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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수의 과기세] 반도체산업의 변동과 기술경영
한 번은 친구가 ‘과기세’가 뭐냐고 물었다. ‘과학과 기술로 읽는 세상’의 준말인데, 세상을 볼 때 과학과 기술을 꼭 포함시켜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친구는 반도체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엔비디아(NVIDIA),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 등이 거론되었다.
반도체(半導體)는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에 해당하는 것으로 외부의 조건에 따라 그 특성이 민감히 변화하기 때문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반도체는 1947년에 트랜지스터가 발명되고 1958년에 집적회로(IC)가 개발되면서 산업화하기 시작했다. 페어차일드와 인텔의 공동 창립자인 고든 무어는 1965년에 반도체의 집적도가 매년 2배씩 증가한다고 예견했으며, 1975년에는 그 기간을 2년으로 수정했다. 반도체의 집적도는 1개의 칩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숫자에 의해 규정된다.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는 기능을 가진 메모리 반도체와 기능이 특별하게 설계된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로 나뉜다. 메모리 반도체는 기록된 정보를 읽을 수만 있는 롬(ROM)과 정보를 기록하고 읽는 것은 물론 수정하여 써넣을 수 있는 램(RAM)으로 구분된다. 램의 대표적인 유형인 D램(Dynamic RAM)은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가 빠르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기록해 둔 정보가 없어지는 특성이 있다.
주지하듯,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1980년대에 들어와 D램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삼성전자는 1988년에 4M D램을 개발하면서 선두그룹에 편입되기 시작했고, 1994년 256M D램의 개발을 계기로 기술적인 면에서도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D램 생산량에서 삼성전자는 1992년부터, 우리나라 전체로는 1998년부터 세계 1위가 되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삼성전자가 1993년부터, 우리나라는 2000년부터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00년대에는 반도체업체의 유형이 다변화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종합반도체 회사(IDM), 팹리스(fabless) 회사, 파운드리(foundry) 회사 등이 그것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대부분 IDM이 설계와 생산을 함께 수행하고 있으며,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에는 팹리스가 설계를, 파운드리가 위탁생산을 담당하는 분업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최고의 강자로 오른 기업은 모리스 창이 설립한 TSMC다. 옛날에는 패키징이 단순조립에 불과해서 뒷방 신세에 놓여 있었지만, 지금의 패키징은 고객의 주문을 척척 알아서 반영하는 첨단 분야로 변신했다. TSMC가 파운드리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자, 메모리 분야의 삼성전자나 시스템 반도체의 강자인 인텔도 파운드리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서는 반도체산업에 대한 게임의 법칙이 다시 바뀌고 있다. 2022년에 ‘챗GPT’로 상징되는 생성형 AI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AI 서버에 들어가 데이터 학습과 추론을 돕는 반도체 패키지가 필요해졌다. 그것은 흔히 ‘AI 가속기’로 불리는데,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중심으로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배치하여 만들어진다.
GPU의 선두 주자는 젠슨 황이 이끄는 엔비디아다. 처음에 엔비디아의 GPU는 게임용 컴퓨터를 위한 그래픽 카드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딥러닝의 아버지’로 작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제프리 힌턴이 2012년 이미지넷 대회에서 엔비디아의 GPU를 활용했고, 이를 계기로 엔비디아는 가파른 성장세에 들어섰다. 엔비디아에서 비싼 AI 가속기를 수만 개씩 구매해야 하는 고객사들의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의 납품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 사실상 HBM은 AI 서비스에 특화되긴 했지만, 대용량 D램에서 파생된 것에 해당한다. 그동안 D램의 최강자로 군림하면서 ‘초(超)격차’를 운운하던 삼성전자가 HBM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는 셈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분석과 진단이 등장하고 있는데, 필자에게는 삼성의 조직문화에 주목하는 논의가 와닿는다. 이전에는 엔지니어들이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쥐었지만, 최근에는 재무관리 쪽이 득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담대한 도전이 이루어지기 어려워지는 게 당연하다.
기술 중심의 경영, 즉 기술경영의 중요성이 다시 떠오르는 지점이다. 기술경영은 글로벌 플레이어는 물론이고 기술집약적 중소벤처기업에도 필수적인 덕목이다. 더 나아가 기업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기술경영이 필요하고, 기술집약이 떨어지는 기업도 기술경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든 기업이든 미래의 성장동력을 기술혁신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25-04-0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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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래의 메타경제] 케인스와 하이에크
시간이 지나면 이념의 지평도 변하기 마련이다. 이념이 정책으로 직접 나타나는 경제에서도 그런 흐름을 본다. 냉전이 지배하던 시절 경제학의 양극에는 마르크스(K. Marx)와 하이에크(F. Hayek)가 있었다. 마르크스가 사회주의 이념을 뒷받침했다면 하이에크는 시장경제의 강력한 옹호자였다. 계획경제는 반드시 자유를 희생하게 된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굳은 신념이었다.
그 중간에 케인스(J. Keynes)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평가는 이중적이었다. 케인스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진보는 케인스를 보수주의자로 몰아붙였다. 마땅히 더 심한 경제위기를 겪었어야 할 자본주의가 케인스의 처방에 의해 회생하고 순항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시장주의자들은 케인스를 직접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러면서 진정한 케인스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 했다.
한국 이념적 지평은 점점 오른쪽으로
케인스보다 하이에크 이론 득세할 듯
시장주의적 극단편향 경계해야 할 때
1989년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되면서 사회주의를 뒷받침했던 이론도 함께 타격을 입었다. 하이에크의 대극에 있던 마르크스의 영향력은 급격히 퇴조하였다. 그러면서 아주 이상하게도 진보에 의해 보수로 비판받았던 케인스가 진보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이제 경제학에서 진보와 보수는 매우 단순하게 정리되었다. 정부의 개입을 옹호하면 진보이고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면 보수로 구분되었다.
불법 비상계엄 정국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우리가 미처 몰랐거나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속속들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과거의 지배적인 언론을 대신하여 다양한 정보유통 채널들이 더 힘을 얻으면서 얼마나 많은 가짜뉴스와 혐오가 만들어지고 증폭되는지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다.
그와 함께 아주 놀라웠던 것은 그동안 진행되어온 우리사회의 이념적 지평의 이동이다. 비상 정국의 대치 속에서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한 보수 진영은 대부분 극우의 논리와 행동양식을 보여주었다. 합리적 보수를 대신하여 극단적인 주장과 선동이 보수의 집회를 이끌어가는 핵심동력이 되고 있다.
극우로 이동한 보수의 비어있는 공간으로 진보로 불려 왔던 더불어민주당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실용노선을 강조하고 민생행보를 하고 기업인을 만나는 것은 그러한 움직임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사실 별로 놀라운 것은 아니다. 원래부터 크게 진보적이지 않았던 더불어민주당이기에 큰 변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념적 지평의 변화는 국민들의 생각에 조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보수의 흐름이 강화되고 극우의 논리들이 득세하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다만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갈등이 다르기 때문에 이념적 스펙트럼과 강도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그렇지만 보수와 극우의 논리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술의 변화와 함께 기존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노동의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많은 이주 노동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나라들에서 예외없이 나타나는 것은 없어진 일자리에 대한 불만이 이주 노동자로 향하고 있는 혐오이다. 혐오는 항상 사회적 약자에게로 향하는데, 그 대상자가 이주 노동자들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중국 국적의 조선족이 이주 노동자를 대체하면서 중국 혐오가 자라왔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주 노동자가 적었던 한국에서는 혐오의 많은 부분이 오랫동안 사회적 약자의 지위에 있었던 여성으로 향했다. 여기서 기인한 젠더갈등은 세계 최저의 저출산을 가져온 핵심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혐오에 기반을 둔 이 같은 갈등에서 우리 사회를 지킬 방법은 무엇인지 진심으로 걱정하게 된다.
다시 케인스와 하이에크로 돌아와 보자. 실업급여가 노동자와 실업자의 상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경제학자들은 논의를 하고 있다. 좀 극단적인 비유를 해보자. 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실업급여를 주고 교육을 받게 하여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면 그것은 케인스의 입장이다. 반면 시장에 맡겨 일을 하여 돈을 벌게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하이에크의 주장에 가깝다.
모두가 보수로 이동하면 향후 케인스보다는 하이에크의 주장이 더 득세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인천공항 공사 비정규직 사태가 던진 충격적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들려 했던 정부의 선의의 시도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하였다.
