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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커피에 다른 향미 나는 모차르트 매직
지난 1월 ‘미술관과 박물관’이라는 주제로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다녀온 데 이어 이번에는 ‘카페와 음악’을 주제로 오스트리아 빈을 1주일간 여행했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5대 작곡가인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프란츠 슈베르트 등 빈의 음악가들과 그들과 관련 있는 카페 이야기를 3차례로 나눠 소개한다.
■모차르트하우스비엔나
잘츠부르크 출신인 모차르트는 스물다섯 살이던 1781년 빈으로 올라가 10년간 살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 동안 그는 빈의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거처했다. 많은 돈을 벌었지만 낭비벽이 심해 한 번도 자택을 소유한 적은 없었고 모두 셋집이었다.
여행의 출발지는 모차르트가 빈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독일기사단궁전이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게 그가 잘츠부르크 대주교 콜로레도의 억압에 시달리다 쫓겨났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사실과 다른 점이 적지 않다.
당시 콜로레도는 계몽주의자였으며 낭비와 사치에 물들어 붕괴 직전인 도시를 되살리기 위해 근검절약과 근면성실, 교육발전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사회개혁을 외쳤다. 전임 대주교 슈라텐바흐의 특혜를 받으며 자유분방하게 살던 모차르트에게는 이 같은 개혁이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은 것이었다.
모차르트는 돈을 더 벌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잘츠부르크 궁정악단에서 나가야 했다. 그가 돈을 벌겠다면서 콜로레도 대주교에게 사직서를 낸 곳이 바로 독일기사단궁전이었다.
궁전에는 아무나 들어가서 간단히 둘러볼 수 있는데 중정을 둘러싼 건물 모습이 딱 숙소처럼 보인다. 과거에는 독일기사단 본부여서 관계자들이 숙소로 이용했고 지금은 호텔 겸 게스트하우스로 활용된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요금을 내면 숙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모차르트 등을 주제로 하는 연주회가 열린다.
잘츠부르크의 월급쟁이 악사 노릇을 그만둔 모차르트는 장모가 운영하던 밀히가세의 하숙집, 지금은 명품가게가 들어간 그라벤거리의 셋집 등 빈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독일기사단궁전에서 나와 그라벤거리로 가면 파란 돔 지붕이 인상적이며 빈에서 가장 오래된 장크트페터교회가 나타난다. 교회 옆으로 돌아가면 그가 빈에서 처음 살았던 하숙집 건물이 나온다. 건물 벽에는 모차르트 이야기를 설명하는 명패가 붙었다.
마침 관광객용 마차 두 대가 하숙집 앞을 지나간다. 마부가 힐끔 건물을 쳐다보는 걸로 판단해 보건대 손님들에게 집의 내력을 설명해주는 모양이다.
하숙집에서 다시 그라벤거리로 나오면 명품 ‘토드’ 상점이 1층에 입점한 건물이 보인다. 모차르트가 빈에서 첫 히트작이었던 오페라 ‘후궁 탈출’을 작곡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이 작품의 성공 덕분에 그는 장모로부터 인정을 받아 콘스탄체와 결혼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차르트는 여러 면에서 아버지 레오폴트와 닮았다는 사실이다. 레오폴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혼자 잘살겠다며 어머니의 눈물을 뒤로 한 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가족을 버리고 잘츠부르크로 갔는데, 모차르트도 혼자 성공하겠다며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빈으로 간 것이었다. 또 레오폴트는 어머니의 허가도 얻지 않고 가족 중 누구도 참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잘츠부르크대성당에서 결혼했는데 모차르트도 똑같이 아버지 승낙을 받지 않고 아버지, 누나가 불참한 가운데 슈테판대성당에서 결혼했다. 자신과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아들을 보는 레오폴트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모차르트는 슈테판대성당에서 결혼하고 음악가로 성공해 큰돈을 벌자 여러 집을 거친 뒤 독일기사단궁전 바로 앞 돔가세 5번지 고급주택으로 이사 가 방이 4개인 한 개 층을 통째로 빌려 살았다.
많은 사람이 가진 두 번째 오해는 그가 ‘평생 빈곤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1980년대 영화 ‘아마데우스’도 그런 스토리로 전개되는데 이것도 사실과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그는 연간 1000굴덴만 벌면 고소득자로 치부되던 당시에 10년간 연평균 1만 굴덴을 벌었다. 월세가 잘츠부르크에서 받던 연봉과 비슷할 정도로 비쌌던 돔가세 고급저택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돈벌이가 엄청난 덕분이었다. 그가 그런데도 말년에 쪼들렸던 것은 귀족에게 기죽기 싫어 사치를 부린 데다 당구 도박에 빠져 돈을 많이 잃은 게 이유였다. 여기에 알코올 중독자이기도 했다.
돔가세 저택은 모차르트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피가로의 결혼’이 작곡됐기 때문에 ‘피가로 하우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가 떵떵거리며 살던 곳은 지금은 ‘모차르트하우스비엔나(이하 모차르트하우스)’라는 박물관으로 바뀌어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1개 층만 빌려 썼지만 박물관은 건물 전체에 걸쳐 조성됐다. 그가 쓰던 물건이나 악보 등 다양한 흔적을 살펴보면서 그의 음악에도 귀를 기울여보는 재미는 남다르다.
놀랍게도 모차르트하우스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덕분(?)이었다.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나치는 정권을 장악한 민사당을 앞세워 모차르트 사망 150주년이었던 1941년 ‘제국 독일 모차르트 주간’ 행사를 열었다. ‘게르만 우월주의’를 과시하는 데에 음악 분야에서 모차르트만 한 인물은 없었다. 이 행사 때 모차르트하우스가 처음 대중에게 공개됐고 박물관으로 변하는 계기가 됐다.
■카페 프라우엔후버
모차르트는 낭비를 일삼아 재산을 탕진한 데다 인생 말년에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연주회가 사실상 중단되다시피 해 금전적으로 매우 쪼들렸다. 그의 궁핍한 마지막을 상징하는 공간이 모차르트하우스 인근에 있다. 바로 빈 중심가인 케른트너거리의 슈테플백화점 뒤편에 있는 ‘카페 프라우엔후버’다. 이곳은 원래 은퇴한 궁정 요리사가 운영하던 작은 식당이었는데 20세기 들어 카페로 바뀌었다.
모차르트는 한창 잘나갈 때에는 대형 공연장에서 귀족 수백 명을 모아놓고 연주회를 열어 한 번에 수백 굴덴을 버는 게 일상적이었지만 세상을 떠나기 수년 전부터는 한 푼에도 쩔쩔맸다. 그래서 이곳처럼 작은 식당에서도 연주회를 열곤 했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 연주회를 열었던 곳도 여기였다. 그가 연주한 곡은 피아노 협주곡 27번이었다. 그가 죽은 뒤 완성된 유작 ‘레퀴엠’이 초연된 곳도 여기였다. 카페 입구 벽에는 모차르트의 사연을 담은 명패가 붙어 있다.
카페 프라우엔후버의 사연을 아는 관광객들은 끊이지 않고 이곳을 찾아온다. 미국에서 온 두 부부는 테이블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모차르트의 흔적을 찾으려 애쓴다. 한 젊은이가 앉은 구석자리 벽감에는 모차르트 동상이 보인다. 피아노도 한 대 보이지만 그가 사용했던 것일 가능성은 1%도 없다. 삐걱 하며 문이 열리더니 일본 여성 관광객 10여 명이 들어온다. 일흔은 넘어 보이는 노직원은 그들을 보자마자 카페 가장 안쪽에 비워둔 자리로 데려간다. 일찌감치 예약한 손님들인 모양이다.
할아버지 같은 노직원이 웃으며 가져다준 메뉴판에서 발견한 ‘모차르트커피’를 주문한다. 빈 어디에서나 마실 수 있는 멜란지커피인데 이름만 모차르트라고 붙인 것이다. 그래도 그런 이름이 달린 커피를 마셨다는 게 어딘가.
아직 입안을 감도는 커피 맛을 느끼며 카페 프라우엔후버에서 나온다. 이제 모차르트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은 장소로 가야 한다.
카페 바로 앞은 슈테플백화점 뒷길이다. 관광객들이 백화점 벽 한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안내인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저곳이 바로 모차르트가 ‘마술피리’는 물론 유작이나 마찬가지인 ‘레퀴엠’을 작곡한 건물이 있던 자리다. 그리고 과로와 스트레스로 병에 걸린 그가 서른다섯 살의 짧은 인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날 때 있던 건물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백화점이 들어섰다. 백화점 측은 벽에 ‘모차르트가 눈을 감은 곳’이라는 안내판을 붙였는데 그걸 보러 매일 많은 사람이 찾아간다.
모차르트의 죽음과 관련해서 다시 사람들의 오해가 등장한다. 영화 ‘아마데우스’ 때문에 널리 퍼진 내용이기도 한데, 그가 ‘질투에 사로잡힌 라이벌 살리에리에 의해 독살됐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음악사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전면 부인한다. 빈에서 존경받으며 부유하게 살던 살리에리가 친하게 지냈던 모차르트를 독살할 이유도 없고, 시신에서 독살 흔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모차르트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갓난아기일 때 어머니에게서 모유를 먹지 못해 체력이 허약했던 데다 각종 병에 걸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긴 탓이었다. 그는 인생 말년에는 죽음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오래 전부터 혀끝에서 죽음의 맛을 느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장크트미하일러교회
슈테플백화점 자리에서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를 위해 잠시 고개를 숙이고 다시 슈테판대성당으로 간다. 그는 전염병에 걸려 죽은 것으로 오해를 받아 성당에서 정식 장례 미사를 치르지 못했다. 대신 슈테판대성당 바깥의 십자가 경당 앞에서 지인들이 모인 가운데 간단한 장례식만 거행할 수 있었다. 십자가 경당 안에는 그가 이곳에서 장례식을 치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명패가 붙어 있다.
모차르트의 유작 ‘레퀴엠’과 장례 미사 이야기가 생각난 김에 슈테판대성당에서 그라벤거리~콜마르크거리를 지나 호프부르크왕궁 쪽으로 향한다. 왕궁 앞에는 미하엘러플라츠광장이 있고 광장 구석에는 13세기에 만들어진 작은 성소 장크트미하일러교회가 보인다.
