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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무엇을 얻고 잃었나
미국에 스팀슨센터라는 연구기관이 있다. 북한 문제 등 국제 관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다. 이곳의 선임연구원 로버트 매닝 박사가 지난달 초 “한반도는 1950년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올해 1월에는 미국 미즐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이 같은 말을 했다. 이들은 지금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설마…, 하면서도 공포가 엄습하는 걸 어쩔 수 없다. 근래 돌아가는 꼴이 그리 만든다.
북한은 이미 남한을 타국이자 적국으로 규정했다. 경의선과 동해선의 북측 구간 도로·철도 폭파는 상징적이다. 동족 간 화해와 협력의 상징을 무참히 걷어냈기 때문이다. 이러다 비무장지대가 중무장지대가 될 판이다. 북한이 보낸 오물 풍선이 대통령실 앞마당에 ‘정확히’ 떨어지고 ‘남한이 침범했다고 북한이 주장하는’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날아다니는 현실은 또 어떤가. 남북 지도자의 말에는 살기가 서려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일 “북한 정권 종말” 운운했고, 바로 다음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공격력을 동원하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불난 데 기름 부은 격이다. 당장에 나토군의 우크라이나 파병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그리 되면 기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전 양상으로 비화된다. 안 그래도 국제질서가 신냉전 구도로 급변하는 형국이다. 70여 년 전 냉전의 시기 우리 민족은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 한반도가 또다시 냉전의 최전선이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알려지자마자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을 검토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국군의 파병까지 거론되면서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군사적 개입이 현실화되면, 남북은 우크라이나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상황을 맞게 되고, 종국에는 한반도에까지 전운이 드리울 수밖에 없다. 이는 군사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정치인은 전쟁을 시작하고, 부자는 무기를 대고, 가난한 사람은 자식을 제공한다. 전쟁이 끝나면 정치인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하고, 부자는 생필품 가격을 올리고, 가난한 사람은 자식의 무덤을 찾는다.’ 1990년대 내내 전쟁을 치른 세르비아에서 속담처럼 떠도는 말이라고 한다. 실상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국민 몫이다. 현 상황에 우리 국민은 불안하고 두렵다. 자식을 군대에 보냈거나 보내야 하는 부모들은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민을 안심시키는 대신 위기감을 부추긴다. 현직 국가안보실장과 국회 국방위 소속 여당 의원이 최근 나눈 문자 대화가 논란이다. ‘우크라이나와 협조해 북괴군 부대를 폭격하고, 이 자료를 심리전에 쓰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러시아와 북한을 상대로 당장 전쟁이라도 벌일 기세다. 어쩌면 현 정부의 안보 담당자들은 실제로 전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긴장과 대결을 불사하려는 듯한 흐름이 느껴진다”고 했다. 살상무기 지원 등에 대해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일 안보실장 협의가 있었고 국방장관 회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관련 논의가 이미 상당히 진행됐을 수도 있다.
〈손자병법〉은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전쟁은 국가 대사이며, 생사의 바탕이자 존망의 길이니,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병법서의 첫머리가 이러할진대, 국정 책임자라면 필사의 노력으로 전쟁을 피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 이유에서 새삼 요구되는 게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변화다.
윤 대통령은 화해와 협력이 아니라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해 왔다. 그 결과 남북은 ‘적대적 두 국가’가 됐다. 한반도 비핵화는 요원해졌고, 북의 핵능력은 더 빠르게 고도화됐다. 한미일 공조에 몰두하면서 중국, 러시아와 멀어졌다. 특히 러시아는 북한과 동맹을 복원한 데 이어 북한의 파병을 계기로 혈맹이 되려 한다. 남한은 러시아까지 적으로 둬야 할 상황인 것이다. 한미일 공조는 필연적이라 해도, 그것이 중국, 러시아 등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전략과 전술은 유연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병법에도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고 하지 않았나. 먼 세력과는 친하게 지내고 가까운 세력을 공격해야 경쟁에서 이기는 법이다.
이제 윤석열 정부의 기존 외교·안보 정책으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냉철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북한의 도발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한반도에 평화를 촉진하는 일 역시 내칠 수 없는 목표다.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국토를 보전하고 국민을 지키는 데 궁극의 가치가 있다.
2024-10-3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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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폭염 추석이 던진 경고
“추석(秋夕)이 아니라 하석(夏夕)! 한가위가 아니라 한더위!”
며칠 전 추석 명절을 두고 세간에서 한탄조로 나온 말이다. 그만큼 더웠다. 연휴 내내 열대야와 함께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올여름 유례없는 더위에 사람들은 놀랐는데, 추석에까지, 아니 추석 이후에도 계속되는 폭염에 더 경악하고 있다. 본능적으로 ‘종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런 시대에 아기를 낳는 건 죄악”이라는 젊은이들의 푸념이 푸념이 아니라 절규임을 깨닫게 된다.
