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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좋은 공동체가 넘치는 행복한 도시, 부산
“요즘 참 밝아 보인다.” 최근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아마도 매일 새벽 운동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진정으로 환하게 하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다. 함께 어울려 땀을 닦고, 웃음을 나누며 서로의 등을 토닥이는 사람들의 온기, 바로 공동체의 따뜻한 힘 덕분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공동체가 낯설고 어려웠던 사람이다. 40년이 넘는 긴 직장 생활 동안 나는 15번 넘게 이사를 다녔고, 그때마다 지역의 테니스장을 찾았다. 하지만 낯선 곳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기존 회원들의 텃세 문화 속에서 나는 늘 외톨이였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경기에 끼워주지 않거나, 소외감에 결국 포기하고 돌아선 적도 많았다. 나는 늘 공동체의 주변을 맴도는 영원한 초보 신세였다.
그러던 중, 지금 살고 있는 부산에서 내게 뜻밖의 선물이 찾아왔다. 바로 외진 반송마을의 시니어 테니스클럽이다. 60대부터 80대까지, 삶의 무게를 묵묵히 이겨낸 30여 명의 노년층들이 주축을 이룬 모임이다. 처음 내가 그곳을 찾았을 때, ‘우리 후배가 왔다’며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반갑게 끌어안아 주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경쟁 대신 환대가, 텃세 대신 따뜻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 따뜻한 포옹 덕분에 나는 1년 만에 이 공동체의 중심에 굳건히 뿌리내리며 초보를 면할 수 있었다.
이 모임은 단순한 운동 클럽을 넘어섰다. 이 공동체의 회장은 공을 치는 일보다 코트 주변을 쓸고, 낙엽을 치우는 일에 더 열심이다. 총무는 회원들의 경조사를 내 일처럼 챙기고, 테니스를 잘 치는 경기이사는 나 같은 초보자에게 무료로 레슨을 해준다. 서로 가져온 간식을 나누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서로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리며 격려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경쟁과 효율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섬김과 배려, 책임과 나눔이라는 소중한 가치들이 살아 숨 쉬는 풍경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정(情) 문화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꽃피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진짜 맛을 배운다. 이웃을 보듬고, 함께 웃으며, 나이와 직업, 사회적 배경을 넘어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원천이라는 것을 매일매일 확인한다. 은퇴 후 굳이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이 따뜻한 부산 공동체와 함께 인생의 다음 장을 열어가고 싶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만약 이처럼 따뜻하고 끈끈한 공동체가 우리 사회의 골목마다, 마을마다, 학교와 직장 속에 널리 퍼진다면,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얼마나 달라질까. 나는 행복은 결코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고 믿는다. 수많은 제도와 정책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결국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에서 시작된다. 서로에게 먼저 미소 짓고 인사하고, 서로의 안부를 챙기며, 작은 것을 나누는 일상의 작은 실천들이 모여 견고한 공동체를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 부산이 진정으로 아름답고 강한 도시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거창한 구호나 웅장한 계획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책임을 다하고, 자신의 욕심을 조금 비우며, 이웃에게 친절과 따뜻함을 건네는 시민들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오랜 세월 지탱해 온 전통적인 예절과 훈훈한 정(情)을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만약 이러한 공동체가 우리 사회 곳곳에 살아 숨 쉰다면, ‘노인과 바다’라는 부산에서 우리는 더 이상 외로움에 몸서리치지 않을 것이다. 이웃의 존재는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가 될 것이다. 서로의 어깨를 기대며 함께하는 행복은 넘치고, 모든 사람이 살고 싶은 곳으로 변모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세계가 주목하는 경쟁력 있는 행복 도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굳게 믿는다. 행복한 도시는 결코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곁의 이웃에게 먼저 건네는 작은 친절, 그리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따뜻한 공동체에서 시작되는, 우리 모두가 만들고 함께 누릴 수 있는 현실이다.
2026-02-1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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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시의 선제적 구강 돌봄 정책을 기대하며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 ‘1인 가구’가 드디어 사상 최대인 800만 가구를 넘어섰다. 그 중 혼자 사는 70세 이상 고령층 인구가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령화가 여느 대도시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부산의 경우는 지역 전체 1인 가구 55만 중 43.4%가 60세 이상이고, 1인 가구 4명 중 1명이 70세 이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3월 27일, 대한민국 복지 지형을 바꿀 ‘돌봄통합지원법’이 전면 시행된다. 이 법안의 핵심은 노쇠, 장애, 질병, 사고 등으로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존엄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의료와 돌봄을 통합 지원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그 지원 체계 안에 ‘구강 관리’가 명시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도시 중 하나인 부산광역시가 이에 발맞춰 구강 돌봄에 관심을 가지고 예산을 편성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왜 국가와 지자체가 어르신과 장애인의 ‘입안’을 들여다봐야 하는가? 그것은 구강건강이 생명과 삶의 질을 지탱하는 기초 건강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잘 씹지 못하면 영양 섭취가 어려워지고, 이는 곧 만성질환, 심혈관질환, 폐렴 등 여러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즉, 구강건강은 노인의 생명과 삶의 질을 지탱하는 기초 건강의 토대이다.
필자가 최근 수행한 방문 돌봄 현장에 구강건강 관리의 필요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부러진 치아를 가정용 접착제로 직접 틀니에 붙여 사용하고 있었다. 치과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위험천만한 자가 치료를 감행한 것이다. 또 다른 어르신은 세균 번식과 잇몸 염증의 위험을 모른 채 틀니를 끼고 잠자리에 들거나, 마모제가 든 치약으로 틀니를 열심히 닦아 틀니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이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치료가 아니었다. 전문가가 직접 찾아가 잇몸 출혈을 관리해 주고, 올바른 틀니 세척법을 알려주며, 입 마름을 완화하는 구강 마사지와 입체조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어르신들의 만족도는 대단히 높았고, 그만큼 효과도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2차, 3차 방문이 거듭될수록 어르신들의 입안은 휠씬 건강해졌고, “이제 음식을 씹는 게 즐겁다”며 미소를 되찾았다. 이것이 바로 부산시가 구강 돌봄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이다.
이러한 정책이 현장에서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준비된 인력’이 필요하다. 부산시가 구강 돌봄을 적극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인 ‘라이즈(RISE) 사업’을 통해 경남정보대학교의 치의학산업연구소가 방문구강건강관리교육 전문인력을 지속적으로 양성해 왔기 때문이다.
치과위생사로 이루어진 수강생들은 교육과정을 통해 다학제적 통합 돌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구강 돌봄 전문가’로 거듭났다. 이들이 동래구와 사상구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검증한 돌봄 모델은 부산형 구강 돌봄 체계의 든든한 초석이 되었다.
부산시가 구강 돌봄에 예산을 편성하고, 대상자들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한 복지 지출이 아니다. 구강건강을 회복하고 영양 섭취가 개선되면, 전신 질환에 따른 사회적 의료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보와 이동의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에게 ‘국가가 입속 건강까지 챙겨준다’는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한다면, 구강건강관리를 포함한 올해 시작되는 돌봄통합지원 정책은 반드시 큰 실효를 거둘 것이다.
