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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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1978~)

봄밤에 옷을 맡기러 간다

아침에 보지 못한 소파가 길가에 있다

이름을 쓰고 지웠다

옷을 맡기러 봄밤에 간다

셔츠 세 벌

소매 단추를 풀고,

바람에 흔들리는 셔츠를 한 손에 들고,

주황색 소파를 지나,

거미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애인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꽃이 다 내린 봄밤에

세탁소 불빛이 눈먼 목련처럼

내 얼굴을 덮는다

시집 〈우리의 파안〉 (2025) 중에서

봄밤에 수선해야 할 옷을 맡기러 집을 나서는 이유가 어쩌면 애인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그 애인을 생각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희미한 세탁소 불빛이 눈먼 목련으로 보이는 고요. 그 어두운 길의 고요가 인간 내면의 균열과 서정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절망과 희망의 경계가 재배치되는 세계. 문득 애인이라는 것도 실은 사랑하는 사람에겐 또 하나의 옷이 아닐런지요.

짧은 봄을 놓치듯 수선해야 할 옷을 미루다 보면 입지 못하는 봄옷들처럼 사람의 마음을 정리해보는 일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불빛이 희미할지라도 우린 그 불빛을 향해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 세계 안에서 살아나가고자 하는 의지로 다가옵니다. 거리의 소파처럼 내 것이라고 썼으나 버려야 했던 이름들. 어느새 떠나고 있는 봄의 뒷모습을 보여줍니다.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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