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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가야진용신제, 국가 무형유산 승격돼야
문화유산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 세대가 이어받을 정체성의 근간이다.
국가 무형유산은 무용·음악·놀이 등 형태는 없지만,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무형의 문화적 산물을 정부가 지정한다. 6월 30일 현재 종묘제례악, 북청사자놀음 등 162종이 지정돼 있다.
이들 무형유산은 ‘무형유산의 보전과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유산청 무형유산위원회의 엄격한 심의를 거쳐 지정된다.
최근 경남도 무형유산 제19호인 ‘가야진용신제(이하 용신제)’가 국가 무형유산 승격을 위한 재심의를 앞두고 있어 지역사회 관심도 뜨겁다. 재심의는 오는 11월 중에 열린다.
용신제의 국가 무형유산 승격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양산시는 2015년과 2019년 국가 무형유산 지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제례 관련 자료 부족, 국가 제례 의식과 민속학적 요소(풍물놀이 등)의 결합 근거 부족 등의 이유로 연속 고배를 마셨다.
양산시는 2023년 하반기 세 번째 도전에 나섰고, 앞서 지적된 문제를 보완했다. 이 결과 지난해 2월 승격의 첫 관문인 국가 무형유산 신규 조사 대상으로 지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어 양산시는 과거 용신제 때 사용했던 제기와 복식까지 복원해 그 어느 때보다 조선 시대 제례 의식에 근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해 10월, 현장 실사에 해당하는 지정 인정 조사까지 마쳤다.
하지만 올해 초 무형유산위원회 전통지식분과는 ‘보류’ 결정을 내렸다. 11월 중에 열리는 재심의가 사실상 승격 여부를 가를 중요한 분수령인 셈이다.
재심의에서 용신제의 역사 가치와 학술적 의의를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 두 차례 승격 실패 원인이었던 국가 제례 의식에 가미된 민속학적 요소가 ‘용신제의 명맥’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시대적 상황이라는 점을 위원 한 명, 한 명에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용신제가 금지됐지만, 지역민이 밤중에 제단을 옮겨가면서 제를 올리는 식으로 명맥을 이었다. 근래에는 전승·보존을 위해 시제와 용신제에 기우제를 통합하고,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행사로 발전시켰다.
이는 전통이 단절되지 않기 위해 불가피한 결합이었다. 다시 말해 용신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시대적 여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위원들 역시 마을 사람들이 용신제 전승·보전을 위해 민속학적 요소가 가미됐으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해 재심의에 나서야 할 것이다.
용신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이어진 국가 제례로 중사에 해당할 만큼 국가적 의례였다. 용신에게 뱃길의 안전과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던 행사인 동시에 농경 사회의 생존을 좌우하던 물관리와도 직결됐다.
예로부터 용을 ‘미르’라 부르며 비와 물을 다스리는 존재로 여겨졌다. 물관리가 곧 농사의 성패를 좌우했던 수도작 문화권에서 뿌리 깊은 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용신제는 뱃길을 위한 제례에 머물지 않고, 국가와 농경사회를 함께 지탱한 종합적 의례였다.
과거에는 낙동강 가야진을 비롯해 흥해(동), 공주(서), 한강(북) 등 4대 강 유역에서 모두 행해졌으나 오늘날 온전히 전승·보존된 것은 가야진용신제뿐이다. 이 때문에 학술 가치와 역사적 희소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용신제가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문화유산으로 승격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승격이 되면 이는 단순히 국가 무형유산 한 종목이 늘어나는 차원을 넘어 낙동강 뱃길 복원 사업과 수변공원 활성화 등 양산시가 추진 중인 관광 자원화 전략에도 큰 힘을 싣게 된다.
나동연 양산시장의 핵심 공약과도 맞닿아 있어 침체된 지역 경제 회복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양산시가 ‘문화유산의 고장’으로서 위상을 높이는 계기도 될 것이다.
무형유산은 전승이 곧 생명이다. 유물은 보존만으로 그대로 남는다. 그러나 무형유산은 반드시 사람을 통해 이어져야만 맥이 끊기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다.
용신제의 국가 무형유산 승격은 안정적인 전승·보존 환경 마련과 함께 양산의 정체성, 더 나아가 우리 모두 역사적 뿌리를 지켜내는 문제다. 삼국시대 낙동강 물길을 타고 1300년 이상 이어진 역사의 제의가 오늘날 다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용신제의 국가 무형유산 승격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2025-08-2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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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에어부산, 기업 가치 우려 커진다
진에어에 의한 흡수합병을 앞두고 에어부산의 기업 가치 축소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항공기 도입 등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에어부산은 시장점유율도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에어부산의 ‘소극 경영’이 계속될 경우 에어부산 기존 주주들이 진에어와의 합병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진에어 중심의 저비용항공사(LCC) 3사 합병이 실제로 이뤄질 경우 ‘공정한 합병 비율’이 문제가 될 전망이다. 에어부산의 기업 가치가 낮아지면 진에어 주식과의 교환 비율도 낮아지게 된다. 에어부산의 기존 주주로서는 손해가 커지는 셈이다.
에어부산은 2020년 정부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발표 이후 투자 위축 등으로 기업 가치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LCC 통합 발표 이전인 2019년 에어부산과 진에어는 각각 26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어부산은 LCC 통합 발표 이후 보유 항공기가 계속 줄어서 현재는 20대만 보유하고 있다.
에어부산은 오는 9월 모기업인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항공기 1대를 추가로 리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화재사고로 전손 처리된 항공기를 대체할 항공기를 마련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1대가 추가된다고 해도 전체 기단은 지난해와 마찬가지인 21대에 그친다.
반면 진에어는 코로나19 이후 보유 항공기가 계속 늘어나 현재는 31대를 보유하고 있다. 항공사의 핵심 자산인 항공기 보유에서 큰 차이가 나면서 에어부산과 진에어의 매출 격차는 2019년 2770억 원에서 2024년 4546억 원으로 벌어졌다.
대구를 연고지로 선택한 티웨이항공과 비교하면 에어부산의 투자 축소는 더 두드러진다. 티웨이항공은 2019년 당시 에어부산보다 2대 많은 28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계속해서 투자를 확대해 현재는 43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에어부산과 티웨이항공의 매출 격차는 2019년 1773억 원에서 2024년 5300억 원으로 커졌다.
에어부산의 경쟁 LCC들은 코로나19 이후 빠르게 투자를 확대하며 덩치를 키웠다. 특히 티웨이항공은 진에어의 노선을 할당받는 등 LCC 통합의 간접적인 수혜를 누리면서 노선을 확대했다. 조만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하고 있는 중국 노선의 운수권도 재배분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역시 통합LCC 3사(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을 제외한 항공사에 돌아갈 전망이다.
항공기 확보 등 투자를 하지 않은 에어부산은 시장점유율(탑승객)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공시 자료에 따르면 에어부산의 국내선 시장점유율은 코로나19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해 2018년에는 14.1%를 기록했다. 그러나 LCC 통합 방침이 발표된 2020년 이후 ‘산업은행 체제’로 운영되면서 점유율은 정체 상태를 보였고 이후 2022년 13.7%, 2024년에는 11.6%로 줄었다. 에어부산은 특히 대한항공 출신으로 경영진이 교체된 올해 상반기에 국내선 점유율이 8.1%로 급감했다. 에어부산의 국제선 점유율도 2023년 5.3%에서 2024년에는 5.1%, 올 상반기에는 4.5%로 감소했다.
에어부산은 항공기 사고로 인한 기재 감소와 정비 문제로 인한 운항 감소를 점유율 하락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에어부산과 마찬가지로 항공기 사고가 발생한 제주항공의 올해 상반기 국내선 점유율(14.7%)이 지난해(15.4%)에 비해 불과 0.7%포인트(P) 줄어드는 데 그친 것과 큰 차이가 난다. 에어부산을 ‘흡수합병’하는 진에어 역시 합병으로 인한 노선 배분 등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상반기 국내선 시장점유율이 지난해에 비해 1%P만 줄었다. 진에어의 올해 상반기 국제선 시장점유율은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1%P 상승했다.
