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생명지킴이도 소모품인 나라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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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혁 사회2부 차장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합니까?”

역설적이다. 삶의 끈을 놓으려는 이에게 버팀목이 될 정신건강복지센터 위기개입팀 요원에게서 이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현장을 외면한 우리나라 자살예방체계의 실상이 이 울분 섞인 한마디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들의 노동은 가혹하다. 밤샘은 일상이고, 극심한 감정 노동이 뒤따른다. 자살 소동 현장의 날 선 눈빛, 고함을 감내하며 응급 입원을 결정하고, 수화기 너머 출구 없는 절박한 호소와 때로 들릴 듯 말 듯 무기력한 목소리에 온 신경의 가닥을 잇는다. 정작 자신들의 마음은 다치고 지쳐 있지만, 이들을 보듬을 치유 시스템은 효과적이지 않다. 위기개입 요원 4명 중 1명이 반년 만에 짐을 싸는 악순환이 현장의 붕괴와 한계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치권의 관심에서도 이들은 소외돼 있다. 선거 국면에서 득표에 도움되지 않는 ‘철저한 소수’여서다. 울산 10여 명, 부산 10여 명, 경남 약 20명 등 전국 광역센터를 다 합쳐도 위기개입 요원은 200명 안팎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의 위기를 모른 척하는 것은 한 해 1만 4000명에 달하는 자살자를 외면하는 것과 같다. 연 평균 2000여 명인 산재 사망자의 7배에 달한다. 국가적 재난 수준의 수치임에도 최전선의 보초병들은 소모품처럼 쓰이다 잊힌다.

현장의 폐쇄성은 침묵을 강요한다. 관련 기사에 ‘좋아요’ 하나 누르는 것조차 겁난다는 요원의 고백은 그냥 흘려듣기 힘들다. 얼마 전 계약해지된 지방의 한 요원은 취재 요청에 응하지 못해 되레 미안하다고 했다. 기관의 눈 밖에 나 업계에서 퇴출당할까 봐 스스로 입을 닫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유는 하나, 막다른 길에 내몰린 생명을 부여잡는다는 소명감 때문이다.

최근 대통령은 높은 자살률을 두고 “전 세계적 망신”이라며 각별한 대책을 주문했다. 그러나 행정은 여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1년도 못 버티고 사람이 빠져나가는데 국가는 그 숫자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 누가 언제 왜 떠났는지 추적하는 기초 자료가 부족하니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 수 없다. 낙제점 수준의 안전망에 ‘전문성 만점’ 등의 가짜 성적표를 매기기 바쁘다.

지방 요원들은 박봉으로 버티다 현장을 떠나고, 그 공백을 채울 전문 인력을 키우는 기관조차 수도권에 쏠려 있다. 몇 번 출동했는지, 몇 통의 전화를 받았는지 세는 동안, 정작 몇 명을 살렸는지 묻지 않는다. 내부 인력조차 관리 못 하는 행정이 위기 개입 이후 대상자가 안정적인 치료 체계에 안착했는지 살필 리 만무하다. 관리 감독이 복잡하게 얽힌 위탁 체계 어딘가로 책임의 주체마저 희석된다. 이러한 구조 위에서 여론 무마용으로 팀을 급조하는 ‘땜질식 처방’을 반복하는 한, 비극의 고리는 끊기지 않는다.

기자로 활동하며 ‘베르테르 효과’ 등을 이유로 자살 관련 보도를 금기시했다. 그 사이 보도 윤리와 상관없는 현장의 모순마저 방관한 책임이 있음을 느낀다.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란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자살률 OECD 1위라는 불명예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무너진 정신응급 대응체계 위에서는 누구의 생명도 온전히 구할 수 없다. 벼랑 끝 현장을 사수하는 ‘생명 지킴이’를 지키는 것이 국가 자살 예방 정책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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