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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베개는 죄가 없다
여느 때처럼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목 뒤쪽에 심한 통증이 느껴져 고개를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 상태로는 하루 종일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 하겠다 싶어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통증의학과로 향했다. 바닥이 고르지 못한 길을 지날 때마다 자전거의 덜컹거림이 목까지 전달되어 고통스러웠고, 차라리 걸어갈 걸 그랬다는 후회가 뒤늦게 들었으나 이미 절반 이상 와버린 상황이었다. 평소 신경 쓸 일이 없었던 우리 동네의 도로 사정이, 즉각적인 목의 통증으로 명확하게 인지되었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세상 모든 일들은 ‘나’와 관련이 있을 때 입체적으로 솟구친다.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자기 중심성이랄까. 그런 인간의 한계를 고려해 보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나 파급력이 큰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경우, 다양한 상황에서 불편을 겪어보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타인의 불편에 대해 자신의 일처럼 민감하고 세심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큰 불편이나 어려움 없이 살아오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의 천진한 얼굴이 나는 때때로 무섭다. 분노로 가득 찬 발길질보다 해맑은 표정으로 가하는 린치가 더 굴욕적이다. 어쨌거나 맞는 사람은 둘 다 아프겠지만, 전자의 경우 가해자 스스로 폭력적 행위를 인식하고 있기에 갈등을 해결하고 분노를 해소함으로써 발길질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은 존재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가해자가 자신의 주먹질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때려놓고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이게 아파? 그냥 장난인데? 왜 이렇게 예민해?” 그런 종류의 천진한 폭력을 행하는 이들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종종 보게 되고, 나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커다란 힘을 갖게 될까 봐 언제나 두렵다.
통증에서 파생된 무거운 생각들을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굴리면서 병원 문을 열었다. 대기 시간 동안 인간 존엄에 대한 책을 읽고 있으니 그 바위를 들고 스쿼트와 데드리프트를 연달아 하는 기분이었다. 힘들고 그만두고 싶고, 한편으론 도파민이 샘솟고 내 한계를 넘어보고 싶고…. 목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책을 들고 있던 팔도 아파올 무렵 진료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내원 이유를 묻는 의사에게, 잠을 잘못 잤는지 베개가 문제인지 자고 일어나니 목이 너무 아프고 잘 움직이지를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베개는 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고 일어나서 목 아프다고 베개만 자꾸 바꾸고 그러는데, 베개 바꾼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동안 쌓여온 몸의 문제들이 마침내 표면에 드러났을 뿐이며, 어떤 베개를 베고 잤든 오늘의 이 사태는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평상시의 스트레스, 근육 긴장, 잘못된 자세나 생활 습관 등이 문제인데, 그것은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되어 왔다는 이야기였다. 치료를 받으며 나는 또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가끔 어떤 일들은 내 인생 전체에 대한 은유로서 벌어지는 사건 같기도 하고, 그 통찰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 혹은 문장 하나에서 촉발되곤 한다. 설령 발화자가 그러한 통찰을 목적에 두고 한 말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 내가 겪는 아픔이나 괴로움의 문제, 더 크게는 내가 속한 세계의 수많은 고통과 절망이라는 문제의 원인을 ‘베개’ 같은 피상적인 데에서 찾아선 안 되는 것이었다. 단일한 하나의 원인으로 쉽게 귀결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보고 다양한 측면에서 원인을 찾아보며 잘못된 점이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수정해 나갈 때 비로소 고통은 멎을 수 있을 것이다. 아픔이 내게 주는 깨달음을 생각해 보면, 베개는 대체로 죄가 없고 통증은 때때로 유익한 것 같다.
2025-10-1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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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예민함, 차이를 아는 고통과 기쁨
잎새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 즉 매우 예민한 사람이었다. 흔히 ‘초민감자’라 명명하는 이들은 민감한 기질을 타고났기에 주변 자극이나 타인의 감정에 깊이 반응한다. 초민감자의 비율은 열에 한둘 정도라고 알려져 있으나, 꼭 초민감자가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 예민한 사람이 많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 깨고, 식당에서 다른 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면 소화가 되지 않을 만큼 힘들어하며,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를 보면 즐거움보다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 이들은 모임을 꺼리고 어쩌다 모임에 참석해도 침대에서 상대와 자신의 언행을 곱씹으며 뒤척인다.
이들에게 돌아오는 말,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반응은 핀잔에 가까워, 자연스레 사회생활을 하며 스스로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게 된다. 특히 치열한 생존 경쟁과 성과 압박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 예민함은 사회적 약점이다. 직장 상사의 쓴소리나 까탈스러운 고객의 갑질 정도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툴툴 털고, 다시 출근길에 나서야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한때 일본에서 ‘둔감력’이라는 단어가 올해의 유행어로 선정될 만큼 인기를 끌었던 이유다.
예민함은 사회적 약점으로 인식
'둔감력'이 유행어로 선정되기도
각자 결 존중하며 공존하길 기대
예민함, 자신과 타인 향한 배려
〈둔감력〉은 일본 소설가이자 의사인 와타나베 준이치의 책으로, 국내에는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실낙원〉이라는 소설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와타나베 준이치는 여성 인물의 탁월한 심리묘사에서 알 수 있듯, 무척 예민한 사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작가 자신을 위해 쓴 책이 아닐까 싶었다. 너무 예민해서 둔감해지려 애쓰는, 그래서 저자는 둔감한 마음이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너무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라는 저자의 조언에 끄덕이다, 그것이 잘 된다면 예민한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청각이 예민하여 케이블 하나 교체하고도, 작은 소리의 변화에 기뻐하며 좋아하는 음반을 늘어놓고 음악 감상에 빠지곤 한다. 곡의 음역과 악기 위치를 귀로 그리고, 소리의 해상도, 보컬의 들숨과 날숨을 느끼는 음악 감상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소설을 읽으면 인물에 공감하여 즐겁게 몰입하고, 타인의 감정에 깊이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예민해서 사람을 잘 만나지 못하고, 소음에 민감하여 휴대전화는 종일 무음이며, 식당이나 카페 등 사람이 많은 장소를 힘들어한다. 예민함은 나에게 작은 차이를 느끼는 기쁨과 고통을 함께 주었다.
세상 만물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물은 물결이 나무는 나뭇결이 있듯 사람에게도 저마다 결이 있다. 예민한 사람일수록 사람에게 쉽게 상처받는다. 둔감한 사람은 악의 없이 예민한 이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이 상대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며, 혹시 알아도 그저 상대를 유별나다고 여긴다. 학교, 직장, 모임 등에서 둔감과 예민함이 만나면, 그 경계에 관계의 상처가 가시처럼 돋는다. 공간의 결이 길이고, 말의 결은 이야기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그곳에 길이 난다. 그 길 따라 서로 결을 존중하며 공존했으면 한다.
예민함이 너무 힘들어 무디어지려 애쓴 적이 있다. 슬픔의 범람을 둔감의 둑으로 막아보고자 한 적도, 모임에 자주 나가 관계의 상처에 굳은살이 박이길 기대한 적도 있다. 하지만 맞지 않는 신을 종일 신은 것처럼 불편했다. 생애 어느 순간, 결대로 살자 결심한 이후 마음이 편했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예민함이 나를 너무 괴롭히지 않고, 타인을 향한 세심함, 차이를 아는 섬세함으로 승화되고자 노력했다. 예민하여 작은 차이를 감지하는 것은, 때론 고통이고 때론 기쁨이다. 남은 생도 내 결을 거스르지 않고, 예민함, 차이를 아는 고통과 기쁨을 모두 누리며 살아가고자 한다.
