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당도’ 강말금 “체력과 마음 돌보며 오래 연기하고 싶어요”
배우 강말금이 영화 ‘고당도’로 관객과 만난다. 지난 10일 개봉한 ‘고당도’는 아버지의 부의금으로 조카의 의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짜 장례식을 치르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권용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쌓여온 책임과 갈등, 애증의 감정을 희비극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말금은 “무겁지만 동시에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라며 “편안한 마음으로 본 뒤 각자 하나씩 마음에 남는 감정을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강말금은 극 중 병환에 있는 아버지를 간병하며 집안의 중심에서 버티는 장녀 선영 역을 맡았다. 선영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현실적인 판단과 감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영화 ‘고당도’가 던지는 가족의 무게는 강말금의 연기를 지나며 비극도 희극도 아닌, 우리 삶과 닮은 얼굴로 가만히 드러난다. 이 작품은 단편영화 ‘조의’를 발전시켜 만들었는데, 강말금은 이 단편에도 출연했었다. 그는 “단편 때는 차갑고 냉소적인 결이 강했다면, 장편에서는 의미와 이야기의 층위가 훨씬 풍성해졌다”며 “간호사 역할을 블로그나 영상을 찾아보면서 실제 디테일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강말금은 이 작품을 연기하며 자연스레 가족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선영을 연기하면서 친언니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병환에 있는 부모를 돌보며 생계를 책임졌던 예전 언니의 모습이 선영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강말금은 “저는 그때 책임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고, 그 부담을 언니가 대신 짊어졌다”며 “그래서 선영을 연기하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올라왔다”고 말했다. “저는 사채만 안 썼다뿐이지 남동생 '일회' 역에 가까워요. 언니도 일을 관두고 싶었을 텐데, 제가 연극을 하고 있으니 일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어머니가 아프실 때 병간호도 도맡아 했죠.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찍으면서 언니가 많이 생각나더라고요.”연출을 맡은 권 감독에 대한 신뢰도 작품 선택의 중요한 이유였다. 강말금은 “단편을 할 때 감독님이 2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부터 감독님의 시선이 참 좋았다”며 “젊은 감독님이 인간 군상에 관심이 있고, 그걸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두 번째로 같이 작품을 해보니까 계속 진화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고, 그 부분이 멋있었다”면서 “앞으로 어디까지 진화할지 기대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감독님은 바탕이 정말 선한 사람이에요. 그게 현장 분위기는 물론이고 작품 속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드러났죠. 단정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진 분이라 여러모로 기대가 많이 돼요.”부산에서 나고 자란 강말금은 부산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서른 살에 연기를 시작했다. 연극 ‘꼬메디아’(2007)로 데뷔한 그는 이후 브라운관과 스크린까지 활동 폭을 넓혔다. 2020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그해 영화상 신인상을 휩쓴 뒤엔 영화 ‘행복의 나라’ ‘로비’, 드라마 ‘나쁜엄마’ ‘폭싹 속았수다’ ‘경도를 기다리며’ 등에 출연하며 굵직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한 편의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인물의 잔상을 오래 남게 하는 건 강말금이 가진 힘이다. 그런 그가 요즘 가진 목표는 체력과 마음을 돌보며 오래 연기하는 것이다. 강말금은 “연기는 결국 누군가의 삶을 대신 건너는 일”이라며 “제가 잘 보이기보다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살았는지를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배우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앞으로 쌓아갈 연기의 시간이 더욱 기대된다.
