속에 어룽거린다. 그렇게 단순하게 반복되는 것 같은 오르골 선율도 들을 때마다 매번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우리 삶에서 늘 똑같이 반복되는 일들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여름 개봉했던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한 남자의 반복적인 일상을 통해, 동일해 보이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매일의 삶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의 공공화장실 청소부이다. 그의 일상은 얼핏 보면 단조롭고 지루할 정도로 똑같아 보인다. 매일 아침 캔커피를 마시고 카세트테이프로 올드팝을 들으며 출근해 정성을 들여 공공화장실을 청소하고 공원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다. 필름 카메라로 나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단골 술집에서 반주를 즐기며 목욕탕에 가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좋아하는 소설을 읽다 잠든다. 다이내믹한 변화나 눈에 띄는 발전 없이 매일 똑같이 반복되기만 하는 것 같은 그의 생활이 스크린에서 한참 동안 펼쳐진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완전히 똑같은 하루는 없다는 것을.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인공 히라야마의 일상에는 늘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코모레비)’의 모습이 시시각각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에서, ‘반복’은 동일성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이 세상에 완전하게 똑같은 것은 없으며, 우리가 ‘같다’라고 말하는 것은 서로 다른 요소들을 제거해 버린 추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가령 어제도 비가 왔고 오늘도 비가 왔으며 내일도 비가 왔다고 치자. 그 사흘간의 비를 그저 똑같은 ‘비’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제의 비는 소나기이고 오늘의 비는 보슬비이며 내일의 비는 가랑비라는 차이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은 그 각각의 단어로도 그날 내린 비의 다양한 모습을 전부 표현할 수는 없다. 순간순간 내리는 비의 모습과 양과 질감은 다를 테니까. 그 모든 순간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추상적으로 한데 뭉쳐 ‘사흘 내내 비가 온다’며 지루한 반복으로만 인식할 때 삶은 지리멸렬해진다. 유사해 보이는 현상 속에서 동일성만을 볼 것인지, 그 안에서도 미세한 차이를 찾아 그 다양성을 누리며 도약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그 안에서의 작은 차이들을 세심하게 느끼고 기쁨의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든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루하루 정성과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어떤 경지에 도달해 가는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 걸어가고 싶다.
어느새 11월이다. 매년 오는 11월이지만 다시 오지 않을 11월이다. 매일 맞이하는 아침이지만 오늘만의 고유함이 있는 단 한 번뿐인 아침이다. 나에게 유일한 이 순간이 너무도 아름답고 아쉬워서, 기쁘게 눈물이 고인다.
2024-10-3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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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처음부터 끝까지
노벨상 수상 열기가 독서 열풍으로 이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반가우면서도 우려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기억으로는 아마도 맨부커상(Booker Prize) 때도 비슷한 소식이 들렸는데 다시 같은 소식이 들리는 것을 보니, 한강의 책을 읽다 만 것인지 아니면 다시 사서 읽기로 한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런 식의 독서 열풍은 우려스럽다. 젊은 세대에게는 더욱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10년 전만 해도 어떠한 계기든 어떠한 책이든, 읽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책을 잘 읽지 않는 한국인의 특성상, 그 책이 무엇이든 읽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어떻게 읽느냐도 중요하지만, 왜 읽느냐도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가끔 묻는다. 왜, 책을 읽느냐고? 아니 물을 때는 거꾸로 물어야 했다. 왜 책을 읽지 않느냐고? 수업 교재조차 읽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이 의문은 필연적이다. 대부분은 우물쭈물 넘어가려고만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자신들도 정확하게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노벨상 수상 열기로 독서 인기
과거와 현재 독서방식 달라져
"책을 왜 읽는지 생각해야"
이미지와 영상의 세례를 받고 태어난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컴퓨터가 이미 존재했었다. 한 사회학자는 유년 시절이 지난 이후 컴퓨터가 상용화된 세대와 애초부터 컴퓨터가 있었던 세대는 사고방식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는 사실로 판단된다. 독서와 관련하여 생각한다면, 그 덕분에 글을 읽고 문자 체계를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글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읽고 또 쓰기 위하여 노력했다. 원고지에 쓸 때는 상당한 파지를 각오해야 했는데, 그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사고로 쓰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자연스럽게도 이렇게 쓰인 글을 읽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글쓴이의 사고와 생각의 흐름을 존중하려 애썼다. 시작부터 일정한 전제가 깔리고 접근 방식이 설명되어야 했고, 문장을 통해 차례로 생각의 터널이 뚫리면서, 끝에서는 글과 책이라는 전체 사유가 이해와 기억의 영역 속으로 들어와야 했다.
모니터와 컴퓨터는 독서 습관을 바꾸었다. 필요한 부분만 바로 찾아볼 수 있었고, 전체를 건너뛰고 부분만 읽을 수도 있었다. 글 쓰는 습관도 바뀌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흐름으로 책을 쓰는 것이 아니고, 부분부분 써서 조합하기도 했고, 일부만 써서 확대하기도 했다. 독서의 측면에서 보면, 일관된 흐름이나 전체적 조감보다는 필요한 대목을 찾고 필요한 방식으로 요약하면 그만인 읽기가 상용화되었다.
대학 강의 수강 시에도, 학생들은 개조식 노트 필기나 PPT를 더 강하게 원한다. 빨리 읽을 수 있고, 간단하게 외울 수 있고, 그래서 쓰고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과목을 공부하기 위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을 읽는다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풍조도 은근히 만연한 상태이다. 한강의 소설도 어쩌면 그러한 운명에 빠져들 수 있다. 한강의 소설을 통해 소설과 문학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의도는 희미하고, 유명하고 유행하는 정보를 재빨리 얻으려는 시도가 반짝이고 있다.