예언이든 경고이든 인류에게 경각심을 촉구하는 소리는 오래전부터 들렸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 논란이 그중 하나다. 지질학적으로 현세는 충적세(沖積世, Holocene)다. 마지막 빙하기로부터 지금까지 1만 7000여 년 동안의 시기로,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사람이 살기에 딱 좋은 기후 덕에 인류는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지구가 변하고 있다. 아니, 이미 변했다. 무엇보다 기후가 옛날과 확연히 다르다. 비가 내리면 걷잡을 수 없이 내리고, 기온은 펄펄 끓어 식을 줄을 모른다. ‘적당’이라는 게 없다. 마치 인류를 위해 존재한 것처럼 보이는 충적세가 이제는 끝났다고 봄 직하다.
온전히 사람 탓이다. 생산활동을 핑계로 환경을 파괴했고, 거기에 비례해 탄소 배출량이 급증하면서 이상기후를 비롯한 종말의 징후가 확연해진 것이다. 인류가 낙원의 시기인 충적세를 스스로 끝장내고 전혀 다른 시대를 열었으니, 그 새로운 시대를 인류세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몇 년 사이 지질 전문가들 사이에서 쏟아졌다. 인류세 논의는 아직 시작 단계로, 올해 3월 국제지질학연합(IUGS)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됐고, 지난달 말 부산에서 열린 세계지질과학총회(IGC)에서도 제안됐다. 지구 기준으로 봤을 때 기존 충적세가 인류세로 바뀌었다고 할 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모두 부결되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인류 종말을 경고하는 메시지로서 인류세는 여전히 유효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점점 더 뜨거워지고 점점 더 오염되고 점점 더 파괴되는 지구를 향해 인류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엄중한 화두로 기능하는 것이다.
관련해, 상징적인 일이 지난달 29일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우리 정부의 탄소 감축 행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2020년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탄소 순배출량 0) 달성을 국가 비전으로 발표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른 것으로, 이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정부가 탄소 감축 목표를 2030년(2018년 대비 40%)까지만 정해 놓고 이후로는 아무런 규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청소년기후행동이라는 단체가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정부에 대해 2031년 이후의 감축 목표를 구체화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더불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주문했다. 탄소중립과 관련해 미래 세대에 무책임한 정부를 질책한 셈이다.
녹색성장이든 탄소중립이든 결국은 인류, 특히 미래 세대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갈 길이 멀고도 험한데, 그에 비해 현 정부의 노력은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최근 파행을 겪고 있는 그린리모델링 사업이 좋은 예다. 정부는 2014년부터 탄소 감축 차원에서 민간 건축물 친환경 리모델링 사업을 예산을 들여 지원해 왔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사실상 사업을 폐기한 것이다. 소소하지만 탄소중립과 관련해 현 정부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사례라 하겠다.
여하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만큼 정부의 태세 전환이 시급히 요구된다. 2031년 이후의 탄소 배출 목표를 제시하는 등 장기적인 차원에서 탄소중립 정책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현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친원전 정책은 미래 세대에 또 다른 부담을 지운다는 점에서 신중한 논의와 함께 다른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국회 차원의 관련 법 개정 노력도 동반돼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은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만으로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다.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에너지 절약 일상화 등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개인과 기업의 실천이 병행돼야 한다.
누구는 탄식하며 말한다. “작금의 이상기후가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데 우리가 뭘 어쩌겠냐”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으면 인류의 미래가 어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올해 추석은 유례없는 폭염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했다.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책임을 질 때”라고. 자연이 인류에게 보낸 최후통첩일 테다. 그 의미를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할 테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2024-09-1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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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독립기념관장이라는 그 자리
광복회가 15일 예정된 정부 공식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키로 했다. 1965년 광복회 설립 후 처음 있는 일이다. 독립운동가 단체들로 구성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도 광복회와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 역시 초유의 일이다.
지난 8일 취임한 김형석 제13대 독립기념관장 때문이다. 이들은 김 관장 임명 철회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김 관장이 독립기념관장으로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김 관장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부인하며 일제강점기가 근대화에 도움이 됐다고 주장하는 전형적인 뉴라이트 인사’로 규정한다.
김 관장은 뉴라이트임을 부인한다. 스스로도 뉴라이트의 폐해와 오류를 아는 듯하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을 테다. 역사에 대한 평가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따위는 학문적 소신의 발로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가 살아온 흔적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김 관장은 건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 경희대 대학원에서 사학 박사 학위를 땄다. 이후 역사학자로서 의미 있는 활동은 찾아지지 않는다. 대신 개신교 목사이자 대북지원 사업가로 활동한다. 1996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다가 이듬해 한민족복지재단을 설립해 10여 년간 사무총장과 회장을 맡았다. 이후엔 다시 변신해 2016년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장, 2020년 대한민국사연구소 소장, 2022년 (재)대한민국역사와미래 초대 이사장이 됐다.
독립기념관은 일본 정부의 과거사 왜곡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바탕으로 건립됐다. 1982년 7월 일본 문부성이 고교 교과서에 일제강점기 관련 부분을 수정했다. 창씨개명, 신사참배, 징용 등의 행위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바꾼 것이다. 반일 감정이 불타 올라, 같은 해 8월 독립기념관 건립준비위원회가 출범하고 국민 모금 운동이 전개됐다. 성금은 당초 목표액 500억 원을 훌쩍 넘어 걷혔다. 1987년 광복절에 개관한 독립기념관은 이처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 강력 대응하자는 국민의 의지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그래서 독립기념관장직은 범상한 자리가 아니다. 항일과 독립의 가치와 의미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역대 독립기념관장의 면면에서 그런 상징성을 느낄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이자 광복군 출신인 안춘생 1·2대 관장을 비롯해 역대 독립기념관장 대부분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었다. 예외가 7대 김삼웅 관장과 12대 한시준 관장이었다. 하지만 김삼웅 관장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조사위원이었고, 한시준 관장은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사 연구에 매진해 온 학자라는 점에서 수긍이 된다.
