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을 올리니 점점점 딴 세상…
60대 요티의 세계일주 항해기
405일간 혼자서 요트를 타고 세계를 일주한 여성이 있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마리나에서 시작해 전남 목포 마리나까지 1만 7000해리가 넘는 길고 긴 바닷길. 지중해·대서양·태평양을 건너 17개국에 걸친 대항해였다. 2018년 김영애 선장이 60을 바라보는 나이로 이뤄낸 놀라운 기록이었다. 한국인 가운데 요트로 세계 일주를 한 사람은 한 손에 꼽히고, 여성으로서는 김 선장이 최초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해양대 김태만 교수의 권유로, 김 선장이 최근 부산의 호밀밭 출판사에서 <하늘과 바다 사이 돛을 올리고>를 내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해양수도 부산이 귀 기울여야 할 소중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전북 전주까지 찾아갔다.김영애 씨는 우울증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현모양처가 삶의 목표인 평범한 주부였다. 힘들어할 때 남편이 권유해서 패러글라이딩을 시작했고, 그게 이내 삶의 전환점이 됐다. 스킨스쿠버, 웨이크보드, 스노보드, 스키, 승마 등 거의 모든 레저에 도전했다. 스킨스쿠버를 하면서 바다에 빠졌다. 요트는 직접 항로를 계획하고, 바람을 읽고, 나를 바다에 온전히 맡기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싶어서 배웠다. 요트로 하는 세상 탐험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자,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그렇다고 405일간 나 홀로 항해를 하는 사람은 세상에 드물다. 김 선장은 “그 항해가 삶의 전환점이자, 스스로의 한계에 정면으로 맞서는 과정이었다”라고 말한다. 항해 중에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하는 강력한 태풍을 만나기도 했다. 고난과 역경은 이겨낸 자만이 얻는 깨달음이 있다. 날짜 변경선을 건넌 뒤 항해 일지를 쓰다 하루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제서야 시간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된다. 남태평양 서사모아에 닿았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새해를 맞이했다. 해 떠오르기 직전 완벽한 정적 속에서 시간을 건넌 사람에게만 와닿는 ‘시작의 감각’을 느꼈다.바다를 건너 17개국 50여 곳에 기항하려면 외국어도 잘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리나에서는 다 영어를 쓴다. 그는 영어를 보통 수준으로는 하지만 그렇게 잘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언어를 썩 잘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소통하고 친구도 될 수 있다. 어느 곳에서든 인간적이고 진정성 있게 사람을 대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를 통해 깨우치게 된다.망망대해에서 밥을 너무 잘 챙겨 먹는 대목도 신기했다. 혼자 항해하면서 생일날이면 미역국, 설날이면 떡국, 정월 대보름이면 오곡밥을 먹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만의 항해 중 잘 먹는 비법을 소개한다. 배에서 잡은 생선은 오래 먹기 위해 소금물에 절였다가 말린다. 열무 새싹을 준비한 화분에다 길러서 먹는다. 진짜 참치 넣어서 끓이는 김치찌개는 참치캔하고는 비교가 안되는 별미다. 특히 황다랑어로 끓이면 맛이 좋다. 잘 먹고 건강해야 집에 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활신조였다. 그는 점심 먹으면서도 저녁 메뉴 이야기를 한다는 전주 사람이었다.세계 최대 대양 횡단 요트 랠리로 불리는 ARC(Atlantic Rally for Cruisers) 참가기는 감동이 몰려왔다. 이 대회는 카나리아 제도의 라스팔마스에서 출발해 세인트루시아의 로드니 베이까지 대서양을 횡단한다. ARC 대회는 경쟁보다 교류와 경험 공유에 중점을 두는 점이 달랐다. 사실 우리는 무슨 대회를 하든 1~3등에게만 관심을 가지지 않는가. 한국의 요티(요트족)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 배 얼마짜리예요?’다.그가 참가한 대회에서는 그물에 걸린 거북이를 구하고 치료해 준 영국 요트가 가장 큰 상을 받았다. 참가자들은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한, 가장 작은 요트를 기립 박수로 1등보다 더 열렬히 환영했다. 세 살배기 최연소자가 참여한 요트, 최고령 82세가 탄 요트도 축하를 많이 받았다. 김 선장도 한국 요트 최초로 참가해 ‘KAPRYS AWARD’ 상을 탔다.그가 보여준 바다 사진은 눈이 부셨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김 선장은 남태평양 코스라에 항해 중에 만난 무풍지대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꼽았다. 