이러한 독서 방식은 곧 사그라질 것이다. 요점만 얻고자 하고 그것도 빨리 얻고자 하고 유행하는 무언가를 다시 쫓고자 하는 의도라면, 천천히 흐르는 서사의 줄기나 유장하게 지나는 시간의 사유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길 성의 있는 독자가 많이 탄생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틀렸기를 바란다. 하지만 만일 이 우려가 틀리지 않는다면, 노벨문학상 수상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도 있다. 다른 수상자가 탄생할 때까지, 한국 문학을 향한 열기는 다시 바닥에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2024-10-2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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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객지(客地)에서의 장례
어느 해 늦가을, 나는 낯설기 짝이 없는 산과 들로 둘러싸인, 서울에서도 한참이나 북쪽에 있는, 마른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어느 산 아래 서 있었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불어오는지, 늙은 버드나무가 바짝 마른 나뭇잎을 바람에 날리며 부러질 듯이 휘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산과 들 뿐만 아니라, 바람조차 낯선 곳이었습니다.
그 이틀 전, 형님으로부터 “고모가 돌아가셨다!”라는 간단한 부고를 접했을 때, 나는 고모님이 당연히 고향에 매장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서울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고종형님은, 장지가 포천 어느 교회 묘지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엄마는 고향에서 묻히고 싶다며, 외가집 밭에 묻어 달라고 했다. 그렇지만 자주 찾아보기 위해 서울에서 가까운 교회 묘지에 모시기로 했다. 엄마 말을 어기는 마지막 불효를 하기로 했다.”
순간 나는 가슴이 먹먹해 왔습니다. 고모님은 친정과 친정 조카들을 좋아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고모님 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으므로, 고모님을 가족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모님을 낯선 먼 객지에 매장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고, 낯선 객지에서 잠들어야 하는 고모님의 마지막 길이 서글프기까지 했습니다.
고향 집에서의 어느 여름이 생각났습니다. 그 보름 동안, 우리 집 대청에는 늙은 두 여인, 어머니와 고모님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부처님을 머리에 이고 사는 분이라, 틈만 나면 관세음보살과 나무아미타불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그러나 고모님은 오랫동안 기독 신앙에 젖어 사신 분이라 매일 아침 혼자서도 예배를 보는 분이었습니다.
고모님은 육십이 넘도록 고향에서 사시다가, 늘그막에 아들이 서울로 삶터를 옮기는 바람에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고모님 댁이 우리 집과 바로 이웃이라, 날만 새면 보던 어머니와 고모는 서로 그리워했고, 그래서 어느 해 여름 고모님은 우리 집에 머물며 회포를 풀게 되었습니다. 고모님은 ‘물도 씻어 먹는다’고 소문이 날 만큼 깔끔한 분이었고, 어머니는 너무 깔끔 떨면 복 나간다며 대강대강 살림하였으므로, 서로가 대조적이었습니다.
고모님은 매일 아침 머리를 빗질하고 옷을 가지런히 한 다음, 우리 집 대청에 앉아 혼자 예배를 보았는데,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는 절차가 교회에서 하는 예배 절차와 똑같았습니다. 고모님이 예배를 진행하는 동안, 어머니는 방에서 열심히 관세음보살과 아미타불을 염송했으므로, 그 보름 동안 우리 집 아침은 찬송가와 염불로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보름이, 어머니와 고모님이 이승에서 함께한 마지막 날들이었습니다.
고모님을 그 마른 바람이 휘몰아치듯 불어오는 낯선 객지에 묻고 돌아오면서, 나는 손수건이 젖도록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토록 고향과 친정을 좋아했던 고모님을, 그 거친 바람이 불어오는 낯선 땅에 버렸다는 생각과, 그 낯선 땅에 홀로 남겨져 쓸쓸해하시는 고모님의 모습이 자꾸 눈에 어른거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모님보다 더 오래 사셨던 어머니는 햇살이 눌러앉는 대청에 앉으면 고모님을 생각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 간 곳이 어디길래 한 번 가면 다시 못 올까? 무덤이라도 그 객지에 쓰지 말고 여기에 쓰지, 이리 보고 싶은데….”
젊은 시절, 유독 탈속한 삶을 동경했던 나는, 정은 과거에 얽매인 기억으로,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슴 아픈 정이 없다면 삶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는 것을, 그 아픈 정 때문에 이 모순에 가득 찬 세상을 견딘다는 것을, 그 정 때문에 이 무의미한 삶이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나이가 많아진 이즈음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2024-10-1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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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비틀어질 테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할 때가 있었다. 좋고 싫음의 구분만으로 뭐든 맛보고, 만지고, 느껴보려 했었다. 처음 접해본다는 것만으로도, 그 대수롭지 않은 체험에도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을 때가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낯설어 빛났던 유년 시절이다.
낯섦의 이면을 알게 되는 두 번째 시기가 있다. 무턱대고 달려들다 상처받고 위험에 빠지기도 했었다. 자의든 타의든 모든 낯선 것들이 도전으로 덮쳐오고,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했었다. 그런 경험으로 무모함이 뭔지 알게도 되었다. 조금 창피할 뿐인 실패를 세상이 무너지는 실패로 받아들여 미래를 속단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낯섦은 여전히 나를 매혹하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른바 소년과 청년의 시절이었다.
다음에는 협상의 시기라고 이름 붙이겠다. 낯섦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두려운 영역이 있으며 동시에 엄청난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능성을 얻기 위해선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이중성을 알기에,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낯섦만 즐겼다.
어쩌다 용기를 내어 낯섦에 도전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도전이 반복될수록 낯섦에 치르는 비용은 줄어들었다. 오히려 낯섦의 대가로 빈털터리가 될까 싶어 몸을 사렸다. 대신에 책을 읽거나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취미에 눈을 돌리기도 했다. 가끔은, 가진 걸 포기하고 미지의 공간에 몸을 던지는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심으론 낯섦의 가능성은 랜덤 박스처럼 운이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다음 시기는 잘 모르겠다. 뭔가 다음 단계가 있을 것 같다. 실토하자면, 아무래도 내가 다음 단계에 발을 디딘 것 같다. 일단, 웬만한 것은 다 심드렁하다. 주말에 낄낄거리며 봤던 코미디 프로가 재미없고, 가슴 졸이는 공포 영화를 보고도 주인공은 결국 살아남을 거라며 콧방귀를 뀐다. 세상엔 새로운 것도 특별한 것도 없으며, 결국은 힘의 논리이며, 결국은 원자들의 집합일 뿐이라는 괴상한 논리를 중얼거리기도 한다.
