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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성장통
최근 들어 아이가 발목과 무릎, 사타구니 주변의 통증을 자주 호소했다. 심할 때는 서 있지도 못하겠다면서 갑자기 주저앉아버렸다.
정형외과에 가서 검사를 했지만 별다른 소견은 없었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성장통 같다면서, 뼈가 자라는 속도에 비해 근육이나 인대가 자라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그로 인해 통증이 유발될 수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기에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찜질과 마사지를 해주었다. 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겪는 일이니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하면서.
극심한 통증으로 매일 괴로워하는 아이를 계속 지켜보는 일은 나에게도 고통이었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방도가 있다면 뭐라도 해볼 텐데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게다가 통증은 통증으로만 그치지 않고 무기력과 짜증으로 이어졌다. 나중에는 그 짜증이 통증 때문인지 아닌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아파서 그렇다는 아이에게 야단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다 받아주자니 내 마음에도 한계가 찾아왔다.
정형외과에는 다시 가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이번에는 통증의학과를 찾아갔다. 증상을 들은 의사가 아이의 눈을 쳐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니 몇 학년이고?” 아이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중2요.”
그러자 의사가 다시금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중2병인가.” 어쩐지 정확한 진단명을 들은 것만 같았다. 의사는 아이가 아프다는 부위를 눌러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중2가 제일 무섭다.”
그래, 이 아이는 중2다. 그걸 잊고 있었다. 아이는 중2답게 의사의 질문에 매번 표정 없이 단답형으로 대답했고, 주사를 맞고 나와서는 이까짓 것 별 거 아니라는 듯 갑자기 으스댔다.
주사가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다시 주사를 맞기가 싫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새 근육과 인대가 좀 더 자라났던 건지, 다행히도 아이의 통증은 나아졌다.
그렇지만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은 수시로 나타날 것이다. 조금 놀리듯이 중2병이네 뭐네 하지만 결국은 그것도 마음의 성장통이다. 뼈가 자라는 속도를 근육과 인대가 따라잡지 못해 온몸이 아팠던 것처럼, 정신의 어떤 부분이 자라는 속도를 다른 부분이 따라잡지 못하니 감정은 들쑥날쑥하고, 송곳처럼 튀어나온 감정들에 찔려 아플 수밖에.
예컨대 독립심과 비판적 사고력은 쑥쑥 성장하는데, 절제력이나 포용력은 그에 미치지 못함에서 오는 불균형이랄까.
결국 성장통이라는 것은 자라나는 속도의 불균형에서 비롯되고, 그렇게 생각해보면 성장통이 오로지 성장기 아이들에게만 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사람의 정신은 죽을 때까지 성장할 수 있다. 육체는 쇠락해도 정신은 그 육체의 틀을 깨고 높게 뻗어나갈 수 있다. 성인이라고 해서 그 성장의 과정이 늘 안정되고 균형 잡혀 있는 것도 아니니, 성장하려는 이들에게는 언제든 마음의 통증이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인기몰이를 했던 자기계발서 중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있었다. 그러나 청춘만 아픈 것은 아니다. 중년도 아프고 노년은 더욱 아프다.
실은, 아프니까 사람이다. 진정 살아 있으니까 아프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계속해서 자라려니까 아프다.
제법 긴 시간 동안 우리는 함께 아파왔다. 통증 때문에 서로를 찔러대기도 했다. 이것이 성장통이라면, 어긋난 것들의 균형이 맞춰질 때 비로소 통증은 멎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통증의 시간 동안 더욱 단단하게 자라난 우리의 정신은 위기의 순간마다 굳건한 힘을 보여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통증이 불치의 병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성장통이었기를. 곧 다시 만나게 될 세계에서는 따뜻한 봄날 오후의 햇살처럼 서로를 보듬으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2025-03-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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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각금시이작비, 지금이 옳은 삶
밀양강변 금시당을 가끔 찾는다. 이곳은 조선 명조 때 문신 이광진 선생이 귀향하여 휴양하고자 마련한 집으로, 수령 450년이 넘는 은행나무 덕분에 가을이면 일대가 주차장이 된다. 나는 금시당의 겨울을 좋아한다. 겨울이면 금시당을 찾아, 들머리 매화나무 가지 끝에 봄을 걸어두고, 뜰 지나 은행나무 옆 배롱나무 아래 근심을 묻는다. 인적 드문 금시당에 물이 고이듯 시간이 고이고, 산책길에 놓인 널평상에 앉아 지난날을 돌아본다.
금시당이란 이름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있는 글에서 따왔다. 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 지금이 옳고 지난날이 그름을 깨달았다는 이 구절은 벼슬길에 올랐던 지난날이 잘못되었고, 벼슬살이 그만두고 귀향한 지금이 잘한 일이라는 뜻으로 흔히 해석된다. 도연명의 나이 41세 때 지방 현령으로 일하며 윗사람에 굽신거리며 살기 싫어 귀향하며 지었던 글이라, 매일 모멸감을 견디며 밥벌이에 나서는 직장인들에게도 와닿는 내용이다. 다만, 〈귀거래사〉의 내용처럼 직이나 업을 내려놓고 돌아와도 반길 가족은 오늘날 드물 듯하여 슬프다.
도연명의 절개를 흠모했던 이광진은 1565년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와 금시당을 지어 후학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데 뜻을 두었으나, 이 집이 완성된 1566년 54세로 별세했다. 정3품 당상관을 거쳐 담양부사를 마지막으로 귀향했으니, 그는 오랜 관직 생활로 이미 건강이 좋지 못했을 터, 도연명을 흠모했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삶을 따르지는 못했다. 지금은 당시 부친의 병환을 위로하고자 아들 이경혼이 그린 밀양 12경 진경산수화와 밀양강 언덕 위 금시당이 남아 후세에게 삶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3월 첫머리에 딸 혼사가 있었다. 혼사를 준비하며 아내와 대화를 나누던 중, 취업 이후 한 치의 오차 없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딸을 걱정하는 나에게, 아내가 말해주었다. 젊은 날의 당신도 송곳 같았다고. 밤을 지새우며 공부하거나 글을 썼고, 학생의 실수나 오류를 좀처럼 용인하지 않았다. 자신을 엄격히 몰아갔기에 주변 이들에게 관대하지 못했다. 어렵사리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싶다는 제자에게, 연구 능력이 부족하다며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던 기억은 후회의 못질이 되어 마음에서 빠지지 않는다. 아내가 송곳 같았던 나를 얼마나 배려했을지, 그런 아버지를 두어 자식은 원망이 얼마나 컸을지, 내 그릇된 말과 행동이 가을 금시당 은행나무 잎보다 무수했음을 깨닫는다.
알고 싶은 것이 많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전공인 문학뿐 아니라, 철학, 역사, 심리학, 사회학, 자연과학까지 책을 쌓아두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아는 것이 많아 똑똑하다는 소리에 우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여 시비 가리기를 중시했고, 그러한 신념이 나를 가둘 수 있다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겨울이면 도연명과 이광진을 떠올리며 금시당을 찾는다. 금시, 지금이 옳은 삶, 이러한 삶은 지난날의 내 그릇됨을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가능하다. 가을 금시당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번성했으나 지금은 적요만이 남은 겨울 금시당, 그 뜰에 우뚝 솟은 은행나무를 본다. 그토록 풍성한 잎들을 모두 떨구고도 여전히 당당한 은행나무를 흠모한다. 세월이 앗아간 열정과 그동안 이룬 성취를 그리워하기보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지금이 옳은 삶을 살고자 다짐한다.
