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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HMM 민영화의 원칙
길이 400m 폭 61m 높이 33.2m. 2020년 4월 부산항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HMM 알헤시라스호’의 위용은 대단했다. 20피트 컨테이너를 무려 2만 4000개나 한 번에 나를 수 있는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이었다. HMM(옛 현대상선)은 그 뒤로 3개월간 같은 크기의 배 11척을 인도받아 유럽 노선에 투입했다. 주인 잃은 현대상선을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가 넘겨받아 공적 자금을 과감히 쏟아부은 덕분에 현재 HMM은 세계 8위 수준의 수송 능력(선복량)을 갖추게 됐다.
현재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HMM 지분 비율은 각각 36.02%와 35.67%다. 산은의 자기자본(BIS)비율은 13.9%로 금융당국 권고치 13%를 겨우 넘긴 상태다. HMM 지분이 자기자본의 15%를 넘기면서 위험가중치 1250%를 적용받게 돼, HMM 주가가 오르면 BIS비율이 낮아지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7월 HMM 지분에 대한 위험가중치 적용을 3년 미뤄줘 매각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준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전체 산업군 지원을 맡는 산은의 자금 공급 여력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을 더 미룰 수 없기에 신임 박상진 산은 회장이 지난 9일 “HMM 민영화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HMM 민영화 논의에 앞서 한진해운 파산의 교훈을 다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소유 기업의 의지 부족, 정부의 해운업에 대한 몰이해가 겹치며 세계 7위 선복량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고 있던 한진해운을 공중분해시키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당시 채권단은 한진그룹에 긴급자금 7000억 원을 요구했지만 한진은 경영권과 함께 4000억 원을 내놓겠다는 입장으로 평행선을 달리다 법정관리와 파산에 이르고 말았다. 불과 3000억 원 차이였다. 2017년 선복량 기준 세계 13위에 불과하던 현대상선을 오늘날의 세계 8위 HMM으로 키우는 데 투입된 공적자금은 약 6조 8000억 원. 호미로 막을 일을 포클레인으로 겨우 막은 셈 아닌가.
돈 문제가 다가 아니다. 한진이 40년간 확보한 선박과 부두 지분 같은 유형의 자산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구축한 네트워크, 업계 전문 지식을 내재화 한 고급 인력들이 모두 산산히 흩어져버렸다. 무형의 자산은 돈을 쏟아붓는다고 당장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재 HMM은 미주와 유럽, 아시아 노선을 동시에 운영하는 국내 유일 글로벌 원양 선사다. 민영화에 단순한 금융·기업 논리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국내 수출입의 최전선을 담당하는 필수 기간산업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공기업은 아니지만 실제 원양 선사가 맡는 공공적 성격의 업무에 맞게 소유 구조에서의 공공성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HMM 최대 주주인 산은 지분을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최근 포스코그룹의 HMM 인수 검토에 대해 해운업계가 강력 반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주력산업이 위험해지면 해운업을 먼저 희생시킬 가능성이 있고, 대형 화주이기도 한 기업이 자사 물량 위주로 해운업을 영위하면 기존 해운 생태계가 흐트러진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단순한 해운 선사 한 곳 민영화 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적선사이자 기관으로서, 대한민국 해운산업이라는 측면에서의 지배구조 문제를 동시에 봐야 한다”며 HMM 민영화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다른 인터뷰에서 전 장관은 해운산업이 해양안보와 밀접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산은의 HMM 지분을 여수·광양부터 부산·울산·포항에 이르는 동남권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상공계가 나눠 갖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이를테면 ‘지역성 강화’ 방안이다.
산은이 소유한 HMM 지분의 가치를 HMM이 지난 8월 실시한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인 주당 2만 6200원으로 환산하면 약 10조 원에 이른다. 지자체와 상공계가 전체를 마련하기엔 부담스러운 액수다.
전 장관 아이디어에 생각을 보태보면 이렇다. HMM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해진공이 지분을 더 늘리는 것이다. 해진공이 굳건히 HMM 대주주 역할을 맡아 원양 해운의 공공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원양 선사와 연결돼 아시아 역내 해운을 책임지는 근해 국적선사들이 지분 참여를 한다면 HMM의 해운 전문성과 연결성도 동시에 꾀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화주기업들의 소액 지분 참여도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부산으로 이전할 HMM의 지역성과 전문성, 공공성, 산은의 자본 건전성 제고를 모두 꾀할 수 있는 방안,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여러 분야 관계자들의 머리를 맞대볼 필요가 있다.
이호진 경제부 선임기자 jiny@busan.com
2025-09-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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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절대 반지'
12·3 비상계엄은 무모한 도박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자신과 측근들의 안위 뿐만 아니라 당시 집권당인 국민의힘의 명운까지 게임판 위에 ‘올인’했다. 도박은 실패했고, 위태로웠던 여야 간 힘의 균형은 완전히 무너졌다. 계엄 역풍을 등에 업은 다수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결국 입법에 이어 행정 권력까지 차지했다. 여기에 내란 종식이라는 명분까지 손에 쥐었다. ‘내란 세력’이라는 단어가 주는 엄청난 위압감 앞에서 야당의 어떤 저항이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까. 민주당으로서는 그야말로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절대 반지’가 수중에 떨어진 셈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듯, 막강한 권력을 절제력 있게 행사하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때로는 정권을 떠받치는 핵심 지지층과 충돌을 불사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양립 불가능 지경인 여야 사이에 합의 정치에 대한 희망을 되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국회 시절에 누구보다 강성이었던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초반 통합과 협치를 강조할 때는 상당한 기대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소위 개혁 속도전을 벌이는 최근 여권의 행태를 보면 절대 반지의 위력에 흠뻑 취한 듯하다. 반대는커녕 ‘좀 과하다’는 지적조차 수용할 뜻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개혁 저항 세력으로 찍어 누르려는 고압적인 기류가 팽배하다. 사법부 개혁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법원장들의 주문은 “자업자득”으로 몰아세우고, 왜 바꾸는지 설명이 부족한 정부 조직 개편을 비판하는 공무원에는 “불만이면 퇴사하라”는 날 선 목소리가 날아든다.
내란특별재판부든, 내란전담재판부든 결국 여권이 원하는 판결을 할 수 있는 판사로 바꾸기 위함이라는 본질은 같다. 정치 권력이 판사를 성향에 따라 취사선택하려는 행위 자체가 사법권 독립 침해이며,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은 상식적이다. 여당 지도부는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상고심 선고에서 ‘정치 판결’을 내린 사법부가 독립을 외칠 자격이 있느냐고 비판하지만, 집권당이라면 그런 감정적인 대응이 우리 사법 시스템에 두고두고 미칠 해악을 더 깊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방송통신위원회를 해체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새로 설치하는 법안 역시 다분히 감정적이다. 현 이진숙 위원장 ‘찍어내기’ 의도라는 걸 민주당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이 위원장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특정인을 배제하기 위해 정부 조직의 근간을 흔들면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내란 척결이라는 깃발 아래서 수단의 적절성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다.
검사의 힘을 남김없이 빼는 게 요체인 검찰 개혁안 또한 복수심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진보 성향의 법조인들조차 검찰의 보완수사권마저 사라질 경우 부실 기소와 사건 지체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고 있지만 ‘검찰 없으면 나라가 망하냐’는 냉소적 반응만 넘쳐난다. 1% 정치 검사의 힘을 빼려고 99% 검사를 희생시키고, 사법 서비스의 질을 하락 시킨다면 이걸 개혁이라고 할 수 있나. 보다 근본적인 의문은 검찰에게 빼앗은 대부분의 권한을 넘겨 받는 경찰이 향후 ‘정치 경찰’이 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어디서 오느냐는 것이다.
내란 척결을 앞세워 지방선거 지형을 유리하게 만들려는 시도도 노골화되고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국민의힘 소속 지자체장을 겨냥한 감찰에 나선 것은 아무리 봐도 무리수다. 당일 행안부 지시 전 청사 폐쇄를 미리 해 계엄에 동조했다는 것인데, 일단 진위 여부가 명확하지 않고 그 날의 상황과도 맞지 않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계엄 당일 밤에 “계엄에 반대한다. 계엄은 철회돼야 한다”는 입장문을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먼저 발표했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박 시장은 사석에서 계엄을 강하게 비판한 기자의 칼럼에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물론 여권의 내란 공세가 힘을 받는 건 야당인 국민의힘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계엄 직후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고, 반성과 쇄신에 나섰다면 내란 척결이 지금처럼 야당을 향한 전가의 보도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탄핵 트라우마’만 되뇌던 국민의힘은 정반대 방향으로 역주행 했고, 지금도 ‘윤 어게인’ 세력과 기묘한 동거를 하면서 내란 동조 정당이라는 굴레에 스스로 매여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절대 반지는 종래에 그 파괴적인 힘을 주체하지 못해 주인을 스스로 자멸케 한다. 첫 탄핵 이후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임기 초반 80%가 넘는 지지율을 보였지만, 부동산 정책, ‘조국 사태’ 등에서 여론을 무시한 독선적 행태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절대 반지의 어두운 운명을 반복하지 않는 길은 무엇일까? 영화 주인공처럼 스스로 반지의 유혹을 떨쳐내는 길 밖에 없다.
