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즐거움도 권리다, 유희의 공정성(Play Equ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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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숙 동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필자는 어린 시절 서울의 좁다란 골목에서 해가 질 때까지 마음껏 뛰어놀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리고 학교와 동네 놀이터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던 시간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유희하는 존재(놀이하는 인간)라 정의하고 유희는 인간다운 삶을 증명하는 가장 본질적인 방식이라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장애인 정책은 여전히 ‘생존’과 ‘보호’에 치중해 있다. 최근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82.2%가 주된 여가 활동으로 ‘TV 시청 및 휴식’을 꼽았다. 반면 문화예술 관람(4.8%)이나 여행(5.5%) 비율은 처참하다. 특히 중증장애인 10명 중 1.5명은 외출조차 불가능하다. 필자가 서울 골목에서 누렸던 당연한 ‘뛰어놀 권리’가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거대한 장벽 너머의 이야기인 셈이다.

이미 서울 등 수도권은 변화하고 있다. 2016년 ‘꿈틀 놀이터’를 시작으로 시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민간 기업들이 동참하고 있다. 동작구를 시작으로 자치구별로 ‘통합놀이터’를 명시한 조례를 제·개정하여 장애·비장애 아동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체계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반면 우리 부산은 어떠한가. 2024년 ‘부산광역시 아동의 놀 권리 증진에 관한 조례’가 마련되었다. 조례의 기본 원칙으로 통합 놀이공간 조성이 언급되어 있고 일부 공원에 무장애 시설이 도입되긴 했으나, 그 수조차 적을 뿐더러 위치가 외지거나 연계 이동 수단이 부족해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기존 놀이터에 휠체어 전용 기구 한두 개를 얹는 식의 산발적인 정비로는 결코 ‘통합의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 필자는 이를 ‘유희의 공정성(Play Equity)’이라 부르고자 한다.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놀이와 여가를 공정하게 경험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이 비준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 제30조는 장애인의 동등한 여가 활동 참여 권리를 명시한다. 필자는 이를 위해 과거 지역 유휴 부지 활용 논의 과정에서 ‘달팽이 놀이터’를 제안한 바 있다. 휠체어와 유아차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정상을 향하고 느리지만 안전한 모두의 공간이다. 유럽의 무장애 놀이기구 전문 기업들이 강조하는 “놀이에는 한계가 없다(Play has no limitations)”라는 선언처럼, 신체적 조건이 즐거움의 장벽이 되지 않는 공간이 부산에도 절실하다. 비록 당시의 논의는 행정의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 서 있지만, 그 철학만큼은 부산이 지향해야 할 유니버설 디자인의 이정표다. 이제는 멈춰버린 이 상상력을 깨워 부산만의 특화된 거점형 유니버설 통합놀이터를 구축해야 할 때다. 부산 지역 기업의 사회공헌(CSR)과 연계된 부산형 민관협력 모델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의 날과 가족의 달을 맞아 스스로에게 묻는다. 필자가 골목길에서 누렸던 유년의 즐거움이, 지금 부산의 누군가에게는 장애라는 이유로 차단되어 있지는 않은가. 즐거움은 특권이 아니라 보편적 권리이며, 그 권리는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한다. 한때 함께 꿈꿨던 ‘달팽이 놀이터’의 가치가 부산의 지형적 특성을 살린 통합 공간으로 부활하여, 모든 시민 가족의 즐거움으로 자리매김하길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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