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부산·울산·양산 원헬스의 빈칸, 함께 채울 시간
황성욱 부산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매슬로우는 안전을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로 보았다. 먹고사는 문제 다음에 오는 삶의 토대, 곧 내 가족과 이웃이 예측 가능한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믿음이다. 안전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무너지는 순간 일상의 모든 질서가 흔들린다. 그런데 부산이 과연 그 믿음의 도시인가를 묻는다면, 우리는 한 가지 빈칸을 직시해야 한다. 사람과 환경, 동물의 건강을 하나로 보는 원헬스의 시대에 부산·울산·양산권(부울양권)에는 수의과대학이 없다.
이 문제는 대학의 이해나 어느 한 기관의 요구로만 볼 일이 아니다. 부울양은 500만에 가까운 시민이 생활권을 공유하는 동남권 핵심 축이다. 항만과 공항, 산업단지, 대학병원과 연구기관, 해양바이오와 반려동물 문화가 겹친 지역이기도 하다. 이만한 생활권에 수의학 교육·연구·방역 인력 양성의 거점이 없다는 것은 원헬스 안전망의 분명한 빈칸이다. 시민의 삶 가까이에 있는 안전 인프라가 지역 안에서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지 이제는 물어야 한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불편한 교훈을 남겼다. 감염병은 행정구역을 묻지 않고, 인간의 병은 인간 사회 안에서만 시작되고 끝나지 않는다. 인간과 동물, 환경의 건강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감염병 대응 역시 이 세 영역을 함께 보아야 한다. 이제 방역은 병원이 문을 연 뒤의 치료만이 아니라, 항만과 공항, 축산과 반려동물, 야생동물과 환경 데이터가 함께 움직이는 과학이어야 한다. 원헬스는 먼 미래의 구호가 아니라 이미 우리 도시가 준비해야 할 현실의 안전 전략이다.
수의과대학은 동물병원을 늘리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첫째, 지역 학생들이 수의학을 배우기 위해 외지로 떠나야 하는 현실을 줄일 수 있다. 청년에게 교육 기회의 지역 격차는 곧 지역의 미래 격차다. 부울양권에 수의학 교육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면, 이 분야의 인재는 계속 외부로 빠져나가고 지역은 필요한 전문성을 외부에 의존하게 된다. 지역에서 배우고, 연구하고, 일할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드는 것은 청년을 붙잡는 가장 기본적인 정책이기도 하다.
둘째, 수의학은 다른 보건의료·생명과학 분야와 결합할 때 더 큰 힘을 낸다. 의학, 간호학, 약학, 치의학, 한의학, 생명과학, 환경공학, 해양바이오 분야가 수의학과 만나면 감염병 예방, 식품안전, 동물복지, 재난관리, 바이오산업까지 이어지는 융합 교육과 연구가 가능하다. 이는 한 대학의 경쟁력만이 아니라 지역 교육과 연구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특히 동남권이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는 바이오헬스, 해양바이오, 스마트 방역 분야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셋째, 국제도시 부산의 신뢰를 높인다. 부산은 이미 수많은 관광객과 물류, 인적 교류가 오가는 개방형 도시다. 앞으로 가덕도 신공항이 들어서고 글로벌 중심도시의 비전이 구체화될수록 부산의 관문 기능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개방성은 안전망 없이는 위험이 될 수 있다. 항만과 공항, 도시 방역과 동물 감염병 대응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원헬스 기반은 국제도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이다. 세계와 더 많이 연결될수록, 지역 안의 방역과 연구 역량은 더 단단해야 한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많은 공약이 나온다. 도로와 철도, 산업단지와 개발사업도 중요하다. 그러나 6월 3일의 선택이 단순한 개발 경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의 안전, 청년의 교육 기회, 도시의 국제적 신뢰를 함께 높이는 과제가 의제로 올라야 한다. 부울양권의 수의학 교육·연구·방역 거점 구축은 어느 한 정당의 깃발 아래 놓일 사안이 아니다. 부산시와 울산, 양산의 행정, 지역 대학과 산업계, 시민사회, 그리고 여야 정치권이 중앙정부를 향해 초당적·초정파적으로 요구해야 할 생활안전 의제다.
사람만 건강한 도시는 없다. 동물이 아프고 환경이 흔들리면 사람의 안전도 흔들린다. 부울양이 진정한 국제해양수도권을 꿈꾼다면 원헬스의 마지막 퍼즐을 채워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쟁의 언어가 아니라 공동의 언어다. 어느 기관이 앞에 서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500만에 가까운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이 지역에 반드시 필요한 기반을 함께 만드는 일이다. 부울양 원헬스의 빈칸을 이제는 함께 채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