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입만 터는 문과놈들' 행동할 차례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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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진 스포츠라이프부 차장

기승전‘의료수가’.

의료담당이 된 지 두 달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의료수가(의료행위에 대한 대가)’다. 진료 과목·기관 규모에 관계없이 첫 만남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말이기도 했다. 이들은 ‘의료수가 현실화’가 지역·필수의료 분야 공백을 메우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의대 정원‘만’ 확대하는 것은 소위 돈 되는 진료분야의 쏠림 현상만 가속화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의료수가는 국민 모두가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공공의료보험제도 아래 책정된 기준이다. 적정 수가 기준은 따로 없지만 OECD의 세계 각국 비교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현행 의료수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분명하다. 그 덕분에 의료 문턱이 낮아지고 병원 이용에 대한 국민 부담도 크게 줄어들었다.

문제는 진료과목별 급여진료 기준 비용 대비 수입(원가보전율)이다. 안과 등 특정과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00%를 넘기지 못한다. 병원 입장에선 급여진료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인 셈이다. 원가보전율이 특히 낮은 소아과, 산부인과는 인구 감소와 맞물려 줄폐업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병원들은 대신 비급여 항목을 늘려 수익을 보전한다. 최근에 만난 한 의사 역시 ‘손’으로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낼수록 적자가 커지는 바람에 비급여인 ‘보조’ 수술용 로봇을 활용해야 하는 현실을 자조했다.

필수의료 대부분은 낮은 의료수가로 인해 인력 부족이 디폴트가 됐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이 2023년 국민·의사 21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필수의료 인식 조사’에서 국민은 과도한 업무부담(39.1%)과 낮은 의료수가(19.2%)를, 의사들은 낮은 의료수가(58.7%)와 법적 보호 부재(15.8%)를 필수의료 분야의 인력 부족의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의협이 같은 해 전국 의대 본과 학생 811명을 대상으로 한 인식조사 결과도 마찬가지. 의대생 2명 중 1명(49.2%)는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원인으로 ‘낮은 의료수가’를 꼽았다. 낮은 의료수가가 필수의료 인력부족의 주된 원인으로 두루 인식된 것이다.

중증외상분야 권위자이자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주인공의 모델이 되기도 한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이 지난달 군의관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한 작심발언은 의료수가 문제에 더욱 힘을 실었다. 강연에서 “한평생 외상외과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바뀐 건 하나도 없었다. 내 인생은 망했다”고 토로한 그는 ‘탈조선’과 ‘NO 바이탈(필수의료)’을 권했다. 이는 치료를 하면 할수록 적자 규모가 커지는 우리나라 필수의료체계에서 평생 헌신한 그의 절망이었다.

올해 건강보험 수가협상 막이 올랐다. 의정갈등 장기화로 인한 상급 종합병원 피해 복구에 수조 원이 투입된 상황에서 의료수가 현실화는 논란이 된 세월만큼 갈 길이 멀다. 지역·공공의료 공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현실화 해법을 찾기란 녹록지 않다. 하지만 일차의료 강화, 국민주치의 제도 도입, 중증질환·전문의 중심의 상급 종합병원 구조전환 등 의료전달체계 재정비 논의가 이뤄지는 지금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를 기반으로 한 공공 인프라 확충 등의 움직임도 호기라면 호기다.

이 원장이 분노했던 ‘입만 터는 문과놈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가 왔다. 정권 창출에만 급급하거나 갈라치기로는 국민을 위한 길을 찾을 수 없다. 의료 붕괴를 막고 양질의 의료 시스템이 유지되도록 행동으로 나설 차례다. onlypen@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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