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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마음까지 태운 산불… 이제는 온 마음을 나누자
지난주는 역대급 산불에 마음 졸이는 시간이었다. 전 국민 모두가 언제쯤 불길이 잡힐지 노심초사 걱정하며 애를 태웠다.
경북 동북부 5개 시·군을 초토화시킨 이른바 ‘경북 산불’은 축구장 6만 3245개, 여의도 156개 면적을 잿더미로 만든 뒤 149시간 만인 지난주 29일에 주불이 잡혔다. 성묘객 실화로 시작된 이번 산불은 역대 최고인 시간당 8.2㎞ 속도로 동해안까지 이동하며 26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그보다 앞서 경남 김해시와 울산시 울주군, 전북 무주군과 충북 옥천군에도 산발적으로 산불이 번졌다.
지난달 21일 경남 산청군에서 발생한 산불은 약 213시간 만인 30일에 꺼지면서 역대 두 번째로 길게 지속된 산불로 기록됐다. 산청군 산불로 축구장 2602개에 달하는 면적이 피해를 봤고, 진화작업 중 불길에 고립된 창녕군 소속 산불진화대원과 공무원 등 4명이 숨지기도 했다.
영남 지역 산천을 태우던 불길은 사그라들었지만 곳곳에 상흔이 남았다.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야산은 울창했던 숲 대신 시커멓게 타다 남은 앙상한 나무들만 숯으로 남았다. 마을은 폭격을 맞은 듯 초토화돼 삶의 터전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매캐한 냄새가 가득한 산불 피해 지역은 다니는 사람도, 차량도 없이 적막한 모습으로 변했다.
‘괴물 산불’을 피해 겨우 몸만 빠져나온 이재민들은 또 어떤가. 고령층이 대부분인 이재민들은 곳곳에 마련된 대피소 텐트에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지만, 건강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데다, 생계 걱정에 앞이 깜깜하다. 그나마 한때는 3만여 명에 육박했던 대피소 이재민의 수가 일주일 사이 600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하니 조금은 다행스럽다.
역대급 산불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는 건 지금부터다. 이재민 대책에 산림·문화재 복구 등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정부는 이재민들이 하루 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서둘러 재난 복구 대응에 나서야 한다. 정치권은 대승적 차원에서 소모적인 논쟁은 자제하고 추경 예산 10조 원 편성을 신속하게 합의 처리해야 한다.
더불어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이 본격화될 때까지, 우리 모두는 산불 피해 지역에 더욱 마음을 모았으면 한다.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의 식사와 잠자리를 챙기는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감사하다. 잔불을 정리 중인 많은 소방 관계자들과 함께 봉사자들이 피해 현장을 든든히 떠받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SNS(사회관계망)에서도 산불 진화와 이재민 지원을 위해 써달라며 적게는 10만 원부터 많게는 수 천만 원까지 십시일반 성금을 내놓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게시글이 눈에 띄었다. 삼성과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은 이번 산불 피해 복구와 피해 주민 지원을 위한 성금으로 총 90억 원을 내놨다. 유재석, 아이유, 임영웅 등 유명 연예인들의 기부 소식도 줄을 이으면서 ‘선한 영향력’이 번지고 있다. 이밖에 심리 상담, 진료 봉사, 물품 기부를 하는 이들의 도움도 답지하고 있다.
봉사와 기부, 그 둘이 아니라도 작게나마 무언가 도울 일이 없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산불 피해 현장으로 가볼 참이다. 참담한 현장을 직접 마주한다면 화재 예방에 대한 교훈을 가슴에 새길 수 있을 것이다. 미처 수습이 안 된 현장이 있다면 청소와 정리에 손을 보탤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까지 까맣게 태워버린 이번 산불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모두의 마음을 더할 때다.
2025-03-3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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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죽어도 되는' 노동자는 없다
‘죽어도 되는’ 노동자가 있다. 그것도 16번이나 죽임당했다. 이름은 미키 반스. 얼음행성 개척에 투입돼 온갖 위험한 임무를 도맡는다. 마루타처럼 생체 실험에도 동원된다. 얼음행성은 어떠한 사회적 안전망도 없는 죽음이 예정된 일터다. 미키가 믿을 건 죽고 나면 신체와 기억이 복제된다는 사실 뿐. 그는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다시 죽는 노동자다. 고통스러운 죽음이 반복되면 두려움마저 사라지는 건지…. 미키가 죽음의 고비마다 보여주는 체념 섞인 평정심(?)은 기이할 정도로 놀랍다. 비인간적인 공동체는 임무를 수행하는 미키가 살아있는지, 아니 ‘죽었는지’ 확인하지도 않는다. 그저 프린트하면 그만인 ‘익스펜더블,’ 인간 소모품이기 때문이다.
영화 ‘미키17’은 자연스레 한국사회에 만연한 산업재해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올해 2월 부산 반얀트리 화재는 6명 노동자의 생명선이 타들어 간 대가로 휘황한 도시에 숨겨진 안전불감증의 민낯을 한순간에 들춰냈다. 10명의 인부가 숨지거나 다친 서울·세종고속도로 다리 붕괴 사고는 충격 그 자체였다. 툭하면 어선 침몰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이주노동자는 얼음 행성에 투입된 미키나 다름없다.
지난해 12월 ‘노동의 메카’를 자부하는 울산에선 20대 잠수 노동자가 차디찬 겨울 바다에 들어갔다가 주검이 돼 돌아왔다. 2018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죽어간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 그보다 2년 전 서울 구의역에서 열차에 치여 숨진 19살 하청 노동자 김 군을 우리는 어느새 잊어버린 걸까. 세 사건 모두 기본적인 2인 1조 수칙조차 지키지 않아 발생한 참극이었다. 위험의 외주화에 희생당한 제2, 제3의 김용균은 시나브로 영화 속 열일곱 번째 미키를 넘어선 지 오래다. 동일한 형태로 반복되는 죽음은 어쩌면 ‘죽임’에 가깝다. 고용노동부가 펴낸 ‘2024 중대재해 사고백서’에 따르면 2023년 전국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는 593명에 달한다.
