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 1000만, 지역 활성화에도 큰 힘이 된다는 걸 느꼈죠"
“1000만 영화가 지역 활성화에도 큰 힘이 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장항준 감독) 제작사 온다웍스의 임은정 대표는 1000만 영화가 가지는 지역 활성화 효과를 강조했다. ‘1000만 관객’을 생각해본 적 없었다는 임 대표는 ‘국민 관광지’로 거듭난 강원도 영월군을 언급하며 “영화가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매개체가 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임 대표는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단종 앓이’ 신드롬을 이끈 임 대표는 “영화를 제작할 때 현장에서 영월의 기운을 느끼고 곳곳에서 감명을 받았었다”며 “지금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영월을 보면서 ‘1000만 영화가 이런 거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란 극장에서 끝나는 게 아닌, (촬영지인) 지역을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영화의 좋은 영향력에 대해서 다시 느꼈다”고 설명했다.‘왕과 사는 남자’가 1000만을 넘어 1200만 관객 수를 넘기면서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는 최근 ‘핫플’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주말엔 관광객이 몰려 인근 네비게이션이 먹통이 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임 대표는 이에 “사람들이 (영화에 그치지 않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문화를 향유하게 됐구나라고 생각한다”며 “영화가 어떤 주제가 됐든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매개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임 대표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성공할 것이란 확신은 있었지만, 1000만 영화 달성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 ‘꿈의 숫자’였다고 밝혔다. 임 대표는 “생각했던 숫자(관객 수)를 훨씬 넘어가니까 감사한 마음 밖에 없다”며 “1000만에 대한 꿈을 품기에는 (영화계가) 어려운 시기였기에 생각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1000만 관객을 생각한 적 없었던 상황에서 관객 수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1000만을 넘겼을 때가 가장 의외의 순간이었다”고 돌아봤다.임 대표는 ‘단종 앓이’의 주인공인 배우 박지훈 등에 대한 캐스팅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장 감독을 비롯해 박지훈을 봤을 때 ‘단종의 눈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새로운 배우, 그다음 세대의 배우를 스크린에 등장시키고 싶다는 마음을 영화 산업 종사자로서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유해진 선배는 아주 오랜 관계였고, 유지태 선배와도 같이 일하지는 않았지만 오래 알고 지냈다. 이번에 새로 만나게 된 배우가 박지훈, 전미도 배우”라며 “두 배우 다 연기뿐만 아니라 작품에 임하는 열정, 자세 등 모든 것이 같이 작품을 만들어가기에 좋은 파트너라는 생각에 확신을 가진 것 같다”고 전했다.임 대표는 특히 장 감독의 열정과 소통 능력이 ‘왕과 사는 남자’ 1000만 달성의 핵심 요소였다고 강조했다. 임 대표는 “장 감독은 준수한 작품을 만드는 연출자라고 생각해 왔고, 그동안 여러 작품을 지켜봤다”며 “특히 장 감독의 영화 ‘리바운드’는 기술적으로 정말 좋은 영화였다. (장 감독처럼) 실존 인물을 대하고 다루는 방식은 대한민국에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임 대표는 조심스레 차기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제작사를 이끈 지 3년째를 맞은 임 대표는 “준비했던 것들이 슬슬 완성되어 가는 중”이라며 “영화 ‘올빼미’를 했던 안태진 감독과 ‘왕과 사는 남자’ 각본을 쓴 황성구 작가와 사극 액션물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 대표는 ‘죄 많은 소녀’를 연출했던 김의석 감독과 함께 과거 경성 배경의 열차 장르물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마지막으로 임 대표는 어려운 대한민국 영화 산업을 짚으며 ‘도전’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 대표는 “영화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미래세대’가 나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며 “도전할 상황이 되어야 영화가, 영화 업계가 나아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은 ‘기회 확장’이 핵심”이라며 “지금도 많은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용기를 가지고 같이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근대. 과거의 아닌 현재의 언어로 다가오다
