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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해수부 특별법'서 빠진 기능 강화,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담은 특별법이 국회 상임위 소위를 통과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법안심사소위원회는 16일 더불어민주당 김태선 의원이 제출한 법안을 토대로 국민의힘 곽규택·조승환 의원 안을 병합·조정한 대안을 의결했다. 겉으로는 해수부 부산 이전 논의에 속도가 붙은 듯하지만 실상은 껍데기만 남은 ‘반쪽짜리’ 법이 된 꼴이다. 핵심인 해수부 기능 강화 조항이 빠졌기 때문이다. 이전 지원과 행정 편의만 담겼을 뿐, 정작 부산 이전의 본질인 기능 강화는 추후 논의로 미뤄졌다. 이대로라면 보여주기식 이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능 강화 없는 이전이라면 ‘명목상의 이전’에 그칠 것이다.
이번 법안은 이전 기관과 기업 지원, 신규 공무원 지원, 해양특화지구 지정 등 여건 조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해수부 이전의 핵심은 해양행정의 중심 기능을 수도권에서 부산으로 옮기는 일이다. 부산이 요구한 것은 단순한 청사 이전이 아니라, 해양산업·연구·기업의 축을 부산에 모으자는 절박한 요구였다. 국정감사에서 조승환 의원이 “지금이 아니면 조선·해양플랜트 기능을 영원히 못 가져온다”고 지적했지만, 전재수 장관은 “기능 강화 의지는 있으나 안정적 이전이 먼저”라며 답을 피했다. 결국 이번 특별법은 해수부 이전의 본질을 외면한 법안이 됐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해수부 기능 강화와 지원을 동시에 담보할 방안을 즉시 마련해야 한다.
해수부가 세종시로 이전할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청사는 내려왔지만 권한은 서울에 남았고, 공무원들은 매일 출퇴근 버스를 타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그 결과 행정 비효율만 커졌다. 부산 이전 역시 그 전철을 밟을 조짐이 짙다.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로 자리매김하려면 이전과 더불어 기능의 실질적 강화가 뒤따라야 한다. HMM 등 핵심 해운기업도 여전히 서울에 머물고 있다. 해양정책의 컨트롤타워를 자임하는 해수부가 이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이전의 상징성은 공허해진다. ‘이전이 먼저고, 기능은 나중’이라는 말은 부산 시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구태일 뿐이다. HMM조차 내려오지 못한 현실에서 기능 강화 없는 이전은 보여주기식 행정일 뿐이다.
부산은 오랫동안 해양수도를 자처해 왔다. 하지만 현실의 해양 행정은 여전히 서울과 세종에 묶여 있다. 해수부가 진정한 해양수도를 실현하려면 이전의 완성은 기능 강화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특별법은 부산을 이용한 수도권 중심 행정의 들러리에 불과할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해수부 이전 전에 부산 시민 앞에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말만 앞세우지 말고 해수부의 조선·해양플랜트, 해운정책 등 핵심 기능을 언제, 어떻게 부산으로 이전할지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라. 주소만 바꾸고 권한과 기능은 강화하지 않는 용두사미식 이전이라면, 해양수도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2025-10-17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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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용후핵연료 부담금 인상 폐기, 미래 세대에 위험 떠넘겨
원자력 발전은 종종 ‘화장실 없는 호텔’에 비유되곤 한다. 원전은 사고 없이 잘 운영할 경우 상대적으로 깨끗한 환경에서 전력 생산이 가능한 반면 분뇨에 해당하는 사용후핵연료 같은 핵폐기물 처리에는 엄청난 비용이 필요해 이를 외면한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 은유에 가장 들어맞게끔 국내에서는 분뇨가 쏟아지는데도 화장실 마련에 대한 대책은 외면한 상태로 호텔을 운영하는 듯한 방식의 원전 가동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화장실 마련 비용까지 원전 가동 비용으로 산정할 경우 원전의 ‘값싼 에너지’라는 이미지가 훼손될까 두려운 탓인지 관련 공문을 명확한 이유 없이 폐기하는 일까지 있었다.
