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숨이 부풀어 오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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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수필가

오랜 바람인 바리스타 공부 시작
노즐 위치 따라 거품 결 달라져
거품에 대해 처음 진지하게 생각
삶 역시 거품처럼 봉긋한 숨 필요

거품을 친다. 스팀 노즐 끝이 우유 표면에 닿자 치지직 소리와 함께 고요한 잔에 파문이 인다. 투명하던 액체가 요동치니 빛을 머금은 기운이 안쪽에서부터 부풀어 오른다. 공기가 머물 자리를 얻자 우유가 천천히 숨을 쉰다. 닿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잠기는 것도 아닌, 그 얇은 경계에서 새로운 숨이 태어난다. 손목의 각도를 낮추어 공기의 경계를 붙든다. 소리는 부드럽게 흐르고 잔물결 같은 떨림은 순한 리듬을 탄다. 작은 방울들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촘촘하게 엮인다. 이제 노즐을 조금 더 깊이 담근다. 잔 속의 숨이 흩어지지 않도록 안으로 모으는 시간이다. 소리는 잦아들고 느린 회전이 중심을 잡는다.

나는 요즈음 바리스타 공부를 한다. 수년 전부터 버킷리스트 속에서 나를 밀어 올리고 있던 기포 같던 바람이었다. 드립 커피의 매력에 빠졌다. 처음에는 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쌉싸름함 뒤에 남는 은근한 단맛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그러나 아침마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그 침묵의 시간을 더 즐긴다는 것을 알았다. 커피콩을 가는 과정의 깊은 집중, 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리는 사이의 팽팽한 긴장, 가루가 물을 머금으며 부풀어 오를 때의 움트는 기척, 그리고 이 모든 순간이 모여 한 잔의 커피가 완성되고 있다는 확신. 그때 이미 향은 피어나고 있었고 맛은 자리를 넓혀 갔다.

그런데 바리스타 시험에 거품이라는 복병이 숨어 있을 줄 미처 몰랐다. 물과 가루는 기다리면 응답했지만 거품은 기다린다고 만들어지지 않았다. 피처를 잡은 손목의 높이가 조금만 어긋나도 숨은 거칠게 터졌고, 노즐이 깊어지면 답답한 숨은 그 자리에서 덜컥 멎어 버렸다. 닿는 것과 잠기는 것 사이를 정확히 짚어야만 거품의 결이 만들어졌다.

거품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국 위의 거품은 걷어내기 바빴고, 김빠진 맥주 거품은 식어버린 기대처럼 외면했으며, 입술에 묻은 치약 거품은 서둘러 헹궈내었다. 말끝에 부푼 허세의 거품과 한때 걷잡을 수 없이 퍼지던 분노의 거품은 저절로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어릴 때 내가 사는 시골에서는 거품을 버캐라 불렀다. 오줌 거품도 버캐라 하고 그것이 요강 속에 굳어 허옇게 껴 있으면 오줌버캐라고 했다. 그뿐인가. 아이들의 입가에 비누 거품 같은 침방울이 삐져나오는 것도 침버캐라 불렀다. 그러니 거품이나 버캐는 언제나 걷어내야만 하는 귀찮고 번거로운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진종일 거품을 붙들고 달래며 다독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에스프레소 위의 황금색 크레마는 말할 것도 없고, 우유 거품을 잘 흔들어 그 위에 보름달 같은 하트를 멋지게 그려내야만 카푸치노 실기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생각해보니 거품의 세계가 낯설지만도 않다. 된장 콩의 발효 거품 덕에 좋아하는 청국장도 먹을 수 있고, 오늘 산 호밀빵도 반죽 속 거품이 없었다면 그저 밀가루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도 깨닫는다. 매일 주방과 욕실에서 만나는 풍성한 거품까지 일상 곳곳에서 무시로 거품이 탄생하고 또 깨어진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은빛 거품이 돋아난다. 소용돌이 속에서 흩어졌던 거친 기포들이 스스로를 풀어 매끄러운 광택을 얻는다. 드디어 우유는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공기가 없었다면 저렇게 부풀지도 못했을 터. 삶에도 그럴 때가 있었다.

애써 밀어 올리려 할 때는 꿈쩍도 않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솟구쳐 오르던 기적의 순간들. 우유 거품처럼 늘 내 안에 머물고 있는 봉긋한 숨을 기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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