김 관장은 그런 상징성을 갖고 있지 않다. 독립운동가 후손도 아니고 학자로서 편력도 독립운동사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평생 일군 경험과 전문성, 인적 네트워크 능력 등을 총동원해 독립기념관 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경험이라고 하지만 대북지원 활동가 외 특별한 이력이 보이지 않는다. 전문성을 따져도 그렇다. 김 관장은 ‘명말의 경세가 서광계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근현대사 특히 독립운동사와는 관련이 없는 주제다. 역사 관련 저서도 일천하다. 역사 논평이라 할 〈끝나야 할 역사전쟁: 건국과 친일 논쟁에 관한 오해와 진실〉이 있지만, 친일청산의 의미를 폄훼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 재검증을 요구하는 등 논란이 많은 저서다. 이는 김 관장이 뉴라이트로 지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적 네트워크로는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재)대한민국역사와미래가 유력하다. 하지만 이 재단의 손병두 상임고문은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건축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이영일 고문은 문재인 정권을 주사파 정권으로 단정해 파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어느 경우에서도 독립기념관장으로서 적합한 자질과 능력, 자격을 찾을 수 없다. 김 관장은 “독립기념관장으로서 무슨 일을 중점적으로 하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들의 명예 회복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독립기념관장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답변이다. 이런 김 관장을 두고 역사학회 등 역사 관련 48개 단체는 13일 “민족 자주와 독립 정신의 요람인 독립기념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독립기념관은 15일 열기로 했던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했다. 독립기념관 개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독립(광복)을 기념(경축)하지 않는 독립기념관이라니!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아찔하다.
2024-08-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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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라는 그 말 [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당신, 좌파네!” 적의 가득 담은 이 말이 목하 대한민국 사회에 흘러 넘친다. ‘좌파’가 너무나 가볍게 소비되는 것이다. 나와 배치되는 상대라면 일단 좌파라고 낙인찍는다. ‘좌파’가 그리 함부로 남발해도 되는 말인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과거 언사와 관련한 논란이 한 예다. 이 후보자는 2022년 12월 자유민주당 주최 강연에서 좌파를 거론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문화권력도 좌파!” “‘택시운전사’ ‘암살’ ‘베테랑’ ‘기생충’은 좌파 영화!” “정우성은 좌파 연예인!” 당시 이 후보자가 무엇을 근거로 그런 가름을 했는지 분명치 않다. 정우성은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에서 내레이션을 맡아서 좌파라는데, 도통 요해 불가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벌어진 좌파 다툼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지난 11일 2차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TV토론회 장면. “한동훈 후보가 (좌파 세력의) 아이돌로 내세워진 게 아니냐?”(원희룡) “본인도 모르게 (좌파) 트로이의 목마가 되는 것 아니냐?”(윤상현) “(한 후보자에겐) 민청학련 주모자인 이모부가 계시지 않느냐?”(원희룡) “원 후보자야말로 극렬 운동권 출신 아니냐?”(한동훈) 차기 여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 뜬금없이 좌파 공방이 뜨거웠다. 한동훈이 좌파라니…. 그의 이력을 볼 때, 아무리 목불인견의 이전투구 전당대회라지만, 헛웃음이 절로 났다.
‘좌파’는 서구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근대 자유주의 시민사회의 효시였음은 두루 아는 사실. 봉건 절대왕정을 종식시키고 국민이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만드는 게 당시의 시대정신이었다. 그해 소집된 국민회의에서 혁명을 완수하려는 공화파는 왼쪽(좌파)에, 이를 막으려는 왕당파는 오른쪽(우파)에 자리 잡았다. 요컨대 좌파는 새로운 시대의 개창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일궈낸 주체였던 것이다.
서구에서 만들어진 ‘좌파’라는 단어를 두고 저주를 쏟으며 목숨을 걸 정도로 치열하게 다투는 곳이 우리 대한민국이다. 왜 그런가. 좌파를 지칭할 때 그 전제로 ‘좌파=악’이라는 등식을 갖기 때문이다. 어째서 악인가. 과거에는 북한에 대한 태도를 따졌다. 북한을 적대하지 않고 “공존” “평화” 운운하면 좌파라고 몰아붙였다. ‘좌파’ 앞에 ‘종북’이라는 단어가 접두어처럼 붙는 까닭이다. 요즘은 종북은 차치하고, 보수연 하는 정권의 잘못을 지적하면 일단 좌파로 분류한다. ‘채 상병 특검’을 촉구하는 동료 해병을 두고 좌파 해병으로 규정하는 데서 확인되듯, ‘좌파’ 오남용은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친구에게 “넌 좌파야!”라고 쏘아붙이는 지경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대한민국에 좌파는 있다? 없다? ‘있다’는 대답은 옳으면서도 틀리다. 스스로 좌파임을 밝히는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틀렸고, 상대를 좌파로 규정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점에서 옳기 때문이다. 여하튼 서구에서 태동한 좌파가 갖는 의미와 가치가 대한민국에선 깡그리 사라졌다고 하겠다.