무풍지대 항해는 커다란 원반 위에 돛단배 하나가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하늘의 별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살금살금 움직이다, 고요한 바다로 쏟아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사람들이 그런 걸 보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적도 부근 무풍지대는 범선 시대에는 배가 몇 주 동안 머물며 표류하는 일이 잦아 뱃사람에게는 공포의 지역이었다. 선원들은 굶어 죽고, 배는 해류를 따라 떠다니는 유령선이 되었던 무풍지대가 그렇게 아름답다니 참 아이러니하다.외국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요티가 많다는 소리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가 카리브해 산블라스에서 만난 요트 20여 척에는 전부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생활 요티’들이 타고 있었다. 할아버지 선장과 할머니 크루 3명을 태운 요트 라베찌호가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가던 모습도 보기 좋았다. 개하고 둘이서 항해하는 할아버지도 심심찮게 만났다. 나이가 많으면 요트 타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에게 요트는 집이었다. 김 선장은 “내가 만난 사람들은 퇴직하면 항해하든 걸어서든 거의 다 앞으로의 즐길 거리를 위해서 살더라”며 “반면에 우리 한국 사람은 퇴직하면 손주에게 베풀 줄만 알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라고 아쉬워했다. 나라는 존재가 참 소중한데, 우리는 왜 나한테 투자를 잘 못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3만 6600달러로 11년째 3만 달러에 머물러 있다. 소득 4만 달러 시대가 되면 요트가 대중화되면서, 골프처럼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김 선장은 “집을 옮기려면 몇 날 며칠을 힘들게 이삿짐을 싸야 하지만 요트는 로프만 풀면 마음에 드는 나라에서 먹고 살 수 있다”며 “요트라는 떠다니는 집에서 한번 살아 보라”라고 권한다. 요트를 ‘제주 한 달 살기’처럼 생각하면 좋겠다는 것이다.구체적으로 5060세대들을 데려다가 졸업 여행 식으로 항해술을 가르쳐 보자고 제안했다. 요트 한 척 빌리는 데 일주일에 500만~600만 원이면 된다. 그는 “요트에서 먹고 잘 수가 있으니 서너 명씩 나누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며 “이렇게 요트 여행을 하다, 체질에 맞다 싶으면 그때 요트를 살 수도 있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아쉽기만 하다. 김 선장은 배를 고치기 위해 부산 수영만 마리나에도 다녀갔다. 그가 기억하는 수영만 마리나는 술 마시며 노는 곳이었다. 정박한 요트에서 춤을 추고 노는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다고 했다. 노래방에 와인바를 설치하는 등 보여주기 위한 요트만 많지, 제대로 항해하는 배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럽의 마리나는 그렇지 않은데 한국은 진짜 요티들마저 욕먹는 상황이 안타깝다. 외국의 마리나는 오물도 못 버리게 해서 정말 깨끗하고, 지역경제를 생각해 요트에서 잠을 못 자게 하는 곳까지 있다는 것이다.김 선장의 항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음 계획은 인도양과 남극. 인도양은 스킨스쿠버의 천국으로 불리는 곳이다. 산호초, 고래상어, 만타가오리, 바다거북, 돌고래 등 다양한 생물이 산다. 스쿠버 때문에 요트를 시작했으니 인도양에 들어가 그들을 꼭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김 선장은 <하늘과 바다 사이 돛을 올리고>를 일곱 살 손주 재원에게 바친다고 했다. 손주가 태어났을 때도, 돌잔치 때도 바다에 있어서 챙겨주지 못한 야속한 할머니다. 기항지마다 손주를 생각하며 선물도 샀지만,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는 “아이가 언젠가 세상을 향해 첫 항해를 준비할 때 이 이야기가 작은 나침반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당시에 따뜻한 사랑으로 품는 것도 좋지만, 아이가 커서 큰 선물을 받으면 더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김 선장은 뼛속까지 탐험가이고 방랑자였다. 헤어질 때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집에 가지도 못한다.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병원에 가둬놓지 않는가. 그러다 죽으면 장례식장에 데려다 놓는다. 이틀 정도 있다가 화장시켜 추모공원 단지에 이름표 붙여 올려놓는다. 그 단지 속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귀신도 답답해서 못 하겠다. 나는 돌아다니면서 살 테니, 아이들에게도 찾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지금도 세상 밖을 구경하고 싶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나는 내가 행복하면 된다.”경북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옛 대본초등학교 폐교 부지에는 문무대왕 역사관이 곧 문을 연다. 그는 이곳에 항해에 사용했던 물건들을 모두 기증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김영애 전시관이 10월에 선을 보인다.