언제나 그랬듯 법의 처벌은 약하기 짝이 없다. 산재 다발 사업장 고려아연은 2021년 노동자 2명이 질식사한 사고와 관련, 4년 뒤 법원에서 원하청 책임자 모두 벌금 700만~1000만 원을 받는 데 그쳤다. 2019년 9개월간 4명의 노동자가 숨진 HD현대중공업에선 사업부 대표 3명이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받았다가 이마저 “형이 무겁다”고 항소했으나 기각당했다. 대중의 관심이 시들대로 시든 지난 2월에 있었던 일이다. 이 또한 산재공화국을 떠받치는 숱한 사건 중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10명의 사상자를 낸 2022년 5월 에쓰오일 폭발 사고는 중대재해법을 빠져나간 채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대기업들이 쾌재를 불렀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업안전중점검찰청을 둔 울산에서조차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는 노동계의 자조 섞인 한숨이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기업이 노동 현장의 재해를 두려워하겠나.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노동자는 대부분 온갖 통계에 묻혀 기억에서 멀어진다. 이러한 숫자들은 때로 우리를 현상에 무감각하게 만든다. 재해와 죽음에 둔감한 사회. 영화 미키17은 기실 인간의 존엄성이 죽어가는 현실을 겨냥하듯 반복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2025-03-2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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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해태껌 롯데껌 논쟁을 끝낼 때
“우리는 해태껌 이런 건 취급 안하지예. 롯데 이런 것만 딱 갖다 놓지.”
영호남 지역 갈등은 ‘껌’에서도 드러난다. 부산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 따라 영남 지역은 롯데껌을, 호남 지역은 광주를 연고로 하는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의 전신)를 따라 해태껌을 주로 찾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호남에서 롯데껌을 찾는다거나 영남에서 해태껌을 찾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임을 장난처럼 보여주는 장면도 많았다. 정치적으로도 영남은 보수색이 강했고, 호남은 진보색이 강했기에 둘 사이 간극은 메우기가 쉽지 않았다.
단순히 지역 갈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말인 줄 알았는데 수도권에서는 영남과 호남을 진짜 ‘껌’으로 알았나 보다. 수년 전부터 호남 지역은 농협중앙회 본사를 호남으로 이전하기 위해 공을 들였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 반대 논리가 그대로 농협 본사 이전 논의에도 거의 ‘복붙’(복사해 붙여넣기)처럼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일단 노조들은 산업은행과 농협중앙회의 본사 이전이 시행되면 노동자의 거주지 이전이 불가피한데 이는 노동자의 삶과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대한다. 산업은행과 농협중앙회의 본사 이전이 졸속 행정이자 정치적인 표 계산 때문으로 실적 악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결국 이러한 복붙 반대 논리에 정치권과 정부는 지역민의 염원을 씹던 껌 뱉듯이 무시하고 있다.
영호남을 비롯한 지역이 공공기관 이전을 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산업은행 이전과 농협중앙회 이전은 단순한 위치 이동이 아니다. 국가 균형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정책적 움직임이다. 특히 수도권에 인구와 돈이 몰리는 상황에서 새로운 경제 활성화를 위한 트리거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최근 박형준 부산시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충돌한 영상이 화제였다. 박 시장이 이 대표와의 비공개 회담 후 굳은 표정으로 취재진과 만나 “산업은행 이전이 단순히 하루이틀에 걸친 사안이 아니고 2년여 동안 부산 시민들이 요청하고 심지어 부산 민주당도 함께 요청한 사안인데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것은 대단히 안타깝고 실망스럽다”고 말한 영상이다. 비슷한 영상 클립이 많았는데 대부분 수만 건의 클릭을 기록했다. 이는 산업은행 이전에 대한 지역의 관심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아마 전남도지사나 전북도지사가 같은 식으로 반응을 했다 해도 이 같은 화제성은 따놓은 당상일 것이다.
같은 논리로 반대라니 차라리 잘됐다. 그동안 껌으로도 싸웠던 지역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산업은행, 농협중앙회의 본사 이전은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명분도 같고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는 기대 효과도 같다. 이를 계기로 부산과 호남 지역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수도권의 논리에 대응할 수도 있겠다. 부산과 호남이 함께 벌이는 이색 이벤트도 좋을 것 같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을 넘어 강력한 우군을 만난 느낌이다. 에어부산의 분리 매각도 어려워 보이고,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의 통과도 요원하지만 이번에는 꼭 보여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롯데껌이든 해태껌이든 껌 좀 씹던 언니야 오빠야들이라는 것을.
2025-03-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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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다시 원점이라니… 국민들이 견딘 1년은 무엇인가
응급실행은 남의 일이라고 치부했는데, 그건 자만이었다. 기어이 일은 터졌다.
긴 연휴 마지막날 아이의 상태가 평소와 좀 달랐다. 학교 가기 싫어 꾀병을 부리나 했다. 퇴근길에 30분 이상 떨어진 한 아동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병원으로 황급히 발길을 돌렸다. 의사는 “100% 충수염 증세”라며 당장 큰 병원으로 갈 것을 권유했다. 의사는 의료 대란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평소 같으면 큰 일도 아닌데…. 우선 응급실 전화부터 돌려보세요. 헛걸음하면 큰일이니까요.”
살면서 가장 많은 식은땀을 흘린 시간이었다. 흔한 수술이라고는 하지만, 아이 수술을 맡을 의사가 없었다. 심지어 어린이 전문 병원인데도 수술은 불가능했다. 이리저리 닥치는 대로 전화를 돌리던 와중에 한 병원 응급실로부터 “일단 데려와보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모처럼 만난 지인들에게 이를 무용담처럼 말하자 다들 한마디씩 거들며 각자 경험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바로 곁에서 죽음을 겪어냈다는 지인 앞에서 난 그저 행운아였다. 오고 가는 위로 속에 마무리는 한결 같았다. “견뎌내야지 별 수 있나. 아프지 말자.”
그렇다. 지난 1년여 간 국민들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불편함과 치료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국민이 치른 희생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출신인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2~7월 의료공백 기간 ‘초과 사망자’ 수는 3136명이다. 고령 환자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지만, 의료 대란이 없었다면 잃지 않았을 목숨들이다. 예산은 또 어떤가.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해 정부가 쏟아부은 예산만 3조 3000억 원에 달한다.
