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우 “나는 ‘언더독’에 가까운 배우”
배우 권상우는 스스로를 늘 ‘언더독’에 가까운 배우라고 말했다. 대작의 중심이나 거장 감독의 선택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불안한 자리에서 치고 올라가는 방식이 자신의 연기 인생을 만들어왔다는 고백이었다.영화 ‘하트맨’ 개봉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권상우는 작품과 배우로서의 현재를 솔직하게 풀어냈다. 그는 “기술 시사회를 보고 영화가 지루하지 않게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오랜 시간을 기다린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였다”고 말했다.‘하트맨’은 승민이 오랜만에 재회한 첫사랑 보나를 다시 붙잡으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영화다. 권상우는 한때 뮤지션을 꿈꿨지만 지금은 악기 판매점을 운영하는 싱글파더 승민을 연기했다.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히트맨’ 시리즈에 이어 권상우의 코미디 연기를 볼 수 있다.권상우는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며 코미디 장르와의 인연을 짚었다. 그는 “데뷔 이후 멋진 역할을 많이 했다. 결혼 이후 작품이 들어오는 성향이 바뀌면서 과도기가 있었다”며 “그 시기에 정면 돌파한 작품이 ‘탐정: 더 비기닝’이었다. 그때 성동일 선배와의 작업이 너무 좋았고, 그때 코미디 영화의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권상우는 코미디 장르에 평가가 박한 현실을 언급하며 “액션이나 멜로는 편집과 음악의 도움을 받지만, 코미디는 배우 간 티키타카와 호흡으로 완성된다”면서 “그래서 더 어렵고 도전적”이라고 설명했다.50대에 접어든 지금도 그는 액션 배우로서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권상우는 “체력 관리는 계속하고 있다. 격한 액션이 와도 소화할 준비는 돼 있다”며 “하드코어 액션과 코미디가 섞인 작품에 대한 꿈을 계속 꾸고 있다”고 말했다. 권상우는 “50살이 됐지만 체력이 떨어졌다는 느낌은 없다. 오히려 힘이 더 좋아졌다”며 “작년 여름까지는 마동석 형님 체육관에서 복싱을 했고, 요즘은 웨이트와 조깅을 일주일에 3~4번 하고 있다”고 말했다.배우를 넘어 제작자로서의 계획도 밝혔다. 그는 “영화 제작사를 만들어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며 “액션과 멜로가 섞인 누아르 장르로,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정확한 시점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올해 안 크랭크인을 목표로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고도 덧붙였다.인터뷰 말미, 권상우는 나이 듦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중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려 한다. 그래서 작품을 만날 때마다 더 간절해진다”고 했다. “올해는 더 욕심내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작품만 좋다면 주연이든 조연이든 중요하지 않아요. 다시 현장으로 향할 준비가 됐습니다.”
“청년의 목소리,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너 뭐 돼! 기 죽지 마’ 지난해 수능을 앞두고 부산 금정구 일대에 걸린 현수막의 색다른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청년, 오늘’ 이지희 대표가 내건 이 현수막에는 ‘모든 열아홉을 응원한다’는 품 넓은 글귀도 같이 있었다. 대입을 치르는 수험생뿐만 아니라 다양한 길을 택하는 모든 열아홉을 응원한다는 의미였다. ‘청년, 오늘’이 어떤 단체인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청년, 오늘’의 인스타그램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부산에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함께 행동하는 청년 단체로 소개되어 있다. 이들은 청년 인터뷰 및 청년 백서 발간, 강연, 사회 참여 활동, 소모임, 지역사회 공헌 사업을 한다. 지난해에는 양말목 만들기, 키링 만들기, 1인 자취 요리 프로그램, 독서 모임을 했다. 연말에는 청년들이 산타 복장을 하고 취약 계층을 찾아가 봉사하는 ‘사랑의 몰래 산타’ 행사를 열었다. 홀로 있는 청년들을 네다섯 명이라도 모아서 취미 활동을 같이하고, 지역과 연결하는 사업을 하는 작은 공동체였다. 찾아보니 2012년 '청춘 멘토'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활동한 지 10년이 넘었다. 청년들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청년이 주축이 되어 운영해 보자는 뜻으로 2024년 9월 ‘청년 오늘’로 이름을 바꿨다. 그런데 지난해에 이들이 만든 청년 백서 ‘광장의 빛이 된 우리들의 이야기’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를 총결산한 아카이빙 웹진이었기 때문이다. 청년 백서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MZ라는 이기적인 존재로 여겨지던 청년들의 광장 진출은 놀라웠다. 같은 뜻을 가진 또래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광장에서 만난 50여 명의 청년들을 인터뷰했다”라고 글을 열고 있었다. 