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규의 법의 창] 북극항로 시대의 법을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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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 정인 변호사

1876년 2월, 부산항이 개항했다. 올해가 150주년이다. 부산항 개항은 조선이 세계 해양 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역사적 출발점이었다. 이후 부산항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수도의 관문이 되었고, 산업화 시대에는 대한민국 수출 경제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오늘날 부산은 세계적인 환적항인 부산항을 보유한 동북아 해양 물류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지금 부산의 해양사는 전환점을 맞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했고, 국회에서 해사법원 설치법이 통과되어, 이르면 2028년 부산에 ‘해사국제상사법원’이라는 명칭의 해사법원이 개원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미흡하지만 ‘해양수도 이전 특별법’(2025년 11월 19일 자 칼럼 참조)’까지 제정되었다. 부산은 해양수도로 나아갈 제도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이 변화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그동안 해양 정책은 행정과 산업, 사법 기능이 분산된 구조에서 운영돼 왔다. 그러나 해양수산부 이전과 해사법원 설치는 정책과 산업, 사법 기능이 하나의 해양도시에 집적되는 구조를 가능하게 한다.

항로 성격 규정 따라 통항·규제 권한 차이

해저 자원·환경·안전 책임 놓고 분쟁 예상

극지 해양법 연구·정책 지원 체계 구축을

문제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지금부터다. 해양 질서는 지금 거대한 변화를 맞고 있다. 그 중심에 북극항로가 있다. 최근 중동 사태에서 보듯이 해상 항로는 생명줄이고 다변화가 필요하다. 이에 북극항로 중요성이 한층 부각된다. 기후변화로 북극 해빙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북극을 통과하는 항로는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과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기존 수에즈 운하 항로보다 크게 단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극항로가 열릴 경우 동북아시아에서는 부산이 가장 중요한 물류 거점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북극항로는 단순한 물류의 문제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것은 그 뒤에 놓인 법적 질서의 문제다.

우선 북극항로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국제 분쟁이 진행 중이다. 일부 국가는 특정 항로를 자국의 내수로 주장하는 반면, 다른 국가들은 이를 국제 해협으로 보고 자유항행권을 주장한다. 항로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통항 권한과 규제 권한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 하나의 쟁점은 해저 자원이다. 북극 해저에는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둘러싼 대륙붕 연장 문제 역시 국제법적 논쟁의 대상이다. 이 문제는 유엔해양법협약 체계 아래에서 처리되고 있지만 분쟁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또 다른 문제는 환경과 안전 책임이다. 북극은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해양생태계를 가진 지역이다. 해빙으로 선박 통항이 늘어날 경우 유류 오염, 해상 사고 등 새로운 국제적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극지 해역 항행을 규율하는 ‘극지방 운항 국제규정’을 마련해 선박 설계와 운항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북극항로 시대는 해운과 물류의 경쟁과 더불어 해양법과 해사 분쟁 해결 능력의 경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점에서 향후 부산에 설치될 해사법원의 의미는 분명하다. 선박 충돌, 용선 계약, 해상 보험, 해양 오염 책임 등 해사 분쟁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영역이다. 이러한 분쟁을 전문적으로 처리할 사법 시스템이 구축되면 부산은 단순한 물류 중심지를 넘어 동북아 해사 분쟁 해결의 중심 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항만과 금융, 해사 사법 기능이 결합한 도시가 해양 산업 중심지가 되어 왔다.

해수부 이전과 해사법원 설치만으로 해양수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이를 뒷받침할 추가적인 입법과 제도 정비가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북극항로 시대의 법과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 첫째, 해양수도 이전 특별법의 후속 입법을 통해 해양 관련 공공기관과 연구 기관의 추가 이전을 촉진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해양 정책 기능이 분산된 채로 남아 있다면 해양수도의 실질적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둘째, 국제 해사 분쟁을 부산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사 중재와 국제 해양법 연구 기능을 강화하는 법적 기반도 필요하다. 해사법원이 국내 분쟁 해결의 중심이라면, 국제 중재와 연구 기능은 부산을 동북아 해양법 허브로 만드는 또 하나의 축이 될 것이다. 셋째, 북극항로와 극지 해양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극지 해양법 연구와 정책 지원 체계 역시 장기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새 항로가 열릴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항만과 더불어 법과 제도이기 때문이다.

부산항 150년 역사는 단순한 항만의 발전사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해양 국가로 성장해 온 과정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제 다음 100년의 방향이 결정될 시점이다. 해수부 이전과 해사법원 설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해양수도가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정책과 사법, 연구와 산업을 연결하는 제도적 완성이 뒤따라야 한다. 부산이 항만 도시를 넘어 세계 해양 질서를 이끄는 해양수도로의 도약 여부는 바로 그 선택과 준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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