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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한국은행 디지털화폐 실험이 반가운 이유
2022년 7월. 스웨덴에 살러 간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집에서 가까운 스톡홀름 함마르비(Hammarby)를 지나다 세컨핸즈숍에 들어섰고, ‘아바(ABBA)’의 나라에 왔으니 이쯤은 하나 사줘야지 하며 먼지 묻은 아바 LP판을 골라 계산대에 섰다. 환전해온 빳빳한 500크로나 지폐를 내밀었는데, 가게 주인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잔돈을 찾으려는 듯 금고를 열었지만 금고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뭐야, 장사가 잘 안 되는 집인가? 아무리 그래도 가게 문을 열어 놨으면 잔돈은 갖고 있어야지.’
‘현금 없는 사회’ 선두주자로 여겨지는 스웨덴에서는 은행 강도도 기자와 비슷한 경험을 했나 보다. 2013년 스톡홀름에서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강도가 은행에 돈을 뺏으러 들어갔다 빈손으로 나왔는데, 그게 뉴스가 됐다. 은행엔 훔칠 현금 자체가 없었다.
기자는 스웨덴에서 ‘현금 없는 사회’를 경험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날아간 듯했다. 스웨덴은 1661년 세계 최초로 지폐를 발행했을 정도로 화폐 제도가 일찍부터 발달한 나라지만 지금은 상거래의 90%가량을 비현금 결제수단에 의존하는, 사실상 현금 없는 사회다.
앞서 언급한 세컨핸즈숍도 ‘망한 가게’가 아니라 ‘아주 보통의 가게’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스웨덴에는 현금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카드 결제와 ‘스위시’(Swish)가 대신하고 있었다. 스위시는 사용자 전화번호만 알면 돈을 보낼 수 있는 계좌 연동 모바일 송금 시스템으로, 2012년 스웨덴 은행들이 공동 출시한 서비스다.
은행 계좌를 만들 때 뱅크아이디(BANKID)를 발급 받으며 계좌와 연계한 스위시도 함께 개설해야 했는데, 스위시 이용자가 아니면 사실상 경제 생활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이들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신청하려 해도 스위시로 돈을 보내야 했고, 유치원 선생님 선물 구입 비용도 엄마들이 스위시로 모아달라고 했다. 길거리 버스킹 공연을 관람한 뒤에도, 교회에서 헌금을 낼 때도 스위시를 한다.
토요일 오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직접 만든 잼과 꿀 등을 파는 장터를 발견했는데, 지갑 없어도 스위시로 구입이 가능했다. 벼룩시장 판매자로 참가할 때는 카드 단말기는 구비할 수 없었지만, 스위시 QR코드를 발급 받아 출력하는 것만으로 손님 맞을 준비가 끝났다. 전통시장이든 개인이든 높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카드용 단말기가 없어도, 현금이 없어도 상거래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정착 초기에 쓰려고 우리돈 수십만 원가량을 현지 통화 크로나로 환전해 갔는데 1년이 지나도록 다 못 쓰고 돌아왔을 정도니 말해 뭐할까.
지난 1일부터 한국은행이 ‘한강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국민 10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험이 반가웠던 이유도 스웨덴에서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CBDC는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의 약자로 각국의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 전자화폐를 말한다. 스웨덴도 현금 없는 사회에는 다가갔지만, 공공재 성격을 띄는 현금 기능이 약화되며 각종 문제를 초래하자 중앙은행 차원의 CBDC, 이크로나(e-krona)를 도입하려 한다.
미국 달러 고정 디지털자산인 스테이블코인을 밀고 있는 미국을 제외하면, CBDC 생태계 구축은 세계적인 추세다. IMF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134개국이 CBDC 생태계 관련 구상을 추진하고 있고 이 중 66개국은 개발, 파일럿 또는 출시 단계에 있다.
사실상 CBDC는 중앙은행이 현금을 디지털화함으로써 현금의 공공재적 성격을 유지하고, 발권력을 확대해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QR코드 결제’로만 본다면 서운한 측면이 있다. CBDC는 현금 사용이 줄어들고 현금 관련 인프라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금융소외계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결제수단이 될 수 있다. 법정화폐로서 가격 안정성이 높고, 민간 페이나 신용카드보다 수수료는 훨씬 적다.
핀테크·빅테크 기업 시장 지배력이 늘고 데이터 집중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블록체인 기반으로 탈세와 자금세탁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CBDC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실험은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테스트 계획이 공개된 2023년 11월, 국제결제은행(BIS) 세실리아 스킹슬리 혁신허브국장은 “BIS는 한국처럼 발전되고 디지털화된 경제에서 CBDC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한 경험을 배울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얼리버드’ 정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국민 10만 명의 사용 후기를 전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2025-04-02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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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당근'에 담긴 사회
“당근에 몽클레르가 그렇게 많이 올라온다는데, 나 하나 사서 좀 보내줄래?”
서울 강남 지역 ‘당근’(중고 물품 온라인 거래 플랫폼)에 몽클레르 패딩이 쏟아져 나온다는 보도에 서울에 사는 언니에게 웃으며 전화를 걸었다. 수백만 원대 새 제품을 몇십만 원에 처분하는 이도 있다고 했다. 대치동 ‘제이미 맘’과 400km나 떨어져 사는 ‘피케이 맘’은 입어도 되지 않을까 ‘농담 반 진담 반’ 마음이었다.
개그맨 이수지가 유튜브 채널에서 선보인 ‘대치동 엄마’ 패러디 영상은 ‘싱크로율’뿐만 아니라 ‘당근 후폭풍’으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1탄 영상에서 입은 몽클레르 패딩은 중고 매물이 폭증했다. 일부 강남 엄마들은 “앞으로 몽클레어 입을 수 있을까요” 등의 글을 올리며 언짢은 기색을 보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몽클레르 득템 기회’라며 반색하기도 했다. 이수지가 밍크 조끼를 입고 고야드 가방을 든 ‘대치동 엄마’ 2탄 영상을 올리자 많은 이들이 ‘고야드 당근행’을 예측하기도 했다.
당근을 들여다보면 사회 이슈와 소비 트렌드가 고스란히 보인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호황을 누렸던 골프의 인기가 뚝 떨어진 것도 당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골프를 그만두려는 이들이 너도나도 골프채와 골프 의류를 중고 매물로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에 들어가면서 홈플러스 상품권이 당근에서 ‘핫’해지기도 했다.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팔려는 이들도 많았지만, 알뜰 장보기족과 전자제품 되팔이족들은 ‘삽니다’라는 구매 글을 올리며 오히려 상품권을 사들였다. 허니버터칩부터 포켓몬빵, 먹태깡, 두바이 초콜릿, 크보빵까지 식품업계 ‘품귀템’도 바통을 터치하며 부지런히 올라온다.
부동산과 자동차 직거래도 활발하다. 당근 앱 부동산 매물 건수는 2021년 5243건, 2022년 14만 719건, 2023년 34만 1172건, 2024년 65만 3588건으로 껑충 뛰었다. 실거래 건수 역시 2021년 268건, 2022년 7094건, 2023년 2만 3178건, 2024년 5만 9451건으로 치솟았다. 인천의 한 부동산이 50억 원에 팔렸고, 부산 수영구의 10억 원 아파트도 당근에서 거래됐다.
현재 당근의 누적 가입자는 약 4300만 명으로 주간 방문자가 1400만 명에 육박한다. 고물가 시대에 ‘짠 소비’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당근 거래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또한 ‘경험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에게도 중고마켓은 필수다. 중고로 싸게 사서 먼저 경험해 보고, 구매한 물건이 더 이상 필요 없다면 팔아버리고 다른 필요한 물건을 사는 식이다. 이전 세대보다 환경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도 당근을 애용한다. 새로 만들어내는 것을 쓰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재사용하는 것에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당근은 이렇게 ‘전 국민 중고 장터’로 자리매김했지만 시작은 의외로 동네 커뮤니티였다. 2015년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기업을 대상으로 한 물품 교환, 직거래 서비스 앱인 ‘판교장터’로 출발했다. 판교 기업 이메일을 인증해야 이용할 수 있었다. 입소문을 타고 주변 동네 주민들도 직거래가 가능하냐는 문의가 계속되자 ‘지역 기반 중고 거래 서비스’로 변경했다.
당근이 동네로 범위를 설정하게 한 장치는, 중고 거래에서 많이 발생하는 사기를 예방할 수 있어서 당근이 중고마켓 1위로 올라선 발판이 됐다. 또한 ‘동네 생활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발판도 됐다. 동네 질문, 동네 맛집, 분실·실종센터 등 다양한 게시판을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있다. 순대 트럭이 어디에 있는지, 붕어빵 노점은 문을 열었는지, 놀이터에서 잃어버린 아이 옷을 발견한 사람이 있는지 동네 사람끼리만 알 만한 온갖 정보가 오간다. 지난해 동네생활 게시판에서는 3900만 건의 소통이 이뤄졌다.