광장으로 나온 청년들 마음속으로 들어가 봤다. 1장은 모두의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게 된 2024년 12월 3일 ‘계엄의 밤’으로 시작했다. 부산의 청년들에게 이날은 국회로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보며 밤을 지새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밤으로 기억됐다. 2장은 ‘광장으로’였다. 청년들의 몸은 다음날부터 자연스럽게 광장으로 향했다. ‘평범한 사람도 여기에 있다.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라는 마음으로, 이제는 민주주의를 내가 지켜낼 차례라고 각자가 다짐했다. “미래의 내가 이날을 또렷하게 기억할 텐데, 그때 나 자신에게 그날 ‘너는 뭐 했어?’라고 계속 물을 것 같았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시위에는 청년들, 특히 여성의 참여가 많았다. 그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응원봉을 들고나오며 축제 같은 시위 문화가 새롭게 형성됐다. 어디서 이런 청년이 나타났나 싶었다. 자신을 ‘부산의 딸’이라고 소개한 18세 고등학생은 서면 집회에서 단상에 올라 “대통령이 고3보다 삼권분립을 모르면 어떡하느냐”라고 야단치며 청년들의 분노를 대변했다. 관련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50만 회를 넘기며 큰 화제가 되었다. 또 스스로를 유흥업소 종사자이자 성소수자라고 밝힌 한 청년 여성은 “정치에 무관심한 이유는 적절한 공동체가 없기 때문이다. 탄핵 이후에도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달라”라고 호소했다. 백서 3장 ‘청년이 말하는 정치’에서는 탄핵 촉구 시위를 계기로 정치에 대해 달라진 청년들의 생각이 엿보여 흥미로웠다. 그 가운데 청년은 물론이고 기성세대도 읽어볼 만한 질의응답을 골라 소개한다. -한국 사회에서 청년으로서 겪는 사회적 문제 1순위는 무엇인가? “혐오다. 여성은 물론이고, 장애인, 노인, 아동, 노동자, 성소수자, 대안학교 졸업자까지 많은 사람들이 혐오에 노출돼 있다. 특히 인터넷 공간에선 비하 표현을 너무 당당하게 쓰고, 그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무섭다. 차별과 혐오는 몰이해, 무지,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청년이기에 느끼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하나 더 꼽는다면. “주거 문제다. 독립을 위해 집을 떠나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하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집값 앞에서 절망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청년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전세 사기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 전세 사기도 모자라 이제는 월세 사기까지 나온다. 전세 사기는 청년들의 기회 자체를 앗아가는 범죄다. 그런데도 국가는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에도 소극적이다. 그걸 보면서 국가는 약자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많이 느꼈다.” -부산의 청년들은 왜 부산을 떠나려고 하는가. “부산에서 계속 살고 싶다. 도시철도를 타고 바다를 볼 수 있는 도시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부산에는 취업할 곳이 정말 없다. 특히 문과 전공은 더 힘들다. 부산이 너무 좋은 데 갈 데가 없으니 다들 안정적이고 급여가 높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간다. 요즘은 ‘서울에서 태어난 게 스펙이다’라고 말한다. -일자리, 주거, 지역 불균형, 혐오 문제 등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정치다. ‘헬조선에서 살기 힘들다’라고 하면서도 애정이 남아 있기에 거리로 나선 거다. 탄핵 집회가 승리로 끝난 뒤에도 서로의 연결고리가 된다면, 다양한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 광장에서 연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를 실천하지 않을까. 사회 문제는 한 번에 해결되지 않지만, 우리는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빛의 혁명’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거다.” 지난 2022년 제8회 지방선거의 전체 투표율은 50.9%였지만 30대 이하 연령층에서는 투표율이 30% 대로 전체 평균에 크게 못 미쳤다. 정치가 청년들의 일자리, 주거, 연금 문제에 실질적인 해법을 주지 못한다는 불신과 피로감 때문으로 분석되었다. ‘빛의 혁명’을 계기로 정치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이 정말로 달라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 이야기를 하기에는 부산 탄핵 집회 사회자로 유명해진 ‘청년, 오늘’ 이지희 대표만 한 사람이 없었다. 이 대표는 서면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 자원봉사나 할 생각으로 나왔던 2024년 12월 10일 우연히 마이크를 잡게 되었다. 