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꽃잎 이소회(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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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트럭 지나간다

분홍, 분홍, 연분홍, 돼지들 싣고

진흙 한 점 없는 보오얀 등에, 붉은 도장

코를 모아 서로 향기 맡는다

유명(幽明)의 경계에 부신 향 진동한다

온몸이 통으로 꽃인, 온 생이 통으로 꽃인

꽃들 지러 간다

아니고 아니고 아니다 아니다

꽃은 염불이 되고

벚꽃 지는 날

아스팔트 하얗게 뒤덮는 꽃잎들 모두 어디로 가니

-시집 〈오오〉 (2024) 중에서

짧기만 한 시절이 푸른 트럭에 실려 지나갑니다. 분홍 살빛을 가진 벌거숭이 돼지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코를 모아 서로의 향기를 맡습니다.

아직 살아있다는 것. 피었다 싶은데 벌써 지고 있는 봄날의 꽃잎들. 공존하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흩어지고 있는 벚꽃들. 닥쳐올 위험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디론가 실려 가는 돼지들에게서 삶과 죽음을 생각해봅니다.

시인의 말처럼 생은 꽃일까요. 피었다 지는 목숨들 모두 꽃이라면, 바람 부는 날 휘날리는 봄처럼 생은 무상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소중한 것, 아니고 아니고 아니다 아니다 되뇌일수록 서러워집니다. “아름다웠던 세상 소풍 끝내고 돌아가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 노래했던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란 싯귀가 맴돕니다.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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