“우량아 대회 폐지 후
의학 기반 새 행사 론칭”
우량아 선발대회라고 하는 추억의 행사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24년 시작돼 1983년까지 무려 60년간 계속된 행사였다. 1970년대에는 전국 예선을 거쳐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본선대회가 열렸는데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참석할 정도로 인기였다. 바둑계의 이창호 9단, 연예인 주영훈 등이 이 대회 출신이라고 한다.그때나 지금이나 아기는 소중한 존재다. 저출생이 범국가적인 해결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우량아 선발대회를 지금 시대에 맞게 리뉴얼한 ‘헬시 베이비 페스티벌’이 오는 9월 5, 6일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다. 우량아 선발대회가 없어진 후에 의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한 완전히 새로운 베이비 선발대회다. 헬시 베이비 페스티벌의 개최 배경과 심사 방식에 대해 알아본다.■역사 속으로 사라진 우량아 선발대회우량아 선발대회가 전 국민적인 행사가 된 것은 분유회사와 방송국이 참가하면서부터다. 1971년에 문화방송이 주관하고 남양유업 후원으로 ‘제1회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가 개최됐다.대회는 6~24개월 된 아기들에게 출전 자격이 주어졌다. 건강한 아이를 선발하기 위해 머리와 가슴둘레의 균형, 혈색, 근육과 골격 발달, 치아 수 등도 꼼꼼히 심사했다.그런데 해가 갈수록 대회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흐른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분유회사가 후원하다 보니 우유 섭취를 통해 건강한 아기를 키우라는 메시지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대회 전후로 분유 회사들의 경쟁도 아주 치열했다. 대회가 끝나면 분유회사들은 ‘1등 아이가 우리 회사 분유를 먹고 1등을 했다’며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우승자에게는 1년 치의 분유와 상금이 선물로 주어졌고, 분유 광고 모델이 되기도 했다.잘못된 인식과 편견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분유회사가 후원을 해서인지 모유보다 우유가 영양적으로 우수하고, 우유를 먹는 것이 문화적이고 세련되었다는 편견을 심어준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결국 1983년 행사를 마지막으로 우량아 선발대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헬시 베이비 페스티벌 심사 기준은과거의 우량아 선발대회는 지금으로 보자면 비만 아동을 뽑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포동포동한 아기들이 선발됐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가 곧 우량아라는 잘못된 인식이 반영됐던 것이다.헬시 베이비 페스티벌은 우량아 선발대회와는 심사 기준이 다르다. 평가 항목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건강한 아기’에 대한 선발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소아과 산부인과 등 전국의 저명한 의료진들이 심사에 직접 참가했다.헬시 베이비 선발대회 참가자는 3가지 서류를 우선 제출해야 한다. 영유아 건강검진 문진표, 결과통보서, 영유아 발달선별검사 결과표 등인데 이들 자료에는 아기들의 건강 정보가 아주 자세하게 담겨 있다.그리고 부산백병원에서 진행하는 예비 심사에서 문진과 아동 발달 상태를 파악하는 과정을 거친다. 성장 발달이 제대로 되었는지, 그리고 아기와 엄마 간의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는지 등을 살펴본다. 이와 함께 자연분만을 했는지, 모유수유를 어떻게 했는지, 아기와 엄마가 한 방에서 생활하는 모자동실 여부 등에 대한 체크도 이루어진다. 미숙아와 다둥이의 경우에는 임신과 출산 과정이 상대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것도 심사 과정에서 감안된다.심사위원장을 맡은 부산백병원 신손문 소아과 교수는 “의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개념의 베이비 대회가 될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행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신 교수를 포함해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한다. 대한모유수유의학회 이우령 회장, 부산소아청소년과학회 정미림 부회장, 대한소아신경발달행동연구회 은백린 회장, 한국아동간호학회 구현영 회장, 토닥토닥마음센터 이순행 센터장, 인제대 간호대학 오진아 교수가 심사를 자청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본선 진출자 20명 중에서 튼튼상, 씩씩상, 뿜뿜상을 시상할 예정이다.헬시 베이비 선발대회가 생후 9~12개월 아기를 대상으로 한다면, 큐티 베이비 선발대회에는 생후 13~36개월 사이의 아이가 참가한다.귀여운 아기를 뽑는 대회다. 모든 아기가 귀엽겠지만 그중에서도 잘 웃는 귀여운 아기, 개성이 넘치는 아기, 부모와의 유대가 좋은 아기를 특별히 선발할 예정이다. 방긋미소상, 개성만점상, 꽁냥꽁냥패밀리상 등을 시상하며 최고 상금은 100만 원이다. 본선 진출자 20명 모두에게 소정의 출산 응원금이 전달된다. 큐티 베이비 선발대회는 9월 5일 오전 11시, 헬시 베이비 선발대회는 다음날인 6일 오후 2시에 시민건강박람회(가족행복 건강아이 프로젝트) 행사장 메인 무대에서 열린다.■부대행사와 풍성한 경품행사시민건강박람회 행사장 입구 앞쪽에 마련되는 부산시 가족행복 정책홍보관에서는 부산시의 결혼, 임신, 출산, 육아 정책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부산시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즉석 퀴즈를 통해 푸짐한 경품도 제공할 예정이다. 가족놀이 체험관에서는 오징어게임에 소개된 딱지치기, 팽이돌리기, 비석치기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다. 팝업 포토 스튜디오에서는 6가지 테마에 맞는 소품을 활용해 가족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시민참여 팝업 존도 운영한다.부대행사도 다양하다. 방송인 경성대 이인혜 교수의 ‘출산 후 20kg 감량 이렇게 성공했어요’ 특강, ‘키쑥 살쏙’ 어린이 건강댄스, 파파들의 초보 육아 탈출기, 베이비 마사지 특강 등이 준비되어 있다.전시장에는 유모차, 카시트, 유아교재 등 다양한 유아용품 홍보관도 마련된다. 사전 등록자 600명에 한정해 선착순으로 여행용 아기세제와 마사지 크림 선물세트를 증정한다.