정규직이 될 줄 알았다면 자신도 비정규직에 미리 응시했을 것이라는 주장에서 극단적인 시장주의적인 편향을 읽는다. 국민들의 가치와 생각에 정치가 따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지나친 하이에크의 득세는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25-03-2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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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욱의 글로벌 산책] 교육혁신이 도시를 젊고 새롭게 바꾸려면
오늘날 전 세계 도시들은 경제 침체, 인구 감소, 산업 변화 등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들은 다양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교육혁신이 도시 활력을 되살리는 핵심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도시의 경제를 활성화하고,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며,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교육혁신이 기존에 강점이 있었던 산업과 맞물렸을 경우에 그 효과는 더욱 극대화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휴대전화 제조기업인 노키아 중심의 산업도시였던 핀란드의 오울루가 노키아의 쇠퇴 이후 도시의 침체를 교육혁신으로 극복한 사례다.
노키아의 고향 오울루의 극적 변신
지역에 걸맞은 교육혁신이 그 바탕
해양항만 인프라 강점 보유한 부산
산업 맞춤 교육혁신해야 도약 가능
1980~1990년대 오울루는 노키아의 핵심 연구개발(R&D) 센터가 위치한 도시로 성장했었다. 그러나 노키아는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는 시장변화에서 애플과 삼성에 밀리며 2000년대 후반 대규모 구조조정을 했고, 그 결과 오울루의 숙련된 엔지니어들이 실직하면서 지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울루대학교 중심으로 정보통신(IT) 관련 교육 및 연구를 강화했고, 오울루시와 기업이 협력하여 소프트웨어 및 ICT 관련 창업을 지원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기술 창업 교육을 제공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했다. 그 결과 핀란드는 이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IT·게임·헬스테크 스타트업 허브 중 하나가 됐다. 현재 700개 이상의 기술 스타트업이 오울루에서 활동 중이다. 그 중심에는 오울루대학교가 있었다.
그러나 교육혁신이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이루어질 때 사상누각이 되기도 한다. 2000년대 후반, 디트로이트는 제조업 쇠퇴로 인해 경제가 침체되자,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중심 교육 개혁을 추진했었다. 고등학교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IT·기술 직업교육을 확대해 자동차 산업 쇠퇴 이후 도시의 산업생태계를 주도하는 것이 인재 육성의 목표였다. 그러나 지역의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IT교육 일변도의 교육개혁은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취업할 곳이 없어 대도시(샌프란시스코, 시카고)로 유출되는 현상을 만들어 내고 말았고, 결국 실패했다.
이와 비슷한 실패 사례가 중국의 둥관에서 있었던 교육혁신을 통한 도시재생 시도다. 둥관은 중국의 대표적인 제조업 도시였으나, 2010년대 후반 첨단산업 전환을 위해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공업 기반을 넘어 AI, 반도체, 첨단 기술 산업을 키우기 위해 관련 전공 개설 및 기업-대학 협력을 강화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기존 둥관의 저임금 제조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 첨단산업으로 전환할 교육을 받기 어려웠고, AI·반도체 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AI·반도체 관련 고급 인재들이 대거 필요했으나, 둥관에는 높은 수준의 대학과 연구소가 부족했다. 그리고 지역 내 AI·반도체 산업생태계가 존재하지 않아서 둥관의 대학 내에서 이루어진 AI·반도체 인재 양성은 지역 기업과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우리 도시 부산에서 교육혁신이 도시의 재도약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관련 산업과 교육의 인프라가 부산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경우라야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크다. 부산은 해양·항만 인프라, 조선·해양기자재 산업, 해양수산업 등 다양한 해양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고, 해양 관련 교육인프라에서는 국내 다른 지역을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성장과 국제적 위상 강화를 위해서는 여러 도전과제가 존재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학-산업체-지방자치단체 간의 협력을 통한 전략적 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부산항은 국내 컨테이너 물동량의 76.8%, 특히 환적 물동량의 97% 이상을 처리하며, 2015년 이후 세계 환적 2위 항만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현재 항만 운영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터미널 대형화 및 스마트 항만 구축이 필요하다. 또한 항만 및 선박의 친환경성이 강화되는 현재 상황에서 관련 산업에 대한 대학-산업체-지방자치단체 간의 협력을 통하여 R&D 혁신의 성과를 내야 한다. 부산이 강점을 가져온 수산업도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을 절감한다는 목표에서 다시 주목받을 필요가 있으며, 노르웨이 등 수산업 선진국에 비해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부산의 관련 산업 노후 인프라에 대한 정비와 이를 위한 기술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게다가 시베리아 지역 및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알래스카에서 개발되는 천연가스가 시장으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극한 환경에서 천연가스를 개발하고 이를 운송하는 조선해양산업에서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부산이 강점을 가진 분야의 교육혁신이 지역 내 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전략적 지원과 접목돼 부산이 다시 우수한 청년 인재들이 꿈을 펼치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2025-03-1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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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기후 시스템의 균형
북쪽에서 밀려온 차가운 공기가 물러가면서 변덕스러운 봄 날씨가 시작되고 있다. 잦은 저기압과 고기압의 이동으로 날씨는 며칠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변한다. 이러한 변화 뒤에는 상층에서 흐름을 조절하는 제트 기류가 있다. 제트 기류는 남쪽의 따뜻한 공기와 북쪽의 차가운 공기 사이의 경계를 따라 대기 상층에서 빠르게 흐르는 공기 흐름이다. 제트 기류의 세기는 남북 간 온도 차이에 비례하며, 온도 차이가 클수록 제트 기류는 강해진다. 그러나 온도 차이가 일정 임계치를 넘으면 제트 기류는 불안정해져 남북으로 요동친다. 이때 따뜻한 공기는 북쪽으로 밀려가고, 차가운 공기는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남북 간 온도 차이를 줄인다. 이러한 흔들림이 중위도에서 저기압과 고기압이 형성되는 원인이다.
저기압과 제트 기류의 상호 작용
남쪽 잉여 에너지 북쪽으로 운반
자연계의 정교한 조절 지속돼야
제트 기류가 남북으로 크게 굽이치면, 그 아래에서는 상승 기류를 동반한 저기압이 형성되어 비를 내리고, 하강 기류가 형성된 곳에서는 고기압이 자리잡아 맑은 날씨를 만든다. 저기압과 고기압이 순차적으로 이동하며 우리가 경험하는 날씨 변화를 이끈다. 일반적으로 저기압은 지표면 근처에서 발달한다. 북쪽의 차가운 공기가 남쪽으로 내려오며 가벼운 따뜻한 공기 아래로 빠르게 파고들어 제트 기류의 흔들림이 관측된다. 일기도에서 하층의 등고선이 요동치는 모습을 보면 저기압 발달의 징후를 알 수 있다. 에너지 이동 관점에서, 저기압은 제트 기류의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성장하고, 이 과정에서 제트 기류는 점차 약화된다. 결국 제트 기류의 에너지를 이용해 저기압이 빠르게 발달한다.