이처럼 당근은 단순한 중고 거래 플랫폼을 넘어섰다. 우리 사회의 모습과 소비 트렌드를 보여주는 거울이자, 이웃 유대를 강화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건 하나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지역 사회가 연결되고, 트렌드의 변화가 즉각적으로 반영되며, 환경을 고려한 지속 가능한 소비 문화까지 확산하고 있다.
소비의 방식이 변하는 만큼, 사람들이 관계 맺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 당근이 보여주는 ‘이웃과의 따뜻한 거래’는 단순한 경제적 이득을 넘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하나의 방법이 되고 있다. 앞으로 당근이 또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지 지켜보게 된다.
2025-03-3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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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동생은 그날 이후 수시로 문자를 보냈다. 일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며 휴대폰을 열어보면 시시각각 뒤집고 또 뒤집히는 뉴스에 불안하고 화가 난다고 했다. 언니야, 법이 왜 이래. 검찰은 또 왜 그래. 헌재는 믿을 수 있나. 그런데 언론은 왜 이러지. 그 때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란은 정리될 것이라고, 상식적인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계엄의 밤에 모두의 일상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이른 송년회를 하다가 맨몸으로 국회의사당 앞에 달려간 사람들이 있었고, 누군가는 속옷과 양말을 챙겨 하루아침에 계엄사 통제 대상이 된 직장으로 야밤 출근을 했다. 넉 달 가까이 지났지만 혼란은 끝나지 않았다. 그사이 여객기가 추락하고 산불이 무섭게 번지고 있다. 일상은 회복되지 않고 국민들의 마음도 재난이 됐다.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이 종결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최종변론에서 국회 측 한 변호사는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을 인용했다. ‘세상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가사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전에서 ‘제자리’는 ① 본래 있던 자리 ② 위치의 변화가 없는 같은 자리 ③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라는 뜻이다. 본래 있던 자리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반드시 같지는 않다. 하나가 원상 복귀라면 다른 하나는 옳고 바르다는 판단이 개입된다. 각각 사실과 당위의 영역이다.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자리는 당연히 저마다 다르다. 여기에서 갈등이 생긴다.
탄핵심판은 비상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이 계속 대통령직에 있는 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맞는지 살피고 그 결과 복귀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제자리 찾기’라고 할 만하다. 탄핵을 찬성하는 쪽은 국민을 상대로 계엄을 선포하는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직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파면만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반대하는 쪽은 복귀가 마땅하다고 확신한다. 계엄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이자 거대 야당의 횡포에 맞선 대국민 호소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노래 ‘풍경’ 속의 제자리는 이상향에 가까운 것 같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이 노래가 실린 1986년작 음반 ‘푸른돛/사랑일기’를 소개하면서 가수가 이 앨범을 낼 당시 줄담배와 위스키에 기댈 만큼 행복하지 않았고, 동화 같은 단어와 밝고 차분한 멜로디 밑에는 괴로움이 깔려있다고 썼다. “가사의 행간에는 지금은 없는 희망에 대한 갈망이 숨어있다”는 글에 비춰보면 ‘제자리’를 ‘지금은 없는 희망’에 대입해볼 수 있겠다.
헌재의 결정이 지연되는 동안 갈등은 더욱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탄핵심판 선고 자체보다 선고 이후가 더 중요하다. 어쩌면 더 큰 혼란이 닥칠 수도 있다. 결과가 어떻든 누구도 계엄이 선포되기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은 거꾸로 우리 사회의 다음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꺼내놓고 논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지금은 없는 희망이라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광장에는 이미 목소리들이 넘치게 모였다. 제각각의 시민들이 대통령 한 사람의 퇴장을 넘어 그동안 충분히 이야기되지 못한 각 분야의 개혁 의제들을 외친다. 이른바 ‘사회대개혁’이다. 물론 음모론을 불씨로 차별와 혐오를 부추기는 세력들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차별과 혐오가 제자리일 수는 없다. 그렇지 않다면 8년 만에 반복된 탄핵에서, 어떤 계절보다도 길었던 지난 겨울에서 하나도 배운 것이 없게 된다.
영화 ‘콘클라베’는 교황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콘클라베’ 이야기다. 콘클라베는 추기경 108명이 바티칸 시스티나성당에 갇힌 채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투표를 계속하는 방식이다. 영화에서는 두 번의 연설이 투표에 파동을 일으킨다.
콘클라베 전날 선거 단장인 로렌스 추기경은 “하느님이 준 가장 큰 선물은 다양성이고, 의심 없는 확신은 통합과 관용의 적”이라고 강변한다. 두 번째는 마지막날,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베니테스 추기경이 하는 연설이다.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를 두고 “종교전쟁”을 말하는 테데스코 추기경에 맞서 “편을 가르는 대신 모든 남자와 여자를 대변해야 한다”고, “교회는 권력이 아니라 우리가 다음에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교황청은 굴뚝 위에 흰 연기를 피워올린다. 새 교황이 선출되었다는 의미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헌법재판소의 문이 열리기를, 이제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늦더라도 결국에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신호가 되기를, 모두가 일상을 되찾고 다음에 해야 할 일로 나아가게 되기를 소망한다.
2025-03-2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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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남자들은 왜 친구가 없을까
광역전철 동해선과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한다. 며칠 전 집에 가다 동해선 전동열차 안에 붙은 광고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2025년 모두 음주하세요’라니?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아니었다. 울주군에 오라는 뜻으로 ‘울주하세요’라고 쓴 광고 문구를 ‘음주하세요’로 오독했던 것이다. 이거 혹시 알코올 중독 초기 증세가 아닐까.
요즘 세상이 좋아 AI가 알코올 중독을 자가진단하는 ‘CAGE 테스트’라는 게 있다고 알려 준다. 아주 간단하다. 첫째, 술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둘째, 다른 사람이 술 마시는 것을 비판하면 짜증이 난다. 셋째, 술 마신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다. 넷째, 해장술을 마신 적이 있다. 이 중 2개 이상 해당하면 알코올 의존 가능성이 높다. 넷 다 해당하면…. 아이고!
온갖 인간 군상을 만나게 되는 곳이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이다. 요즘 들어 특히 자주 만나는 부류가 있다. 정치 관련 유튜브를 크게 틀어 놓는 분들이다. 세상 듣기 싫은 이야기를 억지로 들어야 하니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고 가방 속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는다. 이런 일로 뭐라고 하면 그건 남자들 사이에서 ‘우리 싸우자’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크게 틀어 놓고 듣는 사람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남성들이다. 그분들에게 친구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늘 혼자라서 남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자신에게도 슬픈 일이지만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도 해가 된다.
요즘 출판계는 여성이 다 먹여 살리고 있다. 교보문고가 집계한 ‘2024년 연간 도서 판매 및 베스트셀러 분석’을 보면 전체 도서 구입자의 비중에서 여성이 62%로 남성(38%)을 압도한다. 북콘서트에 가 봐도 여성이 대부분이다. 남자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퇴직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나이 든 남자들은 대체 뭘 하고 지내는지 알고 싶어졌다. 먼저 불길한 자료들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 알코올 중독자는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많다. 2022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자는 남성이 76%로 10명 중 8명을 차지한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나이 들어도 친구나 이웃과의 교류가 활발해 잘 살 수 있다. 어머니가 노인대학을 열심히 나갈 때였다. 아버지도 한두 번 따라갔지만 여자들만 많다고 불평하며(아버지, 그게 어때서요?) 이내 그만두었다. 나도 그렇지만 남성은 여성에 비해 감정 표현에 서툴다. 심지어 길을 물어보는 것까지 망설일 정도로 도와 달라는 소리도 잘 못 한다.
2023년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고독사 사망자 중 남성이 84.1%를 차지한다. 같은 해 성별 자살률도 남성이 여성보다 2.3배 높았다. 특히 80세 이상에서는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3.9배 높게 나타났다. 여성보다 남성이 사회적 관계망이 허약하고 고립에 더 취약하니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올해 초 국내에 출간된 영국의 코미디언 맥스 디킨스가 쓴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는 꼭 내 이야기 같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도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몇 년 전 나를 많이 사랑해 준 친구가 일찍 세상을 떠나며 더 이상 ‘절친’이라 부를 친구가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새삼 슬퍼진다. 얼마 전에는 직장에서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겨 고립된 적도 있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이 책에서 저자는 남자끼리의 인간관계는 더 남자다운 이가 다른 이의 머리 위를 점하는 위계적 질서라고 설명한다. 남자다움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돈을 더 잘 벌어야 하고, 성(性)적 행위를 더 욕망해야 하며,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도 상대방을 뛰어넘어야 한다. 성격은 쿨하고 호탕해야 하며, 삶에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어야 한다. 이외의 방식은 남성적이지 못한 것으로 치부하고, 특히 자기 감정의 솔직한 고백은 철저히 금기시된다는 것이다.