각금시, 오늘이 옳았음을 깨달으려면, 이작비, 지난날이 잘못되었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 지각(知覺), 알아야 깨닫는 것이 인생이다. 깨달은 이는 필시 뉘우치며, 뉘우치는 이는 자신을 돌아보며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깨닫고 뉘우쳐 과거의 나를 바로잡아, 지금이 옳은 삶을 살아야 함을, 금시당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일러준다. 금시당은 겨울이 좋다.
2025-03-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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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골목을 걷다
오래된 골목 앞에 서면 비단 나만 그러할까. 이웃집 담장이 다닥다닥 어깨를 겯고 당목 이불 홑청이 햇살을 되쏘던 곳, 녹슨 대문 앞에 ‘개조심’이란 팻말이 문패같이 걸렸고, ‘셋방 있씀’처럼 맞춤법 한두 군데 틀린 광고지가 담벼락에 붙어있던 곳, 덜 마른 보릿대에 보리까락을 섞어 태운 모깃불 연기가 초저녁달을 향해 사라지던 곳, 큰소리로 순덕, 말남, 금자를 부르면 땟국물 절은 옷소매를 걷으며 맨발로 뛰쳐나올 것만 같은 곳. 옛 골목들은 언제나 휘황 다단한 현대의 삶도 한갓되이 무화시켜버린다.
오늘은 꽃구경 대신 골목을 걷기로 한다. 이왕 걷는 길은 낡고 한적하면 좋겠다. 빈 의자가 보이면 잠시 앉아도 되고, 낯선 집 처마 밑의 제비집 사진을 찍어도 나무라지 않는 인심이 있고, 창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유행가 몇 소절쯤 귀동냥으로 들을 수도 있으니까. 어디서 날아온 씨앗들이 잎을 틔웠는지 모르지만 냉이꽃 더미에 실핏줄 같은 거미줄이 엉켜 있고, 길고양이 한 마리쯤은 돌옹벽 아래에 널브러져 오수를 즐기며, 털빛 빤지르르한 검둥이도 남의 집 문간에 오줌을 갈기고 도망을 가야 제법 골목답다.
휘어져 여유롭고 느려서 편안
막다른 골목 앞에서 울어본 사람
굴곡진 삶을 살아온 사람을 닮은 길
구불구불 곡선 길을 뒤돌아보니
골목길 벗어나던 한때의 내가 있다
주례동 뒷골목에 하늘처럼 높고 용 같은 기상을 의미하는 하늘미릇길이 있다. 지하철역으로는 냉정역 2번 출구와 가깝고 위로는 동서고가가 우뚝하며 주변에는 위풍당당한 고층 아파트가 솟았다. 그 현대식 건물 아래 옛 마을이 납작 엎드린 채 골목을 거느리고 있다. 물줄기가 흘렀을 법한 움푹 꺼진 땅에도 골 따라 축대를 세우고 지붕을 올렸다. 하천을 그대로 남긴 채 한쪽 옆으로 옹벽을 쌓고 다다닥 들어선 집들은 마치 현대판 수상가옥처럼 보인다. 젊은 사람들은 아파트로 떠나고 토박이 노인들만 남았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편견일까. 헤드셋을 머리에 얹은 소년이 쪽문을 열고 나온다. 낯선 이방인의 호기심도 이미 익숙해졌다는 눈빛이다.
엉킨 전선이 머리 위로 지나가고 담장 위로 널린 빨래들이 주인을 대신해 봄바람에 펄럭인다. 어떤 집은 얼룩진 석벽 중간에 작은 화분으로 눈가림을 해두었고 어떤 집은 활짝 열어 빈속을 드러내었다. 고만고만한 담벼락 앞에도 흙 채운 붉은 고무통이 즐비하다. 쪽파와 상추와 봄동배추가 동백 화분 사이로 키를 키웠다. 귀한 생명들이다. 뿌리 내린 곳에서는 기꺼이 버티고 살아내야 하리라.
골목이라고 모두 퀴퀴하고 암울하기만 할까. 현대 골목은 급격하게 변신하고 있다. 무채색 벽들은 연두 초록 분홍 노랑 파란색으로 각자의 색깔을 내고, 구도심의 골목은 역사와 문화를 재생시키고 스토리를 입히며 각종 페스티벌과 야행 축제를 개최한다. 예쁜 카페들이 문을 열고 아담하고 소박한 빵집과 밥집과 책방과 옷집도 감성을 더하니 화려한 골목길은 입소문을 통해 빠르게 번져간다. 부산만 하더라도 해리단길, 청리단길, 전리단길, 망리단길, 덕리단길 등이 핫 플레이스라는 명칭을 얻어 골목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삶을 가꾸고 생을 지켜내는 골목도 남아 있다. 집이 안이고 골목이 바깥이라는 사실을 무너뜨리게 만드는 길. 돗자리 하나만 깔면 골목 거실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온기가 남은 곳. 이곳도 어떤 이에게는 가슴 뛰던 옛사랑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길을 벗어나면 반듯한 도로가 나오겠지만, 태생이 깡촌이라 그런지 나는 후미지고 구부러지고 옆구리가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좁은 골목길이 좋다. 휘어져 여유롭고 느려서 편안하다. 무엇보다 막다른 골목 앞에서 울어본 사람들과 골목길처럼 굴곡진 삶을 살아온 자들을 닮은 길이니까. 구불구불 곡선의 길을 뒤돌아본다. 어둑한 골목길을 총총 벗어나던 한때의 내가 서 있다.
2025-03-1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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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자화상
대수롭지 않은 것이 갑자기 와닿을 때가 있다. 그것은 느닷없고 엉뚱하다. 이를테면, 퇴근길에 마주친 어느 가게의 소음이 그랬다. 한창 인테리어 작업 중인 그 가게에선 인부가 망치로 합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꽝꽝대는 소리가 길 건너의 높은 건물 벽과 부딪혀 다시 이쪽 건물에 반사되어 메아리쳤다.
나는 이쪽 건물과 저쪽 건물의 유리창을 번갈아 올려보며 생각했다. 여기서도 소리가 메아리치네. 그래. 뭐든 반사되는 법이지, 소리든, 빛이든… 아니, 통과되는 것도 있으려나? 2차선 건널목을 건너는 동안 그 거리만큼이나 짤막한 결론을 얻었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감각도 결국 두 가지 방법이겠구나. 발원(發源)으로부터 직접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반사된 것을 받아들이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눈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귀
제 얼굴 거울에 많이 비춰도
자신을 알기는 정말 어려워
눈과 귀마저 의심스러운 요즘
뭔가를 보고 듣는다는 것. ‘제대로’라는 조건을 붙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에도 얼마나 많은 오류를 경험했었던가. 백내장을 앓아본 적 있는 나는 사물의 윤곽을 뚜렷이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했었다. 더구나, 하나의 사물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본다는 것도 경험했었다. 어찌 보면, 한 개의 사과를 열 명의 사람이 보는 순간, 열 개의 다른 사과가 생성되는 셈이다. 결국, 세상엔 똑같은 사물이 없고, 똑같은 소리도 없다.
