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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쑥 캐러 가자
제비꽃 옆에 앉아 캔다 풀꽃을 세다 나이를 잊은 여자가 쑥이나 캔다 봄날에는 함부로 길 나서는 것 아닌 줄 알만한 여자 오늘은 무슨 얕은꾀나 낸 듯 들판에 쪼그려 앉았다 봄볕에 그을려 등뼈가 사라지고 머리 몸통 차츰 사라지는데 아무런 대책없이 흙이나 뒤적인다 말을 잃고 손가락을 잃고 엉덩이를 잃더니 그 여자 무덤처럼 잠잠해진다
봄볕이 캔다 갈때까지 가겠다며 칼을 품고 집 나온 가슴이나 캔다 노래를 잊은 여자 오로지 슬픔인 여자를 바구니에 캐 담는다 허리를 펴느라 잠시 고개를 돌렸는데 초록 담요 위에 따뜻한 잠 귀신이 와서 몸을 눕힌다 쑥물 들고 쑥 냄새 밴 여자를 흔들어 깨운다 천 년 잠에 귀도 입도 없어진 여자 넋을 놓고 앉았는데 봄볕이 칼을 들고 캔다 꿈인지 소설인지 모를 아지랑이만 중얼중얼 풀어지고 있다
시집 〈술병들의 묘지〉 (2013) 중에서
문득, 계절의 순서가 단지 봄이어서 싹이 움트고 꽃들이 피는 게 아니라 대지를 뚫고 오르는 생명들의 열기 때문에 날이 풀리는 것 아닌가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양지바른 곳이라면 어디서나 자라서 국도 끓이고 나물도 만들고, 향기로 해충도 쫓고 쑥뜸으로 병을 다스리기도 하는 여러해살이풀. 쑥 캐다 말고 오수에 든 여자 대신 봄볕이 쑥을 캐는 수채화가 보입니다. 없이 살던 때에 봄볕 등지고 여기저기 쑥을 캐러 다니던 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척박한 환경에서도 쑥쑥 잘 자라는 쑥. 그런데 이 쑥이 토양에 있는 중금속을 흡수하는 탓에 공기 좋고 깨끗한 곳에서 채취해야 한답니다. 생태계를 위협하는 돼지풀이나 독초인 투구꽃과도 비슷해서 잘 구별해야 한다는 흔하디흔한 쑥. 도다리쑥국이 맛있다는 벌써 봄입니다.
신정민 시인
2025-04-0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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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오리무중
세상이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통 모르고 살지만
무언가 쉼없이 태어나고 죽는다는 건
똑똑히 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문자가 오니까
이 정도만 알아도 사는 덴 지장이 없다
태어나고 또 죽어나가는
그 사이는, 원래
오리무중이니까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어떻게 살아갈까
어떻게 살다 죽었을까
가끔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쪽도 깜깜 오리무중이니까
문자란 게, 워낙 엄지 첫마디처럼
짤막하니까
시집 〈아픈 천국〉(2019) 중에서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살아내야만 하는 현실의 방향이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이 와중에도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습니다. 누군가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의 연민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가 포함된 감정입니다. 뭔가 자꾸만 피폐해져 가는 개인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온갖 소식을 짧고 간단하게 전해주는 스마트 폰. 예측할 수 없는 생과 사,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죽은 자들이 산 자들에게 보내는 이 메시지는 세상이 아무리 오리무중이어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란 문구겠지요. 누군가의 삶에 대해 제대로 귀 기울여준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게 됩니다. 삶은 길다 하더라도 항상 짧은 것이며, 절망 속에서도 언제나 조용한 희망은 있다고 한 어느 싯구가 떠오릅니다.
신정민 시인
2025-03-2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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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갑오징어와 을오징어
둘은 일관된 앙숙이었다. 둘이 화해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제삼자가 나섰다. 제삼의 인물은 어느 편도 들 생각이 없었지만, 이쪽을 만나면 이쪽에서 저쪽을 만나면 저쪽에서 다른 말이 나오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쪽은 이쪽대로 옳은 말이고 저쪽은 저쪽대로 사정이 있었으니 둘 다의 말을 종합하면 어느 쪽도 만족할 만한 말을 들려줄 수 없었다. 그래서 돌아오는 말이 너는 누구 편이냐? 둘 중 하나만 택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그는 일관되게 제삼자였다. 소주 한 병에 오징어 두 마리면 충분한 사람이었다.