드라마, 영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소재가 ‘타임슬립’이다. 과거 혹은 미래로 시간대를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미쉘린 스타 쉐프가 조선시대로 가서 뛰어난 요리 실력으로 왕과 사랑에 빠진다거나 현대 의사가 과거 시대에 떨어져 당시 없던 의술로 죽어가던 사람을 살리며 사건에 휘말리는 드라마 등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일명 ‘시간 여행자’로 불리던 이들은 영상 작품 뿐만 아니라 문학 소재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2026년 현재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대를 이동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안다. 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지 과학적인 설명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대를 넘나드는 마법 같은 상황에 대한 꿈을 꾼다. 아직 타임머신은 발명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방법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대한민국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지난 2월 통영시는 100년 전으로 역사 여행을 떠나는 ‘근대역사문화공간’을 시작했다. 국가유산청의 지원을 받아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건물을 정비해 문화공간으로 변신시켰고, 공간을 이어 근대역사문화의 길도 만들었다. 서민들의 삶을 함께 한 공간에선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근대역사문화공간을 아십니까 국가유산청은 지난 2018년부터 공간 단위로 국가등록문화유산을 적극 발굴·보존·활용해, 근현대문화유산의 가치를 보존하고 동시에 지역 활성화 핵심 축으로 조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개항기부터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까지의 역사를 담은 건축물, 도시 구조를 보전 활용한 지역으로 문화콘텐츠를 통해 역사와 문화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도록 지원하고 있다. 2018년 목포를 시작으로 군산, 영주, 익산, 영덕이 선정됐고, 통영은 6번째로 지정받았다. 통영시 항남동과 중앙동 등 원도심 1만 4000㎡ 곳곳에 남아 있는 국가등록문화유산 8곳과 등록문화자원 9곳 등 총 148필지가 사업 대상이다. 우선 항남1번가길에 모인 4곳의 근대 건물을 정비해 ‘통영 근대역사길’이라는 이름으로 2월 대중에게 공개했다. 김상옥 기념관, 통영 카페, 동진여인숙, 통영근대사진전시관이 첫 시작이다. 통영시는 올해 말까지 3곳을 더해 7곳으로 늘릴 계획이며 내년 초 1곳을 더 개관해 8곳으로 완성하게 된다. 근대역사길 사업을 진행한 통영시 문화예술과는 “통영 근대역사문화공간의 특징은 복원된 건물들이 단순한 '전시'에 그치지 않고, 창작과 교류, 체험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공간의 가치는 더욱 깊어지고, 골목에 쌓인 시간은 오늘의 삶과 겹치며 입체적인 서사를 만들어낸다. 중앙동∙항남동 일대에 남아 있는 근대건축 자산들은 점처럼 흩어진 개별 자원을 넘어, 서로를 잇는 길과 면으로 연결되며 '걷는 도시'의 이야기로 완성된다”라고 설명했다. ■항남1번가길의 매력 항남1번가길의 특징은 4곳의 건물이 붙어 있어 한 번에 다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중 가장 많은 콘텐츠를 가진 곳이 김상옥 기념관이다. 1936년 목조 구조의 지상 2층 건물로 건립된 이곳은 초정 김상옥 선생이 태어나 자란 생가로 원형 그대로 보존됐다. 시조 시인 김상옥(1920~2004)은 통영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 격동의 시간을 건너며 삶의 감각과 언어를 시조의 리듬에 담아냈다. 기념관에는 김상옥 시인의 유품과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대표 시조부터 그림, 서예, 도자 작품뿐만 아니라 생전에 사용한 작업공간, 선생이 사용한 필기구와 노트, 붓도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2층의 한 방은 통영에서 김 시인과 교류했던 예술가들 이야기로 꾸몄다. 소설가 김경리, 작곡가 윤이상, 화가 이중섭이 그 주인공들이다. 애틋하고 애련한 감정이 몰려온다. 윤이상과 김상옥은 일경에게 체포돼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고 함께 서울로 도망치기도 한다. 동백림 사건으로 윤이상이 고향을 떠나 독일로 망명할 때 김상옥은 직접 빚은 도자기를 주며 “이게 다 고국의 흙으로 빚었다. 고국이 그리우면 이걸 바라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중섭은 김상옥 시인의 자택에 자주 드나들 정도로 교류가 많았다. 어느 날 김상옥 시인의 시집 출판회에 초대돼 시집 한 권을 받은 후 조용히 사라졌다. 다음 날 김 시인에게 “나는 돈이 없어 축하금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림으로 가져왔다”라며 시집에 그림을 직접 그려주었다고 한다. 1936년에 건립된 목조 가옥으로 당시의 건축적 특성을 간직한 김양곤 가옥은 카페 '통영다방'으로 변신했다. 화장실이 집 밖에 배치된 구조와 건물 뒤편에 남아 있는 우물 등 근대 가옥의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메뉴도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이다. 통영다방 바로 옆에 있는 동진여인숙은 1940~50년대 여객선터미널과 버스터미널을 오가던 사람들이 이용하던 숙박시설이다. 당시의 공간구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체험형 게스트 하우스로 활용된다. 시간이 멈춘 공간에서 하룻밤은 과거로의 여행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 구 대흥여관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운영했던 2층 규모의 여관으로 통영근대역사사진관으로 변신했다. 역사적인 건물을 찍은 사진도 아니고 예술 작품도 아닌 그야말로 서민들의 생활을 담은 일상 사진이라 오히려 친근하게 보는 재미가 있다. 근대 의상과 신발, 모자, 당시 소품 등이 다양한 형태로 준비돼 있어 방문객의 취향에 맞게 착용한 후 '근대 네 컷'을 찍을 수 있다. 역사문화거리를 비롯한 인근에 4곳의 QR코드가 부착된 벽이 있다. 4곳의 QR코드를 모으면 ‘근대 네 컷’을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 바다와 맞닿은 통영 역사길은 두 가지 소리를 품고 있다. 하나는 파도가 들려주는 현재의 리듬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남기고 간 발자국이다. 통영 중앙·항남동 일대 원도심은 그 발자국이 유난히 짙다. ‘함께 살아남기'가 곧 '함께 버티기'였던 시절, 이곳은 연대의 공간이었다. 틍영 근대역사문화공간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언어로 2026년을 사는 이에게 다가오고 있다.