변명하자면, 내 탓만은 아니다. 각종 매체에선 앞다투어 세계 곳곳의 명소와 이색 지역을 소개한다. 전문 정보들이 떠먹여 주듯 넘실거리고, 온갖 극한 직업과 기인, 지구촌 소식과 사건 사고가 눈만 뜨면 보인다. 이런 걸 매일 접하다 보니 가보지 않아도 가본 것 같고 먹어보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한데, 이런 익숙함이 의외로 고약했다. 마치, 의욕, 식욕 다 잃은 무기력증 환자가 된 기분이다. 나도 한때는 오지를 탐험하고, 세상 끝까지 걸어가 그곳의 별을 보고 싶었었다. 이득을 얻고자 함도, 철없는 호승심도 아니었다. 그 순수한 호기심과 욕구는 분명 삶의 열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음 단계는 낯섦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시기인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새삼스럽게 낯섦을 찾아다녀야 하나? 찾는다고 해서 그 낯섦을 감당이나 할 수 있을까? 심드렁해서 더 삐딱해진 눈으로 둘러보니 그럴듯한 낯섦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러니까 늘 보는 것이지만, 거꾸로 돌리거나 비틀어보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들 말이다.
갯바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갯바위 바닥 틈에 우글거리는 고둥과 게를 발견하는 것처럼, 길 걷는 사람 뒷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걸을 때마다 보였다 사라지는 신발 바닥 무늬를 보는 것처럼, 눈으로 보고도 미처 몰랐던 광경이 주변에 널려 있었다. 세상을 꼭 정면으로 보라는 법이 있나? 돌려서 보고, 비틀어서 보니 낯선 것이 지천이었다. 까짓것 어디 한번 비틀어서 보자. 어차피, 죽음이라는 최고의 낯섦을 겪기까지 끊임없이 낯섦을 즐겨야 할 운명이 아닌가.
2024-10-1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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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이상한 시험공부
며칠 전 아이가 중학교에서의 공식적인 첫 시험을 치렀다. 시험을 치른 것은 아이인데 공부는 내가 더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국어의 품사 분류 연습문제를 만들고(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정말이지 그런 식으로 소설을 읽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김유정 소설의 시점과 서술자의 특징과 대사에 담긴 인물의 심리 같은 것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자기 주도적 학습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도 물론 잘 알고 있다. 말 그대로 사교육과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학습하는 것이 핵심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한 사교육 시장이 오히려 늘어났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러나 혈육에 대한 본능적 편애와 이상적 기대를 접어두고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했을 때, 내 아이는 아직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 부족했고, 여전히 친구들과 노는 게 제일 좋다는 천진난만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다만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뿐이다. 나도 평소 공부에 대해 그리 닦달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당장 시험이 코앞인데 아이 스스로 메타 인지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줄 대범함이나 인내심까지는 없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속에서 엄마 주도적 학습이라도 시켜야 했다. 물질적 보상 같은 외재적 동기보다 과제 자체에 대한 흥미나 성취감 같은 내재적 동기 유발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교육학 이론들이 내 머릿속에 잔뜩 있었지만, 형이상학적 지식 같은 건 고이 접어두고 용돈이나 선물이라도 걸어야 했다.
국어 과목이야 전공이니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과목들을 봐주려면 나도 예습이 필요했다. 내 일을 끝내놓고 중학교 공부까지 하려니 피곤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30년 전쯤 했던 공부를 배경지식이 달라진 상태에서 다시 해보니 은근한 재미도 있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내재적 동기는 오히려 내게 촉발된 것 같았다. 이런 식이라면 몇 년 뒤엔 수능을 다시 쳐봐도 되겠다는 쓸데없는 용기까지 생겼다.
과학 시험 범위는 힘에 관련된 단원이었다. 문제집을 아이에게 풀게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내용 확인차 읽어 보았다. 물체의 모양이나 운동 방향, 빠르기를 변하게 하는 원인과 원리에 대해 이해하고 응용문제를 풀어야 했다. 문제집의 개념 설명 페이지에 과학에서 정의하는 힘에 대해 나와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글씨로 참고 사항이 적혀 있었다. ‘과학에서의 힘이 아닌 예:아는 것이 힘이다. 강아지 키우기가 힘들다. 식사를 하고 나니 힘이 난다. 선생님 말씀이 힘이 되었다.’ 뭐 이렇게 당연한 걸 적어놓았나 싶어서 처음엔 피식 웃었다가, 나중에는 힘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는 어떤 종류의 힘을 얼마만큼이나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힘은 능력이기도 하고 자신감이나 용기이기도 하고 도움이나 의지처이기도 할 것인데 나는 과연 내면에 힘이 있는 사람일까, 누군가에게 그 힘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일까, 그런 생각들.
문제집의 설명에 따르면 중력은 끌어당기는 힘이고 탄성력은 되돌아가려는 힘이며 부력은 밀어 올리는 힘이다. 그것은 물리적인 힘을 설명한 과학의 언어였지만 실은 우리의 마음에도 끌어당기는 힘과 되돌아가는 힘과 밀어 올려주는 힘 같은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었던 나는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학창 시절에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으면서도 기대만큼 좋은 성적을 받지는 못했던 이유를. 책상 앞에 계속 앉아서 교과서를 보고 있긴 했지만 의식의 흐름은 자주 그런 식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아무래도 수능을 다시 치는 건 곤란하겠다는 결론을 내리며, 아이에게 문제집을 내밀었다. 아이가 입을 앙다물고 문제를 푸는 동안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내가 가진 힘과 타인이 가진 힘, 그리고 우리가 나눌 수 있는 힘에 대한 생각들이 무수히 가지를 치며 뻗어나가고 있었다.
