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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양수산부 부산 안착에 거는 기대
부산의 겨울바람이 더욱 차가워지는 12월, 그 바람 속에 묵직한 변화가 일고 있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이 전광석화처럼 실행된다. 다음 주부터 동구의 IM빌딩과 협성빌딩으로 향할 이삿짐 행렬은 이달 셋째 주까지 이어진다. 이달 하순에는 임시 청사 개청식도 예정돼 있다. 800여 명의 삶과 책상, 꿈과 문서가 한꺼번에 옮겨오는 만큼 두 건물은 요즘 분주한 발걸음과 낯선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은 단순히 한 부처의 ‘주소 이전’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핵심 부처가 세종을 떠나 부산에 둥지를 튼다는 것은 부산이 오래전부터 선언해 온 ‘해양수도’의 위상을 실질적으로 재정립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부산 시민들은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슬로건을 자부심과 기대감을 담아 외쳐 왔다. 이제 그 외침에 실질적인 정책 동력이 더해지는 셈이다.
이번 이전은 해양 관련 인력과 기능, 예산의 부산 집중을 의미한다. 부산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물류·수산·항만·해사 산업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더 많은 인력과 기업, 기관이 부산으로 모여드는 흐름이 만들어진다면 지역 경제 활성화, 청년 일자리 확대, 인재 유출 방지 등 부산이 꾸준히 고민해 온 문제들에도 변화의 실마리가 생길 수 있다.
시민들의 기대도 자연스레 커지고 있다. 해양수산업 종사자들은 “드디어 부산이 해양수도의 길을 제대로 걷게 됐다”며 반색하고, 시민들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기대 뒤편에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물음이 남아 있다. 이번 이전이 부산의 해양산업 체질을 정말 개선할 수 있을까. 부처 이전을 통해 지역 발전을 이끌겠다는 정부의 복안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유효할까.
부산 시민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해수부만 내려와서는 절반의 성공도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해사법원 설치, 동남권투자공사 설립, 각종 해양 관련 기관·기업의 이전까지 이어져야 진정한 해양 생태계가 구축된다고 말해왔다. 수도권 중심의 구조를 벗어나 부산이 스스로 해양산업의 전 주기를 완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바람이 깃들어 있다.
전재수 해수부 장관은 최근 “동남권투자공사, 해사법원, 산하 공공기관과 해운 대기업의 설립·이전 계획을 담은 로드맵을 내년 1월 중순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 로드맵이 현실화한다면 부산의 해양산업 지형도는 크게 변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 수차례의 ‘이전 발표’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던 경험도 있다. 중앙 정부가 부산을 균형 발전의 실험대로 삼고자 한다면 단순한 이전이 아니라 인력·권한·예산·산업이 함께 내려오는 ‘기능 이전의 완결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또한 부산이 진정한 해양·물류 허브로 거듭나려면 이전 기관과 기업이 지역 대학·연구기관·중소기업과 촘촘히 연결된 산업 생태계를 함께 그려나가야 한다. 인재를 키우고 연구를 이어가며 지역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없다면 이번 이전의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특히 되묻고 싶다. 부산을 바라보는 핵심 의사결정권자들이 글로벌 해양도시에 대한 명확한 철학과 비전을 지니고 있는지? 기업과 기관이 부산에 장기적 투자 계획을 세우는지? 이 질문들에 ‘예’라고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전의 의미는 완성될 것이다.
부산은 오래전부터 ‘해양수도’를 꿈꿔왔지만, 그 꿈은 선언에 비해 늘 실체가 부족했다. 이번 해수부 이전과 추가 계획이 그 간극을 좁히는 계기가 될지, 지금 부산은 중요한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이전만 해놓고 ‘임무 완료’를 선언한다면 변화는 반쪽짜리로 남을지도 모른다. 지속적인 정책 추진과 책임 있는 후속 조치가 함께해야만 이 변화가 진짜 부산의 시간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제 공은 부산시로 넘어왔다. ‘해양수도 부산’을 향한 길을 더 빠르게, 더 힘있게 내달려야 한다.
해수부의 정책과 연구개발(R&D)을 지렛대 삼아 해운·항만의 디지털 전환, 미래 해양산업 선점, 수산물 가공·유통·첨단 양식 산업 육성, 해양 관광·마리나 산업 활성화 등에 속도를 붙여야 한다. 인재 양성과 글로벌 해양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긴 호흡의 전략도 함께 펼쳐야 한다.
정부 의지와 지역 전략이 어우러지고,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갈 때 부산은 대한민국 해양 중심이자 세계적 해양도시라는 이름을 스스로 증명하게 될 것이다.
류순식 해양산업국장·한국해양산업협회 사무총장 ssryu@busan.com
2025-11-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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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잠자던 무인도 '보전' 넘어 '활용'으로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는 해양수산부가 관리하는 무인도서가 2910개 있다. 480개의 유인도를 포함해 모두 3390개의 섬 가운데 86%를 차지하는 규모다. 전국 곳곳에 흩어진 이 무인도서는 각기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단순히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을 넘어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다채롭다.
먼저 국가 영토 주권 측면에서 무인도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영해를 설정하는 23개 영해기점 가운데 13개가 무인도서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육지 면적의 4.4배에 이르는 해양 관할권을 확정하는 핵심 기반이 된다. 이러한 무인도서가 없다면 우리 해양 영토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생태적 측면에서도 무인도서의 가치는 매우 크다. 고립된 환경 덕분에 무인도서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멸종위기 야생생물과 천연기념물의 서식지이며 고유 식물의 자생지이자 희귀 조류의 산란지 역할도 한다.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무인도서들은 말 그대로 다양한 생물종의 마지막 보루이자 낙원이며 안식처인 셈이다.
관광 자원으로서의 잠재적 가치 또한 주목할 만하다.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과 고유한 생태계는 지속가능한 해양관광 혹은 생태관광의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무인도서가 수려한 경관과 독특한 지질학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어 관광자원으로의 활용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무인도서의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보전하기 위해 해양수산부는 체계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2007년 제1차 무인도서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현재는 제2차 실태조사(8차년도)가 진행 중이다. 전남대학교 무인도서연구센터가 주관하며, 인문·사회, 지형·지질·경관, 식생, 식물상, 육상동물, 해안무척추동물, 해조류 등 생물상, 수질, 시설물, 해양쓰레기 등 다양한 분야를 종합적으로 조사한다. 매년 300여 개의 무인도서를 직접 방문해 영상 촬영부터 보고서 제작까지 실태조사의 전 과정을 수행하고 있다.
조사 결과는 무인도서의 관리 유형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보전 가치에 따라 절대보전(출입 자체를 제한해야 하는 지역), 준보전(일정 행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는 지역), 이용가능(훼손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에서 출입과 활동이 허용되는 지역), 개발가능(조건부 개발이 가능한 지역) 등 네 가지 유형으로 지정되며, 이러한 분류는 무인도서를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반이 된다.
관리 기반 구축과 더불어 해양수산부는 무인도서의 숨은 가치와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2017년부터는 매월 ‘이달의 무인도서’를 선정해 생태·지질·환경은 물론 문화, 역사, 인문·지리적 스토리까지 소개하고 있다. 2021년에는 최초로 ‘무인도서 백서’를 발간했고, 2022년에는 생태·경관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가 높은 100곳을 선별해 ‘무인도서 100선’을 펴냈다. 나아가 이러한 정보를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무인도서 종합정보제공’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해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2024년부터는 무인도서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기 위한 ‘무인도 LIVE’ 캠페인도 추진하고 있다. ‘무인도 재발견, 나와 대한민국이 더 커집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국민이 직접 무인도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무인도서를 직접 방문해 그 가치와 소중함을 체감하도록 하는 교육적 성격의 캠페인이다. 전국 공모로 선발된 참가자들이 무인도서의 안보·생태·관광적 가치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함으로써 올바른 이용과 가치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무인도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정책 방향을 기존의 ‘보전’ 중심에서 ‘보전과 활용의 조화’로 확대했으며, 2020년에 수립된 ‘제2차 무인도서 종합관리계획(2020~2029)’에서는 ‘자연과 사람, 건강과 활력이 넘치는 무인도서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정책 전환의 핵심은 무분별한 개발이 아닌 보전을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한 활용이다.