국회가 입수한 ‘2023년 방사성 폐기물 관리비용 산정안’ 등에 따르면 그해 산업부 등은 원전 폐기물 관련 비용을 계산해 사용후핵연료 관리 부담금을 다발당 3억여 원에서 6억 6000여만 원으로 배 이상 증액했다. 이에 따라 전체 원전 부담금은 연간 8000억 원 수준에서 1조 원대 후반까기 점차 증가할 수 있었다. 원전 발전 단가를 급격히 치솟게 할 수 있는 이 같은 결과를 놓고 산업부와 기재부는 공문도 주고받지 않고 실무 협의로만 법령 고시 등 후속 절차를 중단했다. 두 정부 부처가 당시 고준위특별법안 국회 계류 등을 고려해 정무적 판단으로 부담금 산정 결과를 고시조차 하지 않고 뭉갰다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부담금은 고준위 방폐장이나 중간 시설 건립을 위해 반드시 마련해야 하는 예산이다. 현재 국내 원전의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부지에 그대로 보관돼 있다. 그로 인한 포화율은 대부분 80%를 넘으며 90%를 훌쩍 넘은 발전소까지 있는 형편이다. 5년 정도 지나고 나면 더 이상 보관할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올해 시행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원전 부지에 건식저장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에 필요한 예산 마련을 위한 부담금 산정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그 비용은 미래 세대에 떠넘겨질 수밖에 없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원전 가동에 필히 뒤따르는 난제다. 현재 각 원전 부지에 쌓여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해당 부지 안에 건식저장시설을 마련해 일단 저장해 놓겠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근 지역 주민들로서는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 국내에서 영구처분시설을 만들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 건식저장시설이 영구 방폐장으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 같은 시설을 짓는 데 필요한 예산 마련을 위한 부담금 산정마저 정부 부처들이 멋대로 깔아뭉갰다면 향후 어떤 신뢰를 토대로 주민들을 설득할 터인가. 정부는 지난 고시 철회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조속히 부담금 현실화부터 해야 할 것이다.
2025-10-17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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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산 '글로컬대 원팀' 의기투합 지역 혁신 파장 주목한다
올해 수시모집에서 부산 수험생 중 소위 ‘인(in) 서울’ 지원자는 14.8%에 불과해 최근 5년 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부울경에서 같은 권역에 원서를 낸 비중은 해마다 커져 올해는 45.2%나 차지했다. 입시 정책 변화와 경쟁률 변수도 무시할 수 없으나, 비수도권 대학 경쟁력 강화 정책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대학마저 수도권 쏠림이 심화되면서 ‘지방대는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는 자조가 나온 지 오래다. 대학이 무너지면 청년이 떠나고, 기업은 인력난에 빠지며, 지역사회는 활력을 잃는다. 수험생의 탈지역 추세 반전을 대학 혁신과 지역 사회 성장의 선순환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대학의 경쟁력은 도시 성장의 동의어다. 대학이 살아 움직이면 인재와 유망 기업이 몰리고, 도시에 활력이 넘친다. 이런 점에서 15일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선정된 부산의 5개 대학이 협약식을 갖고 교육 혁신과 지역 상생을 다짐하고 나서 향후 성과가 주목된다. 5년 간 1000억 원씩을 지원받게 된 부산대·부산교대(통합)와 동아대·동서대(연합), 경성대(단독)는 이날 ‘혁신 모델 지역 확산’ ‘정주 인재 양성’ ‘지산학 협력’ ‘글로벌 프로젝트 공동 수행’을 약속했다. 이제 각자의 특성을 살려 중복 투자를 줄이고, 지역 산업과 연계하는 실천이 남았다. ‘부산형 대학 혁신 모델’ ‘부산형 지산학 협업 모델’ 창출로 답할 때다.
대학발 도시 혁신에서 정부와 부산시의 지원과 조정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가균형발전과 지역 혁신이 맞물리는 구조적 변화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는 거점대학의 경쟁력 강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글로컬대 지원과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구축(라이즈)’ 사업은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한 도시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글로컬대 사업은 대학의 혁신, 라이즈는 이를 지역사회로 확산시키는 거버넌스 플랫폼인 셈이다. 글로컬대, ‘서울대 10개 만들기’, 라이즈 사업이 시너지 효과를 낼 때 대학·산업·도시가 동반 성장하는 추동력이 될 수 있다.
