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형은 감정이 되고, 움직임은 음악이 된다-홍승혜 개인전
커다란 스크린 원 위로 크고 작은 원과 막대, 십자 같은 게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공을 떠돌던 도형은 어느 순간 합체해 얼굴이 된다. 웃는 얼굴, 화난 얼굴, 놀란 얼굴, 삐진 얼굴…. 우리가 흔히 보던 ‘이모티콘’이다. 디지털 시대의 소통 수단인 이모티콘에 착안해 인간의 감정을 간결한 도형 언어로 풀어낸 영상 작품 ‘표정 연습’(2025)이다. 또 다른 작품 ‘우주로 간 스누피’(2019) 역시 아주 단순한 도형의 구성만으로 스누피의 우주여행을 상상하게 만든다.홍승혜(67) 개인전 ‘이동 중’(On the Move)이 부산 수영구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가 꾸준히 탐구해 온 ‘이동성’ 개념을 기반으로 한 평면, 영상, 조각 등 24점을 선보인다. 작가의 작업 변모 과정을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23일 오후 4시엔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MEET THE ARTIST: 홍승혜’ 아티스트 토크가 마련된다.이번 전시는 ‘움직임’이라는 단일한 키워드에서 출발하지만, 그 양상은 단순하지 않다. 작가는 이를 세 가지 층위로 나눈다. 움직이지 않지만 움직임을 내포한 평면, 실제로 움직이는 영상, 그리고 관객이 직접 이동시키며 개입할 수 있는 입체 작업. 이 세 갈래의 흐름은 전시 공간을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 엮는다.작가는 이 모든 움직임의 근원을 ‘음악’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음악은 단순한 청각적 요소를 넘어선다. 멜로디, 리듬, 톤, 볼륨처럼 미술과 공유하는 개념 전반이 조형의 언어로 번역된다. “음색이라는 말에 ‘색’이 들어가듯, 음악과 미술은 이미 많은 어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내적인 운율, 음악성이 작업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내 작업은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일종의 춤이다. 마우스로 추는 춤”이라고 설명했다.전시장에 들어서면 다층적인 영상과 사운드가 맞물린다. 작가는 이를 ‘하나의 교향곡’에 비유한다. 각 영상은 독립된 성부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치밀하게 조율된 오케스트레이션을 이룬다. 실제로 그는 영상마다 사운드의 크기를 세밀하게 조정하며 균형을 잡았다. 관객은 어느 순간, 형태와 소리가 정확히 맞물리는 ‘싱크’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음악은 거의 모든 작업에 개입한다. 단 하나, ‘네잎클로버’만을 제외하고. 작가는 이 작품을 ‘무성’으로 남겨두며 오히려 대비를 만든다.흥미로운 점은 기술에 대한 그의 태도다. 작가는 첨단 기술에 집착하지 않는다. “로우테크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결과가 나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방법을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느냐는 점이에요.” 아이패드 기반의 음악 작곡 앱(개러지밴드)을 활용해 직접 사운드를 만든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접근 가능한 도구를 통해 창작의 문턱을 낮추고, 방법론 자체를 열어두려는 의도다. 이런 덕분일까, 그의 디지털 작업을 보는데 온기가 느껴진다.작가의 또 다른 핵심 키워드는 ‘비추다’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무언가를 드러내고 조명하는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 실제로 영상 작업은 조명으로 기능하며, 공간 속 사물과 관객을 비춘다. “저는 누군가를 비춰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말은 단순한 은유를 넘어, 작업의 기능적 구조로 구현된다. 작품은 대상이면서 동시에 매개가 된다. 이러한 태도는 ‘가족’이라는 주제에서도 드러난다. 단순한 도형의 배열로 구성된 서사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아이의 탄생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관계망을 형성한다.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키워드는 보편적 서사로 확장된다.입체 작업에서는 관객의 참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부 작품은 직접 움직이고 재배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움직인다는 건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뜻이죠. 그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유기적 기하학’ 개념과도 맞닿는다.그에게 작업은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관객의 해석이 필수적으로 개입한다. 그래서 그는 설명을 최소화하고, 질문과 응답의 방식으로 소통하기를 택한다. “관객의 피드백은 제 작업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결국 이 전시는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제시하기보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주되는 상태를 제안한다. 음악처럼, 그리고 움직임처럼.홍승혜는 서울대 회화과와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97년 사각 픽셀 작업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했고, 최근 벡터 문법을 도입하면서 보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이미지로 확장되었다. 전시는 6월 14일까지 열린다.
