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벌 의상 다 다른 뮤지컬 ‘위키드’…알고 보면 더 재밌는 ‘마법’ 무대
2003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초연 이래 23년째 롱런 중인 블록버스터 뮤지컬 ‘위키드’가 전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언어와 문화 차이를 뛰어넘는 현대적인 메시지와 공감, 환상적인 무대, 파워풀한 음악 덕분은 아닐까. ‘위키드’는 ‘레플리카 프로덕션’(원작의 모든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는 공연 형태)이 기본이어서 23년 전부터 같은 형태로 공연할 수밖에 없고, 최신식 LED 스크린 같은 건 구경도 못 한다. 그런데도 ‘위키드’는 마법 같은 순간을 무대 위에서 170분(인터미션 20분 포함한 서울·부산 공연 러닝타임) 동안 펼칠 수 있는 것은, 의상팀과 기술팀,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를 포함한 모든 스태프가 똘똘 뭉쳐 노력한 덕분이 아닌가 싶다.‘위키드’의 대표적인 무대 세트로 손꼽히는 소형 비행기 크기의 12.4m ‘타임 드래건’이 연기를 내뿜는 장면만 하더라도 암전 속 무대 하부 쪽 발코니에 등장한 기술 파트 직원 한 명이 거대한 퍼핏 인형을 다루듯 직접 조종해 움직인다. 어둠 속 관객 시선은 드래건을 향하고 있어 그것을 움직이는 스태프를 보지 못할 뿐이다. 기자도 본 공연 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광경을 ‘타임 드래건’ 시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 타임 드래건이 움직이는지 보는 것도 재미있는 관람 팁이다. 오즈 마법사의 얼굴인 ‘오즈 헤드’ 역시 대사에 따라 입이나 턱을 움직여야 하는데, 이것 역시 기술팀 직원이 타이밍에 맞춰 직접 조종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기술팀 직원만 10여 명이 필요한 것이 ‘위키드’ 공연이다.이번 ‘위키드’ 내한 공연은 2023년 브로드웨이 초연 20주년을 맞아 제작된 투어 팀으로, 호주·싱가포르 공연을 끝내고 서울에 이어 지난 13일부터 부산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2012년 한국 초연 이후 13년 만이자 부산 첫 내한 공연이다. 19일 오후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열린 백스테이지 투어는 ‘위키드’의 대표적인 의상과 소품을 소개하고, 백스테이지로 이동해 의상 벙커 등을 돌아본 뒤 다시 객석으로 나와 무대 전체가 에머랄드 빛으로 눈부신 ‘원 쇼트 데이’(One short day)에 등장하는 앙상블·스윙 배우 4명과 인터뷰를 가지는 순서로 진행됐다.먼저 2004년 토니상과 드라마 데스크상을 휩쓴 화려한 의상에 대해 프로덕션 매니저 제스 스콰이어스가 입을 열었다. “‘위키드’의 아름다운 의상은 주연배우들과 앙상블 다 포함해서 약 350벌이 사용됩니다. 약 40억 원의 가치를 지녔으며, 단 한 벌도 동일한 디자인이 없습니다.” 그는 또 “주인공인 엘파바와 글린다 의상은 특히나 캐릭터를 나타내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주고 있다”며 “오프닝 장면에서 글린다가 입고 등장하는 ‘버블 드레스’와 지층에서 모티브를 얻어 360겹의 레이어로 디자인된 엘파바의 2막 검은색 드레스는 현란한 디테일과 과감하면서 스타일리시해 환상적인 세계를 구현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엘파바 2막 의상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돼 있기도 하다.의상은 물론, 모자, 신발, 소품까지 독특한 디자인으로 구현된 에메랄드 시티 의상은 배우들이 실제 착용하고 객석으로 나왔다. 끼고 나온 선글라스까지 초록색이다. 제스 매니저는 “공연 중 에메랄드 시티가 나오는 장면은 해당 도시로 관객들을 확 끌어당겨야 하는 장면인데 이때 의상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언급했다. 가까이서 본 의상과 소품은 디테일이 놀라웠다. 제스 매니저는 “한 주에 8회 공연을 하는데 첫 공연과 마지막 공연에서 똑같은 퀄리티의 의상으로 공연할 수 있도록 매일매일 의상팀이 떨어진 비즈를 수선해 가며 옷 상태를 보존한다”고 말했다. 모든 의상이 실려 있는 의상 케이스만 총 42개이다. 소품도 많아서 모든 게 제자리를 지키도록 하고 있다. 