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우아한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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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소설가

강대국, 이익 위해 폭력 행사
설득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아
우아한 위선이라도 필요한 세상

얼마 전 TV에서 들었던 말이 있다.

“우아한 위선의 시대가 끝나고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

광고나 드라마의 대사가 아니다. 세계의 흐름을 진단하는 어느 출연자의 말이었다. ‘야만의 시대’는 요즘 뉴스를 보면 저절로 공감되는 말이다. 최근 강대국이 벌이는 전쟁이나, 일방적으로 선포되는 무역 정책들도 그렇다. 심지어 강대국의 고위직이라는 사람은 대놓고 인터뷰한다.

세상은 원래 힘의 논리로 굴러가지 않았었나? 그러니 제발 약육강식의 현실을 직시하라고. 그는 현실을 외면하는 당신들이 오히려 어리석다는 식으로 몰아붙인다.

이제 강대국들의 메시지는 간결해졌다.

“우리는 우리 이익만을 위해 움직일 것이다.”

그들의 메시지 끝에 모두가 알아듣는 문장이 풍선처럼 떠오른다.

“그래서, 너희가 어쩔 건데?”

생각해보면, 그간 강대국들은 ‘우아한 말’로 세계를 움직여 왔다. 정의와 평화, 자유와 평등, 인간애와 지구환경 같은 명분들을 내세워서 결국 그들 이익에 부합하는 세계 질서를 구축했었다. 어떤 이는 그런 이익추구를 ‘우아한 위선’이라 하며 비꼬았다.

강대국은 이제 세계를 설득하려 애쓰지 않는다. 설득 대신 통보하고, 명분 대신 효율을 강조하고, 체면 대신 폭력을 선택한다. 위선이 우아함을 잃는 순간, 남는 것은 약탈이 난무하는 야만의 민낯이다.

그래서 나는 이 우아한 위선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다만, 이 위선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민족 간 갈등을 부추기거나, 자원 수탈을 설계하고 전쟁을 일으키려는 음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위선이 아니라 그저 추악한 폭력이며 약탈일 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우아한 위선’은 숨겨진 나의 욕망을 위해 보편적 가치를 따라가는 척하는 거짓된 선량함을 말한다. 국제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분쟁지역의 평화를 도모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재난 국가에 원조를 제공하는 식의, 그러니까 실제로는 다른 속내가 있는 행위였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는 고통을 덜게 되거나 혹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위선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위선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나의 욕망을 인정한다면 모든 사람의 욕망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도 그 욕망을 온전히 성취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엔 온갖 욕망이 들끓고 있었더라도, 그것을 평생 억누르고 살았다면, 우리는 그 삶을 위선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어떤 이는 미워하면서도 거짓 웃음을 짓는다. 어떤 이는 손해 보기 싫어서 진실을 털어놓고, 어떤 이는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얻으려 선행을 한다. 그런 마음의 이중성을 우리는 무엇이라 부를까.

우리는 위선이라는 단어를 일방적으로 사용해왔다. 마치 사람의 마음을 해부대 위에 눕혀, 가장 어두운 장기만 꺼내 보여주면 진실이 규명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그러나 ‘사실확인’은 모든 가치의 독점물이 아니다. 인간이 욕망을 가졌다는 건 자연법칙이지만, 그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문명이다.

많은 사람이 욕망을 위해 선을 연습한다. 마음속에서 수없이 많은 문이 열리고 닫힌다. 누군가를 밀쳐내고 싶은 문, 거짓말로 빠져나가고 싶은 문, 내가 전부 가지고 싶다는 문. 그런데 우리는 그 문 앞에서 자주 멈춘다. 그 짧은 욕망의 위선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그래서 이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현실적인 힘은, 약육강식이 아니라 욕망의 균형을 깨지 않으려 애쓰는 우아한 위선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못나고 사나운 욕망이라면 부디 본색을 드러내지 말자. 가능하다면 죽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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