2025-09-1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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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안갯속 부산·경남 행정통합
수도권 일극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광역자치단체가 추진하는 행정통합과 특별연합으로 전국이 혼란스럽다. 행정 전문용어인데다, 추진과정에 오락가락하는 지자체의 행보때문이다.
부산과 경남에서는 2022년 이미 만들어진 특별연합을 폐기하고, 다시 행정통합을 추진중인 상황이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박완수 경남도지사가 지난해 11월 경남도청에서 만나 수도권에 버금가는 ‘대한민국 경제수도’ 건설을 청사진으로 내걸며 부산·경남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화위)를 출범시켰다. 공론화위는 지난달 29일 창원시 창원컨벤션센터에서 경남 중부권 행정통합 시도민 토론회를 마지막으로 부산과 경남 8개 지역을 순회하는 권역별 토론회를 종료했다.
공론화위는 8차례 토론회 성과를 발판으로 연말까지 행정통합 기본 구상안을 도출하고 두 지역민이 동수로 참여하는 여론조사를 해 행정통합 의사를 확인할 방침이다. 공론화위는 수도권 집중·인구 감소로 지방소멸이 현실화한 상황에서 토론회를 통해 “부산과 경남이 함께 가야 한다”는 공감대를 넓힐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통합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시도민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시도민 공론화 작업이 마무리됐지만 추진 동력은 갈 수록 떨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토론회에서는 행정통합에 대한 시도민의 열기가 뜨겁지 않았다.
참여가 부족하면, 그만큼 추진력도 약해진다. 행정통합의 성패는 주민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지의사를 표시하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행정통합을 둘러싼 외부 여건도 좋지 않다. 올해 6월 대선으로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특별연합 형태인 부산·울산·경남(이하 부울경) 메가시티가 오히려 지역 화두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22년 4월 부울경은 특별연합을 출범시켰다. 특별지자체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이후 최초 사례였다.
하지만 그해 6월 지방선거에 당선된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김두겸 울산시장은 입장을 번복했다. 특히 울산시가 독자 노선을 선언하면서 동남권에서 부산과 경남만 행정통합을 논의 중이다. 또, 행정통합을 추진하던 일부 광역단체도 특별연합으로 다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5극(초광역) 3특(특별자치)’을 국정과제로 채택함에 따라 광주·전남을 비롯한 광역자치단체들이 정책 선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행정통합에 적극적이던 대구·경북은 민선 9기 장기 과제로 넘기는 분위기다. 대구·경북은 지난해 통합 특별법안 초안을 완성했다. 두 주체 중 한 곳인 대구시의회 동의까지 얻었다. 하지만 경북도의회 동의 절차를 진행하던 중 비상계엄이라는 돌발상황이 벌어지면서 동력을 잃었다.
행정통합을 위해선 정부 차원의 입법과 지원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지자체의 자율적 행정통합에 대해 반대하지 않지만, 특별한 지원도 없다는 방침이다. 다만, 국정 방향인 ‘5극 3특’에 편승하면 권역별 전략사업을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후 대구·경북은 통합보다는 오히려 ‘5극 3특’ 정책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한때 행정통합을 추진하다 무산된 광주·전남도 지난달 27일 특별연합 출범을 위한 선포식을 가졌다.
부산·경남도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 7월 25일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부산 타운홀 미팅에서 지방분권과 지역 균형 정책을 총괄하는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은 ‘선 협력 후 통합’을 언급하며 행정통합보다는 메가시티를 강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산·경남은 이제 막 행정통합 공론화 토론회를 마친 상황에서 갑자기 방향을 선회하기도 쉽지 않다. 내년 지방선거도 변수다. 누가 부산시장과 경남도지사로 당선되느냐에 따라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미 민선 7기 때 합의한 부울경 메가시티 결성이 민선 8기에서 폐기되는 경험을 했다.
여기에 내년 지방선거 이후 부산·경남 두 지역의 지자체장 중 한 명이라도 소속 정당이 바뀐다면 기존의 행정통합 방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마저 제기된다. 부산·경남 행정통합은 주민참여가 낮은 상황에서, 내년 지방선거와 중앙 정부와 이견 등으로 안갯속을 걷고 있다. 전문가들은 행정통합의 완성을 위해 △정치적 리더십과 합의 △주민 공감 △제도 마련 등 3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부산·경남에서는 3가지 요소 중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길수 중서부경남본부장 kks66@busan.com
2025-09-1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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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올해 사회부 생활을 시작하면서 맡은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제보에 대한 ‘게이트 키퍼’ 역할이다. 매일같이 회사로 걸려오는 제보 전화, 선후배 기자들이 건네는 이야기, 주변 취재원들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제보까지, 많은 제보 가운데 무엇을 취재하고 기사화할지 취사선택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보여주거나,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 더 나은 사회로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판단되는 제보는 취해 취재 등 기사화 과정을 거치고,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난 일방적인 주장만 일관하거나 사안이 너무 단편적이고 일면적인 제보는 배제한다. 취사선택의 기준은 제보의 내용이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공유하는 ‘상식’의 범주에 얼마나 벗어나 있느냐다.
최근 부산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이른 아침 시간 골프를 치는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모래에서는 벙커샷 연습을 하고, 인조 잔디에서는 퍼팅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황당하면서도 학교 운동장을 골프 연습장으로 활용하는 기발함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여름방학 기간이었지만 분명 학교에서는 방과후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깨는 몰상식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이라는 판단에 따라 제보 내용은 사회부 기자들의 취재를 거쳐 기사화됐고, 해당 기사는 많은 독자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사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상식 파괴’ 장면과 마주한다. 오늘도 많은 신문과 방송,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상식을 저버린 이들의 말과 행동들이 전해진다.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부산의 한 등산로에 파크골프장을 만들어놓고 이용한 노인들이 있는가 하면, 부산의 한 시내버스에서는 한 승객이 좌석에 앉아 양산을 펴고 있다가 다른 승객들로부터 불편한 시선을 받기도 했다.
강원도의 한 해수욕장 인근 정자에는 한 캠핑족이 텐트를 설치하고, 텐트를 고정하기 위해 바닥에 피스까지 박아 이슈가 됐고, 대전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 돗자리를 펴고 고추를 다듬는 주민에게 문제를 제기하자 자신의 차를 곧 댈 것이라는 황당한 대답만 들었다는 사연이 소개되기도 했다.
일상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닫히는 지하철 문 사이로 몸을 밀어 넣은 승객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한 승객의 핀잔에 되레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렇게 뭐라고 그러냐”며 큰소리를 치며 승강이를 벌인다. 한 호텔에서는 두세 살배기 아이 둘을 데리고 호텔 수영장을 찾은 한 부모가 수영장 정비 시간이 됐음에도 수영장을 이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수영장을 더 이용하게 해달라고 떼를 쓰고 언성을 높인다. 상식을 저버린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가 얼굴이 화끈거렸던 최근의 경험들이다.
과거에는 그냥 지나쳤을 법한 이런 풍경들이 이제는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발달로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 덕분에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더 자주 목격하게 됐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가 과연 건강해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깊어진다.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편리함이 우선시되는 시대, 개인의 삶과 가치가 중요시되고 사회 규범과 공동체 의식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건강한 상식을 지닌 국민은 매번 분노하지만, 곧 잊힌다. 상식을 저버린 악행들은 또다시 반복된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네 가지 도덕적 단서, 사단(四端) 중 하나로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들었다.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잘못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그는 부끄러움이 사라진 곳에는 탐욕과 이기심이 채운다고 했다. 상식이 파괴되는 숱한 일상들로 채워지고 있는 오늘날에도 꼭 되새겨봐야 할 덕목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의 최소 조건이다. 규범과 원칙이 존중받고, 예측 가능한 질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구성원들의 단순히 지식이나 논리적 판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공유하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모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의 구성원은 자신의 행위가 사회적 규범이나 공동체의 도덕적 가치에 어긋났음을 깨달을 때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한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개인들이 많아질 때, 비로소 사회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된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상대를 배려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사회부 기자들이 상식을 저버리는 황당무계한 사건·사고들을 기사로 전하는 일이 사라질 날들을 기대해본다.
