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재미있어졌다…
동삼동 주공2단지 이야기
부산의 한 복지관에서 일하는 분으로부터 최근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우리 동네 아파트에서는 주민끼리 양봉을 하고, 스마트팜에서 채소도 길러 먹는다’라고 했다. 얼마 전에는 주민들의 자서전을 발간했고, 주민들이 출연하고 감독한 영화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는 소식도 들어있었다. 가끔 아파트에 뱀이 나와 동네 뉴스가 되기도 하고…. 그 과정을 청년 예술가들이 오랜 시간 기록한 전시회를 열고 있으니, 꼭 방문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부산에 이런 아파트가 있었나? 요즘 보기 힘든 소식을 가득 담은, 문제의 그 아파트를 찾아가 봤다.지난 14일 부산 영도구 동삼동 주공 2단지에 있는 상리종합사회복지관을 방문했다. 상리, 중리, 하리 등 영도 동쪽 해안에 위치한 세 개의 마을이 지금의 동삼동(東三洞)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라진 ‘상리’는 복지관 이름과 주공 2단지를 부르는 ‘상리마을’이란 애칭으로 여전히 남아 있었다.이곳 복지관과 빈집 한 곳을 빌려 열린 전시 ‘단지, 감각한 기록展’은 공교롭게도 이날이 마지막 날이었다. 복지관에 들어서자, 주민들이 자기 집의 풍경을 직접 그린 전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제목:기적이 일어나는 나의 집. 방 두 개가 고작인 13평 아파트. 조그마한 방에서 난 그림책 작가도 되고, 화가도 되고, 시 낭송가도 되며, 우쿨렐레·오카리나 연주가도 된다. 책도 읽고, 시도 쓰고, 연극 대본을 외우기도 한다. 조그마한 베란다는 나의 아틀리에. 나는 매일 기적을 본다. 10XX호 오정희 씨가 그린 멋진 그림과 글솜씨에 놀라고 말았다.다음 작품의 제목은 ‘즐거운 나의 집’이었다. “우리 집이란, 내 생활의 보금자리로 내 마음에 제일 좋은 곳이라 적어 봅니다. 베란다가 예쁘고 바깥의 바다와 배들이 너무 좋아요. 나는 아무리 크고 좋은 집을 준다 해도 우리 집과는 바꾸지 않을 겁니다. 13XX호 김춘자 씨의 작품에는 우리 집에 대한 사랑이 흘러넘쳤다. 문득 어린 시절 즐겨 부르던 ‘즐거운 나의 집’이란 노래가 생각났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또 ‘우리 집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라고 쓴 어떤 주민의 표현은 의미심장하기 짝이 없었다.이렇게 각자가 우리 집 내부를 그린 작품이 모두 50점 가까이 됐다. 아파트 생활이란 우리 집만 알지, 옆집에는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기 마련이다. 12~13평 비슷한 구조와 평수의 ‘동삼 주공’을 그린 그림을 모아 놓으니 개성 있는 살림살이가 너무 재미있게 느껴졌다. 주민 한 분은 “30년을 여기에 살았어도 남의 집에 가본 적이 없다. 오늘 50집을 집들이한 것 같다”라고 말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다. 아파트의 익명성이 때론 편하지만, 옆에 누가 사는지 항상 궁금했기 때문이었다.복지관 내 상리카페에서는 주민 두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분이 동삼 주공의 동네 스타로 짐작되는 김양자 씨다. 김 씨는 올해 자서전 쓰기에도 참여했고, 주민들이 만든 영화에도 출연해 작가 겸 영화배우가 되었다. 지난 2월에 출간된 <인생사 돌아보기>에는 김 씨가 쓴 ‘나는 스칼렛 오하라였다’를 포함해 주민 7명의 자서전이 수록됐다. 김 씨 편을 짧게 소개한다.‘혼자 아들 둘을 키우고 살면서 서러운 일이 많았다. 대학교 앞 하숙부터 시작해서 식당과 피부관리실 운영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힘들게 일해 두 아들 장가보내고 나니 방 하나 얻을 돈도 없었다. 새 두 마리를 열심히 키웠더니 어느새 짝을 찾아 엄마 혼자 두고 멀리 날아가 버린 셈이었다. 그때 영도에서 영구임대아파트 모집을 해서 입주하게 됐다. 지금은 88-1 버스가 다니지만, 예전에는 차도 다니지 않아 오르막길을 힘들게 올라야 했다.나는 힘든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 늘 책을 읽었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은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를 거야”라며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섰다. 여기에 온 지도 30년이 넘었다. 내 공간이 있어 너무 좋다. 해가 지고 창문가에 서면 바다가 가까워서 마치 내가 물 위에 떠가는 느낌이다. 나는 소설 속 대저택 못지않은 나만의 공간에서 나를 위로하는 책을 든다.’영도의 스칼렛 오하라 김 씨는 영도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그는 “아들이 의사인데 너는 왜 극빈자들이 사는 아파트에 사느냐고 묻던 친구들도 우리 집에 와 창문에서 보면 정말 외국에 온 느낌이 든다고 감탄한다”라고 말했다. 