무인도서는 더 이상 외딴섬이 아니라 대한민국 해양력의 중심을 떠받치는 전략적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양한 생물의 피난처이자 생태적 보고라는 본래의 가치에 더해,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핵심 자원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던 시대를 넘어섰다. 보전의 원칙을 확고히 하되, 국민과 함께 그 가치를 체감하고 확장해 나가는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보전과 활용의 조화’라는 정책 전환은 이러한 흐름에 힘을 보태며 무인도서의 확장성을 한층 넓혀 주고 있다. 우리가 무인도서의 잠재력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5-11-1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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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대전환의 시대, 기술혁신으로 파고를 넘자
2003년, 필자가 청년 공직자로서 부산해수청에 발령받아 마주한 바다는 거칠고 역동적이었다. 그해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장기간 이어진 화물연대 파업이 있었고, 9월엔 최악의 태풍으로 불린 ‘매미’가 부산항을 할퀴고 지나가 크레인 붕괴로 인해 일부 부두 기능이 멈춰 서게 되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부산항의 성장세가 꺾일 것’이라며 우려했지만, 부산항과 이곳에 삶의 터전을 둔 노동자들은 하나가 되어 이를 극복했다. 그리고 바로 그해 말, 부산항은 우리 항만 역사상 최초로 연간 1000만TEU의 물동량을 처리하며 기적 같은 회복력으로 세계 항만물류업계를 놀라게 했다.
2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부산으로 돌아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 산업화와 고도 성장기의 최선봉에 섰던 이 도시는 이제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수식어가 나붙고, 청년층의 이탈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성장 동력이 되어야 할 대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며, 미래를 이끌 스타트업 기업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게 현실이다.
부산항 '디지털화' '탈탄소화' 혁신 속도
지능형 물류 플랫폼·친환경 벙커링 인프라
선택 아닌 생존의 문제… 결단과 실행을
새로운 성장 동력 원천은 '바다와 청년'
지난 30여 년간 해양 정책에 몸담고 살아온 탓일까? 필자는 부산이 다시 도약할 기회를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산항은 지난 십수 년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컨테이너를 처리하고 있는 항만 중 하나이다. 개항 이래 한 세기 반 동안 대한민국 수출입 관문으로서 국가 경제를 뒷받침해 왔고, 글로벌 환적항 가운데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지키며 수십 년간 견조한 성장세를 묵묵히 이어가고 있는 항만을 가진 도시가 바로 이곳 부산이다.
하지만 지역 항만물류 산업이 국가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견주어 보면, 아직 고삐를 늦추긴 이르다. 로테르담항이 창출하는 경제효과는 네덜란드 전체 GDP의 약 7%를 점유하고, 싱가포르항의 경우는 6%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부산항의 경우는 0.2%대에 그치는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은행 부산본부가 1월 발표한 ‘부산 지역 항만물류 산업의 현황 및 발전 방안’에 나와 있다.
싱가포르와 로테르담이 항만을 통하여 각각 동아시아 해운의 중심과 유럽의 산업 허브로 자리 잡았듯이 부산 또한 항만을 성장축으로 하여 다가오는 대전환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으로 대표되는 세계 산업사에서 유례없는 대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디지털 전환은 ‘기술혁신’을 촉매제로 하여 이루어지고 가속화되며 이 기술혁신은 청년 과학자의 열정과 틀을 깨는 사고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청년들이 기술혁신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은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구축되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에서 만들어지고 무르익는다. 이러한 규모 있는 R&D 투자는 정부와 공공기관, 대학과 대기업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지속될 수 있다.
또 하나 세계사적 패러다임 전환인 친환경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싱가포르는 이미 수소·암모니아 벙커링 허브 조성을 국가 전략으로 삼았다. 로테르담항도 액화 암모니아의 STS(Ship-To-Ship) 벙커링 실증 단계에 들어서는 등 두 항만은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도 세계 항만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두 선진 항만이 대전환기를 맞이하여 기민하게 대응하는 모습은 감탄스럽다.
부산항도 ‘디지털화(Digitalization)’와 ‘탈탄소화(Decarbonization)’를 양대 축으로 하는 항만의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기반의 지능형 물류 플랫폼과 스마트 자동화 터미널 구축, 그리고 친환경 에너지 벙커링 인프라 조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지금 우리의 결단과 실행이 부산항과 지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물류·조선·에너지 등 바다에 기반하고, 청년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기술혁신에 의한 ‘디지털과 탈탄소화’라는 부산항의 패러다임 전환은 궁극적으로 항만과 지역의 지속 성장을 이뤄낼 것이다. 앞으로 그려질 지역 미래상(未來像)의 중심에는 ‘청년’과 ‘바다’가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지난 150여 년간 부산항은 대한민국 경제의 관문이었다. 이제는 대전환의 파고를 넘는 범선이 되어야 한다. ‘기술혁신’이라는 돛을 펼쳐 디지털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대양을 항해 출항해야 한다. 항만을 통한 도시의 성장은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한 산업의 도약을 이루어 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대전환의 파고를 헤치고 지역과 국가의 새로운 100년을 이끄는 성장 동력의 원천은 결국 바다와 청년으로부터 시작되는 기술혁신에 있다.
2025-11-0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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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부산항 위기 극복, '영토' 확장이 핵심
최근 부산항의 물동량에 경고등이 켜졌다.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중 무역 전쟁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블록화·파편화되고, 2월 이후 해운 얼라이언스 재편이라는 이중 압박이 작용하였다. 이에 따라 올해 부산항의 물동량은 등락을 반복하며 소폭 성장세를 유지하다가, 6월부터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미중 무역 전쟁의 심화는 중국발 미국향 물동량 감소로 이어졌고, 글로벌 선사들이 얼라이언스 기항 항만에서 부산항을 제외할 경우, 얼라이언스 선사 간 연결 물동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부산항은 미국향 환적 물동량 감소 가능성과, 제미나이 얼라이언스 협력 대상에서 부산항을 주로 이용하는 HMM 등 디 얼라이언스 선사들이 제외되면서 물동량 감소라는 이중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일시적인 현상이든 구조적인 변화든, 이제는 능동적인 전략을 통해 부산항의 물동량 안정화와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도모해야 할 시점이다.
미중 갈등 속 물동량에 경고등 켜져
싱가포르, 항만공사 주도로 위기 극복
해외 거점 확보 사례 벤치마킹 시급
부산항의 위기는 단순한 항만 운영의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첫째, 대한민국은 2023년 기준 GDP 대비 무역 의존도가 약 88%에 달하며, 이는 미국(24.9%)이나 일본(45.2%) 등 선진국 대비 2~3배 높은 수준으로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하다. 둘째, 우리나라 수출액의 약 70.3%가 전자 부품, 화학 소재 등 중간재에 집중되어 있어 글로벌 가치사슬(GVC) 내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우리나라 대외 무역의 99% 이상이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에 극도로 취약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수출입의 약 80%가 경유하는 대만해협이 봉쇄될 경우, 대만(GDP 43% 하락)에 이어 가장 큰 경제적 피해(GDP 23.3% 하락)를 입는 것으로 분석된다. 해상 물류망의 안정성 확보는 곧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국내 제조기업들은 미중 갈등에 따라 북미(미국, 멕시코), 동남아 등으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하고 있으며, 분산된 생산 거점과 해외 물류 거점 확보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우리는 과거 위기를 기회로 삼아 혁신에 성공한 싱가포르항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세계 최대 선사인 머스크가 과도한 비용과 혼잡 문제를 이유로 거점을 말레이시아의 탄중 펠레파스항(PTP)으로 이전하면서, 싱가포르항은 약 170만 TEU의 물량이 단숨에 이탈하는 위기를 겪었다. 당시 싱가포르항만공사(PSA)는 이 위기를 발판 삼아 단순한 항만 운영자를 넘어 ‘글로벌 항만 투자자이자 운영자’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PSA는 2024년 기준 45개국 77개 항만 터미널을 운영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를 통해 싱가포르항과의 환적 연결성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물동량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PSA와 같은 국영 물류기업을 통해 싱가포르가 서비스 수출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공공 부문이 주도하는 글로벌 물류 거점 확보가 국가 경쟁력에 얼마나 핵심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PSA의 매출액은 우리나라 최대 항만공사인 부산항만공사(BPA) 대비 20배 이상, 종업원 수는 200배 이상으로 싱가포르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만약 BPA가 이 정도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한다면, 부산 지역경제에 큰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해양수도 부산의 성장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또한 지역 인재 유출을 방지하고 전국 및 전 세계의 우수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기능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매우 취약하다. 국적 10대 물류기업의 해외 물류센터 중 자영 비율은 5.8%에 불과하며, 글로벌 항만 터미널 운영도 4개소에 불과하여 글로벌 네트워크가 미비한 실정이다. 이러한 국가적 공급망 리스크에 대비하고 궁극적으로 부산항의 물동량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 BPA를 포함한 4대 항만공사가 중심이 되어 글로벌 물류 거점을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는 항만공사법상 외국 항만 건설·관리·운영 사업 범위 내에서 법적으로 추진이 가능하며, 해외 진출 리스크가 큰 민간 기업들을 대신하여 ‘앵커 투자자’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위험을 경감시킬 수 있다.