BTS 공연 숙박 바가지 논란에 사찰도 발벗고 나섰다
오는 6월 12일과 13일 개최되는 ‘방탄소년단(BTS) 월드 투어 ‘아리랑’ IN 부산’ 공연을 보기 위해 부산을 찾는 전 세계 ‘아미’(BTS 팬클럽)를 위해 부산의 사찰도 숙박 공간을 지원하고 나섰다. 24일 부산시와 각 사찰에 따르면 범어사와 선암사, 그리고 홍법사는 BTS 팬들의 부산 체류를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 기존 운영하던 템플스테이 공간을 BTS 아미를 위해 지원하기로 했다. 외국인 관광객에 한해서다. 범어사는 6월 11일부터 14일까지 2인 1실 20명 무료 숙소 외에도 사찰음식과 휴식 공간, 천년 숲길 산책 등을 제공하기로 했고, 선암사(6월 11일부터 13일까지 6개실 15명)와 홍법사(6월 12일부터 13일까지 16개실 48명, 6월 13일에서 14일까지 7개실 21명)도 무료 숙소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단, 사찰 내 시설인 만큼 남녀 혼숙은 금지하며, 세면도구 등은 지참해야 한다. ‘BTS 월드투어 글로벌 관광객을 위한 무료 숙박 이벤트 챌린지’라는 제목을 내건 이번 프로젝트는 바가지 요금 등으로 숙박 민원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범어사가 부산시에 먼저 제안함으로써 이뤄졌다. 이에 따라 시는 22일부터 25일까지 부산시 관광 공식 누리집 ‘비짓부산’(www.visitbusan.net, 영어 홈페이지)을 통해 숙소를 예약받아, 추첨을 통해 외국 관광객에 한해 무료 제공할 예정이다. 범어사 정오 주지 스님은 “일부의 지나친 이기심이 부산 시민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따뜻한 문화와 대한민국의 품격을 흐려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무료 숙박 지원에 나서게 됐다”면서 “부산을 찾는 모든 이가 대한민국과 부산의 따뜻한 정을 가슴에 안고 돌아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홍법사 현수 스님도 “범어사 제안에 동참하며 모든 진행 경과는 부산시에 위임했다”고 전했다. 한편 내원정사는 앞서 템플스테이(1인당 8만 500원/1박 기준, 석식·조식 및 사찰 체험 포함)를 공공 숙박 시설로 제공해 현재 모두 예약을 마친 상태다.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5월 25일(음 4월 9일)
◎-大吉 ○-吉 △-平 X-凶 쥐 96년생 이성 간의 감정을 저울질하지 말고 솔직하게 표현하라. 84년생 갈팡질팡하다가 안정을 찾아갈 듯. 72년생 기준을 찾지 못해 혼란이 생길 수도. 원칙을 준수하라. 60년생 다소의 손실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말아야. 48년생 내 목소리를 내지 말고 주변 여건에 따르는 것이 좋을 듯. 36년생 판단이 어려우면 일단 유보하라. 금전-○ 애정-◎ 건강-○ 소 97년생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필요할 듯. 85년생 외부를 향한 적극적인 행동은 반대의 결과로 끝날 수도. 73년생 나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에 길한 날. 61년생 골치 아픈 일이 일단락 해결될 기미가. 49년생 주위가 변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변한 것일 수도. 37년생 일상에서 소박한 즐거움을 찾는 것이 건강의 비결. 금전-○ 애정-△ 건강-△ 범 98년생 경쟁 상황을 통해서 발전으로 나아가는 흐름. 86년생 작은 일을 소홀히 말고 최선을 다하면 좋은 일과 연결될 수도. 74년생 자기중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말아야. 62년생 작은 일에도 예민해질 수가. 50년생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도움을 받는 것이. 38년생 걱정과 근심의 근원은 나에게 있을 수도. 금전-△ 애정-△ 건강-△ 토끼 99년생 일단 벌이면 가속이 붙으니 앞뒤 재지 말고 과감히. 87년생 새로운 것을 계획하거나 실행하기에 좋은 운. 75년생 주동하되 혼자 힘으로 하기보다 도움을 받으면서 하라. 63년생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자세를 보여야 발전이. 51년생 인간관계 갈등 수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할 것. 39년생 힘들다고 생각한 일에 내 편이 생긴다. 금전-△ 애정-○ 건강-○ 용 00년생 주변 상황이 좋으니 꾸준히 노력만 하면 뜻대로 성취를. 88년생 내가 가진 재능이나 능력을 타인에게 펼쳐 낼 기회가. 76년생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일이. 64년생 의욕이 있어도 귀찮은 일에는 손대지 말아야. 52년생 운이 좋을 때일수록 겸손의 미덕을 갖도록. 40년생 진심으로 상대방을 대하면 감동이 따르는 날. 금전-△ 애정-○ 건강-○ 뱀 01년생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마음을 단호하게 하는 것이 필요. 89년생 한 번 뜻을 품었으면 지조있게 지켜나갈 것. 77년생 지지부진하던 일에 변화의 움직임이 있을 듯. 65년생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 갚으니 좋은 말을 해야. 53년생 뜻과 현실이 다르니 순리에 따르라. 41년생 환경의 변화에 순조로이 응하는 것이 무탈하니. 금전-△ 애정-△ 건강-△ 말 02년생 지출이 늘어난다. 관리가 필요하다. 90년생 남의 장점을 취용하는 자세로 자신을 가다듬을 것. 78년생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세상사.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66년생 금전 지출이나 희생을 통해야만 뜻한 바를 이룰 듯. 54년생 긍정적인 마음이 긍정적인 결과를 부른다. 42년생 뜻밖의 오해로 인한 어려움을 만날 수도. 금전-△ 애정-△ 건강-△ 양 03년생 눈앞에 온 기회이니 너무 따지지 마라. 91년생 남과 비교하면서부터가 불행의 시작이다. 79년생 실질적인 이익은 그리 쉽게 나타나지 않을 듯. 67년생 현상 유지에 힘쓰고 만족하는 자세를. 55년생 사사로운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대범한 마음으로. 43년생 감정의 기복이 심할 수 있으니 마음을 다스려라. 금전-○ 애정-△ 건강-△ 원숭이 04년생 쉽게 생각하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을 듯. 92년생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니 급할수록 신중하게. 80년생 남의 일에 관여 말고 자신의 일에 더 집중을. 68년생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게 될 일이. 56년생 상식에서 생각하면 해답을 구할 수 있을 듯. 44년생 바깥 외출에 짜증날 수 있으니 넉넉한 마음으로. 