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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 맹종, 순종, 그리고 아멘
기독교 성경은 ‘신은 번제 같은 제사보다 순종을 더 좋아하신다’고 전한다. 신이 좋아하시므로 순종하는 것은 종교인이라면 너무도 당연할 일! 종교인은 순종의 삶으로 신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순종(順從)이란 ‘순순히 따름’이다. 순순히 따름은 옳고 그름을 덮어놓고 무작정 따르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맹종(盲從)이다. 맹종은 신이 아니라 한낱 인간을 따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내게 들리는 저 말씀이 신의 말씀인가 아니면 설교자나 예배인도자의 것인가. 이를 처절하게 가리지 않고 무작정 따르는 건 그 자체로 신에 대한 망령이요, 따라서 죄가 된다.
맹종의 대표적인 예가 ‘아멘’ 남발이다. 아멘은 신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요 믿음의 고백이다. 굳이 뜻을 말하자면 ‘응당 그러합니다’ 정도이겠다. 입으로든 마음으로든 아멘을 표하는 행위는 곧 신을 떠올리고 간구하고 열망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그러므로 아멘은 신의 진실 안에서만 외쳐야 한다.
한국 교회에서 아멘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발되는 광경을 자주 본다. 설교자의 말 한마디 끝날 때마다, 그것이 신의 말씀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아멘을 외친다. 심지어는 설교자가 청중에게 아멘을 강요하는 일도 왕왕 있다. 이런 아멘은 공허한 메아리에 다름 아니다. 아멘을 이렇게 무분별하게 남발해서는 안 된다. 이는 순종이 아니라 맹종이다. 맹종은, 거듭 말하지만, 망령에 떨어지고 죄가 된다. ‘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기독교 십계명 가운데 하나다. 아멘을 함부로 남발하는 건 곧 신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이다. 그 죄가 가늠할 수 없을 만치 크다.
성경에는 베드로가 죽음의 고난에서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경에 굳이 이 장면이 넣어야 했을까. 여기엔 심오한 가르침이 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보다 자신이 예수를 더 믿고 따른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고난이 닥치자 그의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의 믿음은 맹종이었고, 그래서 나약했다. 두려움과 후회로 베드로는 자신의 믿음을 처절하게 갈등하고 고민하고 질문했다. 한참 뒤 부활한 예수가 찾아와 물었을 때 그는 “참으로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때 베드로의 믿음은 과거의 믿음과는 달랐다. 그는 맹종이 아니라 진정한 순종을 고백했던 것이고, 그런 순종이 있어 베드로는 이후 교회를 반석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맹종은 증오와 폭력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맹종에 신앙의 껍데기가 덧씌워지고 인간의 욕망이 거기에 얹어지면 위험성은 극에 달한다. 잘못의 선후를 따지기에 앞서, 1000년 전 십자군 전쟁이 그랬고 오늘날 중동에서의 반복되는 살육이 또 그렇다. 한 사람이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지만 다수가 망상에 빠져 있으면 종교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종교가 온전한 종교이겠는가. 오히려 더 참혹하고 더 거대한 광기의 집합체일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극우의 광기로 인해 몹시도 불안하다.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의사 표현이야 누가 뭐라고 하겠냐만, 극우 집단의 행태는 도를 한참 넘고 있다. “척결” “처단”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입에 달고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얼마 전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가 좋은 예다. 법원 시설을 마구 부수고, 경찰관을 폭행하고, 불까지 지르려 했다. 이로 인해 수십 명이 처벌될 처지에 놓였는데, 상당수가 특정 교회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젊은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들이 저지른 행위가 화해·포용·사랑을 최우선 의무로 삼는 기독교의 본래 모습이 아님은 분명하다. 스스로 나름의 정당성을 강변할지 모르나, 이들이 신이 아닌 특정 인간을 맹종한 결과가 아닌가 싶어 심히 걱정이다. 교회는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중추여야 할 젊은이들이 행여나 일부 극우 인사의 말과 논리를 맹종한다면 한국 기독교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 특히 젊은 기독교인은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져야 한다. 신앙을 의심하라는 게 아니다. 지금 자신이 신앙이라 여기는 게 혹여 맹종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게 들리는 저 말씀이 진정 신의 말씀인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불교에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말이 있다. 부처를 죽이고 조사도 죽여라? 어찌 부처와 조사를 생물학적으로 죽이라는 말이겠는가. 귀에 들리는 대로 맹종하지 말고 쉼 없는 의문을 통해 부처와 조사조차 뛰어넘으려 노력해야 비로소 진리에 닿을 수 있다는 경구인 것이다. 이게 꼭 불교에서만 통용되는 가치는 아닐 터이다.
2025-02-1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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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국민의힘은 국민에게 힘이 되고 있나
국민의힘은 “내란 공범”이라는 야당의 비난에 발끈한다. “여당 의원 상당수가 내란의 공범”이라고 한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한 게 그 사례다. 공범이다 아니다 따지기에 앞서 사실부터 정리해 보자.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5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누가 봐도 위헌·위법한 계엄! 천만다행으로 190명 의원이 참석해 전원 찬성으로 2시간 40분 만에 계엄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거기에 국민의힘 의원은 겨우 18명 있었다. 지난달 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을 앞둔 국회. ‘탄핵안 반대’ 당론을 좇아 국민의힘 의원 105명은 투표를 거부했다. ‘투표 불성립’으로 탄핵안은 자동 폐기.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14일 2차 표결에서 탄핵안은 통과됐다. 투표 결과는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 반대·기권·무효표는 대부분 국민의힘 의원들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27일 국민의힘 미디어특위는 내란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입장문을 보도자료 형태로 배포했다. 입장문은 검찰이 허위 사실로 김 전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 국민의힘이 왜 김 전 장관의 입장을 공유하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이 임명 안 돼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불가’ 입장을 고수, 최상목 대행의 재판관 2명 임명에도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달 31일 법원이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단히 유감”이라고 밝힘으로써 윤 대통령 측의 “불법 무효”라는 주장과 궤를 같이했다.