사회는 처음이라 떨렸지만 잘 준비해서 해보자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단다. 집회는 매일 열렸다. 이듬해 4월까지 넉 달이나 계속해서 서면 탄핵 집회 사회를 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 대표는 “2030 집회 기획단을 운영하면서 SNS를 통해 노래 가사 개사나 구호 등 청년들의 의견을 많이 받았다. 그걸 더 좋게 바꿔서 연습한 뒤 무대에 올라갔다”라고 말했다. 그 시간이 지나며 앞으로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지 비로소 길이 보인다고 했다. 사실 이 대표는 ‘청년, 오늘’과 함께 성장해 왔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경기도의 한 특성화고에 진학했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자퇴할 수밖에 없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만난 곳이 ‘청춘 멘토(‘청년 오늘’의 전신)였다. 그는 부산대 경제학과에 들어간 뒤 2023년부터 운영진으로 다시 인연을 맺고, 지난해 1월에 대표가 되었다. 한부모가정에서 홀로 딸을 키운 부친이 검정고시 중학교·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얼마 전 신라대 사회복지과를 늦깎이로 졸업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청년은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청년의 정치세력화를 강조했다. “이제는 청년이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서 진짜 힘을 가져야 한다. 이번 광장을 통해 그 가능성을 봤다. ‘청년, 오늘’을 부산에서 청년들이 모여들고, 청년들이 힘을 가지는 정치적 공간으로 키우고 싶다”라고 말했다. 2024년 말부터 이어진 윤석열 탄핵 촉구 시위에는 2030 청년들의 참여가 높았다. 청년들이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거나,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이는 방식은 기존 정치와 달랐다. 이들은 ‘우리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치에 대한 효능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청년들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지 주목된다.
부산의 쟁쟁한 노포들, 역사 자료 부족해 아쉬워
노포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보통 창업 100년이 지나야 ‘노포’라고 부른다. 창업 200~300년이 넘는 노포들이 모인 단체도 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100년 이상 된 식당을 찾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50년 이상 동일한 업종을 유지했는지와 가업 승계, 상징성 등을 노포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는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며 고객의 사랑을 받은 점포를 대상으로 지정한다. 부산의 노포가 모여서 선을 보인 것은 2012년에 나온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이 처음이었다. 한식재단이 50년 넘게, 혹은 100년을 바라보는 역사를 이어온 전국의 한식당 160여 곳을 찾아내 집대성했다. 내호냉면, 박달집, 기장곰장어, 동래할매파전, 송정 3대 국밥, 급행장, 원산면옥, 새진주식당, 양산도집, 구포집 등 총 10곳이 포함됐다. 부산시가 2014년에 편찬을 완료하고 웹서비스를 시작한 ‘부산역사문화대전(디지털부산역사문화대전)’에서도 노포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노포가 부산의 경제, 산업, 생활사적 가치를 지닌 장소의 의미로 흩어져 수록된 점이 아쉽다. 지난해에는 부산관광공사가 미식 가이드북 <부산의 노포, 부산의 식문화>를 발간했다. 이 책은 돼지국밥, 밀면, 복국, 대구탕, 차이나타운, 곰장어, 멸치, 생선회, 해물탕, 돼지갈비, 구포국수 등으로 나눠 노포가 포함된 맛집들을 먼저 소개했다. ‘그 외 노포들’ 편은 별도로 있다. 평산옥, 동래할매파전, 서울깍두기, 18번완당집, 원조18번완당발국수, 급행장, 새진주식당, 옛날오막집, 구포집, 백화양곱창, 구조방낙지, 태화육개장, 해운대암소갈비집, 원조전복죽집, 물꽁식당, 고갈비남마담, 할매재첩국 등 17곳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들 노포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창업 시기가 명확하지 않은 곳이 많다. ‘평산옥’의 경우 <부산의 노포, 부산의 식문화>는 100년이 넘는 전통으로 소개되지만, 인터넷에서는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130년이 넘었다고 소개된 글도 많다. ‘대한명인기장곰장어’는 1976년부터 영업을 시작했지만, 곰장어를 볏짚에 구워 시장 좌판에서 팔기 시작한 1929년에 문을 열었다고 말한다. ‘동래할매파전’도 동래시장에서 좌판을 차리고 파전을 부친 1930년대를 개업 시기로 보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으로 꼽히는 교토의 ‘혼케 오와리야’의 경우 1465년 창업 사실이 가게의 공식 역사와 문헌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76년 전통' 부산 노포가 매년 간판 바꾸는 이유는?