2025-09-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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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정의선의 로봇 사랑
2022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IT·가전 전시회 CES에서 화제 가운데 하나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사족 보행 로봇 ‘스팟’과 함께 무대에 오른 장면이었다. 당시 정 회장은 “매일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것처럼 언젠가는 사람들이 스팟을 데리고 다니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2년후인 지난해 말 스팟이 미국 비밀경호국 요원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의 자택 주변을 순찰하는 장면이 언론에 공개됐다. 정 회장의 예고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미 싱가포르 혁신센터 HMGICS에는 로봇개 품질 검사원으로 스팟이 투입돼 있다. 국내에선 기아차 광명 공장에서 로봇개가 활동하고 있다.
올 연말에는 현대차의 글로벌 생산라인에 본격 투입된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신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조립라인에 시범적으로 넣기로 한 것이다. HMGICS 내 차량 내부를 조립하는 의장 단계에도 ‘아틀라스2’ 투입이 예정돼 있다.
로봇이 자동차 생산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로봇은 배터리만 교체하면 24시간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정의선 회장에게는 단순한 생산성 향상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는 듯하다.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등 노조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고 기업을 옥죄는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 국회 통과 등 집권 여당·정부의 노조 지원과 한국 노조의 과도한 요구를 컨트롤할 수 있는 ‘대항마’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 현대차 울산공장과 기아 광주공장을 가보면 토요타 일본 공장이나 르노코리아 부산공장과 사뭇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라인의 한두 명은 휴대폰을 하거나 신문을 읽는 장면이다. 비상 상황에 대비하고 휴식을 위한 차원이라고 하지만 다른 글로벌 공장들에는 흔하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자동차 생산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UPH(시간당 생산대수)를 보면 바로 국내 현대차 공장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공장과 체코 공장은 UPH가 70에 육박하지만 울산공장의 경우 평균 45에 그치고 있다. 임금은 반대다. 지난해 현대차의 노동자 평균 임금은 약 1억 2400만 원이고, 미국 자동차 빅 3의 평균임금은 8만 4000달러(약 1억 1700만 원)이다.
고임금임에도 생산성은 미국의 3분의 2수준인 상황에서 정 회장의 로봇 전략은 오히려 박수받을 일이 아닐까.
정 회장은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정상회담 때 지난 3월 발표한 4년간 총 210억 달러 투자에서 50억 달러(약 7조 원)를 추가한다고 했다. 미국에 연 3만 대 규모의 로봇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가뜩이나 미국 내 현대차그룹의 연간 자동차 생산량을 100만 대에서 170만 대로 확대키로 해 현대차·기아 노조가 한국 내 생산라인 축소를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메가톤급’ 소식을 추가로 알린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발끈했다. “외국 투자에 대한 허탈함과 불안감을 느낀다. 성과에 걸맞는 공정한 분배와 조합원에 대한 투자가 가장 가치 있는 투자”라고 비판했다.
최근 미국의 관세 부과 등으로 올 2분기 영업이익이 1조 6000억 원이나 감소했는데도 현대차 노조는 임단협에서 억지에 가까운 요구를 늘어놓고 있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현대제철, GGM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에서도 파업 등 노조 이슈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생산라인에서 근로자가 로봇으로 대체되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 로봇 투입만으로 ‘생산성 향상’과 ‘노조 대응력 강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된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나아가 이번 달 중순 국내 기관 투자자들을 대거 이끌고 미국 보스톤다이나믹스 본사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봇 투자를 본격적으로 이끌고 기업 가치를 올리기 위함이다. 증권가 반응도 좋다.
정 회장이 4년전 로봇 회사를 인수할 때만 해도 “일본 자동차 업체들처럼 포기할 것” “상업적으로 휴먼 로봇은 실패할 것”이라는 반응이었으나 이젠 그룹의 탄탄한 미래를 보장하는 ‘신의 한수’로 인식되고 있다.
배동진 서울경제부장 djbae@busan.com
2025-09-0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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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말라버린 호수에서 그려보는 북극항로
요즘 종종 1960년대 중앙아시아 목화 산업이 태동한 시절의 뒷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이 시기 우즈베키스탄 지역은 세계적인 목화 산업지로서의 터를 닦았다. 산업 규모가 전성기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우즈베키스탄은 세계 6~7위 목화 생산국이다. 목화산업이 무너지면, 이 나라 경제는 주저앉는다.
목화산업의 번영은 1950~1960년대 관개 사업의 결과다. 당시 소련 정부는 ‘흰 황금’이라 불리던 목화 생산을 늘리기 위해, ‘아랄해’ 호수로 향하던 강들에 댐과 운하를 지었다. 관개수로가 깔리고 물이 들어오자, 마른 땅은 목화 재배지가 됐다. 1960년대 말 이미 아랄해의 수위가 빠르게 내려가는 게 관찰됐지만, 목화가 가져올 번영에 가려 자연의 경고는 보이지 않았다. 희망에 들뜬 시기였다.
아랄해는 세계 4위 호수였다. 크기가 한때 6만 8000㎢에 달했다. 남한 면적의 3분의 2 정도다. 이랬던 아랄해가 강물 유입이 줄기 시작하고, 50년 만에 10분의 1 정도로 면적이 줄었다. 호수 대부분은 염분을 품은 사막이 됐다. 호수가 사라진 땅은 달구어져 기후가 크게 변했고, 모래바람은 주변까지 황폐화했다. 주민들 사이엔 폐질환부터 다양한 건강 문제들이 발생했다. 어업에 의존하던 도시들은 폐허가 됐다. 호수가 사막이 된 ‘아랄해 비극’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함께 소련의 대표적인 환경 재앙으로 꼽힌다.
오래전 다큐멘터리로 본 우즈베키스탄 목화 산업의 뒷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맴도는 건, 녹아가는 북극에서 말라가는 아랄해가 떠올라서다. 북극항로 개발에 들뜬 우리의 모습과 1960년대 아랄해 주변의 희망찬 분위기가 묘하게 닮은 느낌이 있다. 같을 순 없지만, 비슷한 구석은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목화 산업이 그러했던 것처럼, 냉정하게 말하면 북극항로 개척 기회도 환경이 망가지면서 생겼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 면적의 8배 이상의 북극 빙하가 사라졌다고 하고, 10년마다 면적이 13% 줄었다는 관측 결과도 있다. 무척 빠른 속도로 녹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북극항로 개척 기회가 생겼다는 것 자체가 기후위기 증거이다.
북극 빙하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을 반사하는 역할도 한다. 빙하 손실은 기후위기의 결과이자 동시에 위기를 더 키우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여름에 북극 해빙이 사라지는 때가 올 수 있다는데, 봄가을에도 그런 날이 온다면 북극항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즘엔 부산의 북항 일대가 상당 부분 물에 잠겨 있을 수도 있다.
북극항로를 접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련이 관개 공사를 접었다면 아랄해의 사막화는 멈췄겠지만, 지구온난화는 대한민국 혼자서 대응할 수 없다.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빙하는 녹을 것이다. 당장 오늘 전 인류가 탄소 생산을 멈춰도, 이미 대기에 탄소가 많이 쌓여 있어 긴 시간 지구는 뜨거워지고 북극은 녹는다. 짧은 뱃길이 생겼는데 굳이 길게 돌아가는 것 자체가 탄소를 더 뿜는 일이다.
그래서 북극항로는 상당 부분 현실화를 앞두고 있고, 대한민국은 여기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성공하면 부산이 물류허브 도시로서 한 단계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설득력이 있다.
다만 북극항로를 추진하면서도, 기후위기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좋겠다. 바닷길이 열리는 대신 빙하가 사라지고 있고, 북극곰과 바다코끼리 등이 터전을 잃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한 번씩 떠올렸으면 한다. 얻는 기쁨이 크다고 잃어버리는 것들에 소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가 기후위기에서 기회를 얻고 성공한다면, 기후위기 해결에 더 노력하는 것이 도의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해양 분야의 무탄소 기술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거나 녹색 에너지 비율을 높이는 식의 노력이 쌓이면, 북극항로 개척자로서의 명분도 함께 얻을 수 있다. 기후위기에 편승하기보다 위기 해결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거다. 이런 노력은 북극항로에서 대한민국의 입지를 넓히는 데도 효과적일 것이다.