이쯤 되니, 내란 공범이라는 비판에 국민의힘이 발끈하는 게 자가당착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나름의 논리를 내세운다. 박수영 의원이 지난달 28일 ‘12·3 내란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시민들의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 바로 그것이다. 박 의원은 ‘무죄 추정 원칙’을 거론했다. 헌재 판결 전에는 내란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박 의원의 답변이 곧 국민의힘의 기본 인식일 테다.
국민의힘에 묻게 된다.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무장 군인들이 국회를 해산하려 한, 온 국민이 생중계로 목도한, 그 장면은 무엇인가. 강도가 사람을 찔러 죽이는 것을 눈으로 보고서도 “확정 판결 때까지 살인이라 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나. 검찰이 김용현 전 장관 공소장에서 확인한 바, “총을 쏘고 도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윤 대통령의 행태는 무엇인가. 그 자체로 내란 현행범 아닌가. 법원도 체포영장에 윤 대통령의 죄목으로 ‘내란 우두머리’라고 적시하지 않았나.
일부 국민의힘 의원이 ‘현 사태에 대한 반성’이라는 말을 꺼낼라치면 국민의힘 주류는 “배신자”라며 몰아세운다. 반성이 없으니 사과도 없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불안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 집권 여당의 비대위원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밝히기는 했다. 하지만 거기에 비상계엄이 잘못이라는 말은 없다. 단지 불안과 걱정을 끼쳤을 뿐이라고 했다. 읽기에 따라서는 대통령 탄핵을 막지 못해서 사과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조차도 권 위원장 개인의 사과일 뿐, 당 차원의 공식 사과는 아니다.
비상계엄·탄핵 관련 국민의힘 내부 기류를 5선의 윤상현 의원이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윤 의원은 지난달 28일 전광훈 목사 주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국민대회’ 단상에 올라 “탄핵소추안을 막아내지 못했다”며 집회 참가자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해당 집회에는 국민의힘 다른 의원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목사는 비상계엄 선포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발언한 인사다. 제주항공 참사에 대해서는 “사탄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이 사탄에게 허락한 것”이라고 했다. 참사를 하나님이 허락했다는 것이다. 한국 보수정치의 본산임을 자처하던 국민의힘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어 당혹스럽다.
여러 언론사의 새해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 정도가 윤 대통령 탄핵을 찬성했다. ‘윤 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 ‘윤 대통령에 내란죄를 적용해야 한다’ 등의 응답도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12·3 비상계엄은 내란이 아니다”는 국민의힘 주장에 절대다수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국민 대의 기관인 정당은 민심을 따르는 게 순리인데도, 국민의힘은 거꾸로 가고 있다.
‘국민의힘’은 2020년 9월 국민 공모를 통해 지어진 당명이다.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힘’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힘’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라는 의미가 부여됐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셋 중에 하나라도 부합하는 게 있는가. 국민에게 진정으로 힘이 되려 하는가. 국민의힘은 자문하길 바란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2025-01-0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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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 뺨도 대 주랴?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다.” 올해 8월 16일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이 KBS에 출연해 한 말이다. 김 차장은 “마음이 없는 사람을 다그쳐서 억지로 사과를 받아낼 때 그게 과연 진정한가”라는 말도 덧붙였다. 대통령실 안보 담당 고위직 인사의 말이니 현 윤석열 정부가 일본을 대하는 기조로 봐도 무방하겠다. 좋게 해석하면, ‘우리가 정성을 다하면 일본이 스스로 뉘우쳐 반성하고 사과할 것’이라는 의미이겠다. 그런데, 과연 그리되고 있는가.
지난 24일 일본에서 현지 지자체와 민간단체가 주관한 ‘사도광산 추도식’을 통해 ‘일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말은 추도식이었으나 실은 경축식에 다름 아니었다. 조선인 노동자 강제 동원에 대한 사죄는 없고,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분위기만 역력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을 모욕한 셈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반발하지 않는다. 공식 항의 성명이나 대사 초치 같은 대응도 없다. 외교부는 26일 기자들에게 “유감을 표했다”고 전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누구에게 유감을 표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이날 이탈리아에서 열린 G7 외교장관회의에서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에게 “양국 협력의 긍정적 모멘텀을 이어가자”고 말했다고 한다. 일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애쓰는 윤석열 정부의 모습이 안쓰럽다. 그 모습에서 독도까지 떠올리게 된다.