국민들이 이처럼 고통과 희생을 감내한 것은 의사 추가 양성의 중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의대 증원은 꼭 필요하다고 지지 의사를 밝힌 시민단체들도 상당수다. 필수·지역의료가 위기를 맞은 지역에선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도입과 관련한 법안 통과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이 와중에 지난해 말 전국 의과대학에서 수시 합격자가 배출됐다. 1509명이 늘어난 4567명이 의대 신입생에 이름을 올렸다. 1998년 제주대 의대 신설 이후 27년 만에 증원이 실현되면서 의료 전반에 대한 개혁 논의의 길도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7일 정부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등의 건의안을 수용해 의대생 학업 복귀를 전제로 내년도 의과대학 모집 인원을 증원 전인 3058명으로 되돌리기로 결정하면서 또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의대생들은 증원이 ‘완전 백지화’가 아니라는 점을 들며 여전히 학교 밖에 머물러 있다. 지역의료 강화,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을 포함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철회는 물론 향후 의대 정원 축소까지 요구하는 실정이다. 국민들의 반발은 당연지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입장문을 통해 국민과 환자를 기만하는 정부의 행태가 개탄스럽다고 일갈했다. 보건의료노조 역시 “2026년 의대 정원이 동결된다면 앞으로 어떤 의료 개혁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1509명 의대 증원은 국민들이 견딘 지난 1년에 대한 보상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전부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국민을 최우선에 둬야 했다. 국민은 여전히 빠져 있는 정부 대응, 국민만 고통을 짊어지게 됐다.
2025-03-1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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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극우의 무거움
참 무거워 보인다. 자신만의 신념과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 족쇄에 채여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마저 든다. 탄핵 정국에서 극우 세력이 보인 태도가 그렇다. ‘계엄 정당성’ ‘탄핵 반대’ 라는 주장에 매몰돼 다양한 관점이나 의견을 수용해야 하는 여유를 잃어버렸다.
극우 세력의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테레자가 떠오른다. 쿤데라는 이 작품에서 “가벼운 삶과 무거운 삶 중 무엇이 더 나은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무거움’ 은 고집스럽게 신념과 규범을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특정한 가치관을 절대적으로 고수하다 보면 결국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여지가 사라진다는 것이 쿤데라의 메시지다.
소설 속 테레자는 사랑을 삶의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책임으로 받아들인다. 그녀는 이를 숙명으로 여기며, 관계 속에서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짊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랑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결국 자유를 찾지 못하고, 삶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오늘날 한국의 극우 세력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절대적 정당성으로 간주하며, 특히 비상 계엄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탄핵 반대를 외친다. 그들의 태도는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시지푸스를 연상시킨다. 시지푸스가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바위를 끝없이 밀어 올리는 것처럼, 극우 세력은 편협한 사고라는 무거운 바위를 짊어지고 간다.
신념이 지나치게 무거우면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서 테레자는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한국의 극우들은 사회적 폭력으로 그 무게를 표출한다. 폭동과 난동을 일으키며, 심지어 다른 사회 구성원을 향한 가학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쌓아온 헌법과 사법 체계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역사에서 이러한 극단적 사고가 파시즘과 나치즘 같은 광란의 시대를 불러온다는 점은 이미 증명됐다. 이런 경직된 사고방식이 집단적으로 확산되면 개인의 신념이 절대적 진리가 되고, 이는 강경한 이념 대립으로 이어져 전체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문제는 극우 세력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사고의 경직성은 개인을 무너뜨린다. 흔히 말하는 ‘꼰대’ 와 ‘갑질’ 같은 용어도 여기서 비롯됐다. 자신의 가치관만을 기준으로 삼아 타인을 평가하고 억압하는 태도가 이러한 문제를 낳는다. 이러한 경직성이 심화되면 직장 내 폭력, 권위주의적 조직 문화, 수직적 구조 강화 등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극우 세력이나 꼰대들이 스스로 잘못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오로지 자신의 신념에 짓눌려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지속되면 결국 피해자들만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집단은 사회와 조직, 그리고 개인에게 짐이 될 뿐이다.
좀 가벼워지자. 가벼워지면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을 볼 수 있다. 가벼움은 절대성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이다. 지나친 신념의 무게는 극단주의를 낳지만,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다양한 시각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신념의 무게를 내려놓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2025-03-0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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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통영-여수 '최초 통제영' 논쟁 이참에 마침표 찍자
경남 남해안의 항구 도시 통영은 조선시대 경상·전라·충청 지역 수군을 통치한 삼도수군통제영(통제영)이 있던 곳이다. 지금으로 치면 대한민국 해군본부다. 통영이란 지명도 통제영에서 유래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선조 25년) 한산대첩을 통해 제해권을 장악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이듬해 해로 방어 최대 요충지인 통영 한산도로 군영을 옮겼다. 남해안 서쪽에 치우쳐 방어에 취약한 전라좌수영의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후 초대 통제사로 제수돼 3년 8개월간 한산도에 주둔하며 조선 수군을 이끌었다. 학계는 이를 근거로 한산 진영을 최초 통제영으로 인정해 왔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역시 ‘통제영이란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도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가 있는 본진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진영이 최초’라고 기술해 놨다.
그런데 1983년 여수대학교 문영구 전 교수의 ‘임진왜란 중 여수 전라좌수영은 통제영’ 논문 발표 이후 전남에서 ‘최초 통제영은 여수’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초 통제영=통영 한산도’가 이미 정설로 굳어진 탓에 기대만큼의 반향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2021년 여수를 중심으로 역사바로잡기 추진위원회가 꾸려지고 이듬해 범시민연대까지 출범하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역사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각종 세미나와 지방의회 공론화 시도가 잇따랐고, 작년 10월과 11월 전남도의회와 여수시의회가 ‘빼앗긴 최초 삼도수군통제영 여수 역사바로잡기 촉구 결의안’을 연거푸 채택하면서 제대로 불을 댕겼다.