글로컬대 사업 선정 대학들은 이날 ‘지역을 품고 세계로 나아간다’는 공동 비전을 내세웠다. 로컬과 글로벌 모두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인정받는 특성화 대학을 지향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려면 대학이 일으킨 변화의 바람이 학교 밖을 넘나들고 지역에 파장을 일으켜야 한다. 대학의 연구가 조선·신발·해양·관광·AI산업 등 지역 주력 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고, 청년 인재가 지역 기업으로 흡수되는 지산학 선순환 구조로 안착돼야 한다. 오늘 글로컬대 5곳의 의기투합은 부산이 혁신 생태계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소멸의 위기 경고음이 다시는 울리지 않아야 한다. 대학과 기업, 도시가 공동 운명체라는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
2025-10-16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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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금정산국립공원 가시화, 도심형 생태 자산으로 만들어야
부산의 20년 숙원인 금정산국립공원 지정이 가시화됐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15일 박형준 부산시장 등과 함께 금정산을 찾아 심의 절차를 조속히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이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부산의 진산 금정산은 연내에 국내 최초의 도심형 국립공원으로 발돋움할 전망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국비를 대대적으로 투입해 금정산을 한층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그동안 금정산 곳곳에서 자행된 불법 개발이나 자연 훼손도 효과적으로 근절할 수 있다. 지금부터 국립공원 지정 이후의 청사진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금정산국립공원이 부산의 가치를 한층 높이는 생태 자산으로 거듭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김 장관은 이날 금정산 호포마을, 남문습지, 범어사 등을 찾아 의견을 청취했다. 그는 “금정산이 생태, 문화 측면에서 국립공원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만큼 지정 절차 진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 시민들의 염원에 화답하는 무척 의미 있는 발언이었다. 박 시장도 “기후에너지환경부와의 협력체계를 더욱 공고히 해 심의 통과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부터 본격화된 금정산국립공원 지정 노력은 그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달 마지막 관문인 국립공원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있다. 심의를 통과하면 연내에 지정·고시가 이뤄진다. 이제는 도심형 국립공원 선도모델로 만들기 위한 만반의 대비가 필요하다.
금정산은 낙동정맥을 따라 형성된 국가 주요 생태축으로 울창한 산림을 자랑한다. 도심 하천인 대천천·온천천의 발원지로서 서식 생태계도 다양하다. 자주땅귀개, 수달, 삵, 고리도롱뇽 등 멸종위기종 13종을 포함한 총 1782종의 야생생물이 서식하고 있고, 자연경관 71개소와 문화유산 127점이 소재하고 있다. 금정산성 등 문화재 보고이기도 하다. 하지만 73.6㎢에 달하는 금정산은 사유지가 82% 달해 국립공원 추진이 쉽지 않았다. 부산시의 오랜 설득 노력에 범어사 등 소유주들이 마음을 바꾸면서 드디어 연내 지정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시민 열망과 희생이 담긴 금정산국립공원을 제대로 보전하는 것은 후세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금정산국립공원 지정이 확정되면 부산 도시 브랜드를 한층 격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금정산은 도심 중앙을 가로질러 형성됐기 때문에 상당수 시민들이 주거지 인근에 국립공원을 보유하는 효과를 누리게 된다. 부산의 풍부한 해양자산과 결합하면 관광 시너지 효과도 커진다. 관리 주체가 국가로 격상되기 때문에 금정산의 소중한 생태계도 더욱 효율적으로 보전·복구할 수 있을 전망이다. 금정산국립공원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43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여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 시민들은 금정산국립공원 지정 확정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기후부와 시가 마지막 단추를 차질 없이 잘 채우길 바란다.
2025-10-16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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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외국인 관광객 대중교통 불편한데 글로벌 도시 부산 되겠나
한류 확산에 힘입어 올해 부산 방문 외국인은 3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해운대와 광안리 등 명소에서 해외 관광객을 마주치는 건 일상이 됐다. 그런데 한국의 선진 문화와 발전상에 환호하던 이들은 뜻밖에 글로벌 기준에 뒤처진 교통 불편에 놀란다. 세계인이 익숙한 구글 지도 ‘길찾기’ 기능이 막혀 있는 건 오랜 논란이다. 안보 이유로 지도 반출이 제한된 점은 감안하더라도 대중교통에서 해외 신용카드를 쓸 수 없는 상황은 ‘글로벌 허브도시’의 지향에 걸맞지 않다. 도시의 첫인상은 교통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부산 교통은 이방인에게 문턱이 높다. 내국인 중심의 사고방식이 아닌지 자성해야 한다.