나고야 장어 덮밥, 홋카이도산 밀가루…맛은 국경을 넘나든다
올해가 열흘도 남지 않았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알찬 새해 계획을 설계할 시기이다. 돌이켜 보면 2025년은 정치적 변수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가 잘 자리잡는 모습을 보인 한 해였다. 지난 10월까지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766만 800명으로 역대 최대로 많았다. 엔화 약세에다 지리적 근접성으로 일본이 우리에게 최고 인기 여행지로 부상한 것이다. 1965년에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어 한일 간 국교가 정상화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운 결과였다. 특히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운 부산은 오래전부터 일본 음식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일 관계가 더욱 성숙해지기를 바라는 의미로,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부산에서 자신만의 맛을 내고 있는 두 곳을 소개한다. ‘이웃’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고향으로 돌아온 장어의 꿈 ‘우나쥬’ 나고야서 자수성가해 30년 만에 부산 돌아와 30년 경력 일본인 셰프 모셔 장어덮밥 전문점 민물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민물에서 성장한 뒤 다시 깊은 바다로 회유한다. 민물장어에게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 맨몸으로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지 벌써 30년 세월이 되었다고 했다. 일본 나고야에서 자수성가한 외식 사업가가 말년에 부산으로 돌아와 새로 음식점을 열고 고생을 사서 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장어덮밥 전문점 ‘우나쥬’ 김동섭 대표의 인생이 묘하게도 민물장어를 닮았다. 민물장어는 일본어로 우나기다. 가게 이름 ‘우나쥬’는 우나기에다 목숨 수(壽)를 합쳐서 만들었다. 보양식으로 잘 알려진 장어를 드시고 건강하게 장수하라는 뜻을 담았다. 김 대표는 봉사를 통해 일본 땅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수천 명분의 식사를 탑차에 싣고 달려갔다. 지진 발생 한 달 만에 민간인으로서는 가장 먼저였다. 큰 지진이 날 때마다 매번 그랬다. 금요일에는 십 년 넘게 보육원을 찾아가 김밥을 같이 말고, 한국 이야기도 하면서 봉사했다. 나고야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에게 먼저 연락이 올 정도로 그렇게 신뢰를 얻었다.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일본에서 아이 낳고 키우며 사람들한테 도움받았으니 당연히 하는 일이었다. 수구초심이란 말이 그래서 생겼을까. 나이가 드니 더 늦기 전에 한국에서 제대로 된 일본 음식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선택한 종목이 나고야의 명물, 장어덮밥인 히츠마부시다. 일본에서는 장어를 쪄서 구우면 도쿄식, 바로 구우면 나고야식이라고 부른다. 우나쥬는 초벌 장어를 다시 구워 쫄깃한 식감을 살렸다.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다)이라는 말 그대로다. 민물장어는 조리법이 어려워 전문 셰프가 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꼬치 끼우기 3년, 손질법을 익히는데 8년, 굽는데 평생’이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다. 친구인 김 대표를 믿고 한국으로 온 나고야 장어전문점 30년 경력의 와키타 다이사쿠 셰프의 솜씨에는 한 치의 빈틈이 없었다. 주방에서 만난 다이사쿠 셰프는 “소스가 50%, 굽는 방식에서 50% 차이가 난다. 이 장어는 탈 것인가, 타지 않을 것인가?”라는 선문답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장어가 타기 직전까지 잘 구어야 그 맛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노르스름한 소금구이에서 드러난 장어 빛깔은 황홀할 정도였다. 히츠마부시를 먹기 위해선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즉석에서 굽고 모리츠케(플레이팅)까지 15분이 걸리기 때문이다. 처음엔 장어 그대로, 두 번째는 와사비와 고명을 풀어서, 세 번째는 오차즈케(녹차물)로 각각 다르게 즐겼다. 민물장어를 통해 일본을 느끼는 귀한 시간이었다. 전통 음식은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한 현지 셰프의 솜씨를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식약청 검사 결과 위생 상태가 매우 우수하다는 별 3개를 받았으니, 믿고 먹어도 되겠다. 김 대표는 잠잘 때 말고는 항상 앞치마 차림이라고 했다. ‘앞치마 표’ 김 대표가 고향에서 펼치려는 마지막 봉사가 제대로 결실을 보았으면 좋겠다.