지난해 12월 국방부가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 ‘독도는 영토분쟁 중’이라고 표현해 논란을 일으켰다. 올해 2월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에 독도가 ‘재외 대한민국 공관’으로 표기돼, 독도가 한국 영토가 아님을 시사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올해 5월 민방위 교육 영상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로 표기된 지도가 등장했다. 올해 7월 일본 정부가 ‘2024 방위백서’에서 독도를 자국 영토로 주장하자 외교부는 독도 공식 홈페이지 한국어·영문판에는 즉각 항의 논평을 공개했으나, 일본어판에는 한동안 공개하지 않다가 석 달이 지나 언론이 취재에 나서자 마지못해 게재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상징적인 장면이 앞서 있었다. 지난해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당시 일본 총리와의 만남이었다. ‘제삼자 변제 방침’(일본 전범기업의 강제징용 배상책임을 우리 정부가 떠안기로 한 방침)이라는 선물을 안고 도쿄에 간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 만찬에서 폭탄주로 ‘러브샷’을 했다. 그런데 일본 총리를 역임한 인물 가운데 이른바 ‘독도 망언’을 가장 많이 한 이가 기시다 전 총리다. “독도는 역사적 사실과 국제법상으로 명백히 일본 고유 영토”라거나 “한국의 독도 점거는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등 그가 행한 ‘독도 망언’이 스무 차례다. 두 번째로 많다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겨우 일곱 차례다. 참고로, 일본 정부는 올해 외교 청서에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라고 공식 기술하는 등 영유권 주장의 수위를 근래 더욱 높이고 있다.
윤 대통령의 8·15 경축사와 3·1절 기념사를 보면 윤 대통령이 일본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해당 기념사와 경축사에서 일본과의 협력을 애써 강조하면서도 과거사나 독도 문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지만, 윤 대통령 주변에 일본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뉴라이트·극우 성향 인사들이 대거 포진한 결과라고 보는 게 타당할 듯싶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독립기념관을 비롯해 역사나 역사교육 관련 기관의 임원 중 최소 25개 자리에 뉴라이트나 극우 성향 인사들을 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하튼 윤석열 정부는 ‘물잔의 절반’을 비유로 들며 일본을 대해 왔다. 한국이 물잔의 반을 먼저 채우면 일본이 진정성 있는 태도로 나머지 반을 채워주리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윤석열 정부의 그런 믿음은 보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의를 외치며 큰 틀에서 양보했지만, 사도광산 추도식에서 보인 것처럼, 일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보다 적극적이고 단호한 태도로 일본을 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그래서 나온다.
기실 윤석열 정부는 강제 징용 제삼자 배상,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수용,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용인 등 일본이 원하는 것은 대부분 들어줬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줬나, 나머지 반 잔에 물을 채우기는 할 건가, 지금은 그렇게 물어야 할 때다.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 뺨도 돌려대고, 속옷을 달라 하면 겉옷까지 벗어주라고 예수는 가르쳤다. 원수마저 사랑하라는 거룩한 그 가르침은, 그러나 예수의 반열에 오른 성인이라야 비로소 실천이 가능할 것이다.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어야 하는 그게 섭리다. 섭리를 벗어난 관계를 요구하는 사람은, 단호히 내치는 게 옳다.
2024-11-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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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무엇을 얻고 잃었나
미국에 스팀슨센터라는 연구기관이 있다. 북한 문제 등 국제 관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다. 이곳의 선임연구원 로버트 매닝 박사가 지난달 초 “한반도는 1950년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올해 1월에는 미국 미즐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이 같은 말을 했다. 이들은 지금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설마…, 하면서도 공포가 엄습하는 걸 어쩔 수 없다. 근래 돌아가는 꼴이 그리 만든다.
북한은 이미 남한을 타국이자 적국으로 규정했다. 경의선과 동해선의 북측 구간 도로·철도 폭파는 상징적이다. 동족 간 화해와 협력의 상징을 무참히 걷어냈기 때문이다. 이러다 비무장지대가 중무장지대가 될 판이다. 북한이 보낸 오물 풍선이 대통령실 앞마당에 ‘정확히’ 떨어지고 ‘남한이 침범했다고 북한이 주장하는’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날아다니는 현실은 또 어떤가. 남북 지도자의 말에는 살기가 서려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일 “북한 정권 종말” 운운했고, 바로 다음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공격력을 동원하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불난 데 기름 부은 격이다. 당장에 나토군의 우크라이나 파병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그리 되면 기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전 양상으로 비화된다. 안 그래도 국제질서가 신냉전 구도로 급변하는 형국이다. 70여 년 전 냉전의 시기 우리 민족은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 한반도가 또다시 냉전의 최전선이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알려지자마자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을 검토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국군의 파병까지 거론되면서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군사적 개입이 현실화되면, 남북은 우크라이나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상황을 맞게 되고, 종국에는 한반도에까지 전운이 드리울 수밖에 없다. 이는 군사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정치인은 전쟁을 시작하고, 부자는 무기를 대고, 가난한 사람은 자식을 제공한다. 전쟁이 끝나면 정치인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하고, 부자는 생필품 가격을 올리고, 가난한 사람은 자식의 무덤을 찾는다.’ 1990년대 내내 전쟁을 치른 세르비아에서 속담처럼 떠도는 말이라고 한다. 실상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국민 몫이다. 현 상황에 우리 국민은 불안하고 두렵다. 자식을 군대에 보냈거나 보내야 하는 부모들은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민을 안심시키는 대신 위기감을 부추긴다. 현직 국가안보실장과 국회 국방위 소속 여당 의원이 최근 나눈 문자 대화가 논란이다. ‘우크라이나와 협조해 북괴군 부대를 폭격하고, 이 자료를 심리전에 쓰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러시아와 북한을 상대로 당장 전쟁이라도 벌일 기세다. 어쩌면 현 정부의 안보 담당자들은 실제로 전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긴장과 대결을 불사하려는 듯한 흐름이 느껴진다”고 했다. 살상무기 지원 등에 대해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일 안보실장 협의가 있었고 국방장관 회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관련 논의가 이미 상당히 진행됐을 수도 있다.