금전-△ 애정-△ 건강-△ 닭 05년생 좋은 약은 쓴 법이니 쓴 소리를 고맙게 받아들여라. 93년생 기다린다고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 가도록. 81년생 작은 재물을 얻기 위한 희생이 크다. 69년생 내면의 힘으로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있음을 믿으라. 57년생 빠른 치료는 빠른 회복을 할 수 있는 지름길. 45년생 세상사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금전-○ 애정-○ 건강-○ 개 06년생 움직임이 활발하고 활동 범위가 넓어진다. 94년생 일이 되어 가는 과정이니 포기하지 말라. 82년생 지난 일은 잊고 밝은 미래를 구상하라. 70년생 마음이 커진 만큼 받을 복도 커지니 내면을 닦는데 힘을 기울여야. 58년생 양보하고 넘어가는 것이 이로울 듯. 46년생 관대함을 베풀고 부드러운 언행을 하도록. 금전-△ 애정-△ 건강-△ 돼지 07년생 현재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서 활동하도록. 95년생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83년생 주변 환경에 휩쓸리지 말고 초지일관하는 자세로 대응하면 좋을 듯. 71년생 내 뜻대로 추진해 가면 결과는 만족. 59년생 바깥 움직임에 성과를 얻을 듯. 47년생 가벼운 운동이나 산책을 하라. 금전-○ 애정-○ 건강-○
세대와 지역 넘어 ‘신세계로’… 부산콘서트홀 개관 1주년 닻 올린다
아시아 클래식의 중심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부산콘서트홀이 개관 1주년 페스티벌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정명훈 예술감독을 필두로 세계적인 거장들과 부산 지역의 젊은 음악가들이 대거 무대를 빛낼 예정이다. 클래식부산은 오는 7월 2일부터 8일까지 ‘부산콘서트홀 개관 1주년 페스티벌’을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지난해 6월 20일 개관한 이후 개관 1주년을 기념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정명훈이 이끄는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APO)의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개최 시기가 7월 초로 다소 미뤄졌다. 이번 페스티벌의 주제는 ‘함께 만드는 클래식 축제’다. 향후 세계적인 클래식 축제를 부산에 정착시키겠다는 계획으로, 해외 유명 음악가를 초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젊은 음악가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축제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우선 7월 2일 열리는 개막 공연에서는 클래식부산 정명훈 예술감독의 지휘 아래 APO, 부산시립합창단, 울산시립합창단이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연주한다. 이날 무대에는 소프라노 이혜지,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테너 김정훈, 바리톤 박주성 등 국내 정상급 성악가들이 대거 협연자로 나선다. 이어 5일에는 정명훈 예술감독과 APO가 말러 교향곡 제5번을 선보인다. 말러 특유의 섬세한 음향과 철학적 깊이를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선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7일 공연인 ‘신세계로, 함께’에서는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가 연주된다. 이날 공연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협연자로 나서며, 특히 부산 출신 청년 음악가 20명이 APO 단원들과 나란히 무대에 올라 ‘신세계로부터’를 함께 연주한다. 고향의 민속음악과 미국 흑인 영가, 원주민 음악의 요소를 포용하며 새로운 음악 세계를 그려낸 이 작품을 통해, 세대와 지역, 문화가 어우러지는 부산콘서트홀의 새로운 예술적 비전을 보여주겠다는 전략이다. 개관 페스티벌의 열기는 대규모 야외 오페라 공연으로 이어진다. 클래식부산에 따르면 오는 7월 11일과 12일 이틀간, 내년 개관 예정인 부산오페라하우스 바로 앞 북항 랜드마크 부지에서 오페라 ‘카르멘’이 무대에 오른다. 이 공연 역시 정명훈 예술감독의 지휘 아래 APO와 클래식부산 소속 합창단, 성악가들이 참여한다. 이번 공연은 클래식부산이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을 앞두고 오페라 장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특별 제작한 것으로, 일반 시민에게 무료로 공개된다. 예매는 클래식부산 공식 누리집(classicbusan.busan.go.kr)이나 놀티켓에서 할 수 있다. 자세한 문의는 클래식부산(051-640-8888)으로 하면 된다. 박민정 클래식부산 대표는 “이번 개관 1주년 페스티벌은 단순한 기념행사를 넘어, 부산콘서트홀이 세계적인 클래식 공연장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시민과 음악가가 함께 만드는 축제”이라며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지역 청년 음악가들이 호흡하는 무대를 통해 부산이 글로벌 문화도시로 성장하는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라고 전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사라진다