몸과 마음 함께 치료 ‘구포성심병원 심(心)아카데미’ 개설
지역 주민의 몸과 마음을 함께 치유한다. 부산 북구 구포성심병원은 제15기 심(心)아카데미를 오는 4월에 개설한다고 13일 밝혔다. 심아카데미는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심아카데미 15기는 4월 1일부터 5월 27일까지 총 9주간 매주 수요일에 진행한다. 오후 4~5시는 의료 정보, 오후 3시 30분부터 5시까지는 문화 강좌를 진행한다. 9주 과정을 모두 수료하는 수강생에게는 병원장 명의의 학위증도 수여한다. △1주 신경외과 의료정보 △2주 오일파스텔 드로잉 클래스 △3주비뇨의학과 의료정보 △4주 노후생활 부동산 연금 △5주 신장내과 의료정보 △6주 영양팀 문화정보 △7주 정형외과 의료정보 △8주 노래교실 △9주 재활치료법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심아카데미 참가자 모집은 오는 27일까지 진행하며, 전화 또는 원내 방문으로 신청받는다. 구포성심병원 박시환 병원장은 “심아카데미는 환자와 지역민들이 의료정보 및 문화생활정보를 즐겁게 배우고 소통하며 삶의 활력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되었다”라며 “이번 15기 역시 알찬 의료정보와 풍성한 문화 프로그램을 준비했으니 지역 주민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2026년 프리츠커 건축상에 칠레 건축가 스밀얀 라디치 클라크
바람. 빛. 돌. 나무. 시간. 이러한 요소는 칠레 산티아고 출신의 크로아티아계 건축가 스밀얀 라디치 클라크(Smiljan Radic Clarke, 60)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2026년 제55회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10만 달러와 청동 메달이 수여된다. 하반기에 열릴 시상식은 전 세계의 건축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에서 개최된다. 심사위원단은 보고서에서 “스밀얀 라디치는 불확실성, 재료 실험, 문화적 기억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작품을 통해 근거 없는 확신보다는 연약함을 중시한다. 그의 건축물들은 임시적이고 불안정하며 의도적으로 미완성된 듯 마치 사라질 듯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이고 낙관적이며 고요하면서도 기쁨이 넘치는 안식처를 제공하며, 취약성을 삶의 경험에 내재된 조건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작품은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절제되고 평온하며, 버스 정류장, 와이너리, 조각가의 작업실 등 본래의 기능에 충실하다”면서 “소박한 조화와 꾸밈없는 우아함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내 건축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항상 과대해석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모든 건축물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예산, 규모, 용도, 재료는 다양하지만 모두 어떤 절제미를 추구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절제미란 모든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본질만 남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심사위원장이자 2016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그는 모든 작품에서 급진적인 독창성으로 난해한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며, 건축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로 회귀하는 동시에 아직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한계를 탐구한다”며 “세상의 변방에서, 극소수의 협력자들과 함께, 가혹한 환경 속에서 발전해 온 그의 작품은 우리를 건축 환경과 인간 조건의 가장 내밀한 핵심으로 이끌어준다”고 평했다. 칠레 출신 건축가로서는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당시 49세)에 이어 두 번째 프리츠커상 수상자다. 3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발전해 온 스밀얀 라디치의 건축 활동은 알바니아, 오스트리아, 칠레, 크로아티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영국 등지의 문화 기관, 공공 공간, 상업 건물, 개인 주택과 설치 미술 작품을 아우른다. 그의 주요 프로젝트 중에는 산티아고의 비센테나리오 공원 한쪽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 메스티소’(2006)처럼 땅 위에 세워지는 대신 부분적으로 땅속에 묻히거나 했으며, ‘피테 하우스’(칠레 파푸도, 2005)처럼 강풍이나 강한 햇빛을 피하도록 방향을 정하거나, 칠레 선사시대 미술관 증축 건물인 ‘칠레 콜럼버스 이전 시대 미술 박물관’(산티아고, 2013)처럼 완전히 철거하는 대신 기존 건물을 개조해 형태를 갖추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설계됐다.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영국 런던, 2014)에서는 반투명 유리섬유 셸이 거대한 하중 지지용 석재 위에 놓여 있다. 빛은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걸러지고, 공간은 부분적으로만 둘러싸여 방문객들은 주변 켄싱턴 정원과 완전히 단절되지 않으면서도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비오비오 지역극장’(칠레 콘셉시온, 2018)에서는 세심하게 설계된 반투명 외벽이 빛을 조절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음향 성능을 향상시킨다. 건축은 일종의 이야기 전달 수단이 되어, 질감과 질량이 형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직각의 시를 위한 집’(칠레 빌체스, 2013)은 사색적인 휴식처를 상징하며, 빛과 시간을 포착하기 위해 위쪽으로 향하게 배치된 개구부는 고요함과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NAVE’(산티아고, 2015)에서 라디치는 자연재해로 손상된 20세기 초 주거 유산 건물을 재구성해 기존 구조를 유지하면서 개방형 공연, 리허설과 워크숍 공간으로 사용될 새로운 볼륨을 삽입했다. 위층에는 서커스 텐트로 덮인 옥상 테라스가 예상치 못한 가벼움과 지역 사회 행사로 구성된 임시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며, 아래층의 견고하고 친밀한 공간과 대조를 이룬다. 칠레 밀라휴에 있는 ‘비냐 비크 와이너리’(2013)는 투명한 천으로 된 지붕이 마치 넓은 흰색 날개처럼 펼쳐져 있고, 경사진 산책로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 오스트리아 크룸바흐에 있는 그의 ‘버스 정류장’(2013)은 콘크리트 지붕과 새집이 달린 단순한 유리 상자 형태이다. 이 외에도 제22회 칠레 건축 비엔날레(산티아고, 2023)를 위한 ‘구아테로’, ‘런던 스카이 버블’(런던, 2021), ‘찬체라 하우스’(칠레 푸에르토 옥타이, 2022), ‘프리즘 하우스’(칠레 콩길리오, 2020), 마르셀라 코레아와 공동 작업한 제12회 베니스 국제 건축 비엔날레(이탈리아 베니스, 2010)를 위한 ‘물고기 속에 숨겨진 소년’, 그리고 CR 하우스(산티아고, 2003) 등이 있다. 스밀얀 라디치 클라크는 1995년 설립된 그의 건축사무소 ‘스밀얀 라디치 클라크’의 창립자이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난 그는 현재 고향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으며, 알바니아, 스페인, 스위스, 영국에서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2026 프리츠커상은 재단 이사장 톰 프리츠커와 제프리 엡스타인의 친분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연됐다. 톰 프리츠커는 지난달 하얏트 호텔 코퍼레이션 회장직에서 사임했지만, 프리츠커 재단의 이사와 부회장직은 유지하고 있다.