부산의 밀면 다대기,
넣어 먹어? 빼고 먹어?
여름은 밀면의 계절이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 밀면 장사는 여름 한 철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름난 밀면집 부산 동래구의 ‘사철냉면’이란 상호에는 우리는 다른 집과 달리 사계절 장사한다는 뜻이 담겼다. 택시 기사들이 즐겨 찾아 ‘택슐랭’에 선정된 서구 영남냉면밀면은 지금도 여름철에만 영업한다.최근 한 매체의 ‘부산 밀면 베스트10’ 선정 작업에 참여했다. 밀면의 계절을 맞아 최고 밀면 선정기 그 뒷이야기를 시원하게 풀었다.맛집 검색 플랫폼 ‘다이닝코드’에 따르면 부산의 밀면집은 총 632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10곳을 선정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밀면은 가격이 냉면의 절반에 불과하고, 동네마다 각자가 좋아하는 밀면집이 따로 있지 않은가. 이틀 간의 일정 중 기자가 참여한 첫날만 해도 영남냉면밀면(서구)-대가면옥(사하구)-삼성밀면(사상구)-개금밀면(부산진구)-사철밀면(동래구)-해운대 가야밀면(해운대구)-국제밀면(연제구) 등 7곳을 하루에 도는 가위 ‘토 나오는’ 수준의 일정이었다.베스트10 선정은 각자가 1~10위까지 순위를 매겨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패널끼리 함께 가서 맛보지 않았더라도 꼭 들어가야 할 밀면집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했다.기자는 연제구 국도밀면을 1위로 추천했다. 이곳의 밀면은 한 그릇에 단돈 4000원! 한 끼 식사 가격으로 부산을 넘어 전국 최저가가 아닐까 싶다.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육수와 면이 한 그릇에 1만 원씩 하는 유명 밀면집에 비해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 곱빼기가 5000원인데, 단골만 찾는 ‘반곱’도 있었다. 한여름에 찾는 밀면, 시원하면서도 서민적인 분위기에 먹는 음식이 아니었던가.기자는 사실 결과보다 선정 과정에서 전문가 패널끼리 주고받았던 밀면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흥미로웠다. 냉면으로도 이름난 유명 고깃집의 류나영 전 대표가 ”밀면에 든 다대기가 싫다. 왜 그렇게 다대기를 올려주는지 모르겠다. 나는 밀면을 받고는 다대기를 안 버무리고 그냥 육수만 먹었다”라고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는 또 “서울에서 밀면을 먹으러 갔는데 한약재 맛이 너무 많이 나서 못 먹겠더라. 부산 내호냉면에서는 맛있게 먹었는데 그 육수 맛이 많이 다른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음식강산>의 저자 박정배 작가도 밀면 육수에서 한약재 맛이 너무 난다며 동의했다. 밀면 육수의 한약재 맛, 그동안 “몸에 좋겠지”라며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먹었는데….그러자 음식평론가 최원준 시인은 외지인에게 자신의 밀면 먹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나섰다. 최 시인은 “나는 고명처럼 올려주는 다대기를 다 걷어내고 먼저 육수 맛을 본다. 그렇게 먹다가 다데기를 조금씩 섞어서 입맛에 맞춰 먹으면 된다. 안 그러면 육수가 너무 달다”라고 말했다. 참고로 기자의 경우는 냉육수를 별도로 요청하는 편이다. 다대기가 들어가지 않은 원래 상태의 냉육수를 먼저, 그다음에 다대기를 푼 육수 맛을 봐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조선일보 김성윤 음식전문기자는 의외로 다대기에 호감을 표시했다. 김 기자는 “전 국민 대상으로 보면 냉면보다 밀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 같다. 밀면은 달착지근하고 쫄깃쫄깃해서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맛이 다 들어 있다. 다대기 넣은 게 낫고, 그거 없이는 안 먹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맛집 블로거 ‘울이삐’ 김지현 씨는 “대부분 주는 대로 먹지만 점차 다대기가 빠진 밀면을 왜 먹느냐는 파와 다대기는 따로 먹어야 한다는 파가 ‘부먹’과 ‘찍먹’처럼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것 같다. 새로 문을 열거나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하는 밀면집은 다대기 따로, 다대기 많게 혹은 작게를 선택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고메밀면이 대표적이다.한약재 맛이 나는 밀면 육수도 그 실상을 알고 먹는 게 낫다. 육수에 감초, 황기, 계피를 넣어서 한약재 맛이 난다. 한약재 맛이 나는 육수는 가야밀면이 원조로 꼽힌다. 최 시인은 “냉면에서는 메밀 향이 난다. 하지만 밀가루로 만든 밀면은 면의 품질도 좀 떨어지고 밀가루 냄새가 나자 한약재를 넣었고, 그게 인기를 끌면서 한약재 육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밀면의 최대 약점 중의 하나가 고명과 꾸밈이라는 견해도 귀담아들을 만했다. 