“아이고! 내 살아생전 이런 꼴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절대 안 된다.” 2024년 12월 3일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한 밤이었다.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에 서울 수도권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여의도 국회를 향해 달려갔다. 밤새 국회 담을 에워싸고 군인들의 차량을 막았던 시민들은 이후 인터뷰에서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1980년 당시 외롭게 싸워야 했던 광주의 영령에 대한 미안함이 늘 있었다고 답하기도 했다. 2024년 뜬금없는 계엄 때문에 온 국민이 공포에 떨었던 것처럼 1980년 5월 역시 그랬다고 한다. 5월 17일 밤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했고 시위도 없었다. 그럼에도 전두환 신군부는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에 비상계엄 확대 조치를 내렸고,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국회는 탱크를 앞세운 군인에 의해 통제됐다. 계엄 상황에서도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지할 수 없는데 막무가내였다. 정치인과 학생 2700여 명이 이유도 모른 채 잡혀갔고, 전국 주요 기관과 대학에 공수부대가 배치됐다. 18년 집권한 박정희 독재 정권이 무너지며 국민은 민주화를 기대했다. 느닷없는 계엄령의 공포에도 국민은 일어났고,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광주는 죽음을 무릅쓴 민주주의 항쟁이 펼쳐졌다. <오월, 소년의 기억을 걷다>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따라가며 글을 통해 당시 현장을 생생히 불러낸다. 남도 토박이이자 5·18 역사해설사로서 기존의 정보 외에도 오랜 기간 현장을 누비며 몸으로 체득한 역사를 풀어낸다.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소년이 온다> 속 주인공 동호가 걸었던 길과 실제 장소들을 연결해 한강의 책을 읽은 독자라면 소름 돋는 기시감을 느끼게 해준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 이후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는 세계 속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문학 답사의 형태로 광주를 찾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역사 속 한 페이지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삶이라는 뜻이다. 광주에는 전남대학교 정문, 옛 전남도청과 민주광장, 상무대 옛터 등 30곳이 5·18 사적지로 지정돼 있으며 그곳에서 스러져간 시민들의 이야기가 책을 통해 생생히 전달된다. 시민 각각의 이름과 죽음을 당한 상황, 장소, 이후 이야기까지 자세히 소개하는데, 내 가족 혹은 친구의 안타까운 마지막을 듣는 것 같이 책을 읽는 내내 울컥한 마음이 달래지지 않는다. 5·18민주화운동은 부당한 국가권력과 신군부의 집권 음모에 맞선 시민들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인정받았지만, 46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이도 있고, 서러운 처지조차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지점을 가진 스타벅스는 5·18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마케팅을 펼쳐 역사인식 부족을 드러내며 비판받았다. 2024년 내란 주범들은 현재까지 적절한 처벌조차 받지 않았고, 내란 주요 임무 종사자가 되려 시민의 대표자가 되겠다며 6·3 선거 후보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저자는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다. 그날의 현장도 역사가 되고, 박제화되고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사라진다’고 했다. 열사들이 목숨과 맞바꿔 쟁취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일상에서 5·18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덧붙여 “오월길을 거닐며 5·18을 생각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용기를 대하는 것이다. 지금은 일상 공간이 된 자리에서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공존하는지 엿볼 수 있다”라고 말한다. 책의 마지막은 죽음보다 더 버거웠던 살아남은 자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국에 붙잡힌 이들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내란 중요 임무 종사자’라는 죄목으로 수감됐다. 교도소 안에서도 5·18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40여 일 동안 단식 투쟁을 하다 피를 토하며 세상을 떠난 이도 있고, 헌병대 철창에서 감옥으로, 다시 정신병원 철장에서 생을 마쳐야 했던 이들도 있다. 이돈삼 지음/살림터/312쪽/1만 9000원.
부처는 붓질에 있다
불화(佛畵)는 불교사상을 알리고 포교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화는 통일신라 시대의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大方廣佛華嚴經變相圖)’이다. 신라의 화가 솔거가 황룡사 벽에 노송을 그렸다는 기록으로 볼 때 삼국 시대부터 사찰 건물에 불화를 그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불화는 절이나 박물관에서 만나는 오래전 그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사람들은 바닥에 엎드려서 불화를 그리고 있었다. 불화는 살아 있었다. “자주 가던 통도사 대웅전을 유심히 보다 그림의 색이 아주 많이 바래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래된 소중한 국가유산의 복원과 보존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하다가 ‘국가유산수리기능자 화공’이라는 단청 관련한 국가 자격증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10시간 이상 연습하며 무릎·어깨·손목 통증으로 정형외과를 드나들었지만, 현장에서 단청을 그리는 시간이 꼭 한번 왔으면 좋겠습니다.” “단청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 이토록 가까이서 그 유산과 명맥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우리의 문화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단청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화가를 이르던 말이 ‘화공(畫工)’이다. 요즘 세상에도 화공이 되기 위해 몸을 갈아 넣는 사람들이 있었다. 국가유산수리기능자 화공은 전통 건축물에 단청을 입히거나 벽화, 모사 등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역량을 갖춘 사람에게 국가유산청에서 부여하는 국가전문자격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만난 한 블로그에는 이 같은 내용의 합격자 수기가 줄줄이 올라와 있었다. 