해외 선진 도시들은 실물 승차권 대신 신용카드를 결제 단말기에 접촉하는 방식으로 바꿔왔으며,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부산 시내버스와 도시철도에서 외국 신용카드를 바로 사용할 수 없다. 이는 미국 뉴욕과 중국 베이징 등지에서 신용카드 국제 결제망을 활용한 ‘오픈 루프(Open Loop)’ 시스템이 도입된 것과 대조된다. 대신 티머니 등 교통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데, 해외 신용카드와 연동되지 않아 충전할 때는 현금만 가능하다. 부산에서 사용되는 외국인용 △비짓부산패스 △선불형 교통카드 △1회용 승차권 역시 모두 현금 충전 방식이다. 이방인이 맞닥뜨린 부산은 ‘현금 없는 사회’와 거리가 멀다.
부산교통공사가 올해 도시철도에서 중국의 ‘위챗 페이’ QR 결제로 승차권을 구입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중화권의 불편은 다소 해소될 조짐이다. 하지만 버스 연계 등 서비스 확대는 숙제로 남아 있다. 외국인에 불친절한 교통 서비스는 비단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다. 내국인 편의에만 맞춰 시스템을 개발했다가 뒤늦게 해외 관광객까지 사용할 수 있는 단말기로 교체하려니 막대한 비용이 들어 지체되고 있다. 환승 할인까지 감안해야 하는 난제이기도 하다. 지난 8월 제주도는 국내 최초로 시내버스에 오픈 루프 결제 방식을 도입했다.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지 말고, 기술적 해결책을 적극 모색해야 할 때다.
부산시는 비자·마스터카드 결제가 가능한 단말기를 2027년 말까지 도입할 계획이다. 외국인용 모바일 교통카드도 개발된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부산시가 외국 관광객 불편 해소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내국인들은 네이버지도, 카카오맵, 티맵으로 실시간 교통 정보를 활용하고, 환승 할인 혜택까지 누리는 도시에서 외국인은 길을 헤매고 승차 불편까지 감수하게 방치하는 것은 도시의 품격 문제다. 부산이 불편한 도시로 비칠 수 있는 이 상황은 ‘글로벌 허브도시’의 미래상과도 어긋난다.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자유롭고 평등한 이동권을 누려야 ‘글로벌 허브도시’다. 도시의 경쟁력을 입증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2025-10-15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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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국서 잇따르는 캄보디아 실종 신고, 더 이상 피해 없어야
한국 대학생이 캄보디아에서 범죄조직에 납치돼 고문 끝에 숨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알려진 이후 유사 피해를 우려하는 실종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캄보디아가 한국인을 표적으로 하는 국제범죄의 온상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지적이 이어졌으나 경찰 등은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특히 정부는 캄보디아 정부와 공조 체제 구축도 하지 않은 데다 한국인 대상 범죄에 대한 협의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국무회의에서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이 문제에 대응할 것을 주문한 것은 비록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실종 신고에 대한 신속한 확인 등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속도감 있는 대책이 절실하다.