제트 기류에서 에너지를 받은 저기압은 상층으로 이동하며, 동시에 제트 기류의 남쪽인 적도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인다. 약 3~4일 후, 저기압은 제트 기류 남쪽에서 소멸하며, 이 과정은 바닷가에서 파도가 부서지는 현상과 유사하다. 구조가 붕괴되며 주변 흐름에 흡수되고 대기 흐름 속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에너지 관점에서, 저기압의 역할은 명확하다. 남쪽은 햇빛을 받으며 과잉 에너지가 공급되고, 북쪽은 에너지가 부족하다. 저기압은 남쪽의 잉여 에너지를 북쪽으로 운반하며, 중위도에서는 적도에서 공급된 에너지를 북극으로 이동시키는 독특한 공기 흐름 구조가 형성된다. 따라서 저기압은 자연이 효율적인 에너지 수송을 위해 선택한 최적의 구조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기압의 소멸 과정을 자세히 보면, 이러한 해석에 의문이 생긴다. 저기압은 소멸하면서 자신이 가진 역학적 에너지를 제트 기류에 돌려주고, 이를 통해 제트 기류를 다시 강화시킨다. 제트 기류가 강해지면 남북 간 온도 차이가 다시 커지게 된다. 즉, 저기압이 온도 차이를 줄이기 위해 발생하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수송하는 구조로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멸 직전에 온도 차이를 다시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발생 전의 온도 차이로 완전히 되돌리지는 않지만, 감소시킨 온도 차이를 일부 되돌려 놓는다. 이러한 현상은 저기압이 단순히 온도 차이를 해소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한 이유를 가지는 대기 순환의 일부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저기압의 역할에 대해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저기압이 단순히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수송하기 위한 구조체라고만 보기보다는, 특정 조건에서 적절한 에너지를 이동시키는 시스템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물리학의 기본 원리인 뉴턴의 법칙이나 생태계에서 나타나는 진화의 법칙에는 최적화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물체는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의 차이를 누적시킨 값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생명체는 주어진 환경에서 가장 최적의 구조로 진화한다. 이러한 최적화 개념을 중위도 제트 기류에 적용해 보면, 이 시스템이 무엇을 최적화하려는 것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오랜 세월 동안, 중위도의 대기는 적절한 에너지를 고위도로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덕스러운 날씨를 만들어 왔다. 아직 그것이 정확히 어떤 원리에 의해 조절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완벽한 이론은 없지만, 이러한 자연계의 정교한 조절 속에서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가 삶을 이어왔다. 그런 무수한 생명들의 연속된 삶을 떠올려 보면,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만들어 낸 지구 온난화가 어쩌면 인류의 가장 큰 실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계는 인간이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목적 속에서 거대한 행성의 공기 흐름을 조율하며, 수많은 생명체가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을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 과학이라는 불완전한 지식을 바탕으로, 오로지 우리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그 섬세한 균형을 무너뜨려 왔다. 이제, 기후 변화의 거대한 위기에 직면한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자연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온 조화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2025-03-1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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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규의 법의 창] 미래 세대의 헌법
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 AI에게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경제적, 사회적 안정성이 높고, 고도의 기술력, 인프라, 생활수준 등을 갖춘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선진국이 되기에는 갈 길이 멀다고 느껴진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원제: Why Nations Fail, 저자: 다르온 아셈오글루·제임스 A. 로빈슨)라는 책에서 설명하듯이 대한민국이 ‘포용적인 제도’를 가진 국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저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포용적인 제도는 대다수 사람들이 경제적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인권과 법의 지배를 보장하며, 개인의 창의력과 혁신을 장려하는 제도 등을 말하는데, 우리나라가 포용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성문의 근거는 대한민국 헌법이다. 우리 헌법은 국민주권, 민주주의, 법치주의, 기본권 보장,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 존중 등을 규정하여, 포용적 제도임을 증명하고 있다.
필자의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일 때, 아이는 학교에서 헌법을 배우고 있으나, 법전에서 헌법 조문을 직접 본 적은 없다고 했다. 필자는 아이에게 헌법 읽기를 제안하여, 매주 한 번 헌법 130개 조문을 하나씩 같이 읽고, 내용을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행히 아이는 재미있어 했고, 약 1년 동안 헌법 읽기를 통하여 필자와 아이는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문을 읽으면서, 국가란 무엇인지를 같이 생각했다. 아빠로서 허세를 더해 막스 베버는 국가를 “합법적인 폭력을 독점하는 조직”으로 정의했다고 얘기했다. 당시 아이는 국가와 폭력이라는 단어의 연결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대한민국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 같았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자유권, 평등권 등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조문을 읽으면서는 ‘인권’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로 얘기했다.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중대한 권리는 자신이 겪고 싶지 않은 일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며, 자신이 기뻐하는 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선택의 자유다”라는 글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이해하면, 공동체 구성원 상호 간 타인의 권리를 존중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배운 논어의 “자기가 타인으로부터 강요받고 싶지 않은 것은, 자기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라는 구절을 필자에게 얘기해 주었다.
헌법 조문을 읽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아이는 진지한 눈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간혹 필자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했다. 아이와 함께 헌법 읽기를 통해 얻게 된 것은 헌법을 통한 세대 간 소통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헌법 읽기로 조부모와 손자녀, 부모와 자녀 세대 간 소통을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긍정적일지 알 수 없지만, 서로의 생각을 깊이 이해하는 하나의 수단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기사에, 서울의 한 대학에서 비인기 과목이었던 ‘헌법’ 강의가 수강 신청에서 큰 인기를 끌고, 헌법 관련 강의인 ‘시민교육과 헌법’, ‘민주시민과 헌법’, ‘한국정치사 입문’ 등의 수강 신청률이 지난해에 비해 높아졌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우리 헌법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1987년 개정된 것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나, 여러 이유로 약 38년 동안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헌법을 배우려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면, 그들은 대한민국의 권력구조를 이해하고,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의식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이다. 또한 지금의 헌법이 가진 한계나 문제점에 대하여도 고민하게 될 것이다. 2025년 3월 현재 한국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늦었지만 세대, 지역 등 사회의 다양한 층위의 통합을 위해서 헌법 개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다.
영국의 정치철학자인 로드 액턴은 “권력은 부패를 일으키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권력이 너무 집중되거나 절대적인 형태로 존재할 경우 그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일컬어지는 지금의 헌법 아래 대통령뿐만 아니라 반수 이상의 의석을 가진 정당이 실질적인 대화와 타협 없이 독단적인 입법권을 행사할 때, 둘 다 절대 권력이 될 수 있고, 시민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헌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지금의 헌법보다 국가 권력을 더 나누어 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걸맞은 더 나은 헌법을 갖기를 희망해 본다.
2025-03-0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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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연의 도시 공감] 지역산업, 관광 콘텐츠로 확장하기
2월은 졸업 시즌과 봄방학이 겹쳐 새로운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달이다. 설 연휴가 지나면서 다소 차분해질 즈음, 지역에서 초기 창업가들에게 투자하는 대표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국내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이제는 ‘글로컬(Glocal)’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다소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이내 궁금증이 생겼다. 글로컬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기준은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지역에서도 가능할까?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얼마 전, 미국 세인트마리대학(Saint Mary’s College)에서 2주간 기업 탐방 프로그램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20명의 학생이 대기업이 아닌, 지역의 스토리를 가진 기업을 방문하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다. 이에 부산 영도를 추천했다. 대평동 깡깡이 마을 주변의 수리조선 산업이 밀집한 공업소와 삼진어묵, 모모스커피, 스페이스 원지 등이 모여 있는 봉래동 물양장 지역을 소개했다.
학생들과 삼진어묵 매장 앞에서 만났을 때, 이들이 어묵을 잘 먹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여 ‘고로케’만 권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학생들은 매장 안으로 들어가 어묵을 직접 담기 시작했고, 직원이 “매운 고추튀김 어묵이 시그니처”라고 설명하자 즉시 집어 들고 맛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이어 어묵의 제조 과정, 판매량 등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고, 매장 카운터 앞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후 물양장 지역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모모스커피로 이동했다. 학생들은 커피 생산 과정과 이동 경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유리창 너머에서 커피 제조 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리고 커피 드립백을 2~3박스씩 구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투어가 끝날 무렵, 한 학생이 “이곳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교수님은 “우선 한국어부터 배워야겠지”라며 웃었고, 내년에는 지역산업과 마케팅을 주제로 워크숍을 열고 싶다는 제안을 남겼다. 그 순간, 상품뿐만 아니라 지역의 전통산업 자체가 하나의 글로컬 산업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산업관광은 교육이나 연구 목적으로 방문하는 관광객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반 관광객들도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체험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 뮌헨과 슈투트가르트에는 BMW, 벤츠, 포르쉐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들은 단순히 자동차 마니아들만 찾는 곳이 아니다. 자동차 관련 전공자뿐만 아니라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에게도 ‘성지’ 같은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는 지역 경제의 역사, 기술 발전, 차량 연구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공간 디자인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시 디자인과 굿즈들이 스토리와 함께 다채로운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어 방문객들의 몰입감을 높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암스테르담, 삿포로, 칭다오, 더블린 등은 특정 산업과 도시 이미지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굴뚝이나 로고 앞이 자연스레 ‘포토존’이 되고, 내부에서는 맥주를 매개로 지역산업과 연계된 전시와 시음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 과정에서 방문객들은 해당 도시를 찾는 명분을 얻는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월, 허쉬파크 등도 기업 브랜드와 도시 이미지를 결합한 성공 사례다. 결국, 이러한 도시들은 참여 기업과 지역 경제에 추가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부산은 제조업 기반의 다양한 산업군을 보유한 도시다. 100년 이상의 항만도시 역사를 지닌 부산은 물류 중심지로서 신발, 섬유, 수산가공, 주류, 식품가공, 자동차 등 경공업부터 중공업까지 폭넓은 산업군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산업관광 콘텐츠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물론, 당장 지역의 산업체들이 국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견학·시찰·체험을 제공하는 관광 형태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를 가능하게 할 테스트 프로젝트가 먼저 진행되었으면 한다. 우선 장소와 인적 자원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부산상공회의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상공회의소에 전시된 내용과 발간된 자료만으로도 지역산업과 현장을 충분히 연결할 수 있다. 또한, 산업 유산, 기업 전시관, 구술 자료 등 흩어진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지역 대학과 협력해 ‘지산학(지역-산업-학계)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산업관광 콘텐츠를 기획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했으면 한다. 아울러 특정 장소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공공건축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이 모이면, 부산은 단순한 관광도시를 넘어 지역산업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 파워’를 갖춘 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2025-02-2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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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수의 과기세] 챌린저호 사고의 교훈을 찾아서
1986년 1월 27일 밤,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과 로켓 추진기 설계·제작 업체인 모턴 티어콜사는 원격 회의를 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를 발사할지 여부를 놓고 긴급히 소집된 회의였다. 회의에서 티어콜의 몇몇 엔지니어들은 챌린저호 발사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오링(O-ring)의 성능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되었다.