남자들끼리의 경쟁에서 밀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될까. 젊은 남성들은 온라인상에서 반페미니스트적 남성계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여성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며 피해망상을 심화해 간다. 중년 남성들은 음주와 우울의 늪에 허덕이다 떠밀리듯 생을 등진다는 것이다. 영국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 같다.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어르신들의 심리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책을 누가 볼까 싶지만, 검색해 보니 부산 시내 웬만한 도서관에서는 대부분 대출 중이라 빌려보기가 어렵다. 설마하니 남자들이 이런 책을 열심히 보는 것일까. 혹시 남편의 책상 위에 살짝 올려두기 위해 여성들이 빌려 간 것은 아닐까.
박종호 스포츠라이프부 선임기자 nleader@busan.com
2025-03-2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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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북항, 춘래불사춘 퇴치법
부산에게 부산항은 무엇인가?
부산과 부산항을 향한 근원적 물음이다. 이런 질문에 이르게 된 과정은 대략 이렇다.
부산항 없이 부산이라는 도시의 근현대사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데, 부산에는 왜 변변한 부산항박물관 하나 없을까. 2007년 기본계획 고시부터 거의 20년이 다 돼 가는 북항 재개발지역은 왜 허허벌판일까. 부산역 뒤 충장로의 어지럽고 울퉁불퉁한 도로는 도대체 언제 깔끔하게 정비될까.
2020년 이후 5년 만에 다시 이 분야 취재를 맡은 기자는 바뀌지 않는 부산항을 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다 근본적 의문에 이르렀다. ‘왜 이렇게 안 바뀌나.’
북항 재개발 1단계 사업은 2022년 연말 기반시설 조성 공사가 마무리됐다. 분양 대상 부지와 도로, 공원 등이 완성됐고, 친수공원도 부분 개방했다. 탁 트인 바다와 거대한 부산항대교를 부산역 바로 앞에서 조망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며 시민들은 달라질 북항의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그 시점부터 북항 재개발사업은 거의 중단 상태다. 감사원 감사와 검찰 조사가 이어지면서 사업 시행 주체인 부산항만공사(BPA)가 잔뜩 움츠러든 것이다. BPA 내부에서는 재개발 담당 부서가 최대 기피 부서라는 얘기도 들린다. 감사·수사에 따른 징계가 이어진 이후, 이 업무를 맡는 BPA 직원 입장에선 최대한 방어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BPA도 감사 대상 기관이기에 법규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부인할 순 없다. 위법한 사례가 있다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전례 없는 최초의 항만재개발사업을,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접목한 공기업이 담당한다는 점을 감사원이 얼마나 반영했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자율을 부여했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만으로 특혜와 불법의 올가미를 덧씌운 것 아닌가 곱씹어볼 일이다.
감사 이후 BPA는 땅을 분양받은 기업들에게 감사원 지적 그대로 ‘애초 사업계획대로 속히 착공하라’는 요구만 앵무새처럼 되뇌지만, 기업들은 거의 한목소리로 ‘10년 전 보름 만에 후닥닥 만든 사업계획안대로 무조건 착공을 독촉하는 것이 과연 사리에 맞느냐’고 하소연한다. 분양부지에 대한 소유권 이전이 안 된 상태라 재산권 행사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착공을 미루게 하는 요소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 부문이 투자를 하려면 공공이 마중물을 부어야 한다. 그럼에도 애초 해양수산부와 BPA, 부산시 등 관련 기관과 공기업들이 북항을 채우겠다고 약속한 공공 콘텐츠는 기약이 없었다. 겨우 북항마리나만 문을 열어 수영장과 다이빙풀을 운영 중일 뿐, 오페라하우스는 여전히 공사 중이고, 단일 부지로 가장 넓은 랜드마크 부지는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한 상태다. 중앙역부터 북항을 관통하는 트램 계획도 아직 계획에 멈춰 있다. 부산항박물관, 연안유람선터미널 부산항역사관 등도 마찬가지다. 땅만 만들었을 뿐, 시민 발길을 끌어들일 공공 콘텐츠와 인프라를 조성해야 할 공공의 의무는 소홀히 하면서 만만한 민간 기업만 옥죄는 형국이다. 지난해까지 범정부 역량을 모아 희망을 걸었던 2030월드엑스포 유치가 무산되면서 엑스포 무대로 삼으려던 북항의 그림자는 더 짙어졌다.
최근 콘텐츠를 개편한 북항 재개발 홍보관을 찾은 날은 초봄답지 않게 바람이 차가웠다.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옛말이 떠올랐다. 한낮 북항 일대는 겨울과 봄 사이 변덕과 혼돈 속에서도 평온했다.
더디긴 해도 BPA는 북항 공공 콘텐츠의 기능과 규모에 대한 용역을 올 상반기까지 마무리 짓고, 하반기부터는 각 시설에 대한 설계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용역 대상은 △IT영상지구 내 문화공원에 시민이 원하는 교양시설(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과 편의시설 설치 △연안여객터미널 리모델링 후 부산항기념관 조성 △유·도선장 적정성 검토 △북항마리나와 연계한 해양레포츠콤플렉스 조성 △재개발지역 내 교통체계 검토 및 개선안 마련 △현 BPA 부지 주변 연안유람선터미널 기본구상 수립 등이다.
내년이면 역사적인 부산항 개항 150주년이다.
오지 않는 봄을 마냥 기다릴 일이 아니다. 공공부문이 먼저 마중물을 신나게 부으면 활기는 살아난다. 때마침 북극항로니, 미국 해군함정 MRO(유지 보수 정비)·신조 추진이니 등 기대를 갖게 하는 소식이 잇달아 들린다. 한국 산업화의 견인차였던 부산과 부산항의 다가올 150년을 위해서라도, 과거와는 다른 열정과 추진력이 필요한 시기다.
2025-03-1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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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우리도, 그들도 애국자"
어느 대통령의 마지막 대국민 담화다.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는 전혀 새로울 게 없습니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은 우리가 건국 이래 최악으로 분열됐고, 그로 인해 위기에 취약해졌다는 것입니다. 사회 곳곳에서 진영 간 극한 투쟁으로 적색 경보가 울리고 있습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닌 우리의 잘못입니다. 저 또한 문제의 일부임을 인정합니다. 변화가, 대담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민주주의는 황혼처럼 저물어 갈 것입니다. 오늘 서로에게 약속 하나 합시다. 우리끼리 벼룩 잡는다고 초가삼간 다 태우지 말고, 조금이라도 공동의 선을 찾기 위해 매일 노력하자는 약속 말입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민주주의를 구할 수 없지만, 신뢰할 만한 지도자가 없다면 그 또한 민주주의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다음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우리 미래가 달린 일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을 눈앞에 둔 윤석열 대통령이 이 메세지를 전하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12·3 비상계엄’ 이후 극한으로 갈라진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안심과 위로를 주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쉽게도 ‘홈랜드’라는 한 미국 드라마의 대사를 조금 각색한 것이다. 극 중 대통령은 가진 권한을 총동원해 음모론과 가짜 뉴스로 정권을 흔드는 반대파들을 응징하려 하지만, 결국 보복의 악순환만 부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국민 통합을 호소하며 ‘하야’한다.
반면 현실의 대통령은 ‘야당 경고용’이라며 계엄이라는 엄청난 칼을 휘둘렀지만, 헌재 선고가 임박한 지금 이 순간에도 권좌로의 복귀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탄핵에 찬성하는 절반 이상의 국민들은 “계엄에 실패한 대통령이 다시 군 통수권을 행사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어이없어 하다 못해 공포감을 호소하고, 광장의 결집 이후 지지율 상승과 ‘석방’이라는 반전을 본 탄핵 반대 진영은 “이제 곧 대통령이 용산으로 돌아가 못다 한 종북좌파 척결을 끝낼 것”이라고 믿는다. 이 거대한 인식의 간극을 메울 방법이, 아니 두 진영의 공존 자체가 가능한 것인지 암울한 의문이 커지는 요즘이다. 양측이 뿜어내는 증오와 적의의 에너지는 한 궤도에서 마주 달리는 열차처럼 맹렬하고 무모해 보인다. 우리 민주주의 또한 중대한 위기 국면이고,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현 시점에서 충돌의 압력을 낮추기 위해 가장 긴요한 건 ‘당사자’들의 결자해지 의지다. 여야에서 최근 앞다퉈 요구하듯이 윤 대통령은 ‘파면’ 결정이 나더라도 승복할 것임을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만에 하나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나머지 임기는 국정 운영보다는 조속한 개헌에 집중하겠다는 ‘최후 진술’을 다시 확약하는 것도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역할도 윤 대통령 못지 않다. ‘줄탄핵’과 ‘입법 독주’로 윤석열 정부를 내내 흔들었던 거대 야당의 무절제한 힘 자랑에 대한 자성과 변화를 약속한다면 보수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거대 야당이 행정권력까지 손에 쥘 경우 어떤 ‘폭주’가 있을지 우려하는 많은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는 답을 내놓은 것도 차기 권력을 꿈꾸는 이의 마땅한 자세일 터다.