모차르트가 장례 미사를 치르지 못한 사실을 아쉬워 한 지인들은 추도 미사라도 열기로 했다. 그들이 고른 장소는 바로 이곳이었다. 교회가 자발적으로 미사를 개최한 것은 아니었고, ‘마술피리’를 초연한 공연기획자 슈카네더가 교회에 장소 대여비를 지불했다. 유작 ‘레퀴엠’이 완성된 뒤 초연된 것은 카페 프라우엔후버였지만 미완성 유작이 초연된 것은 이날 추도 미사 때였다. 교회 안쪽 벽에는 모차르트의 데스마스크와 추도 미사, 레퀴엠 초연 사실을 새긴 동판이 붙었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대작곡가의 불운을 안타까워하면서 잠시 휴식을 위해 오페라하우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그곳 앞에는 빈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인 ‘카페 모차르트’가 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3년 뒤인 1794년 문을 연 곳인데, 1869년 카페 바로 앞에 모차르트 동상이 세워지자 이름을 ‘카페 모차르트’로 바꿨다. 그 덕분에 오페라하우스 가수, 작곡가 등 음악인은 물론 빈의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이 대거 찾는 명소가 됐다.
모차르트가 간 곳은 아니었지만 그의 이름을 붙인 명소니 안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서도 모차르트커피를 주문하고 곁들여 모차르트토르테도 하나 시킨다. 맛이야 다른 커피, 토르테와 큰 차이가 없지만 이름 하나가 주는 의미는 적지 않다.
마침 옆자리에 대만 여성 둘이 앉아 음식을 먹는다. 그들은 상세한 내용은 모르고 모차르트라는 이름만 듣고 일부러 찾아온 모양이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재미있게 지내다 가면 되는 게 여행 아닌가.
음악여행을 온 김에 꽤 수준 높은 연주회를 감상할 기회를 기대했지만 여러 사정상 일정이 맞지 않는다. 고민하던 터에 오스트리아관광청 지원을 받아 저녁 8시 30분에 시작하는 쇤브룬궁전 오랑제리 콘서트에 가게 됐다. 그러지 않아도 오랑제리를 꼭 둘러보고 싶었다. 빈에서 요제프 2세 황제의 사랑을 받게 된 모차르트가 황실오케스트라 악장이던 살리에리와 ‘음악 대결’을 벌인 곳이 오랑제리였다.
쇤브룬궁전 콘서트 입장객은 3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번 음악여행에서도 절실히 느낀 것이지만 음악과 관련된 장소에는 일본인이 꽤 많다. 이곳에도 50여 명에 이르는 일본 단체관광객이 자리를 채워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한국인은 개별적으로 찾아온 서너 명에 불과했다.
둘러보는 수준이 아니라 연주를 들어본다는 기대가 적지 않았지만 솔직히 간이 연주회여서 수준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도 다른 곳도 아니고, 모차르트가 직접 작곡한 오페라를 공연했던 오랑제리에서 음악을 들었다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빈(오스트리아)=남태우 기자 leo@busan.com
2025-05-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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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꽃천지 남강 악양 일대…“여기가 바로 무릉도원”
기척도 없이 몰래 시간이 흐르더니 어느 새 5월 중순이다. 며칠 전만 해도 라디오에서 겨울 노래가 들렸는데 이제 달력은 무더위가 기다리는 6월을 향해 달린다. 초여름이 오기 전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전에 봄꽃을 구경하러 가야겠다. 목적지는 경남 함안군이다.
5월 함안군은 꽃의 천국이다. 굽이굽이 남강과 낙동강을 따라 곳곳에서 샤스타데이지, 수레국화, 꽃잔디, 꽃양귀비, 작약 그리고 청보리까지 ‘미와 색의 향연’을 펼친다. 꽃길을 따라 걷다보면 온 세상을 뒤덮은 다양한 꽃향기의 환상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땐 이런 생각이 든다. 지상낙원이 따로 있나. 바로 여기가 무릉도원이지.
■악양생태공원 샤스타데이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오자마자 보랏빛 수레국화가 하늘거리는 강둑이 나타난다. 두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필두로 대가족이 봄나들이를 나왔는지 밝은 표정으로 환히 웃으며 걸어간다. 수레국화 꽃말이 ‘행복’이라는데 이들의 나들이에 딱 어울리는 축복의 단어가 아닐 수 없다.
강둑 경사지에도 수레국화가 한껏 피었다. 그 사이로는 빨간 꽃이 한두 송이씩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꽃양귀비다. 안개꽃도 하얀 꽃대를 내밀며 ‘나 여기 있어요’라며 소리를 지른다.
금계국은 개화가 아직 멀었는지 푸른 줄기와 푸른 잎만 벌릴 뿐이다. 가끔 한두 송이씩 서둘러 터진 꽃망울이 관광객의 눈길을 모은다. 보라색 수레국화에 빨간 꽃양귀비, 여기에 곧 피어날 노란색 금계국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로 화사한 ‘총천연색’ 화원이 펼쳐지리라.
강둑을 따라 걷다 끝부분의 나지막한 언덕에 마련된 정자에서 강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곳만이 아니라 악양생태공원 곳곳에는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나 공간이 설치돼 시원한 풍광이 일품인 남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정자 앞에는 나무 여러 그루가 강을 향해 허리를 길게 구부린다. 소나무마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서 보려고 그러는 모양이다.
정자 맞은편에는 또 다른 작은 언덕이 있는데 온통 하얀색과 핑크색으로 물들었다. 꽃잔디, 정식 이름은 지면패랭이꽃이다. 경남 산청군이 꽃잔디로 유명한 곳인데 이곳 꽃잔디 언덕도 그곳 못지않게 황홀한 풍경을 연출한다.
훌륭한 사진 장비를 갖춘 한 청년이 언덕 곳곳에서 젊은 여성 사진을 찍어주느라 분주하다. 다정한 사이로 봐서는 연인인 게 틀림 없다. 꽃잔디 꽃말이 ‘조화’ 그리고 ‘(남녀 간)애정’이라고 하니 둘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딱 어울리는 꽃말이다.
꽃잔디 언덕에 반한 사람은 두 연인만이 아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온 여성,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연신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중년부부는 물론 오랜 친구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언덕에서 연거푸 휴대폰을 찰칵거리며 초여름 바람만큼이나 시원한 웃음을 흩날린다.
악양생태공원 꽃구경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꽃 정원이 한 곳 더 남았다. 바로 샤스타데이지 화원이다. 꽃잔디 언덕에서 내려가면 헬기 이착륙장이 있는데 그 너머가 바로 그곳이다. 키 큰 나무 사이로 하얀 구름 같은, 어찌 보면 솜사탕 같은 꽃이 보이면 그게 샤스타데이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꽃밭 한쪽 구석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하얀색 정자, 가운데에는 하얀색 전화박스가 놓였는데, 하얀색 샤스타데이지와 절묘한 궁합을 이뤄 천국 같은 정원을 연출한다. 그 풍경에 반해 전화박스 안팎에 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악양둑방 꽃양귀비
샤스타데이지 화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꽃잔디 언덕 아래 산책로로 가면 ‘처녀 뱃사공’ 노래비가 나온다.
‘처녀 뱃사공’은 1950년 한국전쟁 때 부산에 피난을 왔던 작곡가 윤부길 씨가 나중에 서울로 돌아가다 우연히 만난 악양나루터 처녀 뱃사공 이야기를 담아 만든 노래다. 남강이 흐르는 법수면과 대산면을 잇는 악양나루터에서 노를 젓던 처녀 뱃사공이었다.
노래비를 지나면 악양루 데크로드가 나온다. 함안군의 유명한 정자인 악양루와 강 건너 악양둑방길로 이어지는 산허리길이다. ‘처녀 뱃사공’ 이야기가 어린 곳이어서 길 이름은 ‘처녀뱃사공노을길’이다.
악양루로 가는 산허리길은 약간 험하지만 5분 정도만 걸으면 되는 가까운 길이란 게 다행이다. 왼쪽으로는 높이 솟은 험한 바위가, 오른쪽으로는 유유히 흐르는 남강이 여행객의 발걸음을 격려한다.
이 길에 ‘처녀 뱃사공’ 외에 ‘노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만큼 노을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여러 글에서 찾아보니 악양루 경치의 최고봉은 남강도, 바위도 아닌 노을이라고 한다. 강으로 해가 떨어지며 노을이 물드는 악양루 석양은 함안군의 절경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오늘은 노을이 아니라 꽃을 보러온 게 아니던가. 발걸음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악양루에 올라 남강 건너편을 바라보니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온다. 둑 아래로 붉은 꽃양귀비가 지천으로 피었다.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다. 그리스신화의 영웅들이 죽으면 올라간다는 낙원 ‘엘리시안 평원’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급한 마음에 악양루를 대충 둘러보고 내려온다. 바로 아래에 강을 건너는 부교가 보이고, 부교를 지나면 강둑이 나온다. 함안군과 의령군, 창녕군을 따라 흐르는 물길을 따라 338㎞에 걸쳐 조성된 둑이다. 함안군 사람들은 이 둑을 ‘악양둑방길’ 또는 ‘뚝방길’이라고 부른다.
둑방길 아래 강변이 바로 악양루에서 내려다본 꽃밭, 즉 악양 꽃양귀비 화원이다. 본래 이름이 개양귀비인 꽃양귀비는 한해살이 풀이다. 식물에 ‘개’라는 이름이 붙으면 ‘본래 식물보다 질이 떨어지거나 비슷하지만 아니’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니 개양귀비는 진짜 양귀비가 아닌 가짜 양귀비라는 이야기다. 이름이 그다지 예쁘지 않다 보니 ‘개’를 빼고 ‘꽃’이라는 글자를 넣어 부르는 것이다.
남강에는 강물이 도도히 흐른다면 둑방길 아래 강변에는 꽃양귀비가 바람을 따라 흘러간다. 푸른 풀 사이로 분홍색과 흰색 꽃양귀비는 물론 보라색 수레국화, 하얀 안개초도 보인다. 다양한 색이 환상처럼 어우러진 꽃밭은 1km 가까이 이어진다. 아직 100% 만개한 것이 아닌데도 이 정도인데, 모든 꽃이 다 피어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가끔 사진을 찍어가면서 초여름 바람에 흔들리는 꽃양귀비 사이를 천천히 걷는다. 영화 속으로 뛰어 들어 멋진 장면을 연출하는 것 같기도 하고,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의 수채화 속에 빠져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 풍경이 현실인지, 그림인지, 꿈인지 구별하는 게 쉽지 않다.
필자만 그런 게 아니다. 악양생태공원에서 산책을 즐기던 사람들처럼 이곳을 찾은 사람들도 환한 미소를 숨지지 못한 채 휴대폰 버튼을 누르기에 바쁘다. 그들의 온 몸은 마치 빨간 꽃양귀비 향기에 물든 것처럼 향긋하게 느껴진다.