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로67번길 39, ■매일 1%씩 좋아지는 ‘쿠루미 과자점’ 법대 다니다 제과에 꽂혀 일본 요리학교 유학 제과점 1년치 기록 적은 플래너서 진심 느껴져 부산 대표 음식을 개발하는 사업인 ‘B-푸드 레시피’를 비롯해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 부대행사로 열린 ‘잇츠시네마’, 축하 이벤트 ‘부귀영화로:Scene to Table’ 등에 계속 이름을 올리는 가게가 있다. 부산도시철도 명륜역 앞의 ‘쿠루미 과자점’이다. 이름에서 일본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김성진 대표는 일본의 요리 명문 츠지제과전문학교를 나왔다. 법대를 다니던 학생이 군대에 가서 제과에 꽂힌 유별난 사연이 있었다. 군에서 휴식 시간에 방송 ‘걸어서 세계 속으로’ 벨기에 편에서 나온 초콜릿 장인들을 보다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했다. 그 즉시 휴가를 신청해서 제과 장인들을 찾아다녔단다. ‘쿠루미’란 이름도 일본 록밴드 ‘미스터칠드런’의 노래 쿠루미에 감동을 받아 지었다니, 김 대표가 어떤 감성의 소유자인지 대략 짐작이 간다. 그는 남들보다 제과를 늦게 시작했으니, 유학을 다녀와야겠다고 결심한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분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프랑스에서 배운 걸 들고 오면 한국에서 바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일본에 가서 같은 동양인에게 한 번 소화가 된 거를 배우는 게 어떠냐?”라고 말했다. 그렇게 입학한 츠지에서 처음 들었던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교장 선생님은 “빵 공부라는 건 기준을 만드는 거다. 100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80점, 90점짜리도 만들 수 있다”라고 했다. 기준도 없이 자기 것을 100점이라고 생각하면 발전이 없다. 일본과의 인연은 유학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공기도 땅도 좋은 홋카이도산 밀가루 유메치카라를 직접 수입해 식빵을 만든다. 10년 동안 매주 식빵을 사는 단골들을 보면 그 보람이 느껴진다. 요즘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로 비싼 팥은 강원도 정선에서 나오는 국산을 계약 재배해서 사용한다. ‘기술은 몰라도, 재료는 국내에서 제일 좋은 거를 쓴다’가 그의 겸손한 자부심이다. 쿠루미 직원들은 모두가 빵을 만들고, 돌아가면서 카운터도 본다. ‘내가 만든 것을 내가 팔 수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드는 사람이 직접 판매에 나서니 손님 입장에서 더 신뢰가 간다. 창업해 나간 옛 직원들도 "우리가 장사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그 대목이 제일 고맙다”라고 입을 모은다. 쿠루미는 매년 한 번씩 김 대표가 비용의 절반 이상을 부담해 전 직원들을 일본에 시찰 보내고 있다. 제품의 질을 올려 가게를 성장시키려면 혼자 힘만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방 벽에 붙은 플래너에서 빼곡한 숫자들을 발견했다. 일 년간 매일의 기온, 주방 온도, 반죽 온도, 물 온도를 빠짐없이 모두 기록한 것이었다. 빵은 기온은 물론이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습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일 년 365일 똑같은 빵이 나가기 위해 모든 변수를 직원들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날씨가 급변하는 계절에도 ‘오늘은 실수로 빵이 좀 안 좋아졌어도, 내일은 무조건 제대로 맞추자’라는 의미다. 쿠루미는 매일 1%씩 맛있어지는 가게를 지향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가게가 될 것 같다. 그날 빵은 무조건 그날 소진한다. 무릇 빵은 그래야 한다. 부산 동래구 온천천로 71-1. 글·사진=박종호 기자
“일본 수출 찻사발 광복동서 구웠대”
오랜만에 부산 중구 광복로 거리에 나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들 어디에서 왔는지 몰라도 주말의 광복로 거리에는 외국인들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2025년 부산을 찾은 누적 외국인 관광객 수가 사상 처음으로 300만 명을 넘어섰고, 이제 500만을 목표로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하지만 이내 광복로 건물 서너 곳 걸러 한 곳꼴로 내걸린 공실을 알리는 현수막에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외국 관광객 입장에서 한국의 제2 도시 도심이라고 해서 찾아왔는데, 유령도시처럼 상가가 텅 비어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부산의 원도심, 광복로를 되살릴 묘안을 더 늦기 전에 마련해야 할 때다. 지난달 22일 ‘부산요포럼’이 광복로 청년작당소에서 주최한 ‘청년들을 위한 부산 도자기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부산요포럼은 ‘부산요(釜山窯)’의 역사적 가치를 재해석하고, 창조적으로 되살리기 위해 2019년에 설립한 모임이었다. 도공, 도자 연구가, 도예과 학생, 수집가를 비롯해 도자기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 위주로 구성되었다. 