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하나 되니 강했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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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동계올림픽 한국 13위 폐막
메달 색깔보다 선수 땀·눈물이 값져

쇼트트랙 3000m 계주 금빛 질주
팀워크 살아나니 화해의 서사 빛나

6·3 앞두고도 내분 휩싸인 정치권
지역 위한 선의의 경쟁 기대난인가

지구촌 겨울 축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23일 베로나 아레나에서 열린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를 따내 종합 순위 13위를 기록했다. 목표로 내세웠던 10위 내 진입은 무산됐지만, 14위에 올랐던 2022년 베이징 대회보다 한 단계 도약하며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다.

하지만 메달 색깔이나 종합 순위보다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흘린 땀과 눈물일 것이다. ‘8년 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몇 위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으로 시작하는 주류 회사 광고 카피가 많은 이의 공감을 얻으며 화제였다. ‘근데 신기하게도 영미를 외치던 팀킴의 이야기나 은메달의 아쉬움이 아닌 기쁨을 춤추던 이야기는 또렷이 기억한다’로 이어지는 광고는 ‘성적은 잊혀도 이야기는 계속된다’로 맺는다. 역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순위가 아니라 선수들이 연출한 감동의 드라마일 테다. 이번 올림픽에서 3연패 신화에 도전한 클로이 김을 제치고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스노보드 최가온 선수의 스토리 같은 것 말이다.

최가온의 투혼은 금빛보다 더 찬란했다. 1차 시기 점프 후 크게 넘어지며 머리를 강하게 부딪혀 의료진까지 투입됐지만, 스스로 일어나 다시 보드 위에 올랐다. 2차에서도 넘어지며 대회를 마치는 듯했으나, 마지막 3차에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완벽한 연기를 펼치며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대회 후 뼈가 세 군데나 부러진 상태로 경기를 강행했던 사실이 알려져 놀라움을 더했다.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는 우리 선수들이 만들어낸 화해의 서사가 경기장을 감동으로 물들였다. 세계 최강이던 우리 쇼트트랙은 이번 대회에서 힘과 기술을 겸비하며 급성장한 네덜란드에 발목이 잡혀 고전했다. 반전의 계기를 만든 게 최민정-김길리-노도희-심석희로 구성된 대표팀이 하나 되어 연출한 금빛 질주였다. 마지막 4번 주자 심석희가 1번 주자 최민정을 힘차게 밀어 치고 나가는 모습은 이들의 흑역사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1000m 결승에서 두 선수는 충돌 후 함께 빙판에 넘어지며 메달을 놓쳤다. 이 장면은 3년 뒤 심석희와 코치 간 대화 메시지 유출로 고의 충돌 의혹과 함께 선수 간 불화설을 수면 위로 올리며 빙판계를 흔들었다. 파벌 싸움으로 얼룩진 빙상연맹의 민낯도 드러났다. 심석희에게 2개월 자격정지 징계가 내려졌고, 결국 그는 베이징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다. 여자 계주는 캐나다에 밀려 은메달에 그쳤고 한국 쇼트트랙도 침체에 빠졌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 주장을 맡은 최민정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심석희도 화답했다. 신체 접촉마저 피하던 두 선수는 폭발적 힘을 가진 심석희가 힘껏 밀어주고 최민정이 그 탄력으로 상대 선수를 제치는 전략으로 팀워크를 살려냈다.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 심석희는 빙판 위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고, 최민정은 그런 심석희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하나 되니 개인전도 풀렸다. 1500m 결승 레이스에서는 최민정과 김길리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1,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최민정은 후배의 대관식을 기꺼이 축하했고, 후배는 전설 속 선배에게 경의를 표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 되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쇼트트랙은 흔히 하계올림픽의 양궁과 비교되곤 한다. 파리 올림픽에서 여자 단체전 10연패라는 전대미문의 대업을 이룬 양궁이라고 내분이 없었을 리 없다. 선수 간 갈등을 외부로 표출하지 않고 선의의 경쟁이라는 좋은 자극으로 승화시켰을 뿐이다. 양궁협회는 선수 선발 과정부터 투명성과 공정성을 철저히 지켜 선의의 경쟁과 결과에 승복하는 프로 정신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재도약을 준비하는 빙상계가 새겨야 할 대목이다.

이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집안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는 정치권에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윤석열 내란 선고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국민의힘 내분은 자해 수준이다. 민주당이 이상한 대통령 지지 모임이라는 걸 놓고 벌이는 내분은 권력투쟁이라는 속성상 야당의 내분과는 또 다른 차원의 파괴력을 예고한다. 이런 정치 세력에게 지역 미래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딸에게 전한 최민정 선수 어머니 손 편지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성적보다, 기록보다 지금까지 딸이 버텨온 그 시간 자체가 금메달이라고 격려하는 모정이 뭉클하다. 우리 국민에게는 과정 자체가 금메달이고 감동인 정치를 보는 게 영영 꿈같은 이야기일까.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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