시집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2018) 중에서
이런저런 서류를 쓸 때마다 언제나 ‘을’이었던 나도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됩니다. 그나저나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자들이 화해의 물꼬를 터주려는 자에게 어느 쪽인지 채근하는 것도 어쩌면 폭력 아닐런지요.
편 가르기, 그것만이 풀어야 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개개인의 의사나 능력이 반영되지 않는 갑과 을.
세상에 대한 태도나 삶에 대한 방향이 하나의 방법이나 태도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게 옳은지 아닌지 고민스러워집니다.
번번이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제삼자가 되기도 합니다. 가벼워 물에 뜨는 갑오징어의 패각으로 배를 만들어 놀았던 어릴 적 생각이나 합니다. 신정민 시인
2025-03-1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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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행복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보람찬 하루라고 말했다
창밖은 봄볕이 묽도록 맑고
그 속으로 피어오르는 삼월처럼 흔들리며
가물거리며 멀어지는 젊음에 대고
아니다 아니다 후회했다
매일이 보람차다면
힘겨워 살 수 있나
행복도 무거워질 때 있으니
맹물 마시듯
의미 없는 날도 있어야지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있어야지
시집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2022) 중에서
행복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의 결과가 몹시 좋아서 자랑스럽고 만족스러우려면 얼마나 열심히 일해야 할까요. 그렇게 보람찬 하루가 계속된다면 또 얼마나 힘들까요. 그래서 어떨 땐 ‘가끔 쉬어가도 괜찮다’는 말이 큰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 행복이라는데 그 또한 녹록지 않은 정의입니다.
나만의 속도, 나만의 방식으로 내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보람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세상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말도 고민해 봅니다. 지금 내 삶에 만족하는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신정민 시인
2025-03-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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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봄의 정치
봄이 오는 걸 보면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봄이 온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밤은 짧아지고 낮은 길어졌다
얼음이 풀린다
나는 몸을 움츠리지 않고
떨지도 않고 걷는다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만으로도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몸을 지나가도 상처가 되지 않는 바람
따뜻한 눈송이들
지난겨울의 노인들은 살아남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단단히 감고 있던 꽃눈을
조금씩 떠보는 나무들의 눈시울
찬 시냇물에 거듭 입을 맞추는 고라니
나의 딸들은
새 학기를 맞았다
-시집 〈봄의 정치〉(2919) 중에서
계절 중에서는 봄에만 ‘새’라는 접두사가 붙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없었던 봄이 새로운 봄이 오고 있습니다. 봄에 참여하는 생명들처럼 따듯해진 밖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인의 생각처럼 생각만으로도 나아진 세상이 펼쳐져 있길 기대해 봅니다. 시절을 견디고 있는 모든 것들이 새 학기를 맞는 딸들처럼 설레었음 좋겠습니다.
겨울보다 못한 봄이 올까봐 쓸데없는 걱정도 하게 되지만, 희망찬 앞날을 준비해 봅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있는 것들을 위해 꽃망울들처럼, 꽁꽁 언 땅을 밀어 올리는 어린 순들처럼 힘을 모아 봅니다. 긴 밤을 지나오는 새벽처럼 얼음 풀리는 봄을 기대해 봅니다.
생존을 위해 꽃부터 피우는 봄의 전략은 오래전부터 준비된 계획이었다는 것, 매서운 겨울의 냉기를 거쳐야만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 생각해 봅니다. 신정민 시인
2025-03-0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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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봄눈
걷다 보니 구포시장 국밥집이었다
백 년은 된 듯 허름했다
죽은 줄 알았던 김종삼(金宗三)씨가 국밥 그릇을 나르고 있었다
얼굴이 말갰다
눈빛도 환했다
여전히 낡은 벙거지를 쓰고 있었다
설렁탕이며 해장국이며 깍두기를 딱딱 제자리에 갖다주었다
뜨건 국물을 가득 부어주었다
공손하였다
두 병째 소주를 시키자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왼쪽 벽을 가리켰다
‘소주는 각 1병’
삐뚤삐뚤 아이 글씨였다
-시집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2019) 중에서
언제나 말없이 점퍼 차림에 벙거지를 쓰고 술집에 홀로 앉아 술을 즐겼다는 김종삼 시인은 후배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1950년대 시인입니다.