양산을 챙겨든 젊은 여성은 밝은 얼굴로 꽃양귀비 사이 흙길을 신나게 걸어간다. 발걸음에 담긴 경쾌함과 기쁨으로 미루어 보건대 화원 어딘가에서 사랑하는 연인이 기다리는 게 분명하다. 한 중년부부는 느긋하게 아무 말 없이 꽃밭 사이를 거닐며 따스한 햇살을 즐긴다.
강변 맨 끝에 잎이 무성한 나무 여러 그루가 보인다. 그중 가장 큰 나무 아래에는 작은 의자가 놓였는데, 여러 사람이 모여 편히 앉아 쉬는 중이다. 나무 아래로 들어가 그늘을 잠시 즐기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남강 너머로 방금 다녀온 악양루가 보인다. 강변을 따라 달리는 대법로 길가 이팝나무에는 하얀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이팝꽃은 꽃양귀비를 바라보며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꽃양귀비는 새햐얀 이팝꽃에 반해 온 몸을 흔들며 아양을 떤다.
꽃양귀비 영어 별명 중에 ‘플랜더스 양귀비’라는 게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무렵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져 많은 사람이 죽었던 벨기에 플랜더스 지역에 꽃양귀비가 많이 자라 이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런 역사 때문에 지금 꽃양귀비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에 전쟁 희생자에게 바치는 꽃이 됐다.
역사라는 게 묘하다. 함안군이 어떤 곳인가. 한국전쟁 때 국군과 연합군이 펼쳤던 낙동강 방어전선의 최전방이 아니었던가. 당시 경찰, 연합군 일부 병사 등이 이곳에서 북한군과 혈전을 벌여 승리를 거둬 낙동강 도하를 막아냈다. 이곳에는 경찰승전기념관과 기념탑도 있다.
함안군청이 플랜더스 양귀비의 역사와 의미를 알고 꽃양귀비 단지를 조성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던 함안군의 역사에 딱 어울리고, 당시 목숨을 잃은 병사들에게 바치기에 가장 어울리는 꽃인 것만은 분명하다.
■강나루생태공원 작약, 청보리
강나루생태공원은 악양생태공원에서 자동차로 25~30분 거리인 칠서면 낙동강 변에 자리를 잡은 곳이다. 여기에는 41만㎡ 규모 청보리 밭과 4만6천㎡에 이르는 작약 꽃밭이 조성됐다.
작약은 꽤 고급스럽고 품격 있게 보이는 꽃이다. 사진에 담았을 때 아주 짙은 색감으로 깊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청보리는 아주 서민적인 식물이다. 강나루생태공원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두 식물이 지척에서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을 벌이는 곳이다.
하지만 강나루생태공원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지난 9~11일이 축제기간이어서 복잡하기도 했고, 작약 꽃밭과 청보리 밭이 기대에 못 미치기도 했다. 악양생태공원과 악양둑방에서 너무 깊은 인상을 받은 게 이유일지도 모른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면 모르지만 풍경을 즐기는 게 목적이라면 굳이 이곳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2025-05-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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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에 담긴 노부부 ‘사랑’, 사진으로 남은 초등 동창 ‘추억’
봄인 데다 사월초파일을 앞두고 대구 팔공산과 동화사를 둘러보기로 했다. 예전에 꽤 멋졌다는 추억이 남아 있었던 터라 기대가 컸다. 마침 날씨도 좋아 초여름 같은 분위기여서 출발할 때부터 오랜만에 여행하는 기분이 컸다.
■팔공산 케이블카
팔공산 케이블카는 1985년 개통했다고 하니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당시만 해도 케이블카가 지금처럼 많지 않아 이곳은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덕분에 주변은 관광단지로 조성됐고, 식당과 호텔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4년 전 대구를 찾은 외국인 대상으로 대구 관광지 선호도 조사를 실시했더니 팔공산 케이블카가 2위로 나타난 게 이곳의 인기를 잘 보여준다.
케이블카에 탑승하기 전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된 산채비빔밥 맛집에서 점심부터 챙겼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면 팔공산도 식후경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기대를 뛰어넘은 음식 맛에 케이블카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평일 낮이어서인지 케이블카 이용객은 많지 않았다. 5~10명씩 무리를 이룬 단체관광객이 오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 덕분에 붐비지 않아 탑승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왕복 1만 3000원짜리 입장권을 사니 벽에 ‘6개월 이내 재방문하면 20% 할인’이라는 문구가 붙었다. 이런 혜택을 받으려면 입장권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연식이 있어서인지 케이블카는 약간 낡아 보인다. 땅에서 아주 높지도 않아서 그다지 무섭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케이블카 아래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곳곳에 피었다. 팔공산은 산 아래보다 평균기온이 10도 정도 낮다는데 아직 꽃이 만개하지 않은 모양이다. 팔공산의 5월은 꽃잔치라고 한다. 노란 개나리에 이어 진달래를 시작으로 철쭉과 산철쭉이 피어나면서 분홍색의 봄이 된다.
케이블카 정상역에 내리면 먼저 소원바위부터 찾아야 한다. 이 바위는 팔공산 3대 소원 성취 코스로 인기가 높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붙인 동전이 한두 개가 아니다. 바위 틈새에 잘 붙여 세운 동전도 있지만 대부분 껌이나 접착제를 붙여 떨어지지 않게 했다. 다들 이렇게라도 해서 소원을 성취했을까. 물어볼 수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소원바위에게 마음속 희망을 전달했으면 이번에는 반대편 전망대로 가야 한다. 전망대에는 이곳 높이가 820m라는 표지가 붙었다. 바위 위에 설치된 전망대에 서면 눈이 시원하다. 아직 완벽한 초록색은 아니지만 지금은 봄이라는 걸 알리는 푸른 잎이 온 산을 뒤덮었다. 한 남성은 높이 표지 앞에서 사업 관련 전화를 하느라 목소리가 크다. 여기까지 와서 꼭 산 아래 일 때문에 남의 여행까지 방해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사람이야 일 때문에 떠들든 말든 다른 사람들은 시원한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 바쁘다. 멋진 한 컷을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족, 친구 사진을 찍어주면서 즐겁게 웃는 사람도 보인다.
한 노부부가 손을 잡고 러브가든이라는 곳으로 내려간다. 가만히 가서 안내판을 읽어보니 정자가 있고 사랑의 자물쇠 포토존이 있는 곳이다. 왜 애써 그곳으로 내려가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기도 해서 따라가 본다.
러브가든 입구에는 사랑터널이 설치됐는데 수십 개의 자물쇠와 각종 쪽지가 붙어 있다. 자물쇠에 녹이 슨 걸 봐서는 꽤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쪽지는 물론 플라스틱 명찰에 새겨진 글자도 비와 햇살에 바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자물쇠는 사랑터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정자까지 100여m 산책로 곳곳에 자물쇠를 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한 모퉁이에 노부부가 나란히 섰는데 눈이 잘 안 보이는지 안경을 벗고 자물쇠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우리가 30년 전에 자물쇠를 건 곳이 여기 맞겠지?”
“그건 것 같아.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하고.”
가만히 들어보니 오래 전 사랑을 속삭이면서 팔공산 케이블카에 데이트를 하러 왔고, 올라온 김에 이곳에 자물쇠를 걸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당시 두 사람이 건 자물쇠는 다음 사람이 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이미 철거됐을 게 뻔하다. 그래도 노부부는 젊었을 적 추억을 잊지 못해 다시 올라와 자물쇠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자물쇠는 없어졌겠지만 사랑만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아직까지 둘을 이어주고 있다.
■동화사
노부부의 사랑에서 뿜어져 나온 보랏빛 향기가 코끝에서 감도는 걸 느끼면서 동화사로 발길을 돌린다. 팔공산 케이블카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이니 지척이라거나,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동화사는 삼국시대이던 5세기에 만든 절이니 역사만 해도 1600년을 넘는 엄청난 고찰이다. 물론 이후 여러 차례 중창했으니 그때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상상할 수도 없는 오랜 세월을 인고한 고찰이어서인지 팔공산 케이블카와는 달리 평일인데도 동화사에는 방문객이 꽤 많다. 걸음걸이를 조심하지 않으면 몸이 부딪힐 정도다.
동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1992년에 만들어진 세계 최대 석조 약사여래불인 통일약사여래대불이다. 부처님 도움을 받아 통일을 앞당기자면서 만들었고 높이가 33m에 이른다는데 많은 사람이 동화사에 가면 꼭 찾는 이곳의 랜드마크다. 실제로 가까이 가서 보면 규모가 정말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통일약사여래대불 앞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수천 개의 화려한 연등이 설치됐고, 연등 아래에는 맨발로 올라가 예불을 드릴 수 있게 자리가 깔렸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대불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물론 이들은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를 올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정의 행복을,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러 왔을 뿐이다.
사월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둬서인지 동화사 대웅전 앞마당은 물론 곳곳에 수천 개의 화려한 연등이 설치돼 하늘까지 가린다. 그 풍경이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아서 단체로 찾아온 많은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여기서도 찰칵, 저기서도 찰칵 하는 소리에 절에서 생활하는 것 같은 고양이는 편안하게 쉬지도 못한다.
한 스님이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지나가는 사이 초등학교 동창 사이라는 남녀 8명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나이로 봐서는 60대 중반은 넘은 것 같으니 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어언 50년이 다 돼 가는 셈이다.
어릴 때에는 다들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을 경제적 여유도 없었으리라. 깊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 찍는 사진이 앞으로 10년 뒤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기자도 나이가 비슷해지고 있으니.
팔공산 케이블카에서 노부부의 자물쇠를 만나고 동화사에서 초등학교 동창들의 사진도 구경하고 나니 더욱 실감나는 말이 있다. 여행은 직접 다닐 때에는 삶의 활력소이고, 세월이 흐른 뒤에는 인생의 추억이라는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앞으로 여행을 더 자주, 많이 다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2025-05-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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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에 노란 파도가 출렁인다...호미곶 유채 장관
지난주에는 봄바람과 함께 봄비가 내렸다. 활짝 피었던 벚꽃은 봄비를 따라 서서히 지고 말았다. 꽃이 활짝 피었던 나뭇가지에는 이제 연록색 나뭇잎이 하나 둘 매달린다. 화사한 꽃비로 흩날리는 벚꽃을 뒤로 하고 경북 포항시로 달린다.
벚꽃 다음 차례는 유채꽃이 아니던가. 마침 포항시에는 유채꽃도 보고 봄 바다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일출명소인 데다 ‘상생의 손’으로 유명한 호미곶에 있는 ‘호미곶 유채단지’가 바로 그곳이다. 시원한 봄 바다와 상큼한 봄 유채꽃이 관람객을 흔쾌히 반기는 곳이다.