그동안 15회의 정기포럼, 7회의 낙동강 하류 지역 옛 도요지 답사, 찻사발 전시회 등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날 조국영 도예가 겸 도자 연구가의 ‘조선 후기 찻사발 문양의 수용과 전개’를 주제로 한 발표를 들으며, 지금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희미해진 부산요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일본은 조선의 찻사발에 열광했다. 조선 도공들이 빚어낸 찻사발은 일본 다도 문화의 정점으로 인정받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한류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의 한류였다.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기도 했다. 일본은 전쟁 중 조선의 도자기를 대량으로 약탈했고, 특히 그중에서 찻사발을 일본 다도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조선의 찻사발 공급은 임진왜란으로 인한 문화 교류 단절로 끊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조선 찻사발에 대한 일본의 구애는 집요했다. 조선 조정과 에도 막부의 관계 호전으로 부산에 왜관이 다시 생기자, 일본은 대마도를 통해 찻사발 주문 제작을 수용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한다. 일본은 기장과 양산 법기, 김해 등지에서도 도자기를 주문 생산했다. 초기에는 이처럼 왜관 바깥에서 조선의 사기장이 만든 완성품을 수출하는 형식을 취했으나, 이후 왜관 내에서 일본 도공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생산 방식으로 바뀌었다. 막부 정부가 원하는 문양을 넣은 찻사발의 견본을 대마도로 보내고, 대마도는 동래부에 주문서를 보내 제작을 의뢰했다. 동래부는 예조(禮曹)의 허가를 받아 도공을 소집하고 찻사발을 만들어 일본으로 수출했다. 부산요는 두모포(수정동) 왜관 시절인 1639년에 시작해 초량 왜관(광복동)으로 옮긴 뒤 1743년까지 104년간 찻사발을 비롯한 도자기를 구웠다. 경주·울산·하동·진주·김해·밀양·양산 등에서 태토(胎土)를 조달했다. 가까운 양산이나 기장 등에서 사기장들이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경상 각 지역에서 생산해 바로 일본으로 흘러 들어가던 도자기가 부산을 거점으로 모이며, 부산은 일약 도자기 생산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된다. 부산요는 완제품의 형태와 규격, 색상, 태토의 배합, 문양 등이 기재된 일본의 주문서에 의해 주문 사발인 어본다완(御本茶碗)을 주로 생산했다. 부산요에서 생산한 찻사발의 숫자가 대체 얼마나 되었을까. 이즈미 초이치가 주문 도자기에 관련된 대마도 문서를 해석한 <부산요의 사적연구>에 의하면 1회 구워 완성한 찻사발 700점에 연 6회로 간주해 일 년에 4200점에 달한다. 부산요가 활발했던 70년 동안만 계산해도 17만 점, 밀수품과 사무역까지 합하면 그 몇 배의 찻사발이 일본으로 건너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태토 공급 부족 등으로 왜관 안에서의 도자기 생산이 막을 내리면서 쓰시마 번은 독자적으로 ‘조선 다완’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부산요에서 수출한 찻사발을 관리하던 대마도의 대주요(對州窯)는 지난해부터 부산의 보혜 스님이 주지인 한국 사찰 황룡사가 되었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조선의 도공이 일본에서 파견된 생산 지휘자, 대마도에서 나온 일꾼들과 협력해서 도자기를 생산하다니…. 당시의 도자기 산업은 오늘날의 반도체 산업에 비유된다. 일본이 주문한 최첨단 반도체를 부산에서 지역 최고의 기술자들과 공동 생산한 것과 다름없다. 조선은 부산요에서 중요한 흙의 생산지부터 흙의 배합이나 성분도 알려주고, 제작 기법 또한 아낌없이 일본인에게 가르치며 협업 체제를 이어갔다. 국가를 초월한 문화의 융합이란 면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지만, 오늘날 경영 마인드로는 달리 생각되는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일본은 부산요에서 배운 기술로 유럽에 도자기를 많이 수출했고, 지금도 세계적인 도자기 선진국으로 대접받고 있다. 조선은 뛰어난 도자기 기술을 가지고도 왜 자기 밥그릇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했을까. 조선 조정이 일본의 도자기 공동 생산 프로젝트를 그렇게 쉽게 허락한 사실도 의아하다. 부산요에서 일하다가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AI번역기도 없던 시절 말도 통하지 않았던 조선인과 일본인은 부산요에서 어떻게 소통하며 도자기를 만들었을까. 위대한 예술의 힘으로 봐야할 것이다. 아무튼 부산요 덕분에 도자기 산업 불모지 부산은 조선의 도자기 생산과 수출의 메카가 된다. 어쩌면 초량왜관은 처음부터 부산요를 노리고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날 포럼이 끝나고 용두산공원 인근 미타선원 아래 이지주차장을 지날 때였다. 조국영 도자 연구가는 “여기가 부산요가 있던 자리다. 