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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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옥(1966~)

자작나무에 미동 없이 앉은 직박구리 발가락이 얼어붙기 직전 꿈에서 깼다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았는데 3월이었다

뜻이 돌돌 말린 포스트잇을 떼고 새것을 붙이자 벽이, 뜻깊어졌다

마침내, 할 일이 생각난 사람처럼 방을 나왔다

골목이 길어 각오가 오래, 뿌듯했다

잔설 위 햇빛 몇 가닥이 민들레를 건져올리고 있었다

살아 있었네!

좋은 말로 때리는 지인과 마주쳤다

사는 거…… 좋아하는구나, 나도

나에게 면이 섰다

-시집 〈우주를 따돌릴 것처럼 혼잣말〉 (2025) 중에서

벌써 3월입니다. 한 해를 시작하며 세웠던 계획들, 물오른 가지에 움트는 새순들처럼 언 땅을 녹이며 오르는 새싹들처럼 움직이고 있겠지요. 봄은 사계절 중에 유독 ‘새’라는 관형사가 붙습니다. 새봄! 이는 긴 겨울을 견디고 다시 태어나는 생명들을 위한 것입니다.

수많은 학교의 입학식처럼 새로운 시작이 가득한 3월은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명분이 되어줄 충분한 시절입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고 반복되고 있는 묵은 마음일지라도 새롭게 단장해봅니다.

할 일이 생각난 사람처럼 세상 밖으로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것 아닐런지요. 봄이 매번 새롭게 오듯 내 생활의 모든 순간들도 매번 새롭다는 것. 무엇보다 시간과 대화하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이 봄의 기적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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