진에어는 코로나19 여파로 쌓였던 수천억 원대 결손금을 털어내고 배당 재개를 검토하는 등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모자란 항공기에 정비 문제까지 발생한 에어부산은 수년째 무배당을 이어가고 있고 2분기에는 100억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기업 합병 과정에서 피합병 기업 주주들은 기업 가치가 과소평가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실제로 지난 1월 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에서도 대한항공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에어부산도 투자 실종과 실적 악화가 계속된다면 ‘기업 가치 축소’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김종우 서울경제부 부장 kjongwoo@busan.com
2025-08-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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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해양금융, 물이 들어왔다
부산이 세계 1위 자리를 꿰차는 동안 인천·서울은 12위에 그친 역량.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서울보다 10년, 20년은 뒤처진다는 소리를 들으며 늘 서울 뒤꽁무니를 쫓아가기 바빴던 부산에 서울은 물론 세계 모든 도시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영광을 안겨준 것이 있다면 이를 무기로 한번은 제대로 승부를 걸어봐야 하지 않을까.
노르웨이 메논 이코노믹스(Menon Economics)가 격년으로 발간하는 메논 보고서 〈2024 세계 주요 해양 도시〉는 부산을 해양기술 부문 세계 1위, 해양도시 종합순위 10위로 평가했다. 종합순위로는 세계 1위 싱가포르, 4위 상하이, 7위 도쿄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4번째로 높은 수준인데, 다른 영역에서는 받아보지 못한 성적표다. 서울·인천은 해양도시 종합순위 26위, 해양기술에서는 12위를 차지했다. 지역의 한 전문가는 서울과 인천을 다 합쳐도 부산을 못 이기는 유일한 분야가 해양이라고 내심 기뻐했다.
부산은 한국 조선 클러스터의 중심지로서 고부가가치 메가선박과 저탄소 선박 건조, 조선소 선대 규모, 해양기술 기업의 높은 이익, 신조선의 높은 시장 가치, 해양기업의 특허권 수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해양기술 1위 자리를 꿰찼다.
해양수산부 이전을 계기로 부산의 산업 전반이 ‘해양’에 초점을 맞춰 발빠르게 체질을 바꿔가고 있다. 부산시는 아예 해양수도 부산의 의제를 발굴하고 선도할 컨트롤타워를 만들기로 했다. 잊혔던 ‘해양 DNA’가 되살아난 듯 ‘아 맞아,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이거였지’ 라며 제자리를 찾아오는 느낌이다. 국제문화도시, 블록체인특구, 글로벌금융허브 등 멋져 보이는 키워드가 많지만 다른 도시는 흉내낼 수 없는, 부산만이 가질 수 있는 대표 타이틀은 해양도시다.
해양은 그 확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전통 주력 산업인 수산, 조선, 항만물류는 물론이고, 해양금융, 해양에너지, 해양바이오, 해양기후 등 넓혀갈 수 있는 영역들이 다각도로 많다. ‘노인과 바다’라는 비아냥에나 쓰였던 바다가 부산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줄 ‘내 안의 보물’이란 걸 새삼 깨닫고 있는 듯 하다.
이 중 금융은 특히 해양산업 확장의 핵심 동력이다. 조선업과 해운업, 항만물류 등 굵직한 해양의 영역들은 모두 대규모 자본이 오랫동안 묶여 있어야 해 선뜻 돈을 넣기가 쉽지 않은 구조인데, 그 사이사이에 개입해 자금이 원활하게 돌 수 있게 하는 것이 해양금융의 역할이다. 자금에 숨통이 트이면, 산업에도 활기가 돈다. 예컨대 최근 부산은행이 지역 중형조선사인 HJ중공업에 1억 6400만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선수금환급보증(RG)를 발급해주면서 선박 건조 계약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금융 분야에서는 해양금융을 마중물 삼아 부산을 세계적 해양도시로 키워보자는 고무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물 들어올 때 배를 저어야 한다는 것이다. BNK부산은행은 조직개편을 통해 선박금융팀을 해양금융부로 격상시키고 본격적인 해양금융 시대 채비를 하고 있다. 부산은행은 그전부터 산업은행에 있던 선박금융 전문가를 스카웃 하는가 하면, 민간은행 중 유일하게 선박금융팀을 꾸린 곳이기도 하다. 공공 영역에서는 한국해양진흥공사가 해양금융을 이끌고 있고, 최근 동남권을 해양금융과 물류의 전진기지로 키우겠다며 북극항로 종합지원센터를 신설했다.
해운사, 조선사들이 부침을 겪는 동안 우리나라 해양금융도 많이 위축이 됐는데 그나마 부산에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고, 꾸준히 양성되고 있다. 부산국제금융진흥원의 해양금융센터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과 협약을 맺고 해양금융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개발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금융업계에서는 특히 HMM 부산 이전에 기대를 크게 걸고 있다. 해운, 조선, 선박금융기관, 화주 등 해양금융의 주역들이 모두 부산에 모이게 되는 건 물론이고, 해양법률과 서비스 등 관련 산업들도 부산으로 와 산업 전반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해수부 이전보다 부산에 더 좋은 것이 HMM 이전이라며, 한마디로 “거대 자본 덩어리가 내려오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국가 정체성을 포트 시티(Port City)로 밀어붙인 덕분에 굳건한 해양도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노르웨이도 해양기술과 조선업을 바탕으로 재생에너지 강국의 길을 걷고 있다. 부산이 조선, 해운, 해양에너지 기업의 자금 조달 허브가 된다면 한국은 물론 글로벌 투자자들도 너도나도 부산을 찾게 될 것이다. HMM 유치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과 함께 해양금융을 위한 조례와 예산 마련, 직제 개편 등 부산시의 더욱 적극적인 행정을 기대한다. 노인과 바다라지만, 부산의 힘은 언제나 노익장 같은 바다에서 나온다.
이현정 경제부 차장 yourfoot@busan.com
2025-08-2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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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엘롯기 동맹'의 가을야구 도전
역대급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올 시즌 KBO리그가 후반기를 맞아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전반기까지 한화와 LG, 롯데가 3강 체제를 형성하며 선두권 경쟁을 펼쳤으나 후반기 들어 롯데가 8연패의 부진에 빠지면서 LG와 한화가 각각 1~2위를 질주하며 우승 문턱에 한 발짝 더 다가선 형국이다. 3위 롯데와 4위 SSG, 공동 5위에 오른 KIA, KT, NC, 8위 삼성, 9위 두산은 선두권과 8경기 이상 벌어지며 혼돈의 3~5위 싸움을 펼치고 있다. 반면 지난 시즌 꼴찌였던 키움은 올해도 10위로 처지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이 사실상 힘들어 보인다.
시즌 폐막까지 30여 경기를 남겨 놓은 가운데 막판까지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올해 KBO리그의 최대 화두는 ‘엘롯기(LG·롯데·KIA) 동맹’의 사상 최초 가을야구 진출 여부다. 한때 오랜 부진으로 만년 하위팀으로 평가받았던 엘롯기가 올 시즌 동반 포스트시즌 입성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지난해까지 43년째 엘롯기 동맹 세 팀이 가을야구 무대에 나란히 진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엘롯기는 자타공인 국내 최고 인기 구단이어서 프로야구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는 팀들이다. 각각 서울, 부산, 광주라는 대도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어 그만큼 극성 팬덤을 가진 팀들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과거 방송 해설위원 시절 ‘엘롯기 동맹을 편애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허 총재는 그럴 때마다 “팬이 많은 구단이 잘해야 야구가 살아난다”고 해명하곤 했다. 실제로 프로야구는 KIA와 LG가 나란히 가을 야구 무대를 밟은 지난해 총 관중 1088만 7705명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중을 넘어섰다.
엘롯기는 2000년대 초반 KBO리그 만년 하위 3개 팀을 일컫는 조롱 섞인 유행어였다. 2001부터 2004년까지는 롯데가, 2005년과 2007년은 KIA가, 2006년과 2008년은 LG가 꼴찌를 차지하면서 엘롯기라는 단어가 야구 팬들에게 점차 각인되기 시작했다. 당시 엘롯기가 모두 가을야구에 진출하면 ‘대한민국이 폭발한다’는 근거없는 속설까지 떠돌았다. 엘롯기는 포스트시즌에 나란히 탈락한 경우도 1982년, 1985년, 2001년, 2005년, 2007년, 2015년으로 총 6번이나 있다.
LG는 1994년 이후 2022년까지 20년이 넘게 우승을 못하다 2023년 통합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롯데는 한술 더 떠 1992년 이후 무려 30년이 넘게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봄에만 반짝해 ‘봄데’라는 오명까지 보유하고 있다. KIA는 그나마 2000년 이후 3차례나 우승을 해 체면치레는 했다.
응원하는 팀이 올해 성적이 너무 좋아 제일 신나는 건 역시 롯데 팬들이다. LG와 KIA는 각각 2023년과 지난해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등 두 팀은 최근 들어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반면 롯데는 프로야구 원년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정규리그 우승 기록조차 없다.