뜻밖에도 부산 부산진구 당감동에 있는 ㈜원여동양미술연구소였다. 이곳에서 이승규 대표와 노해 책임연구원 부부를 만났다. 알고 보니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노해 작가는 2018년 부산에서 연 첫 개인전에서 ‘별화(別畵)’로 화제가 되었다. 별화는 사찰 건물에 회화적인 수법으로 그린 그림 또는 장식화다. 용, 거북, 봉황, 기린, 사자, 학, 오리, 사군자 등이 주 대상이다. 혼자 보기 아까운 별화를 대중에 알리고 싶은 마음에 건축물에서 떼서 종이로 옮겼다고 했다. 별화 작가는 예술가이자 역사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할 정도로 힘든 직업이다. 그래서 요즘엔 별화 작가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노 작가가 별화에 관심을 가진 건 불교 전문 사진가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린 시절 주말에 눈 떠 보면 이미 산사로 가는 차 안에 실려 있었다. 다시 눈 떠보면 절이나 탑 앞이었다. 아버지를 좇았지만, 아버지의 눈은 단청이나 탑에 가 있었다. 도대체 저기에 뭐가 있어 저렇게 오래 보고 있나 궁금해졌다. 그곳에는 부처님 외에도 꽃이나 동물 등 별화가 그려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불화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대학에 가서는 어려서 아무 생각 없이 봤던 것들을 그리게 되었다. 대학을 마치고는 동양화 기법을 적용한 현대미술을 할 생각이었다. 졸업할 무렵 아버지는 전통 회화의 색을 배워보라고 권유했다. 아버지의 말대로 중요무형문화재 불화장(佛畵匠) 이수자 이승규 씨에게 불화를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제지간인 두 사람이 연애해서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부부가 된 지는 7년이 되어 간다. 이승규 작가는 지난해 9월 서울 인사동에서 제자 38명과 함께 ‘괘불-부처의 법을 펼치다’ 전시를 열었다. 조선 시대에 탄생한 괘불은 큰 행사 때 야외에 불단을 차리고 두 기둥에 거는 야외 행사용 대형 불화이다. 괘불은 큰 것은 높이가 15m에 달해 건물 몇 개 층 크기라 한 공간에 여러 점을 걸기가 불가능하다. 이 전시는 원본을 축소하거나 현대적으로 구현해 만든 여러 형태의 괘불을 갤러리 안에서 한눈에 감상하도록 만든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았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조선 시대 괘불 120여 점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 작가의 어머니는 신심 깊은 불자였다. 그는 이 시대의 불모(佛母)로 꼽혔던 중요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 기능보유자 석정 스님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스님은 금강공원 식물원 북쪽 금정산 기슭에 자리 잡은 선주산방에서 불화를 그렸다. 이 작가는 20대 후반에 제자로 들어가 10년 넘게 스님을 모셨다. ‘원여(圓如)’라는 법명도 스님이 지어줬다. 둥글 원(圓), 같을 여(如)자.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다. 2012년 스님이 입적한 뒤 독립해서 화실을 차렸고, 거기서 지금의 아내 노해 씨를 만났다. 원여동양미술연구소의 슬로건은 ‘예술이 기술이 된다’이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단어를 생각나게 만든다. 이 작가는 옛날 것으로부터 현대에 쓸 수 있는 것을 찾아내기를 좋아했다.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 자꾸 발전시켜 시대에 맞는 걸 만들고 싶어 한다. 불화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선조들의 전통 기법을 현대적으로 체계화해 특허 실용신안을 2개나 취득했고, 원여동양미술연구소는 NICE 기술평가에서 우수기술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신중탱화(神衆幀畵)는 불교를 수호하는 다양한 신들을 묘사한 불화다. 그가 지난해에 만들어 경기도 용인 연화암에 모신 신중탱화는 뭔가가 달라 보였다. 신 중의 한 분이 뜻밖에도 스마트 폰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연화암 주지 성혜 스님이 “우리 절 신중탱화는 다른 절하고 뭔가 달랐으면 좋겠다. 현대적인 것을 넣어도 되지 않겠냐”라고 먼저 제안한 게 계기가 되었다. 이에 대해 이 작가가 “스마트폰이 좋겠는데 기왕이면 아이폰보다 갤럭시를 넣자”라고 호응했다. 그렇게 불기 2570년 사상 처음으로 갤럭시 폰을 든 대자제천천왕이 탄생했다. 감로탱화(甘露幀畵)는 영혼을 천도하는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불화다. 아귀(餓鬼)에게 감로(甘露)를 베푼다는 뜻이다. 아귀는 좁게는 돌아가신 조상, 넓게는 중생의 고통을 집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부산 기장 묘관음사 주지 서강 스님은 감로탱화를 의뢰하며 “옛날 거 말고 요즘 세태를 반영해서 그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로 지금 묘관음사에는 고기 굽고 와인 마시고, 자동차 사고가 나고, 총을 쏘며 전쟁하는 감로탱화가 그려져 있다. 또 지난해에는 아이패드를 이용해 단청 문양부터 전통회화 작품을 완성하는 온라인 수업을 열고, 굿즈를 만들기도 했다. 너무 멀리 있는 줄 알았던 불화에 이처럼 시대상이 반영되니 더욱 공감이 된다. 이 작가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는 “이번에 약사여래삼존도, 관음보살도, 아미타여래삼존도, 달마·혜가단비도 등 범어사 대웅전 벽화 4점이 국가지정문화유산(보물)으로 지정되는 매우 기쁜 일이 생겼다. 벽화는 보존에 신경 쓰지 않으면 금방 훼손이 되어 버린다. 불화를 그리는 사람으로서 시민들이 보물들을 꼭 친견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노 작가도 “불화를 처음 배울 때 먹으로 선 긋는 연습을 6개월 동안 했다. 선 하나하나가 시간이고, 그 시간이 쌓여 지금까지 왔다. 엎드려서 몇 달씩 뼈를 깎는 고통과 몸을 희생해 가면서 불화 한 점이 탄생하고, 부처님이 나투시게 되니 정성스럽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바닥에 꿇어앉아 불화를 그리는 모습이 마치 고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 불화를 그리고 있던 분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김소라(부산 해운대구 중동) 씨는 “대학원에서 불교 미술사를 공부했다. 아이들이 크고 나서 내가 좋아했던 불화를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지 2년쯤 되었다. 한 땀 한 땀 새겨 나간다는 느낌으로 그리니 몸은 조금 힘들지만 정신 건강에는 좋다. 더 배우고 싶어서 모사공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모사공(模寫工)은 전통 회화나 서적 등의 문화재를 원래의 모습과 똑같이 그려서 복원하거나 보존하는 문화재 모사 전문가다.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체가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보니 힘들게 불화 그리는 분들이 구도(求道)하는 모습으로 느껴졌다. 글·그림=박종호 기자