공연 중 가장 빨라야 하는 퀵 체인지는 23초여서 벙커까지도 못 가고, 무대 뒤 대기 중에 스태프 도움으로 바로 갈아입는다.오랜 세월 공연한 만큼 약간은 달라진 점도 있었다. 100% 수작업으로 제작된 글린다의 버블 드레스 경우, 초연 당시에는 약 20㎏에 달하는 무게였으나 보다 가벼운 소재로 업그레이드되면서 7㎏으로 줄어들었다. 의상과 메이크업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전신을 초록색으로 칠해야 하는 엘파바의 분장 과정에 대해서 묻자 “노출되면 안 되는 비밀 중 하나가 엘파바의 초록색 피부여서 상세한 설명은 못 하지만, 엘파바 분장에 걸리는 시간은 1시간가량 소요된다”고 전했다.무대 메커니즘도 놀라웠다. 쉬즈 대학, 오즈 더스트 볼룸, 에메랄드 시티 등으로 이어지는 1막은 단 한 번의 암전도 없이 무대 전환이 이루어진다. 게다가 5000개에 달하는 그린 LED 조명, 수천 개의 비눗방울과 함께 하늘에서 나타나는 글린다의 버블 머신, 무대 가장 높은 곳까지 치솟는 엘파바의 짜릿한 플라잉은 손꼽히는 ‘위키드’ 볼거리이다.앙상블과 스윙으로 참여하는 배우들의 소감도 잇따랐다. 케이트 약슬리는 “에메랄드 시티 장면에서 제가 입는 의상은 피시테일 모양으로 라인이 많아서 걷고 포즈를 취하는 것도 신경이 쓰이지만, 모든 앙상블 배우가 화려하고 정교하면서도 각자 개성이 담긴 의상을 입는다”고 밝혔다. 맷 홀리는 “개인적으로 부산은 ‘위키드’를 공연하는 12번째 도시인데, 숨죽이면서 공연을 보다가도 끝났을 때는 폭발적으로 환호성을 질러준 관객들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올리비아 카스타냐는 “서울과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부산이 좀 더 편안한 느낌이 든다”면서 “아름다운 바다가 있고,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반겨주니까 아름다운 도시 부산을 매일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한편 이번 공연을 위해 동원되는 스태프는 배우,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팀 등을 포함해 120~130명에 이른다. 부산 공연은 내년 1월 18일까지 이어진다. 글린다 역에 코트니 몬스마, 엘파바 역에 셰리든 아담스와 조이 코핀저 얼터네이트(주연배우의 배역을 소수의 회차만 맡아서 공연하는 배우), 마법사&딜라몬드 교수는 폴 핸런, 모리블 학장은 제니퍼 불레틱, 피에로 역에 리암 헤드, 엘파바 동생인 네사로즈 역에 첼시 딘, 보크 역에 커티스 파파디니스가 출연한다.
[기자 픽] 음악-BS 오퍼스앙상블, 실내악 정기연주회 '명작 산책'
부산의 실내악단인 ‘BS 오퍼스앙상블’(사진)이 제21회 정기연주회 ‘Promenade Masterpiece’(명작 산책)를 오는 23일 무대에 올린다. BS 오퍼스앙상블은 20여 년 동안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을 이어온 실내악 단체로 깊이 있는 해석과 안정적인 앙상블로 호평을 받아왔다. 이번 공연은 프롬나드(Promenade), 즉 산책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관객이 음악 속을 편안하게 거닐 듯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오페라 아리아, 성악 가곡, 피아노 포핸즈, 실내악 작품까지 여러 편성이 한 무대에서 이어지며, 관객에게 한 편의 음악 여행 같은 흐름을 선사할 예정이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슈트라우스 오페레타 ‘박쥐’ 중 아리아, ‘레하르 쥬디타’ 중 아리아, 피아졸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포핸즈 버전,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 1번 4악장, 브람스 ‘대학축전’ 서곡, 훔멜 피아노 5중주 Op.87, 생상 ‘동물의 사육제’ 등이다. 최은주 대표는 “이번 무대는 관객이 일상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음악 속을 천천히 걸어보는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며 “가을의 끝자락에서 마음을 가볍게 풀어주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23일 오후 5시 금정문화회관 금빛누리홀. 전석 2만 원. 문의 010-3198-1035.