아무쪼록 지자체의 정책적 의지와 대학의 전문 인력 양성, 그리고 현장의 요구가 맞물린 ‘부산형 구강 돌봄’ 모델이 전국적인 표준이 되기를 기대한다.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 보건 전문 인력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부산형 통합 구강돌봄 체계’가 서서히 확립해 가야 할 것이다. 어르신들의 튼튼한 치아와 건강한 잇몸은 곧 부산의 활력이자 돌봄 도시 부산의 진정한 품격이 될 것이다.
2026-02-1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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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부산의 물 문제 해결될까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세계적 항만도시다. 수많은 사람과 산업이 모여 활력을 만들어내지만, 이 도시의 가장 근본적인 생존기반인 물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낙동강 하류의 수질문제는 수십 년 동안 부산 시민들의 삶의 질을 제약해왔고,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였다. 2021년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가 본류 수질개선과 취수원 다변화를 결정했을 때, 시민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희망을 보았다. 이어 2022년 예비타당성조사 통과 소식은 그 희망을 더욱 굳건히 했다. 그러나 기대와 현실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었다.
취수원 설치 예정 지역주민들은 지하수위 저하로 인한 농작물 피해와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으로 인한 생활제한을 우려하며 강하게 반대했다. 도시의 생명줄인 물은 농민들에게는 곧 생존의 문제였고, 그들의 불안은 결코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정부는 이에 대응해 지하수위 저하예방대책, 주민피해보상, 지역농산물 직접구매와 지원 등 상생협약을 추진했다. 이는 단순히 물을 가져오는 사업이 아니라, 물을 매개로 지역 간 신뢰와 협력을 쌓아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2026년 정부예산안에서 낙동강유역 안전한 먹는 물 공급사업 예산이 제외되었다는 소식은 시민들의 기대를 다시 흔들었다. 그러나 부산시장의 요청으로 국회 예결위에서 설계비 반영이 검토되고 있지만, 시민들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다. 부산 시민들은 다시 한 번 기대를 걸고 있다. 내년에는 원만한 지역갈등해결과 아낌없는 지원이 이어져 더 이상 “언제쯤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물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직결된 권리다.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사업은 단순한 기술적 과제가 아니라 지역 간 신뢰와 공동체적 연대의 시험대다. 이와 함께 부산은 해수담수화를 통한 자급자족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 이미 2017년 부산시는 해수담수화 30만 t과 기수담수화 10만 t 규모를 검토한 바 있다. 이는 단순한 구상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부산이 식수를 자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을 보여준다.
현재 국내에는 안산, 서산, 포항, 광양 등 78곳에서 해수담수화시설이 운영되고 있으며, 완도군은 선박형 담수화 플랜트를 통해 도서주민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제주도 역시 추자도, 가파도, 마라도 등지에서 담수를 공급한다. 부산 역시 원전 영향이 없는 가덕도와 영도 등지에서 대규모 담수화시설을 구축해 기술을 축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산광역시물산업협회는 강서구 공업용수정수장 유휴부지에 물융합 산업클러스터를 조성해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이 함께 담수화 플랜트를 구축하고 연구개발을 추진하는 구상을 내놓았다. 이는 단순히 물 문제해결을 넘어 기업유치와 고용증대, 나아가 글로벌 수출 산업으로 확장될 수 있는 비전이다.
부산에 물융합 산업클러스터가 구축된다면 젊은 인재들이 모여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며, 동시에 물 부족 국가에 해수담수화 설비를 지원하는 국제적 연대의 장이 될 수 있다. 부산의 물 문제해결은 곧 대한민국 물 관리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와 해수담수화라는 두 축은 단순히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물 관리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지역주민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맑고 깨끗한 물을 마시는 그날, 부산 시민들의 환호는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공존의 승리’가 될 것이다.
2026-02-0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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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식재산처 부산지방청’ 설치, 더 이상 미뤄선 안 돼
생명의 온기는 심장에서 시작된 피의 순환이 말초까지 흐르기 때문이다. 경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혈류의 순환이 멈추면 역동 쳐야 할 경제의 대동맥도 결국은 막힐 수밖에 없다. 산업과 경제를 움직이는 혈류는 혁신이다. 혁신이 흐르지 않는 기업과 경제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약속받기 어렵고 그 혁신은 기업이 보유한 지식재산에 의해 결정된다.
지식재산을 취득하고 보호하는 것이 오늘날 기업의 또 다른 경쟁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지식재산에 대한 심사와 행정 지원을 하는 기관이 특허청이며, 지난해 새 정부 들어 지식재산처로 승격되었다. 그 중요성을 인정받은 결과지만 안타깝게도 지식재산처는 지방에 별도 조직을 두고 있지 않다. 현재 지식재산처는 대전에 있고 서울에만 사무소를 두고 있다. 혁신의 혈류를 만들고 펌핑시킬 심장이 지방에는 없는 것이다. 2024년 국내 특허 출원의 약 65%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현실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수도권 기업의 높은 생산성과 부가가치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부산에 지식재산처 지방청이 필요한 이유는 대전의 사례에서도 분명하다. 1998년 정부의 중앙행정기관 지방 이전 정책에 따라 서울에 있던 특허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대전은 현재 인구 1만 명당 특허 출원 건수 전국 1위를 기록하며‘지식재산(IP)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심사관, 변리사, 법률·기술 서비스가 집적되면서 자생적 특허 생태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혁신의 혈류를 돌릴 심장을 옮겨온 결과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온기가 지방까지 내려오지 않고 있다. 부산·경남의 특허 출원 건수를 보더라도 서울․경기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당연히 다른 지방은 비교조차도 필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성장에 소외된 지방의 구조적 취약성만으로는 그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부산을 포함한 동남권만 하더라도 수도권에 필적할 만한 규모를 갖추고 있고, 해양·물류·조선·기계·에너지·신산업이 집적된 국가 핵심 산업 클러스터이기도 하다. 또한 부산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항만과 물류 인프라, 탄탄한 제조 기반을 갖추고 있다. 현장에 내재된 암묵적 지식재산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지방의 지식재산 출원이 수도권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것은 현장에 있는 유무형의 기업 자산을 끌어내지 못하는 인프라와 시스템 부재 때문이다. 수도권에는 지식재산에 대한 다양한 심사·지원 기능이 집중돼 있는 반면,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 기업들은 특허심사를 받기 위해 지금도 대전으로 직접 이동해야 한다. 기술 설명, 보정 협의, 대면 심사 대응을 위해 기업과 변리사가 반복적으로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은 부담이다. 속도와 타이밍이 생명인 지식재산권을 고려하면 응급 환자에게 먼 병원 찾아가라는 격이다.
이것은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과 비용의 문제며, 이는 기업의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과 기술기반 스타트업에게 이러한 물리적 거리와 행정장벽은 기술보호의 속도를 늦추고, 시장 선점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되기도 한다. 혁신은 속도고 타이밍인데, 동남권 기업들은 출발선부터 불리한 조건에 서 있는 셈이다. 단 한 명의 특허심사관도 없는 지역에서 현장의 기술 본질을 이해하고, 산업 현장의 흐름을 읽으며, 기업과 발명가의 언어를 정확하게 해석해 낸다는 것은 어렵다.