류 전 대표는 “밀면의 면은 전분이 많아서 담았을 때 똬리가 예쁘게 안 떨어지고, 철퍼덕거리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최 시인은 “나는 밀면 위에 고명으로 올린 수육은 너무 터벅터벅하고 별 맛도 없어서 안 먹는다. 육수를 뺀 고기를 위에 올려서 그렇다”라고 말했다.그런데도 부산 사람들은 왜 여름만 되면 밀면집 앞에 줄을 서는 것일까. 김지현 씨는 “오래된 밀면집들은 대체로 육수가 달고, 면 익힘도 좋지 않지만 손님이 많다. 추억으로 먹는 집들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부산 사람들은 유명한 밀면집을 찾아가서 먹는 대신 자기 동네 자기 입에 맞는 집에 간다”라고 말했다. 음식 전문 김 기자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부산 대표 음식이라고 하면 돼지국밥과 밀면인데, 두 음식에 대해서 부산 사람들의 태도나 자세는 완전 달랐다. 돼지국밥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느껴졌고, 밀면은 소개하기 부끄러워하는 느낌이 엿보였다. 내가 보기에 밀면도 좋은 대중음식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최 시인은 “밀면은 최선의 음식이 아닌 차선의 음식이지만, 같은 값이면 넉넉하게 함께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공유의 음식이자, 같은 양이라도 값이 싸 여러 사람을 먹이는 배려의 음식이었다. 더 많은 부산 사람을 만나서 밀면을 좋아하는 이유를 찾아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미쉐린가이드는 지금까지 밀면을 외면하고 있다. 힘든 시절 우리를 지켜준 밀면이 좀 더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국제밀면, 대가면옥, 사철밀면, 춘하추동이 1~4위에 올랐다. 이들 밀면집들은 공통적으로 새로운 밀면의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4개 업체의 평균 밀면 가격은 8500원이었다. 박 작가는 “내호냉면, 가야밀면, 개금밀면 같은 1,2세대에 이어 요즘 인기 있는 이들 3세대 밀면집들은 실향민의 한과 서러움이 모두 빠져나간 채, 음식으로만 승부하는 시대의 세련된 맛을 내고 있다”라고 총평했다.
‘왈츠의 왕’ 탄생 200주년,
빈 전역서 다양한 기념행사
올해는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탄생 200주년이다. 오스트리아는 뜻깊은 해를 맞아 1년 내내 빈 곳곳에서 다양한 기념행사를 열린다. 조금 과장해서 빈 전역이 200주년 축하 분위기 일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생가와 신혼집슈트라우스 2세의 행적을 어떻게 따라갈까 고민하던 차에 마침 그가 태어난 생가가 숙소인 상수시호텔 근처라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른 아침 식사에 앞서 산책 삼아 생가인 레르헨펠트 슈트라세 15번지까지 걸어갔다.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1825년 10월에 태어난 곳은 지금은 빈미술사박물관과 시청 근처이지만 당시에는 빈 외곽이었다. 물론 그때 건물은 완전히 사라졌고 지금은 새 건물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1층은 자전거 판매점이고 2~4층은 주거용인 모양이다. 그래도 2층 외벽에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여기서 태어났다’는 명패가 붙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사진 한 장 찍을 여유를 준다.아침을 든든히 챙겨먹은 뒤 지하철 1호선에 오른다. 네스트로이플라츠역에 내리면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1863부터 1870년대 중반까지 10년가량 살았던 저택 ‘요한 슈트라우스 아파트’가 나온다. 그는 1862년 성 슈테판 대성당에서 결혼한 7세 연상의 성악가 제티와 이곳에서 살았다.서로 사랑했던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음악적으로나 인생이라는 측면에서나 매우 유익한 시기였다. 그가 ‘블루 도나우’로도 불리는 대표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작곡한 것도 여기에서 살 때였다. 이 곡이 초연된 것은 인근 온천시설인 ‘다이애너바트’ 공연장이었다.요한 슈트라우스 2세 부부가 살았던 곳은 저택 2층이었는데 지금은 박물관이 됐다. 다른 층에는 현지인이 살기 때문에 관람객은 대문 앞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아파트’ 벨을 눌러야 들어갈 수 있다. 사실 이곳은 고작 방 3개와 거실 등으로 이뤄진 작은 공간이어서 둘러보는 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그래도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사용했던 바이올린, 캐비닛, 피아노, 서서 작곡할 때 사용한 입식 책상 등 여러 비품이 비치돼 있다. 