직접 보는 것에 이런 차이가 있을진대, 반사된 것을 보고 듣는 경우엔 얼마나 왜곡되고 비틀어질지 상상도 할 수 없다. 한데, 요즘에는 상상이 아니라 현실로 볼 수 있다. 똑같은 사건에 어떤 사람들은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반응을 보인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어찌 저리 다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철학자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라는 것이 있다. 이 비유는 평생을 동굴 속에 갇힌 죄수들이 있다는 가정으로 시작된다. 죄수들은 오직 동굴 벽에 비치는 그림자만을 볼 수 있도록 묶여 있다. 그래서 동굴 벽에 비치는 그림자만 보고 바깥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다가 한 죄수가 풀려나 동굴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그 죄수는 비로소 바깥에 태양이 있으며, 나무와 새가 있는 ‘진짜’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다시 동굴로 돌아와 죄수들에게 알려준다. 벽에 비친 그림자는 실체가 아니라 단순한 ‘반영’에 불과하며 진짜 세계는 따로 있다. 그러나 죄수들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태어나서 오직 벽에 비친 그림자만을 본 그들은 그림자가 ‘진짜’라고 믿는다. 오히려 그를 조롱하고 위협한다. 죄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우리 눈으로 직접 봤어! 넌 밖에 나가서 대체 무슨 헛것을 본 거야?
나는 과연 동굴 속 죄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본 것이 진짜라는 것을 무엇으로 확신할 수 있을까? 세상은 아니라고 하는데, 나 혼자 저 바깥의 태양과 새 소리를 보고 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졌을까?
집에 도착해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가 발을 씻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새삼스레 살펴봤다. 삶에 닳아 늘어진 눈매와, 늘어진 만큼 아래로 꺼진 입매가 볼썽사납다.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눈이며, 뒤로 말려 주름진 귀는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는 귀다.
못생긴 귀를 잡아당기다 보니 문뜩 빈센트 반 고흐가 생각났다. 그도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살펴봤을 테지. 어쩌면 그는 진실처럼 떠들어대는 환청을 막으려 귀를 잘라냈을지 모른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정말 어렵다.” 고흐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그는 수십 번이나 자화상을 그렸다. 그것을 위해 제 얼굴을 얼마나 많이 비춰봤을까? 나는 공연히 우울해져 얼굴의 물기를 닦아냈다. 나 자신의 눈과 귀마저 의심스러워지는 오후이다.
2025-03-0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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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모든 살아 있는 것
사탕을 사러 편의점에 갔을 때였다. 진열대를 둘러보고 있는데 할아버지 손님 한 분이 들어왔다. 그는 생수 한 병을 사면서 편의점 주인에게 작은 상자를 하나만 달라고 부탁했다. 요 앞 나무 위에서 새들끼리 싸우다가 한 마리가 다쳐서 떨어졌는데, 물이라도 좀 먹여야 할 것 같다고 말이다. 나이가 지긋한 편의점 주인은 작은 과자 상자를 하나 꺼내서 건네주더니 손님이 가져온 생수를 보며 말했다. “새 먹일 거라면서 뭐 그리 좋은 물을 삽니까. 하필 제일 비싼 걸 가져왔네. 그거 말고 싼 거 사 가소.” 그러자 그는 비싸다는 생수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그냥 이걸로 주소.” “새 먹인다 안 했습니까?” “새도 먹고… 나도 먹고….” “그리 해도 어차피 죽습니다. 다쳐서 못 날면 금방 죽어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 전까지의 온화한 말투를 거두고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안 죽어요! 어차피 죽는 게 어딨습니까. 지금 살아 있는데.” 나는 한참 동안 사탕을 고르지 못하고 진열대 앞에 서 있었다. 언젠가 죽을 운명이라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생명의 존엄 앞에, 자본이 매긴 물의 가격표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탕을 사서 밖으로 나갔더니 편의점 앞 널찍한 반석에 그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편의점에서 얻은 과자 상자에 다친 새를 넣어두고 생수 뚜껑에 물을 따라 새의 부리 앞에 대주는 중이었다. 옅은 회색빛의 깃털에, 몸체가 작고 꽁지가 긴, 드물게 예쁜 새였다. 나는 그 앞에 멈춰서서 새와 할아버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새는 상자 안에서 몸을 뒤척이며 날갯짓을 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 것 같았고, 할아버지는 그런 새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계속해서 부리에 물을 대주고 있었다. 이거라도 먹어야 산다고 중얼거리면서. 그러다 내 눈길을 느꼈는지, 할아버지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뭐라고 입을 열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낯선 이의 시선에 기분이 상하신 건가 싶어 조심스럽게 “네?”하고 되물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또박또박 내게 말했다. “새에 대해 조예가 좀 있으십니까?” 그건 질문이라기보다 도움을 청하는 말 같았다. 그렇지 않다고, 잘 모른다고 고개를 젓자 할아버지는 낙담한 눈치였다. 그 순간 나 자신이 무력하게만 느껴졌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베란다 구석에 놓여진 화분을 보았다. 거기엔 빼꼼히 고개를 내민 작은 싹이 있었다. 작년 봄에 동네 꽃집에서 샀던 조그만 튤립 화분이었는데, 꽃이 진 후 줄기를 잘라 구근만 남은 화분을 베란다 귀퉁이에 방치해 두었었다. 두 계절이 지나도록 물도 주지 않고 구근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그 메마르고 차가운 흙에서 연둣빛 싹이 고개를 내민 것이다. 문득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했던 윤동주의 시구절이 떠올랐다. ‘죽어가는 것’은 역설적으로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므로, 그 말은 비극적이거나 염세적인 의미가 아니라 생명을 지닌 존재들을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피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죽어가는 것들을 끝까지 사랑했던가. 죽음 이후가 두려워 지레 뒷걸음질 치거나, 어차피 죽을 거라고 체념하고 일찌감치 정성을 거두어들이지는 않았었나. 혹은, 아직 남아 있는 생명의 숨결을 보지 못한 채 이미 죽었다고 여기며 그저 방치해 두었던 것은 아닐까. 다친 새에게 끝까지 물 한 모금을 먹여보려던 그 할아버지의 간절한 손길을 떠올리면, 아직 죽지 않은 튤립 구근을 무심히 방치했던 나의 나태가 부끄럽다. 그렇지만 한겨울의 추위와 나의 무심함을 뚫고 새싹은 올라왔다. ‘모든 죽어가는 것’, 아니,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여리고도 굳센 힘으로, 마침내 봄은 올 것이다.