2010년 이후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 순위가 급락했던 대만의 카오슝항 사례 역시 대만국영항만공사(TIPC)가 투자 자회사를 통해 해외 물류 거점을 확충하여 물동량 창출과 국가 공급망을 안정화시키고 있다. 해외 거점 확보는 궁극적으로 부산항 물동량 확충과 국가 공급망 안정화에 직접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미래 국가 공급망 안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부산항을 포함한 대한민국 항만의 미래를 결정지을 전략적 투자 실행에 나설 때이다.
2025-11-0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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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공해·심해저의 새로운 거버넌스 시대
전 세계 해양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공해와 심해저에 대한 새로운 법질서가 시작된다.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에 따른 국가 관할권 이원 지역의 해양생물 다양성 보전 및 지속 가능한 이용에 관한 협정(이하 BBNJ 협정)이 발효를 앞두고 있다. 지난 9월 19일 모로코와 시에라리온의 비준서 기탁으로 60개국 비준 조건이 충족됨에 따라 BBNJ 협정은 2026년 1월 17일부터 발효된다. 이는 단순한 하나의 국제 협약 발효가 아니다. 약 20년간 국제사회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자, 인류가 공유하는 바다를 보호하기 위한 포괄적 국제법 체계가 마련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역사적 여정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올해 3월 19일, 우리나라는 전 세계 21번째, 동아시아 최초로 BBNJ 협정 비준서를 기탁했다. 중국이 아직 비준 절차를 진행 중이고 일본은 서명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신속한 비준은 해양 거버넌스를 선도하는 국가로서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행보다.
BBNJ 협정은 네 가지 핵심 의제를 통해 국가 관할권 이원 지역의 해양생물 다양성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 체계를 구축한다.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닌, 소통과 국제 협력, 그리고 과학 기반 의사 결정을 통한 해양환경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첫째, 공해 및 심해저의 해양 유전 자원과 디지털 서열 정보에 대한 이익 공유 체계를 수립한다. 통고 제도를 통해 정보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금전적·비금전적 이익 공유를 통해 개발도상국도 해양 유전 자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해양 바이오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투명하게 공유되는 해양 유전 자원 정보를 적극 활용하고, 우리의 선진 연구 역량을 통해 혁신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데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익 공유 체계에 기여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국가로서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다.
둘째, 공해와 심해저에 해양 보호 구역과 같은 구역 기반 관리 수단을 설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당사국 총회는 과학기술 기구의 권고와 폭넓은 이해관계자 의견을 바탕으로 투명한 절차를 통해 보호 구역을 지정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공해의 약 1%만이 보호되고 있는 상황에서, 2030년까지 해양의 30%를 보호 구역으로 지정하려는 국제사회의 목표 달성을 위해 BBNJ 협정은 필수불가결한 도구다.
셋째, 공해상 모든 활동에 대해 환경영향평가 수행 의무를 명시한다. 이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사 결정을 통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예방적 접근 방법이다. 산업 활동에 대한 제약으로 인식할 수 있으나, 오히려 이는 우리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철저한 환경영향평가와 이에 기반한 기술 개발은 국제 표준을 선도하고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넷째, 개발도상국이 협정을 효과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역량 강화와 해양 기술 이전을 의무화한다. 이는 선진국과 개도국 간 협력을 통해 전 지구적 해양 보호 체계를 공고히 하려는 노력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적 수준의 해양 연구 인프라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개도국에 대한 역량 강화 지원은 단순한 의무 이행을 넘어, 해양 거버넌스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전략적 기회가 될 것이다.
국가 관할권 이원 지역 해양생물 다양성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의 목적 달성은 과학적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 BBNJ 협정 준수와 이행을 위해 해양 유전 자원 조사·채집 역량, 환경영향평가 수행 능력, 해양생물 다양성 연구 기반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특히 대양 조사 및 관측 기술, 해양생물 다양성 정보 관리 시스템 구축은 우리나라가 국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핵심 분야다. 원양어업, 해운업, 해양 바이오산업 등 관련 산업계와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도 필요하다. BBNJ 협정을 제약이 아닌 새로운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선진적인 해양 연구 역량, 세계적 수준의 조선·해운산업, 그리고 성장하는 해양 바이오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BBNJ 협정의 성공적 이행을 통해 해양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새로운 국제 규범의 의무와 규제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과학기술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며, 산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 모델을 구축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해양 질서 시대에 선도 국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대한민국의 리더십에 거는 기대가 크다. 대한민국이 이 역사적 여정의 선두에 서서, 해양강국으로서의 책임과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2025-10-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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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자율운항선박과 해양수도권, 한국의 새 항로
몇 주 전, 삼성중공업은 독자 개발한 AI 자율운항시스템을 탑재한 선박이 태평양 횡단에 성공하였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삼성중공업뿐만 아니라 HD현대, 한화오션 등 대형 조선사를 중심으로 자율운항선박(MASS : Maritime Autonomous Surface Ship)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한 연구개발과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자율운항선박은 기존 선박에 정보통신, 센서, 인공지능 등 스마트 기술을 융합해 시스템이 선박을 제어하고 사람의 간섭이 없거나 최소화하여 운항이 가능하도록 한 선박을 말한다. 이미 자동차의 경우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등 운전자의 개입이 없는 ‘레벨4’ 수준의 기술이 개발되어 상용화를 앞둔 상황이다.
같은 운송 수단으로서 자율운항선박과 자동차에서 사용하는 핵심 기술은 비슷하다 할 수 있고,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 등 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반면, 압도적 스케일 차이로 자율운항선박이 해결해야 할 문제의 난이도는 훨씬 높다.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의 경우 적게는 십여 명 많게는 수십 명의 선원이 승선하고 대형 사고 발생 시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자율운항선박에 대한 국제적 룰을 만들기 위한 논의는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2017년, 새로운 규정(MASS Code) 개발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IMO(국제해사기구)에서 시작되어 내년 5월까지 비강제 코드의 채택을 목표로 회원국 간 열띤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비강제 코드의 채택 이후 일정 기간 경험 축적기를 가진 후 2030년경 강제 코드가 채택되고, 2032년 발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도 자율운항선박 상용화를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수부와 산자부 공동으로 자율운항선박 상용화를 위한 1단계 연구 개발 사업을 올해까지 완료할 예정이고 ‘자율운항선박 개발 및 상용화 촉진에 관한 법률’이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지난 1일 개최된 ‘AI 대전환 릴레이 간담회’에서 2030년까지 완전 자율운항선박 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이를 위한 ‘K-자율운항선박 얼라이언스’를 구성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필자의 기우(杞憂)일까? 기술 개발 속도나 국제적 논의 흐름에 비하여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 혁신은 뒤처진 감이 없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율운항선박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인력 양성부터 선박관제, 항만운영시스템 등 해운항만 산업의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자율운항선박 기술 개발도 해운항만과 조선산업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통섭(統攝)적 인재가 필요하다.
연말까지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이 예정되어 있다. 단순한 1개 중앙 부처의 지방 이전이 아니라, 해양수산 유관 기관과 기업의 집적화를 통해 ‘해양수도권’ 건설이라는 새로운 국가 경쟁력의 원천을 발굴하기 위한 시도로 이해한다. 북극항로 개발 등 여러 이슈가 있지만, 자율운항선박 이슈야말로 해양수산 유관 기관의 집적화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가장 크게 기대할 수 있는 분야이다. 한국해양대, 부경대 등 전통적 해양수산 인력 양성 기관은 물론, KMI, KIOST 등 기존 연구 기관까지 더해져 정책의 수립, 집행 및 실증이 원스톱으로 이루어지는 환경이야말로 자율운항선박 상용화라는 복잡한 과제 이행을 위한 최적의 환경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칭 ‘자율운항선박 통합 지원센터’ 구축과 운영을 제안하고자 한다. 동 센터에서는 자율운항선박 및 기자재 안정성 검증은 물론 기존 음성 통신에 기반한 관제 시스템을 넘어선 스마트 해양교통플랫폼 구축, IMO 등 국제기구의 관련 논의 대응과 국내 법제도 개편 등이 주요 기능이 될 것이다. 결은 다르지만 자동차의 경우, 한국교통안전공단(TS)에서 자율협력주행 인증관리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은 IMO의 MASS Code 대응 간사 기관이자 자율운항선박법상 운항 해역 및 운항 승인, 선박 및 기자재 안전성 평가 등을 대행하고 있다. 새 정부의 핵심 과제로서 ‘해양수도권’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지금, 공단도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접목되는 선박 개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양수산인력 양성 및 해양안전관리 체제의 근본적 변혁이 불가피한 자율운항선박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핵심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부산 시민과 해양수산업계의 높은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5-10-1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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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바다를 통한 기후 해법 '바다숲'
바다는 해류 순환과 수증기 공급을 통해 수분과 산소를 제공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지구 생명 순환의 조절자 역할을 한다. 인간의 신체로 생각하면 바다는 심혈관이자 허파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바다는 조용하지만 아주 위험한 재앙과 마주하고 있다. 바로 ‘바다 사막화’로 불리는 갯녹음 현상이다. 해양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해조류가 사라지고, 바다 밑 암반이 하얗게 변하기 때문에 백화 현상으로도 불린다.
