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욱의 글로벌 산책] 중동발 위기가 기회 될 수 있을까
국립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집 주변 공원을 산책하다 보니 이미 벚나무에서 벚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계절의 흐름은 봄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는 혹한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 2월 28일 이후 중동 전역에 전쟁의 불길이 치솟았다. 2월 27일 배럴 당 67달러였던 국제 유가는 배럴당 119달러까지 상승했었고, 이후 IEA 회원국들은 원유 공급 차질 우려를 해소하고자 4억 배럴 수준의 비축유를 긴급 투입해서 유가 급등을 겨우 막았다.
중동발 위기로 세계는 또다시 ‘에너지 안보’라는 오래된 과제 앞에 서 있다. 그런데 이번 위기가 과거와 다른 점은, 우리가 이미 이 문제의 답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공습은 단순한 국지적 충돌을 넘어, 현재 이 해협을 통과하던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 수송이 차질을 빚고 있으며,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선박 보험료가 급등하고 물류 경로 우회에 따른 추가 비용이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도돌이표 같은 글로벌 에너지 위기
유럽은 러-우 전쟁 때 구조적 전환
우리도 체질 바꾸는 노력 기울여야
특히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전략적 요충지의 불안정성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다. 에너지 수송 경로의 위기 상황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번 충격은 일시적 변동을 넘어 장기적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가격 상승을 넘어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확산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동시에 주요 수입국 간 에너지 확보 경쟁이 심화하면서 지정학적 긴장이 더욱 고조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국내 원유 수입량의 70%를 중동산이 차지한다. 원유 수입이 막히면 석유화학 공장이 멈추고, 제조업 전체가 연쇄 타격을 받으며, 수출 기업들의 운송비 부담도 치솟는다. 우리 정부도 결국 원유 위기경보를 ‘주의’ 단계로 격상하며 비축유 방출과 강제 에너지 절약 카드를 꺼내 들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처음으로 차량 부제 운행까지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은 이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웅변한다.
시선을 유럽으로 돌리면 흥미로운 대조가 눈에 들어온다. 유럽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를 거치며 이미 혹독한 수업료를 치렀다. 그 결과물이 바로 REPowerEU다. REPowerEU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화석연료 의존도를 2030년 이전에 단계적으로 완전히 퇴출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EU가 발표한 친환경 전환 가속화 계획이다. 2027년까지 2100억 유로가 투입되는 REPowerEU 계획의 핵심은 에너지 절약,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 재생에너지 이용 확대이다. REPowerEU 추진 이후 러시아산 가스 수입 비중은 2022년 45%에서 2025년 13%로 대폭 감소했다.
이번 중동 위기로 EU는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동 위기로 화석 연료 의존도의 취약성을 재확인한 EU는 2030년대 초 SMR(소형모듈원자로) 가동을 목표로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해 2억 유로 규모의 보증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EU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위기는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단, 그 계기를 잡는 국가와 흘려보내는 국가의 운명은 갈린다. 사실 에너지 다변화의 필요성은 1970년대 오일쇼크 때부터 반복해서 제기돼 왔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는 되풀이되었지만, 에너지 공급구조 다변화는 지금까지 구호에만 그쳐왔다. 이제 우리에게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고 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와 같은 대체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사회적 합의다. 에너지 전환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적 변화이기 때문에, 정권 변화와 무관하게 지속될 수 있는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산업계와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에너지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비용 부담과 이익을 공정하게 분담하는 사회적 합의도 필수적이다. 결국 에너지 안보는 기술이나 자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의지와 선택의 문제이다.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미래 산업 구조와 경제 안보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중동 정세 불안이 한국에게 던지는 과제는 단기적인 위기 관리를 넘어, 장기적인 경제 안보와 산업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EU가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를 REPowerEU라는 구조적 전환의 계기로 삼았듯, 한국도 이번 중동발 충격을 에너지 체질을 바꾸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위기는 반복된다. 그러나 위기에서 배움을 얻는 자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