2025-10-1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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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카니발의 시간은 지나가고
러시아 인문학자 미하일 바흐친은 카니발에서 문학과 인간의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사육제라고도 번역되는 카니발은 중세 유럽에서 실제로 열렸던 축제였다. 부활 대축일 이전 금욕적인 삶을 앞에 두고 40일 동안 질펀하게 놀면서 에너지를 비축하였다.
축제 기간에는 금기와 구속이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우스꽝스러운 인물이 등장하며 위계질서와 예절과 지위도 무시된다. 왕이 거지가 되고 거지는 왕이 되며 성직자는 모독당하고 광대는 추앙받는 거꾸로 된 논리가 상식을 제압한다. 위와 아래, 공포와 웃음, 죽음과 탄생 등이 자리를 바꾸며 권위는 추락하고 조롱당한다. 해학과 풍자가 만들어내는 이 집단적 해방 속에서 인간은 자기 존재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용기를 얻는다.
나는 그 카니발이 가을이면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와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제라는 또 다른 축제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목소리들이 스크린 위에서 살아 움직이고 경계와 위계가 흐릿해진 채 모두가 예술이라는 언어로 소통한다. 낯선 이야기들이 웃음과 감동과 조롱과 성찰을 불러일으키며 억압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그러므로 나는 ‘시민평론단’이라는 배지를 십 년 넘게 목에 걸고 올해도 영화의 카니발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때는 평소의 일정 대부분이 정지된다. 전화도 잘 받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으며 밥도 하지 않고 마트도 가지 않는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영화제에 간다고 표를 제시하면 출석을 과제로 대체해준다. 열흘 동안 하루에 서너 편의 영화를 보고 평론단의 의무인 상영작 리뷰도 세 편 이상 써야 한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비전부문 심사까지 맡게 된다.
그뿐인가. 아침마다 티켓 온라인 예매 시간이 되면 초를 다투느라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키보드 위를 미친 듯이 누른다. 단 몇 초 차이로 봐야 할 영화를 놓쳤을 때의 허탈함과 운 좋게 자리를 확보했을 때의 짜릿함은 그 자체로도 축제의 일부가 된다. 상영 시간에 맞춰 영화관을 이동하고 호평과 혹평에 따라 급조정된 티켓 교환을 시도하며 관객과의 소통 무대도 참가하느라 제때 식사하기도 어렵다. 그러기에 일주일만 지나면 평론단 동지들은 마치 전쟁이라도 치른 듯 눈자위가 움푹 꺼지고 몰골이 초췌해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피로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낮에는 영화를 보고 밤에는 글을 쓰고 다음 날의 스케줄을 고민하면서도, 그 시간을 포기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올해도 역시 개봉이 예상되는 인기작보다는 배급사에서 외면할 것 같은 비주류 영화를 많이 보았다. 전쟁 다큐멘터리와 신화나 전설이 등장하는 영상물과 아프리카나 아시아 빈민국이 배경인 작품들이 매력적이다. 완성도나 서사의 밀도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어딘가 거칠고 낯설지만 그래서 더욱 진실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체제와 규범에 들지 않는 인물들의 어눌하지만 강렬한 언어와 때때로 세상의 구석에 놓인 낮고 거친 목소리들을 들었다. 이제는 폐광이 된 강원 태백의 ‘장성광업소’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이슬이 온다’처럼, 잊힌 사람들과 버려진 장소에 대한 진혼곡 같은 영화가 강한 울림으로 남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를 이겨내며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막장 앞에서도 탄가루를 훌훌 불어 밥을 삼켜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이 검은 막장에서 검은 울음을 토하면서 채탄 광부로 버텨낸 이유는 오직 가족이었다. “나 혼자 참으면 가족들이 즐겁다”는 대사가 아직도 가슴을 때린다.
그렇게 올해도 내게 허락된 짧지만 농도 짙은 현대판 카니발의 시간이 모두 지나갔다.
2025-09-2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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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메아리
온종일 통기타만 끼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학업보다 동아리 방의 먼지가 더 친숙했고, 세상에 음악이 없으면 공허뿐이라 떠벌이며, 대단한 음악가가 된 양 노래를 불렀었다. 나름 기억에 남는 공연도 있었다.
유행하는 노래만 따라 불러서 되겠냐며 창작곡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고, 우리 통기타 동아리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창작곡으로 발표회를 열기도 했다. 요즘으로 치면 신곡발표회인 셈이다.
수많은 관객과 눈부신 조명 아래에서의 공연은 쉽게 접할 경험이 아니다. 게다가 공연을 끝내고 나면 허탈과 희열이 교차하는 묘한 잔향을 음미할 수 있다.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사실, 졸업 후, 학업에 열중하지 않았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현실은 냉혹했고, 사회생활은 만만찮았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으로 어설픈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학창시절 경험은 나름의 자랑이자 자긍이었다.
학창시절 음악 동아리 활동
노래 만들고 불렀던 기억 소중
최근 동아리 없어진 소식 충격
함께 공유하며 전통 이어가야
졸업 후에도 후배들에게서 연락이 오곤 했다. 정기 공연을 개최하니 선배로서 참석해 달라는 초대였다. 대부분 참석하지 못했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해부터 후배들의 연락이 끊겼다. 워낙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아예 연락 명단에서 뺐거니 짐작했다. 뭐,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비록, 연락은 닿지 않더라도 후배들은 여전히 노래 부르고, 낭만을 즐기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은 무대의 먼 끝자리에서 후배들의 공연을 구경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다.
얼마 전에, 유일하게 연락이 닿는 동아리 선배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선배가 전해준 소식은 당혹스러웠다. 우리 동아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요즘 신입생은 취업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활동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고 했다. 좀 더 알아보니 내가 알던 몇몇 통기타 동아리는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다. 대학가요제 수상자나 유명 가수를 배출한 동아리는 그나마 신입 회원을 유지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묘한 상실감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소중한 뿌리 하나가 썩둑 잘려나간 느낌이었다. 모교가 폐교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에 학교를 되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졸업생들의 심정이 그제야 이해되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기타 반주에 다 함께 목청을 포개며 느낀 충만감, 공연장 뒤편의 퀴퀴한 커튼 냄새, 허름한 술집 막걸릿잔에 오르내리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이런 개인의 역사는 나를 구성하는 재료가 되었다. 그리고 언제든 문을 열면 학우들을 만날 수 있었던 좁은 동아리방은 바로 나의 유물이다.
유물의 상실은 곧 내 역사의 소실이다. 실체와 연결되는 정체성의 손잡이 하나를 잃어버린 격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잘못도 있다. 만약 선배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후배들을 응원하고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줬다면… 음악에 흠뻑 빠졌던 선배가 ‘사회’라는 무대에서도 멋지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인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세계인이 관심을 두는 우리의 전통과 유적이 자랑스러운 만큼, 그런 전통을 아름답게 이어준 옛 선인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전통과 문화는 단순히 기억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일어서고, 함께 부르고, 함께 손을 잡았기에 다음 사람에게 공감되는 기억을 건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함께하지 못해 잃어버린 내 유물이 몹시 애달프다. 그 유물은 ‘메아리’라는 이름의 동아리였다.