한국수산자원공단이 2024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의 갯녹음 면적은 이미 약 1만 5907ha로 확대되어 우리나라에서 해조류가 자연적으로 서식할 수 있는 암반 면적의 37%에 달했으며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갯녹음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연안 해역의 약 40%에서 해조류가 감소했다. 호주 남부의 켈프 숲은 지난 50년간 90% 이상 소멸했다. 지중해 연안은 1960년대 대비 해조류 서식지가 절반 이하로 줄었고, 북미 서부 해안에서도 대규모 해조류 감소가 보고되고 있어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해조류 소멸, 암반 백화 갯녹음 심각
탄소 흡수 못하고 어류 서식지 상실
바다숲 347㎢ 조성 생태계 복원 중
자연 기반 기후변화 해법 가능성 커
공단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의 해조류 바다숲은 연간 337톤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데, 이는 동일 면적의 열대 우림보다 5배 많은 양이고, 흡수 속도는 최대 50배 빠른 것이다. 최근에는 해조류가 녹더라도 해수 속 중탄산 이온(HCO₃-) 및 난분해성 용존유기탄소(RDOC) 형태로 장기 고정된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이는 미처 몰랐던 해조류의 높은 기후변화 대응 잠재력을 확인한 것이고 새로운 탄소 흡수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과학적 기반이 될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도 해조류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제62차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총회에서 우리가 제안한 해조류의 신규 탄소 흡수원 인정 요청은 일본, 영국, 칠레 등 다수 국가의 지지를 확보했고, 오는 10월 말 페루 리마에서 열릴 제63차 IPCC 총회에서 공식 인정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갯녹음 현상으로 인한 해조류 감소는 탄소 흡수 능력 상실뿐만 아니라, 어류의 산란장과 치어들의 가장 중요한 서식지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에 연간 약 600억 원 이상의 어업소득 손실로 이어져 1ha당 어업 소득이 평균 40% 이상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이렇듯 갯녹음 확산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해양 생물 다양성 감소와 기후변화 대응 능력 저하라는 심각한 현상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갯녹음의 원인은 우선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온 상승과 해조류를 먹는 초식 동물의 과도한 섭식으로 알려져 있다. 수온이 오르면 해조류의 성장이 둔해지는 반면 어류, 성게류와 같은 초식성 동물의 먹이 섭취가 늘어나 해조류 군락이 쇠락한다. 그리고 과도한 연안 개발 및 산업·농업 폐수와 비점오염원에서 유입되는 영양 염류·중금속은 해조류 서식지 축소와 생장 저해 요인이 된다.
따라서 갯녹음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육상에서는 하천 오염 저감과 비점 오염원 관리, 적정한 연안 개발 관리가 필요하고, 해양에서는 초식성 동물 개체수 관리, 해조류 이식, 수온 변화에 강한 고수온 내성 품종 개발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직접적인 바다숲 조성을 통해 해조 군락지 복원 및 서식 가능 면적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2009년부터 2024년까지 전국 연안 263개소에 347㎢ 규모의 바다숲을 조성해 왔고 2030년까지 540㎢로 확대할 계획이다. 기 조성된 바다숲만으로도 연간 약 11만 7000톤의 이산화탄소 흡수에 기여하고 있고, 이는 자동차 약 4만 9000대의 연간 배출량을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이다. 또한 자연 암반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해조류 해면 양식 기반을 활용한다면 잠재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고 바다숲 사업으로 인한 탄소 흡수량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에 직접 기여하여 국민과 기업에 되돌아갈 것이다.
바다숲 조성은 단순히 바다 생태계 복원만 하는 것은 아니며, 해양 생물의 산란장과 서식지를 제공하여 어업 자원을 회복시키는 동시에 탄소를 저장하여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자연 기반 해법이다. 이제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기후 해법’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해조류 기반 바다숲을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바다숲을 잃는다는 것은 수산 자원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바다의 생명력은 물론 미래까지 잃는 것이다. 갯녹음 확산이라는 침묵의 재앙 앞에서 더는 미룰 시간이 없다.
2025-10-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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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컨테이너 해운, 제2의 '보릿고개' 올까
어릴 적 교과서에서 접했던 단어 가운데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보릿고개’라는 말이다. 직접 겪어 본 세대는 아니지만, 그 말은 곡식이 떨어지고 보리가 여물기 전까지 허기를 참아야 했던 농촌의 절박한 시간을 상징한다. 글로벌 컨테이너 해운업계에도 자신들만의 보릿고개가 있었다. 필자가 보기엔 2014년부터 2018년까지의 5년이 그 시기다. 이 기간 전 세계에 20개 가까이 있던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 중 절반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구체적으로 보면, 2014~2015년 칠레 선사 CSAV와 CCNI는 각각 독일 하파그로이드와 함부르크수드에 인수됐다. 2016년엔 중국 차이나쉬핑이 코스코와 합병했고, 싱가포르 APL은 프랑스 CMA CGM에, 한국의 한진해운은 파산했다. 2017년에는 홍콩 OOCL이 중국 코스코에, 아랍에미리트 UASC는 하파그로이드에 합쳐졌다. 함부르크수드도 덴마크 머스크에 흡수됐다. 이어 2018년 일본의 K-Line, MOL, NYK의 컨테이너 부문만 합쳐 ONE가 탄생했다.
그 결과 상위 10대 선사의 시장 점유율은 과거 65%에서 85%로 뛰었다. 구조 조정과 합종연횡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집을 키운 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냉혹한 경쟁의 장으로 재편된 것이다.
왜 이런 보릿고개가 왔을까? 가장 큰 원인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낮은 운임이었다. 해상 운임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된다. 수요는 교역에서 비롯되는 화물 운송량, 공급은 전 세계 컨테이너 선박의 선복량이다.
먼저 수요 측면을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해상 컨테이너 운송량이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까지 지역별 편차는 있었지만 약 4~5년이 걸렸다. 그러나 회복 이후에도 이전과 같은 급격한 경제 성장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 결과 해상 운송 수요는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반대로 공급 측면에서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은 국제무역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그 열매를 누린 컨테이너 선사들은 2008년 금융 위기 직전까지 호황을 만끽했다. 당시 쌓아둔 현금으로 선사들은 그해 무려 600만TEU에 달하는 신조선을 발주했는데, 이는 당시 전 세계 선복량(1100만TEU)의 60%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문제는 이 선박들이 3~5년 후 순차적으로 시장에 투입되면서 2013년부터 수요 대비 공급이 과도하게 늘어나 해상 운임은 곤두박칠쳤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해운업계의 보릿고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후 상황은 역설적으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2020년 팬데믹은 북미 소비 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불러왔고, 해상 운송 수요도 급증했다. 덴마크의 해운 조사 분석 기관 씨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팬데믹 2년 6개월 동안 컨테이너 선사들이 벌어들인 이익은 그 이전 60여 년간의 누적 이익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한다. 사상 유례없는 호황이었고, 선사들은 다시 대규모 신조 발주에 나섰다.
그 여파로 2023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연간 인도 선복량이 230만TEU(약 360척)를 넘어섰고, 2024년에는 300만TEU(약 480척)에 육박했다. 2027년 310만TEU, 2028년에는 380만TEU가 발주 선사에 인도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현재 한국 조선소는 향후 3~4년 치의 일감은 확보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으며, 시장에는 막대한 공급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를 ‘묻지 마 발주’라고 비판하며 스스로 무덤을 판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그러나 컨테이너 해운은 규모의 경제가 절대적인 자본집약적 산업이다. 다른 선사가 몸집을 키우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다가는 해운동맹 내에서 협상력이 떨어지고, 시장 점유율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또 경쟁사 신조계약으로 조선소 도크가 차면 발주가 어려워 내가 원하는 선박 인도 시점을 놓치게 된다.