지금 우즈베키스탄은 수출에서의 목화 비중을 줄이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미 많은 것이 무너져 쉽지가 않다고 한다. 만일 소련이 아랄해 주변의 물길을 돌릴 때, 더 먼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가 있었다면 지금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북극항로도 마찬가지다. 북극항로 개척이 성공하려면, 경제적 가치를 계산해 내는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지금 무엇을 잃고 있는지 알아채는 통찰력도 필요하다. 경제적 가치에 더해 공존의 의미를 고민하고 미래 세대를 배려할 줄 알 때, 지속가능한 북극항로를 그을 수 있다.
2025-09-0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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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가야진용신제, 국가 무형유산 승격돼야
문화유산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 세대가 이어받을 정체성의 근간이다.
국가 무형유산은 무용·음악·놀이 등 형태는 없지만,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무형의 문화적 산물을 정부가 지정한다. 6월 30일 현재 종묘제례악, 북청사자놀음 등 162종이 지정돼 있다.
이들 무형유산은 ‘무형유산의 보전과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유산청 무형유산위원회의 엄격한 심의를 거쳐 지정된다.
최근 경남도 무형유산 제19호인 ‘가야진용신제(이하 용신제)’가 국가 무형유산 승격을 위한 재심의를 앞두고 있어 지역사회 관심도 뜨겁다. 재심의는 오는 11월 중에 열린다.
용신제의 국가 무형유산 승격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양산시는 2015년과 2019년 국가 무형유산 지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제례 관련 자료 부족, 국가 제례 의식과 민속학적 요소(풍물놀이 등)의 결합 근거 부족 등의 이유로 연속 고배를 마셨다.
양산시는 2023년 하반기 세 번째 도전에 나섰고, 앞서 지적된 문제를 보완했다. 이 결과 지난해 2월 승격의 첫 관문인 국가 무형유산 신규 조사 대상으로 지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어 양산시는 과거 용신제 때 사용했던 제기와 복식까지 복원해 그 어느 때보다 조선 시대 제례 의식에 근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해 10월, 현장 실사에 해당하는 지정 인정 조사까지 마쳤다.
하지만 올해 초 무형유산위원회 전통지식분과는 ‘보류’ 결정을 내렸다. 11월 중에 열리는 재심의가 사실상 승격 여부를 가를 중요한 분수령인 셈이다.
재심의에서 용신제의 역사 가치와 학술적 의의를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 두 차례 승격 실패 원인이었던 국가 제례 의식에 가미된 민속학적 요소가 ‘용신제의 명맥’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시대적 상황이라는 점을 위원 한 명, 한 명에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용신제가 금지됐지만, 지역민이 밤중에 제단을 옮겨가면서 제를 올리는 식으로 명맥을 이었다. 근래에는 전승·보존을 위해 시제와 용신제에 기우제를 통합하고,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행사로 발전시켰다.
이는 전통이 단절되지 않기 위해 불가피한 결합이었다. 다시 말해 용신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시대적 여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위원들 역시 마을 사람들이 용신제 전승·보전을 위해 민속학적 요소가 가미됐으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해 재심의에 나서야 할 것이다.
용신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이어진 국가 제례로 중사에 해당할 만큼 국가적 의례였다. 용신에게 뱃길의 안전과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던 행사인 동시에 농경 사회의 생존을 좌우하던 물관리와도 직결됐다.
예로부터 용을 ‘미르’라 부르며 비와 물을 다스리는 존재로 여겨졌다. 물관리가 곧 농사의 성패를 좌우했던 수도작 문화권에서 뿌리 깊은 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용신제는 뱃길을 위한 제례에 머물지 않고, 국가와 농경사회를 함께 지탱한 종합적 의례였다.
과거에는 낙동강 가야진을 비롯해 흥해(동), 공주(서), 한강(북) 등 4대 강 유역에서 모두 행해졌으나 오늘날 온전히 전승·보존된 것은 가야진용신제뿐이다. 이 때문에 학술 가치와 역사적 희소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용신제가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문화유산으로 승격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승격이 되면 이는 단순히 국가 무형유산 한 종목이 늘어나는 차원을 넘어 낙동강 뱃길 복원 사업과 수변공원 활성화 등 양산시가 추진 중인 관광 자원화 전략에도 큰 힘을 싣게 된다.
나동연 양산시장의 핵심 공약과도 맞닿아 있어 침체된 지역 경제 회복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양산시가 ‘문화유산의 고장’으로서 위상을 높이는 계기도 될 것이다.
무형유산은 전승이 곧 생명이다. 유물은 보존만으로 그대로 남는다. 그러나 무형유산은 반드시 사람을 통해 이어져야만 맥이 끊기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다.
용신제의 국가 무형유산 승격은 안정적인 전승·보존 환경 마련과 함께 양산의 정체성, 더 나아가 우리 모두 역사적 뿌리를 지켜내는 문제다. 삼국시대 낙동강 물길을 타고 1300년 이상 이어진 역사의 제의가 오늘날 다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용신제의 국가 무형유산 승격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2025-08-2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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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에어부산, 기업 가치 우려 커진다
진에어에 의한 흡수합병을 앞두고 에어부산의 기업 가치 축소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항공기 도입 등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에어부산은 시장점유율도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에어부산의 ‘소극 경영’이 계속될 경우 에어부산 기존 주주들이 진에어와의 합병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진에어 중심의 저비용항공사(LCC) 3사 합병이 실제로 이뤄질 경우 ‘공정한 합병 비율’이 문제가 될 전망이다. 에어부산의 기업 가치가 낮아지면 진에어 주식과의 교환 비율도 낮아지게 된다. 에어부산의 기존 주주로서는 손해가 커지는 셈이다.
에어부산은 2020년 정부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발표 이후 투자 위축 등으로 기업 가치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LCC 통합 발표 이전인 2019년 에어부산과 진에어는 각각 26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어부산은 LCC 통합 발표 이후 보유 항공기가 계속 줄어서 현재는 20대만 보유하고 있다.
에어부산은 오는 9월 모기업인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항공기 1대를 추가로 리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화재사고로 전손 처리된 항공기를 대체할 항공기를 마련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1대가 추가된다고 해도 전체 기단은 지난해와 마찬가지인 21대에 그친다.
반면 진에어는 코로나19 이후 보유 항공기가 계속 늘어나 현재는 31대를 보유하고 있다. 항공사의 핵심 자산인 항공기 보유에서 큰 차이가 나면서 에어부산과 진에어의 매출 격차는 2019년 2770억 원에서 2024년 4546억 원으로 벌어졌다.
대구를 연고지로 선택한 티웨이항공과 비교하면 에어부산의 투자 축소는 더 두드러진다. 티웨이항공은 2019년 당시 에어부산보다 2대 많은 28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계속해서 투자를 확대해 현재는 43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에어부산과 티웨이항공의 매출 격차는 2019년 1773억 원에서 2024년 5300억 원으로 커졌다.
에어부산의 경쟁 LCC들은 코로나19 이후 빠르게 투자를 확대하며 덩치를 키웠다. 특히 티웨이항공은 진에어의 노선을 할당받는 등 LCC 통합의 간접적인 수혜를 누리면서 노선을 확대했다. 조만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하고 있는 중국 노선의 운수권도 재배분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역시 통합LCC 3사(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을 제외한 항공사에 돌아갈 전망이다.
항공기 확보 등 투자를 하지 않은 에어부산은 시장점유율(탑승객)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공시 자료에 따르면 에어부산의 국내선 시장점유율은 코로나19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해 2018년에는 14.1%를 기록했다. 그러나 LCC 통합 방침이 발표된 2020년 이후 ‘산업은행 체제’로 운영되면서 점유율은 정체 상태를 보였고 이후 2022년 13.7%, 2024년에는 11.6%로 줄었다. 에어부산은 특히 대한항공 출신으로 경영진이 교체된 올해 상반기에 국내선 점유율이 8.1%로 급감했다. 에어부산의 국제선 점유율도 2023년 5.3%에서 2024년에는 5.1%, 올 상반기에는 4.5%로 감소했다.