지난 2일 오전 서면 ‘급행장’ 분위기는 여느 때와는 달라 보였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한우 전문점 급행장의 연례 신년 행사인 이른바 ‘간판 교체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올해로 70세가 된 손재권 대표가 이날 직접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급행장 간판에 ‘76년 전통 한우전문점’이라는 문구를 새로 붙었다. 요즘 전통을 내세우는 가게가 한둘이 아니지만, 급행장처럼 매년 간판 교체식까지 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급행장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2대째인 손 대표가 가게를 물려받고 몇 년간은 ‘40년 전통’이 간판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 친구분이 찾아와 “올해가 47년째인데 왜 40년 전통이고? 다른 집은 없는 전통도 만드는 데, 니는 있는 전통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느냐”라고 호통을 쳤다. 대오각성하고 그때부터 매년 새해에 간판을 바꾸기 시작했다. 47, 48, 49…76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제 손 대표의 남은 목표는 급행장 간판에 ‘100년 전통’이 새겨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는 “매년 간판을 교체할 때마다 손님에게 더 잘해서 무탈하게 한 해를 보내자는 각오를 한다. 숫자가 하나 더해지면 각오가 새로워지면서 의미도 더 생기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급행장 식구들은 새해 벽두에 가게 앞에서 이 같은 각오를 담은 화이팅을 함께 외쳤다. ‘76’이라는 숫자를 달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전쟁이 나기 직전이었다. 손재권 대표의 부친 손남출(1923~2009) 씨는 지금 급행장 자리 바로 앞 포장마차에서 1950년부터 고기와 냉면 등을 팔기 시작했다. 손 씨는 그전에는 대신동 구덕운동장 담을 넘어가 아이스케키를 파는 등 일찍부터 장사에 눈을 떴다. 서면이 한국전쟁 피란민들로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부전천이 복개되기 전이라 급행장 앞 하천에는 장마철이면 통나무가 떠내려가기도 했다. 하천가에는 피난민촌이 있었다. 전쟁 통에 꽤 돈을 번 손 씨는 1952년 지금 자리에 있던 2층 기와집을 사서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에 뛰어든다. 급행열차와 완행열차밖에 없을 때였다. 손 씨가 ‘불고기를 빨리빨리 조리해서 낸다’는 뜻으로 직접 지은 이름이 급행장이다. 밥도 빨리 먹고, 빨리 돈 벌러 가야 했던 시절이었다. 1967년 건물을 증개축한 뒤 직원 35명, 지배인 3명을 둘 정도로 장사는 잘 되었다. 손 대표 가족과 함께 급행장에서 숙식하는 직원이 10여 명이나 되었다. 말 그대로 ‘식구’였다. 급행장의 호시절은 부산의 신발산업 호황과도 맞물려 있다. 지배인 한 명은 외상 수금을 전담했다. 신발 공장 월급날이 되면 간부들이 달아놓고 먹은 외상값 받아오는 게 일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급행장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유일하게 찾은 흔적이 예전 백색 전화(3-2100)를 계승한 급행장 전화번호(051-809-2100)다. 1960~70년대 전화기 보급률은 매우 낮았다. 당시 백색전화 한 대를 놓는 것이 집 한 채 값과 맞먹을 정도로 귀했다. 3, 2, 1, 0, 0. 비싸게 산 급행장 전화번호는 그냥 순서대로 다이얼을 돌리면 되었다. 막내였던 손재권 대표는 1997년 아버지로부터 급행장을 물려받는다. 건물과 땅을 절대로 팔지 말고 유지한다는 조건이었다. 하필이면 3남 4녀 가운데 막내를 선택했을까. 손 대표는 “살아보니까 내가 아버지와 생각이 똑같더라. 아버지는 내가 독해서 뭐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들 부자는 통풍마저도 부전자전으로 똑같이 심하게 앓았다. 손 대표는 “부모 잘 만난 덕에 엄마 뱃속에서부터 소고기를 먹었고, 이 세상 누구보다 소고기를 많이 먹었다. 지금도 혼자서 500g을 먹는다”라고 말한다. 그 덕분에 소고기 맛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전국적으로 정평이 났다. 