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 칼럼] 반갑지 않은 설날 인사
을사년의 공식적인 설날 연휴가 끝났다. 이번 주말까지 이어서 연휴를 즐기는 국민도 있겠지만 이들도 연휴와 1월의 끝자락에서 새 2월을 준비하지 않을까 싶다. 이즈음은 설날 연휴와 입춘이 연달아 여느 때보다 한 해의 새로운 다짐을 하기에 좋은 시기다. 그러나 올해는 아쉽게도 12·3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로 이마저 심드렁한 느낌이다. 유례없이 어수선하고 부산하게 시작된 새해 분위기가 명절 기분도 착 가라앉게 했다. 온 나라가 들뜨고 왁자한 기운에 휩싸여야 할 설 연휴였지만 비상계엄의 그림자는 명절 가족들의 밥상에도 칙칙한 분위기로 찾아왔다. 예전에도 살얼음을 밟는 듯하던 가족 간 정치 이야기는 이번 설엔 특히 금물 중의 금물이었다. 모처럼 한 밥상에서 숟가락 달그락달그락하며 밥 한 끼 하는 자리가 부지불식간에 설도(舌刀)의 날을 세우는 언쟁의 자리로 돌변할 수 있는 탓이다.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사실상 정신적인 내전 상태로 들어섰다는 우리나라 정치가 가족 간 침묵을 강요한 셈이다. 가라앉은 분위기에 국민들의 입은 열릴 줄 몰랐으나 정작 나라 꼴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이 와중에도 설날 덕담이랍시고 또 국민의 속을 헤집는 말을 내놨다. 눈 밖에 난 사람의 말은 아무리 듣기 좋은 노랫소리라도 꼭 곡소리처럼 들린다는 속담처럼 국민들에겐 전혀 생뚱맞게 들렸을 것이다. 지난 24일 설 연휴를 앞두고 내란죄 우두머리 혐의로 수감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설날이 다가오니 국민 여러분 생각이 많이 난다”라며 “여러분 곁을 지키며 도와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고 죄송하다”라고 옥중 메시지로 설 인사를 남겼다. 체포영장 집행 과정에서 온갖 지질한 행태를 벌이다가 공수처에 가서는 또 조사에 불응하며 극우 여론전을 펼쳤던 윤 대통령의 명절 인사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여권 내부에서조차 대통령이 기대고 있는 강성 지지층을 향한 정치적인 메시지라는 해석을 내놓은 지경이니 그 진정성은 애초부터 들어설 자리가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설엔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라는 가요를 합창하며 “언제나 국민 곁에 함께하는 따뜻한 정부가 되겠다”라는 메시지를 동영상으로 올렸다. 올해는 탄핵까지 당한 처지여서 가식적이고 오글거리는 명절 인사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대뜸 “국민 여러분 생각이 많이 난다”라는 의도가 뻔한 메시지를 접하고 나니 언뜻 목덜미에서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국민은 지금 수감 중인 대통령으로부터 설날 인사를 받고 말고 할 그런 기분이 아니다. 대통령이 관련 법에 따라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조용히 기다리는 모습만 보고 싶을 뿐이다. 설날 인사라고 하지만 전혀 달갑지 않은 인사는 또 있다. 목 좋은 사거리나 행인들의 눈길을 끌기에 좋은 곳이라면 어김없이 걸려있는 정치인들의 현수막. 제멋대로 말하고 자신의 말만 강요하는 정치인들의 이런 인사를 국민은 받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괴롭게 여긴다. 주권자들은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데도 정치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꾸역꾸역 흉물의 현수막을 인사랍시고 강제로 들이민다. 상대편에 대한 비난까지 곁들여 보고 싶지 않다는 국민을 따라다니며 집적댄다. 스토킹 행위와 다름없다. 더구나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정치적 혼란이 민생마저 갉아먹고 있는 지금, 여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의 유체이탈 화법의 인사는 오히려 국민의 속만 긁어 놓는다. 윤 대통령부터 많은 여야 정치인이 거의 예외 없이 국민들에게 많이 받으라는 ‘설날 복 또는 행복’의 정체는 무엇일까. 정치 혐오를 조금이라도 유발하거나 암시한다는 혐의를 피하려 해도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 같은 물음은 정치 혐오나 무관심의 범주를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많은 국민은 최근 수년간 정치인들의 행위로부터 복이나 행복 비슷한 것조차 느낀 적이 거의 없다고 여길 것이니 말이다. 이도 저도 다 싫다는 국민이 한둘이 아님을 감안하면 정치인들이 언급하는 복과 행복은 국민에겐 오히려 정치 혐오와 무관심의 숨겨진 의미로 이해되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내년에도, 또 그다음 해 설날에도 보란 듯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면 진정성 없이 그냥 내던지는 겉치레의 인사는 오히려 정치 혐오나 무관심만 증폭시킬 뿐이다. 설령 처음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선 이런 혐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인이라면 곰곰이 생각해 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도 저도 모두 내키지 않는다면 차라리 조용한 침묵을 선택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2025-01-30 [18:13]