에어부산은 항공기 사고로 인한 기재 감소와 정비 문제로 인한 운항 감소를 점유율 하락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에어부산과 마찬가지로 항공기 사고가 발생한 제주항공의 올해 상반기 국내선 점유율(14.7%)이 지난해(15.4%)에 비해 불과 0.7%포인트(P) 줄어드는 데 그친 것과 큰 차이가 난다. 에어부산을 ‘흡수합병’하는 진에어 역시 합병으로 인한 노선 배분 등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상반기 국내선 시장점유율이 지난해에 비해 1%P만 줄었다. 진에어의 올해 상반기 국제선 시장점유율은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1%P 상승했다.
진에어는 코로나19 여파로 쌓였던 수천억 원대 결손금을 털어내고 배당 재개를 검토하는 등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모자란 항공기에 정비 문제까지 발생한 에어부산은 수년째 무배당을 이어가고 있고 2분기에는 100억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기업 합병 과정에서 피합병 기업 주주들은 기업 가치가 과소평가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실제로 지난 1월 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에서도 대한항공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에어부산도 투자 실종과 실적 악화가 계속된다면 ‘기업 가치 축소’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김종우 서울경제부 부장 kjongwoo@busan.com
2025-08-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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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해양금융, 물이 들어왔다
부산이 세계 1위 자리를 꿰차는 동안 인천·서울은 12위에 그친 역량.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서울보다 10년, 20년은 뒤처진다는 소리를 들으며 늘 서울 뒤꽁무니를 쫓아가기 바빴던 부산에 서울은 물론 세계 모든 도시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영광을 안겨준 것이 있다면 이를 무기로 한번은 제대로 승부를 걸어봐야 하지 않을까.
노르웨이 메논 이코노믹스(Menon Economics)가 격년으로 발간하는 메논 보고서 〈2024 세계 주요 해양 도시〉는 부산을 해양기술 부문 세계 1위, 해양도시 종합순위 10위로 평가했다. 종합순위로는 세계 1위 싱가포르, 4위 상하이, 7위 도쿄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4번째로 높은 수준인데, 다른 영역에서는 받아보지 못한 성적표다. 서울·인천은 해양도시 종합순위 26위, 해양기술에서는 12위를 차지했다. 지역의 한 전문가는 서울과 인천을 다 합쳐도 부산을 못 이기는 유일한 분야가 해양이라고 내심 기뻐했다.
부산은 한국 조선 클러스터의 중심지로서 고부가가치 메가선박과 저탄소 선박 건조, 조선소 선대 규모, 해양기술 기업의 높은 이익, 신조선의 높은 시장 가치, 해양기업의 특허권 수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해양기술 1위 자리를 꿰찼다.
해양수산부 이전을 계기로 부산의 산업 전반이 ‘해양’에 초점을 맞춰 발빠르게 체질을 바꿔가고 있다. 부산시는 아예 해양수도 부산의 의제를 발굴하고 선도할 컨트롤타워를 만들기로 했다. 잊혔던 ‘해양 DNA’가 되살아난 듯 ‘아 맞아,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이거였지’ 라며 제자리를 찾아오는 느낌이다. 국제문화도시, 블록체인특구, 글로벌금융허브 등 멋져 보이는 키워드가 많지만 다른 도시는 흉내낼 수 없는, 부산만이 가질 수 있는 대표 타이틀은 해양도시다.
해양은 그 확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전통 주력 산업인 수산, 조선, 항만물류는 물론이고, 해양금융, 해양에너지, 해양바이오, 해양기후 등 넓혀갈 수 있는 영역들이 다각도로 많다. ‘노인과 바다’라는 비아냥에나 쓰였던 바다가 부산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줄 ‘내 안의 보물’이란 걸 새삼 깨닫고 있는 듯 하다.
이 중 금융은 특히 해양산업 확장의 핵심 동력이다. 조선업과 해운업, 항만물류 등 굵직한 해양의 영역들은 모두 대규모 자본이 오랫동안 묶여 있어야 해 선뜻 돈을 넣기가 쉽지 않은 구조인데, 그 사이사이에 개입해 자금이 원활하게 돌 수 있게 하는 것이 해양금융의 역할이다. 자금에 숨통이 트이면, 산업에도 활기가 돈다. 예컨대 최근 부산은행이 지역 중형조선사인 HJ중공업에 1억 6400만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선수금환급보증(RG)를 발급해주면서 선박 건조 계약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금융 분야에서는 해양금융을 마중물 삼아 부산을 세계적 해양도시로 키워보자는 고무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물 들어올 때 배를 저어야 한다는 것이다. BNK부산은행은 조직개편을 통해 선박금융팀을 해양금융부로 격상시키고 본격적인 해양금융 시대 채비를 하고 있다. 부산은행은 그전부터 산업은행에 있던 선박금융 전문가를 스카웃 하는가 하면, 민간은행 중 유일하게 선박금융팀을 꾸린 곳이기도 하다. 공공 영역에서는 한국해양진흥공사가 해양금융을 이끌고 있고, 최근 동남권을 해양금융과 물류의 전진기지로 키우겠다며 북극항로 종합지원센터를 신설했다.
해운사, 조선사들이 부침을 겪는 동안 우리나라 해양금융도 많이 위축이 됐는데 그나마 부산에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고, 꾸준히 양성되고 있다. 부산국제금융진흥원의 해양금융센터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과 협약을 맺고 해양금융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개발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금융업계에서는 특히 HMM 부산 이전에 기대를 크게 걸고 있다. 해운, 조선, 선박금융기관, 화주 등 해양금융의 주역들이 모두 부산에 모이게 되는 건 물론이고, 해양법률과 서비스 등 관련 산업들도 부산으로 와 산업 전반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해수부 이전보다 부산에 더 좋은 것이 HMM 이전이라며, 한마디로 “거대 자본 덩어리가 내려오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국가 정체성을 포트 시티(Port City)로 밀어붙인 덕분에 굳건한 해양도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노르웨이도 해양기술과 조선업을 바탕으로 재생에너지 강국의 길을 걷고 있다. 부산이 조선, 해운, 해양에너지 기업의 자금 조달 허브가 된다면 한국은 물론 글로벌 투자자들도 너도나도 부산을 찾게 될 것이다. HMM 유치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과 함께 해양금융을 위한 조례와 예산 마련, 직제 개편 등 부산시의 더욱 적극적인 행정을 기대한다. 노인과 바다라지만, 부산의 힘은 언제나 노익장 같은 바다에서 나온다.
이현정 경제부 차장 yourfoot@busan.com
2025-08-2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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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엘롯기 동맹'의 가을야구 도전
역대급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올 시즌 KBO리그가 후반기를 맞아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전반기까지 한화와 LG, 롯데가 3강 체제를 형성하며 선두권 경쟁을 펼쳤으나 후반기 들어 롯데가 8연패의 부진에 빠지면서 LG와 한화가 각각 1~2위를 질주하며 우승 문턱에 한 발짝 더 다가선 형국이다. 3위 롯데와 4위 SSG, 공동 5위에 오른 KIA, KT, NC, 8위 삼성, 9위 두산은 선두권과 8경기 이상 벌어지며 혼돈의 3~5위 싸움을 펼치고 있다. 반면 지난 시즌 꼴찌였던 키움은 올해도 10위로 처지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이 사실상 힘들어 보인다.
시즌 폐막까지 30여 경기를 남겨 놓은 가운데 막판까지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올해 KBO리그의 최대 화두는 ‘엘롯기(LG·롯데·KIA) 동맹’의 사상 최초 가을야구 진출 여부다. 한때 오랜 부진으로 만년 하위팀으로 평가받았던 엘롯기가 올 시즌 동반 포스트시즌 입성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지난해까지 43년째 엘롯기 동맹 세 팀이 가을야구 무대에 나란히 진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엘롯기는 자타공인 국내 최고 인기 구단이어서 프로야구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는 팀들이다. 각각 서울, 부산, 광주라는 대도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어 그만큼 극성 팬덤을 가진 팀들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과거 방송 해설위원 시절 ‘엘롯기 동맹을 편애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허 총재는 그럴 때마다 “팬이 많은 구단이 잘해야 야구가 살아난다”고 해명하곤 했다. 실제로 프로야구는 KIA와 LG가 나란히 가을 야구 무대를 밟은 지난해 총 관중 1088만 7705명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중을 넘어섰다.
엘롯기는 2000년대 초반 KBO리그 만년 하위 3개 팀을 일컫는 조롱 섞인 유행어였다. 2001부터 2004년까지는 롯데가, 2005년과 2007년은 KIA가, 2006년과 2008년은 LG가 꼴찌를 차지하면서 엘롯기라는 단어가 야구 팬들에게 점차 각인되기 시작했다. 당시 엘롯기가 모두 가을야구에 진출하면 ‘대한민국이 폭발한다’는 근거없는 속설까지 떠돌았다. 엘롯기는 포스트시즌에 나란히 탈락한 경우도 1982년, 1985년, 2001년, 2005년, 2007년, 2015년으로 총 6번이나 있다.