■호미반도 경관농업단지
자동차를 호미곶 해맞이광장 주차장에 세우고 유채단지로 향한다. 정식 명칭은 호미반도 경관농업단지다. 솔직히 주차장에서 약간 경사진 곳에 자리를 잡은 유채단지 풍경을 올려다 볼 때만 해도 적지 않게 실망했다. 잘못 온 게 아닌지, 다른 일정을 잡아야 할지 걱정할 정도였다.
마침 유채단지를 보고 내려온 한 중년 여성이 “바다가 보이는 유채꽃. 굳이 제주도에 갈 필요가 없네”라고 말한다. 믿어보자. 걱정은 호주머니에 집어넣든지, 멀리 바다에 던져버리기로 한다.
그 여성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유채단지와 직접 올라가서 본 유채단지는 풍경, 분위기가 180도 달랐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이런 데 붙여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행은 직접 가서 눈앞에 두고 봐야 결론을 알 수 있다.
호미곶 유채단지는 우선 면적부터 넓다. 15만여 평이라는데 그 넓은 평야를 유채꽃이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꽃 작황이 좋아 한꺼번에 개화했다. 덜 피고, 더 핀 게 없고 한꺼번에 화사한 꽃잎을 활짝 펼쳤다. 여기에 호미곶 유채단지는 경사지에 자리를 잡아 위에서 아래로 바라볼 때 풍경이 관람객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먼저 유채단지 가장 꼭대기 지접으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유채꽃 향기가 가득하다. 얼마나 향기로운지 깜짝 놀랄 정도다.
‘유채꽃 향기를 안 맡으면 봄의 보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따스한 봄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유채꽃 향기가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지 노곤한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 눈을 감고 잠시 향기를 감상하다 보니 그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단체관광을 온 것처럼 보이는 할머니들이 유채꽃을 먹던 옛날이야기를 나누며 감회에 젖는다. 옛날에는 유채로 김치, 나물을 해 먹었고, 기름도 짜먹었다는 등의 이야기다. 제주도에서는 유채를 지름 나물이라고 부른다. 기름의 사투리가 바로 ‘지름’이다. 카놀라유라는 기름이 있는데, 캐나다에서 품종 개량한 유채 기름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유채가 양기에 좋은 음식이라는 점이다. <동의보감>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유채를 오래 먹으면 양기가 왕성해져 음욕이 생긴다.’ 이 내용을 생각하면서 유채꽃 영어 이름을 살펴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레이프 플라워(rape flower)’다. 레이프의 뜻은 ‘성폭행’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성폭행 꽃’이라는 건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rape’라는 이름은 ‘순무’를 뜻하는 라틴어 ‘rāpa’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오해하지 말기를.
호미곶 유채단지를 가로지르는 논두렁길에는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꽃을 보려는 관람객으로 가득하다. 저마다 표정과 모습은 다르지만 유채꽃 향기에 푹 빠져 헤어 나올 줄 모른다는 사실만은 똑같다.
꽃을 배경으로 다양한 모습을 찍는 사람, 그저 꽃향기에 취해 이리저리 걸어보는 사람, 꽃 사이에 놓인 의자에 앉아 황홀한 얼굴로 꽃에 취한 사람,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는 것인지 잔뜩 흥분한 채 휴대폰 사진을 찍는 중년부부.
호미곶 유채단지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위쪽에 다 올라가서 등을 반대로 돌리는 순간 나타난다. 바로 바다가 유채단지 아래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푸른 바다와 노란 유채꽃.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도로와 집과 전신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자연과 각종 소품이 뜻밖의 ‘부조화스러운 조화’를 보이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왼쪽을 보면 호미곶 해맞이광장과 새천년기념관은 물론 국립등대박물관 앞의 하얀 등대도 보인다. 다른 쪽에서는 출항을 기다리는 것인지, 입항을 기다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초대형 선박이 바다 깊숙이 뿌리를 박은 것처럼 고정돼 있다. 바닷바람에 시달린 탓인지 허약해 보이는 소나무 두 그루는 갑자기 찾아온 많은 관람객이 반가운지 가느다란 잎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인다.
■호미곶 해맞이광장
유채꽃 향기에 잔뜩 취한 채 바다 쪽으로 내려간다. 포항시까지 와서 유채꽃만 보고 가기는 아쉽다. 게다가 지금은 봄이 아닌가.
예상대로 호미곶 봄 바다는 싱싱하다. 며칠 전만 해도 심술을 부리던 봄추위는 온데간데없고 선선한 봄바람만 가득하다. 날씨가 좋아 하늘이 맑으니 사진 색깔도 좋다. 이런 날 사진을 찍으면 아무리 실력이 없어도 색감 하나는 최고일 수밖에 없다.
가장 인기 있는 ‘포토 존’은 역시 ‘상생의 손’이다. 예술성이 뛰어난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바다를 중심으로 특이한 형태의 손 두 개가 놓여 있다는 사실만으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바다에 뿌리를 내린 ‘상생의 손’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여기까지 온 김에 화석박물관과 수석박물관이 있는 새천년기념관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입장료가 3000원이라서 큰돈은 아니지만 아쉬움이 적지 않은 곳이다. 실망이 커서 이제 그냥 돌아갈까 하는 차에 등대박물관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혹시 저곳도 똑같은 것은 아닌지 걱정을 잔뜩 안고 먼저 기획전시관부터 들어간다. 우려와는 달리 등대박물관은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운 곳이다. 특히 어린 자녀를 동반한다면 이보다 더 재미있는 곳은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기획전시관 1층 로비에서는 바다를 똑바로 볼 수 있는데, 창 앞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찍는 사진은 기가 막힌 분위기를 연출한다. 등대를 안내하는 각종 장비는 물론 그림 그리기, 보물선 항해 대작전, 소리 확인하기 등 곳곳에 마련된 여러 체험 시설은 뜻밖에 재미있다.
2025-04-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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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유럽 지배한 합스부르크 제국 짙은 향수 가득 [동유럽 미술관·박물관 기행] ②
흔히 오스트리아는 음악의 나라라고 한다. 실제 세계적 명성을 누린 많은 음악인이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반면 미술의 경우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정도를 제외하면 쉽게 기억할 만한 화가, 조각가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오스트리아 빈에는 둘러볼 만한 미술관이 한두 곳이 아니다. 20세기까지 유럽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제국이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서 수집한 많은 미술품 덕분이다.
■빈미술사박물관
호텔에서 나와 트램을 타고 가다 부르크극장 앞 정류장에서 내린다. 트램이 달려온 도로는 꽤 넓은 데다 정비도 잘됐으며 상당히 고색창연해 보인다. 도로 이름은 링슈트라세다. 링은 ‘원형’이나 ‘반지’를, ‘슈트라세’는 거리를 뜻하는 단어이니 링슈트라세는 ‘원형 도로’라는 뜻이다. 도로가 빈 구시가지를 반지처럼 둥글게 에워싸고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링슈트라세 자리는 원래 빈 성벽과 해자 그리고 경사지가 있던 곳이었다.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가 날로 인구가 늘던 도시 권역을 확장하기 위해 성벽을 허물고 해자를 메워 얻은 땅에 만든 도로가 링슈트라세였다. 정부는 새로 생긴 땅 일부를 민간에 매각해 마련한 대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공공 건축물을 지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공공 건축물은 오페라하우스, 부르크극장, 국회의사당 등이었다.
프란츠 요제프는 합스부르크 왕실이 오래 전부터 모아온 각종 유물, 미술품을 보관할 새 시설도 만들기로 했다. 미술품을 전시할 미술사박물관과 자연 수집품과 희귀품을 전시할 자연사박물관이었다. 당시 왕실에는 미술품은 물론 각종 희귀 물품과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동물, 식물, 광물 자료가 넘쳐났는데, 호프부르크궁전과 쇤브룬궁전, 벨베데레궁전 등 여러 곳에 나눠 보관 중이었다.
빈자연사박물관 공사가 먼저 마무리돼 1889년 8월 10일 개장식이 열렸다. 빈미술사박물관 개장식은 2년 뒤인 1891년 10월 17일 거행됐다. 이곳은 2개 층 88개 전시실로 이뤄졌다. 전시품은 고대 이집트, 청동기~중세 유물, 금 세공품 및 조각, 동전 그리고 미술에 이르기까지 크게 5개 주제로 구성된다.
큰 기대를 품고 들어간 미술사박물관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건축물의 웅장함으로 초장부터 관람객을 압도한다. 0층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에워싼 구스타프 클림트, 한스 마라카트, 미하일리 뭉카시의 벽화와 천장화는 말문이 턱 막히게 만들 정도다.
빈미술사박물관 입구에서 오디오가이드 장비를 대여할 수도 있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설명을 들어봐야 이해하기 쉽지 않은 데다 미술품은 정형화된 틀 안에서보다는 상념 없이 가슴으로 보는 게 진정한 감상이라는 걸 여러 차례 미술관 기행에서 느꼈다.
이곳의 미술품 중에는 대작이 너무 많아 일일이 소개하기 힘들 정도다. 16세기 르네상스 화가 라파엘로가 그린 ‘초원의 마돈나’, 같은 시대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루돌프 2세 황제를 그렸다는 명작 ‘사계절’, 17세기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역작 ‘왕녀 마르게리타의 초상’ 등은 빼놓을 수 없다. 이 밖에도 루벤스, 렘브란트, 뒤러, 틴토레토 등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대가의 작품은 한두 개가 아니다.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던 도중 대가의 작품을 모작하는 노화가를 만났다. 남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열심히 그림을 베끼는 중이다. 그 모습이 흥미로운지 미술관을 둘러보던 사람들이 몰려 원작과 모작을 비교해보기도 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데 이 노화가도 세상을 놀라게 할 창조적 작품을 내놓게 될까.
■레오폴트미술관
빈미술사박물관에서 나와 큰길 하나를 건너 5분만 걸으면 박물관 밀집구역인 뮤지엄 카르티에가 나타난다. 이곳에 2001년 개장한 레오폴트미술관이 있다. 이 미술관은 특징이 없는 직사각형 건물에 불과하지만 ‘빈에서 꼭 가야 할 미술관’에 넣은 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20세기 초 표현주의의 거장 에곤 실레였다. 이곳은 전 세계 모든 미술관 중에서 에곤 실레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그림, 사진, 자필 편지 등을 포함해 모두 200여 점이나 된다. 게다가 벨베데레궁전에서 볼 수 없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다른 명작도 즐길 수 있다.
레오폴트미술관에서 빼먹을 수 없는 에곤 실레의 작품은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줄무늬 셔츠를 입은 자화상’ 등 다양한 형태의 ‘자화상’과 그의 연인 발부르가 발리 노이질을 그린 ‘발리의 초상’이다. 여기에 당대에 그를 논란의 중심에 서게 할 정도로 여성 성기를 매우 자극적으로 드러낸 각종 누드화도 보인다. 그가 스물여덟 살에 단명하지 않았다면 어떤 위업을 남겼을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엄청난 대작들이다.