지식재산에 대한 지역의 한계는 여기서 비롯된다. 조선, 해양, 기계, 물류자동화, 수소·에너지 등 부산의 주력산업은 현장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서만 가지고 파악하기 어려운 공정과 구조, 산업적 맥락이 존재한다. 심사관이 지역에 상주하며 기업과 수시로 소통할 수 있을 때, 심사의 정확성과 효율성은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것은 개별 기업과 어느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며 동남권을 포함한 지방 경제 전체의 구조적 손실이다.
부산상공회의소가 1993년부터 줄곧 ‘부산지방특허청’ 설치를 정부에 요구해 온 것도 부산 경제와 기업의 혁신을 도모하고 지방 경제의 대동맥에 혈류의 온기를 불어 넣기 위함이었다. 최근 정부는 ‘5극3특’을 중심으로 한 국가균형발전 전략에 힘을 싣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의 핵심동력은 언제나 경제와 산업, 기업에 있다. 그리고 기업과 산업, 경제는 혁신이 그 생명의 원천이자, 혈류다. 그 혈류가 힘차게 흐르게 하는 심장을 부산에 설치하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허심사관과 변리사, 기술 전문가가 지역에 정착하고, 기업 현장의 지식을 특허 출원하고 분쟁 대응까지 전 주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추기 위한 ‘지식재산처 부산지방청’ 설치에 다시 한 번 지역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다.
2026-02-0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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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학 지식·기술 담을 그릇 ‘동남권 지식재산청’ 설립을
부산의 명산 금정산 자락에 자리 잡은 부산대학교 교정에 이른 봄을 알리는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어제가 벌써 입춘(立春)이었다. 보름 뒤면 학사모를 쓴 제자들이 졸업식을 마치고 가슴 설레는 사회진출을 하게 된다.
그러나 매년 이맘때 졸업식 단상에서 학위 수여를 하는 총장으로서 제자들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졸업식이 끝나면 이 빛나는 청춘, 우수 인재들은 고향을 버리고 썰물처럼 부산을 빠져나가 서울과 수도권으로 떠나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말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지역에 활기가 돌고 관련 업계가 활성화되는 정책적 파급효과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지역이 살아나려면 사람과 기업을 붙잡아둘 강력한 ‘앵커(Anchor) 기관’이 부산에 더 많이 들어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남 나주 혁신도시가 한국전력이라는 구심점을 통해 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했듯이,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가장 중요한 핵심 축인 동남권에 ‘앵커’ 역할을 해줄 더 많은 공기관이 들어서는 것은 정책적 성공을 위한 전략적 중요성을 갖는다.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의 입장에선 AI 시대를 맞아 대학이 생산하는 지식과 기술, 즉 ‘지식재산(IP)’을 더욱 활성화하고 뒷받침할 공기관의 지역 확대 설치가 무엇보다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동남권 산업의 중심인 부산에 ‘동남권 지식재산청’ 형태의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다. 마침 대통령께서도 특허청을 지식재산처로 승격시키면서 더욱 활발한 지식과 기술 거래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은 대학 연구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연구의 시대는 이제 지식재산의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과거 연구 경쟁력이 논문의 수와 연구비 규모로 평가되던 시대가 지나고, 오늘날 대학의 연구 성과는 얼마나 신속하고 정교하게 지식재산으로 전환되고 또 산업과 사회로 확산되는가에 의해 평가된다.
AI 기술은 알고리즘, 데이터, 소프트웨어, 하드웨어가 결합된 복합 기술이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논문 발표만으로는 보호될 수 없으며, 초기 단계에서부터 특허 전략과 권리 설계가 병행되지 않으면 기술의 가치가 급격히 저하된다. 그런데, 아무리 뛰어난 지식과 기술도 ‘권리’라는 단단한 갑옷을 입지 못한다면 냉혹한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대학 연구실의 혁신 기술은 ‘지식재산권’이라는 법적 권리로 확정되어야 비로소 자산이 된다. 이것이 지역 기업으로 이전되어 사업화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지역산업 생태계가 자생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려면 지식재산 행정의 지역 밀착이 요구된다. 심사관이 현장의 기계음 속에서 엔지니어와 머리를 맞대고 시제품을 확인해야 기술의 진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현장과 괴리된 지식재산 행정은 가치로운 대학의 기술 개발 속도를 둔하게 하고, 치열한 속도 경쟁을 벌여야 살아날 수 있는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을 통한 혁신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한다. 하지만 그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는 지식재산 관련 행정력은 현재 대전에만 머물고 있어 지역으로선 ‘너무 먼 당신’이다.
만약 부산에 동남권 지식재산청이 설립될 수 있다면 가져올 변화는 명확하다. 우선, 지역 이공계 석‧박사들에게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앵커 직업’이 생기게 된다. 애써 키운 우수 인재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국가 기술 주권을 지키는 핵심 인재로 지역에 정착하게 되고, 그러면 지역의 연구개발(R&D) 역량이 자연스럽게 두터워지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기업의 기술 사업화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질 수 있다. 지식재산 전문가인 심사관들이 가까운 지역 기업 옆에 상주하며 기술 개발 단계부터 밀착 컨설팅을 제공할 수 있게 되고, 지역 스타트업은 강력한 특허 포트폴리오로 무장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된다. 기업의 성장은 다시 좋은 양질의 일자리로 이어져 혁신의 선순환과 지역발전, 국가균형발전의 완성을 앞당길 수 있게 된다.
지식재산 정책과 심사, 지원 등 행정 기능이 연구와 산업 현장 가까이에 결합된다면, 대학은 연구 초기 단계부터 보다 전략적인 특허 설계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비단 부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남권 전체 대학과 지역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국가적 선택이 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부산대가 국내외에 출원한 특허는 누적 약 4,500건에 달하고, 이 가운데 등록에 성공한 ‘강한 특허’의 비중이 절반에 이른다. 특히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해외 특허출원은 10년 전 대비 2.5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성과가 있는 곳에 행정이 있어야 한다. 검증된 대학의 연구·특허 역량 위에 국가 지식재산 행정이 결합될 때, 그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2026-02-0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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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겨울철 혈액 보릿고개를 넘으며
매서운 바닷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본격적인 겨울이 부산에 당도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네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지만, 부산혈액원 제재공급팀의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해진다. 기온이 떨어지면 시민들의 외부 활동이 줄어들고, 각급 학교의 방학으로 단체 헌혈이 급감하면서 혈액 보유량이 급격히 떨어지는 ‘동절기 혈액 보릿고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혈액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으며, 대체할 물질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건강한 사람의 자발적인 헌혈만이 수혈이 필요한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겨울철은 헌혈자에게도, 수혈을 기다리는 환자에게도 가장 가혹한 계절이다.
혈액원 제재공급팀장으로서 매일 아침 출근과 동시에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그날의 혈액 보유 현황판이다. 적정 혈액 보유량인 5일분이 넉넉하게 채워져 있을 때의 안도감은 잠시뿐, 겨울철에는 ‘주의’단계인 3일분 미만으로 떨어지는 날들이 잦아진다. 숫자로 표시되는 그 데이터 뒤에는 당장 수술을 받지 못해 애태우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절박한 눈물이 숨어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붉은색 경고등이 켜질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겨울철 혈액 부족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앞서 언급한 방학이라는 계절적 요인 외에도 독감과 같은 호흡기 질환의 유행은 헌혈 적격자를 감소시킨다. 게다가 최근 가속화되는 저출산 고령화 현상은 혈액 수급의 구조적인 어려움을 심화시키고 있다. 헌혈 가능 인구인 청년층은 줄어드는 반면, 수혈이 주로 필요한 고령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일시적인 부족 현상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장기적인 과제임을 시사한다.