2024-10-0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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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옛 텔레비전드라마를 다시 보다
일이 있어 30년도 더 지난 텔레비전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나의 의지는 무관하게 보게 된 것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1991년 대입학력고사를 볼 즈음에 시작한 드라마였다. 나는 이듬해 대학생이 되었고 대학 생활 틈틈이 보는 둥 마는 둥 그렇게 흘깃흘깃 넘겨 보아야 했던 드라마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1997년 중국으로 수출되었고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신문은 시청 가능한 중국 인구 9억 명 중 4.2%에 해당하는 3900만 명이 이 드라마를 보았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의외였고, 중국으로서도 신기한 일이었다. 한국 신문도 이 드라마의 성과에 자랑스럽다는 듯한 인상을 내보이곤 했다. 그래도 그때는 그냥 의외였고, 별일에 불과했지만, 훗날 이 드라마의 파장은 한류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예광탄으로 자리 매김되었다. 그러자 이 드라마는 연구 논문 속에서 살아나기 시작했고, 각종 한류 서적에 그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평소 나 역시 이 드라마가 한국 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드라마 수출 역사에서도 중요한 이정표로 남는다는 주장을 덧붙이곤 했다. 하지만 정작 55부작에 이르는 이 드라마를 다시 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추석 연휴는 길었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었기에, 용기를 내서 그 시작을 다시 경험하기로 했다. 긴 연휴도 그 끝을 드러내면서 당연하다는 듯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드라마 시청은 이어졌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그 시절 그 드라마와 함께 떠났던 MT도 생각났고, 한껏 비웃으며 이 작품을 은근히 폄하했던 기억도 드문드문 떠올랐다.
개인적인 추억을 논외로 친다고 해도,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을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이 드라마에는 삶에 대한 명료한 발언이 담겨 있었다. 과거 재래식 ‘한국인’의 삶과 미래 ‘도시인’의 삶이 고루 담겨 있었고, 지나가 잊힌 것에 대한 미련과 함께 새롭게 찾아올 미래에 대한 우려 역시 함께 담겨 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과거의 작품이기도 했지만, 현재의 작품도 될 수 있었다. 억지로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30년도 더 된 이 드라마 안에 지금-이 시대의 문제도 함께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의 격차로 인해, 우리가 걸어왔던 지난 30년의 모습이 어쩌면 이 드라마의 깊이를 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밤을 새기 시작했다. 55부작을 다 보기 위해서는 며칠을 더 보내야 할지도 몰랐지만,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작품을 보고 써야 할 연구 논문과 저술도 잠시 잊기로 했다. 그 시절, 그때, 우리들이 보고 그 세대의 또 다른 우리들이 구상했던 이 작품은 확실히 지금 작품과 달랐다. 지금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어조로 그 시절과 그 이후의 시절, 그리고 그 이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자세와 의지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무언가를 주장하고자 하는 태도는 인상 깊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의 서로 다른 기호를 맞추어야 했던 주말 연속극이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사실 이 드라마는 중국인이 좋아한 이야기가 아니라, 중국인마저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던 셈이다.
한때 1980~1990년대 풍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유행에 둔감하기 때문에 지금도 그 풍조가 남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러한 유행이 필요했다면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용기가 아니었을까. 신중함과 점잖음을 핑계로 지나치게 머뭇거리지 않고,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었던 용기는 그 시절 더욱 분명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 그리운 것은 아니었을까. 문득, 오래된 옛날 텔레비전드라마를 다시 보다가 든 생각이었다.
2024-09-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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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주막(酒幕)
집사람은 안마기에 발을 넣고 소파에서 쉬고 있었다. 항암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집사람은 마치 전장(戰場)에서 거친 전투를 치르고 빈사 상태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병사처럼 지쳐 있었다. 집사람의 코가 저렇게 길었었나 라고 생각할 만큼 코가 길어 보였으므로, 내게는 그런 집사람이 생소했다. 집사람은 광대뼈와 볼이 두툼해서 코가 작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항암 치료는 두툼하던 집사람을 마른나무 막대기처럼 만들어 놓았다. 앙상해진 어깨는 생명이 도망쳐 나간 흔적처럼 보였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는 이야기꾼의 이야기 소리처럼 조곤조곤하게 들렸다. 창밖을 내다보던 집사람이 무언가 말을 했는데, 잘 듣지 못한 나는, 집사람이 요양병원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의중을 확인하기 위하여 집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집사람이 응시하고 있는 것은 창밖의 비였고,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앞에 암담히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슬픔과 언짢음, 그리고 가슴벽이 바늘로 찔린 듯한 지독한 아픔이 밀려왔다.
무슨 말을 했는지 묻고 있는 내 얼굴에, 그녀는 아주 조그맣게 말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요?”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가 2년이 넘었지만, 집사람은 단 한 번도 죽음을 입에 담은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 말은 의외였다. 그렇지만, 그런 의외의 것이 우리에게도 다가올지 모른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생각했다.
사람들은 경험해 보지 않은 것들은 알 수가 없고, 그래서 경험 이외의 것들은 믿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대개 의문 속에서, 의문을 묻어 둔 채 그냥 살아간다. 죽음이 그런 것일 것이다. 정말 궁금하지만 경험할 수가 없으므로 어떤 것인지 궁금해하며 살아간다. 어릴 때, 평상에 누워 바라보던 하늘을 떠울렸다. 수많은 별들이 빛나는 보석처럼 뿌려져 있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 그 별들이 이 지구처럼 가없는 우주를 떠도는 또 다른 지구라는 것을 알았다.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있는 이유를 알아? 그곳은 전부 이 지구처럼, 사람의 실체(實體)인 영혼들이 저 끝없는 우주를 여행하다 쉬고 싶을 때 쉬어가는 곳이야. 사람의 영혼은 우주를 여행하는 나그네거든! 우리도 이 우주를 여행하는 나그네야. 우리는 어느 날 이 지구별을 지나다가, 마치 여행객이 쉬어갈 주막(酒幕)에 들리듯이 이 지구에서 행장을 푼 거야. 지구별에서는 사람의 옷을 입어야 하므로 우리는 각각 너와 내가 된 거야!”