레오폴트미술관에는 ‘키스’ 외에 클림트의 다른 대표작인 ‘죽음과 삶’을 포함해 많은 그의 작품이 걸려 있다. 그가 살았던 방과 작업실을 재구성한 시설도 보인다.
■벨베데레궁전
빈에 갈 때마다 벨베데레궁전은 빼먹지 않았다. 필자를 포함해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이 궁전에 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빈 분리파’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를 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잘 모르는 게 있다. 이곳에는 ‘키스’ 외에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등 거장의 작품도 수두룩하다는 사실이다.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트램을 타고 10분 정도만 달리면 벨베데레궁전이 나타난다. 지금은 시내 한복판이나 마찬가지인 장소이지만 18세기 처음 건설될 때만 해도 사람이 잘 살지 않던 빈의 외곽이었다.
벨베데레궁전은 당시 오스트리아제국 최고 장군이었던 사보이의 오이겐 공작이 건설한 개인 여름별궁이었다. 이 궁전은 상궁과 하궁 그리고 두 궁전 사이 정원으로 나눠진다. 상궁은 각종 행사용으로, 하궁은 오이겐 공이 여름에 무더위를 피해 거주하는 별장으로 사용됐다.
오이겐 공작이 죽은 뒤 궁전을 매입한 마리아 테레지아 황제는 상궁을 미술관으로 바꿨다. 클림트의 ‘키스’는 1908년 상궁에 자리를 잡았다.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미술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빈에 가면 알 수 있지만 빈 관광을 먹여 살리는 기념품은 모차르트, 엘라자베트 황후 그리고 클림트의 ‘키스’다.
‘키스’는 두 연인이 입을 맞추는 장면을 담은 작품이다. 두 연인의 모습에서 진정한 사랑이 엿보이기도 하고, 진한 에로티시즘을 느낄 수도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관람할 당시의 기분에 따라 작품에서 받는 감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키스’ 앞에는 늘 관광객이 붐빈다. 사진을 찍으려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시간대에 따라 줄이 길 수 있지만 때로는 서너 명만 대기할 때도 있다. ‘키스’를 배경으로 구도, 각도를 잘 맞추면 정말 그림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작품이 주인공인지, 내가 주인공인지 헷갈릴 정도다.
‘키스’ 앞에서 사진만 찍고 휙 돌아서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작품을 감상해야 할 순서가 남았다. 그림은 가로 180cm, 세로 180cm로 꽤 커서 어지간히 뒤로 가도 제대로 볼 수 있다. 벽에 붙은 관능적인 그림 그리고 그 앞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셀카를 찍는 연인. 두 장면이 하나로 합쳐진 모습은 꽤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클림트의 그림은 ‘키스’뿐만이 아니다. ‘유딧 1’ ‘프리차 리들러’ ‘아담과 이브’ ‘궁전으로 가는 길’ ‘죽음을 앞둔 노인’ ‘아말리에 주커칸들’ ‘신부’ 등 무려 20여 점에 이른다.
‘키스’를 봤다면 이제는 천천히 미술관 다른 공간을 둘러볼 차례다. 꽤 넓은 데다 작품도 많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 보려면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 에곤 실레의 ‘웅크린 부부’와 ‘죽음과 소녀’ 등 20점,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빈센트 반 고흐의 ‘오베르 평원’과 ‘병 다섯 개’, 클로드 모네의 ‘요리사’와 ‘지베르니 정원의 길’, 르누아르의 ‘목욕 후’ 등 4점, 뭉크의 ‘해변의 두 남자’ 등 3점, 에밀 놀데의 ‘꿈을 말하는 요제프’ 등이다.
벨베데레 상궁에는 마리아 테레지아 황제의 막내딸 마리아 안토니아, 즉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도 담겼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막내딸을 프랑스 왕세자와 결혼시키기로 약속한 뒤 파리로 보내기 며칠 전 환송 파티를 열었는데, 파티 장소가 벨베데레 상궁이었다. 당시 파티 참석자가 1만 3000여 명이었다니 이곳 말고는 큰 행사를 치를 공간을 찾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대가의 화려한 작품을 관람하면서 호강하느라 온갖 색감으로 물든 눈이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걸 느끼며 상궁에서 나온다. 하루 종일 머무르고 싶지만 다음 일정을 생각하면 고집을 피울 수는 없다. 빈(오스트리아)/글·사진=남태우 기자
2025-03-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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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해가 아름다운 나라 아제르바이잔에 여행 오세요”
“카스피해가 아름다운 나라 아제르바이잔으로 여행 오세요.”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 지역에 자리를 잡은 아제르바이잔 여행을 장려하기 위한 네트워킹 디너 행사가 열렸다.
아제르바이잔관광청은 25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네트워킹 디너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아제르바이잔 여행, 관광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아제르바이잔 여행의 매력을 소개했다.
아제르바이잔 측이 소개한 현지 관광 명소는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수도 바쿠의 신시가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 아제르바이잔이 ‘불의 나라’라는 별칭을 얻게 된 유래인 ‘불의 사원’ 아테쉬가, ‘불타는 산’ 야나르다그 등이다.
주한 아제르바이잔대사관 라민 하사노프 대사는 인사말에서 “바쿠의 가라다흐구와 서울의 용산구가 자매결연을 맺었다. 한국과의 다양한 교류활동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아제르바이잔 관광청 플로리안 셍스트쉬미드 청장은 “지난 1~10월 아제르바이잔을 찾은 한국 관광객은 1만 3972명이었다. 지난해 7320명보다 91% 늘었다. 아제르바이잔이 앞으로 한국인에게 더 친근하고, 더 사랑받는 여행지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아제르바이잔 관광청은 앞으로 한국인의 관광을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해 한국 여행업계 관계자 및 언른올 대상으로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2024-11-2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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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뿐인 해변 파크골프장…“공 치는 재미가 환상적”
파크골프 인기가 해마다 폭발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한국 파크골프 동호인을 유치하기 위해 동남아에도 파크골프장이 속속 생겨나는 상황이다. 이달 초에는 베트남 냐짱(나트랑)의 셀렉텀 노아 리조트에 베트남 최초의 파크골프장이 개장했다. 그곳은 어떤 시설을 갖추고 한국 파크골프 동호인을 기다리는지 미리 다녀왔다.
■아름다운 파크골프장
딱! 철썩! 끼룩끼룩!
티샷으로 날아간 공의 경쾌한 타격음에 이어지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 한마디로 세상에 둘도 없는 환상적인 코스다. 첫 스윙을 시도한 파크골프 동호인들의 입에서는 동시에 탄성이 튀어나온다.
“야, 정말 멋지군!”
셀렉텀 노아 리조트의 파크골프장은 총 18개 홀 규모다. 그렇게 크지 않아 많은 인원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따라올 수 없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 셀렉텀 코스는 과거 일반 골프 미니 경기장에 조성돼 공을 치는 재미가 남다르고, 노아 비치 코스는 해변에 자리를 잡아 사람을 홀리는 풍경을 자랑한다.
리조트 본관 앞에 마련된 셀렉텀 코스 9개 홀부터 돌아본다. 첫 홀은 리조트를 정면으로 마주보는 곳에서 시작한다. 벙커가 설치되고 코스가 구불구불한 데다 ‘ㄱ’처럼 꺾어진 홀뿐 아니라 티샷 지점과 홀컵 지점의 표고 차가 심한 홀도 있어 쉽게 공략할 수 없다.
셀렉텀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홀인원 부상’이 마련된 7번, 8번 홀이다. 7번 홀에는 고급형 풀 빌라 업그레이드 특전이, 8번 홀에는 에어부산 냐짱 왕복 항공권 1장이 부상으로 걸렸다. 거리가 20m 안팎이어서 홀인원에 도전해볼 만한 곳이다.
이번에는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코코넛 가든 앞에 마련된 노아 비치 코스에 도전한다. 1~6번 홀은 매우 단순한 형태로 이뤄졌고, 7~8번 홀은 꽤 아기자기하게 설치됐다. 노아 비치 코스의 최고 장점은 코코넛나무 숲에서 시원한 바다 풍경을 즐기면서 공을 친다는 점이다.
코스를 돌다가 적당한 지점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거나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ㄱ’자 형태의 2번 홀에서는 백사장 위로 공을 치는 이색 경험을 할 수 있다. 해변을 배경으로 또는 해변을 바라보며 퍼팅까지 하는 환상적인 구간이다. 가장 시원한 사진이 나오는 코스는 7~9번 홀인데, 공을 치는 사람의 입에서 “정말 대단해”라는 탄성이 저절로 튀어나올 만한 곳이다.
노아 비치 코스에서 파크골프를 즐긴 뒤 1~6번 홀과 7~9번 홀 사이에 설치된 테이블과 의자에 자리를 잡는다. 바로 앞에 미니바가 있는데 음료수, 주류, 간식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비용은 숙박비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모두 무료다. 바뿐만 아니라 셀렉텀 노아 리조트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제공한다.
냐짱 파크골프 전담 여행사인 와이투어앤골프의 김대곤 대표는 “셀렉텀 노아 리조트 파크골프장 코스는 짧지만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깊은 인상을 얻을 수 있다. 휴가와 파크골프 체험을 겸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말했다.
■편안한 호캉스
파크골프를 즐긴 뒤 골프채를 숙소에 가져다놓고 간단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다. 본관 앞은 물론 코코넛 가든 인근에도 풀장이 마련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두 풀장에는 가족 이용객이 넘쳐난다. 특히 코코넛 가든 옆의 풀장은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여서 물속에 몸을 담그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멍 때리기에 최적의 장소다.
풀장에서 물놀이를 만끽한 뒤에는 풀장 바로 앞의 레스토랑에 간다. 이곳에서도 음료수나 주류, 간단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맥주 한 잔을 들고 코코넛 가든으로 간다. 몸을 누일 수 있는 해먹도 있고, 바퀴 모양의 간이침대도 있다. 간이침대에 누워 맥주로 목을 축이고 눈을 감는다. 코코넛 나무 잎에 가려 햇살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바닷가라서 바람도 꽤 많이 불어 정말 시원하다. 이대로라면 금세 잠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백사장에서 갑자기 함성이 터져 나온다. 비치사커 경기가 벌어진다. 리조트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편을 갈라 축구를 한다. 옆에서는 숙박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비치발리볼을 즐긴다.