일본인들은 도요지라고 하면 굉장히 신성시하는데, 부산요를 되살리면 구경하러 올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도공 기림비를 세우고 가마를 복원하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부산요를 연구하고 계승해야 우리도 새로운 도자기가 나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부산요포럼은 초창기부터 ‘부산요 가마터를 발굴·복원해야 하고, 당시 함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사람과 교류에 이바지한 사기장의 넋을 기리는 기념비 건립과 문화 축제가 있어야 한다. 지금의 용두산공원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해 왔다. 이날 포럼에 참가한 부산과학기술대 생활도예과 장기덕 교수가 지난달 부산요 세미나에서 발표한 ‘양산 법기 창기요 찻사발 연구’도 곰곰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양산 법기리 가마에서 역관들이 일본 다도계의 수요를 파악하고 제작을 의뢰해 품질까지 관리하면서 밀무역과 사무역 형식으로 대량의 찻사발을 생산했다는 내용이었다. 부산요포럼 안태호 집행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도자기로 메가시티를 구현해 보자’라고 한 발 더 나갔다. 부산·경남에는 전통 장작 가마가 전국에서 가장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자꾸 없어지고 있다. 김해에는 장작 가마가 30개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12개밖에 남지 않았다. 안 위원장은 “도자기 판매가 잘 안되니 도공들이 먹고살지 못한다. 부산이 도자기 거점 도시가 되면 지역의 장작 가마를 최고의 관광 코스로 만들 수 있다. 김해·양산·밀양 등 가마에 불 때는 날에 부산에서 관광객을 데려가면, 작품 판매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인접 지역 도자기 산업을 연결하고 묶어 지역 문화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면, 우선 지역의 도공들을 선정해 부산에 거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부산요 관계자들은 “용두산공원에 뭐 볼 게 있느냐”라는 말을 자주 했다. 지금도 묻혀 있는 부산요의 유물을 발굴하면서 용두산공원에 부산요 자료관을 만들고, 광복로에 도자기 문화의 거리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도자기를 매개로 부산을 한국과 일본의 교류는 물론,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도자기 교역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부산요포럼은 내년에는 우선 부산·경남 지역 도공 초청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당시 부산 인근 지역에서 국내에 도자기를 만들어 유통하던 가마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부산요라고 하면 안 되고, ‘왜관요’나 ‘부산왜관요’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부산요포럼은 호칭 문제는 공동 세미나나 토론회를 통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부산요 같은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왜 여태까지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지금도 자기 밥그릇을 못 챙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알림] 대니 구 윈터 콘서트 'HOME'
부산일보사는 (재)부산문화회관과 공동으로 '대니 구 윈터 콘서트 〈HOME〉'을 개최합니다. 본 공연은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최초 클래식 아티스트로 클래식부터 재즈, 팝 등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독보적인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대니 구가 피아니스트 조윤성, 드러머 석다연, 베이시스트 션 펜트랜드 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꾸미는 무대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일 시 : 2025년 12월 27일(토) 17시 ■장 소 : 부산시민회관 대극장 ■입장권 : R석 8만 원, S석 6만 원, A석 4만 원 ■예매 및 문의 : 부산시민회관 홈페이지, NOL인터파크 티켓, 051-607-6000
배우 강말금이 영화 ‘고당도’로 관객과 만난다. 지난 10일 개봉한 ‘고당도’는 아버지의 부의금으로 조카의 의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짜 장례식을 치르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권용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쌓여온 책임과 갈등, 애증의 감정을 희비극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말금은 “무겁지만 동시에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라며 “편안한 마음으로 본 뒤 각자 하나씩 마음에 남는 감정을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말금은 극 중 병환에 있는 아버지를 간병하며 집안의 중심에서 버티는 장녀 선영 역을 맡았다. 