부산에서는 이달 초 50대 남성 A 씨가 캄보디아에 간다고 말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는 실종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A 씨는 최근 가족에게 캄보디아의 한 건물에 있다며 구조를 요청하는 연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대 남성이 캄보디아에 납치돼 있다는 연락이 왔다는 신고도 접수됐다. 이 남성은 지난 5월 초 캄보디아와 국경이 맞닿은 베트남으로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남에서도 20대 남녀 3명이 캄보디아에 갔다가 감금됐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지난달 캄보디아로 출국한 30대 남성은 연락 두절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 경찰에 신고한 사례 중 아직까지 소재 파악이 되지 않은 사례도 4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캄보디아 내 한국인 납치·감금 피해 신고 건수는 2021년 4건에서 2024년 220건으로 늘었다. 올해 8월까지 접수된 신고는 330건에 달한다. 이런 수치들은 우리 정부가 수년 전부터 캄보디아 범죄 사태에 한층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아직 양국 공조 체제조차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국민들이 고액 급여를 준다는 달콤한 사기 광고에 속아 납치, 감금 등의 불법행위에 노출됐지만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경고도 하지 않았다. 정부는 13일에야 경찰청, 외교부 등 관계 부처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었다. 정부가 아직도 사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우리나라는 현재 캄보디아에 교량 건설, 보건 의료 등에 필요한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2022년 1789억 원, 2023년 1805억 원, 2024년 2178억 원에 이어 올해 지원 규모는 4353억 원에 달한다. 대규모 예산 지원을 하면서도 확실한 공조 체제조차 구축하지 못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올 8월 캄보디아 범죄조직에 연루된 자국민을 송환하기 위해 양국 공조 속에 수사관 80명을 파견한 일본의 대응과도 대비된다. 이제 더 이상의 피해는 없어야 한다. 국민 홍보 확대, 범죄 우려 지역에 대한 여행 제한 강화, 현지 한인 사건 전담 경찰관 확충, 공관 인력과 예산 확대 등 국민 안전을 위한 총력전을 당부한다.
2025-10-1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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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산형 앵커기업' 고도화가 지역 제조업 대부활 이끈다
부산지역 전통 제조업은 산업화 이후 한국 경제의 근간 역할을 했지만, 점차 활력을 잃어 왔다. 이제 제조업 위축이 부산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부산시, 부산시의회, 부산상공회의소, BNK부산은행, 부산일보가 지역 제조업 미래를 책임질 ‘중견기업 살리기 프로젝트’에 나선 것은 시의적절하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신기술 확보나 신시장 개척에 뛰어든 ‘부산형 앵커기업’(매뉴콘) 도약에 힘을 보태는 것이다. ‘매뉴콘’은 제조와 유니콘의 합성어로 기업가치 1조 원 수준의 성장이 기대되는 제조 기업을 말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앵커기업들이 빨리 성장할 수 있도록 지역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
시는 2029년까지 총 117억 원을 투입해 성장 잠재력이 큰 제조 분야 앵커기업 17개 안팎을 선정해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시는 2024년 1기 매뉴콘 3개사를 뽑은 데 이어 올해 2기 6개사를 추가 선정했다. 탑티어 앵커(연 매출 2000억 원 이상)로 효성전기(주)와 조광페인트(주)가 뽑혔고, 300억 원 이상 2000억 원 미만 규모의 앵커기업으로 (주)아셈스와 선보공업(주)이 선정됐다. 연 매출 300억 원 미만의 프리 앵커는 (주)일주지앤에스, (주)모플랫으로 정해졌다. 고용 창출, 기술 파급력 등 전후방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의 고도화는 지역 제조업 대부활을 이끄는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가운데 자동차용 모터 전문 기업 효성전기(주)는 자동차 에어컨과 히터 시스템 핵심 부품인 ‘블로어 모터’ 분야 글로벌 1위 타이틀을 가시권에 둔 상태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스피드, 서비스, 가격 경쟁력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78년 전통의 조광페인트(주)는 친환경 건축 설루션 스타트업과 협업을 통해 차세대 스마트 단열 시스템 공동개발에 착수하며 과감한 사업 재편에 나섰다. ‘열제어 코팅’ 등 초정밀 기술 국산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연구개발(R&D)에 비중을 두고 미래 먹거리 발굴에 주력하는 상황이다. 적극적인 변화와 혁신을 통해 성장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지역 제조업의 희망을 볼 수 있어 고무적이다.
부산에는 연 매출 2000억 원 이상의 제조기업이 40여 곳에 그칠 정도로 제조업 기반이 많이 약하다.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하려고 해도 큰 규모의 기업이 없어 아까운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부산형 앵커기업을 키워 작은 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제조업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 앵커기업을 대상으로 기술 개발과 특허·시험·인증 지원, 해외 진출 지원 등을 활발하게 펼쳐 지역 산업의 중심축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역 사회가 합심해 부산형 앵커기업 고도화를 이뤄내고, 청년 일자리 창출, 지역 제조업 활력 회복, 지역 균형성장 등 시너지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2025-10-14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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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가덕신공항 지연·동남권투자공사 국감서 제대로 따져야
13일부터 시작된 국회 국정감사는 첫날부터 조희대 대법원장의 법사위 출석과 질의를 놓고 여야의 극한 대립 무대가 됐다. 세간의 이목을 독점하다시피 한 법사위의 여야 충돌로 인해 정작 중요한 이슈들은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한 야권에서는 지역의 시급한 현안들을 국정감사 무대에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해당 현안들은 하나하나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강조돼 온 지역 균형발전의 토대가 될 이슈들이기에 국정감사장의 대립과 충돌만 부각되는 현실이 더욱 안타깝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 해당 현안을 최대한 부각시킬 수 있도록 지역 정치권이 더욱 힘을 모아야 할 이유다.