2025-02-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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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아버지의 아비투스
설 연휴, 아버지는 자식들과 손주들을 반기며 두둑이 쌓인 신문 앞으로 모이게 했다. 평소 중앙과 지역 일간지 두 종을 구독하는 아버지는 매일 꼼꼼하게 신문을 읽고 밑줄을 그으며 여백에 필기한다. 가끔 자식들에게 보여줄 기사나 칼럼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기도 하는데, 명절은 보내지 못한 신문을 직접 읽게 하는 날이다. 덕분에 어린 손주들은 내가 쓴 칼럼까지 읽어야 했으니, 그 원망의 눈길을 피하고자 나는 얼른 주방 쪽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일을 시작한 까닭에,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신문은 교과서였다. 신문을 읽으며 독학으로 한자와 영어를 익혔고, 아들이 모르는 한자가 있다며 물으면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책이 귀했던 시절, 나는 국한문 혼용 신문을 읽으며 문해력을 길렀고, 덕분에 꽤 어려운 도서관 책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읽는 인간인 호모 부커스로서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다.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아버지
매일 신문 읽으며 공부
상류층 자본 안 물려줬어도
읽는 인간으로서 아비투스
소중한 문화자본 전해 줘
20세기를 대표하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가족이 계급 재생산이 이뤄지는 가장 중요한 단위이고, 부모의 아비투스가 자녀에게 세습된다고 하였다. 아비투스는 우리말로 습관 혹은 취향에 가까우나 적확하게 대체할 용어를 찾기 어렵다. 아비투스는 개인의 몸속에 체화되며, 그가 속한 사회적 위상이나 계급을 반영한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다룬 책 〈구별짓기〉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자본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자산을 뜻하는 경제자본과 취향, 학력, 교양 등을 아우르는 문화자본, 인맥을 좌우하는 사회자본, 명성과 명예에 해당하는 상징자본 등이 세습된다. 〈구별짓기〉는 1960년대 프랑스 사회를 대상으로 했기에 현재 우리 사회와 거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책이 고전으로 읽히는 이유는 부르디외의 문제의식과 통찰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경제자본인 부의 대물림은 어느 사회에서나 흔한 일이다. 부르디외는 계급 불평등을 고착하고 재생산하는 기제로 단순히 부만 아니라 여러 자본이 함께 작용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문화자본인 취향이다. 부르디외는 〈구별짓기〉에서 “취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즉 인간과 사물 그리고 인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의 기준”이라 말한다.
돌이켜보니, 아버지가 물려준 아비투스는 읽기 취향이었다. 기업에 근무하는 동생과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고, 성과주체로서 자신을 착취하며 사는 우리가 어떻게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 고민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가 물려준 취향의 문화자본, 즉 아비투스 덕분이었다.
학력은 제도화된 문화자본이다. 계급 불평등의 세습을 우려했던 부르디외 역시 계급 세습의 주된 통로가 교육이라 말한다. 상류층은 경제자본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자녀에게 문화자본을 전승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교육을 통한 사회적 상승 이동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양극화로 사회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사회의 계급은 소비의 구별짓기로 표상한다. 옷이 없어 옷을 사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필요가치가 아니라,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기호가치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상류층은 구별짓고자 과시소비로 달아나고 중산층은 눈치껏 이를 뒤쫓으며 하류층은 체념한다.
아버지는 기호소비나 과시소비를 하지 않는 검약한 분이었다.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는 아버지, 매일 신문을 읽으며 공부하는 아버지는 상류층의 자본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았으나, 읽는 인간으로서의 아비투스를 소중한 문화자본으로 전해주었다.
2025-02-2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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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엇박자에 들다
악, 외마디 비명이 쏟아졌다. 몇 시간째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렸던 게 원인이었을까. 갑자기 코끝이 아릿하게 저려 들더니 온몸이 뒤틀리면서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한바탕 폭풍 재채기가 터져 나왔다. 시원하다는 느낌도 잠시, 뚜둑 소리가 나더니 허리가 이상하다.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몸을 조금만 비틀어도 저절로 신음이 새어 나온다.
삐끗, 생각해 보니 몸동작과 입소리의 박자가 맞지 않았다. 난생처음 겪는 허리통은 몸의 마비를 넘어 일상생활도 엇박자를 내었다. 써야 할 원고는 미뤄졌고 약속은 취소됐으며 겨우 시작한 운동도 당분간 중단했다. 재채기 한 번의 파장이 이렇게 번져갈 줄은 미처 몰랐다. 나만 운이 없는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머리 감다가 삐끗하기도 하고 운동화 끈을 묶다가 척추 골절이 오기도 하며 고깃집 불판 마개를 닫다가 돌연 생긴 요통으로 고생한 이도 있었다.
한의원 대기실에는 주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북적였다. 기다리는 동안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데 귀에 익은 재즈곡 ‘자바 자이브’가 흘러나온다. ‘아이 러브 커피∼’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내 핸드폰 벨 소리로도 지정되어 있어서, 자다가도 들려오면 커피가 한 모금 마시고 싶어지는 곡이다. 특히 흑인 4인조 보컬이 부른 초창기 곡을 좋아하는데 엇박 당김음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강박과 약박을 이리저리 바꾸고 흔드는 기타 연주와 흑인 특유의 그루브한 비트와 싱커페이션 리듬을 반복적으로 듣노라니 내가 환자라는 사실도 잊게 된다.
하긴 재즈의 기원도 미국으로 끌려온 아프리카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 않은가. 낯선 땅으로 이주해 온 흑인들이 노예의 신분으로 살아가며 고된 노동을 견디기 위해 불렀던 노동요가 재즈의 뿌리가 된 것이다. 거친 음색과 억센 억양과 열정적인 즉흥연주도 매혹적이지만, 무엇보다 기본 박자를 무시한 엇박 리듬이 재즈의 특징이다. 엇박자가 주어진 악곡을 위반하고 전복하고 당기고 밀어내듯이 흑인 이주민들 역시 백인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항거로 자유를 꿈꾸지 않았을까.
저항한다는 것은 규칙을 거부하고 질서를 깨뜨리는 일이 되겠다. 재즈의 엇박 리듬과 국악의 엇모리장단과 여행지에서 보았던 플라멩코 춤의 엇박자 손뼉치기도 노예와 평민과 집시의 한이 서려 있는 은근한 뒤흔듦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오프비트들은 온비트들의 핍박을 받았거나 소외된 것들이리라. 노동 현장에서의 열사나 부당한 역사와 폭력에 투쟁하는 혁명가는 물론이거니와, 때 이르게 핀 산벚꽃도 안마당에서 키를 올려 흙담을 타고 넘는 능소화 줄기도 모두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려는 모험과 창조와 자유 의지가 담겼으리라. 그들은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용기를 내었고 패하거나 꺾이거나 폭삭 사그라질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내던졌다. 고독한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많은 것이 바뀌었고 그들 덕에 평범한 자들은 편안한 세월을 보내게 된다.
한의원에서 내린 진단은 골반 옆의 양쪽 천장관절에 손상을 입었다는 거였다. 재채기할 때 등골 주변의 근육과 인대에 무리가 가해졌다며, 젊은 의사는 모니터로 뼈의 위치를 확대하여 상세히 설명했다. 어쩌면 내 허리뼈도 쉴 새 없는 몸의 노동에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충직했던 나의 뼈들이 고약한 주인의 눈길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탈출을 감행했으니….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잘 다독거려야 할 것이다. 약침과 벌침을 맞고 부항을 뜨고 전기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비딱해진 허리에게 연신 미안하다 미안하다 어르고 쓰다듬었다. 아마 한동안은 내 걸음도 엇박 리듬을 타겠지만, 그것이 내 삶의 틈이 되고 또 이음이 되리라 믿어본다.