또 “여기 사는 할머니들한테 다른 데로 가겠느냐고 물으면 한 사람도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안 갈 거다”라고 덧붙였다.동삼 주공 2단지는 1995년에 준공되어 30년이 지난 낡은 아파트다. 2단지 1968세대 가운데 수급세대(기초생활수급자)가 1236세대, 수급 세대 외 지원 세대(차상위계층·긴급지원 대상) 365세대, 일반 세대 367세대로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많이 산다. 지난해 복지관 측이 이 아파트에서 고독사 시신을 3건이나 발견했다. 영구임대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고, 공공임대아파트를 향한 사회적 차별의 시선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영구 임대에 사는 분들은 빨리 돈 벌어서 나가고 싶어 할 것이라는 짐작과 달랐다. 지난 2023년에 고신대 사회복지학과에서 423명을 대상으로 주민 욕구 조사를 한 결과 주민 만족도가 3.5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 영구 임대를 바라보는 외부 시선과 주민들의 생각은 괴리가 너무 컸다.또 한 분의 주민은 상리 마을 영화 ‘그 많던 꿀벌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에 출연한 김상호 씨였다. 김 씨를 비롯한 마을 주민 5명과 어린이들이 출연한 이 영화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 BIFF에서 상영되어 호평받았다. 또한 일본에서 열리는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출품할 예정이다.김 씨는 영화에서 오랫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용기를 내서 밖으로 나오는 역할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김 씨는 실제로 오랜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고 금주한 지 8년이 넘었다. 자기 집에서 중독자를 치유하는 모임을 열고, 오갈 데 없는 중독자들을 집에서 보살피기도 했다. 김 씨는 이날 “과거의 나는 교만했다. 영화 촬영 때 감독님이 크게 웃으라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되었다. 지금도 웃는 연습을 하고 있다”라고 말해 감동을 줬다.이번에는 올해 내내 동삼 주공에서 살다시피 하며 작업한 작가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먼저 상리마을을 사진으로 기록한 청년 작가 조건 씨다. 조 작가는 “영구 임대라는 선입견을 품고 와보니 노인 계층이 많을 따름이지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았다. 좀 더 밝고 따뜻하게 찍어보자는 생각으로 색감이 최대한 화사하게 나오도록 노력했다”라고 말했다.이재웅 작가는 청년 작가들의 멘토 역할을 하며 ‘다큐 상리’를 만들었다. 이 작가는 “돌아다니다 보니까 여기가 참 매력적인 곳이더라. 주민들과 친해질수록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문화 복지’를 통해서 주민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라고 말했다.청년 작가 박세진 씨는 주민을 인터뷰한 뒤 동삼 주공을 배경으로 일러스트 엽서 작업을 했다. 박 작가는 “육지 사람은 영도에 대한 편견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영도에 살고 있지만 상리마을에 대해 못 사는 동네, 위험한 동네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됐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편견이 생겨난다고 생각하게 됐다”라고 밝혔다.청년 작가들이 처음에 작업을 위해 돌아다니자, 동네 주민들이 자꾸 “뭐 하는 사람이냐? 어디서 나왔냐?”라고 물어봤단다. 그동안 동삼 주공에서는 젊은이들을 만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김양자 씨는 “젊은 사람이 드문 동네에 청년이 지나가면 보기가 참 좋다. 씩씩하다. 나라의 보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영화 ‘그 많던 꿀벌…’은 오래된 임대 아파트에서 양봉하는 주민들이 주인공이다. 영화는 어느 날 꿀벌들이 사라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민하던 주민들은 꿀벌이 다시 돌아오도록 꽃을 심는다. 꽃이 피면 환경도 좋아지고, 언젠가 벌이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다. 편견이 특정 집단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낳고, 상호 존중 대신 적대감을 키워 편을 나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만의 고립된 집에서 나와, 옆을 돌아보는 시간이 아닐까. 글·사진=박종호 기자
쉽게 피곤하거나
가벼운 활동에도 숨이 찬다면?