가난과 음악과 술을 친구 삼아 고독을 즐겼다는 괴짜 김종삼 시인에게 시인이란, 고생스럽지만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스럽고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랍니다. 그렇다면 국밥집 아저씨도 재래 시장통에 오가는 평범한 사람들도 시인 아니겠는지요.
시인은 시인을 알아보는 법이지요. 구포시장 어느 국밥집에 들어가 시인이 차려주는 공손한 밥 한 끼 먹고 싶어집니다. 어린이의 눈으로 순수 세계와 현대인의 절박한 세계를 함께 썼던 시인을 저도 만나고 싶습니다. 잘 살기 위해 잊고 있었던 마음, ‘공손’이란 마음을 되뇌어 봅니다.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있는 시인이 부럽습니다. 신정민 시인
2025-02-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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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봉래산 마고
홀로 되고서야 연필로 쓰던 집 주소가 생각난다
맨땅에 쪼그리고 앉아서야 기웃한 의자가 보인다
떠나고 나서야 구석구석 묵은 멍들이 선명해진다
갈 길을 잃고서야 낡은 수첩 속 빽빽한 약속들이 생각난다
이방인이 되어서야 봉래산 할매바위를 기억한다
풍경이 낯설어지자 익숙해지는 귀신들
돌아서는 모퉁이마다 수평선이 있었다 돌아 나오는 흰 여울
그물을 깁던 가난한 마고들, 어깨마다 햇미역 수북하다
오래된 슬픔을 걸치고 아직도 키가 자라는 영도 봉래산
기슭마다 물고기들 퍼덕인다 시퍼런 비탈이 그물을 친다
낡은 뉴스 덜컹대는 산복도로 마을버스 안
홀로 되고서야 잎눈 돋는 곳곳이 고향이었음을 안다
-시집 〈뿌리주의자〉(2021) 중에서
영도는 바다의 용왕과 봉래산의 마고할미를 섬기는 신화의 섬입니다.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마고(麻姑). 영도가 고향인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세계를 바꾼다’는 뿌리 정신과 함께 최근 원도심에서 인문 정신을 나누어 온 〈백년어〉를 영도 신선동으로 옮기고 ‘신선시사(新仙詩社)’라는 간판을 걸었습니다. “새로운 신선들이 시를 읽으며 시대를 논하다”는 뜻이 담겨있답니다. 버려진 것이 새롭게 태어나고 잊힌 것이 다시 기억되는 읽고 쓰기, 그 비움과 나눔을 실천하기 위함이랍니다. 이동은 새로운 생성의 땅을 만들어가기 위한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혼자라고 느낄 때 고향은 든든한 위로가 아닐는지요. 시를 통해 사고하고 실천하려는 이 움직임이 새로운 응시가 필요한 시대에 빛이 되어주길 바래봅니다. 신정민 시인
2025-02-1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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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동래야류
마당 가득 달 떠올라
오색 홍등 불 밝히면
굴피나무 때죽나무 덩달아 독을 벗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놀음판에 내딛는 밤
문둥이, 양반, 할미, 악사들도 모두 나와
덧배기 굿거리로 어깻짓 흥겹다가
살별처럼 쏟아내는 말뚝이 한 소리에
눈물로 고여오는 달꽃 한 무더기
양반 아흔아홉 잡아묵고
네 하나 잡아 묵으면 등천한다
소리치던 비비새는
나 하나 잡아먹고 이제는 떠나가
동래야류 들놀음엔 빈 날개만 일렁일 뿐
보름 밤, 동래야류 들놀음판 찾아가면
수십만 잎사귀 악사석에 내려앉아
해금 젓대 바람을 켜고
그 음률 밟고 노는 탈 그림자 그곳에 있네
-시집 〈아왜나무 앞에서 울었다〉 (2012) 중에서