2025-02-1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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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보통 사람의 갈등과 동시대인의 어둠
지난해 말, 영화 ‘하얼빈’이 개봉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한 사건을 다룬 영화였고 이전부터 기대를 모아온 영화였다. 실제로 이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연일 신기록을 세우며 흥행 가도를 끌어 올리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새 영화는 예상과는 달리 주춤한 흥행 기세를 보이고 있다.
영화를 판단하는 기준이 관객 수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천만이라는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였지만 훗날 다시 보기 민망한 영화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적도 있었고, 개봉 시점에서는 흥행몰이에 실패했지만 볼수록 아름다운 영화였다는 확신을 얻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얼빈’은 어떤 경우일까. 이 영화는 당대의 흥미를 끌어모은 경우이지만, 기대와는 퍽 다른 영화였던 것은 분명하다.
우민호 감독 영화 '하얼빈'
독립군의 고민과 어둠 담아
"오늘날의 어둠과도 맞닿아"
한국인들에게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울분과 격변의 소치로 각인되어 있다. 불법과 강압으로 조선을 패망시키고도 이를 인의와 합법으로 가장한 일제의 소행은, 분명 공분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악행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현재만 해도 그렇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난 이후 한국의 외교 방향과 대외 정책은 ‘친일’을 넘어 ‘숭일’로 돌아섰고, 그때마다 미래 화합이나 국가 연대와 같은 그럴듯한 논리로 치장되었다. 상대는 강제 병합과 무력 침탈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자세로 돌아섰고, 한국은 그러한 자세마저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돌아갔다. 강제 병합의 직전인 1909년 그때나, 굴욕적 대일 정책의 전성기 2020년대 한 시점에서, 안중근은 치욕과 비분을 씻어낼 강력한 상징이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하얼빈’은 의거의 위대함보다는 그 과정의 어둠을 더욱 많이 그리고자 했다. 안중근은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 황량한 강 위를 홀로 걸어야 하는 인물이었고, 그를 둘러싼 지사들은 표정에서 어둠을 지울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과연 ‘그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하는 의심도 무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역사를 알고 있고 안중근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어둠을 밀어낼 한 줄기 빛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는 있었지만, 영화 속 그 빛은 우리가 알던 안중근의 영웅적 풍모에 비해 미약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우민호 감독이 보고자 한 것은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이기도 했고, 영웅적 행적보다는 그 밑에 도사린 고민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얼어붙은 강을 당장 녹일 막연한 햇살보다는 그 시간에도 작은 어둠이라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힘겨운 마음의 풍경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적지 않은 관객이 그 어둠을 무작정 반기지는 않는 것 같다. 비록 일시적 희망과 달콤한 위안일지라도, 모든 어둠을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을 영화에서만이라도 원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분명 안중근의 의거와 그 이유를 보여 주었지만, 그를 통해 막연한 희망을 부풀리는 데에는 조심스러웠고, 오히려 그 희망 너머에 도사린 어둠과 고민을 보여 주는 데에 더 간절했다. 그리고 그 어둠은 2024~2025년의 어둠과 통하고 있다. 시대를 역행하는 폭력과 아집의 그림자는 지금도 한국 땅에 살아 있었고, 자기 뜻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위선적 지배자는 동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하얼빈’의 안중근은 비단 100년 이전의 사람만은 아니었고, 반드시 역사 속 영웅만도 아니었다. 회의와 고민과 의심과 불안을 여전히 떠안은 채 또 한 시대를 건너야 했던 보통 사람일 수 있고,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이어진 동시대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어둠을 보고자 한 것일 게다, ‘하얼빈’은.
2025-02-0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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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덕담
지난해엔 우리를 충격에 빠뜨리는 일이 참으로 많았다. 그 여파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 그런지 설날이라는 명절 앞에서도 마음 한구석이 뒤숭숭하다. 하지만, 이 모든 혼란과 슬픔이 걷어지고 더 나아진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설날도 새해라고 하지만, 양력 1월 1일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1월 1일은 자정이 되기 전, 남은 몇 초를 카운트하며 과거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시간이 도래한 감회를 만끽한다. 바뀐 달력을 펼치고 빨갛게 표시된 날짜를 헤아려 한 해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구상하기도 한다.
설날에는 차례를 지내고 세배하고 떡국을 먹는다. 그 과정에 오가는 것에 ‘덕담’이 있다. 대체로 “올해도 건강하고 복 많이 받아라”라는 의미로 건네진다. 상대에게 보내는 일종의 기원이고 주문(呪文)이기도 하다. 간혹, 덕담을 빙자하여 진학이나 결혼, 취직 등을 재촉하는 요구사항이 나오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주문을 듣고 나서야 1년을 맞이할 모든 절차가 끝난 느낌이다.
미지의 한 해를 헤쳐 나갈 마음의 준비를 끝낼 즈음 더럭 궁금증이 생긴다. 뜻하지 않게 닥칠지 모를 불운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주나 토정비결로 신년운세를 점쳐본다. 복조리를 문 앞에 걸어 복이 걸려들길 바라고, 혹은, 하늘 높이 연을 날려 액운을 쫓기도 한다. 새해의 주술적인 감성은 다른 나라에도 얼마든지 있다. 중국에선 폭죽을 터뜨리고 붉은 봉투(홍바오)를 주고받으며 부와 행운을 기원한다. 일본에서는 ‘오미쿠지’라고 불리는 점괘를 뽑아 한 해의 운수를 점치고, 나쁜 운세가 나오면 이를 신사에 묶어둬 불운을 피하려 한다. 스페인에선 자정이 되기 전 12개의 포도를 먹으며 한 알씩 먹을 때마다 한 달의 행운을 빈다고 한다. 그리스는 새해 첫날 문 앞에 석류를 깨뜨려 그 씨앗이 많이 튀어나올수록 더 큰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더 나은 내일을 기원하는 이런 모습은 보편적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희망의 표현이다. 이런 표현을 우연을 바라는 미신이라 치부하는 건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격이다. 이것은 곧 삶에 대한 의지와 호기심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우연과 필연의 회오리 속에서 뭔가를 붙잡고자 했고, 오랜 역사를 거쳐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기도하고 기원한다. 그 대상이 인간을 창조한 거대한 힘일 수 있고 해와 달, 오래된 나무나 탑일 수도 있다. 상상의 모습일 수 있고, 과학적 이치나 원리일 수도 있다. 심지어 바닷가에서 주운 작은 조약돌을 행운의 돌이라 부르며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무탈과 행운을 기원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기도한다고 소원이 무조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도한다고 원하는 바가 모두 이루어진다면 그 행위는 그냥 성과를 이뤄내는 일반적 상식이라 할 수 있다.