고신대병원 임상 시뮬레이션 트레이닝 센터 확장 개소
부산 고신대학교복음병원은 의료진의 숙련도 향상과 환자 안전을 위한 ‘임상 시뮬레이션 트레이닝 센터’를 확장 개소했다고 최근 밝혔다. 새로 운영에 들어간 임상 시뮬레이션 트레이닝 센터는 실제 병원 환경을 그대로 재현한 통합 실습형 교육 공간이다. 실제 환자의 생리적 반응을 정교하게 구현하는 성인 고충실도 시뮬레이터인 ‘SIMMAN’을 비롯해 심장초음파용 시뮬레이터, 복강경 시뮬레이터와 미세수술 모듈 세트, 동정맥 채혈 모형 등 최첨단 장비들이 대거 확충됐다. 특히 실습을 마친 교육생들이 자신의 진료 과정을 바로 모니터링하며 토론할 수 있는 최신 디브리핑 시스템을 도입해, 체계적인 피드백이 가능한 교육 환경을 구축했다. 고신대복음병원은 임상 시뮬레이션 트레이닝 센터 확장을 통해 전공의와 간호사 등 의료진을 대상으로 임상 유형별 반복 교육을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응급 상황 대응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지역 내 의료 인력 양성을 위한 거점 교육기관으로 역할도 수행할 예정이다. 고신대복음병원 최종순 병원장은 “임상 시뮬레이션 트레이닝 센터는 의료진이 실제 임상 현장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숙련도를 높일 수 있는 핵심 인프라”라며 “최첨단 기술과 의료가 결합된 교육 환경을 통해 환자들에게 더욱 안전하고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다 큰 어른들이 왜 ‘건담’에 빠지는 걸까
지난해 여름 후쿠오카에 갔다가 실물 크기의 ‘건담’을 처음 만났다. 밤에는 건담에 불도 들어오고 머리와 손도 움직인다고 했다. 이처럼 쇼핑몰 ‘라라포트 후쿠오카’에는 건담 파크가 만들어져 후쿠오카 여행하는 재미를 더해줬다. 건담의 인기는 후쿠오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실물 크기 건담이 오다이바·요코하마 등 일본에만 3개, 중국 상하이에도 있었다. 우리나라 남자 연예인 중에는 취미가 프라모델 조립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발라드 황태자 테이는 “건담 조립은 나에게 명상과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보이고 있다. 지드래곤, 데프콘, 장우혁, 지진희 등도 유명한 프라모델 마니아다. 다 큰 어른들이 왜 애들 장난감 같은 건담에 빠지는 것일까. 건담으로 대표되는 프라모델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흑역사’와 ‘나무위키’까지 건담의 힘 일단 건담과 프라모델(모형)의 합성어인 ‘건프라’부터 알아야 이 세계 입문이 가능하다. 건프라는 건담 시리즈에 등장하는 로봇을 조립식 모델로 만든 제품을 말한다. 건담은 1979년 일본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 47년이나 새로운 작품이 제작되고 있는 현재진행형 애니메이션 시리즈다. 세월이 흐르며 청소년기를 건담과 함께 보낸 어른 세대가 늘어나며 건프라 소비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1980년 첫 출시된 건프라는 지금까지 누적 판매량이 무려 7억 개가 넘는다. 건담은 단순한 장난감을 넘어서 수집형 취미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다. 특히 고가의 하이엔드 라인업은 성인들의 구매력 덕분에 출시와 동시에 품절 대란을 일으키고 있다. 2022년에는 건담 시리즈 최초의 여성 주인공 작품인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가 방영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진화한 건담이 여성과 Z세대를 공략하며 외연을 더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건담 시리즈의 연간 매출은 1조 3500억 원을 넘었다. 일본 열도의 건담이 전 세계적인 IP(지식재산권)로 성장한 것이다. 특히 건프라 수출 물량 중 30%는 한국에서 소비한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로, 한국에서 건프라는 인기가 많다. 비록 건프라 같은 장난감에는 관심이 없어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건담의 영향권 속에 들어 있다. 언제부터인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역사나 과거를 ‘흑역사’라고 부른다. 흑역사는 1999년 건담에서 처음 사용된 뒤 현재까지 한일 양쪽에서 널리 쓰이는 대표적인 단어다. 중압감을 나타내는 ‘프레셔’도 건담 파일럿이 강한 적에게 느끼는 압박감을 뜻하던 말이었다. 심지어 궁금하면 제일 먼저 찾아보는 ‘나무위키’조차 전신인 리그베다 위키가 건담 시리즈 팬 사이트였던 서브컬처 사이트 ‘NTX’로부터 독립한 것이다. ■주 6.5일 일해 성덕한 ‘반도의 중년’ 부산에는 국내에서 프라모델을 가장 잘 만드는 모델러가 있다. ‘반도의 중년’이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박진 씨다. 박 씨는 2019년 GBWC(Gunpla Builders World Cup) 한국 예선에서 통합 1위를 차지했다. 16개국 예산 통과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일본 도쿄에서 열린 그해 GBWC 결승전에서도 상위 입상했다. 지금도 국내 프라모델 콘테스트에서 매년 1위를 도맡아 한다. 해외에서도 주문 의뢰가 많아 2년 치 작업 물량이 쌓여 있는 국가대표 모델러이다. 부산대 근처 박 씨의 작업실 겸 개인 갤러리로 찾아가기로 약속한 날 마음이 많이 설렜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은 각종 건담부터 시작해서 드래곤볼, 슈퍼맨, 배트맨 등 영웅들이 모여사는 별세계였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다스 베이더는 홍콩의 독보적인 피규어 회사 핫토이와의 콜라보 작품이었다. 