현장에서 병원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지금 당장 수술에 들어가야 하는데 혈액이 부족합니다.” 응급환자, 백혈병 환자, 출산 중 과다출혈 산모 등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서 혈액을 제때 공급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실무자로서 겪는 가장 큰 고통이다. 부산 지역 내 수많은 병원에서 하루에도 수백 명의 환자가 누군가의 따뜻한 나눔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공급하는 붉은 혈액 팩 하나하나가 곧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며, 사랑하는 자녀의 생명줄이다.
하지만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위기 때마다 빛나는 시민의식을 발휘해 온 저력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감염의 공포 속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헌혈의 집을 찾아주셨던 부산 시민들의 행렬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 뜨거운 연대와 나눔의 정신이 이 유난히 추운 겨울, 다시 한번 발휘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헌혈은 건강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가장 고귀한 생명 나눔의 실천이다. 헌혈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20~30분 남짓이다. 잠깐의 따끔함이 지나면, 나의 혈액이 누군가의 혈관을 타고 흐르며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되살린다는 벅찬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헌혈 과정에서 진행되는 기본적인 혈액 검사를 통해 자신의 건강을 확인해 볼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의 기쁨이라 할 수 있다.
시민 여러분, 그리고 부산 지역의 기업 및 단체 관계자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드린다. 이번 겨울, 가까운 ‘헌혈의 집’이나 ‘헌혈 버스’를 찾아 팔을 걷어붙여 주시길 바란다. 특히 방학을 맞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허리인 중장년층의 적극적인 헌혈 참여가 절실하다. 직장 동료와 함께, 혹은 가족의 손을 잡고 헌혈에 동참하는 모습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그 어떤 교과서보다 훌륭한 생명 존중의 교육이 될 것이다.
연말연시,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며 마음을 전한다. 올겨울에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 ‘생명’을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여러분이 나누어 준 혈액은 차가운 수술실을 덥히고, 병상의 환자에게 다시 봄을 꿈꾸게 하는 희망의 씨앗이 될 것이다.
부산의 겨울 바람이 아무리 차갑다 해도, 우리가 나누는 생명의 온기보다는 강할 수 없다. 여러분의 따뜻한 헌혈 참여가 꽁꽁 얼어붙은 혈액 수급의 위기를 녹이고, 더불어 사는 우리 부산을 더욱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 것이라 확신한다. 오늘, 당신의 팔을 걷어 생명을 잇는 기적에 동참해 주시기를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
2026-02-0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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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시 불붙는 행정통합 논의에 부쳐
1990년대 들어 유럽은 '리스본프로젝트'라는 새로운 경제도약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자기들이 한 수 아래로 취급하던 미국이 유럽 전체의 GDP를 넘어서자 위기 의식을 느꼈고 이를 다시 되돌리고자 뭉치기 시작했다. 그게 지금 EU의 탄생 배경이 되었다.
한국판 리스본 프로젝트 역시 수도권 인구 50%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심심치 않게 과거의 행정구역을 복원해서 통합하자는 논의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가 부울경 메가시티를 주창한 이유도 비슷했다. 그 사이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수도권 인구는 50%를 넘겨버렸다. 그럼에도 유럽은 EU라는 연합체를 탄생시켰지만 한국은 아직 지방정부연합의 의미를 가진 각 지역별 통합의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이재명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다시 이 통합에 불이 붙고 있다. 충남 대전을 시작으로 전남 광주가 통합의 물꼬를 터트렸다. 한 때 가장 잘 나갈 것처럼 보였다가 시들었던 경북과 대구의 통합도 다시 꿈틀거린다. 이 흐름에 기름을 부은 것은 파격적인 중앙정부의 지원책이다. 전남 광주의 경우 4년간 20조 원의 지원금을 약속했다. 장기적으로야 당연히 자주적 지방재정과 국세 조정이 필요하지만 감나무 밑에 누워서 지역의 미래를 걱정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부울경 통합을 약속했던 부산과 경남의 도백들의 약속은 오리무중이다. 오죽하면 '큰 것은 능력이 없어서 못하고 작은 것은 안해서 못한다'는 비아냥까지 들린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돌이키니 부울경이 합의한 메가시티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버린 그 시간이 더욱 야속하다. 그 약속을 지금까지 작동시켰다면 우리나라 첫 번째 통합은 충남 대전이 아니라 부울경이었을 것이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86%의 압도적 주민이 찬성하던 거였다.
큰 것은 효율적이고 작은 것은 민주적이다. 크게 보면 민주성이, 작게 보면 효율성이 문제였다.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지금 이 효율화의 추세를 어떤 동력으로 추진하는가에 달려있다. 이재명 정부는 통합을 통한 효율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주민자치 실질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향해 가고 있다. 방향은 옳고 추구하는 가치도 민주당과 부합된다. 그러니 현장에서 이 두 가지를 얼마나 잘 융합하느냐가 관건이다.
반가운 소식은 울산 역시도 통합에 찬성하면서 현재의 분위기에 올라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제야 말로 부울경의 힘을 하나로 모을 조건이 마련되었다.
굳이 제안하나를 하자면, 통합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신중하고 속도감 있게 논의하면서 동시에 시민사회가 지역자치 실질화를 어떻게 만들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강구했으면 싶다. 이를 위해서 부울경 모두가 시민사회의 등판을 요구하고 그에 필요한 적극적인 행정지원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 예산은 수치로 표현된 정책이다. 실질적인 지원이 아니면 하지 말라는 말이니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처럼 주민자치회를 백안시하는 자세로 통합에 다가서면 덩치만 큰 속빈 강정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울경 통합은 지역연합을 바탕으로 상생정책을 통해 대한민국 제2의 경제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를 바탕으로 한다. 말은 쉽지만 과정은 복잡하고 이견은 난무할 것이다. 그러니 통합의 대원칙과 방향을 먼저 천명하고 그 대의에 참여하는 모든 세력이 함께 테이블 위에서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 세력의 한 축에는 선진국형 숙의 구조처럼 시민사회가 같이 가야 한다. 정치가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가지 않으면 이견은 확대되고 찬반은 혼란으로 갈 것이다.
이제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금의 분위기가 뜨겁다고 부울경의 통합이 완성된 것도 아니고 메가시티를 무산시키고 통합을 하겠다더니 아무 일도 안하던 상황에서 '다시 해보자'로 '후진'을 한 셈이다. 앞으로 가도 모자랄 판에 후진까지 하기로 했으니 이제 지나간 시간의 애석함을 잊고 지금 대세가 되어 있는 행정통합의 길을 모두의 지혜로 만들어 내야 한다. 지금의 이 흐름에서 뒤쳐지면 지역 소멸의 위기는 우리앞에 바로 다가올 것이다. 그것이 오늘 부울경 모두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자세다.