올해 ‘반전의 드라마’를 쓰고 있는 엘롯기가 나란히 가을야구에 도전할 수 있는 이유로는 안정된 마운드와 뛰어난 타격력을 꼽을 수 있다. LG는 요니 치리노스와 임찬규, 손주영, 송승기가 팀 내 최다승 경쟁을 벌이며 연일 승리를 챙기고 있고, KIA는 지난달 말 NC와 트레이드를 통해 우완 투수 김시훈과 한재승을 영입해 불펜을 보강했다. 롯데는 알렉 감보아와 박세웅이 선발진에서, 홍민기와 윤성빈이 불펜진에서 역투를 펼치고 있다.
특히 롯데는 올 시즌 10승을 거둔 외국인 투수 터커 데이비슨을 최근 방출하고 새 외국인 투수 빈스 벨라스케즈를 영입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벨라스케즈는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191경기를 뛴 베테랑 투수로 빅리그 통산 38승 51패, 평균자책점 4.88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 13일 한화와 KBO리그 데뷔전에서 선발 등판해 3이닝 6피안타 2볼넷 5실점으로 무너졌다. 앞으로 정규시즌 동안 6~7번 정도 더 등판할 것으로 보여 이름값을 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엘롯기는 또 팀 OPS(출루율+장타율)와 경기당 평균 득점 등 공격력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에서도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이밖에 엘롯기의 또 다른 공통점은 베테랑 선수가 팀 타선의 중심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LG 김현수(37)와 롯데 전준우(39)는 팀 내에서 결승타를 가장 많이 때렸고, 현역 최고령 타자인 KIA 최형우(41)는 리그 OPS 부문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김현수는 최근 키움전에서 시즌 10번째 결승타를 때린 뒤 “올해는 노인들이 잘되는 해인가 보다”라며 환하게 웃기도 했다. 엘롯기 동맹의 선전으로 올 시즌 사상 최초로 1200만 관중 돌파도 무난해 보인다. 엘롯기가 과거처럼 조롱이 아닌 영광의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을지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변현철 문화부 독자여론팀장 byunhc@busan.com
2025-08-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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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폭염 시대, 여름 소비를 다시 묻다
한여름은 전통적으로 유통업계의 ‘비수기’였다. 무더위를 피해 여행지로 인파가 빠져나가고, 도심 상권은 썰렁해지는 것이 통념이었다. 하지만 최근 부산 유통가는 정반대 흐름을 보였다. 기후 변화가 몰고 온 기록적 폭염이 소비 행태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7월은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1994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무더운 7월이었다. 7월 전국 폭염 일수와 열대야 일수는 각각 15일, 23일로 평년보다 크게 늘었다.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나타나기도 했다. 낮에는 바깥 활동이 사실상 힘들어지면서 시민과 관광객 모두 냉방이 잘된 실내 공간으로 몰렸다. 결과적으로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피서지와 문화·미식 공간 역할을 겸하게 됐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은 ‘포켓몬’으로 히트를 쳤다. 부산교통공사, 포켓몬코리아와 손잡고 ‘포켓몬 캡슐 스테이션 인 부산’을 선보였는데, 시민은 물론 관광객 발길까지 대거 끌어들였다. 한정판 QR 승차권을 판매하는 도시철도 역에는 길게 줄이 이어졌고, 팝업스토어가 열린 부산본점에도 인파가 몰렸다. 롯데백화점 부산 지역 점포의 7월 1일~8월 10일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 이상 증가했다. 평일 내점객도 눈에 띄게 늘었고, 7월 한 달간 외국인 관광객 구매율은 전년 동기 대비 최대 60% 뛰었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은 피서객 비중이 높은 시즌 특성을 반영해 ‘먹캉스’ 콘텐츠를 강화했다. 주로 패션 기획전 위주로 활용했던 이벤트홀 공간에 20여 개 디저트·베이커리 브랜드가 참여하는 ‘부산 푸드페스타’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의 같은 기간 매출은 올해 상반기 평균 신장률인 5%대를 웃도는 6% 후반대를 기록했다.
IP 캐릭터 협업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신세계 센텀시티점의 ‘외모지상주의’ 팝업스토어는 주인공들의 부산 여행 콘셉트로 꾸몄고, 오픈 직후 주말 방문객 2만 명을 모았다.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열린 일본 인기 만화잡지 ‘주간 소년 점프’의 굿즈를 판매하는 ‘점프숍 인 부산’ 팝업스토어도 큰 인기를 끌었다.
체험형과 IP·푸드 콘텐츠의 결합은 단순한 피서 수단을 넘어, 소비자들의 SNS 인증샷과 실시간 후기 공유로 이어지며 파급력을 키웠다. 현장에서의 즐거움이 디지털 공간에서 재확산되면서 굿즈와 F&B 매출까지 동반 상승했다. 특히 MZ세대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까지 참여해 단발성 방문이 아닌 ‘목적형 재방문’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한 백화점 마케팅 담당자는 “여름철에는 더위와 지루함을 동시에 해소하는 체험형 킬러 콘텐츠가 필수”라며 “현장 경험이 곧 콘텐츠가 되는 시대, 얼마나 차별화된 이야기를 만드느냐가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부산관광공사의 2024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산으로 여행 온 외국인 관광객의 57.6%는 쇼핑을 즐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름철에는 면세점·쇼핑몰·전시관 등 실내형 관광지가 강세를 보이며, 관광과 소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올여름 백화점 현장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과 신세계 센텀시티점 모두 외국인 고객 비중이 전년 대비 크게 늘었고, 인기 팝업스토어나 프리미엄 패션·F&B 매장이 외국인 관광객의 주요 방문 코스로 자리 잡았다.
호황의 그림자도 짙다. 대형 건물의 냉방 전력 사용이 급증하면서 운영 비용과 탄소 배출이 동반 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에너지 절감과 ESG 경영의 균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냉방 효율을 높이는 인공지능 기반 공조시스템, 태양광·지열 등 재생에너지 전환, 매장 내 친환경 조명과 단열 설계 강화 같은 기술적 접근이 필요하다. 동시에 대형 이벤트·팝업 운영에서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다회용기나 친환경 소재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쇼핑객이 몰리는 F&B 공간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와 음식물 폐기물 관리도 중요한 과제다.
‘여름=비수기’라는 공식은 이미 깨졌다. 봄가을이 짧아지면서, 길어진 여름이 오히려 ‘체험·실내형 소비’ 중심의 성수기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호황을 지속하려면 매출 성장 곡선과 탄소 감축 곡선을 함께 그려야 한다. 단기적인 소비 열기 뒤에 남는 환경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후 변화 시대의 승자는 단순히 더위를 기회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환경을 지키는 해법까지 찾아내는 유통업체일 것이다. 이는 고객 신뢰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마케팅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다.
2025-08-1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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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재명을 더 알고 싶다
여름휴가와 책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정치 이야기인가 해서 이 글을 읽기 시작했다면 이쯤에서 중단하는 게 좋다. 마침내, 나도 떠난다. 이 시간을 기다리며 지난 몇 달을 버텼다. 이번 휴가는 일찌감치 일본으로 가기로 정했다. 그런데 꼭 초를 치는 사람이 있다. 모 씨가 일본 대지진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다 만화에서 나온 근거 없는 설에 불과하고, 이미 예언한 날짜도 지났다고 말해 줬다.
현대 과학으로는 지진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크게 일어날지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 날짜가 예고된 대재앙 따위가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달은 지나갔지만, 이번 달에는 오지 않겠느냐”라고 우긴다. 그저 며칠 ‘휴가’를 가겠다는데, ‘휴거’ 기다리듯이 지진을 기다리다니. 내일 뜰 태양을 기대하며 책 몇 권 챙겨 바람과 함께 사라지련다.
그제야 휴가철 추천 독서 목록이 요즘 통 안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엔 신문, 방송, 출판계에서 여름만 되면 ‘휴가철 추천 도서’나 ‘피서지에서 읽기 좋은 책’ 같은 리스트가 꼭 나왔다.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은 도서 목록도 몇 년째 감감무소식이다. 역대 대통령이 휴가 때 읽었던 책은 국정 철학이나 시대적 관심사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운 지표가 되었는데 말이다.