또 그가 아내와 함께 살았던 옛 모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고 그의 음악을 헤드폰으로 들을 수도 있어 시간을 두고 머무를 가치는 충분하다.■카페 돔마이어와 박물관요한 슈트라우스 2세 아파트에서 나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이번에는 쇤브룬궁전 쪽으로 향한다. 물론 그곳이 목적지는 아니다. 지금 가려는 곳은 궁전을 조금 지난 곳에 있는 히칭 지역의 ‘카페 돔마이어’다. 이곳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열아홉 살이던 1844년 데뷔 연주회를 열었던 장소였다. 원래 그가 데뷔하기 12년 전 문을 연 화려한 공연장을 가진 카지노였다. 개장 초창기에는 그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가 수시로 연주회를 개최하곤 했다.카페 돔마이어는 지금은 카페 겸 제과점으로 운영된다. 입구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얼굴과 데뷔 사실을 새긴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아직 오전인데도 카페 안은 물론 바깥쪽 자리도 나이 든 손님으로 북적거린다.마침 커피가 당기던 참이라 가게에 들어간다. 커피 한 잔을 시키려는데 유리진열장 안에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초콜릿’이 보인다. 주저하지 않고 초콜릿도 함께 주문한다. 마침 빈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거리를 살핀다. 정말 조용한 동네라는 게 한눈에 느껴진다. 이런 곳이라면 ‘빈 한 달 살기’ 같은 이벤트를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다시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시내로 돌아간다.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등 19세기 말~20세기 초 ‘빈 분리파’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만든 빈분리파전시관 바로 맞은편에 있는 ‘요한슈트라우스2세박물관’에 가기 위해서다.이 박물관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탄생 2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빈에 그의 인생, 음악을 한눈에 조명할 수 있는 박물관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여론에 따라 지난해 연말 문을 열었다. 박물관 자료를 찾아보다 홈페이지에서 이곳의 정체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문구를 발견했다.‘리버풀에는 비틀즈가 있고, 멤피스에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있고, 빈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있다.’요한슈트라우스2세박물관은 각종 자료와 사진은 물론 첨단기술과 조명 등을 활용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인생, 음악을 환상적으로 꾸민 공간이다. 2개 층인 박물관은 모두 8개의 주제를 가진 방으로 이뤄졌다.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면서 천천히 돌다보면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멀티디멘션 왈츠’라는 시설이다. 환상적인 영상, 조명 아래 간이의자에 앉아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음악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한 중년 남성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음악과 영상 그리고 분위기에 푹 빠졌다.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대표곡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황제 왈츠’ 등 왈츠곡은 물론 ‘플레더마우스’ 등 오페레타의 아리아도 흘러나온다. 어깨가 절로 들썩여지고 다리가 움찔거리는 걸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벽 쪽에 선 두 노부부는 손을 맞잡고 가볍고 조심스럽게 왈츠를 즐긴다.■슈베르트 생가칼스플라츠역 인근에서 트램 D를 탄다. 첫날 베토벤박물관에 갈 때 지나갔던 카니시우스가세역에서 내린다. 이곳에 온 목표는 ‘슈베르트 생가’다. 빈에서 슈베르트의 삶을 볼 수 있는 시설은 이곳뿐이므로 안 가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슈베르트가 여기서 태어나고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생가 맞은편 골목에는 슈베르트가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슈베르트생가는 매우 작다. 밖에서 주변 건물과 비교해보면 생가 건물이 왜소해 보일 정도다. 