선영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현실적인 판단과 감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영화 ‘고당도’가 던지는 가족의 무게는 강말금의 연기를 지나며 비극도 희극도 아닌, 우리 삶과 닮은 얼굴로 가만히 드러난다. 이 작품은 단편영화 ‘조의’를 발전시켜 만들었는데, 강말금은 이 단편에도 출연했었다. 그는 “단편 때는 차갑고 냉소적인 결이 강했다면, 장편에서는 의미와 이야기의 층위가 훨씬 풍성해졌다”며 “간호사 역할을 블로그나 영상을 찾아보면서 실제 디테일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강말금은 이 작품을 연기하며 자연스레 가족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선영을 연기하면서 친언니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병환에 있는 부모를 돌보며 생계를 책임졌던 예전 언니의 모습이 선영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강말금은 “저는 그때 책임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고, 그 부담을 언니가 대신 짊어졌다”며 “그래서 선영을 연기하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올라왔다”고 말했다. “저는 사채만 안 썼다뿐이지 남동생 '일회' 역에 가까워요. 언니도 일을 관두고 싶었을 텐데, 제가 연극을 하고 있으니 일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어머니가 아프실 때 병간호도 도맡아 했죠.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찍으면서 언니가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연출을 맡은 권 감독에 대한 신뢰도 작품 선택의 중요한 이유였다. 강말금은 “단편을 할 때 감독님이 2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부터 감독님의 시선이 참 좋았다”며 “젊은 감독님이 인간 군상에 관심이 있고, 그걸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두 번째로 같이 작품을 해보니까 계속 진화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고, 그 부분이 멋있었다”면서 “앞으로 어디까지 진화할지 기대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감독님은 바탕이 정말 선한 사람이에요. 그게 현장 분위기는 물론이고 작품 속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드러났죠. 단정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진 분이라 여러모로 기대가 많이 돼요.” 부산에서 나고 자란 강말금은 부산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서른 살에 연기를 시작했다. 연극 ‘꼬메디아’(2007)로 데뷔한 그는 이후 브라운관과 스크린까지 활동 폭을 넓혔다. 2020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그해 영화상 신인상을 휩쓴 뒤엔 영화 ‘행복의 나라’ ‘로비’, 드라마 ‘나쁜엄마’ ‘폭싹 속았수다’ ‘경도를 기다리며’ 등에 출연하며 굵직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한 편의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인물의 잔상을 오래 남게 하는 건 강말금이 가진 힘이다. 그런 그가 요즘 가진 목표는 체력과 마음을 돌보며 오래 연기하는 것이다. 강말금은 “연기는 결국 누군가의 삶을 대신 건너는 일”이라며 “제가 잘 보이기보다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살았는지를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배우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앞으로 쌓아갈 연기의 시간이 더욱 기대된다.
커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이끈 4년간의 '커피 여정'
코로나19 팬데믹이 막 끝난 2022년 8월 부산의 일간지 기자와 출판사 대표가 남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고품질의 ‘스페셜티’ 커피 생산과정을 직접 취재하기 위한 여정의 출발이다. 이들이 찾은 나라는 페루와 에콰도르. 중남미의 대표적인 스페셜티 커피 산지 콜롬비아, 브라질, 코스타리카를 제쳐두고 왜 이곳으로 갔을까. 페루와 에콰도르는 커머셜 커피(일반 커피)를 주로 재배하다 최근에야 스페셜티 커피에 눈을 돌린 곳이다. 커피를 둘러싼 새로운 발견을 하고자 하는 열정이 이들을 낯선 길로 몰아세운 것이었다. 저자 일행은 국내 대표 스페셜티 커피회사인 모모스커피의 산지 직거래(direct trade) 과정을 동행했다. 커피 산지에서 어떻게 커피를 생산하고 가공하는지, 어떤 기술과 혁신이 이뤄지는지 보고 느꼈다. 페루에서는 연하게 내린 커피에 레몬즙을 섞은 음료 ‘카페 콘 리몬’의 맛에 반하기도 했고, 커피협동조합에서는 커피 산업을 통해 수익을 높이고 재투자를 통해 더 질 좋은 커피를 생산하는 선순환 과정을 지켜봤다. 