직장인 A(27) 씨는 최근 들어 피로감이 늘고 계단을 오르면 숨이 찼다. 업무 스트레스와 다이어트가 원인이라고 생각해 업무량을 줄이고 다이어트를 중단했지만 증세는 여전했다. 병원에서 정밀검사 결과 폐동맥고혈압 진단을 받은 A 씨는 적극 치료에 나선 결과 반 년 남짓 만에 증세가 호전됐고 일상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A 씨가 겪은 폐동맥고혈압은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보내는 폐소동맥 벽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고 협착되면서 압력이 상승, 심장에 부담을 주는 질환이다. 한때 진단 후 평균 생존기간이 2~3년에 불과했을 만큼 치명적인 희귀·난치 질환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치료 환경이 크게 달라지면서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부산대병원 최정현 순환기내과 교수와 함께 폐동맥고혈압 치료법에 대해 알아봤다. ■가능한 한 빨리 저위험군으로희귀질환인 폐동맥고혈압이 만성질환 가능성을 연 것은 활발한 치료법 연구가 주효하다. 과거 폐동맥고혈압 치료는 한 가지 약물로 시작해 효과가 부족하면 단계적으로 추가하는 ‘계단식 치료’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진단 초기부터 여러 약제를 동시에 사용하는 ‘조기 병용요법’이 임상적으로 더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이 연구로 확인됐다.특히 결체조직질환 연관 폐동맥고혈압이나 젊은 환자에서 치료 반응이 더 빠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실제 한 20대 초반 결체조직질환 환자는 진단 직후 주사제를 포함한 3제 병용요법을 시작해 반 년 만에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게 됐으며, 1년 6개월 뒤엔 폐저항지수가 정상화되면서 경구 약제 병용요법이 적용됐다. 최 교수는 “처음부터 2~3가지 약물을 병합해 치료한 환자들은 임상적 악화 위험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고, 운동능력과 삶의 질도 크게 좋아졌다”고 설명했다.조기 병용요법이 주목 받는 이유는 폐동맥고혈압이 첫 진단 시점에 얼마나 빨리, 충분하게 환자 상태를 개선해 주느냐가 장기 예후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로를 동시에 차단해 질병의 진행을 빠르게 억누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글로벌 가이드라인도 조기 병용요법을 표준 치료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 유럽 가이드라인에서는 저위험~중간위험군부터 조기 병용요법이 권고되고, 고위험군에서는 프로스타사이클린 유사체까지 포함한 3제 병용요법이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최근 등장한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도 증상 완화에 한몫한다. 기존 ERA·PDE5 억제제·프로스타사이클린 유사체 등이 주로 혈관 확장을 통해 증상을 조절했다면, 새로운 계열의 약물은 혈관 손상과 재형성 과정에 관여하는 ‘특정 신호전달 경로’를 억제해 손상된 폐혈관 구조를 회복시키는 효과를 유도한다. 최 교수는 “증상 완화를 넘어 질병 진행을 늦추거나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환자 특성에 맞춘 맞춤형 병용 전략이 더 정교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단지연·보험한계 극복 필요하지만 진단이 늦어지는 것은 여전히 큰 문제다. 폐동맥고혈압의 초기 증상은 피로, 가벼운 활동에서도 숨참, 실신 등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증상과 유사하다. 특히 젊은 여성의 경우 스트레스나 운동 부족으로 오해해 병을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 교수는 “조기 진단은 예후를 바꾸는 핵심”이라며 “이전보다 쉽게 피곤하거나 가벼운 활동에서도 숨이 찬다면 반드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체조직질환, 선천성 심장병, 간질환 등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라면 정기 검진은 필수적이다.보험적용이 까다로운 것도 문제다. 현재 WHO 기능 등급 III-IV 환자만 조기 병용요법이 가능하고, 그 외 환자는 단일요법 후 악화가 있을 때만 추가 약제 처방이 허용된다. 최 교수는 “폐동맥고혈압의 치료 목표는 가능한 빨리 저위험군에 도달하는 것인데, 현행 보험 기준은 이 목표와 맞지 않는다”며 “초기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환자의 적극적 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치료제가 발전했다고 해도 환자가 스스로 관리에 참여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증상이 애매하다고 병원을 옮겨 다니거나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약을 줄이거나 끊으면 질환이 급격히 악화될 우려가 있다. 과도한 운동은 위험하기 때문에 대화가 가능한 정도의 중등도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감염 예방을 위해 독감·폐렴구균 백신을 접종하는 만큼 코로나19 예방수칙을 준수하는 것이 권장된다. 임신은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임신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 최 교수는 “폐동맥고혈압은 시기를 놓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에 맞는 최선의 치료 강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보험 급여가 확대되고 한국인 특성에 맞춘 맞춤치료 전략이 발전한다면 폐동맥고혈압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닌 ‘충분히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사가
돼지국밥집 차린 이유는?