“이 지구별에서 우리의 일생은 저 우주의 하룻밤과 같아. 그래서 너무 짧은 하룻밤인데, 우리는 이 짧은 밤에 긴 인생의 꿈을 꾸는 거지. 뜨거운 사랑을 하고, 미워도 하고, 배신도 해 보고, 의리 때문에 목숨을 버려보기도 하고, 가슴이 아려 녹아내리는 헤어짐의 아픔을 겪기도 하고…. 그리고 마침내 이 몸이 죽으면, 그때 우리의 실체인 영혼은 꿈을 깨는 거야! 그래서 우리 삶이 꿈일걸 알게 되지. 우리는 지금 꿈을 꾸면서도 꿈인 걸 몰라. 왜 그런지 알아? 이 인생의 꿈이 너무도 실감이 나거든!”
“우리가 지난밤 꿈을 꿀 때, 우리는 그것이 꿈인 줄 몰랐지만, 깨어보면 그것은 재미난 꿈이었지. 당신과 나는 지금까지 이 지구별에서 재미난 한편의 꿈을 꾼 거야! 이 꿈에서 깨어나면, 당신은 이번의 우리 인생에서 얻은 정서를 바탕으로, 다른 별에서, 그 주막에서 새 생활인 또 다른 꿈을 꾸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가 함께한 이 삶은 다만 작은 이야깃거리가 될 거야.” 창밖에는 슬픔처럼 지독한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2024-09-1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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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억이 만든 기억
사람의 생각과 판단의 근간은 모두 기억이 아닐까 싶다. 당장 뭔가를 떠올려 봐도 그렇다. 어떤 모습, 대화, 단어, 현상, 뜬금없는 계획…. 무엇을 상상하든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떠올려진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도 결국은 오랫동안 쌓아온 기억의 결과가 아닌가. 그래서 개개인이 가진 기억은 삶의 방향을 정하기도 하고, 삶 자체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까마득히 오래된 기억이 있다. 아마도 가장 오래된 기억일 것이다. 그래서 스틸사진처럼 순간의 장면만 떠오른다. 나는 엄마의 등에 업혀 있었고 막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그때 보았던 것은 초가의 처마와 창이 뚫린 낮은 황토벽이었다. 그리고 벽 안쪽에서 소의 나지막한 울음을 들었다. 기억의 영상은 그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 영상에는 또 다른 감각들, 이를테면 삭은 짚 더미 냄새와 뜨끈한 여물통에서 피어나는 증기가 뒤섞인 형언할 수 없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내가 몇 살 때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의 정황으로 그곳이 외갓집의 어느 장소였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지금도 이끼 낀 시골의 오랜 담벼락을 보면 왠지 삭은 짚 더미 냄새가 느껴지기도 한다. 엄마의 친정, 즉 외갓집의 풍경은 내 유년의 기억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나지막한 산 앞에 앉은 외갓집 앞에는 이삭을 피우기 시작하는 벼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초록 물결은 구불구불 가로지른 개울둑에 막혀 되돌아오고, 그보다 더 까마득한 지평엔 기적을 울리며 나타나 어린 시선을 사로잡고 마는 동해남부선 기차의 행렬이 있었다. 어렸던 나는 외갓집 대청마루에 앉아 그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내 기억의 바닥을 차지할지 모르고 마냥 바라보기만 했었다.
여름밤, 대나무 평상에서 외할머니 무릎을 베고 칭얼거리다가 문득, 숨 막힐 정도로 황홀한 밤하늘의 은하수를 목격했었다. 처음 보는 그 장관에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런 은하수의 현기증을 두 번 다시 느끼지 못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그저 침묵으로 하늘의 끝과 끝을 더듬었었다.
기억의 단편은 뒤죽박죽이다. 바닷가에서 고둥을 줍다가 발견해 내 손바닥 위에 올린 성게의 보일 듯 말 듯 한 움직임. 그리고 따갑지도 간지럽지도 않은 아슬아슬한 손바닥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무심코 휘둘렀던 내 잠자리채에 부딪혀 죽어 가던 제비의 까만 눈. 밤마실 가는 외할머니 따라 농로를 걷다가 내 옷에 앉은 반딧불이의 깜박이는 불빛. 그렇다. 그것들은 모두 일종의 신호였었다.
무엇을 뜻하는 신호인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신호에 따라 평범했던 사건이 전혀 다른 의미의 기억으로 변하기도 했었다. 또 그런 신호에 따라 불쾌했던 사건이 망각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기억이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기억은 언제나 기억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기억이 쉽지 않았던 만큼, 망각 또한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쁜 기억은 지우려 문지를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영원히 간직하고픈 기억은 나도 모르게 구멍이 숭숭 뚫린다. 기억이란 본디 그런 것이긴 하던데, 똑같이 체험하더라도 개인마다 다른 신호에 따라 다른 의미를 만들고 전혀 다른 기억으로 저장되는 것 또한 기억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내면의 기억들이 궁금하다. 언제, 어떻게 나타나 지금 겪고 있는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현실을 채색해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지금도 무심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골목길 아래의 무성한 이끼에 눈길을 던지곤 한다. 그리고 늘, 초록의 물결을 그리워한다.
2024-09-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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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삶과 체험
예전에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각종 노동 현장에 유명인들이 하루짜리 일꾼으로 투입되어 일을 하고 그날 받은 일당을 기부하여 불우이웃을 돕는 콘셉트였다. 평소 잘 모르고 있던 타인의 노동 현장을 들여다본다는 것, 몸으로 하는 일에 익숙지 않은 유명인들이 좌충우돌하며 일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 그리고 그날 번 돈을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함으로써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는 충분했다.