다만 지금은 많은 글로벌 선사들이 팬데믹 호황기에 쌓아 둔 현금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심각한 수준의 보릿고개가 재현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현재 전 세계 컨테이너 선복량은 3300만TEU로 2008년 당시의 세 배에 이르며, 여기에 이미 발주된 900만TEU가 추가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해운업은 전 세계를 단일 시장으로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자유시장 체제다. 과거 보릿고개 시절 수많은 선사가 시장 논리에 의해 쓰러져 갔듯, 앞으로도 선사의 운명은 세계경제의 흐름과 해상운임의 향방에 달려 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세계경제가 다시 활황을 맞아 해상 운임이 상승할 때, 화주들이 선사들의 수익을 단순히 ‘바가지’로만 보지 않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버텨낸 이들의 존재를 조금은 너그럽게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2025-09-2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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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산업의 바다' 넘어 '시민의 바다'로
9월이 되어 유난히도 뜨거웠던 여름의 끝자락이 보인다. 올여름 부산은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화제로 들끓었다. 바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이다. 정부 부처의 이전 자체만으로도 부산이 해양수도로서의 기능을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항만과 물류, 조선 등 해양 산업 기반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정책과 투자가 앞으로 어떻게 실현될지가 주목된다.
그러나 진정한 해양수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부산시민이 바다를 체감하고 배우며 즐길 수 있는 시민 중심의 공공성과 교육 프로그램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아쉽게도 최근 몇 년간 부산국제보트쇼와 KIMA(대한민국국제해양레저위크) 등 부산에서 개최되는 행사들의 국고 보조금은 삭감되고 있으며, 행사 자체도 단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시민이 참여하고 배울 수 있는 레저 스포츠와 교육 프로그램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해운대와 광안리, 다대포 등 부산의 대표 바다는 여전히 ‘관광객 중심’의 소비 공간으로 머물고 있다. 시민이 바다를 생활 속 문화로 체감하도록 정책적 배려를 확대하는 것이 절실하다.
몇 년 전 호주 시드니에서 직접 경험한 본다이 비치의 ‘본다이 서프 카니발’은 이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이 카니발은 1915년부터 이어진 전통적인 행사로, 서핑과 수상 구조 훈련의 중요성을 알리고 지역 사회의 결속을 다지는 데 기여해 왔다. 매년 여름 열리는 축제는 단순히 바다를 배경으로 한 단발적 행사가 아니었다. 시민들이 바다를 배우고 즐기며 스스로 안전을 지켜내는 문화가 곳곳에 뿌리내린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파도 속 구조 훈련에 참여했고, 청소년들은 팀을 이루어 라이프 세이빙 경기에 도전했으며, 어른들은 해변에서 열린 해양안전 세미나에 참여하며 안전과 교육의 중요성을 직접 체감했다. 음악과 퍼레이드가 더해진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시민 교육과 공동체 경험이라는 목표는 명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단순한 스포츠 대회를 넘어, 시민들이 바다와 안전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장이 되었고, 지역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바다는 단순한 관광이나 레저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 생활 속 학습과 공동체 활동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드니는 이러한 시민 중심 해양 프로그램을 각 바다에서 운영하는 동시에, 항만과 물류, 조선, 해양 R&D, 해양 레저 산업을 강화하며 경제적 기반을 탄탄히 하는 산업적 전략도 함께 추진, 두 가지 전략이 조화를 이루며 시민과 산업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적 해양도시’로 자리 잡았다.
부산도 해수부 이전을 계기로 이러한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초·중·고 단계별 바다 교육 과정을 구축하고,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공 아카데미를 운영해 바다 안전과 레저 교육을 정규화해야 한다. 축제와 이벤트는 단순한 관광객 유치용에서 벗어나, 시민이 배우고 즐기는 지속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본다이 사례처럼 안전, 교육, 공동체를 핵심으로 삼는 부산형 해양 축제가 요구된다. 또한 항만과 조선 등 산업 중심 개발과 함께 시민이 바다를 향유할 수 있는 시설과 프로그램에 충분한 예산과 정책적 배려를 투입해야 한다.
만약, 시민의 바다를 충분히 확장하지 못하면 부산이 직면할 위험도 분명하다. 산업 중심 이미지가 고착하면 국제적으로 ‘살기 좋은 해양도시’로 성장에 제약과 함께 바다와 시민 사이의 거리감은 심화할 것이다. 청소년들은 바다를 산업적 수단으로만 인식하게 되며, 지역 균형발전과 지속가능성 역시 훼손된다. 관광객 중심 이벤트로 정책이 고착될 경우, 비수기나 경기 침체기에 치명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시민 공감대가 부족하면 행정 신뢰가 약화할 우려가 있다. 결국 산업 중심의 해양수도만 강조하고 시민의 바다를 놓친다면, 부산은 내부적으로 시민 체감이 결여된 ‘반쪽짜리 해양수도’로 남게 될 것이다. 시민의 바다가 부재한 해양수도는 결국 허울뿐인 간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해수부 이전은 단순한 행정 이동이 아닌, 부산이 시민과 바다가 자연스럽게 하나 되는 해양도시로 거듭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산업적 해양 기반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시민 중심의 해양 레저, 교육, 축제, 환경 관리 프로그램을 확충하는 것이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로 자리매김하는 핵심 조건이다. 바다는 부산의 정체성이자 미래다. 시민이 직접 체감하고 누릴 수 있는 바다, 즉 ‘시민의 바다’를 만들어 나갈 때, 부산은 단순한 산업도시를 넘어 진정한 해양수도로 도약할 수 있다. 산업과 시민이 균형을 이루는 정책이 실현될 때, 부산의 바다는 생활 속 문화이자 안전한 학습 공간, 공동체의 터전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2025-09-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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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AI와 인간, 누가 뉴스를 지배할까
2011년 공개된 SF 영화 ‘인 타임(In Time)’은 시간 자체가 화폐로 기능하는 냉혹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은 스물다섯 살에서 생물학적 성장이 멈추며, 그 이후 생존 여부는 팔뚝에 새겨진 ‘시간 시계’에 남은 수치로 결정된다. 이 서사는 생명과 시간이 상품화된 세계에서 정의와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철학적 우화로 읽히며, 자본주의적 불평등의 극단적 은유를 영화적 언어로 형상화한다.
현대사회에서 시간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개념이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이다. 이는 20세기 후반 허버트 사이먼이 지적했듯, 정보가 과잉된 사회에서 진정으로 희소한 자원은 정보가 아니라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인간의 주의력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전통적으로 시간은 물리적·경제적 자원으로서 노동과 생산의 기준으로 이해되어 왔으나, 디지털 미디어와 플랫폼 자본주의의 확산은 시간의 질적 측면, 곧 집중과 주의라는 인지적 자원을 핵심적인 경쟁 대상이자 가치 창출의 토대로 변환시켰다.
정보 과잉 사회 '사용자 주목' 놓고 경쟁
콘텐츠 소비 시간 늘리려 알고리즘 개발
AI 맞춤형 서비스 뉴스 소비 파편화 가속
인간다운 통찰 저널리즘 위기 극복 대안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서비스, 온라인 광고 시장 등은 이용자의 체류 시간과 참여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교한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이는 곧 시간의 경제적 의미를 노동 시간에서 주의의 분배로 확장시킨다. 주목 경제는 시간이 개인의 삶의 질을 규정하는 동시에, 플랫폼과 기업이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활용되는 핵심 장치임을 보여주며, 이는 곧 시간의 통제가 현대사회의 새로운 권력 메커니즘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오늘날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자원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소비 대상이 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과 미디어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돈으로 상품을 사듯, 시간을 투자해 콘텐츠와 경험을 소비한다. 유튜브 시청, 넷플릭스 몰아보기, SNS 스크롤링은 모두 시간 소비 행위이며, 기업들은 이를 측정하고 최적화된 알고리즘으로 개인으로부터 더 많은 시간을 끌어내려 한다.