“살아 있으니 밥을 먹을 수 있다. 밥 먹는 일 자체가 복이다.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우리가 나쁜 감정을 표현할 때 ‘밥맛이 없다’라고 하지 않나. 밥맛이 없으면 인생 조지는 거다. 밥을 맛있게 먹는 순간이 인생 최고의 클라이맥스다.”밥을 연구한 ‘밥 철학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성의료재단 좋은병원들 구정회 회장은 소문대로 달변이었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오만 데 관심이 많다”라고 자인할 정도로 관심사 또한 다양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여전히 직원들과 함께 책을 읽고, 독서토론회를 즐긴다고 했다. 부산지식서비스융합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알고 보니 부산대 학보사 기자 출신에 부대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에서 소설로 수상한 경력도 있었다. 24일에는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제32대 회장에 취임하는 액티브 시니어다.기자가 구 회장을 만난 이유는 뜬금없게도 돼지국밥 때문이었다. 좋은문화병원을 비롯한 5개의 종합병원과 7개의 요양병원 등 12개의 네트워크 병원을 운영하는 그가 돼지국밥집을 차렸다는 소문이 퍼져서였다. 지난 9월 말에 문을 연 부산 수영구 남천동의 돼지국밥집 ‘식복(대표 이정근)’에서 만난 구 회장은 수육과 돼지국밥을 앞에 두고 그 사연을 쏟아내기 시작했다.“내가 원래부터 식당 주인입니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구 회장이 운영하는 병원 12곳의 환자를 합치면 3000명가량이 된다. 삼시세끼씩 해서 매일 1만 그릇씩 음식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병원 밥이라 재료 기준이 엄격하고, 위생 기준은 높고, 일제 배식으로 효율은 떨어지는 악조건 속에서 식당을 한다는 이야기였다.소문의 주인공이 앞에 놓인 수육을 한 점 집어 들었다. 구 회장은 “수육은 식감이 중요하다. 집에서 수육을 하면 이런 맛이 나지 않는 이유는 숙성을 안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돼지고기를 숙성 냉장고에 사흘간 둔 다음에 만들어 쫄깃쫄깃한 맛이 살아난다. 한정식집에서 먹는 돼지고기가 퍼석퍼석한 이유도 전처리를 안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음식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인상적이었다. 가게 비법까지 거침없이 털어놓는 화법에선 성격이 드러났다.평생 의술만 펼치던 그가 돼지국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수육이었다. 병원 장례식장은 수육을 많이 소비한다. 그동안 수육을 납품받았는데 그 품질이 처음 들어올 때와 자꾸 달라지는 문제가 도저히 고쳐지지 않았다. 수육의 품질이 변하면 병원의 신뢰 또한 손상이 된다고 생각해, 아예 수육을 직접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육의 품질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했다. 좋은 고기, 좀 비싼 고기를 쓰니 문제가 바로 해결됐다.부산 대표 음식 돼지국밥은 이제는 외국인이 즐겨 찾는 관광상품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식복의 개업에는 이 돼지국밥에 대한 평소의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 의사이자 경영자인 그가 보기에 위생상 불결하고, 서비스 철학이 없고, 인공 조미료를 퍼넣는 역전 식당 수준의 돼지국밥집이 너무 많았다. 부산시도 모범적인 돼지국밥집을 가려서 격려하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그가 수육 다음으로 육수 만들기에 들어갔다. 사골을 고아 뻑뻑하게 만든 뒤 인공 조미료를 퍼넣는 기존 돼지국밥 방식은 처음부터 경계의 대상이었다. 조리 실무자가 인공 조미료를 넣지 않고 맛을 내려면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든다고 반대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는 “시원해야 하니까 무, 끈적하고 달아야 하니 대파, 잡내를 없애는 생강, 인공 조미료 대신 마늘을 넣으면 그 맛이 난다”라며 밀어붙였다. 말처럼 간단하지는 않았다. 사골은 하루 전에 물에서 우려내 잡내를 제거하고, 끓이면서 떠오르는 기름을 떠내는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했다. 그렇게 수육 되고 육수 되니, 대중들한테 우리가 양질의 돼지국밥을 선보이자고 의견이 모였다.‘부산의 정을 담은, 식복 돼지국밥’이라고 쓴 가게 간판에는 부산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수준급 돼지국밥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실제로 식복의 돼지국밥은 국내산 암퇘지 사골을 12시간 우려 진한 풍미가 나고, 일체의 인공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세제나 이물질을 흡수하지 않는 ‘무흡수 뚝배기’를 사용하는 이유도 건강을 생각해서다. 주방은 조리기능장으로 2002년 월드컵 당시 브라질팀 전속 요리사였던 이동석 총괄 셰프에게 맡겼다. 이렇게 정성이 든 돼지국밥은 때깔부터가 다르다. 만 원짜리 돼지국밥 한 그릇을 먹고 난 손님들은 대접받고 가는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구 회장은 돼지국밥과 병원을 연관시켜 다소 의외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돼지국밥집에서는 만 원을 위해서 돼지고기를 삶고, 썰고, 서빙한다. 병원은 이제 너무 독점적인 권한, 지위, 습관, 정서를 가진 게 아닌가 싶다. 