가는 봄 아쉬워 산 올랐더니 진홍빛 춘정 가슴에 사무치더라
매서운 열기가 봄을 밀어내고 있다. 5월 중순인데도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씨가 연일 계속된다. 가는 봄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절기는 이를 허락치 않는다. 매화·산수유에서 시작한 봄꽃들이 찬란한 벚꽃을 지나 봄꽃의 마지막인 철쭉에게 봄을 맡긴다. 가는 봄이 아쉬워 철쭉 군락지인 지리산 바래봉을 찾았다. ■직접 걸어야 감동이 완성되는 바래봉 지리산 바래봉(1165m) 철쭉 군락지 산행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됐다. 능선을 따라 철쭉으로 붉게 물든 바래봉의 모습에 넋을 잃었다. 여기저기 꽃구경을 다녀봤지만 산 전체를 철쭉이 장악한 곳은 없었다. 철쭉의 붉은 기운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급히 찾아보니 아직 늦지 않았다. 4월 하순 무렵 바래봉 산 아래쪽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지만 정상 부근은 이달 말까지 철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급한 마음에 한걸음에 바래봉으로 달려갔다. 지리산 바래봉은 ‘발산(鉢山)’이라고도 한다. 봉우리 모양이 나무로 만든 승려들의 밥그릇인 바리와 비슷하게 생긴 데서 유래했다. ‘삿갓봉’이라고도 하는데, 승려들이 쓰고 다니던 삿갓 모양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래봉이 국내 최고의 철쭉 군락지로 떠오른 데는 재미난 사연이 있다. 지리산 서쪽에 위치한 바래봉 일대는 숲이 매우 울창했다. 1970년대 초 이곳에 한국·오스트레일리아의 시범 면양 목장을 조성하게 된다. 그런데 식성이 좋은 면양이 잎에 독성이 있는 철쭉만 제외하고 대부분의 식물을 먹어 치웠다. 사람이 철쭉을 먹으면 구토와 어지러움 등을 느끼고 사망에도 이를 수 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당시엔 이 지역이 출입금지 구역이어서 일반인들은 목장 철쭉꽃의 아름다움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산악인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이후 사진작가들의 멋진 작품이 발표되면서 일반인들에게 큰 관심을 끌게 됐다. 바래봉 철쭉은 일반적인 산철쭉과 비교해 색이 훨씬 짙고 선명한 진홍빛을 띤다. 해발 고도가 높아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강해 꽃잎의 색이 더욱 선명한 것이다. 고도 차로 산 아래 꽃이 지더라도 정상부는 만개하는 경우가 많다. 늦은 봄까지도 화려한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이유다. 바래봉 철쭉의 또 다른 매력은 나무 모양에 있다. 양들이 철쭉 주위의 풀을 뜯으며 나무 아래쪽을 정리해준 덕에 둥글둥글한 모양이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사람 키보다 큰 철쭉이 터널을 이루며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바래봉의 철쭉은 바래봉 정상에서 서쪽 아래까지 4km 이상 넓게 퍼져 있는데, 팔랑치에서 1.5km쯤에 가장 밀집돼 있다. 전북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에서는 매년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바래봉 철쭉 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로 30년째다. 용산마을에 도착하니 철쭉 축제가 한창이다. 평일 오전이어서 관람객들은 많지 않았지만, 축제 관계자들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바래봉 철쭉 군락지까지는 3가지 루트가 있다. ‘지리산 허브밸리 주자장(용산마을)- 바래봉 삼거리-정상-바래봉 삼거리-허브밸리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잡았다. 왕복 9.6km 정도이고, 5~6시간 소요된다. 이 코스는 초반에 조금 가파른 길을 지나면 대체로 완만하지만 다소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등산로 입구 안내소 옆에 지리산 운봉 바래봉 유래를 적은 바위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이곳에서 바래봉 정상까지는 4.2km로 가는 내내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임도로 돼 있다. 임도를 따라 오르다 보면 곳곳에 등산객들을 위한 쉼터(정자)가 마련돼 있다. 산 아래쪽에서는 철쭉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봄을 아쉬워하다 시들어가는 철쭉의 모습만 간간이 눈에 띄었다. 1시간 여를 올랐을까. 철쭉의 모습은 없고, 지리한 임도만 계속됐다. 아상(我相)이 올라왔다. “너무 늦어 정상에도 꽃이 없는 거 아냐?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나?” 등등 갖가지 짜증이 몰려왔다. 나 뿐아니었다. 앞서 가던 등산객 커플의 짜증스런 말투가 들려왔다. 등산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인데 짜증이 섞여 있다. 이들도 아상이 올라온 것일까. 철쭉만 보려고 했고, 보이지 않으니 짜증이 났다. 다른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 건 당연하다. 잠시 앉아서 호흡에 집중하고 나니 다른 것들이 보였다. 왕성한 푸른 기운을 간직한 나무와 풀들, 그리고 이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나비와 벌레들. 