오링은 주 엔진에 부착된 두 개의 로켓 부스터를 조립하기 위해 끼워 넣은 부품이다. 만약 오링이 부식하여 복원력을 잃어버리면 마디 사이를 밀봉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그 결과 고온의 가스가 새고 저장 탱크에서 연료가 점화되면서 전체적인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당시에는 오링의 온도가 53F(11.7℃)가 되면 누출이 발생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었으며, 이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누출이 더욱 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챌린저호 발사 때 예상된 기온은 26F(-3.3℃)였고, 오링의 온도는 29F(-1.7℃)로 계산되었다.
일탈의 정상화 시정 안 돼 결국 참사로
위험 요소 무시한 제주항공 사고도 유사
국내 기반 시설 정비·관리 신경 써야
나사는 챌린저호의 성공적인 비행을 간절히 원했다. 많은 예산이 소요된 우주왕복선 사업의 성과를 보여주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챌린저호 발사일 저녁에는 레이건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계획되어 있었다. 티어콜의 메이슨 부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은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나사와 티어콜은 챌린저호를 발사하기로 결정했다. 원격 회의가 잠시 중단된 사이에 메이슨은 공학 부서의 책임자에게 “공학자의 직함에서 벗어나 경영자의 입장이 돼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 날, 챌린저호는 발사된 지 73초 만에 폭발했고, 7명의 우주비행사가 목숨을 잃었다. 챌린저호 사고는 비극적인 인명 손실뿐만 아니라 수백만 달러의 값어치가 있는 장비를 파괴시켰으며 나사의 명성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 사회학자 다이앤 본은 〈챌린저호 발사의 의사결정〉이란 묵직한 연구서를 내놓았다. 그녀는 ‘엔지니어와 경영자’ 혹은 ‘영웅과 악당’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는 챌린저호 사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신에 본은 생산 위주의 문화(culture of production), 구조적 비밀주의(structural secrecy), 일탈의 정상화(normalization of deviance) 등에 주목했다. 생산 위주의 문화는 빡빡한 스케줄을 이유로 들어 발사를 강행하는 관행을 뜻하며, 구조적 비밀주의는 현장의 의견이 상부로 전달되면서 중요한 부분이 축소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본이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내세운 것은 일탈의 정상화였다. 이 개념은 일탈을 ‘허용할 만한 위험’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생겨나는 조건을 수정하지 않는 경향을 의미한다. 일탈의 정상화가 계속되면 일탈의 범위 자체가 확대됨으로써 결국 커다란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실상 오링은 시험 비행에서도 계속 문제가 되었다. 24번의 시험 비행 중에 7번이나 오링의 부식이 발견되었다. 다만 오링 두 개가 모두 부식된 경우는 없었고, 하나가 작동하지 않으면 다른 하나가 이음새를 지탱해 주었다. 오링의 부식은 처음에 심각한 일탈처럼 보였지만 점차 정상적인 위험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일탈의 정상화 과정을 거쳐 챌린저호가 발사되었는데, 두 오링이 모두 손상되면서 크나큰 참사로 이어졌다.
지난 연말에는 우리나라의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했다. 아직 공식적인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고의 원인을 두고 조류 충돌, 콘크리트 둔덕, 무리한 운항 일정 등이 거론되었다. 항공사의 정비사들이 인력 부족으로 인해 매우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렸다는 폭로도 있었다. 이 중에서 조류 충돌을 제외하면 모두 일탈의 정상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콘크리트로 둔덕을 만든 것, 무리한 일정으로 운항을 계속한 것, 충분한 정비 인력을 확보하지 않은 것은 모두 위험의 요소를 증가시키는 일탈인 셈이다. 이러한 일탈을 시정하려는 조치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사고의 가능성은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
보다 거시적인 맥락에서는 우리나라에 오래된 기반 시설이나 산업시설이 적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설치되었던 시설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설치하는 일에 못지않게 오래된 것을 정비하고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새로운 것에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오래된 것을 보살피는 데는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어르신 틀니, 수리, 유지, 관리’라는 지하철 광고와 마주쳤다. 한 사람의 틀니에도 투자가 필요한데, 많은 사람들의 안전과 직결된 시설 관리에는 더욱 큰 노력을 쏟아야 하지 않겠는가?
2025-02-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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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욱의 글로벌 산책] 미국발 자국우선주의 대응 지혜 모아야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2주일 남짓한 현재 전 세계는 이미 미국발 자국우선주의로 대격변에 돌입했다. 트럼프는 취임 당일 파리기후변화협정을 탈퇴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 행정부가 조약에 서명했어도 의회의 비준이 없으면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교토의정서와 달리 파리협정은 의회 비준을 거쳐야 하는 국제법적 조약이 아닌 유연한 협정의 형태로 귀결돼 국내법에 따라 행정명령(executive order)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틀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파리협정은 미국 정권 교체 때마다 가입-탈퇴-재가입-재탈퇴가 반복되는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국제협정을 손바닥 뒤집듯이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는 가운데 미국의 에너지-환경 정책도 정권 교체 때마다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정책에 대한 전면적 개편을 예고한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도입한 전기자동차 구매 시 7500달러 세액공제를 주는 혜택을 폐지하려 하고 있다. 2024년 미국 내 전기자동차와 하이브리드자동차는 전체 자동차 신규 판매량의 20.2%를 차지하였고, 2024년 미국 내 전기자동차 판매 시장점유율은 테슬라 49%, 현대-기아자동차 9.3%, GM 8.7%, Ford 7.5%, BMW 4.1%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급격한 정책 변화는 한국 기업의 대규모 미국 투자에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IRA 보조금 혜택을 위해서 76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하이브리드차 전용 공장인 메타플랜트를 건설하여 2024년 10월 가동을 시작하였고, 한국 배터리 제조사인 삼성SDI, SK온, LG에너지솔루션도 IRA 보조금 혜택을 위해서 대대적으로 미국 내 신규 공장 건설을 위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SDI-GM 35억 달러 투자, SK온-현대차 50억 달러 투자, LG에너지솔루션-현대차 43억 달러 투자 등이다. 따라서 IRA 보조금 폐지는 한국의 자동차와 배터리 제조사에 큰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민주당 행정부와 대중국 압박 정책 운용에서도 큰 차이를 보여 왔다. 미국의 민주당 행정부는 오바마의 TPP(환태평양 동반자협정), 바이든의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등과 같이 동맹국과의 공급망 질서 구축을 통해서 중국을 압박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일방적 관세 부과를 통해서 대중국 압박을 해왔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서 관세 부과를 중국과 같은 체제 경쟁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멕시코, EU, 한국, 일본과 같은 동맹국을 대상으로도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미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25%라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을 뿐만 아니라, 2018년 3월 모든 국가에서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 부과를 발표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일방적 관세 부과에 EU, 일본, 한국 등 동맹국들이 반발하였다. EU는 이러한 미국의 일방적 관세 부과 조치에 맞대응하였고, 미-EU 통상 갈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트럼프도 EU를 적으로 언급할 만큼 강하게 압박했다. 결국 EU와 미국은 2018년 7월 극적인 합의를 하면서 양측 간 무역 갈등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EU와 같이 거대 시장을 갖지 않은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일방적 관세 압박에 많은 양보를 해야 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18년 한국 정부를 압박해 한국의 대미 수출 화물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폐를 2021년 1월에서 20년 늦추는 내용의 한미 FTA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일본에 대해서도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20% 관세 부과 압박을 하였고, 2019년 미일 무역협정이 체결됐다.
