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지는 이야기] 'HIV 양성' 한마디에 무너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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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훈 양산부산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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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병원에서 수술 전 검사를 받던 환자가 HIV(사람 면역결핍 바이러스, 에이즈의 원인) 감염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소식에 병원 전체가 소란에 휩싸였다. 이러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선별검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환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거나, 평온하던 가정이 불신으로 파괴되는 처참한 2차 피해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물론 나중에 ‘확진검사’를 통해서 이 결과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터지고 난 다음이다.

위에서 말한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는 의료 현장에서 검사 결과를 의학적 맥락 없이 글자 그대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사 결과 이면에 숨겨진 통계적 의미를 정확히 안다면, 환자와 가족에게 닥치는 불행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진단검사의학 전문의로서 나는 우리 사회가 이제 ‘양성’이라는 단어에 담긴 확률의 마법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별검사 양성이 반드시 확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술 전 실시하는 HIV 검사는 단 한 명의 감염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 민감도(환자에서 양성이 나올 확률)를 최대한 높여 설계되어 있다. 문제는 건강한 사람을 음성으로 판정하는 ‘특이도’에 있다. 특이도가 아무리 높아도 100%가 아닌 이상, 건강한 사람 중 극소수는 양성으로 잘못 판정되는 ‘위양성’이 반드시 발생한다.

현재 국내 병원에서 시행하는 HIV 검사의 민감도와 특이도는 약 99.9%로, 현대 의학이 도달한 최고 수준의 정확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 검사를 우리나라 일반인에게 무작위로 적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계산해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HIV 유병률은 인구 10만 명당 2명꼴이다. 만약 10만 명의 시민이 수술 전 검사를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 중 결과지에 ‘양성’이라고 찍히는 사람은 총 102명이다. 실제 감염자 2명에 더해서 건강한 99,998명 중 0.1%(특이도 99.9%의 오차)에 해당하는 100명 역시 가짜 양성 판정을 받기 때문이다.

결국 양성 판정을 받은 102명 중 진짜 감염자는 단 2명으로, HIV 검사 ‘양성 예측도’는 고작 2% 수준에 불과하다. 100번의 양성 통보 중 98번은 틀린 답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사람의 몸은 기계처럼 일률적이지 않기에 위양성이 전혀 없는 완벽한 검사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의료진은 선별검사 결과가 최종 확진이 아님을 잘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에이즈처럼 사회적 낙인이 강한 질환일수록 ‘양성’이라는 단정적 표현 대신, ‘추가 확인 검사가 필요한 반응군’이라고 설명하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더불어 전문의로서 나는 의료계에 결과 보고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제안한다. 선별검사는 양성일 때 ‘미결정’ 혹은 ‘판단 유보’라는 결과지를 발행하고 정밀 검사를 안내해야 한다. 환자가 알고 싶은 것이 ‘질병의 유무’이지, 시약의 반응이 아니지 않는가? 양성 판정자의 2%만이 실제 환자인 상황에서 ‘양성’이라고 통보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무책임할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재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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