2026-01-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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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초고령 부산, 창의적 노화가 미래를 바꾼다
“창의적 노화라니,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이 안 된 사람한테는 사치지요.” 최근 세계노인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던 날, 일본의 한 노인복지학 교수가 내게 던진 말이다. 필자가 발표한 주제는 중장년·노년기의 창의적 활동이 생애 후반기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일본의 교수는 기초연금·의료·돌봄이 우선이라는 현실적 이유를 들었다. 그 말은 이해되지만, 일본처럼 초고령화가 심화된 사회에서조차 창의적 노화를 ‘사치’로만 보는 시각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사회일수록 창의적 노화가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창의적 노화가 사치처럼 보일 수 있는 현실은 분명 존재한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OECD 최고 수준이며, 기초연금만으로 기본생활 유지가 어려운 노인도 많다. 돌봄 공백, 만성질환, 고립·우울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적지 않다. 복지 현장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후순위로 밀리는 구조 역시 현실의 무게를 반영한다. 이런 상황에서 ‘창의적 노화는 사치’라는 지적은 어느 정도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우리 사회는 저출산과 유아교육의 위기를 말할 때 ‘유아기 창의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노년기의 창의성은 논의하지 않는다. 창의성은 특정 연령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필요한 인간의 기본 역량이다. 창의적 활동은 정서적 활력, 몰입 경험, 삶의 만족도를 높이며, 특히 신체·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노년기에는 우울·무기력·사회적 위축을 완화하는 보호요인으로 작용한다. 어떤 일에 창의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창의성은 설렘이고, 몰입이며, 삶을 다시 앞으로 밀어주는 동력이다. 이 불씨가 사라지면 일상의 힘도 잦아든다. 그래서 창의성은 노년기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역동력이 된다.
이 관점에서 창의적 노화는 선택적 여가가 아니라 복지의 확장이다. 영국 예술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예술 활동에 꾸준히 참여한 고령자는 의료 서비스 이용률이 37% 낮았고, 우울·치매 위험도 감소했다. 창의적 활동은 개인의 취미를 넘어 건강·돌봄 비용을 줄이는 사회적 자원이다.
유로스타트(유럽연합 통계청)의 분석에 의하면 덴마크·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의 65~74세 노인 중 80% 이상이 최근 1년간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한다. 이는 생활안정 기반 위에 저비용 문화·학습 프로그램을 결합해 노년층을 지역축제·공공 프로젝트의 주체로 이끈 결과다. OECD 역시 문화 활동이 삶의 만족도·정신건강·인지 기능과 유의미하게 연결된다고 보고한다.
반면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2023년 통계청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문화·여가 활동 참여율은 35.5%, 예술·창작 활동 참여율은 12%에 그친다. 부산은 고령 인구 비율이 이미 22%를 넘는 초고령사회임에도 문화예술 활동 참여율은 전국보다 낮은 20%대 후반이다. 비용, 접근성, 프로그램 부족은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장애요인이다. 특히 원도심·산복도로 지역의 고립 위험군 증가 추세는 문화 접근성이 곧 지역 복지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삶의 후반기에 새로운 전성기를 연 사례는 창의적 노화가 공허한 이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미국의 그랜마 모지스는 평생 농장을 돌보며 살다가 78세에 처음 붓을 들었고, 그 늦은 출발은 1500점 이상의 작품으로 이어졌다. 프랑스의 마티스는 말년에 거동이 어렵던 시기에도 가위와 종이로 ‘컷아웃’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완성했다. 영국의 메리 델라니는 70대에 종이 모자이크 작업을 시작해 1000점이 넘는 식물화를 남겼다. 한국의 박서보 화백 역시 생애 후반기까지 작업을 멈추지 않으며 노년기의 창작 역량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들의 경험은 창의성이 젊음의 전유물이 아니라, 오히려 삶이 깊어질수록 다른 방식으로 발현될 수 있는 역량임을 증명한다.
노화는 쇠퇴의 시간이 아니라 숙성의 시간이다. 젊음이 속도와 가능성의 시기라면, 노년은 깊이와 의미를 발견하는 시기다. 그 깊이를 창작의 힘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 초고령사회 부산이 선택해야 할 미래전략이다. 창의적 노화는 사치가 아니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수 자원이다.
2026-01-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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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 체육, 시민과 함께 2026 새로운 도약
2025년, 부산 체육계는 그간의 노력과 열의를 성과로 증명했다. 25년 만에 부산에서 열린 제106회 전국체육대회에서 52년 만에 종합 2위를 달성했고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는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아울러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는 18년 연속 상위권에 자리하는 등 값진 결과를 얻었다. 이는 부산의 체육계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노력한 결과였다.
기록의 이면에는 선수와 지도자, 종목단체와 구·군체육회, 그리고 생활체육을 즐기며 저변을 든든히 받쳐준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가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시작된 응원과 지지의 땀방울, 지역 실업팀에서 불을 당긴 도전, 생활체육 현장의 활력이 쌓여 부산 체육계는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 특히 2025년은 부산의 체육 열기가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 전체로 확장된 해였다.
아울러 2025년의 성과는 체육행정과 체육 현장의 유기적 협업이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다. 부산시는 전국 최초로 체육국을 신설하여 체육정책을 전문화하고 그 위상을 높였다. 이를 바탕으로 보다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현장 지원이 이어질 수 있었다. 현장 관계자는 체육국이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임에도 선수와 관계자들이 그 실효성을 체감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체육정책과·생활체육과·전국체전기획단 등 3개 과와 체육시설관리사업소로 이루어진 체육국은 부산시 체육 전반의 발전 방향과 정책을 기획하고 총괄하고 있다. 또한 시민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생활체육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고 전국체전 유치 및 개최에 대한 업무를 전담하여 보다 수준 높은 대회 진행을 가능하게 했다. 스포츠를 매개로 시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행정의 뒷받침 위에 전문체육-학교체육-생활체육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성과로 이어졌다는 점은 부산 체육뿐만 아니라 전국의 체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체육국 신설’이라는 과감한 판단이 실효성을 입증하고 있는 가운데 부산시체육회는 2026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투명경영·공정운영 △회원단체 역량 강화 △실업팀 운영 고도화 △학교체육 경기력 기반 다짐 △전국대회 경쟁력 강화 △생활체육 일상화 △생활-학교-전문 선순환 기반 강화 △부산체육 브랜드파워 향상 등의 비전을 마련했다. 이에 더해 부산에서 열리는 전국소년체육대회에 힘을 실을 예정이다. 소년체전은 단순한 대회가 아니라 미래 한국을 이끌어 갈 체육 꿈나무들의 기량을 확인하고 그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주는 중요한 무대다.
부산시체육회는 대회의 안정적인 개최는 물론, 이를 계기로 학교체육의 저변을 넓히고 학생 선수들이 도전하고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소년체전의 성패가 학교체육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학교에서 시작된 스포츠 경험이 지역스포츠클럽과 생활체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하고, 학교와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이는 경기력 향상뿐 아니라, 체육을 향유하는 청소년들이 스포츠를 통해 건강한 일상과 공동체 가치를 학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모든 비전을 통해 2026년 부산시체육회는 시민과 더욱 가까이 소통하고자 한다. 생활체육과 지역 프로그램을 통해 더 많은 시민들이 일상에서 운동을 누리고, 스포츠가 특정한 공간이 아닌 도시 전역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할 것이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체육을 통해 모두를 위한 스포츠, 촘촘한 스포츠 복지로 행복도시를 실현하고 행복한 ‘체육천국 도시’ 조성에 앞장서고자 한다.