이름난 한우집에 들렀다가 먹은 고기가 한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집도 아주 쇠고집이다. ‘음식 파는 사람은 음식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고객’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손님이라고 하면 되지 않나? 고객이라는 생소한 단어는 한 번도 안 써봤다”라고 말한다. 언뜻 불친절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만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다. 수십 년 단골에게 나가는 고기도 예외 없이 똑같다. 급행장은 일찍부터 일본에 소문이 나서 일본에서 개별 관광객이 많이 오지만 단체 관광객은 거의 오지 않는다. 외국인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울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이드 리베이트가 포함된 가격에 일절 타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손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점심에 많이 찾는 갈비탕을 보면 알 수 있다. 요즘 보기 드문 한우 갈비탕이 나온다. 구이로 인기 높은 한우 갈비를 넉넉히 넣으려면 갈비탕 한 그릇 가격이 3만 원을 훌쩍 넘겨야 한다. 지팡이 짚고 힘들게 찾아오는 오랜 단골들을 위해 그 반도 안 되는 가격을 받고 있다. 알고 먹어서 그런지 갈비탕에 든 고기가 정말로 부드럽다. 급행장은 일 년 365일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쉬지 않고 돌아가려면 더 많은 직원이 필요하다. 손 대표는 어느 순간 이상한(?) 생각에 꽂혔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는 돈 한 푼 없이 시작해서 배고픈 사람에게 밥 팔아 돈을 벌었다. 그런데 휴일이라고 배가 안 고플까? 휴일에도 가게 문을 여는 게 맞겠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영업시간도 얼마 전부터 오전 11시에서 10시 반으로 당겼다. 배고픈 사람, 밖에 세워 놓지 말자는 뜻이다. 손 대표는 “내가 쉽게 만들 수 있는 걸 어렵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무튼 요즘 들어 멋쟁이였던 아버지가 발등에 어린 나를 태우고 춤을 추던 모습이 떠오른다”라고 말했다. 신임 대표 손희철(38) 씨는 ‘급행장’ 3대를 이끌어갈 주역이다. 손 씨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5년간 해외 영업을 담당했다. 그 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라고 생각해 급행장으로 돌아왔다. 손 씨도 이날 “간판이 바뀔 때마다 한 해가 무사히 지나갔다 생각하면서 감사한다”라고 아버지와 비슷한 말을 했다. 하지만 가게 영업에 관한 생각은 달랐다. 손 씨는 “지금 급행장은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다. 가게 인테리어나 반찬도 젊은 사람들의 취향과는 좀 다르다. 지금까지는 아버지의 뚝심으로 해왔지만 이제부터는 트렌드에도 맞춰서 가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급행장에 나오는 시간을 줄이고, 아들은 늘리고 있다. 백년가게를 향한 급행장의 변화가 이제 시작된 것이다. 예전 사진이나 과거에 쓰던 불판 같은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 손재권 대표는 “급행장에서 찍은 옛날 사진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으면 사례하겠다고 광고를 낼 생각이다.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과거 급행장의 모습은 그림으로 한번 그려 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또 손희철 신임대표는 “지금까지 급행장에서 있었던 흥미로운 일들을 모아서 ‘급행장의 100가지 이야기’로 정리하고, 웹툰 형식으로도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젊은 층에 다가가려는 참신한 시도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30년 가까이 이어진 간판 교체식 사진과 영상만 있었어도 훌륭한 사료가 되었을 것 같다. 구스타프 말러는 “전통은 불을 보존하는 것이지, 재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시간이 흐른다고 전통이 아니라 공동체의 수용과 가치 부여가 있어야 전통이 된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기자 픽] 연극-로맨틱 코미디 '택시 안에서'