〈손자병법〉은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전쟁은 국가 대사이며, 생사의 바탕이자 존망의 길이니,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병법서의 첫머리가 이러할진대, 국정 책임자라면 필사의 노력으로 전쟁을 피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 이유에서 새삼 요구되는 게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변화다.
윤 대통령은 화해와 협력이 아니라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해 왔다. 그 결과 남북은 ‘적대적 두 국가’가 됐다. 한반도 비핵화는 요원해졌고, 북의 핵능력은 더 빠르게 고도화됐다. 한미일 공조에 몰두하면서 중국, 러시아와 멀어졌다. 특히 러시아는 북한과 동맹을 복원한 데 이어 북한의 파병을 계기로 혈맹이 되려 한다. 남한은 러시아까지 적으로 둬야 할 상황인 것이다. 한미일 공조는 필연적이라 해도, 그것이 중국, 러시아 등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전략과 전술은 유연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병법에도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고 하지 않았나. 먼 세력과는 친하게 지내고 가까운 세력을 공격해야 경쟁에서 이기는 법이다.
이제 윤석열 정부의 기존 외교·안보 정책으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냉철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북한의 도발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한반도에 평화를 촉진하는 일 역시 내칠 수 없는 목표다.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국토를 보전하고 국민을 지키는 데 궁극의 가치가 있다.
2024-10-3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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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폭염 추석이 던진 경고
“추석(秋夕)이 아니라 하석(夏夕)! 한가위가 아니라 한더위!”
며칠 전 추석 명절을 두고 세간에서 한탄조로 나온 말이다. 그만큼 더웠다. 연휴 내내 열대야와 함께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올여름 유례없는 더위에 사람들은 놀랐는데, 추석에까지, 아니 추석 이후에도 계속되는 폭염에 더 경악하고 있다. 본능적으로 ‘종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런 시대에 아기를 낳는 건 죄악”이라는 젊은이들의 푸념이 푸념이 아니라 절규임을 깨닫게 된다.
예언이든 경고이든 인류에게 경각심을 촉구하는 소리는 오래전부터 들렸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 논란이 그중 하나다. 지질학적으로 현세는 충적세(沖積世, Holocene)다. 마지막 빙하기로부터 지금까지 1만 7000여 년 동안의 시기로,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사람이 살기에 딱 좋은 기후 덕에 인류는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지구가 변하고 있다. 아니, 이미 변했다. 무엇보다 기후가 옛날과 확연히 다르다. 비가 내리면 걷잡을 수 없이 내리고, 기온은 펄펄 끓어 식을 줄을 모른다. ‘적당’이라는 게 없다. 마치 인류를 위해 존재한 것처럼 보이는 충적세가 이제는 끝났다고 봄 직하다.
온전히 사람 탓이다. 생산활동을 핑계로 환경을 파괴했고, 거기에 비례해 탄소 배출량이 급증하면서 이상기후를 비롯한 종말의 징후가 확연해진 것이다. 인류가 낙원의 시기인 충적세를 스스로 끝장내고 전혀 다른 시대를 열었으니, 그 새로운 시대를 인류세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몇 년 사이 지질 전문가들 사이에서 쏟아졌다. 인류세 논의는 아직 시작 단계로, 올해 3월 국제지질학연합(IUGS)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됐고, 지난달 말 부산에서 열린 세계지질과학총회(IGC)에서도 제안됐다. 지구 기준으로 봤을 때 기존 충적세가 인류세로 바뀌었다고 할 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모두 부결되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인류 종말을 경고하는 메시지로서 인류세는 여전히 유효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점점 더 뜨거워지고 점점 더 오염되고 점점 더 파괴되는 지구를 향해 인류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엄중한 화두로 기능하는 것이다.
관련해, 상징적인 일이 지난달 29일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우리 정부의 탄소 감축 행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2020년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탄소 순배출량 0) 달성을 국가 비전으로 발표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른 것으로, 이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정부가 탄소 감축 목표를 2030년(2018년 대비 40%)까지만 정해 놓고 이후로는 아무런 규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청소년기후행동이라는 단체가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정부에 대해 2031년 이후의 감축 목표를 구체화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더불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주문했다. 탄소중립과 관련해 미래 세대에 무책임한 정부를 질책한 셈이다.
녹색성장이든 탄소중립이든 결국은 인류, 특히 미래 세대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갈 길이 멀고도 험한데, 그에 비해 현 정부의 노력은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최근 파행을 겪고 있는 그린리모델링 사업이 좋은 예다. 정부는 2014년부터 탄소 감축 차원에서 민간 건축물 친환경 리모델링 사업을 예산을 들여 지원해 왔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사실상 사업을 폐기한 것이다. 소소하지만 탄소중립과 관련해 현 정부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사례라 하겠다.
여하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만큼 정부의 태세 전환이 시급히 요구된다. 2031년 이후의 탄소 배출 목표를 제시하는 등 장기적인 차원에서 탄소중립 정책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현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친원전 정책은 미래 세대에 또 다른 부담을 지운다는 점에서 신중한 논의와 함께 다른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국회 차원의 관련 법 개정 노력도 동반돼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은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만으로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다.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에너지 절약 일상화 등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개인과 기업의 실천이 병행돼야 한다.