2025년의 성과는 부산 체육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2026년, 부산시체육회는 전국소년체육대회와 학교체육, 지역 체육의 발전을 통해 그 성과를 미래로 확장하고자 한다. 스포츠가 성장의 기회가 되고, 시민의 일상이 되는 부산. 그 도약의 길을 시민 여러분과 함께 힘차게 걸어갈 것이다.
2026-01-1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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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일본 영화 ‘국보’를 보셨나요?
최근 일본 영화 ‘국보’가 국내에서 개봉되었다. 일본에서는 “국보를 보았습니까”라는 말이 인사말처럼 오갈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지난해 6월 개봉 이후 6개월 만에 1200만 관객을 돌파한 일본 실사영화 최고의 흥행작이라는 점, 그리고 감독 또한 재일교포 3세인 이상일이라는 사실이 호기심을 자극해 지난해 연말 오랜만에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며칠이 지나도록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영화 ‘국보’는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약 반세기에 걸친 일본 현대사를 관통하며, 가부키 배우 한 인간이 온갖 난관을 넘어 ‘국보’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장대한 휴먼 드라마다. 영화 속 주인공 기쿠오의 삶과 선택은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나 자신의 인생이 투영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생생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영화가 생생하게 느껴진 데에는 주인공 기쿠오가 활발히 활동하는 1980~1990년대가 필자가 유학하던 일본의 고도성장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도쿄와 지방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가파른 성장이 가져오는 특유의 숨 가쁜 에너지와 불안, 그리고 욕망이 영화 속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예술혼, 혈통과 재능, 고난과 갈등, 사랑과 우정이 뒤엉킨 희로애락의 인간사는 특정 시대의 일본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온 또 다른 이유는 오랜만에 일본 전통예술, 그것도 가부키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라는 점이다. 가부키를 주제로 한 영화가 80년 만에 개봉했다는 사실은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하다. ‘국보’는 일본의 문화와 예술을 피상적으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인들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기쿠오가 어린 딸과 산책하다 신사에서 기도하는 장면이다. 딸이 “무엇을 빌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악마에게 모든 것을 가져가도 좋으니, 일본 최고의 온나가타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라는 이 대사는 예술의 최고 경지에 오르기 위해 가족과 사랑, 인간적인 삶, 나아가 영혼까지도 내놓아야 했던 기쿠오의 삶을 집약한다. 동시에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고독과 희생을 뼈아프게 드러낸다.
‘국보’는 묻는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혈통인가, 재능인가. 질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삶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그 물음은 자연스럽게 관객 각자의 삶으로 확장된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얼마나 간절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영화는 결국 우리의 성공이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주변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그리고 국보 기쿠오가 끝내 추구했던 것은 성공도, 명예도, 돈도, 관객의 환호도 아닌, 오직 무대 위에 잠시 스쳐가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왜 일본 사람들은 노, 가부키, 스모 같은 전통예술에 이토록 의미를 두는가. 그것은 전통예술이 일본인들에게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일본’을 구성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생활문화로 이어진 역사, 국가와 사회가 함께 만든 계승 시스템, 기술 그 자체를 존중하는 문화, 그리고 전통을 현재형 이야기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오늘의 ‘국보’를 가능하게 했다. 이 토양 위에서 1200만 관객이라는 숫자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 이 영화는 결코 쉬운 작품은 아니다. 일본 문화와 가부키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관객들이 과연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든다. 그러나 일본을 이해하는 하나의 창으로,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돌아보게 하는 보편적 울림을 지닌 작품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엔딩 크레딧이 흐를 때 많은 관객들이 자리를 떴다. 개인적으로는 주제가를 끝까지 듣고, 마지막에 뜨는 이상일 감독의 이름까지 보고 일어나는 것이 이 영화의 진미를 온전히 누리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전통과 예술,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의 삶을 다룬 영화 ‘국보’는 그렇게 천천히 곱씹을수록 깊어지는 작품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그리고 자신의 삶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영화를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2026-01-1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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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맑은물 공급은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
맑은 물은 인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부산 시민 삶의 질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한다. 부산시는 낙동강을 유일한 취수원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낙동강 수질 오염이 심화됨에 따라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수돗물 공급이라는 큰 숙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우리 협회는 부산광역시 및 각 구청과 긴밀히 협조하여 시민들께 맑은 물을 공급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도출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시민 건강 증진은 물론, 깨끗한 도시 이미지 구축을 통한 관광 산업 활성화, 나아가 관련 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낙동강을 유일한 상수도 취수원으로 하고 있는 부산시의 맑은 물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상수원 확보는 현재 정부와 부산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취수원 다변화 사업으로 분명히 깨끗한 수돗물 공급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한 가지 수원에만 의존하기 보다는 여러가지 수원을 확보하면 수질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고, 특히 이상기후나 오염사고 같은 상황에도 더 안정적인 수돗물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취수원 다변화 사업이 수질관리에 큰 이점을 줄거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러한 취수원 다변화 사업을 조속 시행하여 부산 시민들이 더 깨끗한 수돗물을 맘 놓고 마실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협회는 부산시의 물 부족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해수담수화 설비 구축,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하천 정화 사업, 그리고 녹조 제거 설비 관련 사업 등에 우선적으로 참여하고자 한다. 특히 낙동강 녹조 문제는 시민 건강과 직결되는 시급한 사안인 만큼, 협회 차원에서 혁신 기술을 보유한 회원사들과 협력하여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적용하는 데 힘쓰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은 더 이상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공공서비스가 아니다. 가뭄과 집중호우, 수질 오염사고, 노후 상수도관 증가 등으로 우리 사회의 물 안전성이 흔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시민들은 ‘수돗물은 당연히 깨끗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시는 물은 지자체의 치밀한 관리와 막대한 비용이 뒷받침되어야만 유지되는 서비스이다. 이제는 맑은 물 공급을 단순한 행정 업무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핵심 인프라 투자로 바라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첫째, 수돗물 신뢰 회복을 위한 투명한 관리가 절실하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수질 문제는 시민들의 불신을 크게 키워왔다. 수질검사 결과와 정수 처리 과정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오픈 워터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시민들은 언제든지 자신이 마시는 물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겠다. 또한 학교와 지역 단체를 대상으로 정수장을 개방해 정수 과정과 안전 관리 체계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한다면, 공공서비스에 대한 신뢰는 한층 높아질 것이다.
둘째, 스마트 상수도 체계로 전환해야 하겠다. 누수 감지 센서, 수질 자동 모니터링, 정수장 디지털 트윈 기술 등 첨단 기술을 상수도 관리에 도입하면, 기존 인력 중심의 관리 체계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정확한 운영이 가능하겠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물 관리 분야에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셋째, 맑은 물은 산업경쟁력의 필수사항이다. 반도체, 식품, 바이오 산업 등은 초순수(UPW)가 공급되어야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겠으며, 이러한 산업단지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공업용수 확보가 지역 경제의 경쟁력 이라는 관점으로 확장되어야 하겠으며, 국가 산업단지 ‘물 순환 클러스트’ 구축을 제안 드린다.
넷째, 깨끗한 물은 모든 공공서비스의 출발점이다. 안전한 수돗물 공급이 보장되어야 교육·복지·산업·환경이 비로소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어린이가 마시는 물은 그 어떤 서비스보다 중요하겠다. 학교 급수전 점검 강화, 저수조 관리 철저화 등 ‘아이 중심의 물 안전 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이유이다.
