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물의 종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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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하 (1932~)

물에게는 낮은 쪽이 앞이다. 물의 감각은 오직 높낮이다.

물은 혼자서 또 집단으로 묻힐 곳을 찾는다. 물은 서로를

불러모아 충만한 부피이면서 때로 바닥을 들어내면서, 조금

더 낮은 수위를 찾아 먼 쪽으로 우회하면서 굽이를 만들기도

한다

강은 곡선을 사랑한다. 물이 사라지는 곳은 기존의 물이

새로 들어오는 물을 몸으로 끌어안는 바다 깊이다.

바다 깊이에서 하늘 구름으로 머물다 다시 땅을 찾는 큰

동그라미를 물은 그린다. 사람이 보는 것은 언제나 물 행보

의 한 단면이다. 물은 태양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물은

언제나 운동 중이다. 시간처럼 정지할 줄 모른다

시집 〈별빛 탄생〉 (2025) 중에서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 온갖 것을 섬길 뿐 그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해 흐를 뿐이라 했지요.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 그래서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도 물은 그 공로를 인정받자거나 그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습니다. 만물을 이롭게 하고 있다는 것마저 의식하지 않습니다. 이 시를 읽는 동안에도 물은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며 순환하고 있겠지요. 곡선을 사랑하며 움직이는 물. 구름이 되기 위해 움직이는 바다. 물이 물을 온몸으로 끌어안는 바다가 가까이에 있어 좋습니다. 물의 종착지는 어디일까요. 사람의 눈물은 어디쯤일까요. 물처럼, 물처럼 되라는 말씀을 되뇌이게 됩니다.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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