2025-09-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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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좋아한다는 말
꽃피는 계절은 아니지만 목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봄날. 그 시기의 나는 마치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진 것처럼 어깨가 축 처지고 늘 시무룩해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었지만 특별히 신날 것도 없었다. 단체 활동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동생을 혼자 두고 집을 비우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장거리 버스 여행에 수반되는 멀미까지. 다른 아이들이 버스 안에서 잔뜩 들뜬 채 시끄럽게 웃고 떠들 때 나는 눈을 감고 있거나 창밖 먼 곳을 응시했다. 그러다 마이크가 돌기 시작했고 버스 안은 순식간에 노래방 분위기가 되었다. 서태지, 노이즈, 듀스의 노래가 생기발랄한 여중생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왔다. 나는 더욱 이방인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한껏 흥이 오른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샘도 노래 하나 하세요!” 나는 당연히 선생님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다. 제안을 한 아이도 함께 부추기던 아이들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년 여성이던 담임 선생님은 늘 무표정하거나 조금 화난 얼굴로 진지하게 수업만 하던 국사 교사였고, 아이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었으며, 노래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였기 때문이다.
꽃이 지고 초록 잎이 빛나고
바람에 흔들리고 추위를 견디는,
한 존재가 품은 모든 계절
그런데 버스 맨 앞좌석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일어나더니 마이크를 받았다. “노래를 잘 못하는데… 그래도 오늘은 수학여행 가는 날이니까 한 번 해볼게. 제목은 하얀 목련.” 그런 모습이 의외였기에 아이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그러나 선생님이 막상 노래를 시작하자 아이들은 키득거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장난을 치거나 딴청을 부렸다. 선생님이 미리 말했던 것처럼 가창 실력도 별로였고, 그때까지 아이들이 잔뜩 띄워놓았던 신나는 분위기를 완전히 가라앉히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노래가 모두 끝나자 아이들은 형식적인 환호성과 박수를 보낸 후 다시 댄스곡을 이어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이 아무런 기교도 없이 불렀던 그 노래에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고, ‘하얀 목련이 진다’라는 마지막 구절을 읊조리듯 내뱉을 때의 선생님 표정이 좋았다. 평소 수업 시간에는 볼 수 없었던 수줍은 미소, 아련한 눈빛.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에 나는 교정에 핀 목련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고, 그 하얗고 우아한 꽃이 마냥 좋아져서 화단을 자주 서성거렸다.
얼마 후 나는 전학을 갔기 때문에 선생님을 다시 볼 수는 없었는데, 그 후로도 하얀 목련을 보면 선생님의 그 표정이 떠오르곤 했다.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표정. 혹은, 언제든 볼 수 있었는데 보려고 하지 않았던 표정. 영원히 못 보고 지나칠 뻔했던 어떤 순간.
지금도 나는 목련을 좋아해서, 봄에 목련이 피면 넋을 놓고 바라볼 때가 많다. 낮에는 파란 하늘에 박힌 진주처럼, 밤에는 까만 하늘을 밝히는 알전구처럼, 화사하되 소란하지 않게 빛나는 꽃송이. 그 하얀 꽃송이가 툭툭 떨어져 버리면 괜히 서글프고 아쉽다. 그런데 얼마 전 SNS에서 목련 잎을 찍은 짧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햇살을 받은 목련 잎이 반짝거리며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영상이었다. 목련 잎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하고 감탄하다가, 문득 내가 잎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목련을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꽃이 지고 나면 나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꽃이 진 자리의 흔적, 넓고 둥그런 초록 잎이 뜨거운 햇살 아래 빛나는 시간, 그 잎들의 색이 바래가며 가을바람에 흔들리다 한 장씩 낙하하는 장면, 그리고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견디는 모습. 그런 순간이 모두 목련의 생을 이루는 장면들이었는데, 목련을 좋아한다면서 꽃만 봤다. 좋아한다는 말이 그렇게 가벼운 거였나 싶어, 잎에게도 가지에게도 뿌리에게도 미안했다. 꽃이 없는 이 계절의 목련 나무를 바라보면서, 꽃이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너를 좋아한다고,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다.
2025-09-1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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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동네책방과 독서모임의 가치
제주 구좌읍 종달리에 ‘소심한책방’이란 이름의 동네책방이 있다. 그곳에 독서모임이 있는데 모임 이름이 ‘구좌 당근껍질파이 북클럽’이다. 오래전 나는 연구년을 맞아 제주에서 일 년을 보냈다. 도서관 옆에 집을 구해 오전은 제주 바닷가를 걷고 오후엔 도서관에서 책 읽고 글을 쓰며, 저녁이면 노을 속을 걸어 아내와 집으로 돌아오는 행복한 나날이었다.
독서모임 이름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제주 종달리를 떠올렸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 중에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있다. 워싱턴 포스트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달콤하고 정감 넘치는 찬가”라고 했던 책, 나는 이 책을 너무 사랑하여 주위에 권하고, 이 책을 제재로 책으로 만나는 인연을 뜻하는 ‘책연(冊緣)’이란 글을 쓰기도 했다. 영국 채널 제도 건지섬의 감자껍질파이가 제주 구좌읍에서 당근껍질파이가 되었으니, 책 인연이 바다를 사뿐히 건넜다.
같은 책 사랑은 생각·감정 공유
전국 각지 동네책방 존재 가치
위로·인연 주고 받는 독서 모임
내가 사랑하는 책을 사랑하는 이는 소중한 ‘책연’이다. 독서모임은 이러한 책연을 전제로 한다. 같은 책을 사랑한다는 건 생각과 감정을 깊이 공유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공독(共讀)은 나이와 성별, 직업의 경계를 넘어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고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한다. 종달리 ‘소심한책방’이 시, 소설, 수필로 나누어 문학 창작 프로그램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듣기와 말하기가 일련의 행위이듯 읽기와 쓰기도 마찬가지다. 독서는 저자와 독자의 대화이며 대화는 응답을 전제하기에, 쓰기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독서의 여정이 마무리될 수 없다.
소심한책방의 소개말을 보면, 이 책방은 두 주인장의 편애로 골라둔 책들이 주를 이룰지 모르며, “우리 취향을 이해해 줄 분들이 꼭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책방을 운영한다고 한다. 사랑의 속성은 편애에 가깝다. 사랑은 결국 특정 대상을 향해 치우치고 기우는 마음이니, 편애가 아닌 사랑은 신의 영역에 속할 듯하다. 편애와 취향이야말로 거대 자본이 장악한 이 시대에 동네책방의 존재 가치일 것이다. 전국 각지에 동네책방이 자리 잡고 있어 저마다 취향의 공동체를 꾸려간다면, 우리 삶은 지금보다 다채롭고 풍요롭지 않을까.
근래 무카이 가즈미의 〈다정한 나의 30년 친구, 독서회〉를 읽었다. 학교 도서관 사서이자 번역가인 저자가 30여 년 독서모임에 참여한 경험을 담았는데, 책에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책이 책을 부르고, 호명된 책을 반갑게 마중하며 독서의 길은 이어진다. 독서모임의 가치는 혼자서는 선택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책을 공독할 때 빛난다. 책 속 모임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무려 1년 반 동안 함께 읽었다는 말에 수긍하였다. 나는 이 책을 읽다 포기했는데, 아마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다면 완독하지 않았을까 싶다.