정겨운 새소리들. 정말 경이로운 모습이다. 철쭉을 조금 내려놓으니 한결 가볍고 편안하다. ■팔랑치에서의 감동이 정상까지 이어지다 바래봉 중턱쯤 올라왔을까. 드디어 철쭉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활짝 핀 진홍빛 철쭉들이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며 반겼다. 바래봉 삼거리에 놓여 있는 물품보관대가 눈길을 끌었다. 이곳에서는 바래동 정상과 최고의 철쭉 군락지가 있는 팔랑치을 다녀올 수 있다. 정상에 오르기 전에 팔랑치로 발길을 옮겼다. 바래동 삼거리에서 팔랑치까지는 왕복 1.8km. 철쭉 최대 군락지의 모습이 궁금했다. 팔랑치에 접어들자 마자 등산로 양쪽으로 핀 철쭉이 반겼다. 그동안의 고생이 보상 받은 기분이었다. 평일인데도 많은 등산객들이 철쭉의 마지막을 담으려고 줄을 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촬영에 방해 되지 않게 걸음을 재촉하며 팔랑치 전망대로 향했다. 진홍빛 철쭉 사이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낸 하얀철쭉은 백옥같이 선명했다. 팔랑치 전망대에 오르니 능선이 온갖 진홍빛으로 물들었다. 아직 만개하지 않는 꽃들이 있었지만 바래봉 최고의 철쭉 군락지다운 자태가 드러났다. 팔랑치 전망대에 오른 등산객들도 철쭉들의 향연에 넋을 잃은 모습이다. 바래봉 정상이 궁금했다. 오던 길을 되돌려 바래봉으로 향했다. 바래동 삼거리까지 되돌아가는 길은 또다른 매력이 있다. 팔랑치로 가는 길에 능선을 봤다면 되돌아가는 길엔 꽃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흰철쭉과 함께 있던 하얀꽃인 이팝나무도 눈에 들어왔다. 순백했다. 팔랑치의 감흥이 가시기 전에 바래봉 정상에 올랐다. 바래봉은 또다른 느낌이다. 철쭉이 능선을 타고 바래봉 정상까지 이어져 있다. 특히 진홍빛의 철쭉을 깔고 지리산 천왕봉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다. 바래봉에서는 천왕봉을 비롯해 중봉, 제석봉, 촛대봉, 형제봉, 토끼봉, 반야봉 등 지리산 주요 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웅장한 지리산을 풍경을 바라보며 아주 작은 인간을 느꼈다. 바래봉 정상 부근 곳곳에서 철쭉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으려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몸통은 없고 꽃들 사이에 등산객들의 얼굴만 가득하다. 바래봉 정상은 등산객들로 또 다른 줄이 생겼다. 정상석의 인증샷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정상석을 배경으로 요즘 유행하는 미니미 사진(요정샷)을 찍으려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정상석 뒤 10여m에 사람이 서면 사람이 요정처럼 작게 보인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사진이다. 바래봉을 한걸음에 달려오게 만든 사진과 같은 장면은 아니었지만, 늦은 봄 진홍빛을 한껏 품은 철쭉을 볼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고, 감사하다. 하지만 하산하는 길은 그리 즐겁지 만은 않았다. “바래봉 철쭉이 옛날 같지 않아. 이렇게 듬성듬성하지 않았어, 얼마나 이뻤다고. 모든 게 기후 변화 때문이야” 바래봉 정상에서 만난 한 등산객의 말이 하산 내내 뇌리에 남았다.
[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세계 최초의 공개형 수장고 미술관 로테르담 DEPOT 디포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뮤지엄파르크에는 유럽을 대표하는 미술관 가운데 하나인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이 자리하고 있다. 초기 컬렉션을 기증한 프란스 보이만스와 후원자 다니엘 판 뵈닝언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미술관은 중세 회화부터 현대미술, 디자인, 조각, 사진까지 약 15만 점 이상의 방대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 미술사의 주요 작품들을 소장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관람객이 실제로 보는 작품은 전체 소장의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수장고 안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 주요 미술관 대부분의 공통된 구조이기도 하다. 실제 전시되는 작품은 전체 컬렉션의 5~10% 수준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온도와 습도가 조절된 공간에서 관리된다. 관람객은 완성된 전시만 보지만, 미술관 시스템의 대부분은 사실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작동한다. 로테르담은 바로 이 지점을 뒤집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줄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이었다. 그 결과 탄생한 건물이 디포 보이만스 판 뵈닝언(DEPOT Boijmans Van Beuningen)이다. 2021년 개관한 이 건물은 네덜란드 건축사무소 MVRDV가 설계했다. 외형은 거대한 은빛 항아리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은 주변 도시 풍경과 하늘, 공원을 반사하며 끊임없이 표정을 바꾼다. 건축은 스스로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주변 풍경을 끌어안는다. 마치 도시 전체를 표면 위에 담아내는 거대한 렌즈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부 구조다. 디포는 일반 미술관처럼 완성된 전시만 보여주지 않는다. 관람객은 회화와 조각, 사진, 디자인 작품들이 실제로 어떻게 보관되고 이동하며 복원되는지를 직접 본다. 복원실과 포장 공간, 거대한 수장 랙 시스템까지 공개되며, 미술관이 단순한 감상의 장소가 아니라 보존과 연구의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는 기존 미술관의 권위적 구조를 상당 부분 해체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건축적으로도 상징적이다. 일반적인 미술관은 빛을 통제하기 위해 폐쇄적 외관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디포는 정반대다. 