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원전 르네상스와 에너지 정의
논설주간
한수원 대형 원전과 SMR 공모에
울진·영덕·기장·경주 유치전 가세
국제사회 원전의 가치 다시 주목
에너지 정책의 탈이념·탈정치화
고준위폐기물 등은 여전히 난제
차등요금제로 문제의식 공유해야
국내 지자체들의 원전 유치 경쟁이 불붙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신규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에 대한 건설 후보지를 공모했는데 2+2의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대형 원전의 경우 울산 울주군과 경북 영덕군, SMR은 부산 기장군과 경북 경주시가 각각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자체마다 높은 주민 수용성과 부지 확보 등의 여건을 내세우며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한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안전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고 세계적으로 탈원전 움직임이 거셌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대표적 님비(Not In My Back Yard)의 대상이었던 원전이 핌피(Please In My Front Yard)의 주인공이 되어 돌아온 격이다.
원전에 대한 ‘혐오’가 ‘선호’로 바뀌고 있는 것은 원전 안전에 대한 기술 진화와 저탄소 에너지원이라는 공감이 확산하면서 사회적으로 우호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데 따른 영향이 크다. 특히 SMR은 원전 안전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으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산업화 경쟁이 불붙고 있을 정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감을 확산시켰고 인공지능(AI) 산업 팽창으로 인한 에너지 수요 폭증은 기저 전력원으로서 원전의 현실적 중요성을 다시 각인시켰다.
여기다 난데없이 터진 중동전쟁 여파로 국제사회는 원전 복귀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탈원전 1호 국가’로 불리던 이탈리아가 최근 몇 년 사이 SMR법을 제정하고 원전 건설을 재추진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재생에너지 강국 스위스는 최근 신규 원전 건설 금지 조치를 해제하는 법안을 상원에서 통과시켰고, 스웨덴도 탈원전에서의 유턴을 선언하며 원전 건설에 뛰어들었다. 일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기존 원전 국가들도 원전 축소 정책에서 선회해 원전 가동 연장과 재가동, 신규 원전 건설 정책을 추진 중이다.
최근 중동전쟁의 와중에 “원전 중단은 거대한 실수였다”고 고백한 독일 정부의 사례는 국제사회에 뼈아픈 교훈을 새겼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선언하고 원전 대신 LNG 발전에 올인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국민 생활은 물론이고 산업 전반에 재앙적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독일의 에너지 전환 실험은 세계에서 가장 야심 차고 값비싼 실패의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국제 사회의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 들어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출범시키고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공언하면서도 국가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원전 건설과 SMR 산업화 추진을 반영한 것은 이런 국제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이미 앞선 정부에서의 탈원전과 탈탈원전의 과정을 거치며 에너지 정책이 과학과 산업, 안보의 관점이 아닌 정치와 이념에 휘둘렸을 때 발생하는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이재명 정부가 이념이 아니라 실용을 내세우며 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의 균형점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정책적 과제는 남는다. 6월 중 신규 원전 입지를 결정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그 자체로 원전에 대한 수용성을 담보하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원전 건설로 인한 지역 경제 파급과 지원금으로 지역 소멸을 해결해 보려는 눈물겨운 생존의 몸부림일 뿐이다. 경북 청송군이 교도소 성지라며 여자교도소 유치에 나서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포화 상태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와 원전 밀집도 증가에 따른 안전 리스크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원전의 산업적 가치와 사회적 리스크 부담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함께해야 에너지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 확보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분산에너지법이었고 그에 따른 차등요금제였다. 좋은 에너지 정책은 안정적 공급이라는 안보적 측면과 적정한 가격과 접근성이 보장되는 경제성, 환경보호를 위한 지속 가능성에 더해 에너지를 만드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 사이의 공정성이 담보돼야 완성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규 원전 건설이 현실화하고 있는 지금까지 차등요금제 시행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특히나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차등요금제 도입과 관련해 산업계에 우선 적용하고 가정용에 대해서는 유보적 자세를 보이는 것은 에너지 정책을 여전히 정치적으로 접근하려는 위험한 인식이다. 에너지 문제에 대한 국민의 올바른 인식은 결국 전기료를 통해 체감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의 가치가 제대로 꽃피워야 할 지점이 바로 에너지 백년대계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