LG는 1994년 이후 2022년까지 20년이 넘게 우승을 못하다 2023년 통합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롯데는 한술 더 떠 1992년 이후 무려 30년이 넘게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봄에만 반짝해 ‘봄데’라는 오명까지 보유하고 있다. KIA는 그나마 2000년 이후 3차례나 우승을 해 체면치레는 했다.
응원하는 팀이 올해 성적이 너무 좋아 제일 신나는 건 역시 롯데 팬들이다. LG와 KIA는 각각 2023년과 지난해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등 두 팀은 최근 들어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반면 롯데는 프로야구 원년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정규리그 우승 기록조차 없다.
올해 ‘반전의 드라마’를 쓰고 있는 엘롯기가 나란히 가을야구에 도전할 수 있는 이유로는 안정된 마운드와 뛰어난 타격력을 꼽을 수 있다. LG는 요니 치리노스와 임찬규, 손주영, 송승기가 팀 내 최다승 경쟁을 벌이며 연일 승리를 챙기고 있고, KIA는 지난달 말 NC와 트레이드를 통해 우완 투수 김시훈과 한재승을 영입해 불펜을 보강했다. 롯데는 알렉 감보아와 박세웅이 선발진에서, 홍민기와 윤성빈이 불펜진에서 역투를 펼치고 있다.
특히 롯데는 올 시즌 10승을 거둔 외국인 투수 터커 데이비슨을 최근 방출하고 새 외국인 투수 빈스 벨라스케즈를 영입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벨라스케즈는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191경기를 뛴 베테랑 투수로 빅리그 통산 38승 51패, 평균자책점 4.88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 13일 한화와 KBO리그 데뷔전에서 선발 등판해 3이닝 6피안타 2볼넷 5실점으로 무너졌다. 앞으로 정규시즌 동안 6~7번 정도 더 등판할 것으로 보여 이름값을 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엘롯기는 또 팀 OPS(출루율+장타율)와 경기당 평균 득점 등 공격력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에서도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이밖에 엘롯기의 또 다른 공통점은 베테랑 선수가 팀 타선의 중심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LG 김현수(37)와 롯데 전준우(39)는 팀 내에서 결승타를 가장 많이 때렸고, 현역 최고령 타자인 KIA 최형우(41)는 리그 OPS 부문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김현수는 최근 키움전에서 시즌 10번째 결승타를 때린 뒤 “올해는 노인들이 잘되는 해인가 보다”라며 환하게 웃기도 했다. 엘롯기 동맹의 선전으로 올 시즌 사상 최초로 1200만 관중 돌파도 무난해 보인다. 엘롯기가 과거처럼 조롱이 아닌 영광의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을지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변현철 문화부 독자여론팀장 byunhc@busan.com
2025-08-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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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폭염 시대, 여름 소비를 다시 묻다
한여름은 전통적으로 유통업계의 ‘비수기’였다. 무더위를 피해 여행지로 인파가 빠져나가고, 도심 상권은 썰렁해지는 것이 통념이었다. 하지만 최근 부산 유통가는 정반대 흐름을 보였다. 기후 변화가 몰고 온 기록적 폭염이 소비 행태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7월은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1994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무더운 7월이었다. 7월 전국 폭염 일수와 열대야 일수는 각각 15일, 23일로 평년보다 크게 늘었다.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나타나기도 했다. 낮에는 바깥 활동이 사실상 힘들어지면서 시민과 관광객 모두 냉방이 잘된 실내 공간으로 몰렸다. 결과적으로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피서지와 문화·미식 공간 역할을 겸하게 됐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은 ‘포켓몬’으로 히트를 쳤다. 부산교통공사, 포켓몬코리아와 손잡고 ‘포켓몬 캡슐 스테이션 인 부산’을 선보였는데, 시민은 물론 관광객 발길까지 대거 끌어들였다. 한정판 QR 승차권을 판매하는 도시철도 역에는 길게 줄이 이어졌고, 팝업스토어가 열린 부산본점에도 인파가 몰렸다. 롯데백화점 부산 지역 점포의 7월 1일~8월 10일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 이상 증가했다. 평일 내점객도 눈에 띄게 늘었고, 7월 한 달간 외국인 관광객 구매율은 전년 동기 대비 최대 60% 뛰었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은 피서객 비중이 높은 시즌 특성을 반영해 ‘먹캉스’ 콘텐츠를 강화했다. 주로 패션 기획전 위주로 활용했던 이벤트홀 공간에 20여 개 디저트·베이커리 브랜드가 참여하는 ‘부산 푸드페스타’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의 같은 기간 매출은 올해 상반기 평균 신장률인 5%대를 웃도는 6% 후반대를 기록했다.
IP 캐릭터 협업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신세계 센텀시티점의 ‘외모지상주의’ 팝업스토어는 주인공들의 부산 여행 콘셉트로 꾸몄고, 오픈 직후 주말 방문객 2만 명을 모았다.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열린 일본 인기 만화잡지 ‘주간 소년 점프’의 굿즈를 판매하는 ‘점프숍 인 부산’ 팝업스토어도 큰 인기를 끌었다.
체험형과 IP·푸드 콘텐츠의 결합은 단순한 피서 수단을 넘어, 소비자들의 SNS 인증샷과 실시간 후기 공유로 이어지며 파급력을 키웠다. 현장에서의 즐거움이 디지털 공간에서 재확산되면서 굿즈와 F&B 매출까지 동반 상승했다. 특히 MZ세대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까지 참여해 단발성 방문이 아닌 ‘목적형 재방문’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한 백화점 마케팅 담당자는 “여름철에는 더위와 지루함을 동시에 해소하는 체험형 킬러 콘텐츠가 필수”라며 “현장 경험이 곧 콘텐츠가 되는 시대, 얼마나 차별화된 이야기를 만드느냐가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부산관광공사의 2024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산으로 여행 온 외국인 관광객의 57.6%는 쇼핑을 즐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름철에는 면세점·쇼핑몰·전시관 등 실내형 관광지가 강세를 보이며, 관광과 소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올여름 백화점 현장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과 신세계 센텀시티점 모두 외국인 고객 비중이 전년 대비 크게 늘었고, 인기 팝업스토어나 프리미엄 패션·F&B 매장이 외국인 관광객의 주요 방문 코스로 자리 잡았다.
호황의 그림자도 짙다. 대형 건물의 냉방 전력 사용이 급증하면서 운영 비용과 탄소 배출이 동반 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에너지 절감과 ESG 경영의 균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냉방 효율을 높이는 인공지능 기반 공조시스템, 태양광·지열 등 재생에너지 전환, 매장 내 친환경 조명과 단열 설계 강화 같은 기술적 접근이 필요하다. 동시에 대형 이벤트·팝업 운영에서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다회용기나 친환경 소재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쇼핑객이 몰리는 F&B 공간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와 음식물 폐기물 관리도 중요한 과제다.
‘여름=비수기’라는 공식은 이미 깨졌다. 봄가을이 짧아지면서, 길어진 여름이 오히려 ‘체험·실내형 소비’ 중심의 성수기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호황을 지속하려면 매출 성장 곡선과 탄소 감축 곡선을 함께 그려야 한다. 단기적인 소비 열기 뒤에 남는 환경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후 변화 시대의 승자는 단순히 더위를 기회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환경을 지키는 해법까지 찾아내는 유통업체일 것이다. 이는 고객 신뢰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마케팅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다.
2025-08-1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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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재명을 더 알고 싶다
여름휴가와 책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정치 이야기인가 해서 이 글을 읽기 시작했다면 이쯤에서 중단하는 게 좋다. 마침내, 나도 떠난다. 이 시간을 기다리며 지난 몇 달을 버텼다. 이번 휴가는 일찌감치 일본으로 가기로 정했다. 그런데 꼭 초를 치는 사람이 있다. 모 씨가 일본 대지진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다 만화에서 나온 근거 없는 설에 불과하고, 이미 예언한 날짜도 지났다고 말해 줬다.
현대 과학으로는 지진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크게 일어날지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 날짜가 예고된 대재앙 따위가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달은 지나갔지만, 이번 달에는 오지 않겠느냐”라고 우긴다. 그저 며칠 ‘휴가’를 가겠다는데, ‘휴거’ 기다리듯이 지진을 기다리다니. 내일 뜰 태양을 기대하며 책 몇 권 챙겨 바람과 함께 사라지련다.