누구는 탄식하며 말한다. “작금의 이상기후가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데 우리가 뭘 어쩌겠냐”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으면 인류의 미래가 어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올해 추석은 유례없는 폭염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했다.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책임을 질 때”라고. 자연이 인류에게 보낸 최후통첩일 테다. 그 의미를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할 테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2024-09-1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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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독립기념관장이라는 그 자리
광복회가 15일 예정된 정부 공식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키로 했다. 1965년 광복회 설립 후 처음 있는 일이다. 독립운동가 단체들로 구성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도 광복회와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 역시 초유의 일이다.
지난 8일 취임한 김형석 제13대 독립기념관장 때문이다. 이들은 김 관장 임명 철회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김 관장이 독립기념관장으로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김 관장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부인하며 일제강점기가 근대화에 도움이 됐다고 주장하는 전형적인 뉴라이트 인사’로 규정한다.
김 관장은 뉴라이트임을 부인한다. 스스로도 뉴라이트의 폐해와 오류를 아는 듯하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을 테다. 역사에 대한 평가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따위는 학문적 소신의 발로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가 살아온 흔적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김 관장은 건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 경희대 대학원에서 사학 박사 학위를 땄다. 이후 역사학자로서 의미 있는 활동은 찾아지지 않는다. 대신 개신교 목사이자 대북지원 사업가로 활동한다. 1996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다가 이듬해 한민족복지재단을 설립해 10여 년간 사무총장과 회장을 맡았다. 이후엔 다시 변신해 2016년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장, 2020년 대한민국사연구소 소장, 2022년 (재)대한민국역사와미래 초대 이사장이 됐다.
독립기념관은 일본 정부의 과거사 왜곡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바탕으로 건립됐다. 1982년 7월 일본 문부성이 고교 교과서에 일제강점기 관련 부분을 수정했다. 창씨개명, 신사참배, 징용 등의 행위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바꾼 것이다. 반일 감정이 불타 올라, 같은 해 8월 독립기념관 건립준비위원회가 출범하고 국민 모금 운동이 전개됐다. 성금은 당초 목표액 500억 원을 훌쩍 넘어 걷혔다. 1987년 광복절에 개관한 독립기념관은 이처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 강력 대응하자는 국민의 의지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그래서 독립기념관장직은 범상한 자리가 아니다. 항일과 독립의 가치와 의미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역대 독립기념관장의 면면에서 그런 상징성을 느낄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이자 광복군 출신인 안춘생 1·2대 관장을 비롯해 역대 독립기념관장 대부분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었다. 예외가 7대 김삼웅 관장과 12대 한시준 관장이었다. 하지만 김삼웅 관장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조사위원이었고, 한시준 관장은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사 연구에 매진해 온 학자라는 점에서 수긍이 된다.
김 관장은 그런 상징성을 갖고 있지 않다. 독립운동가 후손도 아니고 학자로서 편력도 독립운동사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평생 일군 경험과 전문성, 인적 네트워크 능력 등을 총동원해 독립기념관 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경험이라고 하지만 대북지원 활동가 외 특별한 이력이 보이지 않는다. 전문성을 따져도 그렇다. 김 관장은 ‘명말의 경세가 서광계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근현대사 특히 독립운동사와는 관련이 없는 주제다. 역사 관련 저서도 일천하다. 역사 논평이라 할 〈끝나야 할 역사전쟁: 건국과 친일 논쟁에 관한 오해와 진실〉이 있지만, 친일청산의 의미를 폄훼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 재검증을 요구하는 등 논란이 많은 저서다. 이는 김 관장이 뉴라이트로 지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적 네트워크로는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재)대한민국역사와미래가 유력하다. 하지만 이 재단의 손병두 상임고문은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건축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이영일 고문은 문재인 정권을 주사파 정권으로 단정해 파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어느 경우에서도 독립기념관장으로서 적합한 자질과 능력, 자격을 찾을 수 없다. 김 관장은 “독립기념관장으로서 무슨 일을 중점적으로 하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들의 명예 회복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독립기념관장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답변이다. 이런 김 관장을 두고 역사학회 등 역사 관련 48개 단체는 13일 “민족 자주와 독립 정신의 요람인 독립기념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독립기념관은 15일 열기로 했던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했다. 독립기념관 개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독립(광복)을 기념(경축)하지 않는 독립기념관이라니!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아찔하다.
2024-08-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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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라는 그 말 [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당신, 좌파네!” 적의 가득 담은 이 말이 목하 대한민국 사회에 흘러 넘친다. ‘좌파’가 너무나 가볍게 소비되는 것이다. 나와 배치되는 상대라면 일단 좌파라고 낙인찍는다. ‘좌파’가 그리 함부로 남발해도 되는 말인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과거 언사와 관련한 논란이 한 예다. 이 후보자는 2022년 12월 자유민주당 주최 강연에서 좌파를 거론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문화권력도 좌파!” “‘택시운전사’ ‘암살’ ‘베테랑’ ‘기생충’은 좌파 영화!” “정우성은 좌파 연예인!” 당시 이 후보자가 무엇을 근거로 그런 가름을 했는지 분명치 않다. 정우성은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에서 내레이션을 맡아서 좌파라는데, 도통 요해 불가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벌어진 좌파 다툼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지난 11일 2차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TV토론회 장면. “한동훈 후보가 (좌파 세력의) 아이돌로 내세워진 게 아니냐?”(원희룡) “본인도 모르게 (좌파) 트로이의 목마가 되는 것 아니냐?”(윤상현) “(한 후보자에겐) 민청학련 주모자인 이모부가 계시지 않느냐?”(원희룡) “원 후보자야말로 극렬 운동권 출신 아니냐?”(한동훈) 차기 여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 뜬금없이 좌파 공방이 뜨거웠다. 한동훈이 좌파라니…. 그의 이력을 볼 때, 아무리 목불인견의 이전투구 전당대회라지만, 헛웃음이 절로 났다.
