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규의 법의 창] 민법 일부 개정… 상속 '혈연'에서 '책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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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 정인 변호사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이어지며 ‘가족’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시기다. 하지만 이 따뜻한 말 뒤에는 우리가 외면해 온 현실도 있다. 자식을 돌보지 않은 부모, 부모를 버린 자식, 생전에는 연락조차 없다가 사망 후에 상속만 요구하는 경우들이다. 이제는 ‘패륜 상속’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그동안 우리 민법은 ‘가족이면 당연히 상속을 받는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권리와 의무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법이 ‘천륜’을 신뢰하는 사이, 천륜은 때로 책임 없는 권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함께 살지도, 돌보지도 않았던 가족이 사망 후 재산을 요구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많은 사람이 ‘이게 과연 공정한가?’라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형제자매 유류분 폐지·핵심 가족만 인정

부모도 부양 의무 위반 땐 상속 못 받아

'가족이니까' 아닌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

이러한 문제에 변화가 생겼다. 2024년 유류분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 가수 구하라 사건 등에 이어진 지난 3월 17일 민법 일부 개정이다. 이번 개정은 상속의 기준을 ‘혈연’에서 ‘책임과 기여’로 바꾼 것, 그리고 상속의 본질을 ‘혈연 중심의 권리’에서 ‘책임과 기여에 기반을 둔 정당한 분배’로 전환하려는 내용이라 평가할 수 있다.

개정 민법의 내용은 먼저, 형제자매의 유류분이 폐지되었다(민법 제1112조). 유류분은 법에서 최소한 보장해 주는 상속 몫인데, 이제 형제자매는 이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부모나 자식처럼 생활을 함께하는 핵심 가족 중심으로만 최소 상속분을 인정하겠다는 취지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이른바 ‘구하라법’이다. 민법 조문으로는 민법 제1004조의2(상속권 상실 선고)이다.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자녀 또는 부모를 돌보지 않았거나 학대를 한 경우처럼,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는 등 그 책임을 심각하게 저버린 사람은 아예 상속을 받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가족이니까 무조건 상속받는다’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사안에 따라 가족 관계의 실질이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된 것이다.

상속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기준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기본적으로 법에 정해진 비율대로 나눴지만, 이제는 누가 얼마나 기여했는지가 중요해졌다. 오랜 기간 부모를 모시고 간병하거나 재산 유지, 증가에 도움을 준 경우, 그 기여가 인정되면 더 많은 상속을 받을 수 있다(민법 제1008조 단서). 특히 이러한 기여는 유류분 분쟁에서도 고려될 수 있어, 오랜 기간 부모를 돌보고 재산 유지, 증가에 기여한 상속인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효도는 손해’라는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중요한 전환이다. 실무적으로 중요한 변화도 있다. 예전에는 유류분 소송을 하면 부동산 지분을 나눠 갖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한 채의 집을 두고 지분이 쪼개져 분쟁이 길어지는 일이 흔했다. 이제는 재산의 가액을 청구할 수 있어, 원칙적으로 ‘현금으로 정산’하도록 바뀌었다(민법 제1115조). 분쟁을 줄이고 거래를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한 조치다.

다만 아직 모든 기준이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입법의 속도가 현실을 완전히 따라잡은 것은 아니다. 일부 규정은 시행되었으나 세부 기준과 해석은 여전히 형성 과정에 있다. 법은 바뀌었지만, 실제 사건에서 어디까지를 ‘부양의무 위반’으로 볼 것인지, 기여를 ‘얼마나 인정’할 것인지 등은 앞으로 법원이 하나씩 기준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상속은 더 이상 단순한 가족의 권리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 법은 묻는다. 그 관계에서 어떤 책임을 다했는지, 그리고 그 책임 없이도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를 본다는 것이다. 돌보지 않았으면서 권리만 요구하는 관계까지 보호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이번 개정의 핵심이고, 법의 선언이다.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 속 가족은 혈연으로 묶인 관계가 아니다. 사회의 주변에서 우연히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며 ‘가족처럼’ 살아간다. 법적으로는 가족이 아니지만, 실제 삶에서는 누구보다 가족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묻는다. 가족은 과연 혈연으로만 정의되는 것인가, 아니면 함께 살아가며 책임을 나누는 관계인가.

이번 민법 개정이 던지는 질문 역시 다르지 않다. 단지 피로 이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그 가족 관계 속에서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를 물을 것인가. 가족은 단순히 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돌보고 책임지는 관계다. 그리고 이제 법도 그 최소한의 기준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필요한 변화다. 이제는 ‘가족이니까’가 아니라, ‘무엇을 했는가’가 기준이 되는 시대다. 법은 이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은, 어쩌면 우리 각자의 삶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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