서민들이 만 원을 벌기 위해서 어떤 수고를 하는지 알면 병원에서 환자한테 비싼 MRI 비용을 받을 때도 좀 겸허한 마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돼지국밥집은 나한테는 인생의 실험적인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선택에 대해 누군가 입을 댈지도 모르지만, 자영업에 대한 생각도 명확하게 밝혔다.그는 “우리나라에는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 할 게 없어 음식점 하는 사람도 많다. 나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할 일이 없어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의사도 편해지려고 개업하면 일이 안 된다. 의사의 개업은 자기 인생 최후이자 최선의 선택이어야 한다. 하다가 안 되면 복귀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고 일갈했다. 식복에는 ‘배가 고파서, 밥을 맛있게 먹고 싶어서 밥집에 오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라는 그의 철학이 들어 있다. 식복의 대표가 아니라, 컨설턴트를 자임한 그는 낮은 수익성을 높이는 방안들에 대해 오늘도 고민 중이다.구 회장의 식복(食福)은 어릴 적 성장 환경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경남 함안 군북 출신으로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부산에 정착했다. 부모는 부산으로 공부하러 오는 친척 아이들을 다 받아들였다고 한다. 많은 친척과 한집에서 어울려 살아 아침이면 도시락이 열몇 개가 될 정도였다. 우리 식구끼리만 밥을 먹어 본 적이 없어 어려서는 원망스러웠지만, 커서 보니 그게 너무나 고맙게 여겨졌단다. 일찍 철이 들고 삶을 풍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꾸라지가 든 어항에 천적인 메기를 한 마리 넣으면, 미꾸라지들이 메기를 피해 다니며 더 활발하고 건강해진다고 한다. 어쩌면 ‘식복’이 부산 돼지국밥계의 메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글·사진=박종호 기자
밀양강 따라 절벽 잔도,
11월엔 황금빛 은행나무 금시당
푸른 강을 따라 산길을 걷는 트레킹을 다녀왔다. 꽃밭에서 시작해 소나무 숲을 지나 절벽에 매달린 아찔한 잔도를 걷고, 500년 된 고택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강을 따라 돌아오는 아름다운 코스였다. 가을이 무르익는 경남 밀양시 ‘용두산생태공원 힐링 산책길’ 5km 코스가 바로 그곳이다.■삼문송림과 구절초삼문동공설운동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것으로 여행은 시작된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학교 대항 체육대회를 지켜보며 목청껏 ‘마음 약해서’를 외치며 응원전을 펼쳤던 추억을 떠올리며 운동장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걷는다. 50년 전에도 울창해 걷기에 좋았던 솔숲은 지금도 하늘을 뒤덮어 가을 나들이를 나온 많은 산책객을 따가운 햇살에서 보호해준다.밀양강 제방 아래 하얀 눈꽃이 쌓인 듯 화사한 화원이 펼쳐진다. 많은 사람이 즐겁게 웃으며 카메라는 물론 휴대폰 버튼을 찰칵거린다. 화원 입구에 ‘구절초’라는 팻말이 붙었다. 국화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향기가 완전히 다른 꽃이다. 여행 초입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환한 꽃을 마음껏 구경하게 되다니 이번 일정도 행운에 행운이 겹칠 모양이다.제방을 넘어가면 밀양 산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삼문송림이 나타난다. 2002년 ‘제3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수령 100년을 넘은 곰솔 6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밀양강을 따라 삼문송림을 걷는다. 소나무 사이에는 빽빽하게 심어진 푸른 식물이 보인다. 매년 9월 보라색 꽃이 활짝 피면 가슴이 쿵쿵 뛸 정도로 아름다운 맥문동이다.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부는데 이제는 가을이어서인지 시원한 걸 넘어 차갑게 느껴진다. 송림 사이를 걷는 사람도 적지 않고, 강 쪽을 향해 놓인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강물만 바라보며 ‘멍 때리기’에 몰입한 사람도 보인다.삼문송림이 끝나는 부분은 여름에는 시원한 물놀이장으로 이용되는 곳이다. 이곳에는 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낮은 콘크리트다리가 놓였다. 이 다리를 건너면 비로소 절벽에 매달린 잔도로 갈 수 있게 된다.■밀양강 잔도다리를 건너 맞은편 용두산 산자락을 따라 돌아서면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수변산책로, 즉 잔도가 나타난다. 지난 7월에 개통한 곳이니 그야말로 ‘신상’이다. 경치가 아름답고 시원한 데다 사진 찍기에도 좋아 많은 사람이 찾는 인기 명소로 자리를 잡은 장소다.잔도는 구간에 따라 용두산 10~20m 절벽에 매달렸다. 절벽 아래로는 까마득한 밀양강이 흐른다. 이곳에는 용두보, 밀양 사람들은 용두목이라고 부르는 시설물이 있는데 옛날부터 여름철 물놀이장으로 인기가 높던 곳이다. 이곳의 물 흐름을 잘 모르는 객지 청년들이 해마다 한두 명씩 익사하는 사고가 일어나 지역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용두목에는 물놀이 가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다.용두산 잔도 풍경은 듣던 대로 굉장했다. 푸른 숲으로 뒤덮인 용두산, 산 정상 부분에 자리 잡은 호젓한 절, 아래로는 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강 그리고 절과 강 사이 절벽을 따라 이어진 아찔한 잔도.개장 반년도 안 돼 SNS 핫플로 인기를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잔도가 조금 짧아서 5분이면 끝난다는 점이다. 