‘좌파’는 서구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근대 자유주의 시민사회의 효시였음은 두루 아는 사실. 봉건 절대왕정을 종식시키고 국민이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만드는 게 당시의 시대정신이었다. 그해 소집된 국민회의에서 혁명을 완수하려는 공화파는 왼쪽(좌파)에, 이를 막으려는 왕당파는 오른쪽(우파)에 자리 잡았다. 요컨대 좌파는 새로운 시대의 개창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일궈낸 주체였던 것이다.
서구에서 만들어진 ‘좌파’라는 단어를 두고 저주를 쏟으며 목숨을 걸 정도로 치열하게 다투는 곳이 우리 대한민국이다. 왜 그런가. 좌파를 지칭할 때 그 전제로 ‘좌파=악’이라는 등식을 갖기 때문이다. 어째서 악인가. 과거에는 북한에 대한 태도를 따졌다. 북한을 적대하지 않고 “공존” “평화” 운운하면 좌파라고 몰아붙였다. ‘좌파’ 앞에 ‘종북’이라는 단어가 접두어처럼 붙는 까닭이다. 요즘은 종북은 차치하고, 보수연 하는 정권의 잘못을 지적하면 일단 좌파로 분류한다. ‘채 상병 특검’을 촉구하는 동료 해병을 두고 좌파 해병으로 규정하는 데서 확인되듯, ‘좌파’ 오남용은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친구에게 “넌 좌파야!”라고 쏘아붙이는 지경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대한민국에 좌파는 있다? 없다? ‘있다’는 대답은 옳으면서도 틀리다. 스스로 좌파임을 밝히는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틀렸고, 상대를 좌파로 규정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점에서 옳기 때문이다. 여하튼 서구에서 태동한 좌파가 갖는 의미와 가치가 대한민국에선 깡그리 사라졌다고 하겠다.
이런 우리 현실에서 돌아봐야 할 인물이 있다. 영국 노동당 당수였던 토니 벤(1925~2014)이다. 그는 1950년 정계에 입문한 이후 철두철미 좌파였다. 노동당 다른 의원들이 점점 우경화할 때 그는 더 좌경화했다. 그런 벤이 작고했을 때 우파 신문 〈텔레그라프〉조차 논평에서 ‘영국의 국보’라는 표현을 썼다. 그보다 앞선 2006년 BBC가 실시한 ‘현존 최고의 정치 영웅’을 묻는 조사에서 벤은 1위를 차지했다. 대표적인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의 시민들은 노동자를 지지하고 반전·인권 운동을 주도하며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등 평생을 왼쪽을 향해 걸은 벤을 진정으로 추앙하는 것이다.
좌파를 까닭 없이 증오하거나 값싸게 치부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말을 하고픈 게다. 여기서 질문 하나 더! 대한민국에 우파가 있을까? 좌파가 그런 것처럼, 스스로 우파를 자칭하는 이도 드물다. 좌파를 매도하고 비난하는 이들도 좀체 자신을 우파로 내세우지 않는다. 심지어 극우로 분류되는 쪽의 사람들도 그렇다. ‘우파=정의’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여하튼, 좌파가 반드시 악은 아니며 우파가 꼭 정의가 아니라면, 무엇이 중요한가.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이다. 좌파·우파보다 정파·사파를 따지는 지혜가 절실하다. 귀족 가문의 토니 벤이 철두철미 좌파의 길을 걸은 당위와 과정을 좇다 보면 그런 지혜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테다. 그럼에도 이렇게 따지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쓴 당신, 좌파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2024-07-1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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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 지역의 의사는 왜 안 되나
2025학년도 전국 의대 신입생 중 비수도권 대학에서 지역인재 전형으로 뽑는 인원이 1913명이다. 2024학년도보다 888명 늘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도권 학원가에 분다는 소위 ‘지방 유학’ 바람이다. 현행 지역인재 전형에 따르면 비수도권 고등학교에 입학·졸업해야만 해당 지역 의대 지원이 가능하다. 2028학년도부터는 중학교까지 조건이 확대된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지방 유학을 꾀하는 의대 지망생과 그 부모들은 중학교, 심지어는 초등학교도 비수도권을 마다하지 않는다. 의대 졸업 후 수도권으로 돌아가 의사 노릇 하면 되기 때문에 그 정도 고생은 감내하겠다는 심보다.
이쯤이면 정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의대 증원의 상당 부분을 비수도권 의대에 배정했다. 피폐해진 지역 의료를 살려보겠다는 절박한 심정에서였을 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의대생들이 졸업 후 수도권으로 떠날 경우의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지역인재 전형은 수도권 회귀를 염두에 둔 학생들의 의대 진학 방편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지역에 의사가 남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제안과 논의가 있었다. 지역의사제가 대표적이다. 지역 의대생에게 장학금 등 혜택을 주고 의사 면허를 취득하면 일정 기간 해당 지역 의료기관에 복무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도 있다. 지역의사제와 비슷하지만 지역 복무를 지자체 등과의 계약에 따르도록 한다. 공공의대 설립 주장도 있다. 여기 의대생은 장학금 등을 받되 10년간 지역의 공공 의료기관에서 복무해야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의사 면허가 취소된다.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국방의대 논의도 진행 중이다. 장기복무 군의관을 양성해 필요에 따라 지역·공공 의료 부문에도 활용하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는 게 없다. 지역의사제는 지난 21대 국회에서 야당 주도로 추진됐으나 무산됐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는 정부가 지난 2월 도입 방침을 밝혔으나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공공의대 설립 요구는 꽤 오래전부터 제기됐으나 성과는 없었다. 국방의대는 국방부가 지난달 “올해 안에 연구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기본적으로 장기복무 군의관 확보 방안일 뿐이다.