리조트 안에만 머무는 게 지루하다면 당일치기 투어에 나서면 된다. 리조트에서 40분 거리인 냐짱 시내에는 8~13세기에 지어진 고대 참파 왕국의 유적지인 힌두교 사원인 포나가르 첨탑이 있다. 또 1866년에 건설된 용선사도 있다. 돌아오는 길에는 냐짱 여행객의 필수코스라는 롯데마트에 들러 망고 관련 먹거리를 선물로 살 수도 있다.
냐짱(베트남)=남태우 기자 leo@busan.com
2024-11-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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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미인도’ 보려고 한 달 반 만에 10만 명 몰렸다
가을을 맞아 대구에 뜨거운 관심을 끄는 명소가 생겼다. ‘지역을 넘어 미래로 이어가는 문화보국 정신’이라는 슬로건 아래 9월 3일 개관한 대구간송미술관이다. 바로 옆에는 2011년 문을 연 대구미술관도 있다. 지난 18일 찾아간 두 미술관 주변은 온통 가을 단풍 천지였다. 미술관 관람을 갔다 뜻하지 않게 단풍놀이까지 즐기게 됐다.
■대구간송미술관
대구간송미술관은 2015년 7월 대구시청과 간송미술관이 분관 설치 협약을 맺은 지 9년 만에 문을 열었다. ‘여세동보’라는 주제로 국보·보물 40여 점 등을 소개하는 개관 기념 기획전이 진행되는데, 한 달 반 만에 관람객 10만 명을 넘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산수, 인물, 풍속 등 다양한 회화와 책 등을 소개하는 제1전시실이다.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어서인지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발 디딜 틈도 없다. 정선, 심사정의 산수화와 신윤복, 김득신의 풍속화 등을 관람하려고 전시실 내에는 곳곳에 긴 줄이 늘어섰다.
학교에 다닐 때 미술책 등에서만 보던 국보 회화 작품을 직접 관람하게 된 사람들의 입에서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일부에서는 내부 공간이 너무 깜깜하다며 불평을 터뜨리지만, 주변을 어둡게 조성함으로써 오롯이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의 하이라이트는 신윤복의 ‘미인도’만 배치한 제2전시실이다. 별도의 공간에 ‘미인도’ 하나만 가져다 놓고 소수 인원만 제한적으로 순서대로 들어가 볼 수 있게 했다. 모두 ‘미인도’만 보려고 미술관에 온 듯 입구에는 긴 줄이 늘어서 들어갈 순서를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관람한 ‘미인도’의 여자 주인공은 관심이 민망한 듯 부끄러운 미소를 짓는다.
제3전시실의 주제는 ‘훈민정음 해례본: 소리로 지은 집’이다. 국보이면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이 전시된 곳이다. 혹시 복사본이 아니냐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시된 책은 놀랍게도 진본이다. 전시실 한쪽 공간에 한글을 주제로 만든 독특한 미디어 작품도 눈길을 끈다.
대구간송미술관에서 ‘미인도’ 못지않게 인기를 끄는 곳은 고려청자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모은 제4전시실이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여러 점의 국보 도자기가 전시돼 있다.
미술관을 빠짐없이 둘러봤다면 마지막 코스는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의 작품을 영상으로 재구성해 초대형 화면에 비추는 제5전시실이다. 편안한 안락의자나 전시실 바닥에 앉아 환상적으로 흘러가는 영상에 빠져든 관람객들의 표정에서는 재미있다는 느낌이 넘쳐난다.
■대구미술관
대구미술관은 대구간송미술관 지척에 있다.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에는 빨갛게 물든 대덕산 언저리의 단풍을 즐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두운 실내에서 작품을 감상하느라 지친 눈을 풀어 주고 곳곳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맑은 공기를 쐬는 것도 좋다.
대구미술관 1층에서는 내년 2월 23일까지 우리나라와 이집트의 전설, 신화를 소재로 삼은 이집트 영상 작가 와일 샤키 특별전이 진행된다.
‘러브 스토리’는 우리나라 구전 설화와 전래 동화를 판소리로 재해석한 작품이지만 관람객에게는 매우 낯설고 독특하게 다가온다. 어린이들이 어른으로 분장해 출연한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 1’은 이집트 신화를 다룬 작품인데, 마치 드라마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나는 새로운 신전의 탐구’는 그리스신화와 이집트 종교의 연관성을 탐구한 작품이다.
각 작품 앞에는 벤치가 있어 편하게 앉아서 관람할 수 있다. 먼 이집트의 신화, 전설이 낯선 관람객에게는 지겨울 수도 있지만, 이색적인 문화와 주제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1시간 정도 관람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대구미술관 3층에는 ‘몰입’이라는 주제의 디지털 가상 공간이 있다. 대구의 지역성과 역사성을 상징하는 지역 작가 15명의 작품을 10~20분짜리 미디어 영상 6개로 제작해 요일마다 달리 상영하는 체험시설이다.
지난 18일 상영된 작품의 주인공은 서양화가 서동진과 목판화가 김우조였다. 5~6평쯤 되는 작은 체험 공간은 환상적으로 연출된 두 화가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때로는 입체감을, 또 때로는 바람에 그림이 날리는 듯한 착각을 주면서 20분이라는 시간을 순식간에 지워 버렸다.
2024-10-2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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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미소 같고 그리운 벗 같은 '연보랏빛 개미취 물결'
경북 문경시 호계면에 해발 360m 정도로 나지막한 월방산이 있다. 이곳 중턱에 있는 봉천사라는 작은 절이 2년 전부터 갑자기 SNS에서 인기 관광지 및 사진 촬영 명소로 떠올랐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이름도 독특한 꽃, 개미취 덕분이다.
개미취는 한국, 일본 원산의 국화과 풀로서 ‘기억’ ‘먼 곳의 벗을 그리다’라는 꽃말을 가졌다. 일본에서 꽃말도 한국과 비슷한 ‘잊지 않을게’다. 9~10월에 연한 자주색, 즉 연보랏빛 꽃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2022년부터 봉천사에서는 매년 ‘개미취 축제’가 열리는데 이색적인 이름과 연보랏빛 꽃 덕분에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도 오는 13일까지 봉천사 개미취 축제가 펼쳐진다. 만개한 꽃이 시들기 전에 봉천사에 서둘러 다녀왔다.
봉천사로 올라가는 경로는 산길인데도 꽤 넓어 운전하기 어렵지 않다. 문제는 주차다. 큰 절이 아니어서 주차 공간이 모자란 탓에 산길 구석구석에 차를 세워야 한다. 절 관계자와 인근 마을 주민이 주차 안내를 하는 덕에 막히는 일은 없지만 상당히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봉천사가 자리를 잡은 공간은 높은 곳은 아니지만 앞이 탁 트였다. 시골 마을 외에는 시야를 가리는 게 없어 너른 들판과 푸른 산이 펼쳐져 풍경이 꽤 시원하다.
절 아래 마을에서부터 개미취가 곳곳에 피어 봉천사에서 만날 절경을 예고한다. 본격적인 개미취 풍경은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주차장 앞 빈터에 개미취가 군락을 지어 피었다. 본격적인 꽃 축제 장소는 주차장을 지나 봉천사로 들어가는 길부터다.
봉천사 개미취 축제는 절과 지역 주민이 함께 진행하는 민간 행사다. 그래서 행사장 입구에서 입장료 1만 원을 내야 한다. 대신 음료수와 도토리묵을 대접한다. 입구에서 ‘사진 핫 스폿’을 소개하는 소형 팸플릿도 나눠 주니 참고해서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 된다.
봉천사 바로 앞에는 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작은 한옥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은 절이 아니라 400년 전에 안동 김씨 가문이 지은 병암정이다. 정자 옆에는 큰 소나무가 있는데 정자를 지을 때 심어 수령이 400년에 이른다.
병암정처럼 봉천사 주변에는 소나무 숲 외에 바위가 많은데, 개미취는 숲과 바위 주변에 집단으로 피어 있다. 미륵바위, 거북바위, 자미성바위 등 바위마다 이름이 있는데, 생긴 모양만큼이나 꽃과 어울리는 분위기도 달라 사진 찍는 재미가 남다르다.
개미취 하이라이트는 봉천사 본당과 바로 앞 부처상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과 바로 맞은편 큰 바위 언덕이다. 또 본당 왼쪽 자미성바위에서 바라보는 산 아래도 그야말로 절경이다.
개미취꽃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연보랏빛이 눈에 띄지 않지만 집단으로 어울린 모습에서는 색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개미취꽃 군락 사이에 감나무도 보인다. 아직 홍시가 되지 않은 주홍색 감이 대롱대롱 매달렸는데 연보랏빛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꽃 사이에 시가 적힌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봉천사 개미취를 잘 표현했다는 느낌을 주는 시다.
‘보랏빛 꽃바다에/ 봉황이 찾아들고/ 월방산에 달이 뜨니/ 개미취 꽃 아름답다/ 부처님/ 자비로운 미소/ 송이송이/ 스몄네(이만유 시 ‘봉천사 개미취’)’
봉천사 개미취 군락 곳곳에서는 꽃 속에 들어가거나 바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분주하다. 사진을 찍지는 않고 꽃밭 사이를 산책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봉천사 본당 옆 공터에 앉아 개미취 꽃과 산 아래 시원한 풍경을 바라보며 ‘멍때리기’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같은 곳에서 여행하더라도 즐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봉천사 개미취 축제만 보고 오기가 섭섭하다면 문경시에도 가 볼 만한 곳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문경새재도립공원은 이달 말부터는 화려한 단풍이 만개해 관람객을 기다린다. 또 가은역과 진남역 폐역에서는 레일바이크를 즐길 수도 있다. 이 밖에 문경생태미로공원, 문경에코월드, 옛길박물관 같은 이색 시설을 방문해도 된다.
2024-10-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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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부팅시켜 준 바닷가 맨발걷기…2막 향해 다시 ‘큐~’ [맨발에 산다] ②
2022년 5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경기를 보기 위해 사직야구장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이었다. 속이 메스꺼워지더니 스멀스멀 구토까지 밀려왔다. ‘괜찮겠지, 금방 좋아지겠지’하고 참고 견뎌 봤지만, 증세는 야구를 보고 집으로 되돌아올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7년 전 진단받은 뇌경색이 재발한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겪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던 당시의 절망감. 건물 외벽에 붙은 한글 간판을 보고도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느꼈던 그 당혹감을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나이 들고 덩치만 커졌다 뿐이지 한글조차 읽지 못하는, 영락없는 바보였어요.” 한여름 무더위가 긴 꼬리를 드리우던 9월 초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서 만난 남승혜(50) 씨. 2년 전 자신이 겪은 일을 얘기하다 스스로 어이없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일 이후로 2년 넘게 매일 같이 광안리에서 맨발걷기를 한다는 승혜 씨의 ‘맨발 생환기’를 들어 봤다.