이들은 △임진왜란 무렵에는 통제영이란 용어가 없어 ‘본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 △제1대 이순신부터 제4대 이시언 통제사까지 전라좌수사로 하여금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도록 했다는 사실 △한산도는 최소한의 필수적인 기능을 지닌 임시 전초 전진기지로 병참, 군수물을 거의 모두 본도인 전라도에서 충당했다는 주장 등을 근거로 최초 삼도수군통제영은 전라좌수영 본영인 여수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사)여수종고회, (사)여수여해재단, (사)여수진남거북선축제보존회 등 시민단체가 가세해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결국 ‘대응할 가치가 없다’며 외면하던 경남 지역도 맞대응에 나섰다. 통영시의회는 지난 14일 ‘전남과 여수시의 최초 삼도수군통제영 침탈행위 및 역사 왜곡 중단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고 “역사적 기록과 고증이 명백함에도 왜곡된 주장을 펼치는 전남도와 여수시는 통영시민에게 공식 사과하고 국가유산청과 경남도는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전남도 발끈했다. 여수종고회는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적반하장식 역사 왜곡을 중단하라”고 맞받았다. 여수시의회도 재반박 결의안 채택을 예고했다.
역사는 관점에 따라 이견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지금처럼 여론전을 앞세우면 이성적 사고보다 감성적 욕망에 매몰될 공산이 크다. 이대로는 해묵은 지역감정까지 자극해 영호남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렇다고 어영부영 넘어가면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학술대회든 끝장토론이든 양측이 수긍할 수단과 방법을 통해 더는 재론의 여지가 없도록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2025-02-2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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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엄청난 세대'가 기다리고 있다
아들과의 전쟁은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시작됐다. 초등학생 아들은 눈물을 보이며, 친구들과 연락이 안 돼 함께 놀 수 없다며 폰을 원했고 학원을 빠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폰을 사줬다. 하지만 아들은 사용 시간 제한을 푸는 방법을 알아내 밤새도록 앱과 게임에 몰두했다. 낮에도 친구들과 노는 게 아니라 놀이터 구석에 죽치고 앉아 게임을 하느라 학원은커녕 전화도 일절 받지 않았다.
나중엔 데이터도 꺼둬 위치 추적도 되지 않았다. ‘현질’ 할 돈이 모자란다며 투덜대는 아들 생각에, 청소년 사이버 도박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린다. ‘요즘 아들’을 둔 ‘보통 엄마’ 이야기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만 10~19세 청소년 10명 중 4명(40.1%)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에 속했다.
〈불안세대〉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는 2010년대 초반부터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가 시작됐고 이 때부터 청소년들의 정신 질환 비율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사회심리학자인 저자가 든 네 가지 해악은 사회적 박탈, 수면 박탈, 주의 분산과 중독인데, 이는 그로부터 불과 몇 년 전인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최초의 아이폰을 소개하던 당시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던 것들이었다. 저자는 전두 피질(자기 통제와 만족 지연, 유혹에 대한 저항에 필수적 역할을 담당)이 아직 발달하지 않아 의지력이 약하고, 또래 압력에 쉽게 휩쓸리며, 조종에 취약한 사춘기 전후 아동들에게 스마트폰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1996년 이후 태어난 세대가 불안세대가 된 데에는 현실 세계에서는 과잉보호를 하고, 온라인에서는 오히려 과소보호를 하는 부모의 뒤바뀐 태도 탓도 있다고 했다. 저자는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되돌리기 위해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고, 16세 이전까지는 소셜 미디어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쥐는 ‘포노 사피엔스’가 대세가 된 세상에서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사실 규제와 제재만이 능사인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10년 뒤, 아니면 더 가까운 5년 뒤 우리는 이 글의 스마트폰 자리에 인공지능(AI)를 대신 써넣어야 할지도 모른다.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유발 하라리 교수는 최근 저서 〈넥서스〉에서 “AI는 우리 종의 역사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진화 경로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미래생명연구소 맥스 테그마크 소장 또한 “가장 큰 문제는 많은 권력자가 우리가 AGI(모든 분야에서 인간과 동등하거나 더 뛰어난 AI)를 어떻게 제어할지 알아내는 것보다 더 빨리 AGI가 구축될 것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라며 “최악의 경우 미국이나 중국 기업이 통제권을 잃게 되고, 그 이후에는 지구가 기계에 의해 운영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AI 발전에 대응해 ‘인간의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AI 행동 정상회의’가 올해 3회째를 맞았지만 AI 패권 경쟁을 위한 각축장이 되고 있을 뿐 AI 안전 장치를 마련했다는 희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2025-02-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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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그래도 희망은 있다
돌이켜보면, 경제부 기업 담당을 맡은 이래 좋은 소식을 쓴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지난 한 해동안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현안 가운데 해결된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통과될 것 같았던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은 햇수로 두 해를 넘겼다. 2023년 엑스포 부산 유치가 실패로 끝나면서 상심한 지역 민심을 달래기 위해 마련됐지만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부 입장을 고려해 차 떼고 포 뗀 특별법을 재차 마련했지만, 이번 국회에서도 관심이 없다. 이미 행정 절차까지 마무리된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은 어떠한가. 산업은행법에서 ‘부산’ 단 두 자를 넣지 못해 2년 가까운 시간을 흘려보냈다. 국회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대의명분에 충실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에어부산 분리매각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2020년 한국 항공 경쟁력 강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추진 이래 에어부산의 운명은 가시밭길이었다. 이들 자회사의 통합LCC 본사를 지역에 두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휴지 조각이 됐다. 지역과 함께 성장한 지역 거점 항공사를 지키기 위해 시민 사회가 분리매각을 외쳤건만 돌아온 것은 외면이었다.