그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주인공이 받은 돈을 스튜디오로 들고나와 유니콘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가서 하트 모양의 모금함에 넣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날의 일당과 그동안 쌓인 모금액이 화면에 커다랗게 나타났다. 나는 그 장면이 무척 의미심장하다고 느껴졌다. 날개와 뿔이 달린 하얀 유니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 그 유니콘을 타고 높이 올라가 만나는 사랑의 하트. 그 설정 자체가 환상에 기대고 싶어 하는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날 하루치의 고생으로 타인의 삶을 다 이해한 것 같은 착각, 잠깐 체험해 본 것으로 타인의 고충을 모두 헤아린 것 같은 오만함, 그리고 하루의 일당으로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것 같은 거대한 환상. 물론 그 프로그램이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시청자들에게 알려주기도 했고, 그렇게 모은 성금은 실제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또 어떤 시청자에게는 봉사나 나눔에 대한 의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는 불편하기도 했다. 타인의 삶의 현장을 단 하루 이벤트처럼 ‘체험’한다는 사실이. 내가 쓴 단편소설 ‘서로에게 좋은 일’에 이런 장면이 있다. 부유한 친구의 휴가에 따라온 주인공이 별장을 차지하기에 미안해서 텐트에서 자겠다고 하자 친구의 남편이 말한다. “방에서 편하게 지내세요. 저희는 텐트에서 하루 자면서 리아한테 불편하고 힘든 경험도 좀 시켜보려고요.” 그들에게 힘든 경험은 휴가용 이벤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일같이 견디며 살아야 하는 삶이다. 요즘은 캠핑이 워낙 유행이고 나 역시 아이가 졸라대서 한두 번 가본 적이 있지만, 나는 사실 캠핑을 즐기지 않는다. 텐트처럼 불안전한 공간에서 자고 싶지 않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그런 경험이라면 청소년기와 대학 시절에 이미 충분히 했고, 그것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남의 집 주차장에 살았던 적이 있다. 주차장이었으므로 셔터가 출입문이었다. 안에서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자면 늦게 귀가하는 가족이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종종 잠금장치를 하지 않은 채 셔터만 내리고 자야 했다. 그럴 때면 누가 들어와 나를 해칠까 봐 불안했다.
무허가 판자촌에 산 적도 있었다. 얇은 합판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소리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두 집 모두 화장실에 가려면 집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그것은 하루짜리 체험이 아니고 나의 생활이었다. 누가 그 시절의 내게로 와서 단 하루 머물다 가며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하면 나는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며칠 전 기사에서 접한 퍼스트레이디의 미담에도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4시간 동안 쪽방촌의 청소와 도배를 하고서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한 그녀의 말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힘겹게 겪어내는 매일의 생활이 누군가에게는 하루짜리 ‘체험 삶의 현장’이구나, 그런 생각. 이웃을 돕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선행을 전시하는 일로 끝나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타인의 고통을 잠시 체험하고 빠져나와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쉽게 말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2024-09-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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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또 다른 어둠 앞에서
지금, 내 눈에는 한 사진이 들어온다. 1945년 11월 26일 〈조선일보〉에 수록된 사진이다. 기사와 함께 게재된 사진은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을 포착한 사진인데, 중절모를 눌러쓴 인물의 표정도 어둡지만, 건물에 드리우는 어둠 역시 만만치 않다. 그날의 사진은 그날의 어둠과 역사의 어둠 그리고 곧 일어날 우리 민족의 비극을 보여 주는 것처럼 어두컴컴하다.
사진 밑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달려 있다. "사진은 정동 예배당에서 예배를 보시고 문밖으로 나오시는 김구 선생". 이 설명은 환국(귀국) 3일 차 김구 선생의 동선과 활동을 추적한 기사에 부기되어 있다.
빛바랜 이 사진이 생각난 것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반역사 세력'과 그들의 왜곡된 가치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구로 대표되는 항일 인사의 업적을 깎아내리고 고의적일 정도로 보수 세력 몇몇을 상찬하는 움직임부터, 청문회에 나온 기관장 후보가 독도가 분쟁 지역이라느니 혹은 위안부 문제는 답변할 사안이 아니라느니 하며 뱉어냈던 수상한 말들, 김구를 테러리스트로 지칭하고 그를 비난하는 책을 출간한 인사가 앉지 말아야 할 요직을 차지한 기현상, 게다가 대놓고 친일을 넘어 숭일(崇日)을 지향하는 정부 자세에 이르기까지, 최근 대한민국에는 정상 범주를 넘어선 기류와 행보가 넘쳐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독도 영유권이 일본에 있다고 믿는 극소수의 세력이 있다고 했는데, 작금의 문제는 그러한 소수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만은 아니다. 작금의 문제는 수면 아래에서 암약해야 할 문제 세력이, 오히려 권력 위로 부상하면서 자신들의 의지대로 대한민국을 다시 조종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언제부터인지, 정부의 발언과 요직 인사의 동향은 반일을 경계하고 있고, 일본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오히려 문제적 인물로 몰아붙이는 성향이 강해졌으며, 친일의 논리를 편드는 강경 발언이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전반적으로 이 세상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고, 그 무너진 축에 다른 축을 끼워 넣으려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위험 신호이다.
최근 국방 백서에는 일본의 주장을 따르는 문구가 삽입되었고, 육군사관학교에서는 홍범도의 흉상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었으며, 김구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이의 발언을 들어야 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산물일까. 갑자기 이러한 일들이 확산되는 것이 우연이고, 그 확산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일이 단지 우연일 뿐이라면, 우리는 이제 그러한 우연의 확률을 줄이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만일 이러한 일들이 계획된 일이라면, 그 원인과 그 배후를 밝히고 도대체 이러한 뻔뻔한 생각과 무책임한 발언을 확산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따져 물어야 할 것이다.
