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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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소설가

한 해 여는 1월은 겨울
투명하고 반짝이는 계절
추위도 따뜻한 기억으로

새로 얻은 탁상 달력을 세워놓고 잠시 그림을 감상했다. 달력 첫 장에는 얼어붙은 개울가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수채화가 있다. 그 풍경을 넘기면 1월이다. 익숙하도록 규칙적인 숫자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한 해의 시작은 봄이 아니라 겨울이었구나.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끝나는 한 해가 아니었구나.

계절마다 제각각의 풍경이 있겠지만. 나에게 겨울은 뭔가 투명한 것이 반짝이는 계절이다. 물론, 겨울이 만만한 계절은 아니다. 이제 곧 낯설고 더 어려워진 도전과 맞닥뜨릴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춥다. 그래서 오히려 ‘따뜻함’이라는 것이 소중하게 드러나는 계절이다. 마치 무더운 여름에 ‘시원함’이 두드러지는 것처럼 말이다.

오래된 기억이 있다. 그다지 특별한 것도 없는데 녹화된 영상처럼 간직된 기억들이다. 추운 겨울 아침, 나는 시골 외갓집 뒷산 너머의 저수지 앞에 서 있다. 길쭉한 갈댓잎엔 하얀 서리가 부풀어 앉았고, 땅을 디딜 때마다 잔뜩 성을 낸 서릿발에 뽀득뽀득 소리가 났었다. 다랑논에 물을 대기 위한 자그마한 저수지였는데, 전날까지만 해도 뿌옇게 살얼음이 껴있었다. 그랬던 저수지가 간밤의 추위로 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다. 운동장만큼 컸던 저수지는 그만한 크기의 매끈한 빙판으로 변해있었다. 사촌을 포함한 우리에겐 썰매를 탈만치 두껍게 얼었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정말 탐스러운 빙판이었다.

사촌 형이 조심스레 저수지 가장자리에 발을 디뎠다. 앞으로 몇 발 더 나아가 발을 구르자, 쩡,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물러선 사촌 형이 고개를 젓자 우린 모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빙판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그 작은 돌은 빙판에 부딪히며 물수제비처럼 미끄러져 나갔다. 동시에 저수지에서 신기한 소리가 울렸다.

아래쪽 개울에서 썰매 타기엔 돌이 많다며 투덜거리던 우리의 재잘거림이 뚝 멈췄다. 작은 돌이 얇은 얼음판과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이후로 다시 들을 수 없었고, 어떤 악기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소리였다. 뾰롱, 뾰롱, 뾰로롱, 뾰로로로롱…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작고 납작한 돌을 주워 저수지를 향해 던졌다. 물수제비뜨듯 비스듬히 던져진 돌은 피겨스케이트 선수처럼 통통거리며 저수지를 가로질러 미끄러졌다. 작은 돌과 얼음의 부딪힘으로 어떻게 저런 영롱한 소리가 날 수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거대한 저수지는 천연의 악기였다. 저수지를 둘러싼 언덕은 악기의 울림통이었고, 얇은 얼음판에서 울린 소리가 메아리쳐서 마치 얼음과 하늘이 주고받는 화음이 되어 펴졌다.

여기까지가 내 기억이다. 이다음에 썰매를 탔는지 어쨌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기억을 떠올리면 늘 따뜻함을 느낀다. 그 당시엔 분명 입술이 얼어붙을 추위에 손과 발이 시리고, 귀도 떨어질 듯 아렸을 텐데 말이다.

왜 따듯하게 느껴질까 생각해봤다. 결론은 명백하다. 지금 내가 따뜻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몸과 마음이 여전히 추위 속에 있다면 그 기억이 따뜻할 리가 없다. 아마도 대부분 감정과 기억의 체감이 그런 이치일 것이다.

겨울은 따뜻함을 선명하게 하는 계절이다. 그 선명함은 추위가 강할수록 더할 터이다. 다만, 그 추위를 감당할 마음의 아랫목을 얻을 수 있다면 말이다. 언제든 달려가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가족의 따스한 체온, 포켓 깊숙이 넣어둔 핫팩, 그도 아니면 내 차가운 손을 모아 후후, 불어주는 타인의 따스한 입김이 그렇다.

새해의 이 겨울, 모두가 따스한 옷을 입고, 장롱 속에 넣어둔 목도리를 꺼내기 바란다. 그래서 지금 이 추위가 따뜻한 한 폭의 그림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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