사실은, 기도해도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하는 것이다. 다만, 간절히 바랄 뿐이다. 어쩌면 소원 성취는 간절한 마음, 그 간절함이 유발한 행동이 만들어 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새해를 맞이하여 기도한다. 기왕 하는 김에 차고 넘치게 기도한다. 이 사회에 거짓과 폭력이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사랑과 배려가 넘치고 공정과 상식이 일상이 되기를 기원한다.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와 공존만이 온 누리에 펴지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 건강과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2025-01-3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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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제자리 찾기
언제부터인가 아이가 어지럽다는 말을 한 번씩 했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유튜브 너무 오래 봐서 그래. 일어나서 창문 열고 바람 좀 쐬어 봐.” 마치 한여름에 냉방을 하지 않은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덥다고 호소하는 아이에게 “가만히 있으면 하나도 안 덥다”라고 말하는 꼰대 어른처럼 말이다. 물론 어떤 호소는 엄살일 수도 있지만, 어떤 호소는 절박하다. 고통의 경험치가 부족한 아이의 서툰 표현에서도 그 절박함을 헤아릴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유튜브를 끄고 베란다로 나가 바람을 쐬어도 어지럼증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던지, 아이는 거실로 돌아와서 바닥에 대(大)자로 누워버렸다.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다고 했다. 토할 것 같다고도 했다. 그제서야 심각성을 느낀 나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몇 가지 검사를 해본 결과, 아이의 병명은 이석증(耳石症)이었다. 귀의 내부기관에 붙어 평형감각을 유지하는 작은 돌 같은 탄산칼슘 결정체를 이석(耳石)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어떤 이유로 제자리를 이탈하여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가 있다가 머리를 움직일 때 림프액을 휘저으면서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질병이라고 했다.
아이는 병원에서 이석 치환술을 받았다. 이석이 이동한 위치를 파악해서 머리와 몸의 위치를 반복적으로 조정해 가며 돌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물리치료 방법이었다. 치료를 받은 후 아이의 상태는 좋아졌다. 하지만 이석증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질병이라고 했다. 이석이 제자리를 찾았다 하더라도 고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그 돌은 언제든 다시 제자리를 이탈하여 흘러나올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러면 아이는 파도가 심한 배 위에 올라탄 것처럼 어지럽고 울렁이는 괴로움을 또다시 겪게 될 것이다.
생명에 지장이 없다 하더라도, 반복되는 고통은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그러니 그 작은 돌이 제자리에서 빠져나오지 않도록 애써야 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이야기해 준 생활 습관 개선책들을 허투루 넘기지 말고 늘 신경 쓰자고, 나는 아이에게 다시금 말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다짐했다. 아이가 보내는 작은 신호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말과 행동들을 쉽게 넘기지 말자고 말이다.
이번 겨울 내내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어지럼증에 시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자리를 이탈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일들이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속을 울렁이게 했다. 세찬 바람에도 결코 꺼지지 않는 응원봉의 불빛과, 한파에도 거리를 지키며 목소리를 내는 인간 키세스들의 굳건함이 다행히도 우리를 희망의 방향으로 이끌고 있지만, 그 희망의 연대를 통해 모든 상황이 마침내 제자리를 되찾는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방심하면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언제든 또 제자리를 이탈해 우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이석처럼 말이다.
용산에 위치한 가톨릭 수도원의 수도자가 응원봉을 높이 들고서 사람들을 수도원 건물로 이끄는 사진이 최근 화제가 되었다. 한파에 떨던 시위대에게 몸을 녹이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일이었는데, 홀로 기도하고 고행하던 검은 옷의 수도자가 추위에 떨고 있는 이들을 위해 수도원의 문을 연 일은 소박하지만 어떤 기도보다도 거룩한 행동이었다.
내게 보이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잘 살피는 일, 작은 신호들을 대충 넘기지 않는 일, 그리고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성실히 해나가는 일. 그렇게 예민한 감각으로 주위를 돌보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들을 끝까지 지켜내려 애쓸 때, 모든 일은 결국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고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그곳에 뿌리내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2025-01-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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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문학이 쓸모 있는 이유
부커상 수상 작가이자 〈파이 이야기〉로 잘 알려진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은 국가를 이끄는 수상에게 편지를 보내며 “국민을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세상이 실제로 돌아가는 이치를 이해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면 좋겠다고 꿈꾸는 능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세상을 이해하고 꿈꾸는 데 문학 작품만큼 좋은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유아와 초등 시기 그림책과 동화책을 읽고, 중·고교에서 국어 지문들로 다양한 문학 작품을 접한다. 우리뿐 아니라 대부분 국가의 공교육 체계에서 문학은 중시되며, 발달단계에 맞는 문학 작품을 읽도록 교육과정을 구성한다.
대학 교양교육에서도 문학은 중요한 위치에 있고, 인류에 공헌한 인물을 기리는 노벨상도 문학상의 위상이 높다. 이는 얀 마텔의 생각처럼, 세상 이치를 이해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상상력을 위해 문학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그 인간이 만든 사회를 이해하고 통찰하며, 인간다운 감성을 구축하는 데 문학만큼 중요한 것은 드물다.
인류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아직 석기시대 살고 있을지도
문학은 사회 구조를 조망하고
지식과 기술 사용 방향 제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상상력!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며 문득 깨닫는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의 실수를 우리도 똑같이 저지르고 있음을. 좋은 문학 작품은 거울과 같아 우리는 소설 속 등장인물을 읽으며 동시에 자신을 읽게 된다. 잠들기 전 책을 들어 몇 쪽이라도 읽는 순간은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곳에 있는 시간이 된다. 그렇게 문학은 내가 남이 되어보는 연습이 되고, 이 즐거운 연습으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기른다. 경험은 소중하나, 자신을 가두는 우물이기도 하다. 한 권의 책을 만날 때마다 한 번의 삶이 더해진다. 문학으로 타인의 경험을 더해 넓혀지지 않은 삶, 오직 자기 경험에 기대 한정된 삶을 사는 사람만큼 위험한 사람은 없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아이들도 읽을 만한 짧은 우화소설이지만, 권력의 부패와 이상의 왜곡, 국가의 파멸 과정을 낱낱이 읽어낼 수 있다. 특히 언어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오용되는지를 잘 보여주어, 이 책을 제대로 읽은 독자라면 사욕에 눈먼 정치인들의 교묘한 선동을 쉽게 알아차리게 된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아픈 역사를 관망하지 않고 감각하며, 잘못된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 통찰을 키운다. 통찰은 대상을 꿰뚫어 보는 힘이며, 드러난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을 천착하는 지혜를 키우게 한다. 그래서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건 예방 접종이다. 문학은 인간의 아픈 과거를 감각하도록 만든 백신이며, 덕분에 과거가 현재를 예방한다. 그냥 과거가 아니라 스스로 지각한 과거만이 현재의 비극을 예방한다. 애초 감각이 없으면 지각도 없으니.
노스럽 프라이는 〈문학의 구조와 상상력〉에서 문학의 핵심 역할이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라 말한다. 그는 특히 교육적 측면에서 문학 작품으로 바람직한 상상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의 왜곡된 상상력으로 빚어낸 꿈이 우리에게 악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꿈꾸도록 하는 힘이 상상력이다. 인류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 석기시대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문학은 사회 구조를 조망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유추하는 상상력을 교육함으로써 지식과 기술이 사용되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쉽게 오지 않을 수 있으나, 그것이 어떤 세상이어야 하는지 상상하는 힘은 문학으로 길러진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상상력, 그 힘을 믿는 이들에게 문학은 여전히 쓸모 있다.