다시 2022년이다.
승혜 씨는 그해 3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앞서 2015년 뇌경색 진단을 받았던 승혜 씨는 부작용 우려로 코로나 예방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확진이 되고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뇌경색 증세가 나타난 것이었다. 코로나 후유증이었다. 곧장 처음 뇌경색 진단을 받았던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향했고, 뇌경색 재발이라는 진단과 함께 수술을 권유받았다.
“바닷가에서 맨발걷기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평소 다니던 부산의 한 한의원 원장의 제안이었다. 평소 승혜 씨의 건강 상황을 잘 알고 있던 한의원 원장은 ‘바닷가를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이 잘 된다’며 적극 권했다. 원장의 맨발걷기 제안은 수술을 망설이던 승혜 씨의 귀에 콕 박혔다. 마침 집이 광안리해수욕장까지 걸어서 5분이면 충분할 정도로 가까운 곳이었다. 다음 날부터 바로 걷기 시작했다. 수술을 제안한 서울 병원에선 약 처방을 받고 퇴원했다. 수술은 6개월 후 경과를 보고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바닷가 맨발걷기 효과는 생각보다 빠르고 확실했다. 광안리 해변을 걸은 지 2주일 정도 되자 몸이 반응을 보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느라 온종일 지쳐 지내던 일상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몰려드는 피로감 탓에 오후 4시만 되면 어김없이 눈을 붙여야 했었는데, 어느새 ‘옛일’이 되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틈날 때마다 광안리 해변을 누비느라 평소보다 몸을 더 움직였는데도 피곤함은 오히려 덜했다. 수시로 괴롭히던 감기도 멀리 달아났다. 가끔 찾아오더라도 예전처럼 오래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꼬리를 내렸다.
태풍이 몰아치거나 폭우가 쏟아질 때를 제외하고 매일 걷고 또 걸었다. 6개월 후 다시 찾은 서울 병원에선 더 이상 수술 얘기를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승혜 씨를 기쁘게 한 것은 더 이상 자신이 ‘덩치 큰 바보’가 아니어도 된다는 점이었다. 두 눈으로 글자를 보고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또 무슨 뜻인지 몰라 절망했던 자신이 더 이상 아니었다.
예상치 못했던 맨발걷기 효과는 삶의 방식도 바꿨다. 뇌경색이 재발할 무렵, 승혜 씨는 서울로 근무지가 바뀐 남편이 출퇴근할 수 있는 수도권으로 이사할 참이었다. 실제로 집을 구했고 계약까지 앞두고 있었지만 포기했다. 승혜 씨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 광안리 맨발걷기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승혜 씨 가족은 결국 주말에만 함께할 수 있는 ‘이산가족’이 됐지만 아쉬움보다 감사함을 더 느꼈다고 한다.
‘맨발걷기의 기쁨’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된 이상 입 꾹 다물고 혼자 즐길 성격이 아니었던 승혜 씨는 맨발걷기 전도사로 나섰다. 대상은 양가 부모님 등 집안 어른은 물론이고 친구나 지인, 심지어 다른 학부모까지 제한이 없다. 광안리는 예배당이고, 맨발걷기는 찬송가인 셈이다.
승혜 씨는 대학교 때 학교 방송국 활동을 했고, 졸업 후에는 부산 KBS 리포터와 가톨릭평화방송 아나운서·피디 등 방송인으로서 20~30대를 보냈다. 마흔을 앞두고 덜컥 방송국을 그만두고 아이들 교육·놀이 시설을 열어 운영하는 모험도 했다. 사업을 접은 뒤엔 두 아이와 남편 뒷바라지를 하며 틈틈이 다녀온 가족 여행에 행복을 느끼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만난 질병과 이를 이겨내고 있는 승혜 씨에게 맨발걷기는 어떤 의미일까?
“처음엔 병이 재발한 걸 알고 절망했지만, 광안리 맨발걷기를 하면서 제 삶은 또 리부팅된 거죠. 그래서 요즘은 인생 2막을 위한 '큐 사인' 준비에 힘쓰고 있습니다.” 승혜 씨에게 두 번째 삶을 살게 해 준 맨발걷기는 '새 엔진'인 셈이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다시 뛸 수 있는 동력이 된 엔진. 리부팅된 엔진은 2년 동안 쉼 없이 가동됐다. 디지털소통지도사, 스피치 강사, 퍼스널 컬러 전문가, 라이브 커머스 전문가…. 승혜 씨가 자격증을 따거나 공부하고 있는 것들이다. 해외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관심이 많다는 승혜 씨는 한국어 지도사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광안리 바닷가 맨발걷기가 달아 준 승혜 씨의 날개가 어디까지 비상할지 궁금하다.
2024-09-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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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송이 백일홍에 초대형 산수화까지…‘사진 맛집’ 제대로네!
‘산소카페.’ 그렇고 그런 커피 판매점 이름이 아니다. 놀랍게도 경북 청송군 애칭이다. 공기가 맑다고 해서 이런 귀여운 이름이 붙었다. 얼토당토않은 영어 슬로건에 비해 지역 이미지가 순식간에 마음에 깊이 박히게 만들어준다.
깨끗한 공기를 음미하러 산소카페에 다녀왔다. 4만여 평 부지에 백일홍 수십만 송이가 핀 청송정원은 물론 소설 <객주>를 담은 ‘객주문학관’이 하이라이트다. 여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그림도 있다. 출발하기도 전에 호기심부터 발동한다.
■청송정원 백일홍
얼마나 화사한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다. 많은 꽃밭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넓으면서 꽃이 잘 핀 정원은 처음이다. 게다가 산소카페라는 애칭에 걸맞게 공기는 정말 맑아 풍경을 더 환상적으로 만들어준다. 이곳은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산소카페 청송정원’이다.
기온이 약간 떨어졌지만 여전히 덥다. 날씨를 고려해 청송정원 입구에서 우산을 빌려준다. 정원 안을 살펴보니 노란색, 빨간색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보인다.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꽃 사이로 걸어가는 우산은 정원을 더 화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백일홍은 주차장에서 가까울수록 밀집해서 잘 피었고 색감도 더 훌륭하다. 멀어질수록 꽃대가 짧은 데다 밀집되지 않고 듬성듬성 피었다. 청송정원 백일홍 꽃밭 곳곳에는 다양한 색깔의 의자, 사과 및 하트 모형, 그네가 포토존으로 설치돼 있다. 저마다 인생 샷 하나를 건지려고 열심히 촬영 중이다.
아쉬운 점은 사진 찍는 사람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설치한 시설에서는 좋은 사진을 얻기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또 넓은 정원에 그늘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어 무더위에 돌아다니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
■객주문학관
청송정원에서 자동차로 5분만 달리면 객주문학관이 나온다. 폐교된 고등학교 건물을 증개축해 10년 전 문을 연 곳이다. 폐교를 활용해 조성된 시설 중에는 관람객에게 별 흥미를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그야말로 ‘예외’다.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고 볼거리가 많다.
객주문학관은 청송 출신 소설가 김주영의 인생을 담은 곳이다. 관람은 3층 ‘김주영 작가실’에서 시작한다. ‘길 위의 작가 김주영’이라는 대형 입간판이 관람객을 환영한다. 김주영 친필 자료집, 각종 사진은 물론 그가 전국을 돌며 자료를 수집하다 골방에서 지쳐 곯아떨어진 모습을 담은 모형이 이어진다.
2층은 소설 <객주> 관련 자료가 전시됐다. 만화, 조형물, 인형 등을 활용해 <객주>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찍은 각종 사진도 전시됐다.
객주문학관 주변 풍경도 시원하다. 문학관 뒤편에 작은 숲이 있어 쉬기에 좋은 데다 바로 앞에는 연꽃이 환하게 핀 저수지 두 곳이 있어 연꽃 사진을 담기에 제격이다.
■청량대운도전시관, 야송미술관
문을 닫은 초등학교를 청송 출신 이원좌 화백을 주제로 담아 바꾼 곳인데, 그야말로 이색적인 두 공간이다. 청량대운도전시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산수화가 전시됐고 야송미술관은 세상을 흑백처럼 보이게 하는 특이한 사진 찍기에 최상의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뜻밖에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버스가 꽤 보인다.
청량대운도전시관에는 그림이 딱 한 점 전시돼 있다. 길이가 무려 46m에 이르는 초대형 산수화 작품인 ‘청량대운도’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5년 전 별세한 이 화백이다. 청량대운도를 사진에 담는 데에는 요령이 있다. 1층 그림 앞에 한 명을 세우고 2층에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래야 그림이 얼마나 거대한지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야송미술관에서는 2층 대전시실에 올라가야 한다. 이곳에도 이 화백 산수화 그림이 걸려 있는데 사진을 찍은 뒤 확인하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온통 하얀 내부 벽, 거의 흑백 같은 산수화 그리고 거무스름한 바닥에 비친 그림의 그림자까지 실내공간은 그야말로 흑백세상이었다. 색과 사진의 장난에 불과하겠지만 꽤 환상적이다. 사진기 품질이 떨어지고 사진 찍는 실력이 부족한 기자의 한 컷도 꽤 재미있는데, ‘프로페셔널’이 가서 찍는다면 과연 어떤 사진이 나올지 궁금해진다.
2024-09-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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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고장’ 의령으로 ‘부자 기운’ 느끼러 갈까요
솔직히 경남 의령군이 부산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인 줄 미처 몰랐다. 남해고속도로 북부산톨게이트에서 의령군청까지 5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인구는 겨우 2만 6000여 명으로 경남에서 가장 작은 지자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당연히 느린 삶을 누릴 수 있는 ‘슬로 시티’여서 모든 게 여유롭고 한가로운 곳이다. 여기에서는 서두를 필요도, 조급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느긋하고 한가롭게 의병박물관과 호암이병철생가를 중심으로 의령을 한 바퀴 둘러보고 왔다.
■의병박물관과 솥바위
남해고속도로 군북IC에서 빠진 자동차가 함안군 함마대로를 달려 의병대로에 접어들자마자 남강변에 ‘홍의장군 곽재우 동상’이 나타난다. 이곳이 의병 도시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인식시켜 주는 구조물이다.
동상을 지나친 자동차는 의령읍내에 위치한 의병박물관으로 향한다. 자동차는 박물관 앞에 세워도 되고 남강변 주차장에 세워도 된다. 의령군청 맞은편의 의병교를 건너자 눈앞에 거대한 의병탑이, 오른쪽에는 충익사가 보인다. 임진왜란 때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와 그 휘하에서 싸운 열일곱 장수를 기려 세운 건축물이다. 충익사에서 향을 피워 잠시 참배한 뒤 의병박물관으로 이동한다.