거울 외피를 통해 도시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도시 풍경이 건물 표면에 실시간으로 반사되며, 미술관은 더 이상 닫힌 문화시설이 아니라 도시 경험의 일부가 된다. 옥상에는 숲처럼 조성된 공간과 레스토랑이 들어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머물 수 있다. 과거 비공개 시설이었던 수장고가 공공 플랫폼으로 바뀐 셈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단순히 ‘좋은 건물’만 보러 가지 않는다. 그 공간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어떤 철학으로 운영되는지, 도시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함께 경험한다. 디포는 그 변화의 상징이다. 보이지 않던 공간을 드러내고, 숨겨진 시스템을 공개하며, 문화의 뒷면까지 도시 경험으로 전환한다. 로테르담은 다시 한번 건축을 통해 미래 문화 공간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부산에서 아시아로,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아트부산 2026’ 개막
부산을 넘어 아시아로 확장하는 ‘아트부산 2026’이 21일 언론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4일간의 화려한 미술 축제의 막을 올렸다. 올해로 15회를 맞는 아트부산은 18개국 107개 갤러리가 참여해 24일까지(부산일보 4월 29일 자 18면 보도)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열린다. 손영희 이사장은 “아트부산은 지난 15년간 컬렉터와 관람객,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 왔다”면서 “올해는 작품 거래를 넘어 부산이라는 도시 안에서 예술과 라이프스타일, 교류 경험이 연결되는 플랫폼으로 아트부산을 확장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올해는 해외 갤러리는 26%를 차지하고, 신규 참가 갤러리가 총 31곳에 이르는 등 국제적인 스펙트럼이 한층 넓어졌다. 다수 갤러리가 미공개 신작과 솔로 프로젝트 중심으로 선보여 ‘전시형 페어’로서 눈길을 끌고 있다. 입장권 판매 실적도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 20일로 마감한 얼리버드 티켓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 37%를 초과 달성해 역대 가장 빠른 초기 판매 흐름을 기록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커넥트’(CONNECT) 섹션에 출품된 무나씨(에브리데이 몬데이)의 대형 걸개 작품 ‘고사관수도’가 관람객을 맞는다. 커넥트 섹션은 아트부산의 특별 섹션으로, 개별 작가의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한다. 무나씨 외에도 서용선, 김은주, 박인성(윤선갤러리), 나점수(아트스페이스3)의 솔로 부스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서용선(갤러리 엘엔엘)은 대형 조각 4점과 흉상 조각 4점, 판화 4점을 만날 수 있다. 김은주(맥화랑) 솔로 부스는 종이에 연필로 집요한 작업을 이어 온 21m짜리 대형 회화 작품을 전시한다. 이 작품은 워낙 대작이라 제작(2016년) 후 이번까지 단 세 번 일반에 공개됐을 뿐이다. 올해 커넥트는 도시가 지닌 물리적 풍경뿐 아니라 기억과 감정, 사회 구조가 중첩된 장소성을 함께 다룬다. 특히 고원석 큐레이터가 기획한 그룹전 ‘네크로 어바니즘: 시간의 지층’도 함께 운영되며, 폴 파이터, 애드 앳킨스, 이승애, 유화수, 박광수, 이인미 등이 참여한다. 올해 신규 섹션으로 선보인 ‘라이트하우스’(LIGHTHAUS)와 ‘디파인’(DEFINE)은 미술 중심 페어 구조를 디자인과 건축, 라이프스타일 영역까지 확장한 경우이다. 부스-인 구조를 통해 큐레이토리얼 기획과 공간 디자인을 함께 평가하는 방식을 도입한 라이트하우스는 부스를 단순한 거래 공간이 아니라 전시 단위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뒀다. 부산의 화랑 OKNPx츠타야 북스, 화이트스톤 갤러리, 우손갤러리, 피에스센터(PS CENTER) 등이 참여한다. 섹션별 갤러리 하이라이트로는 뉴욕·브뤼셀·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글래드스톤 갤러리가 원형 캔버스를 활용한 연작 형태의 우고 론디노네 신작 회화 3점을 아트부산에서 최초 공개한다. 알렉스 카츠의 대형 회화와 뉴욕 기반 한국 출신 작가 아침 김조은의 신작도 선보인다. 아와세 갤러리는 제2회 후쿠오카 어워드 수상 작가 소 소우엔의 2인 퍼포먼스를 필두로 부스를 구성했다. 출품작 대부분이 미공개 신작이다. 국제갤러리는 줄리안 오피 신작만으로 단독 부스를 구성했다. 리안갤러리는 ‘컬렉터스 룸’ 형식으로 이강소를 포함한 한국 동시대 미술 작가와 프리즈 2025, 아트바젤 2026에 참여한 에디 마르티네즈 등 글로벌 아트페어 라인업과 연결된 작가군을 교차 구성한다. 우손갤러리는 하반기 기획전 프리뷰 형태로 유키마사 이다 작품을 공개하고, 이인성미술상 수상 후 대구미술관 개인전을 개최한 이명미 작품을 전시한다. 피에스 센터는 구본창, 나레쉬 쿠마르 등의 작품을 소개한다. 하나금융그룹이 후원하는 제2회 하나퓨처아트어워드는 △히피한남 류지민 △캡션서울의 인사이드 잡(Inside Job) △비스킷 갤러리의 미유 야마다 3인이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으며, 21일 현장 심사를 통해 최종 수상자로 1992년생 류지민을 결정했다. 류지민은 이화여대와 같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으며, 사라짐 이후에도 지속되는 풍경과 기억의 잔상에 주목하는 회화를 선보였다. 특히 그의 작품은 관찰된 현실과 개인적 기억을 생성형 AI 작업을 거쳐 가상의 이미지로 만든 뒤 이를 다시 작가가 섬세한 붓질 과정을 거쳐 회화로 완성됐다. 한편 아트부산의 시그니처 토크 프로그램인 ‘컨버세이션스’(CONVERSATIONS)는 건축, 미디어, 컬렉션, 시장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동시대 예술의 유통, 경험 구조를 조망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총 8개 섹션이 진행되며, 요한 르 탈렉 주한 프랑스대사관 문화교류협력 담당관, 박승호 박서보재단 이사장, 조주현 퐁피두센터 한화 수석 큐레이터, 류성희 영화 미술감독, 비비안 초우 아트넷 아시아 에디터 등이 참여한다. 아트부산 입장권은 전일권 15만 원, 1일권 4만 원으로 구성되며, 관람 시간은 22~23일 오전 11시~오후 7시, 24일 오전 11시~오후 6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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