둘로 쪼개진 광장의 시민들 또한 한 치의 접점이라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할 텐데, 그 출발점은 ‘사실(fact)’에 대한 존중이지 않을까. 일례로 ‘중국 간첩 99명 체포’와 같이 명백하게 허위로 드러난 가짜 뉴스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면 좋은 시작이 될 수 있겠다.
내전이 운위되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 참으로 한가하고 공허한 얘기로 들린다는 걸 잘 안다. 그런데 달리 다른 방법이 있을까. 스스로가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의 피해자인 〈미스빌리프〉(misbelief·잘못된 믿음)의 저자 댄 애리얼리 교수가 이를 신봉하는 이들을 깊숙이 접촉하고 연구하면서 도달한 결론은 상대한 대한 조롱과 무시보다는 이해와 공감하려는 노력이었다.
며칠 뒤 우리 사회는 한 차례 큰 소요를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광기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양 진영 모두 숨을 고르고 이성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할 테다. 대통령이 복귀해서, 반대로 야당이 집권해서 ‘반대 세력’을 다 쓸어버리면 평화의 시간이 올까?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얘기다. 2008년 미 대선 당시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는 상대인 민주당 오바마 후보를 ‘아랍인’이라고 공격하는 지지층을 향해 “그는 훌륭한 미국인이다. 나와 정책에 대한 이견이 있을 뿐”이라고 자제시켰다. 그런 최소한의 존중과 절제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변화다. 사실 계엄 이후 핏대 세우면서 논쟁하고, 길거리까지 나선 우리 모두 결국 나라 잘 되기 위해 나선 애국자들 아닌가.
2025-03-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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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도자기가게 코끼리를 우짤꼬?
독일 속담에 ‘도자기상점에 들어간 코끼리’라는 말이 있다. 덩치 큰 야생코끼리가 귀한 상품들이 가득 진열된 도자기상점에 들어가 돌아다닌다. 코끼리가 움직일 때마다 부딪쳐 도자기들이 부서진다.
2기 행정부를 시작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즘 행보가 저 속담 속 주인공 같다. 취임 전부터 떠들썩했고 취임 후 전세계 곳곳에 대놓고 트집을 잡고 있다. “그린란드·파나마운하·캐나다를 미국땅으로 편입해야 한다” “멕시코만은 미국만으로 바꾸겠다” 등 발언이 거침이 없다. 여기까지는 한국에 큰 영향이 없다. 하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관세 카드’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직격탄이다.
미국 정부는 12일부터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다음 달엔 한국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에 관세를 물릴 방침이다.
이 같은 미국의 으름장은 어느 정도 약발이 받는 모양이다. 백악관은 지난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기업들이 관세로 인한 타격을 줄이기 위해 미국 시장으로의 진출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며 대표적인 사례로 삼성전자와 현대차, LG전자를 다국적 기업 10여 곳과 함께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고, 현대차의 경우 조지아주의 전기차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가 지난해부터 시운전에 들어갔고 이달 말 준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기업들은 이 같은 현지화를 통해 미 정부와의 충돌을 피하고 역내 점유율을 유지하거나 확대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정부로서도 자국의 무역적자와 함께 미국 내 실업률를 낮추는 일석이조 효과를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노믹스의 통상정책은 무역적자 개선이 최우선 목표”라고 했다. 2023년 기준 중국의 대미수출 규모는 4272억 달러로, 미국의 대중 수출규모 1478억 달러의 3배에 달한다. 트럼프 통상정책의 주된 관심대상 국가는 중국과 멕시코, 베트남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의 한국 무역적자는 514억 달러 규모로 중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관세를 피해 미국 내 현지공장을 짓는 게 과연 정답일까. 지난해 미국 출장 중에 간 식당에서 경험한 물가는 한국의 2~3배 수준이었다. 통계치로 나온 미국 평균임금도 한국의 배가량 된다. 동남아나 남미 등 인건비가 싼 곳과 비교하면 더 큰 차이가 난다.
인건비가 싼 지역 대신 미국 내에서 제품이 만들어진다면 가격은 수입 제품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 미국 국민들은 상대적으로 비싼 미국산 TV나 자동차를 사게 된다. 이로 인해 소극적인 구매로 이어져 결국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렇게 해서 최근 생겨난 신조어가 ‘트럼프 리세션’(경기후퇴)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을 댕긴 관세 전쟁이 제 발등을 찍어 상대국은 물론 미국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부메랑이 될 것이란 얘기다.
실제 미국 경제성장률을 실시간으로 추정하는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지디피나우(GDPnow)는 지난 6일(현지 시간) 올해 1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을 -2.4%(전기 대비 연율 기준)로 제시했다. 지난 2년여 동안 나홀로 성장을 이어온 미국 경제가 트럼프의 관세·이민 정책으로 후퇴할 것이란 우려가 커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기 침체 전망에도 “큰일에는 과도기가 있다”며 다음 달 2일부터 미국의 모든 무역 상대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될 경우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은 최대 0.62%포인트 하락하고,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인 제조업 위축으로 관련 산업 부진과 양질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의 대응 카드는 없을까. 벌써 캐나다와 중국 같은 대국들은 미국을 겨냥해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맞불작전을 펴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에선 아직 그런 얘기가 없다. 자동차, 반도체 등을 수출하는 국내 그룹 총수들은 트럼프 대통령 아들, 실세 등에 줄대기 바쁜 모습이다. 미국 내 한국 기업의 대관 담당 인력도 보강하고 있다. 맞대응 해봐야 손해만 더 커진다며 피해 최소화 분위기다.
최근 국방, 조선, 반도체, 한류 등으로 국격이 높아지면서 전 세계인이 한국인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번 사태를 보면 한국은 아직도 올라갈 ‘산’이 많아 보였다.
2025-03-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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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멸종 위기의 도시' 부산과 해운대신도시
저출산 현상의 고착화로 학령 인구 감소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부산을 대표하는 신도시로, 주거와 교육 여건이 좋기로 알려진 해운대신도시(해운대 그린시티) 내에 있는 몇몇 초등학교가 가까운 미래에 통폐합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저출산과 청년 유출로 인한 학령 인구 감소는 원도심과 서부산 지역에 국한된 문제로 여겨졌지만, 부산의 전통적인 주거 선호 지역인 신도시 지역에도 엄습하고 있어서다.
해운대신도시는 1990년대 말 개발이 완료된 부산 최초의 계획도시다. 노태우 정부 시절 주택 부족 해결을 위해 ‘주택 200만 호 건설’을 목표로 전국적으로 추진된 1기 신도시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좌1~4동 4개 동을 아우르는 타원형 시가지에 아파트 단지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리하며, 입주 초기 신혼부부 등 젊은 층이 대거 유입됐고, 우수한 학군과 편리한 생활 여건 등으로 주거 지역으로 인기가 높았다. 그랬던 해운대신도시에서 인접한 초등학교 2곳의 올 신학기 1학년 학급 수가 각각 3~4개 반에 불과하다고 한다. 앞으로 입학생 수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두 학교 통폐합의 카운트다운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해운대신도시 내 또 다른 초등학교는 올해 1학년 학급 편제가 2개 반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역 맘카페에서도 해운대신도시 내 초등학교 1호 통폐합이 머지않았다는 건 이미 통설이다.
올해 폐교 대상 초등학교는 전국 38곳. 이 중 대부분이 도농복합지역이지만, 대도시(특별·광역시) 중에는 부산 2곳과 대구 1곳이 포함됐다. 부산은 원도심인 부산진구의 초등학교 2곳이 폐교하고 인근 학교로 통폐합됐다. 학교 통폐합 대상이 될 수 있는 부산 지역 소규모 학교(학생 수 240명 이하)는 매년 늘고 있고 있는데, 부산의 전통 주거 선호 지역이었던 해운대신도시도 이제 ‘남의 일이 아닌 일’이 된 셈이다.