이런 우리 현실에서 돌아봐야 할 인물이 있다. 영국 노동당 당수였던 토니 벤(1925~2014)이다. 그는 1950년 정계에 입문한 이후 철두철미 좌파였다. 노동당 다른 의원들이 점점 우경화할 때 그는 더 좌경화했다. 그런 벤이 작고했을 때 우파 신문 〈텔레그라프〉조차 논평에서 ‘영국의 국보’라는 표현을 썼다. 그보다 앞선 2006년 BBC가 실시한 ‘현존 최고의 정치 영웅’을 묻는 조사에서 벤은 1위를 차지했다. 대표적인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의 시민들은 노동자를 지지하고 반전·인권 운동을 주도하며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등 평생을 왼쪽을 향해 걸은 벤을 진정으로 추앙하는 것이다.
좌파를 까닭 없이 증오하거나 값싸게 치부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말을 하고픈 게다. 여기서 질문 하나 더! 대한민국에 우파가 있을까? 좌파가 그런 것처럼, 스스로 우파를 자칭하는 이도 드물다. 좌파를 매도하고 비난하는 이들도 좀체 자신을 우파로 내세우지 않는다. 심지어 극우로 분류되는 쪽의 사람들도 그렇다. ‘우파=정의’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여하튼, 좌파가 반드시 악은 아니며 우파가 꼭 정의가 아니라면, 무엇이 중요한가.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이다. 좌파·우파보다 정파·사파를 따지는 지혜가 절실하다. 귀족 가문의 토니 벤이 철두철미 좌파의 길을 걸은 당위와 과정을 좇다 보면 그런 지혜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테다. 그럼에도 이렇게 따지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쓴 당신, 좌파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2024-07-1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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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 지역의 의사는 왜 안 되나
2025학년도 전국 의대 신입생 중 비수도권 대학에서 지역인재 전형으로 뽑는 인원이 1913명이다. 2024학년도보다 888명 늘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도권 학원가에 분다는 소위 ‘지방 유학’ 바람이다. 현행 지역인재 전형에 따르면 비수도권 고등학교에 입학·졸업해야만 해당 지역 의대 지원이 가능하다. 2028학년도부터는 중학교까지 조건이 확대된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지방 유학을 꾀하는 의대 지망생과 그 부모들은 중학교, 심지어는 초등학교도 비수도권을 마다하지 않는다. 의대 졸업 후 수도권으로 돌아가 의사 노릇 하면 되기 때문에 그 정도 고생은 감내하겠다는 심보다.
이쯤이면 정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의대 증원의 상당 부분을 비수도권 의대에 배정했다. 피폐해진 지역 의료를 살려보겠다는 절박한 심정에서였을 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의대생들이 졸업 후 수도권으로 떠날 경우의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지역인재 전형은 수도권 회귀를 염두에 둔 학생들의 의대 진학 방편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지역에 의사가 남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제안과 논의가 있었다. 지역의사제가 대표적이다. 지역 의대생에게 장학금 등 혜택을 주고 의사 면허를 취득하면 일정 기간 해당 지역 의료기관에 복무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도 있다. 지역의사제와 비슷하지만 지역 복무를 지자체 등과의 계약에 따르도록 한다. 공공의대 설립 주장도 있다. 여기 의대생은 장학금 등을 받되 10년간 지역의 공공 의료기관에서 복무해야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의사 면허가 취소된다.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국방의대 논의도 진행 중이다. 장기복무 군의관을 양성해 필요에 따라 지역·공공 의료 부문에도 활용하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는 게 없다. 지역의사제는 지난 21대 국회에서 야당 주도로 추진됐으나 무산됐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는 정부가 지난 2월 도입 방침을 밝혔으나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공공의대 설립 요구는 꽤 오래전부터 제기됐으나 성과는 없었다. 국방의대는 국방부가 지난달 “올해 안에 연구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기본적으로 장기복무 군의관 확보 방안일 뿐이다.