이러한 제도들의 한계점도 지적된다. 지역의사제나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는 의대생이 장학금을 반납하는 식으로 지역 복무를 거부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기본권 침해 논란에 대한 법적 대안도 마련되지 않았다. 공공의대의 경우 10년 의무 복무를 강제하지만 인턴·레지던트 기간을 빼면 사실상 실제 복무 기간은 3년에 불과하다. 단기 의사양성기관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국방의대는 군의관의 민간 영역 활용에 대한 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파격적인 제안도 나왔다. 지난해 10월 당시 대한의사협회 임원이던 현직 의사가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린 ‘사관학교형 의대 설립’ 제안이다. 부모의 능력과 무관하게 국가가 의사 되는 길을 열어 주고, 졸업자에겐 공무원 신분을 부여해 지역의 필수·공공 의료기관에서만 종사하도록 제한하자는 것이다. 공무원 신분에서 벗어나면 의사로서 활동을 금지하는 대안도 담았다. 시행만 된다면, 사관학교형 의대는 지역의 필수·공공 의료체계 확립에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대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당 청원은 의사 단체의 반발과 대중의 무관심 탓에 한 달 만에 폐기됐다.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한 방안들은 그동안 숱하게 제안·시도됐으나 매번 좌절됐다. 의사 단체의 반발 탓이 크다. 현행 의사제도의 틀 안에서 기득권을 유지한 채 자신들만으로도 충분히 지역 의료를 살릴 수 있다는 의사 단체의 주장은 오만하고 위험하다. 이왕에 현실이 된 의사 증원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선 사관학교형 의대 도입 같은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의사 되는 길을 다양하게 열어 놓고, 학생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일이 왜 불가한지 의사 단체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역의사제 등 충분한 논의 없이 법안부터 밀어붙여 부작용을 초래한 정치권과 정부도 반성해야 한다.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은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 지역의 의사를 배출하는 것이다. 정부, 국회, 의료계, 시민단체를 아우르는 기구를 구성해 집중 논의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일이 시급하다. 처방이 중구난방이면 나을 병도 안 낫는 법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2024-06-0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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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군인의 명예
헥토르는 자신이 이길 수 없음을 알았다. 상대는 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 천하의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절대 무(武)를 자랑하는 자. 바로 그리스 군의 선봉장, 아킬레우스였다. 하지만 헥토르는 그 무시무시한 아킬레우스를 상대로 정면대결에 나섰다. 조국 트로이를 지켜야 하는 전사로서 임무를 다 하고자 한 것이다. 이미 승패를 짐작했던 헥토르는 제안했다. 패한 자의 시신만은 온전히 상대측에 돌려주자고.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거부했다. 동료 잃은 복수심에 불타던 아킬레우스는, 당연하게도, 헥토르를 쓰러뜨리고 그 시신을 능욕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가 전하는 이야기다. 자, 둘 중 전사로서의 명예는 과연 누구에게로 돌아갔을까. 이긴 아킬레우스인가 진 헥토르인가. 신은 헥토르의 손을 들어줬다. 전사는 어느 경우에서든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이란 게 있는데, 아킬레우스는 그 규범을 어겼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는 결국 신의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전사는 곧 군인이다. 군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각 잡힌 제복, 빛나는 훈장, 절도 있는 걸음걸이,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 따위다. 그런 군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경외심이 절로 우러난다. 그러나 진정한 군인에겐 겉모양이 다가 아닐 테다. 군인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규범이자 가치가 있다. 다름 아닌 명예다. 무공이 제아무리 높아도 스스로 명예롭지 못하면 참군인이라 할 수 없다. 아킬레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군인은 명예를 존중하고 투철한 충성심, 진정한 용기, 필승의 신념, 임전무퇴의 기상을 견지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그 바탕으로 삼는다.” ‘군인복무규율’이 명시하고 있는 군인의 자세다. 제1의 규범이 명예를 존중하는 것이다. 명예는 자기가 지키는 것이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다. 양심에 비춰 당당하게 행동하고 스스로 부여하는 도덕적 가치다. 죽음이 뻔히 눈앞에 보이는데도 아무런 조건 없이 전장으로 향하는, 군인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그 비장한 결단은 목숨보다 명예가 더 중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군인의 명예는 국가와 국민을 향해 있을 때 비로소 가치를 갖는다. 그렇다면 명예는 굴종과 함께 어울릴 수 없다. 굴종은 비굴한 순종이다.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것이 군인의 숙명이라지만, 그 명령이 부당한 것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히는 결기 또한 군인의 참모습이다. 진정한 명예는 바로 그런 것이다. 대의를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는 결연한 삶에서 명예는 빛을 발한다. 소신을 저버리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것, 자신과 타인에 속임이 없는 것이다. 제 안위를 지키고자 굴종하는 건 군인의 명예가 아니다. 권력의 눈치나 보는 군인, 그러면서도 창피한 줄 모르고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군인을 경외할 수는 없다.
