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이어진 사제 情… 스승 100세 축하 잔치

김재량 기자 ry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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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고교 3학년 담임
겸손과 정직 커다란 가르침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어”

개성고 졸업 87세 제자들
백수 스승께 ‘상수연’ 헌정
스승의 날 ‘뜻깊은 울림’

부산대 이병선 국어교육과 명예교수(사진 왼쪽)와 개성고 46회 동기회 우판수 대표(사진 오른쪽)가 손을 잡고 대화하고 있다. 개성고 제공 부산대 이병선 국어교육과 명예교수(사진 왼쪽)와 개성고 46회 동기회 우판수 대표(사진 오른쪽)가 손을 잡고 대화하고 있다. 개성고 제공
개성고 46회 동기회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담임이었던 이 교수와 상수연 행사 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개성고 제공 개성고 46회 동기회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담임이었던 이 교수와 상수연 행사 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개성고 제공

“그 시절 젊은 선생님을 담임으로 맞이한 우리도 참 철이 없었죠. 그래도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선생님께 배운 정직함과 겸손함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낮 12시 부산 연제구 연산동의 한 식당. 80대 후반이 된 제자 20여 명이 99세 담임 선생님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99세 스승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백발의 제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자들은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하나둘씩 두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환호와 박수도 터져 나왔다. 제자들의 얼굴에는 금세 소년 같은 웃음이 번졌다.

이날 자리는 개성고 46회 졸업생들이 부산상고(개성고 전신) 시절 담임이었던 부산대 이병선 국어교육과 명예교수를 위해 마련한 상수연(上壽宴) 행사였다. 상수연은 ‘가장 높은 수준의 장수를 기린다’는 뜻으로 100세를 기념하는 잔치다. 1927년생인 이 교수는 한국 나이로는 올해 100세이다.

1959년 부산상고를 졸업한 이들은 이미 노년이 됐지만 이날만큼은 다시 19살 제자로 돌아갔다. 제자들은 이 교수의 건강을 기원하며 식사를 함께했다. 이날 행사에는 개성고 동창회와 학교 관계자들도 참여했다. 해마다 스승과 제자들의 만남은 이어졌지만, 동창회와 학교 관계자까지 참석한 공식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제자들의 기억 속 이 교수는 ‘젊은 담임’이었다. 이 교수는 1958년 부산상고에 부임해 당시에는 이례적인 30대 초반에 고3 담임을 맡았다. 당시 부산상고 3학년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별명을 붙이고 종례 시간이 길어지면 발을 구르던 혈기 왕성한 아이들이었다. 개성고 46회 졸업생인 이무차(87) 씨는 “선생님의 생김새를 보고 ‘벌렁코’라는 별명을 지었었다”며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허물이 없었던 선생님께서는 말을 듣지 않는 우리 때문에 애도 많이 먹으셨다”고 웃었다.

이 교수가 제자들에게 남긴 것은 가벼운 추억만이 아니었다. 제자들은 이 교수가 강조했던 ‘정직한 삶’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씨는 “선생님은 학자로서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겸손한 분”이라며 “사회에 나가서도 정직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졸업 이후 한동안 스승을 찾지 못했던 제자들은 40~50대가 되면서 다시 은사를 떠올렸다. 이후 30년 가까이 스승의 날과 명절마다 이 교수의 집을 찾았다. 새해에는 세배를 드리고 주기적으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100세를 앞둔 선생님께 제대로 된 잔치를 열어드리자”는 이야기가 동기들 사이에서 나오면서 이번 행사가 진행됐다.

잊지 못할 장면도 있다. 2019년 졸업 60주년 행사에서 제자들은 이 교수를 초청해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당시에도 90대였던 이 교수는 건강과 삶을 주제로 1시간 넘게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전했다. 당시 제자들이 감사의 뜻으로 전한 100만 원도 부산대 연구실 학생들에게 곧바로 기부했다.

개성고 46회 동기회 우판수 대표는 “그 돈을 학생들에게 쓰라고 하셨다는 말을 듣고 역시 선생님답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 대표는 “우리는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배웠다는 마음으로 오늘을 준비했다”며 “우리 이야기를 알게된 신세대 청년 한 명이라도 스승을 섬기고 존경하는 마음을 전한다면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소망했다.

이 교수는 이날 행사를 마치며 “제자들도 어느새 90대가 되어가지만 여전히 60여 년 전 이들에게 정직하고 야심 찬 삶을 살라고 전했던 날이 눈에 선하다”며 “지금도 제자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고마움을 전할 수 있어 감격스러운 하루였다”고 감동을 표했다.

한편 이 교수는 부산대 교수로 재직하며 대마도와 한일 관계 분야 연구에 힘썼다. 4년 전에도 도서를 출간할 정도로 최근까지 연구와 집필 활동을 이어왔다. 상수연을 진행한 개성고 역사관은 이날 행사를 학교 공식 기록에도 남길 계획이다.



김재량 기자 ry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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