[기자 픽] 전시-옴블린 레이 개인전 ‘부글부글 증후군’
프랑스 작가가 ‘화병’(火病)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한국 가부장제에 주목한 전시를 열고 있다. 한·불 예술인 창작공간 프로젝트 ‘빌라 부산’ 일환으로 지난 9월부터 부산 사하구 홍티아트센터에 와 있는 프랑스 작가 옴블린 레이(Ombline Ley)가 지난 12일부터 오는 26일까지 개최하는 ‘부글부글 증후군’(Le syndrome de la cocotte-minute)이다. 23일엔 스튜디오 개방 행사가 있고, 전시 마지막 날인 26일 오후 2시 30분엔 주한프랑스 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작가와의 대화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다큐멘터리 영화 형식으로 한국의 ‘화병’과 성 불평등, 여성의 내면적 회복을 주제로 영상과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전시장에는 사주를 보는 여성들과 인터뷰, 바닷가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는 여성, 인어의 이미지가 병치된 영상 설치가 전시된다. 또한 작가가 새롭게 만든 한국어 조어 ‘가부똥제’(가부장제+똥)와 프랑스어 ‘Cocotte-Minute’(압력밥솥)를 네온사인으로 제작해 설치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억압된 감정의 압력과 폭발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옴블린은 “화병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을 억누르도록 강요된 사회 구조의 산물”이라며 “조화가 우선 되는 사회 안에서 감정을 표현할 수 없던 여성들의 병은 잊힌 것처럼 보일 뿐, 여전히 몸과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이번 프로젝트의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부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홍티아트센터는 올해 입주 작가 릴레이 개인전 8회와 기획전 2회 등 총 10번의 전시를 개최해 4000여 명의 시민과 예술가가 다녀간 것으로 파악했다. 2024년부터 운영 중인 ‘빌라 부산’은 △차흘라 젠치르치·기욤 죠바네티의 ‘Ghost&Found’(2024년 11월) △플로리앙 바렌의 ‘AFTERLIFES’(2025년 8월)에 이어 세 번째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전시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오후 5시 30분 입장 마감). 문의 051-263-8661.
[기자 픽] 연극-극단 판플 ‘천국으로 배달해드립니다’
서커스와 마술, 음악이 어우러진 연극 무대가 펼쳐진다. 이번 주말 부산시민회관 소극장에서 펼쳐지는 극단 판플의 ‘천국으로 배달해드립니다’가 그 무대다. 지난해 열린 디셈버뮤지컬페스티벌에서 선보인 후 서사 중심의 음악극 형태 연극으로 업그레이드한 작품이다. 초겨울 어느 스산한 지하창고, 망해버린 천국서커스 단원들이 다가올 봄엔 재기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고 힘든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어느 날 유괴된 소년이 창고로 끌려오고, 단원들은 겁에 질린 소년을 즐겁게 해주려 작은 공연을 펼친다. 이 과정에서 단원들과 소년은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며 함께 봄을 꿈꾼다. 부산문화재단의 우수예술지원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은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가 부산 지역 청년 예술인들이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직접 마술과 서커스를 선보이기 위해 초빙 마술사에게 특별 지도를 받기도 했다. 양재영 연출은 “각박한 현실에서도 이해와 연대를 통해 ‘천국’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22~23일 오후 3시 각 한 차례 공연. 예매는 예스24와 전화(010-2654-4880)로 할 수 있다. 관람료 3만 원.