그제야 휴가철 추천 독서 목록이 요즘 통 안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엔 신문, 방송, 출판계에서 여름만 되면 ‘휴가철 추천 도서’나 ‘피서지에서 읽기 좋은 책’ 같은 리스트가 꼭 나왔다.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은 도서 목록도 몇 년째 감감무소식이다. 역대 대통령이 휴가 때 읽었던 책은 국정 철학이나 시대적 관심사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운 지표가 되었는데 말이다.
찾아보니 김영삼 대통령이 휴가 도서 목록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김 대통령이 1996년 여름휴가 때 읽은 책 공개가 ‘독서 정치’의 시초로 여겨진다. 김대중 대통령은 독서광이자 애서가로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바빠서 책을 읽지 못하면 감옥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라는 말까지 했을까. 그의 휴가 도서 목록은 매년 출판계와 정치권의 큰 관심을 끌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책 읽기를 매우 좋아했다. 그의 독서 스타일은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갖고 있고, 독서의 내용을 현실 정치에 활용하려 했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노 대통령은 “좋은 책이 필요합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보면 책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적인 독서가이자 속독파로 알려진다. 고전과 역사서를 좋아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휴가 기간 독서를 통해 국정 운영 구상을 가다듬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를 ‘활자 중독’이라 일컬을 만큼 독서를 즐겼고, 지금도 평산책방 주인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공식적인 휴가 독서 목록이 알려진 바가 없다. 윤 대통령이 읽었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에 대해서도 어쩌면 평생 읽은 게 그 한 권뿐일지도 모른다는 박한 평가까지 나온다. 차라리 휴가 때 마신 주류 리스트를 공개하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가 감방에서 속옷 차림으로 버텼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조차 망상이었음을 깨달았다.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운명의 활자매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지난주에 병원 대기실에서 한나절 동안 앉아 있었는데, 그곳에 놓인 신문들을 아무도 들춰보지 않는 모습에 새삼 충격을 받았다. 주지하듯이 종이 신문이나 책을 보던 시대에서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영상 중심의 소비로 옮겨가면서 독서할 시간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다. 예전에 신문과 잡지가 주요 정보원일 때는 휴가철 특집 기획도 많았다.
여름철은 출판 시장의 비수기로 여겨진다. 여름휴가를 떠나거나 야외 활동을 즐기면서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출판사들도 시장 상황을 고려해 여름철에는 대작이나 기대작의 출간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요즘엔 SNS 인증샷, 독서 모임,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세지며 ‘추천 도서 리스트’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단다. 사정은 잘 알겠는데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무리 그래도 활자매체가 뛰어놀아야 지금처럼 K영화나 K드라마가 날아다닐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까지 하계휴가 중인데 독서와 영화감상 등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소개된 바는 아직 없다. 우린 이재명 대통령을 더 알고 싶다. 이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은 책들이 뒤늦게라도 알려져 고요한 출판 시장에 작은 파문이라도 일었으면 좋겠다. 주가지수 5000시대도 좋지만, 사람이 밥만 먹고는 살 수 없는 법이다.
지금까지 읽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당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 주려고 한다. 첫째, 바닷가에서 읽기 좋은 소설. 둘째, 마음이 편안해지는 에세이. 셋째, 한두 시간 안에 읽는 짧은 책. 넷째, 시원한 공포·추리물. 다섯째, 퇴직 후 인생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책. “이 중 어떤 종류의 책을 골라 드릴까요”라고 묻는 친절한 분이 당신 주변에도 있다. 에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 AI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2025-08-0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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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해양수도의 조건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계기로 부산이 명실상부한 해양수도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맞는 말이다. 2000년 연말을 앞둔 시점 고 안상영 시장의 선언으로 시작된 해양수도 행보는 해양산업 육성 조례 제정(2005년)과 해양 공공기관 부산 이전(2012~2017년) 등으로 느린 걸음을 이어왔다. 기대에 한참 못미치는 속도와 강도에 부산의 경쟁력이 바닥나는가 싶던 시점, 해수부가 부산으로 오게 됐다. 국가 해양 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가 부산에 자리잡음으로써, 산업과 연구·개발, 인재 양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구심력이 생기기를 부산은 원한다.
‘수도’는 당연히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해양 관련 모든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해양수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 해양 산업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디지털 기술, 여기에 미래 산업의 기본 조건이라 할 탈탄소 친환경 기술로 탈바꿈하고, 해운 시황 정보와 해양 금융, 해사 법률 등 부가가치 높은 해양 신산업도 해양수도를 중심으로 일으켜야 한다.
하지만, 수도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것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북극항로가 지나가는 한반도 동남권 해안 도시 전체가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되고, 이에 대비해 벌써 각 지역 나름의 장점을 살린 발전 전략을 세우고 있다. 경북도는 포항 영일만항을 북극항로 관문항으로 육성하려는 전략을 공표한 바 있고, 여수광양항만공사도 광양항을 북극항로 거점항으로 구축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지난달 말 국회에서 열었다. 러시아 극동 거점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행 정기 뱃길을 운영했던 강원도 동해·속초항도 각자 북극항로와 연관된 해양물류산업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다.
광양에서부터 마산, 부산, 울산, 포항, 동해, 속초까지 우리나라 해안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지역이 북극항로 영향권이다. 각 지역이 비슷한 산업 분야에 비슷한 화물만 유치하려 한다면 제살깎기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각 지역 산업 기반과 특성을 반영한 역할 분담이 필수다.
여기서 해양수도 부산의 역할은 무엇일까?
정책 총괄 부처가 있으니, 해수부 공무원들이 흔히 지방에서 해수부를 일컫는 ‘본부’가 되는 것이다. 연구개발과 정책 수립의 사령탑 역할을 하면서, 각 지역 해양산업 정책의 조정자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여기에 싱가포르나 홍콩이 걸어온 길처럼 해양 금융과 해운정보 서비스, 해사법원 등으로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 활발히 영위되는 부산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부산에 기반을 둔 전통적 해양산업은 부산시와 해수부가 협력해 첨단 디지털·친환경 산업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북극항로가 열린다고 부산이 곧바로 해양수도가 될 순 없다. 온갖 변수와 곡절이 도사리고 있다.
당장 해수부 부산 이전을 계기로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에 대한 관할권을 해수부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그렇게 빗발쳤지만, 미국과의 관세 협상 막판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 전략이 통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가 통상과 조선을 동시에 관할하는 현재 시스템을 당장 바꾸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후에너지부 신설도 공약한 바 있어 산업부의 에너지 부문 분리 가능성도 높다. 산업부 전체의 기능 재편을 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정기획위원회의 정부 조직 개편안 발표는 이달 중순께로 알려져 있다. 변화하는 상황에 맞는 추가 설득 논리와 단계별 전략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또 북극항로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과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 해제가 필수적인데, 끝날 듯하던 전쟁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세계 패권 구도 변동과 각국의 대응이 예측과 달리 돌아가는 경우는 다반사다.
따라서 헤양수도가 되려면 최소한 국내에서 만큼은 동남권 해양 도시들을 우군으로 품고, 그들의 요구까지 충분히 수렴해 국가 정책에 목소리를 낼 때 동남권 해안 지역을 이끌 리더십이 생길 것이다.
보여주기 식으로, 유행처럼 온갖 정책에 북극항로를 갖다붙일 일이 아니라, 부산이 전통 해양산업을 업그레이드 하듯, 동남권 각 지역 산업 역량을 스마트·친환경으로 업그레이드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을 부산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낼 때 국내에서 만큼은 해양수도 위상을 부여받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가면 환동해권을 기본으로 북극항로 개척 후 주요 교역 상대로 떠오를 북유럽, 중앙아시아 주요 도시들과도 도시 차원의 외교를 미리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실제 북극항로가 열리는 외부 환경 변화가 왔을 때 곧바로 성과를 나타낼 기반을 만드는 일이 지금 해양수도를 지향하는 부산이 시작해야 할 과제다.