그런데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관세 압박의 역사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트럼프 행정부 조치에 맞대응 중이고, 캐나다-멕시코 간 연대도 표명했다. 트럼프는 2월 2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기자들의 “다음 관세 부과 대상국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EU와 영국 등 다른 국가에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확전을 예고했다. EU 집행위원회도 트럼프 행정부가 부당한 관세를 부과하면 보복관세로 대응할 것이라고 맞대응했다. EU 집행위원회는 2024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대비해 대미 보복관세 리스트 준비를 시작했고, 이를 블룸버그가 지난해 10월 16일에 보도한 바가 있다.
이제 전 세계는 제1기 트럼프 행정부 때와 같이 미국발 자국우선주의에 따른 대격변의 시기에 돌입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다가오고 있는 거센 파고를 현명하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고 누군가 질문을 하면 가슴이 막막해진다.
2025-02-0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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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북극 해빙 감소와 중위도 제트기류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곳은 북극해다. 빠르게 녹아내리는 해빙으로 인해 북극해의 기온은 중위도보다 훨씬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기온 상승은 남북 간 기온차를 감소시키며 대기의 움직임에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2007년 여름에 기록적인 북극 해빙 감소가 관측된 이후 겨울철 한파의 강도가 점차 강해지는 현상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겨울철 중위도 제트기류가 남북 방향으로 더욱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제트기류의 강도는 남북 기온차에 비례한다. 온난화로 인해 기온차가 감소하면서 제트기류가 약화되었고, 약화된 제트기류가 불안정해져 남북 방향으로 더 크게 출렁인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2012년 북극 기후 전문가 제니퍼 프랜시스는 이 주제에 대한 첫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관측 데이터를 통해 약해진 제트기류가 더 큰 남북 방향의 사행(흔들림)을 일으키며, 그 결과 중위도 겨울에 극한 한파가 빈번해진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연구는 북극 해빙 감소와 제트기류 흔들림 간의 상관관계를 제시하며,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겨울철 한파가 온난화와 북극 해빙 감소로 인해 더 강해졌다는 분석은 많은 관심을 이끌었다.
한국 기상학계 역시 이와 관련된 주목할 만한 연구들을 발표했다. 2014년 극지연구소 김백민 박사팀은 바렌츠-카라해 해빙 감소가 중위도 한파를 유도할 수 있다는 역학적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또한 2015년 국종성 서울대 교수팀은 북극 기온 상승이 유라시아와 북아메리카의 극한 추위와 연관되어 있음을 밝혔다. 이는 북유럽 인근 북극해 해빙 감소가 한반도 한파와도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대기 역학 학계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기존 이론에 따르면, 제트기류의 남북 흔들림은 남북 간 기온차가 증가할 때 발생한다. 기온차가 커지면 제트기류가 불안정해지며 남북으로 흔들리면서 중위도에 저기압과 고기압이 형성된다. 이를 ‘경압 불안정’이라 부르며 현대 일기예보의 근간이 되는 이론이다. 따라서 기온차 감소로 약화된 제트기류는 이론적으로 더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실제 현상과 이론 간의 충돌이 학계의 논란을 부추겼다.
프랜시스 교수의 논문 발표 이후 대기 역학의 주요 원로 학자들은 〈사이언스〉지에 사설을 기고하며, 이론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성급히 결론을 내리는 것에 경고를 보냈다. 이후 북극 해빙 감소와 중위도 제트기류의 남북 흔들림 간에 큰 연관이 없다는 연구들이 등장했다. 특히 영국 엑서터대학의 제임스 스크린 팀은 다양한 데이터와 모델 분석을 통해 북극 해빙 감소의 영향이 미미하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현재 학계는 이 주제를 두고 의견이 팽팽히 갈리고 있다. 해마다 상반된 연구 결과가 발표되며 어느 한쪽의 주장이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언론 역시 온난화의 영향을 언급하면서도 북극 해빙 감소의 역할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대립을 바라보며 대기 과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보수적인 학계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급격히 변화하는 기후 현실을 감안할 때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기후 시스템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충분히 확고한 이론 없이 결론을 내리기란 언제나 어려운 과제다. 기후모델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현실을 완벽히 재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 겨울 한파의 특징이 달라졌다는 점은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도 체감할 수 있는 사실이다.
전 지구 기후 데이터를 1980년대부터 살펴보면, 북극 해빙 감소는 가장 두드러진 변화로 꼽힌다. 대기 운동이 지표면의 열 흐름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위도 제트기류의 변화가 북극 해빙 감소와 무관하다는 주장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유체의 흐름을 묘사하는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은 국소적인 경계치의 변화가 전체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수학적인 구조를 지녔다. 즉, 유체의 한 종류인 대기 운동 역시 북극 지표면의 변화로 말미암아 북반구 전체 규모에서 변화를 겪을 수도 있다.
우리는 보다 열린 시각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의 부족과 기후모델의 불완전함이 북극 해빙 감소의 영향을 정확히 분석하지 못하게 하고, 이론적 토대의 부족이 제트기류 변화의 메커니즘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대기 과학이 여전히 젊은 학문이라는 점에서, 온난화가 불러오는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실증적 한계는 이 논쟁의 주요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학계가 인정하고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2025-01-2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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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연의 도시 공감] 빈집, 도시 활력 전략으로 탈바꿈
을사년, 푸른 뱀의 해인 2025년은 우리나라가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 20.3%로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첫해가 되었다. 2035년에는 30%, 2050년에는 40%까지 고령인구가 늘어나면서 우리나라는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가 된다. 한편 부산은 이미 2021년 9월에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였다. 이젠 노인인구 비율이 23%로 이미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했다. 그래서 부산을 노인과 바다의 도시로 부른다. 바다와 산 등 좋은 경관을 가지고 있으나 65세 이상 노인만 남아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부산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원도심에 집중되어 있다. 이곳은 과거 부산항 일원의 개항과 교역으로 발전한 지역이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이 대거 유입되면서 1955년에는 인구가 1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급격히 성장한 지역이다. 당시 원도심은 부산 면적의 9.2%에 해당하지만, 인구는 21.2%가 거주해 면적 대비 막강한 중심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30년간 인구 변화율은 부산 평균이 14.7%였지만, 원도심은 평균 38.2%로 인구 감소폭이 부산 전체보다 2.5배 이상 큰 상황이다. 고령화지수도 30%에 육박한다.
이러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는 빈집 문제로 연결된다. 원도심에는 무허가 건축물까지 포함하여 빈집 수가 5549채 정도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원도심 중 산복도로 일원과 정비사업지에 빈집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동별로는 범일동, 범천동, 남부민동, 신선동 순으로 빈집이 밀집돼 있고, 이 중 무허가 건축물이 56.4%를 차지한다. 더불어 최근 연립주택이나 아파트의 빈집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부산시 전체 빈집 중 약 25%가 30년 이상 된 노후 아파트라고 한다. 빈집이 점점 더 번져나가는 모양새다.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여 언론에서 다양한 문제점과 정책 제안 등 지속적인 보도를 했다. 〈부산일보〉에서도 부산연구원 디지털정보센터와 공동으로 '부산 빈집 SOS' 기획을 통해 인구 소멸로 폭증세를 보이는 빈집 문제를 진단하고, ‘빈집SOS지수’를 개발해 맞춤형 대책을 마련했다. 그 결과 부산시는 원도심 중심으로 2023년까지 빈집 2000호 정비 계획을 발표했다. 철거 비용 지원, 빈집 활용을 위한 우수 사례 안내 등 정비와 홍보를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현행법에서는 빈집을 '시장·군수 등이 거주 또는 사용 여부를 확인한 날부터 1년 이상 아무도 거주 또는 사용하지 아니하는 주택'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무허가 주택은 빈집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빈집정비사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빈집의 범위에 무허가 주택을 포함하고 장기간 방치되어 있는 구도심 등에 대한 빈집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한 법률 개선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보다 먼저 빈집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의 교토시는 2026년부터 '비거주주택활용촉진세'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한다. 빈집으로 인해 주택 공급 저해, 방재·방범·생활 환경상 문제, 지역 커뮤니티 활력 저하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고, 빈집 소유자에게 ‘빈집세’를 부과하는 정책이다. 이를 통해 빈집의 활용도를 높일 예정이다.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는 노후 공영주택의 공동화 현상을 막기 위해 가나자와대학 축구부를 입주시켰다. 축구부 청년들은 엘리베이터가 없어 오르내리기 힘든 탓에 빈집이 많던 4~5층을 기숙사로 활용한다. 빈 점포는 식당과 노인건강체조교실을 운영하고, 서빙이나 설거지는 축구부원이 맡고 있다. 축구부원들에게는 일정액의 급여가 지급된다. 운영비는 카페의 수익금과 가나자와대학·요코하마시·가나가와현의 지산학 프로젝트 예산으로 충당한다.
