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변동불거의 시대에 던져진 분노 미끼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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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격변했던 한국 사회
정권 교체에도 정치적 혼란 지속
상업화한 분노 극단적 혼란 부추겨

주체성·방향 감각 회복하라는 경고
수도권 일극 극복, 성장 잠재력 회복
새해 지방선거 통해 해법 찾기를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에 섰다. 돌아보면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12·3 비상계엄의 후폭풍으로 시작된 2025년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연속이었다. 국가적 위기 앞에 국론은 분열되고 통합과 화합을 이뤄야 할 광장은 갈등과 분열의 현장이 됐다. ‘주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내려지고 조기 대선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주권정부가 들어섰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에도 나라 안팎의 위기와 정치적 혼란은 여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미 관세 협상은 타결됐으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통상 압력은 자유무역 질서에 기반한 우리 경제에 상존하는 위협으로 등장했다.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은 동맹이 더 이상 보호가 아니라 비용 회수 대상이고 국제 질서는 유지해야 할 자산이 아니라 현금화할 수 있는 자본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의 태세 전환이 단기적 충격이 아니라 국제 질서의 구조적인 변화를 의미한다는 이야기다.

외환보다 더한 게 내우였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을 역설했지만 정치 세력 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22대 국회 개원식에서 한복과 상복으로 갈린 여야의 드레스 코드는 제도권 정치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내란 청산과 사법 개혁을 둘러싼 소모적 정쟁은 우리 사회가 구조 개혁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여권의 내란 몰이는 해를 넘길 기세고 야권 또한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과 성찰 없이 새해를 맞으려는 모습이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변동불거’(變動不居)를 선정한 것은 이렇듯 격변한 한국 사회를 압축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주역〉 ‘계사전’에 등장하는 변동불거는 세상의 만물과 질서는 항상 변화하며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가 거센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으며,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시대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 교수신문의 설명이다.

동양의 고전에서 골라낸 단어가 변동불거였다면 서양의 시각에서 찜한 신조어는 ‘Rage bait’(분노 미끼)였다. 영국 옥스퍼드 출판부는 사용 빈도가 세 배 이상 늘었다며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분노 짜증 격분을 유발하도록 설계된 온라인의 미끼 콘텐츠를 뜻하는 이 단어가 온라인상 감정 조작과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현대인들의 우려를 가장 잘 포착했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변동불거와 분노 미끼는 전혀 다른 틀의 별개 사건처럼 보이지만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분노 미끼가 개인의 감정이 자극과 시장 논리에 흔들리는 모습을 포착한 것이라면 변동불거는 사회 구조 전체가 예측 불가능한 속도로 변화하는 불안정한 현실을 반영한다. 불안 속 ‘분노 팔이’는 사회적 분열과 혼란을 자극하고 극단으로 갈라선 사회는 다시 분노를 소비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이게 바로 한 해 동안 목도했던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변동불거와 분노 미끼는 알고리즘에 휘둘리지 않는 개인의 주체성, 격랑 속에서도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사회적 균형 감각과 방향 감각을 회복하라는 경고일 터인데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할지가 세밑에 던져진 새해 숙제일지도 모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확인됐던 K컬처의 저력일 수도 있겠고 APEC 기간 ‘깐부 회동’에서 엿봤던 한국의 산업 경쟁력에 대한 기대일 수도 있다.

문제는 성장 잠재력 한계에 갇힌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어떠한 희망도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망국적 수도권 일극주의와 그로 인한 인구 절벽 문제 말이다. 올해 사상 첫 수출 7000억 달러 돌파와 주식시장 활황에도 환율이 급등하는 등 불안한 장세를 이어가는 것도 한국 사회가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누군가는 올해 10월까지 16개월째 출생아 수가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0.72명까지 추락했던 합계출산율이 0.8명대로 회복하는 등 아이 울음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데서 희망의 불씨를 찾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뤘던 혼인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수도권 일극에 대응할 새로운 국가의 성장축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마침, 그 해법을 찾는 공론의 장이 새해에 열린다. 6월 3일로 예정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다. 변동불거의 시대를 넘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 같은 방향으로 에너지를 집중하는 2026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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