그래도 경치가 워낙 좋다 보니 짧다는 아쉬움을 덮고도 남을 만큼 찾을 가치는 충분하다.잔도를 한 번만 걷고 끝내기는 아쉬워 두세 번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한다. 잔도는 삼문공원 쪽에서 올라가는 것보다는 반대편, 즉 용궁사 쪽에서 내려오는 게 더 아름답다. 사진도 용궁사에서 삼문공원 방면으로 내려가면서 찍는 게 더 잘 나오고 풍경이 좋은 장소도 많다.잔도가 끝나는 부분에서 여정을 끝내지 않고 나지막한 산길을 더 걸어가기로 한다. 깔끔하게 잘 정리된 산책로여서 걷기에 어려움은 전혀 없다. 흙길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구불구불한 데크길이 나타난다. 길을 걷다 뒤를 돌아보니 숲 사이로 멀리 밀양시 왼쪽 부분인 가곡동과 전사포리 전경이 나타난다.데크길의 마지막은 해발 129m 용두산 꼭대기에 설치된 달팽이전망대다. 꽈배기처럼 꼬인 모양으로 올라가는 전망대 모양이 달팽이 같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번 산책길에서 눈을 가장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장소가 여기여서 용두산을 찾는 사람은 꼭 이 전망대에 오른다.소문대로 달팽이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기가 막힌다. 밀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나왔지만 이렇게 훌륭한 전망을 가진 곳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달팽이전망대에서는 용두산 잔도와 밀양강, 그 너머 용평2교 다리와 경부선 철로 그리고 그 너머 밀양 시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정말 아름답고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하고 황홀한 전망이고 경치가 아닐 수 없다. 이곳에 온 사람들이 왜 하나같이 극찬을 쏟아내는지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마침 공기가 맑아 먼 곳까지 아주 깨끗하고 선명하게 잘 보이니 풍경은 더 훌륭하게 느껴진다.■금시당 은행나무달팽이전망대에서 돌아가는 대부분 산책객과 이별하고 다시 산성산 일자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오른다. 일정 목표는 등산이 아니라 트레킹이어서 목적지는 물론 일자봉이 아니다.산길이라고 해도 사실상 평지나 다름없는 산책로여서 걷는 데에는 큰 어려움은 없다. 분위기는 차분하고 공기는 맑은 길이어서 혼자서 또는 서너 명이 조용히 걷는 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이 나온다. 그곳에서 왼쪽 길을 따라 간다. 조금 더 걸으면 정자가 나오고 다시 두 갈래길이 나타난다. 이번에도 ‘금시당’이라는 안내판이 붙은 왼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고른다.다소 험한 내리막길을 10분 정도 따라 가다 보니 역사가 깊은 고택이 나타난다. 16세기 사화를 겪고 권력과 정치에 환멸을 느낀 이광진이 관직을 내던지고 귀향해 만들어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별서인 금시당·백곡제다.줄여서 단순히 금시당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특히 11월 늦가을에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유명한 곳이다.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집을 지을 때 함께 심었다는 수령 500년의 울창한 은행나무다. 가을이 되면 수만 장이나 되는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변해 온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때문이다.아쉽게도 아직 은행나무 잎은 노랗게 물들지 않았다. 여전히 한여름인 듯 파랗기만 하다. 환상적인 풍경이 연출되려면 다음 달 중순 이후까지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5km 산책 코스를 사진까지 찍으면서 걷다 보니 2시간이나 걸렸다. 금시당 앞 벤치에서 잠시 앉아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이광진이 이곳에 별서를 만든 이유는 강이다. 바로 앞으로 밀양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그 너머로는 너른 평야여서 경치가 좋기 때문이다. 벤치에 앉아 천천히 흐르는 밀양강을 내려다보니 이광진이 왜 여기를 택했는지 금세 수긍이 된다.이제는 돌아갈 차례다. 귀환 코스는 아까와는 달리 산성산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옛 산책로 ‘아리랑길’이다. 올 때 길은 넓고 편했지만 가는 길은 좁고 다소 불편하다. 두 명이 동시에 걷기는 어렵고, 반대편에서 한 명이 오면 비켜줘야 한다. 하지만 윗길보다 더 조용하고 호젓해서 진짜 오솔길을 걷는 느낌을 느끼기에는 더 낫다.돌아가는 길은 올 때 길보다 조금 짧다. 사진을 찍을 만한 감동적인 포토존도 없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이유도 없다. 그나마 인상적인 곳은 ‘무암(巫岩)’으로 불리는 ‘구단방우’다. 용두산에 신의 기운이 넘쳐 흐른다고 생각한 과거 무당들이 굿을 하며 치성을 드린 곳이다. 구단방우는 ‘굿을 한 바위’라는 표현이 사투리 발음 그대로 적힌 이름인 모양이다.구단방우를 지나면 이번에는 용두보가 나타난다. 객지에서 물놀이하러 왔다 목숨을 잃은 많은 젊은이가 수장된 곳이다. 옛날 사람들은 물 아래에 귀신이나 신령이 있어 낯선 이들의 다리를 잡아끌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많은 곳이니 무서우면서 신령한 곳으로 여겨졌을수도 있다.용두보를 지나면 다시 잔도가 나타난다. 산자락을 감싸 도는 길을 따라 걸어 삼문동공설운동장으로 향한다. 고향이지만 처음 걷는 길이다 보니 낯설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고향이니만큼 마음은 푸근했고 따뜻했다.