이에 지역 경제는 더욱 얼어붙었다. 수년째 고환율·고금리·고물가 등 3고가 이어진 데다 지난해 말 12·3 비상계엄에 따른 윤석열 리스크까지 더해지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에 내몰렸다. 이 와중에 트럼프 2기가 출범하고 관세 전쟁이 확전되면서 위기는 더욱 커졌다. 기사를 준비할 때마다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지역 경제, 나아가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들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웅숭깊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지역 경제를 이끄는 향토 기업들이 대내외 리스크를 이겨내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대표 기업 HJ중공업은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HJ중공업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93억 원으로, 전년도 1088억 원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당기순이익 역시 전년도 1143억 원 적자에서 87억 원 흑자 전환한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올해도 최첨단 LNG 벙커링선 수주를 알리며 순항을 예고한다. MRO(유지·보수·운영) 사업 역량을 토대로 미국 진출도 꾀하면서 실적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초 대규모 무상증자를 통해 주주들에게 이익을 환원한 SNT모티브는 지난달 21~2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총기·사냥·아웃도어 박람회 ‘SHOT Show 2025’에서 미국 총기시장 진출을 예고해 현지의 큰 관심을 모았다. SNT모티브는 지난해 미국 현지 법인 ‘SNT디펜스’를 설립, 미국 네바다주 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현지 영업을 준비 중이다.
부산에 본사를 둔 완성차 업체 르노코리아는 국내 업계 최초로 단일 생산 라인에서 내연기관과 전기차를 동시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완비하고 이번주 본격적인 차량 생산에 들어간다. 부산에코클러스터 설립 등 미래차 전환을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가면서 지역 경제계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전한다.
선보공업, 화승, 동원개발, 동일, 태웅 등 부산형 착한 결제 캠페인에 동참하면서 지역 경제 살리기에 힘을 보태는 향토 기업들도 줄을 잇는다. 부산 기업의 구심점인 부산상의는 정치계, 시민사회와 함께 산업은행법 개정을 촉구하는 국회 청원에 돌입했다. 이들의 노력이 올해는 새로운 결실로 이어졌으면 한다. 시민들에게 경제 낭보를 전할 날, 간절히 바라본다.
2025-02-1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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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보상 절차 늦어지는 가덕신공항
정부가 지난해 가덕신공항 건설의 보상비로 편성한 예산 3224억 원이 전액 ‘이월’됐다. 토지보상을 위한 감정평가 등의 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탓이다. 보상 업무를 위탁받은 부산시에 따르면 감정평가 등의 절차를 거쳐 실제 보상이 완료되는 시점은 올해 연말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보상을 둘러싼 갈등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가덕신공항 건설을 위한 보상업무는 부산시와 경남도가 대행한다. 정부는 2023년 6월 부산시, 경남도와 가덕신공항 보상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보상업무는 지역 사정을 잘 아는 관할 지자체인 부산시와 경남도에서 위탁 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위탁기관인 국토부가 필요 예산을 확보하고, 수탁기관인 부산시와 경남도는 관할 행정구역 내 토지와 어업보상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국토부는 “부산시·경남도와 협약 체결을 통해 신속한 사업 추진을 위한 보상업무체계가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신속하고 원활한 보상 추진을 위해 우리 시에서 직접 보상을 수행하기로 국토부와 협약을 체결했다”면서 “공항 건설 예정지 주민들의 생활 안정과 재정착 지원 방안도 충실히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조기 보상’을 위해 가덕신공한건설특별법을 개정하는 등 입법 지원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가덕신공항 보상은 ‘조기 완료’가 아닌 ‘지연’ 가능성이 높다. 부산시 등에 따르면 토지보상을 위한 현장 조사는 지난해까지 종료되지 못했다. 보상액 산정을 위한 감정평가 역시 아직 진행 중인 상태다. 부산시 등은 감정평가를 올해 상반기 중으로 완료할 계획이지만 평가 결과를 주민들이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결국 토지 소유자의 이의 제기에 따른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중토위) 수용재결 등 절차가 뒤따를 전망이다. 중토위의 수용재결 결정과 재결 보상금 지급은 빨라야 올해 하반기에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덕신공항 건설과 관련된 주민 갈등은 ‘이주 대책’에서도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주민 이주 대책 용역 최종보고서가 조만간 제출될 예정이다. 사업시행자인 가덕신공항건설공단은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주민들과 이주대책 협상에 나선다. 그러나 대규모 토목 사업에서 반복적으로 이주대책 갈등이 불거지고 있어 가덕신공항 건설 사업에서도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토지 보상과 관련, 주민들은 이주단지 조성 및 지구단위계획 변경, 이주정착비·생활안정자금 지급, 마을발전기금 지급, 주차장 부지 무상 제공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항 내 직업 알선, 지역 주민 우선 채용 등도 요구하고 있다. 어업보상에서도 갈등 요소가 많다. 어업인들은 어업허가당 100평의 근린생활시설 지원 등의 생계대책과 함께 어촌뉴딜 300사업 미운영에 따른 특별위로금(100억 원), 숭어들망 허가어업 소멸보상 특별위로금(150억 원)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시는 당초 2024년 연말 가덕신공항 건설공사 착공을 예고했다. 60개월로 예정된 건설 공사를 마치면 2029년 개항이 가능하다는 계산이었다. 토지보상 문제 등으로 착공이 2025년 연말로 지연되면 공사가 예정대로 60개월 만에 끝난다고 해도 2030년 연말에나 개항이 가능하다. 그러나 첫 단계부터 갈등 요인이 쌓여가는 가덕신공항 건설이 60개월 만에 끝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항공업계의 분석이다.
2025-02-0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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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울산특수교육원 건립을 허하라
대도시에서 사회적 약자와의 동행은 그럴싸한 구호에 불과한 걸까. 곡절 많은 울산특수교육원 건립 사업을 보면 이런 회의감이 든다.
고 노옥희 울산교육감이 2022년 재선과 함께 핵심 공약으로 추진했으니 사업이 공전된 게 올해로 4년째다. 장애 학생들이 보다 전문화된 특수교육을 받으며 마음껏 꿈을 펼치길 바라서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노 교육감은 특수교육원 자리로 옛 효문분교를 점찍었으나, 접근성 문제로 포기했다. 번화가가 밀집한 남구에선 가용 부지를 찾기 힘들었다. 그해 12월 노 교육감이 갑작스레 쓰러졌다. 여느 사업처럼 특수교육원 건립에 대한 관심도 시나브로 사그라졌다.