페루 취재를 마치고 에콰도르로 향할 땐 우여곡절 겪은 끝에 국경 검문소를 통과했다. ‘길 위에서 만난 커피’라는 책 제목에 딱 어울리는 에피소드다. 에콰도르의 한 소도시에서는 ‘커피 자매’가 스페셜티 커피를 재배하면서 미래를 개척하는 모습을 담았다. 생두 품질 경연대회 ‘타사 도라다’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 회사와 거래를 하게 됐고, 체험 프로그램인 ‘커피 농장 B&B’를 도입해 에콰도르 커피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 산지를 찾은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세계의 커피도시를 누비면서 특별한 카페를 체험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미국 LA에서 미국의 스페셜티를 맛보고 ‘일리’ 커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트리에스테를 취재했다. 유럽 최고의 커피 물류항인 벨기에 앤트워프와 중동의 커피 대국 두바이를 소개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이자 나폴레옹이 커피값 대신 모자를 맡긴 걸로 유명한 ‘카페 프로코프’와 커피를 오마카세로 즐길 수 있는 일본 도쿄의 ‘마메야 카케루’ 등의 탐방기도 담겼다. 3부 ‘부산은 커피도시다’에서는 부산에서 시작된 커피의 역사를 소개한다. 민건호가 쓴 ‘해은일록’ 속 한국 최초의 커피 기록과 부산 다방 조사 보고서, 1세대 프랜차이즈 ‘가비방’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커피 역사를 발굴한다. 아울러 커피도시 부산을 이끄는 ‘월드 커피 챔피언 3인방’ 모모스커피 전주연(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 모모스커피 추경하(월드 컵 테이스터스 챔피언십 우승), 먼스커피 문헌관(월드 컵 테이스터스 챔피언십 우승)도 소개한다. 저자는 커피 애호가이자 <부산일보> 기자로 오랫동안 커피를 탐닉하고 커피 산업과 커피도시 부산을 취재해 왔다. 4년간의 커피 여정을 담은 이 책은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궁금했던 호기심을 채워주고 커피에 대한 생생한 지식과 경험을 제공한다. 책 속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커피의 맛과 향이 한층 다채로워질 것이다. 조영미 지음/다시부산/164쪽/1만 3000원.
[어린이 책] 십 대가 지구를 구하는 방법 外
■십 대가 지구를 구하는 방법 십 대들은 기후 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미래의 위험을 느끼고 있을까. 십대들에게 직접 물었다. 조금 서툴지만, 자기 방식으로 지구를 구해보겠다고 땀 흘린 친구들. 손이 시릴 만큼 눈을 모아 뭉치고, 결국엔 자기만의 눈사람을 만든 아이들의 목소리. 흔들리지만 꿋꿋한, 그 소중한 생각의 기록이다. 김선명 등 7명 지음/느린서재/152쪽/1만 4000원. ■진실은 새와 같아요! 진실이라는 주제를 독특한 관점으로 풀어낸 그림책이다. 거짓말 뒤에 숨은 아이와 아이에게 진실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려는 아빠. 거짓말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왜 거짓말이 아름답게 보일까? 그 질문이 바로 이 그림책의 핵심이다. 진실과 거짓말에 관한 그림책. 안드레아 라포토 글·안나 피롤리 그림·성미경 옮김/분홍고래/32쪽/1만 7000원. ■호선생전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온 고전 소설 <토끼전>을 바탕으로 자라를 주인공으로 삼아 새롭게 창작했다. 간결한 시각 요소와 직관적인 이미지로 그림책의 매력을 선보인 작가는 이번엔 재치 넘치는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 준다. 주변의 소란에 동요하지 않고 용궁을 바꾸는 자라의 소신과 행동과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린다. 정진호 지음/사계절/64쪽/1만 5500원. ■나의 첫, 등장인물이 처한 슬픔을 색깔로 나타낸 동화. 재하는 파랑과 노랑이, 봄는 빨강이 아픔의 색이다. 재하는 파랑과 노랑으로 그림을 그리고, 봄이는 빨강을 두려워하며 멀리한다. 부모님, 친구의 죽음 등 시련과 아픔을 겪은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속도로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진희 글·김연제 그림/힘찬문고/192쪽/1만 4000원. ■조마조마 기차 여행 용감하고 꿈 많은 꼬마 문어 꼬뭉이의 짜릿하고 유쾌한 모험. 파도가 몰아치는 절벽, 바닷속 만물상점, 눈꽃 열차 등 새로운 공간을 배경으로 다채로운 모험을 펼친다. 이번 모험에도 든든한 친구 달망이와 빠꼼이가 함께한다. 무모하지만 응원할 수밖에 없는 문어 삼총사의 용감한 모험을 함께 떠나 보자. 박현정 글·이수현 그림/길벗스쿨/108쪽/1만 4000원. ■로봇과 이별하는 프롬프트 인공지능·버추얼 휴먼 기술이 일상으로 스며든 시대, 친구의 죽음을 맞아 그 친구를 닮은 로봇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현실을 마주하며 점차 성숙해가는 아이들의 성장담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마침내 로봇은 만들어지지만, 그 결과는 예상과는 사뭇 다르다. 아이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나헤원 지음/문학과지성사/183쪽/1만 4000원.