연구년 때 제주 도서관에 앉아 읽으며 쓴 글을 중심으로 책을 출간했다. 운 좋게도 책은 독자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고, 여러 기관과 매체에 추천도서로 소개된 덕분에 동네책방의 초대를 받았다. 일 년 동안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성인이 다수라는 통계에도, 어둠 속 반딧불처럼 강릉, 인천, 홍성, 익산, 전주, 김해, 통영 등지에서 만난 독자들은 동네책방에 소담하게 모여 책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부산에서도 연산동 ‘카프카의밤’, 용호동 ‘미우서재’ 등 동네책방에서 독자와 함께한 기억이 선연하다.
기술의 발달로 세상은 갈수록 편리하지만, 우리 마음은 점점 각박하기만 하다. 책은 인류 가장 오랜 미디어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가장 적합한 매체이다.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hy)’라는 용어처럼 책으로 우리는 위로받는다. 위로는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손님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나를 위로해 주는 책이 있고 그 책을 인연으로 모인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다. 동네책방과 독서모임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2025-09-0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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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밥심에서 커피심으로
오늘도 아침밥 대신 커피로 하루를 연다. 비단 나만 그럴까. 요즈음은 밥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커피심으로 견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는 ‘밥’으로 통하는 인사말을 주고받았다면, 지금은 “언제 커피나 한잔합시다”라는 대화까지 일상화되었다. 나 또한 이다음에 죽으면 어동육서로 줄지은 제사음식 대신 좋아하는 커피 한 잔만 올려 달라고 일러두었으니 커피의 위력은 사후까지 발휘될 태세이다.
내친김에 커피박물관에 가보기로 한다. 가는 길 내내 다방, 커피숍, 카페, 커피하우스 등 커피 전문점 간판이 숱하게 내걸렸다. 가히 커피숍 전성시대이다. 현대인은 커피 소비로도 자신을 나타낸다. 어디서 커피를 마시는지, 어떤 커피를 애호하는지, 누구와 함께 마시는지…. 커피가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커피는 분위기다. 밖에서 보더라도 감성 넘치는 카페에 더 오래 눈길이 간다. 도착지인 커피박물관도 폐역이 된 부산진역을 탈바꿈시켰으니 의미로운 장소가 되겠다.
이십 년 전만 하더라도 여객열차가 정차하던 곳이라 저 멀리서부터 기적 소리라도 울려 퍼지는 듯하다. 커피에 조예가 깊은 한 시민이 전 세계에서 수집한 이천여 점의 커피 기구를 기증했다는데 대단한 안목이다. 향미에 따라 적절히 섞어 재창조하는 블렌딩과 생콩에 열을 가하는 로스팅을 거쳐 분쇄 커피를 물과 함께 끓이는 달임식, 여과 장치에 넣고 거르는 여과식, 뜨거운 물에 담가 우리는 우림식, 압력을 가하는 가압식 등의 추출 방식이 시대별로 전시되었다. 추출 기구도 터키쉬, 보일링, 비긴, 사이펀, 네오폴리탄, 퍼컬레이터 등 생경한 것이 많고, 생김새도 램프를 닮은 것, 오르골 모양, 양동이를 본뜬 것, 기차 형태 등 다양한데, 에티오피아에서 가져온 절구통 분쇄기 앞에서 발길이 멈추었다.
콩팥 이식 수술을 한 그녀의 집은 단출했다. 가족이 떨어져 혼자 지낸 세월도 오래되었지만, 당뇨환자라는 상황이 주변을 더욱 간소하게 만들었다. 그 외로운 사람에게 찾아갔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대뜸 커피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선물 받은 원두 콩이 있다고 하였다. 아무렴, 한더위를 식혀줄 아이스커피 한 잔이면 된다고 무심코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식이요법을 하는 그녀의 집에 커피머신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마늘 찧는 절구통이었다. 나는 아연하였으나 그날 열서너 평의 작은 아파트를 가득 채운 헤이즐넛 향기는 어느 과일 향과 꽃 향보다도 향긋했다. 십여 분간 절구통에 찧은 커피 가루를 체에 걸러 내려 얼음을 띄운 냉커피 한 잔, 어찌 그 맛을 짧은 혀의 감각으로만 평가할 수 있으랴.
에티오피아의 고원인 카파 지방에서 어느 목동 소년이 처음으로 커피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천 년도 훨씬 넘은 설화가 사실이든 아니든, 첫 커피 열매를 발견한 자에게 경의를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시게 된다는 젊은이들과, 오로지 나만의 공간을 찾아 앉을 수 있는 것도 커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절차가 복잡한 차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술은 일과 함께하기 힘들지만, 커피는 정신을 깨어있게 만드니 일할 때도 잘 어울린다. 심지어 ‘워킹 커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걸어 다니면서도 마실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왜 이렇게 커피에 열광하는가. 맛은 물론이거니와 커피를 마실 때를 생각해보라. 신분이나 지위나 나이도 잊을 수 있을 만큼 경계를 허물고 여유를 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직원이 방금 내린 한 잔의 커피를 건넨다.
2025-08-3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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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배꼽
샤워 후에 욕실 거울 앞에 서면 이상하게도 나는 ‘관찰자’가 된다. 혓바닥을 내밀어보고 안면을 최대한 찌푸려 하회탈 얼굴을 만든다. 어깨 쩍쩍 벌리다가 불현듯 정색하고 젖은 머리칼을 배우처럼 젖혀 보기도 한다. 그러곤 한발 물러서서 물이 뚝뚝 흐르는 전신을 훑어보고 씨익, 웃는다.
아주아주 예전엔 거울 속 인물을 향해 그런 윙크라도 날려봤었다. 이젠 민망해서 썩은 미소조차 날릴 수가 없다. 뱃살은 왜 이리도 살갑게 불어났고, 어깨 근육은 언제 이토록 조용히 자취를 감췄을까.
복근이 있었던 불룩한 곳을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허리를 틀어 옆구리에 붙은 푸짐한 살점도 집어본다. 사실, 내 몸에 근육이 붙었던 때가 있었는지 의심스럽지만, 나는 그런 시절이 분명 있었던 것처럼 한탄하는 흥감을 버리지 못한다.
거울 앞에 선 남자의 이 엄숙한 순간은, 웃기지만 비밀스럽고, 민망하면서도 경건하다. 인간이란, 본디 자신을 응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 심오한 마음으로 한참 바라보다 보면, 시선이 자연스레 몸의 중심에 머문다. 시야 한가운데 고고하게 자리한 작은 흔적 하나…
오해하지 마시라. 배꼽이다. 배꼽. 이건 도대체 왜 있는 걸까? 배꼽은 나를 걷게 하지도 않고, 무엇의 통로도 아니다. 하다못해 발뒤꿈치는 충격 완화 역할을 하고, 귓바퀴는 소리를 모아주는 데 일조를 하는데 말이다.
모양조차 궁색하다. 시원하게 구멍 뚫린 것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막혀있다. 게다가 씻으려고 힘주어 문지르면 이상하게도 배아래 깊은 곳이 찌릿찌릿하다. 쓸모가 뭔지 도무지 떠올리기 힘든 배꼽 하나가 몸 전체의 중심에 자리 잡은 이 신비로운 구조는 도대체 누가 설계한 걸까.
알다시피 배꼽은 탯줄의 흔적이다. 탯줄은 어머니와 나를 이어주는 근원적인 통로였다. 그 통로를 통해 숨결이 전해졌고, 피가 흐르며, 온기가 스며들었다. 뼈와 피와 살, 나의 모든 것이 그 줄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연결이 끊어진 날, 나는 비로소 스스로 숨 쉬고 먹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배꼽은 내가 완전히 독립된 생명체로서, 또 하나의 우주가 시작했다는 유일한 증거인 것이다.
