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미군의 '확고한 결의'와 정보전의 진화
논설주간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 생포 압송
정보기관 전문성·초격차 첨단기술
미 압도적 정보전 역량 세계에 과시
낮은 기술력·낡은 이념 틀에 갇힌
쿠바 정보기관 허수아비로 전락
우리 국정원·방첩사의 현주소는…
미국의 첨단 과학기술 발전이 군대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제법 알려진 사실이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에 허를 찔린 미국은 이듬해 고등연구계획국(ARPA)을 설립한다. 1960년대 접어들면서 냉전이 심화하자 미군은 과학 연구 필요성을 더 절실히 깨닫는다. 아르파는 탄도미사일 방어, 핵 실험 탐지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프로젝트를 맡으며 연구 범위를 확장한다.
1972년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으로 이름을 바꾸고 단순 군사기술을 넘어 신호처리, 음성인식 등 첨단 과학기술 투자를 확대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혁신을 이끈 원천 기술 대부분이 다르파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의 원형인 아르파넷, GPS, 드론, AI, 심지어 반도체 기술도 다르파에서 시작됐다. 양자컴퓨터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곳도 다르파다.
미국이 초격차 기술로 세계 패권을 유지하는 배경에 다르파가 있는 것이다.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을 등에 업고 공격적 연구개발을 수행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기술이라면 가장 먼저 만들어내야 하는 게 다르파의 존재 이유다. 인간의 욕망이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전쟁 상황이 인류에게 기술적 진보를 가져다준다는 게 아이러니이기는 하다.
미군이 새해 벽두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마두로 대통령을 생포한 일명 ‘확고한 결의’ 작전은 첨단기술로 무장한 정보전 위력을 만천하에 과시한 사건이었다. 작전은 사이버 공격으로 카라카스 도심을 암흑에 빠트린 후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첫 폭발음이 들리고 3분 만에 미군 특수부대 요원이 안전실로 대피하려는 마두로 부부 앞을 가로막았다. 이 압도적 작전 전개 과정 곳곳에는 다르파의 첨단기술이 숨어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베네수엘라 정부 내부 정보원을 통해 마두로의 이동 정보를 확보했고 생활 패턴을 장기간 추적했다. 마두로가 특정 시간대에 어디에 있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애완동물은 어떤 종류인지까지 알아냈다. 스파이를 통한 ‘휴민트 정보’뿐 아니라 인공위성, 스텔스 드론으로 정보를 수집한 후 AI 알고리즘으로 최적의 침투 동선을 찾아냈다.
이 과정에서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 것은 공교롭게도 한때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쿠바 정보기관이었다. 이번 작전으로 희생된 56명 중 32명이 마두로를 근거리에서 지키던 쿠바 특수 요원이었다. 미군은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었다. 쿠바는 냉전시설 소련 KGB와 손잡고 첩보 수출국으로 이름을 날렸다. CIA의 집요한 피델 카스트로 암살 시도를 차단하고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 원수 경호를 담당하며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이번 작전 과정에서 그 전설 속 ‘아바나의 독거미’는 ‘종이호랑이’로 판명 난 것이다.
우크라이나전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에 이어 쿠바까지 낮은 기술력과 인력 중심의 정보망에 의존해 온 공산권 특수부대와 정보기관이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냉전시대 낡은 이념의 틀에 갇혀 조직 문화에서 정치적 충성심이 전문성을 압도하고 급격한 기술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이번 베네수엘라 작전 개시를 앞둔 시간 미 전쟁부인 펜타곤 주변에는 직원들의 비상근무로 피자 주문이 늘었다며 이른바 ‘펜타곤 피자지수’로 작전 개시 징후까지 읽어내는 시대다.
이쯤 되면 우리 정보기관과 정보전 수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엄중한 상황이라 더 그렇다. 하지만 우리 정보기관은 전문성에 대한 고민보다 정권 부침에 따라 정치적 논란거리가 되는 게 현실이다. 국가정보원은 대공 수사권 폐지로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져 있고 국군 방첩사령부는 12·3 비상계엄을 주도한 혐의로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방첩사는 방첩과 보안, 수사 기능을 각각 분리하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 중인데 이 과정에서 안보 역량 강화라는 본질적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최근의 안보 환경이 사이버전, 심리전, 내부 교란을 포함한 하이브리드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방첩사 재편 방향에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2024년 국군정보사령부의 대북 블랙요원 신분이 외부로 유출되는 참사가 알려진 것도 우리 군의 안보 역량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미군의 ‘확고한 결의’ 작전은 철저히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 질서의 단면을 보여줬다. 이제 진영조차 냉전의 추억일 뿐 우리 앞 현실은 냉혹한 각자도생의 길뿐이다. 스스로 안보 역량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게 정보기관이다. 정보력이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다. 국내 정치에 휘둘리고 있는 우리 정보기관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