이러한 제도들의 한계점도 지적된다. 지역의사제나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는 의대생이 장학금을 반납하는 식으로 지역 복무를 거부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기본권 침해 논란에 대한 법적 대안도 마련되지 않았다. 공공의대의 경우 10년 의무 복무를 강제하지만 인턴·레지던트 기간을 빼면 사실상 실제 복무 기간은 3년에 불과하다. 단기 의사양성기관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국방의대는 군의관의 민간 영역 활용에 대한 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파격적인 제안도 나왔다. 지난해 10월 당시 대한의사협회 임원이던 현직 의사가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린 ‘사관학교형 의대 설립’ 제안이다. 부모의 능력과 무관하게 국가가 의사 되는 길을 열어 주고, 졸업자에겐 공무원 신분을 부여해 지역의 필수·공공 의료기관에서만 종사하도록 제한하자는 것이다. 공무원 신분에서 벗어나면 의사로서 활동을 금지하는 대안도 담았다. 시행만 된다면, 사관학교형 의대는 지역의 필수·공공 의료체계 확립에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대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당 청원은 의사 단체의 반발과 대중의 무관심 탓에 한 달 만에 폐기됐다.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한 방안들은 그동안 숱하게 제안·시도됐으나 매번 좌절됐다. 의사 단체의 반발 탓이 크다. 현행 의사제도의 틀 안에서 기득권을 유지한 채 자신들만으로도 충분히 지역 의료를 살릴 수 있다는 의사 단체의 주장은 오만하고 위험하다. 이왕에 현실이 된 의사 증원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선 사관학교형 의대 도입 같은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의사 되는 길을 다양하게 열어 놓고, 학생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일이 왜 불가한지 의사 단체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역의사제 등 충분한 논의 없이 법안부터 밀어붙여 부작용을 초래한 정치권과 정부도 반성해야 한다.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은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 지역의 의사를 배출하는 것이다. 정부, 국회, 의료계, 시민단체를 아우르는 기구를 구성해 집중 논의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일이 시급하다. 처방이 중구난방이면 나을 병도 안 낫는 법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2024-06-0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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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군인의 명예
헥토르는 자신이 이길 수 없음을 알았다. 상대는 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 천하의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절대 무(武)를 자랑하는 자. 바로 그리스 군의 선봉장, 아킬레우스였다. 하지만 헥토르는 그 무시무시한 아킬레우스를 상대로 정면대결에 나섰다. 조국 트로이를 지켜야 하는 전사로서 임무를 다 하고자 한 것이다. 이미 승패를 짐작했던 헥토르는 제안했다. 패한 자의 시신만은 온전히 상대측에 돌려주자고.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거부했다. 동료 잃은 복수심에 불타던 아킬레우스는, 당연하게도, 헥토르를 쓰러뜨리고 그 시신을 능욕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가 전하는 이야기다. 자, 둘 중 전사로서의 명예는 과연 누구에게로 돌아갔을까. 이긴 아킬레우스인가 진 헥토르인가. 신은 헥토르의 손을 들어줬다. 전사는 어느 경우에서든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이란 게 있는데, 아킬레우스는 그 규범을 어겼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는 결국 신의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전사는 곧 군인이다. 군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각 잡힌 제복, 빛나는 훈장, 절도 있는 걸음걸이,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 따위다. 그런 군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경외심이 절로 우러난다. 그러나 진정한 군인에겐 겉모양이 다가 아닐 테다. 군인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규범이자 가치가 있다. 다름 아닌 명예다. 무공이 제아무리 높아도 스스로 명예롭지 못하면 참군인이라 할 수 없다. 아킬레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군인은 명예를 존중하고 투철한 충성심, 진정한 용기, 필승의 신념, 임전무퇴의 기상을 견지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그 바탕으로 삼는다.” ‘군인복무규율’이 명시하고 있는 군인의 자세다. 제1의 규범이 명예를 존중하는 것이다. 명예는 자기가 지키는 것이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다. 양심에 비춰 당당하게 행동하고 스스로 부여하는 도덕적 가치다. 죽음이 뻔히 눈앞에 보이는데도 아무런 조건 없이 전장으로 향하는, 군인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그 비장한 결단은 목숨보다 명예가 더 중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군인의 명예는 국가와 국민을 향해 있을 때 비로소 가치를 갖는다. 그렇다면 명예는 굴종과 함께 어울릴 수 없다. 굴종은 비굴한 순종이다.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것이 군인의 숙명이라지만, 그 명령이 부당한 것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히는 결기 또한 군인의 참모습이다. 진정한 명예는 바로 그런 것이다. 대의를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는 결연한 삶에서 명예는 빛을 발한다. 소신을 저버리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것, 자신과 타인에 속임이 없는 것이다. 제 안위를 지키고자 굴종하는 건 군인의 명예가 아니다. 권력의 눈치나 보는 군인, 그러면서도 창피한 줄 모르고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군인을 경외할 수는 없다.
말이 길고 번거로운 건 이른바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을 둘러싸고 보이는 일부 군인과 군 출신 인사들의 명예롭지 못한 행태가 안타까워서다.
이 사건에 대해 공수처 수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고 국회에선 관련 특검법까지 통과된 상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는 형편이다. 하지만 여러 의혹에 책임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 할 인사들은 사건이 일어난 지 10개월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별다른 말이 없다. 심지어 장군의 반열에까지 오른 이들까지 변명 또는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다. 그들에게서 생명보다 무겁다는 군인으로서의 명예는 찾아지지 않는다.
30여 년을 복무한 어느 부사관의 회한을 대신해 가수 김민기가 전하는 노래가 있다. ‘늙은 군인의 노래’다. 태어나 이 강산에 군인이 된 그 부사관은 아들과 딸에게 당부한다. 서러워 말 것이며, 좋은 옷도 탐하지 말고 맛난 것도 탐하지 말라고. 왜 그래야 하는가. 바로 자랑스러운 군인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흘러가 다시 못 올 청춘을 푸른 군복 입은 채 보냈지만, 그는 스스로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구국의 결단을 한 것도, 엄청난 무공을 세운 것도 아니지만, 짐작건대 군인으로서 명예를 지켰다는 자부심을 그는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이다.
