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환상에서 걸어 나오기
서정아 소설가
비용을 더 지불한 이에게
우선권이나 독점권을 줄 때
그럴 수 없는 이들은
이 세계에서 밀려나고 투명해진다
처음으로 열대 휴양지 여행을 다녀왔다. ‘바다 보면서 쉬는 거라면 부산에서 해도 되지 않아?’ 그런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제껏 여행 장소를 고를 때 휴양지는 옵션에 넣지도 않았었다. 경치 좋은 숙소에서 그저 쉬기만 하는 여행이란 아무래도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왕에 비행기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난다면 낯선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길을 잃고도 싶었고, 리조트 내의 뻔한 서양식 레스토랑이 아니라 우연히 발견한 로컬 식당에서 낯선 음식들을 먹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 가는 여행이 아니다 보니 나로서는 딱히 끌리지 않는 장소로 여행지가 정해졌고, 이왕 그렇게 된 거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이것 역시 새로운 경험이니까, 모처럼 푹 쉬면서 맛있는 열대 과일이나 실컷 먹고 오자고.
스스로 고쳐먹은 마음 덕분인지, 본래 열대 휴양지라는 곳이 사람 마음을 그렇게 만드는 건지, 막상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에 도착하고 보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날씨는 땀이 흐르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더웠고, 얼음 컵에 담긴 맥주는 시원했으며, 노란 망고는 입 안에 넣자마자 부드럽게 녹아 사라졌다. 흥겨운 음악 소리와 수영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밝게 웃어주는 직원들.
전용 비치를 비롯한 모든 부대시설이 리조트 안에 다 있었고, 해양 체험 등의 일일투어는 업체에서 픽업 차량을 보내주었기 때문에 리조트 밖으로 걸어 나갈 일은 없었다. 그래도 동네 구경은 좀 해보고 싶어서 하루는 아침 일찍 리조트 정문 밖으로 나서보았다. 울퉁불퉁한 도로변을 천천히 걷다가, 어린 아기를 안고 집 앞에 서 있는 노인과 눈인사도 나누고, 늙은 나무 위에 동상처럼 서 있는 어린 염소를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태풍에 쓰러진 채 오래 방치된 것 같은 나무들도 보였고, 작은 성당의 이국적인 성모상도 보였다. 낡아가는 것들과 새롭게 생성되는 것들, 파괴된 것들과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이 길 위에 공존했다. 그 길은 리조트 내부의 화려한 시설들과는 대조적이었고, 리조트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프라이빗 비치’와도 달랐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고 또 죽어가는 공간. 산책하는 이를 배제하지 않는 공간. 때때로 어수선하고 시끄럽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진짜인 공간.
그 차이를 체감하면서, 자본주의가 낳은 수많은 ‘프라이빗’ 공간들이 얼마나 배타적이며 지루한 것인가를 생각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바닷가의 선베드에서 칵테일 한 잔을 들고 찍는 사진들. 그러나 자연물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막아놓고서 비용을 지불한 이들에게만 그 길을 열어주겠다는 태도는 얼마나 잔인한가.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그 ‘프라이빗’한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환상에 빠져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아름다움을 독점하는 시간 동안 삶의 레벨이 한 단계 올라간 것 같다는 환상. 그 환상의 밑바닥에는 고단한 타인의 삶과 노동의 흔적이 은폐되어 있다.
휴양지의 ‘프라이빗 비치’뿐만이 아니다. ‘프리미엄 병동’ ‘초품아’ ‘패스트트랙’… 마치 더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것 같지만, 세련된 언어로 포장되었을 뿐 그 말에 담긴 잔인함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깊다. 비용을 더 지불한 이에게 우선권이나 독점권을 줄 때, 그럴 수 없는 이들은 이 세계에서 밀려나고 투명해진다. 조용하고 정돈된 ‘프라이빗 비치’에서의 몽글몽글한 기분도 물론 즐겁기야 하겠지만, 자본으로 누리는 환상에만 빠져 있기보다는 광장과 골목길을 두루 다니며 타인들과 관계 맺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를 좌충우돌 감각할 때 비로소 우리의 유한한 삶은 촘촘하게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