2023년 남편 천창수 교육감이 바통을 이어받아 꺼져가던 특수교육원 건립 사업에 불씨를 살렸다. 북구 신도시에 있는 제2고헌초등학교(가칭) 부지에 특수교육원을 짓기로 했다. 교육부에서 수요 부족으로 학교 신설 불가 판정이 난 곳이었다.
반대 여론이 심했다. 인근 주민들은 이곳에 원래 계획대로 학교를 건립해 달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심지어 특수교육원이 들어서면 주변 집값을 떨어트린다는 가짜 뉴스가 나돌았다. 2017년 부산대 교육발전연구소가 내놓은 연구 결과에는 오히려 특수학교 인접 지역에서 집값이 오른 경우가 많았다. 시교육청은 수영장과 도서관을 같이 지어주겠다며 여러 차례 설득했으나 끝내 주민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다시, 원점이었다.
특수교육시설은 언제나 도심 외곽에만 있어야 할까. 의문이 맴돌았다. 수영장과 도서관을 앞세워 주민 허락을 구하고 특수교육원을 끼워 넣는 본말이 전도된 현실이 안타까웠다. 제2고헌초등학교 부지는 잡풀과 쓰레기, 공사자재가 뒤섞인 빈 땅으로 남아 장애인에게 냉혹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지난해 7월 울산 중구의 한 오래된 사찰에서 모처럼 희소식이 들려왔다. 대한불교조계종 백양사가 천 교육감 요청에 흔쾌히 사찰 부지를 팔기로 했다. 주지 묵암 스님이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교육 취지에 깊이 공감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설명회가 8번이나 열리는 사이 400억 원대 특수교육원 건립 사업은 교육부 심사를 넘지 못하고 있다.
특수교육원은 과연 기피시설일까. 2023년 강원도에서는 3개 자치단체가 앞다퉈 특수교육원 유치에 나서 울산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정작 우리가 기피할 대상은 장애인을 약자로 내모는 뿌리 깊은 편견과 숨겨진 혐오다.
특수교육원 건립이 표류하는 동안 울산 특수교육 대상자는 2022년 2819명에서 2024년 3055명까지 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애학생의 미진학·미취업률(2022년 기준)은 40%를 웃돈다. 현장에선 장애학생들이 재능을 발산하도록 선진 특수교육을 실현할 특수교육원 건립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인기 드라마 주인공 우영우가 아니면 어떤가. 장애학생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무엇보다 특수교육원은 장애인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다. 비장애 학생들의 장애 이해 체험, 통합교육 등을 통한 인식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제 논리나 편견에 휘둘려 미래세대가 어울려 살아갈 기회를 빼앗아선 안 된다. 공감과 화해가 무너진 사회는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다.
2025-01-2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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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벌거벗은 임금님과 광장의 깃발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0년간 일하다가 30대 서기관으로 퇴직한 노한동 씨는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에서 공직사회의 ‘영리한 무능’을 폭로한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보다 윗사람의 심기를 맞추는 데” 집중된 시스템 속에서 관료는 “똑똑할수록 조직 우선주의와 상명하복이 가장 유리한 생존 기술임을 더욱 치열하게 터득한다”는 비판이다.
공직사회뿐이겠는가. 관료주의는 현대사회의 모든 조직을 움직이는 핵심 원리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펴낸 국제성인역량조사 보고서를 보면 한국 노동자는 10년 간격으로 진행된 두 차례 조사에서 일터에서 인지적 역량이 오히려 퇴화했다. 연구진은 원인을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 찾는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학력은 고용과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만, 실질적인 역량을 평가하는 시스템은 취약하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 결과 조직의 밑바닥에 냉소와 체념이 쌓인다면 꼭대기에는 작지 않은 확률로 벌거벗은 임금님이 출현한다. 그는 조직과 윗사람의 논리에 영혼을 동기화한 보상으로 일단 권력을 쥐고 나면 권력 연장이나 더 큰 권력을 위해 내달린다. 쓴소리는 배척하고 주위에는 아첨꾼만 남는다. 잘못된 선택으로 조금씩 궤도를 벗어나도 사람들은 입을 다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와 조직이 모두 벼랑 끝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
상명하복만이 지상명제일 때 리더는 앙상한 언어로 패거리를 나누고 절대복종을 요구한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12·12 군사반란의 주역을 맡은 전두광 캐릭터는 이런 인물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주기를 바란다”고 속삭이고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고 윽박지르는 그를 두고 변영주 감독은 “들은 건 많은데 읽은 건 없는 인물”이라고 요약했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 “패악질을 일삼은 만국의 원흉”을 척결하겠다는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의 거친 언어와 국회에 진입한 계엄군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다시 ‘서울의 봄’을 떠올렸다. 비상계엄을 사전 모의한 의혹을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육사 출신들로 사조직을 꾸리면서 포섭 대상으로 내세운 “시키면 다 하고, 힘 좀 쓰는 애들”에서는 12·12 군사반란의 주역인 하나회의 절대복종 서약이 어른거린다.
성인역량의 국제 비교 조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도한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조사의 의의에 대해 “인적 자본의 주요 지표로, 경제성장, 소득, 사회적 안녕, 불평등, 개인적 행복 등을 예측한다”고 설명한다. 낡고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개개인의 역량을 갉아먹고 있다면, 경제성장과 사회적 안녕을 방해하고 불평등은 심화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국가의 발전과 개인의 행복 또한 요원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무능한 행정과 패거리 정치와 성찰 없는 지도자는 개인의 일상부터 나라의 미래까지 촘촘히 좀먹는다. 해를 넘긴 탄핵 정국은 이 교훈을 가장 압축적이고 극단적으로 보여 준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니 이 혼란의 마지막 장은 한 사람의 퇴장이나 권력의 교체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더 새로운 언어, 더 다양한 정체성, 더 많은 민주주의로, 각각의 구호로 공존하는 광장의 깃발들이 공적이고 사적인 일터로 이어져야 한다.
2025-01-1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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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새로 선출되는 '스포츠 권력'에 주목하는 이유
노조에 몸담은 지난 4년 동안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화두는 ‘리더의 자질과 품격’이었다. 수준 이하의 리더들 때문에 조직이 망가지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울분을 토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질 미달의 리더들이 끼치는 해악은 단순히 조직이나 구성원들의 품격 저하에 국한되지 않는다.