그래서 배꼽은 근원의 증거가 되었다. 중세 화가들은 아담과 이브를 그릴 때 난감해했다고 한다. 배꼽을 그리면 아담과 이브가 사람에게서 태어난 존재가 되고, 그리지 않으면 어딘가 미완의 형상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떤 화가는 꿋꿋이 배꼽을 그려 넣어 인간다움을 지켰고, 또 어떤 화가는 매끈한 배를 그려 창조의 신비를 강조했다.
그리스 델포이에는 ‘옴파로스’라는 배꼽돌이 있다. 과거 사람들은 그 배꼽돌이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순례자들은 그 돌 앞에서 신탁을 받으며,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우주의 한가운데라고 여겼다.
그러니 배꼽에 아무 기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배꼽은 내 근원의 증거로서 끊임없이 나를 상기시키는 기능을 가졌으며, 그런 목적에서 가장 잘 보이는 내 몸의 중심에 있었다.
배꼽은 이제 옷 속에 가려져 사람들 눈에 띌 일도 없다. 누군가는 장식이나 피어싱으로 드러내지만, 보통은 그냥 숨 쉬듯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가끔, 거울 앞에 선 어떤 인간의 웃기지만 비밀스럽고, 민망하면서도 진지한 순간에 그 존재의 의미를 드러낸다.
배꼽과 함께 열렸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 작은 우주 속에서 나 또한 나만의 의미들을 기록하고 있음을 상기한다. 공연히, 거울에 물을 뿌려 뿌예진 나를 슥슥 문지른다.
2025-08-2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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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가장 완벽한 여름휴가
어제는 다른 일들을 모두 접어두고 집에서 종일 뒹굴거리며 책을 읽었다. 새로운 일과 환경에 적응하느라 조금 긴장했던 마음도 풀고, 스케줄러에 오늘 해야 할 일 목록을 빼곡하게 적는 아침 루틴도 생략하고, 스마트폰도 멀찍이 두고, 이 하루만큼은 스스로에게 주는 여름휴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름답고 활기가 넘치며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휴양지로 떠나보는 것도 물론 즐겁겠지만, 혼자만의 공간에서 책 한 권을 완독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휴가다운 휴가니까. 준비물은 책과 음악, 선풍기, 씁쓸한 커피와 달달한 복숭아.
라디오에서는 때마침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이 흘러나왔다. 음악은 기억 속의 한 시절을 생생하게 소환하는 힘이 있는데, 〈사계〉를 들으면 언제나 중학교 음악 시간이 떠오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어떤 부분을 무작위로 들려준 다음, 어느 계절인지 맞히게 하는 시험. 교탁 앞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어쩐지 여름 같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정말 여름에 해당하는 연주였다.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여름이라고 말하지 않고도 여름을 표현할 수 있구나. 바이올린 소리가 때로는 여름이 될 수 있구나. 그러면 또 무엇이 여름이 될 수 있을까.
하나의 기억은 또 다른 기억들을 소환했고, 나는 책을 읽다가 깊은 생각에 빠져들기를 반복했다. 집어든 책이 〈두고 온 여름〉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시절에 두고 온 내 마음을 자꾸만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 그 시절의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 엎드려서 책을 읽다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조금 울기도 하고, 벽에 등을 기대고 책을 보다가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걸어 들어가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현재의 내가 과거의 그들과 조우하고, 그때는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할 수 있었다. 초현실이라고 해야 할지 몽상이라고 해야 할지, 소설을 읽다보면 그런 신비로운 시간들이 종종 펼쳐진다. 어찌 보면 만취의 순간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데, 다음 날 숙취가 전혀 없다는 점은 독서의 대단한 장점이다.
어딘가에 두고 온 마음들을 돌아보고 돌아보다가, 성경 속 창세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불과 유황으로 파멸된 소돔에서 도망쳐 나올 때 뒤돌아보지 말라던 신의 명령을 어겨 결국 소금 기둥이 되었던 롯의 아내.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서, 나는 그녀의 뒤돌아보는 행위야말로 인간적이며 문학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두고 온 것들을 잊지 않는 사람, 불타는 과거의 흔적을 돌아보는 사람, 그리하여 마침내 소금 기둥으로 굳어져버리는 사람.
뒤돌아보지 말라는 금기의 모티프는 여러 신화나 설화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도 죽은 아내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저승까지 가지만 지상에 도달하기 전에 뒤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기게 되고, 우리나라의 설화 ‘선녀와 나무꾼’ 일부 판본에서도 나무꾼이 선녀를 되찾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고 만다. 금기를 어긴 대가는 가혹하고 비극적이다. 신화적 시스템 속에서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절대자에 대한 불복종으로 심판받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과거를 기억하고, 지나온 시간들을 되새기고, 거기에 두고 온 마음을 돌아보고, 아프면 아파하고, 후회되면 후회하고…. 고통스러울지언정 지난 일들을 돌아보고 직면할 때에, 제대로 다시 나아갈 힘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과 함께 수많은 기억과 상념들 속을 유영했던 하루. 시절마다 두고 온 기억들을 매만지고, 그곳에 두고 온 이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안부 인사를 전했다. 가장 완벽한 여름휴가를 보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직 남은 여름이 있다.
2025-08-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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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말의 시대, 글의 힘
말이 난무하는 시대, 유창한 말로 주위를 압도하는 능변가들이 주목받는 시대에, 나는 여전히 망설임과 머뭇거림의 눌변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말보다 글이 좋다. 발화는 순발력을 요구하기에 내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전하기 어렵다. 언어란 생각을 실어 나르는 수레인데, 내 마음을 오롯이 담지 못하면 수레가 방향을 잃거나 가끔 듣는 이와 충돌하기 마련이다.
화종구생, 본디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부부 갈등도 그 시작은 대개 말로부터다. 어느 날 아침 고기 없는 밥상이 차려졌다. 남편이 투덜댄다. 내가 소도 아니고, 맨날 풀만 주면 어떻게 일하냐고. 그러자 아내가 되받는다. 당신이 돈만 많이 벌어오면 한우 등심에 보리굴비도 매끼 주지요. 그러면 남편은 벌어온 돈 다 어디 썼냐며 화를 내고, 티격태격 가시 돋친 말들이 서로에게 날아가 박힌다. 싸움의 발단은 온데간데없고 말이 낸 생채기만이 연고를 발라도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된다.
글로 쓰라면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다. 모든 글의 최초 독자는 글쓴이 자신이기에 써놓고 읽으며 자신의 언행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자기 성찰의 성격을 지니며 곡진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글쓰기는 수필 갈래이다. 일기, 편지, 학생들이 중시하는 논술까지 대부분의 글쓰기를 갈래로 보면 수필이다. 수필은 워낙 방대한 하위 갈래를 포함하고 있어 문학 작품이면서도 일상적인 글쓰기이기도 하다.
지난 학기 수필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의 후기가 좋았다.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 시간” “삶의 태도와 생각의 깊이를 넓혀준 소중한 시간” 등의 후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학생들은 작가와 독자의 경험을 함께하는 한시적 공동체를 형성하며 “인간으로 성장하는 수업”을 만들어 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논리정연함을 요구하는 로고스와 감정의 풍부함을 추구하는 파토스와 함께 에토스를 강조했다. 에토스는 글쓴이의 성품과 윤리, 태도를 의미한다. 글 뒤에 존재하는 글쓴이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글이 에토스가 좋은 글이다. 수필은 글쓴이가 글 뒤에 숨을 수 없는 갈래다. 소설이 허구 뒤에, 시는 모호함 속에 숨을 수 있으나 수필은 글쓴이가 숨을 곳이 없다. 그래서 글이 곧 그 사람이 되며,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쓴다.