진열대 위의 건담은 종류가 많고 수채화 느낌을 비롯해 스타일도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애니도색’한 건담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만화를 찢고 나왔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였다. 대체 어떻게 하면 3D 입체물이 평면의 만화처럼 보일까. 앗! 그녀다. 공각기동대의 여주인공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공각기동대는 영화 매트릭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애니메이션이다. 뇌를 제외하고 모두 기계로 바꾼 그녀의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분명 모형인데 너무나도 사람 같은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천차만별인 사람 피부처럼 만드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한다. 원래는 석고 모형 같은 백색의 레진 상태였다. 이걸 깎고, 다듬고, 사포질을 거쳐 도색해서 만들었다니 혼을 갈아 넣은 셈이었다. 그냥 장난감이 아니라 아트 토이나 팝아트 작품으로 생각하면 된다는 말이 맞았다. 고가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투어 사는 이유가 있었다. 박 씨는 미대를 나왔지만, 프라모델 도색을 독학으로 공부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했다. 남에게 배우면 가르친 사람의 스타일이 어쩔 수 없이 묻어난다. 독학으로 일정 경지에 오르면 새로운 기술이 나와도 따로 배우지 않고도 스스로 찾아서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단다. 게임 캐릭터 피규어의 눈 하나 그리는 데 3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덕업일치, 성덕(성공한 덕후)한 전업 작가 모델러 박 씨의 근무시간은 놀랍게도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다. 주 6일 이상 일해 한 달에 보통 4개를 만든다. 이런 생활을 10년을 했다니…. “재능이 있어서 잘하는 게 아니고 많이 해서 실력이 붙었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박 씨는 프라모델이 오타쿠들의 서브컬처에서 양지로 나온 계기를 연예인 관찰 프로그램에서 찾았다. 연예인은 얼굴이 알려져 밖에 나가서 활동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남자 연예인 중에는 프라모델 조립이나 피규어를 수집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나 혼자 산다’ 같은 프로를 통해 외부로 드러나며 프라모델이 괜찮은 취미라는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프라모델 조립은 1만~2만 원만 주고 사서 혼자 할 수 있는 좋은 취미다. 특히나 우울감이 몰려올 때 해 보라”라고 추천했다. 우울감은 원래 지속성이 그렇게 길지가 않지만, 그 시간을 못 넘겨서 큰 문제가 되곤 한다. 프라모델 조립은 집중해야 하기에 힘이 들고 시간도 잘 간다. 끝나고 나면 피곤해서 잠을 잘 자게 되어서 힘든 시간을 넘기기 좋다는 설명이었다. 이전에 심리치료사로 일했다는 그의 말에 믿음이 갔다. 박 씨는 아마도 혼자 살 거라는 예상과 달리 부인과 아이도 있었다. 오타쿠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 업을 부인에게 어떻게 허락받았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내가 굶기지는 않을 테니까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거 한 번만 해볼게”라고 호소했단다. 그런 방법이 있었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목표는 GBWC 월드 그랑프리 세계 1등이다. 그는 “이 대회가 15년이 되어 가는데 세계 1등은 아직 국내에서 한 번도 안 나온 게 아쉽다. 꼭 1등을 해 보고 싶다. 내가 언제 다른 걸로 세계 1등을 해보겠는가”라고 말했다. 궁금해서 대회를 찾아 보니 세계 1등을 해도 상금이 없고 오로지 명예뿐이다. 사실 모형 제작이 너무 좋아 헤어지기 싫다는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공각기동대 그녀가 잘 있는지는 지금까지 내내 궁금하다. ■건담, 그 다음 타자를 기다리며 건담(건프라)의 고향은 어딜까. 일본 전체 프라모델 출하액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세계 모형의 수도’로 불리는 시즈오카다. 시즈오카는 역 앞 포토 존부터 시작해 우체통, 자판기 등을 프라모델 부품 모습의 조형물로 꾸미고 있다. 프라모델을 시즈오카의 상징이자 관광 상품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매년 5월이면 시즈오카 하비 스퀘어에서는 전 세계 모형 제작자들과 기업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 최대 규모 모형 박람회 ‘시즈오카 하비쇼(Hobby Show)’가 열린다. 여기서 그해의 신제품이 발표되고, 일본 국내외 일반인 모델러들의 합동 전시회도 열린다. 예술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은 이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별 볼거리가 없는 도시 시즈오카로 몰려온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건담이 부럽지만, 꼭 부러워만 할 일도 아니다. 한류는 이미 세계적인 인기 몰이 중이고 우리에게도 다양한 웹툰과 핑크퐁(아기상어), 뽀로로, 오징어 게임 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단순히 하나의 콘텐츠에 머물지 않고 게임, 드라마, 굿즈 등으로 확장되는 '슈퍼 IP' 전략이 대세라고 한다. ‘원 소스 멀티 유즈’, 사방으로 치고나가는 것이다. 건담의 성공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건담의 뒤를 이을 한국의 다음 타자를 기대한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구포국수, 면면히 이어져 온 음식이자 미래의 유산