2025-08-0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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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평평해진' PK 민심… 절박함이 승부 가른다
최근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진 국민의힘을 보면서 일본 자민당처럼 더불어민주당의 장기집권 체제가 도래할 것이라는 말이 보수 내부에서 나온다. 개인적인 견해는 아직 그 단계까진 아니라고 보지만, 궤멸적 타격을 입은 2017년 첫 탄핵 때보다 더 지리멸렬한 국민의힘의 최근 행태에 보수층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때로 경험은 독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의힘에게 2016년 말 ‘탄핵’이 딱 그렇다. 겁박에 가까운 구 주류 중진들의 당시 ‘탄핵 트라우마’ 경험담에 경도돼 어렵게 분리한 아스팔트 보수와 재결합하면서 ‘탄핵 반대’, ‘윤석열 사수’로 민심과 정반대로 역주행 했다. 그 관성은 대선 완패 이후 전대에서까지도 ‘윤 어게인’ 운운하는 퇴행적 행태로 이어지고 있다. ‘내란 동조세력’이라는 여권의 프레임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셈이다. “바닥인 줄 알았더니 지하를 맞닥뜨린 심정”이라는 한숨이 당내 가득하다.
그런 점에서 내년 부산·울산·경남(PK) 지방선거는 국민의힘에게 최후 방어선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됐다. PK마저 내주면 국민의힘은 대구·경북(TK)에 고립된 그야말로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여권이 일찌감치 PK에 화력을 집중하는 것도 이런 전략적 판단이 깔렸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어게인’의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여권은 ‘2018 어게인’을 외치고 있다. 탄핵 후 첫 지방선거인 2018년 민주당은 사상 처음으로 부울경 지방권력까지 ‘싹쓸이’하는 역대급 승리를 거뒀다. 여권이 2018년의 재현을 기대하는 건 탄핵 이후 정국이 당시와 매우 흡사하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PK에서도 국정 지지율 50%를 넘기며 정권 초반의 허니문을 만끽하고 있는 반면, 탄핵과 대선 완패 이후에도 ‘네 탓’ 타령만 하는 야당의 추락은 끝 간 데가 없다. 거기에 당시 적폐 청산을 능가하는 세 특검의 칼날이 보수를 서서히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조금 있으면 패배한 직전 대선후보가 당 대표가 돼 반성도 쇄신도 유야무야 되는 과정까지 똑같이 밟아나갈 것 같다.
물론 상황이 이렇다고 내년 지선 결과가 7년 전과 같을 거라는 예상은 섣부르긴 하다. 당시 여당의 압승은 남·북·미 정상이 만든 ‘평화 무드’가 선거의 9할을 좌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투표일 바로 전날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환한 웃음으로 ‘비핵화’에 합의하는 장면은 그 어떤 선거 전략보다 압도적이었다. 그런 빅 이벤트가 또 열릴 가능성도, 그 만큼의 효과를 거둘 가능성도 현재로선 극히 낮다. 여기에 이 대통령이 부산 16개 구·군 중 강서구 1곳에서만 승리한 지난 대선 투표 결과만 봐도 보수 우위의 PK 표심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대로 PK 지방권력 탈환을 향한 여권의 대대적인 물량 공세 또한 7년 전과는 다른 환경이다. 임기 시작부터 해양수산부 이전 공약을 직접 챙길 정도로 부산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 대통령은 지난 25일 부산 타운홀 미팅에서 각각 부산시장, 경남지사 출마설이 도는 전재수 해수부 장관과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에 옆에 두고 ‘PK 해양수도 공약’에 대해 쐐기를 박다시피 했다. 표류하는 가덕신공항에 대해서도 “지연되지 않도록 하겠다. 너무 걱정 말라”고 지역 민심을 다독였다. 여권이 해수부 연내 이전, 2차 공공기관 이전 로드맵 발표 등 지선를 앞두고 이런 결과물을 내세워 지역 표심 공략에 박차를 가할 것은 자명하다.
양 측의 이런저런 득실 포인트를 따져본다면 PK 민심의 운동장은 보수에 현저하게 기울어있다가 이제 좀 평평해진 수준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렇다면 내년 PK 지선의 무게추를 움직일 마지막 한 수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반드시 이기고자 하는 절박함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절박함으로 따지자면 양 진영의 차별점은 확연하다. 가덕신공항과 북항재개발 등 부산의 미래를 좌우할 숙원 사업들이 지역 내 소수파인 민주당 정부에서 추진되고 현실화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3당 합당 이후 30년 보수 우위 구도인 PK의 구조적 열세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의 반영이었다. 반면 평타만 쳐도 손쉽게 박수 받는 국민의힘에서 그에 상응하는 몸부림이 있었는지는 기억해내기 어렵다.
두 번의 탄핵 이후 변화된 민심은 국민의힘에게 더 이상 이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을 것 같지만, 비상계엄과 탄핵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은 PK 지선 전망에 짙은 어둠을 드리운다. 그럼에도 총선은 3년 뒤니 지선에서 바닥을 치면 오히려 반등의 여지가 커진다고 생각하는 의원들도 없지 않다고 한다. 어쩌면 내년 지방선거가 우리 정치사에 민주당 장기집권의 시작점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2025-07-3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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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무늬만 실용주의 정부?
지난 1월 대선을 앞두고 가진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장. 이 대표는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아닌가.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라는 뜻밖의 발언을 했다. 이어 “기업 활동 장애를 최소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당시 이 대표는 탄핵정국 속 조기대선이 거론될 즈음에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어서 덩샤오핑의 이른바 ‘흑묘백묘론’을 내걸며 중도층과 보수층 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흑묘백묘론은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인민이 잘살면 그만’이라는 논리에서 시작된 말이다. 이는 중국이 경제발전론을 내걸며 G2 지위에까지 오르게 한 원동력이 됐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발언들은 지켜지고 있을까. 당시 이 대표는 대선 후 대통령이 돼 실권자가 됐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기업 못해먹겠다”는 아우성이 재계 곳곳에서 들린다.
대주주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1차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이어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핵심인 2차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을 ‘초부자 감세’라고 비판하며 법인세 등 증세안도 검토하고 있다. 쟁의행위 범위 확대와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노조법 개정(노란봉투법)까지 밀어부칠 태세다. 건설경기 침체 속에 재건축·재개발 이주비 대출 억제, 재초환 규제 완화 무시 등으로 건설업계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는 300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최근 조사한 결과 전체의 약 80%가 2차 상법 개정 시 기업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답했다고 했다. 한국경제인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8단체도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 인상하면 투자와 취업자가 장기적으로 각각 2.56%, 0.75% 감소한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도 있다. 경기침체에 따라 법인세 세수가 2년 사이 41조 원 급감한 상황에서 세율을 높이는 것은 시기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 같은 행보는 미국 정부의 자국 기업 보호 정책과 상반된다. 트럼프 대통령 2기 정부의 경우 전 세계 국가들 대상으로 미국 내 수입 제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표한 뒤 국가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미국 내 투자와 함께 농산물 시장 개방 등으로 미국에 화답하는 모양새다.
미국 의존도가 높은 삼성, 현대차, SK 등 국내 기업들도 미국 정부의 관세 압박 등에 결국 일부 공장의 미국 내 이전, 공장 신설 등으로 약 100조 원 이상 투자에 나섰다. 한국 기업 입장에선 미국 정부 상대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공세까지 방어를 해야 해 “못해먹겠다”는 소리가 그냥 나온다. 미국 투자 확대 시 한국 내 생산과 고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 대상으로 압박하는 것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경제적 실리를 챙기기 위해선 전통적 우호관계인 한미·한일 동맹의 강화가 우선인데 대선 이후 과정은 그렇지 못했다. 국무위원들도 반미, 미군철수 등을 외쳐온 국무총리, 노동부장관 등을 임명했다. 최근 정상회담 기피, 소극적 관세 협상 등 외교관계에서 미국의 계속된 한국정부 홀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 대통령이 실용주의를 지향한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기업들이 활발한 경제활동을 펼치도록 세제 지원, 규제 철폐, 미국 정부의 관세 인상 최소화 등 친기업 정책을 펼쳐야 하고, 외교도 우리 기업과 국민에 어느 곳이 이익인지 잘 판단해서 대응을 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이미 여러차례 발언 번복의 전력이 있는데 이를 기업이나 국민들이 액면대로 믿은 것부터가 잘못인지 모른다.
2018년 경기도지사 후보 시절에 ‘재벌갑질’을 비판하면서 해체해야 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다 지난 3월에는 “재벌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면서 이재용 삼성 회장에게 “삼성이 잘돼야 대한민국이 잘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21년 12월 전북 전주 지역 청년들과의 간담회에선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도~”라고 말했다. 이후 다른 자리에선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꼬집었다. 이제 기업인들에게는 뭐라고 말할까. “실용주의 한다 했더니 진짜로 실용주의 하는 줄 알더라”라고 할까.
2025-07-28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