기자가 10여 년 전 잠시 신혼 생활을 했던 해운대신도시는 잘 닦인 방사형 도로망과 근거리 다양한 상업 시설로 젊은 층이 매우 살기 좋은 곳이었다. 학원가가 잘 형성돼 있고,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곳곳에 있어 교육과 양육 환경 역시 만족스러웠다. 지금은 여차저차한 이유로 이사를 나왔지만, 아직도 해운대신도시에 살고 있는 지인들의 얘기는 그때와 사뭇 다르다. 한 지인은 “집값은 1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고, 오래된 아파트에 입주민 고령화도 심각하다”며 주변의 누구누구처럼 빨리 탈출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넋두리를 늘어 놓는다.
그나마 남아 있던 해운대신도시의 청년들은 수도권으로 떠났고, 부산의 다른 지역에 재정착을 하더라도 마린시티와 센텀시티를 비롯해 해운대구청 인근 상업 지역에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는 아파트로 옮겨 가면서 해운대신도시의 쇠락은 가속화되고 있다.
얼마 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 세계 숱한 대도시 중 부산을 ‘멸종 위기의 도시’로 콕 집어 걱정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FT는 ‘멸종 위기:한국 제2의 도시, 인구 재앙을 우려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1995∼2023년 60만 명의 인구가 감소한 제2의 도시 부산에 대해 저출생과 고령화 등으로 소멸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서울 중심의 극심한 경제 집중 현상을 지목했다. 한때 부촌의 명성을 지녔던 해운대신도시의 쇠퇴는 FT가 지목한 부산의 위기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해서 씁쓸하다.
부흥의 기회는 있다. 최근 정부는 해운대신도시 인근 53사단 부지의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부대를 재배치하기로 했다. 부산시는 그린벨트가 해제된 이곳에 첨단산업단지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첨단 연구단지와 스타트업 기업, 녹지공간 등이 어우러진 해운대 첨단사이언스파크를 조성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 인구를 유입시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러한 계획이 현실화된다면 직주근접성을 갖춘 해운대신도시는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다. 올해 정부가 지방을 대상으로 노후계획도시특별법 대상지를 선정하는데, 해운대신도시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또 다른 기회다. 재건축이 급물살을 타면 청년층의 탈출 러시를 수그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청사진만 번듯하게 그려놓고 실현이 지지부진한, 그런 희망 고문만 계속돼서는 안 된다. 인구가 소멸하는 부산의 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너무나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멸종 위기의 도시’라는 오명을 씻어내고 인구 소멸을 막기 위해 정부와 부산시는 이들 역점 사업을 하루빨리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 당장 지체 없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대성 사회부 차장 nmaker@busan.com
2025-03-1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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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가벼운 입은 반자본주의
말 그대로 ‘카오스’다. 해양산업 동향을 나타내는 통계들을 들여다보거나, 관련 산업계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숫자와 말들 속에 깊은 불안감이 느껴질 때가 많다. 조선 관련 분야에선 오히려 기대감이 느껴진다. 분야별로 희비가 교차하고 있는 해양산업은 미국 트럼프 정부가 몰고 온 혼돈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지난달 말 글로벌 해상운송 항로 운임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1515.29을 기록했다. 1월 초 2505.17에서 연속 7주 하락했다. 14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SCFI는 세계 15개 노선의 운임을 종합해 계산한 지수로, 수치가 뚝뚝 떨어진다는 것은 운송비가 그만큼 싸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옮길 물동량이 없어졌으니, 해운회사들이 가격을 낮추고 있다는 뜻이다. 해운 회사의 불안감과 세계 경기의 둔화가 떨어지는 숫자에서 읽힌다.
해상운임의 하락은 계절적 요인으로 설명되지만, 빠른 속도의 추락은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당연히 트럼프 정부의 영향이 크다. 트럼프는 캐나다, 멕시코, 중국을 넘어 유럽까지 전 세계와 관세 전쟁을 벌일 기세이다. 가뜩이나 경기 둔화가 우려되는데, 관세 전쟁 예고는 둔화를 침체로 바꾸었다. 관세의 실질적인 영향은 하반기에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공포스럽기도 하다.
반면 조선업은 요즘 매우 ‘핫’하다. 트럼프가 직접 ‘K조선’에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고, 동맹국에서도 미국 군함 건조할 수 있는 법안이 추진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트럼프가 중국 선박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발표로 반사이익 이슈도 있다. 이런 기류가 모여 조선업만큼은 트럼프 수혜주가 되었다.
사실 최근까지 조선업은 상당한 호황기였기 때문에, 곧 경기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이 흐름을 트럼프 효과가 막은 셈이다. 다만 트럼프의 말과 약속에 기반한 기대가 정말 어느 정도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뱉은 말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힘은 막강하지만, 말은 매우 가볍다는 걸 지구인이라면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트럼프는 기존의 정치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극단적인 주장과 요구를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더욱이 직관적이면서 단순하게 쉽게 말한다. 상상하기 힘든 요구를 단순화해 힘 있게 주장하니, 상대는 주눅이 들기 쉽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행보를 두고 ‘광인전략’이라고도 한다. 고도의 계산된 행동이든, 원래 그런 캐릭터이든, 트럼프는 미치광이처럼 상대국에 겁을 주며, 세계 경제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다. 캐나다, 멕시코를 상대로 한 관세 논란을 되짚어 보자. 중과세하겠다고 했다가, 직전에 유예했다가, 또 부과한다고 했다가, 다시 합의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제시한 10%, 25%, 50% 등의 수치는 면밀한 검토와 계산을 거친 것은 아닐 것이다. 숫자들은 논리적 결과가 아니라, 과세의 무서움을 보여주기 수단에 불과하다. 논리적으로 꼭 필요했던 과세가 아니었으니, 쉽게 주장하고 접을 수도 있는 것이다.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의 이런 행보를 동맹 관계도 뛰어넘는 극단적 국익 우선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말이 가벼우면 신뢰를 잃기 마련이다. 화폐는 사실 신뢰의 산물이다. 소라 껍데기든, 종이 조각이든 어떤 물건에 특정한 가치를 주기로 약속을 하면서, 화폐가 생기고 경제가 시작됐다. 경제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신뢰의 가치는 더욱 커졌다. 안정적인 경제 기반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기업과 정부들이 안심하고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시장이 믿음을 줄 때 개별 경제 주체들의 잠재력이 극대화된다는 건 자본주의 역사에서 입증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는 자본주의를 퇴보시키고 있다. 관세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 논리적이지 못한 정책으로 글로벌 시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것이 본질적인 해악이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가 혁신을 하고 미래를 준비하겠는가. 본질적인 성장은 멀어지고 하루하루 버티기 바쁜 허약한 자본주의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국내 조선업도 위태로워지고, 미국 국민도 궁핍해진다. 당장 중과세로 수입품이 비싸지면, 미국 기업과 국민에도 타격이다. 사실상 과세는 수입품을 사는 자국민이 대신 내는 세금과 비슷하다. 국익 우선주의라고 부르기 힘든 정책이다.
트럼프 1기때에도 초기 광폭행보가 요란했지만, 대체로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금의 트럼프는 더 ‘반자본주의’ 인물이 된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지만, 부디 그가 진짜 광인은 아니기를 바란다.
김백상 경제부 차장 k103@busan.com
2025-03-0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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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헌재 결정 승복'은 헌법에 대한 예의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취임 선서문이다. 취임 첫 마디가 헌법 준수인 만큼, 대통령은 헌법 수호자로서의 의무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헌법은 국가 통치 체제의 기초에 관한 각종 근본 법규의 총체다. 또 헌법은 국가의 조직, 구성 및 작용에 관한 근본법이며 다른 법률이나 명령으로 변경할 수 없다. 헌법과 관련한 사항의 판단기관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다. 이곳에서는 탄핵 심판, 위헌법률 심사, 정당 해산 심판, 헌법소원 심판, 국가기관 사이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등을 관장한다. 이처럼 헌재는 국가의 최고 법치 기관 중 하나로, 헌법 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핵심 역할을 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의 최종 변론이 지난달 25일 헌재에서 열렸다. 지난해 12월 14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73일만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최후 진술을 통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계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에게 혼란과 불편을 끼쳐 드린 점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그러나 “직무에 복귀하면 개헌과 정치개혁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겠다”며 그 과정에 국민통합을 이루는 데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탄핵심판 소추위원인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윤 대통령이)헌법을 파괴하고 국회를 유린하려 했다”면서 “파면해 헌법 수호의 의지를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윤 대통령의 사과는 여러 차례 언급됐지만, 진정성 없는 포괄적 유감 표명 수준이라는 게 중론이다. 비상계엄 이후 국가적 손실과 국민적 상처에 비춰 보면 자성과 뉘우침은 여전히 미진하다. 윤 대통령은 최후 진술과정에서조차, 화가 난 국민 감정을 달래기보다 계엄선포 정당성을 주장하며 국회 봉쇄와 정치인 체포 등 위헌·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무장한 군대를 국민의 대의기관에 투입한 것에 대해선 “고작 280명의 실무장도 하지 않은 병력만 투입했다”고 변명했다. 1명의 군인이라도 국회 무력화를 위해 투입해서는 안되는 것이 헌법 정신이다. 11차례 변론 과정에 보여준 윤 대통령의 발언과 태도는 헌법 수호자로서의 예의를 갖췄다고 보기 힘들다.