‘구포국수’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구포국수는 우리나라에서 지명 자체로 유명 브랜드가 된 최초의 사례다. 구포국수는 국수 공장들이 대부분 구포시장 인근에 있었고, 시장 안에 국숫집들이 많아 ‘시장국수’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구포국수는 현재 체인점으로 서울 등 전국에서 찾아보기 쉬워졌지만 정작 고향에서는 위기에 처했다. 구포시장에 가면 국수 공장은 물론이고, 구포국수를 파는 음식점조차 만나기가 쉽지 않아졌다. 부산근현대역사관이 최근 발간한 학술총서 <구포와 밀의 만남, 구포국수>는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이 책에 수록된 국수 공장 대표, 노동자, 요리사, 평론가 등이 밝히는 구포국수의 숨은 이야기를 옮긴다. 예로부터 국수는 장수를 상징했다. 구포국수가 국수 면처럼 길게 이어지길 바라는 같은 마음이다. ■구포에는 국수 공장 하나만 남아 1960~80년대 30여 개나 되었던 구포의 국수 공장이 지금은 단 한 곳만 남았다. 곽조길 대표가 운영하는 ‘구포연합국수’가 유일하다. 곽 씨의 외조모 때부터 시작한 국수 업은 그의 아들 세대까지 4대째 이어지고 있다. 외할머니의 세 딸은 곽 씨의 어머니를 비롯해 모두 국수 공장을 했다니 참으로 끈질긴 국수의 인연이다. 곽 씨는 “외할머니의 여동생 부부가 제분공장을 운영했는데 그 시절에는 배를 타고 밀양, 청도, 삼랑진에서 밀을 수매해 제분했다”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여기서 한국전쟁으로 인해 구호물자인 밀가루가 보급되기 전에는 국산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밀로 만든 구포국수 맛이 궁금해진다. 1988년에 시작된 구포국수 상표권 분쟁도 곽 씨의 작은이모부가 거북표 상표권을 특허청에 등록하면서 생긴 것이었다. 오랜 소송이 끝난 몇 년 후 고 씨는 세상을 떠났고, 거북표 상표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곽 씨는 “국수의 품질은 반죽이 좌우하는데 부드러운 밀가루를 쓸수록 밀 냄새가 덜 난다”라고 털어놓았다. 밀가루에 포함된 밀 껍질의 함양인 회분이 적을수록 식감이 부드럽다. 국수는 그날 날씨에 따라서 반죽을 어떻게 치고 어떻게 건조해야 하는지가 다르다. 그는 “다른 식품은 다 급속으로 말리지만 국수는 그렇게 말리면 다 부서진다. 적어도 24시간은 건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수를 만들기에 이상적인 환경이 있다. 비가 오고 나서 바닥이나 바깥에 습이 차 있을 때 그 바람에 국수를 말리면 최적의 국수가 된다. 습기로 인해서 국수가 자기 몸의 수분을 은근하게, 서서히 빼면서 말려가는 과정에서 국수가 야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면 식당에서 “국수가 잘 안 삶아진다”라며 말이 많다니, 국수 참 쉽지 않다. ■날씨 맞추는 국수 공장 노동자 58년 개띠로 김해 대동 출신인 정무수 씨는 열아홉 살에 국수 공장에 발을 들여 국수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오랜 국수 공장 노동자 경험을 살려 지금은 경남 창녕에서 ‘숭어표 국수’를 운영하고 있다. 정 씨가 들어갈 당시에는 국수 공장이 신발이나 섬유 공장보다 업무 환경이 좋지는 못했지만, 숙식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좋은 일자리였다. 일이 힘든 만큼 급여가 높아 타지에서 온 사람도 많았다. 국수 공장은 보통 가족 단위로 운영되었지만 한 공장에 종업원이 한두 사람은 있었다. 숙식 환경이 좋지는 않아서 주로 공장 다락에 있는 숙소에서 생활했다. 국수 공장 노동자들은 직업 특성상 별도로 배우지 않고도 하늘을 보고 일기를 잘 맞췄다. 습기가 있는 바람이 불면 비가 올 확률이 높아 생산을 중단하거나 국수를 실내에 들여놓아야 했다. 날씨가 건조한 봄에는 국수가 휘거나 잘 부러지기 때문에 암실에서 조정했다. 암실 주변으로 비닐을 감아놓고 외부 공기를 차단하면 휘어진 국수가 다시 펴졌다. 구포국수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구포국수의 특징은 습기를 머금은 낙동강의 바람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정 씨는 “부산 시내 실내에서 하는 공장에서는 샛바람이 불면 ‘똥가리’가 많이 나는데, 구포는 낙동강에서 샛바람이 불어도 습도가 몰려오니까 그런 경우가 드물다. 바닷가도 괜찮다. 바닷바람이 불면 국수가 훨씬 빨리 마른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대개 실내에서 국수를 말리고, 밀폐된 저장실에서 숙성시켜 완제품이 8시간 만에 나온다. 재래식으로 숙성 시간을 거쳐서 완제품까지 24시간이 걸리면 식감이 좋아진다. ■구포국수, 나의 운명이었네 수많은 국숫집 가운데 단 두 곳이 구포국수와 관련해서 소개됐다. 부산 금정구 남산동의 ‘구포촌국수’와 구포시장의 ‘이원화 구포국시’가 그 주인공이다. 구포촌국수는 김해 대동면 안막마을 장터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노영자 씨가 1969년 간판도 없이 장터에서 국숫집을 열었다. 농민들이 새참으로 즐겨 먹었기에 면이 붇지 않도록 두꺼운 중면을 썼고, 육수를 따로 주전자에 담아 옮겼다. 이 방식은 일반 잔치국수와 다른 대동 안막마을 국수의 상징이 되었다. 영양사로 일하던 손녀 김향이 씨가 2000년에 가게를 물려받으며 부산 금정구 남산동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구포촌국수는 국수 단 한 가지만 고집한다. “다른 메뉴 하지 말아라. 하나만 해라. 이걸 더 잘해라”라는 노 씨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육수에 쓰는 멸치는 4종류 이상 들어간다. 큰 멸치, 중 멸치, 작은 멸치를 섞어야 조화로운 맛이 난다. 3일 정도 물기를 빼는 전처리 과정도 필수다. 그래야 육수가 텁텁하지 않고 깔끔해진다. 육수 한 주전자가 나오기 위해 12시간을 끓인다. 단골이 개발한 구포국수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 국수는 삶은 다음에 찬물에 씻기에 면이 차갑다. 