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너의 이름은
'다리의 도시' 부산… 차량 위주라 아쉬움
첫 보행교 '수영강 휴먼브리지' 새 명물로
다 좋은데 어울리지 않는 이름에 불만 많아
역사·지리적 특징 잘 살려 새롭게 불렀으면
부산은 다리의 도시다. 산·강·바다를 모두 품은 삼포지향(三抱之鄕)의 부산 지형은 아름답지만 살아가기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480개가 넘는 다리가 도시 곳곳을 연결하고 있다. 부산은 거가대교에서 시작해 가덕대교~신호대교~을숙도대교~남항대교~부산항대교~광안대교까지 7개 다리가 이어진 총 52㎞의 해안순환도로망을 자랑한다.
부산의 다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길이로 따지면 동서고가로는 전국에서 가장 긴 다리 2위, 광안대교는 3위다. 오래전부터 부산을 상징했던 영도다리는 애잔하다. 6·25 전쟁 당시 피란민들에게 영도다리는 혹시 헤어지면 만나기로 한 최후의 약속 장소였다. 예전 아이들은 자라면서 ‘영도다리에서 주워 왔다’라는 소리를 한 번쯤은 들었다.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영도다리 주변에 그렇게 많았던 탓이다.
광안대교는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다리다.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광안대교는 최근 처음 출전한 야간 경관 국제 어워드에서 당당히 세계 2위에 올랐다. 그동안 유럽에서 독식해 오던 도시조명상 수상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광안대교가 이뤄낸 것이다. 부산항대교는 무서운 다리로 통한다. 부산시티투어버스가 부산항대교 진입 램프에 들어서면 “롤러코스터 타실 준비 되셨나요”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모르고 진입했다가 운전자가 무서워서 차를 세우는 바람에 119 구조대가 램프를 걸어서 올라가 대신 운전해 주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크루즈선이 지나갈 수 있도록 아파트 20층 높이에 세워진 부산항대교의 나선형 램프는 부산의 또 다른 매력이 되고 있다.
이처럼 다리는 부산 관광의 아이콘이 되었지만 이들 대부분이 차량 위주라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리는 원래 사람이 지나가라고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차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만 것이다. 이달 초 개통한 부산의 첫 보행교 수영강 휴먼브리지는 그래서 더 반갑다. 수영구와 해운대구 APEC나루공원·영화의전당을 잇는 이 다리는 벌써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수영강에 놓인 다리는 15개에 달한다. 수영강의 여러 다리를 많이 걸어 봤지만 보행교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벚꽃까지 만발한 수영강 일대를 걸으며 금상첨화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다 좋은데 ‘휴먼브리지’라는 다리 이름이 불만이다. 수영강에는 이미 민락교·수영교·좌수영교·과정교 같은 이름의 다리들이 있다. 이처럼 다리 이름은 그 장소의 역사나 지리적 특징을 담아 다른 곳과 구별되게 짓는다. 휴먼브리지는 국내외 어디에 있는지 모를 특색 없는 이름이다. 좋은 우리말 이름 놔두고 왜 정체불명의 영어 이름인가. 원래 휴먼브리지는 건축이나 도시 설계 분야에서 보행자 전용 교량을 뜻하는 용어다. 정식 이름을 정하기 전에 임시로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서울 서초구 몽마르뜨공원과 서리풀공원을 연결하는 보행교도 처음엔 휴먼브리지로 불렀다. 정식 개통을 하면서 서초(瑞草)의 옛 지명을 살린 ‘서리풀 다리’라는 이름으로 정해져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가평 자라섬에 설치된 보행교도 처음엔 자라섬 휴먼브리지로 추진되다 지금은 ‘자라섬 출렁다리’로 불리고 있다. 휴먼브리지는 기껏 근사한 공원을 짓고 이름을 ‘동네 공원’이라고 부르는 격이다. 누가 나를 볼 때마다 “이 사람아!”라고 부르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사람을 위한 다리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 역설적으로 사람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당신이 한번 아이디어를 내어보라”라고 한다면 ‘영화 도시’ 부산 영화의 전당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살려서 ‘영화교’로 부르자고 제안하고 싶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이 다리를 걸어 보자는 의미다. ‘부귀영화’할 때의 영화(榮華)나 ‘다리를 걸으면 젊어진다(Young)’라는 중의적인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아름다운 다리에 이런 의미까지 더해지면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인물의 이름을 가져와도 좋을 것 같다. 안용복은 조선 숙종 시절, 미관말직의 수군이었지만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현재 수영구 수영동에 있던 경상좌수영 소속이었으니 수영강과도 인연이 깊다. 수영강에 세운 다리에 이름을 붙이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이름이 나올 것이다.
다리 이름은 한번 정해지면 수십 년, 수백 년간 불리게 된다. 아무리 시민 명칭 공모를 통해 결정된 이름이라도, 시민 다수가 아니라고 하면 바꿔야 한다.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줘야 존재는 비로소 생명을 얻고, 본연의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박종호 문화스포츠부 선임기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