12·3 계엄 사태를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야기한 해악은 단순히 대한민국이나 국민의 품격 손상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피 흘려가며 지켜왔던 민주주의 후퇴는 물론, 법원의 체포영장에 불응하는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나쁜 선례마저 남겼다
대통령의 해악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치명적이다. 환차손을 입은 기업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고, 국가신인도 하락과 외국인 투자의 유출 현상은 우리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은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에게 마치 ‘사형선고’로 다가오고 있다.
사회적 혼란은 어떠한가. 계엄령 선포로 인한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사회 전반에 불안감이 팽배해져 있다. 특히 탄핵 국면에서 초법적인 대통령의 행태에 사법 체계는 물론이고 국가 질서마저 무너질 위기다. 국정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에 이어 국무총리마저 탄핵되면서 국정은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체제’라는 기형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제주항공 참사로 179명의 안타까운 희생이 발생했을 때 국민들은 비통함과 함께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다. 국가 비상사태에서의 대형 참사는 국민을 패닉 상태로 몰고 갔다. 자질 미달의 대통령이 벌인 해악으로 국민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해악은 새롭게 선출되는 ‘스포츠 권력’에 주목하게 한다. 새해 국내 스포츠계에서는 2개의 ‘굵직한 선거’가 예정돼 있다. 당장 내일(8일) 대한체육회 가맹 경기단체 중 최대 예산 규모(2000억 원)를 자랑하는 대한축구협회의 수장을 뽑는 선거가 치러진다. 오는 14일에는 ‘스포츠 대통령’이라 불리는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있다.
이번 선거에는 공통점이 있다. 현 수장들이 ‘권력’을 이어가고자 다선 도전에 나선다는 점과 이들 모두 체육계 등으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아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직원 채용 비리 및 금품 수수, 진천선수촌 시설 관리업체 입찰 비리 의혹 등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조치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배경과 협회 사유화 등 논란으로 퇴진 압력을 받아 왔다. 문체부는 정 회장에 대해 자격정지 이상의 징계를 요구했다.
이 회장은 3선, 정 회장은 4선 도전이다. 이들의 출마를 두고 대통령 탄핵 국면의 어수선한 틈을 이용해 자신들의 권력을 이어갈 계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정 기간 버티면 여론도 바뀔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오판이다. 자질 부족 리더의 해악이 얼마나 큰 피해와 고통을 주는지 국민들은 지금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이들 선거는 체육인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 투표로 진행된다. 리더의 해악은 그를 리더로 만드는 구성원들에게도 분명 책임이 있다.
2025-01-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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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2024년 12월, 초고령사회와 대한민국 정치
2024년 12월 23일. 대한민국엔 이날 또 하나의 불편한 꼬리표가 붙었다. 전체 인구 중 노인 비율이 20%를 넘어서며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가 됐다. 1995년 당시 인구 추계에서는 2030년 이후로, 2015년 추계까지만 해도 20% 돌파 시점은 2026년으로 예상됐다. 초고령 국가 일본조차 고령사회(노인 인구 비율 14%)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10년이 걸렸는데, 우리는 7년 4개월에 불과했다.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라는 말은 매년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통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불편한 현실을 여럿 마주한다. 우선 부산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2020년 초고령사회에 가장 먼저 진입한 대도시 부산의 노인 인구는 4년도 안 돼 23.87%로 크게 높아졌다. 전국 다른 대도시를 압도하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농촌 지역이 많은 경북(26.00%), 강원(25.33%), 전북(25.23%), 충남(22.23%)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하다. 부산을 수도권과 견줘 보면, 경기(16.55%)와 서울(19.41%), 인천(17.63%)과 간극이 꽤 넓다. 부산은 대학과 일자리 등을 위해 수도권으로 떠나는 청년이 늘며 고령화 속도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고령화와 저출산, 수도권 집중과 지역 균형 발전 문제는 미래 세대의 존립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풀어나가야 할 중차대한 시대적 과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서울과 수도권의 기득권을 서서히 놓게 만들고, 이들 문제의 근원에 자리한 복잡하게 헝클어진 원인의 실타래를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우리의 정치는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정국은 양극단으로 치닫는 정쟁으로 하루도 조용할 일이 없고, 대통령의 지극히 상식적이지 못한 계엄령 발동, 금융 위기 시기에 버금가는 고환율, 주식과 금융, 부동산 시장의 불안, 이에 따라 갈수록 깊어지는 자영업자들과 기업들의 시름…. 전 세계는 12월 한 달 동안 ‘가장 빨리 늙어가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정치권의 민망하고 추한 민낯을 지켜봤다. 이렇게 실추된 이미지와 국가 신인도를 회복하는 데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지 모른다.
여기저기 국민들의 절규가 끊이지 않지만 여야는 ‘네탓’ 공방만 벌인다. “국민과 민생을 위한 것이다” “국민을 위해 나아가겠다”는 거창한 정치적 수사 뒤에는 정권과 자리만 찾고 지키겠다는 흑심만 가득하다. 정치인을 보며 최선이나 차선을 고르는 행복한 고민을 했으면 하지만, 최악이 아닌 차악을 골라야 하는 우리 정치의 현실이 암울하고 서글프다.
국민들의 정치 혐오와 무관심이 커질수록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이념에 치우친 소수가 특정 이익 집단을 대변한다. 이들은 또 이와 궤를 함께하는 정치인들과 국민들을 이념 갈등으로 내몰아 대중의 보편적 이익을 침해하고 사회 혼란을 가중시킨다. 12월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을 통해 많은 국민들이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세밑이 됐으면 한다. 짧은 시간에 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자정 기능을 상실한 대한민국의 정치는 결국 주권자인 국민들이 서서히 바꿔 나가야 한다.
2024-12-3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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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법 기술자'들… 대한민국 리더들의 민낯
그럴 줄 알았다. 탄핵 열풍이 전국을 휩쓸던 상황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탄핵을 순순히 수용할 리 없다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윤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안 가결 직후 지루한 법정 다툼을 발표했다.
