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 올라서야 깨달았다…사람과 우주가 둘이 아님을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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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맞이 순천 선암사·송광사 탐방
천불전 갖춘 ‘만불의 세계’ 태고총림 선암사
속세 번뇌 떨쳐내고 신선 돼 오르는 승선교
봄이면 겹벚꽃·영산홍 등 만발 꽃 대궐 이뤄

16명 국사 배출한 조계종 승보사찰 송광사
여의주 입에 문 용머리 전설 삼청교·우화각
계곡 품은 산사 건축의 진수 침계루에 감탄

불기(佛紀) 2570년.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온다. 부처님은 음력 4월 8일에 태어났다. 부처님오신날은 석가모니가 태어난 해가 아니라 열반한 해를 원년으로 삼는다. 그러니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석가모니가 돌아가신 지 2570년째 되는 해에 맞이하는 생일인 셈이다. 이 사실을 여태 모르고 공휴일이라고 그냥 놀았다. 이번에 깨달았다. 지난달 중순 인문학당 ‘큰수레(회장 최복룡)’의 전남 순천 선암사, 송광사 답사를 따라갔다가 불교에 관심이 생긴 덕분이었다. 꽃도 보고 우리 문화에 눈도 뜨는 수지 맞는 여행이었다.


■꽃이 이래 화려해 스님들 우짜노


선암사를 거쳐간 고승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 선암사를 거쳐간 고승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

생각보다 가까웠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선암사는 조계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부산에서 선암사까지는 2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선암사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먼저 부도전을 만났다. 선암사를 거쳐 간 고승들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 있는 곳이다. 시조 시인으로 선암사 부주지를 역임한 조종현 스님도 여기에 묻혔다. 교과서에도 나온 ‘나도 푯말이 되어 살고 싶다’를 쓴 스님은 소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 작가의 부친이다. 선암사의 대처승이었고, 조 작가도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이 부도전은 <태백산맥>에도 접선 장소로 등장한다. 선암사가 속한 종단 한국불교태고종은 독신으로 수행하는 스님도 있지만, 스님의 결혼과 가정을 허용하는 대처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다리로 꼽히는 선암사 승선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다리로 꼽히는 선암사 승선교.

이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다리 승선교(昇仙橋)가 나타났다.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다리’라는 뜻이다. 속세의 번뇌를 씻고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선암사(仙巖寺)에는 ‘신선이 내려오는 누각’이란 뜻의 강선루(降仙樓)까지 신선이 곧잘 등장한다. ‘순천 전통 야생차 체험관’ 안내판이 나타나더니 길옆으로 차나무들이 보인다. 선암사는 사찰 뒤편 산기슭 등에서 흩어져 자라는 야생차밭이 유명하다. 선암사 스님들은 전통 방식으로 차를 만들고, 차를 마시는 것도 수행의 연장으로 여긴다.


선암사는 한국의 산사 중에서 가장 꽃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선암사는 한국의 산사 중에서 가장 꽃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오메, 이게 뭔 일이래?” 선암사 경내에 들어선 순간 진한 전라도 말이 귀에 꽂혔다. “꽃이 이래 화려해 우짜노, 스님이 정진할 수 있겠나?” 일행 중의 한 분이 이에 질세라 경상도 말로 화답했다. 겹벚꽃 만발한 춘사월이었다. 봄이 되면 선암사는 매화부터 시작해 겹벚꽃, 영산홍, 자산홍, 살구꽃, 개나리, 진달래, 복사꽃 등이 차례로 만개해 꽃 대궐을 이룬다. 한국의 산사 중에서 가장 꽃이 아름답다는 선암사였다. 사시사철 꽃이 떨어지는 날이 없으니, 신선들도 틈만 나면 다녀가는구나 싶었다.


스님들의 식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스님들의 식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다가 불조전(佛祖殿)으로 서둘러 가야 했다. 과거 7불과 미래 53불 총 60분의 부처님을 모신 곳이다.

이날 법문을 하기로 약속한 선암사 주지 승범 스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님은 “예배당에 가면 예수님 한 분뿐이어서 간단명료한데, 절에 오면 부처님이 ‘땀뿍(가득)’ 찼다. 비불교인은 똑같은 부처님을 왜 이렇게 땀뿍 만들어 놨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모든 생명체가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는데 중생병으로 아직 성자의 반열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다. 여러분도 언젠가 깨달으면 여기에 올라올 것이니 사진 잘 보관해 두라”라고 말했다. 천불전을 갖춘 선암사는 ‘만불의 세계’였다.


선암사의 야생 차밭. 선암사의 야생 차밭.

스님은 “우리는 보물 법당에서 예불을 올리고 문화재 변소에서 용변을 본다”라고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하며 법문을 마쳤다. 사실 선암사 화장실은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었을 만큼 유명하다. 소설가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전남 순천 승주 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아. 똥이 마려우면 참았다가 좀 멀더라도 선암사 화장실에 가서 누도록 하라. 여기서 똥을 누면 비로소 인간과 똥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라고 말했다. 선암사는 가을이 되면 온통 은행나무잎으로 뒤덮여 노란색 천국이 된다니, 또 가고 싶어질 것 같다.


