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북극항로 시범 운항을 위한 선결 과제
김인현 한국해양대 석좌교수·세계해양포럼 기획위원장
정부 3000TEU급 컨선 운항 계획 적절
축적된 경험 바탕, 체계적 준비 필요
미국 2차 제재 우려… 해소 장치 시급
특별법 정비 통해 제도적 기반 마련도
북극항로 개척을 위해 지난 1년간 정부와 국회, 전문가, 관련 업계는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에 한때 대체항로로 여겨지던 북극항로는 이제 독자적인 국제항로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항로는 수에즈운하 경유 노선보다 5000km, 희망봉 우회 노선보다 1만 km 짧아 물류비용과 운항 시간을 크게 절감할 수 있으며 야말반도와 알래스카산 LNG, 무르만스크 일대 철광석 등 자원의 수입 경로로도 활용될 수 있다. 물론 항행 가능 기간과 선박 규모, 기착항 부족 등으로 컨테이너 화물 운송의 상시화에는 제약이 있지만 중국이 지난해 11월 컨테이너 정기선 프리미엄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만큼, 우리도 이를 계기로 북극항로 진출의 기회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
이런 시점에서 정부가 오는 9월 3000TEU급 컨테이너선 시범 운항 계획을 마련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새로운 항로 개척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북극항로는 항해를 책임질 선장과 선주에게 여전히 낯선 바다여서 우려도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2013년 정부 주도로 유럽에서 한국까지의 시범 운항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후 여러 선사가 다섯 차례가량 추가 운항을 통해 경험을 축적했다. 일본은 상세한 항해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풍부한 운항 경험을 갖추고 있다. 이제 이러한 선행 사례를 적극 활용해 보다 체계적인 준비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1급 단장급 조직을 신설하고 민관협의회를 구성했다. 연구기관과 전문가들도 관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모든 역량을 결집해 시범 운항과 상용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때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첫째, 적합한 선박과 선원, 전문 장비의 확보가 필요하다. 이는 안전 운항의 출발점이다. 북극해는 유빙이 남아 있어 일반 선박으로는 안정적인 항해가 어렵고, 얼음을 견디거나 쇄빙 기능을 갖춘 내빙선이 요구된다. 여름철 일부 재래선박 운항 사례가 있으나 이 기간에도 해빙이 남아 있어 법적으로는 내빙선 기준이 적용된다. 이에 정부는 관련 법제와 기준을 검토하고 보험업계와 협의해 운항 가능 여부를 명확히 판단해야 한다. 극지 항해 자격을 갖춘 선원 확보와 전문 교육도 필수적이다. 얼음 탐지·회피와 쇄빙을 지원할 수 있는 특수 항해 장비도 갖춰야 한다.
둘째, 이러한 운항 기반 위에서 시범 운항의 방식과 노선을 현실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2013년 사례처럼 유럽에서 극동으로 향하는 동향 항해나, 반대로 극동에서 유럽으로 가는 서향 항해 모두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정부가 컨테이너선을 활용한 시범 운항을 계획하는 만큼, 유럽에서 하역을 마친 선박을 이용해 항로검증을 추진할 수 있다. 또한 북극항로특별법에서 복수 거점항 지정이 논의되고 있어 부산항을 모항으로 여수·포항을 경유하는 노선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실제 운항을 가로막는 최대 변수는 보험과 경제 제재라는 위험 관리 문제다. 러시아 관련 선박이 제재 대상에 포함되면서 유럽 보험시장에서 가입이 거절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이른바 ‘어둠의 선단’ 역시 안전성 문제로 보험 인수가 쉽지 않다. 항해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북극 해역의 특성까지 더해져 실증선박에 대한 보험자들의 심사는 더욱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북위 70도 이상은 추가 보험료가 부과되는 특수해역이어서 시범 운항의 비용 부담이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이를 완화하려면 정부가 정책보험 개념을 도입해 보험료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을 특별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러시아 연안에서 발생하는 도선·에스코트 비용이 제재 대상 기관으로 지급될 경우 미국의 2차 제재에 노출될 우려가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한 외교적·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넷째, 시범 운항의 토대는 항해 정보 인프라, 특히 해도의 확보다. 해도에는 위험 해역과 항행 정보가 담겨 있어 안전 항해의 필수 자료지만, 러시아 연안 해도는 국내에서 쉽게 구하기 어려워, 전자해도를 포함한 사전 확보가 요구된다. 항해 중 빙해 상황을 상시 파악해야 하나 기존 수동 레이더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저궤도 위성을 활용한 빙해 정보 수신 체계 구축도 시급하다. 이러한 실증 과정은 본질적으로 첫 시도의 위험을 수반하고 공익적 연구개발 성격이 강하므로 재정 지원과 세제 감면 등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북극항해에 적합한 선박 확보 역시 비용 부담이 크고 범용성이 낮아 민간이 단독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이에 해양진흥공사가 공공선주사 개념을 도입해 정부가 선박을 보유하고 민간이 임차하는 방식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범 운항 이전에 국회에 발의된 여섯 건의 북극항로특별법이 통합법 형태로 정비돼 북극항로 개척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