맑은 물 공급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인프라일지 모르지만, 그 가치와 중요성은 어느 투자보다 크겠다. 미래 세대가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을 마련하는 일은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며, 지금 이 순간부터 행동해야 할 과제이다. 시민과 행정, 전문가가 함께 힘을 모을 때, 우리는 물 걱정 없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2026-01-1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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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00만 노인 인구 시대, 일할 권리를 설계하자
옛말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빈곤은 개인의 의지로만 해결하거나 일시적 지원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가 되었지만, 노인의 빈곤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그늘로 남아 있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고도의 성장 이후의 대한민국은 노인의 빈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해법은 ‘현금 지원만이 복지’라는 인식을 넘어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공적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원이 ‘삶의 예측 가능성’을 넓히지 못하면, 빈곤은 반복되고 삶의 질은 개선되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복지는 돈을 주는 데서 끝나는 복지가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역량과 선택권을 제공하는 복지다. 나는 그 답을 직업교육과 일자리 창출에서 찾는다.
오늘의 노년층은 더 오래 살고, 더 오래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고, 3명 중 1명은 취업 상태이지만 나머지 3명 중 2명은 일자리가 없어 안정적인 근로소득 기반이 취약하다는 보도가 있다. 반면 장년층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니 그들이 생각하는 적정 은퇴 연령은 평균 73.4세에 이른다. 그러나 노동시장 바깥으로 밀려난 중장년에게 ‘일’을 개인의 의지로만 찾을 수 없기에 ‘기회의 제공’이 필요하다. 기술 변화는 빠르고, 일자리의 요구 역량은 달라진다. 결국 중장년과 노년 빈곤을 줄이기 위해서는 재취업과 전직이 가능한 실질적 경로를 국가가 만들어야 한다.
그 경로의 중심에 전 생애 평생직업교육이 있어야 한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직업교육은 청년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출생률 하락과 기대수명 증가로 학습의 주체가 바뀌고 있다. 머지않아 중장년 학습자가 청년 학습자를 앞지르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이제 직업교육은 청년 취업 정책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정책이자 노후 빈곤 해법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준비된 기반을 갖고 있다. 전국 129개 전문대학, 약 50만 재학생 규모의 고등직업교육 인프라는 지역 곳곳에 촘촘히 존재한다. 전문대학이 중장년에게 맞는 단기·집중형 교육과정, 자격 연계 과정, 현장 실습과 프로젝트 기반 훈련을 제공하고, 지역 산업과 연결된 채용 매칭까지 수행한다면 교육에서 취업까지의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일자리도 단순한 양적 확대가 아니라, 지역 산업 수요에 맞춘 전환형 일자리, 숙련된 직무역량을 살리는 고령친화 직무, 디지털·서비스 직무로의 이동을 지원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함께 가야 한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직업교육법이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입법화를 추진하는 직업교육법은 중등·고등·평생 직업교육을 국가 책무로 명시하고, 생애주기별 직업능력 개발을 공공정책으로 제도화하려는 시도다. 법에는 직업교육 지원의 원칙만 담을 것이 아니라, 경력진단·직업상담, 교육비 지원, 학습성과 인증, 고용서비스 연계, 지역·산업 수요 기반의 교육과정 편성과 품질관리까지 포함돼야 한다. 그래야 직업교육이 복지의 주변부가 아니라, 빈곤을 예방하는 국가 시스템이 된다.
해외는 이미 ‘교육복지’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8년 개인의 직업적 미래를 선택할 자유에 관한 법을 통해 개인훈련계좌제로 직업교육을 지원한다. 현금이 아니라 역량을 지원해 스스로 직업을 선택하게 만드는 복지다. 우리도 직업교육법 제정과 국가 차원의 평생직업교육 지원, 그리고 지역 기반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결합된다면 노년 빈곤 문제는 구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결국 노인의 빈곤을 줄이는 길은 ‘도와주는 사회’를 넘어 ‘다시 설 수 있게 하는 사회’로 가는 것이다. 직업교육은 재취업의 문을 열고, 일자리는 소득의 기반을 만든다. 경제 성장의 성과가 노년의 빈곤이라는 마지막 과제를 해결하는 데 쓰일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복지선진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나라가 될 것이다.
2026-01-1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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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역이 외국인 유학생을 동반자로 맞이하려면
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 해답 중 하나로 주목받는 것이 외국인 유학생을 지역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맞이하는 정주 유도 정책이다. 지역을 살리는 인재,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서 맞이하겠다는 뜻이다. 부산시는 ‘스터디 부산 30K(Study Busan 30K)’라는 비전 아래 2028년까지 외국인 유학생을 3만 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부산대학교는 라이즈(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를 기반으로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우수한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학업과 생활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며 지역 발전의 든든한 동반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 생활, 진로, 문화적 통합을 포괄하는 실질적 정주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이 부산으로, 부산대로 오는 것만으로 정주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정주는 경험에서 비롯되고, 그 경험은 사람 간의 태도와 관계 속에서 쌓인다. 제도적 뒷받침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사회의 자세와 포용이다.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개념이 바로 ‘암묵적 차별’이다. 이는 의도적인 배척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배제나 미묘한 신호로 나타나는 차별을 뜻한다. 예를 들어 토론에서 발언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거나, 대화 중 눈맞춤이 적고 사무적 응대만 이어질 때,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당사자에게는 배제의 신호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차별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멤피스대학교 크리스틴 P 존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암묵적 차별의 경험은 노골적인 차별보다 더 깊은 악영향을 미친다. 노골적인 차별은 가해자의 의도가 분명해 상대의 잘못임을 인식할 수 있지만, 암묵적 차별은 그렇지 않다. 은연중에 무시나 배제를 암시하는 태도를 마주하면, 사람은 그것이 차별인지 아니면 자신이 부족해서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인지 끝없이 의심하게 된다. 미국 라이스대학교 미키 헤블 교수는 이러한 모호한 차별이 인지적 스트레스를 유발해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밝혔다. 학업과 성장에 써야 할 인지 자원이 차별의 의미를 해석하고 감내하는 데 낭비되는 셈이다.
즉, 암묵적 차별은 단순히 불쾌함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대학이 외국인 유학생을 지속 가능한 구성원으로 맞이하는 역량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위험 요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식 개선에 그쳐서는 안 된다. 라이스대학교 이든 킹 교수는 차별 완화를 위해 구체적 행동 변화가 필요하며, 타인의 경험을 능동적으로 상상하는 공감 기반 접근과 차이를 인정하는 접근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조직 차원에서는 다양성 친화 목표를 설정해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노력과 함께 변화는 결국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시작된다. 대학에서는 외국인 유학생에게 먼저 말을 거는 동료, 어색한 한국어를 주의 깊게 들어주는 교수,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려는 조교의 태도 등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유학생에게 정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다. 이런 사소한 배려는 단순한 친절을 넘어, 낯선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이곳의 구성원이라 느끼게 하는 힘이 된다. 누군가의 미소, 따뜻한 인사, 짧은 대화의 순간들이 쌓여 낯선 곳을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살아가는 곳으로 바꾼다.