세대 공감 나누는 따뜻한 시낭송회
무크지 시움이 22일 오후 3시 부산 연제구 거제동 책과아이들 서점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세대•공감 소통 시낭송회’를 연다. 지난 9월 발간한 <미래의 문장들에게> 시집으로 진행되는 이 행사는 시민, 시인들이 직접 시를 읽으며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꾸며진다. <미래의 문장들에게>는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49명의 시인이 참여했으며 편지 형식으로 구성했다. 무한경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 젊은이들에게 삶의 선배로서 시인들이 보내는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담았다. 편지 형식의 시편들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듯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긴 여운과 깊은 울림이 있는 말을 건넨다. 참여 시인과 시민의 시낭송과 더불어 미래 세대인 청소년과 청년들의 시 낭송을 영상으로 담아 함께하는 것이 특징이며, 참여 작가의 시 일부 문장을 캘리그래피로 쓴 엽서도 증정한다. 우표까지 붙인 엽서는 시의 구절을 나누고 싶은 이에게 바로 보낼 수 있다. 무크지 시움 대표 이은주 시인은 “시를 읽는 시대가 저무는 것이 엽서를 쓰는 시대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과 묘한 동병상련의 오버랩이 있는 것 같다”라며 “요즘 편지를 부칠 때 바코드를 붙여주는데 일부러 옛날의 감성이 느껴지는 우표를 사서 직접 엽서에 붙인 후 손 글씨로 시를 썼다”라고 말했다. 무크지 시움은 부산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들이 주축으로 참여하여 매년 기획 시집을 발간하고 있는 단체이다. 시대에 절실한 문학의 책무를 기억하고, 공존의 능력을 가꾸기 위해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팬데믹을 겪던 2020년에 만든 시인들의 모임이다. 보다 깊은 상상력과 풍요로운 감수성으로 세계와 인간의 모든 문제에 다가가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문학이 인류에게 선물할 수 있는 미래를 창조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함께 시 작업을 하고 있다. 2023년 지구적 기후 위기를 주제로 담은 첫 시집 <지구는 난간에 매달려>를 출간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지속가능한 문명을 생명의 시각에서 탐구한 생명시집 <먼지였다가 연잎이었다가 구렁이였을>을 냈다. 올해는 ‘2025년도 부산문화재단 부산문화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아 <미래의 문장들에게>라는 제목으로 세대간 소통의 문제를 제기한 시집을 출간했다. 이번 시낭송회에서는 내년도 시집에서 다룰 주제에 관해 시인과 참여자들이 함께 토론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 주의 새 책] 텃밭과 밀 벌레와 신성한 손 외
■텃밭과 밀 벌레와 신성한 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일상을 무너트린 통증을 치료하려 ‘병원 투어’를 한 끝에 저자는 주식인 쌀밥을 끊고 몇 가지 곡물과 채소만 먹어야 하는 ‘식소수자’의 삶에 다다른다. ‘어쩌다 미식가’가 돼 밥을 읽으면서 새로운 미식 세계에 발 디디고, 핫플 음식 대신 책을 먹으면서 ‘식소수자’라는 정체성에 눈을 뜬다. 신아영 지음/이매진/248쪽/1만 6800원. ■나의 스웜프 씽 한 생태학자의 삶, 습지에 대한 헌신, 그리고 교육자로서의 30년 여정을 담은 회고록이자 생태문명에 대한 성찰이다. 1996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조지메이슨대학교에서 습지생태학을 가르치고 생태공학을 연구하고 습지예술에 집중했던 경험, 그리고 한국과 미국을 넘나드는 자아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안창우 지음/지오북/328쪽/1만 9800원. ■일상이 고고학, 나당전쟁과 문무왕 정글과 같은 세계 정세 속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건인 나당전쟁과 문무왕을 재조명함으로써, 강대국에 맞서 승리하는 법을 제시한다. 일찍이 초강대국인 당나라와 싸워 승리한 후 한반도 최초 통일국가를 이루기까지 신라 문무왕이 보여준 역사의 명장면을 명확한 고증을 통해 생생하게 담아냈다. 황윤 지음/책읽는고양이/324쪽/1만 9800원. ■칠성제화점 구두 한 켤레에 담긴 약속과 사랑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엄마에게 빨간 구두를 사주겠다는 어린 순동이의 다짐은 세월을 건너 그의 인생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잃어버린 사랑을 다시 이어주는 기적이 된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잊혀가는 정서를 떠올리고, 용기와 희망을 나누고 싶었다고 전한다. 이경희 글·김보현 그림/도서출판 북산/192쪽/1만 5000원. ■독서를 영업합니다 교보문고 소설 MD이자 e커머스영업1파트장인 저자가 자신의 직무와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은 출판 관계자에게는 영업의 길잡이이자 위로가 되고, 서점인에게는 자신의 일을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동료의 기록이며, 애서가에게는 책에 더욱 빠져들게 해주는 숨겨진 이야기가 된다. 구환회 지음/북바이북/348쪽/1만 8000원. ■우리에게는 매일 철학이 필요하다 우리는 매일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선다. 누군가는 그 앞에서 망설이고 누군가는 단호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 차이는 유전자나 운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힘, 즉 의사결정 능력에서 나온다. 철학은 삶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게 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제 해결의 기술이다. 피터 홀린스 지음·김고명 옮김/부키/224쪽/1만 7800원.