찾아보니 김영삼 대통령이 휴가 도서 목록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김 대통령이 1996년 여름휴가 때 읽은 책 공개가 ‘독서 정치’의 시초로 여겨진다. 김대중 대통령은 독서광이자 애서가로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바빠서 책을 읽지 못하면 감옥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라는 말까지 했을까. 그의 휴가 도서 목록은 매년 출판계와 정치권의 큰 관심을 끌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책 읽기를 매우 좋아했다. 그의 독서 스타일은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갖고 있고, 독서의 내용을 현실 정치에 활용하려 했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노 대통령은 “좋은 책이 필요합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보면 책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적인 독서가이자 속독파로 알려진다. 고전과 역사서를 좋아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휴가 기간 독서를 통해 국정 운영 구상을 가다듬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를 ‘활자 중독’이라 일컬을 만큼 독서를 즐겼고, 지금도 평산책방 주인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공식적인 휴가 독서 목록이 알려진 바가 없다. 윤 대통령이 읽었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에 대해서도 어쩌면 평생 읽은 게 그 한 권뿐일지도 모른다는 박한 평가까지 나온다. 차라리 휴가 때 마신 주류 리스트를 공개하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가 감방에서 속옷 차림으로 버텼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조차 망상이었음을 깨달았다.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운명의 활자매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지난주에 병원 대기실에서 한나절 동안 앉아 있었는데, 그곳에 놓인 신문들을 아무도 들춰보지 않는 모습에 새삼 충격을 받았다. 주지하듯이 종이 신문이나 책을 보던 시대에서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영상 중심의 소비로 옮겨가면서 독서할 시간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다. 예전에 신문과 잡지가 주요 정보원일 때는 휴가철 특집 기획도 많았다.
여름철은 출판 시장의 비수기로 여겨진다. 여름휴가를 떠나거나 야외 활동을 즐기면서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출판사들도 시장 상황을 고려해 여름철에는 대작이나 기대작의 출간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요즘엔 SNS 인증샷, 독서 모임,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세지며 ‘추천 도서 리스트’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단다. 사정은 잘 알겠는데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무리 그래도 활자매체가 뛰어놀아야 지금처럼 K영화나 K드라마가 날아다닐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까지 하계휴가 중인데 독서와 영화감상 등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소개된 바는 아직 없다. 우린 이재명 대통령을 더 알고 싶다. 이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은 책들이 뒤늦게라도 알려져 고요한 출판 시장에 작은 파문이라도 일었으면 좋겠다. 주가지수 5000시대도 좋지만, 사람이 밥만 먹고는 살 수 없는 법이다.
지금까지 읽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당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 주려고 한다. 첫째, 바닷가에서 읽기 좋은 소설. 둘째, 마음이 편안해지는 에세이. 셋째, 한두 시간 안에 읽는 짧은 책. 넷째, 시원한 공포·추리물. 다섯째, 퇴직 후 인생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책. “이 중 어떤 종류의 책을 골라 드릴까요”라고 묻는 친절한 분이 당신 주변에도 있다. 에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 AI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2025-08-0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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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해양수도의 조건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계기로 부산이 명실상부한 해양수도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맞는 말이다. 2000년 연말을 앞둔 시점 고 안상영 시장의 선언으로 시작된 해양수도 행보는 해양산업 육성 조례 제정(2005년)과 해양 공공기관 부산 이전(2012~2017년) 등으로 느린 걸음을 이어왔다. 기대에 한참 못미치는 속도와 강도에 부산의 경쟁력이 바닥나는가 싶던 시점, 해수부가 부산으로 오게 됐다. 국가 해양 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가 부산에 자리잡음으로써, 산업과 연구·개발, 인재 양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구심력이 생기기를 부산은 원한다.
‘수도’는 당연히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해양 관련 모든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해양수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 해양 산업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디지털 기술, 여기에 미래 산업의 기본 조건이라 할 탈탄소 친환경 기술로 탈바꿈하고, 해운 시황 정보와 해양 금융, 해사 법률 등 부가가치 높은 해양 신산업도 해양수도를 중심으로 일으켜야 한다.
하지만, 수도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것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북극항로가 지나가는 한반도 동남권 해안 도시 전체가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되고, 이에 대비해 벌써 각 지역 나름의 장점을 살린 발전 전략을 세우고 있다. 경북도는 포항 영일만항을 북극항로 관문항으로 육성하려는 전략을 공표한 바 있고, 여수광양항만공사도 광양항을 북극항로 거점항으로 구축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지난달 말 국회에서 열었다. 러시아 극동 거점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행 정기 뱃길을 운영했던 강원도 동해·속초항도 각자 북극항로와 연관된 해양물류산업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다.
광양에서부터 마산, 부산, 울산, 포항, 동해, 속초까지 우리나라 해안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지역이 북극항로 영향권이다. 각 지역이 비슷한 산업 분야에 비슷한 화물만 유치하려 한다면 제살깎기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각 지역 산업 기반과 특성을 반영한 역할 분담이 필수다.
여기서 해양수도 부산의 역할은 무엇일까?
정책 총괄 부처가 있으니, 해수부 공무원들이 흔히 지방에서 해수부를 일컫는 ‘본부’가 되는 것이다. 연구개발과 정책 수립의 사령탑 역할을 하면서, 각 지역 해양산업 정책의 조정자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여기에 싱가포르나 홍콩이 걸어온 길처럼 해양 금융과 해운정보 서비스, 해사법원 등으로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 활발히 영위되는 부산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부산에 기반을 둔 전통적 해양산업은 부산시와 해수부가 협력해 첨단 디지털·친환경 산업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북극항로가 열린다고 부산이 곧바로 해양수도가 될 순 없다. 온갖 변수와 곡절이 도사리고 있다.
당장 해수부 부산 이전을 계기로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에 대한 관할권을 해수부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그렇게 빗발쳤지만, 미국과의 관세 협상 막판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 전략이 통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가 통상과 조선을 동시에 관할하는 현재 시스템을 당장 바꾸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후에너지부 신설도 공약한 바 있어 산업부의 에너지 부문 분리 가능성도 높다. 산업부 전체의 기능 재편을 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정기획위원회의 정부 조직 개편안 발표는 이달 중순께로 알려져 있다. 변화하는 상황에 맞는 추가 설득 논리와 단계별 전략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또 북극항로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과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 해제가 필수적인데, 끝날 듯하던 전쟁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세계 패권 구도 변동과 각국의 대응이 예측과 달리 돌아가는 경우는 다반사다.
따라서 헤양수도가 되려면 최소한 국내에서 만큼은 동남권 해양 도시들을 우군으로 품고, 그들의 요구까지 충분히 수렴해 국가 정책에 목소리를 낼 때 동남권 해안 지역을 이끌 리더십이 생길 것이다.
보여주기 식으로, 유행처럼 온갖 정책에 북극항로를 갖다붙일 일이 아니라, 부산이 전통 해양산업을 업그레이드 하듯, 동남권 각 지역 산업 역량을 스마트·친환경으로 업그레이드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을 부산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낼 때 국내에서 만큼은 해양수도 위상을 부여받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가면 환동해권을 기본으로 북극항로 개척 후 주요 교역 상대로 떠오를 북유럽, 중앙아시아 주요 도시들과도 도시 차원의 외교를 미리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실제 북극항로가 열리는 외부 환경 변화가 왔을 때 곧바로 성과를 나타낼 기반을 만드는 일이 지금 해양수도를 지향하는 부산이 시작해야 할 과제다.
2025-08-0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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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평평해진' PK 민심… 절박함이 승부 가른다
최근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진 국민의힘을 보면서 일본 자민당처럼 더불어민주당의 장기집권 체제가 도래할 것이라는 말이 보수 내부에서 나온다. 개인적인 견해는 아직 그 단계까진 아니라고 보지만, 궤멸적 타격을 입은 2017년 첫 탄핵 때보다 더 지리멸렬한 국민의힘의 최근 행태에 보수층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때로 경험은 독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의힘에게 2016년 말 ‘탄핵’이 딱 그렇다. 겁박에 가까운 구 주류 중진들의 당시 ‘탄핵 트라우마’ 경험담에 경도돼 어렵게 분리한 아스팔트 보수와 재결합하면서 ‘탄핵 반대’, ‘윤석열 사수’로 민심과 정반대로 역주행 했다. 그 관성은 대선 완패 이후 전대에서까지도 ‘윤 어게인’ 운운하는 퇴행적 행태로 이어지고 있다. ‘내란 동조세력’이라는 여권의 프레임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셈이다. “바닥인 줄 알았더니 지하를 맞닥뜨린 심정”이라는 한숨이 당내 가득하다.