2025-01-1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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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유물의 말씀
드디어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일본에서 환수한 이 유물은 13세기에 제작된 고려 나전칠기로써 그전까지도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2023년 가을, 유물이 처음 공개되던 날은 매스컴에 떠들썩하게 귀환 보고를 하였고 얼마 후에는 특별전까지 열어 대중에게도 얼굴을 알렸다.
전시회에 다녀온 자들은 한결같이 800년을 거슬러 맞닥뜨린 공예품에 찬탄하고 감읍하였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시골집 자개 문갑처럼 빈티지 느낌이 나거나, 선물용품점에서 구매한 화려한 나전 보석함의 문양과는 확연히 달랐다. 사방으로 빽빽하게 장식된 국화꽃과 부드럽고도 섬세한 넝쿨무늬가 알싸한 향을 뿜어내는 것만 같아서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문외한인 내 소견으로도 잠든 고려 나전칠기가 깨어났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고종 황제 투구와 갑옷 등
일본 넘어간 '오구라컬렉션'
도쿄박물관 한국실 절반 넘어
식민지 시대 빼앗겼던 유물
되찾는 방법 정말 없을까
전문가의 해석으로는 침엽수 계통의 나무로 만든 백골 위에 천을 바르고 그 위에 골회(骨灰)를 입혀 자개를 붙인 다음 여러 번 옻칠하여 마감하는 전형적인 고려 나전칠기 방식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몸체에는 모두 770개의 국화넝쿨무늬를 배치하였고 뚜껑 테두리에는 30여 개의 모란넝쿨무늬를 장식했으며 구슬을 꿰맨 듯 연결한 작은 점무늬도 1670개나 된다고 한다. 국화를 둘러싼 촘촘한 이파리들이 놀랄 만큼 정교하다. 도안을 그리고 종잇장 같은 얇은 자개 조각을 따내어 일일이 붙이고 몇 겹의 칠을 하는 동안 흘린 장인의 땀을 생각한다. 과연 나라의 보물로서 손색없는 귀물이다.
그런데 이 유물이 일본 개인 소장가의 창고에서 백 년 넘게 잠자고 있었다는 대목이 눈길을 잡는다. 그것은 단박에 서아프리카 베냉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한 편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는 프랑스에 약탈당한 다호메이 유물을 본국으로 귀환시키는 과정을 담았다. 더군다나 26개 반환 유물 중 게조왕 조각상에 목소리를 덧입혀 유물의 시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하는 설정이 독특했다. 어둠 속에서 한 세기가 넘게 갇혀 있던 조각상은 굵직하고도 낮은 그러나 분노와 비장함이 서린 음성으로 “시작과 끝, 꿈속에서 길을 잃고 벽과 하나가 되었다”라고 외쳤다. 나는 그 순간 캄캄한 나무 상자 속에 갇힌 게조왕에 몰입되면서 당연히 고려국의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를 떠올린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영화 때문인지 주말마다 일 년 동안 줄기차게 다녔던 어느 박물관대학의 학습 때문인지는 알지 못해도 요즈음 처처에 흩어진 유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한다. 그리하여 연산동고분군도 가고 청도 석빙고도 다녀오고 경주 남산의 늠비봉 오층석탑도 보고 포항 칠포리 암각화도 만났다. 그러나 우리 땅에 몸 붙인 유물이야 관심도 갖고 연구도 하지만 타국에 묶여 있는 우리의 문화재는 어찌할 것인가.
무엇보다 일본에 넘어간 ‘오구라컬렉션’을 빼놓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 때 전기 사업으로 부를 쌓은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조선의 막대한 유물을 도굴과 갈취와 약탈로 밀반출하였다. 반출된 유물은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한국실에만도 진열장의 절반을 넘게 채웠다. 고종황제의 투구와 갑옷, 명성황후가 사용했던 상, 금동반가사유상, 금관총의 유물들, 연산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차양투구, 삼각판병유판갑옷, 철제관모 등이 포함되었다. 그러니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서 돌아온 조선 왕실 도장이나 일본인 개인이 소장하던 얼굴무늬 수막새 등이 환수된 예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서 몰락한 다호메이왕국의 게조왕이 베냉 국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귀환하듯, 비참했던 식민지 시대에 오구라에게 빼앗겼던 유물을 되찾는 방법이 정말 없을까.
2025-01-0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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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비틀어진 확신자
1970년대,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하고 끔찍한 비극 중에 하나로 불리는 사건이 있었다. 소위 ‘킬링필드’라 불리는 이 참극은 캄보디아의 폴 포트가 주도하던 크메르루주가 자국민에게 행한 대량 학살을 일컫는다. 정권을 잡은 폴 포트는 이제까지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앙코르 왕국보다 더 멋진 미래라는 깃발을 세웠다. 미래를 향한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자들은 모두 없애야 하며 ‘불완전한 인간 1명이 있느니 아무도 없는 게 더 낫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확신의 결과로 폴 포트가 집권했던 3년 6개월 동안 750만 명이었던 캄보디아의 인구가 672만 명으로 줄었다. 최소 130만 명 이상에 달하는 자국민들을 학살한 폴 포트는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이자 학살자로 꼽힌다.
폴 포트가 몰락한 후 연금 상태에서도 그는 확신에 찬 말을 남겼다. “내 양심은 깨끗하다. 통치 중에 우리의 운동이 실수를 저지르긴 했어도 캄보디아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었고, 베트남 침공으로부터 이들을 구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었으며 나는 투쟁을 수행한 것이다.”
나는 폴 포트를 ‘비틀어진 확신자’라고 이름 지었다. 캄보디아에는 아직도 폴 포트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폴 포트가 베트남으로부터 캄보디아를 지키려 했던 국가적 영웅이라 주장한다. 폴 포트가 저지른 자국민 학살도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이들 또한 확신자에 속한다.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독재자는 또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 3대를 세습한 김정은 정권,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적도기니 공화국의 마시아스 응게마, 우간다의 이디 아민 등은 독재자 명단에서도 앞줄을 차지하고 있는 자들이다.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로 그들은 언제나 화려한 깃발을 내걸고 확신에 찬 구호를 외쳤다. 억압받는 국민을 위해 나섰다고 주장했고, 풍요롭고 평등한 사회를 위한 투쟁이라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어떤 짓을 벌였고 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두 번째는 자신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자를 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확신자에게 제기된 다른 주장은 전진을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그래서 권력을 쟁취한 그들의 최우선 순위는 바로 반대 세력의 척결이었다. 이러쿵저러쿵 쓴소리를 내뱉는 정치인, 언론과 지식인들을 제거했다. 이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 혼란과 경제의 몰락은 모두 반대 세력 탓이라 몰아세운다.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비틀어진 확신자’는 결코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희생을 강요한다. ‘확신’의 주체가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거창한 깃발을 휘두르지만, 결국 사욕을 위한 확신일 뿐이다. 사실, 확신하는 자라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장의 계기가 되고, 변혁과 창조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구국의 영웅을 탄생시킬 신념이 되기도 한다. 이들은 비틀어진 확신자들이 결코 해내지 못할 것을 해낸다. 그건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건 ‘희생’이다. 그래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누군가의 희생을 안타까워한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확신하지 못하는 부류이다. 그래서 권력의 전당에서 아우성치고 있는 수많은 확신하는 자들을 살펴볼 뿐이다. 그들이 화려한 깃발만 휘두르는 건지. 결연히 반대하는 자들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그리고 어떤 순간에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는지 두려운 마음으로 살펴본다. 비틀어진 확신자는 우리 주위에 늘 있었으며, 나는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할 단 하나의 표를 가지고 있다.