아내와 나는 신혼 초 갈등이 심했다. 살아온 환경과 성격, 취향이 너무 달랐다. 자꾸 마음결이 어긋나 사소한 다툼이 이어졌고, 우리는 고민 끝에 말이 아닌 글로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지금이라면 문자를 주고받았겠지만, 편지로 생각을 정리하며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우리 부부에게는 다름으로 시작된 신혼 갈등을 글의 힘으로 극복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지금은 겉으로 보기에 글의 전성시대 같다. 문자나 SNS 등으로 소통하며 말보다 글이 더 익숙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글은 음성언어가 문자로 기록된 것일 뿐, 글이 갖추어야 할 구성 요소가 결여되고 편지처럼 격식을 갖추어 마음을 전하지 않는다. 얼핏 격식이라 하면 너무 딱딱하고 불편한 인상으로 다가오지만, 글쓰기에서 격식은 읽는 이를 향한 존중과 배려를 뜻한다.
소통의 진정성은 상대를 위해 내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노력을 전제한다.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마거릿 애트우드는 〈글쓰기에 대하여〉에서 “글 쓰는 삶은 끈질긴 낙타 같은 것”이라고 전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건, 막막한 사막을 포기하지 않고 건너는 것과 같다. 끈질긴 퇴고 과정에서 작가는 비로소 독자가 되며, 글쓰기의 퇴고 과정은 내가 남이 되어보는 연습이 된다. 서툰 초고를 퇴고하듯 우리 마음도 퇴고가 필요하다. 그렇게 퇴고한 마음이 상대 마음 문을 조심스레 연다. 말의 시대, 글의 힘이다.
2025-08-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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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가
존 덴버의 경쾌한 통기타 연주가 반갑다. 이곳이 어디인가. 동천강을 가로지르는 일명 ‘썩은다리’라 불리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없는 게 없다는 ‘문현동 골동품거리’이다. 오가는 젊은이들은 드물지만, 옛 주택과 작은 노포들이 빽빽하고 뉴트로 열풍까지 더해지니 요즈음 사람들은 ‘문현동 을지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군데군데 자리 잡은 골동품점을 눈에 담는다. 칼국숫집과 보리밥집과 다방과 이발소도 보이고 ‘골목에 가래침을 뱉지 맙시다’라고 쓴 붉은 페인트 글씨도 정겹다. 십수 년 전부터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가게들이 제법 터를 잡았다.
진귀한 것이 수두룩하다. 맷돌, 절구, 문짝이 가게 밖에서 눈길을 잡고, 서화, 도자기, 방짜 그릇, 성냥갑, 목공예품 등이 안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입구에 흑색 옻칠을 한 선비상이 고졸한 멋을 풍긴다. 가게 안으로 슬쩍 발길을 옮겨 본다. 다소곳한 고가구 몇 점이 격조 있게 들앉았다. 무쇠 장식이 돋보이는 전주 나비장의 좌우대칭 무늬가 곱다. 흑백 텔레비전, 다이얼 전화기, 교환 전화기, 태엽 감아 돌리는 전축,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젊은 모습이 그려진 서부극 비디오테이프도 보이고, 백야성, 황금심, 백설희의 이름자가 선명한 LP 음반도 빼곡하다. 그 속에서 신식 노트북이나 골프채들이 이방인처럼 시침 뚝 떼고 끼어 있다. 마치 근대화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이색적인 문현동 골동품거리
뉴트로 인기, '을지로'라는 별명
별별 물건들로 가득 찬 만물상
사라지는 것 다시 만나는 감동
주인장의 성격에 따라 비치한 물건들도 다 다르다. 소반과 찬탁, 돈궤와 뒤주 등 나무 소품이 많은 집, 백동 호롱과 궁중 자물쇠, 고려 수저와 청동 뒤꽂이, 꽃고무신과 노리개 가방 등 전통 공예품이 가득 찬 곳, 일제시대에 사용됐던 가정용 8㎜ 영사기를 비롯하여,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제닉스 라디오, 대한전선 라디오, 일제 자바라 카메라 등 희귀 전자제품이 즐비한 집, 화려한 드레스와 무스탕이나 가죽점퍼 같은 빈티지 옷이 많은 개성파 가게도 있지만, 대개가 별별 물건들로 가득 찬 만물상이다.
손님들이 쓸만한 물건들을 찾아내면 주인은 어림짐작하여 가격을 던지고 흥정을 한다. 집집이 한 달에 몇 번씩 들르는 단골들도 꽤 된다. 곧 카페를 창업한다는 젊은 청년은 방금 수동 타자기 한 대를 단돈 이만 원에 구입하였다. 인테리어에 쓸 물건이란다. 주인장은 싱거 미싱도 함께 사라며 부추기고 청년은 못 이긴 채 지갑을 연다. 구석에서 어릴 때 부잣집에만 놓였던 자개농 한 짝이 먼지를 뒤덮어 쓰고 얌전하다. 배냇저고리를 개켜 넣고, 삼베 수의도 모셔 두었던 곳. 그리고 도둑 눈을 피하여 금반지 하나쯤은 어딘가에 숨겨 두었지. 한때는 그 집의 전부가 담겨 있던 물건이 이제는 골동품점에서조차 자리 차지만 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사라졌으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 그 시간의 뒤안길로 데려다주는 귀한 물건들이니 보고 있으면 마음이 그지없이 편안하다. 사라져가는 것이 어디 물건뿐이겠는가. 낭만이 있던 시골 간이역, 어머니 따라 구경 갔던 장터 대장간, 동네 개구쟁이가 빠졌다가 황급히 건져 올려진 동네 우물터, 서녘 해가 넘어갈 때면 허연 연기를 뿜어대던 굴뚝이 있는 집. 그리고 양복점과 다방과 방앗간과 이발관들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사투리도 잊히고 개펄도 없어지고 지평선도 지워지고 공터도 메꿔진다. 사라지는 집, 사라지는 골목, 사라지는 마을들….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외면당한 것들의 힘은 의외로 거대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버려지고 잊힌 것들이 골동품거리 한 귀퉁이에서라도 웅장한 뿌리를 내리면 좋겠다. 원시 숲처럼 질기게 뻗어나가면 정말 좋겠다.
2025-08-0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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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모래 한 알
뭔가 답답한 일이 있거나 혹은 탁 트인 공간을 느끼고 싶을 땐 바닷가에 간다. 부산은 백사장을 거닐 수 있는 해변 외에도 넓은 시야와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다. 언제든 수평선을 볼 수 있는 부산이 그래서 좋다.
그렇게 바닷가 백사장을 걷고 나면 삶에 닳아 너덜거리던 뭔가를 날려 보낸 느낌이다. 후련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면 마치 내가 어디에 갔다 왔음을 일러바치듯이 모래알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신경 써서 바지를 털어낸다고 해도 그렇다.