독일의 라이프치히시는 소유세를 감면하여 빈집 정비를 유도하는 정책과 더불어 빈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단체와 토지 소유주 간의 장기 공간 계약을 맺고 있다. 건축물을 짓지 않는 조건으로 가드닝, 자전거 워크숍 등 생활권 중심으로 다양하고 자발적인 활동을 유도하고 있다. 계약 종료 후 반응이 좋은 공간은 기업, 공공기관이 매입하여 지속적인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빈집과 세입자를 연결하는 프로젝트, 건축가 중심으로 새로운 건축적 대안을 제안하는 프로그램 등을 지역 활성화 방안으로 진행 중이다.
이제 우리도 빈집에 대한 법률적 근거, 행정적 지원 등 정책적 제안을 위한 기초적인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좀 더 탄력을 받으려면 빈집SOS지수를 기반으로 동 단위의 정밀한 빈집 데이터 구축과 지속적인 모니터링도 필요하다. 다양한 참여자 중심 아이디어를 모아 지원 방안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소유주가 스스로 수리 및 관리할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이를 통해 빈집이 문제가 아닌 도시를 살리는 새로운 대안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2025-01-1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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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권의 핵인싸] 공존만이 살길이다
‘좌우’ ‘동서’ ‘남북’은 상대어이면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정치적인 진보와 보수적 편향성을 ‘좌우’로, 유럽의 지정학적 특성상 과거 공산권이었던 동유럽과 자유진영이었던 서유럽을 두고 ‘동서’로 지칭한다. 한반도에서의 ‘남북’은 특수 상황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비교적 풍요로운 경제 상황의 북반구 국가들과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는 남반구 국가들의 경제협력을 두고 ‘남북’ 문제로 칭하기도 한다.
오른손과 왼손을 보면 정말로 똑같이 생겼는데, 엄지 덕분에 묘하게 거울대칭을 이룬다. 자연은 나무 잎사귀나 동식물군을 총망라하여 좌우대칭엔 거의 예외가 없다. 미시세계에도 거울대칭인 반입자들이 있다. 자연계의 좌우 대칭은 일반적이지만 신기하게도 우주에는 오른손잡이들이 좀 더 많다. 어쩌면 그래서 오른손잡이 중심으로 개발된 사회에서 왼손잡이가 교정의 대상이 된 웃지 못할 시절도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존중하며 오히려 왼손잡이의 특별함을 선호하기도 한다.
다양성은 우주의 진화 방식
극단의 편향 세력 단죄해야
함께 존중받는 나라 되기를
이러한 상대적인 이미지나 개념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반드시 상대적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고 내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반드시 둘로 나뉜다. 즉 중간은 없다. 원래 왼쪽에 있던 사람 같았는데 어느새 오른쪽이 되고, 이 상대성은 맨 끝에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계속된다. 둘째, 이것은 단순히 상대적 위치를 넘어 지향하는 방향성을 뜻하기도 한다. 계속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의 어딘가로 가는 게 아니라 제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자동차에서 핸들을 계속 오른쪽으로 꺾으면 오른쪽 어딘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제자리에서 뱅뱅 돌게 된다. 어느 적당한 순간 반드시 핸들을 다시 왼쪽으로 꺾어야만 어딘가로 향해서 움직일 수 있다.
극우나 극좌는 그래서 끊임없는 투쟁을 동반한다. 같은 편끼리도 그 내부에서 누가 더 어느 쪽에 있고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끊임없는 ‘배신’을 외치게 된다. 결국 맨 끝에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공포정치를 이어가게 된다. 지속적으로 좀 더 오른쪽으로, 혹은 좀 더 왼쪽으로 경쟁적인 극단적 선택을 멈출 수 없다. 그래서 극단적일수록 외롭게 혼자 제자리에서 맴돌면서 한 곳에 붙박인 채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는 고립을 자초한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이렇게 반대인 기능이 반드시 대칭적으로 구성돼 있을 뿐만 아니라, 똑같은 것이 어쩌면 단 하나도 없다. 아무리 똑같아 보이는 쌍둥이도 분명히 다르며, 심지어 소립자들은 양자 상태에 따라 질량이 달라지기도 한다. 결국 삼라만상은 예외 없이 모두 다르며, 심지어 정반대인 것들이 있는 그대로 공존해야만 조화와 화합, 자연의 선택을 통한 우주의 진화가 가능하다.
결국 갈수록 다양성이 커지는 공존은 공멸을 피하기 위한 우주의 진화 방식인데, 공존이 가능하려면 단 하나는 어쩔 수 없이 부정돼야 한다. 바로 공존을 부정하는 세력이다. 그래서 어쩌면 거의 모든 고등 종교들은 공존과 평화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자유와 정의는 신의 고유한 영역에 두고 그것을 독점하는 특정 세력에 대한 숭배를 금지한다. 지금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것은 좌도 우도 아닌, 이 공존을 위협하고 유린하고 있는, 극단적으로 편향된 세력에 대한 것이다. 심지어 현재의 대통령조차 간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바로 공존의 덕목 덕분에 존중된 것이다.
긴박한 정국 속에서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가원수 스스로가 그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모순 그 자체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안 그러면 헌법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무너진다. 헌법은 총 10장, 130조의 집약된 언어들로 구성돼 있으며, 그렇게 장황하지도 않다. 제1장 1조가 바로 그 유명한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이다.
공존을 부정하는 이들이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 의회의 입법독재라고 하지만, 의회는 사실상 직접적인 민의가 담긴 전당으로 권력의 근원이다. 국민의 뜻에 따라 합의된 법을 만들고, 이 법에 따라 대통령을 행정부 수장으로 뽑아 국정 집행의 절차를 맡기고 있으며, 사법부를 분리시켜 이 법을 수호하기 위한 판단을 위임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법을 집행하고 판단하는 검찰과 판사들조차 주민들의 선거를 통하고 있는 미국 같은 나라도 있다.
작금의 국정 혼란을 두고 다들 경제와 대외신인도를 걱정하는데, 수습책은 사실 매우 간단하다. 국민을 주권자로 정하고 있는 헌법에서 정한 절차를 그대로 준수하면 된다. 좌우 어느 편을 들라는 것이 아니라, 공존을 부정하는 이들에 대한 파면과 단죄를 절차대로 진행하라는 것이다. 부디 새해에는 모두가 함께 존중받는 새 나라가 건설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25-01-0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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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래의 메타경제] 부산의 성장 경로 찾아야
예전에는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들이 일반에서는 많이 유통되지 않았다. 오래전 대학 1학년 경제학원론 수업 시간에 기회비용이라는 용어를 처음 배웠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 기회를 포기한 것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것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당시 그 용어는 대학 바깥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대화에서 기회비용을 언급하고 선택에 활용한다.
정보사회의 진전과 함께 경제학에서 개발된 개념들이 점차 일반으로 확산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근년에 들어와 자주 사용되기 시작한 경로의존과 회복탄력성이라는 말도 대학 바깥으로 나온 경제 개념의 예들이다. 움직이는 사물에는 관성이 있어서 움직이던 방향으로 계속 가려는 경향이 존재하는데, 이것을 경로의존이라고 한다. 기존의 경로에 집착하면 변화를 받아들일 기회를 놓친다. 그래서 때로는 기존 경로에서 벗어나는 유연성과 민첩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한편 위기나 충격이 왔을 때 거기에서 얼마나 빨리 벗어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것이 회복탄력성이다. 회복탄력성이 클수록 경제 생태계는 충격에 강한, 즉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물리학의 개념에서 유래한 이 용어들은 경제가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 또 경제의 생태계는 건강한지를 평가하는 데 사용된다.