그는 2차 탄핵 표결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은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통치 행위”라며 “탄핵심판이든 수사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자신감과는 다르게, 시작부터 좀 수상하다. 공수본의 출석요구서도,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의결서도 윤 대통령 측은 아예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법적 절차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재판과 수사를 질질 끌려는 속내가 보인다.
윤 대통령 정도면 이러한 대응이 가능할 법 싶다. 사실, 윤 대통령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검사 출신이다. 평생을 ‘검사밥’만 먹고 살았으니 법의 한계와 허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법을 기술적으로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건을 끌고 가는 데 능숙하다. 소위 ‘법 기술자’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양심과 도덕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법을 어기지 않았잖아?” 한마디면 충분하다.
법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효율적인 도구 중 하나이다. 문제는 법이 항상 정의롭고 공정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200년 전 임마누엘 칸트는 “법의 정의를 찾는 건 아직도 미완성”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200년이나 지난 지금 별로 나아진 바는 없다. 이러한 법의 한계는 ‘법 기술자’들에게는 기회가 된다. 여기서 대한민국 리더들의 ‘위선’이 드러난다.
며칠 전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대법원 최종 선고를 받자 국민들은 ‘위선’이라는 불쾌함에 맞닥뜨렸다.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 ‘청와대 감찰 무마’ 등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1심과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조 전 대표의 재판은 5년이나 걸렸다. 그가 법을 잘 아는 법학자이기에 가능했다. 재판이 지연되는 동안 그는 마치 정권의 피해자처럼 행세했다.
선고 직후 조 전 대표는 “미안하다” 대신 “사법 적용은 아쉽다”며 그다운 말장난을 쳤다. 중산층에게는 ‘공정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입시 비리를 저질러 놓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변호사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줄줄이 걸려 있는 자기 재판을 한없이 지연시키는 데 재주가 넘친다.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재판부에 대해선 기피 신청을 하고 법원이 보낸 선거법 항소심 소송기록접수통지서를 뒤늦게 수령했다. 재판을 질질 끌어서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서둘러 대선을 치르려는 속셈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고는 헌재를 향해 “윤 대통령 파면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라”고 압박하는 일이야말로 이중적 잣대이다.
2024년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대표 리더들의 모습이다. 국민은 2024년 현재를 살아가는데 대통령과 정치인은 여전히 1980~1990년대를 머물러 있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허술한 법을 면피로 삼지 말고 “마음 속에 있는 도덕 재판소”라는 양심 법정에서도 당당함을 유지하는 것이 리더의 품격이다.
2024-12-2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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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지방 자치사'에 오점 남긴 반쪽 인사권 독립
“통영시의회 의장은 배도수를 지방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관할 수사기관에 수사의뢰하시기 바랍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의 단초가 된 ‘12·3 비상계엄’ 선포 일주일 전, 행정안전부가 공문을 통해 경남 통영시에 요구한 내용이다. 대통령 탄핵 사태가 대한민국 헌정사의 오점이라면 이는 지방 자치사에 기록될 오점이다.
시작은 넉 달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영시는 7월 9·10일 자 인사에서 4급 이하 공무원 261명에 대한 승진·전보를 단행했다. 여기엔 시의회 사무국 소속 5급 1명, 6급 2명, 7명 1명에 대한 집행부 파견근무도 포함됐다. 집행부 자원과 맞교환하는 ‘상호 파견’ 형태로 기간은 1년이다.
그런데 이 중 6급 A 씨 등 2명은 집행부 근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방공무원 임용령(제27조의5 제4항)은 ‘인사교류를 하는 경우 본인 동의나 신청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선 행안부 질의를 통해 위법 소지를 인지한 사무국은 인사권자인 배도수 의장에게 ‘불가’ 의견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배 의장은 강행을 요구했고, 담당 팀장과 국장은 위법한 지시를 따를 수 없다며 집행부에 보낼 공문 결재를 거부했다. 그러자 배 의장은 직권으로 A 씨를 포함한 사무국 직원 4명 파견을 통보했다.
행안부는 “배도수 의장은 위법한 사실을 알고도 1인 단독으로 수기 결재하고 강제로 인사교류를 추진해 인사행정 신뢰를 저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용권자라는 직위를 이용해 고의로 인사발령을 하는 등 지방공무원법을 위반하였으므로 관련기관 수사가 필요하다”며 이례적으로 수사 의뢰까지 요구했다. 고의성이 다분한 만큼 형사적 책임도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다.
행안부에 앞서 경남도소청심사위원회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소청심사는 공무원 처분에 대해 부당함을 다투는 절차다. 소청위는 두 달여 심의 끝에 A 씨가 제기한 ‘파견발령 처분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이에 따라 A 씨 파견 명령이 포함된 인사명령은 무효화 됐고, A 씨는 지난달 29일 시의회 사무국으로 복귀했다.
이를 두고 예견된 사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 1월 13일 시행된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에 따라 지방의회 의장은 의회 사무국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전반기 의장을 지낸 김미옥 의원이 이를 근거로 자체 승진 인사를 예고하자 통영시가 발끈했다. 극단으로 치닫던 갈등은 지역구 국회의원 중재로 겨우 일단락됐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인 올해 초 인사를 앞두고 비슷한 사태가 반복되며 통영시와 시의회 관계는 다시 살얼음판으로 변했다. 이 와중에 시장과 관계가 돈독한 배 의원이 후반기 의장에 당선되면서 사달이 났다. 배 의장은 의장단 선거 직후 A 씨 등을 전임 의장 측근이라며 보복 인사를 예고하더니 취임 직후 실행에 옮기는 무리수를 뒀다.
결국 설익은 인사권 독립이 불러온 후유증인 셈이다. 의장이 쥔 인사권은 사실 ‘예산편성권’과 ‘조직구성권’이 없는 반쪽짜리다. 인사권 독립은커녕 상호 감시와 견제조차 불가능한 구조다. 집행부와 의회 간 갈등 여파는 오롯이 시민이 떠안아야 한다. 지방자치 의미와 기능을 살리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보완책 마련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일련의 사태는 두고두고 반복될 수밖에 없다.
2024-12-16 [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