모래알을 꼼꼼히 살펴보면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다. 크기만 작을 뿐이지 작은 보석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바위 같기도 하다. 그렇게 손바닥에 모래알을 굴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백사장엔 셀 수 없이 많은 모래알이 있을 텐데, 어떤 인연으로 묻어와 이렇게 내 시선을 사로잡을까? 재미 삼아 확률을 한번 따져보자. 해운대 백사장 길이가 1.5km에 폭은 약 50m라고 한다. 깊이를 1m로 잡고, 모래의 평균 지름을 0.5mm로 계산하면… 해운대 해변에는 대략 1150조 개의 모래알이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 모래알은 1150조분의 1의 확률로 나에게 묻어 왔으며, 사실상 불가능의 확률을 뚫고 나와 연결된 것이다.
확률로 치면 대단하긴 한데, 이걸로 특별한 인연이라 하기엔 좀 억지스럽다. 내가 해운대 백사장에서 모래 한 알을 집었다고 해서, 그 모래알과 내가 1150조분의 1의 확률을 극복한 특별한 관계라는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비약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냥 모래알 하나를 집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확률 자체가 의미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여하튼 수없이 많은 모래알 중의 하나가 선택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위에서 벌어지는 우연과 필연, 그리고 인연에 관해 묘한 신비감을 느낀다. 이런 우연과 필연에 가장 신비하게 여겨지는 것이 또 있다. 수많은 사람의 화두가 되었을 질문이기도 하다.
바로 ‘나’라는 주체이다.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수많은 ‘나’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왜 하필 나일까? 왜 하필 팔 두 개 다리 두 개에, 이렇게 생긴 얼굴을 가진 생명체를 ‘나’라고 인식하게 되었을까? 이 생명체에 ‘나’가 깃든 것일까. 아니면 이 생명체에서 ‘나’가 생겨난 것일까?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은 ‘나’중에 왜 하필 ‘나’의 시선으로 이 세계와 우주를 응시하고 있는 걸까?
‘나’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과 지능을 이용해 주위 사람과 부대끼지만, 누구와도 동일화되지 않는다. 다른 ‘나’의 생각을 엿볼 수 없으며, 어떤 고통도 공유하지 못한다. 그저 상황을 유추하고, 판단하여 이성적, 감성적으로 동조할 뿐이다. 나는 나만의 우주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나’는 결국 타인이며 관객이다.
나는 물리학의 초끈이론이나, 브레인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평행우주’가 어쩌면 바로 ‘나’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나만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나는 결코 엿볼 수 없는 타인의 우주가 수없이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타인의 우주에도 내가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우주에서는 내가 타인이다.
그러니 사람들 각 개개인은 저마다의 우주를 가졌다. 어쩌면 동물들도 가졌을지 모른다. 저마다의 세상에서는 잘났든 못났든 바로 자신이 주인공이다. 승객은 기차에 오르내릴 것이고, 주인공은 저마다 죽느냐 사느냐를 외칠 것이며, 객석에 앉아 먹는 팝콘은 여전히 맛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객석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다큐멘터리를 찍든 영화를 찍든 나도 나만의 무대에 서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래알처럼 많은 ‘나’중에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주인공이다.
2025-07-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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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구독'과 '좋아요'는 사랑입니까?
요즘 나는 채소를 구독하고 있다. ‘채소 구독’이라니 어쩐지 비문 같지만, 업체에서 실제로 그 단어를 쓰고 있기도 하고 일단 요즘은 뭐든 다 구독하는 시대 아닌가. 언어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이제 ‘구독’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신문이나 잡지 등의 간행물을 정기적으로 구매해서 읽는다는 뜻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유튜브, 음원, OTT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부터 쇼핑, 배달, 생활 가전 대여에도 ‘구독’이라는 말을 쓰고, 심지어 최근에는 차량까지도 월간 구독 서비스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다간 집도 구독하고 인간관계도 구독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채소 구독 서비스는 꽤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 날 관련 업체의 홈페이지 배너를 무심코 클릭했다가 정기 결제까지 누르게 되었다. 품질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생김새 때문에 버려져야 할 위기에 처한 농산물들을 구출하자는 것이 이 업체의 모토였는데, ‘채소 구출하기’라는 배너를 보는 순간 내 안에서 작은 의협심이 샘솟았다. 그 아래쪽에는 특이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져야 하는 채소들의 사진이 있었다. 갓이 두 개인 버섯, 쭉 뻗지 않고 휘어진 오이, 우람하고 통통한 청경채, 다리가 세 개인 당근…. ‘조금만 기다려, 얘들아. 내가 너희들을 구해줄게.’ 주황색 배너의 ‘구출’이라는 단어와 채소 사진들은 내 감정을 제대로 건드렸다. 비록 구출해서 바로 먹어버린다는 것이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사랑의 방식은 다양한 형태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먹어서 내 몸 안에 ‘저장’하는 것 또한 사랑의 한 형태라고 한다면 너무 그로테스크한가.
채소 구독에 작은 의협심 샘솟아
디지털 시대 간편한 애정 표현
우리의 진심은 얼마나 들어 있나
구독을 시작하자 매주 다양한 채소들이 박스에 담겨 배달되었다. 박스 안에는 채소들의 이름과 사연이 적힌 종이도 함께 들어 있었다. 이를테면 농약을 치지 않아서 잎에 벌레 먹은 구멍이 많다든지, 타고난 모양이 개성 있다든지, 크기가 아주 우람하거나 아담하다든지 그런 내용이었다. 사연 있는 채소라니. 너무 감성에 호소하는 마케팅이다 싶으면서도, 그런 사연 때문에 버려질 뻔했던 존재들이 사라지지 않고 내게로 왔다고 생각하니 단 하나라도 시들어 버리게 하지 말고 열심히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생으로 먹고, 데쳐먹고, 볶아먹고, 갈아먹고.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식탁이 풍성해지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의구심도 들었다. 이것이 과연 지구 환경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인가. 혹여 자기만족과 일시적 위안에 불과한 건 아닌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프랑스의 미식 철학자 브리야 사바랭의 그 말은 여러 버전으로 변형되어 쓰이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이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당신이 무엇을 구독하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구독은 실시간 취향의 반영이다. 소유와는 또 다르다. 일단 한 번 소유한 것들은 버리는 데 큰 결심이 필요하기에 애정이 식었더라도 계속 곁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구독은 단기적인 계약과 만족도에 따른 연장의 관계이기에 맺고 끊기가 훨씬 간단하다. 옛날처럼 ‘○○일보 사절’이라는 글자를 커다랗게 써서 대문 앞에 붙여놓을 필요도, 몰래 신문을 넣고 가는 배달원과 오랜 기간 실랑이를 벌일 필요도 없다.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저 구독 취소를 한 번 클릭하면 되고, 처음엔 좋았더라도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좋아요’ 눌렀던 것을 취소하면 그뿐이다. 일견 합리적이고 편리한 것 같은 이 시대의 시스템, ‘구독과 좋아요는 사랑입니다’라고 외치는 디지털 시대의 간편한 애정 표현에 우리의 진심은 과연 얼마나 들어있을까. 손쉽게 ‘채소 구출하기’ 배너를 누른 내 마음은 정말 사랑이었을까.
2025-07-2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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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인간에게 성격이 곧 운명일까
‘성격이 곧 운명이다’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은 ‘성격이 팔자’라는 우리 속언과 호응하며 지금까지 꽤 설득력을 얻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저서는 존재에 관한 추측만 무성할 뿐 전해지지 않았고, 그의 말들만 조각으로 인용되곤 한다. 그래서 ‘성격이 곧 운명이다’라는 그의 말은 대부분 출처 없이 여러 말과 글에 등장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을 참고하면, 이 말의 원문은 ‘성품(ethos)이 곧 수호신(daimon)이다.’