[곽명섭 칼럼] ‘한덕수의 몽니’ 대체 무엇을 노리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정국에서 조용한 대행자의 꼬리표를 떼고 직접 ‘선수’가 되기로 한 모양이다. 당초 기대와 달리 탄핵심판 절차의 중요한 길목마다 어깃장을 놓으면서 ‘여당의 트로이 목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대행은 결원인 헌법재판관 임명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숱한 견해에도 26일 결국 ‘임명 보류’를 밝혔다. 헌재는 물론 야당, 대법원 심지어 여당 대변인까지도 국회 추천 재판관을 임명해야 한다고 하는데도 고집불통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 벌써 2주가 지나고 있지만 헌재 재판관 임명부터 내란 혐의 관련 상설·일반 특검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진행되는 게 없다. 온 나라가 거의 결딴난 상황이 해를 넘길 시점인데도 탄핵 정국은 더 앞을 헤아리기 힘들다. 비상계엄에 놀란 가슴을 아직도 진정하지 못하는 국민은 지지부진한 뒷수습에 화병마저 날 지경이다. 최근 정국 흐름이 이렇게 꽉 막힌 것은 한 대행의 책임이 가장 크다. 평소 합리적인 성품으로 알려졌던 한 대행의 예상치 못한 변신 때문인데, 한 대행은 어떤 이유인지 중립적인 입장을 버리고 앞으로 완전히 윤 대통령을 비호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 같다. 국민들은 헌법상 형식적인 절차인데도 헌재 재판관 임명을 여야 이견을 내세워 회피한 밑바닥엔 어떤 저의가 있을지 모른다고 크게 의심한다. 따져 보면 전혀 근거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한 대행의 몽니는 누가 보더라도 분명한 하나의 목적이 보인다. 바로 윤 대통령의 탄핵 절차 지연이다. 결원 재판관을 충원해 탄핵심판이 절차적 정당성 속에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게 온 국민의 바람이지만 한 대행은 들끓는 비난에도 대놓고 이를 거부했다. 이를 두고 항간에 온갖 얘기가 떠돈다. 우선 한 대행이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과정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과 달리 매우 깊숙이 관련됐을 수 있다는 의심이다. 대통령으로부터 사전에 계엄을 통보받았거나 아니면 계엄에 관한 포괄적인 지시를 받았다는 말도 나온다. 심지어 다음 대권 주자로서 모종의 암시까지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처럼 중요한 시국의 갈림길에서 내란죄 피의자인 윤 대통령과 그에게 맹목적인 여권 친윤계에 바짝 붙으려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 대행과 관련된 온갖 미확인 얘기가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대행의 처신이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 국민의 정서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공직 생활에서 몸에 밴 신중함의 산물이라고 하기에는 한 대행의 처신이 너무나 정치적이고 기회주의적이다. 탄핵안 가결 이후엔 “현 상황의 조속한 수습과 안정된 국정 운영이 제 긴 공직 생활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했지만 이제 와서 보면 이는 윤 대통령의 “법적·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라는 새빨간 거짓말과 동격의 뻔뻔함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온다. 한 대행의 돌변은 현 정국을 안정시키기는커녕 혼란만 더 부추긴다. ‘늘공’의 끝판왕인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왔는데도 한 대행이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지는 알 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퇴행적인 돌변은 두고두고 역사와 국민의 냉혹한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당장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한 대행의 탄핵을 결의했다. 국정이 어디로 향할지 또 한차례 폭풍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뻔히 예고됐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를 부추긴 것 자체가 국민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내란 상설·일반 특검 역시 마찬가지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설 특검안과 관련해 특별검사 후보추천위원 중 정당추천 위원 4명의 명단을 대통령실로 벌써 발송했지만 10여 일이 넘게 뭉개고 있다. 12일 국회에서 의결된 내란 일반 특검법도 법 공포 대신 여야에 타협안 마련을 요청했다. 공포도 아니고 거부권 행사도 아니다. 지금 정국에서 여야 합의가 될 리가 없음을 누구나 알 수 있는데도 버젓이 여야 합의를 내세웠다. 한마디로 책임을 국회로 떠넘기면서 시간을 벌자는 의도가 아니고서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정치적이고 기회주의적이라는 심증은 이렇게 해서 국민들 마음에 더욱 굳어진다. 헌재 재판관 임명 보류와 상설·일반 특검 관련 절차의 의도적인 지연으로 한 대행의 속마음은 ‘조속하고 안정된 국정 수습’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야당은 한 대행에 대해 즉각 탄핵소추안 발의를 선언했다. 유례가 없는 권한대행 탄핵안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예단할 수 없지만 한 대행은 스스로 안정된 정국 수습의 걸림돌이자 짐이 되기를 자초한 꼴이 됐다. 한 대행은 끝내 55년 공직 생활의 마무리를 국민보다 ‘윤석열의 길’을 따르기로 작정한 것인가.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2024-12-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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