오늘은 정월 대보름입니다. 동래야류는 정월 대보름에 부산 동래구에서 세시 민속놀이로 연행하는 들놀이입니다. 1967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고, ‘수영야류’에서 유래했지만 앞놀이와 뒷놀이 중에서 동래야류의 뒷놀이에 ‘문둥이춤’이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음력 정월 초사흗날부터 ‘지신밟기’로 집을 돌면서 야류를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놀이꾼과 구경꾼이 함께 굿거리장단에 맞춰 덧배기춤을 추며 놀았는데 주로 동래시장 앞 네거리나 동래 금강공원 내 놀이마당에서 공연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줄다리기와 세병교 안락동 쪽에서 출발해 시장터까지 행진하는 길놀이도 볼만합니다. 마을의 풍요와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전통놀이가 상생의 의미가 절실한 우리나라의 평안으로 이어졌음 좋겠습니다. 신정민 시인
2025-02-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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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지게體
부산진 시장에서 화물전표 글씨는 아버지 전담이었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아버지가 시장에서 대접을 받은 건
순전히 필체 하나 때문이었다
전국 시장에 너거 아부지 글씨 안 간 데가 없을끼다 아마
지게 쥐던 손으로 우찌 그리 비단 같은 글씨가 나왔겠노
왕희지 저리 가라, 궁체도 민체도 아이고 그기
진시장 지게체 아이가
숙부님 말로는 학교에 간 동생들을 기다리며
집안 살림 틈틈이 펜글씨 독본을 연습했다고 한다
글씨체를 물려주고 싶으셨던지 어린 손을 쥐고
자꾸만 삐뚤어지는 글씨에 가만히 호흡을 실어주던 손
손바닥의 못이 따끔거려서 일찌감치 악필을 선언하고 말았지만
일당벌이 지게를 지시던 당신처럼 나도
펜을 쥐고 일용할 양식을 찾는다
모이를 쪼는 비둘기 부리처럼 펜 끝을 콕콕거린다
비록 물려받지는 못했으나 획을 함께 긋던 숨결이 들릴 것도 같다
이제는 지상에 없는 지게체
-시집 〈붉은빛이 여전합니까〉(2020) 중에서
그리움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큰 힘이 아닐는지요. 늙고 병든 아버지의 등을 밀며 낙인처럼 찍혀있던 지게 자국을 보았다는 시인의 시 ‘아버지의 등을 밀며’가 생각납니다. 노동자로 살아왔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몸에는 그들만의 흔적이 정신과 육체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아름다운 것 하나쯤 물려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 때문에 시인은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요. 시인은 늦깎이 대학생 시절에 야간 수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좋은 시집을 필사했는데요. 오른손 검지에 펜혹이 생길 때까지 필사를 했다고 합니다. 왜 시를 쓸까, 물을 때마다 좋은 시를 만나고 좋은 시인을 만났다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이 묻어있는 글씨체가 있을 겁니다. 흰 종이 위에 그리운 아버지의 이름을 적어봅니다. 신정민 시인
2025-02-0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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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겨울 좌천동
저녁이 긴 외투를 끌고 모퉁이를 돌고 하늘은 흐린 겨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과 함께 이 골목길을 걸을 수 있다면 저 작은 보안등 불빛 하나가 어떻게 낡은 벽의 균열들을 살아서 숨 쉬게 하는지, 벽들이 어떻게 어둠 속에서 그리운 이야기를 꿈꾸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말라붙은 담쟁이덩굴에 불빛이 닿으면 황금색 수액들이 마른 줄기로 흐르며 조심히 연금술의 비결을 벽에 쓰는 것을, 어느새 겨울바람이 지우는 것을, 그 사이에 고단한 겨울의 하루를 견딘 집들이 하나씩 내밀한 내면을 켜고 발광체가 되고 있는 것을 말이지요.