그런 점에서 내년 부산·울산·경남(PK) 지방선거는 국민의힘에게 최후 방어선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됐다. PK마저 내주면 국민의힘은 대구·경북(TK)에 고립된 그야말로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여권이 일찌감치 PK에 화력을 집중하는 것도 이런 전략적 판단이 깔렸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어게인’의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여권은 ‘2018 어게인’을 외치고 있다. 탄핵 후 첫 지방선거인 2018년 민주당은 사상 처음으로 부울경 지방권력까지 ‘싹쓸이’하는 역대급 승리를 거뒀다. 여권이 2018년의 재현을 기대하는 건 탄핵 이후 정국이 당시와 매우 흡사하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PK에서도 국정 지지율 50%를 넘기며 정권 초반의 허니문을 만끽하고 있는 반면, 탄핵과 대선 완패 이후에도 ‘네 탓’ 타령만 하는 야당의 추락은 끝 간 데가 없다. 거기에 당시 적폐 청산을 능가하는 세 특검의 칼날이 보수를 서서히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조금 있으면 패배한 직전 대선후보가 당 대표가 돼 반성도 쇄신도 유야무야 되는 과정까지 똑같이 밟아나갈 것 같다.
물론 상황이 이렇다고 내년 지선 결과가 7년 전과 같을 거라는 예상은 섣부르긴 하다. 당시 여당의 압승은 남·북·미 정상이 만든 ‘평화 무드’가 선거의 9할을 좌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투표일 바로 전날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환한 웃음으로 ‘비핵화’에 합의하는 장면은 그 어떤 선거 전략보다 압도적이었다. 그런 빅 이벤트가 또 열릴 가능성도, 그 만큼의 효과를 거둘 가능성도 현재로선 극히 낮다. 여기에 이 대통령이 부산 16개 구·군 중 강서구 1곳에서만 승리한 지난 대선 투표 결과만 봐도 보수 우위의 PK 표심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대로 PK 지방권력 탈환을 향한 여권의 대대적인 물량 공세 또한 7년 전과는 다른 환경이다. 임기 시작부터 해양수산부 이전 공약을 직접 챙길 정도로 부산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 대통령은 지난 25일 부산 타운홀 미팅에서 각각 부산시장, 경남지사 출마설이 도는 전재수 해수부 장관과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에 옆에 두고 ‘PK 해양수도 공약’에 대해 쐐기를 박다시피 했다. 표류하는 가덕신공항에 대해서도 “지연되지 않도록 하겠다. 너무 걱정 말라”고 지역 민심을 다독였다. 여권이 해수부 연내 이전, 2차 공공기관 이전 로드맵 발표 등 지선를 앞두고 이런 결과물을 내세워 지역 표심 공략에 박차를 가할 것은 자명하다.
양 측의 이런저런 득실 포인트를 따져본다면 PK 민심의 운동장은 보수에 현저하게 기울어있다가 이제 좀 평평해진 수준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렇다면 내년 PK 지선의 무게추를 움직일 마지막 한 수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반드시 이기고자 하는 절박함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절박함으로 따지자면 양 진영의 차별점은 확연하다. 가덕신공항과 북항재개발 등 부산의 미래를 좌우할 숙원 사업들이 지역 내 소수파인 민주당 정부에서 추진되고 현실화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3당 합당 이후 30년 보수 우위 구도인 PK의 구조적 열세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의 반영이었다. 반면 평타만 쳐도 손쉽게 박수 받는 국민의힘에서 그에 상응하는 몸부림이 있었는지는 기억해내기 어렵다.
두 번의 탄핵 이후 변화된 민심은 국민의힘에게 더 이상 이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을 것 같지만, 비상계엄과 탄핵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은 PK 지선 전망에 짙은 어둠을 드리운다. 그럼에도 총선은 3년 뒤니 지선에서 바닥을 치면 오히려 반등의 여지가 커진다고 생각하는 의원들도 없지 않다고 한다. 어쩌면 내년 지방선거가 우리 정치사에 민주당 장기집권의 시작점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2025-07-3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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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무늬만 실용주의 정부?
지난 1월 대선을 앞두고 가진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장. 이 대표는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아닌가.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라는 뜻밖의 발언을 했다. 이어 “기업 활동 장애를 최소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당시 이 대표는 탄핵정국 속 조기대선이 거론될 즈음에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어서 덩샤오핑의 이른바 ‘흑묘백묘론’을 내걸며 중도층과 보수층 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흑묘백묘론은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인민이 잘살면 그만’이라는 논리에서 시작된 말이다. 이는 중국이 경제발전론을 내걸며 G2 지위에까지 오르게 한 원동력이 됐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발언들은 지켜지고 있을까. 당시 이 대표는 대선 후 대통령이 돼 실권자가 됐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기업 못해먹겠다”는 아우성이 재계 곳곳에서 들린다.
대주주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1차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이어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핵심인 2차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을 ‘초부자 감세’라고 비판하며 법인세 등 증세안도 검토하고 있다. 쟁의행위 범위 확대와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노조법 개정(노란봉투법)까지 밀어부칠 태세다. 건설경기 침체 속에 재건축·재개발 이주비 대출 억제, 재초환 규제 완화 무시 등으로 건설업계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는 300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최근 조사한 결과 전체의 약 80%가 2차 상법 개정 시 기업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답했다고 했다. 한국경제인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8단체도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 인상하면 투자와 취업자가 장기적으로 각각 2.56%, 0.75% 감소한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도 있다. 경기침체에 따라 법인세 세수가 2년 사이 41조 원 급감한 상황에서 세율을 높이는 것은 시기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 같은 행보는 미국 정부의 자국 기업 보호 정책과 상반된다. 트럼프 대통령 2기 정부의 경우 전 세계 국가들 대상으로 미국 내 수입 제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표한 뒤 국가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미국 내 투자와 함께 농산물 시장 개방 등으로 미국에 화답하는 모양새다.
미국 의존도가 높은 삼성, 현대차, SK 등 국내 기업들도 미국 정부의 관세 압박 등에 결국 일부 공장의 미국 내 이전, 공장 신설 등으로 약 100조 원 이상 투자에 나섰다. 한국 기업 입장에선 미국 정부 상대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공세까지 방어를 해야 해 “못해먹겠다”는 소리가 그냥 나온다. 미국 투자 확대 시 한국 내 생산과 고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 대상으로 압박하는 것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경제적 실리를 챙기기 위해선 전통적 우호관계인 한미·한일 동맹의 강화가 우선인데 대선 이후 과정은 그렇지 못했다. 국무위원들도 반미, 미군철수 등을 외쳐온 국무총리, 노동부장관 등을 임명했다. 최근 정상회담 기피, 소극적 관세 협상 등 외교관계에서 미국의 계속된 한국정부 홀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 대통령이 실용주의를 지향한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기업들이 활발한 경제활동을 펼치도록 세제 지원, 규제 철폐, 미국 정부의 관세 인상 최소화 등 친기업 정책을 펼쳐야 하고, 외교도 우리 기업과 국민에 어느 곳이 이익인지 잘 판단해서 대응을 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이미 여러차례 발언 번복의 전력이 있는데 이를 기업이나 국민들이 액면대로 믿은 것부터가 잘못인지 모른다.
2018년 경기도지사 후보 시절에 ‘재벌갑질’을 비판하면서 해체해야 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다 지난 3월에는 “재벌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면서 이재용 삼성 회장에게 “삼성이 잘돼야 대한민국이 잘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21년 12월 전북 전주 지역 청년들과의 간담회에선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도~”라고 말했다. 이후 다른 자리에선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꼬집었다. 이제 기업인들에게는 뭐라고 말할까. “실용주의 한다 했더니 진짜로 실용주의 하는 줄 알더라”라고 할까.
2025-07-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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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산시와 아파트 콤플렉스
최근 부산시의 한 인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시민들은 왜 부산에 아파트만 짓는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했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부산 시정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와 관련해서다. 지방선거가 머지않았으니 시정 평가에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을 시기다. 그는 부산시가 구조적이고 복잡다단한 위기 속에서도 일자리 창출과 도시 브랜드 향상을 위해 분투하며 쏠쏠한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시민 평가가 너무 박해 답답하고 억울하다고 했다. 그러고는 부산의 제분업체 한탑(옛 영남제분) 얘기를 꺼냈다. 최근 한탑이 현 공장 부지에 대해 고층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용도 변경(종 상향)을 요구해 특혜 논란이 일었는데, 부산시가 심의를 통해 해당 안건을 부결했고, 이는 박형준 부산시장과 시 정무 라인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고 했다. 한탑이 역외가 아닌 부산 내로 공장 이전 계획을 밝혔음에도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건 ‘아파트만 주야장천 짓는다’는 시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얘기하며 “(부산의 위기가) 매우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나오지만, 부산의 위기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인구 소멸, 청년 유출, 고령화, 기업 역외 이탈 등 난국은 날로 심화한다.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쌓이고, 도시의 소득 수준과 소비력을 뛰어넘는 고분양가 아파트 개발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오며 부산 시민들의 위기감과 패배 의식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산의 특산품은 아파트’라는 웃지 못할 말까지 나돈다. 아파트는 어느새 부산 시민들의 콤플렉스가 됐다.
