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부산오페라하우스 흔들림 없이 가는 길
논설위원
공사 차질로 4월 현재 공정률 55%
내년 말 준공 2027년 하반기 개관
정작 중요한 ‘개관일’은 미정 상태
성악가 캐스팅 등 공연 준비 차질 우려
저변 확대 위한 교육 프로그램 필요
부산 이야기 담은 오페라 고민도
부산 북항 바닷가에 ‘비정형 외피’를 입은 새로운 건축물이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바로 부산오페라하우스다. 독특한 파사드 구현을 위해 공법 문제로 한때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2023년 5월 재개돼 2025년 4월 말 현재 공정률은 55%에 이르렀다. 부산시와 운영 주체인 클래식부산은 내년 말 준공 후 6개월가량 임시 운영 또는 정비 기간을 거쳐 2027년 하반기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오페라하우스는 부산 시민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문화예술의 상징이며, 해양도시 부산의 위상을 높일 핵심 공간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상징이 되려면 단순한 건축을 넘어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따라야 한다. 개관까지 2년 남짓 남았다. 다행히 당초 개관이 2024년 10월이었기에 창작오페라 제작과 전문 인력 양성에 일찍이 착수했지만, 그렇다고 남은 시간이 절대 넉넉하진 않다.
클래식부산은 오페라하우스 개관작으로 몇 가지 작품을 검토 중이며, 그중 바다의 정서를 담은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가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개관 기념 창작오페라로는 ‘새야 새야’를 준비 중이다. 클래식부산 측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통해 관객의 공감을 얻고 오페라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시민만으로는 장기 공연의 관객을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관광 콘텐츠와 해외 관객 유치 전략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개관일’은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클래식부산은 2027년 9월 또는 4분기 개관을 예상하지만, 공정률이 이제 겨우 절반을 넘긴 상황이고 과거 공사 지연으로 개관 날짜를 쉽게 못 박지 못하는 처지다. 일정이 불투명한 탓에 성악가 캐스팅이나 해외 협업 등 공연 준비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오페라는 수년 전부터 준비가 필요한 예술이다. 그렇기에 지금 시점에서 예측 가능한 개막 일정 확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는 향후 콘텐츠 기획과 운영 전략의 출발점이자 기반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멋진 건물 하나, 몇 편의 뛰어난 공연만으로 오페라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을까?” 오페라는 고전 예술이자, 인간의 욕망과 갈등, 사랑과 비극을 무대 위에서 풀어내는 종합예술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는 어렵고 낯선 장르다. 건축의 위용만으로는 이 거리감을 좁힐 수 없다. 오페라하우스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관객이 있어야 하고, 관객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해와 공감의 통로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교육 등의 아카데미 프로그램이다. 청소년 워크숍, 해설형 콘서트, 무대 체험 같은 접근이 시민을 오페라와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이 교육은 개관 이후가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2027년 무대에 진짜 관객이 설 수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부산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오페라를 만들어 나갈 필요도 있다. 부산은 도시 전체가 서사다. 임진왜란의 격전지이자 조선통신사의 출발지, 한국전쟁 당시 피란수도였던 이 도시는 오페라가 요구하는 서사의 보물창고다. 실제로 과거 창작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 ‘윤흥신’ 등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지역 역사와 예술을 연결한 시도였지만 아쉽게도 일회성에 그쳤다. 부산 앞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윤심덕의 이야기, 강남주 전 부경대 총장의 역사소설 〈유마도〉에 담긴 조선통신사의 여정 역시 훌륭한 오페라 모티브가 될 수 있다. 특히 〈유마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무용극 ‘춤, 조선통신사-유마도를 그리다’는 일본 진출을 앞두고 있어, 이를 오페라로 확장하는 시도도 검토해 볼만하다. 이런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면 단지 공연이 아니라 부산의 정체성을 예술로 말하는 일이 될 것이다. 꼭 지역 소재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지나치게 지역주의에 빠져서도 곤란하다. 그러나 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부산형 오페라’ 하나쯤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역시 개관 이후 지역 이야기를 담은 창작오페라를 꾸준히 무대에 올리며 지역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추구해 오고 있다.
문화는 단발성이 아니다. 이 외에도 부산형 오페라 페스티벌이나 지역 작가·작곡가·연출가의 레퍼토리 개발 등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면 한다. 이는 단순한 공연 프로그램을 넘어 지역 예술 생태계를 성장시킬 수 있는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대구가 대구국제오페라축제(DIOF)를 통해 지역 예술 인프라를 키운 사례는 부산에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지역 인재들이 직접 공연 제작에 참여하고, 오페라 축제를 통해 일상적인 문화 행사로 자리 잡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게 지속 가능한 오페라 도시가 되는 기본 요건이다. 오페라하우스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길 시간, 기억, 정체성이라는 문화를 짓는 일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