늙은 군인만이 아니다. 젊은 육사 생도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사관생도 신조’를 외친다. “하나,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둘,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셋,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은 군인들, 부끄럽지 않은가.
2024-05-0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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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4·19를 통해 5·18을 본다
“오월의 정신은 우리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이고, 우리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입니다.” 지난해 5·18민주화운동(이하 5·18)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낭독한 기념사 한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이전에도 5·18에는 각별한 자세를 보였다. 국민의힘 입당 전, 대선후보 때, 당선 첫해에도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의 정신’을 강조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김기현 전 대표,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 한동훈 현 비대위원장 등 역대 국민의힘 지도부도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보수로 분류되는 정권도 5·18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은 끊이지 않는다. 극우로 치부되는 세력만 그러는 게 아니다. 정부의 고위공직자나 여당 지도급 인사 중에서도 심심찮게 나온다.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그렇고, 김재원·김진태·김순례 전 의원 등이 5·18 폄훼 발언으로 당의 징계를 받았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는 국민의힘이 도태우 변호사를 공천했다가 ‘5·18 북한 개입설’ 등 도 변호사의 과거 발언이 문제가 되자 공천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에는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의 5·18 폄훼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4·19혁명(이하 4·19)과 관련해서는 그런 행태를 목도하기 어렵다. 이유가 있다. 4·19는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평가가 끝난 사실(史實)이다.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루어 낸 대한민국 최초의 성공한 혁명인 것이다. 이런 평가는 국제적으로도 공인됐다. 그 결과 ‘4·19 기록물’이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다. 현행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한다. 3·1운동과 함께 4·19 정신이 명시된 것이다. ‘4·19민주이념’은 1962년 개헌 때 처음 수록된 뒤, 1980년 개헌 때 삭제됐다가, 1987년 개헌 때 다시 수록됐다. 헌법 전문은 헌법 제정의 목적과 지향하는 가치가 담긴 최상위 규범이다. 4·19에 대한 여타의 논란을 불허하는 건 헌법 전문이 갖는 그런 권위 덕분이다.
5·18도 정부기관이 오랜 기간 조사와 수사를 통해 그 성격과 의미를 규정해 놓은 상태다. 1995년 제정된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특별법’은 1980년 광주에서의 민중 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선언했다. ‘북한 개입설’ 따위는 국방부가 10여 년 전에 이미 부인했다. “5·18내란은 국헌 문란”이라는 대법원 판결도 나왔다. 민주화운동으로서 5·18을 대한민국의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공히 인정한 것이다.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5·18 기록물’은, ‘4·19 기록물’보다 12년 빠른, 2011년에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는 ‘5·18민주화운동은 한국의 민주화에 큰 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1980년대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의 냉전 체제를 해체하고 민주화를 이루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여겨져 왔고, 그런 세계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라고 명기돼 있다. 5·18 역시 4·19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정치적·사회적 평가가 끝난 셈이고, 그렇다면 5·18 정신 또한 헌법 전문에 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5·18을 왜곡·폄훼하는 발언을 두고 흔히 망언(妄言)이라고 한다.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망언을 일삼는 자는 욕을 먹기 마련이고 퇴출돼 마땅해서, 특히 정치인인 경우 예외 없이 철퇴를 맞았다. 당사자들은 대개는 반성·사과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5·18 망언’은 좀체 근절되지 않는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부터 약속했으며 김기현 의원도 국민의힘 대표 시절 “당의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같은 당 유승민 전 의원은 “국민의힘에도 5·18 정신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정치인이 많다”며 “개헌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올해 1월 “5·18 정신은 대한민국 헌법 정신과 정확히 일치한다”면서 “헌법 전문 수록을 반대하는 세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반대할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미루고 자시고 할 이유가 없다. 총선 후 새 국회에서 여야가 힘을 합쳐 개헌을 추진하면 된다. 대통령과 집권여당, 거기에 제1 야당까지 공통으로 내놓은 약속이 허언으로 끝나는 건 그 자체로 국민에 대한 모독일 수밖에 없다.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결과물을 도출해 냄이 마땅하다.
2024-04-0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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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3년 차 ‘우크라 전쟁’과 미국 그리고 우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 ‘우크라 전쟁’)이 지난 2월 24일 만 2년을 넘기고 3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의 참상은 말로 다 하기 어렵다. 양측 군인 사상자는 50만 명을 넘었고, 민간인 사상자도 수만 명에 이른다. 전쟁난민은 1000만 명 이상인 것으로 언급된다. 그럼에도 전쟁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어쩌다 보니 남한과 북한이 만리 밖 이 전쟁의 무기고 역할을 하고 있다. 남한은 ‘우크라 전쟁’을 계기로 방산 수출국으로 떠올랐고, 북한 역시 러시아에 무기를 대량 지원하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사태의 심각함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크라 전쟁’은 지금 동북아 안보 지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건 북한과 러시아의 ‘위험한 거래’다. ‘우크라 전쟁’에 사용할 무기를 제공받는 대가로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군사기술을 넘겨주는 것이다. 거래는 지난해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에서 성사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실패를 거듭하던 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하고 핵잠수함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판에 최근 러시아와 중국이 ‘전략적 협조’를 강조하며 밀착하고 있어 동북아에서의 군사적 긴장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이는 한반도 전쟁 위기로 직결된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금은 결이 다르다. 외국 군사 전문가들의 경고음이 잇따른다. 올해 초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크프리트 해커 교수가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 보낸 기고문이 그 하나다. 두 사람은 “한반도가 1950년 6월 이후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쟁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라고 단정했다.