폐교의 매력 넘친 변신,
‘삶의 기본’ 배우는 명소로
알로이시오홀, 빵굽는수녀님, 카페바뇌, 메이커스랩, 영상제작실, 상담치료실, 알로이시오 역사관, 뷰티 활동실, 요즘공방, 침묵의방, 도서관, 사랑방, 생활공방, 음악활동실, 모두의부엌, 수직농장, 달빛옥상, 옥상텃밭, 온실, 나무공방, 대청마루, 가족행복텃밭, 넝쿨정원, 체육관, 팜팜농장…. 이 모든 걸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 폐교의 놀라운 변신으로 2021년 개관 당시부터 주목받은 부산 서구 암남동에 자리한 ‘알로이시오기지1968’(이하 기지1968)에서다. 4년 남짓 동안 10만 명이 넘는 부산의 초중고교 학생들이 다녀가면서 기지1968은 ‘복합 문화 체험 명소’로 거듭났다. 지난 19일 기지장 이에밀란 수녀 안내로 돌아봤다.■개관 5년 차…10만 명 이상 다녀가기지1968이 어느새 개관 5년 차를 맞았다. 개관하던 해부터 몇 번인가 와 본 곳이지만 올 때마다 새롭다. “기지1968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좋은 자재를 사용했고, 색상 하나하나에도 엄청나게 고심했더니 늘 새것 같아요.” 기지장 수녀의 언급처럼 이제 막 준공한 건물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깔끔하다. 지난해부터는 (재)마리아수녀회 소속 수녀 5명이 오전 6시 아침 기도와 오전 7시 식사를 끝낸 뒤 ‘기지 1동’으로 출동해 층층이 청소까지 도맡고 있다니 더욱 성심이 느껴진다.총 3개 동으로 구성된 기지1968은 마리아수녀회 소속 수녀 13명이 관리 중이다. △반반피자 만들기 △나무상상놀이 △가족반려식물 만들기 △디지털 캐리커처 △레고공학 자동차 등 20여 개로 구성된 단체 체험 프로그램은 전문 강사진 몫이다. 클래스마다 최대 18명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메인 강사 1명과 보조강사 2명이 배정된다. 요리·목공 프로그램 인기가 특히 높아서 체험 희망 학생 간에 가위바위보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지난 19일 오전 기지1968에서 만난 부산디지털고 1학년 학생(115명 참여)도 마찬가지였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겨 목공 수업에 참여한 이희연 학생은 이날의 목공 주제 ‘선물’에 맞춰 친구와 서로 나눠 가질 2개의 ‘이니셜 키링’을 완성했고, 이만기 학생은 평소 멀리 계신 부모님을 대신해 자신을 돌봐주시는 할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하트 장식품’을 만들었다. 2시간 만에 ‘뚝딱’ 완성한 ‘선물’을 들고 기지1968을 나서는 이들의 얼굴은 기쁨 그 자체로 빛나 보였다.목공 수업 메인 강사 박태홍 작가도 “학생들이 재밌게 체험하고, 기쁜 모습을 보일 때 가장 보람 있다”고 말했다. 기지장 수녀는 “이게 직업과 연관이 되려면 심화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말 맛만 보고 가는 원데이 클래스 성격이라 그게 좀 고민”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알로이시오’와 ‘1968’에 담긴 의미기지장 수녀가 말한 고민이 앞으로 기지1968이 풀어가야 할 숙제이기도 했다. 사람에게 고유한 이름이 있듯, 시설 명칭에도 그곳의 정체성과 역사가 집약된다. 알로이시오 중·고등학교가 문 닫은 자리에 리모델링을 통해 들어선 ‘알로이시오’와 ‘1968’이라는 시설 명칭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겠다.‘알로이시오’는 마리아수녀회·소년의집·그리스도회 설립자인 미국 출신의 소 알로이시오(본명 알로이시오 슈월츠, 1930~1992) 이름에서 유래했다. 기지1968이 알로이시오 신부의 삶의 철학, 즉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향한 헌신과 봉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가톨릭교회는 2015년 그를 ‘가경자’(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신앙과 덕행이 뛰어난 사람이 죽었을 때 그에게 내리던 칭호)로 선포했을 정도이다.‘1968’은 알로이시오 신부가 학교 사업을 시작한 해를 상징한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1964년 마리아 수녀회의 전신인 ‘마리아보모회’를 창립한 이후, 수녀들과 함께 부모 없는 아이들을 거두고, 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1968년 학교(아미고등공민학교)를 설립했다. 이 연도는 단순한 구호 활동을 넘어 ‘정규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자립을 돕기 시작한 중요한 시기이며, 시설의 근본적인 설립 정신을 대변한다.“교육은 알로이시오 신부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립의 중요한 기본 토대였습니다. 잠자리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해결한 아이는 누구라도 학교에 가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신부님 생각이었죠. 