[잠깐 읽기] 판사 그만두고 이야기꾼으로 살기
저자를 알게 된 건 2018년에 방송된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였다. 의사, 판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소설, 시 같은 문학 작품을 쓰는 건 이전에도 여러 사례가 있어 특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유석 판사는 자신이 출간한 소설이 드라마가 될 때 대본을 직접 쓰고 심지어 감독과 긴밀하게 교감하며 드라마 제작까지 돕는다는 걸 알고 나서 이건 확실히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현실적인 이유로 이야기꾼의 꿈을 포기하고 법관이 된다. 역설적이게도 법관의 삶이 작가의 길을 열어준다. 판사는 이 사회 구석구석의 수많은 ‘진짜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치밀하게 고민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저자 스스로 “세상에는 내가 상상조차 못한 끔찍한 빈곤과 폭력이 가득했다. 여러 날 잠 못 이루며 유무죄를 고민할 때는 정말이지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라고 토로한다. 평생 글 쓰는 판사로 사는 것이 소망이었지만, 저자는 결국 2020년 23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한다. 2018년 양승태 사법부가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고, 사법농단에 관한 보도를 연일 접하며 자신이 사랑했던 법원에서 일어난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법복을 벗고 프리랜서 작가로 전업하며 두 번째 삶을 시작했다. 이 책은 새 삶에서 당면한 시행착오와 고민을 풀어놓는다. 재테크, 건강 관리, 시간 관리 같은 일상적 문제에서 드라마작가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성장, 우리 삶의 바탕을 이루는 법과 민주주의의 작동까지 여러 영역을 넘나든다. ‘두 번째 삶은 첫 번째 삶에 충실할 때만이 도래한다’라는 저자의 결론은 정직한 깨달음인 것 같다. 문유석 지음/문학동네/244쪽/1만 7500원.
[잠깐 읽기] 음악이 인간의 상처를 기억하는 방식
‘음악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애도하는 음악>의 중심에는 네 명의 음악가가 있다. 쇼스타코비치, 쇤베르크, 슈트라우스, 브리튼이다. 역사학자이자 음악비평가인 제러미 아이클러는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는 수백 년의 음악사를 가로지르며, 음악이 인간의 상처를 기억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저자는 단순한 음악 비평을 내놓는 대신 역사의 상흔과 인간의 감정, 예술의 윤리를 함께 풀어낸다. ‘예술은 인간의 비극을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쇼스타코비치는 침묵으로, 쇤베르크는 불협화음으로, 슈트라우스는 고전의 잔향으로, 브리튼은 화해의 합창으로 답한다. 소련 스탈린 체제 아래서 살아야 했던 쇼스타코비치는 예술이 감시와 공포 속에서도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쇤베르크는 불협화음과 12음 기법의 창시자로, 음악사의 혁명적 전환점을 만들었다.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이 시작되면서 미국으로 망명했고, 그 경험은 음악 안에서 하나의 조성, 즉 질서가 무너지는 감각으로 표현된다. 슈트라우스는 나치 시대를 통과하며 복잡한 평가를 남긴 인물이다. 체제와 일정한 타협을 했지만, 인간 존엄과 예술의 순수성을 잃지 않으려 했다. 그의 후기 걸작 ‘메타모르포젠’은 나치 패망 직후 폐허가 된 독일 문화에 대한 애도이자 참회로 읽힌다. 영국 브리튼은 전쟁 세대를 대표하는 평화주의자다. 그의 대표작 ‘전쟁 레퀴엠’은 죽은 자와 산 자, 적과 아군이 함께 부르는 화해의 합창이다. 제러미 아이클러 지음·장호연 옮김/뮤진트리/492쪽/2만 9000원.