연말을 앞두고 부산 경제를 생각하는 작은 세미나에 참석했다. 크게 보아 1980년대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부산 경제가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왜 확연한 내리막길을 걸으면서도 제대로 길을 찾지 못했던가 하는 것이 주요 주제였다. 내리막길을 걷게 된 핵심적인 원인은 기존의 길을 고집하였던, 즉 경로의존에 너무 집착했던 결과라는 의견에 많은 동의가 있었다.
합판과 섬유 그리고 신발과 같이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특화되어 있었던 부산은, 이미 좀 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새로운 산업으로의 이행이 대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길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당시 부산의 최대 산업이었던 신발업은 뒤늦게 1980년대를 통하여 대호황기를 맞았는데, 그 바람에 기존의 경로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욱 방해하였다.
그 대가는 매우 컸다. 1980년대 후반 들어 갑작스레 찾아온 신발업의 몰락은 기존 기업들이 새로운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까지 빼앗아 버렸다. 세미나에서 논의된 표현을 인용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침체가 아닌 부산 경제의 경로 이탈이었다. 기존의 경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침체의 근원이었다면, 그 이후 대안 없는 긴 추락은 경로 자체를 잃어버린 결과였다는 것이다.
전국 광역시도 가운데 부산이 처음으로 지역 차원에서 전략산업을 선정하고 육성하려고 하였던 것은 그만큼 경로 이탈의 충격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99년에 처음 나왔던 전략산업 정책은 10개의 산업을 부산의 대표 산업으로 선정하고 육성하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 성과는 생각만큼 나지 않았다. 게다가 기술 발전의 패러다임 변화와 중앙정부의 지방산업 지원 정책에 맞추어 이후 네 차례나 개정이 있었고, 그때마다 전략산업들도 변화되었다. 당연히 집중도 되지 않았고 또 지원할 수 있는 자원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전략산업의 성과 또한 높을 수 없었다.
결국 큰 흐름에서 보면 오랫동안 부산 경제는 성장 경로에서 이탈한 후 아직 새로운 경로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의 지역내총생산이 전국 평균에서 자꾸 멀어지고, 부산 경제의 회복탄력성이 전국 평균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낮은 것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불안정한 성장 경로에 있기 때문임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 연말 부산시는 여섯 번째 전략산업 육성 정책을 발표하였다. 부산 산업의 체계적 육성과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미래 신산업의 육성과 주력산업의 고도화 그리고 글로벌 도시 기반의 구축을 중심으로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5년 후인 2030년까지 질 좋은 일자리 100만 개, 지역 총수출 200억 달러, 시민 1인당 지역내총생산 4만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5년마다 갱신되어 온 전략산업 육성 정책이 이번에는 목표를 정말 달성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그러나 성장의 구체적 목표 달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부산의 성장 경로를 다시 찾는 것, 이것이 장기적으로 부산 경제에는 더 중요하다.
부산이 광역시가 된 지 올해로 꼭 30년이 된다.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 부산 경제는 기존의 성장 경로에서 이탈한 상태로 힘겹게 버텨왔다. 광역시 출범 30년이 되는 올해가 부산 경제의 성장 경로를 찾는 새로운 출발의 해가 되길 기대한다.
2024-12-3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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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삼한사온의 재구성
겨울이 한창이다. 우리나라 같은 중위도 지역에서는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오며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겨울은 북극해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름 내내 하늘 높이 떠 있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면, 북극은 10월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 긴 어둠 속에 잠긴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바다는 빠르게 식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운 얼음이 그 표면을 덮는다.
해빙이 형성되면 바다가 공급하던 열이 차단되어 북극해 지표면의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해빙은 태양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빠르게 성장해 1주일 남짓이면 미국 대륙보다 넓은 바다가 하얀 얼음으로 뒤덮인다. 해빙과 접한 공기는 급히 냉각되며 북극해를 둘러싼 거대한 차가운 공기 덩어리를 형성하고, 동시에 유라시아 대륙의 고위도 지역도 빠르게 냉각되어 차가운 공기가 쌓이면 대륙성 고기압이 만들어진다. 여름철 상대적으로 따뜻했던 대륙에 자리 잡았던 저기압은 겨울이 되면서 고기압으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남북 간의 기온 차이가 커지고 중위도 제트기류는 더욱 강해진다.
제트기류는 북쪽의 차가운 공기와 남쪽의 따뜻한 공기를 구분하는 경계선 역할을 한다. 이 제트기류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며 남북 간 온도차가 커질수록 불안정해져 남북 방향으로 요동친다. 이런 요동은 중위도에서 저기압을 형성하며, 저기압은 한파와 폭설을 동반하는 동시에 남쪽의 따뜻한 공기를 북쪽으로 이동시켜 온도차를 완화한다. 대륙의 차가운 표면 위에 자리 잡은 시베리아 고기압은 이러한 제트기류의 영향을 받아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며, 이는 우리나라 겨울철 날씨를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겨울의 대표적 특징인 ‘삼한사온’은 시베리아 고기압의 확장과 수축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하면 약 3일간 강한 추위가 찾아오고 이후 고기압이 수축하면 약 4일간 상대적으로 따뜻한 날씨가 이어진다. 비록 이 패턴이 항상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통계적으로 우리나라 겨울철 날씨를 잘 설명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삼한사온은 겨울철 규칙적인 날씨 변화를 반영한 현상으로, 오랜 세월 한반도의 겨울 기후 특징으로 자리 잡아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쳐왔다. 삼한사온이 뚜렷했던 시기에는 북극해가 지금보다 훨씬 추웠고, 여름이 지나면 선선한 가을이 이어지며 계절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발달하면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고, 며칠간의 강추위를 견디고 나면 비교적 온화한 날씨가 찾아와 사람들에게 잠시 숨을 고를 여유를 주었다.
그러나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여름철 북극 해빙이 급격히 줄어들고, 해빙이 사라진 바다는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더 많은 열을 흡수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해빙이 형성되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면서 가을의 시작도 지연되고 있다. 하지만 축적된 열이 소진된 후에는 해빙이 빠르게 성장하며 북극해의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북극해를 포함한 고위도 지역의 기온 하강은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져 겨울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이처럼 급격한 기온 하강과 여전히 높은 북극 지역의 기온은 중위도 제트기류를 불안정하게 만들게 된다. 불안정한 제트기류는 크게 요동치며 중위도의 날씨를 변화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제트기류가 남하하면 북쪽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 내려와 심각한 한파를 불러오고, 반대로 북상하면 남쪽의 따뜻한 공기가 유입돼 겨울답지 않은 초가을 날씨를 만들기도 한다.
제트기류의 불안정성이 심화하면서 대륙의 차가운 공기가 예전보다 훨씬 남쪽으로 내려오고 다시 평년 기온을 회복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추운 날씨가 다시 따뜻해지려면 찬 공기가 제트기류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굽이치는 제트기류는 이전보다 훨씬 느려졌으며 때로는 정체된 상태로 한 곳에 머물기도 한다. 과거 3일 정도 머물던 한파가 이제는 1주일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온난화가 진행됨에 따라 겨울에는 오히려 더 추운 날씨를 경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실제로 데이터를 보면 21세기 들어 12월은 기온 상승이 관찰되지 않은 유일한 달로 나타났다. 올해 겨울 역시 불규칙하고 강해진 제트기류의 흔들림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유난히도 더운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이 한창이다. 북쪽의 차가운 공기가 서서히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기후만큼은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갑작스럽고 빠른 기후 변화 속에서 이번 겨울도 평탄치 않을 듯한 예감이 스친다. 앞으로의 겨울이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철저한 준비로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으면 좋겠다. 자연이 주는 변화에 대비하며 차분히 준비한다면 추위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는 마음속에 찾아들 것이다.