■수행 전념 지눌 스님 법맥 이어

조계산 산등성이를 마주 보고 동쪽에는 선암사, 서쪽에는 송광사가 있다. 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 산길로는 불과 8㎞ 떨어져 있다고 했다.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을 대표하는 사찰로 꼽힌다. 같은 조계산에 조계종과 태고종을 대표하는 사찰이 각각 자리 잡은 사실이 묘하게 느껴졌다. 둘 다 천년사찰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선암사가 다소 앞선다.

이날 해설을 맡은 불교 인문학자이자 사진작가 노재학 씨의 깊이 있는 설명이 우리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노 작가는 “처음에는 소나무가 넓게 퍼져 있다고 해서 송광산이었고, 절 이름은 길상사였다. 그러다 고려 시대에 ‘동양의 부처님’이라고 불렸던 중국의 육조 혜능이 머물던 조계산을 따서 산 이름이 바뀌었다.

조계종(曹溪宗)이라는 종단 이름도 혜능 대사의 별호인 조계(曹溪)에서 유래했다. 혜능 대사의 선종 법맥을 잇는 종단이라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알면 알수록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화각, 임경당, 침계루를 따라 산사 건축의 진수가 펼쳐진다. 우화각, 임경당, 침계루를 따라 산사 건축의 진수가 펼쳐진다.

송광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하는 다리 삼청교 위에 지은 건물이 우화각이다. 무지개 모양의 삼청교 중심에는 여의주를 문 용머리 돌이 나와 있다. ‘용생구자(龍生九子)’, 용의 아홉 자식 중에 물을 좋아하는 ‘공복’이 다리 밑에 있다는 설명이 재밌다. 생각해 보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해 버린 용보다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공복이야말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우화각 또한 선암사 승선교 같은 멋은 없지만 묵묵히 사람들의 통행을 돕고 있다. 영화로 유명해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이 같은 다리 위 누각이란다. 이 영화 주인공의 직업이 사진작가였다는 사실은 뒤늦게 눈치챘다.


‘개울을 베개로 삼아 누운 다락’이라는 뜻의 송광사 침계루 모습. ‘개울을 베개로 삼아 누운 다락’이라는 뜻의 송광사 침계루 모습.

우화각 바로 옆에는 임경당(臨鏡堂)과 육감정(六鑑亭)이 있다. 거울처럼 맑은 냇가에 자신을 비춰 정화시킨 뒤에 송광사로 들어가라는 뜻일 것이다. 비가 온 뒤 계곡물이 불어났을 때, 우화각의 곡선과 임경당의 직선이 물줄기와 어우러지는 모습이 기가 막히단다. 대웅보전으로 향하는 길목 오른쪽에는 침계루(枕溪樓)가 자리 잡고 있다. ‘개울을 베개로 삼아 누운 다락’이라니 선조들의 낭만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우화각, 임경당, 침계루를 따라 걸으며 산사의 건축이 계곡을 품은 진수를 제대로 느꼈다.

승보 사찰 송광사 제일 위에는 스님들이 있어야 한다. 국사전(國師殿)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고려 시대 및 조선 시대 초에 국사로 책봉되었거나 후대에 국사로 추인된 송광사에서 활동한 큰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이 가운데 13점을 한꺼번에 도난당했다가 21년 만에 되찾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보조국사 지눌의 감로탑에서 내려다보는 송광사의 전경이 일품이다. 보조국사 지눌의 감로탑에서 내려다보는 송광사의 전경이 일품이다.

마지막으로 찾은 장소가 관음전 뒤뜰 언덕에 있는 보조국사 지눌의 감로탑이다. 고려 시대 불교가 권력과 밀착되어 매우 타락하자 지눌 스님은 명리를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자는 정혜결사 운동을 펼쳤다. 지눌 스님이 조계산 송광사에서 선종의 정통성을 다시 세운 것이다. 조계종은 지눌 스님의 법맥을 잇고 있다. 감로탑에서 내려다보는 송광사의 전경이 일품이었다.


송광사 스님들이 마당을 지나가고 있다. 송광사 스님들이 마당을 지나가고 있다.

어쩌다 절에 가서 “보살님!” 소리를 들으면 깜짝 놀라며 손사래부터 치는 비불교인이 이날 점심은 선암사, 저녁 공양은 송광사에서 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알고 보니 보살은 생명체를 가진 모든 존재에게 쓰는 최상의 호칭이라고 했다. 선암사, 송광사에서 ‘한국 산사의 기념비적 건축’도 많이 알게 되었다. 노 작가가 “우주의 축소판이 사람이고, 사람이 곧 우주다. 서로를 존중해야지, 힘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생명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면 절대로 전쟁을 못 한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AI 로봇이 수계를 받고 명예 스님이 되었다는 소식에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AI에게 물어봤다. “자비 정신을 되새기며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고,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확인하는 날이다”라는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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