여기다 뜨거운 육수를 부으면 국물이 미지근해진다. 면 온도가 상온까지 올라오게 육수를 조금씩 부어 달래주는 게 좋다. 처음에 양념장에 비벼서 서너 젓가락 먹고 그다음에 육수를 부으면 진정한 온국수가 된다. 일단 육수부터 한 컵 따라 마시는 건 기본이다. ‘이원화 구포국시’ 이원화 대표의 외할아버지는 구포국수를 만든 1세대다. 이 씨는 외가로부터 독립해 국수 공장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다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국수 공장의 자잘한 일을 도왔고 커서는 제면 공정을 맡기도 했다. 이 씨 가족은 국수 공장 일이 너무 힘들어 1980년에 공장을 닫았다. 이 씨도 수십 년간 다른 일을 하다, 운명처럼 다시 국수 가게로 돌아온 것이다. 다른 공장들은 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면을 뽑아내고 건조해 국수 완제품으로 나오는 데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씨의 아버지는 무조건 3일을 들였다. 반죽의 횟수를 늘리고 숙성 기간을 충분히 가질 때 면발이 더 쫄깃해진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이 씨의 어머니는 국수 포장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손가락 지문이 다 닳았단다. 이 씨는 자신의 국수 레시피를 주고 2006년부터 이원화 구포국시를 공급받고 있다. 완제품까지 3일의 원칙은 무조건 고수한다. 가게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고, 국수 대신 ‘국시’를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 씨는 “5000원짜리 국수를 팔지만 5만 원짜리 상품을 제공한다는 마음으로 한다. 손님이 현금을 주시면 거스름돈은 신권으로 나간다. 좋은 재료로 좋은 음식을 대접하자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국수 면발처럼 길게 이어지길 최원준 음식 칼럼니스트는 ‘부산 국수 문화사’라는 칼럼을 통해 구포국수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대표적인 것이 ‘삯국수 문화’다. 광복 후 부산의 국수 공장들은 서민들이 배급받은 밀가루를 가져가면 공장에서 삯만 받고 국수를 뽑아줬다. 국수가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소박한 음식이었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는 사례다. 또한 1960~70년대 경부선 기차 안이 구포국수를 받아 김해, 밀양, 청도, 창녕 등 영남 전역으로 팔러 나가는 ‘구포국수 아지매’들로 가득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구포국수 아지매는 ‘재첩국 아지매’, 기장에서 동해남부선 열차를 타고 먹장어를 팔러 다녔던 ‘꼼장어 아지매’와 더불어 부산의 3대 아지매로 명성을 떨쳤다. 부산근현대역사관 김기용 관장은 “구포국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근현대 부산 생활사의 중요한 단면이자 지역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구포국수는 과거의 추억이자 오늘의 음식이며, 앞으로도 이어질 문화다. 이번 총서가 시민들이 구포국수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구포국수는 2022년 부산의 미래 유산으로 선정됐다. 구포국수가 길게 이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영상] 李대통령, BTS 공연에 "현장 관리 철저…K컬처 위상 높이는 계기 되길" 당부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2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리는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행사를 앞두고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니 사전에 현장 관리 방안을 철저히 수립·시행하라"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12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BTS의 광화문 공연을 앞두고 세계의 관심이 대한민국에 집중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교통, 응급 의료체계를 세밀하게 점검하라"며 "안전 대책과 화장실 같은 편의시설도 신경 써 달라"고 지시했다. 이어 "바가지 상술에 대한 단속·제재도 엄정하게 해야 한다"며 "바가지 상술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어 앞으로 주력 산업이 돼야 할 관광산업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공연이 K-컬처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 달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정부는 광화문 일대에서 열릴 예정인 BTS 컴백 행사에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BTS 광화문 공연에는 국내외 티켓을 받은 관람객 2만2000여명을 포함해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경찰은 광화문 앞 월대 건너편인 광화문광장 북쪽 시작점 공연 무대를 중심으로 덕수궁 대한문까지 23만명, 숭례문까지는 26만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행정안전부는 지난 11일 윤호중 장관 주재로 'BTS 컴백 행사 인파 안전관리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기관별 대응 방안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인파 밀집 사고 예방을 위해 다중운집인파재난 위기경보 '주의' 단계를 선제적으로 발령할 예정이다. 