아닌 게 아니라 북한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북한은 남한을 ‘제1의 주적’으로 헌법에 명기하고 ‘남조선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 등 전에 없이 과격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말만이 아니다. 실제로도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하며 도발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자칫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나온다.
북한만 그러는 게 아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올해 상반기 한미 연합 군사훈련 횟수를 작년 대비 2배 이상 늘린다는 사실을 최근 공개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미일 합동군사훈련까지 치러질 수 있다는 추측도 제기된다. 그렇게 본다면 현재 한반도는 실제로 전시 상황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8일 충북 괴산군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열린 학군장교 임관식에서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한미일 안보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위협에 대해 줄곧 강조한 한미동맹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현재 우리 안보 상황에서 한미동맹은 필수불가결하겠지만, ‘우크라 전쟁’은 우리 안보 현실이 한미동맹만으로는 위험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감행하면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자신했다. 그럴 만도 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긴장이 고조되던 2021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수차례 확인했던 것이다. 고무된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의 길을 터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주저했다. 지난해 7월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 “시기상조”라며 사실상 거부 입장을 밝혔다. 실망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에 ‘이스라엘식 안보보장’이라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실질적인 진척은 없었다.
최근에는 미국의 군사지원조차 미국 의회의 반대로 급격히 축소되는 모양새다. 다급해진 젤렌스키 대통령은 세 차례나 미국을 방문하면서 지원을 호소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급기야 올해 1월 바이든 행정부의 예산안이 의회에서 부결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군사지원이 중단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망은 더 어둡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기존 정책이 급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외세에만 의지했을 때 얼마나 무서운 재앙이 닥치는지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처절하게 경험했다. 민초들의 궁극적 소망은 현재 발 딛고 살고 있는 이 땅에 전쟁이라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지속되는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통한 안보 우산을 내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미국만 바라보는 행태는 위험하다. 묻게 된다. 지금 우리는 안전한가.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라는 헌법상의 책무를 진정으로 다하고 있는가.
2024-02-2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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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코리아 디스카운트, 세금 깎아 줘서 해결?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한국 기업 또는 주식의 가치가 실제보다 저평가된 상태를 일컫는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증시 개장 첫날이었던 지난 2일 자본시장 규제를 과감히 혁파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혁파하겠다는 ‘규제’는 다름 아닌 세금 제도다. 이는 지난해부터 잇따라 발표된 대대적인 증시 부양책에서 거듭 확인된다.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그에 따른 증권거래세 개편 등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게 그렇다. 요컨대 주식 관련 세금은 모조리 깎아 주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결과는 윤 대통령의 바람에 훨씬 못 미치는 듯하다. 한국 증시가 좀체 회복될 기미가 없는 것이다.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12월 28일)에 2665.28로 장을 마쳤던 코스피 지수는 현재 250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코스닥도 부진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950대까지 올랐던 코스닥 지수는 지금 850대를 넘어서지 못한다. 이처럼 맥을 못 추는 한국 증시와는 달리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증시는 훨훨 날고 있다. 특히 미국 뉴욕 주식시장의 S&P 500 지수는 근래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장(한국 주식시장) 탈출’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국내 주식은 하는 게 아니다”라며 미국과 일본 증시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주식 전문가들도 “지금이라도 한국 주식은 팔고 미국 주식을 사라”고 부추긴다. 이런 형편에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로 들어올 까닭이 없다. 2020년 초만 하더라도 국내 시총의 35%는 외국인이 보유했는데, 지금 그 비율은 30%에 못 미친다. 윤 대통령의 ‘규제 혁파’ 선언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해소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의 시각은 윤 대통령의 선언과는 결이 다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으로는 낮은 주주환원율,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 경영 불투명성 등을 꼽는다. 주주환원율은 기업이 거둔 순이익 중 주주에게 돌려 주는 몫의 비율이다. 미국 상장사의 10년 평균 주주환원율은 90%가 넘는다. 일본이나 유럽도 70%에 근접한다. 그런데 한국은 겨우 29%에 그친다. 투자자 입장에선 한국 기업은 투자 가치가 낮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여기엔 일반 주주의 권리보다 지배주주의 이익을 중시하는 소수 재벌 일가 중심의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의 영향이 크다.