계엄에 대한 반성과 성찰보다 장난 같은 은유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탄핵 심판 5차 변론에 출석한 그는 “이번 사건을 보면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지시했니, 지시받았니, 이런 얘기들이 마치 호수 위에 빠진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언급했다.
5차 변론 엿새 후인 지난달 10일 오전 10시 58분 부산 기장군에 있는 한 은행에서 30대 남성이 돈을 탈취하려다 붙잡힌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비닐에 싸인 총 모양의 물건을 손에 쥐고 있었던 그는 2분 만에 시민에 의해 제압당했다. 비닐에는 공룡 모양의 장난감 물총이 있었다. 이 남성은 공과금을 내지 못해 살던 오피스텔에서 쫓겨났고,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필요한 게 많아진 상황이라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물총은 아들 장난감으로 확인됐다. 누리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분짜리 은행 강도가 어디있냐”며 “물총 든 강도가 특전사 동원한 대통령보다 감옥에 오래 있을 듯”이라고 비유했다. 다친 사람 없고, 빼앗긴 돈이 없다고 강도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헌재는 대통령 탄핵 심판 변론을 종결한 상태에서, 재판관 평의를 거쳐 이달 중순께 선고를 내릴 전망이다. 문제는 그 후다. 탄핵 찬반 집회로 나라는 갈라지고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를 맞고 있다. 헌재의 인용 결정으로 대통령이 파면되든, 기각돼 복귀하든 둘로 갈라진 국민 마음을 통합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헌재 결정에 승복한다는 메시지를 내놔야 한다. 헌법 수호자인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다. 탄핵 심판 소추위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도 동참해야 한다. 현재 결정은 곧 헌법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자신에게 불리한 결정이 내려질 경우에 대비해 지지자를 부추기는 행위는 ‘제2의 내란’이나 다름없다.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은 이제 헌재의 결정만 남았다. 헌재가 헌법 정신에 근거해 국민통합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현명한 결정을 내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길수 중서부경남본부장
2025-03-0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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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금융 자사고'라는 이름의 '인서울 준비반'
지난 10일 부산의 한 식당에서 한국거래소의 출입기자 신년 간담회가 열렸다. 한국거래소는 본사의 부산 이전 20주년을 맞아 부산의 금융중심지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한국거래소 측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3개의 핵심 방안이 나열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국거래소가 첫 번째로 내세운 ‘부산 금융 특화 자율형 사립고 설립’이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한국거래소와 부산시, 부산시교육청, BNK금융지주가 설립을 추진 중인 전국 단위 금융 자사고는 부산의 국제 금융중심지 도약을 위한 ‘글로벌 금융인재 육성’에 방점이 찍혔다. 이 자사고는 2029년 개교를 목표로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17일 꾸려진 부지선정위원회가 부산의 16개 구·군을 대상으로 부지 공모 절차에 돌입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금융 자사고에 입학한 학생들이 졸업 뒤 부산의 금융 인재로 오롯이 남아 있을지 말이다. 한국거래소 측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다. 학생이 금융 자사고에서 공부한 뒤 금융이 자신의 길이 아니다고 생각하고 다른 진로를 선택한다면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 지역의 금융 인재 육성이라는 금융 자사고 설립 취지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실 교육 과정의 자율성이 보장된 자사고는 국·영·수 과목을 집중적으로 강화할 수 있어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 유리한 구조다. 자사고가 의대 진학을 위한 경로로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일부 학부모와 학생들의 선호도 또한 높다. 이 때문에 입시에 편중된 자사고에서 심도 깊은 금융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진정한 지역의 금융 인재를 키우고 싶다면 학생이 졸업 후 금융계에 바로 취업할 수 있도록 금융 특성화고를 설립하거나, 지역 대학과 협력해 전문 교육을 강화하는 게 더 나은 대안일 수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금융 자사고를 추진하는 진짜 의도가 의심스러웠다. 결국 부산에 이른바 ‘인서울’ 실적이 뛰어난 고등학교를 세우려는 게 아닐까. 실제로 한국거래소가 금융 자사고 설립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런 의구심을 키웠다. 금융 자사고 설립 브리핑을 진행하던 한 관계자는 서울에서 KTX를 타고 부산으로 올 때 읽은 기사를 언급했다. 그는 서울대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부산 지역 고교가 드물다고 지적하며, 이를 근거로 부산의 교육 환경이 수도권에 비해 뒤처져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거래소는 금융 자사고가 수월성 교육을 목표로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정은보 이사장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미국 사례를 언급하며 경쟁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시장에서 1등과 2등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말하며, 치열한 경쟁이 결국 우수한 인재를 길러낸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는 메시지로 귀결되는 듯해 씁쓸했다. 미국의 엘리트 금융인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장했지만, 결국 탐욕과 단기적 이익 추구가 월가를 지배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그 결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고통을 겪었다. 엘리트들이 시장을 어떻게 파괴했는지도 금융시장의 역사가 잘 보여주는 셈이다.
한국거래소가 지역의 ‘소멸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인서울 진학률이 높은 자사고 설립 카드를 쉽게 내놓을 수 있었을까 싶다. 부산은 2020년 대도시 중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데 이어, 불과 4년 만에 노인 인구 비율이 23.87%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1만 3657명이 순유출됐으며, 특히 20~30대 청년층의 유출률이 1.1%를 기록하며 수도권으로의 인구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역 대학들은 신입생 감소로 존폐 위기에 몰렸다. 금융 자사고를 통해 인서울 진학생을 늘리는 것이 지금의 부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이유다.
지역 교육계 일각에서는 금융 자사고의 설립이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시도와 맞물려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서울의 금융권 종사자들이 부산으로 내려오기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로 ‘부산에는 마땅한 교육기관이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물론 이 교육기관은 수도권 소재 대학의 합격자를 많이 배출하는 학교를 말한다. 금융 자사고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채택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부산시장이나 부산시교육감이 득표를 염두에 둔 정치적 이득으로 이 정책 추진에 나섰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소멸 위기의 도시에서는 경쟁력 있는 금융 중심지가 만들어질 리 만무하다. 금융 자사고가 '입시 사관학교'로 전락한다면, 이는 오히려 수도권으로의 인재 유출을 부추기는 꼴이 된다. 지금 부산에 필요한 것은 수도권 대학 진학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황석하 블록체인팀장 hsh03@busan.com
2025-02-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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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교육감 직선제, 대체 언제까지
하윤수 전 교육감의 중도하차로 부산은 교육 수장을 다시 선출해야 한다. 출사표를 던진 인사만 8명이다. ‘정치 비수기’가 때아닌 교육감 재선거로 달아오르고 있다.
사전 선거운동으로 직을 날린 전 교육감 탓에 혈세 낭비는 불가피하게 됐다. 그러나 더 기가 차는 건 정치색을 숨길 생각조차 않는 새 교육감 후보들이다. ‘교육 자치’를 표방하던 교육감 직선제의 취지는 온데간데없다.
교육위원 간선제로 치러지던 교육감 선거는 지방자치 확대와 발맞춰 지난 2007년 직선제로 바뀌었다. 밀실 합의와 금품 선거 등 간선제의 폐해가 극심했던 게 원인이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 택한 직선제도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리 봐도 국민의힘 후보와 저리 봐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좌판을 깔고 있다. 여야 모두 직접적인 개입만 삼갈 뿐 이미 일부 캠프는 총선 조직과 인원이 동원되는 중이다. 다들 알고도 모른 척 할 뿐이다.
정당 선거는 공천을 통해 수준 미달 후보를 걸러낸다. 물론 유권자 눈높이에야 못 미치지만 그래도 일단은 당에서 후보의 자격을 검증해 왔다. 하지만 정치색을 빼겠다며 이를 생략한 교육감 선거는 매번 후보가 난립하고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덩달아 선거판을 쥐고 흔들려는 단일화 단체 인사들까지 어깨에 힘을 준다. 보수 진영, 진보 진영 할 것없이 단일화 단체가 나서 존재감을 과시하려 든다. 출전 선수 명단이 나오기도 전에 ‘자칭 심판’이 설치고 다니는 형국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전국적으로 교육감 직선제를 보완하던지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시도지사와 교육감을 한 데 묶어 선거를 치르자는 ‘러닝메이트제’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11월 김대식 의원과 서지영 의원이 시민 토론회를 여는 등 공론화에 착수했고, 이미 여러 차례 법안 발의도 이뤄졌다.