-시집 〈겨울 산야에서 올리는 기도〉(2012) 중에서
이성희 시인은 철학자입니다. 시와 철학의 멀기만 한 간극을 이렇듯 이어줍니다. 산비알 좌천동의 골목길에서 낡은 벽의 균열들이 작은 보안등 불빛 하나로 황금색 수액으로 흐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연금술은 물질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시도이고,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철학적 시도입니다. 일상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세계. 존재함이 존재해 나감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둠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꿈, 아무리 고단해도 사람들은 저녁 창문들의 불빛처럼 내면을 밝힙니다. 인간 정신의 원초적인 조건인 어둠과 빛. 작은 불빛 하나로도 우리들의 꿈은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살아가고 있는 겨울 좌천동 좁은 골목들을 당신과 함께 어슬렁거려보고 싶습니다. 이 시대의 균열을 채워줄 불빛을 찾게 됩니다. 신정민 시인
2025-01-2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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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야근 수당
야근 수당을
영혼처럼 품에 꼭 껴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길,
영혼보다 더 사랑스러운
내 지상의 먹이,
장갑 낀 손으로 소중히 들고 가지만
손은 시리고 따갑다
여기저기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의 키보다 그림자가 더 길다
땅에 닿은 부분이 너무 닳아 있다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설 때,
내 앞에서 줄이 끊어지고
떠나 버리는 차,
그를 용서해준다
밤 이슥히
그 버스는 돌아온다
그가 나에게 화해를 청할 것이다
-시집 〈우주관측〉 (2006년) 중에서
‘사랑이여, 너도 동사로 오너라, 형용사의 아름다운 곡선보다 꺽이는 직선의 동사로 오너라, 벌건 살과 피의 어간만으로 오너라’.
시인의 〈품사론〉을 외우던 때가 생각납니다. 시인은 가고 없지만 시는 살아서 지금도 우리의 거리를 바라봅니다. 삶이란 곧은 것도 휘어진 것도 녹록치 않습니다. 내 앞에서 끊어진 줄, 그러나 다시 돌아와 화해를 청할 것을 알기에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살아있어 살아야 하는 자들의 비애를 향해 가난이 기다리는 집으로 데려다줄 버스가 돌아옵니다. 아무리 추워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사랑스러운 것들.
힘든 야근 때문에 새벽에서야 길 위에 서 있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일이 없어 여기저기 폐업소식이 들립니다. 바닥을 딛고 서 있는 그림자마저 닳아있다는 고단한 시구 앞에서 올해는 힘들어도 일이 많기를 바래봅니다. 신정민 시인
2025-01-1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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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바람이 말했다
당신이 진실로 민감하다면 알 것입니다
내가 숨을 들이킬 때
아주 작은 진공이
우주의 틈새에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 진공으로 겨우내 꼬물딱거리던 생의 기미가
아, 줄탁동시, 비어져 나온다는 것을
지나가던 어린 벚나무 꽃눈에 당신이
호 하고 입김을 불어
저 어린 것이 힘들게 기지개 펼 때
당신의 입김으로 틈새를 메꿔야 한다는 것을
동참하셔야 한다는 것을
봄이 오기 위해 해야 할 이 많은 일들이
우리의 이 깊은 한숨이
얼마나 숨차고 가쁘고 후달리는 것일지
벚나무도 알아주면 좋으련만
너무 하염없이 지려고만 하네요
어쩌면 좋을까요, 당신?
-시집 〈말하라, 어두워지기 전에〉 (2015)중에서
‘우리의 이 깊은 한숨’이란 문장 앞에서 심호흡을 해봅니다. 언젠가 시인은 우리의 시절이 불안을 향해 나부끼는 깃발과 같다고 했지요. 우리의 숨결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생의 출현에 필요하다는 것, 생명이라는 가치를 위해 우리는 안과 밖에서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 우리가 기다리는 봄은 올까요. 줄탁동시 없이 불가능합니다.
어린 꽃눈에게 필요한 희망을 생각합니다. 오지도 않은 봄이 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암담한 현실에 부는 바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우리가 벌려놓은 틈을 메꾸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을 겁니다.