남들 다 한다는 연애를 제대로 시작도 못 해 본 하영, 남들 다 잘한다는 연애가 뜻대로 되지 않는 소희. 이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연인이 된다. 하지만 머지않아 권태기는 찾아오고, 결국엔 이별을 택한다. 아픔을 감당하지 못한 소희는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하영은 뒤늦게 소희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택시를 타고 급히 공항으로 향한다. 극단 바라의 연극 ‘택시 안에서’는 민수가 운전하는 공항행 택시 안에서 펼쳐지는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무대엔 세 명의 배우와 택시 한 대가 달랑 등장한다. 하지만 세 배우가 펼치는 이야기는 반전과 해프닝을 거듭하며 인생 전반을 넘나든다. 청춘 연애담으로 출발해 휴먼 스토리로 이어지는 ‘택시 안에서’는 부산 남구 해바라기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수, 목, 금요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3시, 6시. 일요일 오후 2시 30분, 5시. 예매 네이버. 문의 1600-1716.
[기자 픽] 음악-성재창 트럼펫 리사이틀
한국을 대표하는 트럼페터 성재창이 최근 개관한 낙동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성재창은 오는 22일 낙동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성재창 트럼펫 리사이틀’을 갖는다. 그는 독일 레겐스부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핀란드 국립 오페라 부수석, 충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지금은 서울대 음대 기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낙동아트센터 측은 “관악기 독주 무대가 드문 국내 공연 환경 속에서 트럼펫 음악의 깊이를 조명하는 뜻 깊은 무대”라면서 “기교적 화려함보다 음색, 호흡 그리고 잔향 속에서 형성되는 음악적 밀도를 중심에 두고, 동시에 낙동아트센터의 음향적 특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리사이틀에는 피아노 송영민, 트럼펫 고형민, 신호연, 호른 신승환, 테너트롬본 소원형, 튜바 성동훈 등이 함께 한다. 22일 오후 7시 30분 낙동아트센터 콘서트홀. R석 2만 원, S석 1만 원. 예매는 낙동아트센터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기자 픽] 전시-이효연 특별전 ‘Macondo: 빛의 문’
‘마콘도’(Macondo)는 실재하지 않는 이름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표작인 <백년의 고독>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을처럼, 기억과 시간, 꿈과 현실이 뒤섞이는 세계다. 관객들은 자주 물었다. “여긴, 어딘가요?” 작가는 말한다.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았지만, 이미 어딘가를 지나온 듯한 감각. 나는 그 감각을 화면에 붙잡아 두려 했다.” 부산 해운대구 갤러리하스에서 지난 13일 개막한 이효연 특별전 ‘Macondo: 빛의 문’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빛의 공간’을 탐구한다. 작가는 회화 속 문과 창, 복도를 통해 일상의 장면을 감정의 통로로 확장하며, 내면의 세계를 시각화한다. 그의 그림은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감정의 공간화’이다. 이효연의 그림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물음은 관람자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확장돼 마침내 빛이 침묵을 통과하는 순간, ‘마콘도’의 문턱에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닫힌 세계 속에서 열린 문을 마주하는 것, 그것이 이번 전시의 본질적 경험이다. 1973년생 작가는 홍익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미술학교에서 프로젝트와 특별 과정을 수료했다. 전시는 2월 12일까지 열린다. 갤러리 운영 시간은 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전시 문의 1551-3487.