박 시장도 억울할 만하다. 아파트 개발에 밀려난 기업 홀대의 대표적 사례인 YK스틸 사태가 표면화된 건 이미 10년이 넘었고, YK스틸이 충남 당진으로 이전을 최종 결정한 것도 박 시장이 보궐선거로 당선되기 이전의 일이다. 해안가가 초고층 아파트로 채워진 것도 그렇다. 재송동 한진CY 부지와 기장 한국유리 부지 등 도심 공업 지역이나 준공업 지역을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용도로 바꿔주며 고층·고밀도 아파트 개발이 가능하도록 길을 터준 사전협상제의 경우도 본격적인 사전 협상이 이뤄지고 아파트 개발 계획의 윤곽이 나온 건 박 시장 재임 이전의 일이다.
박 시장은 최근 취임 3주년 인터뷰에서 부산을 아파트 도시로 보는 시각은 근거 없는 정치적 프레임이라고 했다. 일부 사례로 일반화를 하고 있으며, 부산 지역 아파트 착공 실적은 최저 수준으로 아파트를 오히려 적게 짓고 있어 억울하다며, 오히려 적정 아파트 공급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몇 년 새 전국 대도시 중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가장 많이 사라진 곳이 부산이다. 이들이 사라진 곳은 대부분 고층 아파트로 채워지고 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일자리는 사라졌다. 공장과 산업 시설이 떠난 유휴 부지 역시 사전협상제를 통해 일자리가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선다. 아파트를 마땅히 지어야 할 땅에 아파트를 지어야 하지만,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용도의) 땅에 죄다 아파트를 지으니 부산을 아파트 도시라고 보는 불편한 시선이 생기는 것이다.
아파트 공급이 줄어든 건 비단 부산만의 상황이 아니다.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서울과 울산, 광주, 강원, 경북, 전북, 전남 등 7개 지자체는 최근 1년간 아파트 착공 실적이 지난 5년 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공사비와 분양가 상승으로 미분양이 증가하며 지방 분양 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아파트 공급 물량은 크게 줄었다. 부산은 인구 감소와 빈집 증가 등 도시 위기의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만큼, 아파트 공급 규모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일자리가 사라진 자리에 아파트를 짓는 일은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부산 시민이 아파트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제는 일자리가 떠난 자리를 아파트로 채우기보다, 직주근접의 장점을 살려 첨단 산업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행정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아파트 공급은 부산 곳곳에 산재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활성화를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부산시는 이제 부산에서 고층·고밀도 아파트 개발이 더 이상 녹록잖다는 기조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관련 심의나 허가 조건을 엄격히 적용하는 등 행정적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된다. 최근 한탑 사례처럼 말이다. 빈 땅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깨야 한다. 아파트를 허가하고 공공기여만 받으면 끝이라는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인 행정을 뛰어 넘어, 도시 발전과 시민의 행복을 위해 보다 지속 가능한 도시 계획을 추구해 나간다면 부산 시민의 아파트 콤플렉스도 사라지지 않을까.
이대성 사회부 차장 nmaker@busan.com
2025-07-2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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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어색하지만 만남이 필요한 이유
6·3 대통령선거를 통해 계엄사태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대한민국이 안정을 찾아가는 듯하다. 하지만, 안정을 찾아가는 중앙정부와 달리 지방자치단체는 마치 큰 지진을 대비하듯 긴장하는 상황이다. 내년 6월 전국 지방선거 때문이다. 지역 정가에선 벌써 자치단체장과 의회 의원 출마자가 거론되고 선거 이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산과 경남의 핫 이슈는 논의가 진행중인 ‘부산·경남 행정통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울산·경남(이하 부울경) 시도지사는 지난 2일 경남 김해에서 현안간담회를 갖고 △지방분권 강화와 국가균형발전 실현 △부산·경남 행정통합 공동대응 등에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했다. 부산·경남 행정통합이 성사될 경우, 울산도 참여를 검토하겠다는 부연설명도 붙였다.
동남권 핵심 요소인 울산이 행정통합 논의에서 빠진 것을 비롯해, 이 시점에 굳이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공동대응하겠다는 ‘드라마 재방송’같은 발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 이후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뀐 자신들의 입장에 공동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모든 일에는 목적(방향)과 목표(수단)가 있다. 시도지사 간담회 목적은 비대해진 수도권 중심의 1극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균형발전 실현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지역소멸을 방지하고 수도권에 대응하기 위해 동남권이 하나의 경제·생활권으로 규모를 키우고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오던 상황이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목적에 대해 중앙정부도 공감하면서 다양한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목적을 향해 가는 수단은 중앙정부가 특별지방자치단체(특별연합)를, 부산·경남은 행정통합을 제시하는 등 엇갈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5극3특(5대 초광역권·3대 특별자치도 육성)’ 전략을 제시했다.
이 전략은 수도권·동남권·충청권·대경권·호남권 등 5개 초광역권별 특별연합를 구성해 활성화하고, 제주·강원·전북 등 3개 특별자치도의 자치권한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른바, 메가시티라는 특별연합을 만들어 권역에 포함된 지역의 광역업무를 수행한다는 전략이다.
반면, 부산시장과 경남도지사는 기존 광역시도 위에 특별연합을 만들기 보다는 행정통합을 통해 단일화한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업무를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2년 4월 부울경은 특별연합을 출범시켰다. 특별지자체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이후 최초 사례였다.
하지만 그해 6월 지방선거에 당선된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김두겸 울산시장은 입장을 번복했다. 특히 울산시가 독자 노선을 선언하면서 동남권에서 부산과 경남만 행정통합 논의를 시작했다.
부산시와 경남도는 행정통합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추진과정은 거북이걸음이다. 통합여부에 대한 선택권을 쥔 주민의 낮은 참여와 중앙정부와의 이견이 큰 걸림돌이다. 더욱이 경남 쪽을 대표하는 권순기 공동위원장이 최근 교육감 출마예상자로 거론되면서 사임하자 추진동력에 차질이 예상된다.
경남 서부지역 반발도 감지되고 있다. 지난 11일 진주 경상국립대에서 열린 서부권 (진주·사천·산청) 행정통합 토론회에서 ‘통합청사 진주 유치’ 주장이 불거졌다. 토론과정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지자체에 선물을 줘야 한다”면서 “부산보다 경남에, 동부경남 보다 서부경남에 더 배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통합에 대한 윤곽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통합청사 위치를 거론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산너머 산’이다.
더욱이 부울경 메가시티를 주도했던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최근 이재명 정부의 첫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중앙정부의 국가균형발전과 자치분권 정책 컨트롤타워를 쥔 상황이다.
그는 자신이 출범시킨 특별연합을 무산시키고, 행정통합을 추진중인 지자체장들과 만나 현실 인식에 대한 의견교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엇박자가 예상되는 국가균형발전전략에 대해 중앙과 지방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박 도지사는 특별연합을 ‘옥상 옥’으로 폄하했고, 당시 옥중에서 김 위원장은 “기초공사도 하지 않고 집 짓겠다는 격”이라며 행정통합을 비판한 적이 있다. 전·현직 경남도지사간 어색한 만남이 되겠지만 이는 동남권 미래를 위해 꼭 풀어야할 과제다.
2025-07-2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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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가짜 손도 아픈데, 원전 고통이 없을 리야
‘가짜 손’ 실험은 간단하다. 테이블 위의 한 손을 보이지 않게 천으로 가리고, 진짜 손이 있을 법한 자리에 손 모형을 둔다. 굳이 정교한 모형이 아니어도 된다. 이어 누군가 가짜 손에 망치질하는 시늉을 하면, 손 주인은 깜짝 놀란다. 이때 손 주인의 편도체를 살펴보면, 실제 공포감의 반응이 나타난다. 같은 제스처를 몇 번 반복해도, 공포감은 둔해질 뿐 계속된다. 이성적으로는 저 손이 가짜인 것을 알지만, 공포감을 담당하는 편도체의 반응을 막을 수는 없다.