2024-12-2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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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연의 도시 공감] 다시, 일상 공간으로 회복하기
12·3 비상계엄 하루 전인 12월 2일.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났다. ‘다시 뛰는 소상공인·자영업자, 활력 넘치는 골목상권’을 주제로 국정 후반기 첫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 패널로 초청받은 자리에서였다. 윤 대통령이 오는 행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사전 통보조차 없었다. 보안 절차도 간단했고, 가벼운 토론 자리로 생각하고 참가했다. 행사장 로비에서 각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소상공인 대표님들을 오랜만에 만나 신년 인사를 미리 나누면서, 행사장으로 들어섰다. 토론회 행사장은 ‘ㄷ자’ 형식의 2단으로 구성되어 소상공인과 정부 실무진들이 함께 앉아 서로 눈 맞춤이 가능한 자연스러운 공간으로 구성됐다. 전혀 권위적이지 않았다. 행사가 시작되고 대전 성심담 인근에서 카페를 하는 청년사업가, 군산에서 상권 기획을 하는 대표님, 멀리 태백에서 오신 세탁소 사장님들의 지역 이야기와 현장에서의 생생한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민생토론회에서는 대전 성심당 주변 카페 업주는 성심당에서 빵을 사 오면 접시와 포크를 내어주면서 카페 영업이 오히려 잘되고 있다는 상권 상생 사례와 대기업과 협력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인 충남 예산시장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어, 금융감독원, 중소기업벤처부, 국토교통부 등 부처의 성격에 맞게 지역 상권 지원 정책을 담당자들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정부에서는 잠재력을 가진 소상공인들을 라이콘 기업으로 육성하는 단계별 성장 지원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안하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현실적인 금융지원, 전통시장 배달 수수료 감액 정책, 일회용품 과태료 부과 방식 변화, 지역 내 소규모 골목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상권 내 역량 강화를 위해 소상공인 제품이나 아이디어를 시제품화하는 로컬 메이커스 협력형 사업 등이었다. 또한, 상권 기획가 육성을 통해 지역성에 맞는 기획가들과 함께 사업화를 진행하는 정책도 인상적이었다.
바로 앞자리에 앉은 윤 대통령은 왠지 심각해 보였다. 그는 이날 지역마다 대표적인 브랜드 육성을 통해 상권 중심 지역브랜드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피력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은 저축이 중요한 시대가 아닌 소비가 중요한 시대”라면서 “12월에 소비하는 부분은 세제 혜택까지 고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입을 통해 그간의 단발적인 정책 사업과 달리 다양한 지역상권 지원 방법과 키워드별로 다방면의 실천 방안을 들으면서 나름 현실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러한 정책이 펼쳐진다면 2025년에는 올해와 달리 상권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활력있는 도시공간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대는 하루 만에 의심으로 바뀌게 되었다. 하루 전에 들었던 무수히 많은 정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벌써 공공에서 운영하는 축제나 행사는 축소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주변에서는 ‘향후 6개월 동안 일이 없을 것 같다’는 불안과 걱정, ‘지역은 더 힘들 거’라는 비관적인 이야기가 마구 들려 온다. 계엄 이전에도 상인들은 IMF 경제위기보다 힘들다고 말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소상공인·자영업자 피해 현황 긴급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88%가 “비상계엄 선포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라고 답했다. 더 큰 문제는 응답자 10명 중 4명은 향후 1~2년 동안 불확실한 경제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는 점이다.
작은 바람은 그간에 기획된 사업과 지원 정책이 멈추지 않고 탄력적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빠르게 추진하려던 정책과 지역사업이 탄핵정국과 상관없이 활기차게 운영되는 모습이다. 오히려 민관지역협력모델을 구축하여 지역과 도시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추진되던 사업이 지역균형발전과 소상공인 성장의 마중물이 되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편이 아닌 전문성을 기준으로 협력체계를 탄탄하게 구축하여 실현 가능한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 나아가 도시브랜드를 다시 만들어 가는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탄핵이 가결되면서 부산 시내 번화가도 일상의 공간, 일상의 모습으로 점차 돌아오고 있다. 지역이 가지고 있는 변화무쌍한 모습과 힘처럼 12월 오늘의 일상 또한 빠르게 회복되어 2025년을 맞이했으면 한다. 위축된 연말 특수가 하루빨리 회복돼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도 반가운 사람들로부터 몇 통의 문자가 왔다. 한해를 정리하고 2024년을 마무리하는 송년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친구들도 모임을 언제 할지 물어오고 있다. 골목 가게에 시즌 메뉴를 만들었던 대표님도 오늘은 가게 앞에 안내판을 내걸었다고 연락을 주셨다. 얼마 남지 않은 2024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2024-12-1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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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권의 핵인싸] 그놈의 확신이 문제다
거울을 보고 글씨를 써 본 적이 있는가. 의외로 상하좌우는 좀 삐뚤삐뚤해도 그런대로 수월한 데 비해, 앞뒤로는 정말 방향조차 어렵다. 사실 거울이 왜 하필 좌우만 뒤집어놓는지는 과학자들에게도 상당히 진지한 질문이었다. 하필 우리의 눈이 좌우로 배치돼 있으며, 우리의 몸이 대체로 좌우 대칭적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이조차도 몸의 외부와 내부는 전혀 다르다. 신기하게도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물은 좌우 대칭인데, 이는 지구중력 내에서 위아래는 차별적이되 좌우는 몸의 균형을 잡기가 쉽고 움직임이 유리하도록 대칭적으로 진화한 결과라고 한다. 원통형 생물도 있긴 하지만, 고등생물에서는 보통 앞뒤가 모양이나 기능면에서 분명히 다르다.
시간에 대해서는 대칭을 얘기할 수가 없다. 공간과 달리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는 종종 상통하는 바가 있다. 이른바 주기성 때문인데, 매년 같은 계절이 돌아오면 지난해와의 비교를 통해 다가올 내년을 예측할 수 있다. 물론 지능과 기억을 가진 우리들의 경우, 나이가 들면 어린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기의 젊은 날을 보기도 하고, 부모가 되면서 비로소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며,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사회적 합의 무시 자기 확신
국민 지켜온 민주주의 위협
헌법과 그 정신이 최후 보루
심지어 우리는 평생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직시한 적이 없다. 직시할 수도 없다. 거울이나 사물, 다른 이의 눈을 통해서만 나를 볼 수 있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반전된 나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 내 모습과 실체는 모르면서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상을 보고 알아간다. 내게 보이는 세상 또한 정작 대상의 실체보다도 내 (색)안경과 방향, 심지어 때와 장소, 내 기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세상의 실체라고 착각한다. ‘나는 회의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마따나, 세상에 확실한 것은 정녕 없으며, 오로지 그것을 의심하고 있는 나야말로 존재의 출발점이다. 생각하는 사람, 철학의 출발점이다. 비록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무척 슬프게도, 대학에서조차 사라지고 있지만, 이것은 과학을 비롯한 모든 근대 학문의 시작과 근간이다.
이렇게 진실은 의심으로부터 발현되며, 거짓과의 경계선상에 존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모두 스스로 자신감과 확신을 희구한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더욱더 그렇다. 오랜 세월 확신에 찬 ‘센’ 사람들의 승승장구를 부러워하며 어려서부터 하나의 정답만을 교육받은 결과다. 이른바 확신은 잘나가는 사람들의 ‘성공 코드’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확신 앞에서 망설이거나 주저하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낙오자가 되고 사회적 ‘루저’가 된다.
누구나 자신감과 확신을 희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와 동시에 함정에 빠지기 일쑤다.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모두 확신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단서가 되고, 이에 반하는 일들은 처음엔 무의식적으로, 나중엔 의도적으로 무시된다. 그럴듯한 이야기만 귀에 들어오며 한층 나의 확신을 더해준다. 분명히 아닌 것 같은 일이 일어나도 확신을 정당화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심지어 그것은 내 자존심이 된다.
그래서 불안감을 되잡아 밀어붙인다. 무리수는 더 큰 무리수를 부르고, 범죄를 저지르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게 된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카메라 앞에서 당당한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아주 섬뜩하다. 무엇이든 이런 확신을 만나면 그것은 우리가 대적해야 할 가장 확실한 괴물, 비(非)진리가 된다. 그렇게 진실은 결코 자신만의 좁은 식견과 일천한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에 존재할 수 없다. 확신은 모든 것의 종지부다. 요지부동, 고집불통, 파시즘의 출발점이다.
이렇게 저마다의 확신과 불소통, 회의론이 존재하는 불확실성 내에서 그나마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것은 합의를 통하여 성립된 국민의 주권 덕분이다. 그래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대의와 원칙 그리고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인 헌법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절대적 선악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일반화하여 이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은 용납할 수 없다는 확신이 서는 순간, 공존은 불가능하다. 거꾸로 다양한 견해를 갖는 주권자로서 합의된 규범 내에서 상호존중과 처벌이 엄격하게 적용될 때, 우리는 공존이 가능한 평화로운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다.
공짜, 비밀 그리고 정답은 이 세상에 없다고 한다. 아마도 이것들은 제각기 따로 의미가 있겠으나, 작금 우리의 상황은 이것들이 모두 연결돼 우리 모두가 저항하며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래를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확신범들이 여전히 국민들이 피땀으로 지켜온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헌법과 그 정신이 엄수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24-12-10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