우리나라에 수많은 사립, 공립, 국립 박물관이 있지만 의병을 주제로 한 곳은 여기뿐이다. 사실 처음에는 의병박물관 방문을 주저했다. 실망스러울 게 분명하다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전시물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의병박물관은 기대 이상이다. 실망스러울 것이라고 의심한 게 미안할 따름이다. 의병에 대한 설명이 풍부했고, 특히 정암진전투를 주제로 만든 영상물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도 재미있다고 느낄 정도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대단한 관광 명소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의병박물관에서 나와 왼쪽으로 10분 정도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 의령구름다리가 나온다. 깊은 산속 계곡 사이에 매달린 구름다리는 더러 봤지만 시내 한복판 강 위에서 출렁이는 다리를 건너기는 처음이었다. 의령구름다리는 무서울 정도는 아니지만 꽤 흔들리는 데다 ‘다리를 다 건너면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니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구름다리는 세 갈래여서 이리저리 오가면서 다양한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다.
다시 자동차를 몰고 의병박물관에서 5분 거리인 남강변의 솥바위와 정암루로 향한다. 한자로 ‘정암(鼎巖)’인 솥바위에는 ‘반경 8km 안에서 부자가 넘쳐난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래서인지 삼성그룹, LG그룹, 효성그룹 창업자가 의령에서 태어났다고 의령 사람들은 믿는다. 사실이든 아니든 부자를 낳은 바위라면 찾아가서 기념사진 한 장 정도 찍어둘 필요는 있다. 모래사장만 누렇게 뿌려진 강에 나홀로 우뚝 선 솥바위는 정말 특이하게 생겼다. 솥바위에서 돌아나오는 길에 벽화가 보인다. 바위에서 금이 쏟아지는 장면이다. 이곳에서 기운이 닿으면 금덩이에 파묻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까.
솥바위를 내려다보는 정암루는 곽재우 장군이 인근 정암진에서 벌어진 왜병과의 전투에서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정자다. 바로 앞에는 함안과 의령을 연결하는 1935년에 만들어진 트러스식 다리인 정암교가 있어 걸어 건널 수 있다.
■호암이병철생가와 망개떡
의령구름다리와 솥바위에서 부자가 되는 기운을 받은 김에 이번에는 정말 부자가 된 실존인물의 생가로 달려간다.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이 태어난 곳인 ‘호암이병철생가’다.
이병철생가가 있는 곳은 정곡면 장내마을이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창설자 생가여서인지 마을 입구에는 꽤 넓은 공영주차장이 만들어졌다. 아직 뜨거운 여름인데도 주차장에 적지 않은 차가 서 있는 걸 보니 꽤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부부끼리 오는 사람도 있고,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도 있다. 다들 부자 기운을 받으러 오는 게 분명해 보인다.
장내마을은 전체적으로 정리정돈이 잘 돼 여느 시골마을과는 달리 꽤 깔끔하다. 방문객을 고려해서 그랬겠지만 마을의 흙길을 모두 없애고 아스팔트로 덮어놓은 게 아쉽기는 하다. 뜨거운 날씨는 아스팔트 때문에 더 뜨겁다.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방문객들의 마음을 읽어서인지 가게를 비롯해 곳곳에 ‘부자’라는 단어가 넘쳐난다.
고 이병철 회장의 부모는 부농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생가는 시골집치고는 꽤 넓고 크다. 지금까지 다녀본 여러 생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 같다. 생가를 재단장할 때 손을 본 것인지 정원도 잘 다듬어져 전체적으로 풍요롭고 넉넉해 보인다. 생가 뒤편은 숯골산 끝자락인데, 절벽 같은 지형에 숲이 우거져 집을 전체적으로 포근하게 보호한다는 느낌을 준다. 안내문을 보니 숯골산은 곡식을 쌓아놓은 형상이어서 생가를 명당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돌아 나오는 길에 공영주차장 한쪽에 의령의 전통음식인 망개떡 가게가 보인다. 여기까지 와서 망개떡을 제대로 맛보지 않고 갈 수는 없다. 더운 날씨에 오래 놔두면 상할 수 있기 때문에 16개가 든 한 상자만 고른다. 하나를 꺼내 먹어보니 정말 맛있다. 역시 여행은 보고 사고 먹는 재미로 다니는 것이다.
2024-08-29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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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조+맨발…‘서부산 첫 슈퍼어싱 챌린지’ 열기 뜨겁다
‘1만 명 맨발걷기 대축제’가 펼쳐질 세븐비치 어싱 챌린지 다대포해수욕장 편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6일 온라인 참가 신청을 받기 시작한 다대포 어싱 챌린지는 다음 달 28일 선착순 신청자 1만 명과 함께하게 된다. 온라인 접수 사흘 만에 신청자가 3000명에 육박할 정도로 참여 열기도 뜨겁다. 봄기운이 완연하던 지난 4월 21일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출발한 세븐비치 어싱 챌린지는 부산의 해수욕장 일곱 곳에서 차례로 ‘슈퍼어싱’ 맨발걷기를 하는 국민 건강 프로젝트. 6월 16일 광안리 편에 이어 9월 28일 사하구 다대포해수욕장에서 세 번째 걸음을 내디딘다.
∎낙조 맛집과 슈퍼어싱의 만남
다대포해수욕장은 부산에서 몇 안 되는 전국구 일몰 명소로 이름나 있다. 부산엔 해안가를 중심으로 일출 풍경을 만나는 장소가 많다. 하지만 서부산권에 위치한 다대포처럼 낙동강 하구와 바다, 가덕도 등지의 산세가 어우러져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이런 이유로 매년 연말 전국의 해넘이 명소가 소개될 때 부산에선 다대포가 늘 대표 장소로 손꼽힌다.
단순히 해넘이가 ‘목격’된다고 명소로 불리지는 않는다. 다대포에 전국의 일몰 나들이객이 몰리는 데에는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도 큰 몫을 차지한다. 다대포는 동해안권에 가까운 부산의 나머지 해수욕장과 달리 남해안권에 자리한다. 이런 입지는 상대적으로 해안 침식의 영향을 덜 받는 순기능을 해 많은 이들의 발길을 다대포로 이끈다.
낙동강 상류에서 떠내려와 쌓인 양질의 모래도 다대포해수욕장이 폭 150m 안팎의 여유로운 백사장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다대포의 드넓은 백사장에 서서 지는 해에 반짝이는 윤슬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으면 ‘인생 사진’ 하나 건지는 건 일도 아닌 것이 된다.
이런 천혜의 조건이 ‘낙조 맛집’ 다대포해수욕장을 오늘날 맨발걷기 성지로 거듭나게 하고 있다. 요즘 다대포에 가면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맨발로 해변을 누비는 슈퍼어싱족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물론이고 도심과 가까워 다소 번잡한 동부산권 해변을 피해 짬을 낸 이들도 몰려든다.
(사)부산걷는길연합 박경애 사무국장은 “다대포해수욕장은 해변의 경사를 못 느낄 정도로 평지에 가깝다”면서 “이는 신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며 맨발걷기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맨발학교 최명솔 부산지회장은 “발바닥이 물에 충분히 닿은 상태에서 걸어야 슈퍼어싱의 접지 효과를 최대로 누릴 수 있다”면서 “조수 간만의 차가 커 갯벌 면적이 넓게 형성된 다대포야말로 슈퍼어싱의 명당 중 명당”이라고 치켜세웠다.
∎친환경생태에 ‘스마트’ 옷 입는 사하
부산을 얘기할 때 단골처럼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동서 격차’ 문제다. 교육과 교통, 문화생활 여건, 상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부산의 서쪽 동네가 동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요즘 서부산 곳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눈여겨보면 이런 문제가 과거의 기억으로 남을 날도 머지않았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그 중심에 사하구의 스마트한 변신이 빛을 발하고 있다.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사하구는 2007년 문을 연 낙동강하구에코센터와 ‘부산의 허파’ 을숙도생태공원을 보유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공통 화두인 친환경생태도시로의 전환에 앞장서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사하구가 최근 스마트한 변신으로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대포해수욕장 인근의 부산 대표 산업단지인 신평·장림일반산업단지가 ‘서부산스마트밸리’로 거듭나면서다.
사하구는 그간 정주 여건을 방해하던 노후 산단의 환경을 개선하는 동시에 전통 제조업의 첨단 미래 산업 전환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이런 결실이 전국 공모를 통해 이름 지은 서부산스마트밸리다. 이미 지난해 정부 공모 사업에 선정돼 3년간 19개 사업에 2546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하구에서는 도시철도 동매역을 중심으로 4곳의 지식산업센터가 이미 건립 중이며, 나머지 10여 곳도 건립 준비에 착수한 상태다. 1호 지식산업센터인 ‘펜타플렉스 부산’이 입주를 시작하는 등 차곡차곡 결실을 거두고 있다.
∎‘다대포 맨발걷기’ 함께하려면…
세븐비치 어싱 챌린지 세 번째 다대포 행사에 참가하려면 우선 부산맨발걷기좋은도시운동본부 홈페이지(earthing.busan.com)에 접속해야 한다. 부산일보 홈페이지인 부산닷컴(busan.com)에 뜨는 팝업 창이나 사이트 주소를 직접 입력해 들어올 수 있다.
회원이 아니라면 신청에 앞서 부산닷컴 회원에 가입해야 한다. 신청 시 아이디(ID)와 비밀번호(PW)를 입력해야 하는데, 이때 부산닷컴 회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넣으면 된다. 회원 가입 및 참가 신청은 컴퓨터와 휴대폰에서 모두 할 수 있다.
가입과 신청 절차에 개인정보가 포함되기 때문에 전화로는 할 수 없다. 14세 미만 미성년자의 경우 회원 가입을 할 수 없지만 보호자와 동반할 수 있다. 그 외 문의 사항은 홈페이지의 ‘공지사항’과 ‘자주묻는질문’에서 확인하면 된다.
세븐비치 어싱 챌린지는 부산시, 부산일보사, 부산시의회, 부산상공회의소, BNK금융그룹이 공동 주최하고, 부산맨발걷기좋은도시운동본부가 주관한다. BNK부산은행, 반얀트리해운대부산, 부산미래IFC검진센터, 팬스타크루즈, 부산교통공사, 강림CSP, 금양, 송도해상케이블카, 대성문, 은산해운항공, 윈덤그랜드부산이 힘을 보탠다. 이들 기업의 후원으로 행사는 참가비 없이 무료로 진행된다. 참가자들에게는 배지와 생수, 신발 가방 등 기념품이 제공되며 추첨을 통해 푸짐한 경품도 주어진다.
2024-08-29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