김구는 자신의 시대에서 그러한 이유를 찾았고, 그 이유를 제거하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걸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여야 하지 않을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야 하며, 만일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 축의 근원이 '용산총독부'라면, 이제 그 총독부를 처리할 방안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어 보인다. 모든 사태의 근원을 밝히고 문제적 상황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으려 한다면, 그때는 또 다른 독립운동과 마주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잘못된 역사와 그릇된 선택에 대한 독립운동일 것이다. 그날 사진 속 김구의 얼굴이 어두웠다고 느낀 것은 아마도 그 선택이 김구 선생의 얼굴에 드리워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표정에서 또 다른 세상의 어둠을 다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미안하다.
2024-08-2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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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내일(來日)
30대 때의 일이니, 아주 오래된 일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날을 지금까지 잊지 못합니다. 그때는, 고향에 갈 때는 하루일과를 마치고 막차를 탔으므로, 마치 어둠 속을 잠행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은 늦가을의 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고향이 가까워져 오자 버스의 창으로 흐릿한 불빛이 보였고, 나는 유리창에 낀 뿌연 습기를 손바닥으로 닦았습니다.
고향 마을은, 마치 어둠 속에 웅크린 고독한 짐승 같아 보였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낀 주인이 지키는 책방에 들러 책 한 권을 사고는, 어머니가 혼자 지키는 집에 들었습니다. 책을 펴들고 자리에 누웠을 때, 뒤뜰 대나무 숲에 내리는 늦가을 빗소리가 가슴을 차갑게 적시었습니다. 고향집은 고적함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날의 귀향은 그 추적거리는 늦가을 비처럼 썰렁하고 외로웠습니다. 그때 긴 마당으로 저벅거리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어이!…, 니가 고향에 와서 우째 내한테 신고도 없이 혼자 잔단 말이고! 대체 누구 허락받고 하는 짓이고….” 그 못 말리는 오지랖과 장난기가 서 말이나 담긴 목소리의 주인은 내 초등학교 친구였습니다. 막차에서 내리는 나를 본 누군가로부터 나의 귀향을 신고받은 모양이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친구의 방문으로, 그때까지 집을 지키던 적요(寂寥)가 놀라서 도망을 가버리고, 나의 외롭던 귀향은 갑자기 정신없이 시끌벅적해져 버렸습니다, 나는 그에 이끌려 시내로 나갔고, 그는 친구들을 불러내었습니다. 그에게 불려 나온 우리는 밤새 같이 술집을 돌았습니다. 우리는 그 밤을 정다운 담소와 폭소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얼마 후, 그는 우리 친구들 중 제일 먼저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그 젊고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 후 그 밤은 내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그 밤이 그 친구와의 마지막 술자리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나는, 그가 세상을 버릴 때까지, 앞으로의 삶이 팍팍하게 많이도 남았다고, 그런 밤은 앞으로 얼마든지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를 술 초대 한번 해보지 못하고 보냈습니다.
사람에게는 기약된 내일이란 없는 데도 나는 많은 내일을 믿고 있었습니다. 내일이란, 마치 흘러간 어제처럼 사람의 생각에만 존재하는 허구이지만, 사람들은 매일 내일을 만들어 동행하면서, 귀찮은 것들은 전부 내일에 맡겨버립니다. 나도 그 친구에게 권할 술잔을 매일 내일로 미루다가 끝내 권하지 못하고 보냈습니다.
이 하염없는 우주 중 먼지같이 작은 지구 중에서도 그 작은 골짜기에서, 이 하염없는 세월 중 찰나 같은 이 육체의 시간 중에, 친구라는 인연으로 만나는 것은 불가사의한 기적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만남의 경험은 그런 기적일 것입니다. 가을비가 추적거리던 고향의 늦은 가을밤, 그의 뜻하지 않는 방문은 내가 잃어버렸던 따뜻한 고향을 되찾게 하였으며, 늘 곁에 두고도 무감각하던 친구의 넉넉한 정을 발견하게 하였습니다.
그의 방문은 새삼스레 내 주위를 둘러보게 만들었고, 사소한 만남조차 두 번 다시 되돌려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순간들이란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나는 그가 살았던 삶의 길이보다 두 배나 더 긴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산 삶의 길이보다 더 많이 산 삶은, 그의 삶에 비하면 덤입니다. 나는 이렇게 오래 살면서, 그가 나를 눈뜨게 해 준 것처럼, 누구에겐가 친구의 의미에 대하여 눈뜨게 해준 적이 있는지 내게 물어보았습니다.
2024-08-2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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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지구의 면역력
며칠간 몸 상태가 심상찮더니 결국 코로나로 진단받았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전염병이 다시 유행하는 조짐이다. 이 바이러스는 제 몸을 변형시켜 끊임없이 자신의 명맥을 유지하려 한다. 이들의 좌우명은 숙주를 옮겨 다니는 것이며, 그 숙주는 인간이다. 기생 생물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다른 종에 붙어살면서 그 종만 피해를 보게 하는 생물이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도 기생 생물이다. 기생 생물이라는 명칭이 당장 혐오스럽지만, 서적이나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살펴보는 기생충의 생태는 나름 흥미롭고 신비하다.
저녁이 되면 감염시킨 개미를 풀잎 끝으로 올라가게 해 초식동물에게 잡아먹히도록 조종하는 창형흡충이라든지, 물속에 새끼를 풀어놓기 위해 숙주를 물가로 가게 만드는 메디나충. 고양이에게 잡아먹히기 쉽도록 쥐에게 두려움을 없애버리는 톡소포자충 등을 보면, 기생 생물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얼마나 기발한 방법을 쓰고 있는지도 알게 된다.
한데, 당장 약을 처방받아 먹어야 하는 처지에 직면하니 마냥 재미있게 볼 수만은 없다. 새삼 심각하게 살펴보니 문득, 의구심이 든다. 인간은 늘 기생 생물들에게 당하기만 하는 숙주였을까? 그렇지는 않다. 인간들 또한 지금까지 번성하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얻어내기만 했던 대상이 있다.