우리는 이제 외국인을 정책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갈 사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캠퍼스에서, 지역에서, 그리고 사회 전반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같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공동체, 내 삶에 의미를 주는 사람들, 그리고 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외국인 유학생이 그런 미래를 부산에서, 대한민국에서 그릴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여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주 유도의 시작이다.
2026-01-1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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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새로운 시즌 시작, 지속 가능 패션 설계하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패션산업에는 또 하나의 시즌이 열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컬렉션이 바뀌고, 쇼윈도의 풍경이 달라지듯, 연초는 기업이 새로운 방향과 전략을 점검하고 올해 목표를 구체화하는 시기다. 해가 바뀌는 순간은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옷을 만들고 어떤 가치를 시장에 제안할 것인지 다시 정의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산업 속에서 수십 년을 보내며 깨달은 것은, 시작의 순간이야말로 브랜드의 정체성과 철학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2026년을 향한 출발선에 서 있는 지금, 패션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은 소비심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트렌드의 생명 주기는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동시에 기술은 디자인과 생산, 유통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최근 전국 대학교수 76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변동불거’(變動不居)가 선정된 것처럼, 세상은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패션기업은 속도와 방향, 유연함과 지속성 사이의 균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패션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트렌드는 매 시즌 달라지지만, 브랜드가 지켜야 할 기준과 철학은 쉽게 바뀌어서는 안 된다. 단기적인 유행에만 반응하는 브랜드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반면 오랜 시간 축적된 브랜드의 미학과 가치 위에 변화를 더해가는 기업은 불확실한 시장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옷은 소비되지만, 브랜드의 정체성은 축적된다. 그 축적된 신뢰가 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힘이 된다.
기술 기반 변화는 패션산업의 경쟁 구도를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AI를 활용한 디자인 프로세스, 데이터 기반 수요 예측, 스마트 생산 시스템은 이미 업계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여기에 친환경 소재 개발과 지속 가능한 공정 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통해 어떤 감성과 경험을 소비자에게 전달할 것인가이다. 패션은 결국 사람의 삶과 가장 가까운 산업이며, 기술과 감성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진다.
글로벌 시장을 향한 도전 역시 새해 경영의 핵심 과제다. 국내 시장의 한계를 넘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해외 소비자들은 디자인 완성도는 물론, 브랜드의 스토리, 생산 과정의 투명성, 환경과 사회적 책임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이제 패션기업의 해외 진출은 단순한 수출이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과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제안하는 일이다. 변화의 폭이 큰 글로벌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치밀하고 세련된 전략과 유연한 조직 운영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 경영의 중요성은 패션산업에서 특히 더 크게 다가온다. 환경을 고려한 소재 선택, 과잉 생산을 줄이기 위한 생산 구조 개선, 지역사회와의 상생은 더 이상 부가적인 가치가 아니다. 소비자들은 이제 옷의 디자인과 가격뿐 아니라, 그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기업의 태도까지 함께 바라보고 있다. 지속 가능성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브랜드의 신뢰와 미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투자이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또한 새해 경영의 기본 조건이 되었다. 원자재 가격 변동, 물류 리스크, 환율과 금리 변화 등 다양한 변수들이 기업의 수익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단기적인 대응 능력과 함께 중장기적인 전략적 시야가 동시에 필요하다. 안정적인 경영 기반 위에서만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기업은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패션기업의 길은 언제나 선택과 결단의 연속이다. 정해진 답이 없는 시장에서, 때로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세정은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2026년을 준비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서 패션기업으로서의 본질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부산을 대표하는 패션기업으로서 산업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고자 한다. 중심은 단단히 지키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과감히 나아가는 기업이 되겠다. 새해가 모든 패션 종사자와 기업, 그리고 독자 여러분에게 새로운 영감과 도약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026년이 지속 가능한 패션의 가치가 더욱 깊이 뿌리내리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하며, 여러분의 가정에도 건강과 평안이 함께하길 기원한다.
2026-01-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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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국 장례식장, 6찬 식판 도입해야
장례식장은 한 인간의 마지막을 기리는 가장 경건한 공간이며, 한 사회의 품격을 보여주는 문화의 거울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국 장례식장의 현실은 이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 종이컵, 일회용 수저, 식탁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매년 약 3억 7000만 개, 2300t의 일회용품 쓰레기가 장례식장에서 배출되고 있는데 이는 국내 유통 일회용 접시의 20%를 차지한다. 전국에 약 1200곳의 장례식장이 운영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 문제가 환경에 미치는 파괴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특히 일회용기는 단순한 쓰레기 문제가 아니다. 제조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고, 사용 후 소각·매립 과정에서 온실가스와 유해물질을 배출한다. 완전히 분해되지 않고 남은 플라스틱은 미세입자가 되어 토양과 해양을 오염시키고, 결국 인간의 식탁으로 되돌아온다.
부산영락공원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4년 다회용기 전면 도입 시범사업을 추진했으나, 안타깝게도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빈소 10개를 운영하는 이곳은 다회용기 사용에만 매월 약 2500만 원의 예산이 소요된 것으로 파악된다. 부산광역시의 지원금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웠고, 세척·운송비 등 유지비 부담이 커 지속이 불가능했다. 결국 좋은 취지의 사업이 예산 부족으로 멈춰버린 것이다.
그러나 해법은 있다. ‘6찬 식판’을 사용하면 근본적인 구조 개선이 가능하다. 초기에는 식판 구입, 식기세척기 설치, 자율배식대 비치 등 초기 투자비용이 발생하지만, 한 번 시스템이 갖춰지면 이후 추가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조문객이 먹을 만큼만 덜어가는 자율배식 방식은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식기세척기를 통한 현장 세척은 다회용기 운송·회수 과정에서 생기는 불편과 비용을 해소한다. 부산영락공원의 경우 이 방식으로 전환하면 기존 매월 2500만 원의 예산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장례식장은 대접받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 고인을 기리고 유족을 위로하는 공간이다. 시민들이 이 취지에 공감한다면 다회용기 사용으로 인한 약간의 불편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문객이 감수하는 작은 불편이야말로 지구를 살리는 실천이 된다.
전국적으로도 다회용기 도입은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2023년 친환경 장례문화사업을 도입하고 서울삼성병원과 3개 시립병원이 동참하고 있다. 경기도는 산하 6개 도의료원(수원·이천·안성·의정부·포천·파주) 장례식장에 다회용기 사용 체계를 마련해 일회용품 저감에 나서고 있고, 화순군은 2025년 3월 장례식장 다회용기 사용 활성화 지원조례를 제정해 지원하고 있다. 김해, 창원, 울산, 안양, 구미, 정읍, 김제시 등에서도 다회용기 재사용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앞으로 신축·증축되는 모든 장례식장에는 식판, 자율배식대, 식기세척기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초기부터 시스템을 갖춘 시설일수록 운영비 절감 효과가 크고, 탄소배출 감축에도 기여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러한 친환경 인프라 구축을 장기 계획으로 추진해야 한다.
단순히 용기만 바꾸는 것을 넘어 반찬 구성을 다양화한 6찬 식판은 고인을 예우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품격 있는 장례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 장례문화의 변화는 곧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준다. 장례식장 6찬 식판 사용이 전국으로 확산된다면, 우리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구를 생각하는 품격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고인을 예우하고, 유족을 위로하며, 우리가 사랑하는 미래세대를 지키는 길이다.
2026-01-07 [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