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한동훈·하정우는 왜 북구를 선택했을까
전창훈 서울정치부장
부산 변방서 6·3 지선 최대 승부처로
역대 선거서 부산 정치 역동성 증명
‘하이 리턴’ 매력에 ‘전국구급’ 몰려
주요 출마자 강성 아닌 중도 확장형
조작 특검·윤 어게인 진영 정치 악화
‘부산 대전’ 승자, 정치 변화 시작점
외지인들이 부산을 생각할 때 북구를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해운대 광안리만큼 화려하지도, 중구나 영도처럼 먹거리, 볼거리가 많지도 않다. YS(김영삼) 시절 부산 정치 1번지 대접을 받던 서구처럼 상징성이 있는 곳도 아니다. 400년 전통의 구포시장을 빼고 나면 북구를 소재로 뭔가 얘깃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북구가 6·3 지방선거의 최고 ‘핫플레이스’가 떠올랐다. 수도권 언론들이 연일 구포시장을 찾고, 북구 민심을 가늠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북갑 보궐선거는 각 후보들의 미래를 넘어 선거 이후 여야 정치 지형을 뒤흔들 수 있는 승부처가 됐다. 북구 주민들조차 의아해 할 이 신드롬은 우연에 우연을 더한 결과일까?
시계를 되돌려보면 여권이 10여 년 전부터 ‘낙동강 벨트’를 전략지역화하면서 서부산 전역이 여야 접전지로 바뀌었지만, 그 중에서도 북구는 정치적 균형점을 향해 달려가는 부산 정치의 역동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줬다. 19대 총선부터 국민의힘 소속인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과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인 전재수 전 의원이 네 번 맞붙어 첫 두 번은 박 전 장관이, 이후 두 번은 전 전 의원이 승리했다. 서부산 지역 지지층 분포가 ‘보수 6, 진보 4’ 정도라면, 때때로 달라지는 구도나 인물 경쟁력에 따라 정반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그야말로 부산 내 ‘스윙 스테이트’인 셈이다.
나는 북구의 이런 토양이 이번 역대급 대결의 촉매제가 됐다고 본다. 한 전 대표의 북갑행을 강력히 권유한 것으로 알려진 조갑제 씨는 1979년 부마항쟁과 1985년 ‘신민당 바람’을 일으킨 부산에 대해 “부산 시민들은 대의명분으로 연고주의를 극복, 역사를 바꾸는 화끈한 행동력으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권력의 무도함이 임계점에 이를 때, 학연·지연 등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 부산 사람들의 기질에 기대를 건 셈이다.
하 전 수석도 그냥 ‘배지’만 생각했다면 2년 뒤 총선에서 비례대표 상위권은 너끈히 받아냈을 것이다. 그의 도전은 험지이긴 하지만 구덕고 출신으로 강력한 지역 연고를 주장할 수 있는 고향에서 ‘전국구’인 한 전 대표와 붙어 승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급격한 정치적 체급 상승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전 대표든 하 전 수석이든 ‘리스크 대비 리턴’에서 북구는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였던 셈이다.
북구의 이런 정치 지형은 소위 말하는 강경파 대신 중도 소구력이 좋은 후보에게 유리하다. 전 전 의원부터 그랬다. 그가 10년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정파적 어젠더에 깊이 개입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박 전 장관만 해도 검찰 선배 윤석열 전 대통령과 가까워지기 전만 해도 당파성이 옅은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 전 대표는 강성 지지층이나 당 주류에게는 배신자 취급을 받지만, 적어도 비상계엄과 ‘윤 어게인’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일반 국민의 상식에는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다. 하 전 수석 역시 보수 쪽과도 폭넓게 교류한 걸 보면 진영 색채가 강한 정치를 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전 전 의원과 부산시장 선거에서 맞붙은 박형준 시장도 자타가 공인하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부산 선거에 지역을 넘어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해보고 싶다. 얼마 전 미국의 벤 세스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숏폼 정치’에 매몰된 미국 의회를 향해 “거의 모든 정치인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내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확실히 옳고, 저들은 확실히 틀렸다는 파벌주의는 우리를 꽤 어리석게 만든다”고도 했다. 췌장암 말기로 곧 다가올 죽음 앞에 선 정치인의 마지막 고언이라는 점에서 큰 울림을 준다.
우리 정치에도 딱 들어맞는 비판이다. ‘우리는 무조건 옳다’는 극단적 진영 논리 속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감각마저 무뎌졌다. 민주당이 기어이 추진하는 ‘조작기소 특검법’은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오랜 법언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진보 법조인들조차 이번 사태가 우리 법치주의에 미칠 심대한 폐해를 걱정한다. 계엄에 사과하고 ‘윤’과 단절하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길을 거부한 채 퇴행을 일삼던 국민의힘은 최후 기반인 영남마저 붕괴될 지경임에도 정적 제거에 더 목을 매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선거만 이기면 이런 행태가 다 용인될 것 같은 지금의 분위기가 못내 절망적이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말하지 않는 정치 속에서 우리는 이미 많이 망가졌고, 어리석어졌다.
전국의 시선이 쏠린 ‘부산 대전’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그 이전과는 다른 정치적 리더로의 위상을 갖게 될 것이다. 부산에서 상식적인 정치의 회복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쉽지 않겠지만, 가냘픈 희망을 품어본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