‘핀 악수’ 실험도 흥미롭다. 단기 기억 손상 환자가 있었는데, 담당 의사를 볼 때마다 매번 악수했다. 환자 입장에서는 늘 처음 보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의사가 자신의 손에 핀을 꽂고 악수를 했다. 환자는 손이 찔렸고 아파했다. 다음날 만남에서 환자는 역시 의사를 기억 못 했다. 다만 이번엔 “왠지 당신과는 악수를 하기 싫다”며 악수를 거절했다. 만남은 잊어도, 아픔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서 이성과 감정을 처리하는 메커니즘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들이다. 그래서 비행기 사고율이 자동차보다 낮다는 걸 알아도, 비행기가 낯설면 기체가 조금만 흔들려도 겁이 나는 법이다. 전쟁 트라우마 환자에게 “여기는 전쟁터가 아니다”라고 이성적으로 설명해도, 마음의 병이 쉽게 나을 리 없다. 이성과 논리만으로 감정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게 과학적 사실이다.
지난달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 1호기 해체를 결정했다. 이 소식 덕에 원전 관련 뉴스와 주장들이 많이 쏟아졌다. 덩달아 설계수명을 다한 원전을 정지하고 해체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주장도 제법 나왔다. 원전을 최대한 오래 많이 쓰자는 뜻이다. 물론 RE100 원전 미포함 문제, 다수 원전 정지 상태에서도 안정적 전력 수급 상황, 처치 곤란한 사용후핵연료 증가 문제 등의 반론도 있다. 그럼에도 AI시대에 전력 수급을 걱정한 것으로 주장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원전을 끼고 살아야 하는 이들의 상황을 외면하는 것은 불쾌하다. 간혹 등장하는 “원전 덕에 지원금이 쏟아진다”는 듯한 뉘앙스에는 화까지 난다. 멀리서 전기만 받아쓰다 보니, 원전 인근 지역에 사는 게 어떤 것인지 몰라서 저러는 것일까. 이들은 숫자와 논리를 들이대며 원전에 대해 느끼는 우리의 불안감이 불합리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 수백 개 원전이 있지만, 역사상 대형 사고는 3건에 불과하다. 설령 큰 사고가 나도, 다중 방호 설계가 있어 피해는 미미하다. 원전은 내진 설비가 가장 잘된 건물이고, 쓰나미 방어벽도 세웠다. 원전이 불안하다면, 교통사고 무서워 차는 어떻게 타고 다니냐….”
살아보면 알 수 있다. 육중한 원전 단지를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건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된 기분이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의 잔상은 숫자와 논리로 지워지지 않는다. 원전에서 벌어진 작은 고장 소식에도 아니 원전을 볼 때마다, 의식하지 못해도 주민들의 머릿속에서 그 잔상이 되뇌어 재생되고 있을 수도 있다.
주민들도 내진 설비가 잘 됐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다. 하지만 제법 큰 지진 소식이 들리면 원전부터 걱정한다. 전면전에서는 원전을 먼저 타격하는 게 상대를 무력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전쟁 나면 우리 동네가 먼저 쑥대밭이 되고 방사능 천지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지역의 불안감이 사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망상도 아니다. 수년 전 원전 납품 비리로 난리가 났을 때 충분한 대책이 세워졌다고 하지만, 지금도 비순정 베어링 납품 비리로 시끄럽다. 후쿠시마 원전도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재해에 무너졌다. 충분하다는 말로는 모자라는 일들이 반복됐다. 지역이 느끼는 불안감은 이런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극도로 낮은 확률이지만, 혹시나 불운이 맞물리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을 잠재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지역의 고통은 친원전, 탈원전 논쟁을 넘어선 이야기다. 편도체가 제 기능을 하는 이상, 원전이 불안과 불편을 유발한다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다. 안심시키려 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이 그냥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원전을 짓든 해체하든, 일단 원전이 주변에 상당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악영향을 준다는 걸 인정하고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오히려 안전성을 운운하며 원전이 주는 스트레스를 부정하는 게 비과학적이다. 못 믿겠으면 원전을 가져가 살아보면 된다.
2025-07-1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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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다음은 동남권 순환 광역철도다
765만 명 주민들이 살고 있는 부울경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사업 무산 소문까지 나돌았던 부울경 광역철도 건설사업이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를 통과해서다. 예타 통과는 정부가 이 사업의 필요성을 인정·승인한 것으로, 앞으로 기본계획 등 후속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는 의미다.
부울경 광역철도는 부산도시철도 1호선 노포역~양산 웅상출장소~KTX 울산역을 잇는 총연장 47.4km를 단선으로 건설하는 사업이다. 11개 정거장에 하루 35회 경전철이 운행된다. 사업비는 2조 5475억 원이다.
이 철도가 개통되면 부산 노포에서 양산 웅상까지 10분, 울산 KTX역까지 45분대로 이동할 수 있어 부울경 지역을 1시간 생활권으로 묶을 수 있게 된다.
부울경 광역철도 예타 통과는 순탄치 않았다. 이 철도의 예타 결과 발표는 지난해 6월이었다. 그런데 같은 해 9월로, 다시 12월로, 올해 상반기로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법정시한(6월 말)인 2년을 넘겼다. 결과가 늦어지면서 ‘노선 단축’, ‘단선 건설’, ‘사업 무산’ 등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6월 장미대선에서 수도권 집중 현상과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5극 3특’ 체제로의 전환을 공약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고, 취임 후 “부산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안 해결에 집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제성은 부족하지만 예타 통과 가능성’이 점쳐졌고, 현실화했다.
실제 예타 통과 과정에 지역 균형발전 가치 등의 정책적 배려가 기준(0.5)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2021년 시행한 ‘사전 타당성조사(사타)’에서 B/C가 0.66으로 나왔다. 기재부 예타는 사타보다 경제성을 더 엄격하게 보기 때문에 B/C는 사타보다 훨씬 낮게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부울경 1시간 생활권 조성과 초광역경제권 구상의 핵심 인프라에 동남권 순환 광역철도가 남아 있고, 이 철도 역시 예타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부울경 광역철도처럼 정책적 배려(?)를 기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KTX 울산역~양산 상·하북~김해 진영을 잇는 총연장 51.4km의 동남권 광역철도도 지난해 기재부 예타에 선정돼 용역이 진행 중이다. 사타에서 B/C가 0.7을 넘겼지만, 예타 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사업 무산 소문까지 나돌았던 부울경 광역철도와 비슷한 길을 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부울경 지자체와 정치권이 예타 통과를 위해 경제성 높이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양산시와 윤영석 국회의원도 이 철도를 이용해 울산에서 가덕신공항까지 가도록 노선 변경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실상 예타 통과는 녹록지 않다.
윤영석 의원은 동남권 광역철도 예타 면제 등을 포함한 ‘동남권 광역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까지 발의했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김태호 국회의원이 최근 발의한 ‘국가재정법 개정법률안’이 주목을 끈다. 이 법안은 지방 균형발전을 위한 초광역권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해 예타 때 ‘지역 균형발전 가중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김 의원은 “국가균형발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며, 초광역권 SOC 사업은 그 핵심 열쇠”라며 “개정안을 통해 초광역 사업들이 균형발전과 정책적 가치에 따라 추진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 역시 부울경 광역철도 예타 면제 등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국회를 넘지 못한 데다 개별 사안마다 예타 면제 등을 담은 특별법 발의도 쉽지 않은 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국가재정법 개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부울경 지자체와 정치권은 협력을 통해 가덕신공항이나 부울경 광역철도 등의 국책사업을 끌어냈듯이 부울경 1시간 생활권 조성에 필수 인프라인 동남권 광역철도의 예타 통과 또는 면제, 김 의원의 ‘국가재정법 개정법률안’ 통과를 위해 다시 한번 총력전을 펴야 할 것이다.
어렵게 통과한 부울경 광역철도 조기 착공이나 예산 확보 등의 후속 절차도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대선 과정에서 전국을 5개 초광역권(극)과 3개의 특별권(특)으로 나눠 고른 성장을 유도하겠다는 ‘5극 3특’ 실현을 위해서 지역 공약을 반드시 정부 계획에 반영해 ‘구호’가 아닌 ‘실천하는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태권 동부경남울산본부장 ktg660@busan.com
2025-07-1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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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항공 운송도 수도권 집중, 일극화 해소해야
에어부산과 대한항공의 김해공항 운항 축소로 부산 시민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가덕신공항 건설이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항공사까지 부산을 외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거점항공사가 사실상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졌다.
분단으로 육로 교통이 단절된 우리나라는 항공 운송 시장이 전 세계 7위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나 항공 운송은 수도권에만 집중돼 국제선 운항의 경우 수도권에 80%가 쏠려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제선의 78.7%가 인천공항에서 운항했다. 김포공항까지 합하면 전체 국제선에서 수도권 공항 비율이 82.7%에 달한다. 김해공항에서 운항한 국제선의 비율은 전체의 10.1%에 그쳤다.