국토교통부에 대한 국회 국토교통위 감사에서는 김도읍 의원이 가덕신공항 건설 지연에 대한 현대건설의 책임을 물고 늘어졌다. 김 의원은 이날 현대건설이 기본설계 6개월간 활주로가 들어설 해상에 58회 계획돼 있던 지반 시추조사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사실을 다시 거론했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이 같은 내용을 추가로 확인해 법제처에 국가계약법 해석을 다시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지역 시민단체들까지 현대건설의 불성실한 계약 이행을 명백한 국가계약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페널티 적용을 요구하고 나섰다. 새로운 사실 관계 확인으로 현대건설에 대한 부정당업자 지정 가능성에 새로 불이 지펴졌다는 평가다.
이헌승 의원은 국무조정실에 대한 국회 정무위 감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부산지역 대선 공약이었던 동남권투자은행 설립 문제를 제기했다. 이 의원은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갈음할 대안으로 제시된 동남권투자은행이 최근 여권의 동남권산업투자공사 법안 제출로 인해 공사 설립으로 대체될 우려가 커졌다는 점을 집중 제기했다. 그는 이어 공사는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자금 조달이 힘들고 규모 확대와 지속 성장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과 함께 해양 관련 산업을 지원할 토대가 제대로 만들어질 때라야만 비로소 해양수도 부산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다는 지역 여론을 반영한 문제 제기라는 지적이다.
국정감사는 정치권의 득실에 따라 여야 국회의원들이 끝없이 고성을 주고받는 풍경으로 자주 소비돼 왔다. 하지만 국정감사는 입법부가 정부의 국정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국가 예산 심사를 위한 정보와 자료를 확보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다. 그렇기에 국정감사의 시작과 함께 불거진 여야의 극한 충돌 속에서도 지역 현안을 무대에 올려 문제를 제기한 부산지역 정치권의 행보는 의미가 있다 하겠다. 지역 현안 문제 제기는 가덕신공항 건설 지연이나 동남권투자은행 설립 등 지역 현안 관련 정책 변화와 후속 입법을 이끌어내야 하는 숙제를 위한 첫걸음이다. 여야 극한 대치에 굴하지 않고 지역 현안에 대한 유의미한 결과 도출에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2025-10-14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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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해공항 아찔한 선회 착륙 급증… 신공항 시급한 이유
대형 사고 위험성이 높은 김해공항 ‘선회접근 착륙’ 횟수가 매년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일보〉가 입수한 최근 5년간 김해공항 민항기 착륙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중순까지 김해공항에 착륙한 민항기 2만 7281대 중 5557대(20.4%)가 선회접근으로 18L/R 활주로에 착륙했다. 약 7개월 만에 지난해 18L/R 활주로 착륙 횟수(5310대)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선회접근 착륙은 2020년 2413대, 2021년 2732대, 2022년 4134대, 2023년 4468대, 2024년 5310대로 매년 늘고 있다. 비행기가 선회접근을 할 경우, 돗대산 등 산악 지형에 근접해 착륙하기 때문에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해공항 착륙 방법은 다대포해수욕장과 을숙도를 거쳐 36L/R 활주로에 착륙하거나, 남해고속도로를 기준으로 선회접근해 18L/R 활주로로 내리는 경우 등 두 가지라고 한다. 관제 당국은 김해공항 일대에 14.816km/h 이상의 남풍이 불면, 착륙 안전을 위해 맞바람을 받도록 18L/R 활주로로 착륙을 유도한다. 18L/R 활주로 착륙을 위해서는 항공기가 산악 지형과 인접한 김해공항 활주로 북쪽 상공에서 우회전한 뒤 남쪽으로 내리는 ‘선회접근’을 해야 해 착륙 난도가 높다는 것이다. 선회 착륙 횟수가 급증할수록 공항 전반의 사고 위험성도 높아진다. 김해공항 이용객들은 항공기 착륙 때마다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여름철 북태평양 고기압이 오래 머물면서, 김해공항에서 선회접근을 유발하는 남풍 발생 빈도가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상궤도를 벗어난 착륙 시도와 활주로 오착륙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올 6월에는 대만 중화항공 소속 여객기가 정상적인 경로를 벗어나 돗대산과 1km 남짓한 거리에서 착륙을 시도하다 복항하기도 했다. 2002년 중국 민항기가 선회접근 중 돗대산과 충돌해 129명이 숨진 악몽을 되풀이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또 3월과 6월에는 선회비행 중 허가받지 않은 활주로에 오착륙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올해 들어 이러한 비행기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해 특단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김해공항은 활주로 끝에 돗대산이 있어 착륙 준비 거리가 아주 짧다. 