[잠깐 읽기] 지구 격변기에도 살아남은 종의 특징은…
지구 격변기마다 많은 종이 멸종했고, 동시에 어떤 종은 살아남았다. 생존한 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신간 <완벽하지 않은 것이 살아남는다>의 저자 대니얼 R. 브룩스와 살바토레 J. 에이고스타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바로 기존 환경에서 가장 완벽한 종이 아닌 것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적자생존’이라는 대중의 통념을 뒤집으며 인류의 생존 법칙을 다시 쓴다. 진화란 가장 뛰어난 1인자를 걸러내는 관문이 아니라, 살아남아 번식하는 모든 개체를 선호하는 헐거운 과정이라는 것이다. 변화하는 조건에 대처할 수 없다면, 현재 가장 완벽한 종이 되는 일은 무의미하다. 예를 들어 몇몇 물고기 종은 부레가 폐로 변하는 진화적 땜질을 거쳤다. 이들은 애초 수중생활에 불필요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고, 물속에서는 가장 완벽한 종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이 불완전함 덕분에 훗날 육지로 올라와 네발짐승으로 진화하게 된다. 반면 1만 2500년 전에 정착농업이 본격화되면서 인류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적자’가 되는 생존 전략을 고수해 왔다. 그 결과는 기후 위기, 세계 전쟁, 에너지 고갈로 돌아왔다. 이 책은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진화 경로를 추적하며, 어떻게 인류세가 위태로워졌는지를 탐색한다. 더 나아가 자연, 거주지, 관계, 제도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이들은 지속가능성을 넘어 생존가능성으로 상상력을 넓히라고 조언한다. 대니얼 R. 브룩스·살바토레 J. 에이고스타 지음/장혜인 옮김/더퀘스트/488쪽/2만 5000원.
[잠깐 읽기] 아이를 잘 키운다는 건…
한국에서 자녀를 18세까지 키우는 데 드는 양육 비용이 3억 6500만 원이라는 통계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비용이며 학생의 80%가 사교육에 참여한다고 조사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학부모는 자연스럽게 남과 비교해 내 자식에게 풍족하게 해 주지 못해 늘 미안하고 불안하다. 책의 저자는 “남들만큼 못 해 줄 거면 아이를 낳는 일조차 미안해해야 하는 시선에 반기를 들고 싶어 이 책을 쓰게 됐다”라고 말한다. 돈으로 사는 화려한 경험 대신 물질로는 결코 살 수 없는 가치를 아이에게 선물하자 싶었다. 공공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 산과 공원, 물놀이터, 계곡이 훌륭한 교실이 되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곳이라면 무작정 떠났고, 덕분에 저자의 두 아이는 잘 노는 아이로 자랐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놀이를 창조했고 그 과정에서 체력이 길러졌다. 놀이터에서 만난 형, 누나에게 스포츠 기술을 배웠고, 친구들과 부딪히며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배웠다. 조금 부족한 환경이 아이에게 결핍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걸 확인했다. 먼 곳으로 여행 대신 동네 구석구석 탐험하며 살고 있는 곳에서 매일 새로운 재미를 찾았다. 세상 모든 부모는 아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만 주고 싶다. 저자 역시 학원이나 외국 여행을 간다는 주변 이야기를 들을 때 ‘외벌이를 선택한 것이 아이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함이 고개를 든다. 남들만큼 해 줄 능력이 없어 이 길을 택한 거냐고 자문하기도 했다. 책은 불안한 이 시대의 부모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이자 지금 이대로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응원이다. 풍족하지 않지만, 아이들 일상을 반짝이게 해 주는 것이 참 많다. 하정화 지음/해피북미디어/232쪽/2만 원.
부산도 24평 ‘10억 시대’… 공급·전세 부족 영향
BNK 1주라도 있으면 사외이사 추천 가능
‘한동훈 제명’에 친윤계도 “과한 징계”… 장동혁 “재심의 전에 의결 안 해”
美 구두 개입·한은 금리 동결에 환율 11일 만에 하락 1460원대
한 발 물러선 장동혁…‘제명 명분 쌓기’냐 ‘정치적 해법 모색’이냐
"요즘 세상에 웬…" 덮개로 가려진 해수부 '남근상'
기장 숙원 ‘정관선’ 예타 통과 여부 주목…지역 정치권 총력전
민주 ‘2차 종합특검' 강행… 국힘·개혁신당 ‘필버 공조’에 장동혁 단식 돌입
‘빨리빨리’ 좋아하는 부산, 외국인 민원엔 ‘느릿느릿’ [부산은 열려 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주차장 30면에 사업비 71억?… “예산 낭비” vs “주차난 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