전 세계에서 한국 다음으로 ‘수도권 집중화’가 심하다는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공항 일극화’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2023년 기준 일본의 공항별 국제선 운항을 살펴보면 나리타(도쿄) 31%, 간사이(오사카) 26%, 하네다(도쿄) 18%, 후쿠오카 10% 순이다. 나리타와 하네다를 합해도 전체의 절반이 안 된다.
우리나라 항공 운송의 일극화에 대해선 정치권이 ‘해소’ 목소리를 높여왔다. 선거 때마다 ‘지방 공항 활성화’와 ‘신공항 건설’ 공약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현재 추진 중인 지방 국제공항만 4곳(가덕, 대구경북, 제주2, 새만금)이다. 그러나 항공 운항의 수도권 집중은 10년 전과 비교해 나아진 게 없다. 전체 국제선에서 인천공항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
정부도 수년째 지방공항 활성화를 외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발표할 때도 지방공항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을 정도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항공운송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통해 “신공항 개항에 대비, 지방발 국제선 운항 확대”를 주장했다. 특히 항공화물 수요 증가를 감안해 지방공항을 통해 촘촘한 국제선 화물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방공항 노선 확대는 여전히 ‘정치적 구호’에 머물러 있다. 항공사들의 행동을 이끌 ‘인센티브’가 없어서다.
국회를 통해 국토교통부에 지방공항 활성화를 위한 인센티브를 물었다. 국토부는 “운수권 배분 평가 지표에 지방공항 활성화 기여도가 반영돼 있다”고 답했다. “정량지표 점수 총 65점 중 15점 배점 항목으로 가장 높은 비중”이라는 설명이다.
운수권은 항공사의 대표 무형자산으로 배분 기준은 법률로 정해져있다. 운수권 배분에서 실질적 최대 배점은 ‘안전’ 분야다. 정량지표 65점 가운데 안전 과징금(10점), 안전 사고 사망자 수(10점), 항공보안법 벌금(5점) 등 안전 지표가 25점에 달한다. 이용자 편의성도 15점으로 배점이 높다. 지방공항 활성화 기여도는 ‘단일 지표’로서 배점이 높지만 전체적으로는 낮은 비율이다.
운수권 배분에는 지방공항 활성화 등 ‘국가정책 기여도’ 이외에 ‘인천공항 환승 기여도’도 포함돼 있다. 인천공항 환승 기여도라는 배점(총 10점, 정량평가 8점, 정성평가 2점) 때문에 운수권 배분 평가 지표는 총점이 110점인 특이한 구조다. ‘인천공항 몰아주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지방공항의 ‘거점 항공사’ 육성을 위한 지원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년 이후에나 연구용역 결과가 나온다. ‘나라장터’에 올라온 계약 내용을 보면 ‘지방공항 활성화를 위한 전략적 방안 연구’는 총 예산 1억 원(국토부 5000만 원, 한국공항공사 5000만 원) 예산으로 7개월 동안 진행된다. 이 기간에 지방공항 현황 진단에서 관련 법제도 지방자치단체·해외 주요국 정책 분석,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특화 운영 방안, 연계 교통 거점 기능 활성화 방안, 지역 항공물류 활성화를 위한 공급망 개선 방안, 지역 관광과 연계 방안, 단계별 실행 로드맵까지 제시해야 한다. 광범위한 분석 내용에 비해 적은 예산이 투입돼 ‘생색내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공항 활성화 정책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정치적 구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다.
김해공항 등 지방공항 활성화는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지역균형발전의 핵심 요소다. 특히 ‘북극항로’와 가덕신공항이 결합하면 ‘트라이포트’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시한다면 부산, 제주 등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흑자 지방공항’은 급성장할 수 있다. 특히 부산의 경우 대한항공 계열의 통합 저비용항공사(LCC) 본사 유치 등 거점 항공사 육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5-07-0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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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1000만 관중 시대'… 신축 구장 건립 급하다
지난달 20일께 반환점을 돈 올해 프로야구 정규리그가 역대 최초로 전반기 700만 관중을 돌파했다. KBO는 지난 2일 "올해 KBO리그는 총 관중 700만 7765명을 기록했다"면서 "이는 역대 최초 전반기 700만 관중 돌파다. 또 405경기 만의 700만 관중 경신으로 기존 신기록인 지난해 487경기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이런 추세라면 지난 시즌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의 시즌 관중 1000만 명 돌파에 이어 올해는 1200만 명도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경기당 관중 수는 1만 7275명이다. 지난 시즌 같은 경기 수 기준 1만 4716명보다 17% 늘어난 수치다. 올 시즌 평균 관중 수 1위 팀은 삼성 라이온즈(2만 2548명), 2위는 LG 트윈스(2만 1682명)로 집계됐으며 3위 롯데 자이언츠(2만 516명), 4위 두산 베어스(2만 110명)까지 평균 2만 명을 넘겼다.
이처럼 올 시즌 프로야구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는 매년 하위권을 맴돌던 한화와 롯데의 대약진이 한몫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33년 만에 올 시즌 전반기 1위를 확정한 한화는 지난 4월 13일부터 지난달 5일 경기까지 홈 24경기 연속 매진이라는 KBO리그 신기록을 수립했다. 한화는 코디 폰세와 라이언 와이스, 두 외국인 대형 투수를 영입하며 전력이 급상승했다. 여기에 류현진의 복귀 효과와 정우주·김서현이라는 특급 신예들이 불펜과 마무리 투수로 가세해 팀 돌풍을 이끌고 있다. 특히 폰세는 8이닝 18탈삼진의 KBO리그 신기록을 세우며 새로운 서사를 만들기도 했다.
롯데의 약진도 돋보인다. 롯데는 현재 리그 공동 2위에 랭크돼 있다. 하지만 언제든 선두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게임 차를 유지하고 있다. 롯데는 지난 겨울 김민석·추재현을 두산에 내주고 정철원·전민재를 영입하는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여기에 지난해 196이닝 이상을 던졌던 ‘사직 예수’ 애런 윌커슨을 대신해 좌완 에이스 터커 데이비슨을 영입했다. 또 시즌 중에 부진했던 찰리 반즈를 내보내고 알렉 감보아를 데리고 왔다.
그 결과 정철원과 전민재는 없어서는 안될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았고, 데이비슨과 감보아도 기대 이상의 위력투를 과시하며 팀 승리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시즌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한 김원중도 KBO리그 통산 11번째로 150세이브 고지를 밟으며 뒷문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홍민기와 이민석, 박재엽, 한태양, 김동혁 등 신인급 선수들의 맹활약도 눈에 띤다. 특히 홍민기와 이민석은 시속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앞세워 연일 호투하고 있다.
올 시즌 문을 연 한화의 신축 홈 구장,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 개장 효과도 관중몰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한화생명 볼파크는 3년 간의 대규모 공사 끝에 완성된 개방형 야구장이어서, 기존 구장보다 시야가 탁 트였고, 경기장 외부에서도 내부가 훤히 보인다. 지하 2층, 지상 4층, 관람석 1만 7000석 규모로 조성된 이 신축 구장은 세계 최초로 야구장 내에 인피니티 풀이 조성돼 있어 수영을 하면서 야구를 관람할 수 있다. 특히, 비대칭 그라운드에 우측 8m 몬스터 월은 역동적인 경기를 선보이는 이색 펜스로 눈길을 끌고 있다.
1985년 개장해 올해로 40년째를 맞이한 부산 사직야구장의 재건축 추진 사업이 지난 3일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를 조건부로 통과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부산시는 이번 통과로 사직야구장 재건축의 타당성과 필요성을 정부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은 만큼 2031년 개장을 목표로 사업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부산시가 제안한 신축 구장은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에 관람석 2만 1000석을 갖춘 개방형 경기장으로 건립된다는 것이다. 공사 기간 동안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을 리모델링해 롯데 자이언츠의 임시구장으로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재건축 사업비가 2924억 원에 달해 부산시의 재정 부담을 줄이려면 국비와 민간 투자비 확보가 가장 큰 과제가 남아 있다. 시는 하반기에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에 적극 참여해 국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겠고 밝혔다. 그러나 2028년 착공 전까지 국비와 민간 투자비 확보가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다 일부 정치권과 부산 동구, 야구 관련 단체 등이 제안한 ‘북항야구장 건설’ 여론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현 상황에서 부산 시민과 롯데 팬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사직구장이든 북항구장이든, 입지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40년 된 낡은 야구장을 대체할 신축 구장을 하루빨리 건립해 달라는 것이다. 부산시의 계획대로 사직구장 재건축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되길 기대해 본다.
2025-07-07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