위기경보는 21일 하루 동안 서울 종로구와 중구 일대에 적용된다. 행안부와 경찰은 상황관리반을 구성하고, 지방자치단체는 비상 상황에 대비한 신속대응반을 가동하는 등 행사 전후 모니터링과 대응 체계를 운영한다. 오는 19일과 20일에는 민·관이 참여하는 정부합동안전점검단이 행사 전반의 안전관리 실태를 사전 점검한다. 윤 장관도 행사 전 현장을 방문해 인파 밀집 위험이 큰 지점을 직접 점검할 예정이다. 주요 인파 밀집 지점에는 행안부 현장상황관리관도 파견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연 안전 자문과 무대시설·객석 점검을 실시하고, 보건복지부는 응급 환자 발생에 대비해 보건소 신속대응반과 재난의료지원팀(DMAT) 출동 체계를 구축한다. 경찰은 행사장 주변 질서 유지와 치안 확보, 대테러 활동을 담당하고 소방은 구조·구급 인력과 구급차를 배치해 안전사고에 대비한다. 서울시는 시민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해 안전관리계획 이행 여부를 점검한다. 화장실 설치와 외국인 안내 등 편의 지원과 함께 불법 노점과 주정차 단속 등 현장 질서 관리에도 나선다. 정부는 이번 행사뿐 아니라 향후 예정된 BTS 월드투어 공연(4월 경기 고양, 6월 부산)에도 대규모 인파 밀집에 대비한 안전관리를 이어갈 방침이다. 한편, 부산시도 6월 12∼13일 열리는 'BTS(방탄소년단) 월드투어 부산공연 이후까지 숙박업소 불법행위 특별 단속을 실시한다. 주요 단속 행위는 관광객 안전을 위협하는 공유숙박 중개 플랫폼을 통한 미신고 숙박업 영업행위, 소비자 권익을 침해하는 접객대 요금표 미게시 행위, 게시된 숙박 요금 미준수 행위 등이다. 부산시 특별사법경찰이 위법행위가 적발된 업소에 대해 형사 입건과 관할 행정기관의 행정조치 등 엄중하게 다스릴 계획이다. 위반 행위에 따라 6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최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부산시는 특별 단속기간 숙박업 불법행위에 대한 시민 제보도 받는다.
[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도시의 경계가 중심이 되다. 필하모니 드 파리
파리 북동부 라빌레트 공원(Parc de la Villette)은 오늘날 현대 문화 공간의 실험장이지만, 그 출발점은 산업 시설이었다. 19세기 후반 이곳에는 파리 최대 규모의 도축장과 가축 시장이 자리하며 도시의 식량 공급을 담당했다. 그러나 1970년대 도축장이 폐쇄되면서 약 55ha(헥타르)에 이르는 거대한 유휴 부지가 파리 도심 인근에 남게 되었다. 이 공백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당시 도시정책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이 공간을 단순한 공원이 아닌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국제 설계 공모를 진행했다. 당선자는 스위스 출신 건축가 베르나르 츄미였다. 그는 자연 풍경 중심의 전통적 공원 대신 ‘사건이 일어나는 도시적 무대’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공원 전역에 약 120미터 간격으로 배치된 붉은 철골 구조물 ‘폴리(Follies)’는 전망대, 전시장, 카페, 놀이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으며 공원을 하나의 문화 플랫폼으로 조직했다. 그 결과 라빌레트 공원은 단순한 녹지가 아니라 공연과 전시, 영화 상영과 축제가 이어지는 도시 문화 실험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문화지구의 정점을 이루는 건축물이 바로 필하모니 드 파리(Philharmonie de Paris)다. 라빌레트 공원 끝자락에 자리한 이 공연장은 2015년 개관 이후 파리 음악 문화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설계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맡았다. 건물의 외관은 전통적인 콘서트홀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회색빛 알루미늄 패널이 겹겹이 덮인 외피에는 약 34만 개의 금속 조각이 모자이크처럼 배열되어 있는데, 이는 하늘을 나는 새의 군집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패턴이다. 멀리서 보면 건물은 마치 공원 위에 솟아오른 거대한 금속 지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핵심은 내부 공간에 있다. 2,400석 규모의 메인 콘서트홀은 무대를 중심으로 객석이 둘러싸는 빈야드형 구조로 설계되었다. 이 방식은 관객과 연주자 사이의 거리를 줄이고 음악적 몰입감을 높이는 현대 공연장 설계의 중요한 모델이다. 필하모니 드 파리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다. 이 건물 안에는 음악 교육시설과 전시 공간, 리허설룸,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 등이 함께 운영된다. 즉, 음악을 감상하는 장소를 넘어 음악을 배우고 경험하는 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라빌레트 공원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시테 드 라 뮈지크(Cité de la Musique)와 함께 이곳은 오늘날 파리의 중요한 음악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파리의 문화 중심은 오랫동안 루브르와 오페라 가르니에 같은 역사적 건축물이 자리한 센강 주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필하모니 드 파리는 도시의 문화 지도를 북동쪽으로 확장시켰다. 과거 도축장이 있던 산업 지역이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 문화 공간 가운데 하나로 변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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