2025-01-0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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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지켜내려는 마음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력이 급격히 떨어졌던 적이 있다. 갑자기 책의 글자가 잘 보이지 않고 노트북 화면도 흐릿하게 보여서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나중에는 글자를 보면 어지러워서 구역질까지 나왔다. 안과에 가서 몇 가지 검사를 했는데 특별한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안경을 쓰고 검사를 해보아도 시력 교정이 되지 않아서 안경 처방을 할 수가 없다고, 그 점이 이상하다고 의사는 말했다.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으니 당분간 작은 글자 같은 것은 보지 말고 눈을 좀 쉬게 두었다가 다시 병원에 와보라는 말에 나는 절망했다. 글자를 보지 말라니, 내게는 극악무도한 형벌과도 같은 일이었다.
잃어버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것이 나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었음을, 결코 없어서는 안 되며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자각하게 될 때가 있다. 자각하더라도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완전한 상실은 그야말로 참담한 슬픔 속에 나를 가두지만, 간혹 잃어버린 것을 되찾게 되는 행운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란 참으로 어리석어서, 그것을 되찾은 직후에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 금세 마음이 해이해지고 만다. 그렇게 벌어져 버린 나태함의 틈새로, 우리는 어렵게 되찾았던 것을 너무도 쉽게 다시 잃는다. 한번 되찾았다고 해서 다음번에도 되찾을 수 있을까?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평온하고 자유로운 일상이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님을
깨어있는 정신 지켜내지 않으면
또다시 비극을 겪을 수 있음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떨어졌던 시력을 다행히 몇 달 만에 회복할 수 있었다. 혼자서 원인을 분석해 보다가 당시 장기 복용하고 있던 약의 부작용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고, 약을 끊었더니 서서히 원래의 시력이 돌아왔다. 약을 통해 얻는 효용을 포기하더라도 시력을 되찾는 일이 내게는 훨씬 중요했기에 나는 그 약을 다시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시력의 중요성을 새삼 자각했으므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잃었다. 나중에는 딱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시력이 잘 유지되니, 글을 읽고 쓰는 일도 다시금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말았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팬데믹으로 3년간 일상의 자유를 잃었을 때, 우리는 그동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던 일들이 실은 얼마나 소중한 일상이었는지를 체험적으로 깨달았다. 이를테면 국가로부터 나의 동선을 추적당하지 않는 일, 축제를 열거나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는 일, 마스크 없이 서로의 얼굴을 대면하는 일 같은 것들. 그처럼 당연하게 누리던 자유를 불현듯 빼앗겼을 때 우리는 얼마나 절실해졌던가. 그러나 평범한 일상을 되찾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도 과거는 이미 까마득해졌다.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약국에 줄을 서고, 감염자의 동선이 기록된 알림 문자를 불안한 마음으로 체크하고, 다중 이용 시설에 가면 체온 측정과 방문객 체크인부터 해야 했던 일들이 오래된 꿈처럼 아득하다.
망각은 때때로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겠지만, 어떤 일들은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손가락이 절단되어 접합 수술을 받은 인물이 신경을 살리기 위해 수시로 그 부위를 바늘로 찔러야 했던 것처럼,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직면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우리의 평온하고 자유로운 일상이 결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님을, 깨어있는 정신으로 그것을 지켜내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는 또다시 커다란 비극을 겪을 수 있음을, 그리고 어쩌면 지금 누리는 일상을 다시는 되찾지 못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2월 3일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비상식의 폭력이 다시 재현되지 않도록, 이 겨울의 매서운 바람에도 웅크리지 말고 눈앞을 똑바로 응시하며 걸어야겠다.
2024-12-2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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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았다
2024년 12월 3일 악몽의 시간은 거의 모든 사람을 침대에서 일으켜 세웠고, 그 이후의 시간을 혼몽의 시간으로 이끌었다. 이 땅에 사는 거의 모든 이들이 겪었던 고통이었기에, 그 충격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부연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기억해야 할 것은 제대로 말해지지 않는 것 같다.
묻고 싶다. 우리는 정말 몰랐을까. 그가 집권자의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걸맞은 자격을 근본적으로 겸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마지못해 비상계엄의 위법성과 탄핵 반대의 부당함을 인정하는 이들 중에는, 정말로 그가 그럴 줄 몰랐다는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말 몰랐을까. 숫자상으로만 보면 절반 이상의 사람이 그를 반대하지 않았으니, 이 변명은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검찰총장으로서 행보나 대선주자로서 그의 신념은 그가 시종일관 자격과 능력을 검증받은 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다시 몰랐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런데도 몰랐느냐고.
많은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만 모른 척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아마 그런 것쯤은 상관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당을 여당으로 만들고 자기 지위를 더욱 높여주고 평소 믿음을 더 강고하게 만들기만 한다면, 그다음에 벌어질 일쯤은 눈감아도 상관없다고 여긴 것은 아닐까.
진작부터 그와 그의 부인에게 향했던 의심과 불의의 눈초리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조금씩 권력에 접근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권한과 능력을 동원하여 의심의 눈초리를 무마하고 제거하여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도록 지워나갔다는 사실은 이를 더욱 확고하게 입증했다. 그런데도 그를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차기 대권을 쥐어야 한다는 맹신에 가까운 믿음은 그에게 사전에 면죄부를 허락해 주었고, 그에게 향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다수의 힘으로 누를 수 있는 특권을 확보해 주었다. 대권을 쥐고 안 쥐고는 그다음이었고, 그를 믿는다는 많은 사람들은 사전에 면죄부부터 수여했다. 그렇다면 비상계엄으로 사람들의 안위와 권리까지 직접적으로 위협할 지를 몰랐다는 주장 역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적지 않은 대권 후보자가 사전에 면죄부를 발급받았다. 신통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일사불란하게 후보자를 향한 관용과 이해가 사전에 베풀어졌고, 집권 이후 실정이 반복되면 그때의 허락을 ‘설마 그가 그럴 줄 몰랐다’는 말로 바꾸었다. 게다가 그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그때는 몰랐기 때문에 용인할 수 있고 이제는 알았기 때문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생겨나 천연덕스럽게 유통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그 논리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전두환은 우리가 뽑지 않은 이라서 예외라 한다고 해도, 이명박이나 박근혜는 분명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았다’는 논리로 선출되었다가 당연하다는 듯 처벌된 이들이다. 과거에 그들을 뽑기 위해 사전에 면죄부를 주었다가 이후 그들을 몰아세운 방식 그대로, 윤석열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면죄부와 특권을 허락한 바 있다. 그런데도 그때는 몰랐다고, 진짜 몰랐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분명 윤석열은 그 행위에 대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선택한 말로 ‘처단’될 수도 있다. 정작,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는 미래는 모르겠고 지금은 괜찮다는 논리로 능력 없고 자격 없는 후보자에게 여전히 면죄부부터 수여하고, 집권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그를 선출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또 다른 비상계엄과 네 번째 탄핵을 반복해야 할 수도 있다.
2024-12-19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