물론 러닝메이트제가 도입되면 교육 현장에 정치와 행정의 개입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는 당연하다. 그러나 언급한 것처럼 교육감 후보가 정치색을 스스로 칠하고 나오는 판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차라리 선거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게 맞다. 부적절한 인사의 선거 개입을 막고, 붕괴 위기의 공교육에 정치와 행정과 버무려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도록 말이다.
특히나 부산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교육 환경 재편이 빠르게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 시장과 교육감의 ‘잘못된 만남’만은 안될 말이다. 시청과 교육청 간의 엇박자 행정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너무나도 크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속출하고 있는 폐교 문제만 해도 그렇다. 시청에서는 이를 복합시설로 재활용해 보려 교육청을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협조는 요원하다. 공유재산 관리법 개정으로 공익 목적이라면 폐교 부지를 지자체에 무상 이관하는 것도 가능해졌지만 지금까지 부산에서는 단 한 건의 부지 이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대로 시청이 칼자루를 쥔 신도시 조성 등 도시계획 입안 과정에서는 교육청의 발언이 큰 힘을 갖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신설 학교 용지가 외곽으로 밀려나면서 발생하는 통학거리 조정과 학생 수 유지 등 후유증 관리는 오롯이 교육청의 몫이다.
직선제의 폐해가 커지면서 교육 서비스의 수혜자인 학부모의 한숨도 깊다. 지난해 10월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의 투표율은 겨우 23.5%. 자녀가 없거나 자녀가 장성해 교육 정책에 관심이 먼 유권자까지 한 데 묶어놓은 직선제의 폐해가 그대로 드러났다. 부산시 교육감 재선거 역시 큰 차이는 없을 전망이다. 저조한 투표율 속에 후보의 정치 성향만 보고 던진 ‘깜깜이 표’는 교육 현장의 난맥상으로 이어진다. 이를 감내해야 하는 학부모와 학생은 안중에도 없다.
교육감 직선제를 다시 돌아볼 시기가 됐다. 이는 교육 자치에 대한 일방적인 폄훼가 아니다. 지난해 말 서울교총 설문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5%가 ‘현행 직선제를 폐지 혹은 보완해야 한다’고 답했다. 교육계 내부적으로도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교육계는 정치를 탈피해 교육 자치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교육과 행정, 정치를 과연 분리하는 게 맞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 던질 수 밖에 없다. 이미 성숙 단계에 이른 지방 자치와 합이 맞는지도 되물어봐야 한다. 아쉽게도 교육감 직선제는 그 어떤 물음에도 답을 주지 못했다. 부산 유권자가 교육감 재선거에 피로와 회의감을 느끼는 이유를 새 교육감 후보들은 알아야 한다.
2025-02-2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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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15분 도시'로 재도약 꿈꾸는 양산 물금읍
경남 양산시가 최근 물금읍 재도약을 위한 ‘내일의 도시 물금, One Stop Life’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한강 이남 최대 규모의 신도시 조성으로 지역 다른 곳에 비해 인프라가 잘 갖춰진 물금읍에 대한 시의 비전 발표라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17년 신도시 완공 이후 계속 증가해 온 물금읍 인구가 최근 13개월 연속 줄어들며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자 시가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선 것이다. 물금읍 인구는 13개 읍면동을 가진 양산시 전체 인구의 33%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 물금읍 인구는 2021년 9월 12만 1006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증감을 반복하다 2024년 말 11만 6836명으로 최고점 대비 4170명이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세대 수는 372세대가 늘었다. 인구는 줄었지만, 세대 수는 늘어난 것이다.
‘물품 거래를 금하지 말자’라는 뜻을 가진 물금은 1900년 전 가락국 역사서인 개황력(118년)에 지명으로 첫 등장했다. 당시 물금은 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에 위치한 데다 사통팔달 교통망으로 인해 자유무역지대가 됐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역참이 설치돼 운영됐다. 조선시대에는 오늘날 고속도로인 영남대로가 지나가면서 동래와 언양 등 주변 16개 역을 관할하는 황산역까지 설치되는 등 주요 도시로 성장과 변신을 거듭해 왔다.
물금읍은 30여 년 전 또 한 번 변신을 시도한다. 낙동강이 범람하면 일시적으로 물을 저장하는 유수지 역할을 담당했던 전·답이 아파트가 가득한 꿈의 신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곳에는 56개 공동주택 4만 7881가구와 단독주택 3400가구 등 총 5만 1000여 가구에 15만 2000명의 주민이 거주하게끔 설계됐다.
1994년에 착공한 신도시는 공사 과정에서 IMF 사태 등으로 6차례나 지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7년 말 완공 때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정부 목표를 달성했다. 부울경 지역 중심에 있고 지하철과 자전거도로, 대규모 공원 등을 포함한 인프라를 갖췄다. 부산에 비해 낮은 가격(땅값·아파트 분양가)도 물금읍 성공의 또 다른 이유다.
문제는 신도시가 22년 만에 완공되면서 공사 초기에 건설한 인프라와 건축물이 노후화했고 사송신도시까지 조성되면서 인구 유출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와 진학 때문에 젊은 인구 유출도 늘어나고 있다.
시는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물금읍 재도약 비전까지 발표하게 된 것이다. 비전의 키워드는 ‘One Stop Life’인 ‘15분 도시’다. 주거와 업무, 상업, 학습, 의료, 여가 등 생활에 필수적인 다양한 시설을 복합적이고 밀도 높게 갖춰 주거지 가까운 곳에서 도보나 자전거 등으로 15분 안에 이용할 수 있도록 물금읍 도시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15분 도시 개념은 프랑스 소르본대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만든 것으로 2020년 파리 시장이 파리를 재설계하는 데 적용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와 부산시도 이 개념을 도입해 추진 중이다.
물금읍 재도약 핵심은 도시개발과 재생 사업을 통한 인구 유입, 문화 인프라와 관광자원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어디든 빠르고 쉽게 오갈 수 있는 도로망 확충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물금신도시 조성 과정에서 빠졌던 개발제한구역인 물금읍 증산리 80만㎡ 부지를 계획인구 1만 5000여 명이 거주하는 미니신도시로 개발하는 것이다. 시는 최근 사업자 공모와 개발제한구역 해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정부의 공간혁신구역 선도 사업에 선정된 부산대 양산캠퍼스 110만㎡ 중 유휴부지로 방치 중인 54만여㎡ 부지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곳에는 4000가구의 주거단지와 산학연구단지, 문화시설(양산문화예술의 전당과 시립미술관) 등이 조성된다. 인구 유입과 일자리 창출, 문화인프라 확충까지 동시에 해결할 복안이다.
시는 또 부울경 지역 최대 수변공원인 낙동강 황산공원 시설 업그레이드와 낙동강 관광자원 활성화, 낙동선셋 바이크파크 조성, 물금지구 뉴빌리지사업, 범어지구 도시재생사업도 펼친다. 사업이 완료되면 물금 도심과 황산공원을 잇는 곤돌라가 설치되고, 낙동강 유람선도 운항한다.
15분 내 어디든 빠르고 쉽게 갈 수 있도록 남물금 하이패스 IC 건설에 착수했고, 토교~물금 간 도로 건설, 오봉산터널 개설, 경부선 물금역사 전면 리모델링도 추진 중이다.
각종 사업이 계획대로 완료된다면 물금읍은 명실상부한 15분 도시, 원스톱 라이프가 가능한 도시로 거듭난다. 살기 좋은 곳에 사람이 몰려드는 것처럼 물금읍 역시 신도시 조성 때처럼 많은 인구가 유입돼 양산은 물론 부울경의 핵심 거점도시로 거듭나길 고대한다.
김태권 동부경남울산본부장 ktg660@busan.com
2025-02-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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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알고리즘 이겨내는 생활정치
2019년 봄, 부산에서 꽤나 흥미로운 정치 실험이 있었다. 당시 자유한국당 부산시당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자유시민 정치 박람회’를 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시당의 부산행복연구원 산하 시민정치토론센터가 동력이었다.
시당은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 공간을 마련했다. 18개 지역구 당협, 산하 단체들이 각각 부스를 마련해 정책을 소개하고, 정책 비전을 공유하는 시간이 진행됐다. 청년 당원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물론 당 대표까지 현장을 찾았다. 기대했던 젊고 자유로운 ‘스탠딩 파티’와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척박한 정치 환경 속에서 그나마 선진 정치를 향한 첫걸음을 뗐다는 데 의미를 두기에 충분했다.
사실 이런 시도는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꼽히는 스웨덴의 ‘알메달렌 정치박람회’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해 6월 시당은 ‘알메달렌 원정대 출정식’을 열고 현장을 체험하도록 청년 정치인을 보내기도 했다. 박람회는 1968년 7월 휴가지인 스웨덴 고틀란드섬의 작은 마을 알메달렌에서 씨앗을 뿌렸다. 당시 휴가 중이던 교육부장관이 광장의 트럭에 올라 작은 정책 간담회를 연 게 시작이었다.