살인 누명 벗기고 우주여행 떠나고… 보기보다 큰 '곤충의 힘'
2001년 7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건물 주차장 쓰레기통 옆에서 신체가 심하게 훼손된 노숙자 시신이 발견됐다. 당시 18세 여성 커스틴 로바토가 1급 살인혐의로 40~10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물적 증거나 목격자는 없었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서 큰 논란이 됐다. 법률보호 단체를 비롯해 지지자들이 로바토의 무죄를 변호하고 나섰다. 로바토는 결국 2018년 초 재심을 통해 교도소에서 풀려났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재심에 제출된 핵심 증거는 피해자 시신에 검정파리의 알, 즉 구더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파리 구더기는 외부에 노출된 시신에 꽤 빠르게 침투한다. 검정파리는 낮에 활동하고 밤에 움직임을 멈춘다. 7월 무더위 도심에서 오후 10시에 발견된 시신에 파리 구더기가 없었다는 점은 살인이 밤에 범해졌다는 것을 대변한다. 사건 당일 저녁 시간대 로바토는 확실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었다. 더 이상 계속 감옥에 갇혀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법곤충학자, 정확하게는 검정파리가 억울한 수감자의 무죄를 증명한 사례다. <작은 정복자들>은 작고 하찮게 보이는 곤충이 사실은 우리 삶에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여러 사례로 보여준다. 인류보다 먼저 우주로 날아간 생명체 역시 곤충이다. 노랑초파리는 1947년 2월 미국 뉴멕시코주의 미사일 기지에서 발사된 V2 로켓에 탑승해 지상 109km 상공을 비행했다. 국제항공연맹은 지상 100km를 지구 대기권과 우주의 경계로 정의한다. 지구 최초의 ‘우주비행사’는 초파리였던 셈이다. 몸길이가 고작 3mm에 불과한 노랑초파리는 어떻게 인간을 대신한 선발대로 나서게 됐을까? 6개의 다리에 별난 눈을 가지고 날개까지 짊어진 외형은 사람과 달라도 너무나 다른데 말이다. 하지만 유전학적으로는 인간과 꽤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겉모습이 아니라 속을 보라는 게 노랑초파리를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리지 않는가. <작은 정복자들>에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곤충에게 영감받은 과학적 성과들이 가득하다. 재사용이 가능한 의료용 주사기 개발에 응용되는 나방의 천연 빨대, 탄소 배출을 줄이는 대체 식량으로 주목받는 아메리카동애등에, 인명 구조에 투입되는 초소형 로봇 개발에 영감을 준 꿀벌의 지능과 비행 능력, 어느 각도에서나 반짝이는 모르포나비 날개 구조에서 착안해 푸른색만 반짝이는 차량 도색 등 흥미로운 사례들이 이어진다. 곤충은 약 3억 년 전 지구에 등장한 이래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개체로 살아남은 동물군이다. 볼펜 점보다 작은 0.127mm부터 55cm가 넘는 대벌렛과에 이르기까지 크기도 생김새도 다양하다. 종 수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100만 종. 실제로는 500만에서 22억 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책 제목 <작은 정복자들>은 전혀 억지나 과장으로 보이지 않는다. 참고로 사람이 속한 포유류는 6500여 종이다. 지구의 주인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려면 곤충의 눈치를 봐야 할 것 같다.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 수석 큐레이터로 일하는 곤충학자가 쓴 책답게 앞선 학자들의 주요한 발견이나 성과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90여 장의 진귀한 사진은 자연사박물관 전시관 앞에 선 듯 눈길을 사로잡는다. 에리카 맥앨리스터·에이드리언 워시번 지음/김아림 옮김/곰출판/340쪽/2만 3000원.
‘빈껍데기’ 부산해사법원, 현실화 우려
신안 여객선 좌초 ‘쓸어내린 가슴’… 승선원 267명 밤 사이 전원 구조
남해·동해 만나는 길목 ‘부산’, 해저로 나아갈 최적지 [71%의 신세계, 해저시대로]
남북 교류 확대로 '비핵화' 끌어낸다는 이 대통령 구상
‘10년 복무’ 지역의사제 복지위 통과…2027학년도 의대 입시부터 선발
‘국립치의학연구원’ 공모 방침 공식화, 부산시 유치전 ‘잰걸음’
지선 6개월 남았는데 이제야 정개특위 논의… 또 지각?
“'기업 유치'와 '수도권 기업-지역 인재 연결' 전략 병행해야” [지방소멸 대안, 원격근무]
AI 버블론 잠재운 엔비디아 훈풍에 코스피 다시 '사천피’
수영구 집값 3배 뛸 때 중구 7%만 상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