인공지능(AI)이 언론 현장을 급속도로 파고들면서 뉴스의 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이 전례 없는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소비자의 뉴스 이용 패턴은 더 이상 신문 지면이나 방송 뉴스의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 뉴스 이용자는 알고리즘이 선별한 헤드라인, 소셜 미디어에서 순환하는 짧은 영상, 개인화된 푸시 알림을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 이는 곧 뉴스 소비가 기사 전체에서 부분으로 축소되는 현상, 즉 뉴스 소비의 파편화를 의미한다. 주목 경제 속에서 시간은 가장 희소한 자원이 되었고, 언론 역시 소비자의 몇 초짜리 시선을 두고 AI 기반 플랫폼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AI 시대 도래로 뉴스 소비의 파편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AI는 뉴스 공급을 위한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뉴스 공급 체계의 새로운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자동 기사 작성, 데이터 기반 탐사, 음성 합성 앵커 등 AI는 이미 보도 영역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문제는 인간 저널리즘의 가치와 AI의 효율성 사이의 경쟁 구도다. AI가 신속성과 비용 절감을 무기로 한다면, 인간 기자는 현장성, 맥락 해석, 윤리적 책임이라는 영역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정된 시간 자원에 쫓기는 뉴스 소비자가 정확성보다는 속도와 편의성이라는 시성비를 우선할 때, 인간과 AI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뉴스 공급자의 대응은 AI 활용과 인간 고유성 강화의 균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데이터 처리와 단순 반복적 기사 작성은 AI에 위임하되, 인간 기자는 탐사·비평·해석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 동시에 미디어 조직은 독자의 주목을 단순 클릭에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관심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AI를 무조건 경계하거나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모두 위험하다. 중요한 것은 AI가 바꿔 놓은 뉴스 생태계 속에서 저널리즘의 본질을 어떻게 재정립하느냐이다.
요컨대,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져 사회적 불신이 증가한 지금뿐만 아니라, AI와 인간이 공존할 미래에도 저널리즘의 사명은 여전히 동일하다. 언론은 진실을 드러내고, 사회적 공론장을 풍요롭게 하며, 인간다운 통찰을 제공하여야 한다. 언론이 이 본질을 잃지 않을 때 AI는 저널리즘에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다.
2025-09-1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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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미디어 '정치'가 아니라 '정책'을 바란다
정권이 바뀐 지 두 달이 넘었다. 미디어 업계에도 이미 정권 교체의 여파가 감지되고 있다. 민주당의 정청래 신임 대표는 앞으로 추진할 3대 개혁 과제의 하나로 언론개혁을 지목했다. 실제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와 관련된 ‘방송 3법’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현재 분위기는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후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우선, 미디어 정책 중에서 정치성이 강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이 유사해 보인다. 새 방송 3법의 지향점은 방송사 이사 추천제에서 ‘정치적 후견주의’라는 문제점 해소에 있는 듯하다. 현재 KBS 이사회는 이사 추천권이 여야에 7 대 4로 배분되어 있는데, 정치권의 나눠먹기식 운영 탓에 공영방송 이사회가 정파의 목소리만 대변해 여야 간의 정쟁을 재탕하는 문제가 생겨났다.
공영방송 정파성 심화 정쟁·파행 되풀이
정당에 영미식 이사 후보 거부권 검토를
전통 매체 '공공 규제'하면서 위축 뚜렷해
플랫폼·글로벌 미디어 규모 역전 시정을
정당 추천 이사는 정치적 사안 표결에서도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방송사 사장 역시 임명자인 대통령에게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경향이 있다. 윤석열 정권 시절 김건희 여사의 명품 수수 의혹에 ‘자그마한 파우치’라는 발언으로 빈축을 산 KBS 박장범 사장이 전형적인 예다.
정권에 따라서는 여당의 독주라는 문제점도 심각하게 드러났다. 현 방송 제도는 행정기관에 기능을 집중시키는 ‘독임제’가 아니라 다양한 세력 간의 타협을 중시하는 ‘합의제’ 정신에 입각해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에서는 임기가 끝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을 공석으로 둔 채, 대통령이 지명한 두 명으로 중요 결정을 강행하는 식의 파행이 빈번했다. 위원회가 사실상 독임제로 전락하는 제도적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현재 방통위는 나머지 한 명이 사임하면서 실제로도 이진숙 위원장 1인 체제가 됐다. 민주당은 방송 3법의 이런 허점을 보강하기 위해, 이사 추천권을 정당 독점에서 시청자위원회, 종사자, 학회, 법조계 등으로 분산하고, 공영방송과 보도전문채널의 사장 선임방식을 바꾸며, 방송 종사자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담았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이러한 제도 개편이 방송의 정치적 후견주의와 과잉 정치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비율을 어떻게 바꾸든 정파별 지분 추천 제도가 존재하는 한 지금처럼 충성심만 강하고 발언과 행동이 ‘튀는’ 강성 인사로 채워지는 일은 막기 어렵다. 이 점에서 추천제의 결점을 보완하는 방안으로 영미권 사법 제도의 배심원 선출 방식은 참고할 만하다. 배심원 구성에서 원고와 피고 양측은 배심원 후보자 중에서 몇 차례의 거부권만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최선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방향으로 선택을 내린다. 만약 각 단체와 정당의 복수 추천을 받아 전문성과 중립성이라는 엄격한 요건을 통과한 인물로 후보자군을 구성한 후, 이 각 정파에게 몇 번의 거부권을 행사할 기회를 주면 어떨까? 아마 적어도 위원들의 정파성은 줄어들고 정당과 위원과의 연계는 상당히 느슨해질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권의 미디어 정책에서 유독 소홀히 다루어진 부분이 있는데, 바로 미디어 정책 전반을 다루는 기구 구성 문제였다. 이전에는 방송·통신 관련 정책 권한이 방송통신위원회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박근혜 정권은 이를 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로 분리했다. 이 때문에 규제와 지원, 육성 등 상반된 방향의 정책이 동시에 시행되는 혼선이 빚어졌다. 문재인 정권은 부서 이름만 바꾼 채 이전 정권의 정책 기구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이 같은 구조로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처하기 어렵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전통적 미디어보다는 CJ, 네이버, 카카오 등의 플랫폼 사업자나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미디어 자본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졌다. 미디어 정책이 혼선을 거듭하면서 주요 현안이 방치되는 사이 이 두 산업의 위상은 역전됐다. 미디어 정책이 방송 매체의 공공성 유지에만 주력하면서 나머지 큰 변화에는 거의 손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전통 매체는 대자본과 글로벌 자본의 작은 부속품 신세로 쭈그러들었다.
전국언론노조의 김동원 정책협력실장은 2022년 문재인 정권 5년 간의 미디어 정책 혼선에 대해 “위축되는 공공성의 영역에는 규제를, 성장하는 미디어 자본의 영역에는 지원과 방임을 처방”했다고 꼬집었다. 방송 정책에서 정치적 색채를 배제하고 공공성을 지키려는 노력은 중요하지만, 이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의 시급성과 가시성에 매몰되어 미디어 산업의 큰 흐름과 현안을 놓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미디어 ‘정치’가 아니라 좀더 장기적 안목에서 정책 난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대해 본다.
2025-08-1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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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북극항로 연관 산업과 부산의 과제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에 자리 잡아 바다를 통해 많은 발전을 이루어 냈다고 할 수 있는 해양 국가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글로벌 무역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조선, 물류, 수산, 해양관광 등 다양한 해양산업이 국가 경제의 핵심축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양산업의 중심에는 바로 부산이 있다. 부산은 지리적으로나 산업 잠재력으로나 국제무역과 해양 물류의 거점이다. 부산항은 연간 2400만TEU의 컨테이너를 처리하는 세계 제7위의 항만으로서 부산 경제를 견인하고 있으며 그 전략적 가치와 발전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수도권 중심의 행정과 정책으로 인해 부산의 해양산업 역량은 국가 정책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으며, 해양 경쟁력은 날로 쇠퇴하고 지역 불균형은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 추진되는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과 북극항로 개척 및 부산 중심의 물류체계 구축은 단순한 지역 균형발전 차원을 뛰어 넘는다.
줄어드는 빙하만큼 커지는 연관 산업
전세계가 뛰어드는 격전의 마당 열려
해안지역 역량 결집하는 게 해양수도
부산의 존재증명은 바로 거기서 시작
해양산업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부산권에 역량을 모으는 것은 국가 전체 산업구조를 개혁하는 국가적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해양수산부 및 해양 관련 공공기관과 HMM 등 해운업체의 부산 이전은 부산항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부산의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여 부산이 싱가포르, 상하이, 로테르담과 같은 해양도시로 가기 위한 초석이다. 부산시민은 이번 기회에 부산을 완전히 탈바꿈하여 해양수도를 뛰어 넘어 경제수도로 도약할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크게 기대하고 있다.