[잠깐 읽기] 진화론으로 푼 현대 사회의 위기
“순응하라, 믿어라, 편 가르라.” 선사시대에 설계된 인간의 세 가지 본성이 여전히 현대인을 지배한다. 인류학자 하비 화이트하우스는 “오늘날 세계가 망가진 이유를 인류 본성과 현대 문명 간의 격차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신간 <인간 본성의 역습>에 따르면 현대 문명은 인간이 지닌 세 가지 본성인 순응주의(집단을 따라가는 성향), 종교성(초월적 존재를 믿고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성향), 부족주의(집단에 충성하는 성향)를 토대로 진화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같은 본성은 소집단 생활을 했던 선사시대 인류에겐 생존을 이끈 핵심 동력이었지만, 문명이 거대화된 오늘날엔 분열과 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선사시대 인간은 먹을 것을 구하고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서로를 의지했다. 본능적으로 ‘우리 편’을 챙기고 ‘적’을 경계하며,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쪽을 택하기도 했다. 이런 본능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근대 이후 민족, 국가, 정당 등의 모습으로 재편된 현대의 부족주의는 어떠한가? 현재 제도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부족주의는 양극화와 극단주의, 테러를 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장 난 것은 제도일까, 그 제도를 만든 우리일까. 저자는 문명의 위기가 단지 시스템의 실패 때문이 아니라 선사시대에 형성된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이 제도 안에서 증폭된 결과라고 짚어낸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인간이 이미 갖고 있는 본성을 활용해 더 협력적인 미래로 이끄는 새로운 제도 설계를 제시한다. 하비 화이트하우스 지음·강주헌 옮김/위즈덤하우스/488쪽/2만 7000원.
[잠깐 읽기] 문학은 어떻게 삶을 구원하는가
2026 부산일보 신춘문예는 응모자가 역대급으로 많았던 지난 해에 비해 또 증가했다. 그 중 늘 응모자 숫자가 비슷했던 비평 분야가 올해 배 가까이 늘었다는 점이 특이했다. 비평은 먼저 대상 작품을 읽고 그에 관한 해석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글로 적확하게 표현해서 써야 한다. 이런 이유로 다른 장르보다 글쓰기가 더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학이 점점 쇠퇴하는 시기에 비평에 관한 관심은 왜 그렇게 높아질까 궁금했다. 현존하는 최고의 문학 비평가로 불리는 제임스 우드의 에세이가 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우드는 비평을 추상적 이론이나 분석적 기술로서가 아니라 문학을 전파하고 예술과 삶의 간극을 좁히는 방법을 사용해왔다. 우드의 글은 문학 애호가들을 매혹시키고, ‘지적 에로티시즘’으로 이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책에서 우드는 자기 삶의 경험을 가능한 모두 사용해 문학 작품들을 주의 깊게 읽어나가고, 독자도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관점으로 작품을 읽으면서 본질에 다가가도록 이끈다. 문학은 삶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삶의 경계를 확장시키고, 다른 세계와 연결해 주는 문학의 환대를 소개한다. 삶을 자유자재로 확장하거나 축소하며 궁극적으로 우리 삶을 관통하고 구원하는 문학의 위대한 힘을 보여준다. 책 제목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은 “예술은 삶에 가장 가까운 것, 그것은 우리의 경험을 증폭시키고 개인 운명의 한계를 넘어 동료 인간의 삶과 맞닿게 한다”라는 조지 엘리엇의 문장에서 가져왔다. 제임스 우드 지음·노지양 옮김/아를/232쪽/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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