그의 가족이 살았던 건물은 가난한 소시민 16가구 80여 명이 세를 들어 살던 곳이었다. 부잣집이 아니었으니 건물이 작을 수밖에 없다.지금은 건물 전체가 슈베르트생가로 꾸며졌지만 사실 슈베르트 가족은 2층의 방 하나만 빌려 여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 그나마 아버지가 교사여서 다른 집보다 돈을 조금 더 번 덕분에 슈베르트 가족이 빌린 방이 가장 컸다고 한다.슈베르트생가는 가운데에 자리 잡은 정원을 건물이 ‘ㄷ’ 형태로 둘러싼 모양이다.슈베르트 가족이 살았던 큰 방 한가운데에는 책상이 놓였다. 의자에 앉아 장치를 조작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설이다. 책상 맞은편 벽에는 슈베르트 초상화가 걸렸고, 그가 사용했던 깨어진 안경은 유리보호시설 안에 비치됐다. 원래는 다른 가족이 살던 옆방에는 피아노 한 대가 놓였고, 그 옆방에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시설이 설치됐다. 여러 방 벽 곳곳에는 다양한 작가가 그린 그의 초상화가 걸렸다.글·사진/빈(오스트리아)=남태우 기자
예술가 모인 ‘현대미술 생산 기지’
지역 대표 문화 상징 되다
일본(토카스 레지던시·코가네초 아티스트 레지던시)과 대만(트레저힐아티스트빌리지) 사례와 달리 중국에선 개인 창작 스튜디오가 모여 있는 예술촌과 레지던시 등을 돌아보면서 부산의 홍티아트센터가 하나로 그칠 게 아니라 두서너 개로 늘어나 예술지구(촌)를 형성하게 되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예술 생태계를 구축하지 않을까 상상했다. 인구 1000만 명 이상에, GDP 1조 위안 이상인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과 같은 ‘1선 도시’만큼은 아니지만, 최근 빠르게 성장하며 1선 도시의 잠재력을 가진 ‘신(新) 1선 도시’의 맹주 중국 청두를 다녀왔다.■청두 대표 예술촌 ‘란딩예술구’중국 쓰촨성(四川省)의 성도(省都)인 청두(成都)는 중국 매체 디이차이징(第一財經)이 매년 발표하는 ‘신(新)1선 도시 매력’ 랭킹에서 11년 연속 1위를 유지하는 곳이다. 중국 서남 지역의 핵심 비즈니스 허브로서 독특한 시장 잠재력과 도시 매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두보초당, 무후사 등 유서 깊은 유적지 외에도 여유로운 도시 문화 분위기로 주목받고 있다.청두의 대표적인 예술촌 가운데 하나가 싼성향 ‘란딩(Blue Roof)예술구(이하 란딩 혹은 블루 루프)’이다. 도심에서 1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은 1500에이커(약 60만 평)에 달한다. 뉴욕 소호, 런던 사우스뱅크, 베이징 798, 상하이 M50 등이 그랬던 것처럼 블루 루프에도 개인 창작 스튜디오가 하나둘 늘어나면서 문화 공간이 형성되었고,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청두 블루 루프가 베이징 798이나 상하이 M50과 다른 점이라면, 청두는 현대미술 생산 기지 역할을 충실히 해 온 반면, 베이징과 상하이는 현대미술 거래 중심지로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란딩은 2003년 저우춘야, 궈웨이 등 4명의 유명 예술가가 청두 공항 길가의 사용하지 않는 가구공장 건물을 빌려서 스튜디오를 짓고, 블루 루프 예술센터를 설립하면서 시작된다. 이때 양철로 된 공장 지붕이 파란색이어서 블루 루프라는 별칭이 생겼다. 처음에 모인 작가들은 A구역에 있었지만, 점점 B, C, D, E구역으로 확장되면서 그 지역의 공장을 모두 임대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닭장, 돼지우리도 스튜디오로 바꾸었다. 그러나 작업 환경은 점점 더 나빠졌고, 급기야는 저우춘야 등이 이주를 결심한다.6년이 흐른 2009년 블루 루프 2기가 출범했다. 슈하오, 허더링 등 더 많은 예술가가 합류했다. 점점 중요한 예술가들이 입주했다. 쓰찬성 출신인 펑리지에와 장샤오강도 3기로 입주했다. 예술가들이 거주하고 디자인하는 건물들은 관광 명소가 되었다. 그들은 왜 그곳에 오고 싶었던 걸까. 블루 루프 10주년 기념 책에 나온 저우춘야의 회고이다. “블루 루프를 독일의 다름슈타트 예술촌처럼 만들고 싶었습니다.”예술이 큰 돈을 벌어주는 것도 아닌데, 부동산개발회사가 개입한 것도 눈길을 모았다. 부동산 개발이라고 나쁘게만 볼 게 아닌 게, 중요한 것은 개발자 마인드였다. 블루 루프를 중심으로 인근 마을에도 다양한 예술가 촌락이 생겨났다. 블루 루프에 들어오지 못한 젊은 예술가들이 많았다. 블루 루프에 입주한 이들이 약 100명인데, 반경 2㎞ 일대 마을까지 포함하면 400명 정도로 추산됐다.‘대단한’ 작가군이 속속 입주함으로써 이들과 조금이라도 가깝게 교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몰려든 젊은 예술가뿐 아니라 액자 만드는 사람, 포스터나 팸플릿 만드는 사람, 기획 일을 하는 이 등 다양한 관련 산업군이 발생했다. 회화와 조각 외에도 사진과 건축 등으로 분야도 다양해졌다.블루 루프 예술지구 내 미술관(란딩미술관 구관과 신관)이 새롭게 문을 연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꽤 괜찮은 기획 전시를 잇달아 성공시키면서 입주 작가들 명성과 입지도 높아졌다. 