기지1968의 운영 모토가 ‘삶의 기본기’를 가르치고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데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요.”■이색 명소 ‘유니크베뉴’에도 선정지난주엔 기지1968이 부산 유니크베뉴에 선정됐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졌다.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가 선정하는 유니크베뉴는 마이스 전문 시설은 아니지만 관련 행사 개최가 가능하면서도 지역 특색을 잘 반영한 장소다. 이번 유니크베뉴 신규 선정으로 기지1968은 단체 학생 진로 체험뿐 아니라 국내외 성인들의 소규모 그룹 방문도 점차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벌써 H투어 등에서 상담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유니크베뉴 선정과 별도로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해외 6개국(필리핀 과테말라 브라질 온두라스 탄자니아 멕시코) 18개 학교 중 하나인 ‘필리핀 소년의 집’ 졸업생 한 명은 내년 필리핀 교사 연수를 기지1968에서 진행하고 싶다고 알려와 의논 중이다.“알로이시오 신부님이 생전에 청소년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셨기 때문에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이 최우선이긴 하지만, 일반 성인 그룹과 해외 방문자 워크숍 등으로도 시설을 점차 개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부님이 평소 생각하시던 소명 의식과 뜻을 널리 전파하는 것도 중요할 테니까요.”사실 학생 단체 방문 수요가 많은 주중 평일에는 일반 성인 그룹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지만, 여름·겨울방학이 되면 학생 수요가 줄어들어 여유가 있다. 이런 때 성인 소규모 그룹이나 노인복지관 같은 단체 프로그램, 기업체 단체 탐방이 채워지면 좋을 듯싶다.시설 자체는 성인들이 활용하기에도 너무나 훌륭하다. 방음 시설이 갖춰진 음악활동실, 지역 주민에게 개방된 도서관, 소규모 음악회나 출판기념회, 강연장으로 활용해도 좋을 법한 알로이시오홀, 소규모 명상 공간과 옥상도 탐났다. 지난해 연말 부산의 한 포럼에선 알로이시오홀에서 콘서트를 즐긴 뒤 생연어구이 코스 요리와 와인을 곁들인 모임을 개최했는데 참석자들의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한 복지 단체 어르신들은 단체 목공 수업을 하면서 ‘약 상자’를 만들었는데 다들 만족도가 높았다.아시아예술협회 사무실과 지역 작가 6인이 작가 스튜디오로 활용 중인 ‘기지 3동’은 조만간 석면 제거 공사가 끝나는 대로 전시 공간도 새로 만들 예정이어서 또 다른 변신이 기대된다.■고 이태석 신부·최민식 사진가 인연도이번 취재를 하면서 아프리카 남수단(당시 수단)에서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펼치다 선종한 고 이태석(1962~2010) 신부와 알로이시오 신부 인연도 다시 듣게 됐다. 이 신부는 알로이시오 신부가 천주교 부산교구 송도 본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은 그해에 태어났고, 엄마 등에 업혀 송도성당에 다니며 유아세례를 받았으며, 알로이시오 신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호 사업을 펼쳐 나갈 때 아주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훗날 의사가 된 이 신부가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어릴 때부터 간직했던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대한민국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가난하고 소외된 서민들의 삶을 기록한 고 최민식(1928~2013) 사진가는 일본에서 귀국한 직후인 1957년 알로이시오 신부가 운영하는 ‘소년의 집’ 전속 사진사로 고용되면서 본격적인 사진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미국에 보내 원조금을 모금했고, 이를 통해 ‘소년의 집’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었다. 이런 공로 등으로 알로이시오 신부는 1983년 막사이사이상을 받았고, 1984년과 1992년 두 번에 걸쳐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마리아수녀회는 최민식 사진가와 알로이시오 신부가 동시에 찍은 1950년대 후반 사진 다수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사진전을 열어도 좋겠지만, 아직은 여유가 없어요. 기지1968도 수익성을 바라고 운영하는 공간은 아니지만, 어떤 한 분의 뜻이 현실을 바꿔놓았듯 이 공간이 과거에서 미래를 연결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면 좋겠다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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