지금의 부산은 계속되는 인구 유출로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는 오명이 지어진 지 오래이고, 부산의 경제를 견인하던 부산의 수산업은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로 수산자원 감소, 어업경비 상승, 유통구조변화 위기 등 우울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구온난화로 북극 얼음이 녹아 북극항로 개척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북극항로와 해양수도 부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반도가 북극항로 거점으로 발전할 기회가 오고 있다며 그 핵심에 부산이 있다고 강조한다. 북극항로 개척의 의미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새롭게 열다. 미개척 분야를 처음 시도하다”는 것이다. 이미 독일 벨루가 해운은 2009년 러시아 국적이 아닌 세계 최초 상업선박으로 북극항로를 완전 횡단한 적이 있고 벤타머스크호는 2018년 최대 내빙 컨테이너선으로 첫 북극항로를 운항했으며, 2024년 중국 대형 컨테이너선 두 척이 북극해역을 교차했다. 기후 변화로 뜨거워진 북극은 개척 경쟁으로 더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북극항로 연관 산업과 어떤 시나리오로 전략을 짜서 수요와 개발을 찾아야 할 것인가? 북극항로 연관 산업이란 북극해를 통과하는 새로운 항로 개척과 함께 발생하는 해운·물류·조선·해양플랜트·첨단 ICT·신재생에너지·자원개발·해양안전·북극항로AI·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로 구성되는 새로운 신성장 산업군이다. 시장규모만 2035년 193.4억 달러(약 25조 원), 2050년 5385.3억 달러(약 700.1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 쇄빙선 건조에 특화된 핀란드 금융 시스템과 독일의 AI 산업 사례인 자율항로 계획기술, 영국의 혁신적 해빙 예측 시스템, 유럽연합(EU)의 가상 관제실 플랫폼, 핀란드의 SAR위성 기술, 덴마크의 불법 선박 탐지 시스템 등 각국의 활발한 연구가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일본도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기술 정보인프라 중심의 점진적·실용적 투자로 보수적인 안정을 추구하며 대형조선 해양 중심이 아닌 위성, 기상, 통신 인프라처럼 운영체계의 설계자 역할을 추구하는 중이다. 중국은 빙상 실크로드 중심의 공세 전략으로 일대일로 의 핵심축으로 위치하며 북극 사업과 인프라 투자를 가시적이고 대규모로 진행되어 신속한 성과를 도출하고 있다.
이 같은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기 위해 부산이 해양수도로서 앞장을 서야 한다. 북극항로 개척은 부산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 과제이므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부울경 동해안과 남해안과 인근 내륙의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해변을 끼고 있는 각 지역의 특성과 강점을 끌어 모아 서로 협조 협력하면서 가는 것이야말로 북극항로 연관 산업과 북극항로 개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지역 간 소모적 경쟁에서 벗어나 부산이 큰 첫발을 내딛으며 국가적 어젠다의 깃발을 흔들되 지역별 특성을 어떻게 한데 모을 수 있을 것인가가 북극항로 연관 산업 활성화를 위한 시급한 과제라고 본다. 부산이 ‘해양수도’인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으며 이를 잘 수행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야만 개항 150년의 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2025-08-0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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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청년을 위한 '바다로 티켓'은 어디로 갔나
2015년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운조합, 그리고 선사들은 청년들이 섬을 더욱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바다로 티켓’을 도입했다. 이는 만 25세 이하 청년들에게 일정 기간 참여 항로의 연안여객선 운임을 할인해 주는 제도로, 도입 초기부터 큰 관심을 끌며 청년 해양관광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청년들이 일반열차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어 배낭여행 문화를 부활시키고 전국 곳곳을 누비게 했던 철도 여행 상품 ‘내일로’의 해양과 섬 버전이기도 했다. 도입 당시의 바다로 티켓은 분명 신선하고 파격적인 시도였다.
‘열정! 바다로’(여름), ‘낭만! 바다로’(겨울) 두 시즌으로 운영된 바다로 티켓은 한 장으로 여러 지역의 섬을 여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청년 여행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2015년에는 43개 항로, 55척의 선박이 참여하며 시작되었고, 2016년에는 80개 항로 123척, 2017년에는 84개 항로 142척이 참여하는 등 바다로 티켓은 명실상부 해양관광을 위한 대표 할인 티켓으로 자리 잡았다. 이용객이 많아지자, 한국해운조합은 바다로 티켓 전용 헬프데스크를 운영하기도 했다. 또한 계절권 중심이었던 판매 방식을 연중 통합권으로 전환하고, 이용 가능 연령대를 확대했으며, 가족 이용권의 혜택 인원을 늘리고 가격을 인하하는 등 다양한 개선이 이뤄져 바다로 티켓의 매력을 더했다.
2015년 도입… ‘내일로’의 해양·섬 버전
한 때 섬에 방문객 느는 효과 안겨 줘
최근 이용 항로 줄고 정보 접근 어려워
예매 시스템 개선·제도적 확대 등 필요
이와 함께 해수부는 여객선 안전과 편의 향상을 위해 모바일 승선권을 도입하고, 실시간 운항정보 시스템과 온라인 예매 시스템을 확충했으며, 최근에는 네이버 지도에서 여객선 항로 조회 기능까지 제공하면서 청년층의 해양 접근성 확대와 함께 섬 주민들에게도 방문객 증가라는 긍정적 효과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지금의 바다로 티켓은 과거의 활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2024년 기준으로 참여 선박은 48척, 항로는 39개에 불과했고, 올해는 58척, 42개 항로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바다로 티켓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울릉도, 거문도, 흑산도 등 주요 도서 노선에서 운항하는 선사들이 할인 참여를 중단한 것은 많은 여행자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이들 지역은 교통비가 비싸 할인 효과가 컸던 곳이기에 더욱 아쉬운 결정이다. 특히 울릉도의 경우, 과거에는 바다로 티켓 홍보 시 가족 여행 사례를 통해 할인 전후 금액을 비교 제시하며 대표적인 수혜지로 소개되기도 했지만, 2023년부터 할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일반항로 수송 실적 상위 30개 노선 가운데, 올해 바다로 티켓이 적용되는 구간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에 할인에 따른 선사의 적자를 줄이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올해부터는 이용 횟수를 연간 12회, 동일 항로 3회로 제한했다. 그 결과 작년보다는 이용 가능한 선박과 항로 수가 소폭 증가했지만, 한때 80개 이상의 항로와 140척이 넘는 선박이 참여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이처럼 이용 가능한 항로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현 상황은 바다로 티켓이 지닌 본래 취지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연안여객선 예매 사이트가 개편되었지만, 여전히 도착지 표기나 터미널 정보 등 기본적인 정보 제공이 미흡해 예매 과정에서 혼선을 겪는 경우가 많다. 도착지 명칭에 도서명과 선착장 명이 혼재되어 있거나, 혼동을 줄 수 있는 표기가 사용되며, 주요 항로와 선착장이 검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금일도 일정항의 경우 출·도착지가 ‘금일-일정’으로 표기되지만, 같은 금일도의 동송항은 단순히 ‘금일도’로만 표기되어 있어 일관성이 떨어진다. 우이도는 ‘우이1구’, ‘예리’ 등으로 나뉘어 표기되어 있는데, ‘우이도-예리’와 같은 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보다 명확할 것이다. 또한 금일도를 오가는 당목항은 실제로는 약산도에 위치해 있음에도 출도착지가 ‘약산도’로만 표시되어 있어 혼동을 야기한다. 금당도의 경우 노력항에서 출발하는 배편은 아예 검색되지 않아 접근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섬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정보 접근의 장벽이 높다.
청년들의 자발적인 섬 여행을 장려하고, 연안여객선의 공공성을 실현하겠다는 바다로 티켓의 본래 취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실제 이용자, 섬 주민, 선사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과 제도적 확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울러 앞서 지적한 예매 시스템의 기본적인 편의성 개선은 물론, 숙박·음식점·관광지 입장료 등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연계 할인 혜택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 청년과 섬, 그리고 해양관광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바다로 티켓이 다시 본래의 취지와 활기를 되찾기를 기대한다.
2025-07-2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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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브리핑룸의 민낯, 바뀌어야 한다
새 정부 대통령실이 브리핑룸 시스템을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들의 질의 현장까지 카메라로 비출 수 있도록 하여, 국민들의 알 권리와 브리핑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브리핑룸은 기자들을 상대로 정부가 공식적인 브리핑을 하는 방이다. 대변인이나 책임자가 언론에 정책을 설명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응답하는 장소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권력에 대한 공개적 검증이 이루어지는 민주적 소통의 현장이다.
‘기자가 묻고, 정부가 답한다’는 말은 민주주의의 자명한 원칙이다. 질문할 권리와 답할 의무를 제도적으로 구체화해 언론과 권력 간의 건전한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저력이기 때문이다.