입주 작가는 전시 비용 할인뿐 아니라 비싼 운반 비용을 물어 가며 굳이 멀리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미술 관련 산업의 집적 효과로, 작가들이 예술 창작 활동을 더 안정적으로 펼칠 수 있다. 지난달 취재 차 미술관을 찾았을 땐 소장품 상설전과 새로운 기획전을 한창 설치 중이었다.쓰촨대 교수 출신의 류화 작가는 농위안국제예술구(Nongyuan Art District, 이하 농위안)에서 블루 루프로 스튜디오를 옮겼다. 그는 “블루 루프가 작업하기 좋은 곳이라는 명성에다 미술관도 가까이 있고, 입주 작가 교류 등 다양한 메리트가 있어서 이전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블루 루프 인기가 치솟으면서 스튜디오 가격도 오르고, 대기까지 생길 정도”라고 귀띔했다. 펑정취앤 작가는 형 펑정지에가 좋아 보여서 베이징에서 옮겨 왔다. 베이징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는 게 편치 않았고, 고향 청두에선 개인이 소유할 수 있어서였다. 형 펑정지에는 베이징과 블루 루프, 한국 제주 등에 서너 개의 스튜디오를 두고 작업 중이다.란딩미술관 왕하이보 관장은 “예술지구는 작가에게 미치는 집적 효과 외에도 산업을 선도하기도 한다”며 “특히 당대 예술은 전위적이고 탐구적이며 대중에게 신선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해 새로운 유행의 산물이 되기도 한다”며 예술촌을 긍정 평가했다. 블루 루프의 산증인인 저우춘야는 ‘란딩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한 도시에서 한두 명의 예술가만이 예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반드시 전체적인 발전을 통해 끊임없이 좋은 예술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로 예술창작 기지로서의 블루 루프를 유지하는 의의를 짚기도 했다.■청두의 다양한 레지던시블루 루프 외에도 청두에는 몇 갠가의 레지던시가 있다. 농위안국제예술구는 국제전시 기획자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일종의 전시컨벤션 기업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예술촌은 2008년 시작됐다. “'국가급’ 전시를 열어 주고 비용을 받습니다. 국가나 시 사업도 유치하고요, 사실상 이것만으로는 돈을 벌긴 어렵죠. 그래서 국제예술구 안에 찻집과 식당을 두 군데나 운영합니다. 여긴 관광명소가 되어 있습니다.” 규모의 문제이긴 하지만 전시 기획만으로 먹고사는 게 거의 해결된다는 게 놀라웠다.농위안은 현재 A구역 국제예술촌, B구역 천의촌(외식, 엔터테인먼트, 레저 , 숙박 등), C구역 예술생활체험관 등 3개 테마파크로 구성돼 총 면적은 약 15만㎡에 달한다. A존은 현재 120명의 중국 작가가 입주했다. 농위안 문화예술홍보유한회사는 2005년 설립했지만,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인 ‘NY20+’는 2008년 시작했다. 숙식은 물론이고, 예술 창작과 전시 지원을 한다. 한 달 평균 3명씩 입주자를 받는다. 판화가도 있고, 연주자도 있고, 음악가도 있다. 재미난 것은, 레지던시에 드는 비용이다. 계약상으로는, 레지던시 기간에 만든 작품의 50%를 주최 측에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두 작품을 했으면 하나를, 20작품을 했으면 10작품을 두고 가는 식이다. 전년도 12월까지 접수를 받아서 이듬해 3~12월 진행한다. 자체 기획이 들어가는 페스티벌 초청 작가는 별도이다.이 외에도 쓰촨성 10대 민간 박물관 중 하나인 쉬랴오위안 현대디자인박물관은 상호 교류 방식의 국제 레지던시(1~6개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쉬랴오위안 작가의 개인 박물관이지만, 다양한 전시 기획과 대관, 공모전을 진행한다. 푸리밍 부관장은 레지던시 목적에 대해 “새로운 스타일의 작가를 원한다”는 말로 취지를 분명히 했다. 새로운 스타일이란 재료 선택이나 작업 방식의 새로움이다. 다만, 기관 대 기관으로 ‘상호 교류’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또한 8월에는 45세 이하 청년 예술가를 지원하는 ‘아이디얼’(Ideal) 국제 공모전도 5회째 열고 있다. 공모에 선정될 경우 그룹전을 열어 주고, 문화상품화도 시도할 예정이다. 디자인박물관이지만, 회화, 조각,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룬다.민간 비영리 등록 미술관인 A4미술관은 2013년 시작한 A4 레지던시 아트센터 2026/2027 ‘오픈 콜’(공모)을 10월 31일까지 진행하고 있다. 8~10주 기간으로, 학제 간 협력을 장려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과학자, 작가, 시인, 학자, 음악가, 건축가, 디자이너, 브랜드 오너, 그리고 기타 창작자와 탐험가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청두(중국)=김은영 기자 key66@※부산일보·부산문화재단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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