원문과 떠도는 인용이 다소 다르다. 먼저 에토스(ethos)를 성격으로 번역할지, 성품으로 번역할지가 문제이다. 성격은 타고난 성질이나 기질이기에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성품은 성격이란 바탕 위에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형성되는 개인 특성이기에 교육, 경험, 관계 등 다양한 요인으로 변화하며,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형성된다.
윤리학(Ethics)의 어원이 에토스이고, 옥스퍼드사전에서 에토스를 개인이 지니는 도덕적 생각과 태도라고 정의했으니, 에토스는 성격이 아니라 성품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만약 성격이 운명이라면, 우리는 이미 운명을 타고난다는 뜻이고, 성품이 운명이라면 운명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글자 하나로 뜻이 완연히 바뀐다. 만물 유전설로 알려진 헤라클레이토스라면, 변화 가능성이 희박한 성격이 곧 운명이 된다는 주장을 펼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 다이몬(daimon)에 관한 번역도 문제다. 다이몬은 악마를 뜻하는 ‘데몬(demon)’의 어원이지만 본디 반인반신의 생물로 악마와 천사를 함께 품은 모순의 존재이며, 책에서는 ‘수호신’으로 번역했다. 다이몬의 번역은 다양하며, 그중에서 ‘운명’이란 의미가 있다. 다이몬은 사람일지 신일지, 천사일지 악마일지, 섣불리 규정할 수 없는 존재다. 운은 운인데, 그것이 행운일지 불운일지, 인생에서 좋고 나쁜 것은 명확하지 않다. 화가 복이 되기도 하고,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찾아오는 것이 인생이다.
결론적으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에 인용된 원문은 ‘성품(ethos)이 곧 운명(daimon)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바른 성품을 갖추지 못한다면, 좋지 않은 운명을 맞아야 마땅하다. 공자는 〈논어〉 옹야편에서 ‘인지생야직 망지생야행이면(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 “사람의 인생은 곧아야 한다. 곧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면 요행히 화를 면하고 있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직(直)이 에토스가 강조하는 윤리적 생각과 태도, 즉 바른 성품을 뜻한다. 직(直)의 반대말이 곡(曲)이다. 곡학으로 세상을 어지럽힌 자가 잘 살고 있다면 운이 좋아 화를 면하고 있는 것뿐이다. 운이 좋은 것도 한두 번이다. 결국 전 생애에 걸쳐 좋은 운명을 원한다면 바른 성품을 지녀야 한다.
바른 성품은 마음(heart)과 정신(mind), 의지(will)로 형성된다. 공감과 연민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친절하고 관대함을 잃지 않는 마음과 호기심으로 배움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자기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는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의 정신을 지녀야 한다. 지적 겸손을 갖추어야 공자가 직(直)을 강조하되 경직(硬直)을 경계했던 이유를 깨닫는다.
인생은 늘 반듯할 수 없다. 그래서 곡절 없는 인생이 없다고들 한다. 우여곡절을 겪을 때마다, 힘들고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위대한 승리’라고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자기 통제력(self-control)을 갖춘 의지가 있다면, 그리하여 바른 성품을 스스로 형성할 수 있다면, 성품이 곧 원하는 운명이 될 수 있다. 내 성품이 내 운명이다.
2025-07-1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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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붓끝에서 흐르는 기억
항구도시 부산에서 빠트릴 수 없는 명소가 영도이다. 목도(牧島)라는 옛 이름이 지칭하듯 예전에는 말 사육장으로 유명하였고, 근대유산인 영도다리가 위풍늠름하게 남아 있으며, 요즈음 젊은이들의 여행지로 떠오른 흰여울문화마을도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책 좀 읽었다는 사람들은 소설 ‘파친코’ 주인공 선자의 고향도 부산 영도라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한때 조선에서 가장 큰 도자기 공장이자 동양 최대의 도자 생산 기업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가나자와에 있던 일본경질도기가 조선경질도기로 합병하여 본점을 완전히 영도로 이전하여 운영하였다. 해방 후에는 대한도기로 명칭을 변경하여 전국 도기의 대부분을 여기서 만들었다. 전성기 때는 월 100만 장씩 도자 접시를 만들었으며 직원 또한 1000명이 넘었다.
반세기도 훨씬 지난 그때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의 관심 밖이며 그나마 남아 있던 공장의 붉은 벽돌 담벼락도 근래에 도로공사를 이유로 말끔히 철거되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 수집가의 끈질긴 노력으로 핸드페인팅 접시들이 개인 수장고에 보관되었다. 주인장은 낯선 방문객에게도 흔쾌히 개방해 준다.
도자 접시에서 과거의 시간이 흘러나온다.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대다수 한국전쟁 피란민들로서 생활고 때문에 대한도기와 인연이 닿았다. 그들 중에는 고종과 순종의 어진화가로 이름을 알린 이당 김은호, 이당과 막역하게 지내던 소정 변관식, 월전 장우성과 목불 장운상, ‘장미의 화가’라는 별칭을 얻은 황염수, 부산의 동양화가 윤재 이규옥뿐만 아니라 푸른 추상을 떠올리게 하는 통영의 전혁림도 칠 년 동안 몸담았으며, 김환기와 이중섭도 참여했다는 사실이 꽤 놀랍다.
유리문 속에는 생활 접시로 쓰였던 자그마한 백자초화문 접시가 보기 좋게 진열되었지만, 내 눈길을 잡는 것은 대체로 대형 그림 접시들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활궁을 쏘는 여인, 댕기를 휘날리며 널을 뛰고 그네를 타는 처녀들, 바둑을 두는 노인들과 낚싯대를 드리운 조사, 소맷자락 펄럭이는 무희, 물동이를 인 아낙, 베틀에 앉은 촌부…. 여백에 낙관 대신 그려놓은 작가의 별호들도 재미있다. 흔한 종이 그림이 아니기에 귀하고, 식민지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탄생할 수 없었던 작품이라 의미롭다.
가만히 생각하니 내게도 녹색유초화문 접시가 딱 하나 있다. 예전에 지인 중에 접시에 푹 빠진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월급만 타면 낡은 트럭을 몰고 한반도 구석구석을 다니며 옛 접시를 사 모았다. 그때 나는 그들의 외아들에게 과외를 했었는데, 그 집에 갈 때면 부러 일찍 도착하여 그림 접시들을 구경했다. 내가 유독 관심을 두자 어느 날 그들은 내게 포도 넝쿨이 멋지게 그려진 초화문 접시 하나를 선뜻 건네는 것이다. 내가 쓰는 글도 알알이 영글기를 바란다는 덕담과도 함께.
그런데 오늘 이곳 주인장에게 그들의 근황을 듣게 될 줄이야. 얼마 전에 그들 부부는 그동안 수집한 접시들을 가지고 근사한 전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숙원을 이룬 감격이 컸으리라 여긴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 중에 ‘한 일 자를 십 년 쓰면 붓끝에서 강물이 흐른다’는 말이 있다. 얼마나 용기가 되는 말인가. 대한도기에 흠뻑 빠져 수천 점을 모은 이곳 주인장도, 접시에 미쳐 산천을 다니던 그들 부부도, 돈도 밥도 되지 않는다는 문학에 뛰어들어 밤낮으로 허우적대는 이 가련한 글쟁이도, 십 년쯤이야 가뿐히 견뎌내었다. 모두들 우직하게 외길을 걷고 있으니 분명 이 길 끝에는 유장한 강물이 출렁이리라 믿는다.
2025-07-06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