언론, 시민 대신해 권력 검증하는 역할
브리핑, 공개성·정례성·질의권 보장돼야
질의 사전 조율, 답변 회피 등 구태 탈피를
정부 설명장 아닌 기자 질문하는 곳 돼야
하지만 이 원칙이 실제로 제도화되어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국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수많은 국가와 정부에서 브리핑은 비공식성, 제한성, 폐쇄성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브리핑룸은 일방향적 정보 전달의 공간이 되어 언론이 정부로부터 사실상 통제를 당하는 공간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의 연방정부 브리핑은 사단법인 연방언론회견협회(Bundespressekonferenz)라 불리는 900여 명의 회원을 가진 기자협회가 주관하는 구조이다. 브리핑의 일시와 형식, 참가자를 결정하는 일도 독일정부가 아닌, 기자협회가 주도한다.
매주 월·수·금 오전 11시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연방정부의 정례 브리핑은 전통적으로 연방수상청이나 정부청사가 아닌 기자협회 건물에서 열린다. 브리핑에 참석하기 위하여 수상, 장관, 대변인들은 연방수상청에서 1km 떨어진 기자협회 건물의 200석 규모의 기자회견장으로 넘어와야 한다.
브리핑에는 기자협회의 요청에 따라 연방총리실 대변인 및 각 부처 대변인들이 참석한다.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협의를 거쳐서 수상과 장관이 직접 참석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회견의 진행은 협회 소속의 기자가 맡고, 시작과 종료 시간 및 질문의 순서나 형식도 전적으로 기자협회가 정한다. 질문은 사전 조율이 없으며, 기자들의 질의에 정부 관계자들은 즉석에서 응답한다. 회견은 실시간으로 유튜브와 공영방송을 통해 생중계되며, 이후 모든 내용은 속기록으로 작성하여 일반인이 열람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
독일 브리핑 제도의 핵심은 브리핑룸이 ‘정부가 설명하는 곳’이 아니라, ‘기자가 질문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언론은 정부의 설명을 청취하는 청중이 아니라, 시민을 대신해 권력을 검증하는 주체로 기능한다. 질문은 자유롭고, 답변은 공개적이며, 정보는 모든 시민에게 동시에 공유된다.
이처럼 독일 연방언론협회의 주도로 진행되는 독일 정부의 브리핑은 언론의 자율성과 시민의 알 권리를 동시에 실현하는 구조다.
미국의 백악관 정례 브리핑 역시 언론과 권력 사이의 공개된 소통 채널로 자리 잡고 있다. 백악관 대변인은 거의 매일 브리핑룸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다. 대통령이 브리핑룸에 직접 등장하는 일도 일상적이다. 참여 언론사는 대형 네트워크부터 지역 언론까지 다양하며, 누구든 손을 들어 질문할 수 있다.
브리핑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며, 정부는 답변 회피나 논점 회피에 대해 즉각적인 언론의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질문과 응답 자체가 정치 행위이며, 기자들은 권력과의 거리보다 시민과의 거리를 우선한다.
독일과 미국과 같은 민주국가들이 각기 다른 제도적 전통 속에서도 ‘공개성’, ‘정례성’, ‘질의권 보장’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철저히 제도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브리핑 구조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 정부가 주도하는 회견으로서 사전 질문 조율, 제한된 질의 시간, 원론적인 답변, 그리고 민감한 이슈에 대한 답변 회피로 이어진다. 이것이 한국 브리핑룸의 민낯이다.
정부의 브리핑도 이제 근본적으로 변화하여 차원을 높여야 한다. 기자는 권력의 메시지를 받아쓰는 존재가 아니라, 시민의 질문을 대신하는 공적 행위자다. 브리핑은 그 질문을 제도화하는 가장 직접적인 무대다.
정례성·공개성·기록성·접근성을 갖춘 구조를 설계해야 하며, 이는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고 일상 속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출발점이 된다. 브리핑룸은 활발한 쌍방향 토론과 논쟁의 장이 되어야 한다. 알 권리와 투명성은 카메라 대수로 가늠할 일이 아니다.
2025-06-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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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양수도 부산, 재개항의 시대를 기대하며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4일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다음날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전격적으로 지시했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에 대한 이 대통령의 공약이 처음 나온 것은 지난 4월 18일이다.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는 “해양 강국 도약을 위해서 해수부를 부산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SNS에 실었다.
그때만 해도 표를 얻기 위한 공약(空約)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지난 5월 24일 부산 서면 유세에서 그는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거듭 약속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내 최대 외항선사인 HMM 본사를 부산으로 옮기겠다는 공약까지 내놨다. 그럼에도 공약은 공약에 불과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국민의힘은 “해수부의 부산 이전 공약은 실현 가능성 없는 공허한 정치쇼”라고 힐난할 정도였다.
이재명 대통령, 해수부 이전 전격 지시
단순 이전 넘어 해양 업무 집적화 관건
‘소멸위험 단계’에 들어선 도시가 부산
새 정부 미래 동력 이곳에서 실험 당연
하지만 대통령 취임 이틀 만에, 그것도 첫 국무회의에서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직접 지시하면서 그 말의 ‘무게’를 실감케 했다. 대통령의 약속이 어떻게 실현될지는 앞으로 더 두고 봐야 겠지만, 추진 동력만큼은 놀랍다. 2018년 해양진흥공사의 부산 설립에 이어 부산으로서는 놀라운 쾌거이다.
물론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부산의 숙원인 것은 사실이지만, 반발도 적지는 않다. 해수부 노동조합은 86%의 반대 목소리를 담은 설문조사 결과를 내놨다. 해수부 퇴직 공무원 단체는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재고해 달라는 건의문을 제출했다. 지역 간 갈등 조짐도 감지된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항만공사 기능부터 지방에 적절히 분산하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고, 최민호 세종시장은 “행정수도 세종 완성이 급선무”라는 말로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반대했다.
부산에서도 마냥 환영 일색은 아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 시민이 진정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지역 민심을 직시하라”면서 “부산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과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약을 먼저 완수하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해수부를 이왕 부산에 두려면 ‘체급’부터 올려달라는 요구도 나온다. 단지 해운과 항만, 수산에 국한된 권한만으로는 부산이라는 대도시 경제를 견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진정한 시너지를 내려면 단순히 물리적 공간 이동이 아닌 각 부처에 흩어진 해양 업무를 집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조선 및 해상풍력, 국토부의 국제물류, 환경부의 해양기상 업무까지 바다와 관련된 행정을 모두 해수부에 맡겨야 한다는데 필자도 궤를 함께한다. 해운물류 대기업 HMM의 부산 이전, 해사전문법원 부산 설립도 함께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론에는 생각보다 많은 추측이 뒤따른다. 특히 많은 이들이 ‘왜 지금이냐’는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북극항로를 통한 부산 경제 발전을 주장한 데서 그 시점의 단초를 찾기도 한다. 북극항로는 2030년을 전후해 얼음이 녹는다는 전제로 미국이나 유럽 항로를 기존 바닷길보다 최대 40일 이상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부산이 아니면 진짜 안 되는 이유’는 없을까. 지금 국가적으로 직면한 가장 심각하고 다급한 현안은 ‘지역 소멸’이다.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는 대한민국의 존재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지방분권, 균형발전, 청년 실업 완화 등 많은 정책 목표도 바로 지역 소멸 방지에 무게를 뒀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통계청의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이용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저출생과 초고령화로 광역시 중 가장 먼저 ‘소멸위험 단계’에 들어선 도시가 바로 부산이었다. 20~39세 출산 적령기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수로 나눈 소멸위험지수가 부산의 경우 0.49로 전국 광역도시 중 유일하게 ‘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소멸위험도가 높은 지역은 양질의 일자리도 당연히 더 줄어든다. 이는 부산이 처한 현실이고 미래다.
진보든, 보수든 새 정부가 지역소멸 위기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정권 재창출은 고사하고 국가 존립의 책임까지 져야 할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소멸 위기에 가장 먼저 놓인, 그러나 해양도시라는 인프라를 갖춘 대도시 부산에서 새 정부가 미래 동력을 실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본다.
시나리오는 이미 시작됐다. 북극항로 개척을 통하든,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초석으로 삼든, 그 동력이 제대로 가동될 수 있도록 국가 역량을 부산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소멸 위기를 해결한 정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이 실패하면 정권도 실패한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그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전초기지가 되기를 기대한다. 바다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건져 올리겠다는 새 정권의 국정 방향에 해양인으로서 큰 박수를 보낸다.
2025-06-22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