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소리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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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수필가

‘작은 거인’으로 불려온 대중가수가 최근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가 텔레비전에 등장한 건 반세기 전이었다. 더벅머리 청년이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쌀자루만 한 기타를 들고나와 무대 위에서 펄쩍펄쩍 뛰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당시의 텔레비전 무대는 대체로 단정했다. 가수들은 마이크 앞에 서서 몸을 크게 움직이지 않은 채 목청을 돋우며, 멜로디 중심의 발라드나 사색적인 포크송 같은 노래로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런 무대 위로 불꽃 튀듯 작은 체구가 자꾸만 위로 솟구치면서 샤먼의 몸짓 같은 야생의 춤을 추었는데, 마치 다른 세계에서 막 건너온 사람처럼 보였다. 관중들은 그 낯선 광경이 어리둥절했으나 곧 묘한 흥미에 사로잡혀 환호를 질렀다.

'작은 거인'으로 불리던 대중가수

최근 첫 개인전 '소리그림' 열어

소리의 파동을 그림으로 표현

미처 알지 못했던 소리 찾는 재미

물론 그를 자세히 본 것은 음악 무대가 아닌 스크린이다. 내 청춘의 인생 영화인 시대로부터의 탈출극 ‘고래사냥’에서였다. 짝사랑에 실패하여 가출한 소심한 철학과생 병태라는 인물로 요즈음 젊은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찰떡 캐스팅’이었다. 감독이 원하는 ‘키 작고 어리바리한 청년’에 딱 당첨(?)되어서 캐스팅됐다는 웃픈 일화가 있지만 참으로 반가웠다. 화면 속의 병태는 주변에도 한둘씩 존재하던 우리의 친애하는 동무로서 가엾고 측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그 어리바리한 청년이 실제로 전통 소리인 국악 공부를 하고 있었고, 출연한 영화의 음악까지 맡았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러나 그것은 훗날 ‘작은 거장’이 될 한 예술가의 시작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그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음악과 병행하여 삼십 년 동안 천여 점의 그림을 그려 왔었다. 생애 처음 연 전시회에는 ‘소리그림’이라는 재미있는 타이틀이 붙었다. 소제목으로도 ‘소리 탄생’, ‘소리 너머 소리’, 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수철소리’ 등으로 표현했다. 화폭에서 푸른 물결이 번져 나가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를 보이고, 붉은빛은 들끓는 용암처럼 비집고 솟구치며, 회색 덩어리들은 느리게 흘러내리거나 부딪치고 갈라진다.

작가는 그것을 소리의 파동이라 말했다. 캔버스라는 음표 위에 그림으로 옮겨 놓았다고도 했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세상의 소리가 음악이 된다는 생각은 해 보았으나 만물의 소리가 그림이 된다는 발상은 한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굽이치고 튀어 오르고 돌진하는 그 선들은 음악의 리듬처럼 흔들리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 어느 선은 알레그로처럼 빠르고 활기차게 화면을 가로지르고, 어느 덩어리는 아다지오가 되어 느리고 깊은 음처럼 묵직하게 가라앉는다.

그때였다. 인터뷰를 듣다가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는 사람의 소리, 지구촌의 소리를 넘어 우주의 소리, 행성의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아니, 별들의 소리가 들린다고? 그동안 많은 시인과 수필가가 숲이 흔들리는 기척을 느낀다거나, 저녁 종이 울리면 하루가 접히는 소리가 난다고도 했다. 때로는 나도 그들을 흉내 내어 우리 동네 제뢰등대가 등불을 끄고 입을 닫았다고도 했으며, 빗방울 화석지를 찾아가서는 석종 소리가 들린다고 떠들었고, 내 몸속의 뼈를 두고 골관 악기 소리가 난다며 과장법을 많이도 썼었다.

어쩔 것인가, 행성의 소리가 들린다는데. 놀란 것은 그의 광대무변한 세계관과 상상력의 스케일과 예술적 직관의 깊이였다. 현실의 틀 안에서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 예술의 세계로 건너가면 비로소 형체를 얻게 되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소리가 참 많다. 그러니 이 봄날,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글을 쓰지 않더라도 세상의 소리를 찾아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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