이와는 별도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 있다. 바로 북한과 관련된 ‘한반도 리스크’다. 이때 리스크는 다름 아닌 전쟁 위기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 고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현 정부 들어 그 정도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게 문제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대화보다는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며 북한과의 강대강 대결 자세를 취해 왔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연일 군사적 보복을 강조하면서 한국에 대해서는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이라고 규정지었다. 남과 북 두 지도자의 이 같은 결의는 말에 그치지 않았다. 현 정부 들어 한미군사훈련을 비롯한 대북 군사작전 횟수는 급격히 증가했고, 일본의 자위대까지 포함하는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도 전개됐다. 북한도 9·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하는 한편 포 사격과 미사일 발사를 통해 위협을 가중시켰다.
두려움과 우려는 해외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미국의 민간 군사 전문가들이 북한의 전쟁 개시 가능성을 경고한 가운데 미국 정부도 북한이 몇 달 안에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심지어는 올해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고, 거기에 불안을 느낀 투자자들이 대거 한국 증시를 떠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잘못된 진단은 치명적 처방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고 상속세를 낮추는 등 세금 제도를 바꾼다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한다. 주주환원 수준을 높이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등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아니고서는 백약이 무효이며, 설사 그런 대책이 나온다 하더라도 한반도의 평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그 또한 무용지물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현실을 윤 대통령이 모를 리 없을 텐데, 그럼에도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감세 정책을 대대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결국은 올해 총선을 의식한 물량 공세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지금 투자자들의 얼굴은 한국의 주가지수만큼이나 파랗게 질려 있다. 민생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으로서 가장 화급한 과제가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2024-01-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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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이탄희’를 응원한다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과는 일면식도 없거니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지향하는지 아는 바가 없다. 그럼에도 ‘이탄희’를 응원한다. 여기서 ‘이탄희’는 일개 정치인으로서 이탄희에 그치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는 ‘그의 간절한 호소’를 응원한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이 의원은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선거법만은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이때 선거법은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이하 준연동형)다. 준연동형 고수를 주장하는 이는 이 의원 외에도 많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준연동형이 유지돼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의원처럼 자신의 정치적 자산과 가능성까지 내걸고 준연동형 사수에 나선 이는 아직 없다. 그래서 ‘이탄희’를 응원한다.
민주당이 준연동형을 놓고 흔들리고 있다. 이재명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당초에는 내년 총선도 준연동형으로 치른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 대표 스스로도 준연동형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병립형 비례대표제’(이하 병립형)로 입장을 정리하자 민주당 지도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병립형으로의 회귀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또다시 위성정당을 만들 가능성이 큰 형편에서 현행 준연동형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내에선 병립형 회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속출하고 있지만, 명분보다는 총선 승리라는 실리를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당 주류의 생각인 듯하다. 이는 지난 14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내년 총선에 적용할 비례대표 배분 방식을 논의하자고 열린 의원총회였으나, 난상토론만 벌어졌을 뿐 뚜렷한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병립형은 의석수와 상관없이 선거 결과 나타난 정당득표율만큼 비례대표 의석을 나눠 갖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정해진 비례대표 의석이 총 50석이고 A 정당이 5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면 25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가져가는 것이다. 이 경우 A 정당이 획득한 지역구 의석은 별도다. 따라서 거대 정당이 지역구는 물론 비례대표 의석까지 대거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연동형은 정당득표율만큼 의석을 얻지 못했을 경우 비례대표에서 득표율만큼의 의석을 보충해 준다. 준연동형은 이렇게 배분하는 비례대표 의석에 일정한 한계를 설정한다. 지역구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하더라도 정당득표율만 어느 정도 얻으면 의석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정당의 원내 진입에 유리하다.
2016년 총선 때까지 적용되던 병립형을 2020년 현행 준연동형으로 바꾼 데는 이유가 있다. 거대 정당 위주의 승자독식 구조를 뜯어고쳐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만듦으로써 정치혁신의 발판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요컨대 병립형으로의 회귀는 그런 정치혁신을 향한 발걸음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우리 정치가 그만큼 퇴행하는 셈이다.
현행 준연동형의 문제는 위성정당이다. 2020년 총선 때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의석까지 대거 확보하는 편법을 동원했고, 민주당도 그와 다를 바 없는 행동으로 같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정치혁신의 취지를 거대 양당 스스로가 훼손한 것이다.
그래서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게 위성정당 방지책이다. 이 의원은 총선 이후 2년 이내에 거대 정당과 위성정당이 합당할 경우 국고보조금의 50%를 삭감하는 내용을 담은 정치자금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그게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정치혁신을 위해 정치권이 약속했던 준연동형을 지켜야 한다는 이 의원의 주장은 정당하다.
대선 후보 시절 ‘위성정당 출현 방지를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공약했던 이재명 대표는 최근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말을 바꿨다. 그에 대해 이 의원은 “멋없게 이기면 세상을 못 바꾼다”고 응수했다. 두 사람 중 누가 옳은가. 판단은 각자 다르겠지만, ‘국민에게 약속한 정치혁신 약속을 이렇게 쉽게 폐기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은 던질 수 있겠다.
정치혁신 같은 거창한 그 무엇도 좋지만, 그에 앞서 원칙과 약속이 지켜지는 정치를 보고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꼼수나 편법 따위에 한 번은 속아도 두 번은 속지 않을 지성을 갖고 있다. 이를 믿는 제2, 제3의 ‘이탄희’가 계속 나와 우리 정치권의 주류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2023-12-19 [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