만약에 지구가 생명체라 가정한다면 인간은 분명히 지구에 기생하는 생물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지구를 생명체로 본다는 가정이 그다지 억지스럽지 않다. 인간을 살펴봐도 그렇다. 인간의 바깥 피부는 죽은 세포이다. 하지만 그 외피가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즉, 생명체를 구성하기 위해 모든 영역이 살아 있어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생명체는 살아 있는 것과 무생물의 절묘한 조화와 융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인간이 지구에 기생한다는 말이 어쩌면 냉정하게 판단한 현실일 수도 있다. 기생이라는 단어 자체로 혐오할 필요는 없다. 남의 살을 먹어야 살 수 있게 태어난 걸 어쩌겠는가. 기생 생물의 원칙만 잘 지키면 되는 것이다.
기생 생물의 원칙은 바로 이것이다. 숙주의 면역체계를 필사적으로 피해야 하며, 또한 자신이 원할 때까지 숙주가 살아 있게 해야 하며, 또 다른 숙주로 이동할 수 있게끔 숙주를 조종할 수 있어야 했다.
한데, 숙주인 지구의 건강 상태가 심상찮다. 팬데믹 이후로, 이상 기후가 세계를 뒤덮고 있다. 폭염과 홍수. 그로 이한 산림화재까지 빈번하게 일어난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올라가고 해수면의 급격한 상승으로 국토가 위협받는 국가도 있다.
그래서 지구가 걱정되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지구는 잠깐 앓을 뿐이다. 독감에 걸려 열이 나듯 평균 기온을 한 50도쯤 올릴 수도 있겠다. 그렇게 100년쯤 지나면 현재의 생명체는 대부분 멸종할 것이다. 나쁜 세균이 사멸하듯 깨끗이 청소된다. 지구는 다시 멀쩡하게 회복될 테고, 곧 새로운 생명체로 가득 채울 것이다.
지구 면역력에 비하면 인간의 생명력은 정말 보잘것없다. 그러니 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위기가 아니다. 바로 인간의 위기인 것이다. 그것도 멸종의 위기이다. 한껏 예민해진 지구의 면역체계를 어떻게 속일 수 있을지, 기생 생물 인간의 비장한 생존 본능에 기대를 걸어본다. 저녁을 먹고 코로나 경구약 4알을 물과 함께 삼켰다. 기생 생물 속에 기생하는 생물이라니…. 아무쪼록 적당히 뺏어 먹고 물러나길 바란다. 몸속에서 탐욕만 부리지 않았으면 저도 좋고 나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2024-08-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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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한계선
계속되는 폭염으로 밤마다 푹 잠들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렇다. 사실 열대야가 아니더라도 잠을 자주 깨는 편이고, 한 번 깨고 나면 그때부터 수면의 질이 매우 낮아지는데, 요즘은 더위 때문에 한 시간에도 몇 번씩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늘 피곤하고, 피곤하니까 커피를 자꾸 마시고, 커피를 많이 마시니까 밤에 또 깊이 못 자고…. 악순환이 이어진다.
얼마 전 새벽녘에는 요란한 천둥과 번개 때문에도 잠이 깼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에 깨어버렸을 것이다. 어두운 집안이 클럽의 무대처럼 번쩍거리며 빛났고 천연 조명이 켜질 때마다 사물들이 환영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나는 어떤 신비한 존재에 홀린 듯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지금 나는 누군가와 동시에 깨었겠지. 이렇게 비현실적인 빛과 소리의 향연을 함께 보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엔가 까만 점처럼 박혀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그날의 불면은 어쩐지 외롭지 않고 오히려 묘한 위안이 되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시간을 확인하려고 휴대폰 화면을 켰다. 그런데 대체 무슨 영문인지, 휴대폰 화면에도 번개가 내리꽂혀 있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화면 우측에서 사분의 일 정도 되는 지점에 세로로 길게 분홍색 선이 생겨 있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짝지가 책상 위에 불공평하게 그어놓은 금처럼 아주 선명하고도 단호하게 말이다. 휴대폰을 껐다 켜 보고 화면을 이리저리 터치해 보았지만 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친절한 누군가가 이미지까지 올려가며 설명을 해둔 내용이 있었다. “이것은 라인 디펙트 현상입니다. 디스플레이 패널과 메인보드를 연결하는 부위에 이상이 생긴 것이죠. 당장 사용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점점 화면이 보이지 않게 될 겁니다. 스마트폰이 시한부 판정을 받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미리 대비하세요. 화면이 전부 잠식되기 전에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시한부. 생각지도 못했던 그 단어가 눈에 쏙 박혀 내 마음을 데굴데굴 굴렸다. 보통은 불치병 판정을 받고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어떤 일에 대해 일정한 시간의 한계를 둠’. 사실 따지고 보면 인생 자체가 시간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은 시한부일 것이다. 다만 그 끝이 언제인지를 대체로 알지 못하기에 그 모든 게 영원할 것처럼 어리석게 행동할 뿐. 그런데 만약 끝을 예감하고 있다면? 어떤 일에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내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를 명확히 받아들여야 한다면?
모든 순간이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 제한된 시간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일.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다분히 체념하는 태도를 갖게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상황에 더욱 몰입하고 집중하게 하는 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단 한 번뿐인 순간이므로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 그 순간의 아름다움, 그 순간의 특별함, 그 순간의 기쁨…. 그런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니까.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결국 상실하게 되더라도 의연히 견딜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차근차근히 해야 하니까.
물론 우리 삶에는 어떤 예고도 없이 한순간에 끝장나 버리는 일들이 더 많다. 휴대폰도 경고 신호 없이 그냥 먹통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더 흔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장해 두었던 사진도 연락처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정말 ‘멘붕’이 오겠지. 그 새벽녘, 천둥·번개와 함께 시한부를 알리는 한계선이 생겨줘서, 담아둔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할 시간을 내게 마련해 줘서,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온전히 감각하게 해 줘서, 나는 끝을 아쉬워하기보다 차라리 그 모든 것에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2024-08-08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