낮은 고도에서 급격히 선회할 경우 착륙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활주로 확인이 어렵다고 한다. 남풍이 부는 여름에는 지형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 국적 항공기 조종사가 까다롭게 느낄 수 있다. 관제 당국의 안전 관리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증가하는 선회 착륙으로 인한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가덕신공항 조기 건설만이 해법이다. 지형적 특수성에 기후변화까지 겹치면서 김해공항의 착륙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는 만큼, 정부는 가덕신공항 조성에 더욱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2025-10-13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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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캄보디아서 충격적 한국인 대상 범죄, 특단 대책 세워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대학생이 범죄 조직에 납치·감금돼 고문 끝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이런 범죄가 살인까지 이어질 정도로 통제 불능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8월 발생한 20대 한국인 대학생 고문 사망 사건은 이번 사태의 참혹한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가 너무 많이 맞아서 걷지 못하고 숨을 못 쉬는 정도였다”는 한 생존자의 증언처럼 그 대학생은 극심한 고통 끝에 구조 작전 하루 전 결국 숨을 거뒀다. 사망 원인이 고문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이었다는 현지 검안 기록은 그가 얼마나 잔인하게 유린당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는 그만큼 국가의 보호막이 허술했다는 방증이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급증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캄보디아 여행 중 실종된 40대 남성이 현지에서 혼수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최근 5년간 캄보디아 내 납치·감금 피해 신고 건수는 2021년 4건에서 2024년 220건으로 늘었으며 올해 8월까지만 해도 330건에 달할 정도로 그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캄보디아가 한국인을 표적으로 한 국제 범죄의 새로운 온상이 된 셈이다. 요는 단지 현지 치안이 취약해서만이 아니다. 재외공관의 대응 능력은 여전히 신고 접수 수준에 머물러 있고, 인력과 예산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이러한 범죄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우리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더디다는 점이다. 중국은 전세기를 띄워 자국 피의자를 압송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는 반면, 우리는 경찰 인력 단 1명 증원에 그쳤다. ‘코리아 데스크’(한인 범죄 전담 경찰) 설치 등 현지 교민과 여행객 보호를 위한 실질적 대안이 거론되지만 주권과 외교 문제에 막혀 현재까지는 뚜렷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대학생 사망 사건과 관련해 해당 지역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실질적 경고나 제재를 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총력 대응” 지시조차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뒤에야 내려졌다. 사건 발생 후 대응하는 관행이 반복된다면 제2, 제3의 비극은 피할 수 없다.
더 이상의 비극을 막고 충격적인 범죄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캄보디아 정부와의 외교 협력을 최우선으로 삼아 국민 보호를 위한 실질적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현지 공관 인력과 예산을 대폭 확충하고, 코리아 데스크를 즉시 가동해 현지 한국인에게 신속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재외국민보호 영사조력법’ 개정안처럼 재외공관 기능을 ‘신고 안내’에서 ‘대응’ 중심으로 전환해 선제적 국민 보호 체제를 갖추는 것도 시급하다. 정부는 이제 그 즉각적인 실행을 통해 국민에게 국가의 존재를 보여줄 때다.
2025-10-13 [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