살아있는 자만이 숨을 쉽니다. 봄을 위해 해야 할 이 많은 일들에 대해 ‘어쩌면 좋을까요, 당신?’ 묻고 있으니 벚나무 말고 우리가 대답을 해야겠지요. 침묵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합니다. 신정민 시인
2025-01-0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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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회초리 파도
바다가 종아리를 내리친다
십 리 밖 백 리 밖에서
이 소행 어찌 알았는지
천 리 밖 만 리 밖까지 나가
회초리를 구해 왔다
이놈, 이 몹쓸 놈
이른 새벽 철썩철썩
지구의 따귀를 때린다
오늘은 어제처럼 살지 마라
내일은 오늘처럼 살지 마라
그럼그럼 끄덕끄덕
막 나온 아침 해가 맞장구친다
-시집 〈멸종 미안족〉 (2021) 중에서
일출 보려고 나온 바닷가에서 철썩철썩, 천 리 밖 만 리 밖에서 달려온 소리가 시인에겐 회초리 소리로 들립니다. 오늘을 잘 살고 있느냐고 바다가 묻습니다.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더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전언을 되새겨봅니다. 지나간 어제의 이름도, 기다리고 있는 내일의 이름도 오늘이겠지요. 그런데 파도는 왜 자신의 따귀를 때릴까요. 종아리를 걷고 걸어봅니다.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잘못을 생각해 낼 때까지 기다려주려고 바다는 저렇게나 멀리 가서 사랑의 매를 구해옵니다. 나밖에 모르는 삶이 부끄러워집니다. 시는 나를 바르게 살게 하는 힘이라던 시인의 말이 자꾸만 밀려옵니다. 신정민 시인
약력: 2003년 부산일보 신춘등단. 시집 〈의자를 두고 내렸다〉 외. 최계락문학상, 지리산문학상 수상. 부산작가회의 회원
2024-12-3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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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첫 번 크리스마스
너무 어두워
길 못 찾고
아우성 소리로만 가득하던
땅에
주께서
빛 되어 내리시다
소리 없이 내리시다
-시집 〈임종호 시전집〉(2022) 중에서
죽음을 이기는 것은 탄생이다. 탄생의 대표적이고 강력한 상징은 ‘빛’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그런 점에서 가장 성스럽고 행복한 빛의 출현이다. 죽음의 ‘아우성 소리’로 가득하던 세상의 어둠을 저 멀리 사라지게 하고, 고통의 나락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은혜의 감로수(甘露水)를 뿌린다.
어둠 속에서 빛은 ‘소리 없이 내리’지만, 실은 하늘의 소리로 내린다. ‘길 못 찾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안내하는 복음(福音)이 된다. 넘어지고 쓰러진 사람들에게 어서 일어나 다시 시작하라는 격려와 위안의 목소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여 빛은 소리다. 어둠이 깊어지면 세상은 빛의 출현을 천지의 소리로 알린다. 죽음이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빛의 탄생으로 알리는 것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예수님의 탄생으로 어둠과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게 한다. 죽음과 삶은 이어져 있다. 실제 예수님은 죽음 뒤에 진정한 삶의 탄생으로 부활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김경복 평론가
2024-12-2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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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마지막 지상(地上)에서
산 까마귀
긴 울음을 남기고
지평선을 넘어갔다.
사방은 고요하다!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넋이여, 그 나라의 무덤은 평안한가.
-시집 〈마지막 지상에서〉(1975) 중에서
아, 나의 ‘넋이여’!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이 무한우주에 과연 나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나의 의식은 아직 명료해 보이지만 존재의 토대는 흐릿해져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어느 시간대를 지나고 있으며, 어느 공간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안타깝고 서러운 독백이 절로 나온다.
이 시는 김현승 시인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쓴 절명시(絶命詩)다.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태인데도 ‘사방이 고요하’고,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일 것이다. 죽음도 그저 일상일 따름인가? 그래서 묻는다. 나의 넋이 죽음 너머 ‘그 나라의 무덤’에 드는 일도 ’평안‘일 수 있는가? 슬픔이 물처럼 차오른다. 안타까운 마음에 불멸의 혼을 부른다. 나의 넋이여, 그대는 여전히 존재하는가? 삶이 궁극에 이르면 시는 처연해져 신을 부르고, 신의 소리를 낸다. 천지로 퍼져가는 신혼(神魂)의 소리는 시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울림이다. 김경복 평론가
2024-12-17 [1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