총리가 된 장관은 이듬해에도 알메달렌에서 자신의 정책을 이야기하는 행사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이후 다른 정당 지도자들에게 참여를 제안하면서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1982년 진보와 보수, 극우와 극좌 정당, 성소수자와 환경 단체 등 이익단체, 어린이와 청소년, 기업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국민의 생각을 대변하는 이들이 일주일간 대규모 정치 축제를 여는 ‘알메달렌 주간’이 공식 출범했다.
행사 기간 동안 알메달렌의 광장과 골목, 호텔, 카페, 식당은 서로 소통하는 축제의 장이 됐다. 수천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세미나에서 수만 명이 얼굴을 맞대고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은 전체를 바라보고 종합하게 하는 선순환을 가져왔다. 장소를 가리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삶을 바꿀 정책과 정치에 진심으로 다가가서는 모습을 보였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더라도 상대를 존중하는 매너가 자리를 잡아갔다.
누구나 정치인이 되어 생활 속 정치를 실현하는 이 모델은 북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핀란드 등지에서 유사한 정책 박람회가 매년 열린다. 알메달렌 박람회는 정치 꿈나무를 키우는 공간으로서 더욱 특별하다. 어릴 때부터 정치를 꿈꾸는 아이들이 알메달렌을 경험하면서 어엿한 국가 대표 정치인으로 커가는 것이다. 광장의 꼬마가 지역 정치인으로, 다시 국회의원으로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하니 청년 정치가 정치 입문의 필수코스인 셈이다. ‘나름 성공했으니 이제 정치나 해볼까’하며 나선 이들에 밀려 청년 정치인들이 들러리를 서게 되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된다.
짐작했겠지만 굳이 지난 이야기를 들추어내는 것은 지금 대한민국 정치 상황이 녹록하지 않아서다. 지난해 12월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발동은 정치의 중요성을 모두에게 일깨우는 각성 효과를 냈다. 정치를 혐오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이들까지 매일 정치 뉴스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정치가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뼈저리게 체감한 것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붕괴 직전이다. 심리적 내전 수준이라 해도 무방할 일들이 공공연히 벌어진다. 이 위기가 지난 뒤 시민들이 여전히 정치에 무관심하게 되면 무능력하고 자질 없는 정치인이 그대로 득세할 것이다. 알맹이 없는 섣부른 정책이 난무할 게 뻔하다. 예산을 나눠 먹으며 불평등, 양극화, 수도권 집중화 현상 역시 더욱 가중될 것이다. 정치적 혐오와 무관심의 피해자는 결국 국민 자신일 수밖에 없다.
부산에서 첫 정치박람회가 열릴 때만 해도 북유럽의 어느 나라처럼 우리 정치인들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며 생활정치를 실현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통하며 미래를 논의하는 모습을 언젠가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한데 지금 우리는 모두가 알메달렌의 교훈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거리두기를 하는 사이에 돈벌이만 생각하는 유튜브 등 SNS 플랫폼 알고리즘과 더 자극적인 콘텐츠로 경쟁하는 크리에이터들에 의해 더욱 강력한 정신적 지배를 당하게 됐다. 나의 생각에 오류는 없는지 끊임없이 토론하지도 않고 마땅한 근거나 검증 노력 없이 상대를 혐오하며 ‘도파민 중독’에 빠져 허우적대는 건 아닐까. 우리나라뿐 아니라 인류가 이렇듯 공고한 ‘소셜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어떤 정치적 다름을 지녔든, 그들도 누군가의 부모이자 아들딸이다.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이다. 백척간두에 선 민주주의의 근간을 살리는 길은 결국 직접 대면하고 소통하며 생활 속 정치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다.
2025-02-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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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품격 있는 나눔의 도시
이번 겨울은 어느 때보다 춥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 12·3 비상계엄에 이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마음이 무겁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관세전쟁’은 수출 중심 국가인 우리나라에도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에 빠진 형국이다. 불안과 우울의 긴 그림자 위에 한파까지 덮치면서 몸과 마음이 더욱 위축되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2일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소식이 전해졌다. 부산 ‘사랑의 온도탑’ 나눔 온도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올해는 경기침체에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겹쳤지만, 이를 무사히 극복하고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부산 지역 시민과 기업의 온정은 한파를 물리칠 만큼 뜨거웠다.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부산사랑의열매)가 지난해 12월 1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진행한 ‘희망2025나눔캠페인’ 사랑의 온도탑 나눔 온도는 지난달 31일 오전 11시 기준 124도였다. 총모금액은 134억 7000만 원으로, 목표액 108억 6000만 원을 26억 1000만 원 초과했다. 이는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역대 최고 모금 실적이다. BNK금융그룹이 지난해 12월 12억 원을 기부했고, 지난달 화승그룹 4개 계열사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고액 기부를 약정하는 ‘나눔명문기업’으로 동시 가입했다. 지난해 캠페인보다 기업 기부금 규모가 7억 원 이상 더 늘어난 것이 역대 최고 모금액 달성의 주된 요인이라고 한다.
부산사랑의열매에 성금을 전한 개인 기부자들의 다채로운 사연이 눈길을 끌었다. 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 강충걸 회장 가족이 대표적이다. 강충걸 회장과 부인 박영희 씨, 아들 예성 씨는 20년째 새해 첫날 이웃돕기 성금 기부를 이어왔다. 기부를 통해 이웃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점이 강 회장 가족에게는 더 큰 선물이 된다고 한다.
부산 사상구 덕포동 ‘해물왕창칼국수’ 박기대 대표와 김지영 부대표의 사연도 감동적이었다. 남편인 박 대표는 2017년 부산 아너 소사이어티 133호에 가입했고, 부인인 김 부대표는 지난해 11월 부산 아너 소사이어티 369호 회원이 됐다. 부부 아너 가입 소식이 〈부산일보〉에 소개되자 ‘칼국수를 먹으면 기부가 된다고 하니 좋은 일에 동참하고 싶다’는 손님이 많아졌다고 한다. ‘자신들처럼 평범한 사람도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 많은 사람이 기부와 나눔에 동참하길 바란다’는 이들의 소망이 깊은 울림을 줬다.
‘사랑의 온도탑’이 뜨거워지는 동안, 많은 단체와 기관이 지역 아동을 위한 따듯한 나눔에도 동참해 훈훈함을 더했다. (주)ERK 리더모아 영어도서관은 지난해 말 초록우산 부산지역본부에 저소득가정 아동을 위해 1400만 원 상당의 동절기 이불, 베개, 쿠션 174세트 등을 후원했다. 기부 물품은 부산 지역 복지관, 모자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총 24곳의 아동복지기관을 통해 저소득가정 아동에 전달됐다. 리더모아 영어도서관 고영하 대표는 부산 지역 저소득가정 어린이들이 좀 더 따뜻한 겨울을 보내게 해주고 싶어 이번 후원을 제안했다. 어린이용 이불, 베개, 쿠션을 받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떠올리니 흐뭇해진다.
자동차부품 회사 (주)퓨트로닉(대표이사 회장 고진호)은 올 초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에 또 1억 원을 기부하며 부산 지역 1호로 ‘레드크로스 아너스 기업 3억 클럽’에 가입했다. 퓨트로닉은 2014년부터 매년 연말에 일시 기부와 2023년 9월부터 정기후원으로 매달 100만 원씩 기부해 지난해 기부액이 2억 원을 넘어섰다. 올 초 1억 원 기부로 누적 기부가 3억 1000만 원에 달했다. ‘레드크로스 아너스 기업’은 대한적십자사의 단체 고액기부 인증 프로그램이다. 퓨트로닉 사례는 기업이 인도주의적 활동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일수록 주변을 살피고 보듬는 마음이 부산의 저력이 아닐까 싶다. 따듯한 공동체를 만드는 시민과 기업들의 나눔 선순환을 접하면서 (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인문무크지 〈아크(ARCH)’ 9호: 품격〉이 떠올랐다. 아크 9호 첫 장에 실린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가 쓴 ‘품격, 이타성의 다른 이름’이란 글 때문이었다. 장 대표는 “인간의 품격은 결국 나와 타인이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존중하고 공공선에 헌신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품격 있는 사람은 자기희생을 바탕 삼아 이기심을 억제하고 타인을 관용하며 공적 가치를 위해 헌신한다”고 적었다.
최근 활발한 나눔의 궤적을 보면서 부산은 품격 있는 도시로, 부산 시민은 품격 있는 존재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품격 있는 나눔의 도시, 부산’에서 타인과 공존하는 희망의 빛이 더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
2025-02-12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