말이 길고 번거로운 건 이른바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을 둘러싸고 보이는 일부 군인과 군 출신 인사들의 명예롭지 못한 행태가 안타까워서다.
이 사건에 대해 공수처 수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고 국회에선 관련 특검법까지 통과된 상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는 형편이다. 하지만 여러 의혹에 책임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 할 인사들은 사건이 일어난 지 10개월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별다른 말이 없다. 심지어 장군의 반열에까지 오른 이들까지 변명 또는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다. 그들에게서 생명보다 무겁다는 군인으로서의 명예는 찾아지지 않는다.
30여 년을 복무한 어느 부사관의 회한을 대신해 가수 김민기가 전하는 노래가 있다. ‘늙은 군인의 노래’다. 태어나 이 강산에 군인이 된 그 부사관은 아들과 딸에게 당부한다. 서러워 말 것이며, 좋은 옷도 탐하지 말고 맛난 것도 탐하지 말라고. 왜 그래야 하는가. 바로 자랑스러운 군인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흘러가 다시 못 올 청춘을 푸른 군복 입은 채 보냈지만, 그는 스스로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구국의 결단을 한 것도, 엄청난 무공을 세운 것도 아니지만, 짐작건대 군인으로서 명예를 지켰다는 자부심을 그는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이다.
늙은 군인만이 아니다. 젊은 육사 생도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사관생도 신조’를 외친다. “하나,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둘,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셋,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은 군인들, 부끄럽지 않은가.
2024-05-0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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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4·19를 통해 5·18을 본다
“오월의 정신은 우리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이고, 우리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입니다.” 지난해 5·18민주화운동(이하 5·18)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낭독한 기념사 한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이전에도 5·18에는 각별한 자세를 보였다. 국민의힘 입당 전, 대선후보 때, 당선 첫해에도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의 정신’을 강조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김기현 전 대표,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 한동훈 현 비대위원장 등 역대 국민의힘 지도부도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보수로 분류되는 정권도 5·18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은 끊이지 않는다. 극우로 치부되는 세력만 그러는 게 아니다. 정부의 고위공직자나 여당 지도급 인사 중에서도 심심찮게 나온다.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그렇고, 김재원·김진태·김순례 전 의원 등이 5·18 폄훼 발언으로 당의 징계를 받았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는 국민의힘이 도태우 변호사를 공천했다가 ‘5·18 북한 개입설’ 등 도 변호사의 과거 발언이 문제가 되자 공천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에는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의 5·18 폄훼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4·19혁명(이하 4·19)과 관련해서는 그런 행태를 목도하기 어렵다. 이유가 있다. 4·19는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평가가 끝난 사실(史實)이다.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루어 낸 대한민국 최초의 성공한 혁명인 것이다. 이런 평가는 국제적으로도 공인됐다. 그 결과 ‘4·19 기록물’이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다. 현행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한다. 3·1운동과 함께 4·19 정신이 명시된 것이다. ‘4·19민주이념’은 1962년 개헌 때 처음 수록된 뒤, 1980년 개헌 때 삭제됐다가, 1987년 개헌 때 다시 수록됐다. 헌법 전문은 헌법 제정의 목적과 지향하는 가치가 담긴 최상위 규범이다. 4·19에 대한 여타의 논란을 불허하는 건 헌법 전문이 갖는 그런 권위 덕분이다.
5·18도 정부기관이 오랜 기간 조사와 수사를 통해 그 성격과 의미를 규정해 놓은 상태다. 1995년 제정된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특별법’은 1980년 광주에서의 민중 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선언했다. ‘북한 개입설’ 따위는 국방부가 10여 년 전에 이미 부인했다. “5·18내란은 국헌 문란”이라는 대법원 판결도 나왔다. 민주화운동으로서 5·18을 대한민국의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공히 인정한 것이다.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5·18 기록물’은, ‘4·19 기록물’보다 12년 빠른, 2011년에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는 ‘5·18민주화운동은 한국의 민주화에 큰 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1980년대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의 냉전 체제를 해체하고 민주화를 이루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여겨져 왔고, 그런 세계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라고 명기돼 있다. 5·18 역시 4·19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정치적·사회적 평가가 끝난 셈이고, 그렇다면 5·18 정신 또한 헌법 전문에 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5·18을 왜곡·폄훼하는 발언을 두고 흔히 망언(妄言)이라고 한다.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망언을 일삼는 자는 욕을 먹기 마련이고 퇴출돼 마땅해서, 특히 정치인인 경우 예외 없이 철퇴를 맞았다. 당사자들은 대개는 반성·사과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5·18 망언’은 좀체 근절되지 않는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부터 약속했으며 김기현 의원도 국민의힘 대표 시절 “당의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같은 당 유승민 전 의원은 “국민의힘에도 5·18 정신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정치인이 많다”며 “개헌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올해 1월 “5·18 정신은 대한민국 헌법 정신과 정확히 일치한다”면서 “헌법 전문 수록을 반대하는 세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반대할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미루고 자시고 할 이유가 없다. 총선 후 새 국회에서 여야가 힘을 합쳐 개헌을 추진하면 된다. 대통령과 집권여당, 거기에 제1 야당까지 공통으로 내놓은 약속이 허언으로 끝나는 건 그 자체로 국민에 대한 모독일 수밖에 없다.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결과물을 도출해 냄이 마땅하다.
2024-04-04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